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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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혈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퍼졌으며, 고대부터 중세, 근대를 거쳐 현대까지 다양한 문화권에서 질병 치료법으로 사용된 방법이다. 과거에는 두통, 염증 완화, 전염병 치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신비주의와 결합하여 체내의 영적인 것을 배출한다는 믿음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치료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며 점차 쇠퇴하였고, 현재는 혈색소 침착증, 진성 적혈구 증가증 등 제한적인 질환 치료에만 사용된다. 대체의학에서는 여전히 활용되지만, 과학적 근거는 부족하며, 감염, 과다 출혈 등의 위험이 있어 의료 전문가와 상담 후 시행해야 한다.
사혈(瀉血)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등 고대 문명에서 시작되어 중세와 근대를 거쳐 19세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시행되었던 의료 행위이다.[52] 갈레노스의 체액설과 같은 이론에 바탕을 두고 체액의 균형을 맞춘다는 명목으로 다양한 질병의 치료 및 예방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시술은 주로 이발사나 외과 의사들이 담당했으며, 정맥 절개술, 피부 절개술, 거머리 이용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사혈은 전 세계 다양한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의료 행위였다. 인간 관계 지역 파일(HRAF)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60개 이상의 문화/민족 집단에서 사혈 기록이 확인된다.[22]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사혈(瀉血)은 몸 안에 쌓인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물질을 혈액과 함께 몸 밖으로 내보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2. 역사
윌리엄 하비가 혈액 순환을 발견하면서 사혈의 이론적 근거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19세기 피에르 샤를 알렉상드르 루이 등이 통계적 방법을 통해 치료 효과가 없음을 밝혀내면서 점차 비판받고 쇠퇴하였다.[39]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보편적인 치료법 중 하나로 여겨졌으며, 조지 워싱턴과 같은 유명 인물들의 주요 치료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33]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비과학적이고 오히려 해로운 경우가 많았지만, 당시에는 질병에 맞서는 적극적인 의료 행위로 인식되었다.
2. 1. 고대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상처를 내는 방식의 사혈이 고대 이집트에서 시행되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 있다.[9][10][11] 이집트 매장지에서 사혈 도구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도 있다.[12] 일부 설명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하마를 관찰하여 사혈 아이디어를 얻었다고도 한다.[13] 하마가 흘리는 붉은 분비물을 피로 착각하여, 하마가 고통을 덜기 위해 스스로 상처를 낸다고 믿었다는 것이다.[14][15]
그리스에서는 히포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5세기에 사혈이 사용되었다. 히포크라테스는 사혈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식이 요법을 더 선호했다.[16] 반면 에라시스트라토스는 많은 질병이 혈액 과다(plethora)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으며, 초기에는 운동, 발한, 식사량 조절, 구토 등으로 치료할 것을 권장했다.[17] 에라시스트라토스의 제자인 헤로필로스 역시 사혈에 반대했다. 그러나 동시대의 다른 그리스 의사였던 아르키가토스는 로마 공화국에서 활동하며 사혈의 효과를 믿었던 초기 의사 중 한 명이었다.
환자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사혈"은 월경 과정을 모델로 삼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월경이 여성의 나쁜 체액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고 믿었다. 로마 제국 시대의 그리스 의사 갈레노스는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을 따르면서 의사가 시행하는 사혈을 강력히 옹호했다.[18]
사혈이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퍼진 데에는 갈레노스의 역할이 컸다. 그는 당시 공기로 채워져 있다고 여겨졌던 동맥에도 정맥처럼 혈액이 흐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9][20] 갈레노스의 사혈 이론에는 두 가지 핵심 개념이 있었다. 첫째, 혈액은 생성된 후 소모되며 순환하지 않으므로 사지에 "정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체액설에 따라 4가지 체액(혈액, 가래, 흑담즙, 황담즙)의 균형이 건강 또는 질병 상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체액들은 각각 그리스의 네 가지 고전 원소(공기, 물, 흙, 불)와 연결되었다. 갈레노스는 혈액이 가장 중요한 체액이며 관리의 핵심 대상이라고 보았다. 체액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의사는 환자에게서 "과잉" 혈액(과다)을 제거하거나, 구토제나 이뇨제를 투여했다.
