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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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인은 게르만족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독일 국적을 가진 사람 또는 독일 민족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독일어는 독일 민족 정체성의 핵심이며, 다양한 하위 민족과 언어를 사용한다. 독일의 역사는 고대 게르만족의 여러 부족에서 시작하여, 신성 로마 제국,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을 거쳐 분단과 통일을 겪었다. 독일 문화는 지역적 다양성이 크며, 예술, 과학, 요리, 축제 등 다양한 특징을 갖는다. 독일 민족 정체성은 언어, 문화,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나치 시대와 분단, 통일을 거치면서 변화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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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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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민족명 | 독일인 |
현지어명 | Deutsche |
총인구 | 1억 - 1억 5000만 명 |
거주 지역 | 중앙 유럽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헝가리 등) 북미 (미국 중서부 등 독일계 미국인이 많은 지역)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의 독일계 이민자가 많은 지역) 아프리카 (나미비아 등의 구 독일령 지역) |
종교 | 가톨릭 복음주의 교회 정교회 이슬람교 무종교 |
언어 | 독일어 저지독일어 바이에른어 알레만어 |
관련 민족 | 게르만족 켈트족 슬라브족 발트족 |
인구 분포 | |
독일 | 73,113,500 |
미국 | 46,047,113 |
브라질 | 12,000,000 |
아르헨티나 | 3,541,600 |
캐나다 | 3,322,405 |
칠레 | 500,000 |
프랑스 | 437,000 |
러시아 | 394,138 |
네덜란드 | 368,512 |
이탈리아 | 310,900 |
오스트리아 | 186,891 |
카자흐스탄 | 181,958 |
헝가리 | 178,837 |
폴란드 | 148,000 |
스페인 | 153,245 |
스웨덴 | 50,863 |
멕시코 | 15,000–40,000 |
우루과이 | 40,000 |
루마니아 | 36,000 |
우크라이나 | 33,302 |
노르웨이 | 27,593 |
도미니카 공화국 | 25,000 |
체코 | 21,216 |
민족 계통 | |
민족 계통 | 서게르만족 |
기원 발상 | '' |
근연 민족 | 오스트리아인 |
2. 명칭
영어 단어 'Germans'는 고대 게르만족을 지칭하던 민족명 'Germani'에서 유래했다.[7] 근세 이후로 영어권에서 독일인을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으며, 독일 국민, 원주민 또는 거주자에게 독일 민족으로 간주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적용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독일계 사람들도 독일인이라고 불린다.[2][1] 역사적 논의에서 "독일인"이라는 용어는 로마 제국 시대 게르만족을 가리키는 데에도 가끔 사용된다.[1][8][9]
고대에 게르만족은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 지역에 거주하던 프랑크족, 프리기아족, 작센족, 알레만니족, 투링기족, 바바리족 등 다양한 부족 집단이었다.[10] 이들은 50개 이상의 세력으로 나뉘어 독자적인 문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기록은 주로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기록에 의존한다.[10]
독일어 자칭명 'Deutsche'는 "민족의" 또는 "사람들과 관련된"을 의미하는 고대 고지 독일어 용어 'diutisc'에서 유래되었다.[7] 이 용어는 적어도 8세기부터 중앙유럽의 서게르만어 사용자들에게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로 신성 로마 제국 내에 거주하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독일 민족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 국적을 가진 사람(국민)을 일반적으로 독일인이라고 한다. 현대에는 일반적으로 독일 연방 공화국 국적을 보유한 경우를 가리킨다. 이 경우의 "독일인"은 귀화한 외국인이나 다른 민족도 포함하기 때문에, 민족주의적인 독일인들로부터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프로이센 왕국이 있던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브란덴부르크 지역은 서슬라브계 폴란드인과 소르브인, 카슈브인과 혼거하는 지역이었으며, 프로이센 왕국에서는 많은 "폴란드계" 프로이센인들이 활약했다. 그들 중 다수는 폴란드계 독일인으로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국적을 취득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 귀화인의 존재 자체는 독일에서 드문 존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프랑스 왕국에서 박해받아 독일로 피난하여 프로이센 왕국의 프리드리히 2세에게 받아들여져 귀화하고 베를린이나 프랑크푸르트 등에 정착한 위그노(칼뱅파) 프랑스계 사람들도 "국민"으로서의 독일인에 해당한다.
