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몽골 황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몽골 황실은 몽골 제국을 다스린 황족과 그 후예들을 의미한다. 몽골 제국은 전설 시대를 거쳐 여러 부족들이 연맹을 이루는 과정에서 성장했으며, 칭기즈 칸에 의해 통일되어 1206년 건국되었다.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을 건설하고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구축했다.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의 후손들에 의해 분열되어 킵차크 칸국, 차가타이 칸국, 오고타이 칸국, 일 칸국 등의 여러 국가로 나뉘었다. 몽골 제국 멸망 이후 북원,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 호슈트 칸국, 칼미크 칸국 등 다양한 몽골계 국가들이 등장했다. 몽골은 고려와 몽골 전쟁을 통해 고려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원 간섭기 동안 고려 왕실과 사회, 문화에 변화를 가져왔다.

2. 몽골 제국의 기원과 발전

몽골 제국의 기초는 보르지긴 씨족의 예수게이로부터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게이는 호엘룬과 소치겔을 아내로 맞이했다.[1] 예수게이와 호엘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바로 '''칭기즈 칸'''으로 알려진 테무친이다. 테무친에게는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등의 동복 형제가 있었고, 보르테를 정식 아내로 맞이했다. 이복형제로는 벨구테이벡테르가 있었다.[1]

테무친은 분열되어 있던 몽골 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1206년 쿠릴타이에서 모든 몽골인의 지도자인 칭기즈 칸으로 추대되어 몽골 제국을 건국했다. 이는 몽골 제국 발전의 시작점이 되었다.[1]

칭기즈 칸과 그의 정실부인 보르테 사이에서는 네 명의 아들이 태어나 제국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장남 주치, 차남 차가타이, 삼남 '''우구데이''', 사남 툴루이가 그들이다.[1]

칭기즈 칸이 사망한 후, 쿠릴타이의 결정에 따라 셋째 아들인 우구데이가 제2대 대칸으로 즉위하여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우구데이 칸의 황후는 퇴레게네 카툰이었다.[1] 우구데이 칸의 통치 아래 몽골 제국은 영토를 더욱 확장하고 제국의 체계를 정비해 나갔다.

우구데이 칸 사후에는 그의 아들인 '''귀위크'''가 잠시 퇴레게네 카툰의 섭정을 거쳐 제3대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1] 그러나 귀위크 칸의 짧은 재위 이후 칸위 계승을 둘러싸고 내부적인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인 툴루이 가문의 영향력이 커졌다. 툴루이는 소르각타니 베키와 혼인하여 네 명의 걸출한 아들, 즉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아리크부카를 두었다.[1] 귀위크 칸 사후 열린 쿠릴타이에서는 툴루이의 장남인 몽케가 제4대 대칸으로 선출되었다.

몽케 칸이 남송 원정 중 사망하자, 그의 동생들인 쿠빌라이와 아리크부카 사이에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다. 최종적으로 쿠빌라이가 승리하여 제5대 대칸이 되었으며, 이후 수도를 대도(현재의 베이징)로 옮기고 국호를 원나라로 고쳐 원나라의 초대 황제(세조)가 되었다.[1] 쿠빌라이의 아들 친킴을 거쳐 손자인 '''테무르'''가 원나라의 제2대 황제로 즉위했다.[1]

한편, 칭기즈 칸의 다른 아들들의 후손들은 제국 각지에 분봉되어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다. 주치의 아들 바투는 동유럽 지역에 킵차크 칸국(금장 한국)을 세웠고, 차가타이의 후손들은 중앙아시아에 차가타이 칸국을, 툴루이의 아들 훌라구는 서남아시아에 일 칸국(훌라구 울루스)을 건설했다.[1] 이처럼 몽골 제국은 칭기즈 칸과 그의 후예들에 의해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광대한 제국으로 발전했으며, 이후 여러 칸국으로 분할되어 역사를 이어갔다.

2. 1. 전설 시대

원조비사 등 몽골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인의 시조는 푸른 늑대와 흰 암사슴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후손으로 전해지는 전설적인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 바트 트사간
  • 타마차
  • 호리차르 메르겐
  • 우짐 부랄
  • 살리 하차우
  • 예헤 니둔
  • 셈 소치

2. 2. 초기 몽골 부족

몽골 부족의 초기 역사를 이끈 주요 지도자들과 그 재위 기간은 다음과 같다.

초기 몽골 부족 지도자
지도자재위 기간
하르추798년 ~ 820년
보르지기다이 메르겐820년 ~ 861년
토로골진 바얀861년 ~ 908년
도부 메르겐908년 ~ 949년
보돈차르 문카그949년 ~ 950년
여막불만돌 칸정보 없음
걸인막하돌 칸정보 없음
막하돌 칸정보 없음


2. 3. 몽골 부족 연맹

이난차 빌게 칸

타이양 칸

쿠츨루크 칸

3. 칭기즈 칸과 몽골 제국

칭기즈 칸(본명 테무친)은 흩어져 있던 몽골 부족들을 통합하여 몽골 제국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지도 아래 몽골군은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정복했다. 칭기즈 칸의 주요 아들들인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툴루이는 그의 사후 제국을 나누어 통치 기반을 마련했다.

