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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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는 일제강점기 도입된 노후화된 기동차를 대체하고 1961년 관광 사업 진흥에 따른 근거리 열차 수요 증가에 따라 도입되었다. 1961년부터 1975년까지 일본의 니가타 철공소 등에서 총 159량이 제작되었으며, 초기에는 서울 근교 노선에서 운행하다가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 이후 전국 각지로 운행 노선을 확대했다. 차량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보통열차,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 등으로 운행되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후계 차량으로 대체되어 퇴역했다. 현재는 대한민국 철도박물관 등에서 일부 차량이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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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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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 | |
차량 이름 | 한국철도 일본제 동차 |
다른 이름 | 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 니가타 동차 가와사키 동차 |
로마자 표기 | Tonggeunhyeong Dijel Aegam Dongcha Nigata Dongcha Gawasaki Dongcha |
정보 | |
운영 주체 | 한국철도청 |
제작 회사 | 동력차 니가타 철공소 긴키 차량 일본차량제조 가와사키 중공업 부수차 한국철도청 인천공작창 |
제작 연도 | 1961년 - 1975년 |
운행 시작 | 1961년 |
운행 종료 | 1997년 |
퇴역 | 1997년 1월 31일 |
편성 | 1량 - 5량 편성 |
궤간 | 1,435 mm (표준궤) |
최고 운전 속도 | 해당 없음 |
설계 최고 속도 | 100 km/h |
차량 정원 | 126명 (1961년 - 1963년 제작) 132명 (1966년 - 1968년 제작) 174명 (1975년 제작) |
차량 무게 | 37 t |
전체 길이 | 21,500 mm |
전체 폭 | 3,055 mm |
전체 높이 | 3,885 mm |
차체 길이 | 20,809 mm |
차체 폭 | 2,983 mm |
차체 높이 | 3,730 mm |
차륜 직경 | 860 mm |
동력 전달 방식 | 해당 없음 |
엔진 | DMH17H (1,500 rpm) (초기) Cummins N855R (교체 후) |
엔진 출력 | 132.4 kw (180 HP) (초기) 154.5 kw (210 HP) (교체 후) |
변속기 | DBG115 |
구동 방식 | 해당 없음 |
기어비 | 2.784 |
출력 | 264.8 kw (360 HP) (초기) 308.9 kw (420 HP) (교체 후) |
제동 장치 | 공기 브레이크, 수동 브레이크 |
비고 | 주요 수치는 石橋光伴 1962, 30-31쪽, やまだトシヒデ 2012, 220쪽, 철도차량기술검정단 한국철도차량 100년사 편찬위원회 편찬 1999, 243-253쪽에 따름. |
부수차 정보 | |
용도 | 여객 |
차량 정원 | 69명 (1965년형) 70명 (1966년형) |
차량 중량 | 31톤 (1965년형) 35톤 (1966년형) |
제작 회사 | 한국철도공사 인천공작창 |
제작 연도 | 1965년, 1966년 ~ 1968년 |
생산량 | 33량 |
비고 | 롱시트, 차축발전기, 비산식 화장실 1개, 면당 미닫이문 (1965년형 2개, 이후 3개), 승무원실 (1966년형에만) |
2. 역사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구형 동차의 노후화와 한국 전쟁의 피해, 그리고 1961년 이후 관광 사업 진흥 정책에 따른 근거리 열차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정부보유외환자금(KFX)을 이용하여 1961년 일본의 니가타 철공소를 시작으로 긴키 차량, 가와사키 중공업, 닛폰 차량제조 등 여러 회사에서 제작하여 도입하였다.[1]
도입된 차량들은 주로 보통열차 완행 등급으로 운행되다가, 이후 등급 개정에 따라 비둘기호로 운행되었다.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제작한 부수 객차와 함께 편성되어 운행하기도 했으며, 도입 초기에는 경부선 서울역~부산역 간 장거리 노선에 투입된 이력도 있다.[1]
