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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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터널전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와 지역에서 사용된 군사 전술이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중국, 일본 등에서 갱도 굴착을 통한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졌고, 중세 시대에는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근대에 들어 화약의 발명으로 더욱 발전하여, 크림 전쟁, 미국 남북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에서 대규모로 사용되었으며, 특히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도 터널은 게릴라전과 요새 방어에 활용되었으며, 현대전에서도 시리아 내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이스라엘-가자 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터널을 이용한 전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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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전 | |
---|---|
개요 | |
영어 명칭 | Tunnel warfare |
일본어 명칭 | 坑道戦 (Kōdōsen) |
한국어 명칭 | 터널전 |
관련 용어 | 지하 전쟁 (Subterranean warfare) 굴착 공병 |
역사 및 전략 | |
정의 | 터널과 다른 지하 통로를 사용하여 적과 교전하는 전쟁 형태 |
목적 | 적의 방어선 우회 적의 후방 침투 적의 보급로 차단 방어 거점 구축 |
주요 전술 | 굴착 매복 폭파 가스 공격 화염 공격 |
장비 | 곡괭이 삽 폭약 화염방사기 가스 마스크 |
주요 전투 사례 | |
제1차 세계 대전 | 서부 전선에서 광범위하게 사용 |
제1차 세계 대전 - 전투 예시 | 메신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 태평양 전쟁, 스탈린그라드 전투 등에서 사용 |
제2차 세계 대전 - 전투 예시 | 이오지마 전투 |
베트남 전쟁 | 구찌 터널을 이용한 게릴라전 |
베트남 전쟁 - 전투 예시 | 구찌 터널 전투 |
아프가니스탄 전쟁 | 탈레반이 터널을 이용하여 공격 |
시리아 내전 | 다양한 지하 통로를 이용한 전투 발생 |
위험 요소 | |
붕괴 위험 | 터널 붕괴로 인한 매몰 사고 발생 가능성 |
유독 가스 | 지하 공간에 유독 가스 축적 가능성 |
환기 부족 | 산소 부족으로 인한 질식 위험 |
제한된 시야 | 어두운 환경으로 인한 전투의 어려움 |
심리적 압박 | 폐쇄된 공간에서의 심리적 스트레스 |
기타 | |
영화 | 터널 전쟁 에너미 앳 더 게이트 |
관련 인물 | 군인 |
2. 역사
터널전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58]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저서에는 이전 시대 예루살렘에서의 터널전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2세기 공손찬과 원소의 역경의 전투에서 망루 기둥을 절반 정도 비운 뒤 불을 질러 역경성을 무너뜨린 사례가 있으며, 3세기 관도 전투에서도 갱도가 굴착되었으나, 성토에서 이를 눈치채고 물을 이용해 공격했다.
일본에서는 『일본서기』 유략 천황 8년 2월조에 군사적 목적으로 지하도를 팠다는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이는 5세기 후반의 일로, 한반도에서 고려군과 대치하던 중 밤사이에 지하도를 만들어 군사 물자를 보내 기습을 시도했다는 내용이다.[61]
전국 시대 일본에서는 주로 성내 물줄기를 끊거나 성곽을 무너뜨리고, 갱도를 통해 돌격 부대를 보내는 공성전 방식으로 터널전이 활용되었다.[58] 마쓰야마성 전투(1561년)에서는 다케다 가문이 갱도를 팠지만, 우에스기 가문의 반격으로 물과 조총 공격을 받아 많은 굴착 인부가 사망했다.[60] 야마모토 간스케는 땅속 물병의 진동으로 적의 접근을 간파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571년 후카사와성 공격에서 다케다 가문은 금광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성곽을 붕괴시켰고,[62]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는 가토 기요마사와 구로다 나가마사 세력이 터널을 굴착하여 성벽을 무너뜨렸다.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는 도쿠가와 측이 구로쿠와를 사용하여 갱도를 파고 천수각을 폭파하려 했다는 설화가 있다.
