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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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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국가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가(國歌)로, 현재 애국가(愛國歌)가 사용되고 있다. 애국가는 1896년 독립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시의 가사에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 멜로디를 붙여 불린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3·1 운동 이후 상하이 임시 정부에서 채택되었다는 설이 있다. 1935년 안익태가 작곡한 관현악곡 '한국 환상곡'의 종곡 멜로디를 가사에 붙여 새로운 애국가가 불렸고,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령으로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공식 국가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방송 시작 및 종료 시, 각종 행사 등에서 연주되고 있으며, 시민권 취득 시험에도 활용된다.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 안창호, 최병헌 등으로 추정되나, 공식적으로는 미상이다. 애국가는 표절 논란, 작곡가 및 작사자의 친일 행적 논란, 가사의 소극적인 내용 등 여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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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가 - [음악]에 관한 문서
일반 정보
대한민국 국가 악보
대한민국 국가 악보
명칭애국가
로마자 표기Aegukga
한자 표기愛國歌
의미나라를 사랑하는 노래
국가대한민국
작사미상 (윤치호 또는 안창호로 추정)
작곡가안익태
작사 시기1896년
작곡 시기1936년
채택 시기1948년 8월

2. 역사

대한민국 임시 정부 시대에 사용된 애국가.
"올드 랭 사인" 곡이 삽입되었다.


현재 애국가의 가사는 1896년 독립문 정초식 때 백두산을 노래한 애국시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찬송가로 전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일본에서는 "호타루노 히카리")의 멜로디를 붙여 불렀다는 설과, 3·1 운동 직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적인 가사가 금지되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도 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총독부가 가사 내용을 심사하여 금지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국어 노래와 춤을 금지했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재외 한민족에 의해 애창되었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를 국가로 지정했다. 일본의 종전으로부터 정확히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광복절 독립 기념식에서 스코틀랜드 민요의 멜로디는 사라지고, 대신 안익태1935년에 작곡한 관현악곡 '한국 환상곡'의 종곡 멜로디를 같은 가사에 붙인 새로운 '애국가'가 불렸다.[6]

2. 1. 대한제국 국가

안익태(1906–1965)가 1936년에 애국가의 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의 국가로 공식 지정되기 전까지 관례적으로 "국가"로 불렸다.[5]

현재의 애국가 이전에 대한제국 시대에 첫 번째 국가가 만들어졌다. 1894년 갑오개혁과 1896년 독립협회 설립 이후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민간에서 약 10개의 국가가 작곡되었다. 어떤 곡조가 사용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가사는 독립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대한제국의 국가가 공식적으로 선포되면서, 국가가 처음으로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정되었다.[7]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 황제는 국가의 상징으로서 국가의 필요성을 느껴 1900년 12월 법으로 군악대 설립을 발표했다. 그는 독일 음악가 프란츠 폰 에케르트(Franz von Eckert, 1852–1916)를 초청했다. 독일 해군 군악대장을 지낸 에케르트는 1879년 일본에 초청되어 일본 해군과 함께 서양 음악 보급에 기여했으며, 일본에서 23년간 근무한 후 1900년 3월 독일로 돌아갔다. 1901년 2월 7일 한국 주재 독일 공사관의 추천으로 50명 규모의 군악대를 위한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한국에 왔으며, 고종 황제의 명을 받아 전통적인 한국 음악 음계를 바탕으로 1902년 7월 1일 대한제국의 국가를 완성했고, 1902년 8월 15일에 국가로 선포되었다. 에케르트는 국가 작곡에 기여한 공로로 3등 태극훈장을 받았다.[7]

대한제국 국가의 악보는 선포되어 전 세계 50개국 이상에 보내졌다. 그러나 1910년 일본 제국에 의한 한국 병합으로 일본의 기미가요가 공식 국가가 되었고, 대한제국의 국가는 금지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 국가는 일본의 기미가요 작곡에 참여했기 때문에 더 이상 공식 국가로 채택되지 않았다.[7]

과거 대한제국의 국가는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한국에서 작곡된 최초의 서양 음악이자 최초의 국가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7]

