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오브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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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티오브런던은 잉글랜드의 특별 자치구이자 런던의 역사적 중심지이다. 템스강 북쪽에 위치하며, 런던의 금융 중심지로서 런던 증권 거래소, 로이즈 보험, 영국 은행 등 주요 금융 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다. 로마 시대부터 런던의 역사를 함께 해 왔으며, 중세 시대에는 런던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현재는 25개의 구(ward)로 나뉘어 있으며, 고유한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런던의 다른 지역과 달리 자체적인 선거 제도를 운영하며, 런던 시장과 런던 시 법인에서 행정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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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오브런던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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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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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 시티오브런던 |
유형 | 특별 자치구, 도시, 의례 카운티, 지방 정부 지구, 중심 업무 지구 |
별칭 | 스퀘어 마일, 더 시티 |
모토 | (오 주여, 우리를 인도하소서) |
위치 | 그레이터 런던 내 위치 |
지리 | |
면적 | 2.90 제곱킬로미터 |
고도 | 최소: 0 m 최대: 21 m |
행정 | |
국가 | 영국 |
국가 구성 | 잉글랜드 |
리전 | 런던 |
설립 | 로마 제국 정착: 기원후 47년경 (론디니움) 웨식스 재정착: 886년 (룬덴부르크) |
행정 구역 | 25개 워드 |
지방 정부 | 시티오브런던 코퍼레이션 |
시장 | 알래스터 존 네이스비트 킹 |
시 서기 | 이안 토마스 |
런던 의회 | 우네쉬 데사이 (노동당; 시티 앤 이스트) |
영국 의회 | 레이첼 블레이크 (노동당; 런던 시와 웨스트민스터 시) |
인구 통계 | |
인구 (2021년) | 9,401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기타 정보 | |
시간대 | GMT |
UTC 오프셋 | ±00:00 |
서머 타임 | BST |
UTC 오프셋 (서머 타임) | +01:00 |
우편 번호 | EC, WC, E |
지역 번호 | 020 |
ISO 3166-2 | GB-LND |
경찰 | 시티오브런던 경찰 |
수호 성인 | 성 바울로 |
웹사이트 | 시티오브런던 공식 웹사이트 |
2. 역사
시티오브런던의 역사는 런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기원전 1세기경 린딘(Lyndy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169] 고대 로마의 침공으로 기원전 55년 카이사르가 템스강 변을 방문했고,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런던 일대에 로마식 건물과 성벽을 건설하고 론디니움(Londinium)이라 명명했다. 론디니움은 이후 런던의 기원이 되었다.[170]
6세기 앵글로색슨족의 7왕국 시대에 시티는 잦은 분쟁으로 로마 시대 성벽 밖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607년경 세인트 폴 대성당이 건립되었으나, 당시 목조 건물이 주를 이루어 화재가 빈번했다. 애설스턴 왕이 잉글랜드의 기초를 다졌고, 1078년 윌리엄 정복왕이 런던 타워 건설을 명하며 잉글랜드 정치 중심지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졌다.
12세기 북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시티 의회의 원형이 생겨났고,[134] 1215년 마그나 카르타는 시티의 국제 시장화를 촉진했다. 1394년 시티는 25개 구역으로 나뉘었고,[135] 각 구역장(참사회)들이 매년 시장을 선출했다.[136]
1550년 새로운 구획이 설치되어 총 26개 구획이 되었고,[137] 모스크바 회사의 전신이 칙허를 받았다. 1570년 토머스 그레셤이 왕립 거래소를 설립하여 유럽 앤트워프 거래소를 본떴다. 1592년 레반트 회사 설립은 동방 문제를 국제 경제적 측면에서 야기했다. 1636년 찰스 1세의 어용 금융가가 중앙 은행을 구상했고, 청교도 혁명 시기 시티는 군사비 징수와 오락 규제를 겪었다. 1666년 런던 대화재로 플리트 스트리트가 불탔다.[138]
1720년 남해 거품 사건이 발생했고, 1725년 로버트 월폴의 시티 선거법은 비판을 받았다. 1734년 잉글랜드 은행이 스레드니들로 이전했고, 1750년 웨스트민스터 다리 건설로 런던 다리가 템스강의 유일한 다리가 아니게 되었다. 1760년 조지 3세 즉위식에 810명의 상인 은행가가 참가했고, 2년 후 베어링스 은행이 설립되었다. 1773년 런던 증권 거래소가 탄생했다.
19세기 초 대륙 봉쇄령은 영국 경제에 타격을 주었고, 1810년 아브라함 골드스미드가 자살했다. 미영 전쟁 이후 시티는 세계 제일의 국제 금융 시장이 되었다.[141] 1825년 공황으로 폴 손튼 은행이 도산했고,[142] 1837년 공황에서는 '3W'라 불린 미국인들이 잉글랜드 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143] 1851년 해저 케이블이 도버 해협에 개통되었고, 1854년 주식회사 은행이 시티 수표 교환소에 가입했다.
19세기 후반, 시티는 주변 지역과의 합병 논의가 있었으나 웨스트민스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로이즈는 1824년 거품법 폐지로 해상 보험업 독점이 무너졌고, 1902년 재정 위기를 겪었다. 1912년 인디아 실버 스캔들과 마르코니 스캔들이 발생했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시티는 경제적 타격을 입었으나, 전후 몽태규 노먼이 부흥에 기여했다. 1931년 잉글랜드 은행이 금본위제를 이탈했고, 1936년 영국, 미국, 프랑스 3국 통화 협정이 체결되어 브레턴 우즈 협정의 초석이 되었다.
1961년부터 1986년까지 시티의 취업 인구는 감소했고, 집세 급등으로 상점 등이 시외로 이동했다.[147] 대런던 의회 폐지 후 빅뱅이 시작되어 머천트 뱅크와 스톡 조버가 인수되었다. 1971년 닉슨 쇼크와 마거릿 대처의 파운드 거래 규제 철폐는 시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 1. 기원과 초기 역사
시티오브런던의 역사는 런던의 역사와 대를 같이 한다. 지금의 시티오브런던 일대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린딘 (Lyndyn)이라는 이름으로 형성되었다.[169]이후 고대 로마군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면서 로마군과의 접촉이 잦아졌다. 기원전 55년에는 카이사르 황제가 브리튼 원정에 나서 템스강변에 왔다가 돌아갔다. 약 90년 뒤인 서기 43년에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군이 템스강을 거슬러 온 뒤 런던 일대 강변에 로마식 건물과 성벽 (런던 월)을 조성한 다음 라틴어로 론디니움 (Londinium)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론디니움은 훗날 도시 '런던'이 되었으며, 시티오브런던의 옛 지명이 되었다.[170]


로마 군단은 서기 43년경 현재 시티오브런던 부지에 "런던디움"으로 알려진 정착지를 건설했다.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도시를 도로 중심지이자 주요 항구로 만들었고, 로마 시대 브리튼에서 5세기 동안 버려질 때까지 주요 상업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고학자 레슬리 왈라스는 광범위한 고고학적 발굴에서 상당한 로마 이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런던의 순수한 로마 기원 주장은 이제 흔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언급했다.[15]
로마 시대 런던은 인구 약 45,000~60,000명으로 번성했다. 런던디움은 브리타니아, 유럽 대륙, 중동,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로마 제국 전역에서 온 주민들로 구성된 다민족 도시였다.[16] 로마인들은 서기 190년에서 225년 사이에 런던 성벽을 건설했다. 로마 도시의 경계는 오늘날 시티오브런던의 경계와 유사했지만, 시티는 런던디움의 루드게이트보다 서쪽으로 더 확장되었고, 템스 강은 준설되지 않아 오늘날보다 더 넓었고, 런던디움의 해안선은 현재 도시 해안선보다 약간 북쪽에 있었다. 로마인들은 오늘날의 런던 브리지 근처에 서기 50년경 다리를 건설했다.
런던 성벽이 건설될 무렵, 도시의 운명은 쇠퇴기에 접어들었고, 역병과 화재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로마 제국은 브리튼에서 일어난 카라우시우스 반란을 포함하여 오랜 기간의 쇠퇴와 불안정기에 접어들었다. 3세기와 4세기에는 도시가 픽트 족, 스코틀랜드인, 색슨 약탈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런던과 제국 모두 쇠퇴가 지속되었고, 서기 410년 로마인들은 브리튼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 시점까지 런던의 많은 로마 공공 건물들이 붕괴되고 사용되지 않게 되었고, 공식적인 철수 이후 도시에는 거의(혹은 때로는 완전히)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상업과 인구의 중심지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런던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여, 오늘날의 스트랜드, 올드위치, 코벤트 가든 지역에 위치한 정착지인 룬데니크("런던 시장")로 이동했다.
앵글로색슨 런던 시대 동안 런던 지역은 에식스 왕국, 머시아, 그리고 나중에는 웨섹스의 왕국에 차례로 속하게 되었지만, 8세기 중반부터는 바이킹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의 약탈 위협을 자주 받았다.
비드는 서기 604년에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멜리투스를 동색슨 왕국과 그들의 왕 에식스의 세버트를 위한 최초의 주교로 임명했다고 기록했다.[17] 켄트 왕국의 왕이자 세버트의 삼촌이자 주군인 켄트의 에델베르트는 새로운 주교의 관할 구역으로서 런던에 성 바오로를 위한 교회를 세웠다. 이 첫 번째 앵글로색슨 대성당은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나중의 중세 시대 대성당과 현재의 대성당과 같은 부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웨섹스의 왕 알프레드 대왕은 886년에 옛 로마 성벽 지역을 점령하고 재정착을 시작했으며, 바이킹이 점령한 잉글랜드 지역을 재정복하기 위해 그의 사위인 머시아의 에델레드 백작을 그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했다. 재요새화된 앵글로색슨 정착지는 룬덴부르("런던 요새")로 알려졌다. 역사가 어서는 "알프레드 앵글로색슨 왕이 런던 시를 훌륭하게 재건하여 다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18] 알프레드의 "재건"은 거의 버려진 로마 성벽 도시를 재점령하고 개조하고, 템스 강을 따라 부두를 건설하고, 새로운 도시 거리 계획을 세우는 것을 포함했다.[19]
알프레드의 런던 점령과 옛 로마 도시의 재건은 런던 시의 영구적인 설립뿐만 아니라 웨섹스가 지배적인 잉글랜드 왕국이 되고 바이킹 점령과 약탈을 (어느 정도까지) 격퇴하는 등 초기 잉글랜드의 통일의 순간으로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20] 런던과 잉글랜드는 그 이후 바이킹과 덴마크의 약탈과 점령에 다시 시달렸지만, 런던 시와 잉글랜드 왕국의 설립은 지속되었다.
10세기에는 애설스탄이 8개의 왕립 조폐창을 설립하도록 허가했는데, 이는 그의 수도인 햄프셔의 윈체스터의 6개에 비해 런던의 부유함을 보여준다. 로마의 런던 점령 이후 쇠퇴했던 런던 브리지는 색슨족에 의해 재건되었지만, 바이킹의 약탈과 폭풍으로 주기적으로 파괴되었다.
무역과 인구의 중심지가 다시 옛 로마 성벽 안으로 옮겨지면서, 이전의 색슨 정착지 룬데니크는 거의 버려졌고 ''Ealdwic'' ("옛 정착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름은 오늘날 웨스트민스터와 런던 시 사이의 웨스트민스터 시에 있는 거리와 지역의 이름인 올드위치("옛 시장")로 남아 있다.
2. 2. 중세 시대
기원전 55년 카이사르가 템스강변에 왔다가 돌아간 후, 서기 43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군이 템스강을 거슬러 올라와 런던 일대에 로마식 건물과 성벽 (런던 월)을 조성하고 라틴어로 론디니움 (Londinium)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론디니움은 훗날 도시 '런던'이 되었으며, 시티오브런던의 옛 지명이 되었다.[170]앵글로색슨 칠왕국 시대 동안 런던 지역은 에식스 왕국, 머시아, 웨섹스의 왕국에 차례로 속했지만, 8세기 중반부터는 바이킹을 포함한 다양한 집단의 약탈 위협을 자주 받았다.
