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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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관료제는 프랑스어 'bureau'와 그리스어 'kratos'의 합성어로, 18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클로드 마리 뱅상 드 구르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현대 관료제는 계층 구조, 연속성, 비인격성, 전문성을 특징으로 하며, 고대 수메르, 이집트, 중국, 로마 등 다양한 문명에서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는 페르시아, 러시아, 아샨티 제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 발전했으며,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된 국가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칼 마르크스, 존 스튜어트 밀, 막스 베버 등 여러 이론가들이 관료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연구했으며,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가장 효율적인 조직 형태로 보면서도 개인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민국 관료제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도입되었으며, 상의하달식, 능력주의, 분업, 형식주의 등의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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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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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및 정치 | |
유형 | 행정 시스템 |
설명 | 거대 기관을 운영하는 관리 시스템 |
주요 특징 | |
구성 요소 | 비선출 정부 관료 조직 |
기능 | 정책 결정 및 집행 |
구조 | 계층적 구조 |
특징 | |
목표 | 효율성 및 체계적인 운영 |
성격 | 관료주의적 |
법률 | |
법률 체계 | 법률의 일부로 간주됨 |
관련 분야 | |
학문 | 행정학, 정치학, 사회학 등 |
연구 |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 |
역사 | |
기원 | 서구 사회에서의 행정 발전과 함께 발전 |
발전 | 대규모 조직 운영의 필요성과 함께 발전 |
비판 | |
문제점 | 비효율성, 느린 의사 결정, 경직성, 형식주의, 부패 |
논쟁 | 조직 효율성 및 민주적 가치에 대한 논쟁 |
기타 | |
정의 | 비선출 정부 관료 단체 행정 정책 결정 단체 |
관료 | 공무원, 관료 등 |
관련된 것 | 정부, 조직, 행정, 법 |
2. 어원 및 용례
"관료제"(Bureaucracy)라는 용어는 프랑스어 bureau|뷔로fra(책상 또는 사무실)와 그리스어 κράτος|크라토스grc(통치 또는 정치 권력)가 결합된 것이다.[5]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클로드 마리 뱅상 드 구르네가 18세기 중반에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6] 구르네가 직접 이 단어를 글로 남기지는 않았지만, 동시대의 한 편지에서 그가 언급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인용되었다.
: 고(故) 드 구르네 씨는… 때때로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프랑스에는 우리를 망칠 위기에 처한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관료주의'라고 불립니다." 때로는 그는 "관료제"라는 제목 아래 네 번째 또는 다섯 번째 형태의 정부를 발명하기도 했습니다.[7]
영어에서는 1818년 아일랜드 소설가 레이디 모건이 처음 사용한 기록이 있다.[5] 레이디 모건은 당시 아일랜드를 통치하던 영국 정부의 방식을 "Bureaucratie, 즉 아일랜드가 오랫동안 지배받아 온 관청의 폭정"이라고 언급하며 비판적으로 사용했다.[8]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관료제"는 선출되지 않은 직업 공무원들이 직책을 맡는 공공 행정 시스템을 가리키는 보다 중립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종종 군주제에 종속된 별개의 경영 형태로 여겨졌다.[9]
1920년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의 정의를 확장하여, 고정된 규칙에 따라 훈련된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모든 종류의 행정 시스템을 포함시켰다. 베버는 관료제를 사회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합리적인 조직 형태로 보고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1944년 오스트리아 출신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나치 정권 하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관료제"라는 용어가 실제로는 "항상 비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57년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관료"라는 용어가 특정 상황에서는 일종의 욕설(Schimpfwort|쉼프보르트deu)처럼 사용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관료제"라는 단어는 정치나 행정 분야에서 지나치게 절차, 규칙, 규정, 법률 준수를 강조하여 일 처리를 어렵게 만드는 경향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자주 사용된다. 직장 환경에서도 복잡한 규칙, 절차, 서류 작업 등이 책임성을 보장하는 안전장치라기보다는 업무 진행의 장애물로 인식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맥락에서는 특정 사회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10]
현대적인 용법에서 관료제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주요 특징을 가진 조직 형태로 정의된다.[11]
- 계층 구조: 권한의 범위와 노동 분담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다.
- 연속성: 관리자들이 정규 급여를 받으며 조직 내에서 경력을 쌓아 승진하는 구조를 가진다.
- 비인격성: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닌, 사전에 규정된 규칙과 운영 절차에 따라 업무가 처리된다.
