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석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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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거석 기념물은 거대한 돌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기념물이나 구조물을 의미하며, 고대부터 다양한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거석 기념물은 신석기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돌멘, 멘히르, 석렬 등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거석 기념물은 무덤, 영토 표시, 종교 의식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현대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거석 문화를 유지하고 있으며, 족장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축제의 일환으로 거석을 건립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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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석기념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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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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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큰 돌을 의미하며, 보통 인간이 세운 건축물이나 기념물을 지칭함 |
어원 | 그리스어 "μέγας" (megas, '큰')와 "λίθος" (lithos, '돌')에서 유래 |
특징 | |
재료 | 큰 돌 (때로는 수 톤에서 수십 톤에 달함) |
용도 | 기념비 종교 의식 무덤 경계 표시 |
분포 | 전 세계 (특히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 |
유형 | |
고인돌 (Dolmen) | 큰 돌을 지붕처럼 덮고 있는 구조물, 무덤으로 사용 |
선돌 (Menhir) | 길쭉한 모양의 큰 돌을 세워 놓은 것, 종교적 의미나 기념물로 추정 |
열석 (Stone row) | 여러 개의 선돌을 일렬로 세워 놓은 것, 의례적 공간으로 추정 |
환상열석 (Stone circle) | 여러 개의 돌을 원형으로 배치한 것, 종교 의식이나 천문 관측과 관련 |
개석식 고분 (Passage grave) | 좁은 통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방이 있는 고분 |
지역별 거석 기념물 | |
유럽 | 스톤헨지 (Stonehenge): 영국 카르낙 열석 (Carnac stones): 프랑스 뉴그레인지 (Newgrange): 아일랜드 풀나브론 고인돌(Poulnabrone dolmen): 아일랜드 |
아시아 | 한반도의 고인돌: 한국 돌궐 비문: 몽골 |
아프리카 | 나브타 플라야 (Nabta Playa): 이집트 |
역사 | |
기원 | 신석기 시대 (기원전 5000년경) |
제작 시기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사회적 배경 | 농경 사회의 발달 정착 생활의 확산 사회 계층의 분화 종교적 신앙의 강화 |
보존 및 연구 | |
중요성 | 고대 사회의 문화, 종교, 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 |
보존 노력 |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 지정 고고학적 발굴 및 연구 관광 자원화 |
기타 | |
관련 용어 | 거석 문화, 선사 시대, 고고학 |
2. 연구사
유럽에서 거석 기념물은 그 기원에 대해 고대부터 다양한 억측을 불러일으켰다. 카르나크 열석의 경우, 성 코르넬리우스에 의해 돌로 변한 로마 병사라거나, 카이사르의 군영 터라는 등의 말이 있었다. 프랑수아 라블레는 팡타그뤼엘에서 거석 기념물을 거인과 결부시켰다.[64]
"거석"이라는 용어는 단일 석재뿐만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다듬어진 하나 이상의 암석을 지칭하는 데에도 사용된다.[4] 이는 다양한 시대에 걸쳐 세계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건설한 구조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며, 가장 널리 알려진 거석은 무덤이 아닌 경우도 있다.[5]
17세기 무렵부터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국에서는 제임스 1세 치하에서 이니고 존스가, 찰스 2세 치하에서 존 오브리가 스톤헨지 조사를 실시했으며,[65] 특히 존 오브리는 오브리 구멍이라고 불리는 유구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에서는 노르망디 귀족 코슈렐에 의해 돌멘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묘소임이 확인되었다.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유럽을 휩쓴 켈트 문화 붐의 영향으로, 거석 기념물은 켈트인, 특히 드루이드에 의한 종교 시설이라는 낭만적인 시각도 유행했다. 1805년, 자크 캉브리는 "켈트 기념물, 또는 돌 숭배에 대한 연구, 켈트족과 드루이드에 대한 통보와 켈트어 어원 연구"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여 켈트족의 돌 숭배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더 과학적인 사람들은 이러한 건조물을 오리엔트의 진보된 문명, 피라미드를 세운 이집트 문명 등의 영향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발명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이러한 견해를 근본적으로 뒤엎었다. 이 기술에 따르면 거석 기념물의 대부분은 켈트인은 물론, 피라미드조차 세워지지 않은 기원전 4000년부터 3500년 무렵에 착공된 것으로 밝혀졌다.[66] 이로써 거석기념물은 대략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럽에서의 거석 문화의 담당자는 하플로그룹 G2a (Y염색체)로 생각된다.[67][68]
프랑스의 콩트 드 케일러스는 카르나크 돌을 처음으로 묘사했다. 피에르 장-밥티스트 르그랑 도씨는 골동품 용어로 브르타뉴어에서 따온 ''멘히어''와 ''돌멘''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그는 거석 기념물을 갈리아 무덤으로 잘못 해석했다. 영국의 골동품 연구가 오브리와 스터클리는 거석 기념물에 대한 초기 연구를 수행했다.
