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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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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낙타 기병은 낙타를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병종으로,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명과 국가에서 사용되었다. 기원전 853년 아랍에서 처음 기록되었으며, 페르시아, 로마 제국 등에서 활용되었다. 낙타 기병은 사막 지형에서의 기동성을 활용한 게릴라전에 능했으며, 중무장한 부대도 존재했다. 근대에는 유럽 식민지 군대에서 사막 순찰에 활용되었고, 오늘날에도 모로코, 이집트, 인도 등에서 국경 경비 및 의장대로 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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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기병
기본 정보
13세기 몽골 전사
13세기 몽골 전사
유형군사 부대
역할정찰
기습
수송
전투
규모부대 규모에 따라 다름
장비낙타



방패
갑옷
역사적 기간고대 ~ 현대
역사
기원아라비아 반도
사용 국가아랍 제국
로마 제국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
프랑스
영국
인도
파키스탄
기타 국가
전술
장점사막 지형에서의 기동성
높은 위치에서의 시야 확보
말에 대한 심리적 우위
단점말보다 느린 속도
험준한 지형에서의 이동 제한
말에 비해 낮은 전투력
현대의 낙타 기병
현대의 낙타 기병일부 국가에서 국경 순찰 및 치안 유지 목적으로 운용
주로 사막 지역에서 활동

2. 역사

낙타는 군사적 동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낙타 기병은 전장에서 활약했을 뿐만 아니라, 사막 지대의 대상(隊商) 경비와 국경 순찰 등의 임무에도 활용되었다.

기원후 6~7세기부터 사하라 사막의 사막화가 가속화되면서, 북아프리카 일대 주민들은 생활 양식을 농업 중심에서 상업 중심으로 바꾸었다. 이들은 아라비아에서 낙타를 들여와 대규모 대상을 조직하고 사막을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하는 데 활용했다. 특히 베르베르인 중 투아레그족은 사하라 사막에서의 통상을 장악하고 낙타를 이용한 사막 전투에 능숙한 전사로 이름을 떨쳤다.

나폴레옹은 이집트 시리아 원정에서 낙타 부대를 사용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낙타 부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식민지 군대에서 사막 치안 및 순찰 업무에 사용되었다. 오스만 제국군은 제1차 세계 대전 전후로 예멘과 헤자즈 군단의 일부로 낙타 중대를 유지했다. 이탈리아는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에서 두바트 낙타 부대를 국경 순찰에 사용했고, 이들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 이탈리아의 오가덴 정복에 참여했다. 스페인령 모로코의 식민 당국도 낙타 부대를 국경 순찰에 사용했으며, 이들은 스페인 내전에서 제한적인 역할을 했다.

인도의 비카네르 번왕국은 비카네르 낙타 기병대라는 부대를 유지하여 1900년 의화단 운동, 1902년 ~ 1904년 소말릴란드 작전,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등에서 활약했다. 자이살메르 번왕국의 보조 방위군도 1948년에 낙타 부대 방위 대대를 창설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낙타는 여전히 일부 국가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로코, 이집트 군대와 준군사 조직인 인도 국경 경비대 등이 낙타 부대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 국경 경비대는 인도-파키스탄 국경을 따라 라자스탄에 위치한 타르 사막의 외딴 지역을 순찰하기 위해 낙타를 사용한다.

2. 1. 고대

1825년 인도 비하르의 푸르비야 낙타 기병


낙타를 군사적 동물로 활용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투에서 아랍 왕 긴디부가 1,000마리의 낙타를 동원했다는 것이다.[28] 이후 기원전 547년 팀브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이 리디아크로이소스를 상대로 낙타 기병을 활용했다. 크세노폰에 따르면, 키루스의 낙타 기병대는 6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리디아의 말이 낙타를 피한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키루스는 물자보급용 마차를 낙타 기병으로 대신하여 끌도록 하는 임시 낙타 군단을 편성하였다. 낙타의 형상과 냄새는 리디아 기병대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전투를 키루스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28]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제2차 그리스 정복에서 수많은 아랍 용병을 모집했는데, 이들은 모두 활을 장비한 낙타 궁병이었다. 헤로도토스는 아랍 낙타 기병대의 수가 2만 명에 달했다고 기록했다. 아라비아와 시리아의 유목민 출신 낙타 용병들은 페르시아에서 척후궁수로 전투에 임했으며, 때로는 낙타 한 마리에 두 명씩 타기도 했다.[29] 헤로디아누스에 따르면, 파르티아 제국의 아르타바누스 4세는 창(콘토스)을 든 중무장 낙타 기병 부대를 거느렸다.[30]