- 전문성: 공무원(또는 조직 구성원)은 능력에 따라 선발되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며, 관련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정치 이론에서 관료제는 주로 중앙 집중식 경영 형태로 보며, 상대적으로 분산화 경향이 강한 임시 조직과는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3. 역사
관료제라는 용어는 18세기 중반에 등장했지만,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의 역사는 고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수메르나 고대 이집트에서는 서기관 계층이 기록을 통해 자원 관리와 행정 업무를 담당하며 초기 관료제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는 진나라 시대부터 중앙집권적 관료 정부를 수립했으며, 한나라 이후 과거 제도를 통해 능력에 따라 관리를 선발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이는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이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체계적인 행정 조직을 운영했다.
근대 유럽에서는 절대 군주제가 강화되면서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관료제가 발달했다. 조세 징수, 행정 관리, 법 집행 등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점차 실력주의 원칙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의 과거 제도가 유럽에 알려지면서 능력 기반의 관리 선발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복잡해지고 국가 기능이 확대되면서 관료제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 등 대규모 조직 운영의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러한 관료제를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 사회의 핵심 특징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관료제는 효율성이라는 장점 이면에 경직성, 비효율성, 권력 집중과 같은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현대 사회에서도 관료제는 여전히 조직 운영의 기본적인 틀로 기능하며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3. 1. 고대

"관료제"라는 용어 자체는 18세기 중반에 등장했지만, 체계적인 행정 시스템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특히 기원전 3500년경 문자의 발명과 문서 사용은 이러한 시스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관료제의 명확한 초기 사례는 고대 수메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서기관 계급은 점토판을 이용해 세금 징수, 노동력 관리, 곡물 창고 운영 등 다양한 공공 자원 및 행정 업무를 기록하고 관리했다.[12] 고대 이집트 역시 세습적인 서기관 계급이 공무원 중심의 관료제를 운영했다.[13]
중국에서는 진나라(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가 법가 이념을 바탕으로 중국을 통일하면서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황제는 기존의 귀족 중심 체제를 폐지하고 전문 관료에게 행정을 맡겨 중앙집권적인 관료 정부를 수립했다. 이는 중국 봉건제의 종식을 의미했으며, 진나라 초대 황제와 그의 고문들이 만든 정부 형태는 이후 왕조들의 통치 구조 모델이 되었다.[14][15] 이러한 시스템은 사회 변화 속에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여 등용하는 데 유리했고, 정부의 효율성을 높였다. 한나라(기원전 202년 ~ 서기 220년)는 공자의 가르침에 기반하여 가족, 사회 관계, 정치에서 예의를 중시하는 복잡한 관료제를 구축했다.[16]
관료제는 이후 왕조를 거치며 계속 발전했다. 기원전 165년, 문제 황제는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선발하는 과거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무제(재위 기원전 141년 ~ 기원전 87년)는 효련이라는 추천 및 임명 제도를 운영하는 한편, 국가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관리들이 유교 경전 시험을 통해 선발되도록 했다. 이는 공자의 사상을 국가 통치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기여했다.[17][18][19][20]
수나라(581년 ~ 618년)와 당나라(618년 ~ 907년) 시대에는 '사(士)' 계급이 완전히 표준화된 과거 제도를 통해 관료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하여 관직을 얻는 방식이 부분적으로 도입되었으나, 여전히 추천을 통한 임용 방식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시험을 통한 관리 선발이 더욱 강조되고 확대된 것은 송나라(960년 ~ 1279년)에 이르러서였다.[21] 송나라 시대에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관료제가 확립되었고, 경쟁 시험을 통해 특정 직책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 정착되었다.[22] 이 과거 제도는 청나라가 멸망하기 6년 전인 1905년까지 지속되며 중국의 전통적인 관료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었다.
