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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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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양의 몰락》은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쓴 세계관에 대한 책으로, 8가지 고도 문화의 발생, 성장, 쇠퇴 과정을 유기체적 순환으로 설명한다. 1918년에 출판되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서유럽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며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슈펭글러는 문화를 창조적이고 성장하는 유기체로, 문명을 문화의 쇠퇴 단계로 보았으며, 민주주의, 미디어, 돈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이 책은 긍정적 평가와 함께 결정론적 역사관, 용어 사용 등에 대한 비판도 받았으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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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몰락 - [서적]에 관한 문서
개요
원제Der Untergang des Abendlandes
부제세계사 형태학의 개요
저자오스발트 슈펭글러
국가독일
언어독일어
장르역사철학
출판1권: 1918년
2권: 1922년
영어 출판1926년
페이지 수507쪽
번역가찰스 프랜시스 앳킨슨

2. 저술 배경 및 과정

슈펭글러는 1911년경 이 책을 구상하여 3년에 걸쳐 초고를 완성했다.[5]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수정을 거쳐 1918년 제1권 '형태와 현실성'을 출판했고, 1922년 제2권 '세계사의 전망'을 출판했다. 이 책은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제외하고는 그의 첫 작품이었다.[6]

3. 주요 내용

오스발트 슈펭글러는 저서 《서양의 몰락》에서 세계사의 주요 문명들을 분석했다. 그는 이집트 문화, 인도 문화, 중국 문화, 고대 문화(그리스·로마 문화), 이슬람 문화, 멕시코 문화, 유럽 문화 등 8가지 고도 문화를 제시하며,[5] 각 문화가 고유한 운명에 따라 발생, 성장, 성숙, 몰락의 주기를 거친다고 주장했다.

각 문화는 창조적인 모체인 영혼의 자기표현이며, 영혼이 창조력을 소진하면 쇠퇴한다. 슈펭글러는 '근대 유럽' 역시 이러한 숙명을 피할 수 없으며, 문명화, 대중화, 도시화, 기계화 등의 과정을 통해 몰락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았다.

3. 1. 슈펭글러의 역사관

슈펭글러의 역사관은 괴테와 니체의 영향을 받아 역사를 유기체적 순환 과정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7] 그는 각 문화가 고유한 영혼을 가지며, 이 영혼이 창조력을 고갈시키면 쇠퇴한다고 보았다. 그는 8종류의 고도 문화를 제시했는데, 이집트 문화, 인도 문화, 중국 문화, 고대 문화(그리스·로마 문화), 이슬람 문화, 멕시코 문화, 유럽 문화가 그것이다. 이들 문화는 각각 발생, 성장, 성숙, 몰락의 주기를 거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슈펭글러는 자신의 분석적 접근 방식을 "유추"라고 불렀으며, "생성의 철학"을 강조했다.[8] "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에게 효과가 있다"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8] 그는 "Untergang"이라는 단어가 "몰락"보다는 "쇠퇴"로 번역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보았으며, 이는 재앙적인 사건이 아닌 "황혼" 또는 "일몰"과 같은 점진적인 쇠퇴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9]

또한 슈펭글러는 세계사에 얽힌 민족과 비역사적인 민족을 구별했다. 그는 특정 문화만이 더 넓은 의미의 역사적 참여를 가지며, 자신의 문화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사적 관점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전 문명과 인도 문명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분류하고, 이집트 문명서양 문명과 비교하여 역사적 시간 개념의 발전을 강조했다.

3. 2. 문화와 문명

슈펭글러는 문화문명을 구분했다.[10] 그는 문화를 창조적이고 성장하며 내부를 지향하는 단계로 보았다. 반면 문명은 문화의 창조적 충동이 약해지고 비판적 충동에 압도당하는 단계로, 외부를 지향하며 단순 확장만을 추구한다고 보았다.[10] 슈펭글러는 문명이 모든 문화의 필연적인 운명이며, 이는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를 "되어가는 것", 문명을 "되어버린 것"으로 표현하며, 문명이 되면 더 이상 창의적이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슈펭글러는 그리스 문화에서 로마 문명으로의 변화를 예시로 들었다.[10] 그는 상상력이 풍부했던 그리스 문화가 실용주의적인 로마 문명으로 쇠퇴했다고 말했다.

