이븐 할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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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븐 할둔은 14세기 북아프리카 출신의 학자이자 역사가로, 사회학, 역사철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는 스페인 세비야 출신으로 튀니스에서 망명한 명문 가문 출신이며, 여러 이슬람 왕조의 궁정을 거치며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그의 대표작인 《알이바르》는 세계사적 저술로, 특히 서론 격인 《무카디마》는 사회의 형성과 변화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을 담고 있어 그의 학문적 위상을 드높였다. 그는 '아사비야'라는 개념을 통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을 설명했으며, 사회의 흥망성쇠와 경제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했다. 이븐 할둔의 사상은 서구 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 사회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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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할둔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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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아부 자이드 압드 알-라흐만 이븐 무함마드 이븐 칼둔 알-하드라미 |
로마자 표기 | 'Abū Zayd ‘Abd ar-Raḥmān ibn Muḥammad ibn Khaldūn al-Ḥaḍramī |
출생일 | 1332년 5월 27일 |
출생지 | 튀니스, 합스 왕조 술탄국 |
사망일 | 1406년 3월 17일 |
사망지 | 카이로, 맘루크 술탄국 |
종교 | 이슬람교 |
종파 | 수니파 |
법학파 | 말리크파 |
신조 | 아슈아리파 |
활동 분야 | |
주요 관심 분야 |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인구 통계학 정치학 |
주요 사상 | 아사비야 국가 형성 정복 이론 제국 순환 이론 경제 성장 이론 수요-공급 이론 공급 측면 경제학 |
영향을 준 인물 | 알-파라비 알-가잘리 알-자히즈 알-라지 알-투시 아리스토텔레스 아투르투시 이븐 바자 이븐 루시드 이븐 시나 이븐 아비 자르 이븐 하즘 이븐 자리르 알-마와르디 |
영향을 받은 인물 | 이븐 알-카티브 이븐 알-사카크 알-마크리지 이븐 구랍 이븐 알-아즈락 첼레비 무스타파 나이마 아흐메드 제브데트 20세기 전통주의 토인비 오로완 아멜 콩트 |
철학적 배경 | |
학파 | 마리크 학파 마즈하브 이슬람 경제 |
연구 분야 | 사회과학 사회학 역사 사료 편찬 문화사 역사철학 인구 통계학 외교 경제학 이슬람 연구 군사 이론 철학 정치 국정술 신학 |
영향을 받은 인물 (일본어 문서 기반) | 무함마드 말리크 이븐 아나스 파크르 앗 딘 앗 라지 나시르 앗딘 투시 알 아빌리 무슬림 경제학자 |
영향을 준 인물 (일본어 문서 기반) | 로버트 플린트 타하 후세인 아널드 J. 토인비 어니스트 겔너 프란츠 로젠탈 프란츠 오펜하이머 아서 래퍼 페르낭 브로델 사회과학자 |
특기할 만한 개념 | 인구 통계학 역사학 문화사 역사철학 사회학 사회과학 근대 경제학의 선구자 아사비야 이론과 문명의 흥망 발전자 |
기타 정보 | |
발음 (영어) | /ˈɪbən hælˈduːn/ |
발음 (재표기) | IHbun halDOON |
발음 (아랍어) | ibn-khaldun |
로마자 표기 (아랍어) | Abū Zayd ‘Abd ar-Raḥmān ibn Muḥammad ibn Khaldūn al-Ḥaḍramī |
2. 생애
스페인 세비야에서 유래한 명문 할둔 가문 출신으로, 1332년 튀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프스 왕조를 시작으로 마린 왕조, 나스르 왕조 등 북아프리카와 알안달루스의 여러 이슬람 왕조에서 관직 생활을 하며 정치적 경력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외교 사절로 활약하기도 했으나, 정쟁에 휘말려 투옥되는 등 순탄치 않은 정치 역정을 보냈다.
