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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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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철학강의는 헤겔의 역사 고찰 방법, 주요 개념, 세계사 발전 단계, 그리고 그에 대한 비판과 영향을 다룬다. 헤겔은 역사를 '사실 그대로의 역사', '반성적 역사', '철학적 역사'로 구분하고, '정신', '이성의 간계', '세계사적 개인', '국가', '민족', '신정론' 등의 개념을 통해 역사를 설명하고자 했다. 헤겔은 세계사를 자유의식의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며, 동양, 그리스, 로마, 게르만 세계로 구분했다. 헤겔의 역사관은 유럽 중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마르크스, 프랑크푸르트 학파, 후쿠야마 등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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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강의 - [서적]에 관한 문서
개요
제목역사 철학 강의
원제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Weltgeschichte
다른 독일어 제목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저자헤겔
언어독일어
출판 정보
출판 년도1837년
기타 정보
관련 문서역사 철학 강의

2. 역사 고찰의 방법

헤겔은 역사를 고찰하는 방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인데,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처럼 역사가가 직접 보고 들은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반성적 역사'로, 역사가가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점과 생각을 반영하여 쓰는 역사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방식이 역사가가 살았던 시대의 편견을 담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헤겔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철학적 역사'이다. 이는 역사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역사를 움직이는 보편적인 원리나 법칙을 찾으려는 방식이다.[1] 헤겔은 역사가 단순히 우연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라, '이성'과 '정신'이 작용하여 자유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71][72]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그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철학적 역사의 핵심 과제이다.

2. 1. 사실 그대로의 역사

헤겔은 역사를 세 가지 방법, 즉 원사(Original History), 반성적 역사(Reflective History), 철학적 역사(Philosophical History)로 구분한다.

원사(Original history)는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의 역사와 유사하며, 이들은 거의 동시대에 쓰여졌고, 그들의 눈앞에 있었고 그들의 문화를 공유했던 행위, 사건 및 사회 상태에 국한되었다.[2] 헤겔은 원사의 목표를 "그들 주변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을 대표적인 지성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으로 설정한다.[2] 외부 현상은 이처럼 내부 개념으로 번역된다. 같은 방식으로 시인은 감정에서 공급받은 재료를 가지고 작업하며, 이를 개념적 능력에 대한 이미지로 투영한다.[2]

2. 2. 반성적 역사

헤겔은 역사 고찰의 패턴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그중 하나로 "반성적 역사"를 제시했다. 반성적 역사는 개인이나 민족, 종교 등 개별적인 사안을 대상으로 하며, 역사에서 어떤 의미나 교훈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을 가진다. 반성적 역사는 고려된 사건이나 역사로부터 일정 시간적 거리를 두고 쓰여진다. 그러나 헤겔은 이러한 형태의 역사가 역사가가 반영하는 역사에 역사가의 시대의 문화적 편견과 생각을 부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1]

2. 3. 철학적 역사

헤겔은 역사 서술 방식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사실 그대로의 역사'로, 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처럼 직접 보고 경험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반성적 역사'인데, 이는 사건이 일어난 시점에서 벗어나 역사가의 관점과 생각이 반영되는 역사이다. 헤겔은 이러한 방식이 역사가의 시대적 편견을 담게 된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헤겔이 추구한 것은 '철학적 역사'이다. 이는 역사가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역사를 움직이는 보편적인 원리를 찾는 방식이다. 헤겔은 이성을 통해 현상을 극복하고 정신적 자유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을 역사로 보았다. 즉, 역사의 배후에는 '이성'과 '정신'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를 파악하는 것이 철학적 역사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71][72]

3. 헤겔의 역사철학의 주요 개념

헤겔은 역사를 고찰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분류했다.