칭기즈 칸의 뒤를 이어 쿠릴타이에서 제2대 대칸으로 선출된 것은 셋째 아들 우구데이였다. 그의 시대에 제국은 더욱 확장되었으나, 사후 후계 계승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발생했다. 이후 툴루이의 아들인 몽케쿠빌라이가 대칸의 지위에 올랐다. 특히 쿠빌라이는 수도를 대도(현재의 베이징)로 옮기고 국호를 원(元)으로 정하며 제국의 중심을 동쪽으로 이동시켰다. 그의 동생 훌라구는 서아시아 지역을 정복하여 일 칸국을 건설했다. 한편, 주치의 후손들은 동유럽 지역에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을, 차가타이의 후손들은 중앙아시아에 차가타이 칸국을 세우면서, 거대한 몽골 제국은 점차 여러 칸국으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칭기즈 칸과 그의 후예들은 세계사적으로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3. 1. 칭기즈 칸의 등장과 통일

칭기즈 칸의 본명은 테무친이며, 아버지는 예수게이 바가투르, 어머니는 호엘룬이다. 예수게이는 소치겔이라는 다른 부인도 두었다. 테무친에게는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등의 친동생과 벨구테이, 벡테르 등의 이복형제가 있었다.

칭기즈 칸의 정궁 황후는 광헌익성황후 홍길랄씨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다. 이들은 몽골 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칭기즈 칸과 보르테의 자녀'''
구분이름비고
장남주치(朮赤)사후 목종(穆宗)으로 추존됨
차남차가타이(察合台)사후 성종(聖宗)으로 추존됨
3남우구데이(窩闊台)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 (태종 太宗)
4남툴루이(拖雷)몽골 제국의 임시 대칸, 사후 예종(睿宗)으로 추존됨
장녀코첸 베키(火臣 別吉)창국대장공주(昌國大長公主), 창충무왕 패독(昌忠武王 孛禿)에게 하가
차녀체체 이켄(撦撦亦堅)연안공주(延安公主), 토랍이길(土拉而吉)에게 하가
3녀알카이 베키(阿剌海 別吉)조국대장공주(趙國大長公主), 불안석반(不顔昔班), 북평왕 진국(北平王 鎭國), 조무의왕 패요합(趙武毅王 孛要合)에게 하가
4녀투멜룬(禿滿倫)운국공주(鄆國公主), 적굴(赤窟)에게 하가
5녀아아답로흑 공주(阿兒答魯黑 公主)태출(泰出)에게 하가



칭기즈 칸은 보르테 외에도 여러 명의 황후와 황비를 두었다. 홀란 황후 올와사씨는 6남 활렬견 태자(闊列堅 太子)를 낳았고, 야속간 황후 탑탑아씨는 7남 찰올아 황자(察兀兒 皇子)를 낳았으나 요절했다. 야수 황후 탑탑아씨도 그의 황후 중 한 명이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황후와 황비가 있었으며, 그중에는 고려인 출신의 숙량합 비자(肅良合 妃子)도 있었다.

다른 황후와 황비 소생의 자녀로는 5남 올로적 황자(兀魯赤 皇子), 8남 출아철 황자(朮兒徹 皇子, 요절), 9남 올로찰 황자(兀魯察 皇子, 요절), 6녀 고창공주 야립 가돈(高昌公主 也立 可敦), 7녀 포역색극 공주(布亦塞克 公主) 등이 있다. 포역색극 공주는 외모 때문에 부마에게 사랑받지 못하자 칭기즈 칸이 노하여 부마를 죽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3. 2. 칭기즈 칸의 정복 활동

'''칭기즈 칸'''으로 더 잘 알려진 테무친은 예수게이호엘룬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르테와 혼인하여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툴루이 등 여러 자녀를 두었다. 그의 형제로는 카사르, 카치운, 테무게 등이 있었으며, 이복 형제로는 벨구테이벡테르가 있었다.

칭기즈 칸의 아들들은 몽골 제국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우구데이'''는 칭기즈 칸의 뒤를 이어 몽골 제국의 두 번째 카간이 되었으며, 그의 아내 퇴레게네 카툰은 섭정을 맡기도 했다. 우구데이의 아들로는 '''귀위크'''와 카신 등이 있었다. 주치의 아들로는 바투, 베르케, 바이다르 등이 있었고, 바투의 아들은 사르타크이다. 차가타이의 후손으로는 카이두가 있다.

툴루이와 그의 아내 소르각타니 베키 사이에서는 '''몽케''', '''쿠빌라이''', 훌라구, 아리크부카 등 몽골 제국의 주요 칸들이 배출되었다. 쿠빌라이의 아들은 친킴이며, 친킴의 아들은 '''테무르'''이다. 훌라구의 아들은 아바카이며, 아바카의 아들은 아르군이다.

3. 3. 칭기즈 칸의 통치 체제

'''칭기즈 칸'''은 몽골 제국의 창시자이자 초대 대칸이다. 본명은 테무친이다. 그의 통치 아래 몽골 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확보하며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칭기즈 칸의 가족 관계는 복잡하며, 여러 황후와 비빈을 두었고 많은 자녀를 남겼다. 이는 후대의 몽골 제국 계승 구도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칭기즈 칸의 정실 황후는 광헌익성황후 홍길랄씨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4명의 아들과 5명의 딸을 두었다. 이들은 몽골 제국의 핵심적인 인물로 성장했다.

