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폴리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의미하는 단어로, '국가'와 '공동체'의 의미를 포괄한다. 폴리스는 호메로스 시대부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으며, 그 사회 구조와 특징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폴리스는 귀족정, 참주정, 민주정 등 다양한 정치 체제를 거쳤으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폴리스'는 어원적으로 다양한 현대 유럽 언어에 영향을 미쳤으며, '정책', '정치' 등의 단어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그리스계 도시국가 - 크노소스
    크노소스는 크레타 섬의 고대 도시로,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였던 크노소스 궁전으로 유명하며,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고, 청동기 시대에는 거대한 궁전을 중심으로 번영했으며, 미노타우로스 미궁 전설과 함께 고고학 유적지로 남아있다.
  • 그리스계 도시국가 - 미케네
    미케네는 아르골리스 지방의 고대 유적지로, 미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에게 문명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아가멤논 왕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고 청동기 시대 붕괴와 함께 쇠퇴했으나 후대 그리스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도시국가 - 모나코
    모나코는 프랑스 리비에라에 위치한 작은 독립국으로, 그리말디 가문의 통치 아래 관광과 금융을 중심으로 경제적 번영을 이루었으며, 카지노와 모나코 그랑프리 등으로 유명하다.
  • 도시국가 -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남단에 위치한 도시 국가로, "사자 도시"를 뜻하는 싱가푸라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지며, 스탬퍼드 래플스에 의해 무역 기지로 설립된 후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이자 발전된 도시 국가로 성장했고, 다민족 국가로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강력한 정부 주도의 경제 정책과 엄격한 법률 체계를 특징으로 한다.
  • 고대 그리스의 도시 - 사르디스
    사르디스는 터키 서부의 고대 도시로, 뤼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번성했으나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되었고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치며 재건되었지만 지진과 침략으로 쇠퇴했으며, 비잔티움 제국 시대에는 중요성이 감소했으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했고 현재는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굴되는 고고학적 유적지이다.
  • 고대 그리스의 도시 - 에페소스
    에페소스는 튀르키예 서부에 위치한 고대 도시로, 아르테미스 숭배와 동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로마 제국 시대에 번영을 누렸으나 잦은 침략과 항구 매몰로 쇠퇴하여 15세기 이후 버려졌다.
폴리스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명칭폴리스
로마자 표기Polis
어원
별칭없음
유형미소 국가
원어 언어gr
다른 명칭

정치
정부 형태공화국 또는 연방
통치 기관에클레시아 (민회)
행정관아르콘
면적
최대 면적 (60% 폴리스)100 km²
최대 면적 (80% 폴리스)200 km²
인구
인구 (기원전 400년 기준)7,500,000명 이상
인구 밀도자동 계산
인구 특징아테네의 폴리스는 여신 아테나의 이름을 따서 아테나이로 명명되었으며, 데모스는 '아테네인'인 아테나이오이였다.
코펜하겐 연구에서는 이것을 개인 이름을 보충하는 "도시 민족"이라고 언급한다.
기타
웹사이트없음

2. 용어의 역사와 의미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문헌에서부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며, 단순히 지리적 단위를 넘어 '국가'이자 '공동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7][8] 폴리스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호메로스헤시오도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특히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깊이 있게 다루어졌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 Πολιτείαgrc () )에서 이상적인 폴리스의 모습을 그렸다. 그는 공공선을 실현하는 최선의 정부 형태로 철인왕의 통치를 제시했으며, 정의로운 폴리스를 구성하는 요소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네 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플라톤은 상호 필요성과 개인의 적성 차이라는 두 가지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폴리스의 경제 구조와 사회 계급을 논했다.

게마 아우구스테아(Gemma Augustea)에 묘사된 이상적인 폴리스. 위쪽 장면은 철인왕과 다른 학자들과 전사들을, 아래쪽 장면은 백성들을 묘사하고 있다.


반면,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리케이온을 설립하고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창시하며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폴리스를 분석했다. 그는 여러 폴리스의 사회와 정부 형태를 실제 조사를 통해 연구했으며, 그 결과물인 정치학과 아테네 헌법은 오늘날까지 정치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남아있다. 이처럼 플라톤이 이상적인 폴리스 모델을 추구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제 존재하는 다양한 폴리스의 모습을 설명하는 데 더 중점을 두었다.

현대에 이르러 폴리스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주로 고대 문헌 연구와 고고학적 발굴에 의존한다. 오랫동안 폴리스는 '도시 국가'라는 개념이나 푸스텔 드 쿨랑주가 제시한 '고대 도시' 모델을 통해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들은 모든 폴리스의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9] 예를 들어, '도시 국가' 모델은 투키디데스가 지적했듯이 도시 형태를 갖추지 않고 여러 마을로 구성되었던 스파르타와 같은 중요한 사례를 설명하기 어렵다.[20][21] 또한 스파르타에 종속되었던 페리오이코이의 존재는 폴리스가 반드시 완전한 주권을 가진 단위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22][23] 푸스텔 드 쿨랑주의 모델 역시 인도유럽어족 비교에 기반했지만,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적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13][14][15]
쿠랑주(Fustel de Coulanges)의 마지막 거주지 현관 위 명판


로물루스와 레무스. 트로이 아이네아스의 후손인 이들은 죽도록 버려졌으나, 티베르 강변에서 늑대의 젖을 먹고 아르카디아에서 온 식민지인 폴리스의 왕 에반데르에게 구출되었다. 이 이야기에는 이탈리아 부족이 없다.