1973년에는 노후된 일본제 엔진을 미국 커민스(Cummins) 엔진으로 교체하는 개조가 이루어졌으며, 일부 차량은 엔진을 제거하고 객차로 개조되기도 했다. 1975년에는 포스코가 기증한 차량이 직원 통근용으로 운행되기도 하였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는 일부 차량이 수도권 전철 승강장 높이에 맞춰 개조되어 수도권 전철 경원선 구간에서 운행되었다.[1]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편성은 통일호로 승격되어 동해남부선과 경전선 등 단거리 노선에 투입되었고, 1990년대에는 무궁화호로 격상되어 운행되기도 하였다.[1]
1980년대 이후 노후화로 인해 점차 퇴역이 진행되었으며, 이 차량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후계 차종인 통근형 디젤 동차(CDC)가 도입되었다. 1997년을 끝으로 모든 차량이 영업 운행에서 물러났으며, 현재 2량이 철도박물관에 동태 보존 형태로 남아 있다.[1]
2. 1. 도입 배경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게하형 가솔린 동차와 3등 디젤 동차는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당시 한반도에는 일본 통치 시기에 도입된 기동차가 60량 있었으나, 대부분 전시 중의 혹사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전쟁의 피해까지 겹쳐 1950년대 말에는 단 6량만이 운행 가능한 상태였다.이후 ICA의 지원을 받아 기존 차량의 복구가 일부 진행되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마침 1961년부터 시작된 동력 근대화 시책과 관광 사업 진흥 정책으로 인해, 단거리 운행에 적합한 새로운 기동차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는 보유하고 있던 외환 자금(KFX)을 활용하여 새로운 디젤 동차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1961년 12월, 일본의 니가타 철공소에 2량을 처음 발주한 것을 시작으로 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의 도입이 시작되었다. 이후 도입 물량이 늘어나면서 긴키 차량, 가와사키 중공업, 닛폰 차량제조 등 다른 일본 회사에서도 차량을 제작하여 납품했다.
2. 2. 도입 및 운행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게하형 가솔린 동차와 3등 디젤 동차가 노후화되고, 한국 전쟁의 피해로 운행 가능한 차량이 1950년대 말에는 6량에 불과할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1961년 국가 시책으로 관광 사업 진흥이 결정되면서 근거리 소단위 열차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새로운 차량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이에 따라 정부보유외환자금(KFX) 및 일본 경제협력자금을 바탕으로 1961년 12월 2량을 시작으로 일본에서 차량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니가타 철공소에서 제작했으나, 이후 도입 물량이 늘어나면서 긴키 차량, 가와사키 중공업, 닛폰 차량제조 등 여러 회사에서 제작하여 1975년까지 총 159량(포항제철(현 포스코)용 2량 포함)이 도입되었다.
도입된 차량들은 경부선, 경인선, 경의선, 경원선 등 주요 간선에 투입되어 주로 보통열차(완행) 등급으로 운행되었다. 서울역-동인천역 구간에서는 기존 객차 열차보다 소요 시간을 10분 단축시키는 등 초기에는 수도권 근교 노선에서 활약했으며, 도입 초기에는 서울역~부산역 간 장거리 운행에 투입되기도 하였다. 이후 열차 등급 체계 개편에 따라 주로 비둘기호 등급으로 운행되었다. 1965년 이후에는 철도청 인천공작창에서 제작한 부수차를 연결하여 운행하기도 했는데, 동차 2량 사이에 부수차 3량을 연결한 최대 5량 편성으로 운행된 기록도 있다.
그러나 부수차 연결 운행 등으로 엔진에 무리가 가면서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이에 1973년에는 기존의 노후한 니가타제 DMH 17H 엔진을 미국 커민스(Cummins)사의 N855R 디젤 엔진(210마력)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20량은 아예 엔진을 제거하고 객차로 개조하여 운행했으며, 1961년에 도입된 초기 차량 일부는 노후화로 인해 조기 폐차되기도 하였다. 총 159량 중 49량은 사고로 폐차되었는데, 이 중 8량은 엔진 과열로 인한 화재가 원인이었다.
1974년 수도권 전철 개통 이후에는 점차 지방 노선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1975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기부한 2량은 제철역과 효자역 사이를 오가는 직원 통근용 열차로 별도 운용되다가, 내구연한 만료 후 통근형 디젤 동차로 대체되었다.