광헌익성황후 홍길랄씨 소생
구분이름비고
장남주치첫째 아들로, 사후 목종(穆宗)으로 추존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킵차크 칸국을 세웠다.
차남차가타이 칸둘째 아들로, 사후 성종(聖宗)으로 추존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차가타이 칸국을 다스렸다.
3남우구데이 칸셋째 아들로, 칭기즈 칸의 뒤를 이어 몽골 제국의 제2대 대칸(태종, 太宗)이 되었다.
4남툴루이넷째 아들로, 형 우구데이가 대칸으로 선출될 때까지 임시 대칸을 지냈으며, 사후 예종(睿宗)으로 추존되었다. 그의 아들들이 몽케 칸, 쿠빌라이 칸, 훌라구 칸, 아리크부카이다.
장녀코첸 베키창국대장공주(昌國大長公主)로, 창충무왕(昌忠武王) 패독(孛禿)에게 시집갔다.
차녀체체 이켄연안공주(延安公主)로, 토랍이길(土拉而吉)에게 시집갔다.
3녀알카이 베키조국대장공주(趙國大長公主)로, 불안석반(不顔昔班), 북평왕(北平王) 진국(鎭國), 조무의왕(趙武毅王) 패요합(孛要合)에게 차례로 시집갔다.
4녀투멜룬운국공주(鄆國公主)로, 적굴(赤窟)에게 시집갔다.
5녀알랄툰 베키아아답로흑 공주(阿兒答魯黑 公主)로, 태출(泰出)에게 시집갔다.



칭기즈 칸은 보르테 외에도 여러 황후와 비빈을 두었으며, 그들 사이에서도 자녀를 얻었다.

기타 후비 소생
생모자녀 구분이름비고
홀란 황후 올와사씨6남활렬견 태자(闊列堅 太子)
야속간 황후 탑탑아씨7남찰올아 황자(察兀兒 皇子)일찍 사망하였다.
공주 황후 완안씨5남올로적 황자(兀魯赤 皇子)기국공주는 금나라 황족 출신이다.
탑탑아녀(塔塔兒女)8남출아철 황자(朮兒徹 皇子)일찍 사망하였다.
생모 미상9남올로찰 황자(兀魯察 皇子)일찍 사망하였다.
생모 미상6녀고창공주 야립 가돈(高昌公主 也立 可敦)위구르 왕국의 군주 바이술 아아특 적근(巴而術 阿兒忒 的斤)에게 시집갔다.
생모 미상7녀포역색극 공주(布亦塞克 公主)공주의 외모가 추하여 부마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자, 칭기즈 칸이 크게 노하여 부마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외에도 칭기즈 칸에게는 야수 황후 탑탑아씨, 홀로륜 황후, 활리걸담 황후 등 많은 황후와 황비들이 있었다. 황비 중에는 고려 출신인 숙량합 비자(肅良合 妃子)도 있었다.[5][6]

4. 몽골 제국의 분열과 후계 국가들

칭기즈 칸 사후, 광대한 몽골 제국은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칭기즈 칸은 생전에 후계자로 셋째 아들 우구데이 칸을 지명했으나, 그의 사후 대칸의 자리를 둘러싼 계승 분쟁은 제국 분열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특히 오고타이 가문과 칭기즈 칸의 막내아들 툴루이 가문 간의 갈등, 그리고 툴루이의 아들들(몽케 칸, 쿠빌라이 칸, 훌라구, 아리크부카) 사이의 권력 다툼은 제국의 통합을 약화시켰다.

몽케 칸 사후 쿠빌라이 칸아리크부카 사이에 벌어진 내전(1260년-1264년)은 몽골 제국의 실질적인 분열로 이어졌다. 이 내전을 계기로 몽골 제국은 점차 여러 독립적인 칸국으로 나뉘었다. 주요 후계 국가들은 다음과 같다.


  •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세운 국가로,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대도(현 베이징)로 옮기고 중국식 왕조 체제를 도입했다. 명목상 몽골 제국 전체의 종주국이었으나, 다른 칸국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 킵차크 칸국 (금장 칸국):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 바투가 동유럽의 볼가강 유역을 중심으로 세운 국가이다. 러시아 공국들을 지배하며 오랫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다.
  • 차가타이 칸국: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 차가타이의 후손들이 중앙아시아 지역을 통치했다. 이후 동서로 분열되었다.
  • 일 칸국: 툴루이의 아들 훌라구가 서아시아 원정을 통해 페르시아 지역에 세웠다.
  • 오고타이 칸국: 오고타이의 손자 카이두가 중앙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세력을 유지하며 원나라와 대립했다.


이들 칸국은 초기에는 서로 연계를 유지하고 대칸의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각자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이로써 칭기즈 칸이 세운 통일된 몽골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그의 후손들이 다스리는 여러 후계 국가들이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서 명맥을 이었다.

4. 1. 툴루이 가문과 대칸 계승 분쟁

칭기즈 칸에게는 보르테를 비롯한 여러 황후와 비가 있었으며,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중 보르테 소생의 네 아들인 주치, 차가타이, 우구데이 칸, 툴루이는 몽골 제국을 이끌어갈 주요 후계자들이었다. 칭기즈 칸은 생전에 후계자로 셋째 아들인 우구데이 칸을 지명했다.

칭기즈 칸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우구데이 칸이 1229년 쿠릴타이에서 제2대 대칸으로 공식 선출되었다. 그전까지는 막내아들 툴루이감국(監國)으로서 임시로 제국을 관리했다. 우구데이 칸의 통치 아래 몽골 제국은 영토 확장을 계속했다.

우구데이 칸이 1241년 사망하자, 그의 부인 퇴레게네 카툰섭정을 맡았고, 1246년 쿠릴타이에서 아들인 귀위크 칸이 제3대 대칸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귀위크 칸의 통치는 1248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짧게 끝났다.