3. 주요 유형
의도적으로 서로 관련하여 배치된 여러 개의 거석 기념물은 종종 열 또는 나선 형태로 나타난다. 프랑스 브르타뉴의 카르낙 열석과 같이 일부 정렬은 수천 개의 돌로 구성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언어에서 환상열석은 "크롬레흐"(웨일스어 단어)라고 불리며, 영어에서도 "크롬레흐"라는 단어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돌멘은 여러 개의 다른 돌에 의해 지지되는 넓은 돌로 구성된 돌 테이블이다.[11] 시스트는 죽은 사람의 시신이나 유골함을 보관하는 데 사용되는 작은 돌로 지어진 관 모양의 상자이다. 매장은 돌멘과 매우 유사한 거석 형태로 이루어지며, 이러한 유형의 매장은 완전히 지하에 있기도 하다.
거석 기념물은 지상 무덤으로, 가장자리에 세워지고 흙이나 다른 작은 돌로 덮인 큰 돌판 (거석)으로 지어졌다. 주로 신석기 시대에 신석기 농경 사회에 의해 대서양 유럽, 지중해 및 인접 지역에 걸쳐 건설된 구조물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며, 구조적 사용 측면에서 동시대의 긴 매장구와는 다르다.
거석 기념물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한다. 브르타뉴, 덴마크, 독일,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웨덴, 웨일스 등에서 발견되는 독립형 단실 돌멘과 포털 돌멘은 3개, 4개 또는 그 이상의 입석으로 지지되는 큰 평평한 돌로 구성되며, 돌 카르 또는 흙 매장구로 덮여 있었다.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사르데냐에서 돌멘이 발견된다. 신석기 시대 (기원전 3500–2700년)에 만들어진 돌멘이 100개 이상 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Dolmen di Sa Coveccada''(모레스 근처)이다. 청동기 시대 동안 누라게 문명은 약 800개의 거인의 무덤을 건설했으며, 이는 다양한 구조를 가진 사르데냐 전역에서 발견될 수 있는 거석 갤러리 무덤의 한 유형이다. 사르데냐에서 가장 초기의 거석 무덤은 코르시카, 남부 프랑스 및 동부 스페인에서도 발견되는 이른바 아르차케나 문화의 원형 무덤이다.
돌멘은 풀리아와 시칠리아에도 있다. 후자의 지역에서는 팔레르모의 무라 프레네, 아그리젠토의 스카카, 칼탄니세타의 몬테 부보니아, 칼탄니세타의 부테라, 시라쿠사의 카바 라자로, 라구사의 카바 데이 세르비, 메시나의 몬탈바노 엘리코나에 있는 아볼라 (시라쿠사)와 아르기무스코에 작은 구조물로 위치해 있다. 초기 청동기 시대 (기원전 2200–1800년)에 만들어진 선사 시대 시칠리아 건물은 둥근 흙 언덕으로 덮여 있었다. 카바 데이 세르비의 돌멘에서 고고학자들은 수많은 인간 뼈 조각과 카스텔루치아 도자기 (초기 청동기 시대)의 일부 파편을 발견하여 유물의 매장 목적을 확인했다.
매장에 사용되지 않은 외부 지역이 있는 예도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 남서부와 북아일랜드의 코트 카른, 잉글랜드 남서부의 세번-코츠월드 무덤 및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트란셉트 갤러리 무덤은 많은 내부 기능을 공유하지만, 이들 간의 연관성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이 종종 전실이나 안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건축가가 죽은 자와 산 자의 특별한 의례 또는 물리적 분리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거석 기념물은 지역 사회가 죽은 자의 유해를 장기간 안치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는 변경 및 확장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돌을 세우는 데 필요한 조직과 노력은 관련 사회가 죽은 자의 적절한 처리에 큰 비중을 두었음을 시사한다. 무덤의 의례적 중요성은 일부 유적지의 돌에 새겨진 선사 시대 예술의 존재에 의해 뒷받침된다. 또한 고고학자들이 일부 무덤 주변에서 발견한 화덕과 도자기 및 동물 뼈의 퇴적물은 어떤 형태의 매장 연회 또는 희생 의식이 그곳에서 행해졌음을 암시한다.