로마 제국도 서기 2세기부터 아라비아 변방 지역에서 모집된 낙타 기병을 활용하였다.[31] 최초의 기록은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에 팔미라에서 창설된 '팔미라 낙타 제1기병대 울피아' (Ala I Ulpia Dromoedariorum Palmyrenorum)였다. 로마 제국 후기에도 호위대와 사막 지대 치안 유지, 정찰 임무 등을 위해 아랍의 낙타 용병 부대가 고용됐다.[32] 이들의 무기는 페르시아식 장검, 활, 단검 등이었다.[33]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이전 문명들도 낙타를 탈것으로 활용하여 낙타 기병을 운용했다.[34] 나바테아 왕국팔미라 제국 군대는 서기 1세기에 아라비아 출신 유목민 부족들로 구성된 낙타 기병과 궁병을 고용했다.[35] 이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낙타에서 내려서 싸우는 방식을 택했다.[36] 7세기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의 세력 확장 당시에도 낙타는 널리 사용되었다.[37] 이후 이슬람 정복 시대에도 아랍인들은 사산 제국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낙타 기병을 운용하였다.[38]

튀르크는 중국 불교 순례자 현장에 따르면 낙타 기병을 사용했는데, 그는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서부 튀르크의 수도 수야브를 방문하여 통야브구 카간과 그의 군대에 대한 묘사를 남겼다.[14]

>''… 그의 군대 나머지 사람들은 모피, 서지와 고급 양모로 옷을 입었고, 창과 깃발, 활이 정돈되어 있었으며, 낙타와 말을 탄 기병들은 멀리까지 뻗어 있었다.''

낙타에 기승한 전사의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낙타의 가축화 시기는 기원전 2500년경으로 늦지만, 말과는 달리 품종 개량 이전부터 현재의 체격이었고 적재량도 말보다 우수했기 때문에, 기승하여 그 위에서 전장을 질주하며 싸운다는 발상은 말보다 더 빨리 싹텄을지도 모른다. 니네베에서 발굴된 기원전 7세기아시리아아슈르바니팔의 궁전 유적 부조에서는 우아이테가 이끄는 아라비아인이 낙타를 타고 아시리아의 기병과 보병과 싸우는 장면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장군 하르파고스가 리디아 군과의 회전에서 낙타를 탄 기병을 편성하여 승리에 기여했다.

농경에 의한 생산을 기대할 수 없는 사막 지대, 특히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벗어난 아라비아에서는 상업이 생활의 주축이었고 대규모 대상을 조직하여 사막을 왕복했다. 사막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는 운반하는 상품이 생사에 직결되어 약탈자도 항상 대상을 노리고 있었고, 대상 쪽에서도 방어를 위해 일상적으로 무장하고 낙타를 타 강한 전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여 양자는 매일 단련되었다. 따라서 사막에서의 대상도 약탈자도 제도화된 훈련을 받지 않아도 뛰어난 전사였고, 낙타 기병도 이러한 무장한 대상이나 약탈자가 소집되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낙타 기병이라는 병종을 제도화하여 육성, 운용하는 것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 2. 중세

낙타를 군사적 동물로 사용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853년 카르카르 전투에서 최대 1,000마리의 낙타를 고용했다고 전해지는 아랍 왕 긴디부이다. 기원전 547년 크로이소스리디아페르시아키루스 2세 사이의 팀브라 전투에서도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크세노폰에 따르면, 키루스의 기병대는 6대 1로 수적으로 열세였다. 그의 장군 중 한 명이 리디아 말들이 낙타를 꺼린다는 정보를 토대로, 키루스는 그의 짐마차에서 낙타 부대를 편성하여 무장한 기병이 짐을 대신하게 했다. 기술적으로 기병으로 고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낙타의 냄새와 모습은 리디아 기병을 공황 상태로 만들고 전투를 키루스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한다.[3]