귀위크 칸 사후, 다시 한번 대칸 자리를 둘러싼 권력 투쟁이 벌어졌다. 이때 툴루이의 미망인 소르각타니 베키는 주치의 아들인 바투와 손잡고 자신의 아들들을 지원했다. 1251년 열린 쿠릴타이에서는 바투의 강력한 지지 아래 툴루이의 장남인 몽케 칸이 제4대 대칸으로 선출되었다. 이 사건으로 몽골 제국의 대칸위는 우구데이 칸 가문에서 툴루이 가문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몽케 칸은 우구데이 칸과 귀위크 칸의 후손들을 숙청하며 권력 기반을 다졌다.

몽케 칸1259년 남송 원정 중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몽골 제국을 또다시 큰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몽케 칸의 동생들인 쿠빌라이 칸아리크부카가 각각 자신을 대칸으로 선포하며 내전을 벌였다. 쿠빌라이 칸은 중국 북부에서, 아리크부카는 몽골 본토인 카라코룸에서 세력을 형성하여 대립했다. 이 내전은 툴루이 가문 내전이라고도 불리며, 약 4년간 지속되었다.

결국 1264년 쿠빌라이 칸아리크부카를 제압하고 승리하여 제5대 대칸이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 등 다른 칸국들의 독자성이 강화되면서 몽골 제국은 실질적으로 분열되었다. 쿠빌라이 칸은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대도(현재의 베이징)로 옮기고 1271년 원나라를 세웠다. 그의 또 다른 동생인 훌라구는 서아시아 지역에 일 칸국을 건설하여, 툴루이의 후손들이 몽골 제국의 주요 영역을 나누어 통치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4. 2. 원나라 (대원제국)

대원(大元) 울루스몽골 제국의 5대 대칸인 쿠빌라이 칸이 세운 국가이다. 쿠빌라이 칸은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 칸소르칵타니 베키 사이의 넷째 아들이다.

툴루이 칸의 가계는 몽골 제국 및 이후 분열된 칸국들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관계이름비고
아버지툴루이 칸칭기즈 칸의 4남
어머니소르칵타니 베키케레이트 부족 출신, 현의장성황후(추존)
본인 (4남)쿠빌라이 칸 (세조 홀필렬)몽골 제국 5대 대칸, 원나라 초대 황제
형 (장남)몽케 칸 (헌종 몽가)몽골 제국 4대 대칸
동생 (6남)훌라구 (울렬올 대왕)일 칸국 초대 칸
동생 (7남)아리크 부케 (아리불가 대왕)몽골 제국 대립 대칸 (5대)


  • 툴루이 칸에게는 이 외에도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이 있었다.[5][6]


칭기즈 칸의 직계 후손 중 원나라 황제(대칸)를 역임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

  • 2대손: 세첸 칸 (원 세조)
  • 5대손: 쿨룩 칸 (원 무종)
  • 6대손: 후투그투 칸 (원 명종)
  • 7대손: 우카가투 칸 (원 혜종)


이 외에도 원나라 황제 계보는 쿠빌라이 칸의 아들 친킴과 그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원나라 2대 황제인 성종 테무르는 친킴의 아들이다.

4. 3. 킵차크 칸국

주치칭기즈 칸으로부터 몽골 제국의 서방 영토를 분배받았으나, 1227년경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 바투가 아버지의 영지를 계승하여 1236년부터 시작된 유럽 원정을 이끌었고, 이를 기반으로 1242년볼가강 하류의 사라이를 수도로 삼아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을 실질적으로 건국했다.

킵차크 칸국의 주요 칸과 통치 기간은 다음과 같다.

재위 기간비고
바투1227년 ~ 1255년킵차크 칸국 건국자
사르타크1255년 ~ 1256년바투의 아들
울라크치1257년사르타크의 아들 혹은 동생, 짧은 재위
베르케1257년 ~ 1266년바투의 동생, 이슬람교로 개종, 칸국의 독립성 강화
멩구티무르1266년 ~ 1280년크림반도 지역 지배
투다멩구1280년 ~ 1287년
탈라부가1287년 ~ 1291년
노가이 칸1280년? ~ 1299년실권자, 멩구티무르 및 토흐타 시기 강력한 영향력 행사
토흐타1291년 ~ 1312년1299년까지 노가이 칸이 실권 장악
우즈베크 칸1312년 ~ 1341년칸국의 이슬람화 추진, 최전성기
티니베크1341년 ~ 1342년우즈베크 칸의 아들
자니베크1342년 ~ 1357년1356년 아제르바이잔, 이란 북서부 정복
베르디베크1357년 ~ 1359년자니베크 칸의 아들, 그의 사후 혼란기 시작
쿨파1359년 ~ 1360년대혼란기 시작
나우루즈베크1360년 ~ 1361년
키드르 칸1361년 ~ 1362년백장 한국 출신
티무르 크와자1362년키드르 칸의 아들
마마이1362년 ~ 1380년실권자, 칭기스 칸 후예가 아님. 꼭두각시 칸 옹립.
우루스1376년 ~ 1378년백장 한국 칸, 잠시 금장 칸국의 칸위 차지
토크타미시1380년 ~ 1395년백장 한국과 금장 한국 통합, 티무르에게 패배



베르디베크 사후 킵차크 칸국은 약 20년간 25명 이상의 칸이 난립하는 극심한 "대혼란기"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칭기즈 칸의 후예가 아닌 마마이와 같은 장군이 실권을 잡고 꼭두각시 칸을 내세우기도 했다.