독일 국적 보유자에는 서슬라브어군 소르브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인 소르브인(예: 전 축구 선수 미하엘 발락)이나, 폴란드계(대표적인 예로 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에이스인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등), 덴마크계, 네덜란드계(베토벤 등), 프랑스계 위그노의 후손( 동독 마지막 총리 로타르 드 메지에르와 독일 연방군 총감 울리히 드 메지에르를 배출한 드 메지에르 가문 등),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영향으로 수는 줄었지만 유대인(예: 펠릭스 멘델스존, 하인리히 하이네 등) 등이 있으며, 국적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터키인(예: 축구 선수 일한 만시즈)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16]
3. 역사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 라인 강 동쪽의 게르만족(''Germani'')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10]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당시 갈리아와 게르만 지역은 켈트의 라 테네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게르만어파는 기원전 2세기 이후 라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10] 현대 독일어는 철기 시대와 로마 시대에 퍼진 게르만어파의 후손으로, 학자들은 기원전 500년경 게르만어파가 존재했다고 추정한다.
로마 제국은 라인 강과 엘베 강 사이 지역을 정복하려 했으나, 서기 9년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아르미니우스가 이끄는 게르만족 연합군에 패배했다.[10] 이는 독일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여겨진다.[10] 이후 로마는 게르마니아 지역을 직접 통치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통제하며 병사를 모집하고 부족들을 대립시켰다.[10] 초기 게르만족은 1세기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중세 시대, 독일 민족성은 10세기 오토 왕조가 프랑크 제국 동부에서 독일 왕국을 분리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10] 독일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정치 체제로 묶여 있었다.[10]
게르만족은 고대에 프랑크족, 프리기아족, 작센족, 알레만니족, 투링기족, 바바리족 등 다양한 부족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에 살던 집단이 독일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10] 5세기 클로비스 1세를 시작으로 서프랑크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9세기 초 샤를마뉴의 통치 아래 프랑크 제국이 확장되어 카롤링거 제국이 건설되었다.[10] 샤를마뉴는 800년에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황제로 즉위했다.[10]
샤를마뉴 사후, 제국은 베르됭 조약(843년)에서 분할되었고, 동프랑크 왕국은 헨리 1세(작센 공작)부터 프랑크계가 아닌 왕조가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 오토 1세 치하에서 대부분 독일인으로 구성된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을 이루었다. 제국은 이탈리아 왕국, 부르고뉴 왕국, 로타링기아도 지배하였다.[10] 독일 국왕은 귀족 가문의 구성원들에 의해 선출되었는데, 그들은 종종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약한 국왕을 선출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초기 통일은 막혔다.
중세 독일 사회는 전사 귀족이 지배했고, 대부분 독일 인구는 정치적 권리가 거의 없는 농민으로 구성되었다. 교회는 중세 독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권력을 놓고 귀족과 경쟁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독일인들은 성지를 "해방"하기 위해 5차례의 십자군 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0]
왕국 초창기부터 그 왕조들은 슬라브어 사용 지역으로 동쪽으로 진출했다. 북쪽의 작센 동부 변경지에서는 엘베 강 동쪽에 있는 폴라브 슬라브족이 수 세대에 걸쳐 정복당했다. 독일 인구는 11세기부터 동방식민운동으로 알려진 현상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슬라브계와 독일어 사용 인구가 동화되었다. 12세기부터 많은 독일인들이 상인과 장인으로 폴란드 왕국에 정착하였다. 13세기에 튜턴 기사단은 프러시아 원주민을 정복하기 시작하여 결국 프러시아가 되었다.