거석 기념물의 추가적인 예로는 오크니의 미드호우의 스톨드 카른과 앵글시의 브린 켈리 드두의 통로 무덤이 있다. 또한 보른홀름 덴마크 섬의 루이센룬과 그리에트에 최대 60개의 거석이 있는 광범위한 무덤 유적지가 있다.[23]
이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스톤 무덤은 무덤이 아니라 성소였다.
G・다니엘 등의 분류에 따르면, 거석 기념물은 다석형(polylithic type)과 단석형(monolithic type)으로 나눌 수 있으며, 세부 유형은 다음과 같다.다석형 단석형
많은 형태가 복합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유럽에서는 대서양 연안・켈트 지역에 많이 분포하며, 켈트족의 유적과 오해받기도 하지만, 켈트 이전의 선주민에 의한 유물이며, 켈트족과의 관계는 없다.3. 1. 단일 거석
멘히르는 서유럽에서 선사 시대에 세워진 단일 수직 석재를 지칭하는 이름이며, '입석'이라고도 불린다.[7] 선사 시대에 세워진 단일 입석을 모놀리스라고 한다.[8] 캡스톤 양식은 지지석 없이 수평으로 배치된 단일 거석으로, 주로 매장실 위에 위치한다.[9]
G・다니엘(Glyn Daniel) 등의 분류에 따르면, 단일 거석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다.3. 2. 복수 거석
열 또는 나선으로 배치되는, 의도적으로 서로 관련하여 배치된 여러 개의 거석 기념물이다. 프랑스 브르타뉴의 카르낙 열석과 같은 일부 정렬은 수천 개의 돌로 구성된다.[58]
3. 3. 기타
유럽 전역에는 도랑과 둑(예: 도싯 커서스), 넓은 테라스, 헨지로 알려진 원형 울타리, 그리고 잉글랜드의 실버리 힐과 사사리의 몬테 다코디 (선사 시대 계단식 피라미드) 와 같은 인공 언덕을 포함하는 다양한 형태의 대규모 토공 구조물이 존재한다.
거석 기념물의 유형은 "다석형(polylithic type)"과 "단석형(monolithic type)"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다석형 | 단석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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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다니엘 등의 분류에 따른다. 많은 형태가 복합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유럽에서는 대서양 연안・켈트 지역에 많이 분포하며, 켈트족의 유적과 오해받기도 하지만, 켈트 이전의 선주민에 의한 유물이며, 켈트족과의 관계는 없다.
- 입석, 멘히르 (단일한 것)
- 거석묘
- * 돌멘 (dolmen), 지석묘
- * 석실묘
- ** 통로묘, 갤러리 묘
- ** 연도분
- 거석 신전 (특히 몰타의 것)
4. 지역별 분포
거석기념물은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각 지역마다 독특한 특징과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
유럽의 거석기념물은 신석기 시대와 금석 병용기에 걸쳐 건설되었으며, 돌멘, 통로묘, 갤러리 무덤, 멘히어, 스톤 서클 등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프랑스 북서부의 거석 구조물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나타났다.[22]
- 돌멘(Portal tomb): 수직으로 세워진 돌(정립석)과 덮개돌로 이루어진 방으로, 갈리시아와 포르투갈에서는 ''안타'', 사르데냐에서는 ''스타초네'', 네덜란드에서는 ''후네베드'', 독일에서는 ''휘넨그라브'', 덴마크에서는 ''디세'', 웨일스에서는 ''크롬레흐'' 등으로 불린다.
- 통로묘(Passage grave): 사각형, 원형, 십자형 등의 방에 길고 직선적인 통로가 연결된 형태로, 아일랜드의 브루 나 보인과 캐로우모어, 오크니의 메스 하우, 프랑스의 가브리니 유적이 대표적이다.