한편, 서양에서는 로마 제국이 지방 총독과 그를 보좌하는 관리들의 계층 구조를 통해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24]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년 ~ 305년)의 개혁은 제국의 행정 구역 수를 두 배로 늘리고 로마 관료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다.[25] 그러나 초기 기독교 작가 락탄티우스(약 250년 ~ 약 325년)는 이러한 개혁이 "주들이 너무 세분화되고, 각 지역에 많은 총독과 하급 관리들이 과도한 부담을 지웠기 때문에" 광범위한 경제 침체를 초래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26] 로마 제국 분열 이후, 동로마 제국은 매우 복잡한 행정 계층 구조를 발전시켰으며, 이는 후에 "비잔틴적(Byzantine)"이라는 용어가 복잡하고 번거로운 관료 구조를 의미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27][28]
3. 2. 근대
근대 사회로 접어들면서 여러 국가에서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관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절대 군주제 하에서 왕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관료 조직이 확대되었으며, 이는 조세 징수, 행정 관리, 법 집행 등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이 시기 관료제 발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실력주의 원칙의 도입이다. 고대 중국의 과거 제도와 같은 능력 기반 관리 선발 시스템이 서구에 알려지면서, 기존의 신분이나 연고 중심의 관리 임용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경쟁 시험을 통해 공무원을 선발하고, 능력과 실적에 따라 승진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는 보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정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였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가 복잡해지고 국가의 기능이 확대되면서 관료제는 정부 조직뿐만 아니라 기업과 같은 대규모 조직으로까지 확산되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러한 관료제를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 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분석했다. 위계질서, 전문화, 규칙에 따른 업무 처리 등 관료제의 특징은 대규모 조직 운영에 효율성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관료제는 경직성, 비효율성, 권력 집중 등의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노멘클라투라'로 불리는 특권적인 관료 계층이 형성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47]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관료주의의 폐해가 지적되었다. 1980년대에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소위 '거대 정부'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정부 규모를 축소하고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기도 했다.[48][49] 오늘날에도 관료제는 여전히 현대 사회 조직 운영의 기본적인 틀로 기능하고 있지만, 정보기술의 발달 등으로 인해 그 형태와 운영 방식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51]
3. 2. 1. 페르시아
우준 하산이 이란 본토 대부분을 정복하면서 권력 중심지가 동쪽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아크 코윤루는 행정과 문화에 이란식 관습을 채택했다. 이란 지역에서 우준 하산은 여러 세대에 걸쳐 다른 왕조 아래 봉사한 가문 출신 서기관들을 포함한 이전 관료 조직을 유지했다. 아크 코윤루의 최고 4개 민정직은 모두 이란인이 차지했으며, 우준 하산 치하의 주요 직책은 다음과 같다.직책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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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 대의회(디반)를 이끎 |
무스타우피 알-맘말렉 | 고위 재무 회계관 |
무흐르다르 | 국새 담당관 |
마라쿠르 | 왕실 마구간 감독관 (마구간장) |
증가하는 수입을 이용하여 우준 하산은 울라마(성직자)와 주로 이란인인 도시 엘리트의 지지를 사는 동시에 빈곤한 농촌 주민들도 돌봤다.[29]
사파비 왕조 국가는 정부 내부와 지방 차원 모두에서 견제와 균형의 체제였다. 이 체제의 정점에는 샤가 있었고, 샤는 세예드 즉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혈통을 통해 국가에 대한 전권을 정당화했다. 투명성을 보장하고 샤를 우회하는 결정을 방지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막는 복잡한 관료 제도와 부서 절차가 마련되었다. 모든 직책에는 부관이나 감독관이 있었고, 이들은 모든 국가 관리의 행동 기록을 보관하여 샤에게 직접 보고하는 임무를 맡았다. 샤 자신도 경쟁적인 감시 분위기를 조성하여 장관들을 통제했다. 또한, 사파비 사회는 실력주의 기반이었고 세습이 드물었기 때문에, 정부 관리들은 지속적인 감시 속에서 샤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오스만 제국은 페르시아 관료 제도와 문화를 채택했다.
3. 2. 2. 러시아