비드는 서기 604년에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멜리투스를 동색슨 왕국과 그들의 왕 에식스의 세버트를 위한 최초의 주교로 임명했다고 기록했다.[17] 켄트 왕국의 왕이자 세버트의 삼촌이자 주군인 켄트의 에델베르트는 새로운 주교의 관할 구역으로서 런던에 성 바오로를 위한 교회를 세웠다. 이 첫 번째 앵글로색슨 대성당은 나중의 중세 시대 대성당과 현재의 대성당과 같은 부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웨섹스의 왕 알프레드 대왕은 886년에 옛 로마 성벽 지역을 점령하고 재정착을 시작했으며, 바이킹이 점령한 잉글랜드 지역을 재정복하기 위해 그의 사위인 머시아의 에델레드 백작을 그 지역의 통치자로 임명했다. 재요새화된 앵글로색슨 정착지는 룬덴부르("런던 요새")로 알려졌다. 역사가 어서는 "알프레드 앵글로색슨 왕이 런던 시를 훌륭하게 재건하여 다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18] 알프레드의 "재건"은 거의 버려진 로마 성벽 도시를 재점령하고 개조하고, 템스 강을 따라 부두를 건설하고, 새로운 도시 거리 계획을 세우는 것을 포함했다.[19]
알프레드의 런던 점령과 옛 로마 도시의 재건은 런던 시의 영구적인 설립뿐만 아니라 웨섹스가 지배적인 잉글랜드 왕국이 되고 바이킹 점령과 약탈을 격퇴하는 등 초기 잉글랜드의 통일의 순간으로서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20]
10세기에는 애설스탄이 8개의 왕립 조폐창을 설립하도록 허가했는데, 이는 그의 수도인 햄프셔의 윈체스터의 6개에 비해 런던의 부유함을 보여준다.
무역과 인구의 중심지가 다시 옛 로마 성벽 안으로 옮겨지면서, 이전의 색슨 정착지 룬데니크는 거의 버려졌고 ''Ealdwic'' ("옛 정착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이름은 오늘날 올드위치로 남아 있다.
헤이스팅스 전투 이후 정복왕 윌리엄은 런던으로 진군하여 사우스워크까지 이르렀지만, 런던 브리지를 건너거나 런던 시민들을 제압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결국 윌링퍼드에서 템스강을 건너면서 약탈을 자행했다. 에드거 애설링, 머시아의 에드윈, 노섬브리아의 모카르는 전쟁을 계속하는 대신 버크햄스테드에서 항복했다. 윌리엄은 1075년에 런던 시민들에게 특허장을 수여했다. 런던은 둠스데이 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윌리엄은 런던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도시 주변에 세 개의 성을 건설했다.
- 런던 타워
- 베이나드 성
- 몽피셰 성
1132년경, 런던시는 군주가 임명하는 보안관 대신 자체 보안관을 임명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런던에서 선출된 보안관은 또한 미들섹스 카운티의 보안관으로도 봉사했다. 런던의 보안관들은 1888년 지방 정부법에 따라 카운티가 자체 보안관을 다시 갖게 될 때까지 미들섹스에서 계속 근무했다.[21][22] 1141년까지 모든 시민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코뮌'은 런던 시청의 기원이었으며, 시민들은 1189년에 국왕의 동의를 받아 시장을 임명할 권리를 얻었고, 1215년부터는 시장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얻었다.
중세 시대부터 런던시는 각각 알더맨이 이끄는 25개의 고대 구획으로 구성되었으며, 알더맨은 매년 최소 한 번 이상 열리는 워드모트를 주재한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야외 십자가에서 열리는 도시 전체를 위한 폴크모트도 과거에는 열렸다.
1381년, 농민 반란이 런던에 영향을 미쳤다. 반군은 런던시와 런던 타워를 점령했지만, 반란 지도자 왓 타일러가 시장 윌리엄 월워스를 포함한 대결 중에 사망하면서 반란은 종식되었다. 1450년, 잭 케이드의 반란 당시 반군 세력이 다시 런던시를 점령했지만, 런던 브리지에서 벌어진 전투 끝에 런던 시민들에게 축출되었다.
6세기에 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족의 부족 국가가 생겨나, 7왕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분쟁이 끊이지 않아 시티의 시가지(市街地)는 오랫동안 로마인이 남긴 성벽 밖으로 확장되지 않았다. 시티에서 기독교단의 거점이 되는 세인트 폴 대성당이 607년경에 건립되었다. 당시 시티의 건물은 목조 건축이 주를 이루어, 종종 화재가 발생했다. 애설스턴이 데인로(Dane Law)의 탈환에 성공하여 잉글랜드의 기초를 다졌다. 1078년, 윌리엄 정복왕은 성벽의 남동쪽 모서리에 요새 건설을 명했다. 이것이 후일 런던 타워의 핵심 부분이 되었고, 잉글랜드 정치의 중심지로서의 지위가 굳어졌다.
12세기 유럽인, 특히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인이 이주해 왔다(롬바드 스트리트). 이때 시티 의회의 원형이 생겨났다.[134]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는 시티가 국제 시장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티는 1203년까지 24개 구역으로 나뉘었지만, 1394년에 패링턴 구역(Farrington Ward)이 2개로 분할되어 25개 구역이 되었다.[135] 시티 참사회(참사원회)는 각 구역장으로 구성되었고, 거기에서 매년 시장을 선출했다.[136] 구역장은 각 구역의 시의회와 행정을 담당했다.
2. 3. 근대
헤이스팅스 전투 이후 정복왕 윌리엄은 런던으로 진군하여 사우스워크까지 이르렀지만, 런던 브리지를 건너거나 런던 시민들을 제압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결국 윌링퍼드에서 템스강을 건너면서 약탈을 자행했다. 에드거 애설링, 머시아의 에드윈, 노섬브리아의 모카르는 전쟁을 계속하는 대신 버크햄스테드에서 항복했다. 윌리엄은 1075년에 런던 시민들에게 특허장을 수여했는데, 이 도시는 잉글랜드가 어느 정도 권한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사례 중 하나였다. 런던은 둠스데이 북에 포함되지 않았다.[169][170]윌리엄은 런던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도시 주변에 세 개의 성을 건설했다.
- 런던 타워, 현재도 주요 시설로 사용되고 있다.
- 베이나드 성, 현재는 존재하지 않지만, 도시 구획의 이름을 부여했다.
- 러드게이트 언덕의 몽피셰 성 또는 타워는 13세기에 해체되어 매각되었다.
1132년경, 런던시는 군주가 임명하는 보안관 대신 자체 보안관을 임명할 권리를 부여받았다. 런던에서 선출된 보안관은 미들섹스 카운티의 보안관으로도 봉사했다. 이는 범죄 해결과 평화 유지를 위해 런던시와 미들섹스가 행정적으로 하나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한다(카운티가 도시의 종속 관계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런던의 보안관들은 1888년 지방 정부법에 따라 카운티가 자체 보안관을 다시 갖게 될 때까지 미들섹스에서 계속 근무했다.[21][22] 1141년까지 모든 시민이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코뮌'은 런던 시청의 기원이었으며, 시민들은 1189년에 국왕의 동의를 받아 시장을 임명할 권리를 얻었고, 1215년부터는 시장을 직접 선출할 권리를 얻었다.

중세 시대부터 런던시는 각각 알더맨이 이끄는 25개의 고대 구획으로 구성되었으며, 알더맨은 매년 최소 한 번 이상 열리는 워드모트를 주재한다. 세인트 폴 대성당의 야외 십자가에서 열리는 도시 전체를 위한 폴크모트도 과거에는 열렸다. 많은 중세 시대의 관직과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런던시와 시청의 독특한 성격을 보여준다.
1381년, 농민 반란이 런던에 영향을 미쳤다. 반군은 런던시와 런던 타워를 점령했지만, 반란 지도자 왓 타일러가 시장 윌리엄 월워스를 포함한 대결 중에 사망하면서 반란은 종식되었다. 1450년, 잭 케이드의 반란 당시 반군 세력이 다시 런던시를 점령했지만, 런던 브리지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런던 시민들에게 축출되었다. 1550년에는 사우스워크의 런던 브리지 남쪽 지역이 브리지 아웃위드 구획이 설치되면서 런던시의 통제하에 들어갔다.



런던시는 여러 차례 심각한 화재를 겪었는데, 가장 심각했던 것은 1123년과 런던 대화재가 발생한 1666년이었다. 이 두 화재 모두 "the" Great Fire로 불렸다. 1666년 화재 이후, 도시와 거리 패턴을 계획된 도시 블록, 광장 및 대로가 있는 르네상스 스타일의 도시로 재모델링하려는 여러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들은 거의 채택되지 않았고, 중세 시대의 거리 패턴이 거의 그대로 재현되었다.
1630년대에 국왕은 런던 시의회에 주변 지역으로 관할권을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대거부"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에서 시의회는 국왕의 요구를 거절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정부 구조의 한 원인이 되었다.[23]
16세기 후반에 런던은 금융, 국제 무역,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토마스 그레샴 경은 1565년에 런던 상인들을 위한 상업 중심지로 로열 익스체인지를 설립했고, 1571년에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 콘힐과 스레드니들 스트리트의 교차로에 위치한 로열 익스체인지는 런던의 금융 및 은행 서비스의 지리적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잉글랜드 은행은 1734년 로열 익스체인지 맞은편의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콘힐의 바로 남쪽에 있는 롬바드 스트리트는 1691년부터 세계 최고의 보험 시장이 된 로이즈 커피하우스의 위치였다. 런던의 보험 부문은 라임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
1708년, 크리스토퍼 렌의 걸작인 세인트 폴 대성당이 그의 생일에 완공되었다. 첫 번째 예배는 10년 전인 1697년 12월 2일에 거행되었다. 이 성당은 런던 대화재로 완전히 파괴된 원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을 대체했으며, 영국 최고의 대성당 중 하나이자 바로크 건축의 훌륭한 예시로 여겨진다.
18세기는 런던의 급속한 성장의 시기였으며, 이는 증가하는 국가 인구, 산업 혁명의 초기 움직임, 대영 제국의 중심지로서 런던의 역할을 반영했다. 도시 지역은 시티오브런던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었으며, 특히 이 기간 동안 웨스트 엔드와 웨스트민스터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19세기 초, 런던은 모든 방향으로 성장했다. 런던 동부에서는 런던 항이 급속히 성장했으며, 시티의 템스 강이 무역량을 감당할 수 없게 되면서 많은 부두가 건설되었다. 철도와 런던 지하철의 등장은 런던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19세기 중반, 런던의 인구와 면적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시티는 이미 더 넓은 대도시의 작은 부분이 되었다.
1550년, 시티에 새로운 구획이 설치되어 총 26개 구획이 되었다.[137] 5년 후 모스크바 회사의 전신이 칙허를 얻었다. 1570년, 토머스 그레셤과 그의 국제적 인맥이 시티에 왕립 거래소를 세웠다. 이는 유럽 앤트워프의 거래소를 본뜬 것이었다. 종목과 우편의 국제화로 인해 왕립 거래소의 편리성이 향상되었다. 1592년 레반트 회사가 설립되었고, 그 운영이 동방 문제를 국제 경제적인 측면에서 야기했다. 1616년 존 리먼이 시티의 시장이 되었다. 1636년, 찰스 1세의 어용 금융가가 정부의 어음 교환소로서 중앙 은행을 구상했다. 청교도 혁명으로 시티는 군사비를 징수당하거나, 오락을 규제받았다. 1666년 런던 대화재로 플리트 스트리트가 불탔다.[138] 1672년 호어 은행이 설립되었다. 1712년, 창업자가 시티의 시장이 되었다.