오토 3세는 "너희들은 나의 로마인이 아닌가…나는 너희들을 위해 독일인도 삭손인도 버리고, 나의 피를 거절한 것이다"라고 각 민족의 대립의 심각성을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사용된 "독일인"은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단순히 "(독일 지역의) 민중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중세 후기에 독일 경제는 도시 중심지의 영향 아래 성장했고, 도시들은 한자 동맹과 슈바벤 동맹과 같은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호했다. 이러한 도시 동맹은 독일 상업과 은행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자 도시의 독일 상인들은 독일 영토 너머 북유럽 전역의 도시에 정착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19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독일 민족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프로이센 왕국이 1871년 독일 제국을 주도적으로 형성하며 오스트리아 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일인 국가를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켜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비슷한 시기 많은 독일인들이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큰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18세기에 독일 문화는 계몽주의의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수세기 동안의 정치적 분열 끝에 18세기에 독일 통일 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성 로마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쇠퇴를 거듭했다. 중앙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은 중대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고, 독일인들 사이에서 민족적 각성을 촉진했다. 18세기 후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와 같은 독일 지식인들은 언어에 뿌리를 둔 독일 정체성의 개념을 명확히 밝혔고, 이러한 개념은 독일인들을 단일 국가로 통일하려는 독일 민족주의 운동을 촉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결국 공통 조상, 문화, 언어(종교는 아님)가 독일 민족주의를 정의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빈 회의(1815년)로 끝났고, 대부분의 독일 국가들은 독일 연방 아래 느슨하게 통합되었다.
19세기 내내 프로이센은 계속해서 권력을 키워갔다. 1848년, 독일 혁명가들은 임시 프랑크푸르트 의회를 수립했지만, 통일된 독일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프로이센은 독일 국가들의 에르푸르트 연합을 제안했지만, 이 노력은 올뮤츠 협정(1850년)을 통해 오스트리아에 의해 좌절되었고, 독일 연방이 재건되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프로이센은 영향력을 확장했고, 독일 동맹국들과 함께 덴마크를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그리고 그 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고, 그 후 북독일 연방을 수립했다. 1871년, 프로이센 연합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제2 프랑스 제국을 결정적으로 물리치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알자스-로렌 지역을 병합했다. 파리를 함락한 후, 프로이센과 그 동맹국들은 통일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통일 이후 수년 동안 독일 사회는 산업화, 합리화, 세속화, 자본주의의 부상을 포함한 수많은 과정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했다. 독일의 국력은 상당히 증가했고, 많은 해외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독일 인구는 상당히 증가했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국가(주로 북미)로 이민을 가서 독일 디아스포라의 성장에 기여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전하고 해체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막대한 배상금과 극우·극좌 양측의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특히 바이에른 주에서는 독립론자인 구스타프 폰 카르가 중앙 정부의 대외 정책을 비난하며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무렵, 나치는 바이에른의 지방 정당에 불과했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대독일주의는 카르의 바이에른 민족주의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었다. 결국 뮌헨 폭동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독일 국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전간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부상하여 1933년 나치 독일 체제를 수립했다. 나치즘의 인종론 선구자인 한스 귄터는 독일인이 여러 유럽 인종의 혼혈이지만, 독일성의 본질은 북방인종의 피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나치는 독일인을 “종과 운명의 동질성에 근거하는” 민족 공동체로 정의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독일 시민권을 가진 독일인을 가리키는 라이히스도이체(Reichsdeutsche)와 구별되는 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1937년 이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외에 거주했던 독일계 및 그 혈통을 가진 인종 개념이었다.
나치 정권은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하여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이 민족주의보다 인종주의를 지향했으며, 이는 민족주의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인리히 힘러는 대게르만 제국을 꿈꾸었고, 아르투르 자이스-잉크바르트는 대게르만 제국이 독일 국민 국가 이념의 실현이 아니라 인종 전체를 위한 질서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분할되었으나, 1990년 서독 주도로 독일 재통일이 이루어져 독일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독일인 추방 이후 동유럽에서 독일인 인구는 급감했지만, 현재도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에서 소수 민족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독일인은 신구 독일 국가, 독일어, 그리고 혈통이라는 모호한 이미지의 총체로 불린다. 국가의 영역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국에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포함한 동일 언어, 동일 민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금발 벽안, 장신 등의 외모와 꼼꼼함이 전형적인 독일인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금발 비율이 남독일에서는 낮다.
