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장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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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장은 국가가 사회에 현저한 공헌을 한 인물의 사망 시 국가의 명의로 거행하는 장례 의식이다. 고대부터 존재했으며, 각 나라마다 국장의 대상, 절차, 비용 등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천황, 총리대신 등이 국장의 대상이며, 미국,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대통령, 군인, 과학자, 예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국장으로 치러졌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긴 인물이 국장의 대상이었으나, 2011년 국가장으로 통합되었다. 북한에서는 최고 지도자, 당 정치국 위원 이상, 내각 부장 등이 국장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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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장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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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 | |
유형 | 장례 |
의미 | 국가 또는 정부가 국가 원수 또는 기타 국가적으로 중요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장례식 |
상세 정보 | |
주최 | 국가 또는 정부 |
대상 | 국가 원수 전직 국가 원수 국가에 중요한 공헌을 한 개인 |
특징 | 국기 게양 조포 발사 국가 애도 기간 특별한 의례 및 의식 |
목적 | 고인의 업적 기리기 국가적 애도 표명 국민 통합 도모 |
역사 및 문화적 중요성 | |
역사적 기원 | 고대 문명에서 기원, 왕족 및 지도자 장례에서 유래 |
문화적 차이 | 국가 및 문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의례 존재 |
정치적 의미 | 국가적 단결 과시 정치적 메시지 전달 국가적 정체성 강화 |
현대의 국장 | |
주요 특징 | 공휴일 지정 TV 생중계 대규모 인파 동원 |
논란 | 비용 문제 정치적 이용 논란 대상 선정 기준 논란 |
한국의 국장 | |
법적 근거 | 국장·국민장법 |
대상 | 전·현직 대통령 국가·사회에 공헌한 사람 |
예우 | 조기 게양 영결식 거행 국립묘지 안장 |
최근 사례 | 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 (2015년) 노무현 전 대통령 (2009년, 국민장) |
기타 | |
관련 용어 | 국민장 사회장 가족장 |
2. 역사
고대 시대에도 국장(國葬)은 존재했다. 예를 들어 고대 아테네에서는 전몰한 군인들을 공공 의례로 장례했다.[1] 로마 제국에서는 원로원이 로마시에 국장(funera publica)을 지시할 수 있었고, 시의회는 공동 국장을 지시할 수 있었다.[2]
각국에서는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나 국가 원수 등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는 경우가 많다.
국장은 국가 체제에 따라 국왕, 천황, 대통령, 총리 등의 차이가 있지만, 제1차적으로 국가 통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례였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일반화된 국민 국가에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유명 활동을 한 군인, 작가, 예술가 등 유명인도 "국가에 공헌한 자를 현창한다"는 형태로 국장을 거행함으로써 국민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 발양의 중요한 장치가 되고 있다.[5][6] 장례 행렬에서의 의장대나 조총 등 군대가 연출에 관여하는 것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5][6]
고대부터 천황의 붕어 등의 경우, 대장이 발령되는 관습이 있었지만, 국장이라는 이름은 메이지 이후 정식으로 사용되었다.[7] 메이지 이후, 국장을 해야 할 필요가 생겼을 경우 "특별히 국장을 행한다"라는 칙령이 개별적으로 발령되었다. 국가에 공적이 있는 신하가 사망한 경우에도 천황의 특지로 국장이 거행되었고, 황족 중에서도 특히 국가에 공로가 있는 자가 훙거한 경우에는 통상의 황족 장례가 아니라 특별히 신하와 마찬가지로 국장이 거행되었다.