2. 2. 작사

1900년대 초에 쓰여진 애국가의 작사자는 윤치호라는 설과 안창호라는 설 두 가지가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미상이다.[27] 윤치호 작사설은 1907년 윤치호가 애국가 가사를 쓰고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1908년에 출판된 가사집 《찬미가》를 비롯한 많은 일제 강점기 애국가 출판물은 윤치호를 작사자로 명시하고 있다.[27] 반면 안창호 작사설은 안창호가 애국가 보급에 앞장섰다는 점을 중시하지만, 실증적인 자료는 부족하다.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치영은 애국가 가사의 앞부분은 최병헌 목사가 짓고, 후렴구는 윤치호가 지었다고 주장했다.[28] 최병헌은 윤치호가 다니던 정동감리교회의 목사였다.[28] 2002년에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의 애국가 사본이 발견되었는데,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29] 윤치호가 애국가 원본을 지었으나,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일부 개사했다는 주장도 있다.

윤치호가 작사했다는 설이 있는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로 시작되는 협성회 무궁화가 역시 윤치호가 작사를 하였다는 설이 있다.[30] 안창호가 가사 중 '성자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를 문제 삼아 가사 수정을 요청했고, 윤치호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고쳤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창호는 윤치호가 수정한 부분 중 '우리 대한 만세'를 '우리나라 만세'로, '이기상과 이맘으로 임금을 섬기며'를 '이기상과 이맘으로 충성을 다하며'로 다시 고쳤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주요한안태국의 사위 홍재형 등은 윤치호가 지은 협성회 무궁화가를 안창호의 요청으로 개사한 것이 애국가의 기원이 되었다고 진술했다. <안도산전서>에 따르면, 안창호는 윤치호에게 '성자 신손 오백년은 우리 황실이요, 산고 수려 동반도는 우리 조국일세'라는 가사가 적당하지 않다고 말하며 새 가사를 지어보라고 청했다. 윤치호가 안창호의 생각을 묻자, 안창호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을 제시했고, 윤치호는 기뻐하며 찬성했다. 안창호는 이 구절을 윤치호가 지은 것으로 발표하자고 제안하여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게 되었다.[31]

주요한은 <안도산전서>에서 '원래 끝 구절의 첫 가사는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임군(임금)을 섬기며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였으나 1919년부터 상해에서 이를 지금과 같이 고쳐 부르기 시작하였고 이는 분명 안창호가 고친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31]

전택부 역시 윤치호가 애국가의 유력 작사자라 주장하였다.[32] 그는 1907년 윤치호의 역술로 출판된 <찬미가>에 현재 애국가가 들어 있다는 점, 미국에 사는 양주은이 소장한 국민가 중에 애국가가 윤치호 작사로 되어 있다는 점, 해방 후 윤치호가 친필로 '윤치호 작' 애국가를 쓴 것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러한 사실은 1955년에 이미 밝혀졌던 사실[32]이라고 한다.

윤치호가 지은 찬미가의 개사본이 1910년에 실렸다. 애국가가 수록된 최초의 문헌이 윤치호의 “찬미가”이고 1910년 9월 21일자 신한민보에 애국가의 전문이 윤치호 작사의<국민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어 윤치호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33]

1902년에 윤치호가 지었다는 무궁화 노래가 애국가의 원형과 같다는 자료도 나타났다. 2006년 2월 27일 박정규 한남대 교수는 신채호가 지은 '광무(光武) 5년 신축(辛丑) 2월 7일 신채호 배(拜)'라고 쓴 노래와 함께 발견된‘애국가’를 발표했다. 이 애국가는 윤치호의 ‘무궁화 노래’(1896)와 김인식의 ‘코리아’(1910)가 합쳐진 형태로, 후렴이 현재의 애국가와 같다.[29]

윤치호대성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작품인 찬미가에 안창호대성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던 애국가를 수록했을 가능성도 있다.[31]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윤치호 단독작사설을 심의했으나, 찬성 11표, 반대 2표로 만장일치를 얻지 못해 결정을 유보했다. 따라서 현재 애국가의 공식적인 작사자는 미상이다.