- 갤러리 무덤(Gallery grave): 길쭉한 언덕 아래에 축 방향으로 배열된 방으로, 아일랜드의 코트 툼, 영국의 롱 배로우, 독일의 ''슈타인키스텐'' 등이 있다.
- 멘히어(Menhir): 유럽 전역에서 발견되는 서 있는 돌로, 천문학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브르타뉴의 카르나크에는 멘히어들이 길게 정렬된 유적이 있다.
- 스톤 서클(Stone circle): 스톤헨지, 에이브베리 등과 같이 원형으로 배열된 거석 구조물로, 태양과 달의 움직임과 관련된 천문학적 정렬을 보여준다.
유럽의 거석기념물 건설과 관련된 주요 시기 및 지역은 다음과 같다.
시기 | 지역 | 내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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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000년경 | 아나톨리아, 터키 (괴베클리 테페, 네발리 촐리 등) | 건설 시작. | ||||||||||||||||||||||||||||||||||||||||||||||
기원전 7400년경 | 시칠리아 해협 | 12m 길이의 거석 발견.[14] | ||||||||||||||||||||||||||||||||||||||||||||||
기원전 7000년경 | 이스라엘 (아틀릿 얌) | 건설 시작. | ||||||||||||||||||||||||||||||||||||||||||||||
기원전 6000년경 | 포르투갈 (알멘드레스 크롬레치, 에보라) | 건설 시작. | ||||||||||||||||||||||||||||||||||||||||||||||
기원전 5000년경 | 서유럽 해안 | 대서양 신석기 시대 출현. | ||||||||||||||||||||||||||||||||||||||||||||||
기원전 4800년경 | 프랑스 브르타뉴(바르네네)와 푸아투(부공) | 건설 시작. | ||||||||||||||||||||||||||||||||||||||||||||||
기원전 4500년경 | 이집트 남부 (납타 플라야) | 건설 시작. | ||||||||||||||||||||||||||||||||||||||||||||||
기원전 4300년경 | 스페인 남부 (돌멘 데 알베리테, 카디스) | 건설 시작. | ||||||||||||||||||||||||||||||||||||||||||||||
기원전 4000년경 | 브르타뉴, 포르투갈, 프랑스, 코르시카, 스페인, 잉글랜드, 웨일스 등 | 건설 시작. | ||||||||||||||||||||||||||||||||||||||||||||||
기원전 3700년경 | 아일랜드 (노키베그 등) | 건설 시작. | ||||||||||||||||||||||||||||||||||||||||||||||
기원전 3600년경 | 몰타 (스코르바 신전), 잉글랜드, 몰타 (지간티야 및 므나이드라 신전) | 건설 시작.[17] | ||||||||||||||||||||||||||||||||||||||||||||||
기원전 3500년경 | 스페인, 아일랜드, 프랑스, 몰타, 벨기에, 독일 등 | 건설 시작. | ||||||||||||||||||||||||||||||||||||||||||||||
기원전 3400년경 | 사르데냐, 아일랜드 (뉴그레인지),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덴마크 | 건설 시작. | ||||||||||||||||||||||||||||||||||||||||||||||
기원전 3300년경 | 프랑스 ( 아프리카아프리카의 거석기념물은 이집트, 에티오피아, 나이지리아, 세네갈, 감비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카메룬, 케냐, 마다가스카르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오세아니아멜라네시아의 밀른 만 주, 피지, 바누아투 등지에서 거석 기념물이 발견되지만, 발굴된 사례가 드물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키리위나의 거석 묘 오투얌은 약 2,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미크로네시아의 거석 기념물은 폰페이와 코스라에 섬에서 가장 발달했으며, 각주형 현무암 기둥을 사용한 고지대 건축 단지와 인공 섬 네트워크가 특징이다. 폰페이의 난마돌 단지는 기원후 800년경부터 건설되기 시작했다. 4. 1. 아시아아시아 지역의 거석기념물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동북아시아에서는 고인돌이 대표적이며, 한반도에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에 해당하는 30,000여 기가 밀집해 있다.[29][30] 이외에도 중국의 랴오닝성, 산둥성, 저장성, 타이완 동해안, 일본의 규슈와 시코쿠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베트남의 동나이 성과 인도네시아의 숨바 섬, 니아스 섬 등에서 거석기념물 전통이 확인된다. 