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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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로교는 성경의 사도행전, 디도서 등에 기원을 둔 개신교 교파로, 장로들의 회의를 통해 교회를 운영하는 특징을 갖는다. 16세기 종교 개혁 시기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어 존 녹스를 통해 발전했으며,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주요 신앙 고백으로 삼는다. 교회 조직, 예배, 신학 등에서 다른 개신교 교파와 차이를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이 주요 교단이며, 사회적 논란과 교단 분열, 정체성 혼란 등의 문제도 겪고 있다.
16세기 스위스의 종교 개혁에서 츠빙글리파는 불링거에게 계승되었고, 제네바의 칼뱅파와 취리히 협정에 의한 개혁교회 합동이 성립할 당시, 교회 제도는 칼뱅의 장로제가 채택되었다. 칼뱅은 성경의 권위에 따라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 장로, 목사"를 구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혁파의 중심지는 1520년부터 1560년에 걸쳐 취리히에서 제네바로 옮겨갔다.[54] 성경에 의해 계속해서 개혁된다는 개혁파의 신앙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퍼져나갔지만, 존 녹스에 의해 스코틀랜드에 전해져 이곳에서 발전하여, 교회 제도에 따라 "장로파"(프레스비테리안(Presbyterian))라고 부르게 되었다. 녹스는 『교리문답(훈련, 규율서)』에서 장로제가 제네바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직접 온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55]
장로교는 교리, 교회 조직, 예배 등에서 다른 개신교 교파와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치리규칙"(Book of Order)을 통해 규정되기도 한다. 장로교는 칼뱅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많은 장로교 분파는 교리적 논쟁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대한 동의 정도 차이로 인해 분리되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 다음으로 중요한 역사적 문서로 여겨진다.
2. 역사적 배경
1567년에 스코틀랜드의 국교가 되었고, 그 후 프리 처치가 분리되었다. 대륙의 개혁파와 영국의 장로파는 각각 신앙고백을 정비하여, 준수하는 신앙고백에 따라 구분하게 된다. 청교도 중 토마스 칼트라이트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감독제를 부정하고 장로제를 주장했다. 장로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647년에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채택되었고, 1648년 잉글랜드 의회에서도 채택되었다.[56] 뉴질랜드에서는 주류적인 존재이다.
웨스트민스터 표준에 준수하지 않고, 대회, 중회, 소회를 가지지 않더라도 "장로파", "장로교회"를 표방하는 예는 일본, 한국, 대만 등에 간혹 보인다. 현시점의 일본에서는 스코틀랜드에서 볼 수 있는 규모의 장로회를 가진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57]
2. 1. 초기 역사
장로교 전통, 특히 스코틀랜드 교회의 전통은 6세기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선교를 통해 콜럼바 성인이 세운 기독교 교회까지 그 초기 뿌리를 거슬러 올라간다.[7][8][9] 요한에게 사도적 기원을 두고 있는[10][11] 컬디들은 기독교 수도원 생활을 실천했는데, 이는 이 지역 켈트 기독교의 핵심 특징이었으며, "장로가 기관 내 권위를 행사하는 반면, 서로 다른 수도원 기관들은 서로 독립적"이었다.[12][7][13] 스코틀랜드의 교회는 로마 교황청과 다른 날짜에 부활절을 지켰고, 수도사들은 독특한 형태의 삭발을 했다.[14] 그러나 664년 휘트비 공의회는 "부활절을 켈트식 날짜가 아닌 로마식 날짜에 따라 지켜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이러한 차이점을 종식시켰다.[15] 로마의 영향력이 스코틀랜드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지만,[15] 시편을 노래하는 것과 같이 스코틀랜드 교회에는 특정 켈트의 영향이 남아 있었고,[16] 이는 나중에 "스코틀랜드 장로교 예배의 독특한 부분"이 되었다.[17][18]
장로파는 성경의 「사도행전」(사도행전) 14장 23절, 20장 17절, 「디도서」1장 5절에 유래한다. 신약 성경이 기록된 그리스어의 πρεσβύτεροςel (presbyteros 프레스뷔테로스)는 장로라는 의미이다.
교부들 사이에서는 장로직(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사제)과 주교직은 동일시되었으며, 시대가 내려올 때까지 구별되지 않았다. 장로들이 여러 명 있다는 것은 교회 정치의 기준이기 때문이다.[58]
교부 히에로니무스(347년 - 420년)는 「디도서」 4장에서 "장로는 주교와 동일하다. 악마의 영향으로 당파가 생기기 전에는 교회는 장로회에 의해 다스려졌다."라고 말하였다.
요한 크리소스토모스(349년 - 407년)의 "Homilia i, in Phil. i, 1", 키루스의 테오도레토스(393년 - 457년)의 "Interpret ad. Phil. iii"도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2. 2. 종교 개혁과 장로교의 발전
16세기 스위스의 종교 개혁에서 츠빙글리의 개혁 교회는 불링거에게 계승되었고, 제네바의 칼뱅의 개혁 교회와 취리히 협정에 의해 합동이 성립할 당시, 교회 제도는 칼뱅의 장로제가 채택되었다. 칼뱅은 성경의 권위에 따라 교회를 다스리는 "감독, 장로, 목사"를 구별하지 않았다. 개혁파의 중심지는 1520년부터 1560년에 걸쳐 취리히에서 제네바로 옮겨갔다.[54] 성경에 의해 계속해서 개혁된다는 개혁파의 신앙은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퍼져나갔지만, 존 녹스에 의해 스코틀랜드에 전해져 이곳에서 발전하여, 교회 제도에 따라 "장로파"(프레스비테리안(Presbyterian))라고 부르게 되었다. 녹스는 『교리문답(훈련, 규율서)』에서 장로제가 제네바에서 온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직접 온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55]
3. 장로교의 특징
장로교는 교육과 평생 학습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다고 믿는다. 성경, 신학 저술, 교회 교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여러 신앙 고백서와 교리문답에 나타나 있으며, 이는 다양한 교회 분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어 "종속 규범"이라고 불린다.