고대 스파르타 5개 마을 지도. 유로타스 강은 오른쪽에 있습니다. 그림에 나와 있는 중앙 성채는 이전 미케네 궁전의 터였으며, 버려진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기존 모델의 한계 속에서 코펜하겐 연구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은 폴리스 개념을 독립성이나 자치권과 분리하여 '종속 폴리스'와 같은 범주를 설정하고, '미소국가' 모델을 제안하기도 했다.[10][24] 폴리스를 하나의 고정된 모델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폴리스'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분명 일관된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본질을 찾으려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모나코(Monaco), 프랑스(France) 남부 해안에 위치한 현대적인 도시 국가. 모나코는 고대 그리스 폴리스의 어떤 측면과도 유사하지 않다.

2. 1. 어원과 초기 의미

폴리스(πόλις|폴리스el)라는 단어는 가장 오래된 그리스 문학 문헌 중 하나인 호메로스일리아스에서 최대 350번 사용된다.[5] Perseus 디지털 도서관에 소장된 수백 편의 고대 그리스 고전 문헌에서는 이 단어가 수천 번 등장하며, 특히 고대 역사가 디오니시우스 할리카르나스소스는 최대 2,943번 사용한 것으로 기록된다. 기원전 300년 이전의 비문 연구에서도 폴리스를 사용한 비문 1,450개가 발견되었으며(아테네 425개, 기타 폴리스 1,025개), 문학적 용법과 비문적 용법 사이에 의미 차이는 없었다.[6]

폴리스의 어원은 고대 아르카이크 시대의 '요새, 성채, 방어에 적합한 언덕'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언어학자 에밀 베네비스테는 폴리스가 '높은 도시'를 뜻하는 ἀκρόπολις|아크로폴리스el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아크로폴리스는 폴리스의 중심이 되는 언덕으로, 방벽으로 둘러싸인 자연 언덕 위에 신전이나 요새가 세워진 형태였다. 초기에는 군사적 거점이었으나, 기원전 7세기경에는 폴리스 시민들의 신앙 중심지이자 공동체 유대의 상징으로 변화하며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이 건립되었다. 베네비스테는 이러한 초기 의미가 베다 산스크리트어의 पुर|푸르sa(요새)나 리투아니아어의 pilis|필리스lt(성, 성채)와 같은 인도유럽어족 단어들과의 비교를 통해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 역사 시대에도 폴리스가 '요새'나 '성채'를 의미하는 용례는 남아 있었는데, 예를 들어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지금도 폴리스라고 불린다"라고 기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폴리스라는 단어는 도시의 발전에 따라 주변 지역까지 포함하는 '국가' 또는 '도시 국가'를 지칭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토지 소유자들을 중심으로 시민권 개념이 등장하면서, 폴리스는 시민 전체, 즉 '시민 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와 같은 지리적 단위보다는 '아테네인', '라케다이몬인', '테베인'처럼 시민 집단으로서 자신들을 인식했기 때문에, '시민 집단'이라는 의미는 폴리스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되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영어의 '시티 스테이트(city-state)'는 폴리스의 완전한 번역어로 보기 어렵다. 티로스나 시돈과 같이 군주제나 소수 과두정치 세력이 지배했던 다른 고대 도시 국가들과 달리, 폴리스는 이론적으로 시민 집단에 의해 통치되는 정치 공동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58]

'폴리스'에서 파생된 단어는 현대 유럽의 여러 언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으며, 이는 헬레니즘 세계관의 영향을 보여준다. 영어의 주요 파생어로는 정책(policy), 정체(polity), 경찰(police), 정치(politics) 등이 있다. 또한, 접미사 '-폴리스(-polis)'는 특정 종류의 도시나 국가를 나타내는 여러 단어에 사용된다.

2. 2. 라틴어와 현대 언어에서의 용법

고대 그리스어 πόλις|폴리스el로마 시대에 시민 사회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civitas로 번역되었다. 키위타스는 자유 도시(municipium, 현재의 지방 자치 단체)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에밀 베네비스테의 연구에 따르면, civitas|키위타스la는 cives|키웨스la(동포 시민)의 전체 또는 집합을 나타낸다. 그러나 라틴어에서 cives|키웨스la와 civitas|키위타스la의 관계는 그리스어의 πόλις|폴리스el(도시)와 πολίτης|폴리테스el(시민)의 관계와는 정반대라고 한다.

영어의 '''시티 스테이트'''(city-state)라는 단어는 독일어의 '''슈타트슈타트'''(Stadtstaat)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어 단어의 완벽한 번역이 아니다. 왜냐하면 폴리스는 티로스시돈과 같이 군주제 또는 소규모 과두정치에 의해 통치되었던 다른 초기 고대 도시 국가와는 달리, 오히려 시민 집단에 의해 통치된 국가와 유사했기 때문이다.[58]

'폴리스'(polis)를 어원으로 하는 단어는 유럽의 여러 언어에 널리 나타나며, 이는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세계관의 영향을 보여준다. 영어에서 파생된 단어로는 '''정책'''(policy), '''정체'''(polity), '''경찰'''(police), '''정치'''(politics) 등이 있다.

또한 다수의 단어가 접미사 "-폴리스"(-polis)로 끝나는데, 대부분 특별한 종류의 도시 및/또는 국가를 가리킨다.

단어의미
아스트로폴리스별 크기의 도시/산업 지역; 복잡한 우주 정거장; 유럽의 별 관련 축제.
코스모폴리스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많은 인구로 구성된 대도시; 돈 델리로가 쓴 소설 제목.
에쿠메노폴리스전체 행성을 덮는 도시로, 주로 공상 과학 소설에서 등장.
메갈로폴리스여러 도시와 그 교외를 합쳐 건설된 거대 도시.
메트로폴리스식민지의 모 도시, 대주교의 주교좌 또는 대도시권의 주요 도시 인구 중심지.
네크로폴리스죽은 자의 도시라는 의미의 묘지.
테크노폴리스첨단 산업이 있는 도시; 컴퓨터로 가득 찬 방; 인터넷.



그 외에 도시의 일부나 도시 그룹을 가리키는 단어들도 있다.