근대에는 적군 또한 방해를 위해 갱도를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오래 걸려 수년에 걸친 장기전이 된 사례도 많았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3년 이상 갱도를 판 사례도 있었다. 러일 전쟁의 뤼순 공방전에서 일본군은 러시아군 요새 바로 아래까지 갱도를 파 폭파시켰다. 제1차 세계 대전의 메시느 전투에서는 영국군이 갱도전을 통해 600톤의 폭탄으로 1만 명 이상의 독일군을 사상시켰다. 종전 후, 폭발하지 않은 화약이 낙뢰로 폭발하여 농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남침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남북한 간 총격전도 벌어졌다.[64] 최근에는 페루 일본 대사관저 인질 사건에서 터널 굴착이 활용되었고, 21세기 하마스의 Palestinian tunnel warfare in the Gaza Strip|label=가자 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터널 전쟁영어에서 미국 국방부는 지하전에 특화된 병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65]
2. 1. 고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공성전에서 적의 성벽 아래에 터널을 파서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성 내부로 침투하는 전술이 사용되었다.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저서를 통해 이전 시대 예루살렘에서의 터널전 사례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2세기 역경의 전투에서 망루 기둥의 절반을 비운 뒤 방화하여 역경성을 붕괴시킨 예가 있으며, 3세기 관도 전투에서는 갱도가 굴착되었으나 성토에서 이를 눈치채고 물을 이용해 공격했다.
일본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지하도를 팠던 최초의 기록은 『일본서기』 유략 천황 8년 2월조에 나타난다. 이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고려군과 10여 일 동안 대치하던 중 밤사이에 지하도를 만들어 군사 물자를 보내 기습을 시도했다[61].
2. 1. 1. 고대 그리스
기원전 198년 암브라키아 포위전에서 로마군은 터널을 이용해 도시를 공격하려 했다.[1] 그러나 아이톨리아 동맹은 숯과 함께 타는 깃털에서 나오는 연기를 이용한 일종의 화학전으로 이에 대응했다.[1]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는 프리나소스 포위전에서 가짜 터널을 만들어 적을 속이는 전술을 사용했다. 폴리비우스에 따르면, 필리포스 5세는 병사들에게 밤에 다른 곳에서 흙을 모아 가짜 터널 입구에 던지게 하여 마치 터널 공사가 거의 완료된 것처럼 보이게 했다. 결국 필리포스 5세가 성벽의 큰 부분이 붕괴되었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은 항복했다.[2]
2. 1. 2. 로마
폴리비우스는 그의 저서 ''역사''에서 암브라키아를 포위한 로마군의 채굴과 대처굴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로마군은 갱도와 터널을 이용하여 공격을 시도했고, 이에 맞서 아이톨리아인들은 숯과 함께 타는 깃털에서 나오는 연기로 대응했다.[1] 이는 화학전의 초기 형태였다.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5세는 프리나소스라는 작은 마을을 포위하는 동안 공성 채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밤에 병사들에게 다른 곳에서 흙을 모아 가짜 터널 입구에 던지도록 하여 시민들을 속여 항복을 받아냈다.[2]
폴리비우스는 또한 셀레우코스 제국과 파르티아 제국이 시링크스를 포위하는 동안 터널과 대처굴을 사용했다고 묘사한다.[3]
터널과 참호를 게릴라전과 유사한 방식으로 활용한 것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로마 시대의 기록이다. 바타비족의 반란 이후 반란을 일으킨 부족들은 숨겨진 참호를 파고, 안전한 후퇴를 위해 터널로 연결했다.[4] 로마 군단은 이러한 전술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고, 요새화된 지역에 신중하게 접근했다. 로마인들이 방어적인 입장에 놓였을 때에는 거대한 지하 수도교 시스템이 로마 방어에 사용되었으며, 도망치는 지도자들을 대피시키는 데에도 활용되었다.
바르 코흐바의 반란 (132–136 AD) 기간 동안 유대 반군은 터널을 게릴라전 방식으로 사용했다. 로마인들은 터널 입구를 발견하면 불을 질러 반군을 쫓아내거나 질식시켜 죽였다.
두라-유로포스 요새에서는 광산 및 대항 광산 작전에 대한 증거가 발굴되었으며, 이 요새는 로마-페르시아 전쟁 중인 256/7 AD에 사산 왕조에 함락되었다.
2. 1. 3. 중국
고대 중국에서는 최소한 전국 시대(기원전 481–221년)부터 공성전에서 터널전이 사용되었다.[5] 적이 성벽 아래로 터널을 파려고 할 때, 방어군은 대형 풀무를 사용하여 터널 안으로 연기를 뿜어 침입자를 질식시키는 전술을 사용했다.[5]2. 2. 중세
중세 시대의 전쟁에서는 석조 성을 공략하기 위해 터널을 파서 성벽을 무너뜨리는 전술이 사용되었다. 이를 '광산'이라고 불렀는데, 공격자들은 요새가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되지 않아 불태울 수 없는 경우에 이 기술을 사용했다. 터널은 요새 내부로 접근하거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굴착되었으며, 굴착 과정에서 임시 나무 지지대로 보강되었다. 굴착이 완료되면 가연성 물질을 채워 넣어 불을 질러 지지대를 태워 위에 있는 구조물을 붕괴시켰다.[58]알비 십자군 전쟁 중 카르카손 전투에서는 공병들이 쇠지렛대와 곡괭이로 성벽 기저부를 파내는 전술이 사용되었다. 레 바 드 세르네의 피터는 "우리 공병들은 소가죽으로 덮인 4륜 마차를 벽 가까이로 가져와 벽을 깎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기록했다.