갈레노스는 환자의 나이, 체질, 계절, 날씨, 장소 등을 고려하여 제거해야 할 혈액의 양을 정하는 복잡한 체계를 만들었다. 이를 따르는 "자가 치료" 사혈 지침도 개발되었다.[21] 과다 증상으로는 열, 졸도, 두통 등이 있다고 여겨졌다. 제거할 혈액은 질병의 종류에 따라 특정 성질을 띤다고 보았으며, 동맥혈 또는 정맥혈 중 하나를 선택했다. 또한 질병 부위에서 멀거나 가까운 곳에서 피를 뽑았다. 갈레노스는 각기 다른 혈관이 특정 기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며, 예를 들어 오른손의 정맥은 간 문제에, 왼손의 정맥은 비장 문제에 대응하여 사혈했다. 질병이 심할수록 더 많은 피를 뽑았고, 특히 열이 날 때는 많은 양의 사혈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2. 2. 중세 및 근대
중세 초기 유럽에서는 수도사들이 사혈을 시술했으며,[52] 탈무드나 기독교 문서에서는 사혈에 적합한 요일이나 성인의 축일을 권장하기도 했다.[26] 중세 시대에는 행성의 위치나 황도대에 따라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사혈하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사혈 부위 그림)이 흔했다.[21] 이슬람 의학에서도 고대 그리스 의학의 영향을 받아 특히 열병 등에 사혈을 권장했다. 이는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 의학 서적(의학 정전, 알-타스리프 등)을 통해 유럽에 다시 전파되면서 사혈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1162년 교황이 성직자의 외과 시술(사혈 포함)을 금지하자,[52] 이후 이발사들이 사혈 시술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의사는 사혈을 '권장'하고, 이발사-외과의사가 실제 시술을 하는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이발소에서 볼 수 있는 적색과 백색 줄무늬의 사인폴은 이 시기 사혈 시술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색은 피를, 백색은 붕대를 상징하며, 막대 자체는 시술 시 환자가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쥐고 있던 막대를 나타낸다고 한다.[52]
사혈은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사액설(체액의 균형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체액의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질병에 대한 표준 치료법처럼 여겨졌으며,[52] 예방과 치료 목적으로 모두 사용되었다.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가장 흔한 것은 팔뚝이나 목의 큰 정맥을 절개하는 정맥 절개술(venesection)이었다. 동맥을 절개하는 동맥 절개술(arteriotomy)은 주로 관자놀이 부위에 시행했다. 피부 표면의 혈관을 대상으로 하는 피부 절개술(scarification)도 있었는데, 주사기, 스프링이 달린 메스(lancet), 또는 부항처럼 진공 상태를 만드는 유리컵 등이 사용되었다. 19세기에는 '절개기'(scarificator)라는 특수한 도구도 사용되었다.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도 널리 쓰였으며, 특히 19세기 초에 크게 유행하여 프랑스는 의료 목적으로 연간 약 4천만 마리의 거머리를 수입했고, 영국은 프랑스로부터 연간 6백만 마리의 거머리를 수입할 정도였다.[31] 시술 중 환자가 과다 출혈로 실신하는 것은 오히려 유익한 반응으로 여겨져, 실신할 때까지 피를 뽑는 경우도 많았다.
