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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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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의 문학은 시대별로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초기에는 맹사성의 〈강호사시가〉와 같이 안정적인 정서를 담거나 성삼문의 시조처럼 충절을 노래하는 작품이 등장했다. 또한, 서거정의 《필원잡기》, 김시습의 《금오신화》와 같은 잡기 또는 패설 문학이 발달하여, 각계각층의 생활상과 역사 의식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중기에는 최세진의 《훈몽자회》와 같은 어학 관련 저술이 등장하고, 정철의 가사 문학이 국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김시습에게서 시작된 방외인 문학이 홍유손, 임제 등으로 이어지며 체제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후기에는 한글 문학이 발달하고, 판소리 문학, 사설시조가 유행하며 서민들의 정서를 담은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김만중은 한글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2. 조선 초기

훈민정음 창제는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한문이나 이두로 표현되던 문학에서 벗어나, 진정한 국문학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한문 사용에 익숙했고 모화사상의 영향이 깊었던 지식층은 여전히 한문학을 중시하여, 조선 시대에는 국문학과 한문학이 함께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 초기 국문학에서는 먼저 건국의 위업을 기리는 악장(樂章)이 등장했다. 정도전의 〈신도가(新都歌)〉, 권근의 〈상대별곡(霜臺別曲)〉, 변계량의 〈화산별곡(華山別曲)〉 등이 대표적이며, 세종 때 편찬된 《용비어천가》는 이러한 흐름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고려 시대에 시작된 시조는 조선에 들어와 더욱 발전하였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처럼 안정된 시대의 평화로운 정서를 노래한 작품도 있고,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삼문의 시조처럼 굳은 절개를 표현한 작품도 등장하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또한, 성종정극인이 지은 《상춘곡》은 가사 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이 시기에는 패설 문학이 발달하였고, 김시습의 《금오신화》와 같은 초기 소설 작품도 등장하였다. 이러한 국문학의 발전 속에서도 한문학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꾸준히 창작되었다.

2. 1. 패설 문학의 발달

조선 초기 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잡기(雜記) 또는 패설(稗說)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많이 창작된 점이다. 패설은 일정한 형식 없이 작가가 보고 들은 바를 자유롭게 기록한 글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패설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작품명
서거정필원잡기(筆苑雜記)》, 《동인시화(東人詩話)》
성현(成俔)용재총화(慵齋叢話)》
남효온《추강냉화(秋江冷話)》
강희맹《촌담해이(村談解頤)》
이륙(李陸)《청파극담(靑坡劇談)》
조신(曺伸)《소문쇄록(謏聞瑣錄)》



이러한 패설 작품들에는 조정 관리들의 특별한 이야기부터 일반 백성이나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 사람들의 생활 모습, 감정, 그리고 역사의식이 담겨 있다. 또한, 사회의 부조리나 부당함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내용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어, 비록 양반 관료들에 의해 쓰였지만 당시 서민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패설 문학은 사람들 사이에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구전 자료)를 바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소설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 패설 문학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구전 자료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허구적인 요소가 강화된 소설 작품들도 등장하게 되었다. 세조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금오신화(金鰲新話)》가 대표적인 예이다. 《금오신화》에 실린 이야기들은 평양, 개성, 경주 등 역사 깊은 도시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주로 다루면서도, 사회의 불의를 비판하고 민중 사이에 전승되어 온 고유한 생활 감정과 낭만적인 역사의식을 잘 보여준다.