1720년, 남해 거품 사건이 일어났다. 1725년, 감채 기금을 유용했던 로버트 월폴의 시티 선거법이 민주적인 시의회의 결정을 부유한 참사회가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비난을 받았다. 1734년 잉글랜드 은행이 현 주소인 스레드니들로 이전해 왔다. 1750년에 웨스트민스터 다리가 건설되면서 런던 다리가 템스강의 유일한 다리가 아니게 되었다. 그로부터 십수 년, 모스크바 회사의 앤거스타인이 시티에서 청년기를 보냈다.[139] 1760년, 조지 3세의 즉위식에 810명의 상인 은행가가 참가했다. 그 중 적어도 250명은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2년 후 베어링스 은행이 설립되었다. 1773년 런던 증권 거래소가 탄생했다. 다음 해 존 윌크스가 시티의 시장이 되었다. 이 무렵 이스트엔드의 슬럼화가 사회 문제였다. 시티의 인구는 1700년 시점에서 20만 명 이상이었지만, 1801년에는 13만 명이었다.[140] 19세기 초의 대륙 봉쇄령에 정부가 대항 조치를 취했다. 이것이 쇠퇴한 영국 경제에 설상가상으로 타격을 가했다. 1810년 상인 은행가 아브라함 골드스미드가 자살했다. 베어링과 함께 영국 국채 인수자였다. 미영 전쟁이 끝나자 시티는 세계 제일의 국제 금융 시장이 되었다.[141]
1822년 10월, 베로나 회의에서 동방 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결렬되자 영국은 오국 동맹을 탈퇴했다. 1823년, 시티의 브로커이자 조버였던 데이비드 리카도가 사망했다. 1825년 공황으로 잉글랜드 은행 총재와 인척 관계였던 폴 손튼 은행이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았지만 도산하여,[142] 윌리엄스 디콘스 은행이 되었다. 1837년 공황에서는 '3W(the three W's)'라고 불린 세 명의 미국인이 잉글랜드 은행으로부터 자금 주입을 받았다.[143] 그들은 미국 증권을 주식 공개하거나 대미 무역 금융 파트너를 모집하는 등 매우 인기를 끌었다. 1830년대에는 스미스필드 시장에 대한 과세액이 인상되었다. 1851년, 해저 케이블이 도버 해협에서 개통되었다. 1854년, 주식회사 은행이 시티의 수표 교환소에 가입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후 20세기 말까지 인구 감소가 멈추지 않았다.[144]
보험과 소액 주식이 널리 자금을 유치했고, 그 자금이 장기 투자로 향했다. 시티의 경제 구조는 크림 전쟁의 전후 불황에서 베어링스 은행 구제극까지 19세기 후반에 주기적인 공황을 가져왔다. 시티를 주변 지역과 합병하려는 논의가 일어나 1894년에 왕립 위원회가 열렸지만, 웨스트민스터의 의견 변경으로 합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세기 후반의 경제 구조는 도버 맞은편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과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었다. 시티의 상인 은행 사무원은 걸어서 혼잡을 견디며 출퇴근했고, 박봉에서 각종 보험료를 내면서 생활했다. 어학 능력이 있는 통신사는 고액 연봉자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외국인이었다. 양자 간의 차이는 평생 임금뿐만이 아니었다. 대략 10년마다 닥쳐오는 공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아는지는, 어학 능력과 직장 환경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경제 격차가 발생한 기간에는 스미스필드 시장과 시티의 교구 묘지가 폐쇄되었고, 승합마차와 철도가 차례로 정비되었으며, 주간 인구가 증가했다.
로이즈는 거품법이 1824년에 폐지됨으로써 해상 보험업의 독점을 무너뜨렸다. 1902년, 로이즈 가문에서 주요 인수 멤버였던 퍼시 조지 캘버트 번랜드가 재정 위기에 빠졌다. 영국의 조선업이 19세기 후반에 최고 점유율을 계속 기록했기 때문에 해상 보험 시장은 확대되었다. 건함 경쟁이 독일 제국과의 사이에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에서 로이즈는 조용히 쇠퇴하고 변화해 갔다.
1912년에는 두 건의 금융 스캔들이 있었다. 하나는 작년부터 런던 귀금속 시장에 참여했던 새뮤얼 몬태규라는 상업 은행이 잉글랜드 은행 및 정부와 협력하여 인도의 은 가격을 조작하여 하락시켰다는 타임스의 연재 기사인 인디아 실버 스캔들이다. 다른 하나는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우대하여 대영 제국의 무선망을 구축하고, 심지어 정부가 마르코니 사의 미국 자회사에 자본 참여를 했다는 마르코니 스캔들이다.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시티는 적국과의 경제 관계에 타격을 입었다. 전후 몽태규 노먼이 부흥에 활약했다. 그는 "시티의 교황"으로 불렸으며, 국제 결제 은행의 일원으로서 금본위제를 지지했다. 1924년 6월, 노먼은 영국을 금본위제로 복귀시키는 위원회를 만들고, 다음 달까지 9번 소집했다. 참여자는 오스틴 체임벌린 위원장, 아서 세실 피구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같은 경제학자, 전 재무 장관 로버트 혼, 레지날드 매케나 미들랜드 은행(현 HSBC) 회장, 런던 어음 교환소 가맹 은행의 대표자들, 상공 회의소 대표단, 그리고 경단련이다.[145] 이렇게까지 하여 금 해제를 한 결과, 영국은 세계 대공황으로 전례 없는 금 유출을 겪었다. 1931년 9월 21일 잉글랜드 은행이 금본위제 이탈을 발표했다. 1933년 소시에테 제네랄의 조지 볼턴이 잉글랜드 은행의 이사가 되었다. 1932년 6월 영국은 환율 평형 계정을 창설하여, 과격하게 파운드를 팔고, 정금과 프랑스 프랑과 미국 달러를 샀다. 후자 두 개는 즉시 태환되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1933년 3월에는 연방 준비 제도도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마치 1월에 독일 수상이 된 히틀러로부터 도망치듯이, 프랑스 은행에서 금이 흘러 나갔다. 1936년 9월 25일 프랑스도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이날 영국, 미국, 프랑스 3국 통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를 위해 볼턴이나 프랑스 은행 환율 거래 담당 등 국제 금융가들이 연계를 맺어왔다. 이 협정은 영불이 자국 통화의 대 달러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미국이 태환을 지속한다는 것이며, 그동안 이루어졌던 자국 통화의 평가 절하 경쟁에 마침표를 찍고 브레턴 우즈 협정의 초석이 되었다. 1937년 4월, 영불 양국 정부는 벨기에의 폴 판 제엘란트 수상에게 협정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연구를 의뢰했다.
시티의 취업 인구(주간 인구의 대부분)는 1961년 39.5만 명이었지만, 1986년에는 28만 명으로 감소했다. 집세의 급등이 상점 및 기타 시설을 시외로 이동시켰다.[147] 1961년부터 1986년까지의 기간은 대런던 의회가 있었던 기간과 겹친다. 초대 의장 빌 피스크는 잉글랜드 은행과 LLC에서 활약한 정치가였다. 1966년 말에 파운드 십진법 위원회 의장이 되었고, 이듬해 9월에 남작이 되었다. 이 대런던 의회가 폐지되고 시티를 포함한 런던 특별구가 권한을 회복하자, 빅뱅이 시작되어 머천트 뱅크와 스톡 조버가 차례로 인수되었다.
파운드 십진법의 채용은 완전한 교환성을 회복하기 위한 단계였다. 1958년의 교환성은 영국인과 국내 기업에 보장되지 않았다. 브로커와 조버가 각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전통적인 증권 시장이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볼턴이 육성한 유로 통화 시장이 정보 혁명이라는 순풍을 받아 시티의 신사들에게 덮쳤다. 1971년 닉슨 쇼크가 일어나고 8년 후 마거릿 대처가 수상이 되자마자 파운드의 거래 규제를 전면 철폐했다.
1986년 10월의 빅뱅이라는 규제 철폐도 젠틀맨의 오래된 성역에 발을 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브로커와 조버의 겸업 해금은 19세기로 되돌아가는 발상이었고, 이해 상충을 기정사실화하는 점은 투자 신탁과 유착한 미국 대자본의 수법과 흡사했다. 시티에 투하된 외자는 약한 산업을 육성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에 경제 효과도 그저 그랬다.
2. 4. 19세기와 20세기
19세기 초부터 런던은 모든 방향으로 확장되었고, 특히 런던 항의 급속한 성장과 철도 및 런던 지하철의 등장은 런던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될 수 있게 하였다. 19세기 중반, 런던의 인구와 면적이 빠르게 확장되면서 시티는 이미 더 넓은 대도시의 작은 부분이 되었다.[170]1885년 의석 재분배법에 따라 시티는 2명의 의원을 선출하였고, 1948년 인민 대표법에 따라 별도의 선거구가 아닌 런던과 웨스트민스터 시의 일부가 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대부분 동안, 사람들이 런던의 교외로 이주하면서 시티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으며, 많은 주거용 건물들이 사무실 건물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시티는 블리츠 기간을 포함하여 대규모의 파괴적인 공습을 받았다. 특히 1940년 12월 말의 공습은 제2차 런던 대화재라고 불리는 화재 폭풍으로 이어졌다.[170]
전후 재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 풍경이 바뀌었다. 파테르노스터 광장과 같이 전후 모더니즘적 변화를 되돌리려는 최근 추세도 있다.
시티는 1993년 비숍스게이트 폭탄 테러 (IRA)와 2005년 7월 7일 런던 폭탄 테러 (이슬람주의자)를 겪었다. 1993년 폭탄 테러에 대응하여, 시티의 진입 지점을 통제하기 위해 "철의 링"이 유지되어 왔다.[170]
1970년대에는 영국 최초의 고층 빌딩인 내셔널 웨스트민스터 타워를 포함한 고층 사무실 건물의 건설이 이루어졌다. 2010년대까지 사무실 공간 개발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30 성 마리 액스 ("거킨"), 리든홀 빌딩 ("치즈강판"), 20 펜처치 스트리트 ("워키토키") 등 고층 빌딩이 건설되었다.[170]
오늘날 시티의 주요 주거 지역은 1965년과 1976년 사이에 건설된 바비칸 부동산이다. 런던 박물관은 2023년 3월까지 거기에 있었으며, 2026년 웨스트 스미스필드로 재개장 예정이다.[24]
3. 지리
시티오브런던은 면적과 인구 면에서 잉글랜드에서 가장 작은 의례적 군이며, 인구 밀도는 네 번째로 높다. 326개 잉글랜드 구 중에서 실리 제도 다음으로 인구가 두 번째로 적고, 면적이 가장 작다. 또한 인구 면에서 잉글랜드에서 가장 작은 도시이며(영국에서는 웨일스에 두 개의 작은 도시만 있다), 면적 면에서 영국에서 가장 작은 도시이다.
시티의 고도는 템스강의 해수면에서 하이 홀본과 챈서리 레인의 교차로 지점까지이다.[50] 역사적 중심지 내에는 작지만 주목할 만한 언덕 두 개가 있는데, 서쪽에는 러드게이트 힐, 동쪽에는 콘힐이 있다. 그 사이에는 월브룩이 흘렀는데, 이는 런던의 많은 "잃어버린" 강이나 시내 중 하나이다(다른 하나는 플리트 강이다).
시티오브런던은 해양성 기후(쾨펜 기후 구분)를 보이며, 런던 중심부의 도시 열섬으로 인해 외곽 지역보다 야간 최저 기온이 높은 경향이 있다. 1990년 8월 4일에는 24°C로 영국에서 가장 따뜻한 야간 최저 기온을 기록했으며,[59] 최고 기온은 2003년 8월 10일에 기록된 37.6°C이다.[60] 최저 기온은[61] 로, 런던 외곽 지역의 보다 훨씬 높다.
시는 경계 내에 대규모 공원은 없지만, 핀스버리 서커스의 정원, 교회 묘지, 안뜰 등 다양한 소규모 개방 공간을 가지고 있다.[53] 다음은 시티오브런던 내 주요 정원 목록이다.
3. 1. 위치와 경계
로마 제국 군단은 서기 43년경 현재 시티오브런던 부지에 '런던디움'이라는 정착지를 건설했다.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도시를 도로 중심지와 주요 항구로 만들었고, 로마 시대 브리튼에서 5세기 동안 버려질 때까지 주요 상업 중심지 역할을 했다. 고고학자 레슬리 왈라스는 광범위한 고고학적 발굴에서 상당한 로마 이전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런던의 순수한 로마 기원 주장은 이제 흔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언급했다.[15]로마인들은 서기 190년에서 225년 사이에 런던 성벽을 건설했다. 로마 도시의 경계는 오늘날 시티오브런던의 경계와 유사했지만, 시티는 런던디움의 루드게이트보다 서쪽으로 더 확장되었고, 템스 강은 준설되지 않아 오늘날보다 더 넓었고, 런던디움의 해안선은 현재 도시 해안선보다 약간 북쪽에 있었다. 로마인들은 오늘날의 런던 브리지 근처에 서기 50년경 다리를 건설했다.