3. 1. 고대
고대 게르만족은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 지역에 거주하던 프랑크족, 프리기아족, 작센족, 알레만니족, 투링기족, 바바리족 등 다양한 부족 집단이었다.[10] 이들은 50개 이상의 세력으로 나뉘어 독자적인 문자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기록은 주로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의 기록에 의존한다.[10]
기원전 1세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 라인 강 동쪽의 게르만족(''Germani'')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10]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당시 갈리아와 게르만 지역은 켈트의 라 테네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게르만어파는 기원전 2세기 이후 라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10] 현대 독일어는 철기 시대와 로마 시대에 퍼진 게르만어파의 후손으로, 학자들은 기원전 500년경 게르만어파가 존재했다고 추정한다.
로마 제국은 라인 강과 엘베 강 사이 지역을 정복하려 했으나, 서기 9년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에서 아르미니우스가 이끄는 게르만족 연합군에 패배했다.[10] 이는 독일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여겨진다.[10] 이후 로마는 게르마니아 지역을 직접 통치하는 대신 간접적으로 통제하며 병사를 모집하고 부족들을 대립시켰다.[10] 초기 게르만족은 1세기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에 더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3. 2. 중세
중세 시대, 독일 민족성은 10세기 오토 왕조가 프랑크 제국 동부에서 독일 왕국을 분리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10] 독일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정치 체제로 묶여 있었다.[10]
게르만족은 고대에 프랑크족, 프리기아족, 작센족, 알레만니족, 투링기족, 바바리족 등 다양한 부족 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라인강과 엘베강 사이에 살던 집단이 독일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10] 5세기 클로비스 1세를 시작으로 서프랑크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9세기 초 샤를마뉴의 통치 아래 프랑크 제국이 확장되어 카롤링거 제국이 건설되었다.[10] 샤를마뉴는 800년에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황제로 즉위했다.[10]
샤를마뉴 사후, 제국은 베르됭 조약(843년)에서 분할되었고, 동프랑크 왕국은 헨리 1세(작센 공작)부터 프랑크계가 아닌 왕조가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들 오토 1세 치하에서 대부분 독일인으로 구성된 동프랑크 왕국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핵심을 이루었다. 제국은 이탈리아 왕국, 부르고뉴 왕국, 로타링기아도 지배하였다.[10] 독일 국왕은 귀족 가문의 구성원들에 의해 선출되었는데, 그들은 종종 자신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약한 국왕을 선출하려고 했다. 이로 인해 독일의 초기 통일은 막혔다.
중세 독일 사회는 전사 귀족이 지배했고, 대부분의 독일 인구는 정치적 권리가 거의 없는 농민으로 구성되었다. 교회는 중세 독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권력을 놓고 귀족과 경쟁했다.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독일인들은 성지를 "해방"하기 위해 5차례의 십자군 원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10]
왕국 초창기부터 그 왕조들은 슬라브어 사용 지역으로 동쪽으로 진출했다. 북쪽의 작센 동부 변경지에서는 엘베 강 동쪽에 있는 폴라브 슬라브족이 수 세대에 걸쳐 정복당했다. 독일 인구는 11세기부터 동방식민운동으로 알려진 현상으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슬라브계와 독일어 사용 인구가 동화되었다. 12세기부터 많은 독일인들이 상인과 장인으로 폴란드 왕국에 정착하였다. 13세기에 튜턴 기사단은 프러시아 원주민을 정복하기 시작하여 결국 프러시아가 되었다.
오토 3세는 "너희들은 나의 로마인이 아닌가…나는 너희들을 위해 독일인도 삭손인도 버리고, 나의 피를 거절한 것이다"라고 각 민족의 대립의 심각성을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이때 사용된 "독일인"은 민족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단순히 "(독일 지역의) 민중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였다.
