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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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가와 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기술, 창의성, 득점 능력을 갖춘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유소년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하여, 세레소 오사카,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베식타스, 레알 사라고사, PAOK, 신트트라위던 등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다. 특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분데스리가 우승을 경험했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국가대표팀 선수로도 활약하며, 2011년 AFC 아시안컵 우승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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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와 신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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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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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 이름 | |카가와 신지}} |
로마자 표기 | Kagawa Shinji |
출생일 | 1989년 3월 17일 |
출생지 | 일본 고베시 |
키 | 1.75m |
포지션 | 미드필더 |
등번호 | 8 |
주발 | 오른발 |
클럽 경력 | |
1994-1999 | 마리노 FC |
1999-2001 | 고베 NK 축구 클럽 |
2001-2005 | FC 미야기 바르셀로나 유스 |
2005-2007 | 세레소 오사카 |
2007-2010 | 세레소 오사카 |
2010-2012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2012-2014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2014-2019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2018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II |
2019 | → 베식타시 (임대) |
2019-2020 | 레알 사라고사 |
2021 | PAOK |
2022-2023 | 신트트라위던 |
2023-현재 | 세레소 오사카 |
클럽 통산 (2024년 12월 8일 기준) | 출전: 401 득점: 115 |
국가대표 경력 | |
2006-2008 | 일본 U-19/20 |
2008 | 일본 U-23 |
2008-2019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국가대표 통산 (2019년 6월 5일 기준) | 출전: 97 득점: 31 |
수상 | |
AFC 올해의 국제 선수상 | 2012 |
AFC 아시안컵 우승 | 2011 |
2. 어린 시절
가가와 신지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301][87], 미야기현 센다이시로 축구 유학을 떠나 FC 미야기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며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303][86][91]. 이 시기 일본축구협회의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 세레소 오사카에 스카우트되어 프로 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유소년 시절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1. 유소년 시절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여[86], 1995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지역 클럽인 마리노 FC[87](현 센아노 고베)[90]에 소속되었다[301][302][88][89]. 초등학교 4학년 때 고베시 선발 멤버로 선출되었다. 중학교 진학 후 비셀 고베 유소년 팀 입단 테스트에 불합격하였고[303], 초등학교 5학년 때 고베 NK 축구 클럽 감독으로부터 FC 미야기 바르셀로나로의 축구 유학을 권유받아[86][91][92][93] 미야기현 센다이시로 축구 유학을 가게 되었다[303].2001년,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축구 유학을 시작했다. 센다이 시립 야오토메 중학교에 다니면서 FC 미야기 바르셀로나 주니어 유스에 소속되어 훈련에 매진했다. 처음 6개월은 홈스테이를 했고, 그 후에는 센다이까지 온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이 시기에 일본축구협회에서 운영하는 내셔널 트레이닝 센터 멤버와 U-15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골키퍼 영입을 목적으로 FC 미야기 바르셀로나 유스에 소속되어 있던 단노 겐타를 시찰하러 온 세레소 오사카의 스카우트 담당이었던 고키쿠 아키오에게 발탁되었다.
2004년, 미야기현 구로카와 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고등학교 1학년 때 일본 클럽 유스 축구 선수권 (U-18) 대회에 출전했다[304]. 당시에는 무명이었지만, 세레소 오사카에 가장 먼저 연습에 불려갔다.
2005년 8월, 고등학교 2학년 때 U-18 도호쿠 대표팀에 조기 발탁되어 그 해 9월 센다이컵 국제 유스 축구 대회 (U-18)에 보란치로 출전했다. U-18 일본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3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5-2 승리를 거두었다. 지역 선발 팀이 일본 전체 선발 팀을 이긴 것이 화제가 되었고, 이때부터 전국 스카우트 관계자들 사이에서 "도호쿠에 굉장한 선수가 있다"고 유명해졌으며,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었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05년 12월 18일 세레소 오사카와 가계약을 하였고, 고등학교 졸업 이전의 선수가 프로계약을 맺는 것은, J리그 클럽의 유소년 소속 선수가 톱 팀에 승격시키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상 처음의 일이었다. 2006년 세레소 오사카와 업무제휴를 하고 있는 이바라키현 다카하기시에 위치한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였다[305].
3. 클럽 경력
가가와는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나 5세 때 축구를 시작했다.[4] 유소년 시절에는 마리노 축구 클럽(1994-1999),[9] 고베 NK 축구 클럽(1999-2001),[10] 센다이의 FC 미야기 바르셀로나(2001-2005)에서 활동했다.[11][12][13]
2005년 12월, 세레소 오사카와 가계약을 맺고 2006년 정식 입단했다.[102] 이로써 가가와는 J리그 클럽의 유소년팀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프로 계약을 맺은 최초의 일본 선수가 되었다.[14][98] 세레소 오사카에서는 J2 리그에서 핵심 선수로 성장하여 2009년에는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의 J1 리그 승격을 이끌었다.[110][105]
2010년 여름,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114][115] 도르트문트에서의 첫 두 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팀의 리그 2연패(2010-11, 2011-12)와 DFB-포칼 우승(2011-12)에 기여했고, 특히 2011-12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첫 '더블'(리그, 포칼 동시 우승) 달성을 이끌었다.
