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지마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이 아내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건설한 건축물이다. 1632년부터 22년간 흰 대리석으로 건설되었으며, 묘의 건설과 장식은 1648년에, 주변 정원과 부속 건물은 1653년에 완공되었다. 타지마할 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제국의 재정이 악화되었으며,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아그라 성에 유폐되었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양식과 초기 무굴 양식이 혼합된 건축 양식을 가지며, 인도 이슬람과 무굴 제국 건축의 디자인 전통을 통합했다. 현재는 환경 오염으로 인해 훼손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타지마할은 인도와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건설 과정, 설계자, 힌두 사원설 등 다양한 논란이 존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타지마할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타지마할
타지마할
이름타지마할
로마자 표기Taj Mahal
힌디어 표기ताज महल
우르두어 표기تاج محل
페르시아어 표기تاج محل
의미궁전의 왕관
위치아그라, 우타르프라데시, 인도
높이73미터
면적17 헥타르
건설 기간1631년–1653년
건축가우스타드 아흐마드 라호리
건축 양식무굴 건축
건설 목적뭄타즈 마할을 위한 무덤
방문객 수484만 명
방문객 수 연도2022년 4월 ~ 2023년 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연도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준문화 (i)
관리 기관인도 문화부, 인도 정부
공식 웹사이트타지마할 공식 웹사이트
역사
건설 시기무굴 제국
추가 정보
문화적 중요성무굴 제국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
인도를 대표하는 건축물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
참고 항목타지마할 (동음이의)

2. 역사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타지마할을 건설했다.[8][9] 1632년부터 22년에 걸쳐 흰 대리석으로 건설되었으며, 묘와 장식 작업은 1648년에, 주변 정원과 부속 건물들은 1653년에 완공되었다.[9]

타지마할 건설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제국의 재정이 악화되었고, 과도한 세금과 수탈로 민심이 나빠졌다. 샤 자한이 나이가 들어 정무에 소홀해지자, 아들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샤 자한을 아그라 성에 가두었다. 샤 자한은 죽을 때까지 아그라 성 창문으로 타지마할을 바라보다가, 사후 타지마할 내 뭄타즈 마할의 무덤 옆에 묻혔다.

2. 1. 건설 배경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사망한 아내 뭄타즈 마할을 위해 타지마할을 건설하였다.[8][9] 평소 아내를 극진히 사랑했던 샤 자한은 그녀를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기로 계획하였다.

1632년부터 22년에 걸쳐 흰 대리석으로 타지마할을 건설하였는데, 묘의 건설과 장식 작업은 1648년에 끝났으나, 주변 정원과 부속 건물들은 5년 후인 1653년에 완공되었다.[9] 샤 자한의 궁정 문서에는 뭄타즈 마할 사망 후 샤 자한의 슬픔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타지마할의 영감으로 여겨지는 사랑 이야기를 보여준다.[10]

타지마할 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 제국의 재정이 휘청거렸고, 과도한 세금과 수탈로 민심이 악화되었다. 샤 자한이 나이가 들어 정무에 무관심해지자, 아들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샤 자한을 아그라 성에 감금했다. 샤 자한은 죽을 때까지 아그라 성 창문으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살았고, 사후 타지마할 내 뭄타즈 마할의 무덤 옆에 묻혔다.

타지마할 건설지는 아그라 성채에서 야무나 강을 따라 동쪽으로 약 1km 하류, 강이 굽어지는 바깥쪽이 선택되었다.[60] 이곳은 당시 라자 자이 싱(Raja Jai Singh)이 소유한 정원이었다.[60]

장소가 선택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60]

  • 무굴 제국의 전통에서는 묘는 정원 안에 있어야 한다고 여겨졌다.
  • 야무나 강이 굽어지는 이곳에 건설하면 건물의 모습이 강물에 비치어 대칭의 시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되었다.
  • 강이 굽어지는 바깥쪽은 그만큼 견고한 지반이 기대되었다.


힌두교도는 시체를 화장하고 유골을 강에 흘려보내지만, 영혼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이슬람교도는 무덤을 만든다. 무굴 제국 황제는 큰 능묘를 갖추었지만, 이는 전제군주의 권세를 보여주는 목적이 있었다.[61]

타지마할 착공 당시, 샤 자한은 힌두교를 억압하는 명령을 내리는 등 이슬람 국가 건설에 착수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타지마할은 이슬람교도의 정신적 중심으로 구상되었다. 뭄타즈 마할을 성인으로 여기는 근저에는 이슬람 사회가 여성에게 남편에 대한 사랑과 자녀를 낳는 것을 요구하며, 산욕으로 인한 죽음은 남성이 성전에서 죽는 것과 동의어로 여기는 모성 신앙이 있다.[66]

이러한 의미에 맞추어 타지마할은 순례자를 받아들이는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방문 중 메카로 예배하기 위한 모스크, 식사와 숙박을 위한 집회소, 순례자의 차량 주차장, 그리고 외부 시장도 이 기능을 보조했다.[66]

2. 2. 샤 자한의 유폐와 죽음

샤 자한은 아우랑제브가 일으킨 반란으로 폐위되어 아그라 성에 감금되었다.[9] 샤 자한은 아그라 성의 창문을 통해서만 멀리서 타지마할을 바라볼 수 있었으며, 죽을 때까지 그곳에 갇혀 지냈다.[9] 1666년 샤 자한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유해는 타지마할 안에 있는 뭄타즈 마할의 무덤 옆에 안치되었다.[9]
샤 자한(왼쪽)과 뭄타즈 마할(오른쪽)의 묘비


야사에서는 샤 자한이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자신의 무덤을 검은색 대리석으로 똑같이 만들라고 지시했다가 반란으로 인해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인도 학계에서는 이를 근거 없는 낭설로 보고 있다.[9] 이 이야기는 1665년 아그라를 방문했던 유럽 여행가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르가 자신의 소설에 '검은 타지마할'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9]

무굴 제국에서는 황자들 사이에 왕위 다툼이 격렬하여 "왕관 아니면 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샤 자한도 예외는 아니었고, 왕위 계승권을 가진 모든 친족 남성들을 죽이고 황제 자리에 올랐다.[67]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 사이의 아들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었고, 1657년 샤 자한이 중병에 걸리자 네 아들이 왕위를 놓고 다투었다. 샤 자한은 첫째 아들 다라 시코를 후계자로 삼으려 했으나,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던 셋째 아들 아우랑제브는 이를 배신으로 여겼다.[68]

16세부터 전장에 참여하여 용맹함과 야망을 키워 온 아우랑제브는 1658년 반란을 일으켜 형의 군대를 물리치고 아버지를 아그라 성채에 유폐시킨 후 황제 자리에 올랐다. 유폐된 샤 자한은 1666년 1월 22일에 사망했고, 다음 날 타지마할에 안치되었다.[68] 대칭성을 중시하는 이슬람 건축에서 이와 같은 부부 묘비의 배열은 아우랑제브가 아버지를 얼마나 미워했는지를 보여준다.[68]

2. 3. 전쟁 시기의 타지마할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은 일본 제국 공군이 타지마할을 공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타지마할 무덤 본관에 가림막을 쳤다.[30] 1965년1971년인도-파키스탄 전쟁 때에도 파키스탄 공군의 공습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하여 타지마할에 천을 덮어 위장했다.[32] 이 위장은 중앙 돔 외벽에 박힌 갈고리를 이용해 쉽게 할 수 있었다.[83]

1942년 방공용 비계

2. 4. 환경 오염과 보존 노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를 통치하던 영국은 일본 제국 공군이 타지마할을 공습하는 것을 막기 위해 타지마할 무덤 본관에 가림막을 쳤다.[30] 1965년과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에도 파키스탄 공군 비행사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 타지마할에 가림막을 다시 설치했다.[32]

타지마할은 현재 야무나강에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과 주변 석유 정제 시설에서 발생하는 산성비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다.[33][34] 이 환경오염으로 인해 타지마할의 백색 대리석이 점차 황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타지마할 주변 10400km2 지역에 엄격한 배출 기준을 적용하는 "타지 사각지대(TTZ)"를 설치하여 오염물질을 통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35][36]

타지마할은 환경 오염뿐만 아니라 야무나강의 수위 하강으로 인해 위험한 상태이다. 야무나강의 수면은 매년 약 1.5m씩 낮아지고 있는데, 이로 인해 2010년 타지마할 기초 부분에 균열이 생겼고,[37] 타지마할 주변의 미나레트들이 점차 기울어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또한 무덤을 지탱하던 목조 골재들이 물이 빠져나가고 공기와 접촉하면서 썩기 시작하여 무덤의 침하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2018년 4월 11일, 부속 건물들에 서있는 소규모 미나레트 2개가 태풍으로 인해 훼손되었다.[38] 2020년대 인도 정부는 흰색을 되살리기 위해 진흙 팩을 붙이고 부러진 대리석을 교체하는 등 다양한 복원 조치를 취했다.[40][41][42]

인도의 경제 성장과 함께 대기오염이 심각해지면서 타지마할의 손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배기가스에 의한 직접적인 오염 외에도 산성비로 인해 대리석이 용해되는 현상 등이 보고되고 있다. 정부는 주변 지역에서 석탄 사용 금지[79] 및 주차장에서 타지마할까지의 이동 수단을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 자동차로 제한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흰색 대리석의 황변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2018년부터 인도 국민의 입장객 수를 하루 4만 명으로 제한했으나, 이후에도 오염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18년 5월 2일 인도 대법원은 인도 정부의 타지마할 보호 소홀을 강하게 비난했다.[81] 같은 해 4월 12일에는 돌풍으로 인해 입구의 문 첨탑 2개가 붕괴되었다.[82]

3. 건축

타지마할의 건축에는 페르시아 양식과 초기 무굴 제국 양식이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티무르 제국 시대의 건축 양식을 따랐는데, 특히 사마르칸트에 있는 티무르의 무덤인 구르-에 아미르와 비슷하다. 초기 무굴 양식 건물들은 주로 붉은 사암으로 지어졌으나,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순백색의 대리석과 보석으로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러한 샤 자한의 독특한 취향으로 인해 무굴 제국의 건축은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타지마할의 중심에는 거대한 백색 대리석의 묘가 사각형 대리석 토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완벽한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었으며, 전통적인 페르시아 양식의 아치형 입구인 이완(Iwan)을 돔이 덮고 있다. 무굴 제국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타지마할의 기본 구조는 페르시아 양식을 따랐다. 중심부의 무덤은 거대한 사각 기둥 구조로, 내부에 여러 방이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무덤 본 건물 옆에는 총 4개의 미나레트가 있다. 본관 안에 있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관은 가짜 무덤이고, 진짜 무덤은 아래층에 있다.