백장 한국의 칸이었던 토크타미시는 1380년 쿨리코보 전투에서 패배한 마마이를 제거하고 백장 한국과 금장 한국(킵차크 칸국)을 통합하여 잠시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는 1382년 모스크바를 약탈하는 등 위세를 떨쳤으나, 중앙아시아의 티무르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칸국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다.

토크타미시 이후 킵차크 칸국은 다시 분열과 쇠퇴의 길을 걸었다. 후기 주요 칸들은 다음과 같다.

재위 기간비고
테무르 콰틀루크1395년? ~ 1399년?
셰이드 마흐메드1433년? ~ ?
마흐무드1459년 ~ 1465년
아흐메트1465년 ~ 1481년우그라 강 전투에서 모스크바 대공국에 패배
쉬야크 아흐마드1481년 ~ 1498년, 1499년 ~ 1502년마지막 칸
무르타다1498년 ~ 1499년쉬야크 아흐마드와 공동 통치 혹은 경쟁



1502년 마지막 칸인 쉬야크 아흐마드가 크림 칸국에 의해 수도 사라이를 함락당하면서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은 최종적으로 멸망하였다. 이후 칸국의 영토에는 크림 칸국, 카잔 칸국, 아스트라한 칸국, 시비르 칸국 등 여러 후계 칸국들이 들어섰다.

'''백장 한국'''

킵차크 칸국의 동부 지역은 주치의 장남 오르다와 그 후예들이 통치했으며, 이를 백장 한국이라고 부른다. 주요 칸들은 다음과 같다.

재위 기간비고
오르다1226년 ~ 1280년주치의 장남, 백장 한국 건국자
코추1280년 ~ 1302년
부얀1302년 ~ 1309년
사시부카1309년 ~ 1315년
일바산1315년 ~ 1320년
무바라크 크와자1320년 ~ 1344년
침타이1344년 ~ 1374년
우루스1374년 ~ 1376년금장 칸국의 칸위도 잠시 차지
테무르 말리크1377년
토크타미시1377년 ~ 1378년이후 금장 칸국의 칸이 됨



백장 한국은 토크타미시 대에 이르러 금장 한국과 통합되었다.

4. 4. 차가타이 칸국

칭기즈 칸의 둘째 아들인 차가타이가 분봉받은 영지를 기반으로 성립되었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나, 내부 분열과 외부 세력의 영향으로 점차 쇠퇴하였다.

=== 역대 칸 ===

대수칸 이름재위 기간비고
1대차가타이1226년 ~ 1242년
2대카라 훌레구1242년 ~ 1246년1차 재위
3대이수 뭉케1246년 ~ 1251년
2대카라 훌레구1251년 ~ 1252년2차 재위
4대무바라크 샤1252년 ~ 1260년오르키나 하툰 섭정 하 통치, 1차 재위
-오르키나 하툰1252년 ~ 1260년무바라크 샤의 섭정
5대알루구1260년 ~ 1266년
4대무바라크 샤1266년복위 (2차 재위)
6대바락1266년 ~ 1270년
7대네구베이1270년 ~ 1272년
8대부카 테무르1272년 ~ 1287년
9대두아1282년 ~ 1307년
10대콘첵 칸1306년 ~ 1308년
11대탈리쿠1308년 ~ 1309년
12대케벡 칸1309년1차 재위
13대에센부카 칸1309년 ~ 1320년
12대케벡 칸1320년 ~ 1325년2차 재위
14대엘지기데이1325년
15대두와 테무르1325년
16대알라딘 타르마시린1325년 ~ 1333년
17대부잔1333년 ~ 1334년
18대창시1334년 ~ 1338년
19대예순 테무르1338년 ~ 1342년알리 술탄과 공동 통치
20대알리 술탄1338년 ~ 1342년예순 테무르와 공동 통치
21대무하마드 1세 이븐 풀라드1342년 ~ 1343년
22대카잔 칸 이븐 야사우르1343년 ~ 1346년
23대다니시멘지1346년 ~ 1348년



1340년대 카잔 칸 이븐 야사우르의 사망 이후 차가타이 칸국은 사실상 동서로 분열되었다. 서부 지역(트란속시아나)은 여러 튀르크계 아미르들이 실권을 장악하고 명목상의 칸을 내세웠으며, 동부 지역(일리 강 유역 중심)에서는 모굴리스탄 칸국이 형성되었다.

=== 분열 이후 (서차가타이 칸국) ===

대수칸 이름재위 기간비고
24대바얀 쿨리1348년 ~ 1358년
25대투글루크 티무르1358년 ~ 1363년모굴리스탄 칸국의 칸, 서차가타이 칸국 일시 통치
26대일리야스 호자1363년 ~ 1368년투글루크 티무르의 아들
27대아딜 술탄1363년
28대카불 샤1364년 ~ 1370년



1370년 이후 서차가타이 칸국 지역은 티무르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차가타이 가문의 칸들은 명목상의 군주로 남게 되었다.

=== 티무르 제국 시기 명목상 칸 ===

칸 이름재위 기간비고
수우르가트미시1370년 ~ 1388년티무르가 세운 명목상의 칸
술탄 마흐무드 (무함마드 2세)1388년 ~ 1402년티무르가 세운 명목상의 칸



차가타이 칸국의 분열 이후 등장한 모굴리스탄 칸국과 그 후계 국가들(야르칸트 칸국 등), 그리고 서차가타이 칸국 지역에 들어선 티무르 제국 및 그 후계 국가들(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코칸트 칸국 등)은 중앙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갔다.