201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23] 첫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하며 일본인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목에 걸었다.[36]
2014년 8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복귀하여[326][327] 2019년까지 활약하며 2016-17 시즌 DFB-포칼 우승을 추가했다. 이후 출전 기회를 찾아 터키 쉬페르리그의 베식타시 JK (임대),[43]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의 레알 사라고사,[44] 그리스 수페르리가 엘라다의 PAOK FC,[48] 벨기에 벨기에 프로 리그의 신트트라위던 VV[50] 등 다양한 유럽 리그를 경험했다.
2023년 1월, 12년 만에 친정팀 세레소 오사카로 복귀했다.[51]
3. 1. 세레소 오사카 (2006-2010)
2005년, 세레소 오사카와 FC 도쿄 등 여러 클럽으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96][98] 당시 FC 도쿄의 강화부장은 오구마 키요시, 감독은 하라 히로미였기에 매력을 느꼈지만,[100] 중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관심을 보여온 세레소 오사카를 선택했다. 세레소의 연고지(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구)가 고향인 효고현 고베시와 가깝다는 점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100][101] 2005년 12월 18일, 세레소 오사카와 가계약을 체결했고,[102] 2006년 정식 입단했다. 이로써 가가와는 J리그 클럽의 유소년팀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프로 계약을 맺은 최초의 일본 선수가 되었다.[14][98] 입단 동기로는 세레소 오사카 U-18팀에서 승격한 가키타니 요이치로가 있다.[103]프로 첫 해인 2006년 시즌에는 J리그 디비전 1에서 단 한 경기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소속팀 세레소 오사카는 J리그 디비전 2로 강등되었다.
팀이 J리그 디비전 2에서 맞이한 2007년 시즌, 시즌 도중 부임한 레비 쿨피 감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공격형 미드필더로 주전 자리를 꿰찼다.[96] 당시 볼란치 포지션을 선호했던 가가와에게 쿨피 감독은 경험을 쌓은 후 원하는 포지션에서 뛰어도 늦지 않다며 공격적인 역할을 맡겼다.[96] 이 해 리그 35경기에 출전하여 5득점 9어시스트를 기록했다.[104]
2008년 시즌에는 리그 35경기에 출전해 16득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며[104]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또한 U-19 대표팀뿐만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U-23 대표팀에도 발탁되었다.
2009년 시즌에는 J리그 디비전 2 44경기에 출전해 27골 13도움을 기록하며 J리그 디비전 2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 시즌 프로 데뷔 첫 해트트릭과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하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팀이 J리그 디비전 1로 승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J리그 디비전 1로 복귀한 2010년 시즌을 앞두고 다른 J리그 클럽이나 해외 클럽으로의 이적설이 있었지만,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3. 2.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10-2012)
2010년 7월 1일, 가가와는 세레소 오사카에서 독일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35만유로(한화 약 5억원)였다.[307] 이 금액이 비교적 저렴했던 이유는 가가와가 세레소 오사카와 맺은 계약에 유럽 진출 시 낮은 이적료로 이적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15] 과거 독일에서 활동했던 다카하라 나오히로가 당시 가가와의 에이전트였던 토마스 크로트에게 가가와를 추천한 것이 도르트문트 이적의 계기가 되었다. 2009년 12월, 도르트문트의 홈 경기에 초대받은 가가와는 8만 명이 넘는 관중의 열기에 감명받아 도르트문트 입단을 희망하게 되었다.2010-2011 시즌프리 시즌 첫 경기인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홈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UEFA 유로파 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FK 카라바흐와의 경기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공식 경기 첫 득점을 올렸다.[16] 리그 3라운드 VfL 볼프스부르크전에서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기록했고,[16] 이어진 라이벌 샬케 04와의 레비어 더비에서는 경기 전 예고한 대로 2골을 넣어 3-1 승리를 이끌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게 되었다.[17] 유로파 리그에서는 팀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지만, 가가와는 8경기에 출전해 4골을 넣었다. 리그 전반기에는 17경기에 출전하여 8골 1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2011년 1월, FIFA는 가가와를 "2011년 주목해야 할 13명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308] 하지만 같은 달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한국과의 경기에서 오른발 중족골 골절 부상을 당해 호주와의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309] 이 부상으로 소속팀의 후반기 일정을 대부분 소화하지 못했고, 팀이 9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에도 함께하지 못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5월 14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에 교체 출전하며 약 4개월 만에 복귀했다. 비록 후반기에는 단 1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시즌 종료 후 독일 축구 전문지 '키커'가 선정한 분데스리가 연간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18]
2011-2012 시즌

부상에서 회복한 가가와는 샬케와의 DFL-슈퍼컵 경기에 출전하며 새 시즌을 시작했지만, 팀은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리그 6라운드 하노버 96과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1-2로 패했다.[19] 10월에는 잠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2경기 연속 벤치에 머물기도 했지만, 점차 경기력을 회복했다. 11월 5일 리그 12라운드 VfL 볼프스부르크전에서는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5-1 대승을 이끌었고,[20] 다음 13라운드 바이에른 뮌헨과의 중요한 경기에서는 마리오 괴체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처음으로 출전한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1월 23일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 챔피언스리그 데뷔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조별 리그 최하위로 탈락했다.