타지마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돔이다. 돔은 약 35m 높이이며, 7m 높이의 원통형 기초대 위에 있어 더 높아 보인다. 중간이 볼록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유선형인 독특한 형태로 인해 '양파 돔' 또는 '구아바 돔'이라고 불린다. 돔 꼭대기에는 연꽃 무늬가 있다. 주 돔 주위에는 4개의 보조 돔이 있으며, 모두 같은 양파형 돔 모양이다. 4개의 보조 돔은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아래 바닥이 뚫려 있어 빛이 기둥 사이를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온다. 돔 꼭대기에는 힌두교페르시아 양식이 혼합된 첨탑이 있다. 원래 주 돔의 첨탑은 순금이었으나, 19세기에 청동으로 교체되었다. 첨탑 꼭대기에는 이슬람교의 상징인 초승달이 있다.

주위 4개의 미나레트는 각각 40m 높이이며,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미나레트는 무에진이 기도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각 미나레트는 2개의 발코니로 3개 층으로 나뉘며, 꼭대기에는 무덤 본관과 유사한 차트리(인도 전통 건축 양식)가 있다. 미나레트는 모두 같은 모습이며, 맨 위에는 연꽃 무늬와 초승달 모양 구리 장식이 있다. 미나레트는 바깥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무너질 경우 무덤 본관이 파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타지마할 외부 장식에는 무굴 제국의 예술적 요소들이 집약되어 있다. 대부분 치장 벽토, 물감, 석조 장식,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사람 형상은 사용되지 않았고, 꾸란 구절을 아랍어로 쓴 서예(캘리그라피), 식물 문양, 추상적인 형태가 주를 이룬다. 타지마할 대문 위 구절은 ''"오 영혼이여, 예술을 통해 평안을 얻으라, 주님께 돌아가 안식을 얻으라, 그리고 그분과 함께 평화를 얻으리라"''라는 뜻이다. 이 장식은 1609년 압둘 하크가 만들었으며, 샤 자한은 그에게 '아마나트 칸'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내부 돔 기단부에는 "이 것을 만든 공허한 자, 아마나트 칸 시라즈"라고 적혀있다. 대부분의 캘리그라피 작품은 백색 대리석에 벽옥이나 검은 대리석을 채워 만들었다. 글씨체는 위로 갈수록 미묘하게 커지는데,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안 보이는 현상을 막기 위함이다. 타지마할 내부 관에 새겨진 캘리그라피는 특히 아름답다.

추상적인 장식은 주로 미나레트, 복도, 모스크, 무덤 표면에 사용되었다. 붉은 사암 건물에는 백색, 백색 대리석 건물에는 어둡거나 검은색 계통의 장식을 사용했다. 조각이 불가능한 부분은 선명한 색으로 칠하거나 치장하여 기하학적,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바닥과 복도는 대비되는 타일과 모자이크로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다. 무덤 하부 벽에는 꽃과 덩굴을 묘사한 백색 대리석 부조가 새겨져 있다. 부조의 입체감을 위해 모든 대리석 장식은 깔끔하게 손질되었고, 벽과 아치 상부에는 정교한 덩굴무늬, 꽃무늬, 과일 무늬가 장식되었다. 이 장식들은 백색 대리석을 파낸 후 황색 대리석, 벽옥, 옥 등을 채워 넣어 만들었다.

3. 1. 건축 양식

타지마할의 건축은 주로 페르시아 양식과 초기 무굴 제국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전체적인 구조는 티무르 제국 시대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특히 사마르칸트에 있는 티무르의 무덤인 구르-에 아미르와 상당히 유사하다. 본래 초기 무굴 양식의 건물들은 주로 붉은 빛 사암으로 지어졌지만, 샤 자한은 타지마할을 완전히 순백색의 대리석과 보석들만을 이용해서 만들 것을 지시하였다. 이러한 샤 자한의 독특한 취향 때문에, 무굴 제국의 건축물들은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새로운 방향으로 크게 발전하게 된다.[11]

타지마할 건축물은 얌무나 강 기슭의 플랫폼 위에 위치해 있다.


타지마할은 인도 이슬람과 무굴 제국 건축의 디자인 전통을 통합하고 확장한 것이다. 건물에 대한 영감은 티무르무굴 건축물, 특히 사마르칸트의 구르-에 아미르(무굴 왕조의 시조인 티무르의 묘)와 델리의 후마윤의 무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부지의 차르바그 정원과 팔각정 계획에 영감을 주었다. 이 건축물 단지는 다양한 형태와 상징을 사용한 대칭적인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묘소는 반귀석을 박은 흰색 대리석으로 건축된 반면, 당시 무굴 시대 건물들과 유사하게 단지 내 다른 건물에는 붉은 사암이 사용되었다. 전체 단지는 길이 300m에 높이 약 8.69m인 플랫폼 위에 얌무나 강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플랫폼은 짙고 옅은 색의 사암으로 다양한 패턴을 만들어 건축되었다.[15]

타지마할 단지는 야무나 강 쪽을 제외한 삼면이 붉은 사암으로 된 탑 모양의 난간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지 벽 밖에는 샤 자한의 다른 아내들, 왕족들, 그리고 총애받는 하인들을 위한 다른 묘소들이 있다. 벽의 안쪽에는 돔 모양의 챗리스와 음악당과 같은 작은 구조물들이 섞여 있는 힌두 사원의 전형적인 기둥이 있는 아케이드가 특징이다. 주로 대리석으로 지어진 주요 관문은 묘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며 낮은 부조와 피에트라 두라 상감 세공과 같은 정교한 장식을 통합하고 있다. 단지의 멀리 끝에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두 개의 유사한 건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모스크로, 다른 하나는 건축적 대칭을 제공하는 구조물인 ''자와브''로 지정되어 있다. 모스크의 디자인은 당시 지어진 다른 모스크와 유사하며, 자와브는 미흐랍이 없이 상감 패턴이 있는 바닥을 가지고 있다.[9]

타지마할은 남북 560m, 동서 303m의 직사각형 부지에 있다. 남쪽 끝 약 1/4는 전정이며, 그 북쪽 끝에 있는 대문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정원은 한 변이 296m인 정사각형으로, 수로산책로에 의해 동서남북 각각 2등분되고, 다시 각각 4개의 정사각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 북쪽에는 부지의 약 1/4를 차지하는 기단 위에, 묘당을 중심으로 서쪽에 모스크, 동쪽에 집회장이 있다.[60]

남쪽 대문은 달와자(ダルワーザー), 무갈식 사분정원은 바기차(バギーチャー), 서쪽 모스크는 마스지드(マスジド), 동쪽 접견시설은 미프만 카나(ミフマーン・カーナー)(자마트 카나[60]), 그리고 높이 42m의 4개의 첨탑(미나렛)을 거느린 묘는 영묘라고 한다.

타지마할의 기본 설계는 무굴 제국의 묘 방식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후마윤의 묘나 악바르의 묘와는 다른 점도 있다. 이들은 정사각형 정원의 중앙에 묘당이 있으며, 사방 어느 문으로 들어가도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도록 설계되어 있다.[62] 반면 직사각형 구조와 묘를 북쪽 끝에 배치한 타지마할은 이러한 예를 따르지 않는다.[60] 또한, 부지 내에 모스크를 갖는 것도 독특하다.[60]

3. 2. 모덤 (The Tomb)

타지마할의 중심에는 거대한 백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모덤(The Tomb)이 있다. 이 모덤은 사각형 대리석 토대 위에 지어져 있으며, 완벽한 대칭을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전통적인 페르시아 양식의 아치형 입구인 이완(Iwan)을 덮고 있는 돔이 특징적이다. 무굴 제국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타지마할의 기본적인 구조는 페르시아 양식을 따랐다.

중심부의 무덤은 거대한 사각 기둥 구조로, 내부에 여러 방이 있다.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어 조형미와 대칭미를 자랑한다. 무덤 본 건물 옆에는 총 4개의 미나레트가 있다. 본관 안에 있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관은 가짜 무덤이고, 진짜 무덤은 아래층에 있다.