장로파는 성경의 사도행전 14장 23절, 20장 17절, 디도서 1장 5절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된 그리스어로 πρεσβύτεροςel (presbyteros 프레스뷔테로스)는 장로를 의미한다.
교부들 사이에서는 장로직(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사제)과 주교직이 동일시되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구별되지 않았다. 히에로니무스(347년 - 420년)는 "장로는 주교와 동일하다. 악마의 영향으로 당파가 생기기 전에는 교회는 장로회에 의해 다스려졌다."라고 언급했다.[58] 요한 크리소스토모스(349년 - 407년)와 키루스의 테오도레토스(393년 - 457년)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58]
3. 1. 신학 및 교리
장로교는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주요 신앙 고백으로 채택한다.[75][76] 이들은 성경, 신학 저술, 교회 교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구체화하는 다양한 신앙 고백서와 교리문답을 통해 신앙을 표현한다.[24]
장로교는 교육과 평생 학습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믿는다.
몇몇 장로교 전통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만을 교리 표준으로 채택하는 반면,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과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교육용으로 승인한다. 북미의 많은 장로교 교단은 모든 웨스트민스터 표준을 성경에 종속되는 교리 표준으로 채택한다. 캐나다 장로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원래 형태로 유지하면서도, 작성된 역사적 시대를 고려하여 읽어야 함을 인정한다.
미국합동장로교회는 ''고백서 책''을 채택하여 웨스트민스터 표준 외에도 니케아 신경, 사도 신경 등의 고대 교리문과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 헬베티쿠스 신앙고백서 등의 16세기 개혁파 신앙고백서, 그리고 바르멘 선언, 1967년 고백 등의 20세기 문서를 포함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은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며 신구약성경을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으로 본다.[75]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 신구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으로 믿는다.[76]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교의 해석을 한다.
칼뱅주의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거부한 아일랜드의 장로교인들은 아일랜드 비가입 장로교회를 형성했다.
3. 2. 교회 정치
장로교 정치는 장로들의 의회(일부 국가에서는 '법원'(courts), 다른 국가에서는 '이사회'(boards)로 알려짐)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는 안수를 받고, 가장 낮은 의회인 세션 또는 종교재판소에 모여 지역 교회의 훈련, 양육 및 선교를 담당한다.
가르치는 장로(목사)는 가르침, 예배 및 성례 집행을 담당한다. 목사는 개별 교회의 부름을 받지만, 이 부름은 지역 프레스비테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이자 세션의 직무대행이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아니며, 해당 교회가 속한 프레스비테리의 구성원이다.
다스리는 장로는 교회에 의해 선출되고 가르치는 장로와 함께 섬기도록 안수받으며, 교회의 양육과 지도를 책임진다. 대형 교회에서는 장로들이 건물, 재정 및 교회 내 빈곤층에 대한 물질적 섬김의 실무를 별도의 임원(집사, 일부 교단에서는 안수받음)에게 위임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룹은 "집사회", "집사 이사회", "집사직", "집사 법원"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며, 때로는 전체 교회에 대해 "장로"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이후 대부분의 교단에서는 여성이 가르치는 장로나 다스리는 장로가 되는 것을 허용한다.
세션 위에는 지역적 책임을 지닌 프레스비테리가 존재한다. 프레스비테리는 각 구성 교회의 가르치는 장로와 다스리는 장로로 구성된다. 프레스비테리는 더 넓은 지역 또는 전국적인 회의인 총회에 대표를 파송하지만, 중간 단계인 노회가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교회/프레스비테리/노회/총회 체계는 스코틀랜드 교회 또는 미국 장로교회와 같이 큰 장로교회의 역사적 구조를 기반으로 한다. 미국 장로교회 및 아일랜드 장로교회와 같은 일부 교단은 교회와 총회 사이의 단계 중 하나(일반적으로 노회)를 생략한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1993년에 노회를 폐지했다.[21]
장로교 정치는 장로교 교단과 많은 다른 개혁교회에서 시행된다.[22]
3. 3. 예배와 성례
장로교 예배는 1640년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개발한 예배 공공 지침서의 영향을 받아 구성된다.[25] 이 지침서는 장 칼뱅과 존 녹스가 주도한 개혁파 예배의 관행과 신학을 바탕으로 하며,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법으로 제정되었다.[25]
장로교 예배의 핵심 원리는 예배의 규제 원리로, 성경에 명령되지 않은 것은 예배에서 금지된다는 원칙이다.[25]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장로교회들이 찬송가, 악기 연주, 제의 등을 예배에 도입하며 이 원칙을 수정해왔다.
장로교 예배는 정해진 형식이 없으며, 주일 예배를 위한 첫째 날 안식일 준수[26]와 함께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복음주의적이거나 부흥회적인 예배, 루터교나 앵글리칸교와 유사한 전례적인 예배, 또는 찬송, 설교, 회중 참여가 균형을 이루는 준 공식적인 예배 등이 있다.
대부분의 장로교회는 대강절, 성탄절, 재의 수요일, 성주간, 부활절, 오순절 등 전통적인 교회 절기를 따르며, 계절 전례색을 사용한다. 또한, 많은 교회가 성찬식에 고대 전례 기도와 응답을 통합하고, 매일, 계절별, 축제별 설교를 따른다. 그러나 개혁 장로교인과 같은 일부는 무반주 시편 독창을 하고, 축일 경축을 피한다.
장로교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 성례를 인정한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믿는 방식으로 집례된다.