60년 이상이 지난 후,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리스에 대한 페르시아의 2차 침공 동안 대규모의 아랍 용병을 모집했는데, 이들은 모두 활을 갖추고 낙타를 탔다. 헤로도토스는 리비아 전차병 부대를 포함한 아랍 낙타 기병의 수가 2만 명에 달했다고 기록했다. 아라비아와 시리아의 유목 부족에서 고용된 페르시아 군대의 낙타 기병 용병들은 때로는 한 낙타에 두 명이 타서 기병 궁수로 싸웠다.[4]

헤로디안에 따르면, 파르티아 제국의 왕 아르타바누스 4세는 창(콘토스)을 갖춘 중장갑 병사로 구성된 부대를 고용하여 낙타를 탔다.[5]

로마 제국은 2세기에 아라비아 국경에서 현지에서 모집한 낙타 기병을 사용했다.[6] 이들 중 첫 번째 부대는 트라야누스 황제 치하에서 팔미라에서 모집된 ''알라 I 울피아 드로모에다리움 팔미레노룸''이었다. 아랍 낙타 부대 또는 드로메다리는 후기 로마 제국 시대에 호위, 사막 경찰, 정찰 임무에 고용되었다.[7] 일반적인 무기는 페르시아 스타일의 긴 칼, 활, 단검을 포함했다.[8]

낙타는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이전 문명에서 말로 사용되었다.[9] 기원후 1세기 초부터 나바테아 왕국팔미라 제국 군대는 아랍 기원의 유목 부족에서 모집한 낙타 기병과 궁수를 고용했다.[10] 일반적으로 이러한 징집병들은 낙타 위에서 싸우기보다는 하차하여 도보로 싸웠다.[11] 낙타는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초기 원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12] 그 후 아랍인들은 낙타 기병을 사용하여 사산 왕조와 비잔틴 제국의 적들을 초기 이슬람 정복 동안 기동력으로 제압했다.[13]

튀르크는 중국 불교 순례자 현장에 따르면 낙타 기병을 사용했는데, 그는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에 있는 서부 튀르크의 수도 수야브를 방문하여 통야브구 카간과 그의 군대에 대한 묘사를 남겼다.[14]

>''… 그의 군대 나머지 사람들은 모피, 서지와 고급 양모로 옷을 입었고, 창과 깃발, 활이 정돈되어 있었으며, 낙타와 말을 탄 기병들은 멀리까지 뻗어 있었다.''

낙타에 기승한 전사의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가축화된 시기는 말이 기원전 4000년경인 것에 비해 낙타는 기원전 2500년경으로 훨씬 늦지만, 말과는 달리 품종 개량 이전부터 현재의 체격이었고 적재량도 말보다 우수했기 때문이다. 기승하여 그 위에서 전장을 질주하며 싸운다는 발상은 말보다 더 빨리 싹텄을지도 모른다. 니네베에서 발굴된 기원전 7세기아시리아아슈르바니팔의 궁전 유적의 부조에서는 우아이테가 이끄는 아라비아인이 낙타를 타고 아시리아의 기병과 보병과 싸우는 장면이 있다. 기원전 6세기에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장군 하르파고스가 리디아 군과의 회전에서 낙타를 탄 기병을 편성하여, 그것이 승리에 기여했다.

농경에 의한 생산을 기대할 수 없는 사막 지대, 특히 메소포타미아 시대부터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벗어난 아라비아에서는 상업이 생활의 주축이었다. 대규모 대상을 조직하여 사막을 여러 번 왕복하는데, 사막이라는 가혹한 환경에서는 그 운반하는 상품이 생사에 직결되어 그것을 노리는 약탈자도 항상 대상을 노리고 있었다. 대상 쪽에서도 방어를 위해 일상적으로 무장하고 낙타를 타, 강한 전사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여 양자는 매일 단련되었다. 따라서 사막에서의 대상도 약탈자도 제도화된 훈련을 받지 않아도 뛰어난 전사였고, 낙타 기병도 이러한 무장한 대상이나 약탈자가 소집되는 것이 원인이 되어, 낙타 기병이라는 병종을 제도화하여 육성, 운용하는 것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원후 6~7세기부터 사하라 사막의 사막화 가속으로 환경이 변화하면서, 지금까지 말을 주요 가축으로 하고 올리브 재배를 주로 하는 농경도 하던 북아프리카 일대의 주민은 생활 양식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더 사막에 순응한 생활 양식을 형성하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농업 중심에서 상업을 중심으로 한 생활 양식으로 옮겨가면서, 동시에 대규모 대상들을 위해 사막을 더 안전하고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 낙타를 아라비아에서 들여와 활발하게 이용하게 되었다. 이러한 북아프리카의 주민들 중에서도 특히 강대했던 것이 베르베르인 중에서도 투아레그족이었다. 아라비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투아레그족도 낙타를 이용한 사막에서의 싸움에 정통한 전사였고,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진행된 18, 19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북아프리카에서 힘을 휘두르고 있었다.