구분내용특징
초보적 역사사실 그대로를 동시대적으로 기록
반성적 역사개인, 민족, 종교 등 개별적인 사안을 대상역사에서 의미나 교훈을 도출
철학적 역사세계사 자체를 개략적으로 파악, 역사를 움직인 지도 원리나 구동력을 탐색사변적으로 고찰하고 사상으로 정합성을 부여, 전체사적으로 보편적인 원리로 재구축



헤겔은 자신의 역사 인식이 "철학적 역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성을 중시하는 근대적인 역사관을 변증법으로 표현하려 했으며, "이성이 세계를 지배하며, 따라서 세계의 역사도 이성적으로 진행된다"라고 말했다.[20] 헤겔은 이성이 세계사의 보편적 원리로서 실재하는 세계와 그 역사적 전개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헤겔은 인간 현상이 이성의 끊임없는 발전 운동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성은 스스로를 양분 삼아 자신을 재료로 하여 그것(세계)에 손을 댄다. ... 이성의 활동과 생산은 이성의 내실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나타남이 한편으로는 자연적 우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우주, 즉 세계사인 것이다."[21]

헤겔에 따르면, 세계는 정신의 활동으로서 발생하는 갈등, 그리고 갈등을 극복하고 완성을 목표로 하는 "종합"의 운동(변증법) 속에서 형성된다. 역사는 이념에 의해 방향이 정해지며, 세계사적인 목표를 향해 이성의 인도하에 나아간다. 역사의 전개는 "우연의 손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명석한 이념의 빛 속에서 전개된다"고 말하며, 법칙성과 합목적성을 중시했다. 헤겔은 역사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다.

> "세계사가 이성적으로 진행된다는 것, 세계사가 세계 정신의 이성적이고 필연적인 걸음이라는 것은 세계사를 고찰함으로써 비로소 명확해진다. 세계라는 현실의 장에서 그 본성의 일면을 전개하여 보여준 것이 바로 세계사이다."[23]

헤겔은 변증법의 진실성을 역사 속에서 발견하려 했으며, 세계사에서 정신이 변증법이라는 원리를 통해 어떻게 발전하여 자유를 획득해가는지, 인류 사회에서 정신의 발전이 역사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발견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헤겔은 역사 인식의 유래와 목적을 그리스 철학의 아낙사고라스가 주장한 누스(지성 또는 이성)와 기독교 신학의 "섭리" 사상에서 찾았다.[24][25] 헤겔의 역사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합리주의 사상과 기독교의 신학적 역사관을 융합한 것이다.

헤겔에게 역사 고찰의 목적은 "역사와 이성의 원리를 관련지어" 법칙을 발견하고, "이성이 창조한 풍부한 산물을 개념으로 파악하는" 과학 이론의 형식을 갖춘 일종의 "신정론"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헤겔은 기존의 역사 인식이 역사의 우연성과 맹목성을 강조하며 미지의 부분을 남겨둔다고 비판하며, 역사에 보편적인 법칙성이 있음을 주장하고, 역사의 전개를 필연적이고 의식적인 걸음으로 "이성에 의해"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7]

헤겔은 역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역사 방향성을 부여하는 절대적인 원리가 정신이며, 정신의 성질에 기초하여 정신이 지향할 방향성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세계사의 본체는 정신이며, 정신의 발전 과정입니다.……가장 구체적인 모습이 세계사입니다.…….

> 정신의 모든 성질은 자유 없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자유를 위한 수단이며, 모든 것은 오로지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유야말로 정신의 유일한 진리이다…. 정신은 자유다, 라는 추상적 정의에 따르면, 세계의 역사는 정신이 본래의 자기를 점차 알아가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세계사란 자유의 의식이 전진해가는 과정이며, 우리는 그 과정의 필연성을 인식해야 합니다'''.…….(자유라는) 이 궁극적 목적을 위해 지구라는 넓은 제단 위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희생이 바쳐진다. 이 궁극적 목적만이 자기를 관철하고, 실현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종교적 관념을 사상으로 대체했을 때 나타나는 자유의 이념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28]

헤겔은 역사를 만들어내는 요인은 「정신」이며, 그 목표는 사람들이 자신답게 있으려 하는 자유라고 보았다. 즉, 헤겔은 인류사를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석한 것이다.

헤겔은 "정신"이 역사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신"은 시대의 총아에 의해 체현된다고 생각했다. 헤겔은 알렉산더 대왕, 카이사르, 나폴레옹과 같은 역사적인 영웅들이 역사를 전진시킨다고 생각하는 위인사관을 가졌다.