2012년 들어서도 활약은 이어졌다. 1월 28일 리그 19라운드 호펜하임전에서 2골을 기록했고,[21] 3월 17일 베르더 브레멘전에서는 일카이 귄도안의 크로스를 헤딩 결승골로 연결했다.[21] 3월 25일 쾰른과의 경기에서도 2골을 넣으며 팀의 6-1 대승에 기여했다.[22]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가가와는 키커지가 선정한 유럽 월간 베스트 일레븐에 뽑혔고, 유럽 스포츠 미디어(ESM)가 선정한 2월, 3월, 4월 유럽 월간 베스트 일레븐에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310]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32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경기에서는 선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도르트문트는 이 시즌 승점 81점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역대 한 시즌 최다 승점 기록을 세웠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5월 12일 DFB-포칼 결승전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5-2 대승과 클럽 역사상 첫 '더블'(리그, 포칼 동시 우승) 달성을 이끌었다. 가가와는 2011-12 시즌 총 13골 8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독일 유력지 '빌트'가 선정한 분데스리가 베스트 일레븐에 포함되었고,[311] 유럽 주요 언론사들의 연합체인 유럽 스포츠 미디어(ESM)가 선정한 2011-12 시즌 유럽 베스트 일레븐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는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의 영예였다.[312]
3. 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2-2014)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여러 유럽 명문 클럽의 관심을 받았다.[313] 2012년 6월 5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이적에 합의했다.[23] 이 계약으로 가가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24] 이적료는 1400만파운드(약 2500억원)[314] 또는 1200만파운드[25]로 알려졌으며, 추가로 500만파운드가 지급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25] 4년 계약을 맺고 등번호 26번을 받았다.[314][315][316][27] 가가와는 6월 22일 메디컬 테스트 통과와 영국 취업 비자 발급으로 이적을 완료했다.[26] 그는 전 소속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며 "이 클럽, 훌륭한 팬들, 그리고 도시 전체를 영원히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며 그들의 결과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28]
2012년 7월 18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아마줄루 FC와의 친선 경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데뷔전을 치렀다.[29] 8월 20일, 에버턴 FC와의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공식 데뷔하여 풀타임을 소화했다.[32][317] 비록 팀은 0-1로 패배했지만, 스카이스포츠는 "인상적인 데뷔전이었다. 공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녔다"고 평가하며 평점 7점을 부여했다.[317][318] 8월 25일,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풀럼 FC와의 홈 데뷔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기록했다. 톰 클레버리의 슛이 골키퍼에게 막히자 리바운드를 성공시켰다.[33][319][320] 9월 19일, 갈라타사라이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처음 선발 출전하여 마이클 캐릭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1-0 승리에 기여했다.[34]
10월 23일, SC 브라가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선제골을 도왔으나, 경기 중 왼쪽 무릎 부상을 당해 2개월간 결장하게 되었다.[35][321] 2013년 1월 부상에서 복귀하여[35] 웨스트 브로미치 알비온 FC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다. 2013년 3월 2일, 노리치 시티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4-0 승리를 이끌었다.[37][322] 이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최초의 아시아 선수라는 기록을 세웠다.[36] 4월 22일, 애스턴 빌라 FC와의 경기에서 팀의 3-0 승리에 기여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시즌 만에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가가와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으며, 개인적으로는 유럽 이적 후 3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5월 12일,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이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홈 경기에 출전하여 팀의 2-1 승리에 기여했고,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일부 언론에서는 가가와를 이적 첫해 선수 중 워스트 5위, 2012-13 시즌 활약하지 못한 선수 워스트 10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2013-14 시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후임으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부임했다. 시즌 전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로 인해 팀 합류가 늦어져 개막 후 4경기 연속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리그, 컵 대회, 챔피언스리그 등에서 선발 출전 기회를 잡기도 했으나,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12월 4일에는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세로 구급차를 불러 위세척을 받는 일도 있었다.[323] 전반기 부진으로 영국 기자들이 선정한 '상반기 워스트 멤버' 8위에 오르기도 했다.[324] 후반기에는 선발 출전 기회가 다소 늘어났지만, 결국 시즌 내내 공식 경기에서 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는 프로 데뷔 시즌인 200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팀 역시 부진에 빠져 리그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고,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마저 놓치게 되었다.