1926년(다이쇼 15년) 10월 21일 국장령 (다이쇼 15년 칙령 제324호)이 공포되어 국장 규정이 명문화되었다. 천황・태황태후・황태후・황후의 장례는 "대장례"라 하며 국장으로 했고(제1조), 7세 이상으로 훙거한 황태자, 황태손, 황태자비, 황태손비 및 섭정인 황족의 장례는 모두 국장으로 했다(제2조). 그 외, "국가에 위대한 공이 있는 자"에 대해 천황의 특지로 국장을 하사할 수 있다고 했다(제3조). 황족・왕공족 이외의 피국장자는 "구 사쓰마조슈 번주", "태정관제에서의 대신 경험자", "수상 경험자", "원수" 중 하나에 해당하며, 이 중 수상 경험자는 모두 원로이며 여러 조각 경험과 최고위 훈장인 대훈위국화대수경식을 서거일 이전에 수여받았다. 도고 헤이하치로・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황족・왕공족・수상 경험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국장령이 실효되어 규정된 국장은 없어졌다. 새로운 황실전범의 장례 규정은 제25조 "천황이 붕어했을 때 대장의 예를 거행한다"는 기술뿐이다. 2019년 천황 즉위 때 제정된 황실전범 특례법에서는 상황 붕어 시에도 대장의 예를 거행하는 것이 규정되어 있다. "대장의 예"는 국가 의식으로서 거행되고, 그 비용이 국고에서 지출되는 국장으로 취급된다. 한편 전통적인 종교 의례를 포함한 의식은 "대장례"로서 황실이 주재하는 의식으로 거행된다. 황족의 장례는 호칭과 관계없이 황실 주재 의식이 되며, 국장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고준 황후의 2000년 장례도 마찬가지였으나, 1951년 데이메이 황후 붕어 시에는 국장으로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사실상의 국장"(준국장)으로서 장례가 거행되었다.[8][9][10]
제2차 세계 대전 후, 천황・황후 이외에 국장이 거행된 첫 예는 1967년 10월 20일 서거한 요시다 시게루 전 내각총리대신이다. 각의 결정에 의해 국가가 행하는 "고 요시다 시게루 국장의" 명칭으로,[11][12][13] 정교 분리에 기초하여 종교색을 배제하고 동년 10월 31일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었다. 쇼와 천황・고준 황후는 관례에 의해 임석하지 않고, 시종장이리에 스케마사를 칙사, 시종 도쿠가와 요시히로를 황후궁사로 파견했다. 황실에서는 10황족이 참렬했고, 황태자 아키히토 친왕・동비 미치코,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동비 하나코, 요시히토 친왕비 세츠코,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동비 키쿠코, 미카사노미야 타카히토 친왕・동비 유리코・히로히토 친왕이 헌화했다. 삼권의 장, 국회의원, 주일 대공사 등 5700명이 참례했고, 일반 조문객 3만 5000명이 헌화했다. 장례 위원장은 사토 에이사쿠 내각총리대신, 장례 부위원장은 쓰카하라 도시로 총리부 총무장관이 맡았다. 같은 날 밤, 내각총리대신 관저(현 공저)에서 해외 빈객을 초청한 리셉션이 개최되었다. 국비 부담액은 1810만엔이었다.[14]
2022년 7월 8일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은 내각부 설치법 제4조 제3항 제33호에 의해 국가 의식인 국장의가 행정권 작용에 포함된다고 하여,[15] 각의 결정에 의해 동년 9월 27일 일본 무도관에서 "국장의"가 개최되었다. 장례 위원장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 장례 부위원장은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이 맡았다.[16][17] 국고 부담액은 16.6억엔이었다.[14]
현재, 내각총리대신 경험자 등 유력 정치인 장례는 내각, 소속 정당, 소속 의원, 유족의 조합에 의한 합동장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1975년 사망한 사토 에이사쿠는 전후 생전에 대훈위를 수훈한 세 사람(요시다・사토・나카소네 야스히로) 중 한 명으로, 그 장례는 "자민당, 국민 유지에 의한 국민장"으로 거행되어 경비 일부를 국고에서 지출하는 취지의 각의 결정이 행해졌다. 국고 부담액은 2004만엔이었다.[14] "국민장"으로 불린 선례에는 오쿠마 시게노부의 것이 있지만, 오쿠마 장례에 국가는 관여하지 않았고 사토의 국민장은 공장과 민장의 중간적인 것이 되었다.
1980년 현직 수상으로 급사한 오히라 마사요시는 "내각・자유민주당 합동장"으로 거행되었다. 국고 부담액은 3643만엔이었다.[14] 1980년 오히라 이후, 수상 경험자 장례 시 내각이 관여하는 형식의 장례가 관례화되었다. 다만, 전 수상이 마지막으로 소속했던 정당이 야당이며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 장례에 내각이 관여하지 않는다(예: 1993년 사망한 다나카 가쿠에이[18], 2017년 사망한 하타 쓰토무[19]). 전 수상이 마지막으로 소속했던 정당이 여당으로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에도 장례에 내각이 관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예: 1998년 사망한 우노 소스케[20], 2000년 사망한 다케시타 노보루[21], 2022년 사망한 가이후 도시키[22]).
