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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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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시대 연표는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건국부터 1945년 일제강점기 종결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정리한 문서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 한양 천도, 조선경국전 편찬, 왕자의 난 등을 겪으며 국가 기틀을 다졌고, 세종 시대 한글 창제와 같은 문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이후 사림과 훈구 세력 간의 갈등, 붕당 정치, 탕평책 시행, 세도 정치와 민란의 시기를 거치며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1890년대에는 개항과 갑오개혁, 아관파천 등의 사건을 겪었으며, 대한제국 선포와 광무개혁을 추진했지만,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 통치를 받았다. 일제강점기에는 3.1 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며, 1945년 광복을 맞이했다.

2. 조선 건국과 초기 발전 (1392-1469)

조선은 1392년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국되어 1469년 성종 즉위까지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시기를 거쳤다. 건국 직후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수도를 한양(현재의 서울)으로 옮겼으며, 통치 규범인 《조선경국전》을 편찬했다.

그러나 건국 초기에는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의 난과 같은 정치적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수습하고 즉위한 태종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제도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이후 세종 대에는 집현전을 중심으로 학문이 발전하고 훈민정음이 창제되는 등 문화적으로 크게 융성하였다.

세종 사후 문종과 단종의 짧은 재위 기간을 거쳐, 1455년 세조가 계유정난을 통해 집권하였다. 세조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 제도를 재정비하고 국방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세조의 뒤를 이은 예종 대에는 원상제가 도입되었으며, 1469년 성종이 즉위하면서 조선은 안정적인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성종 초기에는 호패법이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는 조선 왕조의 건국과 혼란, 그리고 제도 정비를 통한 안정화 과정을 보여준다.

2. 1. 건국 과정 (1392-1394)

1392년 7월,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며 조선을 건국하였다. 1393년에는 국호를 '조선'으로 공식적으로 정하였다. 1394년에는 조선의 기본 법전인 조선경국전이 편찬되었고, 새로운 수도 한양에 경복궁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같은 해 10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는 한양 천도가 이루어졌다.

2. 2. 초기 정치와 제도 정비 (1394-1469)

1394년, 조선은 수도를 한양(현재의 서울)으로 옮기고, 정도전 등이 중심이 되어 조선 통치의 기본 법전 역할을 한 《조선경국전》을 편찬하며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경복궁 건설이 시작되었으나 완공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건국 초기 왕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으로 1398년(제1차 왕자의 난)과 1400년(제2차 왕자의 난) 두 차례에 걸쳐 왕자의 난이 발생하였다. 이 혼란 속에서 정종이 잠시 왕위에 올랐다가, 결국 태종이 1400년 11월 조선의 제3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태종은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정종 때 잠시 개경으로 옮겨졌던 수도를 1404년 다시 한양으로 옮겼다. 같은 해 창덕궁경복궁이 완공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408년 5월 세상을 떠났다.

1418년 8월, 세종이 제4대 임금으로 즉위하면서 조선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다. 1421년에는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이 확대 개편되었고, 1446년에는 훈민정음(한글)이 반포되어 백성들이 쉽게 글을 익힐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1450년에는 《고려사》가 완성되어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어 1450년 2월 문종이 즉위했으나 재위 기간이 짧았고, 1452년 5월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455년 6월, 세조(수양대군)가 계유정난을 통해 단종을 몰아내고 제7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세조는 왕권 강화를 추구했으며, 1457년 9월에는 금성대군 등이 주도한 단종 복위 운동을 진압하였다. 또한 국가 재정 확보를 위해 1460년 호전을 복구하고, 1461년 형전 개편을 완성하는 등 법제 정비에도 힘썼다. 1462년에는 병기 제조를 지시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세조의 뒤를 이어 1468년 9월 예종이 즉위하였고, 이 시기에 원상제가 처음 시행되었다. 예종 역시 재위 기간이 짧아 1469년 11월 성종이 제9대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성종 즉위 직후인 1469년에는 호패법이 폐지되었다.