3. 4. 교회 건축
초기 장로교인들은 청교도 운동의 영향을 받아 예배를 방해하지 않도록 집회소(오늘날의 교회)를 매우 수수하게 지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정교한 가구, 이미지 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계단으로만 접근 가능한 높은 강단이 건물의 중심이었다.[27]
19세기 후반부터 점차 변화가 시작되어, 부유한 교회들은 인상적인 교회 건축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시카고 제4장로교회(Fourth Presbyterian Church of Chicago), 뉴욕시 브릭 장로교회(Brick Presbyterian Church (New York City)) 등이 있다.
20세기에는 근대 건축 운동(Modern architecture)의 영향을 받아 깨끗한 선, 기하학적 형태, 개방적인 평면도를 특징으로 하는 교회 건축이 나타났다.[27]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의 코럴리지 장로교회(Coral Ridge Presbyterian Church)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일반적으로 장로교회에는 성인상이나 가톨릭 교회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제단 대신, "성찬대(communion table)"가 있다. 성찬대와 그 뒤편의 성찬석(chancel) 사이에는 난간이 있을 수 있으며, 더 장식적인 제단 형태의 테이블, 성가대석, 강대상 등이 있을 수 있다. 장로교와 개혁교회에서는 성찬대 위나 성찬석의 테이블 위에 제단 십자가가 있을 수 있는데, "텅 빈" 십자가 또는 웨스트민스터/켈트 십자가를 사용하여 부활을 강조한다. 세례반은 입구나 성찬석 근처에 위치하며, 장로교 건축은 상징성을 중요하게 사용한다.[28]
4. 세계의 장로교회
16세기 스위스의 종교 개혁 당시, 취리히의 츠빙글리파는 불링거에게 계승되었고, 제네바의 칼뱅파와 개혁교회의 합동이 이루어질 때 장로제가 채택되었다.[54] 존 녹스에 의해 스코틀랜드에 전해져 발전하면서 "장로파"(Presbyterian)라고 불리게 되었다.[55]
1567년 스코틀랜드 국교가 되었고, 청교도 중 토마스 칼트라이트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감독제를 부정하고 장로제를 주장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1647년 스코틀랜드 의회와 1648년 잉글랜드 의회에서 채택되었다.[56]
장로교는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 '''유럽''':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아일랜드, 잉글랜드, 웨일스 등에도 장로교회가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도 소수의 장로교회가 존재한다.
- '''아메리카''': 미국에는 PC(USA)를 비롯한 다양한 장로교단이 있으며, 캐나다에는 캐나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Canada)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도 여러 국가에 장로교회가 존재한다.
-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카메룬, 케냐, 말라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여러 국가에 장로교회가 있으며, 사회 봉사와 선교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 '''아시아''': 대한민국에서 장로교는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이며, 일본, 인도, 홍콩, 대만 등에도 장로교회가 있다.
- '''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장로교는 주요 교단 중 하나이며, 바누아투에서는 인구의 약 1/3이 장로교 신자이다.
4. 1. 유럽
유럽의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장로교 전통, 특히 스코틀랜드 교회의 전통은 6세기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선교를 통해 콜럼바 성인이 세운 기독교 교회까지 그 초기 뿌리를 거슬러 올라간다.[7][8][9] 성 콜룸바는 스코틀랜드에 아이오나 수도원 (Iona Abbey)을 세웠다.

컬디들은 기독교 수도원 생활을 실천했는데, 이는 이 지역 켈트 기독교의 핵심 특징이었다. 장로는 기관 내 권위를 행사했지만, 서로 다른 수도원 기관들은 서로 독립적이었다.[12][7][13] 스코틀랜드 교회는 로마 교황청과 다른 날짜에 부활절을 지켰고, 수도사들은 독특한 형태의 삭발을 했다.[14] 그러나 664년 휘트비 공의회는 부활절을 로마식 날짜에 따라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여 이러한 차이점을 종식시켰다.[15] 시편을 노래하는 것과 같이 스코틀랜드 교회에는 특정 켈트의 영향이 남아 있었고,[16] 이는 나중에 스코틀랜드 장로교 예배의 독특한 부분이 되었다.[17][18]
17세기 잉글랜드에는 회중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혼재했다. 장로교회는 회중교회와 교리적으로 동일했지만, 교회 정치의 차이로 별도의 분파를 유지했다. 1688년 관용령에 의해 장로교는 교회 내 소수의 장로 회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운영하도록 했다.[73]
웨일스 장로교회는 칼뱅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칼뱅주의 감리교도들로 구성되었으며, 1811년에 잉글랜드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들의 목사를 임명했다.[1]
장로교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파이며 아일랜드 섬에서는 아일랜드 성공회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교파이다.[34] 스코틀랜드의 식민 개척자들에 의해 울스터에 전래되었는데,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자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제임스 1세에 의해 이주하도록 장려받았다.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는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스코틀랜드 교회(장로교)인 스코츠 커크가 있으며,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
왈덴스파 복음주의 교회(Chiesa Evangelica Valdese, CEV)는 이탈리아의 프로테스탄트 교파이다.[1] 이 교회는 12세기에 설립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이후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게 되어 프레스비테리안 교회의 이탈리아 지부가 되었다.[1]
4. 1. 1. 스코틀랜드
존 녹스(1505–1572)는 제네바에서 장 칼뱅에게서 배운 후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칼뱅주의에 따라 교회를 개혁할 것을 촉구했다. 종교적 격변과 정치적 갈등이 리드 공성전에서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승리로 이어진 후, 1560년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 의회의 법률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권위는 폐지되었다. 교회는 앤드류 멜빌에 의해 장로교적 성격으로 조직되어 스코틀랜드의 국교인 스코틀랜드 교회가 되었다.[72] 제임스 6세와 1세는 스코틀랜드 교회를 감독 정치 형태로 이끌었고, 1637년 그의 후계자인 찰스 1세와 캔터베리 대주교인 윌리엄 로드는 스코틀랜드 교회에 공동기도서를 강제로 사용하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많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성약''에 서명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 성약파는 거의 10년 동안 스코틀랜드의 정부 역할을 했으며, 잉글랜드 내전 동안 의회파에 군사적 지원을 보냈다.1660년 왕정 복고 이후, 찰스 2세는 성약파로부터 받았던 초기 지원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감독 정치 형태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1688년 명예혁명으로 스코틀랜드 교회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상기 혁명에 대한 지지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1707년 연합 조약으로 인해 군주에 의해 장로교 기관으로 명확하게 인정받았다.