4. 5. 오고타이 칸국

오고타이 칸국은 몽골 제국칭기즈 칸 사후, 그의 아들인 오고타이 칸이 대칸의 지위를 계승하면서 형성된 국가이다. 오고타이 가문이 중앙아시아 일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였다.

오고타이 칸국의 역대 칸 및 주요 통치자는 다음과 같다.

오고타이 칸국 역대 칸 및 주요 통치자
대수이름재위 기간비고
1대오고타이 칸1221년 ~ 1241년칭기즈 칸의 아들
섭정퇴레게네 카툰1241년 ~ 1246년오고타이 칸의 황후
2대귀위크 칸1241년 ~ 1246년오고타이 칸의 아들 (원문 자료 표기 기준)
섭정오굴 카미시 카툰1246년 ~ 1251년귀위크 칸의 황후
-카단1248년 ~ 1260년칸국 북동부 통치, 오고타이 칸의 아들
3대카이두1264년? 1252년? ~ 1301년오고타이 칸의 손자 (카신의 아들)
4대, 6대차파르1301년 ~ 1306년, 1308년 ~ 1310년카이두의 아들
5대야기차르1306년 ~ 1308년카이두의 아들
-투크메1307년 ~ 1309년일리 강변 일대 통치


4. 6. 일 칸국

일 칸국몽골 제국의 칸국 중 하나로, 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훌라구가 서아시아 원정을 통해 기반을 마련하였다. 1256년 건국되어 1335년 아부 사이드 칸이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사실상 멸망하였다.

아래는 역대 일 칸국의 칸 목록이다.

대수칸 이름재위 기간
1대훌라구1256년 ~ 1265년
2대아바카1265년 ~ 1282년
3대테쿠데르1282년 ~ 1284년
4대아르군 칸1284년 ~ 1291년
5대가이하투1291년 ~ 1295년
6대바이두1295년
7대가잔1295년 ~ 1304년
8대울제이투1304년 ~ 1316년
9대아부 사이드1316년 ~ 1335년
10대아르파 케운1335년 ~ 1336년



아부 사이드 칸이 후계자 없이 사망한 후, 일 칸국은 급속히 분열되었다. 여러 세력들이 칸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명목상의 칸을 내세웠다.


  • 무사 (1336년 ~ 1337년): 바그다드의 알리 파드샤가 내세운 명목상 칸
  • 무함마드 (1336년 ~ 1338년): 자라이르 왕조가 내세운 명목상 칸
  • 사티 벡 (1338년 ~ 1339년): 추판 왕조가 내세운 명목상 칸 (여성)
  • 슐레이만 (1338년 ~ 1353년): 추판 왕조가 내세운 명목상 칸
  • 자한 테무르 (1338년 ~ 1340년): 자라이르 왕조가 내세운 명목상 칸
  • 아누시라완 (1343년 ~ 1356년): 추판 왕조가 내세운 명목상 칸
  • 가잔 2세 (1356년 ~ 1357년): 동전에만 이름이 남아 있으며, 실존 인물인지 불확실함


한편, 동 페르시아 지역에서는 토가 테무르 (1338년 ~ 1353년)가 칸을 자칭하였고, 그의 아들 루크만 (1353년 ~ 1388년)이 그 뒤를 이었다.

5. 몽골 제국 이후의 국가들

몽골 제국칭기즈 칸 사후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분할 상속되면서 점차 여러 개의 독립적인 칸국으로 나뉘었다. 쿠빌라이 칸아리크부카 사이의 계승 전쟁 이후 제국의 통합은 사실상 와해되었고, 각 지역의 칸국들은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원나라명나라에 의해 중국 본토에서 밀려나 몽골 고원으로 돌아가 북원을 형성했으며,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동유럽 등지에서는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금장 칸국), 일 칸국 등의 후계 국가들이 명맥을 유지하거나 새로운 세력으로 재편되었다. 이들 국가는 비록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었지만, 칭기즈 칸의 후예임을 내세우거나 몽골 제국의 전통을 계승하며 각 지역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티무르 제국무굴 제국은 몽골 제국의 후예임을 자처하며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고, 오이라트 부족 연합이나 준가르 칸국 등도 몽골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5. 1. 북원

원나라명나라에 의해 대도를 빼앗기고 몽골 고원으로 물러난 후의 시기를 북원이라 칭한다. 북원의 주요 칸들의 가족 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유르시리다르(소종)'''

  • 황후
  • * 원비(元妃): 오지라슨다리씨(瓦只剌孫答里氏) 또는 진다리씨(陳答里氏)
  • * 권황후(權皇后): 고려 출신 권겸(權謙)의 딸[3]
  • * 김황후(金皇后): 고려 출신 김윤장(金允藏)의 딸[4]

  • 자녀
  • * 딸: 공주(公主) - 이수데르 조리그투 칸에게 시집감 (권황후 소생)
  • * 아들: 이름 미상 (1363년 3월 26일 ~ 1375년 5월 16일) (권황후 소생)
  • * 아들: 매적리팔라(買的里八刺) (김황후 소생)


'''투구스테무르(천원제)'''

  • 아버지: 원 순제(元順帝)
  • 어머니: 미상
  • 황후: 미상

  • 자녀
  • * 장남: 황태자 천보노(天保奴)
  • * 차남: 황자 지보노(地保奴)

5. 2. 오이라트 북원과 준가르 칸국

오이라트족이 세력을 키우면서 북원 황실과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이 시기 오이라트 출신이거나 오이라트의 영향을 받은 북원의 카간들은 다음과 같다.