2. 3. 근대
화약의 발명 이후, 터널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대량의 화약을 터널에 설치하여 적의 요새를 파괴하는 전술이 등장했는데, 이는 이전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반 뇌제는 화약 폭발을 이용하여 카잔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58]많은 요새들은 적의 갱도를 감지하기 위한 "청음 갱도"를 건설했는데, 크렘린에도 이러한 터널이 있었다. 16세기부터는 적의 진지를 공격할 때 참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장군 라이몬도 몬테쿠콜리는 자신의 저서에서 적의 참호를 파괴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을 설명했고, 프랑스 요새 건축 학파의 창시자인 보방은 자신의 논문에서 지뢰 공격 이론과 다양한 참호, 폭발에 필요한 화약의 양을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일본 전국 시대에는 주로 성내의 물줄기를 끊거나, 곡륜(성곽)을 무너뜨리거나, 갱도에서 돌격 부대를 보내는 공성전 방식으로 터널전이 활용되었다.[58] 마쓰야마성 전투에서는 다케다 가문이 갱도를 팠지만, 우에스기 군의 반격으로 물과 조총 공격을 받아 많은 굴착 인부가 사망했다.[60] 야마모토 간스케는 땅속 물병의 진동으로 적의 접근을 간파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571년 후카사와성 공격에서 다케다 가문은 금광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성곽을 붕괴시켰고,[62] 1593년 진주성 전투에서는 가토 기요마사와 구로다 나가마사 세력이 터널을 굴착하여 성벽을 무너뜨렸다.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는 도쿠가와 측이 구로쿠와를 사용하여 갱도를 파고 천수각을 폭파하려 했다는 설화가 있다.
근대에는 적군 또한 방해를 위해 갱도를 파면서 지하에서 폭발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3년 이상 갱도를 판 사례도 있을 정도로 장기전이 되기도 했다. 러일 전쟁의 뤼순 공방전에서 일본군은 러시아군 요새 바로 아래까지 갱도를 파 폭파시켰다. 제1차 세계 대전의 메시느 전투에서는 영국군이 갱도전을 통해 600톤의 폭탄으로 1만 명 이상의 독일군을 사상시켰다. 종전 후, 폭발하지 않은 화약이 낙뢰로 폭발하여 농지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기도 했다.
한반도에서는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남침 땅굴이 발견되었으며, 남북한 간 총격전도 벌어졌다.[64] 최근에는 페루 일본 대사관저 인질 사건에서 터널 굴착이 활용되었고, 21세기 하마스의 Palestinian tunnel warfare in the Gaza Strip|label=가자 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 터널 전쟁영어에서 미국 국방부는 지하전에 특화된 병사의 필요성을 언급했다.[65]
2. 3. 1. 크림 전쟁
세바스토폴 공방전 (1854년~1855년)에서 벌어진 터널전은 매우 큰 규모였다. 초기 연합군은 별다른 대비 없이 참호를 건설했다. 러시아군의 반갱도 공격으로 여러 차례 폭발이 발생하자, 연합군은 터널 깊이를 늘렸지만 암반 지대에 도달하여 다시 얕은 깊이에서 터널전을 수행해야 했다. 공방전 기간 동안 러시아군은 6.8km의 터널과 반갱도를 팠고, 연합군은 1.3km를 팠다. 러시아군은 12톤의 화약을 사용한 반면, 연합군은 64톤을 사용했다. 이는 러시아군이 더 적은 화약으로도 효과적인 공격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58] 연합군은 구식 도화선을 사용했기 때문에 폭발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터널 내부는 촛불이 자주 꺼지고 공기가 탁해 공병들이 기절하거나, 지하수로 인해 터널이 침수되는 등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59] 러시아군은 연합군 요새 아래로 터널을 파며 포위망을 뚫으려 했다. 더 타임스는 이러한 터널전의 성과가 러시아군에게 있다고 인정했다.[60]2. 3. 2. 미국 남북 전쟁
피터스버그 포위전 중 크레이터 전투에서는 북군이 터널에 약 3628.74kg의 화약을 설치하여 폭파시켰으나, 이후 공격에 실패하여 큰 피해를 입었다.[58] 폭발로 인해 길이 약 51.82m, 너비 약 30.48m에서 약 36.58m, 깊이 최소 약 9.14m의 크레이터가 생겼지만, 북군은 윌리엄 마혼 준장의 지휘 아래 여러 차례 반격을 가한 남부 연합군의 반격으로 인해 틈새를 봉쇄당하고 격퇴되었다.[58] 이 전투는 찰스 프레이저의 소설과 앤서니 밍겔라의 영화 ''콜드 마운틴''에 묘사되었다.