2. 2. 초기 소설의 등장

소설은 고려 시대 이래의 패관문학(稗官文學)에서 발달하여 점차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조선 초기에는 일정한 격식 없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잡기 혹은 패설(稗說) 작품이 많이 창작되었는데,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와 《동인시화》(東人詩話), 성현의 《용재총화》(慵齋叢話), 남효온의 《추강냉화(秋江冷話)》, 강희맹의 《촌담해이(村談解頤)》, 이륙의 《청파극담(靑坡劇談)》, 조신의 《소문쇄록(謏聞瑣錄)》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패설문학은 구전(口傳) 자료를 많이 참고하여 쓰였으며 소설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패설에는 조정 관리들의 이야기부터 평민, 노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생활 모습과 감정, 역사의식이 담겨 있으며, 불의를 폭로하고 풍자하는 내용도 적지 않아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패설문학이 발전하면서 구전 자료에 허구적 요소를 더욱 가미한 소설이 창작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세조 때 김시습(金時習)이 지은 《금오신화》(金鰲新話)이다. 《금오신화》는 비록 명나라 구우(瞿佑)의 〈전등신화〉를 모방하여 한문으로 쓰였지만, 한국 소설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작품집에는 평양, 개성, 경주 등 유서 깊은 도시를 배경으로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루면서도, 당대의 불의를 비판하고 민중 사이에 전승되어 온 고유한 생활 감정과 낭만적인 역사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김시습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현실 정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작품에 투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후 광해군허균(許均)이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홍길동전》(洪吉童傳)을 발표함으로써 조선의 소설문학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져 있으며, 서얼 차별과 같은 신분 제도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상 사회 건설의 염원을 담아내어 후대 소설에 큰 영향을 미쳤다. 허균의 개혁적인 사상이 반영된 이 작품은 조선 소설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 조선 중기

16세기 조선 중기에는 문학 창작 활동이 이전 시대보다 넓어져 향촌의 지식인들에게까지 확산되었고, 아동 교육이 강화되면서 어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졌다. 중종 대 최세진은 《훈몽자회》를 저술하여 한자 교육과 훈민정음 보급에 기여했으며, 선조 대 권문해는 한국 최초의 백과사전 성격의 저술인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했다.

이 시기 문학은 사림 세력의 성장과 함께 그들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방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흐름을 보였다. 기호 지방 출신 사림이나 훈신 중에는 품격 높은 한시를 짓는 이들이 많았으며, 송순, 정철 등은 뛰어난 국문 가사 작품을 남겨 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한편, 기존의 지배 질서나 관료 사회를 비판하는 새로운 문학 경향도 나타났다. 체제 밖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도가 사상이나 민간 신앙의 영향을 받은 ‘방외인’ 문학이 그것이다. 15세기 말 김시습에게서 시작된 이 흐름은 16세기에 이르러 홍유손, 전우치, 임제 등 여러 인물들을 통해 더욱 뚜렷해졌으며, 이들은 기존의 성리학적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비판적인 시나 소설을 창작하였다.

또한 서얼, 노비 등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계층이나 규방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들 사이에서도 문학 활동이 활발해졌다. 어무적, 서기, 이달과 같은 불우한 처지의 인물들이 현실 비판적인 작품을 남겼으며, 황진이,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 뛰어난 여성 작가들이 등장하여 여성 특유의 감성을 담은 작품들을 창작했다.

이처럼 16세기 조선 중기 문학은 작자층이 확대되고 다양한 문학 갈래가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방외인 문학이나 여성 문학 등 새로운 경향의 등장은 기존의 사회 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며, 이후 실학 사상이 대두하는 사상적 배경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3. 1. 한문학의 발전

16세기에는 문학 창작 활동이 향촌의 지식인들에게까지 확산되었고, 아동 교육이 강화되면서 어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중종 대 역관 출신 학자 최세진(崔世珍)은 중국어와 외교 문서용 한문인 이문(吏文)에 능통했다. 그는 어린이 한자 학습 교재로 《훈몽자회》(1527년)를 저술하여 당시 사용되던 한자의 음과 뜻을 우리말로 기록했다. 이전의 《천자문》이나 《유합》보다 실용적인 3,360자를 선정하고, 범례에 훈민정음에 대한 설명을 실어 보급에 기여했다. 또한 외교 문서 참고서인 《이문집람(吏文輯覽)》을 저술하고, 몽골어 학습서 《노걸대》와 중국어 학습서 《박통사》를 우리말로 번역했다. 한자의 중국음을 정리한 《사성통해(四聲通解)》는 신숙주의 《사성통고》를 증보한 것으로, 음운학과 국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선조 초 예천 출신 학자 권문해(權文海)는 단군 이래의 역사, 인물, 지리, 문학 등을 망라하여 운자(韻字) 순서로 배열한 고사 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20권)을 편찬했다.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전이자 조선 후기 백과사전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16세기 문학은 사림의 정치적 입장과 지방적 배경에 따라 다양한 흐름을 보였다. 기호 지방 출신 사림이나 훈신 중에는 한시(漢詩)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다. 중종 대의 박상, 남곤, 박은(朴誾), 이행과 명종·선조 대의 정사룡(鄭士龍), 노수신(盧守愼), 황정욱(黃廷彧) 등은 비판 정신은 다소 부족했지만, 품격 높은 시로 명성을 얻었다. 선조 때의 송순이나 김인후, 기대승의 문인인 정철 등은 국문 가사로도 유명하지만, 한문학 분야에서도 활동하였다.

