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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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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심소는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에서 마음의 작용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 등을 중심으로 11가지 마음작용을 포함한다. 주요 선심소로는 믿음, 정진, 참, 괴, 무탐, 무진, 무치, 경안, 불방일, 행사, 불해가 있으며, 각 심소는 불선한 마음을 다스리고 선을 행하는 데 기여한다. 《성유식론》에서는 이 외에도 흔, 염, 불간 등 다양한 기타 선심소의 존재를 언급하며, 현대에도 감정 조절, 사회적 갈등 해결 등 긍정적인 측면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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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심소
선심소 (善心所)
한자善心所
영어Wholesome mental factors
개요
구분심소법
총 개수19가지
설명모든 한 마음과 '반드시 함께' 일어나는 마음작용 (심소, 心所, cetasika).
모든 '선한 마음'은 이 19가지 마음작용을 '반드시' 동반한다.
19가지 선심소
목록믿음(信)
정념(正念)
정진(精進)
기(慙)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평정(平靜)
신해(身輕安)
심해(心輕安)
신유연성(身柔軟性)
심유연성(心柔軟性)
신적응성(身適應性)
심적응성(心適應性)
신능숙성(身能熟性)
심능숙성(心能熟性)
신의직성(身正直性)
심의직성(心正直性)
방일하지 않음(不放逸)
참고 문헌
주요 출처권오민. 《아비달마불교의 철학적 연구》. 제6장 「심소론」.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운허. 《불교사전》. 동국역경원. 2016년 3월 6일에 확인.
"善心所". 《증휘해동사전》. 2016년 3월 6일에 확인.
웹 출처"善心所". 《Digital Dictionary of Buddhism (電子佛教辭典)》. 2016년 3월 6일에 확인.

2. 11가지 선심소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와 법상종의 주요 논서들, 예를 들어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과 《대승오온론》,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안혜의 《대승아비달마잡집론》, 호법 등의 《성유식론》에서는 모두 선한 마음작용인 선심소(善心所)를 11가지로 제시한다. 다만, 논서에 따라 그 순서나 명칭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문서에서는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선심소는 다음의 11가지 마음작용(심소법)을 말한다.


  •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
  • (信)
  • 정진(精進)
  • 경안(輕安)
  •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불해(不害)


이 11가지 선심소는 그 성격에 따라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다섯 가지는 그 자체로 선(善)한 성질을 지닌 자성선(自性善)에 해당한다. 나머지 여섯 가지, 즉 (信) · 정진(精進) · 경안(輕安) · 불방일(不放逸) · 행사(行捨) · 불해(不害)는 본질적으로는 선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이지만, 앞서 언급한 다섯 가지 자성선과 함께 일어날 때[相應] 비로소 선(善)한 성질을 띠게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5][6]

한편, 변행심소(遍行心所: 작의 · · · 상 · 사)나 별경심소(別境心所: 욕 · 승해 · 염 · 삼마지 · ), 부정심소(不定心所: 수면 · 악작 · · 사) 등 다른 마음작용 그룹들은 선(善) · 악(惡) · 무기(無記)의 3성(三性) 모두에 통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무기(無記)의 성질을 가진다. 이들도 선심소와 함께하면 상응선이 될 수 있지만, 선심소 그룹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4일체(四一切)라는 분류 기준에서 선심소 그룹의 마음작용들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12][13]

2. 1. 신 (믿음)

(信, śraddhā|스랏다san, saddhā|삿다pli, faith|페이스eng)은 선심소(善心所)의 하나로, 믿음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실재하는 것(實), 덕(德), 능력(能)이라는 세 가지 대상을 깊이 인정하고[深忍], 좋아하며[深樂], 원하는[深欲] 마음 상태를 말하며, 이를 통해 마음(心)을 맑고 깨끗하게[心淨] 하는 것을 본질[性]로 삼는다.[1][2][3][4]

신(信)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1][2]

  • 실유(實有)에 대한 믿음: 인과(因果)의 법칙이나 4성제와 같은 일체의 법의 참다운 현상[事]과 본질[理]이 실제로 존재하며 진리임을 깊이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유덕(有德)에 대한 믿음: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법), 그리고 승가를 아우르는 삼보(三寶)가 참되고 청정한 덕(德)을 지니고 있음을 깊이 믿고 좋아하는 것이다.
  • 유능(有能)에 대한 믿음: 모든 세간과 출세간의 선(善)을 행함으로써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힘과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그러한 선(善)을 능히 성취할 수 있는 능력(能)이 있다고 깊이 믿고 희망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불신(不信)하는 마음, 즉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을 다스리는[對治]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믿음은 번뇌로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키고, 선(善)을 즐겨 행하며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작용[業]을 한다.[1][2][3] 마치 탁한 물을 정화하는 정수기처럼, 믿음은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2]

11가지 선심소 중에서 (信)은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와 함께 상응선(相應善)에 속한다. 이는 본질적으로는 선(善)도 악(惡)도 아닌 무기(無記)이지만, 참(慚), (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와 같은 자성선(自性善)과 함께할 때 비로소 선(善)의 성질을 띠게 됨을 의미한다.[5][6]

2. 2. 정진 (수행에 용감하고 굳셈)

정진(精進)은 (勤)이라고도 하며,[1][2][3] vīryasa, viriyapi, diligence영어, energy영어, perseverance영어, enthusiasm영어, sustained effort영어을 의미한다. 이는 선법(善法)을 닦고 악법(惡法)을 끊는 일에 대해 용맹스럽고 굳세게 함을 그 본질[體性]로 삼는다.[1][2][3][4][5]

정진은 해태(懈怠), 즉 게으름을 다스려서[對治] 선법을 원만하게 이루는 것[滿善]을 그 작용[業]으로 한다.[1][2][3][5] 여기서 '용맹함[勇]'은 뛰어난 노력을 나타내어 모든 잡염법(雜染法)을 가려내는 것을 의미하고, '굳셈[悍]'은 지극히 순수함을 나타내어 청정 무기성(清淨無記性)을 가려내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정진은 오직 선한 성품[善性]에만 속하는 마음작용임을 분명히 한다.[1][2]