2. 3. 근대

Shaffron (낙타 머리 방어구) (낙타용) (터키, 17세기경으로 추정)


thumb (Bedouin) 군대의 병사들, 이크완 (Ikhwan) 군대, 아라비아 반도]]

이탈리아 두바트, 1930년대 소말리아


프랑스나폴레옹이집트-시리아 원정 당시 낙타부대를 고용하였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에 이르러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식민지의 군대에서 사막지대 치안 유지와 순찰 활동을 위해 낙타부대가 활동하게 되었다.

영국 식민지였던 이집트에서는 영국 장교가 낙타군단을 지휘하였으며, 1898년 옴두르만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39] 옴두르만 전투는 당시에도 낙타기병 부대가 회전(會戰)의 한 축으로서 전투에 나선 몇 안되는 사례로 남아 있다. 오스만 제국군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예멘-헤자즈 군단 소속으로 낙타 부대를 운영하였다.

이탈리아 식민지였던 소말리아에서도 1920년대~1930년대에 두바트인의 낙타부대를 고용하였으며 주 임무는 국경 순찰이었다. 두바트인의 낙타부대는 1935년~1936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탈리아의 오가덴 정복 작전에도 참여하였다.

스페인령 모로코에서는 1930년~1956년 모로코 북부 지역에서 '사하라 유목민 부대' (Tropas Nomades del Sahara)의 일부로서 현지인들로 구성된 낙타부대를 활용하였다. 이 역시 주 임무는 국경 순찰 활동이었지만, 1936년~1939년 스페인 내전 당시 모로코 내에서 제한적인 임무활동에 나서기도 하였다.[40]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도 사막지형이 있는 서부 라자스탄 지역을 중심으로 낙타부대를 운영하였다. 특히 비카네르국 (현 라자스탄 비카네르)의 낙타 군단은 영국이 참전한 세계 각지의 전투에 파견되었는데, 대표적으로 1900년 중국의화단 운동, 1902년~1904년 소말릴란드 작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중동 전역이집트 지역 전투가 있다. 특히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수에즈 운하 습격에 나서는 과정에서 낙타 기병대의 돌격으로 오스만군을 격파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중동 전구에서 터키군을 격파하였다. 비카네르국 뿐만 아니라 자이살메르 왕국에서도 보조수비군의 하나로 낙타기병 방어대대를 창설하였다.[45]

2. 4. 현대

인도 공화국 기념일 퍼레이드에 나선 인도 국경수비대 낙타 파견대


정찰 임무에 나선 낙타기병. 에리트레아에서 활동중인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유엔 평화유지군 소속.


유럽 열강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아랍 국가들 중에는 오늘날에도 낙타 부대를 운영하는 곳이 많다. 모로코 왕립군, 이집트군, 요르단 사막 국경순찰대, 인도 국경수비대가 대표적이다.[41] 2019년에는 유럽연합에서 모리타니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에 대한 대테러 지원으로 유목민 부대가 사용할 낙타 250마리를 지원하기도 했다.[42]

인도에서는 1947년~1948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당시 수송 목적으로 낙타를 활용했다. 1951년에는 비카네르국과 자이살메르 왕국의 낙타 부대를 인도 육군 척탄병연대 제13대대로 편입시켰다.[43] 이들은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수송과 전투 임무를 수행하며 파키스탄군의 침투를 막아 휴전 협상에 기여했다.