이 시기 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관료와 사림 모두를 비판하는 '방외인(方外人)' 문학의 등장이다. 이들은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방랑하며 기이한 행적을 남겼고, 도가 사상이나 민간 신앙을 수용하며 체제 비판적인 시나 소설을 창작했다. 15세기 말 김시습에서 시작된 이러한 경향은 16세기 홍유손(洪裕孫), 전우치, 정희량(鄭希良), 정렴, 정작, 양사언(楊士彦), 어무적, 서기, 임제, 어숙권(魚叔權) 등으로 이어지며 더욱 뚜렷해졌다.

  • 아전 출신 홍유손은 무오사화 때 화를 입은 후, 단군·기자·영랑으로 이어지는 고유 전통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다.
  • 개성 출신 전우치는 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며, 강원도 고성 삼일포의 풍경을 묘사한 시를 남겼다.
  • 정희량 역시 무오사화 관련 인물로, 〈혼돈주가(混沌酒家)〉 등 무위자연의 도가 세계를 동경하는 시를 썼다.
  • 정렴과 정작 형제는 아버지 정순붕의 행적에 반발하여 도가에 귀의했으며, 그들의 시문집 《북창고옥문집(北窓古玉文集)》은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 양사언의 시는 '선가(仙家)의 신품(神品)'으로 평가받았다.
  • 서얼 출신 어무적은 가난한 농민의 고통을 그린 〈유민탄(流民嘆)〉, 수령의 횡포를 풍자한 〈작매부〉 등을 남겼다.
  • 종 출신 서기는 학문에 힘써 명사들과 교류했으며, 선비들의 위선을 비판한 〈탄시(歎時)〉 등을 지었다.
  • 임제는 문과에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방랑하며, 성리학적 명분을 비판하는 소설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왕도 정치의 허무함을 그린 〈수성지(愁城誌)〉, 탐관오리를 풍자한 〈서옥설〉 등과 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임종 시 발언은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 서얼 출신 어숙권은 《패관잡기(稗官雜記)》를 통해 문벌 제도와 적서 차별의 폐단을 지적했다.
  • 이달은 관기(官妓)의 아들로 태어난 서얼 출신 시인으로, 삼당시인의 대표자로 꼽힌다. 그의 대표작 〈만랑무가(漫浪舞歌)〉는 현실 도피 의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서얼이나 노비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문학 창작에 참여하는 흐름 속에서, 여성 작가들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는 이옥봉(李玉峰), 황진이, 이계랑(李桂娘), 허난설헌, 그리고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등이 있다. 개성의 기녀였던 황진이는 정감 어린 시조로 유명하지만, 한시 작품도 남겼다. 양반의 첩이었던 이옥봉, 부안 기생이었던 이계랑,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 신사임당 등은 각자의 배경 속에서 여성 특유의 감성을 담은 작품을 창작했다. 특히 허난설헌은 신선 세계를 동경하는 도가적 색채의 작품도 남겼다.

16세기 문학에서 나타난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기존 질서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며, 이후 실학 사상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3. 2. 국문학의 성장

16세기에는 문학 창작 활동이 향촌의 지식인 계층까지 넓어졌고, 향촌 아동 교육이 강화되면서 어학 분야에서도 새로운 발전이 있었다.