  • 아크로폴리스: '높은 도시'라는 뜻으로, 폴리스의 상부에 위치하며 종종 성채 및/또는 주요 신전이 있는 곳.
  • 데카폴리스: 10개 도시의 그룹.
  • 펜타폴리스: 5개 도시의 그룹.
  • 트리폴리: 3개 도시의 그룹으로, 리비아의 트리폴리와 레바논의 트리폴리라는 도시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3. 폴리스의 사회 구조와 특징

폴리스(πόλις|polisel)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단순한 지리적 개념을 넘어 복잡한 사회 구조와 특징을 지닌 공동체였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 문헌인 『일리아스』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며[5], 고대 그리스 문헌 전반에 걸쳐 수천 번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었다.[6] 폴리스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국가', '공동체', '요새', '시민 집단'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다.[7][8]

원래 폴리스는 ἀκρόπολις|아크로폴리스el, 즉 방어에 유리한 언덕 위의 '성채'를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초기 군사 거점에서 점차 폴리스 공동체의 신앙 중심지이자 상징적 공간으로 발전하여 신전 등이 세워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폴리스는 아크로폴리스 주변의 시가지와 농촌 지역까지 포함하는 국가 단위를 지칭하게 되었고, 나아가 그 구성원인 시민 전체, 즉 시민 집단을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뜻을 갖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특정 지역의 주민이라기보다는 '아테네인', '라케다이몬인'과 같이 특정 폴리스의 시민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폴리스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아고라(시장 및 공공 광장), 하나 이상의 신전, 체육관(김나시온) 등을 포함했다. 그러나 폴리스를 규정하는 핵심은 영토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유대와 정치·사회적 구조였다. 폴리스 사회는 크게 시민비시민으로 나뉘었다. 시민은 정치 참여 권리를 가졌으나, 여성이나 미성년자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비시민에는 메토이코이(거류 외국인)와 노예가 포함되었으며, 이들은 공식적인 시민 공동체에는 속하지 못했다. 시민권은 주로 출생에 따라 결정되었고, 각 폴리스는 고유한 수호신, 종교 의례, 관습을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졌다.

정치적으로 많은 폴리스는 초기 '원시 왕정' 단계를 거쳐 귀족정으로 이행했다. 귀족들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했으나, 이 과정에서 농민층과의 갈등이 심화되어 비합법적 통치자인 참주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폴리스에서는 시민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정으로 발전해 나갔다. 아테네가 대표적인 민주정 폴리스였고, 스파르타는 독특한 귀족정 기반의 군사 국가 체제를 유지했다.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많은 폴리스에서는 리쿠르고스, 솔론과 같은 입법자들을 통해 국가 제도(폴리테이아)를 정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요 탐구 대상이기도 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상적인 폴리스의 모습을 그리며, 철인왕의 통치와 정의로운 사회 구조를 강조했다. 그는 폴리스를 구성하는 경제 계급과 사회 전체를 위한 네 가지 덕목(지혜, 용기, 절제, 정의)을 제시했다.

정치학의 창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조각상. 실제 모습과의 유사성은 알 수 없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폴리스를 분석했다. 그는 폴리스를 코이노니아(공동체)로 정의하고, 가족(오이키아)에서 마을(코메)로, 그리고 여러 마을이 모여 자급자족적인 폴리스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폴리스가 단순히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위치, 인구, 그리고 헌법(폴리테이아)을 공유하는 정치 공동체임을 강조했다.[29] 그는 또한 폴리스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시민들이 사유 재산을 바탕으로 서로 교환하며 협력하는 '상호 평등'이 중요하다고 보았다.[42]

현대에 폴리스를 이해하려는 시도 역시 계속되고 있다. 과거에는 폴리스를 단순히 '도시 국가'(city-state)로 번역하거나, 퓌스텔 드 쿨랑주가 『고대 도시(La Cite antique)』에서 제시한 모델처럼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를 동일한 틀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다.[13][17] 그러나 이러한 모델들은 스파르타처럼 도시적인 면모가 약하거나[21], 다른 폴리스에 종속된 경우[24] 등 다양한 폴리스의 모습을 포괄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았다. 코펜하겐 폴리스 센터와 같은 연구 기관에서는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기존 모델의 한계를 지적하고 폴리스 개념을 재검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10]

결론적으로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세계의 기본적인 사회·정치 단위였으며, 단순한 지리적 구분을 넘어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독특한 사회 구조, 정치 제도, 문화적 특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3. 1. 사회 계층

폴리스 사회는 일반적으로 세 종류의 주민으로 구성되었다. 가장 높은 계층은 참정권을 가진 시민이었고, 다음으로 참정권이 없는 시민, 마지막으로 비시민 계층이 있었다.[39] 비시민에는 메토이코이(거류 외국인)와 노예가 포함되었다. 시민권은 주로 출생에 따라 결정되었다.

초기 폴리스는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대부분 귀족정 체제로 이행했다(기원전 8세기). 귀족들은 철기 농기구 도입에 따른 농업 생산력 증대와 해외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정치 권력을 독점했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 내부에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시민들은 귀족농민 두 계층으로 뚜렷하게 나뉘었다. 동양이나 서양 중세의 부재지주 귀족과 달리, 그리스 귀족들은 스스로 농업을 경영하고 해외 교역 등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특징을 보였다.

반면, 다수의 농민들은 부를 쌓을 기회가 적었고 여러 어려움이 겹치면서 점차 빈곤해졌다. 많은 농민이 빚 때문에 토지를 잃고, 심한 경우에는 채무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몰락한 농민이나 정치적 망명자들이 주도한 식민 활동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본국의 정치·경제적 발전보다는 사회 내부의 문제를 반영하는 소극적인 성격을 띠었다. 식민 폴리스는 정치적으로 모국으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운영되었다.