18세기에 등장한 영웅 의학(외상적이고 과감한 치료법을 선호했던 의료 경향) 시대에는 사혈이 더욱 중요한 치료법으로 자리 잡았다.[35] 한 영국의 의학 교과서는 여드름, 천식, 암, 콜레라, 혼수, 경련, 당뇨병, 간질, 괴저, 통풍, 헤르페스, 소화 불량, 정신 이상, 황달, 나병, 안염, 페스트, 폐렴, 괴혈병, 천연두, 뇌졸중, 파상풍, 결핵 등 약 100여 가지 질병에 대한 사혈을 권장했다.[29] 코피, 월경 과다, 치질 출혈과 같은 대부분의 출혈 증상 치료는 물론, 수술 전이나 출산 시작 시 염증 예방 목적으로도 시행되었다.[29] 심지어 정신적 고통이나 상심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사혈이 이루어지기도 했다.[30]
미국 초기에도 사혈은 매우 인기가 있었는데, 미국 독립 선언 서명자 중 한 명인 벤자민 러시는 사혈을 강력히 권장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99년 목 감염 치료를 위해 스스로 과도한 사혈을 요구했고, 약 10시간 동안 총 124–126 온스(3.75 리터)의 피를 뽑은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3] 모차르트나 에이다 러브레이스 역시 사혈의 부작용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윌리엄 하비가 1628년에 혈액 순환 이론을 통해 사혈의 이론적 근거를 반박했고,[2] 1830년대에는 프랑스 의사 피에르 샤를 알렉상드르 루이가 통계적 방법(근거 기반 의학의 초기 형태)을 이용하여 폐렴과 같은 질병 치료에서 사혈이 완전히 효과가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아 조제프 빅토르 브루사이와 같이 거머리를 대량으로 사용하며 사혈을 옹호하는 의사들도 있었고,[28] 1838년 영국 왕립 의학 협회의 한 강사는 여전히 "사혈은 신중하게 사용하면 그 가치를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은 치료법"이라고 주장하는 등[27] 기존의 관행과 믿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혈이 19세기까지 오랫동안 지속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효과적인 치료법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어떤 치료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다.[39] 또한 환자에게 시술 행위 자체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플라세보 효과)도 무시할 수 없었으며,[39] 사회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는 치료법이었다는 점도 작용했다.[34] 일부에서는 남성 의사들이 전통적인 여성 치료사들의 역할을 대체하면서, 눈에 보이고 극적인 사혈과 같은 시술을 통해 의료 행위의 대가를 정당화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35] 사혈 요법은 19세기에 걸쳐 점차 쇠퇴했지만, 그 영향력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2. 3. 비판과 쇠퇴
사혈은 19세기 동안 점차 인기가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시행 빈도가 상당히 낮아졌고, 그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에든버러 의학계에서는 이론적으로 이의가 제기되기도 전에 실제 사혈 시술이 중단되었는데, 이는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존 휴즈 베넷이 지적한 모순점이었다.[36]
그러나 오스틴 플린트 I, 하이람 코슨, 윌리엄 오슬러와 같은 권위자들은 1880년대 이후에도 사혈을 지지하며, 사혈이 효과가 없어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는 베넷의 주장에 반박했다. 이들은 사혈이 대중적인 인기는 잃었지만 여전히 필요한 정통 의학 행위라고 주장했다.[37] 일부 의사들은 사혈이 감염되거나 약해진 혈액을 "정화"하거나 출혈을 멈추게 하는 등 제한적인 목적에는 유용하다고 보았다. 이는 1871년에 "치료법으로서 사혈에 대한 공정한 시도"를 요구하는 주장이 나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38]
일부 연구자들은 치료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여 사혈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했다.[39]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립 파이-스미스와 같은 인물들은 과학적 근거를 들어 사혈을 옹호하는 출판물을 내기도 했다.[37]
사혈은 20세기까지도 명맥을 유지했으며, 1923년판 의학 교과서 ''내과 원론 및 실습''에서도 여전히 권장되었다.[40] 이 교과서는 본래 윌리엄 오슬러 경이 저술했으나, 그가 1919년에 사망한 후에도 새로운 저자들에 의해 개정판이 계속 출판되었다.[41]
3. 여러 문화권의 사혈
서양 의학에서는 특히 활발하게 이루어진 치료법이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많은 의사들이 환자의 증상과 관계없이 "사혈이 효과가 있다"며 이를 시행했다.[52] 중세부터 18세기 말까지 서양에서는 사혈이 매우 일반적인 치료법이었으며,[52] 초기 미국에서도 성행했다.[52] 열이 나거나, 설사를 하거나, 기침을 하는 등 거의 모든 증상에 사혈을 적용했으며, 어떤 의사들은 매일 환자 집을 방문하여 피를 뽑는 일 외에는 거의 다른 의료 행위를 하지 않을 정도였다.[52]
초기에는 상처 등으로 인해 피부 아래에 고인 고름을 빼내기 위해 이미 아문 상처 부위를 다시 절개하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진다. 또한 울혈로 인해 피하에 고인 피를 빼내 치유를 촉진한다고도 생각되었다. 중국 의학의 침술에서는 환부에 작은 상처를 내고 지압이나 부항(음압을 이용한 유리 단지)으로 피를 뽑아내는 '자락(刺絡)'이라는 요법이 있다. 또한, 거머리와 같은 흡혈 동물에게 피를 빨게 하는 사혈법도 예로부터 행해졌으며, 19세기 초에는 절개를 통한 사혈을 대신하여 널리 퍼지기도 했다.