또한 슈펭글러는 "세계-도시"와 -지방(각각 도시농촌)을 문화와 문명에 비유했다. 그는 도시는 주변 지역의 삶을 끌어들여 문화를 파괴하고, 도시 거주자들은 유목민적이고, 전통종교가 없으며, 군중만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반면 농촌 출신 사람들은 "진정한 유형"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 거주자들이 농민지혜를 혼란시키는 냉철한 지능을 가졌으며, 에 대한 자연주의적 태도를 보이고, 내적 종교성이 감소한다고 말했다. 또한 도시의 임금 분쟁과 과도한 엔터테인먼트 지출을 문명의 부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슈펭글러는 문명을 낮게 평가했다. 그는 로마의 "세계 지배"가 실제 성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로마인들은 확장에 큰 저항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제국은 정복이 아니라 단순히 소유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포에니 전쟁 당시 로마의 문화적 에너지와 대조된다고 보았다. 자마 전투 이후 로마인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고 그는 믿었다.

3. 3. 주요 문화 유형

슈펭글러는 세계사를 구성하는 8가지 고도 문화를 제시했다.

문화설명
바빌로니아 문화
이집트 문화
인도 문화
중국 문화
메소아메리카 (마야/아즈텍)
아폴론 또는 고전 문화 (그리스·로마)
마기 문화 또는 아라비아기원전 400년경의 유대인, 초기 기독교인, 이슬람을 포함한 다양한 아랍 종교를 포함한다.
파우스트 문화 또는 서양 (유럽)10세기경 서유럽에서 시작.



그는 각 문화가 고유한 운명에 따라 발생, 성장, 성숙, 몰락의 주기를 거친다고 주장했다.[5] 각 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의미를 지니며, 창조 모체인 영혼의 자기표현이다.

슈펭글러는 특히 고대(아폴론적), 아랍(마기아적), 서양(파우스트적) 문화를 구분하여 설명했다.[10]


  • 아폴론적인(Apollonian): 고대 그리스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와 문명이다. 인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상과, 지역적이고 현재의 순간에 대한 선호를 특징으로 한다.
  • 마기적인(Magian): 기원전 400년경의 유대인, 초기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을 포함한 다양한 아랍 종교를 포함한다. 돔 형태의 모스크로 전형화되는 세계를 동굴로 여기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고 본질에 대한 몰두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관을 가졌다.
  • 파우스트적인(Faustian): 10세기경 서유럽에서 시작되었으며, 거리무한을 향한 열망에서 영감을 받은 세계관을 가졌다. "파우스트적인"이라는 용어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참고한 것이다.

3. 4. 의태 (Pseudomorphosis)

의태는 슈펭글러가 광물학에서 차용한 개념으로, 반만 발전했거나 부분적으로만 나타난 문화를 설명하는 방법으로 도입되었다. 구체적으로 의태는 오래된 문화나 문명이 너무 깊이 뿌리박혀서 젊은 문화가 자신의 형태와 완전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현상을 말한다. 슈펭글러에 따르면, 이는 젊은 영혼이 낡은 틀에 갇히게 하고, 젊은 감정이 노쇠한 관행으로 굳어지게 하며, 창의적으로 확장하는 대신 낡은 문화에 대한 증오를 키우게 된다.[11]

슈펭글러는 악티움 해전에서 마기아 의태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이 해전에서 잉태 중인 아라비아 문화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의해 대표되었고 고전 문명에 패배했다. 이 전투는 칸나이 전투와 자마에서 벌어진 로마와 그리스 사이의 갈등과는 달랐으며, 한니발은 헬레니즘을 대표했다. 그는 안토니우스가 악티움에서 이겼어야 했고, 그의 승리가 마기아 문화를 해방시켰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패배는 로마 문명을 그 위에 강요했다.