정치 일선에서의 부침을 겪은 후, 그는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1375년부터 1378년까지 알제리의 한 마을에 칩거하며 대표작인 《이바르의 책》(Kitab al-‘Ibar)과 그 서론인 《무깟디마》(Muqaddimah) 집필에 전념했다. 특히 《무깟디마》는 사회와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으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선구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이븐 할둔은 1382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여 맘루크 왕조의 후원 아래 마드라사 교수와 말리크파 대법관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학술 및 법률 활동을 펼쳤다. 1401년에는 다마스쿠스에서 당대의 정복자 티무르와 만나 학문적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이후 카이로에서 여러 차례 대법관직을 수행하다 1406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깊이 있는 학문적 성과는 이슬람 지성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 1. 가문과 출신


이븐 할둔의 본명은 '''아부 자이드 압드 알라흐만 이븐 무함마드 이븐 칼둔 알하드라미'''(Abū Zayd 'Abdu r-Rahman bin Muhammad bin Khaldūn Al-Hadrami|아부 자이드 압두르 라흐만 빈 무함마드 빈 할둔 알하드라미ar)이다. '아부 자이드'는 "자이드의 아버지"라는 뜻의 쿤야이며, 본명은 압드 알라흐만, 아버지의 이름은 무함마드이다. 흔히 알려진 '이븐 할둔'은 "칼둔의 아들"이라는 직역보다는, 알안달루스에서 흔히 쓰이던 방식으로 "칼둔 가문의 자손" 또는 "칼둔 가문의 사람"을 의미하는 일종의 성씨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자서전(التعريف بابن خلدون ورحلته غربا وشرقا|앗타리프 비 이븐 할둔 와리흘라티히 가르반 와샤르칸ar; ''이븐 할둔과 그의 서쪽과 동쪽 여정 소개'')에 기록하여 비교적 자세히 알려져 있다.[23]
그는 1332년(히즈라력 732년) 튀니스에서 상류층 안달루시아계 아랍 혈통의 가문에서 태어났다.[24][25] 그의 가문은 남아라비아의 하드라마우트(현재 예멘 지역) 출신 아랍인 와일족을 조상으로 한다.[81] 할둔 가문의 시조는 8세기 아랍의 이베리아 반도 정복에 참여했으며, 이후 알안달루스에 정착했다.[81] 이븐 할둔은 자신의 혈통이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와일 이븐 후즈르와 연결된다고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다.[24] "우리 조상은 하드라마우트 출신이며,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 출신으로, 와일 이븐 후즈르, 즉 후즈르 이븐 아디를 통해, 가장 훌륭하고 잘 알려지고 존경받는 아랍인들 중 한 명을 통해 이어집니다." (자서전 인용) 그는 베르베르 왕조 지배 하에서도 자신의 아랍 혈통을 강조했다.[27][28]
9세기에 할둔 가문은 스페인 세비야의 유력 귀족으로 성장했으며,[81] 1248년 레콩키스타로 세비야가 함락되기 직전까지 이슬람 왕조 아래에서 지배 귀족의 지위를 유지했다.[24][81] 세비야 함락 후, 가문은 이프리키야(현재의 튀니지, 알제리 동부)의 하프스 왕조 수도 튀니스로 망명했다.[24][81] 당시 하프스 왕조의 창시자이자 과거 세비야 태수를 지냈던 아부 자카리아 1세의 보호를 받았다.[81] 튀니스에서 그의 가족 일부는 하프스 왕조의 정치적 직책을 맡기도 했으나,[24] 할둔의 조부 무함마드(?~1337)는 정치 참여를 거부하고 수피즘에 몰두하는 종교적인 삶을 살았다.[82] 그의 아버지 무함마드(?~1349) 역시 조부의 영향을 받아 정치에서 물러나 학문(코란, 이슬람 법학(샤리아), 아랍어 문법, 작시)에 전념하며 수피 교단에 합류했다.[24][82] 그의 형제인 야히야 칼둔(Yahya Khaldun) 또한 역사가였으며 압달와디드 왕조에 관한 책을 저술했으나, 궁정 역사가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인물에게 암살당했다.[26]
2. 2. 유년기와 교육
아부 자이드 압드 알 라흐만 이븐 무함마드 이븐 칼둔 알 하드라미(أبو زيد عبد الرحمن بن محمد بن خلدون الحضرمي|Abū Zayd ‘Abdu r-Raḥmān bin Muḥammad bin Khaldūn Al-Ḥaḍramīar)는 일반적으로 먼 조상의 이름을 따 "이븐 할둔"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332년 5월 27일(히즈라력 732년) 하프스 왕조의 수도였던 튀니스에서 태어났다.[24][25] 그의 생애는 직접 쓴 자서전(التعريف بابن خلدون ورحلته غربا وشرقا|at-Taʻrīf bi-ibn Khaldūn wa-Riḥlatih Gharban wa-Sharqanar;[23] ''이븐 할둔과 그의 서쪽과 동쪽 여정 소개'') 덕분에 비교적 자세히 알려져 있다.
그의 가문은 본래 스페인 세비야에서 활동했던 명문 할둔 가문으로, 알안달루스계 아랍 혈통이었다.[24][25] 조상은 하드라마우트인으로,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동료였던 와일 이븐 후즈르와 친족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알안달루스에서 여러 고위직을 지냈으나, 1248년 세비야가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함락되자 튀니지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수피 교단에 합류했다.
소년 시절, 이븐 할둔은 당시 명문가의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튀니스의 여러 학자들에게 이슬람 법학, 전승학(하디스), 철학, 작시 등을 배우며 정계 진출에 필요한 교양을 쌓았다.[83] 그는 마드라사에서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았는데, 쿠란을 암송(하피즈)하고 아랍어 언어학, 하디스, 샤리아(법), 피크흐(법학)를 깊이 공부하여 각 과목에서 인증서(ijazah)를 받았다.[29]
1347년, 튀니스가 마린 왕조의 술탄 아부 알하산 알리에게 점령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 술탄을 따라 모로코에서 온 학자들과의 만남은 젊은 이븐 할둔의 학구열을 크게 자극했다. 이 시기에 그는 틀렘센 출신의 저명한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 아비리(Al-Abili)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83] 알 아비리는 이븐 할둔에게 이슬람 수학, 논리학, 이슬람 철학 등을 가르쳤으며, 특히 아베로에스, 아비케나, 파크르 알딘 알라지, 샤라프 알딘 알투시와 같은 중요한 이슬람 철학자들의 저서를 함께 탐구했다. 이븐 할둔은 알 아비리가 주관한 독서회에서 뛰어난 이해력을 보여주었다.[84]
그러나 1349년, 당시 유럽과 북아프리카 전역을 휩쓸었던 흑사병(페스트)이 튀니스에 닥치면서 이븐 할둔은 부모님과 많은 스승을 잃는 큰 슬픔을 겪었다.[30][85] 이러한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고, 1351년 스승 알 아비리가 모로코로 돌아갈 때까지 그의 곁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그해 4월에는 『종교학 개론 요설』이라는 저술을 완성하며 학문적 성과를 이루었다.