귀족정 하에서 심화된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은 참주정의 등장을 촉발했다. 참주(티라노스)는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장악한 지배자를 의미하며 후대에 종종 폭군으로 부정적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초기 참주 중에는 자레우코스, 페이돈, 페리안드로스, 피시스트라투스처럼 입법이나 도시 발전에 기여하며 폴리스 정치의 진전을 이끈 인물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빈궁한 농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다.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많은 폴리스에서는 πολιτεία|폴리테이아el(국가 제도)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스파르타의 리쿠르구스, 아테네드라콘솔론 같은 입법자들이 등장하여 법률을 제정하거나 성문화했다. 아테네에서는 솔론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혼란 끝에 피시스트라투스 참주정이 들어섰으나, 기원전 508-507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통해 민주정(데모크라티아)으로 나아갔다. 다른 여러 폴리스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민주정을 발전시켰다. 다만, 스파르타는 귀족정적 요소를 유지하면서도 시민단 내부의 평등을 강조하는 독특한 체제('평등자들의 공동체')를 구축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정치학에서 πόλις|폴리스elκοινωνία|코이노니아el(공동체)로 정의하며 사회 구조를 분석했다. 그는 폴리스가 οἰκία|오이키아el(가족)라는 기본 단위들의 계층적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가족 내에는 남편과 아내, 주인과 노예, 아버지와 자녀라는 세 가지 관계가 존재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와 여성 역시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간주했다. 그는 플라톤이 주장한 재산 공유(일종의 공산주의)에 비판적이었으며,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시민 간의 교환(상호 평등)이 폴리스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42]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에서 '시민'(πολῖται|폴리타이el)이라는 용어는 초기에는 가족 구성원 전체를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으나, 점차 정치 참여 권한을 가진 이들을 중심으로 그 의미가 구체화되었다.

초기 폴리스에서는 무기를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귀족들이 국방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는 그들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기반이 되었다. 노예제는 특히 아테네에서 발달했으며, 개인 소유가 일반적이었다.

3. 2. 정치 제도

초기 폴리스의 정치 체제는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후대의 기록을 통해 '원시 왕정' 단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부분의 폴리스는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왕정을 지나 귀족정 단계에 들어서 있었다(기원전 8세기). 코린트에서는 옛 왕족이 귀족으로 남아 지배했고(박키아다이 가문), 스파르타에서는 원로회나 감독관의 견제 아래 두 명의 왕이 다스리는 독특한 왕정이 유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리스의 왕권은 오리엔트의 강력한 전제 왕권과 달리 기반이 약했으며, 사회가 안정되면서 점차 힘을 잃고 귀족층에 흡수되었다. 왕을 뜻하는 '바실레우스'라는 칭호는 아테네, 아르고스 등 여러 폴리스에서 단순한 관직명으로 남게 되었다.

귀족정은 철제 농기구 도입에 따른 농업 생산력 증대와 교역의 발달 과정에서 나타났다. 늘어난 잉여 생산물을 바탕으로 한 해외 교역은 폴리스 내부에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공동체 구성원은 부유한 귀족과 가난한 농민으로 나뉘었다. 귀족들은 정치 권력을 독점하며 신분적 우위를 확보했다. 반면, 부를 쌓을 기회가 적었던 농민들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 빠르게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고대 그리스의 귀족은 동양이나 중세 서양의 부재지주 귀족과 달리, 스스로 농업을 경영하고 적극적으로 해외 교역 등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징을 보였다. 또한, 이 시기 그리스의 식민 활동은 근대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팽창과는 성격이 달랐다. 주로 경제적으로 몰락한 농민이나 정치적 망명자들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나선 것으로, 사회 내부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소극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했다. 건설된 식민 폴리스들은 정치적으로 모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지중해 서부로의 식민 활동은 그리스 문화와 경제 영역의 확대를 의미했을 뿐, 그리스 세계 전체의 정치적 세력 확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귀족정 하에서 농민들의 어려움은 가중되어, 빚 때문에 토지를 잃거나 심한 경우 채무 노예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 속에서 참주정이 등장했다. 소아시아의 폴리스들에서 먼저 나타난 참주정은 점차 본토로 확산되었는데, 귀족정에 불만을 품은 빈농들이 주요 지지 기반이 되었다. '참주(티라노스)'는 본래 비합법적인 권력 찬탈자를 의미하며 후대에는 폭군과 동일시되기도 했지만, 뛰어난 능력을 갖춘 참주들은 오히려 폴리스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자레우코스(남이탈리아 로크로이), 페이돈(아르고스), 카론다스 등은 입법가로서, 페리안드로스(코린트), 폴리클리투스(사모스), 피시스트라투스(아테네) 등은 7현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귀족정에서 참주정으로 이행하던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폴리스 세계는 내부적으로 폴리테이아(국가 제도)를 확립하며 발전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제도 정비는 리쿠르고스(스파르타), 드라콘(아테네), 솔론(아테네)과 같은 전설적이거나 실존했던 입법자 개인의 업적으로 전해지거나, 크레타 고르틴의 법전처럼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 시기는 폴리스의 내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아테네에서도 참주정 등장을 피할 수 없었다. 기원전 636년(또는 632년) 킬론이 이웃 폴리스 메가라의 참주 테아게네스와 손잡고 쿠데타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솔론의 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갈등은 계속되었고, 결국 피시스트라투스와 그의 가문이 참주정(기원전 561년 ~ 510년)을 열었다. 참주정 이후 아테네는 기원전 508년 ~ 507년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을 통해 민주정(데모크라티아) 시대로 나아갔다. 메가라, 테베, 아르고스 등 다른 많은 폴리스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민주정에 도달했다. 스파르타는 귀족정 단계에 머물렀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시민단 내부의 평등('평등자'라 불림)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아테네와 유사한 '전사단(戰士團) 민주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πόλις|폴리스grc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 아르카이크 시대에 처음에는 "요새, 성채, 방어에 적합한 언덕"을 의미했다. ἀκρόπολις|아크로폴리스grc("높은 도시")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폴리스의 중심부에 위치한 언덕으로 방벽으로 둘러싸여 신전이나 요새가 세워진 곳을 가리킨다. 초기에는 군사 거점이었으나, 기원전 7세기경부터는 폴리스 시민 공동체의 신앙 중심지이자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여전히 폴리스라고 불린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도시가 발전하면서 πόλις|폴리스grc는 주변 마을까지 포함하는 국가 전체를 의미하게 되었고, 나아가 시민권 개념이 등장하면서 시민 전체, 즉 시민 공동체를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을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같은 지리적 단위보다는 아테네인, 라케다이몬인(스파르타인), 테베인이라는 시민 집단으로 인식했다.