사혈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유럽으로 퍼졌으며, 중세 초기에는 수도사들이 주로 시술했다. 초기에는 상처의 고름을 빼내는 치료였으나, 점차 타박상이나 골절로 인한 염증 부위를 절개하여 염증을 완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나아가 혈액의 정체가 질병의 원인이라 생각하여 혈관을 직접 절개하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두통이 있으면 관자놀이의 혈관을 절개하여 통증 완화를 시도했다.
1162년, 교황이 사혈을 금지하자, 이발사들이 사혈용 작은 칼이 달린 도구를 개발하여 시술을 이어갔다. 현대 이발소 간판인 '사인폴'의 삼색 줄무늬(적색, 청색, 백색)는 원래 적색과 백색 줄무늬였는데, 적색은 피, 백색은 지혈대를 상징하며, 막대 자체는 사혈 시 피가 잘 흐르도록 환자가 쥐던 막대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두통 치료를 위한 사혈은 개두술(트레파네이션)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으며, 반드시 근거 기반 의학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물론 다혈증과 같이 사혈이 실제로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다혈증은 두통, 어지럼증, 권태감을 유발하는데, 사혈로 혈중 적혈구를 줄이면 증상이 완화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증상학이 발달하지 않아 다혈증이라는 질병 개념 자체가 없었고, "사혈로 두통이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는 경험적 지식에 의존했을 뿐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사혈은 전염병, 패혈증, 순환기 장애 등에도 무분별하게 사용되었다. 당시에는 위생 관념이 부족하여 절개 부위가 감염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고, 체력이 약해진 환자에게 사혈을 시행하여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키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혈의 부작용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명인으로는 에이다 러브레이스, 모차르트, 조지 워싱턴 등이 있다.
일부에서는 사혈이 신비주의와 결합하여 몸 안의 나쁜 영적인 존재가 피와 함께 빠져나간다고 믿기도 했다(주술 의사 항목 참조).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사체액설(체액의 균형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이론) 역시 사혈의 광범위한 사용을 부추겼다. 사체액설에 따르면, 무너진 체액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혈액의 양을 줄이는 것이 치료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사혈 요법의 치료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불필요하게 체력을 소모시킨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18세기 이후로는 점차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현대 일본의 법률에서는 환자의 몸을 절개하는 행위는 의료 행위로 간주되어 의사만 할 수 있다. 무자격자가 사혈을 하면 의사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앞서 언급된 자락이 의료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다양한 기구와 수기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어 일반적으로 확립된 정의는 없고, 개별 사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53]는 입장이다. 2006년에는 무자격으로 사혈을 한 침구사가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54] 현대적인 사혈은 기본적으로 헌혈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뽑아낸 피는 폐기된다. 헌혈에 사혈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본 적십자사는 "그러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의 분에게서 헌혈을 받는 것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55]
3. 1. 교차 문화적 패턴
인간 관계 지역 파일(HRAF) 데이터베이스 분석에 따르면, 사혈은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보인다. HRAF 데이터베이스에는 60개의 서로 다른 문화/민족 집단에서 사혈 치료법이 보고되었으며, 이는 모든 주요 대륙에 걸쳐 분포한다. 또한, 전 세계 60개 거대 문화권에서 각기 다른 문화를 대표하는 표본인 [https://hraf.yale.edu/resources/reference/probability-sample-files-psf/ 확률 표본 파일(PSF)] 목록에서도 60개 문화 중 15개 문화에서 사혈이 보고되었다.[22] PSF 분석 결과는 사혈이 공통 조상으로 인한 유사성이 아니라, 여러 문화권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사혈은 문화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알래스카 원주민 문화에서는 다양한 질병에 대해 각기 다른 도구, 신체 부위, 시술자를 통해 시행되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의학 이론 또한 다양했다.[23]
헬레나 미톤(Helena Miton) 등이 HRAF 데이터베이스와 기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혈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적 패턴이 나타난다.