중세 후기에 독일 경제는 도시 중심지의 영향 아래 성장했고, 도시들은 한자 동맹과 슈바벤 동맹과 같은 강력한 동맹을 형성하여 자신의 이익을 보호했다. 이러한 도시 동맹은 독일 상업과 은행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한자 도시의 독일 상인들은 독일 영토 너머 북유럽 전역의 도시에 정착했다.
3. 3. 근대
프랑스 혁명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19세기 초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고, 독일 민족주의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 프로이센 왕국이 1871년 독일 제국을 주도적으로 형성하며 오스트리아 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독일인 국가를 제국의 영토로 편입시켜 독일 통일을 이루었다. 비슷한 시기 많은 독일인들이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큰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다.
18세기에 독일 문화는 계몽주의의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수세기 동안의 정치적 분열 끝에 18세기에 독일 통일 의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성 로마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완전히 해체될 때까지 쇠퇴를 거듭했다. 중앙 유럽에서 나폴레옹 전쟁은 중대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를 가져왔고, 독일인들 사이에서 민족적 각성을 촉진했다. 18세기 후반,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와 같은 독일 지식인들은 언어에 뿌리를 둔 독일 정체성의 개념을 명확히 밝혔고, 이러한 개념은 독일인들을 단일 국가로 통일하려는 독일 민족주의 운동을 촉발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결국 공통 조상, 문화, 언어(종교는 아님)가 독일 민족주의를 정의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빈 회의(1815년)로 끝났고, 대부분의 독일 국가들은 독일 연방 아래 느슨하게 통합되었다.
19세기 내내 프로이센은 계속해서 권력을 키워갔다. 1848년, 독일 혁명가들은 임시 프랑크푸르트 의회를 수립했지만, 통일된 독일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프로이센은 독일 국가들의 에르푸르트 연합을 제안했지만, 이 노력은 올뮤츠 협정(1850년)을 통해 오스트리아에 의해 좌절되었고, 독일 연방이 재건되었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프로이센은 영향력을 확장했고, 독일 동맹국들과 함께 덴마크를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에서, 그리고 그 후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에서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고, 그 후 북독일 연방을 수립했다. 1871년, 프로이센 연합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제2 프랑스 제국을 결정적으로 물리치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알자스-로렌 지역을 병합했다. 파리를 함락한 후, 프로이센과 그 동맹국들은 통일된 독일 제국의 성립을 선포했다.
통일 이후 수년 동안 독일 사회는 산업화, 합리화, 세속화, 자본주의의 부상을 포함한 수많은 과정에 의해 급격하게 변화했다. 독일의 국력은 상당히 증가했고, 많은 해외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이 기간 동안 독일 인구는 상당히 증가했고, 많은 사람들이 다른 국가(주로 북미)로 이민을 가서 독일 디아스포라의 성장에 기여했다.
3. 4. 현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전하고 해체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막대한 배상금과 극우·극좌 양측의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특히 바이에른 주에서는 독립론자인 구스타프 폰 카르가 중앙 정부의 대외 정책을 비난하며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무렵, 나치는 바이에른의 지방 정당에 불과했지만, 아돌프 히틀러의 대독일주의는 카르의 바이에른 민족주의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었다. 결국 뮌헨 폭동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독일 국민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전간기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가 부상하여 1933년 나치 독일 체제를 수립했다. 나치즘의 인종론 선구자인 한스 귄터는 독일인이 여러 유럽 인종의 혼혈이지만, 독일성의 본질은 북방인종의 피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했다. 나치는 독일인을 “종과 운명의 동질성에 근거하는” 민족 공동체로 정의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독일 시민권을 가진 독일인을 가리키는 라이히스도이체(Reichsdeutsche)와 구별되는 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1937년 이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외에 거주했던 독일계 및 그 혈통을 가진 인종 개념이었다.