런던 시의 크기는 2세기 말 로마인들이 건설한 방어벽인 런던 성벽(London Wall)에 의해 제한되었다. 그러나 런던 시의 경계는 더 이상 옛 도시 벽과 일치하지 않는데, 시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할권을 약간 확장했기 때문이다. 중세 시대 동안, 시의 관할권은 서쪽으로 확장되어, 최초 정착지의 역사적인 서쪽 경계인 플리트 강을 플리트 스트리트를 따라 템플 바까지 넘어갔다. 시는 또한 홀본, 올더스게이트, 웨스트 스미스필드, 비숍스게이트, 올드게이트와 같이 옛 성벽 지역 바로 바깥에 위치한 다른 "시 바"를 포함했다.

1994년 4월 1일에 약간의 경계 변경이 있었으며, 이때 서쪽, 북쪽 및 동쪽으로 약간 확장되어 웨스트민스터, 캠던, 이즐링턴, 해크니 및 타워 햄리츠에서 작은 토지 구획을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시는 작은 토지 구획을 잃었지만 전체적인 순이익이 있었다(시는 약 2.72km2에서 약 2.90km2로 성장했다). 특히, 변경 사항으로 (당시 최근 개발된) 브로드게이트 부지가 완전히 시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43]
서쪽에서 시작하여 시티가 웨스트민스터와 경계를 이루는 곳에서, 경계는 템스강에서 빅토리아 엠뱅크먼트를 가로질러 미들 템플의 서쪽을 지나 짧은 거리를 스트랜드를 따라, 템플 바 근처를 지나 북쪽으로 챈서리 레인을 따라가며, 여기에서 캠던과 경계를 이룬다. 홀번을 따라 동쪽으로 돌아서 홀번 서커스로 향한 다음 북동쪽으로 가서 차터하우스 스트리트로 간다. 패링던 로드를 건너면서 이즐링턴과의 경계가 된다. 올더스게이트로 계속 이동하여 북쪽으로 간 다음, 올더스게이트가 고즈웰 로드가 된 직후 뒷골목으로 동쪽으로 향하며, 1994년부터 시의 골든 레인 부동산 전체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곳, 발틱 스트리트 웨스트에서 가장 북쪽으로 뻗어 있다. 경계에는 바비칸 부동산 전체가 포함되며, 무어게이트 반대편의 로프메이커 스트리트와 그 연장선을 따라 동쪽으로 계속 이동하여 사우스 플레이스가 된다. 북쪽으로 가서 해크니와 경계에 도달한 다음, 뒷골목에서 동쪽, 북쪽, 동쪽으로 이동하며, 워십 스트리트가 북쪽 경계를 형성하여 브로드게이트 부동산을 포함한다. 그런 다음 경계는 노턴 폴게이트에서 남쪽으로 돌아서 타워 햄리츠와의 경계가 된다. 비숍스게이트로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서 뒷골목을 지나 미들섹스 스트리트(페티코트 레인)로 가서 남동쪽으로, 그 다음 남쪽으로 계속 간다. 그런 다음 남서쪽으로 돌아서 미노리스를 가로질러 런던 타워를 제외한 다음, 템스강에 도달한다.
그 다음 경계는 템스강의 간조 수로 중앙을 따라 흐르며, 블랙프라이어스 다리(다리 아래의 강과 남쪽 끝의 육지를 포함)는 전체가 시티에 속하며, 시티와 리치몬드 어폰 템스 자치구는 런던에서 강 북쪽과 남쪽에 걸쳐 있는 유일한 구역이 된다는 예외가 있다. 런던 브리지의 경간과 남쪽 받침은 일부 목적상 시티의 일부이다.[51]
경계는 시의 문장이 새겨진 검은색 볼라드와 홀번과 런던 브리지 남쪽 끝과 같은 주요 입구에 있는 Dragon boundary mark|드래곤 경계 표지영어로 표시되어 있다. 더 튼튼한 기념비가 플리트 스트리트의 템플 바에 경계를 표시하고 있다.
3. 2. 기후
시는 런던 중심부의 도시 열섬에 의해 수정된 해양성 기후(쾨펜 "Cfb")를 보인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외곽 지역보다 더 높은 야간 최저 기온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8월 평균 최저 기온[55]은 14.7°C로, 그리니치[56]와 히드로[57]의 13.3°C, 수도권 그린 벨트 한가운데 위치한 위즐리[58]의 11.6°C와 비교된다. 모든 수치는 1971~2000년 관측 기간을 나타낸다.이 기상 관측소는 1990년 8월 4일에 기록된 24°C로 영국에서 가장 따뜻한 야간 최저 기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59] 최고 기온은 2003년 8월 10일에 기록된 37.6°C이다.[60] 기상 관측소의 절대 최저 기온[61]은 에 불과하며, 런던 외곽 지역에서는 정도의 기온이 측정된다. 특이하게도, 이 낮은 온도는 맑은 추운 밤이 아닌 바람이 많이 불고 눈이 내리는 추운 시기(1987년 1월 중순)에 기록되었는데, 이는 도시를 둘러싼 광대한 도시 지역 때문에 찬 공기 배출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이 기상 관측소는 영국 최고 평균 월간 기온 기록[62] 24.5°C(2006년 7월 평균 최고 기온 29.2°C, 평균 최저 기온 19.7°C)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일중 최고 기온 측면에서는 케임브리지 NIAB[63]와 보타니컬 가든스[64]가 평균 최고 기온 29.1°C를 기록했고, 히드로[65]가 29°C를 기록하여 이를 넘어섰다.
3. 3. 공원과 녹지 공간

런던 시는 경계 내에 상당한 규모의 공원이 없지만, 다수의 정원과 작은 개방 공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많은 곳이 런던 시청에서 관리한다. 이들은 핀스버리 서커스의 볼링장과 음악대 연주대가 있는 정식 정원에서부터 세인트 올라브 하트 스트리트와 같은 교회 묘지, 안뜰과 보행자 전용 도로의 물 특징과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53]
정원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규모 상업 개발 단지의 안뜰 내에는 다수의 개인 정원과 개방 공간이 있다. 가장 큰 곳 중 두 곳은 맨 서남쪽에 있는 이너 템플과 미들 템플 법학원의 정원이다.
템스강과 강변 산책로는 점점 더 개방 공간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보행자가 강을 따라 접근하고 산책할 수 있는 능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4. 인구
국가 통계청에 따르면, 2011년 시티오브런던의 인구는 7,375명으로, 2001년 영국 인구 조사 때보다 약간 증가했다.[73][74] 2016년 중반에는 9,401명으로 추정되었다. 2001년 인구 조사에서 민족 구성은 백인 84.6%, 남아시아인 6.8%, 흑인 2.6%, 혼혈 2.3%, 중국인 2.0%였으며, 1.7%는 "기타"로 분류되었다.[74]
1801년 이후 인구 변화는 10년 단위 인구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전반기에는 12만에서 14만 명 사이였으나, 1851년부터 1991년까지 급격히 감소했고, 1991년에서 2001년 사이에 소폭 증가했다. 1994년에는 주목할 만한 경계 변화가 있었다.
시티오브런던의 풀타임 근무 거주자들은 런던 및 영국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은 주당 총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성별 간 소득 불평등이 크며, 이는 직업 유형 및 고용 기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75]
2001년 인구 조사는 시티오브런던을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조사한 376개 구역 중 독특한 구역으로 나타냈다.[74] 시는 비례적 인구 증가, 1인 가구, 학사 학위 이상 자격 소지자, 과밀 지표가 가장 높았다.[74] 반면, 자동차 또는 밴이 있는 가구,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사람들, 부부 가구의 비율이 가장 낮았고, 가구 평균 규모는 1.58명으로 가장 작았다.[74] 또한 종교가 없는 사람과 고용된 사람의 비율에서 대런던 지역 내에서 가장 높았다.[74]
다음은 1801년부터 2021년까지의 인구 변화를 나타낸 표이다.
연도 | 인구 |
---|---|
1801 | 130,117 |
1811 | 122,924 |
1821 | 127,040 |
1831 | 125,353 |
1841 | 127,514 |
1851 | 132,734 |
1861 | 108,078 |
1871 | 83,421 |
1881 | 58,764 |
1891 | 43,882 |
1901 | 32,649 |
1911 | 24,292 |
1921 | 19,564 |
1931 | 15,758 |
1941 | 10,920 |
1951 | 7,568 |
1961 | 5,718 |
1971 | 4,325 |
1981 | 4,603 |
1991 | 3,861 |
2001 | 7,186 |
2011 | 7,375 |
2021 | 8,600 |
다음은 시티오브런던의 민족 구성 변화를 나타낸 표이다.
민족 집단 | 연도 | |||||||||
---|---|---|---|---|---|---|---|---|---|---|
1981년 추정[76] | 1991년[77] | 2001년[78] | 2011년[79] | 2021년[80] | ||||||
수 | % | 수 | % | 수 | % | 수 | % | 수 | % | |
백인: 전체 | 3,732 | 95.5% | 3,840 | 92.7% | 6,075 | 84.6% | 5,799 | 78.5% | 5,955 | 69.4% |
영국인 | – | – | – | – | 4,909 | 68.3% | 4,243 | 57.5% | 3,649 | 42.5% |
아일랜드인 | – | – | – | – | 241 | 180 | 2.4% | 185 | 2.2% | |
집시 또는 아일랜드 여행자 | – | – | – | – | 3 | 0.0% | 0 | 0.0% | ||
로마인 | – | – | 59 | 0.7% | ||||||
기타 | – | – | – | – | 925 | 12.8% | 1,373 | 18.6% | 2,062 | 24.0% |
아시아인 또는 아시아계 영국인: 전체 | – | – | 217 | 5.2% | 638 | 8.9% | 940 | 12.5% | 1,445 | 16.7% |
인도인 | – | – | 69 | 1.7% | 159 | 2.2 % | 216 | 2.9% | 321 | 3.7% |
파키스탄인 | – | – | 20 | 0.5% | 23 | 0.3 % | 16 | 0.2% | 33 | 0.4% |
방글라데시인 | – | – | 9 | – | 276 | 3.8 % | 232 | 3.1% | 287 | 3.3% |
중국인 | – | – | 56 | 1.3% | 147 | 2 % | 263 | 3.5% | 545 | 6.3% |
기타 아시아인 | – | – | 63 | 1.5% | 33 | 213 | 2.8% | 259 | 3.0% | |
흑인 또는 흑인 영국인: 전체 | – | – | 38 | 0.9% | 184 | 2.6% | 193 | 2.5% | 232 | 2.7% |
아프리카인 | – | – | 12 | 0.3% | 117 | 1.6 % | 98 | 1.3% | 153 | 1.8% |
카리브인 | – | – | 12 | 0.3% | 51 | 46 | 0.6% | 54 | 0.6% | |
기타 흑인 | – | – | 14 | 0.3% | 16 | 49 | 0.6% | 25 | 0.3% | |
혼혈 또는 영국 혼혈: 전체 | – | – | – | – | 163 | 2.3% | 289 | 3.8% | 470 | 5.5% |
백인 및 흑인 카리브인 | – | – | – | – | 33 | 38 | 0.5% | 53 | 0.6% | |
백인 및 흑인 아프리카인 | – | – | – | – | 16 | 37 | 0.5% | 49 | 0.6% | |
백인 및 아시아인 | – | – | – | – | 57 | 111 | 1.5% | 179 | 2.1% | |
기타 혼혈 | – | – | – | – | 57 | 103 | 1.3% | 189 | 2.2% | |
기타: 전체 | – | – | 47 | 1.1% | 125 | 1.7% | 154 | 2% | 482 | 5.6% |
아랍인 | – | – | – | – | 69 | 0.9% | 114 | 1.3% | ||
기타 민족 집단 | – | – | 47 | 1.1% | 125 | 1.7 % | 85 | 1.1% | 368 | 4.3% |
소수 민족: 전체 | 177 | 4.5% | 302 | 7.3% | 1,110 | 15.4% | 1,576 | 21.5% | 2,629 | 30.6% |
전체 | 3,909 | 100% | 4,142 | 100% | 7,185 | 100% | 7,375 | 100% | 8584 | 100% |
5. 정치 및 행정
시티오브런던은 런던 시 법인(City of London Corporation)이 관리하며, 런던 시장(Lord Mayor of London)이 그 수장이다. 런던 시장은 2000년에 신설된 런던 시장(Mayor of London)과는 다른 직책이다. 시는 자체 경찰 조직인 런던 시 경찰(City of London Police)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런던의 다른 지역을 관할하는 런던 경시청과는 별개이다. 런던 시 경찰은 스노우힐, 우드 스트리트, 비숍스게이트 3곳에 경찰서를 두고 있으며, 813명의 경찰관과 85명의 특별 순경, 그리고 48명의 보조 경찰관이 근무하고 있다. 런던 시 경찰은 관할 범위와 경찰관 수에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가장 작은 경찰 조직이다.[153]
영국 대다수의 경찰관은 은색 배지를 착용하지만, 시 경찰의 배지는 시의 문장을 바탕으로 한 흑금색 도안을 사용한다. 또한, 시 경찰은 적백 체크무늬의 캡 밴드나, 순경 및 순경 부장의 제복 상의 소매에 부착하는 적백 스트라이프 형태의 직무용 완장을 사용하는 등, 영국 대부분의 경찰의 흑백 배색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시 경찰의 순경과 순경 부장은 도보 순찰 시 깃털 장식이 달린 커스터디언 헬멧을 착용하는데, 여기에는 브런즈윅스터가 부착되어 있지 않다.
