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롬브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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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사레 롬브로소는 1835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범죄학자, 정신과 의사였다. 그는 파도바 대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군의관으로 활동했으며, 이후 정신 병원 원장과 대학교수를 역임했다. 롬브로소는 범죄학 연구를 통해 범죄자의 생물학적 특징을 분석하고, "생래적 범죄자설"을 주장했다. 그는 범죄자를 원시 인류의 특징을 보이는 격세유전의 산물로 보았으며, 신체적, 정신적 특징을 기준으로 범죄자를 분류하고자 했다. 그의 저서 '범죄인'은 큰 영향을 미쳤으나, 롬브로소의 이론은 인종차별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또한 천재와 광기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말년에는 강령술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롬브로소는 1909년 사망했으며, 그의 사상은 범죄학, 정신의학, 형사 사법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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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롬브로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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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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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에제키아 마르코 롬브로소 |
출생 | 1835년 11월 6일 |
출생지 | 베로나, 롬바르디아-베네치아 |
사망 | 1909년 10월 19일 (향년 73세) |
사망지 | 토리노, 이탈리아 왕국 |
국적 | 이탈리아 |
분야 | 의학 범죄학 |
알려진 업적 | 이탈리아 실증주의 범죄학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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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지나 롬브로소 |
2. 생애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범죄학자로, 범죄 인류학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1859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여했으며, 이후 정신 병원 원장을 거쳐 파비아 대학교와 토리노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법의학, 위생학, 범죄 인류학 분야에서 활동했다.[43] 그의 연구는 내분비 이상, 비타민 결핍증, 병적 심리학, 필적학, 최면, 심령 현상 등 광범위했으며,[42] 초기에는 유물론자였으나 만년에는 심령주의에 관심을 가졌다.[44] 1870년 결혼하여 다섯 자녀를 두었고,[44] 1909년 10월 19일 토리노에서 사망했다.[44]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롬브로소는 1835년 11월 6일, 당시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왕국에 속했던 베로나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5][41] 그의 아버지는 베로나 출신의 상인 아론 롬브로소였고, 어머니는 토리노 근처 키에리 출신의 제포라(또는 제피라) 레비였다.[6] 그는 랍비 가문 출신이었는데, 이러한 배경은 그가 대학에서 폭넓은 주제를 연구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7]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여 2세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대화하고, 14세에는 『로마 쇠망사』를 저술했다고 전해진다.[42]
그는 파도바 대학교, 빈 대학교, 파리 대학교에서 문학, 언어학,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다.[1][7] 그러나 이후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여, 18세 무렵부터 이들 대학에서 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42] 최종적으로 파비아 대학교에서 의학 학위를 취득했다.[1]
2. 2. 경력
롬브로소는 1859년 자원 입대하여 육군 군의관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이탈리아 통일 전쟁에도 종군했다. 그는 이 시기에 생물학적 범죄론 이론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했다.[8] 1863년부터 1872년까지 파비아, 페사로, 레조 에밀리아의 정신 병원 원장을 역임했으며,[42] 특히 1871년에는 페사로의 정신병원을 관리했다.[9] 군인과 정신병원 수감자의 신체적 특징에 대한 그의 연구는 범죄 인류학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9]1866년에는 파비아 대학교의 객원 강사로 임명되었다.[9] 1870년 4월 10일 니나 데 베네데티(Nina De Benedetti)와 결혼하여, 지나 롬브로소(Gina Lombroso)를 포함한 5명의 자녀를 두었다.[44]
1876년 토리노 대학교의 법의학 및 위생학 교수로 임용되었고[43] (1878년 임명 기록도 있음[10]), 토리노 감옥에서 죄수의 연구를 시작했다.[43] 1878년 그는 그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저서인 ''L'uomo delinquente'' (영어 제목: ''Criminal Man'', 한국어 제목: 범죄인)를 집필했는데, 이 책은 이탈리아어로 5판까지 출판되었고 여러 유럽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저서 중 3권은 1900년까지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1895년에 출판된 ''The Female Offender''의 부분 번역본도 포함되었다. 이 책은 영국의 소설가 조지 기싱이 그해 8월에 읽기도 했다.[11]
롬브로소는 토리노 대학교에서 1896년 정신의학 교수가 되었고, 1906년에는 범죄 인류학 교수로 임명되었다.[5][43] 그의 연구 분야는 내분비 이상, 비타민 결핍증 연구, 천재와 광기의 관계를 연구하는 병적 심리학 (파토그래피) 등으로 폭넓었으며, 필적학, 최면, 심령 현상 연구도 수행했다.[42] 경력 초반에는 충실한 유물론자였지만, 만년에는 심령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심령 현상을 사실로 인정하게 되었다.[44]
1909년 10월 19일, 토리노에서 사망했다. 그의 딸 지나(Gina)는 아버지의 사후, 그의 만년의 저술을 편집하여 출판했다.[44]
2. 3. 결혼과 가족
롬브로소는 1870년 4월 10일 니나 데 베네데티(Nina De Benedetti)와 결혼했다.[44]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44] 그중 딸인 지나는 롬브로소 사후 그의 연구를 요약하고[12] 만년의 저술을 편집하여 출판했다.[44]2. 4. 사망
롬브로소는 1909년 10월 19일, 토리노에서 사망했다.[12][44] 그의 딸 지나는 아버지의 사후, 그의 만년의 저술을 편집하여 출판했다.[44]3. 생래적 범죄자설
체사레 롬브로소의 범죄 이론의 핵심은 생래적 범죄자설(生來的 犯罪者說)이다. 이는 범죄를 저지를 성향이 선천적으로 결정되며, 특정 신체적 특징이나 정신적 특징, 소위 '낙인'(Stigmata)을 통해 범죄자를 일반인과 구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13][14][15][16] 롬브로소는 범죄자가 유인원이나 초기 인류와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보이는 것은 격세유전(atavism), 즉 인류 진화의 초기 단계나 하등 동물 상태로 되돌아간 결과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생물학적 '퇴행자'들은 현대 문명 사회의 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필연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생각했다.[46]
이러한 생각은 1876년 출간된 그의 대표 저서 『범죄인』(it)에서 체계화되었다. 이 책에서 롬브로소는 범죄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을 강조하며, 범죄자를 인류의 하위 변종인 '호모 데린켄스'(la)로 규정했다.[46] 그의 이론은 프란츠 요제프 갈의 골상학, 베네딕트 모렐의 퇴화(degeneration) 이론, 찰스 다윈의 진화론, 그리고 앙드레 미셸 게리와 아돌프 케틀레 등의 범죄 통계학 연구에 큰 영향을 받았다.[41]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두개골 형태, 얼굴 생김새, 신체 구조 등을 측정하고 분석하여 범죄 성향과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으며[47], 이러한 접근법은 범죄 인류학의 시초로 여겨진다.[46]