  • 델베그 카간
  • 아지이 카간
  • 타이손 카간
  • 에센 카간
  • 헤그트 카간
  • 멀런 카간
  • 만돌 카간
  • 다얀 카간
  • 저넌 카간
  • 알라크 카간
  • 구덴 카간
  • 자사크트 카간
  • 부얀 세첸 카간
  • 링단 카간
  • 에제이 카간


이후 오이라트의 일파인 준가르는 준가르 칸국을 세워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떨쳤다. 준가르 칸국의 주요 칸들은 다음과 같다.

  • 에르데니 바투르 (1644년 ~ 1653년)
  • 셍게 (1653년 ~ 1671년)
  • 갈단 칸 (1671년 ~ 1697년)
  • 체왕 랍탄 (1697년 ~ 1727년)
  • 갈단 체렝 (1727년 ~ 1745년)
  • 체왕 도르지 남잘 (1745년 ~ 1750년)
  • 라마 도르지 (1751년 ~ 1753년)
  • 다와치 (1753년 ~ 1757년)

5. 3. 티무르 제국과 무굴 제국

몽골 제국의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역에서는 몽골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여러 세력이 등장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티무르 제국무굴 제국이다.

14세기 후반, 티무르는 분열된 차가타이 칸국 서부 지역을 통합하고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는 칭기즈 칸의 혈통은 아니었으나, 칭기즈 칸 가문의 여성과 혼인하여 '구르겐'(사위) 칭호를 사용하며 몽골 제국의 계승자임을 내세웠다. 티무르 제국은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번영했으나, 티무르 사후 후계자 다툼으로 점차 쇠퇴하였다.

군주재위 기간
티무르1370년 ~ 1405년
할릴 술탄1405년 ~ 1409년
샤 루흐1409년 ~ 1447년 (헤라트 중심)
울루그 베그1447년 ~ 1449년 (사마르칸트 중심)
압드 알라티프1449년 ~ 1450년 (사마르칸트 중심)
압둘라1450년 ~ 1451년 (사마르칸트 중심)
아부 사이드1451년 ~ 1469년 (사마르칸트 중심, 1459년부터 헤라트 통합)
술탄 아흐마드1469년 ~ 1494년 (사마르칸트 중심)
술탄 마흐무드1494년 ~ 1495년 (사마르칸트 중심)
바이순쿠르1495년 ~ 1496년, 1497년 (사마르칸트 중심)
술탄 알리1496년, 1498년 ~ 1500년 (사마르칸트 중심)
바부르1497년 ~ 1498년 (사마르칸트 중심)



군주재위 기간
샤 루흐1405년 ~ 1449년
아불 카짐 바부르1449년 ~ 1457년
샤 마흐무드1457년
이브라힘1457년 ~ 1459년
아부 사이드 구르간1459년 ~ 1469년
후세인 이븐 만수르 이븐 바이카라1469년, 1470년 ~ 1506년
야드가르 무함마드1469년 ~ 1470년
바디 알자만1506년 ~ 1507년



티무르의 5대손인 바부르는 중앙아시아에서의 세력 다툼에서 밀려나 인도로 남하하여 1526년 델리 술탄 왕조를 무너뜨리고 무굴 제국을 세웠다. 무굴 제국은 악바르 대제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인도 아대륙 대부분을 통치했으며, 이후 약 300년간 인도를 지배하며 인도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황제재위 기간
바부르1526년 ~ 1530년
후마윤1530년 ~ 1540년 / 1555년 ~ 1556년
악바르 1세1556년 ~ 1605년
자한기르1605년 ~ 1628년
샤 자한 1세1628년 ~ 1658년
아우랑제브 1세1658년 ~ 1707년
바하두르 샤 1세 (샤 알람 1세)1707년 ~ 1712년
자한다르 샤1712년 ~ 1713년
플루크시야르1713년 ~ 1719년
샤 자한 2세1719년
라피 우드 다울라트1719년
니쿠시야르1719년
모하메드 샤1719년 ~ 1720년 / 1720년 ~ 1748년
모하메드 이브라힘1720년
아메드 샤 바하두르1748년 ~ 1754년
알람기르 2세1754년 ~ 1759년
샤 자한 3세1759년
샤 알람 2세1759년 ~ 1806년
악바르 2세1806년 ~ 1837년
바하두르 샤 2세1837년 ~ 1858년


5. 4. 기타 몽골계 국가들


  • 칼미크 칸
  • 투메드부 술탄
  • 투마트부 술탄
  • 사파비 제국 군주
  • * 이스마일 1세 (1501년 - 1524년)
  • * 타흐마스프 1세 (1524년 - 1576년)
  • * 이스마일 2세 (1576년 - 1578년)
  • * 무함마드 호다반다 (1578년 - 1587년)
  • * 아바스 1세 (1587년 - 1629년)
  • * 사피 (1629년 - 1642년)
  • * 압바스 2세 (1642년 - 1666년)
  • * 쉴레이만 1세 (1666년 - 1694년)
  • * 술탄 후사인 (1694년 - 1722년)
  • * 타흐마스프 2세 (1722년 - 1732년)
  • * 압바스 3세 (1732년 - 1736년)

6. 몽골 제국과 한국사

(작성할 내용 없음 - 원본 소스에 해당 섹션의 내용을 뒷받침할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6. 1. 고려와 몽골의 관계

고려몽골 제국(후일의 원나라)은 왕실 간의 혼인을 통해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충선왕쿠빌라이 칸의 증손녀인 계국대장공주와 혼인했다. 그 외에도 여러 부인을 두었다.