알 아비리 밑에서의 학업을 마친 후, 이븐 할둔은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하프스 왕조를 시작으로 마린 왕조, 나스르 왕조, 베자이아의 하프스 왕조 지방 정권 등 지중해 연안의 여러 이슬람 정권에서 활동하게 된다.
2. 3. 정치 경력
스페인 세비야에서 튀니스로 망명한 명문 할둔 가문 출신으로, 처음에는 튀니스의 하프스 왕조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9세에 하프스 왕조의 국새 서기관[87]으로 임명되었으나, 이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서쪽으로의 이주를 희망했다.[86] 1352년 술탄 이브라힘 2세의 반란 진압에 참여하던 중 군대를 이탈하여 페즈로 향했다.[88] 당시 북아프리카의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마린 왕조의 술탄 아부 이난이 베자이아를 점령하자 그를 찾아가 환대를 받았다.[89]1354년 아부 이난의 부름을 받아 페즈로 가서 마린 왕조의 궁정 학자 집단에 합류하며 서기관 직책을 맡았다.[89] 비록 높은 지위는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생활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여러 정치가 및 외교관들과 교류했다.[90] 이 시기 마린 왕조에 인질로 잡혀 있던 하프스 왕족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와 친분을 쌓고, 1356년 말 아부 이난이 병들자 압둘라와 함께 그의 옛 영지인 베자이아를 되찾을 계획을 세웠다.[91] 그러나 계획이 발각되어 이븐 할둔은 1년 9개월간 투옥되었다.[92] 아부 이난이 사망한 후, 재상 하산 븐 아말에 의해 석방되어 재산을 돌려받았다.[93]
아부 이난 사후 마린 왕조가 내분 상태에 빠지자, 이븐 할둔은 여러 세력 사이에서 정치적 입지를 모색했다. 그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돌아와 술탄 자리를 노리던 아부 살림을 지지하여 그의 즉위에 공을 세웠고, 1359년 국새상서라는 고위직에 임명되었다.[94][95] 그러나 아부 살림의 폭정과 권력 투쟁에 실망하여 점차 정무에서 멀어졌고, 소원원의 재판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96][97] 1361년 아부 살림이 쿠데타로 살해된 후, 쿠데타 주도자이자 친구였던 아말 븐 압둘라가 집권하면서 그의 지위는 보장되었으나, 더 높은 자리를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자택에 머물렀다.[97][98] 결국 페즈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1362년 10월 나스르 왕조의 술탄 무함마드 5세와 재상 이븐 알하티브를 의지하여 그라나다로 향했다.[99][100]
나스르 왕조에서 무함마드 5세의 총애를 받아 카스티야 왕국에 외교 사절로 파견되는 등 중용되었으나, 재상 이븐 알하티브와의 갈등으로 인해 결국 물러나야 했다. 이후에는 과거 인연이 있던 하프스 왕족(아부 압둘라)이 다스리던 베자이아로 가서 집권자로 중용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전란 속에서 베자이아 정권은 무너졌고, 술탄이 전사하자 이븐 할둔은 적인 자이얀 왕조 군대에 도시를 넘겨주었다. 이처럼 여러 왕조를 섬기며 겪은 유랑과 정치적 부침은 훗날 그의 학문과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자이아를 떠난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1375년부터 1378년까지 알제리 오랑 지방의 한 마을에 칩거하며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이 시기에 그의 대표작인 《이바르의 책》(Kitab al-‘Ibar)과 그 서문에 해당하는 《무깟디마》(Muqaddimah)를 저술하기 시작했다.
1382년 학자로서 명성을 얻은 이븐 할둔은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여 맘루크 왕조 술탄 바르쿠크의 신임을 얻었다. 여러 마드라사에서 교수직을 맡고 말리키 학파의 대카디(대법관)에 임명되었으나, 그의 개혁 시도는 저항에 부딪혀 1년 만에 사임해야 했다.[34] 1384년에는 알렉산드리아 앞바다에서 아내와 자녀들이 탄 배가 침몰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이후에도 바르쿠크와의 관계 부침 속에서 총 여섯 차례나 대법관에 임명되었지만, 여러 이유로 오래 직책을 유지하지는 못했다.
1401년, 바르쿠크의 아들인 술탄 파라지 치하에서 몽골 제국의 정복자 티무르가 다마스쿠스를 포위하자, 이집트 군대의 일원으로 원정에 참여했다. 포위된 다마스쿠스에서 티무르를 만나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으며, 티무르의 요청으로 마그레브 지역의 정세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35]
이후 카이로에서 남은 생을 보내며 자서전과 세계사 저술을 마무리하고 교사와 판사로 활동했다. 말년에는 비밀 결사 조직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으며, 여섯 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된 지 한 달 만인 1406년 3월 17일에 사망했다.