헤겔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하는 세계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전개로 재앙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하며, 프랑스 혁명 시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나폴레옹 전쟁 등을 예로 들었다. 헤겔은 이것을 "이성의 간계"라고 불렀다.[31]

헤겔은 인간의 활동 영역과 조직성을 발휘하는 집단으로서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헤겔에게 "국가"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휘해 나가기 위해 불가결한 "자유가 실현된 공동체"였다. 헤겔은 고도의 사회 제도를 가지고 세계에 패권을 장악한 국가의 흥망을 세계사로 보았다.[32]

3. 1. 정신 (Geist)

Geistde은 인류의 문화와 유사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역사의 동력이다. 헤겔은 세계사를 정신이 자유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았다.[62] 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란 정신이 스스로를 '''자유'''라고 의식하는 자유의식의 발전과정과 이 의식에 의해서 산출되는 자유의 실현과정을 나타낸 것이다."[62] 이러한 과정은 수천년에 걸쳐 발전해 온 다양한 문화를 연구하고, 자유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이해함으로써 확인된다.

헤겔은 역사를 만들어내는 요인이 정신이며, 그 목표는 사람들이 자신답게 있으려 하는 자유라고 보았다. 정신이 항상 자신답게 있으려면, 타인과 갈등하면서 장애가 되는 것과 투쟁해야 하며, 이 투쟁이 역사의 발전을 촉진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자연이나 권력자와 지혜를 활용하며 투쟁하고, 전쟁이나 혁명으로 불법의 쇠사슬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존재로 변모해가는 것이 인류사의 보편적 법칙이라고 파악했다. 즉, 헤겔은 인류사를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석한 것이다.

헤겔은 '정신'(Geistde)을 정의하고 특징짓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정신'은 사람들의 문화와 유사하며, 사회 변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헤겔이 "이성의 간계"라고 부른 것을 통해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낸다.[3] 헤겔은 ''정신''에 대한 문화적 인식이 고대 유대교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며, ''정신''의 역사를 탈마법화 서사와 이교 다신교의 쇠퇴에 연결시킨다.[4]

헤겔은 역사에서 단 한 사람에게만 자유가 주어지는 전제정으로부터, 자유가 소수의 특권인 상태로, 다시 인간 자신이 그 자체로서 자유라는 굳건한 자유 개념으로 자유의 의식이 진행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은 인간의 자유정신이 정신과 피치자의 열망을 구체화시킨 대영 제국이나 프로이센과 같은 게르만 민족의 입헌 군주제 하에서 가장 잘 함양될 수 있다고 믿는다.

3. 2. 이성의 간계 (List der Vernunft)

헤겔은 개개인의 욕망과 열정이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이성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List der Vernunft|이성의 간계de라고 불렀다.[3] 헤겔에 따르면, 역사는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개인의 열정과 욕망은 더 큰 이성적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3. 3. 세계사적 개인

헤겔은 '''세계사적 개인'''을 세계사적 일반 이념의 실현을 위해 다른 사소한 것들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인물로 정의한다. 이러한 인물들은 세계 정신의 도구로서,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역사의 진보에 기여하게 된다.[73] 즉, 세계사적 개인은 특정 시대정신을 체현하고 역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인물들이다.

헤겔은 율리우스 카이사르,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인물들을 세계사적 개인의 예시로 든다.[73] 또한, 나폴레옹 역시 역사적인 영웅으로 언급하며, 이들은 모두 시대의 모습을 파악하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시대의 총아로 여겨진다.[29]

헤겔에 따르면, 이러한 세계사적 개인들이 활동하는 세계사의 전환기에서 역사는 '''행복'''을 생산하지 않는다.[74]

3. 4. 국가

헤겔은 국가를 '정신의 완전한 실현형태'이자 '자유의 실현체'로 보았다. 국가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공동생활로서, 공동의지 자체로 법, 도덕과 함께 존재한다. 헤겔에게 국가는 공동정신이 성립하는 토대가 되며, 이 공동체의 법칙은 단순한 우연이 아닌 '이성' 그 자체이다. 그는 국가의 목적이 이러한 공동정신이 인간의 현실 생활 속에 생생하게 존재하고 존속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75] 나아가 헤겔은 '국가야말로 절대 궁극 목적인 자유를 실현한 자주독립의 존재'이고, '인간이 지니는 모든 가치와 정신의 현실성은 국가를 통해 주어지'며, '국가는 신의 이념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한다.[75]