아마존 메커니컬 터크를 통해 미국 거주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전달 사슬 실험 결과, 환부와 다른 부위에서 사혈하는 이야기가 환부 근처에서 사혈하는 이야기로 변형될 가능성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22] 이는 환부에 직접 사혈하는 방식이 문화적 인력일 수 있으며, 다른 방식에 더 익숙할 수 있는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문화적으로 더 쉽게 전파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사혈은 개념적으로 문화적 인력, 즉 본질적으로 매력적이거나 문화적으로 전파되기 쉬운 개념으로 여겨진다. 이는 사혈이 여러 문화권에서 독립적으로 나타나고 공통적인 문화적 특성을 보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22]
3. 2. 오키나와
오키나와에서는 전통적인 민간 요법으로 사혈이 행해졌다. 이 요법은 한센병뿐만 아니라 열을 동반하는 감기, 하부에게 물린 경우 등 다양한 질환에 사용되었다.[56] 일부 문헌에서는 이를 '난절·사혈 요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57] 사혈 부위는 두통이 있을 때는 머리였지만, 일반적으로는 등 부위가 많았고 다른 부위에도 시술되었다.
시술은 손잡이가 달린 면도칼로 해당 부위를 절개하여 피를 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파초의 심으로 상처를 닦아 출혈을 늘리고, 아와모리(오키나와 전통 소주)로 소독했다. 때로는 불을 붙인 대나무 통(불기죽)을 사용하여 출혈을 늘리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부부'라고 불리기도 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에도 시대나 메이지 시대의 문헌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쇼와 42년(1967년) 조사에 따르면, 도시 지역 어린이의 15.1%, 외딴 섬 지역 어린이의 약 50%가 이 요법을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술은 주로 자격이 없는 시술자(야부)나 가족 구성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시술받은 시기는 유아(乳児, 만 1세 미만) 때가 59.1%로 가장 많았고, 유아기(幼児, 만 1세~취학 전)가 27.8%, 신생아 시기가 2.0%였다. 시술 후 등에는 가는 흉터가, 머리에는 작은 탈모 자국이 남았다. 미야코 요양소의 쇼와 12년(1937년) 연보나 오키나와 본섬 환자들의 회고담에도 이 요법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4. 현대 의학에서의 사혈
현대 의학에서 사혈은 혈색소 침착증이나 진성 적혈구 증가증과 같은 특정 질병의 치료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된다.[42] 이는 '치료적 사혈'이라고도 불리며, 현대적인 의료 기술을 사용하여 병원에서 훈련된 전문가에 의해 시행된다. 혈색소 침착증의 경우, 정맥 천자를 통한 사혈이 주요 치료 방법 중 하나이다.[43][44]
일반적으로 현대에서 사혈술은 혈액 검사를 위해 소량의 혈액을 채취하는 것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목적으로 시행되는 사혈은 헌혈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채취된 혈액은 수혈에 사용되지 않고 폐기된다. 헌혈을 통해 치료적 사혈의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본 적십자사의 입장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한 상태의 사람에게서 헌혈을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55] 미국에서는 사혈술의 주요 용도 중 하나가 미래에 수혈될 혈액을 채취하는 것(즉, 헌혈)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45] 현대 의학에서 치료 목적으로 사혈을 시행하는 구체적인 경우는 의학적 근거에 기반하며, 자세한 적응증은 하위 문단에서 설명한다.