3. 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복귀 (2014-201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2014-15 시즌 프리 시즌 동안 1도움에 그친 가가와는 당시 감독 루이 판 할로부터 "미국 원정에서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해봤지만, 나의 바람과 철학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325] 정규 시즌에 들어서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자 이적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적 시장 마감일인 2014년 8월 31일 친정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의 복귀가 공식 발표되었다.[326][327] 이적료는 비공개였으나 약 650만 파운드로 추정되며, 계약 기간은 2018년 6월 30일까지였다.[38][39] 가가와는 마인츠 05로 임대 이적한 요나스 호프만이 사용하던 등번호 7번을 받았다.[40]복귀 후 첫 경기인 분데스리가 3라운드 SC 프라이부르크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여 복귀 골을 기록했고,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다.[41]
2017년 7월 14일, 가가와는 도르트문트와의 계약을 2020년까지 연장했다.[42]
하지만 2018-19 시즌 전반기에는 부상과 루시앵 파브르 감독이 마르코 로이스를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호하면서 출전 기회가 크게 줄어, 리그와 컵대회를 포함해 단 4경기 출전에 그쳤다. 결국 2019년 1월, 출전 기회를 찾아 터키의 베식타시 JK로 임대 이적했다.[43]
3. 4. 1. 베식타시 JK 임대 (2019)
2019년 1월 31일, 베식타시로 임대를 갔다.3. 5. 레알 사라고사 (2019-2020)
2019년 8월 9일, 스페인 세군다 디비시온의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하며 2년 계약을 맺었다.[44] 2019년 8월 17일, 라 로마레다에서 열린 2019-20 세군다 디비시온 개막전에서 테네리페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2-0으로 승리했다.[45] 8일 뒤인 8월 25일, 폰페라디나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기록했으며,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다.[46]2020년 10월 2일, 사라고사는 가가와의 계약을 해지했다.[47]
3. 6. PAOK FC (2021)
2021년 1월 27일, 수페르리가 엘라다의 PAOK와 1년 반 계약을 맺었다.[48] 입단 첫 시즌 PAOK는 그리스 컵에서 우승했으며, 가가와는 컵 대회 3경기에 출전하여 1개의 도움을 기록했다.그러나 2021-22 시즌에는 라즈반 루체스쿠 감독의 구상에서 제외되었다. 시즌 초반 몇 차례 출전 기회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 결국 2021년 12월 18일, 구단과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했으며, 남은 계약 기간 6개월에 대한 보상은 받지 않았다.[49] 가가와는 PAOK 소속으로 총 12번의 공식 경기에 출전했고, 이 중 선발 출전은 3번에 그쳤다.[49]
3. 7. 신트트라위던 VV (2022)
2022년 1월 10일, 벨기에 클럽 신트트라위던 VV와 계약하며 입단했다.[50] 같은 해 8월 27일, 리그 5라운드 KV 메헬렌과의 경기에서 리그 데뷔골을 기록했다.3. 8. 세레소 오사카 복귀 (2023-)
2023년 1월 31일, 가가와는 일본으로 돌아와 유소년 시절부터 몸담았던 친정팀 세레소 오사카에 자유 이적으로 합류했다.[51] 2월 1일 완전 이적이 공식 발표되었다. 3월 12일, 사간 도스와의 경기에서 14년 만에 클럽 소속으로 선발 출전하여 복귀 후 첫 골을 기록했고, 팀의 2-1 승리와 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52]4. 국가대표팀 경력
일본 청소년 대표팀을 거쳐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 U-20 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으며,[53] 2008년 하계 올림픽에는 U-23 대표팀 멤버로 참가했다.[54]
2008년 4월, 헤이세이 시대에 태어난 선수로는 처음으로 A대표팀에 소집되었다.[210] 당시 J2리그 소속팀에서 유일하게 선출되어 전국적인 인지도가 거의 없었기에 예상 밖의 발탁으로 여겨졌다.[211] 같은 해 5월 24일 기린컵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328][84] 2008년 10월 9일 아랍에미리트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사상 3번째 최연소 A매치 첫 득점을 기록했다.
꾸준히 대표팀에서 활약했지만 2010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포함되지 못하고, 연습 상대를 위한 서포트 멤버로 남아공 월드컵에 동행했다. 월드컵 이후 2010년 9월 4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파라과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55]
2011년, 대표팀에서 은퇴한 나카무라 슌스케의 등번호 10번을 이어받았다.[329] 같은 해 2011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하여 카타르와의 8강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으나, 대한민국과의 준결승전에서 발가락 골절 부상을 당해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하고 조기 귀국했다.[330][58] 8월 10일 삿포로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는 2골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기여했다.