4. 1. 2. 잉글랜드
17세기 잉글랜드에는 회중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혼재했다. 장로교회는 회중교회와 교리적으로 동일했지만, 교회 정치의 차이로 별도의 분파를 유지했다. 1688년 관용령에 의해 장로교는 교회 내 소수의 장로 회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영국 정부의 기금이 지원되지 않자, 경제적 능력이 있는 회원들에게 이사회 등의 자격을 주어 경제적 권한만 허용했다.[73] 부유한 이사들은 점차 교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신학적 교리적 중요성보다는 이성적이고 온건한 장로교로의 선회를 요구했다. 잉글랜드 장로교는 크게 두 분류로 나뉘었다.
잉글랜드 장로교는 1592년 비밀리에 설립되었다. 토마스 카트라이트가 잉글랜드 최초의 장로교인으로 여겨진다. 카트라이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대주교 중심의 엘리자베스 시대 교회에 대해 논쟁적인 강의를 했고, 존 휘트기프트 대주교에 의해 직위를 박탈당하고 해외로 이주했다. 1645년부터 1648년까지, 일련의 장의회 법령에 의해 장로교가 잉글랜드 교회의 정치 체제로 확립되었다. 런던과 랭커셔 등 잉글랜드 일부 지역에서 장로교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장로교인들의 찰스 1세 처형 및 공화정 잉글랜드 연방 수립 반대로 의회는 잉글랜드에 장로교 체제를 강제 시행하지 못했다. 1660년 왕정 복고는 잉글랜드(그리고 짧은 기간 스코틀랜드에서도)에 대주교 교회 정부를 복귀시켰다. 하지만 잉글랜드 장로교회는 국교회 밖의 비국교도로 남았다. 1719년 솔터스 홀 논쟁이라는 주요 분열이 발생했는데, 대다수가 삼위일체 부정 견해를 지지했다. 토마스 브래드버리는 이 논쟁에 관한 설교 여러 편을 출판했고, 1719년에는 "영원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에 서명한 비국교도 목사들에게 던져진 비난에 대한 답변"을 출판했다. 18세기까지 많은 잉글랜드 장로교회는 교리적으로 유니테리언이 되었다.
19세기 이후 잉글랜드로 이주한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많은 새로운 장로교회가 설립되었다. 1843년 '분열' 이후 스코틀랜드 교회와 관련된 많은 교회들이 1876년 잉글랜드 장로교회에 합류했다. 크라운 코트(런던 코벤트 가든), 세인트 앤드류스(런던 스텝니), 스왈로우 스트리트(런던)와 같은 일부 교회는 잉글랜드 교단에 합류하지 않았다. 크라운 코트와 세인트 콜럼바 교회(런던 나이츠브리지 폰트 스트리트)와 같이 잉글랜드에 스코틀랜드 교회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런던 금융 중심부에는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와 제휴한 런던 시티 장로교회가 있다.[31] 스코틀랜드 자유 장로교회에도 런던에 교회가 있다.[32] 울스터 자유 장로교회도 런던에 교회를 가지고 있으며, 잉글랜드에도 다른 5개의 교회가 있다.[33]
1972년, 잉글랜드 장로교회(PCofE)는 잉글랜드 및 웨일스 연합 교회와 합쳐 연합 개혁 교회(URC)를 형성했다. PCofE가 URC에 가져온 교회들 중에는 튜니(랭커셔), 애스턴 티롤드(옥스퍼드셔), 런던 스텝니의 존 녹스 장로교회(현재 스텝니 미팅 하우스 URC의 일부)가 있는데, 이들은 오늘날 17세기 잉글랜드 장로교회의 유일한 생존자들 중 하나이다. URC는 스코틀랜드에도 존재하는데, 대부분은 이전 합동 교회 교회들이다. 세인트 콜럼바, 케임브리지(1879년 설립)와 세인트 콜럼바, 옥스퍼드(1908년 PCofE와 스코틀랜드 교회의 사제직으로, 1929년 PCofE의 교회로 설립) 등 두 개의 이전 장로교회는 URC의 교회이자 스코틀랜드 교회의 대학 사제직으로 계속 운영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장로교 형태의 교회 정부를 채택한 여러 소규모 교파들이 잉글랜드에서 조직되었다. 여기에는 1970년대 복음주의 신학자 프랜시스 쉐퍼가 라브리 펠로우십을 통해 설립한 국제 장로교회(현재 잉글랜드에 15개의 영어권 교회와 6개의 한국어권 교회가 있다)가 포함된다. 또한 1980년대 후반 잉글랜드 북부에서 설립된 잉글랜드 및 웨일스 복음주의 장로교회도 있다.
토마스 칼트라이트(1535년 ~ 1603년)는 성경의 궁극적인 권위를 주장하며, 1570년 「사도행전」 강의에서 잉글랜드 성공회의 감독 정치에 반대하고 장로제를 주장했다. 칼트라이트는 존 휘트기프트에 의해 교수직에서 해임되고, 1572년에는 펠로우 지위도 박탈되어 대학에서 추방당했다. 제네바로 건너가 1585년 귀국한 후에는 장로교 건설을 위한 지하 활동을 했고, 1590년에 투옥되었다. 칼트라이트와 월터 트래버는 공저 『계규론』을 저술했고, 잉글랜드 장로파는 칼트라이트에 의해 생겨났다고 여겨진다.