1965년 전쟁 이후 인도군 낙타 대부분은 인도 국경수비대(BSF)로 넘어갔다.[47] 현대적인 군용 차량 도입으로 낙타는 점차 대체되었지만,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도 척탄병과 국경수비대가 낙타를 활용했다.[47] 제13척탄병대대와 제17척탄병대대는 비카네르와 가드라 지역 전투에서 낙타기병을 활용해 영토를 점령하기도 했다.[45] 인도군에서 전투용 낙타 운용이 중단된 것은 1975년이다.[45]

오늘날 인도 인도 국경수비대는 라자스탄 지방 타르 사막의 인도-파키스탄 국경 순찰에 낙타를 활용한다. 5~6살 낙타를 구매해 훈련 후 투입하며, 15~16년 복무 후 21살에 은퇴한다. 인도 국경수비대는 1976년부터 인도 공화국의 날 군사 행진에 낙타 부대를 참여시켜 유명하다. 행진에는 보통 90여 마리의 낙타가 동원된다.[46][47][48]

3. 운용 방식

낙타 기병은 다른 기병처럼 사막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말이나 코끼리가 낙타 냄새를 싫어해 적 기병이나 전차를 혼란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낙타 등은 말보다 높아 높은 곳에서 공격할 수 있었고, 검이나 이 사용되었다. 낙타는 말보다 무거운 짐을 견뎌 두 명이 타거나 물자 수송도 가능했다.

하지만 기동성이 떨어지고, 낙타는 성질이 거칠어 숙련자만 조종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다. 낙타에서 내리면 다시 타기 어려워 용기병 운용이 어렵고, 건조지 외에서는 효용성이 떨어졌다.

칭기즈 칸몽골 제국 군대는 쌍봉낙타을 싣고 기병에게 공격 지휘를 전달했다. 북 연주자가 신호를 보내면 궁기병들이 불붙은 화살을 쏘았다. 656년 낙타 전투에서는 무함마드의 미망인 아이샤가 낙타를 타고 군대를 지휘했다. 근대 이전 아랍인은 낙타로 장비, 의사, 부상자를 운반해 빠른 행군이 가능했다. 현대에도 낙타 기병은 사막 순찰 등에 이용된다.[25]

3. 1. 경무장 낙타 기병

경무장 낙타 기병의 장점은 사막에서의 기동력을 살린 게릴라전이다. 작열하는 사막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나 활이나 투창, 으로 기습을 가하고, 적의 추격이 시작되기 전에 추격이 어려운 사막으로 도망친다. 혹은 굳이 추격하게 하여 사막으로 적을 유인, 그곳에서 궤멸시키는 전법이다.

아시리아와 싸운 아라비아 낙타 기병은 아시리아 측의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패배했다. 방패도 들지 않은 허리 천만 두른 아라비아인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낙타에 기승하여 한 명은 기수, 다른 한 명은 사수를 담당했지만, 투구갑옷을 갖춘 아시리아 기병에게 따라잡혀 활과 창에 의해 쓰러졌다.

로마와 싸운 셀레우코스 시리아십자군의 원정에서도 낙타 기병은 싸웠으며, 이들 대부분은 사막에서의 생활에 능숙한 아라비아인이 단봉낙타에 기승한 기병이었다. 그들은 중무장으로 기동력이 떨어지는 레기온이나 기사를 사막에서의 전투에서 격파했다. 단봉낙타 외에도 쌍봉낙타나 이 두 종을 교배한 종류의 낙타도 사용되었다.

근대에도 유럽열강에 의한 식민지화에 맞서, 북아프리카서아시아의 사막 지대 주민(베두인이나 베르베르인)은 낙타에 기승하여 총을 장비하고 게릴라전을 벌였다.

3. 2. 중무장 낙타 기병

낙타 기병은 다른 기병에 비해 작열하는 사막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말이나 는 낙타의 체취를 싫어하여 적 기병이나 전차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단, 아군 기병과 전차의 혼란을 막기 위해 마구간을 낙타와 나란히 하여 길들일 필요가 있다). 낙타 등은 말보다 높아 높은 위치에서 공격할 수 있어 가늘고 긴 검이나 이 사용되었다. 또한 낙타는 말보다 무거운 짐을 견딜 수 있어 두 명이 타거나 물자 수송도 가능하다.

하지만 낙타 기병은 기동성이 떨어지고, 낙타는 성질이 거칠어 숙련자만 조종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등이 높아 낙타에서 내리면 다시 타기 어려워 용기병과 같은 운용이 어렵고, 건조지 외에서는 효용성이 떨어진다.