4. 1. 적응증
현대 의학에서는 몇몇 질병의 치료법 중 하나로 사혈 요법이 시행되며, 이는 의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치료 수단이다. 주요 적응증은 다음과 같다.; 다혈증
: 진성 적혈구 증가증과 같이 혈액 세포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생성되는 질환에서 사혈은 기본적인 치료법으로 사용된다. 헤마토크릿(Ht) 수치가 55%를 넘는 경우 치료를 시작하며, 1회에 400ml에서 600ml 정도 사혈한다.[58] 사혈 후 약 1개월이면 Ht 수치가 원래대로 돌아오므로, 경과를 관찰하며 반복적으로 사혈한다. 이상적인 목표는 Ht 수치를 남성은 45% 이하, 여성은 42% 이하로 유지하고, 혈소판 수를 40만/μl 이하로 조절하는 것이며, 최소한 Ht 45% 이하를 목표로 한다. 다만 사혈은 진성 다혈증의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며, Ht 수치를 조절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59][60][61] 사혈을 반복하면 체내 저장 철이 고갈되어 헤모글로빈 생성에 필요한 재료가 부족해진다. 이로 인해 적혈구 크기가 작아지고 Ht 수치 상승을 억제하기 쉬워진다.[62] 따라서 적혈구가 작아지더라도 철분제 투여는 엄격히 금지된다.[62] 그러나 일부 연구자들은 철 결핍이 피부 가려움증 증가나 권태감을 유발하여 삶의 질(QOL)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철분제 투여에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63] 진성 다혈증 외의 다른 다혈증의 경우, 적혈구 증가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며 사혈이 첫 번째 치료법은 아니다. 하지만 원인 해결이 어렵거나 합병증이 예상되는 경우, 또는 Ht 수치가 매우 높은 경우에는 사혈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64]
; C형 간염
: 바이러스성 간염의 일종인 C형 간염 환자에게서 체내에 과도하게 축적된 철분을 줄이기 위해 식이요법과 함께 사혈 요법을 시행하기도 한다. C형 간염에서는 간에 쌓인 철분이 활성 산소를 발생시켜 간염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일반적으로 철분 제한 식단을 통해 간의 철분 축적을 줄이지만, 이미 철분이 과도하게 쌓인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신진대사만으로는 상태 개선이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혈을 통해 헤모글로빈 형태로 철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체내 총 철분량을 감소시킨다.[65][66] 이는 간염의 진행을 늦춰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증 요법일 뿐, 간염 자체를 치료하는 것은 아니다.
; 혈색소 침착증
: 체내에 철이 과도하게 쌓이는 혈색소 침착증의 경우, 축적된 철을 제거하기 위해 사혈을 시행한다.[42] 유전성 혈색소 침착증에서는 사혈이 주요 치료법이며 정기적인 시행이 필요하다.[43][44] 이차성 혈색소 침착증의 경우에도 수혈이 원인이거나 빈혈을 동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혈을 고려할 수 있다.
; 접합 수술 후 처치
: 절단된 팔다리 등을 다시 붙이는 접합 수술 후, 접합 부위에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피가 고이는 울혈이 발생할 수 있다. 이때 접합 부위 상처에 의료용으로 멸균된 큰 거머리를 붙여 울혈된 피를 빨아내게 하는 치료법이 있다. 이는 접합 부위의 혈액 순환을 돕고, 순환 장애로 인한 조직 괴사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67] 거머리의 침에는 혈액 응고를 막는 성분이 있어, 거머리를 이용한 사혈은 출혈이 서서히 오랫동안 지속된다. 따라서 주변 조직의 혈액 순환이 급격히 변하거나, 과다 출혈로 수혈이 필요해지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거머리에 물린 상처는 조직 손상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4년 의료용 거머리 사용을 승인했다.