작곡자는 안익태, 작사자는 윤치호였다는 사실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 밝혀졌다.[15][16]

2. 3. 작곡 및 현재의 애국가

안익태는 현 애국가 곡의 원본인 '한국 환상곡'의 작곡가이다


처음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가곡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로버트 번스 작사·윌리엄 쉴드 작곡)의 가락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안익태는 새 곡을 써야 할 필요를 느껴 1935년 11월 사 장조로 된 새 가락을 작곡했다.[6] 1936년 'The Korean Student Bulletin' 1936년 10월호에 애국가 악보 광고가 실렸고, 새 가락을 붙인 애국가 악보는 1942년 뉴욕한인교회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1936년 안익태(1906–1965)가 "애국가"의 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의 국가로 공식 지정되기 전까지 관례적으로 "국가"로 불렸다.[5] 작곡자는 안익태, 작사자는 윤치호였다는 사실이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 밝혀졌다.[15][16]

현재 애국가의 가사는 1896년 독립문 정초식 때 백두산을 노래한 애국시에 미국인 선교사들이 찬송가로 전한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일본에서는 "호타루노 히카리")의 멜로디를 붙여 불렀다는 설과, 3·1 운동 직후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애국적인 가사가 금지되었다고 주장하는 한국인들도 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선총독부가 가사 내용을 심사하여 금지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한국어 노래와 춤을 금지했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재외 한민족에 의해 애창되었고,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이를 국가로 지정했다. 일본의 종전으로부터 정확히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광복절 독립 기념식에서 스코틀랜드 민요의 멜로디는 사라지고, 대신 안익태가 1935년에 작곡한 관현악곡 '한국 환상곡'의 종곡 멜로디를 같은 가사에 붙인 새로운 '애국가'가 불렸다.

음정이 높아, 변성을 겪은 남성에게는 부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그래서 2014년 8월, 교육 현장에서는 음정을 2단계 낮춘 애국가가 새로 도입되었다.[17]

3. 사용

애국가는 1940년경 상하이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해졌고 국가로 채택되었으나 한반도에는 전해지지 못했다. 다만 1942년 8월 29일에 개국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은 애국가 1절을 매일 방송하였다.[34]

한반도의 독립 이후 새 애국가의 악보가 전해졌고, 이후 1948년 세워진 대한민국 정부의 사실상의 국가(國歌)가 되었다. 애국가의 악보는 교과서 등을 통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대한민국의 성문법에서는 국가를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고, 현재까지도 법령상 규정되어 있는 바는 없으나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되어 국가적인 행사 따위에서 연주 또는 가창된다.[34]

라디오 방송해방 이후에는 1945년 9월 9일(사실상 1948년 정부 수립)부터, 텔레비전 방송1956년 5월부터 1959년 2월까지, 1961년 12월 31일부터 방송 시작과 종료 알림(국명 고지)을 통해 애국가를 매일 방송하고 있다.[34]

1980년 12월 언론통폐합 이후 애국가는 KBS에서 제작한 사장조 애국가가 사용되어 현행 1995년 행정안전부의 KBS 교향악단 음원(의식의 노래) 배포 이후에도 2000년대 후반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90년대 SBS가 개국한 이후에는, 1993년부터 선명회 합창단이 부른 애국가 사용을 하기 시작하였고, EBS도 마찬가지로 1993년에 제작한 자체 애국가 사용을 한 적이 있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 SBS가 제작한 국립합창단과 선명회합창단이 부른 방송 애국가가 2010년 12월 31일까지 사용되어 이후 2011년 1월 1일에 제작한 과천시립예술단이 부른 애국가로 바뀌었고, 같은 해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KBS 교향악단이 배포한 YBM 서울음반의 "의식의 노래" 애국가를 통해 제작, 현재까지도 방송사와 학교 및 공공기관에서 널리 사용되어 이후 행정안전부의 대표 음원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모든 방송국에 확대 편성되었지만, 2005년 저작권 기증 이후에도 저작인접권으로 인해 국민의례 용도로 제한적인 사용이 가능했었다. 2018년 12월 18일 박인영이 작곡한 애국가를 편곡하였으며,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서울시합창단이 공동으로 문화체육관광부한국저작권위원회가 제작 · 배포하였다. 새 편곡 음원 애국가는 국민의례와 더불어 상업적으로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한 편곡 음원이다. 2019년 3월 최초로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SBS가 처음으로 사용을 시작했으며, 9월 이후에 기독교방송, 가톨릭평화방송, TBS 시민의 방송으로 확대되었다. 2020년 들어 1월에 한국교통방송, 3월에는 마포공동체라디오, 5월에는 EBS와 YTN, 국회방송이 8월 19일에 금강공동체라디오로, 2021년 하반기에는 KTV 국민방송으로 확대 편성되었다.[34]