폴리스는 일반적으로 세 종류의 주민으로 구성되었다. 첫째는 정치 참여 권리를 가진 시민 계급이다. 둘째는 참정권이 없는 시민(주로 여성, 미성년자)이며, 마지막은 메토이코스(거류 외국인)와 노예 같은 비시민 계층이다. 초기에는 무기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귀족들이 국방의 핵심이었고, 기원전 7세기까지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가 일반적이었다. 노예 중에는 빚 때문에 시민권을 잃고 전락한 경우도 있었으며, 노예 제도는 특히 아테네에서 발달하여 개인 소유가 흔했다.

폴리스에 대한 이론적 탐구는 호메로스헤시오도스 시대부터 시작되었으며, 플라톤과 그의 아카데메이아는 이상적인 폴리스의 의미를 정의하려는 시도를 통해 연구를 발전시켰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Πολιτεία|폴리테이아grc)에서 폴리스를 분석했다. 그에게 이상적인 폴리스는 공공선을 추구하며, 선의 이데아를 아는 철인왕이 통치하는 국가였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이상적인 폴리스의 경제 구조를 상호 필요성과 적성의 차이라는 두 원칙에 기반하여 설명하고, 생산자, 상인, 선원/선주, 소매상, 임금노동자의 다섯 계급을 제시했다. 또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네 가지 덕목이 실현될 때 '정의로운 도시(폴리스)'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학교인 리케이온을 설립하고 정치학을 창시했다. 그는 제자들을 각 폴리스에 보내 사회와 정부를 연구하게 했으며, 그 결과물 중 『정치학』과 『아테네 헌법』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플라톤이 이상적인 폴리스에 주목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적인 폴리스의 모습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는 폴리스를 이해하기 위해 직접적인 관찰과 자료 수집을 중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첫 문장에서 폴리스를 코이노니아(공동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인간이 언어 능력과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을 통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폴리스는 공동체의 계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기본 단위는 가족(οἰκία|오이키아grc)이다. 가족은 남편과 아내, 주인과 노예, 아버지와 자녀의 세 가지 관계로 구성되며, 따라서 노예와 여성도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가족의 주요 기능은 부의 획득과 관리이며, 토지 소유의 주체이기도 했다. 여러 가족이 모여 마을(κώμη|코메grc)을 이루고, 여러 마을이 모여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준이 되면 폴리스가 형성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론, 특히 재산 공유 사상(공산주의)을 비판했다. 플라톤은 공동체가 모든 재산(심지어 아내와 자녀까지)을 공유할 때 가장 이상적인 통일성을 이룬다고 주장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이 오히려 개인의 자율성과 국가의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개인이 소유할 때 재산을 더 잘 관리하며, 노동 분업의 원리에 따라 각자 전문 분야를 가지는 것이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높인다고 보았다. 따라서 폴리스는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공유하되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시민들이 서로 다른 재화와 능력을 "상호 평등"의 원칙에 따라 교환함으로써 유지된다고 주장했다.

폴리스의 형성은 종종 시노이키즘(sunoikismos, 집주(集住) 또는 통합)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히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사는 물리적 통합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던 공동체들이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단일한 헌법(폴리테이아) 아래 하나의 폴리스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했다. 예를 들어, 투키디데스테세우스가 아테네 주변의 작은 공동체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폴리스로 만든 것을 시노이키즘의 사례로 들었다.[3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폴리스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특정한 위치, 인구 구성, 그리고 헌법이다. 이 중 하나라도 크게 변하면 더 이상 같은 폴리스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29] 그는 폴리스를 "시민들의 집합체"라고도 정의했는데, 이는 단순히 모여 사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정치 체제 아래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는 시민 공동체를 강조한 것이다. 시민과 비시민(외국인, 노예 등)을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이 정치 공동체에 참여하고 공동의 결정에 기여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현대에 폴리스를 연구하는 것은 고대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도시 국가 개념이나 퓌스텔 드 쿨랑주의 모델 등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모든 폴리스의 다양성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9] 코펜하겐 연구는 이러한 기존 모델을 비판하며 미소국가 개념을 제안하기도 했다.[10] 폴리스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정의하기보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폴리스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존하는 유일한 고대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폴리스 이해에 필수적인 자료이다.

소아시아 동쪽에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는 주요 수단으로 폴리스를 활용했다. 그는 70개가 넘는 도시를 건설하여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로 삼으려 했으며, 이는 그의 후계자들(디아도코이)에게도 이어졌다.

3. 3. 종교와 문화

πόλιςel (폴리스)는 원래 "요새"나 "성채"를 의미했으며, 특히 방어에 유리한 언덕인 아크로폴리스( ἀκρόπολιςel )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다. 아크로폴리스는 폴리스의 중심이 되는 언덕으로, 시간이 지나며 그리스 도시 국가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곳에는 자연 언덕 위에 방벽을 두르고 신전이나 요새를 세웠다. 아크로폴리스는 처음에는 군사 거점이었으나, 기원전 7세기경에는 폴리스 시민들의 신앙 중심지가 되었으며, 공동체 유대의 상징으로 신전을 세워 폴리스의 수호신을 모셨다. 투키디데스에 따르면,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당시에도 여전히 '폴리스'라고 불렸다고 한다.