러시아의 전제정치는 혼란의 시대와 무능하거나 부패한 차르들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정부 중앙 관료제의 힘 덕분에 유지될 수 있었다. 정부 관리들은 통치자의 정통성이나 왕좌를 장악한 보야르 세력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봉사했다. 17세기에는 관료제가 급격히 확장되었다. 정부 부서 (prikazy|프리카지rus; 단수, ''prikaz'')의 수는 1613년 22개에서 17세기 중반에는 80개로 증가했다. 부서들이 종종 중복되고 상충되는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중앙 정부는 주지사들을 통해 모든 사회 집단뿐만 아니라 무역, 제조업, 심지어 동방 정교회까지 통제하고 규제할 수 있었다.차르 관료제는 군대, 사법부 및 러시아 정교회와 함께 차르의 통치를 러시아 차르국 (1547-1721)과 러시아 제국 (1721-1917)에서 공고히 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가져온 변화의 힘은 특히 유럽의 많은 국가들을 상당한 사회 변화로 이끌었다. 그러나 차르 정권의 보수적인 성격과 권력과 통제를 유지하려는 욕망 때문에 러시아의 사회 변화는 유럽보다 뒤처졌다.[30]
러시아어 사용자들은 관료들을 чиновники|치노브니키rus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가진 계급 또는 чин|친rus 때문이었다.[31]
3. 2. 3. 아샨티 제국
아샨티 제국의 정부는 쿠마시에 정교한 관료제를 기반으로 건설되었으며, 국가 업무 처리를 담당하는 별도의 부처들이 있었다. 아샨티의 외교부는 쿠마시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규모는 작았지만 국가가 외국 세력과 복잡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외교부는 아샨티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아랍과의 관계를 각각 별도로 다루는 부서들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래리 야락(Larry Yarak)과 아이보어 윌크스(Ivor Wilks)와 같은 아샨티 역사 연구자들은 이 정교한 관료 체계가 아산테헤네(최고 통치자)에 비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지만, 두 학자 모두 이것이 견제와 균형의 복잡한 시스템을 갖춘 고도로 발달된 정부 형태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점에는 동의한다.[32]3. 2. 4. 영국

프랑스와 같은 절대 군주제 국가에서 흔했던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조세 징수권 매각 제도와 달리, 영국에서는 국고가 전체 조세 수입 및 정부 지출 시스템을 직접 통제했다.[33] 18세기 후반, 영국의 인구 대비 재정 관료 비율은 약 1/1300으로, 당시 두 번째로 관료제가 발달했던 프랑스보다 거의 네 배나 높은 수준이었다.[34]
광저우의 영국 영사였던 토마스 테일러 메도우스(Thomas Taylor Meadows)는 1847년에 출간한 저서 Desultory Notes on the Government and People of China|중국 정부와 국민에 대한 잡고eng에서 "중국 제국의 장수는 오로지 재능과 공적이 있는 사람들을 등용하는 훌륭한 통치에 기인한다"고 평가하며, 영국 역시 중국의 과거 제도를 본받아 실력주의에 기반한 공무원 제도를 도입하여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6]
이러한 주장은 고대 중국의 과거 제도에 영향을 받은 1854년 노스코트-트레블리언 보고서(Northcote–Trevelyan Report)로 이어졌다. 이 보고서는 공무원 채용 시 경쟁 시험을 통해 실력을 검증하고, 후보자들이 부서 간 이동이 용이하도록 탄탄한 일반 교육을 받아야 하며, 승진은 추천, 후원 또는 매수가 아닌 오직 업적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권고했다.[35][36] 이 보고서의 권고는 체계적이고 실력주의적인 관료제인 영국 국왕 폐하의 공무원 제도(His Majesty's Civil Service)의 시행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37]
영국 공무원 제도는 중국과 유사하게 고전 중심의 일반 교육을 바탕으로 공무원을 선발했으며, 이는 관료들에게 높은 사회적 명성을 부여했다. 특히 케임브리지-옥스퍼드 대학 중심의 공무원 교육 이상은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세계 정세를 이해하려는 유교적 이상과 맞닿아 있었다.[38]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져 영국 공무원 시험에서는 여전히 고전, 문학, 역사, 언어 등이 중요하게 평가되었다.[39] 실제로 1925년부터 1935년까지 영국 공무원 신규 채용자의 67%가 이러한 인문학 분야 졸업생이었다.[40] 또한 중국 모델이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처럼, 영국 모델 역시 공무원 선발 시 개인의 체격과 성격 등 인성적인 측면을 고려했다.[46]
3. 2. 5. 프랑스