시티오브런던은 세인트 폴 대성당, 올드 베일리Old Bailey영어, 맨션 하우스, 스미스필드 마켓, 길드홀 등 화재 위험이 있는 건물과 장소가 많다. 그러나 시 내부에는 다우게이트에 런던 소방청의 소방차 1대만 배치되어 있어,[154] 주변 자치구 소방서의 지원을 받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시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응하는 첫 번째 소방차는 평균 약 5분 이내에, 두 번째 소방차는 약 5분 후반에 현장에 도착한다.[118] 2006년 시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1,814건으로 런던 32개 자치구 중 가장 적었고, 2007년까지 4년간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없었다.[118]
5. 1. 거버넌스
시는 고유한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앵글로색슨 시대부터 법인 도시로서의 끊임없는 완전성과 왕관과의 독특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시의 정부 시스템은 특이한 것은 아니었지만, 1835년 지방 자치 단체법에 의해 개혁되지 않았고, 이후 개혁으로 거의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에서 모든 성인 시민에게 투표권이 1표씩 주어지는 방식으로 선거가 치러지지 않는 유일한 지방 정부이다.런던 시 법인에서 관리하며, 런던 시장이 수장이다(2000년에 신설된 별도의 런던 시장과는 혼동하지 말 것). 런던 시 법인은 여러 기능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 경계를 넘어 토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잉글랜드 지방 당국과 달리, 런던 시 법인은 엘더맨 법정과 평의회 법정의 두 의회 기구를 가지고 있다. 엘더맨 법정은 구를 대표하며, 각 구는 (규모에 관계없이) 한 명의 엘더맨을 선출한다. 런던 시 법인의 최고 경영자는 고대 직책인 런던 시 서기를 맡고 있다.
시는 부시장 대신 런던 시장이 수장으로 있는 위임 위원회를 가지고 있으며, 고위 보안관 대신 두 명의 보안관을 두고 있는 의례적인 카운티이다(런던 보안관 목록 참조). 이들은 리버리 컴퍼니에서 임명하는 준 사법 직책이며, 무역(길드)의 대표 및 보호에 기반한 고대 정치 시스템이다. 리버리 컴퍼니의 고위 구성원은 리버리맨으로 알려져 있으며, 런던 시장, 보안관 및 기타 특정 임원을 선택하는 커먼 홀을 구성한다.



시티 내에서 법인(Corporation)은 스미스필드 마켓과 리든홀 마켓을 소유하고 운영한다. 법인은 경계 밖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런던 광역권 주변의 개방 공간 (공원, 숲 및 공유지)이 포함되며, 에핑 포리스트와 햄스테드 히스의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된다. 법인은 이웃한 타워 햄리츠 런던 자치구에 있는 올드 스피탈필즈 마켓과 빌링스게이트 피쉬 마켓을 소유하고 있다. 법인은 올드 베일리, 즉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중앙 형사 법원을 국가에 대한 기증으로 소유하고 기금을 지원하며, 이는 시티 및 미들섹스 세션으로 시작되었다. 법인과 밀접하게 연관된 기관인 명예 아일랜드 협회는 북아일랜드에도 많은 공공 장소를 소유하고 있다.
시티는 자체 독립 경찰력인 런던 시 경찰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의회(법인의 주요 기구)는 경찰 권한이다.[40] 법인은 또한 햄스테드 히스 경찰, 에핑 포리스트 감시관 및 런던 시 시장 경찰 (그 구성원은 더 이상 치안 판사로 증명되지 않지만 역사적인 칭호를 유지함)을 운영한다. 런던 광역권의 대부분은 뉴 스코틀랜드 야드에 본부를 둔 런던 경시청에서 치안을 담당한다.
시티에는 '바츠'라고도 불리는 병원 하나, 세인트 바르톨로뮤 병원이 있다. 1123년에 설립된 이 병원은 스미스필드에 위치해 있으며, 1990년대에 지속적인 사용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후 오랫동안 기다려온 재건축을 진행하고 있다.
시티는 영국에서 세 번째로 큰 예술 후원자이다. 시티는 바비칸 센터를 감독하고 여러 중요한 공연 예술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법인의 책임인 런던 항만 보건 당국은 템스 강의 조수 부분, 런던 항구 및 관련 항만, 런던 시티 공항에 대한 모든 항만 보건 기능을 담당한다.[41] 법인은 브리지 하우스 부동산을 감독하며, 이는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밀레니엄 브리지, 사우스워크 다리, 런던 브리지 및 타워 브리지를 유지 관리한다. 시의 기는 타워 브리지 위로 게양되지만, 다리의 어느 쪽 발도 시티에 속하지 않는다.[42]
시티는 그레이터 런던의 다른 지역을 관할하는 런던 경시청과는 별도로, 자체 경찰 조직인 런던 시 경찰을 조직하고 있다. 런던 시 경찰은 스노우힐, 우드 스트리트, 비숍스게이트 3곳에 경찰서를 두고 있으며, 813명의 경찰관과 85명의 특별 순경, 그리고 48명의 보조 경찰관이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관할 구역은 시티 오브 런던 전역뿐이며,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있는 경찰 조직 중에서는 관할 범위와 경찰관 인원수 면에서 모두 가장 작다.
영국 대다수의 경찰관은 은색 배지를 착용하지만, 시 경찰의 배지는 시의 문장을 기조로 한 흑금색 도안이 적용되어 있다. 그 외에도, 적백 체크무늬의 캡 밴드나, 순경 및 순경 부장의 제복 상의 소매에 부착하는 적백 스트라이프 형태의 직무용 완장 등, 영국 대부분의 경찰에서는 흑백 배색인 반면 시 경찰에서는 적백 배색으로 제작된 것들이 있다. 시 경찰의 순경과 순경 부장은 도보 순찰 시, 깃털 장식이 달린 커스터디언 헬멧을 착용한다. 이 헬멧에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많은 경찰용 헬멧에 사용되는 브런즈윅스터[153]는 부착되어 있지 않다.
시티오브런던은 세인트 폴 대성당, Old Bailey|올드 베일리영어, 맨션 하우스, 스미스필드 마켓, 길드홀, 그리고 많은 고층 건물을 포함하여 모든 건물과 장소에서 화재 위험이 있다. 그러나 시티 내부에는 다우게이트에 런던 소방청의 소방차 1대가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154] 따라서 시티는 주변 자치구에 있는 소방서에 의존하여 화재 발생 시 소화 활동 등의 지원을 받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시티에서 발생한 화재에 대응하는 첫 번째 소방차는 평균 약 5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하며, 요청에 따라 파견되는 두 번째 소방차는 신고 후 약 5분 후반에 도착한다.[118] 2006년 시티에서 발생한 화재 건수는 1,814건으로 런던 32개 자치구 중 가장 적었다. 2007년까지 4년간 시티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사망자는 0명이었다.[118]
5. 2. 선거 제도
시는 독특한 선거 제도를 가지고 있다. 시의 유권자 대부분은 시에 사업체와 기타 단체를 운영하는 대표자들이다. 고대 구획(ward)은 유권자 수가 매우 불균등하다. 선거에서 시에 기반을 둔 사업체와 시 거주자 모두 투표한다.런던 시청은 다른 자치구 또는 도시보다 더 광범위한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835년 자치단체법에 의해 개혁되지 않았다. 실제로 런던 시청은 자유시민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자체적인 동등한 법률을 통해 이 권한을 더욱 확대했으며, 리버리맨이 아니어도 가능했다. 1801년 시의 인구는 약 13만 명이었지만, 중앙 상업 지구로서의 시 개발이 증가함에 따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5,000명 미만으로 감소했다. 바비칸 부동산 개발로 인해 그 이후 9,000명 정도로 약간 증가했다. 2009년 사업체 투표는 약 24,000명으로 거주 유권자를 크게 초과했다.[33] 런던 시청은 그 이후 다른 지방 자치 법률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선거 관행이 점점 더 비정상적이 되었다. 도시 또는 자치구 선거에서 유일하게, 선거는 여전히 무소속이 지배적이다.
영국 내 다른 지방 의회 선거에서는 1969년 인민 대표법에 의해 사업체 또는 "비거주자 투표"가 폐지되었지만 런던 시에서는 유지되었다. 사업체에 대표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 방식을 유지하는 데 대해 역대 영국 정부가 제시한 주된 이유는 시가 "주로 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34] 약 33만 명의 비거주자가 주간 인구를 구성하고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하며, 약 7,000명(2011년)의 거주자를 훨씬 능가한다. 반면에 사업체 투표 유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제도적 관성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35]
2002년 런던 시(구획 선거)법은 국회 사법 법률로,[36] 투표 제도를 개혁하고 사업체 선거권을 크게 확대하여 더 많은 사업체가 대표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시스템에 따라 비거주 유권자 수는 16,000명에서 32,000명으로 두 배로 증가했다. 이전에 선거권을 박탈당한 기업(및 기타 단체)은 이미 대표된 사람 외에 유권자를 지명할 자격이 있으며, 모든 단체는 이제 대표적인 방식으로 유권자를 선택해야 한다.
직원 수 | 유권자 수 |
---|---|
10명 미만 | 1명 |
10~50명 | 직원 5명당 1명 |
50명 이상 | 10명 + 50명 초과 50명당 1명 |
이 법은 또한 1957년부터 시의 선거와 관련된 이전 법의 다른 측면도 변경했다.
5. 3. 구(Wards)
런던 시는 25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중세 시대부터 이어져 온 행정 구역으로, 각 구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다.[25] 각 구는 앨더맨을 선출하는데, 1960년대 중반까지는 종신직이었으나[26] 현재는 최소 6년마다 재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는 영국에서 유일하게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앨더맨이다. 각 구에는 비들이라는 직책이 있는데, 현재는 주로 의례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매년 구민회를 운영한다.[27] 구민회에서는 앨더맨이 부관을 임명하고, 선거 기간에도 구민회가 열린다. 각 구에는 주민 협회와 비슷한 구 클럽도 있다.[28]구의 수는 역사적으로 세 번 변경되었다.
- 1394년 패링던이 패링던 이너와 패링던 아웃으로 분리되었다.
- 1550년 강 남쪽에 사우스워크인 브리지 아웃 구가 신설되고, 브리지 구는 브리지 이너가 되었다.[29]
- 1978년 브리지 구가 브리지 구로 통합되었다.[30]
1994년 경계 변경과 2003년 사업체 투표 개혁 이후 구의 경계와 선거 대표에 큰 변화가 있었다. 2010년에는 2013년 변경을 위한 검토가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구 검토는 시의 고위 관리와 올드 베일리의 고위 판사가 담당하며,[31] 불균등 대표를 막기 위해 실시된다. 이는 선거 위원회 등이 수행하는 다른 영국의 구 검토와는 다른 독특한 방식이다. 특정 교회, 리버리 컴퍼니 홀, 역사적 건물 등이 구와 관련되어 있었으나, 2003년 경계 변경으로 일부 연결이 제거되었다.
각 구는 앨더맨 회의에 앨더맨을, 시의회에 평민 (시의 시의원에 해당)을 선출한다. 런던 시의 자유인만이 후보 자격이 있다. 구가 시의회에 보내는 평민의 수는 2명에서 10명까지 다양하다. 2003년 검토 이후 주거 구역인 포츠켄, 퀸히스, 앨더스게이트, 크리플게이트는 100명의 평민 중 20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구역에서 80명을 선출한다. 2003년과 2013년 경계 변경으로 이 4개 구의 주거 비중이 증가했다.