2012년 6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이적이 확정된 후, 소속팀 프리시즌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배려로 런던 올림픽 대표팀 예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331]
이후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참가하여 이탈리아를 상대로 득점하는 등 주축 선수로 활약했지만, 2014년 FIFA 월드컵에서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팀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했다.[59]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는 요르단과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 득점했지만,[60] UAE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하여 팀 탈락에 영향을 주었다.
2018년 6월, 2018년 FIFA 월드컵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었다. 대회 직전 부상 여파로 소속팀에서 출전 시간이 적어 경기 감각 저하가 우려되었으나,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며 주전 자리를 확보했다. 월드컵 본선에서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일본의 16강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연령별 대표팀 경력'''
- U-19 일본 대표팀
- * 2006년: 2006년 AFC U-19 선수권 대회
- U-20 일본 대표팀
- * 2007년: 2007 FIFA U-20 월드컵
- U-23 일본 대표팀
- * 2008년: 2008년 하계 올림픽 축구
'''주요 국가대표팀 경력'''
- 일본 대표팀
- * 2011년 AFC 아시안컵: 5경기 2득점 (우승)
- *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3경기 1득점 (조별 리그 탈락)
- * 2014년 FIFA 월드컵: 3경기 0득점 (조별 리그 탈락)
- * 2015년 AFC 아시안컵: 4경기 1득점 (8강)
- * 2016년 기린컵: (우승)
- * 2018년 FIFA 월드컵: 3경기 1득점 (16강)
'''A매치 출장 및 득점 기록'''
년도 | 출장 | 득점 |
---|---|---|
2008 | 6 | 1 |
2009 | 4 | 1 |
2010 | 7 | 1 |
2011 | 11 | 6 |
2012 | 9 | 3 |
2013 | 16 | 4 |
2014 | 9 | 3 |
2015 | 13 | 4 |
2016 | 8 | 4 |
2017 | 6 | 2 |
2018 | 6 | 1 |
2019 | 2 | 1 |
합계 | 97 | 31 |
''2019년 3월 26일 경기 기준 통계''
'''A매치 득점 기록'''
순서 | 날짜 | 경기 장소 | 상대 국가 | 득점 당시 결과 | 최종 결과 | 경기 형식 |
---|---|---|---|---|---|---|
1. | 2008년 10월 9일 | 일본, 니가타 | 아랍에미리트 | 1-1 | 1–1 | 친선경기 |
2. | 2009년 2월 4일 | 일본, 도쿄 | 핀란드 | 3-0 | 5–1 | 친선경기 |
3. | 2010년 9월 4일 | 일본, 요코하마 | 파라과이 | 1-0 | 1–0 | 친선경기 |
4. | 2011년 1월 21일 | 카타르, 도하 | 카타르 | 1-1 | 3–2 | 2011년 AFC 아시안컵 |
5. | 2-2 | |||||
6. | 2011년 8월 10일 | 일본, 삿포로 | 대한민국 | 1-0 | 3–0 | 친선경기 |
7. | 3-0 | |||||
8. | 2011년 10월 11일 | 일본, 오사카 | 타지키스탄 | 4-0 | 8–0 |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9. | 7-0 | |||||
10. | 2012년 5월 23일 | 일본, 시즈오카 | 아제르바이잔 | 1-0 | 2–0 | 친선경기 |
11. | 2012년 6월 8일 | 일본, 사이타마 | 요르단 | 4-0 | 6–0 |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
12. | 2012년 10월 12일 | 프랑스, 생드니 | 프랑스 | 1-0 | 1–0 | 친선경기 |
13. | 2013년 3월 26일 | 요르단, 암만 | 요르단 | 1-1 | 1–2 |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
14. | 2013년 6월 19일 | 브라질, 헤시피 | 이탈리아 | 2-0 | 3–4 |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15. | 2013년 8월 14일 | 일본, 미야기 | 우루과이 | 1-3 | 2–4 | 친선경기 |
16. | 2013년 9월 10일 | 일본, 요코하마 | 가나 | 1-1 | 3–1 | 친선경기 |
17. | 2014년 3월 5일 | 일본, 도쿄 | 뉴질랜드 | 2-0 | 4–2 | 친선경기 |
18. | 2014년 6월 7일 | 미국, 탬파 | 잠비아 | 2-2 | 4-3 | 친선경기 |
19. | 2014년 9월 9일 | 일본, 요코하마 | 베네수엘라 | 2-2 | 2-2 | 친선경기 |
20. | 2015년 1월 20일 | 호주, 멜버른 | 요르단 | 2-0 | 2-0 | 2015년 AFC 아시안컵 |
21. | 2015년 9월 3일 | 일본, 사이타마 | 캄보디아 | 3-0 | 3-0 | 201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
22. | 2015년 9월 8일 | 이란, 테헤란 | 아프가니스탄 | 1-0 | 6-0 | 201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
23. | 4-0 | |||||
24. | 2016년 3월 29일 | 일본, 사이타마 | 시리아 | 2-0 | 5-0 | 201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
25. | 2016년 6월 3일 | 일본, 아이치 | 불가리아 | 2-0 | 7-2 | 기린컵 2016 |
26. | 3-0 | |||||
27. | 2016년 6월 7일 | 일본, 오사카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1-1 | 1-2 | 기린컵 2016 |
28. | 2017년 3월 23일 | 아랍에미리트, 알아인 | 아랍에미리트 | 2-0 | 2-0 | 201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29. | 2017년 3월 28일 | 일본, 사이타마 | 태국 | 1-0 | 4-0 | 2018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