헤겔은 역사 속에서 자유에 대한 의식이 발전해 왔다고 보았다. 오리엔트에서는 오직 '하나'(군주)만이 자유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일부'만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게르만 민족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헤겔은 설명한다.[11]

헤겔은 인간 자유의 정신이 입헌 군주제 내에서 가장 잘 양성된다고 믿었으며, 종교 개혁 이후 영국프로이센에서 그 உதாரण을 찾았다. 헤겔은 "세계 역사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왜냐하면 유럽은 역사의 절대적인 종착역이고, 아시아는 시작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세계사가 동양에서 서양으로 이동한다고 보았다.[12]

헤겔은 또한 역사에는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는 한편, 인간의 활동 영역과 조직성을 발휘하는 집단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이 "국가"이며, 헤겔에게 "국가"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휘해 나가기 위해 불가결한 것, 즉 "자유가 실현된 공동체"였다. 고도의 사회 제도를 가지고, 세계에 패권을 장악한 '''국가의 흥망의 역사, 그것이 헤겔이 생각하는 세계사'''였다.[32]

3. 5. 민족과 민족정신

헤겔은 각 민족이 고유한 '민족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 민족정신은 "한 민족의 정치체제는 그 종교나 예술, 철학, 또는 적어도 그 겉모습이나 사상, 교양 일반과 연관되어 하나의 실체, 하나의 정신을 형성한다"[76]는 주장처럼, 국가를 통해 발현된다. 또한, "그 본질적인 모습이 신으로 형상화되어 숭배받아,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면 그것이 종교이고, 상(像)으로서 직관적으로 표현되면 그것이 예술이며, 인식의 대상이 되어 개념화되면 그것은 철학"[77]이기 때문에 민족정신은 역사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헤겔에 따르면, 개인은 이러한 민족정신과 국가정신이 통일된 공동체 속에서 '민족의 자식임과 동시에 국가가 발전하는 한, 시대의 자식'이 된다.[77]

3. 6. 신정론

헤겔은 자신의 《역사철학강의》를 의 섭리와 역사 속 의 존재를 조화시키려는 '''신정론'''으로 명확히 제시한다.[60] 헤겔에게 역사는 (신으로 이해되는) 절대정신이 역사의 승리와 비극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이를 통해 참된 자신이 되도록 설계된 과정이다.[6]

헤겔은 이성의 목표를 변신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변신론은 … 세계 안의 해악 일반을 개념적으로 이해하여 사유적 정신과 악이 유화되는 일종의 신의 변명 … 세계사만큼 이와 같은 유화적 인식이 요구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 이 화해는 … 부정적인 것이 지니고 있는 힘을 잃게 하여 … 긍정적인 인식에 의해서만 달성된다. … 무엇이 진정 세계의 궁극적 목적인가 하는 의식, 다른 한편으로는 그 궁극 목적이 세계 안에 실현되는 과정…, 죄악은 결국에는 그 존립기반을 잃는다는 것을 의식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61] 이는 세계사를 선과 악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헤겔은 역사가 행복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역사는 도살장이다"라고까지 표현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의 목적은 달성된다고 보았다. 그는 "우리는 우선 세계의 궁극적인 설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둘째, 이 설계가 실현되었고 악이 그 옆에서 동등한 위치를 유지할 수 없었음을 보아야 한다."라고 썼다.[9] 즉, 역사 속의 이성을 파악하는 것은 그 안의 악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당시 랑케와 같은 '직업적인 역사가'들에게 반박하며, 역사에 대한 이해는 항상 틀에 의존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자신의 틀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설명하기로 선택했다. 헤겔에게 역사 고찰의 목적은 "역사와 이성의 원리를 관련지어" 법칙을 발견하고, 동시에 "이성이 창조한 풍부한 산물을 개념으로 파악하는" 과학 이론의 형식을 갖춘 일종의 "변신론"을 창출하는 것이다.[27]