2. 4. 학문 연구와 저술
베쟈야 정권이 자이얀 왕조에게 멸망한 후, 이븐 할둔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학문 연구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1375년부터 1378년까지 알제리 오랑 지방의 콸라트 이븐 살라마 마을에 머물면서, 그는 자신의 대표작인 《이바르의 책》(Kitab al-‘Ibar) 집필에 몰두했다. 이 책은 아랍인, 페르시아인, 베르베르인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를 체계적으로 다루고자 한 방대한 저작이다.[36][37]《이바르의 책》은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제1권인 '''《무깟디마》'''(역사 서설)는 역사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저술로 평가받는다. 《무깟디마》에서 이븐 할둔은 사회의 형성과 변화를 지배하는 법칙을 탐구하고, 문명의 흥망성쇠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아사비야(’aṣabiyyah)'라는 개념을 통해 집단 응집력 또는 사회적 연대가 국가와 문명의 발흥과 쇠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41] 이러한 독창적인 분석 덕분에 《무깟디마》는 시대를 초월한 세계적인 명저로 인정받고 있다.[38]
《이바르의 책》의 나머지 권(2~5권)은 당대까지의 세계사를 다루며, 마지막 6권과 7권은 베르베르인과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에 할애되어 있다. 특히 베르베르 역사 부분은 이 민족의 기원, 계통, 변천 등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최초의 문헌 중 하나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그는 기존의 아랍 역사가들과 달리 여러 자료를 비판적으로 종합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내용까지 포함시키는 서술 방식을 택했다.[39] 비록 이븐 아비 자르(Ibn Abi Zar)의 《라우드 알키르타스》(Rawd al-Qirtas)와 같은 이전 자료의 오류를 일부 답습하기도 했지만,[44] 《이바르의 책》은 여전히 베르베르 역사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무깟디마》에서 이븐 할둔은 사회와 문명의 발전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유목 생활과 정주 생활의 차이, 그리고 유목민 집단이 도시를 정복한 후 점차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또한 문명이 발전하여 절정기를 지나면 필연적으로 쇠퇴기에 접어들며, 이때 더 강한 아사비야를 가진 새로운 집단(주로 야만인으로 묘사되는)에게 정복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지배 집단 역시 정복한 문명의 세련된 문화(문자, 예술 등)에 매료되어 이를 받아들이고 동화되며, 결국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새로운 집단에게 자리를 내주는 순환 과정을 거친다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잔지(Zanj) 민족에 대한 그의 견해가 인종차별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43] 이는 당시 시대적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번역 과정에서 윌리엄 맥거킨 드 슬레인(William McGuckin de Slane)과 같은 번역가에 의해 원문의 의미가 왜곡되어 인종주의적 해석이 부각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44]
경제사상 측면에서도 이븐 할둔은 주목할 만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이브라힘 오웨이스(Ibrahim Oweiss)와 같은 학자들은 그가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르도보다 훨씬 앞서 노동 가치설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평가한다.[45] 그는 "문명과 그 안녕, 그리고 사업 번영은 생산성과 사람들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이윤을 위해 모든 방향으로 노력한다"[46]고 말하며 생산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노동 분업, 세금, 희소성, 경제 성장 등에 대한 초기 이론을 제시했으며,[48] 빈곤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재정 결정뿐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결과로 보고 정부의 개입 필요성을 주장했다.[49] 그는 화폐는 금과 은처럼 고유한 가치를 지닌 금속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디나르와 디르함의 무게(각각 약 4.25g과 2.96g)와 순도를 엄격히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50]
노동 분업에 관한 이븐 할둔의 저술은 종종 애덤 스미스의 저술과 비교된다. 그는 개인이 혼자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으므로 문명 안에서 협력해야 하며, 이러한 협력을 통해 얻는 생산물은 참여한 개인들의 필요를 훨씬 넘어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농업 도구를 만들고 경작하며 수확하는 등의 활동에 협력하면, 혼자 일할 때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51] 애덤 스미스 역시 핀 생산의 예를 들어 노동 분업이 생산력을 크게 향상시킨다고 설명했다.[51] 그러나 두 사람은 노동 분업을 추동하는 근본적인 동기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였다. 이븐 할둔은 사회적 연대, 즉 '아사비야'를 핵심 동력으로 본 반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과 시장 경제를 강조했다.[51] 이븐 할둔은 또한 "책임감 있고 조직적인 상인이 소유한 사업은 결국 부유한 통치자들이 소유한 사업을 능가할 것이다."[40]라고 언급하며 경제 성장과 플라톤주의적 이상 간의 관계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러한 학문적 업적 덕분에 이븐 할둔의 명성은 높아졌고, 1382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한 후에는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의 신임을 얻어 여러 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으며, 말리크파의 대법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후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잠시 실각하기도 했으나, 학자로서의 명성은 여전했다.
1400년, 티무르가 시리아 원정에 나서 다마스쿠스를 포위했을 때, 이븐 할둔은 도시에 머물고 있었다. 그의 명성을 들은 티무르는 그를 자신의 진영으로 초대했다. 이븐 할둔은 티무르 앞에서 뛰어난 변론으로 좌중을 감탄시켰고, 티무르로부터 정중한 대우를 받으며 여러 날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이집트로 돌아온 그는 다시 여러 차례 대법관직을 역임했으며, 1406년 여섯 번째 대법관 임명 직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2. 5. 말년
1382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하여 활발한 강연 활동을 벌였다. 당시 맘루크 왕조의 술탄 바르쿠크의 신임을 얻어 여러 학원에서 교수직을 맡았고, 마리크파의 대법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101][102]이후 쿠데타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정치적으로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학자로서의 명성은 여전했다. 티무르가 시리아 원정에 나서 다마스쿠스를 포위했을 때, 이븐 할둔의 명성을 들은 티무르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진영을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이븐 할둔은 뛰어난 언변으로 티무르를 비롯한 좌중을 감탄시켰고, 티무르로부터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티무르와의 만남 이후 다시 이집트로 돌아온 이븐 할둔은 여러 차례 대법관 직을 수행했으며, 여섯 번째로 대법관에 임명된 직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3. 사상
이븐 할둔은 중세 이슬람 세계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그의 학문적 성과는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사상은 대표 저작인 《무카디마》(Muqaddimah, "서론")에 집약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사회 현상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통찰을 담고 있다.