정진의 구체적인 양상에는 다섯 가지 단계적 차별이 있으며,[1][2][3][4] 이는 경전에서 언급되는 유세(有勢), 유근(有勤), 유용(有勇), 견맹(堅猛), 불사선액(不捨善軛)과 각각 대응된다.[1][2][4]

# 피갑(被甲): 첫 단계는 맹렬하고 날카롭게 즐거운 욕구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경전에서 유세(有勢), 즉 '세력이 있음'이라고 표현된다. 마치 갑옷[甲]을 입고[被] 적진에 들어갈 때 두려움 없이 큰 위세를 보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단계는 수행을 처음 시작하는 발심(發心)에 해당한다.[1][2][4]

# 가행(加行): 두 번째 단계는 견고하고 용감한 방편(方便)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경전에서 유근(有勤), 즉 '정진함'이라고 표현된다. 마음을 굳건히 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격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계는 수행 과정 중 자분행(自分行)의 초기 단계(하품, 下品)에 해당한다.[1][2][4]

# 무하(無下): 세 번째 단계는 '낮추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증득해야 할 선법에 대해 스스로를 낮추어 보거나[輕蔑] 그 선법을 성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상태이다. 이는 경전에서 유용(有勇), 즉 '용감함'이라고 표현된다. 이 단계는 수행 과정 중 자분행(自分行)의 중간 단계(중품, 中品)에 해당한다.[1][2][4]

# 무퇴(無退): 네 번째 단계는 '물러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추위나 배고픔과 같은 외부적인 고통을 인내하고, 낮은 수준의 선법에 만족하거나 혐오감을 느끼지 않으며, 더 높은 단계의 공덕을 기쁘게 추구하는 마음 상태이다. 이는 경전에서 견용(堅猛), 즉 '견고하고 용맹함'이라고 표현된다. 이 단계는 수행 과정 중 자분행(自分行)의 높은 단계(상품, 上品)에 해당한다.[1][2][4]

# 무족(無足): 다섯 번째 단계는 '만족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전 단계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4성제를 관찰하는 수행[諦觀]과 같이 더욱 뛰어난 (道)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마음 상태이다. 이는 경전에서 불사선액(不捨善軛), 즉 '선의 멍에를 버리지 않음'이라고 표현된다. 이는 마치 소에게 멍에를 씌워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처럼, 수행자가 선법의 멍에를 지고 열반을 향해 꾸준히 나아가게 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이 단계는 수행의 승진(勝進), 즉 뛰어난 진전 단계에 해당한다.[1][2][4]

2. 3. 참 (자신에 대한 반성)

참(慚)은 자신의 언행, 즉 말(구업), 행동(신업), 뜻(의업)에 대해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반성(反省)의 마음작용이다.[6] 구체적으로는 자신과 법의 힘에 의지하여 현인(賢人)과 선법(善法)을 받들고 존중하는 것을 본질[體性]로 삼으며, 무참(無慚)을 다스려 악행을 멈추게 하는 작용[業]을 한다.[6] 이는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모든 허물과 악행을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고 악행을 멈추는 데 의지가 되는 작용과도 통한다.[6][6]

참(慚)은 다음의 두 가지 증상력(增上力)을 바탕으로 한다.[6]

  • 자증상(自增上): 자신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향상력.
  • 법증상(法增上): 자신이 배우고 따르는 선법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향상력.


이러한 자증상과 법증상에 의지하여 현인과 선법을 존중하고, 자신의 잘못(허물[過失][7]악행)을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 즉,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자신과 선법을 무가치하거나 존엄성이 없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부끄러움이 없는 무참(無慚)은 자신과 선법을 가치 없게 여기는 마음 상태이다.[6][6] 결국 참(慚)은 자증상과 법증상을 통해 허물과 악행에 대해 스스로 수치심을 느껴 무참을 다스리고 악행을 멈추게 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

참(慚)은 산스크리트어 hrīsa, 팔리어 hiripi에 해당하며, 영어로는 self-respect|자기 존중영어, conscientiousness(양심), sense of shame(수치심), dignity(존엄)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11가지 선심소 중 참(慚)은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와 더불어 그 자체로 선한 성질을 지닌 자성선(自性善)에 속한다.[6][6]

2. 4. 괴 (타인에 대한 반성)

괴(愧)는 자신의 (구업), 행동(신업), 뜻(의업)에 대해 잘못이나 부족함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반성(反省)을 의미한다. apatrāpyasan, ottappapli, decorumeng, shame, consideration, propriety 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괴(愧)는 구체적으로 세증상(世增上)에 의지하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작용이다. 여기서 세증상이란 세간도덕이나 다른 사람들(스승, 부모, 친구 등)의 평가, 즉 꾸짖음[訶]과 싫어함[厭]을 존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힘이다. 이 세증상에 기대어, 자신의 포악함이나 악한 행동[暴惡]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거부하며, 지은 죄나 허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괴(愧)의 본질적인 성질(체성, 體性)은 이처럼 세간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며, 그 작용(업용, 業用)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마음인 무괴(無愧)를 다스리고 여러 악행(惡行)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즉, 타인의 비난이나 사회적 제재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에 악행을 저지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개인이 사회적 책임감과 윤리 의식을 갖추는 데 기여하는 마음 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2. 5. 무탐 (무집착)

탐욕이 없는 것, 즉 무집착(無執着) 또는 비집착(非執着)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다음을 뜻한다.[1][2][3][4][5]