30. | 2018년 6월 12일 |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 파라과이 | 3-1 | 4-2 | 친선경기 |
31. | 2018년 6월 19일 | 러시아, 사란스크 | 콜롬비아 | 1-0 (PK) | 2-1 | 2018년 FIFA 월드컵 |
''2019년 3월 26일 경기 기준 통계''
4. 1. 2010 남아공 월드컵
2008년 5월 24일, 친선 경기인 기린 컵 코트디부아르와의 경기에서 일본 대표팀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그를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종 23인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55]4. 2. 2011 AFC 아시안컵
2011년, 대표팀에서 은퇴한 나카무라 슌스케의 등번호 10번을 이어받았다.[329] 알베르토 자케로니 감독에 의해 2011년 AFC 아시안컵에 참가할 일본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다.[56]대회 조별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는 오카자키 신지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며, 1월 21일 카타르와의 준준결승전에서는 2득점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일본의 3-2 승리와 준결승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다.[57] 하지만 1월 25일 대한민국과의 준결승전 경기 도중 중족골 골절 부상을 당해[330][58] 호주와의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조기 귀국하였다.[330] 일본은 연장전 끝에 호주를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4. 3. 2014 브라질 월드컵
가가와는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사무라이 블루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가가와 역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59]4. 4. 2015 AFC 아시안컵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 가가와는 요르단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일본의 두 번째 골을 기록했고, 경기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60]가가와는 아랍에미리트와의 8강전에 출전했다. 연장전까지 1-1로 경기가 끝난 후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일본의 마지막 키커였던 가가와는 슛을 골대에 맞혔고 결국 일본은 승부차기에서 5-4로 패배했다.
4. 5. 2018 러시아 월드컵
wikitext5. 플레이 스타일
기술적으로나 창의적으로 재능 있는 선수로[61], 주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는 다재다능한 공격형 미드필더이다. 좌우 측면에서도 뛸 수 있다.[62]
가가와는 뛰어난 볼 컨트롤 능력과 절제된 판단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패스를 구사하며[63],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 사이를 파고들어 창의적인 패스나 스루 패스를 시도한다.[64] 공을 소유했을 때뿐만 아니라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도 뛰어나며, 탁월한 공격 위치 선정 능력과 골 감각을 갖추고 있다.[65] 그의 주요 장점으로는 민첩성, 패스 선택의 정확성, 창의성, 공격 시 위치 선정 능력, 그리고 결정적인 패스(키 패스)를 성공시키는 능력이 꼽힌다. 빠른 속도를 바탕으로 직접 공격에 가담하여 득점할 수도 있다.[66] 일본 대표팀에서는 주로 왼쪽 미드필더나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66]
가가와는 민첩성(전후 정지 동작, 좌우 체중 이동)과 볼 터치(트래핑 및 턴)가 뛰어나며, 오프 더 볼 움직임과 공간 창출 능력도 능숙하다. 특히 상대 수비 라인과 미드필드 라인 사이의 공간인 바이탈 에어리어에서 이러한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발휘한다. 골문을 등진 상태에서도 피지컬이 강한 수비수와의 직접적인 경합을 피하면서 영리하게 전방으로 돌아설 수 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 때문에[236][243][244], 좁은 공간에서도 여러 수비수를 제치는 기술을 보여준다. 2018년 12월 스페인 신문 '스포르트'는 가가와를 양발잡이 선수로 평가했으며, 당시 도르트문트의 스카우트였던 스벤 미슬린타트는 가가와가 우스만 뎀벨레와 동등한 수준의 양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하며 "뎀벨레는 정말 특별한 선수라고 느꼈는데, 신지 가가와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10번 관찰했지만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고,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경기 전체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245]
도르트문트 시절 위르겐 클롭 감독은 그를 주로 세컨드 톱으로 기용했지만,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알베르토 자케로니는 다른 선수들과의 조합을 고려하여 주로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기용했다. 도르트문트 복귀 후 토마스 투헬 감독 체제에서는 인사이드 하프 역할을 맡기도 했다. 많은 감독들은 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포지션으로 최전방 공격수 바로 아래의 '세컨드 톱(섀도 스트라이커)'을 꼽는다.[246]
2012년, 당시 도르트문트 팀 동료였던 마리오 괴체는 "신지는 세컨드 톱으로서 유럽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한다. 그의 플레이를 보면 몇 번이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고 평가했으며[247], 마츠 후멜스는 "신지는 월드 클래스 선수다. 볼을 지킬 때의 스피드와 기술은 악마적일 정도로 무섭다. 우리 팀이라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248][249]