빅스버그 포위전에서는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터널을 이용해 남부 연합군 참호 아래에 지뢰를 폭발시켰다.[58] 1863년 6월 25일, 북군은 제3 루이지애나 레단 아래에서 지뢰를 폭발시켰고, 존 A. 로건 장군이 이끄는 이어진 공격으로 남부 연합군 참호에 발판을 마련했지만, 공격자들은 결국 철수해야 했다.[58]
2. 4.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터널전이 다시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서부 전선 (제1차 세계 대전)과 이탈리아 전선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전문 광부들이 터널을 파는 데 동원되었다.[7]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돌로미테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서 격렬한 산악전과 광산 작전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및 이탈리아 군사 공병은 전투 터널을 건설하여 병사들을 보호하고 군수 지원을 가능하게 했다. 양측은 무인지대 아래로 터널을 뚫고 적 진지 아래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려 했다.
서부 전선에서 터널전의 주요 목표는 적 방어 진지 아래에 대량의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폭발이 일어나면 참호의 해당 부분이 파괴되었고, 보병은 이 혼란을 이용하여 적의 최전선으로 진격하려 했다. 군사 공병은 적의 터널을 파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했고, 때로는 지하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1916년 6월 서부 전선에서 지하전이 절정에 달했을 때, 영국 공병대 터널링 부대는 101개의 지뢰를, 독일 터널링 부대는 126개의 지뢰를 발사했다. 이는 3시간마다 한 번의 폭발에 해당한다.[7] 솜 전투와 비미 능선 전투와 같은 대규모 전투도 지뢰 폭발로 지원되었다.
메신 전투 (1917)에서는 영국군이 대규모 지뢰를 폭파시켜 독일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플루머 장군은 메신의 독일군 진지 아래에 20개 이상의 지뢰를 설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5개월 동안 8000m 이상의 터널이 뚫리고 450~600톤의 폭발물이 설치되었다. 1917년 6월 7일 오전 3시 10분에 지뢰가 동시에 폭발하여 약 10,000명의 병사가 사망했고, 그 소리는 런던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다.[8] 이 폭발은 역대 가장 큰 비핵 폭발 중 하나로 꼽힌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군이 발사한 마지막 지뢰는 1917년 8월 10일 기방시 근처에서였다.[11] 그 후 영국 공병대 터널링 부대는 병력 수용을 위한 깊은 참호 건설에 집중했다.