생래적 범죄자설은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생물학적 소인에서 찾으려는 시도였으나, 과학적 근거 부족과 인종차별적, 성차별적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후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찰스 버크먼 고링 등의 후속 연구를 통해 범죄자와 비범죄자 간의 유의미한 신체적 차이가 통계적으로 입증되지 않으면서 과학적 근거 부족으로 비판받으며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3. 1. 주요 내용

롬브로소의 핵심 이론은 범죄자가 일반인과 구별되는 여러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생래적 범죄자설이다. 그는 범죄자가 유인원이나 초기 인류를 연상시키는 신체적 특징, 즉 '원시적'이거나 '인간 이하' 유형으로의 격세유전(atavism)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물학적 '퇴행자'는 현대 문명 사회의 규칙에 필연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보았다.[13][14][15][16]
수년간 범죄자, 정신 이상자, 일반인의 사후 검사와 인체 측정 연구를 통해, 롬브로소는 '선천적 범죄자'(''reo nato'')를 해부학적으로 식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기울어진 이마, 특이한 크기의 귀, 얼굴 비대칭, 전돌증, 과도하게 긴 팔, 두개골 비대칭 등 '신체적 낙인'(stigmata)을 근거로 제시했다. 특정 범죄 유형(예: 도둑, 강간범, 살인자)은 고유한 특징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범죄자는 고통에 덜 민감하고 시력이 예민하며, 후회심 부족, 허영심, 충동성, 복수심, 잔혹성과 같은 정신적 특징과 함께 특유의 은어 사용, 과도한 문신 등의 경향을 보인다고 주장했다.[17]

롬브로소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1876년 출간된 『'''L'uomo delinquente|루오모 델린퀜테it'''』(범죄인)이다. 총 3권, 약 1,900쪽에 달하는 이 책에서 그는 범죄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강조했다. 이는 베네딕트 모렐의 '변질'(퇴화) 개념을 범죄 연구에 도입하고, 프란츠 요제프 갈의 골상학[45]을 계승하며, 앙드레 미셸 게리, 아돌프 케틀레의 범죄 통계학 및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 큰 영향을 받은 결과였다.[41] 롬브로소는 브리간테(산적) 빌레라의 두개골 검시 중 특정 특징이 하등 척추동물과 유사함을 '발견'하고, 범죄자의 성질이 원시 인류나 하등 동물의 잔혹한 본성을 신체에 재현한 '격세유전의 산물'이라는 영감을 얻었다고 술회했다.[46] 그는 이 생각을 단순한 발상이 아닌 '계시'라고 여겼다.[46]
『범죄인』에서 제시된 범죄자의 신체적 및 정신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특징은 선사 시대 인류나 동물에게서 더 흔하며, 원시적 단계로의 퇴행적 발현이라고 보았다. 롬브로소는 이런 특징을 가진 ''''호모 데린켄스'''(Homo delinquens, 범죄인)'는 문명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선천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운명이라고 결론지었다.[46] 정신의학적으로는 배덕광, 병리학적으로는 간질 증세로 진단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범죄자의 약 3분의 1이 호모 데린켄스이며, 이들은 도의적 책임은 물을 수 없지만 사회에 위험하므로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7] 다만, 호모 데린켄스가 아닌 범죄자는 교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사형에 반대했으나, 호모 데린켄스 범죄자에 대한 사형은 긍정했다.[44]
롬브로소는 '선천적 범죄자' 외에도 우발적 범죄자, 정열 범죄자, 도덕적 정신 박약자, 범죄 간질 환자 등 '범죄자형 인간' 유형을 제시했다. 그는 유전적 요인 외에도 환경, 기회, 빈곤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후기로 갈수록 일부 인정하기도 했다.
니콜 한 라프터와 메리 깁슨이 영어로 번역한 『범죄 여성』에서 롬브로소는 여성 범죄를 설명하기 위해 퇴행 이론을 적용했다. 그는 '정상 여성'과 '범죄 여성'(예: 매춘부)을 비교 분석했지만,[18] 여성의 범죄율이 남성보다 낮은 현상을 자신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보았기에, 낮은 범죄율이 낮은 퇴행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9] 그는 또한 매춘부나 동성애자 역시 격세유전으로 인해 당대 유럽인보다 더 원시적인 상태로 퇴행하여 그러한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46]
롬브로소의 이론은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다. 1861년 통일된 이탈리아는 지역적 다양성으로 인해 통합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46] 롬브로소는 도시 빈민, 빈농, 성적 도착자 등 사회 내 '야만인'들을 근대 국가에 통합하는 방안으로, 외형적 특징을 통해 범죄자를 사전에 식별하고 격리하는 '범죄 인류학'을 제시했다.[46] 이는 진화론적 생물학과 형질 인류학을 동원하여 이탈리아의 정치적 과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46] 그의 연구 방법은 두개골 측정 등 임상적이고 기술적이었으나, 범죄자와 비범죄자 집단 간의 엄밀한 통계적 비교는 부족했다. 롬브로소의 범죄 인류학은 인간의 행위가 뇌라는 생리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며, 정신은 뇌라는 물질의 작용이라고 보았다.[45]
롬브로소의 이론은 유럽, 특히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카사뉴 등으로부터 비판받았다.[21] 영국의 찰스 버크먼 고링은 1913년 『영국 죄수』 연구에서 정교한 비교를 통해 범죄자와 비범죄자 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신체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반박하며 롬브로소 이론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롬브로소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두개골과 뇌는 동료들에 의해 측정되었으며, 현재 토리노의 정신의학 및 범죄학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20]
=== 일본에서의 수용과 영향 ===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서는 롬브로소의 연구가 교육, 정신의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소개되어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의 '과학적' 인간 분석은 대중의 흥미를 끌었다. 예를 들어, 나쓰메 소세키 사후 그의 뇌를 검시한 의학 박사 나가요 마타지로가 롬브로소의 『천재론』(원제: 『천재와 광기』, ''Genio e follia'', 1864년)을 인용하며 소세키를 '천재=광기'의 틀에서 분석한 강연이 신문에 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53] 이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후대 작가들의 예술가상에도 영향을 미쳤다.[53]
롬브로소의 여성론, 특히 월경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주장은 메이지 시대 여학교 등에서 성별 역할 분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54] 다이쇼 시대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엽기 범죄 증가를 배경으로 범죄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롬브로소의 저작이 번역, 소개되었다. 1914년 쓰지 준이 번역한 『천재론』이 대표적이다. 의사이자 추리소설가인 고자카이 후보쿠는 자신의 저서에서 롬브로소의 이론을 소개하며 여성 범죄를 월경이나 히스테리와 연결 지었다.[56][55] 이러한 주장은 일본 사회에 퍼져나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도 사법 현장에 영향을 미쳐, 월경 중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용의자로 체포하는 등의 억울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57][58] 또한, 당시 범죄학자들은 롬브로소 이론을 인용해 '여성은 거짓말쟁이'라는 편견을 퍼뜨렸고, 이는 특히 성범죄 피해 사실을 여성이 거짓으로 꾸며낸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악용되었다.[59] 역사사회학자 다나카 히카루는 이러한 주장이 과학적 근거 없이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은폐하는 데 편리하게 사용되었다고 지적했다.[59] 문학에서는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 사건』이나 유메노 큐사쿠의 『도그라 마그라』와 같은 작품에서도 롬브로소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3. 2. 범죄자의 특징 (롬브로소)