2018년 12월 박인영이 편곡한 문화체육관광부한국저작권위원회가 제작 · 배포한 애국가를 사용하였으며, 2020년 이후 모든 국경일과 국가기념일, 기념식 실황 중계의 애국가 제창 및 [https://www.youtube.com/watch?v=_D1SH3FiEDQ 연주 영상]으로 나오고 있다.[34]

KBS 교향악단 (현행 대표음원)
TVMBC(MBC TV, 지상파 / MY MBC, 지상파 DMB) · KBS (KBS 1TV·KBS 2TV, 지상파 / U-KBS STAR, U-KBS HEART 지상파 DMB) · OBS 경인TV(지상파)
MBN(MBN 플러스, 종합편성) · 채널A(채널A 플러스, 종합편성) · TV조선(방송 점검 시작 전후, 종합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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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MBC(MBC 표준FM, MBC FM4U) · KBS(KBS 제1라디오, KBS 제2라디오(해피FM), KBS 제3라디오(사랑의 소리 방송), KBS 제1FM(클래식 FM), KBS 제2FM(Cool FM), KBS 한민족방송(제1방송 시작시)), 국방FM, 극동방송(전주 변형판)
KNN(KNN 러브FM, KNN 파워FM) · TJB 파워FM(방송시작) · UBC 그린FM(방송종료) · KBC 마이FM ·TBC 드림 FM · iFM 경인방송 · TBS(TBS FM, TBS eFM) · 부산영어방송 · 아리랑 라디오 · 라디오코리아(LA 한인방송)
가톨릭평화방송(CPBC FM, 대전·광주·부산지역) · 한국교통방송(강원 및 전북을 제외한 전 지역) · OBS 라디오
성남FM · 세종FM · 한밭FM (이상 공동체라디오)
서울시립교향악단 및 서울시합창단 (2018년 새버전)
TVSBS(SBS TV 지상파, SBS U TV 지상파 DMB) · JIBS(JIBS TV 지상파) · JTV(JTV TV 지상파) · CJB(CJB TV, 지상파)
UBC(UBC TV, 지상파) · TBC(TBC TV, 지상파) · G1(G1 TV, 지상파) · TJB(지상파TV) · KBC(지상파TV) ·KNN(KNN TV, 지상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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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 국민방송(일반유선) ·TBS(TBS 시민의 방송) · YTN(YTN DMB 지상파 DMB)
라디오기독교방송(CBS 표준FM, CBS 음악FM) · 가톨릭평화방송(CPBC FM, 서울·대구지역)
한국교통방송(강원) · 금강FM(공동체 라디오) · 마포FM(공동체 라디오) · 수원공동체라디오(공동체 라디오) · EBS (EBS FM) · YTN(YTN 라디오)
그 외의 음원
과천시립예술단
(SBS 현행)
SBS(SBS 파워FM · SBS 러브FM 라디오 / SBS V RADIO DMB 라디오)
국악 라디오국악방송(국립국악원 국악관현악단 현행 음원) · 불교방송(김영동 편곡 국악)
원음방송(국립국악원 국악관현악단 1994년판 음원)
국립합창단
선명회합창단
(옛 SBS)
G1 Fresh FM · CJB JOY FM · JIBS 뉴파워FM · TJB 파워FM(방송종료)
그 외의 TV방송음원JTV 매직FM(신디사이저 반주)아리랑 TV(옛 MBC TV판 음원을 사용중이다.) 시민방송(옛 MBC TV판 음원을 사용중이다.)
그 외의 라디오방송음원JTV 매직FM(신디사이저 반주) · KBS 한민족 방송(제 1,2방송 종료시 옛 EBS판 애국가가 나온다)
기독교방송(울산표준, 전북표준, 대구음악FM 한정으로 옛 EBS판 애국가가 나온다)
울산문화방송(옛 EBS판 애국가가 나온다) · MBC 경남(라디오 한정, 아리랑국제방송과 같은 음원을 사용중이다)
포항문화방송(FM 한정으로 피아노 반주 음원을 사용중이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방송종료 한정으로 피아노 반주 음원을 사용중이다.) · 자유의 소리(애국가 음원 제작년도 미상)
남해FM(공동체라디오, 1970년대 KBS 애국가 음원을 사용중이다.)
연제공동체라디오(공동체라디오, 애국가 음원 제작년도 미상)
옛 KBS 한국방송 음원
(사장조)
한국교통방송(전북) · 안동문화방송 · UBC 그린FM(방송시작 한정) · KBS 한민족 방송(제2방송 시작시 한정)