로마 제국과 싸운 팔미라의 낙타 기병은 기수와 낙타 모두 장갑을 착용한 카타프락토이였다. 그러나 중장비로 인해 기동성이 떨어졌고, 주로 창이나 가느다란 검으로 무장하고 말을 탄 다른 카타프락토이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투를 벌였다. 팔미라 카타프락토이의 돌격은 보병 중심의 로마 군단을 괴롭혔으며, 로마군은 말뚝지뢰로 대응했다. 사막에서 눈에 띄지 않는 말뚝지뢰는 특히 발바닥이 넓은 낙타에게 효과적이었고, 돌격의 위력을 크게 감소시켰다.

3. 3. 기타 운용 방식

나폴레옹은 이집트 시리아 원정에 낙타 부대를 사용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낙타 부대는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식민지 군대에서 사막 치안 및 순찰 업무에 사용되었다. 이러한 부대의 후손들은 오늘날 모로코, 이집트 군대와 준군사 조직인 인도 국경 경비대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15]

영국 장교가 지휘하는 이집트 낙타 부대는 1898년 옴두르만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15] 이 시기에 기병대가 대규모로 참여한 몇 안 되는 전투 중 하나였다. 오스만 제국군은 제1차 세계 대전 전후로 예멘과 헤자즈 군단의 일부로 낙타 중대를 유지했다.

이탈리아는 두바트 (Dubats) 낙타 부대를 이탈리아 소말리아에서 주로 1920년대와 1930년대 국경 순찰에 사용했다. 이 두바트는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 1935~1936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오가덴 (Ogaden) 정복에 참여했다.

스페인령 모로코의 식민 당국은 보호령 북부에서 현지에서 모집한 낙타 부대를 주로 1930년대부터 1956년까지 국경 순찰에 사용했다. '사하라 유목민 부대'의 일부를 형성한 이 낙타 부대는 1936~1939년 스페인 내전에서 제한적인 역할을 했다.[16]

요르단 사막 순찰대는 여전히 낙타를 사용한다.[17]

비카네르 번왕국(현재 비카네르 시, 라자스탄)은 1900년 의화단 운동 당시 중국에서, 1902년 ~ 1904년 소말릴란드 작전 중 소말릴란드에서,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1915년 수에즈 운하 습격에서 낙타 기병 돌격으로 터키군을 파괴한 제1차 세계 대전 중동 전선에서,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의 지중해 및 중동 전선에서 싸운 비카네르 낙타 기병대라는 부대를 유지했다.

당시 인도의 일부가 된 자이살메르 번왕국의 보조 방위군도 1948년에 낙타 부대 방위 대대를 창설했다.[21] 이들은 1947~1948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동안 수송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두 낙타 부대는 1951년 라자스탄 지방 군대가 그레나디에르 부대와 합병되면서 인도 육군의 그레나디에르 연대에 넘겨져 연대의 13대대로 편입되었다.[18] 이들은 1965년 인도-파키스탄 전쟁 동안 그레나디에르 부대에 의해 수송과 전투에 모두 사용되었으며, 휴전 전후 비카네르와 자이살메르 지역에서 파키스탄군이 침투하여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던 영토를 점령하는 것을 막았다. 자이 싱 소령은 파키스탄 고리왈라 (Ghoriwala) 초소 깊숙이 낙타를 이용한 기습을 감행했고, 또 다른 낙타 지원 인도군은 타노트 (Tanot)에서 공격을 감행하여 장교 2명을 포함한 파키스탄군 병사 102명이 사망하고 많은 인도 영토를 되찾았다.[21] 많은 인도 육군 낙타도 1965년 전쟁 이후 국경 경비대 (Border Security Force, BSF)가 창설되면서 국경 경비대에 넘겨졌다.[23] 1966년, 그레나디에르 부대는 KS 하리하르 싱 중령이 이끄는 또 다른 낙타 대대인 17대대를 추가했다.[21] 1967년에는 낙타 포병 연대인 제185 경포병 연대 (팩)도 창설되었다. 제185 경포병 연대 (팩)는 1971년 당시 육군 동부 사령부 사령관이자 기동전을 옹호하며 낙타가 현대 군사 작전에는 너무 구식이라고 판단하여 견인차량으로 교체한 J. F. R. 제이콥 (J. F. R. Jacob) 소장 (Major General)의 주장에 따라 낙타를 국경 경비대에 넘겨주었다.[19] 그러나 제13, 17 그레나디에르 대대[21]와 국경 경비대[23]는 보병 목적으로 낙타를 계속 사용했다. 같은 해에 그레나디에르와 육군과 함께 동부 전선에서 싸운 BSF에 의해 낙타가 다시 1971년 인도-파키스탄 전쟁에 사용되었다.[23] 제13, 17 낙타 기병 그레나디에르 대대는 비카네르와 가드라 (Gadra) 지역에서 싸워 상당한 영토를 점령했다.[21] 롱게왈라 전투 (Battle of Longewala)에서 BSF 낙타 5마리가 사망했는데, 이 전투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였다.[20] 인도 육군은 1975년에 마침내 낙타 사용을 중단했다. 한 현지 장교는 제13 그레나디에르 대대와 제24 라지푸트 대대를 낙타 부대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거부했다.[21]

