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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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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역사는 선사 시대부터 시작하여 로마 제국, 앵글로색슨 시대를 거쳐 바이킹의 침입을 겪었다. 1066년 노르만 왕조가 성립되었고, 중세 시대를 거치며 튜더 왕조와 스튜어트 왕조를 겪었다. 스튜어트 왕조 시기에는 시민 혁명이 발생했고, 명예 혁명을 통해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통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되었고, 이후 산업 혁명과 대영 제국의 확장을 경험했다. 20세기에는 아일랜드 독립과 유럽 연합 가입 및 탈퇴를 겪었으며, 잉글랜드 내부에서는 자치 의회 설립과 지방 정부 개편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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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역사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새로운 지도
잉글랜드 왕국의 새로운 지도 (1685년)
국가잉글랜드
원어 제목History of England
시대사
주제별 역사
타임라인
기타 주제
정치체
카운티별 역사
도시 또는 읍별 역사

2. 선사 시대

빙하기의 영향으로 브리튼섬의 선사시대 유적은 다른 지역보다 늦게 만들어졌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25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신석기 시대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순례지였다. 학자들은 당시 사람들이 스톤헨지의 치유력을 믿고 찾아왔다고 추정한다.[118]

스톤헨지, 기원전 3000~2500년경 여러 단계에 걸쳐 건립됨


실버리 힐, 기원전 2400년경


영국에 사람이 처음 살기 시작한 시점부터 최후 빙하기까지를 구석기 시대라고 한다. 잉글랜드는 여러 빙하기 동안 온화한 기후를 보여 다른 브리튼 제도보다 먼저 인간이 정착했다. 노퍽의 해피스버그에서 발견된 유물은 80만 RCYBP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장 오래된 호미닌 유물이다.[1] 이들은 수렵 채집인이었다. 낮은 해수면으로 영국은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지만, 기온 변화로 인해 항상 사람이 거주하지는 않았다.[9]

마지막 빙하기가 기원전 9000년경 끝나면서 중석기 시대가 시작된 이후 잉글랜드에는 계속 사람이 살았다. 기원전 6500년경 해수면 상승으로 영국은 대륙과 분리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현생 인류였으며, 사회는 복잡해지고 환경을 조작했다. 새총 같은 무기로 사냥했고, 활과 화살은 기원전 9000년경부터 알려졌다. 기후는 따뜻해지고 인구는 증가했다.[10]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4000년경 농경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정착 생활을 시작했고, 묘실이 있는 고분과 롱 배로우 같은 공동 무덤을 건설했다. 스톤헨지 같은 석재 정렬은 하늘과 행성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서머셋 레벨에 있는 스위트 트랙은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 도로 중 하나로, 기원전 3807–3806년 겨울에 만들어졌다.[9] 노스요크셔에서는 신석기 시대에 소금이 생산되었다.[11]

파이필드 다운 구릉지의 켈트인 농지 유적


켈트족기원전 7세기철기와 함께 잉글랜드로 유입되었다. 그 이전에도 석기 시대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스톤헨지 등의 거석 유적이 남아 있다. 켈트족은 무게가 나가는 쟁기를 사용하여 토지를 개척했고, 기원전 1세기에는 브리튼 섬의 총 인구가 25만 명 정도였다.[116]

3. 로마 제국 시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 따르면 로마 제국기원전 55년기원전 54년 브리튼섬을 침공하였다.[121] 43년 클라우디우스는 브리튼섬을 다시 침공하였고 브리튼섬은 로마 속주가 되어 브리타니아라 불렀다. 당시 브리튼섬에는 켈트족의 일파인 브리톤족이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도서 켈트어군의 일종인 브리소닉어를 사용하였다.

론디니움(로마의 런던)


영국 바스의 로마 시대 목욕탕 유적


하드리아누스 장벽의 유적


카이사르의 원정 이후, 로마인들은 서기 43년에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명령에 따라 브리튼 정복을 위한 본격적이고 지속적인 시도를 시작했다. 로마군은 4개 군단을 이끌고 켄트에 상륙하여 카투벨라우니 부족의 왕 카라타쿠스와 토고두무스가 이끄는 두 군대를 메드웨이와 템스 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격파했다. 토고두무스는 죽었고, 카라타쿠스는 웨일스로 도망갔다.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클라우디우스가 로마로 돌아가 개선식을 거행하기 전에 카물로두눔(현대 콜체스터)의 카투벨라우니 수도를 최종 공격하도록 기다렸다. 카투벨라우니는 잉글랜드 남동부 구역의 대부분을 장악했고, 11명의 지역 통치자가 항복했으며, 다수의 속국이 세워졌다. 이후 카물로두눔을 수도로 하는 로마 속주가 되었다.[21] 다음 4년 동안 영토는 통합되었고, 미래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남서부로 원정을 이끌어 두 부족을 더 정복했다. 서기 54년까지 국경은 세번과 트렌트로 밀려났고, 잉글랜드 북부와 웨일스를 정복하기 위한 원정이 진행되었다.