인구 조사 데이터는 25개의 실제 구가 아닌 8개의 명목 구를 사용하며, 크기와 인구가 다르다. 이 '구'는 언제든 변경될 수 있으며, 4개의 구가 런던 시 면적의 67%와 인구의 86%를 차지한다.[32]
인구 조사 구 | 런던 시 % | 거주자 | 건축 면적 % | |
---|---|---|---|---|
상업 | 주거 | |||
크리플게이트 (바비칸 지역 동쪽 절반) | 10.0% | 2,782 | 79% | 21% |
앨더스게이트 (바비칸 지역 서쪽 절반) | 4.5% | 1,465 | 81% | 19% |
패링던 아웃 (및 캐슬 베이너드의 대부분) | 22.1% | 1,099 | 90% | 10% |
포츠켄 (앨드게이트 지하철역 포함) | 6.6% | 985 | 86% | 14% |
시는 독특한 선거 제도를 가지고 있다. 유권자 대부분은 시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자들이다. 고대 구획은 유권자 수가 매우 불균등하다. 선거에서는 사업체와 거주자 모두 투표한다.
런던 시는 다른 자치구보다 더 광범위한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835년 자치단체법의 개혁 대상이 아니었다. 런던 시는 자유시민 제도를 통해 이 권한을 더욱 확대했다. 1801년 시의 인구는 약 13만 명이었으나, 상업 지구로 발전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5,000명 미만으로 감소했다. 바비칸 부동산 개발로 9,000명 정도로 증가했다. 2009년 사업체 투표는 약 24,000명으로 거주 유권자를 크게 초과했다.[33] 런던 시는 다른 지방 자치 법률의 영향을 받지 않아 선거 관행이 비정상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도시 또는 자치구 선거에서 유일하게 무소속이 지배적이다.
1969년 인민 대표법에 의해 다른 지방 의회 선거에서는 사업체 투표가 폐지되었지만, 런던 시에서는 유지되었다. 영국 정부는 시가 "주로 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34] 사업체 대표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 33만 명의 비거주자가 주간 인구를 구성하고 대부분의 서비스를 이용하며, 약 7,000명의 거주자보다 훨씬 많다. 그러나 사업체 투표 유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제도적 관성 때문이라고 주장한다.[35]
2002년 런던 시(구획 선거)법은 국회 사법 법률로,[36] 투표 제도를 개혁하고 사업체 선거권을 확대하여 더 많은 사업체가 대표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시스템에서 비거주 유권자 수는 16,000명에서 32,000명으로 증가했다. 이전에는 선거권이 없던 기업도 유권자를 지명할 수 있게 되었고, 모든 단체는 대표적인 방식으로 유권자를 선택해야 한다. 직원 수에 따라 유권자 수를 정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 10명 미만: 1명
- 10~50명: 직원 5명당 1명
- 50명 이상: 10명 + 50명 초과 50명당 1명
6. 경제
런던 경제도 참조
시티오브런던은 뉴욕 로어 맨해튼과 경쟁하는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이다. 런던 증권 거래소 (주식, 채권), 로이즈 오브 런던 (보험), 영국 은행 등이 이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81] 500개 이상의 은행이 이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소규모 기업의 자본금을 거래하는 대체 투자 시장도 최근 개발되었다. 2009년 시티오브런던은 영국 GDP의 2.4%를 차지했다.[14]
런던의 외환 시장은 로이터 통신에 의해 '런던 금융 부문의 핵심'으로 묘사되었다.[82] 2009년 기준 일일 세계 거래액 39.8조달러 중 런던에서의 거래는 약 18.5조달러로, 전체의 46.7%를 차지했다.[14] 파운드 스털링은 영국 통화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83]이자 네 번째로 많이 보유된 준비 통화이다.[84]
타워햄리츠의 시티에서 몇 마일 동쪽에 있는 카나리 워프는 1991년 이후 많은 은행 및 기타 기관들이 이전하면서 런던 금융 서비스 산업의 또 다른 중심지가 되었다.
금융 부문과 관련 기업 및 기관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는 금융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법률 전문직은 특히 서부와 북부(예: 변호사 협회)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소매업은 한때 중요했지만 점차 런던 웨스트엔드로 이동했다. 그러나 현재 시는 세인트 폴 대성당 근처 칩사이드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 소매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시는 역사적 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관광 명소와 바비칸 센터, 인접한 런던 박물관을 가지고 있지만, 관광은 현재 시 경제나 특징에 주요 기여를 하고 있지는 않다. 시에는 많은 술집, 바, 레스토랑이 있으며, 비숍스게이트 지역, 쇼디치 방향으로 "야간" 경제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시 내에 있는 스미스필드 마켓은 런던의 주요 시장(중앙 런던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시장)이자 영국 최대 육류 시장이다. 동쪽에는 방문객 명소이기도 한 신선 식품 시장인 리든홀 마켓이 있다.
2022년, 시티오브런던 주민의 12.3%는 영국에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비거주자 지위를 부여받았다.[85]
6. 1. 금융 중심지
16세기 후반, 런던은 금융, 국제 무역,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1565년 토마스 그레샴 경은 런던 상인들을 위한 상업 중심지로 로열 익스체인지를 설립했고, 1571년에 왕실의 후원을 받았다.[81] 콘힐과 스레드니들 스트리트의 교차로에 위치한 로열 익스체인지는 런던의 금융 및 은행 서비스의 지리적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잉글랜드 은행은 1734년 로열 익스체인지 맞은편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롬바드 스트리트는 1691년부터 세계 최고의 보험 시장이 된 로이즈 커피하우스가 있던 곳이었다. 런던의 보험 부문은 라임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시티오브런던은 세계 최고의 금융 중심지라는 점에서 뉴욕시의 로어 맨해튼과 경쟁한다. 런던 증권 거래소 (주식 및 채권), 로이즈 오브 런던 (보험) 및 영국 은행이 모두 이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81] 500개 이상의 은행이 이 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대체 투자 시장은 소규모 기업의 자본금을 거래하는 시장으로 최근 개발되었다. 2009년 시티오브런던은 영국 GDP의 2.4%를 차지했다.[14]
런던의 외환 시장은 로이터 통신에 의해 '런던 금융 부문의 핵심'으로 묘사되었다.[82] 2009년에 측정된 일일 세계 거래액 39.8조달러 중 런던에서의 거래는 약 18.5조달러, 즉 전체의 46.7%를 차지했다.[14] 파운드 스털링은 영국의 통화로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83]이자 네 번째로 많이 보유된 준비 통화이다.[84]

많은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시티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는 아비바(Aviva),[86] BT 그룹(BT Group),[87] 로이즈 뱅킹 그룹(Lloyds Banking Group),[88] 퀼터(Quilter plc), 프루덴셜(Prudential plc),[89] 슈로더스(Schroders plc),[90]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 Bank),[91] 및 유니레버(Unilever PLC)가 포함된다.[92]
세계 최대 로펌 중 다수가 시티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여기에는 "매직 서클" 로펌 4곳 (앨런 앤 오버리(Allen & Overy), 프레쉬필즈 브루크하우스 데링거(Freshfields Bruckhaus Deringer), 링크레이터스(Linklaters) 및 슬로터 앤 메이(Slaughter & May))과 애셔스트(Ashurst LLP), DLA 파이퍼(DLA Piper), 에버셰드 서덜랜드(Eversheds Sutherland),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Herbert Smith Freehills) 및 호건 로벨스(Hogan Lovells)와 같은 기타 로펌이 포함된다.
런던 금융 시장은 3대 금융 시장 중 하나이자 세계 금융의 중심지이다. 런던 증권 거래소, 세계적인 보험 시장이자 법인명인 로이즈, 잉글랜드 은행, 2004년까지 금의 가격을 결정하던 "뉴 코트(New Court)"라고 불리는 로스차일드 & 컴퍼니,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영국 4대 은행"으로 불리는 로이즈 은행(Lloyds Bank)을 보유한 로이즈 뱅킹 그룹이 본사 기능을 두고 있다. 일본 법인으로는 노무라 증권, 미즈호 금융 그룹, 미쓰이 스미토모 금융 그룹, 미쓰비시 UFJ 자산 운용 등 미쓰비시 UFJ 금융 그룹 등이 EMEA 거점 기능을 두고 있다.
2019년에는 파이낸셜 타임스 본사가 템스 강 건너편의 사우스워크 구에서 1980년대까지 입주해 있던 시티의 브래컨 하우스(Bracken House)로 돌아왔다.
6. 2. 기타 산업
법률 전문직은 특히 시티 서부와 북부(예: 변호사 협회)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소매업은 한때 중요했지만 점차 런던 웨스트 엔드로 이동했다. 그러나 현재 시는 세인트 폴 근처 칩사이드와 같은 일부 지역에서 소매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시는 역사적 유산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관광 명소와 바비칸 센터, 인접한 런던 박물관을 가지고 있지만, 관광이 시티 경제나 특징에 주요 기여를 하고 있지는 않다. 시에는 많은 술집, 바, 레스토랑이 있으며, 비숍스게이트 지역, 쇼디치 방향으로 "야간" 경제가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시 내에 위치한 스미스필드 육류 시장은 런던의 주요 시장(중앙 런던에 남아 있는 유일한 시장)이자 영국의 가장 큰 육류 시장이다. 동쪽에는 방문객 명소이기도 한 신선 식품 시장인 리든홀 마켓이 있다.
시는 순수 사무실 개발 추세에서 벗어나 주거용 사용을 장려하고 있으며, 우발적인 부지에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는 연간 90가구의 추가 주택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93] 추가 주택의 일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소규모 지정 건축물에 있으며, 이는 현재 시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대기업이 점유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1990년대 이후 시는 거의 독점적인 사무실 사용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했다. 예를 들어, 여러 호텔과 최초의 백화점이 2000년대에 문을 열었다. 2010년 10월에는 세인트 폴 대성당 근처 치프사이드(Cheapside)에 원 뉴 체인지(One New Change) 쇼핑 센터가 개장하여 주 7일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특히 동쪽 지역에서는 주말에 상당한 구역이 조용하게 유지되며, 상점, 선술집, 카페가 문을 닫는 경우도 흔하다.
6. 3. 경제적 과제
런던 경제도 참조시티오브런던은 뉴욕의 로어 맨해튼과 경쟁하는 세계 최고의 금융 중심지이다. 런던 증권 거래소 (주식 및 채권), 로이즈 오브 런던 (보험) 및 영국 은행이 모두 이 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다.[81] 이 도시에는 500개 이상의 은행이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소규모 기업의 자본금을 거래하는 대체 투자 시장이 최근 개발되었다. 2009년 시티오브런던은 영국 GDP의 2.4%를 차지했다.[14]
로이터 통신은 런던의 외환 시장을 '런던 금융 부문의 핵심'으로 묘사했다.[82] 2009년에 측정된 일일 세계 거래액 3.98조달러 중 런던에서의 거래는 약 1.85조달러로, 전체의 46.7%를 차지했다.[14] 영국의 통화인 파운드 스털링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통화이자[83] 네 번째로 많이 보유된 준비 통화이다.[84]
시티에서 몇 마일 동쪽에 위치한 타워 햄리츠의 카나리 워프는 1991년 이후 스퀘어 마일에 있던 많은 은행 및 기타 기관들이 입주하면서 런던 금융 서비스 산업의 또 다른 중심지가 되었다. 두 지역 모두에서 성장이 계속되었지만, 양방향으로 이전이 있었고, 시는 계획 정책이 금융 회사가 카나리 워프를 위치로 선택하도록 유도했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2022년, 시티오브런던 주민의 12.3%는 영국에서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비거주자 지위를 부여받았다.[85]
7. 교통
시티오브런던은 런던 지하철, 내셔널 레일, 도클랜즈 경전철(DLR), 템스링크 등 다양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선은 시티오브런던의 패링던역과 리버풀 스트리트역을 운행하며,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가는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도 이용할 수 있다. 시티오브런던은 런던 혼잡 통행료 구역에 속하며, 런던 내곽 순환도로의 일부가 지난다.
템스강에는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런던 브리지 등 여러 다리가 있으며, 런던 리버 서비스의 블랙프라이어스 밀레니엄 부두가 있다. 월브룩 부두는 강을 통해 폐기물을 이송하는 데 사용된다.