중종 대의 역관 출신 학자 최세진은 중국어와 이문(吏文, 외교 문서용 한문)에 능통했다. 그는 어린이 한자 학습 교재로 《훈몽자회》(1527년)를 저술하여 당시 통용되던 한자의 음과 뜻을 우리말로 기록했다. 이전에는 《천자문》이나 《유합(類合)》으로 한자를 배웠으나, 내용이 어렵고 추상적인 단점이 있었다. 최세진은 일상생활 주변에서 쓰이는 글자 3,360자를 새로 뽑아 싣고, 범례에서 훈민정음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훈민정음 보급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외교 문서 작성 참고서인 《이문집람(吏文輯覽)》을 저술했으며, 몽골어 학습 교재 《노걸대》와 중국어 학습 교재 《박통사》 등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그가 신숙주의 《사성통고》를 증보하여 편찬한 《사성통해(四聲通解)》는 한자의 중국음을 '고·금·정·속'으로 나누어 우리말로 기록하여 음운학과 국문학 발전에 기여하였다.

선조 초 예천 출신 학자 권문해는 단군 이래의 역사, 인물, 지리, 문학, 예술 등을 총망라하여 운자 순서로 배열한 고사 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20권)을 편찬했다. 이 책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전이며, 조선 후기에 유행한 백과사전의 시초가 되었다.

16세기 문학은 사림이 처한 상황과 지방적 전통의 차이에 따라 여러 흐름을 보였다. 특히 기호 지방 출신 사림이나 훈신들 가운데 한시, 가사, 시조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인물들이 많았다. 중종 때의 박상, 남곤, 박은, 이행, 명종·선조 때의 정사룡, 노수신, 황정욱 등은 날카로운 비판 정신은 부족했지만 격조 높은 시를 잘 지어 문명을 떨쳤다. 선조 때 담양 출신 송순과 김인후, 기대승의 문인이었던 정철은 국문으로 가사를 지어 국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특히 정철은 강원도 관찰사로 재직하며 금강산을 비롯한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을 풍부한 우리말 어휘로 노래한 〈관동별곡〉과 임금을 향한 충성심을 담은 〈사미인곡〉 등을 남겼다.

16세기 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관료와 사림 모두를 비판하며 등장한 이른바 ‘방외인’ 문학이다. 이들은 체제 밖에서 방랑하며 기이한 행적을 남겼고, 도가(道家)의 선술이나 민간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체제 비판적인 시나 소설을 즐겨 썼다. 이러한 경향은 15세기 말 김시습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하여 16세기에는 홍유손, 전우치, 정희량, 정렴, 정작, 양사언, 어무적, 서기, 임제, 어숙권 등이 등장하며 더욱 이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아전 출신 홍유손은 무오사화 때 화를 입고 노비가 되었다가 풀려난 후 종적을 감추었는데, 단군, 기자, 영랑으로 이어지는 고유 전통을 노래하는 시를 짓고 단군을 ‘단제’로 높여 부르기도 했다. 개성 출신 기인 전우치는 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며, 신라 네 신선이 놀았다는 강원도 고성 삼일포(三日浦)의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읊었다. 정희량 역시 무오사화 때 귀양 갔다가 풀려난 후 행적이 묘연해진 기인으로, 〈혼돈주가(混沌酒家)〉 등 무위자연의 도가 세계를 희망하는 시를 다수 남겼다. 당시에는 그가 임꺽정의 스승이라는 설도 퍼졌다. 정렴과 정작 형제는 아버지 정순붕이 명종 때 권신으로 악명을 떨친 것에 반발하여 도가에 귀의했다. 이들의 시문집인 《북창고옥문집(北窓古玉文集)》은 조선 후기 도가들 사이에서 삼교일치 사상으로 추앙받았다. 금강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양사언의 시는 ‘선가의 신품’으로 알려졌다.