1640년, 제2차 주교 전쟁에서 패배한 국왕이 리폰 조약 자금 조달을 위해 소집한 의회는 청교도가 주도권을 잡았고, 장기 의회라고 불렸다. 의회의 위촉에 따라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작성했고, 이는 1648년 잉글랜드 의회에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의회는 잉글랜드 내전을 거치면서 장로파와 독립파로 분열되었고, 양측은 전쟁 지휘와 종결 등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다.
4. 1. 3. 웨일스
웨일스 장로교회는 원래 웨슬리안 감리교의 아르미니우스주의보다 칼뱅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칼뱅주의 감리교도들로 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1811년에 잉글랜드 교회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들의 목사를 임명했다.[1] 이들은 원래 칼뱅주의 감리교 연합으로 알려졌으며, 1920년대에는 웨일스 장로교회로도 불리게 되었다.[1]4. 1. 4. 아일랜드
장로교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파이며 아일랜드 섬에서는 아일랜드 성공회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교파이다.[34] 스코틀랜드의 식민 개척자들에 의해 울스터에 전래되었는데, 이들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이자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제임스 1세에 의해 강력하게 이주하도록 장려받았다. 1607년부터 1690년 보인 전투까지 약 10만 명의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이 아일랜드 북부 카운티로 이주했다. 울스터 장로회는 1642년에 기존 성공회와 별도로 설립되었다. 장로교도들은 울스터와 아일랜드 전역의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19세기 초 폐지될 때까지 차별적인 형벌법 아래 고통을 겪었다.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장로교회, 아일랜드 비가입 장로교회, 울스터 자유 장로교회, 아일랜드 개혁 장로교회, 복음 장로교회가 장로교를 대표하고 있다.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 장로교도들을 얼스터 대농장에 이주시켰다. 1641년, 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은 프로테스탄트들을 학살했다. 1642년, 스코틀랜드가 이주민 보호를 위해 파견한 군대에서 최초의 노회가 생겨났다.[63] 이는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이어졌고, 현재도 가톨릭계 무장단체 IRA의 테러가 계속되고 있다. 스코티시 아이리시(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라 불리며, 잉글랜드와 가톨릭 양측으로부터 고통받은 장로교도들은 1700년경부터 북미로 이주해갔다.
4. 1. 5. 프랑스, 이탈리아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는 영어로 예배를 드리는 스코틀랜드 교회(장로교)인 스코츠 커크가 있으며,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 이 교회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스코틀랜드 교회와 프랑스 개혁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왈덴스파 복음주의 교회(Chiesa Evangelica Valdese, CEV)는 이탈리아의 프로테스탄트 교파이다.[1] 이 교회는 12세기에 설립되었으며, 수세기 후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 이후 칼뱅주의 신학을 따르게 되어 프레스비테리안 교회의 이탈리아 지부가 되었다.[1] 따라서 이 교회는 세계 개혁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다.[1]
4. 2. 아메리카


아메리카 대륙의 장로교회는 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에 의해 장로교가 해외로 전파되기 이전에도, 장로교 내에는 분열이 있었다. 일부는 나중에 다시 합류했지만 다시 분리되었다. 일부 장로교인들은 분열된 장로교회들을 "분열된 P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캐나다, 라틴 아메리카 등 아메리카 대륙 각 지역의 장로교회는 각기 다른 역사와 특징을 가지고 발전해 왔다.
- 미국: PC(USA)를 중심으로 다양한 교단이 존재한다.
- 캐나다: 캐나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Canada)가 있으며, 일부는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에 합류했다.
- 라틴 아메리카: 멕시코를 중심으로 여러 국가에 장로교회가 존재한다.

4. 2. 1. 미국
미국의 장로교는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역사와 흡사한 경로를 거쳐 분파를 형성했다.[74] 1644년 뉴욕 헴프스테드에 설립된 그리스도 제일 장로교회(Christ's First Presbyterian Church)가 초기 장로교회이며, 리처드 덴튼 목사에 의해 조직되었다.1703년 필라델피아에 최초의 장로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장로회는 두 개 더 합류하여 1717년에 시노드를 형성했고, 1789년에는 미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로 발전했다.
미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U.S.A.))(PC(USA))는 미국에서 가장 큰 장로교 교단이며, 미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PCA), 정통 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OPC), 성경 장로교회(Bible Presbyterian Church)(BPC), 컴벌랜드 장로교회(Cumberland Presbyterian Church)(CPC), 미국 컴벌랜드 장로교회(Cumberland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복음 장로교회(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EPC), 복음 장로교 계약 교단(Evangelical Covenant Order of Presbyterians)(ECO)도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프랜시스 매케미(1658년 ~ 1708년)는 미국 장로교의 아버지라 불린다. 1729년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채택했다.
1910년, 미국 장로교회 (PCUSA)는 근본주의를 표명했지만, 점차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이에 신학자 존 그레섬 메이천(1881년 ~ 1937년)은 자신이 이단으로 여긴 자유주의와 싸워 1929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했고, 1930년대에 PCUSA로부터 분리되어 정통 장로교회를 형성했다.[64]
4. 2. 2. 캐나다
캐나다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Canada)는 1875년 네 개의 지역 교단이 합병하여 설립되었다. 1925년, 대다수의 장로교인들이 캐나다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Canada)와 캐나다 합동교회(Congregational Union of Canada)와 합쳐져 캐나다 연합교회(United Church of Canada)를 형성했다. 주로 온타리오 주 남부에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상당수의 캐나다 장로교인들이 이탈하여 비동의 계속 장로교 단체로 재편성되었고, 1939년 원래 이름을 되찾았다.[35]4. 2. 3. 라틴 아메리카
장로교는 19세기에 라틴 아메리카에 전파되었다.