원나라 황실에도 고려 출신 인물들이 있었다. 원 인종(부얀투 칸)의 후비 중 고려인은 다음과 같다.

  • 답리마실리황후(答里麻失里皇后): 고려인 김씨(金氏). 고려 도원수, 도첨의중찬 김심(金深)의 딸.
  • 백안홀독황후(伯顔忽篤皇后): 고려 왕족 출신 왕씨(王氏). 평양공 왕현(平陽公 王眩)과 순비 허씨의 딸.

원 인종의 아들 안왕(安王) 올도사불화(兀都思不花)는 일설에 고려인 김씨 소생이라는 기록이 있다.

충선왕의 가계는 원종(3대조), 충렬왕(2대조), 강양공(1대조)으로 이어지며, 강양공의 후손으로는 심양왕 왕고, 연덕부원대군(延德府院大君) 왕훈(王塤), 단양부원대군(丹陽府院大君) 왕후(王珛), 왕올제이투(王完澤禿) 등이 있다. 왕올제이투의 후손으로는 강릉대군 왕도(王燾), 토크토아부카왕(脫脫不花王) 등이 있으며, 이 중 토크토아부카왕은 미혼이었다.

6. 2. 조선과 몽골의 관계

(작성할 내용 없음 - 원본 소스에 '조선과 몽골의 관계'에 대한 정보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6. 3. 몽골 제국의 유산과 한국

원나라 황족인 카말라의 딸 계국대장공주 보탑실련(寶塔實憐, 또는 복탑실리 卜答失裡)은 고려의 제26대 국왕인 충선왕 왕장(忠宣王 王璋)과 혼인하였다. 이는 몽골 제국(원나라)과 고려 왕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7. 칭기즈 칸 찬가

'''Хөх тэнгэрээс заясан|허흐 텡그레쓰 짜야씅mn'''

''영원한 하늘에 축복받은''

'''Хөдөө аралд мэндэлсэн|허더 아를드 멩들르씅mn'''

''대초원에서 태어나''

'''Хөх монголоо нэгтээ|허흐 멍글러 넥테에mn'''

''모든 곳이 푸른 몽골에''

'''Хөвчин дэлхийд дуурисгаад|허브칭 델히드 도리쓰가드mn'''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 퍼지네''

(흐미)

'''Эрэлхэг монгол Чингис|에를흐그 멍글르 칭기쓰mn'''

''용감한 몽골의 칭기스''

'''Эзэн богд Чингэсээ|에쯩 보그드 칭기쎄mn'''

''숭고한 군주 칭기스''

'''Гал мэсний дундаас|갈 메쓰니 동다쓰mn'''

''상처가 불에 타도''

'''Ган болд шиг хаттай|강 벌드 쉬그 하트태mn'''

''마음은 강철 같이 강하고''

'''Газар дэлхий дээрээ|가쯔르 델르히 데레mn'''

''전 세계의 땅을 아울러''

'''Гарьд шувуу шиг хүчтэй|가르드 쇼보 쉬그 후치테mn'''

''봉(鳳)''[7]

(흐미)

'''Эрэлхэг монгол Чингэс|에를흐그 멍글르 칭기쓰mn'''

''용감한 몽골의 칭기스''

'''Эзэн богд Чингэсээ|에쯩 보그드 칭기쎄mn'''

''숭고한 군주 칭기스''

(간주)

'''Дээд тэнгэрээс заясан|데드 텡그레쓰 짜야씅mn'''

''하늘에게 축복을 받아''

'''Дэлхийн хагасийг дагуулсан|델힝 하그씨г 다골씅mn'''

''세계의 반을 정복했네''

'''Сүр хичээ нэгтгээ|쑤르 히체 넥트게mn'''

''장엄하고 강력한 세상에서''

'''Сүлд хийморь ьадраасан|쑬드 히머르 바드라갇mn'''

''뿌리 깊은 그의 정신''

(흐미)

'''Эрэлхэг монгол Чингэс|에를흐그 멍글르 칭게쓰mn'''

''용감한 몽골의 칭기스''

'''Эзэн богд Чингэсээ|에쯩 보그드 칭기쎄mn'''

''숭고한 군주 칭기스''

'''Эрэлхэг монгол Чингис|에를흐그 멍글르 칭게쓰mn'''

''용감한 몽골의 칭기스''

'''Эзэн богд Чингэсээ|에쯩 보그드 칭기쎄mn'''

''숭고한 군주 칭기스''

참조

[1] 문서 차바크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쿠빌라이 카안과 카이두가 전쟁할 때, 카이두에게 망명했다 한다.
[2] 문서 자세한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고려사 권 38, 공민왕세가 1에 의하면 1351년 고려로 와서 고려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한다.
[3] 서적 고려사절요 제26권 공민왕 원년 8월, 權謙,如元納女于皇太子.
[4] 서적 고려사 권38 <세가> 공민왕 2년 8월 정사(1353년 8월 23일 음력) ○ 丁巳 太子·平章還, 王餞于郊. 太子約娶金允臧女, 以其女歸 1353-08-23
[5] 기타 chinggis khaanii magtaal을 불렀다.
[6] 기타 chinggis khaanii magtaal을 불렀다.
[7] 문서 몽골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는 새. 만큼이나 강하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