고노에 후미마로 등 현직 중참 의장・부의장이 사망한 경우, 의원 주재로 장례가 거행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63년 의원 경험을 가진 오자키 유키오는 특히 중의원장이 거행하고 있다. 훈1등・문화훈장 등 훈장 수훈자 장례에 천황이 문화청 등 소관 관청을 통해 제사료를 하사하는 경우가 있다(예: 구로사와 아키라, 아오시마 유키오, 모리 시게후미, 오오타키 히데지, 5대 나카무라 토쥬로, 가와카미 데쓰하루, 야마다 이스즈, 모리 미츠코, 4대 사카타 토쥬로, 이시하라 신타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 국장은 보통 도쿄에서 거행된다. 예외적으로 시마즈 히사미쓰는 원래 영지였던 가고시마에서, 전 대한제국 황제로 조선 왕족이었던 고종과 순종은 출신지였던 경성부(현재 서울특별시)에서 거행되었다.
3. 각국의 국장
이탈리아에서는 대통령, 의회, 정부 및 헌법 재판소 등 헌법 기구 수장, 재임 중 사망한 장관에게 법적으로 국장이 부여된다.[4] 또한, 국무회의 법령에 따라 이탈리아에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 국민의 명예를 드높인 시민, 직무 수행 중 사망했거나 테러, 조직 범죄 피해자에게도 국장이 허용될 수 있다.[4] 공식 의전에는 카라비니에리 또는 고인 소속 군대 6명의 호위, 명예 보초, 정부 대표 참석, 공식 추도 연설 등이 포함된다.[4] 총리 법령에 따라 국가 애도일이 선포되면 국기가 반기 게양된다.[4]
프랑스에서는 제4공화국 총리, 제5공화국 대통령, 프랑스 국민 교육부 "식전령"에 따라 국가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이 국장 대상이다. 샤를 드 골은 생전 국장을 거부했지만, 정부 요청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추도식 형태의 국가장이 거행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는 국장 법령은 없지만, 국가 주석, 국무원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경험자 등 국가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조기를 게양하여 조의를 표한다. 중화민국은 1919년 "국장법"을 제정, 국가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를 대상으로 국장을 거행한다.
인도에서는 종교 지도자 사티아 사이 바바, 수녀 마더 테레사, 총리였던 만모한 싱이 국장 대상이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전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 케냐에서는 환경 운동가 왕가리 마타이(노벨 평화상 수상자), 자메이카에서는 레게 가수 밥 말리, 싱가포르에서는 초대 총리 리콴유가 국장 대상이었다.
브라질에서는 F1 레이서 아일톤 세나, 정치인 탕크레두 네베스, 조제 알렌카르,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국장 대상이었다. 펠레는 산투스 FC에서 장례식을 치렀지만 국장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F1 레이서 후안 마누엘 판지오, 축구 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국장 대상이었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서기장, 국가 주석, 총리, 국회 의장 역임자가 원칙적 대상이다.[37]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은 특례로 인정되는데, 보 응우옌 지압이 그 예이다.[37] 베네수엘라에서는 대통령 우고 차베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 요르단에서는 요르단 국왕 후세인 1세가 국장 대상이었다.
3. 1. 대한민국
대한민국의 국장은 대통령을 역임[38]했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국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국가의 명의로 거행한 장례 의전이었다. 2011년 5월 30일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으로 통합되면서 폐지되었다.
국장은 조선시대의 국상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국상은 태상왕, 대왕대비, 상왕, 왕대비, 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왕세손빈이 사망했을 때 치렀으며, 기간은 대개 6개월이었다. 국상 기간에는 모든 백성이 상복을 입었고, 장례를 담당하는 국상도감이 설치되기도 했다.
과거 국장 대상자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했고, 장의 비용은 전액 국비로 치렀다. 장의 기간은 9일 이내로 하고, 조기를 게양하였다. 장의 기간 중 모든 국민은 음주와 가무를 삼가고, 방송이나 신문도 고인의 업적을 보도해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영결식 당일에는 모든 관공서가 휴무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에서는 "국장·국민장법"에 따라 국가가 장례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국장과 일부를 부담하는 국민장이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장과 국민장의 구별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11년 5월 30일 법률 개정으로 국장과 국민장은 국가장으로 통합되었다.
한국에서 국장의 대상이 된 인물은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있으며, 국민장의 대상이 된 인물은 최규하, 노무현 (전 대통령) 및 육영수 (박정희 부인)이다. 법 개정 후 국가장의 대상이 된 인물은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있다.