4. 세계사의 발전 단계

헤겔은 세계사를 자유의식의 발전 정도에 따라 동양, 그리스·로마, 게르만 세계로 구분한다.[11]

구분자유의식정치 체제특징
동양 세계한 사람만 자유전제정치자유의식 미성숙, 황제 중심의 관료제 운영 (중국), 카스트 제도로 인한 자유 부정 (인도)
그리스·로마 세계일부만 자유귀족정, 민주정자유의식 등장, 폴리스 시민의 창조력 발휘, 노예제 존재
게르만 세계모든 인간이 자유입헌군주제자유의식 확립, 기독교 영향, 종교개혁 이후 프로이센 등에서 발전



헤겔에 따르면, "세계 역사는 정신이 스스로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노력의 기록이다."[11] 그는 역사를 통해 자유에 대한 의식이 발전해 왔다고 주장한다. 즉, 전제 정치에서 시작하여 소수만이 자유를 누리는 단계를 거쳐, 인류 전체가 자유롭다는 개념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발전 과정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했다. "동양인은 한 사람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 뿐이고,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는 특정 사람들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으며, 우리 게르만인은 모든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서 자유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세 가지 구분은 동시에 세계사의 구분 방식과 취급 방식 또한 시사하는 것이다."[36]

4. 1. 동양 세계

헤겔은 동양 세계를 전제 정치가 지배하는, 자유의식이 미성숙한 단계로 보았다. 그는 동양 세계를 '''중국''',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의 네 부분으로 나누었다.[80]

  • '''중국'''에 대해 헤겔은 황제를 중심으로 강력한 관료제가 운영되지만, 황제의 인격에 따라 무질서가 발생할 수 있는 국가라고 평가했다.[81][82] 중국인들에게는 내면의 비자립성과 정신적 부자유가 나타나 있으며, 미신을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83] 또한 중국의 학술은 경험적인 성질의 것들만 존재하고, 자유롭고 관념적인 정신의 세계가 없다고 보았다.[84] 한자는 문자와 소리가 분리되어 있어 학문의 진전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85] 헤겔은 중국에서 미숙한 국민을 통제하는 원리가 가부장제라고 말했다.[86]

  • '''인도'''에 대해 헤겔은 '꿈꾸는 정신'을 원리로 하는, 공상감정의 나라로 묘사했다.[87] 범신론을 세계관으로 하여, 나와 대상이 대립하지 않는 미분화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보았다.[87] 중국과 달리, 인도에서는 명확한 현실적 대상이 없고 모든 것이 상상력에 의해 분별하기 어렵게 바뀌며, 역사를 무시한다고 주장했다.[88] 또한 카스트 제도로 인해 출신 성분이 본질적으로 결정되어 자유가 부정된다고 말했다.[89] 헤겔은 인도가 서양 세계 전체의 출발점이며,[90] 이러한 전파는 역사 이전에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했다.[91]

  • '''페르시아'''에 대해 헤겔은 발전과 변혁의 경험을 가진 지역으로, 역사의 존재를 나타낸다고 평가했다.[92] 헤겔은 발전의 원리가 페르시아 역사와 함께 시작되기 때문에 페르시아 역사가 세계사의 진정한 시작이라고 주장했다.[93] 페르시아에서는 보편적인 것을 대상화하고 의식적으로 그 본질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며, 서로 대립되는 보편자들의 통일이 나타난다고 보았다.[94] 이러한 내용은 젠드족의 조로아스터교에 담겨 있는데, 아후라 마즈다와 아흐리만의 두 신을 대립하는 보편자로 파악하고, 그 대립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95] 헤겔은 이러한 페르시아적 사상 원리의 결점은 대립의 통일이 완전한 형태로 인식되지 않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95]