건물 외부 표면은 페인트, 회반죽, 돌 상감, 조각 등을 통해 만들어진 섬세한 부조 예술로 장식되어 있으며, 다양한 귀금속과 준귀금속이 사용되었다.[12] 이슬람교의 금기에 따라 인간 형상은 사용되지 않았고, 서예, 추상 형태, 식물 모티프 등이 장식 요소로 활용되었다. 흰색 대리석 대리석판은 자연과 식물 기반 요소의 장식적인 저부조 묘사로 구성된다. 대리석은 조각의 정교한 디테일을 강조하기 위해 광택 처리되었으며, 프레임과 아치형 스팬드럴은 포도나무, 꽃, 과일의 양식화된 기하학적 패턴으로 피에트라 두라 상감 장식으로 장식되어 있다.[17]

벽의 식물 모티프


사암 건물의 돔과 궁륭은 정교한 기하학적 형태를 만들기 위해 새김 그림의 트레이서리로 작업되었다. 헤링본 상감은 인접한 요소 사이의 공간을 정의한다. 흰색 상감은 사암 건물에, 어두운색 또는 검은색 상감은 흰색 대리석에 사용되었다.[9] 대조적인 색상은 건물의 회반죽 처리된 부분에 걸쳐 복잡하고 다양한 기하학적 패턴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바닥과 보도는 대조적인 색상의 타일이나 블록으로 깔려 있으며, 다양한 테셀레이션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은 네 개의 뾰족한 별 모양의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8각형 흰색 대리석 조각의 맞물리는 패턴으로 주 플랫폼의 포장된 표면과 구분된다. 건물에는 맞물리는 육각형 패턴의 많은 격자 창문 또는 ''자리''가 있다.[15]

관문 아치는 아랍어 서예구절이 있는 코란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예는 흰색 대리석 패널에 상감된 자스퍼 또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술루스 필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래에서 볼 때 비틀어 보이는 효과를 줄이기 위해 더 높은 패널에는 약간 더 큰 글씨체로 작성되어 있다.[17] 남쪽 문에 있는 서예는 "오 영혼이여, 너는 안식을 얻었다. 너의 주님께 평화롭게 돌아가라, 그리고 그분도 너와 평화로울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건물의 서예는 1609년 샤 자한에 의해 "아마나트 칸"이라는 칭호를 받은 압둘 하크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16][17] 내부 돔의 바닥에는 "하찮은 존재, 아마나트 칸 시라지가 썼다"라는 비문이 있다.[18]

웅장한 피시탁, 자리 창문, 그리고 서예를 보여주는 남쪽 정면


타지마할 단지는 야무나 강 쪽을 제외한 삼면이 붉은 사암으로 된 탑 모양의 난간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지 벽 밖에는 샤 자한의 다른 아내들, 왕족들, 그리고 총애받는 하인들을 위한 다른 묘소들이 있다. 벽 안쪽에는 돔 모양의 챗리스와 음악당 같은 작은 구조물들이 섞여 있는 힌두 사원의 전형적인 기둥이 있는 아케이드가 특징이다. 주로 대리석으로 지어진 주요 관문은 묘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며 낮은 부조와 피에트라 두라 상감 세공과 같은 정교한 장식을 통합하고 있다. 단지 끝에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두 개의 유사한 건물이 있는데, 하나는 모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건축적 대칭을 제공하는 구조물인 ''자와브''이다. 모스크 디자인은 당시 지어진 다른 모스크와 유사하며, 자와브는 미흐랍이 없이 상감 패턴이 있는 바닥을 가지고 있다.[9]

중앙의 팔각형 홀에는 흰색 대리석에 코란 구절과 초목의 연속 문양이 장식된 칸막이가 뭄타즈 마할의 묘비를 둘러싸고 있다. 그 옆(정원에서 들어가면 왼쪽)에는 샤 자한의 묘비가 있다. 중앙 홀을 둘러싼 네 귀퉁이에는 원래 친족을 안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팔각형의 작은 방이 네 개 있지만, 통로는 모두 막혀 있고 실제로 다른 누구의 묘소로도 사용되지 않았다.[60]

타지마할 능묘에는 지하실이 있다. 정원 쪽 입구 옆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기단 내부에 만들어진 현실이 나오는데, 바닥은 정원과 같은 높이다. 여기에는 홀 바로 아래에 뭄타즈 마할의 진짜 묘비가 안치되어 있고, 그 옆에는 샤 자한의 진짜 묘비도 있다. 홀의 묘비는 상징적인 참배용이다. 지하실은 닫혀 있었지만, 현재는 관광객을 위해 공개되고 있다.[60][64]

3. 2. 1. 돔

타지마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 요소는 바로 돔이다. 이 돔은 거의 35m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7m 높이의 원통형 기초대 위에 세워져 있어 더욱 높아 보인다. 중간이 볼록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유선형으로 휘어지는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기에, '양파 돔' 혹은 '구아바 돔'이라고 불린다. 돔 꼭대기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어 그 모습을 더더욱 유려하게 보이게 한다.

주 돔 주위에는 4개의 보조 돔이 있는데, 모두 똑같은 양파형 돔 모습을 띠고 있다. 4개의 보조 돔은 기둥으로 받쳐지고 있으며, 보조 돔 아래 바닥이 뚫려 있어 빛이 이 기둥들 사이를 통과하여 타지마할 내부로 비출 수 있게 하였다. 돔 맨 꼭대기에는 힌두 양식과 페르시아 양식이 혼합된 길쭉한 첨탑이 있다.

원래 주 돔의 첨탑은 순금으로 만들어졌으나, 19세기 들어 청동으로 교체되었다. 첨탑 맨 꼭대기에는 이슬람의 상징인 휘어진 초승달이 있다.

주 돔 주위에는 네 개의 작은 돔 또는 ''차트리''가 모서리에 배치되어 있으며, 주 돔의 양파 모양을 재현한다. 작은 돔은 주 구조물 상단에 서 있는 기둥에 의해 지지되며 건물 내부에 빛을 들여온다. '굴다스타'라고 불리는 키 큰 첨탑은 벽 가장자리에서 뻗어나와 장식 요소 역할을 한다. 주 돔과 작은 돔은 연꽃을 닮은 디자인으로 장식되어 있다.[15] 돔은 페르시아와 인도 디자인 요소를 사용한 장식적인 꼭대기 장식으로 마무리된다. 주 꼭대기 장식은 원래 금으로 만들어졌지만 19세기 초에 금박을 입힌 청동으로 만든 복제품으로 교체되었다.[15] 꼭대기 장식에는 뿔이 하늘을 향한 전형적인 이슬람 모티프인 달이 얹혀 있다.

능묘는 가로와 세로 모두 57m의 정사각형을 기본으로, 네 귀퉁이를 잘라낸 변형 팔각형이다. 높이는 둥근 지붕 상단까지 58m이며, 그 위에 놓인 정상 장식의 길이를 더하면 더 높아진다. 이러한 비율은 타지마할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위용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다.

능묘


가장 윗부분에는 무굴 건축 양식인 초승달과 물병을 겹쳐 장식한 정상 장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연결하는 부분에는 연꽃잎을 본뜬 장식인 파드마코사가 있다. 건물 본래 높이 약 23m에서 들어 올리기 위해 긴 원통이 아래에 놓여 있으며, 총 무게는 12000ton에 달한다. 이 무게는 내부에 있는 팔각형의 돌쌓기 기둥이 지탱하고 있으며, 엇갈림이나 기울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쐐기로 고정되어 있다.[60]

건물 지붕에는 둥근 지붕을 둘러싼 네 귀퉁이에 작은 둥근 지붕을 가진 작은 탑(차하트리)이 배치되어 있다. 건물 정면을 포함한 네 면에는 큰 아치형 장식문이 있으며, 그 양옆과 잘린 네 귀퉁이에는 각각 상하 2단의 작은 아치형 장식창이 있다. 또한 팔각형 건물의 각 모서리와 장식문 양 끝에는 장식 기둥이 있으며, 끝은 건물 위로 뻗어 있다. 장식문과 창문은 의도적으로 깊이 있는 공간감을 갖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태양의 빛이 만들어내는 진한 그림자가 건물의 미묘한 표정을 연출한다.[60]

능묘 내부로 들어가면 둥근 천장은 24m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중 껍질 돔이라는 형식으로, 외부에서 보이는 둥근 지붕과 내부 천장 사이에 공간이 있어 외부에서 보는 디자인과 실내 공간의 균형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형식이다. 이러한 설계는 16세기 서아시아에서 고안되었다.

3. 2. 2. 미나레트

첨탑의 모습


타지마할의 첨탑은 "황후를 시중드는 네 명의 시녀"에 비유된다. 하지만 그 형태는 등대와 작은 발코니를 갖춘 것에 불과할 정도로 단순하여,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건축물 중 하나"라고까지 묘사했다. 하지만 이들은 주역인 묘당을 더욱 돋보이게 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시각적인 균형에 기여한다.[60]

타지마할 주위 4개의 미나레트는 각각 40m의 높이이며,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이 미나레트들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 곳에서 이슬람교의 무에진들이 소리로 무슬림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알려주었다. 각각의 미나레트는 2개의 발코니로 인해 총 3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3개의 층들은 미나레트를 모두 정확하게 삼등분하고 있다. 미나레트의 꼭대기에는 무덤 본관에 있는 것과 유사한 차트리(인도의 전통 건축 양식)가 위에 올라가 있다. 미나레트는 모두 정확하게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맨 위에는 연꽃 무늬와 함께 초승달 모양의 구리 장식물이 장식되어 있다. 미나레트는 모두 바깥쪽으로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는데, 이는 미나레트가 혹시 무너질 경우를 대비하여 무덤 쪽으로 무너져 무덤 본관마저 파손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네 개의 첨탑이 관 건물을 둘러싸고 있으며, 각각 기단의 모서리에 하나씩, 모서리 깎기 처리된 모서리를 향하고 있다. 각각 약 39.62m가 넘는 높이의 네 개의 첨탑은 주 건물의 모서리 깎기 처리된 모서리를 향한 모서리에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각 첨탑은 발코니가 있는 세 부분으로 거의 동일하게 구성되어 있다. 탑은 또한 더 작은 차트리로 마무리되며 주 돔과 동일한 디자인 요소를 통합한다.[15] 계단이 탑 꼭대기로 이어지며 돔 아래의 직사각형 개구부는 꼭대기에 빛과 공기를 제공한다. 첨탑은 전통적인 모스크 요소와 유사하게 설계되었으며, 무에진이 기도를 부르는 데 사용한다. 첨탑은 기단의 바깥쪽으로 약간 기울어지게 건설되어 붕괴될 경우 탑의 재료가 묘지에서 멀리 떨어지도록 설계되었다.[15]

3. 3. 외부 장식

타지마할의 외부 장식은 무굴 제국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장식은 치장 벽토, 물감, 석조 장식,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슬람 율법은 사람 형상 묘사를 금지하므로, 타지마할의 장식은 꾸란 구절을 아랍어로 쓴 서예(캘리그라피), 식물 문양, 추상적인 형태로 구성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인도의 예술가 아마나트 칸이 문구를 직접 선택했다고 한다.