1983년부터 1991년 7월까지는 일부 차량의 출입문을 수도권 전철 승강장 높이에 맞게 개조하여 수도권 전철 경원선 용산-성북 구간 운행 계통에 투입되었다. 당시 평일에는 3량, 공휴일에는 2량 편성으로 운행했으며, 가운데에는 비둘기호 객차를 개조한 부수 객차를 연결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부 차량은 통일호 등급으로 격상되었다. 1985년 9월 이후 9량(차량번호 501~509)은 좌석을 회전식 크로스 시트로 개조하여 동해남부선 (부산~울산) 및 경전선 (마산~대구) 등 단거리 통일호 노선에 투입되었다. 1992년 10월 1일 디젤 동차의 차량 번호 체계 개정 이후[2], 이 통일호용 차량은 9501형[3], 기존 비둘기호용 차량은 9601형으로 분류되었다. 1990년대에는 일부 편성이 다시 무궁화호로 승격되어 영남권 단거리 노선에서 운행되기도 하였다.
1980년대부터 노후화로 인해 점차 폐차가 진행되어 1992년에는 35량만이 남게 되었다. 통일호로 운행되던 9501형은 1995년 3월 운행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고, 1량(9505)만이 비둘기호로 격하되어 계속 운행되었다. 나머지 비둘기호 차량(9601형)도 1997년 초까지 운행되다가 퇴역했으며, 마지막까지 운행된 9654호 차량은 1997년 1월 31일 폐차되었다. 이 열차들의 빈자리는 후속 모델인 통근형 디젤 동차(CDC)가 도입되어 메우게 되었다. 현재 영업 운행은 모두 종료되었으며, 2량이 철도박물관에 동태 보존되어 있다.
2. 3. 퇴역
이 열차는 운행 중 소소한 개조와 1992년10월 1일 차호 변경[2]을 거치며 활용되었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노후화로 인해 점차 퇴역하였다. 일부 초기 도입 차량(1961년분 등)은 차량 노후화로 인해 비교적 일찍 폐차되기도 하였다. 또한 운행 중 사고 등으로 인해 총 159량 중 49량이 폐차되었으며, 이 중 8량은 엔진 과열로 인한 화재가 원인이었다. 남은 차량은 1980년대 이후 노후화로 폐차가 진행되어 1992년 시점에는 35량으로 감소했다.1985년9월 이후 통일호 등급으로 개조되었던 9량(차호 변경 후 9501형)[3]은 1995년3월 운행을 마지막으로 퇴역하였고, 이 중 1량(9505)만 비둘기호용으로 격하되어 계속 사용되었다. 나머지 비둘기호용 차량(9601형)을 포함한 모든 차량은 1997년 초까지 운행을 중단했으며, 마지막 현역 차량이었던 9654호는 1997년1월 31일에 공식적으로 퇴역하였다.
1975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기부 채납하여 제철역-효자역 간 직원 통근용으로 운행하던 차량 역시 내구연한 만료로 퇴역한 이후 통근형 디젤 동차로 대체되었다. 전반적인 퇴역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도 후계 차량으로 통일호 등급의 통근형 디젤 동차(CDC)가 도입되었다.
현재 모든 차량은 영업 운행에서 완전히 물러났으며, 2량이 철도박물관에 동태 보존 형태로 남아 있다.
3. 차량 구조
통근형 디젤 액압 동차는 기본적으로 한 량만으로도 운행이 가능하도록 양 끝에 운전대가 설치된 양운전대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여러 대의 동차를 연결하여 한 운전실에서 동시에 제어하는 총괄제어 운전이 가능하며, 필요에 따라 비둘기호 등급의 객차 1~2량을 추가로 연결하여 운행할 수도 있었다. 실제 운행 시에는 동차 1~2량에 부수 객차 1량을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량의 기본적인 설계는 일본국유철도에서 운용하던 키하52형 기동차를 기반으로 하였으나, 한국의 철도 환경에 맞게 일부 구조가 변경되었다. 대표적으로 승객이 타고 내리는 문에는 당시 한국의 낮은 승강장 높이에 맞춰 계단(스텝)이 설치되었다. 차량 앞부분에는 선로 위의 장애물로부터 차량을 보호하기 위한 배장기가 설치되어 있다.[5][6]