국가 | 지역 | 위치 | 비고 |
---|---|---|---|
벨기에 | 서플란데른 | 이프르: 후게 | 1915~1917년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후게 (제1차 세계 대전) 참조 |
이프르: 힐 60 | 1915~1917년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메신 전투 (1917)의 지뢰 참조 | ||
이프르: 생텔루아 | 1915~1917년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블러프 및 메신 전투 (1917)의 지뢰 참조 | ||
회벨란: 비체테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메신 전투 (1917)의 지뢰와 관련됨 | ||
메신 능선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메신 전투 (1917)의 지뢰 참조 | ||
프랑스 | 노르 | 아르망티에르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
오베르 능선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오베르 능선 전투와 관련됨 | ||
파드칼레 | 기방시레라바세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윌리엄 해킷 VC가 사망한 지역 | |
퀴쉬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루앙고엘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 ||
기방시앙고엘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비미 능선 전투 (1917)와 관련됨 | ||
비미 능선 | 1915년 10월부터 1917년 4월까지 이 서부 전선 구역에서 약 150개의 프랑스, 영국, 독일 폭탄이 발사되었다.[14] 영국 터널링 부대는 1916년 2월에서 5월 사이에 점진적으로 프랑스군을 인수했다. 1916년 9월 이후 영국 공병대가 대부분의 최전선에 방어 갤러리를 건설한 후 공세적 광산 작업은 주로 중단되었지만[14] 비미 능선 전투 (1917)를 통해 활동이 계속되었다. 비미 능선 아래의 영국 갤러리 네트워크는 12km의 길이에 달했다.[14] 비미 능선 전투 전에 영국 터널링 부대는 공격 전에 표면 요새를 파괴하기 위해 독일군 진지 아래에 일련의 폭발물을 비밀리에 설치했다.[15] 원래 계획은 보병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17개의 지뢰와 9개의 웜뱃 폭탄을 요구했지만, 결국 13개 (어쩌면 14개)의 지뢰와 8개의 웜뱃 폭탄이 설치되었다.[14] | ||
아라스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아라스 전투 (1917)와 관련됨; 카리에르 웰링턴 참조 | ||
솜 | 보몽아멜: 호손 능선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솜 전투 (1916)와 관련됨; 자세한 내용은 솜 전투 첫날의 지뢰 참조 | |
라 보아셀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지속적인 전투 지역, 지하전의 주요 장소는 슈바벤회헤/로크나가르, Y 사프 지뢰 및 라 보아셀/그라나토프/글로리 홀 사이트; 자세한 내용은 솜 전투 첫날의 지뢰 참조 | ||
프리쿠르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솜 전투 (1916)와 관련됨; 자세한 내용은 솜 전투 첫날의 지뢰 참조 | ||
마메츠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솜 전투 (1916)와 관련됨; 자세한 내용은 솜 전투 첫날의 지뢰 참조 | ||
돔피에르 | 프랑스 및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우아즈 | 트라시르발: 보아 생 마르 | 프랑스 및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엔 | 베리 오 바크 | 프랑스 및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마른 | 페르테레쥘루 | 프랑스 및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오베리브: 타우레 언덕 | 영국과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주로 언덕 전투 (1917)와 관련됨 | ||
마시주: 마인 드 마시주 | 프랑스 및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뫼즈 | 아르곤 숲: 라 필르 모르트 | 프랑스 및 독일 터널링 부대 간의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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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쾨아: 보쾨아 언덕 | 지속적인 전투 지역,[16] 베르됭 전투 (1916)와 관련됨. 1915년부터 1918년까지 프랑스와 독일 터널링 부대는 보쾨아에서 519개의 개별 지뢰를 발사했으며, 언덕 아래의 독일 갤러리 네트워크는 17km의 길이에 달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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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제2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 터널전이 활발하게 사용되었다.중일 전쟁에서 중국군은 일본 제국에 맞서 "터널전" 또는 "터널 전투"(地道战)라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했다.[17] 허베이성의 "란좡 터널"은 일본군의 반격에 저항하는 데 사용되었다.[18] 중국군과 농민군은 땅 밑에 터널을 파 기습 공격을 가했고, 일본군은 터널 안의 병사들을 질식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으나, 중국군은 필터를 설치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은 터널전을 활용하여 요새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펠렐리우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일본군의 터널 방어 전술로 인해 타라와 전투보다 두 배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오지마 전투에서 일본군은 수많은 터널을 파서 방어 진지와 반격 출구로 사용했다. 미 해병대는 "화염 방사기와 코르크 마개" 전술을 채택하여 일본군을 소탕했다.[20]