페르시아에 대해 설명하면서 헤겔은 시리아인, 페니키아인, 유대인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했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절대정신을 아직 구체적인 정신으로 파악하지 않아 자유롭지 못하며, 유일신에게만 본질을 둔다고 주장했다.[97] 유대교에서는 정신적인 것이 감각적인 것과 단호히 결별하고, 자연은 신성하지 않은 존재로 격하된다고 보았다.[98] 이러한 토양에서 유대 민족은 순수한 추상적 사고를 발전시킨다고 말했다.[99]

  • '''이집트'''는 페르시아에서 그리스로 넘어가는 내면적 매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이집트에서는 대립하는 원리들 간의 상호 침투와 해체는 있지만, 통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100] 이집트의 역사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신화와 역사가 뒤섞여 있다고 말했다.[101] 또한 이집트인들은 인도인들과 유사하게 카스트로 나뉘어 있다고 언급했다.[102] 그러나 이집트의 제도는 합리성으로 인해 고대인들로부터 질서 있는 공동체의 모범으로 간주되었다고 덧붙였다.[103] 헤겔은 이집트인들의 정신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려는 무한한 충동을 갖는 아프리카적 과단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정신의 본질은 단지 과제 또는 수수께끼로만 제시된다고 주장했다.[104]

4. 2. 그리스 세계

헤겔은 그리스 세계를 세계사의 청년기에 비유하며, 이 시기에 정신이 스스로를 의지와 지식의 내용으로 삼는 데까지 성숙했다고 보았다. 국가, 가족, 법, 종교가 개인의 목적이 되고, 개인은 그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개인으로서 인정을 받는 관계가 성립되었다고 설명한다.[105]

헤겔에 따르면, 세계 역사는 정신이 자신의 자유에 대한 의식을 발전시키고, 그 결과 이 자유가 실현되는 것을 나타낸다.[10] 그리스인 사이에서 처음으로 자유에 대한 의식이 깨어났으며, 그들은 따라서 자유로웠다. 그러나 로마인처럼, 그들은 모든 인간이 아닌 일부만이 자유롭다는 것을 알았다.[11]

헤겔은 그리스·로마 세계를 자유의 고향이자 서양 문명의 발상지로 여기며 그 문화를 높이 평가했지만, 동시에 자유가 부분적으로만 실현된 세계로 보았다. 그리스에는 아시아의 전제 군주만큼 강력한 1인 지배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지도자는 강력한 귀족 세력 때문에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헤겔은 그리스인에게 자유의 의식이 등장했기에, 그리스인은 자유롭고 아름다운 문화와 생활을 누리며, 개인의 창조력을 발휘하여 폴리스적 시민으로 이루어진 훌륭한 문명을 구축했다고 해석한다.[43]

로마는 군사 제국화하여 인간의 자유를 황제 권력에 종속시키는 한편, 개인 도덕과 구별되는 사회 윤리로서 정교한 법 체계를 완성하고 법치 사회의 기반을 정비했다. 법치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가 길러질 준비가 되었다고 보았다.[44] 그러나 거기에는 귀족과 시민이 자유를 누리기 위한 희생, 즉 노예제가 존재했다.[45] 헤겔은 그리스·로마 문명의 자유는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으며, 더 나아간 단계에서 세계사의 중심 무대가 마련되었다고 본다.[46]

4. 3. 로마 세계

헤겔에 따르면 로마 세계는 법의 지배가 확립된 단계였다. 그러나 로마 시민들은 일부만이 자유를 누렸으며,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11] 이는 헤겔이 말하는 자유의 발전 단계 중 "일부"만이 자유로운 단계에 해당한다.

4. 4. 게르만 세계

Germanische Weltde기독교의 영향으로 모든 인간이 자유롭다는 의식이 확립된 단계이다. 헤겔은 게르만족입헌군주제를 통해 자유가 가장 잘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헤겔은 종교개혁을 자유의식의 발전에서 중요한 계기로 보았다.[11]

헤겔에 따르면, 게르만족기독교의 부상과 함께 모든 인간이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정신의 자유가 그의 본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11] 헤겔은 인간 자유의 정신이 군주가 통치자의 정신과 소망을 구현하는 입헌 군주제 내에서 가장 잘 양성된다고 믿으며, 종교 개혁 이후 영국프로이센의 게르만 민족에서 그 예를 찾는다.[11]