3. 사림 정치와 붕당정치 (1469-1724)

호패법 폐지1479년올적합(兀狄哈) 본거지 점령1484년 ~ 1489년동국여지승람, 삼국사절요, 동문선 등 서적 출간1485년조선 법전 경국대전 완성1494년12월 연산군 조선 제 10대 임금으로 등극1498년무오사화 발발1504년갑자사화 발발1506년중종반정 발발
9월 중종 조선 제 11대 임금으로 등극1512년임신조약 체결
야인 내침1515년조광조 등장1516년주자도감 설치1519년반정공신 위훈 삭제 사건
기묘사화 발발1536년찬집청 설치1544년11월 인종 조선 제 12대 임금으로 등극1545년7월 명종 조선 제 13대 임금으로 등극
을사사화 발발1547년양재역 벽서 사건1555년을묘왜변 발발1559년임꺽정 출몰1565년문정왕후 사망1567년7월 선조 조선 제 14대 임금으로 등극1575년사림 간의 대립 심화 (동인서인 분열)1583년이탕개의 난1587년왜군의 전라도 침입 (정해왜변)1590년조선 통신사 왜에 파견1591년건저의 문제로 서인 실각1592년4월 임진왜란 발발1594년훈련도감 설치
송유진의 난1596년이몽학의 난1597년정유재란 발발1608년2월 광해군 조선 제 15대 임금으로 등극
창덕궁 준공
선혜청 설치1609년도쿠가와 막부와 기유약조 체결1611년농지 조사 측량 (양전 실시)
정인홍 등 청금록에서 이름 삭제1612년김직재의 옥1613년칠서의 옥 (계축옥사)1615년능창군 추대 사건
신경희 옥사1617년폐모론 대두, 1618년 인목대비 폐비1619년강홍립 후금에 투항 (사르후 전투)1623년인조반정 발발
3월 인조 조선 제 16대 임금으로 등극1624년이괄의 난1627년정묘호란 발발1636년병자호란 발발1649년5월 효종 조선 제 17대 임금으로 등극1651년김자점 역모 사건1652년어영청 개편 강화1655년국방력 증강 작업1658년나선정벌 (2차)1659년5월 현종 조선 제 18대 임금으로 등극
기해예송 발생1674년갑인예송 발생
8월 숙종 조선 제 19대 임금으로 등극1680년경신환국 (경신대출척)1689년기사환국1694년갑술환국1712년백두산정계비 건립1720년6월 경종 조선 제 20대 임금으로 등극1721년연잉군(영조) 왕세제(王世弟)에 책봉1722년삼급수설(三急手說) 고변
신임사화 (임인옥사)1724년8월 영조 조선 제 21대 임금으로 등극


4. 탕평 정치와 개혁 노력 (1724-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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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사건
1724년8월 영조 조선 제 21대 임금으로 등극
1725년압슬형 폐지
1727년정미환국
1728년이인좌의 난 발발
1729년감란록 지음
1729년숙묘보감 편찬
1732년퇴도언행록 간행
1736년경국대전 보강 (속대전)
1762년사도세자 사사 (임오화변)
1772년탕평책 실시
1776년3월 정조 조선 제 22대 임금으로 등극
1776년규장각 설치
1779년규장각 검서각 설치
1780년홍국영 축출
1781년규장각 확대
1791년신해박해
1800년7월 순조 조선 제 23대 임금으로 등극
1801년공노비 해방
1801년천주교 금지령
1802년김조순의 여식 순원왕후 간택
1811년홍경래의 난 발발
1827년효명세자 (익종) 대리청정
1834년11월 헌종 조선 제 24대 임금 등극
1836년남응용의 모반사건
1844년민진용의 옥
1845년영국 군함 불법 측량 후 퇴거
1846년프랑스 세실 제독 함대가 국서 전달
1849년6월 철종 조선 제 25대 임금으로 등극
1860년동학 탄생
1862년진주 민란
1863년12월 고종 조선 제 26대 임금 등극