타지마할 대문 위의 구절은 ''"오 영혼이여, 예술을 통해 평안을 얻으라, 주님께 돌아가 안식을 얻으라, 그리고 그분과 함께 평화를 얻으리라"''라는 뜻이다. 이 장식은 1609년 압둘 하크라는 서예가가 만들었으며, 샤 자한은 그의 작품에 감탄하여 '아마나트 칸'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내부 돔 기단부에는 "이 것을 만든 공허한 자, 아마나트 칸 시라즈"라고 적혀있다. 대부분의 캘리그라피 작품은 백색 대리석에 벽옥이나 검은 대리석을 채워 넣어 만들었다. 글씨체는 위로 갈수록 미묘하게 커지는데, 이는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글씨가 안 보이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타지마할 내부 관에 새겨진 캘리그라피는 특히 아름다움으로 인해 백미(白眉)로 꼽힌다.

추상적인 장식은 주로 타지마할의 미나레트(첨탑), 복도, 모스크, 무덤 표면에 사용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진 부속 건물들은 매끈한 기하학적 형태를 위해 암석을 광택 내어 만들었다. 붉은 사암 건물에는 주로 백색, 백색 대리석 건물에는 어둡거나 검은색 계통의 장식을 사용했다. 조각이 불가능한 부분은 선명한 색으로 칠하거나 치장하여 기하학적, 건축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바닥과 복도는 대비되는 타일과 모자이크를 활용하여 다양한 무늬를 만들었다.

무덤 하부 벽에는 꽃과 덩굴을 묘사한 백색 대리석 부조가 새겨져 있다. 부조의 입체감을 위해 모든 대리석 장식은 깔끔하게 손질되었고, 벽과 아치 상부에는 정교한 덩굴무늬, 꽃무늬, 과일 무늬가 장식되었다. 이 장식들은 백색 대리석을 파낸 후 황색 대리석, 벽옥, 옥 등을 채워 넣어 만들었다.

타지마할 타일 무늬


8각형의 주 구조물은 큰 아치형 출입구와 첨탑을 갖추고 있으며 정사각형의 기단 위에 서 있다.


3. 4. 내부 장식

타지마할의 내부 장식은 전통적인 무굴 양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외부 장식은 주로 돌을 이용했지만, 내부 장식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채워져 있다.[12] 타지마할 본관 내부는 8면에 출입구가 있는 팔각형 모양이지만, 현재는 정원 쪽 남쪽 문만 사용 가능하다. 내부는 25m 높이의 천장을 가지고 있으며, 천장에는 태양을 모티브로 한 돔이 추가로 있다. 1층에는 8개의 아치가 있고, 이 아치들은 2층 아치를 떠받치는 구조이다. 2층 아치는 발코니를 형성하며, 대리석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창문이 있어 예술적 가치가 높다. 이 창문은 8개의 얇은 대리석 판을 파내어 합쳐 만든 것이다. 발코니와 천장에서 태양빛이 들어와 무덤 내부를 밝힌다. 타지마할 내부의 방들은 세밀한 부조로 장식되어 있으며, 덩굴 모양과 꽃무늬가 보석으로 정밀하게 세공되어 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창문


타지마할의 바닥


이슬람 전통은 관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래서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관은 타지마할 자체보다 단순한 장식을 갖고 있다. 시신은 얼굴이 오른쪽(이슬람 성소인 메카 방향)으로 돌려진 채 관 속에 안장되었다. 뭄타즈 마할의 관은 가로 1.5m, 세로 2.5m의 대리석 받침대 위에 있으며, 타지마할 정중앙에 있다. 받침대와 관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장식되어 있고, 받침대의 캘리그래피는 뭄타즈 마할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샤 자한의 관은 뭄타즈 마할 관 서쪽에 있으며, 타지마할에서 유일하게 대칭 구조를 띠지 않는다. 이는 샤 자한이 자신이 뭄타즈 마할 옆에 묻힐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샤 자한의 관은 뭄타즈 마할의 관보다 크고 높은 받침대 위에 있지만, 장식 내용과 형식은 유사하다.

주요 내부 석실은 8각형이며, 각 면에서 출입이 가능하다. 정원이 있는 남쪽 정문이 주로 사용된다. 외벽과 마찬가지로 벽면에는 두 층의 8개 ''피슈탁'' 아치가 있다. 위쪽 중앙 4개 아치는 발코니나 전망대를 형성하며, 각 발코니 외창에는 정교한 ''자리''가 있다. 내벽은 ''자리'' 격자가 설치된 축을 따라 열려 있어 외부 빛이 들어온다.[19] 남쪽을 제외한 세 면에는 장식된 천장으로 덮인 두 개의 정사각형 방으로 둘러싸인 긴 방이 있다. 중앙 방에는 세 면에 유리창이 있는 ''자리''가 설치된 아치형 개구부와 중앙 ''자리''에 작은 직사각형 창문이 있다.[19] 별도 문으로 들어가는 정사각형 방은 방문객과 꾸란 암송자가 휴식하는 장소였을 가능성이 높다. 1층에서 옥상으로 계단이 이어지며, 옥상에는 중앙 홀과 남쪽 두 모퉁이 방 사이에 환기구 시스템이 있는 복도가 있다.[15]

내벽은 높이 약 25m이며, 태양 모티브로 장식된 "가짜" 내부 돔으로 덮여 있다. 상감 세공은 귀금속과 준보석을 사용한다. 각 석실 벽은 저부조, 정교한 보석 상감 세공, 세련된 서예 패널로 장식되어 있다. 주 석실에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가짜 석관이 있고, 실제 석관은 지하에 있다.[13] 구멍이 뚫린 대리석 ''자리''(''마흐자르-이 무샤바크'')는 가묘를 둘러싸고 있으며, 정교한 피어스 작업으로 조각된 8개 대리석 패널로 만들어졌고,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상감 세공되어 있다. 가묘는 원래 1633년 뭄타즈 마할 사망 2주년을 기념하여 금 격자로 덮여 있었으나, 1643년 대리석 격자로 교체되었다.[19]

상층 주 석실 격자 안에는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의 묘 모형이 있고, 실제 매장은 아래층 묘실에 있다. 남쪽 주 출입구 방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하층 묘실은 직사각형이며 대리석 벽과 장식 없는 돔형 천장을 가지고 있다.[19] 뭄타즈의 가묘는 1.5by 대리석 기단 위 석실 정중앙에 있다. 샤 자한의 가묘는 비대칭 배열로 서쪽에 더 큰 기단 위에 있다. 꼭대기에는 전통적인 작은 펜 상자가 남성 묘임을 나타낸다. 가묘는 남북 정렬, 머리는 북쪽, 시신은 옆으로 뉘어져 서쪽(메카 방향)이다.[19]

묘의 대리석 가묘에 새겨진 서예는 정교하고 섬세하다. 가묘는 무굴 시대 가묘와 유사하지만, 이 시대 다른 묘에는 이처럼 정교한 장식이 없었다.[20] 뭄타즈 석관 꼭대기 장식은 자두 열매, 봉오리, 꽃 모양이며, 꾸란 비문이 상감되어 있다. 비문에는 "1631년에 사망한 뭄타즈 마할이라는 칭호를 가진 아르주만드 바누 베감의 밝게 빛나는 무덤"이라고 적혀 있다. 하층 원래 무덤은 장식이 없고, 옆면에는 신의 99가지 이름이 새겨져 있다.[19] 샤 자한의 가짜 가묘는 비슷한 장식을 하고 있으며, 비문 없이 꽃과 다른 장식으로 덮여 있다. 붉은 양귀비꽃으로 둘러싸인 비문에는 "이것은 가장 숭고한 폐하, 낙원 거주자(피르다우스 아시아니), 길조의 두 번째 군주, 샤 자한 파드샤의 신성한 무덤이다. 영원히 향기롭기를! 1076년(서기 1666년)"이라고 적혀 있다.[19] 샤 자한의 원래 가묘는 붉은 꽃과 노란색 식물이 있는 더 간단한 장식 버전이며, "이것은 릭즈완으로 존경받는 황제, 영원히 거주하는 폐하, [천상의 영역인] 일리윤에 거주하는 자, 낙원 거주자(피르다우스 아시아니)[샤 자한의 사후 칭호], 두 번째 사힙-이 키란, 샤 자한, 파드샤 가지[신앙을 위한 전사]의 밝게 빛나는 무덤이자 신성한 안식처이다. 그는 1076년 라자브월 26일 밤(서기 1666년 1월 31일)에 이 세상에서 영원의 연회장으로 여행을 떠났다"라는 비문이 있다.[19]