그의 사상 체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아사비야'(’aṣabiyyah)로, 이는 '집단 응집력' 또는 '사회적 연대'를 의미한다. 이븐 할둔은 이 '아사비야'의 흥망성쇠를 통해 국가와 문명의 발전 및 쇠퇴 과정을 설명하는 독창적인 역사 순환론을 제시했다. 또한, 그는 사회 구조, 노동 분업, 도시와 유목민의 관계, 정치권력의 속성 등을 분석하며 사회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경제 분야에서도 그는 노동 가치설, 조세 이론(훗날 래퍼 곡선과 유사한 개념 포함), 화폐론 등에서 시대를 앞서나간 통찰을 보여주었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교 신앙을 바탕으로 예언, 신비주의(수피즘)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이븐 할둔의 사상은 경험적 관찰과 합리적 분석을 중시했으며, 후대의 많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3. 1. 역사관과 '아사비야' 이론
이븐 할둔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알이바르》(Kitāb al-ʻIbar wa-Dīwān al-Mubtadaʼ wa-l-Khabar fī Taʼrīkh al-ʻArab wa-l-Barbar wa-Man ʻĀṣarahum min Dhawī ash-Shaʼn al-Akbār, "교훈의 책,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및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강력한 인물들의 역사에 관한 시작과 사건들의 기록")이다. 처음에는 베르베르인의 역사를 다루려 했으나, 점차 확장되어 총 7권의 세계사 저작이 되었다.[36][37] 이 중 제1권인 '''《무카디마》(Al-Muqaddima, "서론")'''는 사회, 경제, 지리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분석한 독창적인 저술로, 오늘날 이븐 할둔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38] 나머지 2~5권은 당시까지의 세계사를, 6~7권은 베르베르인과 마그레브 지역의 역사를 다룬다. 그는 이전의 아랍 역사가들과 달리 여러 자료를 인용 표시 없이 종합하고 때로는 모순되는 내용까지 포함시켰으며,[39] 전달자의 신뢰성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타당성에 초점을 맞추고 비판적 사고를 장려했다.[47]《무카디마》에서 이븐 할둔은 역사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아사비야'(’aṣabiyyah)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아사비야'는 흔히 "집단 응집력" 또는 "사회적 연대"로 번역되며,[41] 부족이나 혈연 집단과 같은 작은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강한 유대감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대감은 종교적 이념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넓은 범위로 확장될 수 있다. 이븐 할둔의 분석은 이러한 응집력이 집단을 권력으로 이끌지만, 동시에 그 안에 몰락의 씨앗(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을 내포하고 있어 결국 더 강력하거나 젊고 활기찬 응집력을 가진 새로운 집단, 왕조, 제국에 의해 대체된다는 점을 탐구한다.
그는 정주 생활과 유목 생활의 차이, 그리고 유목민 전사들이 도시를 정복한 후 필연적으로 권력을 잃게 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강한 '아사비야'를 가진 집단(주로 유목민)은 기존의 쇠퇴한 문명을 정복하고 새로운 왕조나 제국을 세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정주 생활에 익숙해지고 사치와 향락에 빠지면서 초기의 강한 '아사비야'는 점차 약화된다. 이 과정에는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결국 '아사비야'가 약해진 집단은 다시 새롭고 강한 '아사비야'를 가진 다른 집단(또는 더 젊고 활기찬 집단)에 의해 정복당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이처럼 이븐 할둔은 역사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아사비야'의 흥망성쇠에 따라 문명이 끊임없이 순환하고 교체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사회가 위대한 문명이 되면 그 절정기를 지나 쇠퇴기가 온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즉, 쇠퇴한 문명을 정복하는 다음 응집력 있는 집단은 상대적으로 야만인들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야만인들이 정복한 사회에 대한 지배를 공고히 하면, 문자나 예술과 같은 더욱 세련된 측면에 매료되어 그러한 문화적 관행을 동화하거나 적절히 활용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이전의 야만인들은 새로운 야만인 집단에 의해 정복될 것이고, 그들은 그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이븐 할둔의 이러한 분석은 사회학의 선구적인 연구로 평가받는다. 아랍 학자 사티 알후스리는 《무카디마》를 사회학적 저술로 읽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사회 발전을 설명하며 초기 노동 분업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48] 그는 "개인은 스스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문명에서 그 목적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 집단의 협력으로 얻어지는 것은 그들 자신보다 훨씬 많은 수의 필요를 충족시킨다... 결합된 노동은 노동자의 필요와 필수품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한다"고 설명하며,[51] 노동 분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후대의 애덤 스미스가 "노동 분업은 도입할 수 있는 한 모든 기술에서 노동의 생산력을 비례적으로 증가시킨다"고[51] 설명한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븐 할둔에게 '아사비야' 또는 사회적 연대가 노동 분업의 근본적인 동기이자 맥락이었다면, 스미스에게는 이기심과 시장 경제가 그 동기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51]
다만 그의 저술에는 당시 사회의 한계를 반영하는 인종차별적인 시각도 나타난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잔지(Zanj) 민족에 대한 그의 묘사는 인종차별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42][43]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한편, 학자 아브델마지드 하눔(Abdelmajid Hannoum)은 이븐 할둔이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의 차이를 묘사한 부분이 번역가 윌리엄 맥거킨 드 슬레인에 의해 잘못 해석되어, 원문에 없는 인종적 대립 구도가 삽입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44]
3. 2. 사회학과 경제학에 대한 기여