어무적은 노비를 어머니로 둔 서얼 출신으로, 연산군 시대 가난한 농민의 고통을 노래한 〈유민탄(流民嘆)〉과 매화나무에까지 세금을 매긴 수령의 횡포를 풍자한 〈작매부〉 등을 남겼다. 서기노비 출신이지만 학문에 힘써 이지함 등 명사들과 교류했으며, 선비들의 마음을 짐승에 비유한 〈탄시(歎時)〉 등의 시를 남겼다. 임제는 속리산에 은거하던 성운에게 학문을 배우고 문과에도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방랑하며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수성지(愁城誌)〉, 〈화사(花史)〉, 〈서옥설〉 등의 소설과 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원생몽유록〉은 요·순·우·탕·무왕 등 중국의 성인을 만고의 죄인으로 비판하며 성리학자들의 명분을 공격한 소설이며, 〈수성지〉는 천군(天君)을 주인공으로 왕도정치의 허무함을 그린 소설이다. 〈서옥설〉은 탐욕스러운 관리 등을 늙은 쥐에 비유하여 풍자한 우화 소설이다. 임제는 죽음에 임박하여 “사해 여러 나라 중 황제를 칭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조선만이 못해보았다. 이런 나라에 태어나 죽어가니 슬퍼할 것이 있겠는가?”라며 자손들에게 곡(哭)을 금지했다고 전해진다. 이 해학 속에는 성리학자들의 사대명분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한편, 서얼 출신 어숙권은 《패관잡기(稗官雜記)》를 저술하여 문벌 제도와 적서 차별의 폐단을 지적했다. 이달은 관기(官妓)의 아들로 태어나 불우한 일생을 보낸 삼당시인의 대표자로, 그의 대표작 〈만랑무가(漫浪舞歌)〉는 신선의 세계를 향해 칼춤을 추는 노인의 모습을 비상한 상상력과 벅찬 감격으로 묘사하여 현실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서얼이나 노비와 같이 불우한 처지의 인물들이 문학 창작에 나서는 흐름 속에서, 규방에 갇혀 지내던 여성들 사이에서도 훌륭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 서울과 인근 지역의 이옥봉, 황진이, 이계랑, 허난설헌, 그리고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개성의 기녀였던 황진이는 개성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박연(朴淵)〉이나 소세양과의 이별을 노래한 〈청산리 벽계수〉 등 정감 어린 시조를 많이 지어 큰 인기를 얻었다. 이옥봉은 양반의 첩, 이계랑은 부안 기생, 허난설헌은 허엽의 딸이자 허균의 누나, 신사임당이이의 어머니라는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여성 특유의 모성애나 애정을 소재로 한 작품을 다수 창작했다. 다만 허난설헌의 경우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는 도가적 사회성을 띤 작품도 남겼다.

16세기 문학에서 나타난 이러한 불우한 처지의 인물들의 새로운 문학 경향은 서울 지방의 성리학이 점차 변용되면서 조선 후기 실학 발생의 사상적 토대가 마련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3. 3. 방외인 문학의 등장