풍부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전방 압박을 이끌기도 한다.[239] 2023년 세레소 오사카 복귀 후에는 유소년 시절 이후 처음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나 앵커 역할까지 소화하며[202], 중앙의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패스 성공과 루즈볼 획득을 기록하며[204] 공수 양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고, 뛰어난 전술 이해도와 경기 운영 능력, 동료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수비적인 기여도 역시 팀에 큰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202]
반면, 골격이나 근력을 활용한 파워 플레이는 그의 주된 장점이 아니며[236][250], 중거리 슛의 위력이나 태클을 동반하는 대인 수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253][251][252]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와 비교했을 때 슛의 위력 차이가 크다는 지적도 있다.[253] 가가와 본인도 이러한 점을 인지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피지컬 트레이닝에 힘쓰기도 했다.[254][255] 헤딩 능력 또한 부족한 편이다.[256]
6. 개인사
존경하는 선수는 "킹 카즈" 미우라 가즈요시이다. 1995년 고베시 타루미구 자택에서 한신·아와지 대지진을 겪었으며, 같은 해 7월 고베 시립 오토기 초등학교를 방문한 미우라와 처음 만났다.[81] 미우라의 사인 백을 추첨으로 얻기도 했으며,[81] 세레소 오사카 시절인 2008년에는 요코하마 FC와의 경기 하프타임에 미우라로부터 유니폼을 선물받았다.[268] 2012년 9월, 2014 FIFA 월드컵 아시아 4차 예선 이라크전 직전에는 미우라의 이메일 격려로 힘을 얻었다고 한다.[269] 해외 선수 중에서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존경하며, FC 바르셀로나 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경기에서 유니폼을 교환했다.
세레소 오사카 시절에는 식사량이 많아 밥을 항상 사발로 먹었다고 한다. 프로 야구 난카이 호크스의 카가와 노부유키(애칭 도카벤)와 성이 같아, 홈 경기 때 "도카벤 카가와"라는 현수막이 걸리고 "도카벤!"이라는 응원을 받기도 했다.
독일 4인조 밴드 Tokio Hotel의 보컬 빌 카울리츠는 가가와의 팬임을 밝혔고, 2011년 2월 10일 도쿄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대담을 가졌다.[332][272] 배우 나가사와 마사미의 팬으로, 여러 방송에서 이상형으로 언급했으며, 2012년 6월 후지 TV 《톤네루즈의 덕분입니다》에 출연해 공개적으로 고백하여 화제가 되었다.[335][336][270]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기도 하다.[271] 만화 《ONE PIECE》의 팬으로 원작 코믹스를 모두 소장하고 있으며, 2016년 7월에는 작가 오다 에이치로와 선물을 교환했다.[274]
2010년 11월 18일, 독일의 권위 있는 축구 전문지 키커의 표지를 장식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표지에 등장했다.[333][257][258] 2011년에는 얀마의 CM에 출연했는데, 부상 중이어서 일부 애니메이션 영상을 활용했다. 이를 계기로 세레소 오사카는 나가이 육상 경기장에 'SHINJI 시트' 100석을 10경기 동안 운영했다.[263]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에는 팀 버스를 제공하는 MAN 그룹의 광고에 동료 선수들과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올리버 칸과 함께 출연했다.[260] 2011년 가을에는 코나미의 〈월드 사커 위닝 일레븐 2012〉 이미지 캐릭터를 맡았다.
2011년 1월 AFC 아시안컵 2011에서 부상을 당한 후, 3월 11일 치료차 머물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서 택시 탑승 중 동일본 대지진을 겪었다.[81] 같은 해 5월 17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주최한 동일본 대지진 부흥 지원 자선 경기(도르트문트 vs 팀 재팬)에서 팀 재팬의 주장을 맡아 페널티킥 골을 넣었다. 이 경기를 통해 모금된 약 120만유로는 의연금으로 기부되었다.[334][259] 2017년 10월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 동료 후안 마타가 설립한 자선 단체 "코먼 골"(:en:Common Goal (charity))에 참여하여 수익의 1%를 기부하기로 했다.[275] 2018년 10월에는 '미야기 키즈나 대사'로 위촉되었다.[264]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팀 동료였던 일카이 귄도안과는 가까운 사이로, 가가와가 운전면허 정지 처분을 받았을 때는 귄도안의 차를 함께 이용하기도 했다.[261][26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시절에는 웨인 루니, 하비에르 에르난데스, 다비드 데 헤아, 후안 마타, 알렉산데르 뷔트너 등과 친하게 지냈으며,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다.[267] 루니는 "6명이서 축구를 한다면 누구를 고를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가와를 포함시키기도 했다.[266] 이누이 타카시와는 특별한 대화 없이도 플레이 이미지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했다.[276] 세레소 오사카 동기인 가키타니 요이치로는 가가와를 "세계의 가가와"라 칭하며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레벨이라고 평가했다.[278] 도르트문트 시절 동료였던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분데스리가 초창기 가가와의 기량을 극찬하며 "모든 것을 갖춘 선수"라고 말했다.[280] 케빈 그로스크로이츠는 가가와를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꼽으며 깊은 우정을 표현했고, 가가와의 퇴단 시 아쉬움을 전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290][291]
2012년 당시 레알 마드리드 CF를 이끌던 조제 모리뉴 감독이 직접 영입을 시도했으나, 메수트 외질의 존재로 인해 무산되었다고 2013년 인터뷰에서 밝혔다. 모리뉴 감독 역시 외질이 우선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가가와에게 전했다고 한다.