  • alobhasa, alobhapi, purity영어, non-attachment영어, without attachment영어, detachment영어
  • 선근(善根) 중의 하나이다.[6][7]
  • 근(根)은 (善)을 일으킴에 있어 뛰어나고 불선근을 가까이 다스린다[近對治]는 것을 말한다.
  • 유(有)와 유구(有具)에 집착하지 않는다.
  • 유(有)는 삼유(三有)에 속박된 삶, 즉 삼계(三界) 또는 삼계구지(三界九地)에 속박된 삶을 말하며, 어쩔 수 없이 생사윤회를 반복해야만 하는 상태, 즉 '윤회의 삶'을 의미한다.
  • 유구(有具)는 유(有)를 생기게 하는 원인[因]을 말한다.
  • 《구사론》에 따르면, 윤회의 근본원인은 무명(無明)이지만, 무명을 일으켜 생사를 윤회하게 하는 실제적인 가장 큰 원인은 전도(顚倒)된 (受)와 상(想)의 마음작용, 즉 수취온과 상취온이다.[8][9]
  • 유(有)와 유구(有具)에 집착하지 않음을 통해 을 다스려[對治] (善)을 행하게 한다.
  • 같이 보기: 사무량심 중 사무량심(捨無量心)[10][11]


11가지 선심소의 마음작용(慚) '''·''' (愧) '''·''' 무탐 '''·''' 무진 '''·''' 무치는 본질적으로 (善)인 자성선(自性善)에 해당한다.[12][13]

2. 6. 무진 (자비의 자)

무진(無瞋)은 성내지 않는 것, 즉 (慈: 사랑, 자애)를 핵심 성질로 하는 마음작용이다. 구체적으로는 고통(苦)과 그 원인인 고구(苦具)에 대하여 성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고(苦)는 고고(苦苦)·괴고(壞苦)·행고(行苦)의 세 가지 괴로움을 말하며, 고구(苦具)는 이러한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을 뜻한다. 열반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성내는 마음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열반 또한 성냄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고구에 포함된다.

무진은 (瞋, 瞋恚, 恚), 즉 성냄과 분노를 직접적으로 다스려[對治] (善)을 행하도록 이끄는 작용을 한다. 또한 악행(惡行)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의지처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무진은 선근(善根, 三善根)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선근(根)은 선한 마음과 행동을 일으키는 데 있어 뛰어난 능력을 가지며, 불선근(不善根)을 가까이에서 다스리는[近對治] 역할을 한다.

또한 무진은 자비(慈悲)에서 (慈)의 성질을 이룬다.

  • (慈)는 여락(與樂)이라 하여, 중생을 사랑하고[慈愛] 그들에게 즐거움(樂)을 주려는 마음이다.
  • (悲)는 발고(拔苦)라 하여, 중생의 괴로움(苦)에 동감(同感)하고 연민(憐憫)하여 그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마음이다. 이는 불해(不害)라는 마음작용의 성질이다.
  • (悲)는 (慈)를 바탕으로 생겨나며, 특히 괴로움에 처한 중생을 향한 자(慈)의 특별한 발현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慈)가 비(悲)보다 더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다.


무진은 다른 언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산스크리트어: adveṣa|sa, apratigha|sa
  • 팔리어: adosa|pi
  • 영어: good will|영어, non-aggression|영어, equanimity|영어, lack of hatred|영어, non-hatred|영어, imperturbability|영어, non-anger|영어


무진은 4무량심(四無量心) 중 자무량심(慈無量心)과 비무량심(悲無量心)과 깊은 관련이 있다.

2. 7. 무치 (지혜)

무치(無癡)는 어리석지 않은 것, 즉 지혜로운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모든 본체()와 현상()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마음의 작용을 가리킨다. 이는 어리석음(, 愚癡)을 다스리고 선(善)을 행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 amoha|아모하san, amoha|아모하pli, wisdom|위즈덤eng, non-delusion|논-딜루전eng, non-bewilderment|논-비윌더먼트eng, lack of naivety|랙 오브 나이베티eng, lack of stupidity|랙 오브 스투피디티eng
  • 선근(善根) 중 하나이다. 무탐(無貪), 무진(無瞋)과 함께 삼선근(三善根)이라 불리는데, 이는 선(善)을 일으키는 힘이 뛰어나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불선근(不善根)을 직접적으로 다스리기 때문이다.
  • 모든 이사(理事)에 미혹되지 않고 명료하게 아는 것(明解)을 본질로 한다. 여기서 이사(理事)는 사물의 본질적인 측면(理)과 현상적인 측면(事) 모두를 포함한다.
  • 대승아비달마집론》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서는 무치를 보교증지(報教證智)로써 결택(決擇)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 보교증지(報教證智)는 네 가지 종류의 지혜, 즉 생득혜(生得慧), 문혜(聞慧), 사혜(思慧), 수혜(修慧)를 말한다. 이는 세간정견(世間正見)에 해당한다. (참고: (見))
  • 보(報): 과보로 타고나는 지혜인 생득혜(生得慧).
  • 교(教): 가르침을 듣고 얻는 지혜인 문혜(聞慧).
  • 증(證): 들은 가르침을 사유하여 얻는 지혜인 사혜(思慧).
  • 지(智): 수행을 통해 체득하는 지혜인 수혜(修慧).
  • 결택(決擇)은 지혜(慧), 용맹함(), 꾸준한 노력(근, 정진)을 모두 갖춘 상태를 의미한다.
  • 근(勤)은 게으름(해태)을 극복하고 선법(善法)을 온전히 성취하도록 돕는다.
  • 어리석음(癡)을 다스려 선(善)을 행하게 한다.


11가지 선심소(善心所) 중에서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는 그 자체로 선한 성질을 지닌 자성선(自性善)에 속한다. 반면, (信),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는 본래 무기(無記)이지만, 앞서 언급된 다섯 가지 자성선과 함께할 때 선한 성질을 띠게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

2. 8. 경안 (혼침이 없음)

경안(輕安)은 안(安)이라고도 한다.[1][2][3] 이는 산스크리트어 praśrabdhisa, 팔리어 passaddhipi, 영어 pliancy영어, pliability, alertness, flexibility 등으로 번역된다.

경안은 몸과 마음의 무거움(麤重, Dauṣthulya)을 멀리 떠나[輕] 몸과 마음을 평안하게[安] 조절하고暢)하여 유연하고 감당할 수 있는 상태[堪任]가 되는 것을 본질[體]로 한다.[1][2][3][4][5] 즉, 몸과 마음이 가볍고[輕] 편안한[安] 상태를 의미한다.