16세기 문학에서는 기존의 관료나 사림 문학과는 다른 흐름이 나타났는데, 바로 ‘방외인(方外人)’ 문학이다. 이들은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방랑하며 기이한 행적을 남기고, 관료와 사림 모두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도가 사상이나 민간 신앙에 영향을 받아 체제 비판적인 시나 소설을 창작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은 이미 15세기 말 김시습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16세기에는 홍유손(洪裕孫), 전우치, 정희량(鄭希良), 정렴, 정작, 양사언(楊士彦), 어무적, 서기, 임제, 어숙권(魚叔權), 이달 등이 나오면서 더 한층 이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 홍유손: 아전 출신으로 무오사화 때 화를 입고 노비가 되었다가 풀려난 후 종적을 감추었다. 단군, 기자, 영랑으로 이어지는 고유 전통을 노래하는 시를 짓고 단군을 ‘단제(檀帝)’로 높여 불렀다.
  • 전우치: 개성 출신의 기인으로, 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신라의 네 신선이 놀았다고 전해지는 강원도 고성 삼일포의 선경을 시로 읊었다.
  • 정희량: 무오사화 때 귀양 갔다가 풀려난 후 행적이 묘연해진 기인이다. 〈혼돈주가(混沌酒家)〉 등 무위자연의 도가 세계를 희망하는 시를 많이 썼으며, 임꺽정의 스승이라는 설도 당시에 퍼졌다.
  • 정렴과 정작 형제: 아버지 정순붕이 명종 때 권신으로 악명을 얻은 것에 반발하여 도가에 귀의했다. 두 사람의 시문집인 《북창고옥문집(北窓古玉文集)》은 조선 후기 도가들 사이에 삼교일치의 사상으로서 추앙을 받았다.
  • 양사언: 금강산에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그의 시는 ‘선가(仙家)의 신품(神品)’이라고 알려져 있다.
  • 어무적: 종을 어머니로 하여 양반의 서얼로 태어나, 연산군 시대 가난한 농민의 고통을 시로 읊은 〈유민탄(流民嘆)〉, 매화나무에까지 세금을 매긴 수령의 횡포를 풍자한 〈작매부〉 등을 남겼다.
  • 서기: 종으로서 학문에 힘써 이지함 등 명사들과 교류했는데, 선비들의 마음을 짐승에 비유한 〈탄시(歎時)〉 등의 시를 남겼다.
  • 임제: 속리산에 은거하던 성운(成運)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문과에도 급제했으나 벼슬을 버리고 방랑하면서 《원생몽유록》, 《수성지(愁城誌)》, 《화사(花史)》, 《서옥설》 등의 소설과 천여 편의 시를 남겼다. 《원생몽유록》은 요·순·우·탕·무왕 등 중국의 성인을 만고의 죄인으로 몰아 성리학자들의 명분을 공박한 소설이며, 《수성지》는 천군(天君)을 주인공으로 하여 왕도정치의 허무함을 그려낸 소설이다. 《서옥설》은 탐욕스런 관리 등을 늙은 쥐에 비유하여 풍자한 우화소설이다. 임제는 죽을 때 “사해제국이 황제를 칭해 보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조선만이 못해 보았다. 이런 나라에 태어났다가 죽어 가는데 슬퍼할 것이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자손들에게 곡(哭)을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이 해학 속에는 성리학자들의 사대명분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 어숙권: 서얼 출신으로 《패관잡기》를 지어 문벌제도와 적서차별의 폐단을 그려냈다.
  • 이달: 관기(官妓)의 몸에서 태어나 천덕꾸러기로 일생을 마친 삼당시인의 대표자로서 대표작 〈만랑무가(漫浪舞歌)〉는 신선의 세계를 향해서 칼춤을 추는 한 노인의 거동을 비상한 상상력과 벅찬 감격으로 묘사하여 현실로부터 탈출하려는 의지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했다.


16세기 문학에서 나타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새로운 문학경향은 이미 서울지방의 성리학이 차츰 변용되면서 조선후기 실학이 발생하게 되는 사상적 토대가 잡혀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3. 4. 여성 문학의 대두

16세기에는 서얼이나 노비와 같이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던 이들뿐만 아니라, 사회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여성들 사이에서도 문학 창작 활동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규방에 머물러야 했던 여성들 중에서도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보여준 작가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는 서울과 그 주변 지역 출신의 이옥봉, 개성의 기녀였던 황진이, 부안의 기녀 이계랑,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 그리고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신분과 가정 배경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경험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황진이는 개성의 명소인 박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소세양과의 이별을 애틋하게 그린 〈청산리 벽계수〉와 같은 시조를 통해 당대에 큰 인기를 누렸다. 양반의 첩이었던 이옥봉, 기녀였던 이계랑, 허엽의 딸이자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 대학자 이이의 어머니였던 신사임당 등은 각자의 삶 속에서 느낀 모성애나 사랑과 같은 여성 특유의 감정을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 다만, 허난설헌의 경우 여성적인 감성 외에도 신선 세계를 동경하는 도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남기기도 하여, 당시 여성 문학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처럼 16세기에 나타난 여성 문학의 성장은 사회적 제약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여성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는 사회·사상적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는 양반 중심의 유교적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문학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한글을 이용한 서민 문학이 크게 성장했으며, 김만중과 같은 인물은 우리말로 쓰인 문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 시기 문학은 독창적인 기교와 풍자 수법을 사용하여 당대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박지원 등의 한문 소설과 더불어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는 점차 소설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작품들은 지배층의 위선을 꼬집거나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을 다루는 등 이전과는 다른 주제를 과감하게 선보였다.