3. 5. 정원

타지마할의 정원은 한 변의 길이가 약 300m인 페르시아 양식과 힌두 양식이 혼합된 전통적인 무굴 양식의 정원이다. 정원에는 축을 따라 석조 보도가 깔려 있으며, 이 보도들은 격자형으로 뻗어 나가 정원을 16개의 화단으로 나눈다. 타지마할의 정문과 중앙의 무덤 사이에는 남북축을 따라 건설된 대리석 수로가 있는데, 이 수로는 무덤의 모습을 반사하여 정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시각적 효과를 주도록 설계되었다. 이 수로의 이름은 '알 하우드 알 카후타'이며, '풍요의 수로'라는 뜻으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에게 봉헌된 것이다.[21]

정원 주위에는 여러 그루의 나무들이 줄지어 심겨 있고, 물을 뿜어내는 분수들이 있다. 무굴 양식의 정원은 무굴 제국의 초대 황제인 바부르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전통 인도 양식과 페르시아 양식이 합쳐진 모습이다. 무굴 정원은 이슬람교의 천국을 묘사하여 4개의 강 또는 수로가 흐르고, 높은 벽들이 둘러싸고 있다. 무굴 제국 시대 기록에 따르면, 대부분 천당은 높은 산 위에서 흘러내린 4개의 강이 흐르고, 동서남북을 높은 벽으로 감싼 형태로 묘사된다.

대부분의 무굴 정원은 중앙에 중요한 건물이 있지만, 타지마할은 정원 맨 끝에 주된 무덤이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형태로 여겨졌다. 그러나 현대에 야무나강 반대쪽에 '달빛 정원'(Moonlight Garden)이 발견되면서, 야무나강 자체가 타지마할 정원의 일부였다는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타지마할 또한 정원 중앙에 무덤이 위치하는 구조로 지어졌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인도의 고고학계는 타지마할 설계자들이 야무나강을 천국의 4개 강 중 하나를 상징하는 것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러한 구조를 취했다고 추정한다. 초기 기록에는 정원에서 장미, 수선화, 과일 나무 등 풍부한 과육들이 자랐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무굴 제국이 쇠퇴하면서 타지마할 관리도 소홀해졌다. 대영제국이 타지마할 관리를 맡게 되면서, 런던의 영국식 정원으로 개조하려 시도하였다.[23]

타지마할 단지는 약 300m² 규모의 차르바흐(charbagh) 또는 무굴 정원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정원은 두 개의 주요 산책로(khiyaban)에 의해 4개의 구역으로 나뉘며, 각 구역은 다시 높이 솟은 산책로에 의해 16개의 움푹 들어간 파르테르(parterre) 또는 화단으로 나뉜다. 정원은 모든 구역을 연결하는 산책로로 둘러싸여 있다. 묘소와 정원 중앙의 관문 사이 중간 지점에는 5개의 분수가 있는 높이 솟은 대리석 수조가 있으며, 북-남 축에 위치한 반사 연못은 묘소의 이미지를 반영한다.[21]

반사 연못과 정원 옆의 산책로


페르시아 정원에서 영감을 받은 차르바흐 정원(charbagh garden)은 낙원 정원(Paradise garden)(천국(Jannah))을 상징한다.[23]

대문을 지나면 펼쳐지는 정원에는 천상의 네 개의 강을 상징하는 네 개의 수로가 사방으로 흐르고, 이 수로들이 만나는 곳에는 천상의 샘을 나타내는 연못이 있다.[63] 물 공급은 지름 약 23cm의 관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정원 식물에 대한 관개 외에도, 이 관로는 더 가는 관을 통해 수로의 남북에 있는 총 24개와 중앙 분수에 있는 5개의 분수에 물을 공급한다. 타지마할 정원에서는 각 분수 아래에 항아리가 매립되어 각 분수의 높이 차이가 나타나지 않도록 고안되었다.[60]

정원


무굴 제국의 능묘 형식에서는 원래 정원 중앙에 묘가 있고, 사방 어디에서나 같은 경치를 만들었다. 타지마할 정원의 중앙에는 묘 대신 한 변이 23m인 정사각형의 흰색 대리석 기단이 있다. 중앙 분수는 한 변이 13m인 정사각형이며, 연못과 기단의 각 변의 비율은 묘와 그 기단의 비율과 거의 일치한다.[60]

능묘의 정원은 이슬람교도에게 사막 속의 낙원을 의미한다. 타지마할 또한 열주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서쪽에는 문 대신 2층 누대(발라다리, Baradari)가 있는 발코니가 있다. 그 안에는 풍부한 과 과수가 심어져 계절에 따라 장미, 튤립, 백합, 금잔화, 수선화 등이 피고, 망고, 오렌지, 레몬, 석류, 사과, 포도 등이 과일을 맺었다. 현재의 정원은 이탈리아 편백나무(Cypress)의 숲과 잔디가 온통 심어져 있고, 나무가 곳곳에 있지만, 이것은 19세기에 영국인이 바꾼 것이다.[60]

3. 6. 부속 건물

타지마할은 3면이 높은 붉은 사암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만 강변은 벽이 없고 트여 있다. 벽 바깥쪽에는 샤 자한의 다른 아내들의 무덤이 있고, 가장 큰 무덤은 뭄타즈 마할이 총애했던 시녀의 무덤이다.[60]

타지마할 부속 건물들


타지마할의 정문은 '다르자와'라고도 불리며, 고급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정문의 아치는 무덤 본관의 아치와 형태가 매우 흡사하며, 캘리그라피 등 무덤에 쓰인 것과 유사한 장식들이 있다. 정문의 천장, 바닥, 벽 등에는 우아한 기하학적 무늬들이 장식되어 있다.

정원의 맨 끝에는 2개의 붉은 사암 건물이 무덤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배치로 서있다. 서쪽에 있는 건물은 모스크이고 동쪽에 있는 건물은 응접실이다. 응접실 건물은 대칭성을 맞추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모스크에는 메카 방향을 나타내는 미흐라브가 있고, 검은 대리석으로 569개의 기도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응접실 건물은 미흐라브가 없는 대신, 기하학적 무늬들로 바닥이 꾸며져 있다. 모스크의 기본 설계 구조는 3개의 돔이 위에 얹혀진 기다란 홀이며, 당대 무굴 제국의 모스크들과 형태가 유사하다. 이 건물들은 1643년에 완공되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타지마할


대루문


250px


타지마할 단지는 얌무나 강 쪽을 제외한 삼면이 붉은 사암으로 된 탑 모양의 난간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단지 벽 밖에는 샤 자한의 다른 아내들, 왕족들, 그리고 총애받는 하인들을 위한 다른 묘소들이 있다. 벽 안쪽에는 돔 모양의 챗리스와 음악당과 같은 작은 구조물들이 섞여 있는 힌두 사원의 전형적인 기둥이 있는 아케이드가 특징이다. 주로 대리석으로 지어진 주요 관문은 묘의 건축 양식을 반영하며 낮은 부조와 피에트라 두라 상감 세공과 같은 정교한 장식을 통합하고 있다.

단지 멀리 끝에는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두 개의 유사한 건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모스크로, 다른 하나는 건축적 대칭을 제공하는 구조물인 ''자와브''로 지정되어 있다. 모스크 디자인은 당시 지어진 다른 모스크와 유사하며, 자와브는 미흐랍이 없이 상감 패턴이 있는 바닥을 가지고 있다.[9]

타지마할은 남북 560m, 동서 303m의 직사각형 부지에 있다. 남쪽 끝 약 1/4은 전정이며, 그 북쪽 끝에 있는 대문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정원은 한 변이 296m인 정사각형으로, 수로산책로에 의해 동서남북 각각 2등분되고, 다시 각각 4개의 정사각형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 북쪽에는 부지의 약 1/4를 차지하는 기단 위에, 묘당을 중심으로 서쪽에 모스크, 동쪽에 집회장이 있다.[60]

남쪽 대문은 달와자, 무갈식 사분정원은 바기차, 서쪽 모스크는 마스지드, 동쪽 접견시설은 미프만 카나(자마트 카나[60]), 그리고 높이 42m의 4개의 첨탑(미나렛)을 거느린 묘는 영묘라고 한다.