경안의 작용[業]은 혼침(惛沈)을 대치하여 소의신(所依身, 신체, 엄밀히는 6근)을 전환시키는 것이다.[1][2][3] 또한, 선정[定]을 장애하는 요소들을 조복시키고 없애서 소의지(所依止, 신체, 엄밀히는 6근)가 평안하고 적절하게 기능하도록 한다.[1][2][4] 이를 통해 일체의 장애를 없애는 역할을 한다.[3][4]

경안은 산란된 마음 상태[散心位]인 욕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선정 상태[定位]인 색계·무색계에서만 생겨난다.[2] 예를 들어,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인 이생희락지(離生喜樂地)는 욕계를 떠남[離]으로써 생기는[生] 기쁨[喜]과 즐거움[樂]을 느끼는 경지인데, 이러한 선정 상태에서 경안이 나타난다.[6][7] 이는 4무량심(四無量心) 중 희무량심(喜無量心)과도 관련된다.[8][9]

11가지 선심소 중에서 참(慚)·괴(愧)·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의 5가지는 본질적으로 선(善)인 자성선(自性善)에 해당한다. 반면, 나머지 6가지 마음작용인 (信)·정진(精進)·경안(輕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불해(不害)는 본질적으로는 무기(無記)이지만, 5가지 자성선과 함께 일어남[相應]으로써 선(善)이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10][11]

한편, 변행심소(작의·촉·수·상·사), 별경심소(욕·승해·염·정·혜), 부정심소(수면·악작·심·사)는 모두 선·악·무기의 3성(三性)에 통하므로 그 자체는 무기이지만, 선심소와 함께 일어나면 상응선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선심소 그룹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4일체(四一切)의 기준에서 선심소 그룹의 마음작용들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12][13] 선심소는 '일체지(一切地)', 즉 3계의 모든 경지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13]

2. 9. 불방일 (성실)

불방일(不放逸, apramādasa, appamadapi, conscientiousness영어, concern영어, prudent영어)은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 즉 게으름이나 방종 없이 성실(誠實)하게 노력하는 마음작용을 말한다.[8][9][10][11][12][13][14] 방일은 일반적으로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게 놂'을 의미하며,[8] '제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이라는 뜻의 방종(放縱)과 비슷하고,[9] '내버리고 아예 돌아보지 아니함'[10]을 뜻하는 방기(放棄)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반면 성실(誠實)은 '정성스럽고 참됨'[13] 또는 '착실함'[14]을 뜻한다.

불방일은 특정 마음작용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진(精進, 勤)과 세 가지 선근(善根)인 무탐(無貪)·무진(無瞋)·무치(無癡)의 네 가지 선한 마음작용을 바탕으로, 이들로 하여금 악(惡)을 막고 (善)을 닦는 일(방악수선, 防惡修善)을 성실히 행하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즉, 불방일은 별도의 실체를 가진 마음작용이라기보다는, 정진·무탐·무진·무치라는 네 가지 마음작용이 악을 방지하고 선을 닦는 과정에서 발휘하는 종합적인 성실함과 노력의 상태를 가리킨다.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이러한 네 가지 선한 마음작용에 의지하여 모든 선법(善法)을 닦고, 번뇌를 일으키는 모든 법(유루법, 有漏法)으로부터 마음을 보호하는 것을 불방일의 본질(體)로 설명한다.

불방일의 주요 기능(業)은 방일함을 다스려(對治), 세간(世間)적인 선행과 출세간(出世間)적인 수행을 포함한 모든 선한 일(善事)을 원만하게 성취(成滿)시키는 것이다.

11가지 선심소 중에서 (慚)·(愧)·무탐·무진·무치는 그 자체로 선한 성질을 지닌 자성선(自性善)이지만, 불방일을 포함한 나머지 6가지(, 정진, 경안, 불방일, 행사, 불해)는 본래 도 악도 아닌 무기(無記)의 성질을 가지나, 5가지 자성선과 함께 일어날 때 선한 마음작용이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

2. 10. 행사 (적정)

행사(行捨)는 사(捨)라고도 하며, 적정(寂靜, 고요함)을 의미한다.[1][2][3][4][5] 이는 산스크리트어 upekṣa|우펙샤sa, 팔리어 upekkhā|우페카pi, 영어 equanimity|이쿼니미티영어에 해당한다. '행사(行捨)'라는 용어는 5온(五蘊) 중 수온(受蘊)이 아닌 행온(行蘊)에 포함되는 사(捨)라는 뜻이다.[2]

사(捨)는 마음(8식, 즉 심왕)이 정주(靜住, 고요히 머무는 것), 즉 적정 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과 관련이 깊다.[1][2]

적정에는 세 단계가 있다.[1][2][4]

  • 평등(平等): 제1단계(初位). 마음잡염(雜染, 모든 번뇌)에 침몰된 상태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 상태를 증득하면 마음은 잡염을 '멀리 떠나는 것[遠離]'을 '더욱 힘써 하게 되고[加行]', 이 힘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이어진다[相續].[4]
  • 정직(正直): 제2단계(中位). 마음이 평등해져 모든 잡염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怯慮]'을 가지지 않게 되는 단계이다.[4]
  • 무공용주(無功用住): 제3단계(後位). 특별히 힘써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언제나 자연스럽게 적정 상태에 머무는 단계이다.[1][2][4]


이 세 단계의 차이는 행사(行捨) 마음작용마음상응하여 잡염에 침몰된 상태를 벗어난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4] 적정 상태는 잡염주(雜染住), 즉 마음이 잡염에 머무는 상태와는 반대되는 것으로, 마음이 잡염의 활동 공간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상태이다.[3][4][5] 적정에 이르기 위한 사(捨) 수행의 전 단계는 불방일(不放逸, 성실함)을 통해 잡염을 제거하는 것이다.[1][2]

행사(行捨)는 마음적정 상태에 머물게 하는 마음작용이다.[1][2] 그러나 행사 자체가 직접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진(精進, 勤)과 선근(善根)인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네 가지 마음작용을 통해 마음을 적정 상태에 머물게 한다.[1][2][3][5] 즉, 실제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역할은 이 네 가지 마음작용이 담당한다.[1][2]

행사(行捨)는 도거(掉擧, 들뜸)를 대치(다스림)하여 마음정주(靜住, 고요히 머묾)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1][2][3] 이는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이다.