5. 헤겔 역사철학에 대한 비판과 영향

헤겔은 변증법을 통해 인류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갈등과 대립에서 찾고, 역사의 전개를 법칙적으로 파악하려 했다. 이러한 역사관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적 유물론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되었다[56]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현대 지식인들의 역사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세계로 확대되는 세계화 시대에 역사의 도달점을 발견했다고 보았다[57]

하이에크포퍼 등 과학 철학 분야에서는 헤겔적 역사 의식의 반과학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헤겔의 역사 인식은 유럽인의 전통적인 역사관과 200년 전 독일의 역사 상황을 반영한 것이며, 초월적인 사변에 기초한 역사 해석이기에 과학적인 절차를 따른 조사나 실증 연구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료로부터 과거의 복원을 시도하거나 개별 사례의 이해에 전념하는 역사학의 입장과는 크게 다르다.

5. 1. 비판

헤겔의 역사철학은 유럽 중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헤겔은 비유럽 문화를 미개하거나 정체된 것으로 묘사하고, 유럽 문명의 우월성을 강조했다.[66] 특히 흑인에 대해서는 자유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도덕적 감정이 매우 희박하며, 극도로 감각적인 존재로 묘사했다.[67][68][69] 헤겔은 노예 무역을 허용하는 견해를 밝혔지만, 노예 제도는 비인간적인 제도이므로 가까운 장래에 단계적인 폐지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제시했다.[34]

헤겔은 역사가 미리 정해진 목표(자유의 실현)를 향해 필연적으로 발전한다고 보았는데,[62] 이는 다양한 역사적 가능성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역사관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관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사적 유물론과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되었다.[56]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현대 지식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57]

하이에크포퍼 등 과학 철학 분야에서는 헤겔의 법칙적 결정론을 지지하는 역사 의식의 반과학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5. 2. 영향

헤겔의 역사철학은 유물론을 바탕으로 사적 유물론을 제시한 마르크스엥겔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의해 비판적으로 계승되었다.[56]

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현대 지식인들의 역사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방법론적으로는 다르지만 역사 과정의 합리성을 중시한 근대화론이나 유럽 중심 사관 등 공통점을 가진 역사 이론을 제시한 논자들이 다수 있었다.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세계로 확대되는 세계화 시대에 역사의 도달점을 발견했다고 보았다.[57]

한편, 하이에크포퍼 등 과학 철학 분야에서는 법칙적 결정론을 지지하는 헤겔적 역사 의식의 반과학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헤겔의 역사 인식은 유럽인의 전통적인 역사관과 200년 전 독일의 역사 상황을 반영한 것이며, 초월적인 사변에 기초한 역사 해석이기에 과학적인 절차를 따른 조사나 실증 연구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료로부터 과거의 복원을 시도하거나 개별 사례의 이해에 전념하는 역사학의 입장과는 크게 다르다.