남아시아의 거석기념물은 멘히르, 암석 매장, 묘실, 돌멘, 석재 정렬, 석재 원, 인물상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묘지형과 비묘지형으로 구분되며, 비묘지형은 천문학 및 우주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아시아의 거석기념물은 기원전 3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남인도에서는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도 발견되었다.[39] 서아시아에서는 터키 남동부 괴베클리 테페 유적의 T자형 정방석이 있는 의식 단지가 대표적이며, 이는 전토기 신석기 시대(기원전 9600-7000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돌멘과 입석은 터키에서 예멘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며, 특히 요르단 지구대 주변에 집중 분포한다. 이스라엘 아틀리트 얌에서는 기원전 7천 년경의 거석 구조물이 발견되었다.[54] 4. 1. 1. 동북아시아![]()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거석기념물 매장이 발견된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에서 발견되며, 중국의 랴오닝성, 산둥성, 저장성, 타이완 동해안, 일본의 규슈, 시코쿠, 베트남의 동나이 성, 그리고 남아시아에서도 발견된다. 인도네시아의 숨바 섬과 니아스 섬에서는 일부 살아있는 거석기념물 전통이 발견된다. 거석기념물 매장의 가장 큰 밀집 지역은 한국이다. 고고학자들은 한반도에 15,000개에서 100,000개의 남방식 고인돌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며,[29][30] 일반적인 추정치는 한반도 전체에 약 30,000개로,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를 차지한다(고인돌 참조). 4. 1. 2. 동남아시아거석기념물 매장은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다. 주로 한반도에서 발견되며, 중국의 랴오닝성, 산둥성, 저장성, 타이완 동해안, 일본의 규슈, 시코쿠, 베트남의 동나이 성, 남아시아 등지에서도 발견된다. 일부 살아있는 거석기념물 전통은 인도네시아의 숨바 섬과 니아스 섬에서 발견된다. 거석기념물 매장의 가장 큰 밀집 지역은 한국이다. 고고학자들은 한반도에 15,000개에서 100,000개의 남방식 고인돌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29][30] 일반적인 추정치는 한반도 전체에 약 30,000개로,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를 차지한다(고인돌 참조). 4. 1. 3. 서아시아![]() 터키 남동부의 여러 유적지에서는 큰 T자형 거석 정방석이 있는 의식 단지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전토기 신석기 시대(PPN, 기원전 9600-7000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유적지 중 가장 유명한 괴베클리 테페의 가장 오래된 층(III) 일부는 기원전 10천년 중반(cal)까지 C14 연대 측정되었다.[44] 이 층에서는 높이가 최대 7m에 달하는 입석이 있는 20개의 거대한 석원(지름 최대 20m)이 확인되었다.[45] 2019년 기준으로 이 석원 중 최소 5개가 발굴되었다.[46] 많은 입석은 곰, 멧돼지, 뱀, 여우, 야생 고양이, 오록스, 가젤, 사족 파충류, 새, 거미, 곤충, 사족 동물, 전갈 등 동물의 조각된 부조로 풍부하게 장식되어 있다. 또한 일부 돌에는 양식화된 인간의 특징(팔, 손, 엉덩이 가리개, 그러나 '머리'는 없음)이 낮은 윤곽으로 조각되어 있다.[47][48] 더 젊은 층(II)에서는 작은 거석이 있는 직사각형 구조물이 발굴되었다. 주변 지역에서는 괴베클리 테페와 유사한 요소를 통합한 여러 마을 유적지가 확인되었다.[49] 이 중 4개는 괴베클리 테페의 특징적인 T자형 입석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네발리 촐리뿐이다.[50] 괴베클리 테페 자체에서는 지금까지 주거 흔적, 농업 또는 재배 식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야생 동물의 뼈와 야생 식용 식물의 흔적, 많은 갈돌이 발굴되었다.[51] 따라서 이러한 구조물(최초의 알려진 의식 건축물로 특징지어짐)은 수렵 채집인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52] 괴베클리 테페의 가장 오래된 구조물은 스톤헨지 거석보다 약 7,000년 더 오래되었지만, 유럽의 거석 전통(아래 참조)이 이들에서 파생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53] 돌멘과 입석은 터키 국경에서 북쪽의 시리아 알레포 인근 지역에서 남쪽의 예멘까지 서아시아의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은 레바논, 시리아,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발견될 수 있다. 