멕시코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는 멕시코 국립 장로교회(''Iglesia Nacional Presbiteriana de México'')로, 약 2,500,000명의 회원과 관련자, 그리고 3,000개의 교회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1875년에 북미 연합 장로교회가 설립한 멕시코 연합 개혁 장로교회와 같이 다른 소규모 교파들도 있다. 멕시코 독립 장로교회, 멕시코 장로 개혁 교회, 멕시코 국립 보수 장로교회 등 개혁 전통에 속하는 교회들이 존재한다.
브라질에서는 브라질 장로교회(Igreja Presbiteriana do Brasil)가 약 1,011,300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41] 그 외 브라질의 다른 장로교회들(독립, 연합, 보수, 갱신 등)은 약 350,000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는 400만 명이 넘는 장로교 신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페루, 볼리비아, 쿠바, 트리니다드 토바고,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칠레,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아르헨티나, 온두라스 등에서도 장로교회가 존재하지만, 신자 수는 적다.
4. 3. 아프리카

장로교는 19세기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아프리카에 전파되었으며, 세인트 마이클과 모든 천사 교회와 같은 교회들을 설립했다.[44] 아프리카에서 크게 성장하여 현재 최소 23개국에 교회를 두고 있다.[44]
아프리카 장로교회들은 종종 사회 봉사, 긴급 구호, 선교 병원 운영 등을 포함하는 집사 사역을 통합한다. 아프리카의 장로교회들과 미국 장로교회(PC(USA)) 사이에는 레소토, 카메룬, 말라위, 남아프리카 공화국, 가나, 잠비아 등과의 특정 연계를 포함한 여러 파트너십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펜실베이니아 북동부에 위치한 라카와나 장로교회는 가나의 장로교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또한 피츠버그 근처에 위치한 사우스민스터 장로교회는 말라위와 케냐의 교회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나이지리아 장로교회는 나이지리아 서부 아프리카의 대부분 남부 주들, 특히 남동부 주들에서 건강하고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다. 크로스리버주를 시작으로 인근 해안 주인 리버스주, 라고스주에서 에보니주와 아비아주까지 확산되어 있다. 19세기 중반 홉 와델의 선교 여정과 그 이후 이 해안 지역에 머물렀던 메리 슬레서는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이 지역에서 이 교회의 시작과 번영을 가져왔다.
카메룬 장로교회는 현재 카메룬 개혁 교회의 일원이다.
케냐에 본부를 둔 동아프리카 장로교회는 특히 강력한 세력으로, 500명의 성직자와 400만 명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45]
말라위의 개혁장로교회는 150개의 교회와 1만 7천 명에서 2만 명의 교인을 두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유장로교회의 선교부였으며, 회복된 개혁교회는 말라위 개혁장로교회(RPCM)와 협력하고 있다. 말라위 복음주의 장로교회는 소규모 교회이다. 말라위와 잠비아 장로교회의 일부는 중앙아프리카 장로교회(CCAP)로 알려져 있으며, 그곳의 교회들은 종종 하나의 주요 교회와 여러 기도처를 가지고 있다. 교육, 보건 사역, 예배 및 영적 성장이 중요하다.
남아프리카는 개혁교회와 장로교의 주요 기반이다.
- 1902년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말라칼에서 설립된 남수단 및 수단 장로교회는 1962년 수단 정부의 결정으로 외국인 목사들을 배제당했지만 계속 성장했다. 현재 수단에서 세 번째로 큰 기독교 교회이며, 1,000,000명의 신자가 수단과 남수단에 분포되어 있다.[46]
- 수단 복음 장로교회는 19세기 후반 같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수단 북부와 카르툼에 설립되었지만, 콥트계 이집트 복음주의 목사들의 지도 아래 운영되었다.[1]
북아프리카에는 여러 장로교회가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이집트의 나일 시노드와 최근에 설립된 수단 시노드이다.
4. 4. 아시아
아시아 지역의 장로교회는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일본에서는 1872년 일본 기독공회에서 장로교 정치가 채택되었고, 일본 기독일치교회를 거쳐 1890년 일본 기독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신앙고백 대신 간이 신조주의를 채택하고, 국민 의례를 수용하는 등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45] 1940년 다른 교파와 함께 일본 기독교단을 결성했지만, 1946년 일본 그리스도 개혁파 교회가, 1951년 일본 그리스도 교회가 설립되는 등 분열이 있었다. 현재 일본에는 일본 그리스도 개혁파 교회, 일본 그리스도 교회, 일본 기독교단의 일부, 일본 장로교회 등 여러 장로교 교단이 있다.

인도에서는 1819년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가 선교를 시작했고, 1830년 스코틀랜드 교회 선교사가 들어왔다.[67] 1834년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가 인도에 들어와 1845년 인도 장로교회 총회가 열렸다.[67] 미조람 주에서는 장로교가 가장 큰 기독교 교파이며, 1897년 웨일스 선교사에 의해 전파되었다. 인도 장로교회는 1970년 북인도연합교회에 통합되었다.[67]
홍콩에서는 중국기독교회 홍콩교회협의회(CCC)가 장로교와 회중교회가 합쳐져 형성된 통합교회로, 개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컴벌랜드 장로교 야오다오 중학교는 원랑에 있는 장로교 학교이며, 컴벌랜드 장로교회는 장주 섬에도 교회를 가지고 있다.
4. 4. 1.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 장로교는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개신교 교파이며, 약 2만 개의 교회가 두 개의 큰 장로교단에 소속되어 있다.[47] 대한민국에는 900만 명의 장로교인이 있으며, 이는 1,500만 명의 한국 개신교인 중 대다수를 차지한다. 대한민국에는 100개가 넘는 장로교 교단이 있다.[48]대한민국 장로교회는 19세기 말 미국과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186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가 제너럴셔먼호 사건으로 순교하였고, 이후 1885년 미국 장로교회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등의 선교활동으로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1912년 9월 첫 장로교 총회가 열렸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 강요에 대한 논쟁으로, 1952년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되었던 사람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파로 분립하였다.