6. 결론

헤겔의 역사철학은 역사를 인류가 이성을 통해 현상을 극복하고 정신적 자유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으로 보는 진보주의적 역사관이다.[16] 헤겔은 근대 시민 사회의 융성이라는 시대 변혁기에 살면서 끊임없이 역사에 관심을 가진 철학자였다. 역사라는 것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근대화를 경험하는 유럽에게 매우 중요한 관심사였다. 헤겔은 자신의 역사관을 "역사 철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철학이 역사를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자 세계사의 전개를 철학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자신의 역사 이해의 입장을 미리 밝히고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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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적 Great Books of the Western World: Philosophy of History Encyclopædia Britannica 1952
[3] 서적 The Hegel Dictionary https://books.google[...]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4] 서적 The Myth of Disenchantment: Magic, Modernity, and the Birth of the Human Sciences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17
[5] 서적 Lectures https://books.google[...]
[6] 서적 Lectures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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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서적 The Hegel Dictionary https://books.google[...]
[9] 서적 Lectures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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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서적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Verlag
[14] 서적 The Philosophy of World History https://archive.org/[...] Dover
[15] 서적 Reason in History, A General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History Prentice-Hall
[16] 서적 歴史(下)
[17] 서적 歴史(上・下)
[18] 서적 歴史(上)
[19] 서적 歴史(上)
[20] 서적 歴史(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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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서적 歴史(上)
[23] 서적 歴史(上)
[24] 서적 歴史(上)
[25] 서적 歴史(上)
[26] 서적 歴史(上)
[27] 서적 歴史(上)
[28] 서적 歴史(上)
[29] 서적 歴史(上)
[30] 서적 歴史(上)
[31] 서적 歴史(上)
[32] 서적 歴史(上)
[33] 서적 歴史(上)
[34] 서적 歴史(上)
[35] 서적 歴史(上)
[36] 서적 歴史(上)
[37] 서적 歴史(上)
[38] 서적 歴史(上)
[39] 서적 歴史(上)
[40] 서적 歴史(上)
[41] 서적 歴史(上)
[42] 서적 歴史(下)
[43] 서적 歴史(下)
[44] 서적 歴史(下)
[45] 서적 歴史(下)
[46] 서적 歴史(上)
[47] 서적 歴史(下)
[48] 서적 歴史(下)
[49] 서적 歴史(下)
[50] 서적 歴史(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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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서적 歴史の哲学
[57] 서적 ヘーゲル 現代書館
[58] 서적 역사철학강의(歷史哲學講義) 삼성출판사
[59] 서적 역사철학강의 동서문화사
[60] 서적 위의 책
[61] 서적 위의 책
[62] 서적 위의 책
[63] 서적 헤겔 절대정신과 변증법 비판 철학과현실사
[64] 문서
[65] 서적 앞의 책
[66] 서적 위의 책
[67] 문서
[68] 문서
[69] 서적 위의 책
[70] 서적 역사철학강의(歷史哲學講義) 삼성출판사
[71] 서적 위의 책, 19쪽
[72] 서적 아래 내용은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권기철 2판에 기초하고 있으며, 추가로 영문의 시브리 판을 참조하여 작성하였다.
[73] 서적 위의 책, 42쪽
[74] 서적 위의 책, 36쪽, 44쪽~
[75] 서적 위의 책, 48쪽
[76] 서적 위의 책, 54쪽
[77] 서적 위의 책, 61쪽
[78] 서적 위의 책, 82쪽
[79] 서적 위의 책, 117쪽
[80] 서적 본책에서 이집트는 페르시아 편에서 그 일부분으로 다루어지나, 여기에서는 독립적으로 분류하였다.
[81] 서적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헤겔은 중국을 이와 같이 정적인 체제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82] 서적 위의 책, 131쪽
[83] 서적 위의 책, 136-137쪽
[84] 서적 위의 책, 137쪽
[85] 서적 위의 책, 138쪽
[86] 서적 위의 책, 126쪽
[87] 서적 위의 책, 142-143쪽
[88] 서적 위의 책, 166쪽, 162쪽
[89] 서적 위의 책, 148쪽
[90] 서적 헤겔은 이 점에서 [[산스크리트]]와 유럽 언어들의 언어학적 관계를 언급한다.
[91] 서적 위의 책, 144쪽
[92] 서적 위의 책, 172쪽
[93] 서적 위의 책, 173쪽
[94] 서적 위의 책, 173쪽, 176쪽
[95] 서적 위의 책, 177쪽
[96] 서적 위의 책, 218쪽
[97] 서적 위의 책, 194쪽
[98] 서적 헤겔은 이 대목에서 '사실 그것이 자연의 진실한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99] 서적 위의 책, 193쪽, 196쪽
[100] 서적 위의 책, 120쪽
[101] 서적 위의 책, 198쪽
[102] 서적 위의 책, 201쪽
[103] 서적 위의 책, 203쪽
[104] 서적 위의 책, 204쪽
[105] 서적 위의 책, 221쪽
[106] 서적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Suhrkamp Verlag 1986
[107] 서적 The Philosophy of World History Dover 1956
[108] 서적 Reason in History, A General Introduction to the Philosophy of History Prentice-Hall 1953
[109] 서적 Lectures on the Philosophy of World History: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4
[110] 문서 Лекции по истории философии Гегель(역사철학강의 게겔-헤겔-)로 검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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