서기 60년, 전사 여왕 부디카의 지도 아래 부족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카물로두눔, 론디니움, 베룰라미움(현대의 각각 콜체스터, 런던, 세인트 앨번스)을 불태우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론디니움 총독 수에토니우스 파울리누스는 반란군이 도시를 약탈하고 불태우기 전에 도시를 대피시켰다.[22] 반란군은 7만 명의 로마인과 로마 지지자를 죽였다. 파울리누스는 남은 로마군을 모았고, 워틀링 가 전투에서 1만 명의 로마군이 거의 10만 명의 전사들과 맞서 부디카를 완전히 패배시켰다. 8만 명의 반란군이 죽었고, 로마군은 400명만 죽었다고 한다.

그 후 20년 동안 국경은 약간 확장되었지만, 총독 아그리콜라는 웨일스와 잉글랜드 북부의 마지막 독립 지역들을 속주에 편입시켰다. 그는 또한 스코틀랜드로 원정을 이끌었지만, 황제 도미티아누스에 의해 소환되었다. 국경은 점차 잉글랜드 북부의 스테네게이트 도로를 따라 형성되었고, 서기 138년에 건설된 하드리아누스 장벽에 의해 굳건해졌으며, 스코틀랜드에 대한 일시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유지되었다.

로마인은 브리튼 섬에서 확인된 것만 약 500곳의 빌라를 경영하고, 100곳의 타운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잇는 총 연장 약 8046.70km이 넘는 도로망과 Car Dyke|카 다이크영어와 같은 도랑을 건설했다.

4. 앵글로색슨 시대

5세기 로마 제국의 지배가 종식된 후, 게르만족 계통의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프리시안 족 등이 그레이트브리튼섬에 침입하여 여러 왕국을 세웠다.[122] 이들을 통틀어 앵글로색슨족이라 부른다. 앵글로색슨족은 노섬브리아 왕국, 머시아 왕국, 동앵글리아 왕국, 에식스 왕국, 웨섹스 왕국, 켄트 왕국, 서섹스 왕국 등 7개의 왕국을 건설하고 패권을 다투었다.[122] 이 시기를 칠왕국 시대라고 부르며, 829년까지 약 380년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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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왕국 시대 초기에는 앵글족의 왕국이 유력하여, 로마는 이 땅을 앵글족의 땅이라는 의미로 '''앵글리아'''(Anglia)라고 불렀다. 앵글리아는 앵글로색슨 식으로 '''잉글랜드'''가 된다. 8세기에는 머시아 왕국의 오파 왕(재위: 757년 - 796년)이 잉글랜드에 패권을 확립하고, 프랑크 왕국샤를마뉴와 대등하게 겨루었다. 또한 웨일스와의 경계에 오파의 방벽을 쌓았다. 7왕국 시대 마지막에는 웨섹스 왕국의 에그버트 왕이 829년 잉글랜드를 통일하였다. 이 시대의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으로는 1939년에 발굴된 동앵글리아 왕국의 서튼 후 선박 매장묘가 있다.

6세기 동안 웨섹스 왕국은 웨일스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시런세스터, 글로스터, 서머싯주의 베스와 같은 요충지를 확보하고 잉글랜드 서부까지 영토를 확장하였다. 616년 경 노텀브리아 왕국은 체스터 전투의 승리로 웨일스의 컴브리아를 획득하였다.[124] 9세기경 앵글로-색슨족의 영토는 현재의 잉글랜드 지역 전체에까지 확대되었으며, 웨식스의 왕은 잉글랜드 전체의 통치자가 되어 잉글랜드의 군주란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124]