대루문 남쪽에는 전정과 차량 대기 장소, 그리고 시종들이 대기하는 건물이 있다.[60] 대루문은 적색 사암으로 지어졌으며 높이 약 30m이다. 이슬람 건축에서 자주 사용되는 큰 아치를 가진 아이완이며, 양쪽에는 팔각형의 굵은 이 있다. 아이완 위에는 파테푸르 시크리의 사원에서도 볼 수 있는 흰색 종유석 형태를 한 11개의 둥근 지붕이 있다.[60]

무덤을 사이에 두고 있는 모스크(mosque)와 회의장은 대칭적인 형태로 마주보고 있으며, 모두 적색 사암으로 지어진 외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부는 크게 다르다. 모스크에는 예배를 위해 성지 메카(Mecca) 방향을 가리키는 아치형 미흐랍이 있는 반면, 회의장 내부에는 접견 등을 위한 넓은 공간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모스크와 회의장을 갖춘 묘는 다른 무굴 제국 묘에는 없는 특징이다.[60]

주변에는 무무타즈 마할의 시녀인 사티 움 니사, 샤 자한의 다른 후궁이었던 실힌디 베굼과 아크바라바디 베굼 등 친족들의 무덤이 있다.[60]

북쪽은 야무나 강에 접해 있으며, 과거에는 아그라 성채에서 배를 타고 타지마할의 북쪽에서 묘역으로 들어갔지만, 현재(2013년 4월 기준) 방문객은 남쪽 대문을 통해 들어간다. 남쪽에는 과거 무무타즈바드라 불렸던 지역이 있으며, 현재(2013년 4월 기준) 타지 간지라 불리는 지역으로 상업 시설과 숙박 시설 등이 들어서 있다.[60]

타지마할과 마주 보는 야무나 강 북쪽 강둑에는 마찬가지로 성벽이 있으며, 중앙에는 누각, 좌우에는 망루가 있고, 이들의 북쪽에도 정원이 있다.[60]

4. 건설 과정

타지마할은 아그라 성벽 도시의 남쪽에 건설되었다. 샤 자한은 원래 황제 소유가 아니었던 타지마할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지 소유자인 마하라자 자이 싱에게 아그라 중심부의 거대한 궁전을 대가로 지불했다. 약 1.2헥타르에 달하는 토지가 파헤쳐졌고, 강가 부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토사를 채워 지반 침하를 방지했다. 이로 인해 강둑보다 약 50m 더 높게 지반이 높아졌다. 무덤 자리에는 우물을 파고 자갈과 흙을 채워 건물 기반을 닦았다. 당시 일반적인 건축 방식과 달리, 타지마할 건설에는 단단한 벽돌로 된 공사 지지대가 사용되었다. 이 지지대가 워낙 견고하여 해체에만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타지마할 건설에는 인도와 아시아 전역에서 자재가 조달되었으며, 1,000마리가 넘는 코끼리가 자재 운송에 투입되었다. 22,000여 명의 인부, 화가, 보석 세공인, 석공들이 건설에 참여했다. 반투명한 백색 대리석은 인도 라자스탄 주의 마크라나에서, 벽옥펀자브 주에서, 수정은 중국에서 가져왔다. 티베트에서는 터키옥,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라피스 라즐리, 스리랑카에서는 사파이어,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홍옥을 수입했다. 총 28종류의 보석과 준보석이 백색 대리석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샤 자한은 공사 완료 후 사람들이 지지대에 사용된 벽돌을 가져가는 것을 허락했고, 이 지지대는 농민과 평민들에 의해 곧 해체되었다. 공사 과정에서 15km 길이의 경사로가 만들어져 대리석 바위를 공사 현장으로 운반했으며, 20~30마리의 황소가 특별 제작된 수레에 돌을 싣고 경사로를 따라 운반했다. 공사에 필요한 물은 야무나강에서 동물 펌프 장치로 끌어올려 저장 용기에 저장한 후, 3개의 정화조를 거쳐 공사 현장으로 공급되었다.

무덤 본관과 타지마할은 약 12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미나레트, 모스크, 응접실 등 부속 건물 건설에는 약 10년이 추가로 소요되었다. 건물군 내 완공 시기가 다르기 때문에 타지마할의 정확한 완공 시점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무덤 자체는 1643년에 완공되었지만, 보조 건물들은 10년 후에 완성되었다. 타지마할 건설 비용에 대한 추정치는 다양하지만, 현재 고고학계는 당시 가격으로 약 3천2백만 루피, 현재 가치로는 약 528억인도 루피 (63.91억달러, 약 8조 2천99억 원)로 추정하고 있다.

5. 명칭

"타지마할(Taj Mahal)"이라는 이름은 우르두어에서 유래했으며, 아랍어페르시아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tāj mahall'은 "왕관"(tāj)과 "궁전"(mahall)을 의미한다.[3][4][5] 1636년에 쓰여진 압둘 하미드 라호리(Abdul Hamid Lahori)의 저서 『파드샤흐나마(Padshahnama)』에서는 타지마할을 "라우자이 무나와라(rauza-i munawwara)"(페르시아-아랍어: روضه منواره|rawdah-i munawwarahfa) 즉, 빛나는 혹은 영광스러운 묘소라고 언급하고 있다. "타지(Taj)"라는 이름은 "뭄타즈(Mumtaz)"의 두 번째 음절이 변형된 것일 수도 있다.[6][7]

이름의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의 '뭄(Mum)'이 사라지고 '타즈(Taj)'가 인도식 발음인 '타지(Taj)'로 변했다는 설이 있다.[61] 뭄타즈 마할(Mumtaz Mahal)은 페르시아어로 "궁전의 빛", "궁정의 선택받은 자"[61]를 의미하는 말이며, 제4대 황제 자한기르(Jahangir)로부터 받은 칭호이다. 그녀의 본명은 아르주만드 바누 베굼(Arjumand Banu Begum)으로 알려져 있다.[61] 타지마할을 직역하면 "왕관 궁전" 또는 "궁전의 왕관"이라는 뜻이 된다.

현지에서는 비비 카 라우자(Bibi ka Rauza)라고 불렸는데, 비비(Bibi)는 친근감을 담은 귀부인에 대한 호칭이고, 카 라우자(ka Rauza)는 "(그 귀부인의) 묘원"을 의미한다.[61]

6. 관광

타지마할은 인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유네스코의 조사에 따르면 2001년에 이미 연 2백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방문했으며, 2014년에는 7백만-8백만 명으로 급격히 증가하였다.[72] 2017년 기준으로도 연간 최소 7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73] 2022-23 회계연도에는 약 500만 명의 방문객이 타지마할을 방문했다.[1]

인도 정부는 재원 마련을 위해 입장료 체계를 다르게 운영하고 있는데, 인도 현지인에게는 저렴한 가격으로, 외국인에게는 더 비싼 가격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 2018년에는 인도인 입장료는 50INR(2020년 7월 기준 796.23KRW), 외국인 입장료는 1100INR(2020년 7월 기준 17517.04KRW)였다.[74] 2024년 기준으로 인도 시민의 입장료는 50INR였고, SAARC 및 BIMSTEC 국가 시민의 경우 540INR, 기타 외국인 관광객의 경우 1100INR였다. 하지만 입장 대기 줄은 인도인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에 외국인이 대기 시간이 짧은 이점이 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기후가 선선한 10월, 11월, 2월에 방문한다. 타지마할 주변에서는 공해 물질을 배출하는 교통 수단의 이용이 금지되어 있어, 관광객들은 주차장에서 걸어가거나 전기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2019년에는 유적지 내 관광객 과밀을 막기 위해 3시간 이상 머무르는 관광객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타지마할 남쪽에는 '타지 간지'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은 관광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카라반사라이, 바자르, 소규모 매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타지마할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꼽히며, 100만 명이 넘는 지지를 받아 새로운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등재되기도 했다.[46]

타지마할은 평일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지만, 금요일은 예배를 위해 모스크가 정오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개방된다. 보름달이 뜨는 날과 그 전후 이틀 밤에는 야간 관람이 가능하지만, 라마단 기간과 금요일에는 야간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다.

타지마할을 방문한 관광객들


안개가 낀 아침

7.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와 상징

타지마할은 인도와 관련된 중요한 이미지가 되었다.


타지마할은 세계적인 관심과 수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이면서 인도와 관련된 중요한 이미지가 되었고, 더 나아가 인도 자체를 상징하게 되었다.[43]

타지마할은 단순한 사랑의 상징을 넘어 샤 자한의 부와 권력, 그리고 그의 통치 아래 무굴 제국의 번영을 상징한다.[43] 중앙 축을 중심으로 한 좌우 대칭은 균형과 조화를 가져오는 통치 세력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샤 자한은 타지마할 건설에 이러한 개념을 적용했다.[43] 또한, 타지마할은 남북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으며, 중앙에서 볼 때 여름과 겨울 지점에 각각 북쪽과 남쪽 모서리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타지마할을 상징적인 지평선으로 만든다.[43]

타지마할의 계획과 구조는 건물 자체부터 정원 너머까지 뭄타즈 마할의 낙원 정원 저택을 상징한다.[43] 낙원 정원의 개념은 묘소 건물에도 확장되는데, '파르친 카리'(parchin kari)라는 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부조와 준보석으로 장식되어 웅장함을 더한다.[43] 건물은 하루 중 시간과 날씨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흰색 대리석은 다양한 색조를 반사한다. 아침에는 분홍빛, 낮에는 우윳빛 흰색, 달빛 아래에서는 황금빛, 그리고 특정 조명 조건에서는 푸른빛을 띤다. 이러한 효과는 대리석 표면이 빛과 습기에 반응하여 마법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각적 경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늘은 반사 연못뿐만 아니라 건물 표면 자체를 통해서도 디자인에 통합되어, 알라의 존재를 암시한다.[43]

무굴 건축과 타지마할에 대한 권위자인 예술사학자 에바 코흐(Ebba Koch)는 전체 단지의 계획이 신성의 상징의 하위 집합인 지상의 삶과 사후 세계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계획은 흰색 대리석 묘소와 정원, 그리고 세속적인 시장을 위한 붉은 사암 쪽의 두 부분으로 나뉜다. 뭄타즈 마할의 깨달음, 영성,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묘소만이 흰색이다. 코흐는 이슬람 교리의 상징으로서 세속적인 쪽의 계획이 다른 세계적인 쪽의 거울상이며, 중앙의 큰 문이 두 세계 사이의 전환을 나타낸다고 해석했다.[43]