5. 세도 정치와 민란의 시대 (1800-1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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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사건
1800년7월 순조 조선 제 23대 임금으로 등극
1801년공노비 해방
1801년천주교 금지령 (신유박해)
1802년김조순의 여식 순원왕후 간택 (안동 김씨 세도정치 시작)
1811년홍경래의 난
1827년효명세자 (익종) 대리청정
1834년11월 헌종 조선 제 24대 임금 등극
1836년남응용의 모반사건
1844년민진용의 옥
1845년영국 군함 불법 측량 후 퇴거 (사마랑 호 사건)
1846년프랑스 세실 제독 함대가 국서 전달 (병오박해 관련)
1849년6월 철종 조선 제 25대 임금으로 등극
1860년동학 탄생 (최제우)
1862년진주 민란 (임술농민봉기)
1863년12월 고종 조선 제 26대 임금 등극


6. 개항과 근대 국가 수립 노력 (1863-1897)

연도사건
1863년 12월고종 조선 제 26대 임금으로 즉위.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어린 고종을 대신하여 섭정을 시작하다.
1866년병인박해 발발. 흥선대원군 정권이 천주교를 탄압하여 프랑스 선교사와 수많은 조선인 신자들이 처형된 사건이다. 이는 이후 병인양요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1866년제너럴 셔먼호 사건 발생. 통상을 요구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평양 관민이 불태운 사건이다. 이 사건은 훗날 신미양요의 빌미가 되었다.
1867년흥선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 중건 완료. 임진왜란 때 불탄 이후 폐허로 남아있던 경복궁을 재건하여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하였으나, 공사 과정에서 막대한 재정이 소요되고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어 원성을 사기도 했다.
1871년신미양요 발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삼아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하였다. 조선군은 광성보 등지에서 치열하게 저항하였고, 미군은 큰 피해를 입고 결국 물러났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였다.
1873년최익현위정척사파 유생들의 상소와 고종의 친정(親政) 의지로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직접 정치를 돌보기 시작하다.
1875년운요호 사건 발생.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 앞바다에 불법으로 접근하여 조선 수비대와 교전을 벌인 사건이다. 일본은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개항을 강요하였다.
1876년강화도 조약 (정식 명칭: 조일수호조규) 체결.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군사적 압력 하에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세 항구를 개항하게 되었으며, 이는 조선이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는 시작점이 되었다.
1881년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이 저술한 조선책략이 국내에 유입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이 중국, 일본,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국과의 수교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2년임오군란 발발. 구식 군대인 오군영 군인들이 신식 군대인 별기군과의 차별 대우와 봉급 미지급에 불만을 품고 일으킨 난동이다. 난병들은 일본 공사관을 습격하고 궁궐을 장악했으며, 잠시 흥선대원군이 재집권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진압되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내정 간섭이 더욱 심화되었다.
1882년제물포 조약 체결. 임오군란 당시 일본 공사관이 습격당한 것에 대한 배상과 일본 공사관 경비 병력 주둔 등을 내용으로 일본과 체결한 불평등 조약이다.
1882년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임오군란 진압을 도운 청나라와 체결한 조약으로, 청나라 상인의 조선 내륙 통상 및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등 청의 경제적 침투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882년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선책략의 영향 등으로 미국과 수교하며 맺은 조약으로,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다.
1884년갑신정변 발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개화파 인사들이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일으킨 정변이다.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하여 정권을 장악하고 개혁 정책을 발표했으나, 청나라 군대의 개입과 민중의 지지 부족 등으로 3일 만에 실패로 돌아갔다.
1894년동학 농민 운동 발발.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되어,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 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반봉건, 반외세를 기치로 내걸고 봉기한 대규모 민중 운동이다. 농민군은 황토현,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에게 승리하고 전주성을 점령하는 등 기세를 떨쳤다.
1894년전주 화약 체결. 동학 농민군과 조선 정부군 사이에 맺어진 휴전 협정이다. 농민군은 폐정개혁안의 실시를 요구하며 자진 해산하였고, 정부는 농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여 집강소 설치를 허용했다.