행사(行捨)는 11가지 선심소 중 하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무기(無記)에 속한다. 그러나 자성선(自性善)인 참(慚) · 괴(愧) ·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와 함께 작용함으로써 (善)의 성질을 띠게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6][7]

같이 보기: 4무량심(四無量心) 중 사무량심(捨無量心)[8][9]

2. 11. 불해 (자비의 비)

불해(不害)는 해치지 않음을 의미하는 마음작용이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ahiṃsā|아힘사sa, 팔리어 avihiṃsā|아비힘사pi를 번역한 말로, 영어로는 nonharmfulness|논함풀니스영어, non-harming|논하밍영어, nonviolence|논바이얼런스영어 등으로 표현된다.

불해는 자비(慈悲) 가운데 (悲)를 본질적인 성질로 삼는다.[11] 자비(慈)와 (悲)로 나뉘는데, 여락(與樂)이라 하여 중생을 사랑하여[慈愛]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13][14][15] 는 발고(拔苦)라 하여 중생(苦, 괴로움)에 동감(同感)하고 연민(憐憫)하여 그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다.[13][14][15] 를 본질로 하는 것은 무진(無瞋)이라는 다른 선심소이며,[12] 불해는 를 본질로 한다. 가 고통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나타나는 형태로 볼 수 있으며, 가 더 일반적이고 를 바탕으로 일어난다.[1][2][3][4][11]

유식유가행파의 주요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불해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유정)에게 손해나 괴로움을 주지 않으려는 무진(無瞋)의 마음을 바탕[體性]으로 한다. 그 작용[業]은 다른 존재를 해치려는 마음(, 害)을 다스리고, 연민의 마음으로 고통을 없애주는 것이다. 즉, 무진의 마음이 다른 존재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측면으로 나타날 때, 이를 임시로 불해라고 부르는 것이다.[1][2]

무진과 불해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무진은 생명을 해치려는 (瞋)에 직접적으로 반대되고, 불해는 다른 존재를 괴롭히고 손해를 입히려는 (害)에 반대된다. 또한 무진이 즐거움을 주는 것(여락)과 관련된다면, 불해는 고통을 없애주는 것(발고)과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다.[1][2] 논리적으로는 무진이 실체적인 마음작용이고, 불해는 무진의 특정한 측면()을 가리키기 위해 설정된 개념으로 설명된다. 이는 의 차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두 마음 모두 중생을 이롭게 하는 중요한 작용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1][2]

대승아비달마집론》과 《대승아비달마잡집론》에서도 불해를 3선근 중 하나인 무진의 일부로 보며, 마음속 자비심()을 본질로 하고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것을 그 작용으로 설명한다.[3][4] 세친의 《대승오온론》 역시 불해를 (害)를 다스리는 것이며, 를 그 성질로 한다고 정의한다.[11]

요약하면, 불해는 무진이라는 선한 마음의 한 부분으로, 특히 중생의 고통에 동감하고 연민하여 그 고통을 덜어주려는 의 마음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해치지 않음'이란 곧 의 실천이며, 이 마음은 해치려는 악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힘이 된다. 누군가를 해치려는 마음이 일어날 때, 연민과 동감의 마음인 를 일으키는 것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불해는 불교 수행에서 강조하는 4무량심(四無量心) 중 비무량심(悲無量心), 즉 한량없는 연민의 마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18][19]

11가지 선심소 가운데 (慚)·(愧)·무탐·무진·무치는 그 자체로 선한 성질을 지닌 자성선(自性善)이다. 반면, (信)·정진(精進)·경안·불방일·행사(行捨)·불해(不害)는 본래 선악이 결정되지 않은 무기(無記)의 성질이지만, 앞의 5가지 자성선과 함께 일어날 때 선한 마음작용이 되는 상응선(相應善)으로 분류된다.

3. 기타 선심소

대승불교 유식유가행파의 주요 논서인 《성유식론》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분류되는 11가지 선심소 외에도 선한 성질을 가진 다른 여러 마음작용들이 존재한다. 이를 '''기타 선심소'''라고 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흔(欣: 기뻐함)이나 염(厭: 싫어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기타 선심소들을 별도의 그룹으로 설정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그 본질적 성질[體]이 기존 11가지 선심소 중 어느 하나 혹은 여러 개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기존 11가지 선심소의 특수한 경우(一分)로 간주된다. 일부 기타 선심소는 무탐(無貪)이나 무진(無瞋) 등 특정 선심소를 본질로 하거나, (善)과 악(惡)의 성질 모두에 통하는 경우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분류에서 설명한다.

3. 1. 무진을 본질로 하는 경우

무진(無瞋)을 본질[體]로 하는 기타 선심소들, 즉 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로서의 선한 마음작용들은 다음과 같다.

  • 흔(欣): 기뻐함.
  • * 무기성(無記性)의 욕(欲)과 함께하는 무진(無瞋)을 본질로 한다.
  • * 기뻐하는 것은 (欲)에 속하지만, 기뻐하게 된 대상[所欣境]에 대해서는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무진(無瞋)에 속하기도 한다.
  • * 즉, 흔(欣)은 무기성(無記性)의 (欲)이 선근(善根)이자 자성선(自性善)인 무진(無瞋)과 상응하여 선(善)이 된 것으로,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
  • * 요컨대, 흔(欣)하게 된 대상[所欣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흔(欣)은 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불분(不忿): 분노하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분(忿: 분노)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분(不忿)하게 된 대상[所不忿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분(不忿)은 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불한(不恨): 원한을 품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한(恨: 원한)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한(不恨)하게 된 대상[所不恨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한(不恨)은 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불뇌(不惱): 괴로워 하지 않음, 고뇌하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惱: 괴로워함)를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뇌(不惱)하게 된 대상[所不惱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뇌(不惱)는 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부질(不嫉): 질투하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질(嫉: 질투)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부질(不嫉)하게 된 대상[所不嫉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증오[憎]나 성냄[恚]을 가지지 않으므로 부질(不嫉)은 무진(無瞋)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3. 2. 무탐을 본질로 하는 경우