힌두교는 무덤을 가지지 않고 시체를 화장하여 유골과 재를 강에 흘려보낸다. 영혼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이슬람교의 무덤은 간소하지만, 무굴 제국의 황제는 큰 능묘를 갖추어 전제군주의 권세를 보여주었다.[61] 권력을 잡고 있지 않았던 왕비에게 장대한 능묘가 건설된 예는 드물다.[59]

타지마할 착공 당시, 샤 자한은 힌두교를 억압하는 명령을 내리는 등 이슬람 국가 건설에 착수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지마할은 이슬람교도의 정신적 중심으로 구상되었다. 성인 신앙은 이슬람과 힌두교 모두에 나타나며, 묘소에 영력이 깃든다는 생각은 무굴 제국 시대 인도에서 강하게 나타났다. 뭄타즈 마할을 성인으로 여기는 배경에는 이슬람 사회가 여성에게 남편에 대한 사랑과 자녀 출산을 요구하며, 산욕으로 인한 죽음을 남성이 성전에서 죽는 것과 동일시하는 모성 신앙이 있었다. 14명의 자녀를 낳고 36세에 죽은 뭄타즈 마할은 순교한 성인이 되기에 충분했다.[66]

이러한 의미에 맞추어 타지마할은 순례자를 위한 시설을 갖추었다. 메카로 예배하기 위한 모스크, 식사와 숙박을 위한 집회소, 순례자의 차량 주차장, 그리고 외부 시장이 이러한 기능을 보조했다. 타지마할이 완성되었을 때, 샤 자한이 그 아름다움에 대해 지은 시에는 이곳이 죄를 지은 자가 후회하고, 죄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용서받고 깨끗하게 되는 우아한 고궁이며, 신의 빛과 함께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66]

8. 논란 및 기타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Jean-Baptiste Tavernier): 타지마할에 대해 처음으로 서술한 유럽인 중 한 명


타지마할은 건설된 이후 문화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감탄의 대상이었으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반응들이 학문적인 평가를 압도해 왔다. 타지마할에는 여러 가지 논란과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설들이 있다.

  • 샤 자한이 야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된 '검은 타지마할'을 건설하려 했다는 설
  • 타지마할 건설에 참여한 기술자들을 학대했다는 설
  • 유럽인이 타지마할을 설계했다는 설
  • 타지마할이 원래 힌두 사원이었다는 설


이러한 주장들은 대부분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거나, 고고학적 조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 검은 타지마할 건설설: 유럽 여행가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Jean-Baptiste Tavernier)의 기록에서 비롯되었지만, 1990년대 발굴 조사 결과 이는 변색된 흰색 돌로 밝혀졌다. 2006년 고고학자들은 메타브 바그의 연못을 복원하면서 흰색 타지마할의 어두운 반영을 확인했는데, 이는 샤 자한의 대칭에 대한 집착과 일치한다.[51]
  • 기술자 학대설: 샤 자한이 건축가와 장인들에게 끔찍한 짓을 했다는 주장은 증거가 없다.[52]
  • 타지마할 철거 계획설: 1830년대 인도 총독이었던 윌리엄 벤팅크 경(Lord William Bentinck)이 타지마할을 철거하려 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
  • 유럽인 설계자설: 타지마할이 이탈리아인 제로니모 베르네오(Geronimo Vereneo)나 프랑스인 오스틴(Austin)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이론은 19세기 후반에 제기되었지만, 이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 힌두 사원설: 피. 엔. 오크(P. N. Oak) 등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인도 대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었고,[53] 인도 문화부와 고고학 조사국 역시 타지마할이 사원이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55]

8. 1. 검은 타지마할 건설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신의 무덤을 검은색 대리석으로 똑같이 만들라고 지시했다가 반란으로 인해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인도 학계에서는 이를 근거 없는 낭설로 보고 있다.[51] 이 이야기는 1665년에 아그라를 방문했던 유럽의 여행가 장 밥티스트 타베르니에가 자신의 소설에서 '검은 타지마할'에 대해 언급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샤 자한이 야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능묘인 검은 타지마할을 건설할 계획이었다는 속설이 오랫동안 존재해왔다.[59] 이는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Jean-Baptiste Tavernier)의 글에서 유래했다.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샤 자한을 폐위시켜 건설이 중단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메타브 바그(Mehtab Bagh) 강 건너편에 있는 검게 변색된 대리석 유적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보였지만, 1990년대 발굴 조사 결과 변색된 흰색 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51]

2006년 고고학자들이 메타브 바그의 연못 일부를 복원하면서 검은 능묘의 기원에 대한 보다 신뢰할 수 있는 이론이 제시되었다. 흰색 능묘의 어두운 반영이 명확하게 보였는데, 이는 샤 자한의 대칭에 대한 집착과 연못 자체의 위치와 일치한다.[51] 샤 자한은 야무나 강 건너편에 자신의 검은 대리석 묘를 건설할 계획이었다고도 한다.[59] 이는 타지마할이 이슬람 건축의 원칙인 대칭성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고안된 것으로, 북쪽 강둑에 같은 형태의 검은 묘가 있다면 남북의 대칭성이 완성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샤 자한의 실각으로, 흰 대리석 타지마할과 대칭되는 검은 대리석 묘의 계획은 좌절되었다. 북쪽 강둑의 성벽과 망루는 그 기초 공사의 잔재라고 여겨진다.[60]

8. 2. 기술자 학대설

타지마할은 건설 이후 문화와 지리적 경계를 초월하여 감탄의 대상이었으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기념비에 대한 학문적인 평가를 꾸준히 압도해 왔다.[51] 오랫동안 샤 자한이 야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능묘인 '검은 타지마할'(Black Taj Mahal)을 건설할 계획이었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생각은 1665년 아그라를 방문한 유럽 여행가이자 보석상인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Jean-Baptiste Tavernier)의 공상적인 글에서 유래했다. 샤 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샤 자한을 폐위시켜 건설이 중단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메타브 바그(Mehtab Bagh) 강 건너편에 있는 검게 변색된 대리석 유적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보였지만, 1990년대에 실시된 발굴 조사 결과, 이것들은 변색된 흰색 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51]

샤 자한이 묘와 관련된 여러 건축가와 장인들에게 끔찍한 세부 묘사와 함께 죽음, 시체 절단 및 훼손을 가했다는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52] 일부 이야기는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이 유사한 설계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주장한다. 1830년대 인도 총독이었던 윌리엄 벤팅크 경(Lord William Bentinck)이 타지마할을 철거하고 대리석을 경매에 부칠 계획이었다는 주장에 대한 증거는 없다.

타지마할 건설을 명령받은 장인은 아름다운 뭄타즈 마할을 몰래 사모하는 남자였다고 한다. 그는 그 마음을 건설에 쏟아 부어 샤 자한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운 묘당을 완성했다. 샤 자한이 장인에게 상을 내리려고 궁전으로 불렀는데, 장인은 묘당을 완성한 것으로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샤 자한은 그 남자가 내면에 감춘 것을 눈치채고, 남자에게 양손을 앞으로 내밀라고 명령한 후 "이것이 상이다"라며 검으로 양손을 잘라버렸다고 한다.[59]

8. 3. 유럽인 설계자설

타지마할 건설 이후, 이 건축물은 문화와 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감탄의 대상이 되었으며,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학문적인 평가를 압도해 왔다.[51] 타지마할이 이탈리아인 제로니모 베로네오(Geronimo Vereneo)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근거 없는 이론은 1879년 헨리 조지 키인(Henry George Keene)이 처음 제기한 후 잠시 유행했다. 키인은 스페인 작품 "이티네라리오"("프레이 세바스티안 만리크의 여행, 1629-1643")의 번역을 참고했다. 보르도 출신 프랑스인 오스틴(Austin)이 타지마할을 설계했다는 또 다른 이론은 윌리엄 헨리 슬리먼(William Henry Sleeman)이 장-바티스트 타베르니에(Jean-Baptiste Tavernier)의 작품을 바탕으로 제기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호스텐 신부(Father Hosten)에 의해 다시 언급되었고 E. B. 헤벌(E. B. Havell)에 의해 논의되면서 이후 이론과 논쟁의 근거가 되었다.[60]

이러한 유럽인 설계자설은 19세기 "밀림 속에서 발견된" 타지마할에 대한 놀라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즉, 미개척지에 있는 장엄한 건축물에 유럽인이 개입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1884년에 출판된 『북서 인도의 역사와 지리』 제2권에는 제로니모 베로네오가 3000000GBP의 비용으로 건설을 맡았으나, 1641년에 스페인인 승려 만리케(Manrique)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베로네오는 이미 사망했고, 콘스탄티노플에서 온 터키인 에펜디(Efendi)가 이어받았다는 설을 소개하며, 대리석 상감 기술은 프랑스 보르도 출신의 오스틴느(Austinne)라는 공장이 지원했다고 덧붙였다.[60]

이 설은 유럽에서 널리 알려졌고, 1957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된 『인도사』 제4권에서는 베로네오가 설계도를 황제에게 바쳤다고 언급했다. 또한 1972년 뉴스위크에서 출판된 『더 타지마할(The Taj Mahal)』에서는 타지마할 건설의 공을 독차지하고 같은 건축물이 두 번 다시 세워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황제가 공장장 베로네오를 참수했다는 내용이 세바스티안 만리케(Sebastian Manrique)의 구전에 있다고 기록했다.[60]

8. 4. 힌두 사원설

피. 엔. 오크(P. N. Oak)는 타지마할이 힌두 왕이 건설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2000년 인도 대법원에 청원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53] 그는 1989년에 쓴 책 "타지마할: 진실"에서 타지마할이 17세기가 아닌 1155년에 건설되었다고 주장했다.[54] 2005년에는 아마르 나트 미쉬라가 타지마할이 1196년 힌두 왕 파라마르디(Paramardi)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유사한 청원을 알라하바드 고등법원(Allahabad High Court)에 제기했으나 역시 기각되었다.[54]