이븐 할둔은 사회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 사회학과 경제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남겼다.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인 《무카디마》(Muqaddimah, "서론")는 단순한 역사 서술을 넘어 사회 구조, 변동, 경제 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38] 아랍 학자 사티 알후스리는 《무카디마》를 사회학적 저술로 평가하기도 했다.이븐 할둔 사회 이론의 핵심 개념인 '아사비야'(''aṣabiyyah'')는 '집단 응집력' 또는 '사회적 연대'로 번역될 수 있다.[41] 그는 '아사비야'가 부족이나 소규모 친족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며, 종교적 이념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확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강력한 연대감은 특정 집단이 권력을 장악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집단 내부에 필연적으로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분열의 씨앗이 자라나 '아사비야'가 약화된다고 분석했다. 결국 약화된 집단은 더 강한 '아사비야'를 가진 새로운 집단(왕조, 제국 등)에 의해 대체되는 역사의 순환을 설명했다. 그는 정주 생활과 유목 생활의 차이를 분석하며, 강한 '아사비야'를 가진 유목민(또는 상대적 야만인)이 기존 문명을 정복한 후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고 세련된 문화에 동화되면서 점차 연대감을 잃고 쇠퇴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이러한 문명의 흥망성쇠 주기론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주장 중 하나이다.
다만, 그의 저술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잔지(Zanj) 민족에 대한 묘사처럼[42] 당시 사회의 편견을 반영한 인종차별적 시각도 포함되어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43] 한편, 학자 아브델마지드 하눔(Abdelmajid Hannoum)은 베르베르인과 아랍인에 대한 이븐 할둔의 묘사가 번역가 윌리엄 맥거킨 드 슬레인(William McGuckin de Slane)에 의해 잘못 해석되어 인종주의적 대립 구도가 과장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44]
경제학 분야에서 이븐 할둔은 시대를 앞서나간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조지타운 대학교의 이브라힘 오웨이스(Ibrahim Oweiss) 교수는 이븐 할둔이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르도보다 훨씬 앞서 노동 가치설의 핵심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븐 할둔 스스로 이를 특정 이론으로 명명하지는 않았다.[45] 그는 "문명과 그 안녕, 그리고 사업 번영은 생산성과 사람들의 노력에 달려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이익과 이윤을 위해 모든 방향으로 노력한다"고[46] 언급하며 생산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븐 할둔은 노동 분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개인이 혼자서는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없으므로, 문명 사회에서는 협력이 필수적이며, 분업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생산물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농기구를 만들고, 소를 돌보고, 땅을 갈고, 곡식을 수확하는 등 농업 활동에 협력하면, 각자 일할 때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51] 이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핀 공장 사례를 들어 설명한 노동 분업의 효과와 유사하다.[51] 하지만 두 사람의 관점에는 차이가 있다. 이븐 할둔에게 노동 분업의 근본 동기는 '아사비야', 즉 사회적 연대였던 반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과 시장 경제를 강조했다.[51]
또한 이븐 할둔은 세금, 희소성, 경제 성장 등 다양한 경제 주제를 다루었다.[48] 특히 조세 정책과 관련하여 "왕조 초기에는 세금이 적어도 많은 수입을 거두지만, 왕조 말기에는 세금이 과중해도 수입이 적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훗날 아서 래퍼가 제시한 래퍼 곡선의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일치한다는 평가를 받는다.[57][58] 그는 또한 빈곤의 원인을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재정 결정 탓으로 돌리지 않고, 도덕과 인간 가치의 파괴라는 사회적 문제로 보았으며,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정부가 빈곤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49] 더불어 부를 창출하는 요인으로 소비, 정부 지출, 투자 등을 분석하기도 했다. 화폐에 대해서는 금과 은과 같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 금속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디나르와 디르함 같은 화폐의 무게와 순도를 엄격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1 디나르는 보리 72알 무게(약 4.25g)여야 하고, 7 디나르는 10 디르함(약 2.96g) 무게와 같아야 한다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50]
이븐 할둔은 역사학 연구 방법론에서도 기존의 무슬림 역사가들과 차별점을 보였다. 그는 단순히 정보 전달자의 신뢰성에만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기록된 이야기 자체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것을 강조했다.[47]
3. 3. 종교 사상
이븐 칼둔은 현실 세계와 초월 세계 사이의 소통이 모든 종교의 기반이며, 이러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라고 믿었다. 인간의 정신은 신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로서, 본질적으로 불멸하며 소멸하지 않고 신과 소통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혼은 그 숨겨진 능력을 상실하고 감각적인 세계에만 매달려 있다. 소수의 영혼만이 신과 소통하는 완전한 능력을 유지하는데, 이들은 신이 선택한 자들, 즉 예언자들이며, 그들의 영혼은 감각적인 세계를 떠나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그들의 영혼은 인간에게 전달해야 할 것을 신으로부터 받기 위해 감각적인 세계를 버린다. 종교는 바로 이러한 연결에서 비롯된다고 그는 믿었다. 그는 예언과 탐색의 제도에 의존하는 종교는 거짓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어느 정도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고 믿었다. 어떤 특정한 것에 오랫동안 집중하면 모든 것을 잊고 집중한 대상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집중은 그에게 초감각적인 세계를 매우 빠르게, 그리고 매우 불완전한 방식으로 보게 해주며, 이것이 바로 이교이다.[55]이븐 칼둔은 수피즘에 동의하며, 만약 한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고 새로운 종교를 창설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려고 노력한다면, 신의 본질과 학자들의 사상에 명확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려는 욕망으로 이러한 고립과 신비주의에 매달린다면, 신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악마와 소통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인간의 정신은 환상을 통해 미래의 어떤 것들을 볼 수 있지만, 그 정신이 완전히 올바르고 매우 경건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환상은 악마로부터 온 것이다.[55]
4. 평가와 영향
아놀드 J. 토인비는 이븐 할둔을 투키디데스와 마키아벨리와 함께 아랍의 천재로 여겼다.[103] 조르주 사르통은 그를 중세 최고의 역사가이자 마키아벨리, 비코, 오귀스트 콩트, 쿨르노 등의 선구자로 평가했다.[104]
2006년까지 튀니지에서 발행되었던 10디나르 지폐에 그의 초상이 사용되었다.