영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관료제의 발전은 중국 시스템의 영향을 받았다.[41] 루이 14세 치하에서 구 귀족들은 권력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으며, 그들의 유일한 특권은 세금 면제였다. 불만을 품은 귀족들은 이러한 상황을 "비자연적인" 것으로 여기며 절대 군주제와 관료적 전제정치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했다.[42]계몽주의 시대에는 맹자의 경전이 번역되면서 실력주의 개념이 서구 지식인들에게 전파되었다. 이들은 실력주의를 기존 유럽의 구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보았다.[43] 18세기 서구에서는 중국의 실력주의적 측면 때문에 중국 관료 시스템을 유럽 정부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볼테르는 중국인들이 "도덕 과학을 완성했다"고 주장했으며, 프랑수아 케네는 중국을 본뜬 경제 및 정치 시스템을 옹호했다.[44] 중국, 이집트, 페루의 정부와 예카테리나 2세는 계몽 전제 정치의 모범으로 여겨졌고, 디드로, 달랑베르, 볼테르와 같은 인물들이 이를 높이 평가했다.[42]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는 이러한 실력주의 시스템을 채택했으며,[43] 정부의 급속하고 극적인 확장과 함께 프랑스 공무원 제도와 복잡한 관료 시스템이 등장했다. 이 현상은 "관료주의 광풍(bureaumania)"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은 표준화된 나폴레옹 법전을 통해 프랑스와 그의 통제하에 있는 다른 지역의 관료제를 개혁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관료제의 더욱 심한 성장으로 이어졌다.[45]
19세기 후반에 채택된 프랑스 공무원 시험 역시 일반적인 교양 과목에 크게 기반을 두었다. 이러한 특징들은 이전의 중국 모델과 유사하다고 평가받는다.[46]
3. 2. 6. 기타 산업화된 국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관료제는 산업화된 여러 나라에서 일반적인 행정 형태로 자리 잡았다. 존 스튜어트 밀이나 칼 마르크스 같은 사상가들은 당시 사회에서 관료제가 가지는 경제적 역할과 권력 구조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관료제를 근대 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았으며, 19세기 후반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다른 대규모 조직으로도 관료제 방식이 퍼져나갔다.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기업 내에서도 위계질서를 갖춘 비공식적인 관료제 구조가 나타났다. 이는 ''오거나이제이션 맨''이나 ''회색 플란넬 슈트의 사나이'' 같은 저작들에서 묘사되었다. 반면, 소련이나 동구권 국가들에서는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리는 특권적인 관료 계층이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47]
1980년대에는 소위 '거대 정부'와 연결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같은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과도하다고 여겨지는 정부 규제를 줄이고 경제를 더 신자유주의적 시장 원리에 맡겨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집권했다.[48][49] 기업계에서도 제너럴 일렉트릭의 잭 웰치와 같은 경영자들이 기업 내부의 관료적인 절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성과를 내기도 했다.[50]
하지만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조직은 정보 관리, 기록 보존, 복잡한 시스템 운영 등을 위해 관료제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정보기술의 발달로 서류 작업이 줄고 데이터베이스 활용이 늘어나면서 관료제의 운영 방식은 변화하고 있다.[51]
4. 이론가들
레온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연방 초기에 등장한 소비에트 관료 체계에 대해 비판적인 이론을 발전시켰다. 정치학자 토마스 M. 트위스에 따르면, 트로츠키는 관료주의를 권위주의, 과도한 중앙집권주의 및 보수주의와 연관 지어 설명했다. 사회 이론가 마틴 크리지어는 1923년 이후 트로츠키의 저술이 후대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많은 비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트위스는 트로츠키의 소비에트 관료주의 이론이 소비에트 역사 연구와 동유럽에서의 자본주의 복귀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정치학자 바룩 크나이-파즈는 트로츠키가 무엇보다도 관료 시스템으로서의 "스탈린주의의 역사적, 사회적 뿌리를 보여주기 위해" 저술했다고 분석했다.[52]
트로츠키는 1936년 저서 『배반된 혁명』에서 소련이 갈림길에 놓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즉, 정치 혁명을 통해 지배 관료를 타도하거나, 아니면 관료에 의해 자본주의가 복귀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는 "현재의 관료 독재가 새로운 사회주의 권력으로 대체되지 않는다면, 그 몰락은 산업과 문화의 엄청난 쇠퇴를 동반한 자본주의적 관계로의 복귀를 의미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53]
4. 1. 칼 마르크스
칼 마르크스는 1843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헤겔의 법철학 비판''에서 관료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분석했다. 이는 헤겔이 ''법철학''에서 전문 관리들의 공공행정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헤겔은 '관료제'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았지만, 마르크스는 명확히 관료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마르크스는 정부의 관료제와 기업의 관료제가 겉보기에는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존재를 위해 상호 의존하는 관계라고 보았다. 그는 정부 관료제와 민간 기업의 관료제를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기업은 시민사회가 국가가 되려는 시도이지만, 관료제는 실제로 자신을 시민사회로 만들어낸 국가이다."라고 설명하며 관료제의 본질을 지적했다.