롬브로소는 범죄자가 여러 신체적 이상 징후를 통해 비범죄자와 구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죄자들이 유인원, 하등 영장류, 초기 인류를 연상시키는 신체적 특징을 보이며, 이는 현대의 "야만인"에게서 일부 보존된 원시적 또는 인간 이하 유형으로의 회귀, 즉 격세유전(atavism) 현상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생물학적 "퇴행자"의 행동은 필연적으로 현대 문명 사회의 규칙과 기대를 거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13][14][15][16]
수년간 범죄자, 정신 이상자, 정상인의 사후 검사 및 인체 측정을 연구한 롬브로소는 "선천적 범죄자"(''reo nato'', 엔리코 페리가 붙인 용어)가 해부학적으로 식별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들이 기울어진 이마, 특이한 크기의 귀, 얼굴 비대칭, 전돌증, 과도하게 긴 팔, 두개골 비대칭 등 "신체적 낙인"을 통해 식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특히 도둑, 강간범, 살인자 등 특정 유형의 범죄자는 특유의 신체적 특징으로 구별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범죄자는 고통과 촉각에 덜 민감하고, 시력이 더 예민하며, 후회가 없는 등 도덕 감각이 결여되어 있고, 허영심, 충동성, 복수심, 잔혹성이 더 강하다고 주장했다. 특별한 범죄 은어 사용이나 문신의 과도한 사용 역시 범죄자의 특징으로 꼽았다.[17]
롬브로소는 1876년에 출간한 대표 저서 『범죄인(L'uomo delinquente)』에서 이러한 주장을 상세히 펼쳤다. 총 3권, 약 1,900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저작에서 그는 범죄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강조했다. 이는 베네딕트 모렐의 "변질"(퇴화) 개념을 범죄 연구에 도입하고, 프란츠 요제프 갈의 골상학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이었다. 또한 앙드레 미셸 게리, 아돌프 케틀레의 범죄 통계학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41]
롬브로소는 이탈리아의 브리간테(산적) 빌레라의 시신을 부검하던 중, 그의 두개골 특징이 하등 척추동물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범죄자의 본성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통해 범죄자들이 "원시적인 인류나 하등 동물의 잔혹한 본성을 그 신체 안에 재생시킨 격세 유전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떠올렸으며, 이 생각을 "단순한 생각이 아닌 계시"라고 표현하기도 했다.[46]
그는 골상학, 관상학, 인류학, 유전학, 통계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방법을 동원하여, 퇴화적 격세 유전을 나타내는 신체적 특징(낙인, Stigmata) 목록을 만들고, 신체적·정신적 특징과 범죄 사이의 상관관계를 검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처형된 죄수 383명의 두개골을 해부하고 5,907명의 생존 범죄자 체격을 조사하는 등 방대한 연구를 수행했다.[47] 이를 통해 "범죄자에게는 일정한 신체적·정신적 특징이 인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롬브로소가 제시한 범죄자의 신체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구분 | 특징 |
---|---|
두개골/얼굴 | 작은 뇌, 두꺼운 두개골, 큰 턱, 턱의 전방 돌출(전돌증), 낮은 이마, 높은 광대뼈, 평평하거나 위로 향한 코, 손잡이 모양의 귀, 매의 코, 도톰한 입술, 이상한 치열, 얼굴의 비대칭성 |
신체 | 하지에 비해 긴 팔 |
눈 | 엄한 눈매, 흔들리는 시선 |
털 | 털이 많거나, 반대로 수염이 적거나 없음 |
[44]
정신적 특징으로는 도덕 관념의 결여, 잔혹성, 충동성, 나태함, 낮은 지능, 통각의 둔마, 문신 (범죄 심리의 표상으로 간주), 강한 자기 과시욕 등을 꼽았다.[44] 롬브로소는 이러한 특징들이 현생 인류보다는 유인원이나 원시인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는 범죄자를 인류의 하위 변종인 "호모 데린켄스(Homo delinquens, 범죄인)"로 규정하고, 이들은 격세 유전으로 인해 인류의 초기 단계로 퇴행한 존재이며, 선천적으로 문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를 운명을 타고났다고 주장했다.[46][47] 정신의학적으로는 배덕광, 병리학적으로는 간질 증세와 관련지었다.
"선천적 범죄자" 외에도 롬브로소는 우발적 범죄자, 정열적 범죄자, 도덕적 정신 박약자, 범죄 간질 환자 등을 포함하는 "범죄자형 인간"이라는 개념도 제시했다. 그는 많은 상습 범죄자에게 유전적 요인 외에도 환경, 기회, 빈곤과 같은 사회적 요인이 작용함을 인정하기도 했다. 특히 말년에는 범죄의 원인으로 심리적, 사회학적 요인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으나, 범죄 인류 측정학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은 유지했다.
니콜 한 라프터와 메리 깁슨이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한 『범죄 여성(Criminal Woman, the Prostitute, and the Normal Woman)』에서 롬브로소는 여성 범죄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퇴행 이론을 적용하려 했다. 그는 "정상 여성"과 "창녀" 같은 "범죄 여성"을 비교 분석했지만,[18] 여성의 범죄율이 남성보다 현저히 낮은 현상은 그의 이론에 난제를 안겨주었다.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믿었기에, 여성의 낮은 범죄율을 설명하기 위해 여성이 남성보다 덜 퇴행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19]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약 3분의 1이 선천적인 "호모 데린켄스"이며, 이들은 필연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에 도덕적 비난이나 처벌은 의미가 없다고 보았다. 대신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경우에 따라 사형도 긍정했다. 반면, 호모 데린켄스가 아닌 다른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갱생의 여지가 있다고 보아 사형에 반대하고 인도적 처우를 제안했다.[44][47] 그는 1861년 통일된 이탈리아가 정치적 후진성을 극복하고 근대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야만인'(도시 빈민, 범죄자, 빈농, 성적 도착자 등)을 식별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외형적 특징을 통해 범죄 발생 전에 잠재적 범죄자를 식별하여 격리하는 것을 범죄 인류학의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다.[46]
롬브로소의 연구 방법은 두개골 치수 측정 등 임상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되었으나, 범죄자와 비범죄자 집단 간의 엄밀한 통계적 비교는 부족했다. 그의 이론은 유럽 학계, 특히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카사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21] 또한 찰스 버크먼 고링은 1913년 『영국 죄수(The English Convict)』 연구를 통해 롬브로소의 주장과 달리 범죄자와 비범죄자 간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신체적 차이가 없음을 밝혀 그의 이론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사후 그의 유언에 따라 동료들은 롬브로소 자신의 두개골과 뇌를 그의 이론에 입각하여 측정했다. 그의 머리는 병에 보존되어 현재 토리노의 정신의학 및 범죄학 박물관에 그의 수집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20]
3. 3. 비판
롬브로소의 이론, 특히 범죄자를 신체적 특징으로 식별할 수 있다는 생래적 범죄자설은 발표 당시부터 유럽 학계, 특히 의과 대학에서 비판에 직면했다.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라카사뉴는 롬브로소 이론의 주요 비판자 중 한 명이었다.[21] 라카사뉴는 범죄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환경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롬브로소와 대립각을 세웠다.