4. 1. 당대의 평가
이븐 할둔의 저술은 17세기 오스만 제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카팁 첼레비(Kâtip Çelebi)와 같은 역사가들은 그를 영향력 있는 인물로 언급했으며, 무스타파 나이마(Mustafa Naima)는 그의 제국 흥망성쇠 이론을 오스만 제국 분석에 적용하려 했다.[59] 16세기 오스만 제국 내에서 이븐 할둔의 사상과 유사한 생각들이 독자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저술이 후대에 영향을 미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59]유럽에서는 1697년 바르텔레미 드 에르벨로 드 몰랭빌(Barthélemy d'Herbelot de Molainville)의 『동방 문헌고』에 그의 전기가 실리면서 처음 알려졌다. 일부 학자들은 이븐 아랍샤(Ibn Arabshah)가 쓴 티무르 전기의 라틴어 번역본을 통해 유럽에 먼저 소개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이븐 할둔과 티무르의 만남, 마그레브 지역과 티무르의 가계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가 기록되어 있다.[60][61] 1806년 실베스트르 드 사시(Silvestre de Sacy)가 『아랍어 문헌집』에 그의 전기와 『무카디마』 일부 번역을 실으면서 이븐 할둔은 더욱 주목받게 되었다.[62] 드 사시는 1816년 『무카디마』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기를 다시 발표했고,[63] 이후 여러 부분 번역을 거쳐 1858년 아랍어 완역판이 출판되면서 유럽 학계의 본격적인 연구 대상이 되었다.[64]
영국의 동양학자 레이놀드 A. 니콜슨(Reynold A. Nicholson)은 이븐 할둔을 독보적인 무슬림 사회학자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고 보았다.[60] 스페인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셋(José Ortega y Gasset)은 북아프리카 갈등의 본질을 유목민과 정착민 생활 방식 사이의 관계로 파악한 이븐 할둔의 분석을 높이 평가했다.[60]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J. 토인비는 이븐 할둔을 투키디데스, 마키아벨리와 같은 반열에 놓을 만한 아랍의 천재로 평가했으며,[103] 과학사학자 조르주 사르통은 그를 중세 최고의 역사가일 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 비코, 오귀스트 콩트, 쿨르노와 같은 후대 사상가들의 선구자로 보았다.[104]
2006년까지 튀니지에서 통용된 10디나르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사용되기도 했다.
4. 2. 후대의 평가
영국의 역사가 아널드 J. 토인비는 이븐 할둔의 《무카디마》를 "동종 서적 중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했고,[65] 그를 투키디데스 및 마키아벨리와 함께 아랍의 천재로 언급했다.[103]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로버트 플린트는 "역사 이론가로서 그는 300년 이상 후에 지암바티스타 비코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떤 시대나 나라에서도 그와 필적할 자가 없었다"고 극찬하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구스티누스조차 그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69] 런던정경대학교의 철학자 어니스트 겔너는 이븐 할둔이 내린 정부에 대한 정의를 정치 이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정의로 평가했다.[66] 조르주 사르통은 그를 중세 최고의 역사가이자 마키아벨리, 비코, 오귀스트 콩트, 쿨르노 등의 선구자로 보았다.[104]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븐 할둔을 "14세기 이슬람 철학자로, 기본적으로 우리가 현재 사회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명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다.[68] 아서 래퍼는 자신의 래퍼 곡선 이론에 이븐 할둔의 아이디어가 선행했음을 시인했다.[67] 이븐 할둔의 사회 진화에 대한 연구는 에곤 오로완에게 영향을 미쳐 '사회경제학'(socionomy)이라는 개념을 만드는 데 영향을 주었다.[69]
압델라만 락사시(Abderrahmane Lakhsassi)는 이븐 할둔의 기록 보관 업적이 그의 역사 과학에 대한 공헌에 비해 간과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후, 특히 베르베르인에 관한 마그레브의 어떤 역사가도 그의 역사적 공헌 없이는 연구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70]
이븐 할둔의 저술은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주목받았다. 역사가 카팁 첼레비와 무스타파 나이마 등은 그를 중요한 사상가로 언급했고, 특히 나이마는 이븐 할둔의 제국 흥망성쇠 이론을 오스만 제국의 상황에 적용하려 시도했다.[59]
2006년까지 튀니지에서 발행된 10튀니지 디나르 지폐에는 그의 초상이 사용되었다.