1953년에는 성서비평학 수용 문제로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와 진보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분열되었다. 1959년에는 세계교회협의회 가입 문제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으로 다시 분열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은 합동측에 참여하였다.
1974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에서 분리되어 나온 반고소 고려파 교단은 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총회가 되었다.
200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타 국가기관에 등록된 개신교 170개 교단 중 장로교가 명칭에 들어 있는 교단은 118개이다.[77]
한국 장로교는 1981년 결성된 한국장로교총연합회와 2009년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를 통해 장로교회의 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한국 장로교 교단은 전도에 적극적이며 많은 선교사를 해외로 파송하고 있으며,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선교사 파송 국가이다. 한국 장로교회 합동측의 선교기구인 GMS는 한국에서 가장 큰 장로교 선교 단체이다.[50]
한국 장로교는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따르며, 성경을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으로 믿는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했으며, 해방 이후 여러 교단으로 분열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파이며, 세계적으로도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한국 모든 기독교회는 매일 새벽 4시 30분 또는 5시부터 새벽 기도회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1] 철야 기도, 단식 기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 전역에 기도원이 있다.[70]
4. 4. 2. 대만
1865년 잉글랜드 장로교 선교부 선교사 제임스 레이들로 맥스웰이 타이난에 최초의 장로교 교회를 설립했다.[1] 1872년부터 1901년까지 제임스 레이들로 맥스웰의 동료이자 캐나다 장로교 선교부의 조지 레슬리 맥케이는 담수와 타이완 북부에서 활동했으며, 섬 최초의 대학과 병원을 설립하고 타이완어를 위한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1] 1912년 잉글랜드와 캐나다 선교부는 대만기독장로교회로 합병되었다.[1]1951년 두 교파가 합병하여 현재의 대만기독장로교회가 되었으며, 2009년 기준으로 약 23만 8,372명의 신자를 보유한 대만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파이다.[1][2]
4. 4. 3. 인도
주로 기독교인이 거주하는 인도 미조람 주에서는 장로교가 가장 큰 기독교 교파이다. 1897년 웨일스의 선교사들에 의해 전파되었다. 미조람 이전에는 웨일스 장로교인들이 인도 북동부 카시 언덕(현재 인도 메갈라야 주)을 통해 진출하여 1840년대부터 카시 언덕 전역에 장로교회를 설립했다. 따라서 쉴롱(메갈라야 주의 현재 주도)과 그 인근 지역에는 장로교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웨일스 선교사들은 1846년 소흐라(체라푼지라고도 함)에 최초의 교회를 건립했다. 인도의 장로교회는 1970년 북인도연합교회(1924년 설립)에 통합되었으며, 이는 인도에서 가장 큰 장로교 교파이다.[67]
1819년, 미국 장로교회 선교사가 선교를 시작했다. 1830년,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 선교사가 들어왔다. 본국에서의 분열로 1843년부터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가 되었다. 1834년, 미국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 선교사가 인도에 들어와 1845년에 인도 장로교회 총회가 열렸다.[67]
4. 4. 4. 홍콩
중국기독교회 홍콩교회협의회(CCC)는 장로교와 회중교회가 합쳐져 형성된 통합교회로, 개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HKCCCC는 또한 홍콩 유일의 주류 개혁 교회이다.컴벌랜드 장로교 야오다오 중학교는 원랑(신계)에 있는 장로교 학교이다. 컴벌랜드 장로교회는 장주 섬에도 교회를 가지고 있다. 또한 홍콩에는 장로교 신자인 한국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다.[1]
4. 5. 오세아니아
오세아니아 지역의 장로교는 호주, 뉴질랜드, 바누아투 등에서 발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장로교는 기독교의 네 번째로 큰 교파이며, 1901년에 여러 교단들이 합병하여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라는 연방 연합을 형성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오타고와 사우스랜드 지역을 중심으로 장로교가 우세하며, 1901년에 두 장로교 분파가 합병하여 현재의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장로교회를 형성하였다. 바누아투에서는 바누아투 장로교회가 가장 큰 교단이며, 인구의 약 1/3이 신자이다.4. 5. 1. 호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장로교는 기독교의 네 번째로 큰 교파이며, 2006년 연방 인구 조사에서 거의 60만 명의 오스트레일리아인이 장로교 신자라고 밝혔다.[51] 각 식민지에는 스코틀랜드 교회와 자유 교회와 연관된 장로교 교회가 설립되었다.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에서 시작된 교회들과 존 던모어 랭이 설립한 여러 교회들도 있었다. 이러한 대부분의 단체들은 1859년부터 1870년 사이에 합병되었고, 1901년에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라는 연방 연합을 형성했지만 주 총회는 유지했다.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의 전통을 대표하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장로교회와 원래 아일랜드 출신인 개혁 장로교회의 빅토리아 교회는 식민지 시대부터 존재하는 다른 교파들이다.1977년,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의 약 70%와 오스트레일리아 회중 연합의 대부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감리교회 전체가 합쳐져 오스트레일리아 연합 교회를 형성했다.[51] 합류하지 않은 30%는 다양한 이유, 종종 문화적 애착이나 보수적인 신학적 또는 사회적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4. 5. 2. 뉴질랜드