2013년 2월 트위터를 시작하여 한 달 만에 팔로워 20만 명을 돌파, 당시 일본인 축구 선수 중 최다 기록을 세웠다.[273]
2019년 레알 사라고사 입단 당시, 스페인 유력지 문도 데포르티보는 가가와를 오카자키 신지, 시바사키 가쿠 등과 함께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주목해야 할 11명의 선수'로 선정했다.[279] 2020년 1월, 사라고사 소속으로 레알 마드리드와 대결했을 때, 팀은 0-4로 패배했지만 가가와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상대 팀 감독 지네딘 지단으로부터 "사라고사의 핵심 선수임을 증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281]
2020년 4월, 영국 미디어는 가가와를 "일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며 21세기 일본 대표 베스트 11에 선정했다.[282] 독일 『Sport Bild』는 2021년 12월, "가가와는 틀림없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도르트문트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위상을 확인시켜 주었다.[283] 유수파 무코코 역시 2023년 11월, 도르트문트 역대 베스트 11에 가가와를 포함시켰다.[287]
가가와의 활약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도르트문트 관계자는 2024년 인터뷰에서 "가장 첫 번째 계기는 신지"라며, 그의 활약 덕분에 아시아 팬들의 존재를 깨닫고 시장 개척에 나섰다고 밝혔다.[289] 또한 가가와의 성공은 유럽 축구계에서 일본 및 아시아 선수들의 평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 일본 대표 오쓰 유키는 자신이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할 수 있었던 이유로 가가와의 활약을 꼽으며 그를 "슈퍼스타"라고 칭했다.[292] 미토마 카오루 역시 역대 최고의 일본 선수 중 한 명으로 가가와를 선정하며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293]
2023년 7월 파리 생제르맹 FC과의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결승골을 넣자, 상대 선수 워렌 자이르-에메리는 "역시 정말 좋은 선수였다"고 말했고,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클래스"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284] 같은 해 일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마이쿠마 세이야는 "신지 씨가 올해 입단하지 않았다면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며 가가와의 영향력을 언급했다.[285] 2023년 세레소 오사카의 홈 최종전 패배 후 인터뷰에서는 팀의 경기력에 대해 솔직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286]
2024년 1월에는 일본 TV 《월요일부터 밤놀이》에 우연히 출연하여 마츠코 디럭스로부터 호감을 표현받기도 했다.[288]
7. 수상 내역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프리미어리그: 2012-13[71]
- FA 커뮤니티 실드: 2013[70]
'''PAOK 테살로니키'''
- 그리스 컵: 2021
'''일본'''
- AFC 아시안컵: 2011[70]
'''개인'''
- J2리그 득점왕: 2009
- J2리그 어시스트왕: 2009
- 분데스리가 전반기 최우수 선수: 2010[72]
-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2010-11, 2011-12[73][74]
- ''키커'' 분데스리가 2012 시즌 전반기, 세계적 수준으로 유일하게 선정[75]
- VDV 시즌의 팀: 2011-12[76]
- ESM 시즌의 팀: 2011-12[77]
- 분데스리가 연간 베스트 11 (빌트지 선정): 2011-12, 2015-16
- AFC 올해의 아시아 국제 선수상: 2012[78]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달의 MVP: 2012년 8월, 2013년 5월
- 분데스리가 시즌의 팀: 2015-16[79]
- 분데스리가 연간 베스트 11 (분데스리가 공식 Twitter 팔로워 투표): 2015-16
- "2010년대 도르트문트 TOP10 골" 1위 (분데스리가 공식 선정, 2015-16 시즌 샬케전 칩슛): 2020년
- IFFHS 역대 아시아 남자 팀: 2021[80]
- J1리그 우수 선수상: 2023
7. 1. 클럽
(천황배, DFB-포칼, FA컵, 코파 델 레이, 그리스 컵 포함)(J리그 컵, 풋볼 리그 컵 포함)
(UEFA 챔피언스 리그, UEFA 유로파 리그, UEFA 유로파 컨퍼런스 리그 포함)
(DFL-슈퍼컵, FA 커뮤니티 실드, 라 리가 승격 플레이오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