무탐(無貪)을 본질[體]로 하는 기타 선심소들, 즉 무탐(無貪)의 특수한 경우[一分]로서의 선한 마음작용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염(厭): 싫어함
  • * 여기서 '염'은 염세(厭世: 세상이 귀찮음, 인생이 싫어짐)나 염증(厭症: 싫증)의 염이 아니다. 이러한 염은 자성불선(自性不善)과 중수번뇌(中隨煩惱) 중 하나인 무참(無慚: 자증상·법증상이 없음)과 무괴(無愧: 세증상이 없음)가, 불선근이자 자성불선인 (癡: 이사에 미혹함)와 상응하여 생겨난 것으로 불선(不善, 악)에 해당한다.
  • * 여기의 '염'은 불교 수행의 하나로서 욕계, 색계, 무색계의 3계에 대한 염착(染著, 탐착)을 제거하는 수행인 수염(修厭: 싫어하는 마음을 닦는 것)의 염을 말하며, 이는 선(善)이다.
  • * 무기성(無記性)의 (慧)와 함께하는 무탐(無貪)을 본질로 삼는다.
  • * 싫어하는 것은 (慧)에 속하지만, 싫어하게 된 대상[所厭境]에 대해서는 염착(染著, 탐착)을 가지지 않으므로 무탐(無貪)에도 속한다.
  • * 즉, 염(厭)은 무기성(無記性)의 (慧)가 선근(善根)이자 자성선(自性善)인 무탐(無貪)과 상응하여 선(善)이 된 것으로, 상응선(相應善)이다.
  • * 요컨대, 염(厭)하게 된 대상[所厭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염착(染著, 탐착)을 가지지 않으므로 염(厭)은 무탐(無貪)의 한 부분[一分]이다.
  • 불간(不慳): 인색하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간(慳: 인색)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간(不慳)하게 된 대상[所不慳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염착(染著, 탐착)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간(不慳)은 무탐(無貪)의 한 부분[一分]이다.
  • 불교(不憍): 소유물에 대해 오만(傲慢)하지 않음, 소유물로 인한 방일(放逸)이 없음
  • * 번뇌성(煩惱性)의 (憍: 소유물에 대한 오만)를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교(不憍)하게 된 대상[所不憍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염착(染著, 탐착)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교(不憍)는 무탐(無貪)의 한 부분[一分]이다.

3. 3. 무탐·무치를 본질로 하는 경우

무탐(無貪)과 무치(無癡)를 본질로 하는 기타 선심소들이 있다. 이들은 무탐무치의 일부분으로서의 선한 마음작용들이다.

  • 불부(不覆): 은폐하지 않음, 감추지 않음, 덮어두지 않음.
  • * 번뇌의 성질인 (覆: 은폐, 감춤, 덮어둠)를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부하게 된 대상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탐착(染著, 오염으로서의 탐욕 또는 집착)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부는 무탐의 일부분이다. 또한 이치현상(理事)에 미혹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치의 일부분이다.
  • * 다른 견해로는, 불부는 오직 무치의 일부분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로는 어떤 경론에서도 마음작용마음작용의 일부분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든다.
  • 불광(不誑): 속이지 않음, 기만하지 않음, 거짓으로 꾸미지 않음.
  • * 번뇌의 성질인 (誑: 속임, 기만, 거짓)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광하게 된 대상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탐착(染著)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광은 무탐의 일부분이다. 또한 이치현상(理事)에 미혹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치의 일부분이다.
  • 불첨(不諂): 아첨하지 않음, 속마음을 은폐하지 않음.
  • * 번뇌의 성질인 (諂: 아첨, 속마음을 은폐함)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첨하게 된 대상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탐착(染著)을 가지지 않으므로 불첨은 무탐의 일부분이다. 또한 이치현상(理事)에 미혹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치의 일부분이다.

3. 4. 선과 악에 모두 통하는 경우

성유식론》에 따르면, 어떤 마음작용들은 선(善)과 악(惡), 즉 선과 불선(不善), 혹은 염(染, 잡염)과 불염(不染, 청정)의 성질 모두에 통할 수 있다. 이는 해당 마음작용이 상황에 따라 선하게도, 악하게도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음작용들은 잡염법(雜染法)과 청정법(淸淨法) 모두에 통하며, 뒤집어 세울 수 있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 마음작용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선과 악 모두에 통하는 마음작용들은 다음과 같다.

  • 별경심소에 속한 마음작용
  • * (觸): 감각기관(근), 대상(경), 그리고 인식 ()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서로 만나 접촉하는 작용이다.
  • * 욕(欲): 무언가를 바라고 희망하는 욕구이다. 좋은 것을 바라는 선욕(善欲)과 나쁜 것을 바라는 악욕(惡欲)이 모두 가능하다.
  • 부정심소에 속한 마음작용
  • * 면(眠): 수면(睡眠) 또는 을 의미하며, 마음을 흐릿하고 어둡게(암매, 闇昧) 만드는 작용이다.
  • * (悔): 악작(惡作)이라고도 하며, 자신이 과거에 한 행동이나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작용이다.
  • * (尋): 대상의 본질을 대략적으로 거칠게 살펴보는 작용, 즉 심구(尋求: 찾고 탐구함)하는 마음작용이다.
  • * 사(伺): 대상의 본질을 자세하고 정밀하게 살펴보는 작용, 즉 사찰(伺察)하는 마음작용이다.

3. 5. 기타의 경우

성유식론》에 따르면, 선심소 그룹에 포함된 11가지 마음작용 외에도 흔(欣: 기뻐함)이나 염(厭: 싫어함)과 같이 선(善)한 성질을 가진 다른 여러 마음작용들, 즉 '''기타 선심소'''들이 존재한다. 이들을 별도의 선심소로 구분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이들의 본질적 성질[體]이 기존 11가지 선심소 중 하나 혹은 여럿과 같기 때문이다.