나치 정권은 주변 국가들을 침략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하여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즘이 민족주의보다 인종주의를 지향했으며, 이는 민족주의와 대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인리히 힘러는 대게르만 제국을 꿈꾸었고, 아르투르 자이스-잉크바르트는 대게르만 제국이 독일 국민 국가 이념의 실현이 아니라 인종 전체를 위한 질서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분할되었으나, 1990년 서독 주도로 독일 재통일이 이루어져 독일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었다. 독일인 추방 이후 동유럽에서 독일인 인구는 급감했지만, 현재도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에서 소수 민족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독일인은 신구 독일 국가, 독일어, 그리고 혈통이라는 모호한 이미지의 총체로 불린다. 국가의 영역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국에서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포함한 동일 언어, 동일 민족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금발 벽안, 장신 등의 외모와 꼼꼼함이 전형적인 독일인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금발 비율이 남독일에서는 낮다.
4. 하위 민족
4. 1. 주요 하위 민족
5. 언어
독일어는 대부분의 독일인의 모국어이며, 독일 민족 정체성의 핵심 지표이다. 독일어는 서게르만어군에 속하며, 프리지아어파(특히 북프리지아어와 사테르프리지아어), 룩셈부르크어, 영어, 네덜란드어, 낮은 독일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표준 독일어는 상고독일어와 중부 독일어를 기반으로 한다.
[[File:https://cdn.onul.works/wiki/source/194c46976fc_ae9c93f9.svg|thumb|right|유럽의 독일어:
]]
낮은 독일어는 독일 북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이며, 역사적으로 독일 북부 대부분 지역의 언어였다.
원래 독일인들은 자신들을 "Teutsch"(토이치)라고 불렀는데, 이는 "민중(Volk)"을 의미한다. 하지만 남쪽의 고대 로마인들은 이 토이치인들을 "게르만인"이라고 불렀다.
일반적으로 "독일 민족"이라고 불리는, 독일어를 모어로 하는 게르만계 주민은 독일 외에도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국민의 대부분, 스위스 국민의 7할, 이탈리아의 남티롤 지역 주민, 벨기에 국민의 일부가 해당된다. 또한 룩셈부르크 국민, 프랑스 동부의 알자스와 로렌 주민도 기본적으로는 독일계이다. 18세기 이후 예카테리나 2세의 초청으로 러시아로 이주한 독일인(볼가 독일인)[19]도 많다.
"독일"의 정체성은 의식이나 역사의 측면에서 독일어, 독일 민족, 독일 국가라는 순서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독일 식민지 제국이 무너진 이후 독일어가 거의 독일 주변의 동족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세 가지의 유대는 강하다.
중앙 유럽이나 동유럽의 지명 중에는 "니엠츠키~ Německý-」「네메트~ Német-"라는 접두사를 가진 지명이 있는데,[20] 이는 "독일인의"라는 의미를 가진다.
러시아어에서는 "민족적 의미에서의 독일인"을 니미예츠키(немецкий)라고 부르고, "독일 국민(독일 국적을 가진 자)"을 길마니예츠(германец)라고 부른다. 또한 "독일어"는 니미예츠키 이즈익(Немецкий язык)이라고 부른다.
6. 문화
독일 문화는 지역적 다양성이 커서 단일하게 정의하기 어렵다. 예술과 과학은 수 세기 동안 독일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에 독일 문화는 크게 번영했으며,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프리드리히 실러,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프리드리히 횔덜린, E. T. A. 호프만, 하인리히 하이네, 노발리스, 그림 형제, 임마누엘 칸트, 칼 프리드리히 쉰켈,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루트비히 판 베토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요제프 하이든, 요하네스 브람스, 프란츠 슈베르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리하르트 바그너 등 많은 인물들이 예술과 과학에 크게 기여했다.
흑빵과 스튜는 인기 있는 독일 요리이다. 독일인들은 다른 유럽 사람들에 비해 알코올, 특히 맥주를 많이 소비하며, 비만은 비교적 널리 퍼져 있다.
카니발(독일어: ''Karneval'', ''Fasching'', 또는 ''Fastnacht'')은 특히 남부 독일과 라인란트에서 중요한 독일 문화의 일부이며, 옥토버페스트 또한 중요한 독일 축제이다.