롬브로소 이론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은 영국의 의사 찰스 버크먼 고링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링은 1913년 출간한 ''영국 죄수''(eng)에서 3,000명 이상의 범죄자와 비범죄자 집단을 대상으로 정교한 통계적 비교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롬브로소가 주장한 것과 같은 범죄자와 비범죄자 간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신체적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 유형은 과학적 실체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롬브로소의 연구 방법론 자체에도 문제가 지적되었다. 그는 방대한 양의 두개골과 신체 치수를 측정했지만[47], 연구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이 모호했고, 범죄자와 비범죄자 집단 간의 엄격한 통계적 비교 분석이 부족했다. 이는 그의 결론이 객관적인 데이터보다는 주관적인 해석에 치우쳤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비록 롬브로소는 말년에 범죄 원인에 있어 환경적, 사회적 요인의 중요성을 일부 인정하기도 했지만[41], 끝까지 생물학적 요인과 신체적 특징을 강조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성 범죄에 대한 그의 설명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롬브로소는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고 보았는데, 이는 당시 사회의 여성 차별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여성의 범죄율이 남성보다 현저히 낮다는 통계적 사실과 모순되었다. 만약 그의 '퇴행 이론'이 맞다면, '열등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원시적 상태에 가까워 범죄율이 높아야 했기 때문이다. 롬브로소는 이러한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19]
결론적으로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설은 골상학과 같은 유사과학적 관점에 기반하고 있으며[45], 과학적 방법론의 결함, 통계적 근거 부족, 그리고 인종과 성별에 대한 차별적 편견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범죄학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의 이론은 범죄의 원인을 개인의 생물학적 결함으로 환원시켜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고,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와 차별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4. 여성 범죄 및 월경 요인설
19세기 말 유럽 의사들은 여성의 본성을 모성 이미지에 맞춰 이해하려 했다. 이들은 여성이 "생식을 위해서만 사는" 존재이며, 모성 본능에는 죄를 짓는 것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또한 "자궁에 지배되는" 여성은 필연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에, 남성과 동등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인식 때문에 19세기 후반 많은 여성 범죄자는 정신 장애자로 간주되어 감옥 대신 정신 병원에 보내졌다.
롬브로소는 여성 범죄 연구를 여성의 두개골 측정과 사진 분석에서 시작하여 선천적 퇴화의 징후를 찾으려 했으나, 여성 범죄자는 드물고 퇴화 징후도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44]. 그는 진정한 여성적 죄는 매춘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딸의 남편 굴리에르모 페레로와 함께 쓴 『여성 범죄자, 매춘부, 정상적인 여성』(1893년)에서 거의 전적으로 매춘 문제를 다루었다.
롬브로소는 여성이 선천적으로 수동적이며 범죄를 저지를 지성과 자발성이 부족하여 법을 어기는 것을 막는다고 주장했다[44]. 그는 저서에서 여성이 본래 질투심이 강하고 잔혹하며(특히 동성이나 약자에게 심화됨), 냉혹하고 성급하며 부도덕하고 불성실하며 복수심과 허영심이 강하다고 묘사했다. 다만 이러한 성질은 일반적으로 모성, 낮은 지성, 약함 등으로 "중화"된다고 보았다. 만약 이것이 "중화"되지 않고 범죄자가 된다면, 여성 범죄자는 남성 범죄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악마적인 범죄를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롬브로소는 여성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생리적인 현상이며, 특히 월경 시기에 두드러진다고 설파했다. 당시 현행범으로 체포된 여성 "80명 중 71명"이 월경 중이었다는 통계를 근거로 여성의 범죄와 월경을 "실증적"으로 연결하려 시도했다. 이러한 생각은 백인 남성이 가장 진화했고 비백인 여성이 가장 하등하다고 본 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당시 다윈주의 과학자들은 여성이 월경을 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동물에 가깝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5. 천재론
롬브로소는 천재가 광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27] 그는 이러한 생각을 발전시키기 위해 1897년 모스크바에서 레프 톨스토이를 직접 만나 자신의 이론에 대한 증거를 얻고자 했다.[27]
롬브로소는 1888년 『천재론(L'uomo di Genio|루오모 디 제니오it)』(1889년 ''천재의 인간''으로 영어권에 소개됨)을 출판했는데, 이 책에서 예술적 천재성은 유전적인 정신 질환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다.[44]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정신병적 예술"이라 부를 만한 작품들을 수집하고 분석했으며, 1880년 발표한 논문에서는 그 특징을 13가지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는 천재와 광기, 나아가 범죄까지도 선천적, 유전적 자질의 다른 표현 형태로 보았다.
롬브로소는 천재들이 보이는 특이한 점들을 "타락(퇴행)"의 증상으로 간주했다. 그는 갈릴레오, 다 빈치, 볼테르,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다윈 단 6명만이 타락 증상을 보이지 않은 예외적인 천재라고 주장했다.[28] 반면, 셰익스피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모차르트, 단테[28], 카이사르, 무함마드, 나폴레옹 등 수많은 역사적 위인과 천재들이 타락 증상을 보였다고 언급하며, 이들의 신경 및 정신 질환(간질 등)과의 관련성을 주로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했다.
그가 타락의 증거로 삼은 기준은 매우 광범위했다. 조숙함, 장수, 다재다능함, 영감과 같은 심리적 특성[28]뿐만 아니라, 신체적 특징까지 포함되었다. 그는 프란츠 요제프 갈의 골상학 연구에 영향을 받아[29] 칸트, 볼타, 포스콜로 등의 두개골을 측정하고 안면 각도나 뼈 구조의 "이상"을 찾으려 했다.[30] 또한 데모스테네스, 베이컨, 데카르트, 뉴턴, 로크, 스미스 등 많은 천재들이 어린 시절 병약했다는 점[30], 구루병, 창백함, 왼손잡이, 몽유병, 작은 키나 불균형한 신체, 기억 상실 등도 타락의 징후로 간주했다.[30] 심지어 특정 단어에 대한 애착이나 "천재의 영감" 자체도 타락의 표지로 인용했다.[30]
롬브로소의 천재론은 막스 노르다우에게 큰 영향을 주어, 노르다우는 자신의 저서 『타락(''Entartung'')』을 롬브로소에게 헌정하며 그를 "존경하는 스승"으로 칭했다.[28] 또한 독일의 정신과 의사 한스 프린츠호른이 정신질환자의 예술 작품을 연구하는 데 영감을 주었으며[44], 프린츠호른의 저작은 아르 브뤼 운동을 이끈 장 뒤뷔페 등 당시 전위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44][48] 롬브로소의 이론은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낭만주의 시대의 통념이 과학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대중에게 널리 퍼지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롬브로소의 방법론과 주장은 발표 당시부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미국의 《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는 그의 이론이 "반쪽짜리 진실, 오해, 가정에 의해 뒷받침되는 가설"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다.[31] 이탈리아의 인류학자 주세페 세르지 역시 롬브로소가 실제 살아있는 천재를 면밀히 조사하기보다는, 자신의 상상 속에서 이상화된 천재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아 이론을 구축했다고 비판했다.[32]
6. 평가 및 영향
체사레 롬브로소는 스스로를 현대 과학 정신의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자처하며 '범죄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22] 그는 대학 교육 과정에 정신의학을 도입하고[22] 파비아 대학교에서 정신 건강을 전문으로 다루는 최초의 교수가 되는 등[24]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1880년대 그의 이론은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24] 범죄 행위를 유전된 신체적 특성과 연결 짓는 그의 실증주의 학파는 체사레 베카리아의 고전주의 학파와 대립하며 논쟁을 일으켰다.[23]
롬브로소의 핵심 이론인 생래적 범죄자설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하여, 특정 신체적 특징(Stigmata)을 가진 사람은 선천적으로 범죄자가 될 운명을 지닌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는 골상학, 관상학, 진화론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41][45] 그는 방대한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47] 이러한 이론은 범죄자의 외모나 문신,[25] 심지어 왼손잡이 여부까지 범죄 성향과 연결 짓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25]