5. 바이킹 시대

8세기 말부터 바이킹의 침입이 시작되었다. 앵글로 색슨 연대기는 793년에 최초의 바이킹 침입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127] 878년 웨식스 왕국앨프레드 대왕이 윌트셔의 에딩턴에서 바이킹과 맞서 승리하기도 하였으나, 잉글랜드의 북동부는 결국 바이킹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다. 바이킹이 세운 요르빅 왕국은 노텀브리아 왕국을 붕괴시켰으며, 머시아 왕국은 패퇴하여 남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이스트앵글리아는 요르빅 왕국의 속국으로 전락하였다.[127]

바이킹 왕국의 영토가 된 노텀브리아와 머시아 북서부, 이스트앵글리아에는 많은 덴마크인이 이주하였으며, 10세기 초에는 더블린을 통치하고 있던 노르웨이 왕국의 사람들 역시 이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의 이주는 영어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으며, 바이킹이 사용하던 고대 노르드어고대 영어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웨식스 왕국앨프레드 대왕은 자신의 사위인 엘도르만 앨스레드가 통치하던 머시아를 백작령으로 격하시키고 콘월을 웨식스의 지방으로 편입시켜 잉글랜드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알프레드 대왕은 890년 잉글랜드의 군주란 칭호를 사용하였다.[128]

스칸디나비아의 영국 침입은 10세기 경 종료되었다. 애드거의 아들 부족왕 에셀레드의 치세는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나 결국 덴마크의 스벤 1세에게 패배하고 왕국을 잃었다. 에셀레드는 왕권을 잃은 채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강건왕 에드먼드 역시 1016년 바이킹이자 덴마크, 노르웨이의 군주였던 크누트 대왕에게 패배하여 전사하였다. 크누트는 이로써 덴마크, 노르웨이와 더불어 잉글랜드의 군주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1035년, 크누트의 사후 잉글랜드의 왕권은 그의 아들 질주왕 헤럴드에게 물려졌다. 한편,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권은 크누트의 다른 아들들이 계승하여 덴마크는 하사카뉴트, 노르웨이는 마구누스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040년, 엠마와 하사카뉴트는 잉글랜드의 왕권을 주장하며 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승리하였다. 이로써 하사카뉴트는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군주가 된다. 그러나, 하사카뉴트는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042년 사망하였고, 엠마와 부족왕 에셀레드 사이에서 태어난 참회왕 에드워드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6. 노르만 정복과 중세 시대

헤이스팅스 전투 (1066)의 묘사를 담은 바이에 태피스트리


노르만 정복은 잉글랜드 국가 역사에 심오한 변화를 가져왔다. 1066년 윌리엄 1세는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한 뒤 크리스마스에 대관식을 치르고 즉시 권력을 공고히 하기 시작했다. 1067년까지 그는 모든 방면에서 반란에 직면했고, 이를 진압하는 데 4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 스코틀랜드웨일스에 대한 우위를 강요하여 그들이 자신을 상전으로 인정하도록 강요했다.[50] 윌리엄 1세는 둠스데이 북 편찬을 통해 세금 징수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고, 잉글랜드 정복 후 20년간 대부분의 지주, 정부 요직, 고위 성직자가 노르만인으로 교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윌리엄 1세와 귀족들은 노르만어로 이야기했고, 귀족들이 사용한 앵글로-노르만어는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으며 중세 영어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1078년에 건설된 런던 타워의 화이트 타워


헨리 1세는 윌리엄 1세의 넷째 아들로, 1100년에 형 윌리엄 2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 국왕이 되었다. 헨리 1세는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여 앵글로-색슨 전통에 기반한 잉글랜드 사회를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앵글로-노르만 사회가 형성되었다. 1120년 화이트 쉽의 난파 사고로 아들 윌리엄 아델린을 잃은 것은 그의 개혁을 훼손시켰다. 이 계승 문제는 잉글랜드 역사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헨리 1세의 뒤를 이은 잉글랜드의 스티븐의 치세 동안 잉글랜드에는 혼란과 왕위에 대한 도전이 끊이지 않았다. 봉건제 아래 왕국의 실권은 남작들에게 넘어갔으며 이들의 권력 투쟁은 결국 19년의 겨울이라 불리는 무정부 상태의 내전으로 확대되었다.[129]

더럼 대성당. 노르만 대성당은 1093–1133년에 건설되었다.


1135년 기나긴 내전 끝에 스티븐은 자신의 이복 동생이자 정적이었던 마틸다에게 왕위를 잃게 되었다. 이로써 노르만 왕조의 시기가 끝나고 플랜태저넷 왕가가 들어서게 된다. 마틸다 이후 잉글랜드의 왕위는 그녀의 아들 헨리 2세가 계승한다.