독일인의 대다수는 기독교인으로, 약 3분의 1은 로마 가톨릭 신자, 3분의 1은 프로테스탄트 신자이며, 나머지 3분의 1은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과 같은 기독교 명절은 많은 독일인들이 축하한다. 무슬림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유대인 공동체도 주목할 만하지만, 홀로코스트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은 현대 독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6. 1. 개요
6. 2. 종교
독일인은 지역에 따라 천주교나 개신교를 믿는다. 과거에는 기독교인이 대다수였으나, 현재는 약 3분의 1만이 로마 가톨릭 신자이거나 프로테스탄트 신자이며, 나머지 3분의 1은 무종교이다. 현대에는 무종교도 증가하고 있다. 무슬림의 수는 증가하고 있으며, 유대인 공동체도 존재한다. 홀로코스트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은 유대인을 기억하는 것은 독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6. 3. 축제
카니발(Karneval, Fasching, Fastnacht)은 독일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며, 특히 남부 독일과 라인란트에서 중요하다. 중요한 독일 축제로는 옥토버페스트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과 같은 기독교 명절은 많은 독일인들이 축하한다.7. 정체성
독일 민족 정체성은 초기 중세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14] 독일어 자칭인 'Deutsche'는 '민족의' 또는 '사람들과 관련된'을 의미하는 고대 고지 독일어 'diutisc'에서 유래했다.[7] 이 용어는 적어도 8세기부터 중앙유럽의 서게르만어 사용자들에게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로 신성 로마 제국 내에 거주하는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독일 민족 정체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같은 용어의 변형은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어인 현재 영어로 네덜란드어라고 불리는 관련 방언에 대해서도 저지대에서 사용되었다.
독일 지역은 오랜 기간 동안 분권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 정체성이 존재했다.
18세기 후반, 독일 민족주의 운동이 등장하여 독일인들을 언어로 하나 된 민족으로 보고, 모든 독일인을 단일 국가로 통합하려 했다.[4]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독일 정체성은 공통된 혈통, 문화, 역사에 의해 정의되었다. 민족주의 요소들은 주목할 만한 유대인 소수 민족을 배제하고 "공유된 기독교 유산"과 "생물학적 본질"을 가진 독일성으로 확인했다.
나치즘은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독일인을 정의했으며, 홀로코스트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폴크스도이체(Volksdeutsche)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독일 시민권을 가진 독일인을 가리키는 라이히스도이체(Reichsdeutsche)와 달리, 1937년 이전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외에 거주했던 독일계 및 그 유연한 혈통을 가진 인종 개념이었다。독소전쟁 중에 실시된 동방 총체 계획이나 폴란드 총독부의 동방 식민 정책에는 이러한 “폴크스도이체”가 동원되었고,전후에는 독일인 추방의 고초를 겪었다.
동독과 서독은 모두 역사적 또는 이념적 맥락에서 정체성을 구축하려고 노력했으며, 나치 과거와 서로로부터 거리를 두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정치 담론은 "공유된 민족 문화적으로 정의된 독일성"이라는 개념을 특징으로 했다.
오늘날 독일성에 대한 논의는 다원주의, 독일 헌법(헌법 애국주의)에 대한 헌신 또는 ''Kulturnation''(공통 문화를 공유하는 국가)의 개념과 같은 다양한 측면을 강조할 수 있다.
독일어는 여전히 현대 독일 정체성의 주요 기준이다.[4] 독일 국적을 가진 사람(국민)에는 서슬라브어군 소르브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인 소르브인이나, 폴란드계, 덴마크계, 네덜란드계, 프랑스계 위그노의 후손, 유대인 등이 있으며, 국적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지만 터키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16]
"독일"의 정체성은 의식의 측면에서나 역사의 측면에서나, 먼저 독일어, 다음으로 이를 사용하는 독일 민족, 마지막으로 그것들을 통치하는 독일 국가라는 순서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8.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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