3. 1. 1. 대한민국의 국장 절차 (국가장 통합 이전)
대한민국의 국장은 대통령을 역임[38] 하였거나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사망하였을 때, 국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국가의 명의로 거행한 장례 의전이었다. 국장은 조선시대의 국상제도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국상은 태상왕과 대왕대비, 상왕과 왕대비, 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세자빈, 왕세손과 왕세손빈까지를 대상자로 삼았으며 국상의 기간은 대개 6개월이었다. 국상 기간에는 모든 백성이 상복을 입었으며 장례를 담당하는 국상도감이 설치되기도 했다.
과거 국장 대상자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고, 장의 비용은 전액 국비로 치렀다. 장의기간은 9일 이내로 하고 장의기간 중에는 조기를 게양하였다. 또한 장의기간 중 모든 국민은 음주와 가무를 삼가고, 방송이나 신문도 고인의 업적을 보도해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영결식 당일에는 모든 관공서가 휴무에 들어갔다.
영결식은 국장 기간의 마지막 날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영결식을 마지막으로 빈소를 정리하지만, 국장의 경우 각지의 빈소는 영결식이 끝나도 빈소를 정리하지 않고 조문을 받기도 한다. 국장의 영결식 순서는 대개 국민장의 순서와 동일하며,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과 그 관계 법령에 따른다.
# 개식: 장내에 영결식의 시작을 알린다.
# 국기에 대한 경례
# 고인에 대한 묵념
# 고인의 약력 보고: 고인의 생전 삶을 간략하게 알린다.
# 조사(弔辭): 조문의 뜻을 표하고 생전의 업적을 기리는 글을 낭독한다.
# 추도사(追悼辭): 고인을 슬퍼하며 추도의 뜻을 표하는 글을 낭독한다.
# 종교 의식: 불교 · 개신교 · 천주교 · 원불교 등 각 종교의 장례 의식을 행한다.[39]
# 고인의 육성 근청 (고인의 생전 영상 시청)
# 헌화 및 분향
# 조가 (추모 공연)[40]
# 조총 발사
# 폐식
3. 1. 2. 대한민국의 국장 사례 (국가장 통합 이전)
2011년 5월 30일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으로 통합되면서 폐지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을 역임했거나[38]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국가의 명의로 장례 의전을 거행하였다. 이를 국장이라고 하며, 모든 경비는 국가가 부담했다.
과거 국장 대상자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고, 장의 비용은 전액 국비로 치렀다. 장의 기간은 9일 이내로 하고 장의 기간 중에는 조기를 게양하였다. 또한 장의 기간 중 모든 국민은 음주와 가무를 삼가고, 방송이나 신문도 고인의 업적을 보도해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영결식 당일에는 모든 관공서가 휴무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의 국장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성명 | 직위 | 장례 기간 | 비고 |
---|---|---|---|
박정희 | 제5~9대 대통령 | 9일장 | 1979년 11월 3일 거행. 대통령 재임 중 사망.[41] |
김대중 | 제15대 대통령 | 6일장 | 2009년 8월 23일 거행. 대통령 퇴임 후 사망.[42] |
1979년 11월 3일 거행된 박정희 전 대통령 국장은 중앙청 앞 마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유족과 41개국 조문사절 및 각계인사 등 3천여 명이 참석했다. 운구 행렬은 중앙청에서 서울 시내를 거쳐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하여 안장식을 가졌다.[43]
2009년 8월 23일 거행된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은 국회의사당 앞 마당에서 거행되었다. 1979년 이후 30년 만에 치러지는 두 번째 국장이었으며, 정관계 주요 인사와 주한 외교 사절 유족 등 2만 4000여 명이 참석했다. 운구 행렬은 여의도 민주당사, 동교동 사저, 김대중도서관을 거쳐 서울광장에서 추모제를 연 후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하여 안장식을 가졌다.
3.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국장은 '국가적으로 지내는 장례'로서, 사회와 당 발전에 큰 공을 세워 인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국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하고 국가 명의로 거행한다. 김일성, 김정일과 같은 최고존엄은 다른 장례식과 다르게 성대하게 치른다.가장 최근에는 2022년 5월 현철해의 장례가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숙청으로 사형된 경우에는 국장이 거행되지 않으며, 과거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나 정무원, 내각에 의한 공식 발표조차 없이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된 간부 경험자도 있었다.