1940년대 초, 호주 해역에서의 추축국 해군 활동과 시드니 항에 대한 일본 잠수함 공격으로 인해 호주에서는 공습 방어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20] 시드니에서 호주 왕립 해군은 공습으로부터 병력을 보호하고 일본의 호주 침공에 대비하여 터널을 굴착했다.[21][22]
조지 헤드 포대,[23][24] Lower Georges Heights 지휘 위치, 헨리 헤드 포대,[25] 미들 헤드 요새,[26] 말라바 포대, 스틸 포인트 포대 등 시드니 해안의 군사 요새에도 터널 전쟁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27]

일본의 필리핀 점령 기간 동안, 일라간 일본 터널은 일본군의 본부로 사용되었다.[30] 필리핀 전역 (1941–1942)에서 마누엘 L. 케손과 맥아더 장군 등은 코레히도르의 말린타 터널에 피신했다. 1945년 섬 탈환 과정에서 터널에 갇힌 일본 군인들은 폭발물을 터뜨려 자살했다.[31]
2. 5. 1. 중일 전쟁
중일 전쟁 당시 중국은 일본군에 대항하여 "터널전" 또는 "터널 전투"(地道战)라는 게릴라 전술을 사용했다.[17] 허베이성에서는 "란좡 터널"이라는 터널 네트워크가 발전하여 일본군의 반게릴라 작전에 저항하는 데 사용되었다.[18] 중국 공산당 또는 지역 농민 저항군은 터널을 땅 밑에 파서 전장에 수많은 숨겨진 총구를 배치하여 기습 공격을 가했고, 입구는 보통 집 안의 짚 매트 아래나 우물 속에 숨겨져 있어 유연한 기동이나 탈출이 가능하여 터널 전쟁 전술을 일본군에 대항하여 사용했다.터널 전쟁의 주요 단점은 일본군이 구멍을 메우거나 물을 부어 터널 안의 병사들을 질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물과 유독 가스를 제거하는 필터를 설치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터널에서 일본군과 싸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터널전''은 중국에서 터널 전쟁을 널리 알렸다.[17]
2. 5. 2. 태평양 전쟁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의 서태평양 전선 전투에서 터널전을 활용하여 요새 방어력을 극대화했다. 펠렐리우 전투에서 미 해병대는 일본군의 터널 방어 전술로 인해 타라와 전투보다 두 배나 많은 사상자를 냈다. 이오지마 전투에서는 일본군이 방어 진지나 반격을 위한 출구로 연결되는 수많은 터널을 파서 일본군의 터널전은 정점에 달했다. 미 해병대는 "화염 방사기와 코르크 마개" 전술을 채택하여 일본군 방어병을 체계적으로 소탕했다.[20]1940년대 초, 호주 해역에서의 추축국 해군 활동이 활발해지고 1942년 일본 소형 잠수함 3척이 시드니 항에 침입하여 공격하면서 호주에서는 공습으로부터의 방어에 대한 요구가 더욱 심각해졌다.[20] 1941년 시드니에서 호주 왕립 해군은 해군 기지에서 근무하는 2,500명 이상의 병력을 공습으로부터 보호하고 호주에 대한 일본 침공을 예상함에 따라 일련의 터널을 굴착했다.[21][22]
조지 헤드 포대,[23][24] Lower Georges Heights 지휘 위치, 헨리 헤드 포대,[25] 미들 헤드 요새,[26] 말라바 포대 및 스틸 포인트 포대와 같이 터널 전쟁 시스템을 갖춘 다른 군사 요새가 시드니 해안에 있다.[27]
일본의 필리핀 점령 동안, 일라간 일본 터널은 일본 정부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군인들의 본부로 건설한 군사 기지의 일부였다.[30]
필리핀 전역 (1941–1942)에서 마누엘 L. 케손, 맥아더 장군 등은 마닐라 폭격을 피해 코레히도르의 말린타 터널에 수용되었다. 1945년 미국군이 섬을 탈환하는 동안, 터널에 갇힌 일본 군인들은 1945년 2월 23일 밤 터널 단지 내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자살하기 시작했다.[31]
코레히도르 전투에서 말린타 터널 동쪽 입구에서 북쪽 측면의 세 번째 측면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USAFFE의 본부 역할을 했다. 1941년 12월 30일 오후 터널 서쪽 입구 근처에서 마누엘 L. 케손과 세르히오 오스메냐는 필리핀 연방의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취임했다.[32][33]
2. 6. 한국 전쟁
한국 전쟁에서 북한군과 중국인민지원군은 터널 전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북한군은 지하 시설을 건설하고, 포병을 위한 지하 벙커를 만들어 미국의 공습과 포격에 대응했다. 지표면 바로 아래에는 넓은 병영을 건설하여 전체 부대가 짧은 시간 동안 신속하게 지상으로 출동하여 다시 지하로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34]삼각 고지 전투에서는 중공군이 터널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중공군은 약 8229.60m의 터널, 약 45720.00m의 참호, 그리고 약 4572.00m의 장애물과 지뢰밭으로 구성된 복잡한 방어망을 건설했다. 이 터널 네트워크는 미국 제8군이 완벽한 항공력과 포병 우위를 누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공군이 고지를 사수하고 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데 기여했다.[35]
휴전 이후에도 북한은 남침 땅굴을 건설하여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제1에서 제4 땅굴까지는 남침용으로 추정되며, 이로 인해 남북한 간에 총격전도 벌어졌다.[64] 이는 한국의 안보에 지속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2. 7. 베트남 전쟁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콩은 구찌 터널을 비롯한 광범위한 지하 터널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미군에 대항했다. 터널 시스템은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생활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36]남베트남에서 전면적인 게릴라전을 수행하기 위해, 게릴라 부대에 장기간 보급을 할 수 있는 위장 기지가 사용되었다. 남베트남 전역에는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비밀 지하 기지가 있었으며, 모든 마을 사람이 하루에 90cm의 터널을 파야 했다는 보고가 있다. 가장 큰 지하 기지는 총 길이가 약 321.87km에 달하는 구찌 터널이었다.