폴리스의 영역은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아고라( ἀγοράel , 시장 및 공공 광장), 하나 이상의 신전, 체육관(김나시온) 등을 포함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폴리스는 단순한 영토나 지리적 영역 구분이 아니라, 고유한 종교 의식과 관습을 공유하는 공동체 자체를 의미하는 경향이 강했다. 각 폴리스는 자신들의 수호신을 숭배했으며, 이는 폴리스의 정체성과 결속력을 다지는 중요한 요소였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와 같은 폴리스 단위보다는 아테네인, 라케다이몬인, 테베인 등 시민 집단 자체로 자신들을 인식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 집단'이라는 의미는 폴리스라는 단어의 핵심적인 뜻으로 자리 잡았다.

폴리스 사회는 일반적으로 세 계층으로 나뉘었다. 완전한 참정권을 가진 시민이 최상위 계층이었고, 참정권이 없는 시민, 그리고 비시민 계층(거류 외국인인 메토이코이( μετοικοίel )와 노예)이 그 뒤를 이었다. 시민권은 주로 출생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시민들은 여러 부족( φυλήel , 필레)이나 데모스( δημοςel , 구역)에 속해 공동체를 구성했다. 메토이코이나 노예는 이러한 공식적인 공동체 구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초기 폴리스에서는 무기를 자비로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귀족 계층이 국방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예제는 폴리스 사회의 일부였으며, 특히 아테네에서는 상당히 발달하여 개인 소유 노예가 흔했다. 부채 때문에 시민 신분을 잃고 노예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Ἀλέξανδρος ὁ μέγαςel ) 이후 헬레니즘 시대( Ἑλληνισμόςel )에는 소아시아를 비롯한 동방 지역에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폴리스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디아도코이, Διάδοχοιel )은 그리스화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많은 새로운 도시(폴리스)를 건설했다.

4. 주요 폴리스

고대 그리스 세계에는 수많은 폴리스가 존재했으며, 각기 독특한 정치 체제와 발전 과정을 거쳤다. 초기에는 왕정을 거쳐 귀족정으로 이행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회 갈등 속에서 참주정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일부 폴리스는 민주정 단계까지 발전했다.[1]

가장 널리 알려진 폴리스로는 민주정의 발상지인 아테네와 독특한 2왕제 및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스파르타가 있다. 아테네는 솔론, 클레이스테네스 등의 개혁을 통해 민주정을 발전시켰고, 스파르타는 시민단 내부의 평등을 강조하는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했다.

이 외에도 상업과 교역이 발달했던 코린트,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와 경쟁했던 테베, 아테네와 경쟁 관계에 있던 메가라, 오랜 역사를 지닌 아르고스 등 다양한 폴리스들이 존재하며 고대 그리스 역사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각 폴리스는 고유한 정치, 사회, 문화적 특징을 지니고 발전했으며, 그 상호작용 속에서 고대 그리스 문명이 형성되었다.

4. 1. 아테네

아테네 역시 다른 폴리스들처럼 초기에는 역사시대 이전에 왕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기원전 8세기경에는 귀족정 단계에 들어섰으며, 왕을 뜻하는 바실레우스 칭호는 점차 실권 없는 관직명으로 남게 되었다.[1]

귀족정 하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자, 다른 폴리스들처럼 아테네에도 참주정 성립 시도가 있었다. 기원전 636년(또는 632년) 키론이 이웃 폴리스 메가라의 참주 테아케네스와 손잡고 아크로폴리스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참주가 되려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1]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 사이, 아테네는 폴리테이아(국가 제도) 확립을 통해 내부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 시기 드라콘솔론 같은 입법자들이 등장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 특히 솔론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자 노력했다.[1]

그러나 솔론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혼란은 계속되었고, 결국 기원전 561년 피시스트라투스가 참주정을 수립하여 기원전 510년까지 그의 일가가 아테네를 통치했다.[1] 피시스트라투스는 '고대 그리스의 7현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하며[1], 그의 통치 시기는 폴리스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1]

참주정이 끝난 후, 기원전 508년에서 507년에 클레이스테네스가 개혁을 단행하면서 아테네는 민주정(데모크라티아) 시대로 나아갔다.[1]

4. 2. 스파르타

역사시대에 대부분의 폴리스가 귀족정으로 이행한 것과 달리, 스파르타는 원로회나 감독관의 억제 아래 서로 견제하는 2왕제를 유지한 예외적인 경우였다. 스파르타는 귀족정 단계에 머물렀다고 보기도 하지만, 시민단 내부에서는 서로 '평등자'(Ὅμοιοι|호모이오이grc)라 부르며 평등을 중시했기에, 본질적으로는 아테네의 민주정과 유사한 '전사단 민주정' 단계에 들어섰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폴리스는 흔히 '도시 국가'로 번역되지만, 스파르타의 사례는 이 정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투키디데스는 "라케다이몬인들의 폴리스"가 "헬라스의 옛 방식에 따라 마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듯이,[21] 스파르타에는 통합된 도시나 아크로폴리스(이전 미케네 시대의 성채는 버려진 상태였다)가 없었다. 대신 라케다이몬의 다섯 도리아인 마을 주변에는 페리오이코이( περίοικοι|페리오이코이grc, "주변 거주민")라고 불리는 이전 아카이아인들의 마을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자유로운 폴리스였으나, 실제로는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으며 그 이익에 봉사했다.[22] 페리오이코이는 주권이 없었으므로, 스파르타는 엄밀한 의미의 '도시 국가' 정의에는 부합하지 않았다.[2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역사가들은 일관되게 스파르타를 폴리스라고 불렀다. 20세기 후반 코펜하겐 폴리스 센터의 연구는 방대한 자료 분석을 통해 '폴리스' 개념을 반드시 독립과 자치(주권) 개념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고대 문헌상 폴리스로 불렸지만 완전히 주권적이지는 않았던 15가지 유형의 '종속 폴리스'를 정의했는데, 다른 폴리스에 합병된 도시, 식민지, 연맹 가입 폴리스 등이 포함되며, 스파르타의 페리오이코이도 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보았다.[24] 따라서 폴리스에 대한 이해는 '도시 국가'라는 현대적 모델보다는 고대 문헌과 비문에서 실제로 사용된 용례에 기반해야 한다.