가장 큰 집중 지역은 시리아 남부와 요르단 지구대를 따라 발견되며, 이들은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은 후기 찰코석기 시대 또는 초기 청동기 시대에 속한다. 거석은 또한 이란의 카르그 섬과 피라즈미안, 이라크의 바르다 발카에서도 발견되었다. 거석의 반원형 배치가 현재 바다 속에 있는 아틀리트 얌 (이스라엘)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기원전 7천년에 속하는 매우 초기 사례이다.[54] 특히 돌멘이 가장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곳은 요르단 지구대의 양쪽에 있는 넓은 지역으로, 동쪽에 더 많이 분포한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골란 고원, 하우란, 그리고 요르단에서 발생하며, 요르단은 서아시아에서 돌멘이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일 것이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헤자즈에서 지금까지 매우 소수의 돌멘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멘에서 소수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의 돌멘과 관련된 지속적인 전통을 나타낼 수 있다. ![]() 입석은 서아시아에서 매우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항상 진정한 의미의 '거석'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 지역 전체에서 발생하며, 일부 경우에는 5미터 이상에 달할 수 있다(예: 요르단의 아데르에서). 이 현상은 또한 구약 성경의 많은 구절,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과 관련된 구절을 통해 추적할 수 있는데, 야곱은 천사가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꾼 후 세운 돌에 기름을 부었다(창세기 28:10–22). 야곱은 또한 다른 경우에도 돌을 세운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모세는 이스라엘 부족을 상징하는 12개의 기둥을 세웠다. 입석을 숭배하는 전통은 나바테아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컵홀, 암석 무덤, 원과 같은 관련 현상도 서아시아에서 발생한다. 4. 1. 4. 남아시아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거석기념물 매장이 발견된다. 이들은 주로 한반도에서 발견된다. 또한 중국의 랴오닝성, 산둥성, 저장성, 타이완 동해안, 일본의 규슈, 시코쿠, 베트남의 동나이 성과 남아시아에서도 발견된다. 일부 살아있는 거석기념물 전통은 인도네시아의 숨바 섬과 니아스 섬에서 발견된다. 거석기념물 매장의 가장 큰 밀집 지역은 한국이다. 고고학자들은 한반도에 15,000개에서 100,000개의 남방식 고인돌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29][30] 일반적인 추정치는 한반도 전체에 약 30,000개로,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약 40%를 차지한다(고인돌 참조).![]() 남아시아의 거석 기념물은 기원전 300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근 남인도에서 기원전 5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이 발견되었다.[39] 거석 기념물은 남아시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또한 가장 오래된 거석 기념물이 발견된 중앙 인도와 상부 인더스 계곡의 거석 기념물과 동부 지역의 거석 기념물 사이에는 광범위한 시간적 진화가 있으며, 동부 지역의 거석 기념물은 최근까지도 살아있는 거석 기념물 관습이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41][40] 이들 중 상당수는 매장 또는 사후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유해가 있거나 없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념물도 포함된다. 브라흐마기리가 그 예시로, 휠러(1975)에 의해 발굴되었고 남인도 선사 시대의 문화적 순서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매장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종류의 거석 기념물도 있다.[41] 남아시아에서는 모든 종류의 거석 기념물이 발견된다. 여기에는 멘히르, 암석 매장, 묘실, 돌멘, 석재 정렬, 석재 원 및 인물상이 있다. 이들은 크게 두 가지(잠재적으로 중복되는) 종류로 분류된다(Moorti, 1994, 2008): 시신을 포함하거나 장례 물품과 함께 유해가 안치된 '묘지형' 기념석과 넓은 지역에 걸쳐 돌을 패턴화하여 배치한 '비묘지형' 기념석이다. '비묘지형'은 남아시아와 세계 다른 지역의 천문학 및 우주론과 관련이 있다(Menon and Vahia, 2010). 