주요 기기류인 엔진과 동력전달장치 등은 모두 차체 하부에 배치되었다. 엔진은 초기 도입분에는 180마력급 2개를 사용했으나, 이후 커민스 엔진으로 교체되면서 출력이 향상되었다. 냉방 장치는 설치되지 않았으나, 전기식 난방 장치는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운전실 사이에는 통로 역할을 하는 관통문이 설치되어 있어, 여러 차량을 연결했을 때 차량 간 이동이 가능했다. 객실 내 좌석은 긴 의자 형태의 롱시트와 마주보는 형태의 크로스시트가 혼합 배치되어 승객 수송 효율을 높였다. 또한, 차량 한쪽에는 화장실과 기계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 동차는 도입된 시기와 제작 목적에 따라 구조적으로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예를 들어, 1961년 도입분과 1966년 도입분은 승객용 문의 형태나 객실 내부의 좌석 배치 방식이 달랐으며, 1975년에 포스코에서 도입한 차량은 운전대가 한쪽에만 있고 객실 전체가 롱시트로 구성되는 등 다른 차량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졌다. 자세한 형식별 차이는 형식 구분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1. 개요
기본적으로 단량 운행이 가능하도록 양운전대 구조로 설계되었으며, 총괄제어가 가능하여 동일 기종 여러 대를 병결 운행할 수 있다. 또한, 필요시 비둘기호 등급의 부수 객차 1~2량을 추가 연결하여 운행할 수 있으며, 실제 운행 시 동차 1~2량에 부수차 1량을 편성하는 경우가 많았다.차량의 승객용 문은 한쪽 면에 2개씩, 총 4개가 설치되어 있다. 일본의 유사 차량과 달리, 한국의 저상 승강장에 대응하기 위해 승강용 문에는 계단이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차량 전면부에는 배장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전조등은 정면 상단 중앙에 대형 전조등이, 각 운전실 창 하단에는 후미등 겸용 전조등이 설치되어 있다. 중련 운행을 위한 점퍼선 연결부는 우측 하단에 있다.
이 동차는 일본국유철도에서 사용하던 키하52형 기동차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3. 2. 기기류
기기류는 전부 차량 하부에 배치되어 있다. 엔진은 초기에 180마력 엔진 2개가 탑재되었으나, 이후 커민스제 엔진으로 교체되면서 개당 210마력으로 출력이 향상되었다. 일본국유철도의 키하52형 기동차와 동일하게 바닥 밑에는 니가타 테코쇼(新潟鐵工所)에서 제작한 DMH17H 엔진 2기가 설치되었으며, 각 엔진은 대차의 한쪽 차축을 구동하는 방식이었다.동력전달장치는 액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출력축은 대차의 안쪽 차축에 직각으로 연결된다. 변속기의 변속-직결 간 전환은 자동 변속 장치로 이루어졌으며, 변속 클러치와 직결 클러치가 동시에 걸리는 컨버터 브레이크, 셀 모터 고장이나 축전지 용량 부족 시 다른 차량의 엔진으로 시동을 걸 수 있는 역기동 장치 등 당시 한국 측의 요구에 따라 일본 철도 차량에서는 아직 채용되지 않았던 최신 기술이 다수 적용되었다.
발전기는 차축발전기를 사용하여 전력을 공급했으며, 이 때문에 에어컨에 의한 냉방 기능은 없었다. 다만, 난방은 전기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차는 일본국유철도 표준인 DT22A형을 기반으로 표준궤에 맞게 설계된 것을 사용했다.
3. 3. 운전실 및 객실
운전실 가운데에는 중련 운행이나 부수차를 연결할 때 사용하는 관통문이 설치되어 있다. 이 관통문을 닫으면 운전실 공간이 양쪽으로 나뉜다.차량 내부 좌석은 롱시트와 크로스시트가 섞여 배치되었다. 설계 기반인 일본국유철도의 키하52형 기동차처럼 차체 중앙부에는 박스형 크로스시트를, 운전실 쪽에는 롱시트를 배치하여 혼잡할 때 입석 승객의 편의를 고려했다. 1961년 도입분은 승객용 문 안쪽 좌석이 모두 크로스시트였으나, 1966년 도입분부터는 승객용 문 양쪽에 롱시트를 배치하여 정원을 늘렸다. 1975년 포스코에서 도입한 차량은 객실 전체가 롱시트 구조로 되어 정원이 174명이었다. 천장에는 입석 승객을 위한 손잡이가 두 줄로 설치되어 있다.
차량 한쪽 선두 방향의 운전실과 객실 사이에는 화장실과 기계실이 있다. 화장실 외에도 차량 하부 기기 배치 문제로 인해 차내에 물탱크가 설치되었다. 화장실은 동양식 변기를 사용하며, 오물을 바로 배출하는 비산식이어서 열차가 정차 중일 때는 사용할 수 없었다.
3. 4. 형식 구분
(등장 시)기관차형 사업용 차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