리처드 1세와 앙굴렘의 이사벨라의 묘


헨리 2세로부터 시작된 플랜태저넷 왕조는 영국의 봉건 제도를 완성하였다. 헨리 2세의 뒤를 이은 "사자심왕" 잉글랜드의 리처드 1세는 제3차 십자군에 참전하여 재위 기간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노르만 왕조 이래 잉글랜드는 프랑스내에 많은 영지를 갖고 있었으며 리처드 1세는 영지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와 수 차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는 존 왕


리처드 1세의 왕위를 계승한 존은 1214년 부빈 전투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하여 노르망디를 잃고 만다. 한편, 존의 치세에 귀족들은 군주의 자의적 권력에 제동을 걸기 위해 무장 봉기하였다. 1215년 존은 귀족의 강요에 의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였으며 이는 유럽에서 군주의 권력을 제한한 최초의 사건으로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존 왕의 사후 왕위에 오른 헨리 3세는 1216년 즉위 당시 9세에 불과하였다. 헨리 3세는 마그나 카르타[60]와 왕실 권리를 놓고 귀족들과 싸웠고, 결국 1264년에 최초의 "의회"를 소집해야 했다.

머튼 칼리지, 옥스퍼드 대학교의 모브 쿼드, 13~14세기


헨리 3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에드워드 1세는 새로운 법령을 통해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고 최초의 잉글랜드 의회를 소집하였다. 또한 웨일스를 정복하고 스코틀랜드 왕국을 침공하여 승리하는 등 에드워드 치세의 잉글랜드는 그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에드워드 1세 치세에서부터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에 이르기까지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를 정복하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결국 잉글랜드는 1328년 노텀프턴 조약을 맺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인정하였다.

14세기 유럽 대륙은 흑사병의 확산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잉글랜드에서는 1348년부터 흑사병이 창궐하였으며 3분의 1에서 절반에 달하는 인구가 희생되었다.[130]

에드워드 3세는 스코틀랜드 정복이 실패로 돌아가자 프랑스로 관심을 돌렸다. 프랑스의 카페 왕조 마지막 왕인 샤를 4세가 남성 후계자가 없는 가운데 사망하자 외가 쪽으로 카페 왕조와 혈연이 있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여 백년 전쟁을 일으켰다.

1453년까지 계속된 백년전쟁은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고 헨리 6세는 칼레를 제외한 프랑스 전역의 잉글랜드 영토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헨리 6세는 치세 후반기 정신 이상을 보여 제대로 된 국정 운영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후계자 문제가 불거져 플랜태저넷 왕가의 방계이던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사이에 내전이 벌어진다. 랭커스터 가는 붉은 장미를, 요크 가는 흰 장미를 가문의 문양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 전쟁은 흔히 장미 전쟁(1455년-1485년)이라 불린다.

장미 전쟁의 결과 요크 왕가가 들어섰으나 내분으로 인해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1485년 랭커스터 가의 외손이었던 헨리 7세는 요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 리처드 3세를 격파하고 왕위에 오른다. 이로써 잉글랜드에는 튜더 왕조가 들어서게 된다.

7. 튜더 왕조와 종교 개혁

1485년 헨리 7세보즈워스 전투에서 리처드 3세를 격파하고 왕위에 올라 튜더 왕조를 열었다.[79] 헨리 7세는 엘리자베스를 왕비로 맞아 요크 왕가와 화해함으로써, 튜더 왕조가 장미 전쟁의 양 당사자인 랭커스터 가와 요크 가 모두의 계승자임을 표방했다. 튜더의 문장에는 붉은 장미와 흰 장미를 겹쳐 넣었다.

튜더 왕조의 문장


헨리 8세는 자신의 결혼 문제로 교황청과 갈등을 빚은 끝에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하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다.[79] 이후 영국 성공회는 잉글랜드의 국교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


엘리자베스 1세헨리 8세의 반(反)교황령을 재차 의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이 되었고 영국 성공회가 잉글랜드의 국교임을 재확인하였다.[88] 그러나 종교에 대해 관용적인 정책을 유지하여 영국 성공회와 청교, 로마 가톨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1588년 펠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파견하여 잉글랜드를 제지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잉글랜드 해군에 의해 격파되고 만다.[93] 이를 계기로 잉글랜드 해군은 유럽의 해상권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튜더 왕조는 그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91] 왕위는 스코틀랜드의 스튜어트 왕가로 넘어가 제임스 1세가 계승하였다. 튜더 왕조 시대는 절대군주제의 모습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마그나카르타의 전통에 의거해 군주와 의회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스튜어트 왕조는 영국의 전통에 어두웠기 때문에 군주와 의회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고 이는 스튜어트 왕조 시대의 잉글랜드 내전으로 이어졌다.