인도 선사 시대의 인물상과 관련하여 (Rao 1988/1999, Upinder Singh 2008) 이러한 거대한 인물상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언급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거석 기념물과 관련하여 발생하며, 거석 묘지에 위치해 있으며 조상 숭배와 관련이 있었을 수 있다.[42][43] 4. 2. 유럽![]() ![]() ![]() ![]() ![]() ![]() ![]() ![]() ![]() 유럽에서 가장 흔한 유형의 거석 구조물은 수직으로 세워진 돌(정립석)과 하나 이상의 큰 평평한 덮개돌로 이루어진 방(portal tomb)으로, 지붕을 형성한다. 많은 portal tomb에서 인골이 발견되었지만, 그 주요 기능이 매장지였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프랑스 북서부의 거석 구조물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22] 일반적으로 "돌멘"으로 알려져 있지만, 고고학자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portal tomb"이다. 갈리시아와 포르투갈에서는 ''안타'', 사르데냐에서는 ''스타초네'', 네덜란드에서는 ''후네베드'', 독일에서는 ''휘넨그라브'', 덴마크에서는 ''디세'', 웨일스에서는 ''크롬레흐''와 같이 여러 지역에서 portal tomb에 대한 현지 이름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portal tomb은 원래 흙 무덤으로 덮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흔한 묘 유형은 통로묘이다. 일반적으로 사각형, 원형 또는 십자형 방으로 구성되며, 판석 또는 코벨 구조 지붕이 있고, 길고 직선적인 통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전체 구조는 원형의 흙 무덤으로 덮여 있다. 때로는 외부 석재 연석으로 둘러싸이기도 한다. 주요 예로는 아일랜드의 브루 나 보인과 캐로우모어, 오크니의 메스 하우, 프랑스의 가브리니 유적이 있다. 세 번째 묘 유형은 갤러리 무덤으로 알려진 다양한 그룹이다. 이들은 길쭉한 언덕 아래에 배치된 축 방향으로 배열된 방이다. 아일랜드의 코트 툼, 영국의 롱 배로우, 독일의 ''슈타인키스텐''이 이 그룹에 속한다. 서 있는 돌, 또는 프랑스에서 알려진 멘히어는 유럽 전역에서 매우 흔하며, 약 50,000개의 예가 기록되었다. 이 중 일부는 표지나 예측으로서 천문학적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러한 돌들이 길고 복잡하게 정렬되어 있으며, 가장 큰 예는 프랑스 브르타뉴의 카르나크에 위치해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 일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흔한 유형의 거석 구조가 스톤 서클이며, 예로는 스톤헨지, 에이브베리, 브로드거 링 및 벨타니가 있다. 이들 역시 태양과 달의 천문학적 정렬에 대한 증거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스톤헨지는 동지 정렬로 유명하다. 스톤 서클의 예는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서도 발견된다. 아일랜드 리머릭 근처의 로흐 거에 있는 서클은 비커 시대, 즉 스톤헨지와 거의 같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톤 서클은 묘보다 후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걸쳐 있다. 거석 기념물은 지상 무덤으로, 가장자리에 세워지고 흙이나 다른 작은 돌로 덮인 큰 돌판 (거석)으로 지어졌으며, 신석기 시대에 신석기 농경 사회에 의해 대서양 유럽, 지중해 및 인접 지역에 걸쳐 건설된 구조물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이다. 구조적 사용 측면에서 동시대의 긴 매장구와 다르다. 거석 기념물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있다. 브르타뉴, 덴마크, 독일, 아일랜드, 네덜란드, 스웨덴, 웨일스 등에서 발견되는 독립형 단실 돌멘과 포털 돌멘은 3개, 4개 또는 그 이상의 입석으로 지지되는 큰 평평한 돌로 구성된다. 이들은 돌 카르 또는 흙 매장구로 덮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돌멘이 특히 사르데냐에서 발견될 수 있다. 신석기 시대 (기원전 3500–2700년)에 만들어진 돌멘이 100개 이상 있으며 가장 유명한 것은 ''Dolmen di Sa Coveccada''(모레스 근처)이다. 청동기 시대 동안 누라게 문명은 약 800개의 거인의 무덤을 건설했으며, 이는 다양한 구조를 가진 사르데냐 전역에서 발견될 수 있는 거석 갤러리 무덤의 한 유형이다. 사르데냐에서 가장 초기의 거석 무덤은 코르시카, 남부 프랑스 및 동부 스페인에서도 발견되는 이른바 아르차케나 문화의 원형 무덤이다. 