2015년 11월 인도 연방 문화부 장관은 인도 의회(Indian Parliament)에서 타지마할이 사원이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55] 2017년 8월 인도 고고학 조사국은 이 기념물이 사원을 수용한 적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56]

참조

[1] 보고서 Tourism Statistics https://tourism.gov.[...] Government of India 2024-03-15
[2] 웹사이트 Taj Mahal https://whc.unesco.o[...] UNESCO 2016-09-10
[3] 서적 Dehkhoda Dictionary https://web.archive.[...] Dehkhoda Lexicon Institute & International Center for Persian Studies (University of Tehran) 2022-04-16
[4] 웹사이트 Definition of Taj Mahal https://www.dictiona[...] 2021-03-01
[5] 웹사이트 Taj Mahal definition and meaning https://www.collinsd[...] Collins English Dictionary 2021-03-01
[6] 서적 Islamic Culture https://books.google[...] Johnson Reprint Corporation
[7] 서적 The Calcutta Review https://books.google[...]
[8] 웹사이트 Taj Mahal: Memorial to Love https://www.pbs.org/[...] PBS 2015-02-07
[9] 웹사이트 Creation History of Taj Mahal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3-10-19
[10] 서적 Taj Mahal: The Illumined Tomb : an Anthology of Seventeenth-century Mughal and European Documentary Sources Aga Khan Program for Islamic Architecture
[11] 웹사이트 Architecture of Taj Mahal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3-12-01
[12] 웹사이트 World Heritage Sites – Agra – Taj Mahal https://asi.nic.in/p[...]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2024-03-04
[13] 웹사이트 Taj Mahal https://www.britanni[...] Britannica 2023-03-04
[14] 웹사이트 Onion domes, bulbous domes http://www.stromberg[...] Stromberg Architectural 2015-03-04
[15] 웹사이트 Exterior of Taj Mahal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3-12-01
[16] 웹사이트 Calligraphy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3-12-01
[17] 웹사이트 The Taj mahal http://www.islamicar[...] Islamic Arts and Architecture Organization 2015-02-07
[18] 웹사이트 ...calligraphy https://www.pbs.org/[...] PBS 2015-02-07
[19] 웹사이트 Interior of the Taj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3-12-01
[20] 서적 The Horseman: A Travel Memoir iUniverse
[21] 웹사이트 The plants growing throughout the Taj Mahal complex http://indiatourism.[...] India Tourism 2017-06-07
[22] 웹사이트 Taj Garden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3-12-01
[23] 웹사이트 Are there rivers that originate/come from Paradise? Questions on Islam https://questionsoni[...] 2024-03-21
[24] 서적 Taj Mahal https://books.google[...] Mikaya Press 2023-03-02
[25] 서적 Art & Architecture of the Taj Mahal Historical Research Documentation Programme
[26] 서적 World Architecture and Society: From Stonehenge to One World Trade Center ABC-CLIO
[27] 서적 Taj Mahal: The Illumined Tomb : an Anthology of Seventeenth-century Mughal and European Documentary Sources Aga Khan Program for Islamic Architecture
[28] 웹사이트 History of Taj Mahal https://www.tajmahal[...] 2021-08-29
[29] 웹사이트 Taj Mahal – The Symbol of Love – Shah Jahan Mumtaz Mahal https://theindianchr[...] 2023-03-02
[30] 웹사이트 Access 360° World Heritage https://geographysco[...] 2015-02-07
[31] 뉴스 Taj Mahal's history of repair and restoration https://www.dnaindia[...] 2017-12-13
[32] 뉴스 Taj Mahal 'to be camouflaged' http://news.bbc.co.u[...] 2001-12-29
[33] 뉴스 The Taj Mahal is falling victim to chronic pollution https://www.telegrap[...] 2010-12-03
[34] 웹사이트 What Really Ails the Taj Mahal? https://thewire.in/u[...] 2020-09-03
[35] 뉴스 Supreme Court raps Government for its apathy towards Taj Mahal https://www.indiatod[...] 2023-03-02
[36] 웹사이트 Toxons and the Taj http://www.unesco.or[...] 1997-04-30
[37] 뉴스 Dry Yamuna could sink Taj Mahal https://www.indiatod[...] 2010-07-02
[38] 뉴스 India Taj Mahal minarets damaged in storm https://www.bbc.com/[...] 2018-04-12
[39] 뉴스 Deadly thunderstorm damages Taj Mahal https://www.dawn.com[...] 2020-06-01
[40] 잡지 The Taj Mahal Is Changing Color. That Has India's Highest Court Concerned https://time.com/526[...] 2019-05-01
[41] 뉴스 For 1st time, Taj Mahal's main dome to get mud pack for 6 months https://timesofindia[...] 2022-08-06
[42] 뉴스 Taj Mahal to undergo major restoration, 400 stones to be replaced https://www.indiatod[...] 2022-03-26
[43] 웹사이트 Views of Taj Mahal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2020-12-04
[44] 웹사이트 Travel information, Taj Mahal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45] 웹사이트 Night Viewings of Taj Mahal https://www.tajmahal[...] Government of India
[46] 뉴스 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 announced https://www.telegrap[...] 2007-07-09
[47] 뉴스 Trump to Diana: The most iconic Taj Mahal photos https://www.bbc.com/[...] 2020-02-24
[48] 뉴스 Melania Trump next in long line of first ladies to visit India https://www.cnn.com/[...] 2020-02-21
[49] 뉴스 Trudeau, with family in tow, visits India's famed Taj Mahal https://www.cbc.ca/n[...] 2018-02-18
[50] 뉴스 Taj Mahal posers through the years https://www.theguard[...] 2020-02-25
[51] 영상매체 Warrior Empire: The Mughals of India A+E Television Network
[52] 웹사이트 Mutilations in Taj Mahal Myth https://www.tajmahal[...]
[53] 뉴스 Plea to rewrite Taj history dismissed https://www.thehindu[...]
[54] 뉴스 Is Taj Mahal a mausoleum or a Shiva temple? CIC asks govt to clarify https://www.hindusta[...] 2017-08-10
[55] 뉴스 What is Tejo Mahalaya controversy? https://indianexpres[...] 2017-10-18
[56] 뉴스 BJP's Vinay Katiyar now calls Taj Mahal a Hindu temple – a 'bee in bonnet' theory that Supreme Court once rejected http://indiatoday.in[...] 2017-10-18
[57] 서적 魅惑の財宝伝説 失われた黄金と宝石の謎 日経ナショナルジオグラフィック社
[58] 뉴스 「新世界七不思議」が決定、清水寺は惜しくも選出されず http://www.afpbb.com[...] AFPBB 2007-07-09
[59] 문서 序 天上楽園の夢
[60] 문서 ムガル帝国の栄華、蓮池に浮かんだ墓廟
[61] 문서 ムガル帝国の栄華、悲運の兄皇子密殺
[62] 문서 二つの文明の融合、皇子の反乱と一族の女たち
[63] 서적 ムガル皇帝歴代誌 創元社 2009-05-10
[64] 서적 南アジアを知る事典 平凡社 1992-10
[65] 백과사전 AMĀNAT KHAN ŠĪRĀZĪ http://www.iranicaon[...] 2012-12-30
[66] 문서 ムガル帝国の栄華、イスラム聖者と母性信仰
[67] 문서 ペルシャ文化の影、文人皇帝とイスラム細密画
[68] 문서 ムガル帝国の栄華、巡礼の路
[69] 문서
[70] 뉴스 インドのタージマハル、雷雨で正門など一部損傷 https://www.msn.com/[...] MSNニュース 2020-06-01
[71] 웹사이트 Periodic Reporting Exercise On The Application Of The World Heritage Convention http://whc.unesco.or[...] UNESCO 2015-02-07
[72] 웹사이트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 Night Viewings of Taj Mahal http://asi.nic.in/as[...] Asi.nic.in 2015-02-07
[73] 웹사이트 インド・タージマハル、見物を1人3時間に制限 混雑制限で https://www.cnn.co.j[...] CNN 2018-04-01
[74] 웹사이트 Ticketing & Entry Fee of Top Monuments in Agra, Agra Monuments::Official WebSite of Taj Mahal-U.P.Tourism https://www.tajmahal[...] 2019-03-10
[75] 서적 The Complete Taj Mahal: And the Riverfront Gardens of Agra Thames & Hudson Ltd. 2006-08-00
[76] 서적 The Complete Taj Mahal: And the Riverfront Gardens of Agra Thames & Hudson Ltd. 2006-08-00
[77] 서적 The Complete Taj Mahal: And the Riverfront Gardens of Agra Thames & Hudson Ltd. 2006-08-00
[78] 웹사이트 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 announced https://www.telegrap[...] The Telegraph 2015-02-07
[79] 웹사이트 印タージマハル、黄ばみ除去の「泥パック」を塗布 https://www.afpbb.co[...] AFPBB 2019-03-10
[80] 웹사이트 インド、タージマハルで入場者数制限へ https://www.afpbb.co[...] AFPBB 2019-03-10
[81] 웹사이트 タージマハル変色、「政府は保護を怠っている」 インド最高裁 https://www.afpbb.co[...] AFPBB 2019-03-10
[82] 웹사이트 タージマハルの門、暴風で損傷 尖塔2本が倒壊 インド https://www.afpbb.co[...] 2019-03-10
[83] 서적 あたまの漂流 岩波書店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