3. 2.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장 대상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에서 국장은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 이상, 내각 부장, 조선인민군차수 이상 경력자가 기본 대상이다.[35] 당 중앙위원 및 위원 후보급 실무자라도 최고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국장으로 치러진다.[35]
국장 거행 시에는 사망 발표와 함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 및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정부 요직 경험자로 구성된 국가장의위원회가 편성된다.[35] 위원 명단은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텔레비전의 "보도", 조선의 소리 방송으로 발표된다.[35] 발표되는 장의위원회 명단은 "최고 지도자를 위원장"으로 하며,[36] 당시 북한 지도부 서열을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
숙청으로 사형된 경우에는 국장이 거행되지 않는다.[35]
3. 3. 일본
일본의 국장은 1947년까지 통치한 히로히토의 장례가 대표적이다.[5][6]고대부터 천황이 붕어(사망)하면 대장이 발령되는 관습이 있었고, '국장'이라는 명칭은 메이지 시대 이후 정식으로 사용되었다.[7]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국장이 필요할 때마다 "특별히 국장을 행한다"는 칙령이 개별적으로 발령되었다. 국가에 공헌한 신하가 사망한 경우에도 천황의 특지로 국장이 거행되었고, 황족 중에서도 국가에 공로가 큰 인물이 훙거(사망)한 경우에는 일반 신하와 마찬가지로 특별히 국장이 거행되었다.
1926년 국장령이 공포되면서 국장 규정이 명문화되었다. 칙령에 따르면 천황, 태황태후, 황태후, 황후의 장례는 '대장례'라는 국장으로 치러졌다. 7세 이상으로 훙거(사망)한 황태자 등 황족의 장례도 국장이었다. '국가에 위대한 공이 있는 자'는 천황 특지로 국장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장령은 효력을 잃었고, 새 황실전범에는 "천황이 붕어했을 때는, 대장의 예를 거행한다"는 규정만 남았다. 2019년 천황 즉위 때 제정된 특례법에는 상황 붕어 시에도 대장의 예를 거행하도록 규정했다. '대장의 예'는 국가 의식으로, 비용은 국고에서 지출된다. 종교 의례는 황실 주관 '대장례'로 거행된다. 황족 장례는 명칭과 관계없이 황실 주관 의식이며 국장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1951년 데이메이 황후 훙거(사망) 시에는 '사실상의 국장'(준국장)으로 장례가 진행되었다.[8][9][1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천황, 황후 외 첫 국장은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였다. 각의 결정으로 국가가 주관,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종교색 없이 일본 무도관에서 열렸다. 쇼와 천황 등은 불참, 황족 10명이 참렬했다. 장례위원장은 사토 에이사쿠 총리, 부위원장은 쓰카하라 도시로 총무장관이었다. 국비는 1810.0000000000002만엔이었다.[14]
2022년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총격 사망 후 내각부 설치법에 따라 국가 의식인 국장의가 일본 무도관에서 열렸다. 장례위원장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 부위원장은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었다. 국고 부담액은 16.599999999999998억엔이었다.[14]
현재 총리 경험자 등 주요 정치인 장례는 내각, 소속 정당, 의원, 유족 조합의 합동장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1975년 사토 에이사쿠 장례는 '자민당, 국민 유지에 의한 국민장'으로, 경비 일부를 국고에서 지출했다. 오쿠마 시게노부 장례도 '국민장'이었지만 국가는 관여하지 않았고, 사토 국민장은 국가와 민간 중간 형태였다.