무탐(無貪) · 무진(無瞋) · 무치(無癡)의 하나 혹은 다수를 본질[體]로 하지 않으며, 또한 그 성질이 선(善)과 악(惡) 모두에 통하는 마음작용도 아닌, 오직 선(善)으로 규정되는 마음작용들은 다음과 같다.

  • 불만(不慢): 거만하지 않음, 얕보지 않음[15]
  • * 번뇌성(煩惱性)의 (慢: 거만, 자만, 뽐냄, 얕봄, 업신여김, 경멸)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불만(不慢)의 본질적 성질[體]에 대해서는 다음의 3가지 견해가 있다.
  • ** (信)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는 믿게 된 대상[所信境]에 대해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은 불만(不慢: 얕보지 않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 행사(行捨)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는 자신과 평등하다고 보는 대상[所平等境]에 대해 마음은 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 참(慚)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호법의 견해이다. 그 근거는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는 대상[所慚境]에 대해 마음은 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15]
  • 불의(不疑): 의심하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의(疑: 의심, 유예)를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의심(疑心)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머뭇거리는 마음 상태'이며,[16] 일반 사전적인 정의는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이다.[17]
  • ** 유예(猶豫)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망설이고 머뭇거림'이며,[18] 일반 사전적인 정의는 '망설여 일을 결행하지 아니함' 또는 '일을 결행하는 데 날짜나 시간을 미룸. 또는 그런 기간'이다.[19]
  • * 불의(不疑)의 본질적 성질[體]에 대해서는 다음의 3가지 견해가 있다.
  • ** (信)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는 믿게 된 대상[所信境]에 대해 마음은 유예(猶豫: 망설이고 머뭇거림,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 참된 승해[正勝解]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는 견해가 있다. 그 근거는 바르게 결정된 대상[所正勝解境, 所正決定境]에 대해 마음은 유예(猶豫: 망설이고 머뭇거림,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 참된 [正慧]의 마음작용의 특수한 경우[一分]라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호법의 견해이다. 그 근거는 바르게 본 대상[所正見境]에 대해 마음은 유예(猶豫: 망설이고 머뭇거림, 망설여 결행하지 않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불산란(不散亂): 산란하지 않음
  • * 번뇌성(煩惱性)의 산란(散亂)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산란하지 않게 된 대상[所不散亂境]에 대해 마음은 그 대상에 전념(專念, 專住, 心一境性)할 수 있으므로, 불산란(不散亂)은 정정(正定), 즉 바르고 참된 정(定, 三摩地, 三昧)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 같이 보기: 별경심소(別境心所)의 정(定, 三摩地, 三昧), 8정도(八正道)의 정정(正定)
  • 정견(正見): 바른 견해, 바르게 봄
  • * 번뇌성(煩惱性)의 부정견(不正見) 또는 악견(惡見)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구사론》에 따르면, 부정견(不正見) 또는 악견(惡見)은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의 5가지 염오견(染汚見)을 말한다.
  • ** 유신견(有身見) 또는 살가야견(薩迦耶見)은 소의신(所依身), 즉 5온의 화합체를 실유(實有)라고 집착하는 견해이다.
  • ** 변집견(邊執見)은 단(斷)과 상(常)의 두 극단[邊]에 집착하는 견해, 즉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이다.

단견(斷見)은 세간(世間)과 자아(自我)가 사후(死後)에 완전히 소멸된다는 견해로, 인과의 상속, (業)의 상속 또는 심상속(心相續)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불교 입장에서 보면, 윤회와 무위법인 열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견해이다.
상견(常見)은 세간(世間)과 자아(自我)가 사후(死後)에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불교 입장에서 보면 모든 상견(常見)은 유위법을 무위법으로 여기는 잘못된 견해이다.

  • ** 사견(邪見)은 인과의 도리, 즉 원인과 결과의 법칙, 즉 연기법(緣起法)을 부정하는 견해이다.
  • ** 견취(見取)는 그릇된 견해를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으로,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등을 일으킨 후 이를 고집하여 진실하고 뛰어난 견해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 ** 계금취(戒禁取)는 그릇된 계행(戒行)을 올바른 것이라고 집착하는 것으로, 잘못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여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인(因) 아닌 것을 인이라 하고, 참된 해탈도(解脫道)가 아닌 것을 참된 해탈도라고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이다. 예를 들어, 개나 소처럼 행동하는 것이 하늘에 태어나는 원인이라고 믿거나, 갠지스강 목욕이나 불 속에 뛰어드는 행위 등을 통해 하늘에 태어날 수 있다고 집착하는 것 등이 해당된다.
  • * 바르게 본 대상[所正見境, 이론, 교의, 세계관 등]에 대해 마음은 잘못된 판단, 이해, 지식, 또는 간택(簡擇)을 가지지 않으므로, 정견(正見)은 선혜(善慧), 즉 참된 (慧), 즉 선(善)한 상태의 (慧)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 같이 보기: (見), 별경심소(別境心所)의 (慧), 8정도(八正道)의 정견(正見)
  • 정지(正知): 사람 또는 사물을 바르게 앎,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한 바른 앎,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한 바른 지식
  • * 번뇌성(煩惱性)의 부정지(不正知: 잘못된 앎, 잘못된 이해)를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바르게 안 대상[所正知境, 구체적·개별적 사람 또는 사물]에 대해 마음은 잘못된 판단, 이해, 지식, 또는 간택(簡擇)을 가지지 않으므로, 정지(正知)는 선혜(善慧), 즉 참된 (慧), 즉 선(善)한 상태의 (慧)의 특수한 경우[一分]이다.
  • 불망념(不忘念): 잊어버리지 않음, 제대로 기억함
  • * 번뇌성(煩惱性)의 실념(失念: 기억하지 못함, 잘못 기억함)을 뒤집어 정반대로 세운 것이다.
  • ** 실념(失念: 기억하지 못함)은 대상 또는 대상과 관련하여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마음작용이다. 예를 들어, 좋은 일은 기억하지 못하면서 나쁜 일은 기억하는 것 등이 실념에 해당한다.
  • ** 불교 수행의 관점에서는, 실념(失念: 기억하지 못함)은 정념(正念), 즉 사념처관(四念處觀)에서의 념(念: 기억, 분명히 기억함, 지속적인 알아차림, 마음챙김)을 잊어버리는 것, 즉 사념처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 * 잊어버리지 않은 대상[所不忘念境]에 대해 마음은 바른 기억, 즉 지속적인 알아차림(마음챙김), 즉 마음챙김을 가지므로, 불망념(不忘念)은 곧 정념(正念)의 다른 말이다.
  • * 같이 보기: 별경심소(別境心所)의 념(念), 8정도(八正道)의 정념(正念), 사념처관(四念處觀)