4. 3. 기타 폴리스

최초의 폴리스 정치 형태는 명확히 증명되지는 않았으나, 후대에 남은 제도를 통해 '원시 왕정'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부분의 폴리스는 역사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왕정을 지나 귀족정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기원전 8세기). 그리스 역사의 구체적인 사실은 이 시점부터 확인 가능하다. 이전 시대 왕족이 귀족으로 남아 가문 중심의 지배를 했던 코린트의 박코스(Bacchiadai) 가문이나, 원로회와 감독관의 견제 속에서 두 명의 왕이 서로를 견제하는 독특한 왕정(2왕제)이 유지되었던 스파르타 같은 예외도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대 오리엔트의 강력한 전제 왕권과 달리, 그리스의 왕권은 토지 소유 등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사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왕의 역할(제사, 군사 지휘 등)은 점차 축소되었고, 왕은 귀족층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결국 '바실레우스(왕)'라는 칭호는 아테네, 아르고스 등 많은 폴리스에서 단순한 관직명으로만 남게 되었다.

귀족정은 철제 농기구 도입으로 농업 생산력이 늘어나고, 남는 생산물을 해외와 교역하게 되면서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폴리스 공동체 내부에 빈부 격차가 발생했고, 공동체 구성원은 귀족과 농민으로 나뉘었다. 귀족층이 정치 권력을 독점하면서 두 계층 간에는 신분적 차이가 생겨났다. 부를 쌓을 기회가 적었던 농민들은 여러 어려움이 겹치면서 빠르게 가난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그리스 귀족은 동양이나 서양 중세의 땅만 소유하고 생산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던 귀족들과 달랐다. 그들은 직접 농사를 짓고, 해외 교역 등 경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인 성격을 지녔다. 둘째, 근대의 식민 활동이 본국의 정치·경제적 발전을 위한 것이었던 반면, 그리스의 식민 활동(제2차)은 주로 몰락한 농민이나 정치적 망명자들이 주도한 사회적으로 소극적인 요인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근대에는 해외 식민지의 정치 상황이 본국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식민 폴리스는 정치적으로 모(母)폴리스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있었다. 따라서 지중해 서부 지역으로의 식민 활동은 그리스 문화와 경제 영역의 확장을 의미했을 뿐, 그리스 세계 전체의 정치적 세력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귀족정 하에서 가난해진 농민들은 점차적으로 부채 때문에 토지를 저당으로 상실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채무 노예로까지 몰락되었다고 생각된다.

오리엔트와 가깝고 그 영향을 받기 쉬웠던 소아시아의 여러 폴리스에서는 일찍부터 참주정(비합법적 권력 장악)이 나타났다. 이후 공동체 내 양극화가 심화된 그리스 본토의 폴리스들에도 궁핍한 농민들을 호응 지반으로 하는 참주정이 파급되었다. '티라노스(참주)'는 후대에 '폭군'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는 참주의 경우, 참주정이라는 과도기는 오히려 폴리스 정치의 전진 요소였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된다. 가령 입법자로서(자레우코스 「남이탈리아·로크로이」, 페이돈 「아르고스」, 카론다스 등), ‘7현인’의 한 사람으로서(페리안드로스「코린트」, 폴리클리투스 「사모스」, 피시스트라투스 「아테네」),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참주도 많다.

귀족정에서 참주정으로 이행하던 시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동안에 걸쳐 폴리스 세계는 또한 전반적으로 폴리테이아(국가 제도)의 확립이라는 내부적 충실 시대에 들어간다. 그 사업은 실존 내지 가공(傳承的)의 한 개인에게 돌아가고(입법자, 가령 스파르타리쿠르고스, 아테네드라콘, 솔론), 또는 법률의 기록으로(크레타섬, 고르틴의 壁彫法典「전 480 전 460?. 현존」 등) 전해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기는 폴리스의 내면적 발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참주정이 본토에 파급되는 가운데 아테네에 있어서도 기원전 636년(또는 전 632) 킬론이라는 사람이 이웃 나라(폴리스) 메가라의 참주 테아게네스와 공모하여――일반적으로 참주간에도 국제적 협동 태세가 있었다는 점에 주의――참주를 꾀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아크로폴리스에서 참사)하였다. 참주정은 일단 방지되었다고는 하지만, 솔론의 조정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3파 정쟁(政爭) 후에 이르러서는 결국 참주정(피시스트라투스 일가, 전 561 전 510)을 면할 수는 없었다. 그 후 기원전 508 507년의 클레이스테네스로부터 시작되는 민주정(데모크라티아)이다. 따라서 그 발전에 있어 다소의 차질을 수반하면서 결국 민주정에 도달된 폴리스가 많았다(메가라, 테베, 아르고스 등). 스파르타는 전형적인 제2단계에서 머물렀다고도 볼 수 있지만, 시민단 내부의 평등――서로 ‘호모이오이(평등자)’라 부른다――하다는 점에서는, 이미 본질적으로는 아테네의 그것과 아주 똑같은 ‘전사단(戰士團) 민주정’의 단계에 들어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5. 현대적 의의

고대 세계에 대한 현대 역사서술에서 'πόλις'는 종종 음역되어 'polis'로 표기되며, 특정 언어로 번역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에릭 보겔린은 영어로 "폴리스의 세계"라는 제목의 저서를 썼는데[11], 이러한 저서에서 저자는 고대 그리스 문헌과 비문에서 나타나는 여러 폴리스(poleis)의 사례를 바탕으로 폴리스 사회의 모델을 제시하며 그 의미를 정의하고자 한다.