thumb 국장 (1943년)]]
3. 3. 1. 일본의 국장 사례
1926년 (다이쇼 15년) 10월 21일 국장령 (다이쇼 15년 칙령 제324호)이 공포되어 국장에 대한 규정이 명문화되었다. 이 칙령에 따르면, 천황, 태황태후, 황태후, 황후의 장례는 "대장례"라고 불리는 국장으로 치러졌다(제1조). 또한, 7세 이상으로 훙거(사망)한 황태자, 황태손, 황태자비, 황태손비 및 섭정인 황족의 장례도 모두 국장으로 치러졌다(제2조). 그 외, "국가에 위대한 공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천황의 특지로 국장을 하사할 수 있었다(제3조).[7]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장령이 실효되면서 국장에 대한 규정은 사라졌다. 새로운 황실전범에서는 장례에 관한 규정으로 "천황이 붕어했을 때는, 대장의 예를 거행한다"라는 내용만이 남았다. 2019년 천황 즉위 때 제정된 황실전범 특례법에서는 상황이 붕어했을 때도 대장의 예를 거행하도록 규정했다. "대장의 예"는 국가 의식으로서 거행되며, 그 비용은 국고에서 지출되는 국장으로 취급된다. 한편, 전통적인 종교 의례를 포함한 의식은 "대장례"로서 황실이 주관하는 의식으로 거행된다. 황족의 장례는 명칭에 관계없이 황실 주관 의식으로, 국장으로 취급되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이라면 대장이 거행될 황태후였던 고준 황후의 2000년 장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1951년 데이메이 황후가 훙거(사망)했을 때는, 국장으로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사실상의 국장"(준국장)으로 장례가 거행되었다.[8][9][1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천황・황후 이외에 처음으로 국장이 거행된 것은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내각총리대신이다. 각의 결정에 따라 국가가 주관하는 "고 요시다 시게루 국장의" 명칭으로,[11][12][13]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종교색을 배제하고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되었다. 쇼와 천황과 고준 황후는 관례에 따라 참석하지 않고, 시종장이리에 스케마사를 칙사로, 시종 도쿠가와 요시히로를 황후궁사로 파견했다. 황실에서는 황태자 아키히토 친왕・동비 미치코,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동비 하나코, 요시히토 친왕비 세츠코,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동비 키쿠코, 미카사노미야 타카히토 친왕・동비 유리코・히로히토 친왕 등 10황족이 참렬하여 헌화했다. 삼권의 장, 국회의원, 주일 대공사 등 5700명이 참례했고, 일반 조문객 3만 5000명이 헌화했다. 장례 위원장은 사토 에이사쿠 내각총리대신, 장례 부위원장은 쓰카하라 도시로 총리부 총무장관이 맡았다. 같은 날 밤, 내각총리대신 관저 (현 공저)에서 해외 빈객을 초청한 리셉션이 개최되었다. 국장 국비 부담액은 1810.0000000000002만엔이었다.[14]
2022년 총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은 내각부 설치법 제4조 제3항 제33호에 따라 국가 의식인 국장의가 행정권 작용에 포함된다고 하여,[15] 각의 결정에 따라 2022년 9월 27일 일본 무도관에서 "국장의"가 개최되었다. 장례 위원장은 기시다 후미오 내각총리대신, 장례 부위원장은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이 맡았다.[16][17] 국고 부담액은 16.599999999999998억엔이었다.[14]
현재, 내각총리대신 경험자 등 주요 정치인의 장례는 내각, 소속 정당, 소속 의원, 유족 중 하나의 조합에 의한 합동장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1975년 사망한 사토 에이사쿠는 전후 생전에 대훈위를 수훈한 세 명 (요시다 시게루, 사토 에이사쿠, 나카소네 야스히로) 중 한 명으로, "자민당, 국민 유지에 의한 국민장"으로 거행되어 경비 일부를 국고에서 지출하는 각의 결정이 내려졌다. 국고 부담액은 2004만엔이었다.[14] 오쿠마 시게노부의 장례도 "국민장"으로 불렸지만, 오쿠마의 장례에는 국가가 관여하지 않았고, 사토의 국민장은 국가와 민간의 중간 형태였다.