광복절 이후,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대통령령에 의해 국가 「애국가」는 안익태 작곡으로 정해졌다.[34]

또한, 한국의 각 방송국에서는 그날의 방송 시작·종료 시각 (24시간 방송을 하는 라디오에서는 하루의 기점이 되는 시간대, 대략 오전 5시 전)에 애국가를 연주하게 되어 있으며, KBS의 각 채널에서는 방송 시작 (기점) 시간 전에 이를 풀 코러스로 연주한다. 그 외, 한국의 민방, MBC와 SBS 등에서도 흘러나온다. 연주 중에는 여러 가지 풍경이나 국격을 반영하는 영상 (근대 올림픽이나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한 사람의 영상이나, 대한민국 군 병사가 근무하는 광경, 공장과 명승지, 서울특별시의 풍경이나 일상생활의 광경)이 흘러나온다.[34]

한국의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한 시험 중 하나에, "애국가 1절을 (가사를 보지 않고) 부르기"라는 항목이 있다.[17]

참고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국가도 「애국가」라는 이름이지만, 가사도 멜로디도 전혀 다른 것이다.[34]

4. 가사

애국가의 가사는 1절에서 4절까지, 그리고 후렴으로 구성되어 있다.

애국가 가사
한국어 원문한글한자매큔-라이샤워 표기법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영어 번역[13]일본어 번역


4. 1. 원문 및 한글 표기

1942년에 불린 애국가 녹음


'''1절'''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절'''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절'''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영어 번역[13]


4. 2. 로마자 표기 및 번역



한글 원문한글·한자 혼용로마자 표기 (문화관광부 2000년식)일본어 번역



영어 번역[13]


5. 논란

애국가는 작사자와 작곡가, 저작권, 표절 등 여러 논란에 휩싸여 왔다.

작사자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윤치호105인 사건 이후 친일 행적을 보였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38] 작곡가 안익태 역시 생전에 친일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1920년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애국가 채택을 두고 논란이 있었으나, 김구는 "작사·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라며 반박했다고 전해진다.[24]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35] 1977년 한국음악협회 회장 조상현은 표절 의혹,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등을 이유로 새 국가 제정을 건의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2006년에는 안익태가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한국 환상곡"과 동일한 멜로디가 사용된 "만주국 축전 음악"을 연주한 필름이 발견되어 논란이 일었다.[18]

애국가의 저작권은 오랫동안 안익태 유족에게 있었으며, 이로 인해 저작권료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프로축구단이 경기에서 애국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36] 2005년 유족의 저작권 기증으로 문제는 해결되었다.[37]

2019년에는 애국가의 친일성 문제와 안익태의 친일 및 친나치 행적이 지적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가 교체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5. 1. 표절 논란