4. 2. 존 스튜어트 밀
1860년대 정치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성공적인 군주제는 본질적으로 관료제이며, 이는 중국 제국, 러시아 제국, 유럽의 여러 정권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밀은 관료제를 대의 민주주의와는 구별되는 독립적인 정부 형태로 보았다. 그는 관료제의 주요 장점으로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경험 축적을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료제가 직접 선거가 아닌 임명에 의존하기 때문에 대의제 정부보다는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밀은 관료제가 결국 개인의 '창의성'을 억압하고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좌우될 위험이 있으며, "관료제는 항상 관료주의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4. 3. 막스 베버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관료제를 최초로 공식 연구했으며, 그의 연구는 이 용어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의 대표 저서인 『경제와 사회』(1921년 사후 출간)에 실린 에세이 「관료제」[55]에서 베버는 공공 행정, 정부, 기업 등 다양한 조직 형태를 분석하며 관료제의 이상형을 제시했다. 현대 행정학 연구는 대부분 베버의 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75]베버는 관료제를 인간이 만든 조직 중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보았다.[76] 그는 관료제의 핵심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권한에 있으며, 이것이 서구 사회의 합리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베버가 제시한 이상적인 관료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56][77]
특징 | 설명 |
---|---|
계층 구조 | 명확한 위계 서열과 명령 계통(명령 계열)을 갖는다. |
권한과 분업 | 업무 영역이 명확히 나뉘고(분업), 권한은 법규나 규정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된다. 과업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수행된다. |
문서주의 | 모든 결정과 규칙은 문서로 기록되고 관리된다. |
전문성 | 관료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기술적 자격에 따라 임용되며 승진한다. |
몰개인성 | 개인적인 감정이나 관계가 배제되고, 규칙에 따라 비인격적(객관적)으로 업무를 처리한다. 자격은 개인이 아닌 조직의 규칙에 의해 평가된다. |
베버는 관료제 등장의 전제 조건으로 관리 영역의 확대와 인구 증가, 행정 업무의 복잡성 증대, 그리고 효율성이 중요한 화폐 경제의 발달을 꼽았다. 또한 정보통신기술과 교통 기술의 발전이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한편, 민주화와 문화의 합리화는 평등한 대우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강화시켜 관료제 발달을 촉진했다고 보았다.
베버는 관료제가 기술적으로 가장 우수한 조직 형태라고 평가했지만[54], 동시에 그 위험성도 경고했다. 그는 관료제가 지나치게 합리성을 추구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을 비인격적인 규칙과 절차 속에 가두는 "철장(iron cage)"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관료제화가 심화되면 사회 전체가 영혼 없는 합리적 통제 아래 놓이는 "얼음처럼 차가운 어둠의 극야"가 도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베버의 이러한 비판적 분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베버는 조직 운영에서 나타나는 "형식 합리성"과 "실질 합리성" 사이의 모순 문제도 지적했다. '''형식 합리성'''은 정해진 규칙과 절차를 모든 경우에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업무 처리에 효율적이다. 반면 '''실질 합리성'''은 규칙의 틀을 넘어 특정 가치나 윤리, 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를 고려하여 개별 상황에 맞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 베버는 혁신이 필요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는 형식 합리성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조직 목표 달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런 경우 실질 합리성에 기반한 유연한 판단과 책임 있는 결정이 필요하지만, 이는 관료제의 기본적인 속성과 충돌할 수 있다.[71] 이처럼 베버는 근대 사회가 형식 합리성과 실질 합리성 간의 해결하기 어려운 긴장 관계 위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71]
현대 공무원 제도, 특히 유럽 대륙의 전통적인 계층제 기반 공무원 제도는 흔히 "베버식 관료제"라고 불린다. 그러나 정치학자 얀 포글러(Jan Vogler)는 베버가 묘사한 이상형 관료제가 실제 현대 관료제의 모습과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포글러는 실제로는 엄격한 능력주의 채용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정 집단에 대한 우대나 정치적 영향력 배제 실패 등 베버의 이상형과는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59] 사회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베버식 관료제가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고 있다.[58]
4. 4. 우드로 윌슨
브린 모어 대학교 교수 시절, 우드로 윌슨은 "행정학 연구(The Study of Administration)"라는 에세이를 통해 관료제를 일시적인 정치와는 거리를 둔 전문가 집단으로 옹호했다.[60] 윌슨은 관료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이는 마치 회계 방법이 사회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기계가 제조품의 일부인 것처럼 정치 생활의 일부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더 큰 원칙들을 통해 정치적 지혜의 불변하는 격언들, 정치적 진보의 영원한 진실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적 세부 사항의 지루한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윌슨은 통치받는 자에 의한 통치의 대체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행정적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다. 정치가 행정의 과제를 설정하지만, 그 직무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며 행정의 전문성과 정치로부터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이 에세이는 이후 미국 행정학 연구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61]
4. 5. 루트비히 폰 미제스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1944년에 출간한 저서 ''관료제''에서 관료적 관리 방식과 이윤 관리 방식을 비교 분석했다. 그는 제공되는 서비스의 가치를 이윤과 손실이라는 경제적 계산을 통해 측정할 수 있다면, 이윤 관리가 가장 효과적인 조직 운영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경제적 계산이 어려운 서비스의 경우에는 관료적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보았다.미제스는 관료제 자체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료제가 사회를 조직하는 데 필수적인 방법이며, 법의 지배를 확립하고 독단적인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톨릭 교회의 사례를 들어, 관료제는 행동 규범이 쉽게 변하지 않는 조직에 가장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관료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관료적 방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으로 관료제가 침투하는 현상" 때문에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미제스는 공공 영역뿐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관료적 과정이 나타날 수 있지만, 사적 영역에서의 관료화는 본질적으로 정부의 간섭 때문에 발생하는 결과라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관료적 조직의 속박은 개인의 주도성을 마비시키는 반면, 자본주의 시장 사회 안에서는 혁신가가 여전히 성공할 기회를 가진다. 전자는 침체와 낡은 방식의 고수를 낳지만, 후자는 진보와 개선을 이끈다."