낙타는 여전히 인도-파키스탄 국경을 따라 라자스탄에 위치한 타르 사막의 외딴 지역을 순찰하기 위해 국경 경비대에서 사용된다. 낙타는 5~6세 사이에 구매하여 조드푸르에 있는 BSF 국경 본부의 낙타 훈련 센터에서 훈련을 받는다. 그들은 15~16년 동안 복무하며 21세에 은퇴한다. BSF에서 사용하는 낙타는 세 가지 품종이 있다. '자이살메리스'(Jaisalmeris)와 '비카네리스'(Bikaneris)는 국경 순찰에 사용되고, '나치나스'(Nachnas)는 의장대에 사용된다. BSF는 또한 1976년부터 인도 공화국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델리 퍼레이드에 낙타 부대가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K.S. 라토르 (K.S. Rathore) 감찰관은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감찰관으로 재임하면서 이 밴드의 역량을 강화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낙타 부대는 두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는 국경 경비대가 타고 다니는 낙타로 구성되고 다른 하나는 국경 경비대 낙타 밴드로, 보병으로 행진하는 음악가와 함께 걷는 낙타로 구성된다. 이 두 요소는 낙타 부대의 행진 중에 함께 공연한다. 이 부대는 일반적으로 90마리의 낙타로 구성된다.[22][23][24]

낙타 기병의 장점으로는 다른 기병의 장점에 더하여, 작열하는 사막에서의 이동을 빠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다음으로 낙타의 체취를 말이나 코끼리는 싫어하기 때문에 적의 기병이나 전차가 혼란스러워진다는 점도 있다(다만, 아군 기병이나 전차의 혼란을 억제하기 위해, 이들의 마구간을 낙타와 나란히 하여 길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낙타의 등은 말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그만큼 높은 위치에서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따라서 가늘고 긴 검이나 이 사용되었다. 그 외에도 낙타는 말에 비해 더 무거운 무게의 짐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두 명 타기나 물자의 수송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단점으로는 기동성이 떨어지고, 낙타는 비교적 성질이 거친 동물이기 때문에 숙련된 자가 아니면 조종할 수 없다는 점, 등이 높기 때문에 일단 낙타에서 내리면 다시 기승하는 것이 어려워 용기병과 같은 운용이 어렵다는 점, 건조지 이외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점 등이 있다.

칭기즈 칸과 그의 후계자들이 이끄는 몽골 제국 군대에서는 연주자가 낙타(이 경우 유라시아 대륙이었으므로 쌍봉낙타)에 북을 싣고 기병으로 공격 지휘를 전달했다. 북 연주자가 북을 울리며 신호를 보내면 궁기병들이 일제히 불붙은 화살을 적에게 쏘아 추격했다.

또한, 656년 이슬람 제국 4대 칼리프인 알리와 바스라에서 회전을 벌인 무함마드의 미망인 아이샤는 그 당시 전장을 잘 볼 수 있는 낙타를 타고 군대를 지휘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 전투는 "낙타 전투"라고도 불린다.

근대 이전의 아랍인은 전쟁 시 낙타 기병이 아니더라도 부유한 자는 1명당 2마리, 그렇지 않은 자라도 3명당 2마리의 낙타를 데리고 전장에 나갔다. 낙타 외에도 당나귀나 수레도 사용되긴 했지만, 지형적 제약으로 인해 낙타의 사용이 압도적이었다. 낙타는 단순히 전투에 필요한 장비를 운반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사나 부상자를 운반하는 역할도 했으며, 많은 경우 아랍인은 적보다 빠른 행군이 가능했다.

낙타 기병은 자동차가 발달한 현대에도 사막 지대의 순찰 등에 이용되고 있다.[25]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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