시조 분야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평민들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설시조가 유행했다. 이는 실학 사상의 확산과 평민 계층의 의식 성장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깊다. 이 시기에는 김천택의 《청구영언》, 김수장의 《해동가요》 등 평민 작가들이 엮은 중요한 시조집들이 등장하여 서민 문학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4. 1. 소설 문학의 황금기

양반 중심의 유교적 사회 질서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사상뿐 아니라 문학 영역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한글로 쓰인 서민 문학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김만중과 같은 인물은 우리말로 쓰인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민족 문학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 시기 문학은 독창적인 기교와 풍자 수법을 특징으로 한다. 박지원 등의 한문소설과는 별개로, 이야기꾼들이 민족 정서가 담긴 설화에서 소재를 가져와 판소리로 발전시켰고, 이는 다시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로 정착되었다. 이 작품들에는 민족 문학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지배층이나 상류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을 폭로하고 풍자하는 독창적인 작품들로 이어졌는데, 《이춘풍전》, 《쥐전》, 《두껍전》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의 중국 소설 영향이나 일부다처제 같은 봉건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 남성과 한 여성 사이의 진실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등장했다. 《옥단춘전》, 《이진사전》 등이 이러한 작품에 해당한다.

시조 분야에서도 18세기 후반에는 평민들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설시조가 유행했다. 이는 실학 사상의 영향과 평민 계층의 자각이 높아진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 시기 활동한 평민 작가들 가운데 김천택이 엮은 《청구영언》과 김수장이 엮은 《해동가요》는 당시 서민 문학을 대표하는 시조집으로 평가받는다.

4. 2. 판소리계 소설의 등장

조선 후기에는 양반 중심의 유교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아지면서, 문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한글로 쓰인 서민 문학이 크게 발전했는데, 김만중과 같은 문학 평론가는 한글로 쓴 문학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문학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박지원 등의 한문 소설과는 다른 흐름으로, 재능 있는 광대들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설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학 양식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판소리를 바탕으로 한 소설, 즉 판소리계 소설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 등이 있으며, 이 작품들은 민족 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판소리계 소설은 당시 지배층이나 상류 사회의 위선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꼬집고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경우가 많았다. 《이춘풍전》이나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 사회를 비판한 우화 소설(원문에서는 《쥐전》, 《두껍전》 등으로 언급됨)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또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이전까지 중국의 이야기를 빌려오거나 일부다처제와 같은 봉건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있던 것에서 벗어나,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진실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들이 많이 창작되었다. 《옥단춘전》, 《이진사전》 등이 그 예이다.

한편, 시조에서도 변화가 일어나 18세기 후반에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서민들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사설시조가 유행했다. 이는 사상적으로는 실학의 영향을 받고, 사회적으로는 평민 계층의 의식이 성장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 시기 평민 작가들이 남긴 시조집 가운데 김천택의 《청구영언》과 김수장의 《해동가요》는 서민 문학을 대표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4. 3. 사설시조의 유행

시조에서도 18세기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서민 감정을 나타내는 사설시조로 변하였다. 이는 사상적으로는 실학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사회적으로는 평민 계급들이 자기 각성을 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활동한 평민 작가들 가운데 김천택의 《청구영언》, 김수장의 《해동가요》와 같은 시조집들은 이러한 서민 문학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4. 4. 한문 소설의 발전

양반 중심의 유교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은 문학에서도 나타났으며,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문 소설 역시 새로운 경향을 보였다. 특히 박지원과 같은 작가들은 독창적인 기교와 풍자적인 수법을 활용하여 당대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한문 소설 작품들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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