시티오브런던에서는 사이클웨이와 산탄데르 사이클 및 베릴 자전거 공유 시스템을 통해 자전거를 이용하기 편리하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템스 패스는 산책로로 이용된다.
2011년 3월 조사에 따르면, 시티오브런던의 고용된 거주자(16~74세)의 출근 방법은 다음과 같다.
출근 방법 | 비율 |
---|---|
도보 | 48.4% |
경전철(지하철, DLR 등) | 19.5% |
주로 재택근무 | 9.2% |
기차 | 5.8% |
버스, 미니버스 또는 코치 | 5.6% |
자전거 | 5.3% |
자가용 또는 밴(운전자 또는 동승자) | 3.4% |
7. 1. 대중교통

시티오브런던은 런던 지하철(튜브)과 내셔널 레일 네트워크의 혜택을 받고 있다.[95]
7개의 런던 지하철 노선이 시티오브런던을 운행하며, 지하철역은 다음과 같다.[95]
- 올드게이트
- 뱅크 앤 모뉴먼트
- 바비칸
- 블랙프라이어스
- 캐논 스트리트
- 챈서리 레인
- 리버풀 스트리트
- 맨션 하우스
- 무어게이트
- 세인트 폴스
또한, 올드게이트 이스트, 패링던, 템플 및 타워 힐 지하철역은 모두 시티오브런던 경계에서 몇 미터 이내에 있다.[95]

도클랜즈 경전철(DLR)은 시티오브런던에 두 개의 종착역인 뱅크와 타워 게이트를 가지고 있다. DLR은 시티오브런던을 이스트 엔드와 직접 연결하며, 목적지에는 카나리 워프와 런던 시티 공항이 있다.[95][96]
엘리자베스 선(크로스레일 프로젝트에 의해 건설)은 시티오브런던 아래를 동서로 운행한다. 이 노선은 시티오브런던에 있는 두 개의 역인 패링던과 리버풀 스트리트를 운행하며, 바비칸과 무어게이트 지역도 추가로 운행한다. 엘리자베스 선은 시티오브런던을 카나리 워프, 히드로 공항, M4 회랑 고기술 허브 (슬라우 및 레딩)와 같은 목적지로 직접 연결한다.[97]
시티오브런던은 런던을 남북으로 운행하는 빈번한 템스링크 철도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템스링크 서비스는 패링던, 시티 템스링크, 런던 블랙프라이어스에 정차한다. 이를 통해 시티오브런던은 엘리펀트 앤 캐슬, 런던 브리지, 세인트 판크라스 국제(유로스타를 통해 유럽 본토로 연결) 등 런던 전역의 주요 목적지로 직접 연결된다. 또한 이 역에서 이스트 앵글리아, 남동부 지역의 주요 목적지(베드퍼드, 브라이튼, 케임브리지, 개트윅 공항, 루턴 공항, 피터버러)로 가는 정기적인 직행 열차도 운행된다.[98]

시티오브런던에는 여러 개의 "런던 터미널"이 있다.[98][99]
-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 템스링크 서비스 및 런던 남동부와 켄트로 가는 일부 사우스이스턴 서비스.
- 런던 캐논 스트리트 - 런던 남동부와 켄트로 가는 사우스이스턴 서비스.
- 런던 펀처치 스트리트 - C2c 서비스는 템스강 하구를 따라 런던 동부, 남부 에섹스, 사우스엔드로 운행된다.
-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 그레이터 앵글리아 및 일부 C2c 서비스는 런던 동부 및 이스트 앵글리아 지역(스트랫퍼드, 케임브리지, 첼름스퍼드, 입스위치, 노리치, 사우스엔드, 사우스엔드 공항 포함)으로 운행된다. 스탠스테드 공항으로 가는 스탠스테드 익스프레스. 런던 오버그라운드는 해크니 다운스, 세븐 시스터스, 월섬스토, 칭포드, 엔필드, 체스헌트를 포함하여 런던 북부 및 동부의 목적지로 운행된다.
- 무어게이트 - 그레이트 노던은 핀스버리 파크, 엔필드, 그리고 하트퍼드셔의 하트퍼드 및 웰윈 가든 시티를 포함한 런던 북부와 하트퍼드셔의 다른 목적지로 운행된다.
시티오브런던의 모든 역은 런던 운임 구역 1에 있다.[95]
2011년 3월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고용된 거주자 16~74세가 출근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했다.
출근 방법 | 비율 |
---|---|
도보 | 48.4% |
경전철(지하철, DLR 등) | 19.5% |
주로 재택근무 | 9.2% |
기차 | 5.8% |
버스, 미니버스 또는 코치 | 5.6% |
자전거 | 5.3% |
자가용 또는 밴(운전자 또는 동승자) | 3.4% |
7. 2. 도로 교통
A1, A10, A3번 국도, A4, A40번 국도가 시에서 시작된다. 시티는 런던 혼잡 통행료 구역에 속하며, 내곽 순환도로의 일부인 A1210/A1211의 동쪽 경계에 있는 작은 부분을 제외한다. 다음 다리들은 서쪽에서 동쪽(하류) 순으로 템스강을 가로지른다: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블랙프라이어스 철교, 밀레니엄 브리지 (보행자 다리), 사우스워크 다리, 캐넌 스트리트 철교, 런던 브리지; 타워 브리지는 시티에 있지 않다. 런던 시티는 런던 중심부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야간 버스를 포함하여 버스 노선이 잘 갖춰져 있다. 두 개의 버스 터미널이 시티에 있는데, 하나는 타워 햄리츠와의 동쪽 경계에 있는 올드게이트, 다른 하나는 기차역 옆의 리버풀 스트리트에 있다.
1924년 런던 도로 교통법은 기존 지방 당국으로부터 런던 수도권 내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개발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을 제거했지만, 런던 시티는 그러한 권한의 대부분을 유지했다. 그 결과, 트롤리버스나 그린 라인 코치 서비스는 승객을 태우거나 내려주기 위해 시티에 진입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올드게이트(미노리스) 트롤리버스 및 코치 터미널과 국회의사당 언덕 필드에 복잡한 터미널 시설이 건설되었다. 이 제한은 1985년 운송법에 의해 해제되었다.
2011년 3월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고용된 거주자 16~74세가 출근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했다.
출근 방법 | 비율 |
---|---|
도보 | 48.4% |
경전철(지하철, DLR 등) | 19.5% |
주로 재택근무 | 9.2% |
기차 | 5.8% |
버스, 미니버스 또는 코치 | 5.6% |
자전거 | 5.3% |
자가용 또는 밴(운전자 또는 동승자) | 3.4% |
7. 3. 자전거
사이클웨이 6는 엘리펀트 & 캐슬과 켄티시 타운 사이를 운행하며, 블랙프라이어스와 패링던 사이의 시티오브런던을 통과한다.
시의 자전거 인프라는 시티오브런던 공사와 런던 교통국(TfL)에서 유지 관리한다.[102]
- 사이클 슈퍼하이웨이 1은 토트넘에서 시티까지 운행하는 표지판이 있는 자전거 도로로, 스토크 뉴잉턴과 해크니를 통과한 후 올드 스트리트 남쪽의 시티로 진입한다.
- 사이클 슈퍼하이웨이 2는 스트랫퍼드에서 보우, 마일 엔드, 화이트채플을 경유하여 시티까지 운행하며, 주로 분리된 자전거 도로를 따라 올드게이트 근처에서 시티로 진입한다.
- 사이클웨이 3은 시티를 관통하는 동서 자전거 고속도로로, 템스강의 경로를 따라 시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운행된다. 동쪽으로는 섀드웰, 팝라 및 카나리 워프, 바킹으로 연결되는 직접적이고 표지판이 있는 자전거 연결로를 제공하며, 서쪽으로는 국회의사당 광장, 버킹엄 궁전, 하이드 파크를 경유하여 랭커스터 게이트까지 교통량이 없는 도로를 따라 운행한다.
- 사이클웨이 6은 교통량이 없는 자전거 도로를 따라 시티를 남북으로 운행하며, 패링던 역, 홀본 고가교, 러드게이트 서커스, 블랙프라이어스 역, 블랙프라이어스 다리를 통과한다. 북쪽으로는 클러켄웰, 블룸즈버리, 킹스 크로스, 켄티시 타운을 통과하며, 남쪽으로는 엘리펀트 & 캐슬로 이어진다.
- 사이클 슈퍼하이웨이 7은 사이클웨이 3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티에서 시작하여 사우스워크 다리를 통해 시티를 벗어나 엘리펀트 앤 캐슬, 클래펌, 투팅 등을 경유하여 콜리어스 우드까지 끊김 없이 표지판이 있는 자전거 도로를 제공한다.
- 콰이어트웨이 11은 사이클웨이 7의 북쪽 연장선으로, 사우스워크 다리에서 바비칸과 무어게이트를 경유하여 혹스턴까지 운행하는 표지판이 있는 자전거 도로이다.
산탄데르 사이클과 베릴 자전거 공유 시스템이 시티오브런던에서 운영된다.[102][103]
2011년 3월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고용된 거주자(16~74세)의 출근 방법은 다음과 같다.
출근 방법 | 비율 |
---|---|
도보 | 48.4% |
경전철(지하철, DLR 등) | 19.5% |
주로 재택근무 | 9.2% |
기차 | 5.8% |
버스, 미니버스 또는 코치 | 5.6% |
자전거 | 5.3% |
자가용 또는 밴(운전자 또는 동승자) | 3.4% |
7. 4. 수상 교통
런던 리버 서비스의 부두 하나가 템스강에 있으며, 블랙프라이어스 밀레니엄 부두가 시티에 위치해 있고, 타워 밀레니엄 부두는 런던 탑 근처 경계선에 인접해 있다. 런던 항만의 25개 보호된 부두 중 하나인 월브룩 부두는 캐논 스트리트 역에 인접해 있으며, 시에서 강을 통해 폐기물을 이송하는 데 사용한다. 런던 브리지 바로 상류에 있는 스완 레인 부두는 정기적인 여객 서비스에 맞게 2012년부터 2015년 사이에 교체 및 업그레이드될 예정이다. 그 전에 타워 부두가 확장될 예정이다.[104]강둑을 따라 공공 강변 산책로가 있는데, 이는 템스 패스의 일부이며, 여러 단계에 걸쳐 개통되었다. 시티 내의 경로는 2023년 퀸히스 구간 개통으로 완성되었다.[105] 월브룩 부두를 따라 걷는 산책로는 쓰레기가 바지선으로 옮겨질 때 보행자에게는 폐쇄된다.
8. 교육
시티는 길드홀 음악 연극 학교, 카스 비즈니스 스쿨, 런던 뱅킹 및 금융 연구소, 런던 대학교의 일부(킹스 칼리지 런던의 모프턴 도서관(Chancery Lane에 위치),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의 비즈니스 스쿨, 시카고 대학교 부스 경영대학원의 캠퍼스) 등 여러 고등 교육 기관의 본거지이다. 법과대학은 무어게이트에 런던 캠퍼스를 두고 있다. 바츠 앤 더 런던 의과대학 및 치과대학의 일부는 웨스트 스미스필드의 바츠 병원 부지에 있다.
시티에는 직접 운영하는 초등학교가 단 하나 있는데, 올드게이트에 있는 올드게이트 학교(구 서 존 카스 재단 초등학교)이다.[107] 이 학교는 4세부터 11세까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잉글랜드 성공회의 자원 지원(VA) 학교로, 시티오브런던 교육 서비스에서 관리한다.
시티 거주자들은 자녀를 인근 지역 교육청 (예: 런던 이즐링턴 자치구, 런던 타워 햄리츠 자치구, 웨스트민스터 시, 런던 사우스워크 자치구)의 학교에 보낸다.
시티는 시티 오브 런던 스쿨(남자 학교), 시티 오브 런던 스쿨 포 걸스(시티 소재), 시티 오브 런던 프리먼스 스쿨(서리주 애슈테드 소재, 남녀공학 데이 및 기숙 학교) 등 세 개의 사립 학교를 관리한다. 시티 오브 런던 스쿨 포 걸스와 시티 오브 런던 프리먼스 스쿨은 7세 입학을 위한 자체 예비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시티 아카데미, 해크니, 시티 오브 런던 아카데미 이즐링턴, 시티 오브 런던 아카데미, 사우스워크의 주요 후원자이다.[108]
시티오브런던의 학교 목록
초등학교, 중등학교, 특수학교(특수지원학교)의 경우, 거주 인구와 학교 수가 적기 때문에 인근의 이스lington구, 타워햄리츠구, 시티오브웨스트민스터, 서더크구 등의 학교에 다니는 가정이 많다.