1894년청일 전쟁 발발. 동학 농민 운동 진압을 위해 조선 정부가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하자, 톈진 조약을 빌미로 일본도 군대를 파병하면서 조선 땅에서 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일본의 승리로 끝났으며, 이 전쟁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강화되었다.
1894년갑오개혁 (제1차, 제2차) 실시. 청일 전쟁 중 일본의 영향력 아래 김홍집을 중심으로 한 내각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이다. 군국기무처를 설치하여 과거 제도 폐지, 신분제 철폐, 조세 금납화, 도량형 통일 등 다방면에 걸친 개혁을 단행했으나, 일본의 간섭 속에서 진행되었다는 한계를 지닌다.
1895년을미사변 발생. 삼국 간섭으로 조선 내에서 친러 세력이 강화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 낭인과 군인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한 천인공노할 만행이다.
1895년을미개혁 (제3차, 제4차) 실시. 을미사변 이후 수립된 김홍집 내각이 추진한 개혁으로, 단발령 시행, 태양력 채택, 종두법 실시, 소학교 설치 등을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강제적인 단발령 시행은 전국적인 을미의병 봉기를 촉발하는 등 큰 반발을 샀다.
1896년아관파천.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순종)가 비밀리에 궁궐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이로 인해 을미개혁은 중단되었고, 친러 내각이 수립되어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1897년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으로 환궁하다. 독립협회 등 자주독립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진 결과였다.
1897년 2월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였다. 이는 조선이 청나라와의 종속 관계를 청산하고 자주독립 국가임을 국내외에 알리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7. 대한제국 선포와 좌절된 근대화 (1897-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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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사건
1897년고종, 아관파천을 마치고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환궁.
1897년 2월고종,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 광무개혁 시작.
1897년독립협회, 중추원의회 형식으로 개편할 것을 건의.
1898년독립협회 주도로 관민공동회와 만민공동회 개최. 자주독립, 자유민권, 자강개혁 등을 주장.
1898년보수 세력의 황국협회와 정부의 탄압으로 독립협회 강제 해산.
1898년조병식을 중심으로 한 보수 내각 수립.
1898년러일 협약 체결. 한반도에서의 양국 세력권 분할 시도.
1898년안경수 등이 고종 황제를 폐위하려다 발각된 사건 발생.
1898년김홍륙이 고종 황제를 독살하려다 실패한 사건 발생.
1899년대한국 국제 반포. 황제 중심의 전제군주제 국가임을 명시.
1904년용암포 조차 사건. 러시아가 용암포 조차를 요구하며 일본과 대립.
1904년장호익 등이 고종 황제 폐위를 음모하다 발각.
1904년러일 전쟁 발발. 한반도가 전쟁터가 됨.
1904년한일 의정서제1차 한일 협약 체결.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 재정 고문을 파견하여 내정 간섭 시작.
1905년제2차 한일 협약 (을사늑약) 강제 체결.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1905년통감부 설치.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하여 대한제국 통치 시작.
1907년한일 신협약 (정미7조약) 체결. 차관정치 시작으로 내정 간섭 심화.
1907년대한제국 군대 강제 해산. 의병 운동 격화.
1907년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 특사 파견. 을사늑약의 부당함과 국권 회복 노력 알리려 했으나 실패.
1907년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킴.
1907년 7월순종이 대한제국 제 2대 황제로 즉위.
1909년기유각서 체결.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감옥 사무권 박탈.
1909년안중근 의사,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
1909년남한 대토벌 작전. 일제가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대규모 군사 작전 전개.
1910년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제3대 통감으로 부임. 한일 병합 준비.
1910년 8월한일 병합 조약 (경술국치) 강제 체결. 대한제국 멸망 및 일제 강점기 시작.


8. 일제강점기 (1910-1945)

연도사건
1910년데라우치 제3대 통감으로 부임
1910년 8월한일병합조약 체결 (경술국치)
1919년 3월3·1 운동 발발
1919년사이토 마코토 조선 제3대 총독 부임
1919년일제, 소위 문화 통치 표방
1920년회사령 철폐
1920년산미증식계획 시작
1923년관세 철폐
1926년 4월순종황제 붕어
1926년 6월6·10 만세 운동 발발
1928년신은행령 발표
1931년만주사변 발발, 일제가 만주 괴뢰국을 세우고 푸이를 황제로 추대
1932년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훙커우 공원 의거
1941년태평양 전쟁 발발
1945년 8월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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