4. 6. 로버트 K. 머튼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K. 머튼은 1957년 출판된 그의 저서 ''사회이론과 사회구조''에서 베버의 관료제 이론을 확장했다. 머튼은 베버 분석의 일부 측면에는 동의했지만, '과잉 순응' 때문에 발생하는 '숙련된 무능력' 같은 관료제의 기능 장애 측면도 지적했다. 그는 관료들이 조직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 때문에 기존 업무 방식의 변경에 저항한다고 보았다. 머튼은 관료들이 사람 간의 관계보다는 형식을 중시하고, 개별 사례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도록 훈련받기 때문에 '오만하고' '거만하게'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4. 7. 엘리엇 자크
엘리엇 자크(Elliott Jaques)는 1976년 처음 출판된 그의 저서 ''관료제의 일반 이론''(A General Theory of Bureaucracyeng)에서 모든 유형의 고용 시스템에서 관료제 계층 구조의 관리직 또는 작업 수준의 보편적이고 균일한 기본 구조를 발견했다고 설명한다.[62]자크는 관료제가 개방 사회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하려면 다음 조건 중 일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증거를 제시했다.
- 관료제의 계층 구조 수준 수는 그것이 생성되는 고용 시스템의 복잡성 수준과 일치해야 한다. (자크는 계층 구조의 복잡성 수준을 최대 8단계로 확인했다.)
- 계층 구조 내 역할은 작업 복잡성 수준이 서로 다르다.
- 역할의 작업 복잡성은 역할 담당자의 인적 능력 수준과 일치해야 한다. (자크는 인적 능력의 최대 수준을 8단계로 확인했다.)
- 계층 구조 내 관리직 역할은 그 작업 복잡성 수준이 하위 역할의 작업 복잡성 수준보다 한 단계 높아야 한다.
- 계층 구조의 모든 관리직 역할은 완전한 관리 책임과 권한을 가져야 한다 (팀에 대한 거부권 행사, 작업 유형 및 특정 과제 할당 결정, 개인적 효율성 및 인정 결정, 적절한 절차 내에서 팀에서 구성원을 배제하는 절차 시작 결정).
- 모든 계층 역할에 대해 수평적 업무 책임과 권한이 정의되어야 한다 (7가지 유형: 병행, 자문, 서비스 제공 및 수령, 조정, 모니터링, 감사, 규정).[63][64][65]
5. 관료제와 민주주의
모든 현대 국가와 마찬가지로 자유민주주의는 수많은 대규모 조직과 종신 공무원들로 가득 차 매우 관료화되어 있다. 이러한 관료제 중 일부는 국가와 국가를 내부 및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현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기관들은 자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정치로부터 대부분 차단되기 때문에 특정 정당이나 집단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충성스러운 영국 공무원들은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때때로 나치가 1930년대 독일에 한 것처럼 어떤 집단이 관료 국가를 장악할 수도 있다.[66]
평등, 참여, 개인주의와 같은 민주주의와 관련된 많은 이상들이 계층, 전문화, 비인격성과 같은 현대 관료제와 관련된 이상들과 극명하게 대조됨에도 불구하고, 정치 이론가들은 관료제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주의 이론가들은 여전히 민주적 통치 내에서 관료적 권력이 제기하는 과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개발하지 못했다.[67]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접근 방식은 관료제가 진정한 민주주의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관점을 채택하는 이론가들은 일반적으로 관료제가 모든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함을 이해한다. 그들이 비민주적이라고 인식하는 사회에서만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따라서 19세기 영국 작가들은 관료제를 "대륙의 골칫거리"라고 자주 언급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민주주의가 관료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67]
마르크스와 다른 사회주의 사상가들에 따르면 가장 발전된 관료제는 프랑스와 독일의 관료제였다. 그러나 그들은 관료제가 부르주아 국가의 증상이며 부르주아 국가를 낳은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염두에 두었던 민주주의는 분명 아니었지만, 사회주의 사회는 자신들이 대체한 정부보다 더 관료화되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경제가 광범위한 복지 국가를 지원하는 데 필요한 행정 시스템을 개발한 후에는 관료제가 사회주의 정부에만 독점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67]
6. 관료제의 특징 (대한민국 관점)
대한민국에서 관료제는 주로 일본의 영향을 받아 도입되었다. 특히 1970년대 초반, 일본 경제의 고속 성장을 목격하고 이를 벤치마킹하면서 일본과 유사한 형태의 관료제가 한국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1] 현대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조직 구조에서 나타나는 관료제 문화는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1] 이는 정당, 시민단체, 기업, 노동조합, 사회 복지 단체, 비정부 조직(NGO) 등 다양한 민간 단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위계 구조를 포함한다.[1]