4. 3. 현대의 재조명
이븐 칼둔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최근 몇 년 동안 높아졌다. 2004년, 튀니지 커뮤니티 센터는 이븐 칼둔의 친족 및 연대 의식에 대한 사상을 반영하는 업적을 이룬 튀니지계 미국인을 기리기 위해 첫 번째 이븐 칼둔 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이븐 칼둔의 사상이 이 단체의 목표 및 프로그램과 일치한다는 점을 인정하여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2006년, 미국의 아틀라스 경제 연구 재단은 이븐 칼둔을 기념하여 학생들을 위한 연례 에세이 공모전을 시작했다.[71] 이 공모전의 주제는 "개인, 싱크탱크, 대학교 및 기업가들이 이슬람 교리와 전통에 기반하여 자유 시장의 번영과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정부 정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였다.[71] 같은 해 스페인에서는 이븐 칼둔 사망 600주년을 기념하여 "문명의 만남: 이븐 칼둔"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개최했다.[72]2007년, 터키 이스탄불에는 그의 이름을 딴 이븐 할둔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대학교는 영어, 현대 터키어, 아랍어의 3개 국어 사용 정책을 채택하고 있으며, 사회과학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81년에는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 자신의 공급 측면 경제 정책(또는 레이거노믹스로 알려짐)을 설명하면서 이븐 칼둔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븐 칼둔의 말을 인용하여 "왕조 초기에 소액의 과세로 막대한 세수입을 얻었고, 왕조 말기에 대규모 과세로 소액의 세수입을 얻었다"라고 말했으며, 레이건은 자신의 목표가 "소액의 과세로 막대한 세수입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73]
또한 이라크 해군은 이븐 칼둔의 이름을 따 프리깃함을 명명하기도 했다.
5. 주요 저서
- كتاب العبر وديوان المبتدأ والخبر في تاريخ العرب والبربر ومن عاصرهم من ذوي الشأن الأكبر|Kitāb al-ʻIbar wa-Dīwān al-Mubtadaʼ wa-l-Khabar fī Taʼrīkh al-ʻArab wa-l-Barbar wa-Man ʻĀṣarahum min Dhawī ash-Shaʼn al-Akbārar
『이바르의 책』: 정식 명칭은 『이바르의 서와 아랍인, 베르베르인과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명사들의 역사에 관한 서술의 서문과 본문』이다. 흔히 줄여서 『알 이바르』(역사) 또는 책 제목의 첫 단어를 따서 『이바르의 책』이라고 불린다.[105] 이 책은 세계사를 다루며, 특히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의 역사에 중점을 두고 서술되었다.
- المقدمة|al-Muqaddimahar
『역사 서설』: 『이바르의 책』의 서론에 해당하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춘 독창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역사 철학, 사회학, 경제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며, 문명과 국가의 흥망성쇠 원인을 분석하는 독자적인 이론 틀을 제시했다. 프란츠 로젠탈이 영어로 번역하였으며(1958년, 3권), N.J. 다우드가 편집한 요약본(1967년)도 출간되었다. 일부 내용은 던컨 맥도널드에 의해 1905년 [https://archive.org/details/selectionfrompro00ibnk/ 이븐 칼둔의 서론 선집]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 لباب المحصل في أصول الدين|Lubābu-l-Muhassal fee Usūlu-d-Dīnar
『종교학 개론 요설』: 이슬람 신학의 핵심 원리들을 요약하고 해설한 책이다.
- شفاء السائل لتهذيب المسائل|Shifā'u-s-Sā'il li-Tahdhīb al-Masāʼilar
『문제 해명에 힘쓰는 사람의 치유』(또는 『질문에 대한 치유』): 특정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저술이다.
- التعريف بابن خلدون ورحلاته شرقا وغربا|at-taʿrīf bi-ibn ḫaldūn wa-riḥlatu-hu ġarban wa-šarqanar
『자서전: 서쪽과 동쪽으로의 여정』 (التعريف بإبن خلدون ورحلته غربا وشرقا|Al-Taʻrīf bi Ibn-Khaldūn wa Riħlatuhu Għarbān wa Sharqānar): 이븐 할둔 자신의 생애와 마그레브 지역 및 중동 지역을 오간 여정을 상세히 기록한 자서전이다. 무함마드 이븐 타위트 앗탄지가 편집하여 1951년 카이로에서 출판되었다.
- علقة للسلطان|ʻAl-Laqaw li-s-Sulṭānar
『술탄을 위한 모임』
- 『마그리브 상황』
- '''한국어 번역서 정보'''
현재 한국어로 직접 번역된 이븐 할둔의 저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주로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한 서적들이 소개되고 있다.
- * 『역사 서설』: 모리모토 코세이가 일본어로 번역한 판본(이와나미 문고, 전4권, 2001년) 등이 있다.
- * 이와나미 쇼텐의 〈이슬람 고전총서〉(전3권, 1979-87년)에도 『역사 서설』의 일본어 번역본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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