호치민 루트의 일부는 카르스트로 만들어진 동굴에 기반을 두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베트남이 다시 프랑스 식민지가 되었을 때, 공산주의자 베트민은 사이공 근처에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이 떠난 후(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배) 터널은 남베트남과의 전쟁이 시작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유지되었다.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은 미국이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사이의 전쟁에 참전한 후 터널 확장을 명령했다. 터널은 베트콩에 의해 사용될 것이었다. 터널 시스템은 군사적 목적으로 일시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지하에서 영구적으로 생활하는 전체 마을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터널 시스템에는 주방, 병원, 작업장, 수면 공간, 통신 시설, 탄약 저장소, 심지어 형태의 오락 시설까지 갖춘 지하 세계가 완비되어 있었다.
터널은 결국 미국군의 표적이 되었는데, 적들이 그 안에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터널 복합 단지의 광범위한 범위(수백 마일) 내 어디에서든 단 한 번의 경고 없이 공격한 후 다시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술은 중월전쟁 중 중국군을 상대로도 적용되었다.
2. 8.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무자헤딘과 탈레반은 소련군과 미군에 저항하기 위해 토라 보라를 비롯한 지하 시설을 활용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는 수로가 뻗어 있었고, 전쟁 중에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이 터널을 이용하여 숨거나 적군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데 사용했다. 소련군은 터널을 제거하기 위해 폭발물과 휘발유를 사용했다.[41][42] 무자헤딘과 탈레반의 가장 유명한 지하 기지는 토라 보라였는데, 이 터널 시스템은 깊이 400미터에 길이는 25km였다. 미국은 토라 보라의 게릴라들을 소탕하기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했다.2. 9. 보스니아 전쟁
보스니아 전쟁 중 사라예보 포위전(1992년 5월 ~ 1995년 11월) 동안, 보스니아군은 사라예보 터널을 건설했다.[43] 이 터널은 세르비아군에 의해 완전히 고립된 사라예보 시와 사라예보 공항 반대편의 보스니아군 점령 지역(유엔 통제 지역)을 연결했다. 터널은 사라예보의 도브리냐와 부트미르 지역을 연결하여 음식, 군수 물자, 인도적 지원을 도시로 들여오고,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했다.[43] 터널은 국제 무기 금수 조치를 우회하고 도시 방어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주요 수단 중 하나였다.[43]
3. 현대전
19세기 말 무연 화약, 코다이트, 다이너마이트의 사용으로 화력이 증가하면서 지상 요새를 건설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되었다. 그 결과 요새는 흙으로 덮였고, 결국 방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완전히 지하에 건설되었다. 포병과 기관총을 발사하기 위한 진지에는 총구멍이 설치되었다.
벙커 버스터 탄약과 합동전투 기동전의 보편화로 인해 20세기 중반 이후 터널전의 필요성이 줄어들었지만, 비정규전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전술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전에서 터널전은 기본적으로 토목 공사와 유사하며, 목표 지점까지 터널을 뚫어 폭약을 설치하여 초거대 지뢰처럼 폭파시켜 적의 진지나 요새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수년에 걸친 장기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3년 이상 터널을 파는 경우도 있었다.