그의 연구는 범죄 행위와 정신 이상을 연결하며 법정 정신의학 분야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23] 정신 이상 범죄자를 위한 별도 수용 및 치료 시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근거가 되었다.[23] 또한, 천재성과 광기의 연관성을 탐구한 그의 저작은[24] 예술 및 문학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롬브로소의 이론, 특히 생래적 범죄자설은 발표 초기부터 과학적 근거 부족과 인종차별적 편견[23] 등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의 이론은 우생학적 사고와 연결될 소지가 있었으며, 실제로 파시스트 정권은 그의 이론을 인종차별 정책과 이탈리아 인종법 제정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하기도 했다.[23][49] 찰스 고링의 연구 등 후속 연구들은 롬브로소의 주장과 달리 범죄자와 비범죄자 사이에 유의미한 신체적 차이가 없음을 밝혀냈고,[50] 그의 이론은 점차 설득력을 잃어 현대에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사이비 과학으로 평가받는다.[50] 그의 사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이탈리아 학계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23]
결론적으로 롬브로소는 범죄학 및 정신의학 분야의 초기 발전에 일부 기여했으나, 그의 핵심 이론은 과학적 오류와 인종차별적 함의로 인해 심각한 비판을 받으며 현대 사회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범죄 원인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관련 논쟁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학문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46]
6. 1. 긍정적 평가
스스로를 현대 과학 정신의학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긴 롬브로소는 '범죄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22] 그는 대학교육 과정에 정신의학을 포함시키는 데 기여했으며,[22] 파비아 대학교에서 정신 건강을 전문으로 다루는 최초의 교수가 되었다.[24] 1880년대에 그의 이론은 학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정신 질환 연구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24]롬브로소는 범죄 행위가 자유 의지의 결과라고 본 체사레 베카리아의 계급주의 학파와는 달리, 생물학적 요인을 강조하는 실증주의 학파를 주장했다.[23] 그의 정신의학 이론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실증주의 학파로 명명되었으며,[23] 인간 행동 연구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22]
그의 연구는 범죄 행위와 정신 이상을 연결 지으며 법정 정신의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는다.[23] 그는 정신 이상을 가진 범죄자를 일반 수감자와 분리하여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 수용 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주장은 이후 관련 제도 마련에 영향을 주었다.[23] 1904년 이탈리아 정부는 정신 병원에서의 치료를 표준화하고 정신 질환 범죄자의 입원 절차를 법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정신과 의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범죄 원인 규명 및 치료에 대한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롬브로소가 오랫동안 지지해 온 입장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23]
또한 롬브로소는 말년에 펠라그라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이 질병이 영양 결핍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훗날 조셉 골드버거에 의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24]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도 보여, 사회주의 사상을 지지하고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그가 핵심적으로 주장했던 생물학적 결정론과는 다소 모순되는 측면으로 지적되기도 한다.[26]
6. 2. 부정적 평가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설은 발표 초기부터 비판에 직면했다. 특히 얼굴 비대칭을 가진 범죄자와 넙치를 비교하는 등의 내용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46]롬브로소의 이론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하여 범죄의 원인을 설명하려 했으며, 이는 엔리코 페리, 라파엘레 가로팔로와 함께 이탈리아 범죄학파 (범죄 생물학, 범죄 인류학)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이 학파는 범죄자의 개인적 특성에 주목하며 범죄 행위를 결정론적으로 파악했다. 이는 범죄를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보는 고전학파 범죄학과는 대립하는 입장이었다. 한편, 가브리엘 타르드나 알렉상드르 라카사뉴 등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환경학파는 범죄의 원인을 환경적 요인에서 찾으며 이탈리아 학파와 대립했다. 두 학파 모두 결정론적 관점을 가졌지만, 생물학적 요인을 강조한 이탈리아 학파와 환경적 요인을 강조한 프랑스 학파는 19세기 말 국제 범죄 인류 학회 등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46][23] 롬브로소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범죄의 생물학적 원인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관련 연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46]
그러나 롬브로소의 이론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았다. 롬브로소 사후인 1913년, 찰스 고링은 『영국의 수형자―통계적 연구 (''The English Convict, A Statistical Study'')』를 통해 정밀한 측정을 수행한 결과, 범죄자와 비범죄자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신체적 차이가 없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비판적 연구들이 이어지면서 생래적 범죄자설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쇠퇴했다.[50]
롬브로소의 이론은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의 인종차별적인 관점[23]과 생물학적 결정론은 이탈리아 파시즘 정권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 실제로 이탈리아 범죄학파의 일부 학자들은 파시즘을 지지했으며[49], 롬브로소의 이론은 우생학적 논리와 인종차별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23][26] 그의 사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이탈리아 대학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23]
오늘날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설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사이비 과학이자 인종차별적인 주장으로 평가받으며 학계에서 배척되고 있다.[50] 법학자 테라나카 마코토는 롬브로소의 연구 방법(골상학, 신체 측정 등)의 한계를 지적하며, 그를 근대 범죄학의 시초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를 제시하기도 했다.[51] 다만, 기존의 철학적 접근이 주를 이루던 형법학에 실증적인 데이터 수집과 분석 방법을 도입하려 시도했다는 점은 그의 업적으로 평가되기도 한다.[46]
6. 3. 영향
스스로 현대 과학 정신의학의 창시자라 칭한 롬브로소는 '범죄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평가받으며, 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했다.[22] 파비아 대학교 졸업 논문은 "풍토성 백치병"을 다루었으며,[24] 이후 정신 병원 관리 경험을 통해 범죄 행위와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23] 이탈리아 군 복무 후 파비아 대학교로 돌아와 정신 건강을 전문으로 하는 최초의 교수가 되었다.[24] 1880년대 그의 이론은 명성의 정점에 달했으며, 정신 질환 연구 분야 전반에서 지지를 받았다.[24] 롬브로소는 자신의 이론을 실증주의 학파로 명명하며, 범죄 행위를 자유 의지의 결과로 본 체사레 베카리아의 고전주의 학파와 차별화했다.[23] 그의 정신의학 이론은 안토니오 마로, 알프레도 니체포로 등 추종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실증주의 학파를 형성했다.[23] 그러나 그의 사상, 특히 백인과 북유럽인의 우월성에 대한 평가는 훗날 파시스트 정권이 이탈리아 인종법을 제정하는 데 악용되기도 했으며, 그의 이론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야 이탈리아 대학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23]롬브로소는 다양한 저술을 통해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반한 정신의학 학파를 구축했으며, 정신 질환이 유전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24] 그는 개인의 정신 질환 성향이 외모를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는데, 이는 그의 범죄적 조상 회귀(격세유전) 이론과 연결된다. 그의 이론은 인간 행동 연구 전반에 걸쳐 "가장 영향력 있는 교리" 중 하나로 평가될 만큼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22]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외모를 코나 두개골 형태 같은 유전적 관상학뿐만 아니라, 몸에 새겨진 문신과 같은 피상적 특징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고 보았다.[25] 특히 문신과 특정 증상(현재의 경계성 인격 장애와 유사한) 사이의 연관성을 찾으려 했으며,[24] 문신이 특정 유형의 범죄자를 나타낸다고 믿었다.