돌멘은 풀리아와 시칠리아에도 있다. 후자의 지역에서는 팔레르모의 무라 프레네, 아그리젠토의 스카카, 칼탄니세타의 몬테 부보니아, 칼탄니세타의 부테라, 시라쿠사의 카바 라자로, 라구사의 카바 데이 세르비, 메시나의 몬탈바노 엘리코나에 있는 아볼라 (시라쿠사)와 아르기무스코에 작은 구조물로 위치해 있다. 초기 청동기 시대 (기원전 2200–1800년)에 만들어진 선사 시대 시칠리아 건물은 둥근 흙 언덕으로 덮여 있었다. 카바 데이 세르비의 돌멘에서 고고학자들은 수많은 인간 뼈 조각과 카스텔루치아 도자기 (초기 청동기 시대)의 일부 파편을 발견하여 유물의 매장 목적을 확인했다. 매장에 사용되지 않은 외부 지역이 있는 예도 알려져 있다. 스코틀랜드 남서부와 북아일랜드의 코트 카른, 잉글랜드 남서부의 세번-코츠월드 무덤 및 프랑스 루아르 지역의 트란셉트 갤러리 무덤은 많은 내부 기능을 공유하지만, 이들 간의 연관성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이 종종 전실이나 안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건축가가 죽은 자와 산 자의 특별한 의례 또는 물리적 분리를 강조하려는 의도를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거석 기념물은 지역 사회가 죽은 자의 유해를 장기간 안치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는 변경 및 확장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돌을 세우는 데 필요한 조직과 노력은 관련 사회가 죽은 자의 적절한 처리에 큰 비중을 두었음을 시사한다. 무덤의 의례적 중요성은 일부 유적지의 돌에 새겨진 선사 시대 예술의 존재에 의해 뒷받침된다. 또한 고고학자들이 일부 무덤 주변에서 발견한 화덕과 도자기 및 동물 뼈의 퇴적물은 어떤 형태의 매장 연회 또는 희생 의식이 그곳에서 행해졌음을 암시한다. 거석 기념물의 추가적인 예로는 오크니의 미드호우의 스톨드 카른과 앵글시의 브린 켈리 드두의 통로 무덤이 있다. 또한 보른홀름 덴마크 섬의 루이센룬과 그리에트에 최대 60개의 거석이 있는 광범위한 무덤 유적지가 있다. 이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의 스톤 무덤은 무덤이 아니라 성소였다. 거석 기념물과 관련하여 유럽 전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규모 토공 구조물이 종종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물에는 도랑과 둑(예: 도싯 커서스), 넓은 테라스, 헨지로 알려진 원형 울타리, 그리고 잉글랜드의 실버리 힐과 사사리의 몬테 다코디 (선사 시대 계단식 피라미드) 와 같은 인공 언덕이 포함된다. 유럽에서 거석 기념물은 일반적으로 신석기 시대 또는 후기 석기 시대와 금석 병용기 또는 구리 시대(기원전 4500~1500년)에 세워진 구조물이다. 몰타의 거석 구조물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거석 구조물은 영국의 스톤헨지일 것이다. 사르데냐에는 돌멘, 멘히어, 원형 무덤 외에도 누라게 문명이 만든 8,000개 이상의 거석 구조물이 있는데, 이는 탑과 유사한 건물(때로는 정말 복잡한 구조를 갖춘)로, 오직 바위만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이들은 종종 거인의 무덤 또는 다른 거석 기념물 근처에 위치해 있다. 프랑스의 콩트 드 케일러스는 카르나크 돌을 처음으로 묘사했다. 피에르 장-밥티스트 르그랑 도씨는 골동품 용어로 브르타뉴어에서 따온 ''멘히어''와 ''돌멘''이라는 용어를 도입했다. 그는 거석 기념물을 갈리아 무덤으로 잘못 해석했다. 영국에서는 골동품 연구가 오브리와 스터클리가 거석 기념물에 대한 초기 연구를 수행했다. 1805년, 자크 캉브리는 "켈트 기념물, 또는 돌 숭배에 대한 연구, 켈트족과 드루이드에 대한 통보와 켈트어 어원 연구"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여 켈트족의 돌 숭배를 제안했다. 이 입증되지 않은 드루이드와 거석 기념물 사이의 연관성은 그 이후로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벨기에는 아르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베리스 거석 기념물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거석 구조물이 주로 드렌테주 북동부에서 발견된다. 노스는 아일랜드의 브루 나 보인 신석기 단지에 있는 통로 무덤으로, 기원전 3500~3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는 유럽 전체 거석 예술의 예시 중 3분의 1 이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발굴 과정에서 200개 이상의 장식된 돌이 발견되었다. 다음은 유럽의 거석 기념물 건설과 관련된 주요 시기 및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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