뉴질랜드에서는 오타고와 사우스랜드 지역에서 장로교가 우세한 교파이다. 이는 이 지역의 풍부한 스코틀랜드(Scottish) 유산과, 다소 적지만 얼스터(Ulster-Scots) 유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주변의 캔터베리 지역은 성공회가 철학적으로 우세하다.[1]
원래 뉴질랜드에는 두 개의 장로교 분파가 있었다. 북섬과 와이타키 강 북쪽의 남섬 지역에 존재했던 북부 장로교회와, 남섬 남부에 스코틀랜드 자유 교회(Free Church of Scotland (1843–1900)) 정착민들이 세운 오타고와 사우스랜드 노회가 그것이다. 두 교회는 1901년에 합병하여 현재의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장로교회를 형성하였다.[1]
뉴질랜드 아오테아로아 장로교회 외에도, 그레이스 뉴질랜드 장로교회라는 보수적인 장로교회가 있다. 많은 회원들이 대체로 자유주의적인 PCANZ를 떠나 더 보수적인 교회를 찾으면서 이 교회에 합류하였다. 뉴질랜드 전역에 17개의 교회가 있다.[1]
4. 5. 3. 바누아투
바누아투 장로교회는 바누아투에서 가장 큰 교단이며, 바누아투 인구의 약 1/3이 이 교회의 신자이다.[1] 바누아투 장로교회(PCV)는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에 의해 바누아투에 전파되었다.[1] PCV는 포트빌라에 사무실을 두고 모더레이터가 이끌고 있다.[1] PCV는 특히 타페아주, 셰파주, 말람파주에서 강세를 보인다.[1] 산마주는 주로 장로교 신자들이 많지만, 프랑코폰 지역에는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소수 민족으로 존재한다.[1] 페나마주와 토르바주에는 장로교인이 일부 있지만 조직화된 장로교회는 없는데, 이 두 주는 전통적으로 성공회가 강세인 지역이다.[1] 바누아투는 남태평양에서 장로교의 유산과 신자 수가 상당한 유일한 국가이다.[1] PCV는 바누아투 기독교 평의회(VCC)의 창립 회원이다.[1] PCV는 많은 초등학교와 오네수아 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시골 마을에서도 교세가 강하다.[1]5. 논란
장로교는 여러 가지 사회적, 신학적 논란에 직면해 왔다. 이단 시비, 정체성 혼란, 동성결혼 문제 등이 주요 논란거리이다.
5. 1. 이단 시비
한겨레는 "장로교는 예수교장로회 통합과 합동 그리고 기독교장로회로 분파됐다. 예장의 분파는 무려 200여개에 이른다. 이런 분파 속에서 목회자나 신학자들은 소속 교단이나 교파에 매우 민감하다. 교단별로 서로 인정하지 않아 이단시비 속에서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지적했다.[79]5. 2. 정체성 혼란 문제
한국 장로교회는 대형교회 위주로 재편되면서 개교회 중심주의가 강화되고, 노회의 치리권이 약화되는 문제를 겪고 있다. 장로교회는 개별 교회를 완전한 교회로 보지 않고 노회에 속한 교구로 보며, 목사도 노회 소속이고, 노회의 치리권을 중시하는 직제를 가진다. 이는 개별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막고 공교회성을 유지하기 위해 종교개혁 시대부터 유지해온 시스템이다.[80]그러나 한국 장로교회들은 대형교회 위주로 재편되고 작은 교회는 각자도생하면서 개교회 중심이 되었고, 노회는 목사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당회와 노회는 사실상 치리권을 잃어버리는 현실이 오래 지속되고 있다. 교인들이 범죄하면 다른 교회로 옮겨버리고, 목회자들도 해당 노회에서 징계를 받으면 타 노회나 교파로 옮기거나 노회를 탈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장로교회 본연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노회 소속 목회자의 범죄 사실이 발견되어도 노회가 이를 치리하지 않거나 못하는 일이 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언론에도 오르내리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80]
5. 3. 동성결혼 문제
존 로크의 《관용에 관하여》와 같은 문서에 기반을 둔 교회들은 교회 내에서 서로 다른 교리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중시한다. 로크의 이론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양심과 이성에 근거하여 타 종교에 대한 괄시나 억압, 핍박 등을 막는 관용을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쳤다.미국장로교가 제221차 총회에서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결의를 한 것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성경의 말씀을 더욱 굳게 지키고, 믿음의 삶으로 성도들을 이끌어야 할 미국 최대 장로교단이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고 이에 반하는 결의를 한 것에 대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며, 한기총은 '동성결혼 인정' 결의를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7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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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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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Who Are Presbyterians and What Do They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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ペトロ を 十二 使徒 の 頭 に し て い る け れ ど マタイ 伝 16:18 の ペトラ 女性 形 は :16 の 信仰 告白 に か か る 。 キリスト 活 け る 神 の 子 と い う ペトロ の 告白 あ る い は 信仰 の 上 に 教会 は 立 つ 、 だ か ら こ の 岩盤 ペトラ ( 女性 形 ) と い う の は 「 キリスト 、 活 け る 神 の 子 」 と い う も の で あ る 。 の で 、 ペトロ ( 一 つ の 岩 ) と は 岩盤 ( ペトラ ) に ち な ん だ も の で あ る 。 : ペトロ 一 2:4-8 ペトロ 自身 も キリスト が 岩盤 ペトラ 女性 形 で あ り ペトロ ( 一 つ の 岩 で あ り 男性 形 ) と い う 名 は キリスト 岩盤 に ち な ん だ も の で あ る こ と を 認 め た ) も 国王 ( アングリカン 首長 令 。 俗 権 政治 思想 方針 つ ま り 黙示 13: の 獣 、 並行 記述 ダニエル 7:2-7 、 同 8:20-23 、 世俗 の 王 政治 権 制度 ) も 教会 の 頭 で は な い こ と を 意 味 す る 。 教会 の 頭 ( か し ら ) は 俗 政府 と の 皇帝 教皇 主義 提携 信仰 合同 も 非 と さ れ る 、 再 洗礼 派 的 傾向 民衆 民間 主義 の 長老 派 は 俗 政府 と 提携 し な い 、 独立 自律 的 な 教会 、 キリスト の 天権 の 采配 、 支配 、 裁き を 承認 す 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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