또한 롬브로소는 성 노동자와 범죄자를 관찰하여 왼손잡이와 범죄성, 퇴폐적 행동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25] 그는 왼손잡이가 신경 퇴행 및 알코올 중독과 연관되어 다른 장애로 이어진다고 주장하며 왼손잡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25] 그의 이론은 당시 존재하던 왼손잡이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맞물려 받아들여졌고, 20세기 왼손잡이에 대한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생각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왼손잡이를 정신 질환 및 자가 면역 질환과 연관시키려는 연구들로 이어지기도 했다.[25]
유전적 부도덕과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범죄 행위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롬브로소는 사회주의를 신봉했으며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에 대한 동정심을 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그가 주장한 생물학적 결정론과는 상반되는 측면이다.[26] 그의 퇴폐자에 대한 연구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 사회 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26] 롬브로소의 실증주의 학파 추종자 다수는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도 영향력을 유지했는데, 이는 범죄적 조상 회귀와 생물학적 결정론이 파시즘의 인종 이론과 우생학적 경향을 정당화하는 데 유용했기 때문이다.[23] 그러나 일부 법률 기관에서는 범죄 행위가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형벌 제도 내에서 롬브로소의 연구는 새로운 형태의 처벌로 이어졌고, 때로는 피고인의 생물학적 배경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지기도 했다. 피고인의 관상학적 특징이 증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 더 가혹한 형벌이 내려지는 사례도 있었다.[22]
1850년대부터 1880년대 사이 이탈리아에서는 정신 이상 항변에 대한 법안 논의가 활발했다. 판사와 변호사들은 대체로 베카리아의 고전주의 학파를 지지하며, 범죄는 자유 의지를 가진 개인이 사회 계약을 위반한 결과라고 보았다.[23] 반면 롬브로소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죄자가 생물학적 성향 때문에 자유 의지로 행동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는 형법을 주장했다.[23]
롬브로소는 범죄 행위와 정신 이상을 연결시킨 연구를 통해, 정신 이상 범죄자 수용소와 법정 정신의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23] 그의 연구는 정신 이상 범죄자를 일반 수감자와 분리하여 정신 질환 치료를 위한 전문 시설에 수용하는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의 브리지워터 주립 병원, 매터완 주립 정신 병원, 댄버스 주립 병원 등이 이러한 개념의 영향을 받은 시설의 예이다. 비록 많은 초기 시설들이 폐쇄되었지만, 정신 질환 수감자를 위한 별도 관리 개념은 쿡 카운티 교도소와 같은 현대 교정 시설에서 유지되고 있다. 롬브로소가 이탈리아에서 정신 이상 범죄자 수용소 설립을 추진하는 동안 다른 지역에도 유사한 시설이 존재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점차 다른 국가로 확산되어 정신 이상 범죄자 처우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23]
범죄적 조상 회귀 이론 외에도 롬브로소는 『천재와 광기(Genio e Folliait)』라는 책을 통해 천재성과 광기의 연관성을 탐구했다.[24] 그는 천재성이 다른 정신 질환과 동일한 근원에서 비롯된, 진화적으로 유익한 형태의 광기라고 믿었다.[24] 이러한 가설을 바탕으로 189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2회 국제 의학 회의에 참석했을 때 레프 톨스토이에게 퇴폐적 특성이 있는지 검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톨스토이는 이후 자신의 소설 『부활』에서 롬브로소의 방법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24]
말년에 롬브로소는 펠라그라 연구에 관심을 가졌는데, 이는 조셉 골드버거가 동시에 연구하던 질병이었다. 롬브로소는 펠라그라가 영양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골드버거에 의해 공식적으로 증명되었다.[24] 이 질병은 롬브로소가 의학 경력을 시작할 때 연구했던 백치병과 마찬가지로 빈곤과 관련이 있었다. 롬브로소 사망 전인 1904년, 이탈리아 정부는 정신 병원 치료를 표준화하고 정신 질환 범죄자에 대한 절차적 입원을 법제화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23] 이 법은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 이상 범죄자 수용소 내에서 자유 재량을 부여하고 범죄 행위의 원인을 정의하고 치료할 권한을 인정했는데, 이는 롬브로소가 초기부터 주장해 온 입장이었다.[23]
롬브로소의 가장 유명한 연구는 1876년 출간된 『범죄인(L'uomo delinquenteit)』이다. 총 3권, 약 1,900쪽에 달하는 이 방대한 저작에서 그는 범죄에 미치는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강조했다. 이는 베네딕트 모렐의 "변질"(퇴화) 개념을 범죄 연구에 도입하고, 프란츠 요제프 갈의 골상학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는다.[45] 또한 앙드레 미셸 게리, 아돌프 케틀레의 범죄 통계학,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서도 강한 영향을 받았다.[41]
롬브로소는 이전부터 "천재성" 연구를 통해 『천재와 광기(Genio e folliait 1864년)』 등을 저술했다. 산적 빌레라의 시신을 검시하던 중 두개골의 특징이 하등 척추동물과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범죄자의 본질에 대한 해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죄자들이 원시 인류나 하등 동물의 잔혹한 본성을 신체에 재현한 격세유전(atavism)의 산물이라고 생각했다.[46] 롬브로소는 이를 단순한 생각이 아닌 "계시"라고 표현했다.
그는 골상학, 관상학, 인류학, 유전학, 통계학, 사회학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퇴화적 격세유전을 나타내는 신체적 특징(낙인, Stigmata) 목록을 만들고, 신체적·정신적 특징과 범죄의 상관관계를 검증하려 했다. 383구의 처형된 죄수 두개골을 해부하고 5,907명의 신체적 특징을 조사하는 등[47] 방대한 연구 끝에 "범죄자에게는 일정한 신체적·정신적 특징이 인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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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브로소는 이러한 특징들이 선사 시대 인류나 유인원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범죄자는 이러한 퇴행적 격세유전이 발생한, 인류의 하등한 단계가 부활한 존재, 즉 인류의 변종인 "호모 데린켄스(범죄인)"라는 설을 세웠다.[46] 정신의학적으로는 배덕광, 병리학적으로는 간질 증세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특징을 타고난 사람은 문명 사회의 도덕심이나 책임감을 갖추기 어려워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즉 선천적으로 범죄자가 될 운명을 지닌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범죄자의 약 3분의 1이 호모 데린켄스이며, 이들은 타고난 소질 때문에 필연적으로 범죄자가 되므로 도의적 비난은 무의미하지만 사회에 위험한 존재이므로 국가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47] 롬브로소는 범죄자의 인도적 처우를 주장하면서도, 호모 데린켄스는 사회로부터 배제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 호모 데린켄스가 아닌 범죄자는 갱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아 사형에 반대했지만, 호모 데린켄스 범죄자의 사형은 긍정했다.
롬브로소는 문명화된 유럽 내부에 존재하는 도시 빈민, 범죄자, 빈농, 성적 도착자 등을 '야만인'이나 '원주민'에 해당하는 변질·퇴화된 존재, 즉 범죄자 예비군으로 간주했다. 그는 이들을 근대 국가에 통합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으며, 범죄를 저지를 운명을 지닌 사람들을 외형적 특징으로 미리 식별하여 격리하는 것이 범죄 인류학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46] 1861년에야 통일된 이탈리아의 정치적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해 진화론적 생물학과 형질 인류학을 동원했다는 분석도 있다.