애국가와 오 도브루자의 땅이여의 선율을 비교하는 악보


1964년 제3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초대된 지휘자 피터 니콜로프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서울에서 받은 대우가 좋지 않다고 불평하고 음악제를 추진한 안익태를 비난하며 애국가가 도브리치 시의 시가인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й|"도브루자 땅이여"bg)와 많이 닮았다고 주장했다.[35] 그는 기자회견에서 그 노래를 부르며, "만약 불가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부른다면, 한국인들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두 곡은 첫 소절이 비슷하지만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약박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 〈애국가〉는 강박으로 시작하며, 전체적으로 가락의 분위기가 다르다. 안익태가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이고, 그가 처음으로 유럽에 간 것은 이듬해인 1936년이었기 때문에 그가 불가리아 민요를 접했을 가능성은 낮다. 또한 니콜로프의 논리는 1966년 안익태의 전기인 김경래의 『안익태의 영광과 슬픔, 코리아 판타지』에서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하기 위해 필라델피아 유학시절 무려 40여 개국의 국가를 수집했다. 또한 세계 각국의 민요, 가곡, 성가곡을 모아 애국가 작곡을 위한 기초 자료로 삼았다"는 증언에 맞지 않는다고 분석되기도 한다.

1976년 이유선은 그의 책 《한국양악백년사》에서 위의 표절 문제를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완전한 민주독립국가이니만큼 하루 속히 국가를 새로 제정해야 할 것이다”고 썼다. 이에 안익태기념사업회 측은 반론자료와 함께 정부 각 부처에 진정서를 보냈다. 문화공보부와 국회사무처는 애국가가 30년 동안 국가 역할을 한 점으로 볼 때 “명확한 근거 없이 표절 여부를 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발표했다.

애국가의 작사자로 유력히 추정되는 윤치호가 말년에 일본 제국의 관료로 일했다는 점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윤치호는 105인 사건 때 수감을 당한 적이 있는 근대 개화 사상을 전파한 지식인으로서 일제 초기에는 독립 운동가였지만, 105인 사건 후 전향하면서 30여 년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위해 앞장섰던 것이다.[38] 또한 작곡가인 안익태도 생전에 친일 활동을 했다 하여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한다.

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개사하였다는 논란은 1920년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돌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애국가의 채택을 놓고 임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임시정부의 지도자 중 한 명이던 김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24]'라며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24]'고 반박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곡의 음악성에 관하여, 그 선율 자체가 처음에 못갖춘마디처럼 들려, 이로 인해 뒷부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있다.[39] 실제로 2006년에 YB가 편곡한 애국가에서는 첫마디만 못갖춘마디로 바뀌어 있다.

1977년 한국음악협회의 회장 조상현은 애국가의 표절 의혹과 함께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소극적인 내용의 가사 등의 이유를 들어 1월 26일 총회에서 새 국가를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다음 통과되면 이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총회에서 새 국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도 정부가 국가를 새로 제정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정부는 앞으로 국가를 새로 만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애국가의 친일성 문제와 안익태의 친일 및 친나치 행적이 지적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가 교체 청원이 나오기도 했다.

5. 2. '만주국 축전 음악' 전용 의혹

2006년 3월 보도에 따르면, 1942년 독일 베를린 필하모니(구 필하모니)에서 개최된 "만주국 건국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안익태가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하여 자신이 작곡한 "만주국 축전 음악"을 연주하는 7분짜리 필름이 발견되었다.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의 음악학과 유학생이 이 필름을 발견하여 조선일보에 제공했으며, 필름에 담긴 "만주국 축전 음악"에는 "한국 환상곡"과 동일한 멜로디가 사용되었다고 한다.[18]

필름 발견자는 애국가 가사 "빛나는 산과 강, 한반도, 나의 사랑, 한반도, 그대들 뿐이야" 부분과 거의 같은 선율이 등장하며, 가사 내용은 다르지만 "만주국 축전 음악"과 "한국 환상곡"의 합창 부분 선율은 누구라도 동일하다고 느낄 정도라고 주장한다.[18]