날짜 | 피장례인 | 지위, 비고 |
---|---|---|
1878년 (메이지 11년) 5월 17일 | 오쿠보 도시미치 | 증종1위훈1등 내무경(사실상의 국장, 준국장) |
1883년 (메이지 16년) 7월 25일 | 이와쿠라 도모미 | 증정1위대훈위 우대신(정식 국장의 제1호[23]) |
1887년 (메이지 20년) 12월 18일 | 시마즈 히사미쓰 | 종1위 대훈위 공작(公爵) 좌대신 |
1891년 (메이지 24년) 2월 25일 | 산조 사네토미 | 정1위 대훈위 공작 태정대신 |
1895년 (메이지 28년) 1월 29일 | 다루히토 친왕 | 육군 대장 대훈위 공2급 참모총장 |
1895년 (메이지 28년) 12월 18일 | 요시히사 친왕 | 육군 대장 대훈위 공3급 근위사단장 |
1896년 (메이지 29년) 12월 30일 | 모리 모토토쿠 | 종1위 훈1등 공작 참의 구야마구치 번주 |
1897년 (메이지 30년) 2월 7일 | 에이쇼 황태후 | 황태후 대장례(사실상의 국장) |
1898년 (메이지 31년) 1월 9일 | 시마즈 다다요시 | 종1위 훈1등 공작 참의 구가고시마 번주 |
1903년 (메이지 36년) 2월 26일 | 아키히토 친왕 | 원수육군 대장 대훈위 공2급 참모총장 |
1909년 (메이지 42년) 11월 4일[24] | 이토 히로부미 | 종1위 대훈위 공작 내각총리대신 원로 |
1912년 (다이쇼 원년) 9월 13일 | 메이지 천황 | 천황 대장 |
1913년 (다이쇼 2년) 7월 17일 | 다케히토 친왕 | 원수해군 대장 대훈위 공3급 군사참의관 |
1914년 (다이쇼 3년) 5월 24일 | 쇼켄 황태후 | 황태후 대장 |
1916년 (다이쇼 5년) 12월 17일 | 오야마 이와오 | 종1위 대훈위 공1급 공작 원수 육군 대장 내대신 |
1919년 (다이쇼 8년) 3월 3일 | 이희 | 이태왕(전 대한제국 황제 고종) |
1922년 (다이쇼 11년) 2월 9일 | 야마가타 아리토모 | 종1위 대훈위 공1급 공작 원수 육군 대장 내각총리대신 원로 |
1923년 (다이쇼 12년) 2월 14일 | 사다아 친왕 | 원수 육군 대장 대훈위 공2급 내대신 |
1924년 (다이쇼 13년) 7월 12일 | 마쓰가타 마사요시 | 종1위 대훈위 공작 내각총리대신 원로 |
1926년 (다이쇼 15년) 6월 10일 | 이척 | 이왕(전 대한제국순종) |
1927년 (쇼와 2년) 2월 7일 | 다이쇼 천황 | 천황 대장 |
1934년 (쇼와 9년) 6월 5일 | 도고 헤이하치로 | 종1위 대훈위 후작 원수 해군 대장 연합함대사령장관 |
1940년 (쇼와 15년) 12월 5일 | 사이온지 긴모치 | 종1위 대훈위 공작 내각총리대신 원로 |
1943년 (쇼와 18년) 6월 5일 | 야마모토 이소로쿠 | 원수 해군 대장 정3위대훈위 공1급 연합함대사령장관 |
1945년 (쇼와 20년) 6월 18일 | 고토히토 친왕 | 원수 육군 대장 대훈위 공1급 참모총장 |
1951년 (쇼와 26년) 6월 22일 | 테이메이 황후 | 황태후 대장례(사실상의 국장, 준국장) |
1967년 (쇼와 42년) 10월 31일[12] | 요시다 시게루 | 종1위 대훈위 내각총리대신 국장의 |
1989년 (헤이세이 원년) 2월 24일 | 쇼와 천황 | 천황 대장례 |
2022년 (레이와 4년) 9월 27일 | 아베 신조 | 종1위 대훈위 내각총리대신 국장(고 아베 신조 국장) |
thumb 국장 (1943년)]]
3. 4. 기타 국가
- 발 타케레: 2012년 11월 17일 뭄바이 시에서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4]
- 라탄 타타: 2024년 10월 10일 뭄바이에서 국장으로 장례가 치러질 예정이다.[4]
- 이탈리아: 대통령, 의회, 정부 및 헌법 재판소 등 헌법 기구의 수장, 재임 중 사망한 장관에게 법적으로 국장이 부여된다. 국무회의 법령에 따라 이탈리아에 특별한 공헌을 한 사람, 국민의 명예를 드높인 시민, 직무 수행 중 사망했거나 테러, 또는 조직 범죄의 피해자가 된 시민에게도 국장이 허용될 수 있다.[4]
- 프랑스: 제4공화국에서는 총리, 제5공화국에서는 대통령, 그리고 프랑스 국민 교육부의 "식전령"에 따라 국가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 사라 베르나르 (1923년)
- 폴 발레리 (1945년)
- 필리프 르클레르 (1947년)
- 앙리 지로 (1949년)
- 알베르 르브룅 (1950년)
- 레옹 블룸 (1950년)
- 시도니-가브리엘 콜레트 (1954년)
- 에두아르 에리오 (1957년)
- 아베 피에르 (2007년)
- 에메 세제르 (2008년)
- 라자르 퐁티첼리 (2008년)
- 샤를 아즈나부르 (2018년)
- 사뮈엘 파티 (2020년)
- 샤를 드 골: 1969년 사망, 생전에 국장을 거부했지만, 프랑스 정부 요청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추도식 형태의 국가장이 거행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국장에 관한 법령은 없지만, 국가 주석, 국무원 총리,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경험자 등 국가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조기를 게양하여 국가에 의한 조의를 표한다.