대한민국 관료제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위계 구조: 조직이 상의하달식 지휘 명령 계통을 가지며, 피라미드의 형태로 서열화되어 있다. 상위 직급자는 의사 결정 폭이 넓고 책임도 크며, 하위 직급자를 통제하고 관리한다.[1]
- 능력주의 지향: 일정한 자격이나 자질을 갖춘 사람을 채용하고, 조직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지위와 보상을 결정한다. 이는 연공서열보다는 능력주의에 가까운 특징이다.[1]
- 분업: 직무가 전문적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각 부문이 서로 협력하여 조직 전체를 운영하는 분업 형태를 취한다.[1]
- 레드 테이프 (Red Tape): 규정된 절차를 글자 그대로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로 인해 지나치게 시간이 소요되어 원활한 업무 수행 및 의사 결정을 방해하는 형식주의적 규칙 집착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1]
- 할거주의 및 부서 이기주의: 관료들이 자신이 속한 기관이나 부서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다른 부서나 기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으려는 경향이다. 이는 조직 전체의 극심한 비효율과 부서 간 책임 전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1]
- 파벌주의: 관료제의 직위가 실질적인 업무 수행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현상이다. 검증된 책임 소재보다는 집단의 주도권을 중시하며, 특정 직위를 중심으로 여러 세력이 연대하여 파벌을 형성한다. 이러한 파벌은 집단적인 힘을 이용해 개인의 정당한 권한을 억압하거나 직위를 부당하게 악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폭력적인 양상을 띠기도 한다. 이는 할거주의가 확장된 형태지만, 단순한 책임 전가를 넘어 연대를 통한 조직적인 집단행동을 특징으로 한다.[1]
- 복지부동: 관료들이 업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상부에서 지시받은 만큼만 소극적으로 처리하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관료제는 책임 소재가 명확하여 신상필벌이 확실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책임 회피나 소극적인 업무 태도로 이어지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는 관료제의 무사안일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1]
- 형식주의: 조직이나 사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나 목표를 잊고, 관료제적 절차나 형식 자체가 최종 목표가 되어버리는 현상이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에서의 이익이나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한 착취, 행정력 낭비 등이 발생하며, 보여주기식 행정인 전시행정이 대표적인 예이다.[1]
7. 관료제의 문제점 (대한민국 관점)
대한민국 사회의 여러 조직, 예를 들어 정당, 시민단체, 기업, 노동조합, 사회 복지 단체, 비정부 조직(NGO) 등에서 관료제적 구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관료제는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관료제는 70년대 초반 일본 경제의 고속 성장을 벤치마킹하는 과정에서 그 구조와 문화를 받아들인 측면이 있으며[1], 이로 인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지적된다.
- 레드 테이프 (Red Tape): 규정된 절차를 글자 그대로 따를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오히려 원활한 업무 수행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현상을 말한다. 불필요한 형식과 절차에 얽매여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1]
- 할거주의 및 부서 이기주의: 자신이 속한 부서나 기관의 이익만을 우선시하고 다른 부서와의 협력을 등한시하는 태도이다. 이는 조직 전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결과를 낳는다.[1]
- 파벌주의: 업무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학연, 지연 등 개인적인 관계나 소속 집단의 이익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파벌은 조직 내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개인의 정당한 권리를 억압하거나 직위를 남용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심한 경우, 집단의 힘을 이용하여 책임을 회피하거나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1]
- 복지부동: 관료들이 책임지는 것을 꺼려 주어진 업무만 최소한으로 처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관료제의 특징인 명확한 책임 소재와 신상필벌이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 사례로, 대표적인 무사안일주의의 모습이다.[1]
- 형식주의: 본래의 목표나 가치는 잊어버리고 형식적인 절차나 규칙 자체에만 얽매이는 현상이다. 실질적인 내용보다는 보여주기식 행정, 즉 전시행정에 치중하게 만들며, 이 과정에서 연공서열이나 인간관계에 따른 불합리한 이익 추구나 행정적 낭비가 발생하기도 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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