5. 3. 저작권 문제

과거에는 애국가의 저작권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안익태의 유족이 그 권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1992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신탁을 통해 저작권료를 받고 있었다. 2003년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프로축구단 경기에서 애국가를 무단으로 사용한 두 구단을 고소하여 논란이 불거졌다.[36]

이후 애국가의 저작권을 국가에서 사들이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2005년 3월 16일 안익태의 유족이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에 저작권을 기증하여 문제는 일단락되었다.[37] 안익태가 1965년에 사망했으므로, 이 곡의 저작권은 적어도 2036년까지 만료되지 않을 예정이었다.[8] 2003년 12월, 두 개의 대한민국 프로 축구 클럽이 이 곡을 연주한 것에 대해 저작권 소유자 그룹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9] 그러나 2005년 3월 16일, 작곡가의 미망인 롤리타 안과 그의 가족은 "애국가"에 대한 모든 권리를 대한민국 정부에 포기했고,[10] "애국가"는 그 이후 공유 저작물이 되었다.

안익태는 1965년에 사망했으며, 사망 후 50년 후인 2015년까지 저작권이 존재했다. 이 때문에 "애국가"는 국가로서는 드물게 저작권료 지불 문제가 있었다. 2003년 12월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가 경기 전에 이 곡을 연주한 K리그의 두 팀을 고소했고,[19] 2005년 3월 안익태의 유족은 저작권을 대한민국 정부에 기증하여, 퍼블릭 도메인 처리가 되었다.

5. 4. 친일 행적 관련 논란

대한민국의 애국가 작사자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윤치호는 말년에 일본 제국의 관료로 일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38] 윤치호는 105인 사건 때 수감된 적이 있는 근대 개화 사상가였으나, 105인 사건 이후 전향하여 30여 년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위해 앞장섰다.[38] 작곡가 안익태 또한 생전에 친일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적 논란이 있다.

윤치호가 작사하고 안창호가 개사했다는 논란은 1920년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있었으며, 이 때문에 애국가 채택을 두고 임시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임시정부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김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24]"라며 "작사·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24]"고 반박했다고 전해진다.

2019년에는 애국가의 친일성 문제와 안익태의 친일 및 친나치 행적이 지적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가 교체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5. 5. 기타 논란

애국가의 작사자로 유력하게 추정되는 윤치호가 말년에 일본 제국의 관료로 일했다는 점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윤치호는 105인 사건 때 수감된 적이 있는 근대 개화 사상을 전파한 지식인으로서 일제 초기에는 독립 운동가였지만, 105인 사건 후 전향하면서 30여 년을 일본의 식민 지배를 위해 앞장섰다.[38] 또한 작곡가인 안익태도 생전에 친일 활동을 했다 하여 정치적 논란이 되기도 한다.

윤치호가 짓고 안창호가 개사하였다는 논란은 1920년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돌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애국가의 채택을 놓고 임정에서도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임시정부의 지도자 중 한 명인 김구는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한 동지에게 '우리가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했는데 누가 지었는가가 왜 문제인가[24]'라며 '작사ㆍ작곡가의 성향보다 애국가 안에 담긴 정신이 더 중요하다[24]'고 반박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곡의 음악성에 관하여, 그 선율 자체가 처음에 못갖춘마디처럼 들려, 이로 인해 뒷부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 있다.[39] 실제로 2006년에 YB가 편곡한 애국가에서는 첫마디만 못갖춘마디로 바뀌어 있다.