보겔린은 도리아 침입 이전 에게 해에 존재했던 "마을 정착지"가 모여 "도리아 이전 도시"를 형성했으며, 이것이 후대의 "헬레니즘 시대 폴리스"와는 다르다고 보았다.[12] 그는 도리아 침입 이후 흩어진 그리스인들이 방어를 위해 재정착(시노이키즘)하면서 헬레니즘 시대의 폴리스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이 모델은 20세기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실제로 많은 폴리스가 이 설명에 부합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대 아테네는 이 모델로 설명하기 어려운 대표적인 사례이다. 보겔린 자신도 "가장 중요한 사례인 아테네의 경우, 에게 해 정착지와 후기 폴리스 사이의 연속성은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만약 아테네가 도리아 이전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연속성을 가지며 폴리스로서 존재했다면, 이 모델은 가장 중요한 폴리스 중 하나인 아테네를 설명하는 데 한계를 보이는 셈이다.

지난 수백 년간 폴리스 연구는 주로 '도시 국가(city-state)' 개념이나 푸스텔 드 쿨랑주(Fustel de Coulange)의 '고대 도시' 모델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어떤 단일 모델도 모든 폴리스의 다양한 형태를 포괄하거나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을 완벽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9] 특정 모델에 들어맞는 폴리스를 찾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모델이 모든 폴리스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설명인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이다. 고대인들이 제시한 모델조차 모든 경우를 설명하지 못했기에, 폴리스 개념을 재정의하려는 노력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10]

코펜하겐 폴리스 센터(Copenhagen Polis Centre)의 연구는 기존 모델들을 비판하며 '미소국가(microstate)'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폴리스라는 개념 자체가 플라톤이 언급한 자유나 정의처럼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추상적인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저자들이 '폴리스'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일관된 의미를 담고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 본질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연구는 지속되고 있다.

폴리스를 설명할 때 'polis'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해당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도 있다. 영어의 '도시 국가(city-state)'나 독일어의 '슈타트슈타트(Stadtstaat)'가 그 예이다. 하지만 이는 그리스어 '폴리스'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왜냐하면 폴리스는 티로스나 시돈처럼 군주제나 소수 과두정치 세력이 지배했던 다른 고대 도시 국가들과 달리, 시민 집단이 중심이 되어 통치했던 독특한 정치 공동체였기 때문이다.[58] 이러한 시민 중심적 성격 때문에 폴리스는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기원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폴리스'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현대 여러 유럽 언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코즈모폴리스(cosmopolis)',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 '테크노폴리스(technopolis)' 등이 그 예시이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경찰(police), 정책(policy), 정치(politics)와 같은 중요한 현대 어휘들도 모두 '폴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6. 고고학적 연구

전통적으로 유적에서 도시화의 출현이 폴리스 발전을 위한 충분한 지표로 해석될 수 있다고 여겨져 왔지만, 프랑수아 폴리냐크(François Poulignacfra) 등에 의해 고고학자들의 전통적인 견해가 비판받았으며[59][60], 현재는 채택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의 폴리스는 마을 네트워크에 설립되었다.

참조

[1] harvnb
[2] harvnb
[3] 서적 The Oxford Greek Dictionary, American Edition, and Liddell and Scott's A Greek–English Lexicon
[4] harvnb
[5] 웹사이트 Word frequency information for πόλις http://www.perseus.t[...] Tufts University 2023-05-01
[6] 서적 Further Studies in the Ancient Greek Polis Steiner
[7] harvnb
[8] 백과사전 πόλις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9] harvnb
[10] 서적 The Development of the Polis in Archaic Greece Routledge
[11] harvnb
[12] harvnb
[13] harvnb
[14] harvnb
[15] harvnb
[16] harvnb
[17] harvnb
[18] harvnb
[19] harvnb
[20] harvnb
[21] 서적 Peloponnesian War
[22] 서적 Spart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3] 웹사이트 Commentary on Thucydides: Book 4 Chapter VIII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2023-04-10
[24] harvnb
[25] harvnb
[26] harvnb
[27] harvnb
[28] harvnb
[29] harvnb
[30] 백과사전 συνοικειόω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31] 백과사전 συνοικέω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32] 백과사전 συνοίκια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33] 백과사전 συνοικίζω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34] 백과사전 συνοικισμός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35] harvnb
[36] text
[37] 백과사전 συνοικιστήρ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38] 학술지 Strabo 10.2.4 and the Synoecism of Newer Pleuron
[39] harvnb
[40] 웹사이트 settlement patterns https://gpres.weebly[...]
[41] 서적 Aristotle Politics with an English Translation Heinemann
[42] 서적 A Democracy of Distinction: Aristotle and the Work of Politic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3] 백과사전 πολιτεία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44] 백과사전 πολίτης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45] harvnb
[46] harvnb
[47] 학술지 Oaths and Political Obligation in Ancient Greece https://uva.theopens[...]
[48] harvnb
[49] harvnb
[50] 백과사전 πόλιτις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51] 웹사이트 Laws 7.814c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52] 웹사이트 Laws 7.813e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53] harvnb
[54] 백과사전 δῆμος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55] harvnb
[56] harvnb
[57] harvnb
[58] 위키 city-state
[59] 서적 La naissance de la cité grecque
[60] 서적 City and Country in the Ancient World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