3. 1. 시리아 내전
시리아 내전 동안 이슬람 전선, 알누스라 및 ISIL과 같은 반군 단체들은 터널을 파고 폭발물을 사용하여 시리아군과 동맹 민병대의 고정된 군사 진지를 공격했다. 2015년 3월 4일, 반군은 알레포의 공군 정보 건물 근처나 그 아래에 판 터널에서 대량의 폭발물을 터뜨렸다. 이 폭발로 건물은 부분적으로 붕괴되었고, 곧바로 반군의 무장 공격이 이어졌다.[44][45]3. 2. 레바논-이스라엘 전쟁
헤즈볼라는 북한의 지원을 받아 비무장 지대에 있는 북한의 터널과 매우 유사한 정교한 터널 네트워크를 건설했다.[48][47] 이 지하 네트워크는 25킬로미터에 달하는 터널, 벙커, 광섬유 통신 시스템, 미사일 및 탄약을 보관하는 창고를 포함했다.[48] 그 능력은 이란이 제공하는 첨단 무기와 헤즈볼라 요원에 대한 심층 훈련을 통해 확장되었다.[48] 레바논 남부에 건설된 터널 네트워크 외에도 헤즈볼라는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터널을 건설했는데, 이곳은 그들의 본부가 위치해 있으며 미사일을 보관하는 곳이다. 분석가들은 또한 이 단체가 시리아 국경을 따라 터널을 유지하여 이란에서 무기를 밀수하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고 주장한다.[49]2006년 7월, 헤즈볼라 요원들이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북부로 넘어와 이스라엘 군인 3명을 살해하고 2명을 납치하면서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공습에 직면한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의 분쟁 중에도 로켓 공격이 중단 없이 지속될 수 있도록 방어 체계를 구축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복잡한 터널 및 지하 벙커 시스템, 대전차 부대, 폭발물로 뒤덮인 지역을 만들었다.[46]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이스라엘군은 북부 방패 작전 기간 동안 이스라엘 국경을 따라 헤즈볼라가 건설한 터널 6개를 파괴했다.[50] 2024년 10월, 헤즈볼라에 대한 지상 공격에서 IDF는 다시 레바논 남부의 터널을 목표로 삼았고, 이후 이 지역에서 50개 이상의 터널 갱도를 발견하고 파괴했다고 보고했다.[49]
3. 3. 이스라엘-가자 분쟁
이스라엘군과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의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 간의 지속적인 분쟁을 터널 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하마스는 가자 시티와 가자 지구의 다른 인구 밀집 지역 아래에 광범위한 터널 네트워크를 건설했으며, 이를 때때로 가자 지하철이라고 부른다. 하마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네트워크는 길이가 500km가 넘는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 터널은 하마스가 납치된 인질을 구금하고, 물품을 밀수하고, 무장 세력을 이동시키고, 무기를 보관하고, 하마스 조직원과 기반 시설을 숨기는 등 여러 가지 목적을 수행한다.[53] 그러나 인구 밀집 지역에서 군사 터널의 위치와 사용은 하마스가 민간인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우려를 제기했다.[53]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동안 하마스가 가자 지구 아래에 매우 광범위한 터널을 팠으며, 터널을 점령하고 파괴하는 것이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최우선 과제"라는 보도가 있었다.[54] 2024년 왕립 합동 군사 연구소 보고서는 하마스가 고위 지휘관을 위한 깊고 잘 갖춰진 터널과 하위 조직원을 위한 얕은 터널, 두 가지 유형의 터널을 사용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초기에는 이스라엘 방위군(IDF)이 터널을 찾기 전에 영토를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이 전략으로 인해 하마스가 지하에서 매복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지상 및 지하 전투를 결합하는 동시에 아군 오사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대터널 작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55] 이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지하전#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참조하십시오.

2017년, 국경을 넘어 공격 터널을 파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가자 지구 국경의 터널 방어벽 건설이 시작되었다. 10월 30일, 이스라엘 국경 내에서 그러한 터널이 발견되어 폭파되었다.[52]
3. 4.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 지하 터널을 이용하여 러시아군에 저항했다.[56] 2022년 4월까지 러시아군과 분리주의군은 도시 대부분을 깊숙이 진격하여 아조우스탈 제철소로 퇴각하는 소수의 우크라이나군을 고립시켰는데, 이곳에는 핵폭탄에도 견딜 수 있는 복잡한 벙커와 터널이 있었다.[57]4. 일본 자위대의 터널전
육상자위대는 유사시 유탄포/곡사포, 다연장로켓시스템 MLRS와 같은 중(重) 특과 화력을 터널 형태의 갱도형 진지에서 운용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설과 부대에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갱도 굴착 전문 부대가 있었지만, 2024년 3월에 모두 폐지되었다.[1]
부대명 | 주둔지 | 상위 부대 | 비고 |
---|---|---|---|
제301갱도중대 | 가미후라노 주둔지 | 북부方面隊 제3시설단 제14시설군 | 2024년 3월 20일 폐지 |
제302갱도중대 | 이와미자와 주둔지 | 북부方面隊 제3시설단 제12시설군 | 2024년 3월 20일 폐지 |
제303갱도중대 | 후나오카 주둔지 | 도호쿠方面隊 제2시설단 | 2010년 3월 25일 폐지 |
제304갱도중대 | 이이즈카 주둔지 | 서부方面隊 제5시설단 제2시설군 | 2024년 3월 20일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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