2000년대 이후, 특히 2010년대 이후의 영국 교육 정책에서 국공립의 사립화 과정에서 "아카데미"(en)가 설립되었다. 각 아카데미는 기금을 모으는[155] 독립학교의 일종이 된다. 2022년 1월 현재, 국공립 초등학교의 39%, 중등학교의 80%, 특수지원학교의 43%가 아카데미로 전환되었다.[156]
9. 문화 및 명소
런던 시는 경계 내에 큰 규모의 공원은 없지만, 다양한 정원과 작은 개방 공간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런던 시청에서 관리한다. 핀스버리 서커스의 볼링장과 음악대 연주대가 있는 정식 정원에서부터 세인트 올라브 하트 스트리트와 같은 교회 묘지, 안뜰과 보행자 전용 도로의 물 특징과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53]
정원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규모 상업 개발 단지의 안뜰 내에는 여러 개인 정원과 개방 공간이 있다. 가장 큰 곳 중 두 곳은 남서쪽 끝에 있는 이너 템플과 미들 템플 법학원의 정원이다.
템스 강과 강변 산책로는 점점 더 개방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보행자가 강을 따라 접근하고 산책할 수 있도록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9. 1. 역사적 건축물

화재, 폭격,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런던의 재개발은 시티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저명한 역사적 건축물의 상당수는 이러한 재앙에서 무사하거나 경미한 손상만 입었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 비해 재개발 규모는 비교적 작았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건축물은 다음과 같다.
- 런던 대화재 기념탑(모뉴먼트)
- 세인트 폴 대성당
- 길드홀
- 왕립 거래소
- 존슨 박사의 집(새뮤얼 존슨의 옛집)
- 맨션 하우스
- 시티에 산재한 교회군[157]
- 올드 체셔 치즈
다음은 템플 지구에 대한 격렬한 폭격을 견뎌낸 저명한 건축물이다. (대규모 개수를 거침)
- 헨리 왕자의 방
홀본의 하이웨이(홀본 서커스) 서부에 앨버트 공의 기마상이 있다. 드비어스의 찰스 오펜하이머가 기증했다. 그 외 저명한 현대식 고층 건축물과 역사적 명소들이 있다.
9. 2. 현대 건축물

금융 부문에서 주로 사용되는 고층 건물과 마천루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거의 모든 건물은 도시의 금융 중심지인 비숍스게이트, 리든홀 스트리트, 펜처치 스트리트 주변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북쪽에는 바비칸 부동산의 세 개 주거용 타워와 상업용 시티포인트 타워로 구성된 더 작은 건물군이 있다.
완공된 건물 (높이 100m 이상)
순위 | 이름 | 완공 | 이미지 | 건축가 | 용도 | 높이 (m) | 높이 (ft) | 층수 | 위치 |
---|---|---|---|---|---|---|---|---|---|
1 | 트웬티투 | 2020 | ![]() | PLP 아키텍츠 | 사무실 | 278m | 약 277.98m | 62 | 22 비숍스게이트 |
2 | 헤론 타워 | 2010 | ![]() | 콘 페더슨 폭스 | 사무실 | 230m | 약 229.82m | 46 | 110 비숍스게이트 |
3 | 리든홀 빌딩 | 2014 | ![]() | 로저스 스티르크 하버 + 파트너스 | 사무실 | 225m | 약 224.64m | 48 | 122 리든홀 스트리트 |
4 | 8 비숍스게이트 | 2022 | ![]() | 윌킨슨에어 | 사무실 | 204m | 약 203.91m | 51 | 8 비숍스게이트 |
5 | 더 스캘펠 | 2018 | ![]() | 콘 페더슨 폭스 | 사무실 | 190m | 약 192.02m | 39 | 52 라임 스트리트 |
6 | 타워 42 | 1980 | ![]() | R 사이퍼트 & 파트너스 | 사무실 | 183m | 약 182.88m | 47 | 25 올드 브로드 스트리트 |
7 | 30 세인트 메리 액스 | 2003 | ![]() | 포스터 앤 파트너스 | 사무실 | 180m | 약 179.83m | 40 | 30 세인트 메리 액스 |
8 | 100 비숍스게이트 | 2019 | ![]() | 앨리스 앤 모리슨 | 사무실 | 172m | 약 171.60m | 40 | 100 비숍스게이트 |
9 | 브로드게이트 타워 | 2008 | ![]() | SOM | 사무실 | 164m | 약 163.98m | 35 | 201 비숍스게이트 |
10 | 20 펜처치 스트리트 | 2014 | ![]() | 라파엘 비뇰리 | 사무실 | 160m | 약 160.02m | 37 | 20 펜처치 스트리트 |
11 | 40 리든홀 스트리트 | 2022 | ![]() | 메이크 아키텍츠 | 사무실 | 154m | 약 153.92m | 34 | 40 리든홀 스트리트 |
12 | 원 비숍스게이트 플라자 | 2020 | ![]() | MSMR | 호텔 | 135m | 약 135.03m | 44 | 150 비숍스게이트 |
13 | 시티포인트[94] | 1967 | ![]() | F. 밀턴 캐시모어와 H. N. W. 그로스베너 | 사무실 | 127m | 약 127.10m | 36 | 1 로프메이커 스트리트 |
14 | 윌리스 빌딩 | 2007 | ![]() | 포스터 앤 파트너스 | 사무실 | 125m | 약 124.97m | 26 | 51 라임 스트리트 |
=15 | 크롬웰 타워 | 1973 | ![]() | 챔벌린, 파월 앤 본 | 주거용 | 123m | 약 123.14m | 42 | 바비칸 부동산 |
=15 | 로더데일 타워 | 1974 | ![]() | 챔벌린, 파월 앤 본 | 주거용 | 123m | 약 123.14m | 42 | 바비칸 부동산 |
=15 | 셰익스피어 타워 | 1976 | ![]() | 챔벌린, 파월 앤 본 | 주거용 | 123m | 약 123.14m | 42 | 바비칸 부동산 |
18 | 세인트 헬렌스 | 1969 | ![]() | GMW 아키텍츠 | 사무실 | 118m | 약 117.96m | 28 | 1 언더샤프트 |
19 | 더 헤론 | 2013 | ![]() | 데이비드 워커 아키텍츠 | 주거용 | 112m | 약 111.86m | 35 | 밀턴 코트 |
20 | 세인트 폴 대성당 | 1710 | ![]() | 크리스토퍼 렌 경 | 대성당 | 111m | 약 111.25m | n/a | 러드게이트 힐 |
21 | 99 비숍스게이트 | 1976 | ![]() | GMW 아키텍츠 | 사무실 | 104m | 약 103.63m | 26 | 99 비숍스게이트 |
22 | 원 엔젤 코트 | 2017 | ![]() | 플레처 프리스트 | 사무실 | 101m | 약 100.89m | 24 | 1 엔젤 코트 |
23 | 증권 거래소 타워 | 1970 | ![]() | 리처드 르웰린-데이비스 남작, 위크스, 포레스터-워커 앤 바 | 사무실 | 100m | 약 99.97m | 27 | 125 올드 브로드 스트리트 |
시티에서 가장 높은 건물 타임라인
이름 | 가장 높은 건물로 있었던 기간 | 높이 (m) | 높이 (ft) | 층수 |
---|---|---|---|---|
트웬티투 | 2019년–현재 | 278m | 약 277.98m | 62 |
헤론 타워 | 2010–2019 | 230m | 약 229.82m | 46 |
타워 42 | 1980–2010 | 183m | 약 182.88m | 47 |
시티포인트 | 1967–1980 | 122m | 약 121.92m | 35 |
세인트 폴 대성당 | 1710–1967 | 111m | 약 111.25m | n/a |
세인트 메리-르-보우 | 1683–1710 | 72m | 약 71.93m | n/a |
런던 대화재 기념탑 | 1677–1683 | 62m | 약 61.57m | n/a |
올드 세인트 폴 대성당 | 1310–1677 | 150m | 약 150.27m | n/a |
9. 3. 박물관 및 갤러리
런던 시는 경계 내에 큰 규모의 공원은 없지만, 다양한 정원과 작은 개방 공간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런던 시청에서 관리한다. 핀스버리 서커스의 볼링장과 음악대 연주대가 있는 정식 정원에서부터 세인트 올라브 하트 스트리트와 같은 교회 묘지, 안뜰과 보행자 전용 도로의 물 특징과 예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53]정원 목록은 다음과 같다.
대규모 상업 개발 단지의 안뜰 내에는 여러 개인 정원과 개방 공간이 있다. 가장 큰 곳 중 두 곳은 남서쪽 끝에 있는 이너 템플과 미들 템플 법학원의 정원이다.
템스 강과 강변 산책로는 점점 더 개방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최근 몇 년 동안 보행자가 강을 따라 접근하고 산책할 수 있도록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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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年5月に[[BBC]]のニュース番組「[[Panorama (テレビ番組)|Panorama]]」において、[[アメリカ同時多発テロ事件|2001年の米同時多発テロ]]に匹敵する規模のテロ攻撃に対するイギリスの警察や消防などの緊急時対応機関の準備体制を調査したところ、シティ東部のビショップスゲートで化学薬品による爆破事件が発生するとのシミュレート結果が出さ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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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문서
12世紀末にヘンリー・フィッツ・エイルウェン([[:en:Henry fitz Ailwin|Henry fitz Ailwin]])がシティの長となった。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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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8年の[[ペスト]]流行でシティの人口は1/3に減った。
[136]
문서
14世紀後半から15世紀初頭にかけてはリチャード・ウィッティントン([[:en:Richard Whittington|Richard Whittington]])がしばしば長となったが、なんと[[カレー (フランス)|カレー]]のそれも兼ねることがあった。
[137]
문서
このとき新設された区は1978年に廃止された。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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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クリストファー・レン]]がシティ52教会の再建を指揮した。政府の都市計画は衛生面での実行が不十分であったが、美観を追及した建築規制だけは敷かれ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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いわゆる土地貴族が[[ラッセル・スクウェア]]や[[レスター・スクウェア]]といった、[[ウェストミンスター]]を中心とする街区を開発した。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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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世紀初頭にドックが次々と建設され(West India Docks, East India Docks, etc.)、1801年にはロンドン証券取引所がシティ内のカペルコート(Capel Court)に移転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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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Wの一人はトーマス・ウィルソン(Thomas Wilson)。後にアーサー・ウェルズリー (初代ウェリントン公爵)と姻戚関係となる。他の二人を英名で示す(Timothy Wiggin, George Wildes)。
[144]
문서
ウィキペディア・コモンズにグラフがある。右上の検索欄に斜体字をコピーアンドペーストすれば飛べる。File:Population of the City of London over time.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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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だし外国人・外国企業が対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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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ティ内のバービカンでは再開発が進んだ。
[148]
Youtube
シティ内のバービカンでは再開発が進んだ。現在の本社は、同じシティ内南東端、テムズ川沿いロンドン橋界隈のビリングスゲート (10 Lower Thames Street, Billingsgate)にある。ビリングスゲートは、大型魚市場や、1964年映画メリー・ポピンズ#収録曲『メリー・ポピンズ』収録曲「古い鎖を断ち切って」(Sister Suffragette) ({{YouTube|Ds8cKgPdE6M|英語}})で知られている地区。
https://www.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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テンプル地区界隈は、王立裁判所、インナー・テンプルとミドル・テンプルの2つの法曹院などがある法曹街になる。北側至近はキングスウェイで接続するカムデン区ホルボーン界隈になり、残り2つの法曹院や大英博物館、ロンドン大学本部など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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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多くはセント・ポール大聖堂の設計でも知られるクリストファー・レン|サー・クリストファー・レンの作
[158]
문서
ロンドン塔の位置は正確にはシティ内ではないが、シティの南東部に多くの観光客を呼び込む名所の一つとなっている。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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シティ内にあるがリバティ (行政区画)|リバティと呼ばれる独立した自治体の地位を有する。シティの西部、特にテンプル (ロンドン)|テンプル地区とチャンスリーレーン地区では法曹|法曹界が主体とな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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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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