5. 대체의학에서의 사혈
사혈은 현대 주류 의학에서는 유사 과학으로 여겨져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일부 대체의학 분야에서는 여전히 특정 질환에 대한 요법으로 활용되고 있다.[46][47][48][49][50][51] 대표적인 예로 아유르베다, 우나니 의학, 전통 중국 의학 등을 들 수 있다.
체액설에 이론적 기반을 둔 우나니 의학에서는 사혈을 통해 체액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본다. 전통 중국 의학의 경우, 침으로 특정 부위에 작은 상처를 낸 뒤 부항과 유사한 원리로 음압을 이용하여 소량의 혈액을 뽑아내는 '자락'이라는 기법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거머리와 같은 흡혈 동물을 이용한 사혈법도 사용되었으며, 특히 19세기 초에는 절개를 통한 사혈을 대신하여 널리 행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의학적 사혈 요법들은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으로 간주된다. 일본과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사혈을 의료 행위로 엄격히 규정하여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의 시술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53][54], 자락과 같은 유사 기법의 의료 행위 해당 여부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53]
6. 한국 전통 의학에서의 사혈
한의학에서도 사혈 요법은 활용되어 왔다. 이는 체내에 쌓인 불필요하거나 해로운 물질, 특히 순환하지 못하고 정체된 피로 여겨지는 어혈(瘀血)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관념에 기반한다.[52]
침으로 피부의 특정 부위(경혈)에 작은 상처를 내거나, 부항과 같이 음압을 이용하는 기구를 사용하여 소량의 혈액을 뽑아내는 방식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는 중국 의학에서 환부에 작은 상처를 내고 음압으로 피를 빨아내는 자락(刺絡) 요법과 유사성을 가지며[53], 기혈 순환을 촉진하고 통증을 완화하는 등의 목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사혈 요법은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그 효과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위생적이지 않은 시술은 감염의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과도한 사혈은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사혈은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과 판단 하에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서는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만이 시술할 수 있는 의료 행위로 규정되어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무자격자의 사혈 시술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처벌 대상이 된다.[53][54]
7. 비판적 관점
사혈은 과거 여러 질병에 대한 치료법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효과와 타당성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36] 특히 에든버러 의학계에서는 사혈의 실제 시행이 이론적 비판보다 먼저 중단되었는데,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존 휴즈 베넷은 이러한 모순점을 지적하며 사혈의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36] 오스틴 플린트 I, 하이람 코슨, 윌리엄 오슬러와 같은 일부 의학계 권위자들은 사혈을 옹호하기도 했지만,[37] 근거 중심 의학의 관점에서 통계적 방법을 사용하여 사혈의 치료 효과를 평가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그 유효성에 대한 비판은 더욱 힘을 얻었다.[39]
역사적으로 사혈은 서양 의학에서 매우 흔한 치료법이었으며, 특히 중세부터 18세기 말까지 유럽과 초기 미국에서는 의사들이 환자의 증상과 관계없이 "열이 나면 사혈", "설사를 해도 사혈"하는 식으로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52] 이러한 무분별한 시술은 히포크라테스의 사액설과 같이 체액의 불균형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당시의 의학 이론에 근거했지만, 과학적 근거는 부족했다.
사혈은 여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시술 과정에서의 위생 관리가 미흡했던 과거에는 절개 부위를 통한 감염증 발생 위험이 높았으며, 이는 패혈증과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이미 체력이 저하된 환자에게 사혈을 시행할 경우 과도한 출혈로 인해 상태가 악화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었다. 실제로 에이다 러브레이스, 모차르트, 조지 워싱턴과 같은 유명인들이 사혈 요법 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현대 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과거에 행해졌던 대부분의 사혈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오히려 환자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위험한 시술로 평가된다. 다혈증, C형 간염, 혈색소 침착증 등 극히 일부 질환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이는 반드시 의학적 판단하에 엄격한 관리 감독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에서는 무자격자가 사혈(혹은 유사 행위인 '자락')을 시행하다 의사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례도 있으며,[54] 이는 비의료인에 의한 사혈 시술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사혈은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충분한 상담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사혈 요법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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