- 중화민국: 1919년 "국장법" 제정, 국가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를 대상으로 국장을 거행한다. 장제스, 장징궈, 덩리쥔의 장례가 국장으로 거행되었다.
- 인도: 종교 지도자 사티아 사이 바바와 수녀 마더 테레사, 그리고 당시 인도 총리였던 만모한 싱이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 캄보디아: 전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 케냐: 환경 문제 활동가이자 2002년 정치가가 되었고 2011년에 사망한 왕가리 마타이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2004년)였다.[34]
- 자메이카: 레게 가수인 밥 말리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 싱가포르: 초대 총리였던 리콴유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 브라질: F1 레이서였던 아일톤 세나, 정치인 탕크레두 네베스, 조제 알렌카르, 그리고 브라질리아 등을 디자인한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가 국장 대상이었다. 펠레는 산투스 FC에서 장례식을 치렀지만, 국장은 되지 않았다.
- 아르헨티나: F1 레이서였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 축구 선수였던 디에고 마라도나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 베트남: 원칙적으로 베트남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서기장, 국가 주석, 총리, 국회 의장을 역임한 사람이 대상이 된다.[37] 그 외, 특히 국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는 특례로 인정되며, 예로 보 응우옌 지압 (2013년 사망)에게 행해진 사례가 있다.[37]
-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국장 대상이 되었다.
- 요르단: 요르단 국왕 후세인 1세가 국장의 대상이 되었다.
4. 논란 및 비판
프랑스 혁명 이후 일반화된 국민 국가에서는 국민을 대표해 세계적인 활동을 한 군인, 작가, 예술가 등 유명인도 "국가에 공헌한 자를 현창한다"는 형태로 국장을 거행함으로써 국민을 하나로 묶는 민족주의 발양의 중요한 장치가 되고 있다.[5][6] 장례 행렬에서 의장대나 조총 등 군대가 연출에 관여하는 것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다.[5][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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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ひもとく)国葬を考える 変わる共同体、弔いの意義は 山田慎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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葬儀の方法 宮内庁で協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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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倍氏国葬、歴代首相との違いは? ビジュアル解説:日本経済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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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倍氏国葬、内閣府設置法が根拠 「国の儀式」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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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倍元首相の「国葬」 ことし秋に行う方針 岸田首相が表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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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倍氏国葬9月27日 半世紀ぶり、無宗教形式で―閣議決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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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民党と田中家の合同葬。田中角栄が死去した1993年12時点から翌1994年6月まで田中が在籍していた自民党は野党であった。田中死去当時の首相の細川護熙は非自民政権内閣の首相ではあるが、自民党在籍した経験もあり田中派に所属していた過去もある。田中が内閣葬にならなかったのはロッキード事件の刑事裁判で一二審で実刑判決を受けて上告中だったことが影響しているとされる(そのこともあり、田中は死後に叙位叙勲を受け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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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進党と羽田家の合同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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島根県掛合町・自民党島根県連・竹下家の合同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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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皇の名のもとで暗殺された政府のトップを… “日本の国葬の原型”と呼ばれる144年前の大久保利通の葬儀と安倍元首相国葬、共通点と相違点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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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time is the Queen's state funeral? Will shops and schools cl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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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国葬「偉業」基準 ニュートン、ネルソン、チャーチ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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ゴルバチョフ氏葬儀・告別式、「国葬」ではなく静かな別れ…米英独は駐露大使が参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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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葬に近い形で告別式か ロシア大統領府が執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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ゴルバチョフ元大統領が死去、91歳 ソ連最後の指導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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ノーベル平和賞マータイさんに最後の別れ、ケニア首都で国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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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正恩氏 民用航空総局長の死去に異例の哀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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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トナム、ザップ将軍の国葬開始/「救国の英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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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은 국민장…정부 “유족 뜻 따라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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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 국장, 서울 현충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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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朴正熙대통령 國葬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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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고위급 장례식 어떻게 치르나 - 조선닷컴
http://www.chosun.co[...]
201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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