롬브로소의 생득적 범죄성 이론, 즉 범죄 인류학은 퇴화·변질이 외적으로 식별 가능하다고 본 점에서 인류학의 계보에 속하며, "생래성 범죄자설"로 불린다.[46] 그러나 1906년 마지막 저서 『범죄, 원인과 치료』에서는 환경적 요인을 대폭 추가하며 주장에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범죄자뿐 아니라 창녀나 동성애자 역시 격세유전에 의해 당대 유럽인보다 미개하고 야만적인 상태로 조상 회귀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46]
롬브로소는 『천재론(L'uomo di Genioit)』(1888년)에서 예술적 천재성이란 유전적인 광기의 한 형태라고 주장했다.[44] 카이사르, 무함마드, 나폴레옹 등 수많은 위인과 천재를 예로 들며, 그들의 삶과 능력, 그리고 유전적으로 계승된 신경 및 정신 질환(간질 등)과의 관련성을 설명했다. 천재론과 생래성 범죄자설을 통해 천재, 광기, 범죄는 모두 선천적, 유전적 자질이 발현된 변형으로서 통합적으로 설명되었다.
서양 근대 낭만주의의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관념은 롬브로소의 『천재론』 등을 통해 "의학적·과학적" 근거를 갖춘 것처럼 제시되어 대중에게 널리 퍼졌고, 정신의학과 천재라는 주제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44] 특히 독일 정신과 의사 한스 프린츠호른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저서 『정신병자의 예술성』(1922년)은 아르 브뤼트를 선언한 장 뒤뷔페 등 당시 전위 예술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44][48]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설과 여성 범죄 관련 이론은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다. 그의 이론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이 과정에서 쌍둥이, 입양아, 염색체 연구를 통해 범죄에 미치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에서는 형법학자들의 반발을 샀지만, 정신과 의사 에밀 크레펠린과 구스타프 아샤펜부르크 등의 관심을 끌었다. 크레펠린은 "내인적 도덕 결함의 발현으로서의 범죄"를, 아샤펜부르크는 "환경 요인과 개인 저항력의 결과로서의 범죄"를 주장하며 생래적 범죄자설 자체는 부정했지만,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 산물로서의 범죄"라는 온건한 견해가 자리 잡으면서 "범죄의 생물학적 요인" 개념이 범죄학에 도입되었다.
생래적 범죄자설은 엔리코 페리, 라파엘레 가로팔로 외에 작가이자 의사인 막스 노르다우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노르다우는 이를 근대 미술 비평에 도입하여 『퇴폐론』에서 퇴폐 예술 배제론을 주장했다. 그는 천재와 심신의 건강은 불가분하다며 "세기말" 예술의 병적인 측면을 "과학적", "의학적"으로 증명하려 했고, "건강한" 예술가와 "병든" 예술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예술가들을 퇴폐자, 반사회적 존재로 규탄했다. 이 책은 큰 논쟁을 일으키며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훗날 나치가 현대 예술과 유대 문화를 타락한 문화, 퇴폐 예술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데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롬브로소의 "생래적 범죄자"와 모렐의 "변질" 개념은 타고난 위험성을 지닌 특수한 유형의 인간, 즉 배제해야 할 "위험한 인간"이라는 표상의 원형이 되어, 민족이나 국가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시행된 많은 정책과 입법에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말 확산된 우생학과 나치 독일의 정책 역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물학적 약자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허구의 세계에서도 롬브로소의 영향은 컸다. 역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다니엘 픽은 롬브로소가 "19세기 말 문학 연구에서 이상한 각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평했다.[60] 에밀 졸라의 『짐승 같은 인간』에 등장하는 자크는 아래턱이 돌출된 것으로 묘사되며, 이는 그가 살의에 사로잡히는 장면에서 강조된다.[60]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역시 롬브로소의 변질론 및 "생래적 범죄자" 설의 영향을 받았다. 작중 범인들은 종종 기이하고 특징적인 외모와 체격을 지니고 있으며, 홈즈는 관찰과 추리를 통해 이러한 특징을 가진 범인을 특정한다. 변질론에서 천재와 범죄자는 모두 표준에서 벗어난 존재로 간주되는데, 홈즈와 악의 천재 모리아티 교수의 인물상 역시 롬브로소의 천재론에 기반한 것으로 해석된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에서는 주인공들이 드라큘라 백작의 이상 성격을 지적하며 롬브로소의 이름을 언급하고, 드라큘라 백작은 롬브로소가 제시한 범죄자의 특징을 갖춘 외모로 묘사된다.[52][60]
메이지 시대 이후 일본에서도 롬브로소의 연구는 교육, 정신 의학, 문학, 예술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용되었고, 그의 "과학적" 인간 분석은 대중의 흥미를 끌며 무의식적인 영향을 미쳤다. 나쓰메 소세키 사후, 검시를 담당한 의학 박사 나가요 마타지로가 강연에서 롬브로소의 『천재론』을 인용하며 소세키의 뇌를 분석했고, 이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53] 미술사학자 오카다 아쓰시는 이를 통해 "소세키의 '천재=광기' 신화가 학술적 수준에서 대중적 수준까지 널리 유포되었다"고 지적하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후대 소설가들의 예술가상 형성에 미친 영향을 언급했다.[53]
일본에서 롬브로소의 여성론은 메이지 시대에 도입되어, 특히 "월경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그의 주장은 여학교 등에서 성별 역할 분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54] 다이쇼 시대인 1920년대에는 다이쇼 데모크라시와 엽기 범죄 증가를 배경으로 범죄학이 유행하며 롬브로소의 저작도 번역·소개되었다. 1914년 쓰지 준이 번역한 『천재론』은 화제를 모았다. 의사이자 추리 소설 작가인 고자카이 후보쿠도 서구 범죄학을 소개하며 롬브로소의 학설을 저서에서 소개했다.[56][55] 고자카이는 많은 범죄학 에세이를 저술했고, 그 안에서 여성의 범죄를 월경과 히스테리에 결부시켜 반복적으로 논했다. 여성이 범죄를 저지르기 쉽고 그 요인이 월경이라는 설은 일본 사회에 퍼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사·사법 분야에서도 그 영향이 남아 사건 당시 월경 중이었던 여성을 부당하게 체포하는 사례도 발생했다.[57][58]
또한, 다이쇼 시대의 범죄 학자들은 롬브로소의 주장을 인용하여 "여자는 거짓말쟁이"라는 설을 반복했으며, 특히 "여자는 강간당하지 않았음에도 당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을 강조했다.[59] 역사 사회학자 다나카 히카루는 "'여자는 거짓말쟁이' 설은 성별 역할 분업이 강화된 근대 국가 형성기에 여성의 생리 현상인 월경과 결부되어 이야기되었고, 오랫동안 여성에 대한 성범죄를 은폐하는 데 편리하게 사용되어 왔다"고 지적했다.[59] 월경과 거짓말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는 과학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59] 문학에서는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 사건』이나 유메노 큐사쿠의 『도그라 마그라』와 같은 현학적인 소설에서도 롬브로소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7. 기타 연구
- 1872년에는 북부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피부병인 펠라그라를 연구했다. 그는 이 병이 당시 농민 계급의 주식이었던 옥수수와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롬브로소는 오래된 옥수수가 변질되어 생기는 중독이 원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영양 불균형으로 인한 나이아신 부족이 주된 원인이었다.