4. 선심소의 현대적 의의

주어진 원본 소스(`source`)는 선심소의 불교 교리적 정의와 분류, 다른 심소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청하신 '선심소의 현대적 의의' 섹션 내용(개인의 심리적 안정, 사회적 관계 개선, 윤리적 가치관 확립, 사회 문제 해결 등)에 해당하는 정보는 원본 소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원본 소스를 정확히 기반으로 해당 섹션 내용을 작성하라는 지침에 따라, 현재 제공된 정보만으로는 요청하신 섹션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5. 한국 불교와 선심소

11가지 선심소의 마음작용 중 참(慚), 괴(愧), 무탐(無貪), 무진(無瞋), 무치(無癡)는 본질적으로 선(善)인 자성선(自性善)에 해당한다. 나머지 6가지 마음작용(信), 정진(精進), 경안(輕安), 불방일(不放逸), 행사(行捨), 불해(不害)는 본질적으로는 무기(無記)이지만, 앞서 언급된 5가지 자성선(自性善)과 함께 작용함으로써 선(善)이 되는 상응선(相應善)에 해당한다.

한편, 변행심소(遍行心所)에 속하는 작의(作意), (觸), (受), 상(想), 사(思)와 별경심소(別境心所)에 속하는 욕(欲), 승해(勝解), 염(念), 삼마지(三摩地, 定), (慧), 그리고 부정심소(不定心所)에 속하는 수면(睡眠, 眠), 악작(惡作, 悔), (尋), 사(伺)는 모두 선(善), 악(惡), 무기(無記)의 3성(三性) 모두에 통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무기(無記)의 성질을 가진다. 이 심소들 역시 상응선(相應善)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선심소 그룹에 포함되지 않고 각자의 그룹(변행, 별경, 부정)에 속하는 이유는 4일체(四一切)의 기준에서 볼 때 선심소 그룹의 마음작용들과는 그 성격이 구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변행심소는 모든 마음(심왕)과 항상 함께 일어나지만(4일체 모두 갖춤), 선심소는 선한 마음 상태에서만 일어나며 모든 장소(地)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특징(일체지)만 갖는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심소들을 분류한다.

참조

[1] 백과사전 유식사상(唯識思想) https://terms.naver.[...] 한국학중앙연구원 1996
[2] 문서 성유식론에서 선심소를 정의하는 대목을 찾아보면 http://www.cbeta.org[...]
[3] 한자사전 順 http://hanja.naver.c[...] 2012-10-22
[4] 한자사전 益 http://hanja.naver.c[...] 2012-10-22
[5] 문서 무언가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그 대상의 본질적인 성질을 드러내어 정의하는 방법도 있고, 그 대상에 포함되는 모든 요소들을 나열함으로써 정의하는 방법도 있다.
[6] 웹인용 반성(反省) http://krdic.naver.c[...] 2012-10-23
[7] 국어사전 과실(過失) http://krdic.naver.c[...] 2012-10-23
[8] 국어사전 방일(放逸) http://krdic.naver.c[...] 2012-10-25
[9] 국어사전 방종(放縱) http://krdic.naver.c[...] 2012-10-25
[10] 웹인용 방기(放棄) http://krdic.naver.c[...] 2012-10-25
[11] 웹인용 放 http://hanja.naver.c[...] 2012-10-25
[12] 한자사전 逸 http://hanja.naver.c[...] 2012-10-25
[13] 웹인용 성실(誠實) http://krdic.naver.c[...] 2012-10-25
[14] 한자사전 誠實(성실) http://hanja.naver.c[...] 2012-10-25
[15] 문서 한역본과 한글본에는 분명히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참(慚)은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즉, 자신과 자신이 배우고 있는 선법(善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반성이다. 반면, 괴(愧)는 세증상(自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이나 세상의 도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성이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반성이다. 이렇게 볼 때, 한역본을 만들 때, '괴(愧)의 특수한 경우[愧一分]'를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로 잘못 번역한 것이 아닌가 한다.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라는 번역이 정말로 맞는 것이라면,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기 때문에, 즉 자신과 자신이 배우고 있는 선법(善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게 된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해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하게 된다'라는 해석보다는 부자연스러운 논리로 보인다. 다만, 진정한 참(慚), 즉 진정으로 자증상(自增上)과 법증상(法增上)에 근거하여 자신을 반성하는 것, 즉, 진정한 모습의 '자신과 자신이 배우고 있는 선법(善法)을 가치롭다고 보거나 존중하거나 존엄섬이 있는 것'이란 '자기 자신을 높이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에서는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이 참(慚)의 특수한 경우[慚一分]'라는 진술도 일정 납득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도 모자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비교 대상이 없는데 과연 '[[불만 (마음작용)|불만]](不慢: 자신을 높이거나 거만하지 않음)'이 성립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16] 웹인용 疑心 http://zonmal.com/ha[...] 2012-10-27
[17] 국어사전 의심(疑心) http://krdic.naver.c[...] 2012-10-27
[18] 한자사전 猶豫 http://zonmal.com/ha[...] 2012-10-27
[19] 웹인용 유예(猶豫) http://krdic.naver.c[...] 201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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