1977년 한국음악협회의 회장 조상현은 애국가의 표절 의혹과 함께 가사와 선율의 불일치, 소극적인 내용의 가사 등의 이유를 들어 1월 26일 총회에서 새 국가를 만들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 다음 통과되면 이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발표했다. 하지만 총회에서 새 국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에도 정부가 국가를 새로 제정하려고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정부는 앞으로 국가를 새로 만들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9년 애국가의 친일성 문제와 안익태의 친일 및 친나치 행적이 지적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국가 교체 청원이 나오기도 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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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애국가 http://encykorea.aks[...] Academy of Korean Studies 2013-10-08
[3] 웹사이트 애국가[愛國歌] http://www.doopedia.[...] Doosan Corporation 2013-10-08
[4] 웹사이트 애국-가愛國歌 http://krdic.naver.c[...] NAVER Corp. 2013-10-08
[5] 웹사이트 국가상징 > 애국가 > 애국가의 내력 https://theme.archiv[...]
[6] 간행물 애국가 (愛國歌)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7] 웹사이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 대한제국 애국가 https://www.much.go.[...]
[8] 웹사이트 애국가 틀때도 저작권료 내야돼? http://www.hani.co.k[...] The Hankyoreh 2013-10-11
[9] 웹사이트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48주기 추모식 http://news1.kr/arti[...] News1 Korea 2013-10-11
[10] 웹사이트 Republic of Korea – National Anthem https://archive.org/[...] Internet Archive 2019-06-24
[11] 웹사이트 The Story Behind Aegukga https://overseas.mof[...] 2020-06-05
[12] 뉴스 Ordeal of 'Aegukga' https://www.koreatim[...] 2020-05-20
[13] 웹사이트 Country. Anthems http://15cwd.pa.go.k[...] 2020-05-27
[14] 뉴스 "[単独]国歌の作詞家は尹致昊と政府は既に知っていた証拠発掘。" http://v.media.daum.[...]
[15] 뉴스 "[単独]国歌の作詞家は尹致昊と政府は既に知っていた証拠発掘。" http://v.media.daum.[...]
[16] 뉴스 「愛国歌」の作詞者は誰? 新資料発見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13-06-18
[17] 뉴스 韓国国歌が歌えない? では国籍あげません-中国人女性「落第」に合法判決 http://jp.wsj.com/ar[...] 2014-10-21
[18] 뉴스 h탄생 100주년 안익태 '친일논란' 휩싸일듯 ’애국가’ 정체성 문제 등 파장 예고 학술적 검증 여지 많아 신중히 접근해야 입력 : 2006.03.08 http://news.chosun.c[...]
[19] 문서 http://ocn.amikai.co[...]
[20] 문서 日本海
[21] 문서 ムクゲ
[22] 문서 3,000里
[23] 문서 韓国人
[24] 웹사이트 "애국가 수정·교체 주장은 부당" http://search.ytn.co[...]
[25] 문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애국가를 국가(國歌)로 규정한 법적 근거는 없으나 관습상 인정된다고 밝혔다.
[26] 문서 http://www.mcst.go.k[...]
[27] 뉴스 작사자 밝힌 외국문헌 발견… '애국가 作詞는 尹治虎' 확정되나? http://www.koreasymb[...] 조선일보 2006-03-07
[28] 웹인용 "작사자 규명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http://www.ilyosisa.[...] 2011-03-21
[29] 뉴스 단재 한시·'항일가사집' 첫 공개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6-02-27
[30] 뉴스 애국가에 대한 소고 http://www.mediajeju[...] 미디어제주 2008-08-28
[31] 뉴스 애국가 작사자, 과연 누구인가? http://media.daum.ne[...] 공감코리아 2005-11-29
[32] 서적 한국 기독교청년회 운동사 정음사 1978
[33] 서적 한국찬송가100년사:해설,역사 예솔출판사 2002
[34] 문서 간혹 [[2020년]] [[현충일]] 및 [[6.10 민주항쟁|6.10 민주항쟁 기념식]], [[2021년]] 제102주년 [[삼일절]] 기념식, [[현충일]] 기념식 한정되었다.
[35] 문서 듣기 http://libdgabe.dobr[...]
[36] 뉴스 애국가 틀때도 저작권료 내야돼? http://www.hani.co.k[...] 2003-12-12
[37] 웹인용 애국가 https://gongu.copyri[...] 2021-08-25
[38] 뉴스 오마이뉴스 기사 http://www.ohmynews.[...]
[39] 뉴스 애국가, 그 선율 참 이상하다 https://web.archive.[...] 서울대저널 201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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