8. 스튜어트 왕조와 시민 혁명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하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여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되었다.[100] 제임스 1세는 그레이트 브리튼의 왕으로서 즉위한 최초의 왕이었으나,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은 분리 통치되었다. 제임스 1세를 겨냥한 암살 시도도 있었는데, 1605년 11월 5일 가이 포크스 등이 가담한 화약 음모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이 사건은 잉글랜드 내 가톨릭에 대한 반감을 고조시켰다.

잉글랜드 내전 상황(1642년 - 1645년)
적색 - 왕당파, 녹색 - 의회파.


찰스 1세와 잉글랜드 의회의 갈등은 1642년 잉글랜드 내전으로 이어졌다.[100] 1645년 네이즈비 전투에서 왕당파 군대는 의회파의 신형군(New Model Army)에게 패배했다.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로 피신했으나, 1647년 스코틀랜드는 40만 파운드를 받고 그를 의회파에 넘겼다. 찰스 1세는 와이트 섬에 유배되었다가 탈출하여 다시 군대를 소집했지만, 1648년 프레스턴 전투에서 패배했다. 1649년 찰스 1세가 처형되면서 잉글랜드는 공화정이 수립되었다.

1653년 올리버 크롬웰호국경으로 선출되어 군사 독재를 펼쳤다. 1658년 크롬웰 사후, 아들 리처드 크롬웰이 호국경 지위를 계승했으나 곧 퇴위했다. 1660년 왕정 복고로 찰스 2세가 즉위했다. 찰스 2세는 1665년 런던 대역병1666년 런던 대화재를 겪었다.

1685년 찰스 2세 사후, 가톨릭 신자인 동생 제임스 2세가 즉위했다. 1689년 명예 혁명으로 제임스 2세가 폐위되고,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과 메리 2세 부부가 공동 왕으로 즉위했다. 1690년 제임스 2세는 보인 전투에서 패배했다. 1689년 권리 장전이 통과되면서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었다.[102]

9. 그레이트브리튼 왕국과 대영 제국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 왕국스코틀랜드 왕국이 통합되어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 의회스코틀랜드 의회는 해산되고,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정부와 의회가 새로 구성되었다.[105] 역사학자 사이먼 샤마는 이를 "적대적인 합병으로 시작되었으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업의 완전한 파트너십으로 끝난 유럽 역사상 가장 놀라운 변혁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107]

1800년 연합법아일랜드를 브리튼의 정치 권역으로 흡수하여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을 성립시켰다. 아일랜드 왕국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합병되었으며, 잉글랜드의 수도 런던이 새 연합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 산업 혁명이라 불리는 기술 혁신과 기계화로 인해 농업 사회는 큰 격변을 겪었다. 농업 인구 대부분이 도시로 이주했고, 증기 기반 공장제 기계 공업은 가내 공업을 몰락시켰다. 도시 기반 시설 부족으로 유아 사망률 증가, 범죄, 사회성 박탈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산업화는 모든 노동자에게 이롭지 않았으며, 일부는 기계가 자신들의 삶을 위협한다고 느꼈다. 이들은 기계나 공장을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109]

10. 20세기와 21세기

20세기에 들어 아일랜드에서는 독립전쟁이 일어나 정치, 군사적으로 동요가 일었고,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에 의해 아일랜드 자유국(현재의 아일랜드 공화국)이 분리 독립하였다. 그러나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 영토로 남게 되었다. 아일랜드 남부의 독립으로 영국의 공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바뀌게 되었다.[131]

1997년 스코틀랜드에서 잉글랜드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스코틀랜드 의회 재설립 헌법 개헌 요구가 국민 투표로 이어졌다. 찬성표에 따라 1998년 스코틀랜드 결의가 통과되었고, 1999년 5월 의회 내각이 선출되었다.

영국은 영국 연방의 일부로서 1973년 유럽 경제 공동체(EEC)에 가입했으며, 이는 1993년 유럽 연합(EU)으로 발전했다. 영국은 2020년 EU를 탈퇴했다.

잉글랜드에는 잉글랜드 의회 자치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는 잉글랜드에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에서 이미 운영 중인 것과 같은 지방 의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 문제는 웨스트 로디언 질문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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