- 롬브로소는 말년에 영매 연구에 몰두하며 심령주의 연구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영혼의 존재를 믿었으며, 당시 유명했지만 사기꾼이라는 평판도 있던 물리 영매 Eusapia Palladino|에우사피아 팔라디노영어를 진짜 영매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영국 의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는 롬브로소가 속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학계에 놀라움을 안겼다.[60]
- 1902년에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때 혈압과 맥박에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폴리그래프(거짓말 탐지기)의 초기 형태인 '프레티스모그래프'를 개발하여 범죄 수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8. 롬브로소 학설과 남부 이탈리아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운동 당시, 남이탈리아를 다스리던 양시칠리아 왕국의 프란체스코 2세와 로마 교황 비오 9세는 통일 운동에 부정적이었다. 주세페 가리발디가 양시칠리아 왕국을 정복하고 이탈리아 왕국이 세워지자, 부르봉 왕가에 충성심이 강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많았던 남이탈리아에서는 통일에 저항하는 시위, 반란, 그리고 Brigante|브리간테it("산적", "도적"으로 번역됨)의 활동이 거세졌다[61][62]. 원래부터 남이탈리아인을 경시하던 북이탈리아인들은 이러한 저항을 계기로 "야만적인 남부"라는 차별 감정을 더욱 키웠다[63]. 통일 정부는 이들을 일괄적으로 "산적"으로 규정하고 탄압했다(''→ 이탈리아 통일 운동#남부 문제의 발생'' 참조)[64]. 남이탈리아는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었고, 통일 후에도 북부와의 경제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다(소위 Questione meridionale|퀘스티오네 메리디오날레it, 남부 문제)[65]. 이탈리아 왕국의 재상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는 남이탈리아를 "이탈리아에서 가장 부패한 지역"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66].
롬브로소는 이러한 남부 차별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그는 남이탈리아 사람들이 "생래적 범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며, 이탈리아 북부 주민과 남부 주민 간에 "인종적"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금발" 인구가 많은 북부에서는 범죄 발생률이 낮고, "금발"이 적은 남부에서는 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주장을 펼쳤다[67]. 이는 당시 만연했던 남부에 대한 편견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했다.
롬브로소의 제자 엔리코 페리는 스승의 학설을 이어받아 "타고난 범죄자" 개념을 더욱 강조했다[68]. 페리는 북부 주민이 게르만족, 슬라브족, 켈트족의 피를 이었고, 남부 주민은 아랍인, 페니키아인, 그리스인의 피를 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남부 주민이 아프리카나 동양(오리엔트) 혈통을 가졌기 때문에 범죄율이 높고 범죄자가 많다고 주장했다[69]. 롬브로소 학파의 또 다른 인물인 Alfredo Niceforo|알프레도 니체포로it는 남부 주민이 범죄를 저지르기 쉬운 정신적 기질과 야만성을 지녔기 때문에 Brigante|브리간테it나 마피아, 카모라와 같은 범죄 조직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70]. 더 나아가 그는 남부 주민의 이러한 기질을 '치료'하기 위해 북이탈리아인에 의한 남부의 "문명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71].
롬브로소의 학설은 이탈리아를 넘어 해외, 특히 남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럽 이민자를 받아들인 아르헨티나에서는 도시 범죄 증가 문제가 나타나자, 롬브로소 이론에 기반하여 이민자들의 "인종"별 범죄 발생 건수를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인종"별 범죄 경향을 조사하는 연구가 진행되었다[72]. 빈곤과 차별을 피해 많은 이탈리아 남부 주민들이 해외로 이주했는데, 카를로스 네스토르 마셸은 그의 저서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화』에서 아르헨티나로 온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사회를 오염시킨다며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73].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국민 통합을 강조했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는 국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롬브로소 학설 기반의 남부 차별 담론이 공공연하게 표출되기 어려워지면서 점차 쇠퇴했다[74]. 그러나 북이탈리아인들의 남부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리학자 Marco Walter Battacchi|마르코 발터 바타키it는 1959년에도 북이탈리아인들이 여전히 남부에 대한 차별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했다[75]. 남이탈리아인을 비하하는 용어인 "Terrone|테로네it"는 오늘날에도 사용되며, 축구 경기장에서 남이탈리아 출신 선수들을 모욕하기 위해 "Terrone|테로네it"라고 적힌 현수막이 등장하는 등 차별의 잔재가 남아 있다[76].
9. 주요 저서
- 1859년 Ricerche sul cretinismo in Lombardiaita (롬바르디아의 크레틴증 연구)
- 1864년 Genio e folliaita (천재와 광기)
- 1865년 Studi clinici sulle mallatie mentaliita (정신 질환에 관한 임상 연구)
- 1871년 https://books.google.com/books?id=dw8AAAAAQAAJ L'uomo bianco e l'uomo di coloreita (백인과 유색 인종)
- 1873년 Sulla microcefala e sul cretinismo con applicazione alla medicina legaleita (소두증과 크레틴증, 법의학 적용에 관하여)
- 1876년 L'uomo delinquenteita (범죄인)
- 1879년 Considerazioni al processo Passannanteita (파사난테 재판에 대한 고찰)
- 1881년 L'amore nel suicidio e nel delittoita (자살과 범죄 속의 사랑)
- 1888년 L'uomo di genio in rapporto alla psichiatriaita (정신 의학과의 관계에서 본 천재)
- 1890년 Sulla medicina legale del cadavereita (시체 법의학) (2판)
- 1891년 Palimsesti del carcereita (감옥의 팔림세스트)
- 1892년 Trattato della pellagraita (펠라그라에 관한 논문)
- 1893년 La Donna Delinquente: La prostituta e la donna normaleita (범죄 여성: 매춘부와 정상 여성) (구글리엘모 페레로와 공동 저술)
- 1894년 Le più recenti scoperte ed applicazioni della psichiatria ed antropologia criminaleita (정신 의학과 범죄 인류학의 가장 최근의 발견과 적용)
- 1894년 Gli anarchiciita (아나키스트)
- 1894년 L'antisemitismo e le scienze moderneita (반유대주의와 현대 과학)
- 1897년 Genio e degenerazioneita (천재와 퇴행)
- 1898년 Les Conquêtes récentes de la psychiatriefra (정신 의학의 최근 정복)
- 1899년 Le crime; causes et remédesfra (범죄: 원인과 해결책)
- 1900년 Lezioni de medicina legaleita (법의학 강의)
- 1902년 Delitti vecchi e delitti nuoviita (옛 범죄와 새로운 범죄)
- 1909년 Ricerche sui fenomeni ipnotici e spiriticiita (최면 현상과 영매 현상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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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1년 https://archive.org/stream/manofgenius00lombuoft#page/n11/mode/2up ''The Man of Genius'' (천재의 인간)
- 1895년 https://archive.org/stream/femaleoffender00lomb#page/n9/mode/2up ''The Female Offender'' (여성 범죄자)
- 1899년 https://archive.org/stream/crimeitscausesre00lomb#page/n5/mode/2up ''Crime: Its Causes and Remedies'' (범죄: 그 원인과 해결책)
- 1909년 https://archive.org/stream/afterdeathwhatsp00lombuoft#page/n9/mode/2up ''After Death – What?'' (사후 - 무엇?)
- 1911년 https://archive.org/stream/criminalmanaccor1911lomb#page/n11/mode/2up ''Criminal Man, According to the Classification of Cesare Lombroso'' (체사레 롬브로소의 분류에 따른 범죄자)
- 2004년 ''Criminal Anthropology: Writings of Cesare Lombroso'' (체사레 롬브로소의 형사 인류학 저술)
- 2004년 ''Criminal Woman, the Prostitute, and the Normal Woman.'' 니콜 한 라프터와 메리 깁슨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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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理バッジ」大炎上…それでも日本社会の月経観は「進歩」している 生理中かどうかを明かす意味と覚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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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虚偽の強姦」多発の真相…「女は嘘つき」はなぜ“定説”となった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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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ェザーレ・ロンブロー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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