러시아에서 슈펭글러는 파우스트(페트린) 형태 아래 의태 상태에 있는 젊고 미발달된 문화를 보았다. 그는 표트르 1세가 러시아의 차르 전제 정치를 서유럽의 왕조 형태로 왜곡했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이 침략하려 하자 모스크바의 방화는 외국인에 대한 원초적인 증오의 표현이라고 묘사했다. 알렉산드르 1세파리에 입성하고, 신성 동맹과 유럽 회의가 열린 것을 두고, 그는 러시아가 러시아 문화가 짐을 이해할 준비가 되거나 능력이 있기 전에 인위적인 역사에 강요되었다고 말했다. 이는 유럽에 대한 증오를 초래할 것이고, 슈펭글러는 이것이 러시아에서 떠오르는 새로운 문화의 자궁을 오염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그 문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톨스토이가 그 문화의 과거이고 도스토옙스키가 그 문화의 미래라고 말했다.

3. 5. 생성 (Becoming)과 존재 (Being)

슈펭글러는 ''생성''을 기본적인 요소로, ''존재''는 정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는 자신의 철학이 괴테의 다음 구절에 요약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성은 살아있는 것, 변화하는 것, 생성하는 것 안에서 작용하며, 이미 존재하는 것, 고정된 것 안에서는 작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직관은 생성과 살아있는 것을 통해 신성으로 나아가려 할 뿐이며, 논리는 이미 존재하고 고정된 것을 활용할 뿐이다."[8]

3. 6. 혈통/인종 (Blood/Race)

슈펭글러는 '피'(혈통)를 당대의 지배적인 힘이었던 '돈'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인종'은 민족적 정체성과는 무관하며, 인종차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민족적 기원과 상관없이, 특정 관점을 공유하는 인구를 '인종'으로 정의했다.[12]

슈펭글러에 따르면, 인종은 식물처럼 풍경과 연결되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이주하여 다른 풍경에서 태어나더라도, 풍경은 낡은 것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것을 나타나게 하는 힘을 행사한다.[12] 그는 "인종"이라는 단어를 생물학적 의미보다는 부족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슈펭글러는 과학이 인종이 식물과 같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인종'이 '인간'이라는 완전한 인종 내의 하위 구분을 의미할 때 다른 의미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상적인 특징에 집중하는 대신, "피에 대한 땅의 힘"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13]

그는 동지애가 인종을 낳으며, 인종 이상이 문화 초기 시대에 최고조에 달한다고 보았다. 지배 계급이 이러한 이상을 향해 갈망하고 실현하려는 의지가 인종을 형성한다고 주장했다.[14] 그는 "아리아인의 두개골과 의 두개골"이라는 개념을 일축하고, 언어 자체가 인종을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슈펭글러는 "사람"을 영혼의 단위로 정의하며, 역사의 위대한 사건은 사람들이 성취한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사람들이 창조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와 전쟁과 같은 사건들이 사람들을 형성한다고 보았으며, 미국 독립 전쟁과 미국 남북 전쟁과 같은 사건에 의해 미국인이 형성되었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한 민족을 인구와 구별하는 것은 "내면적으로 살아있는 '우리'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슈펭글러는 인종에 대한 생물학적 정의를 사용하는 경향을 비판하며, "인종(''Rasse haben'')"에는 물질적인 것은 없고 우주적이고 방향적인 것, 즉 운명의 조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종 혐오를 낳는 것은 비트의 부조화이며, 이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진정한 사랑을 혐오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슈펭글러에게 사람들은 문화의 초기 단계 동안 초기 원형에서 형성된다. 그는 "카롤링거 제국의 사람들-작센, 슈바벤, 프랑크, 서고트, 롬바르드에서 갑자기 독일인, 프랑스인, 스페인인, 이탈리아인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람들을 위대한 문화의 정신적 "인종"의 산물로 보았으며, "문화의 마법에 걸린 사람들은 문화의 저자가 아니라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3. 7. 종교와 세속성

슈펭글러는 문명의 발달 주기 내에서 나타나는 종교의 여러 양상을 구별했다. 그는 각 문화가 문화의 근본 원리에서 비롯되는 초기 종교적 정체성을 가지며, 그 문화의 궤적과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보았다. 결국 그 종교는 문화 이상이 절정에 도달하고 완성된 후 개혁과 같은 시기를 낳는다. 슈펭글러는 개혁을 쇠퇴의 징표로 간주했다. 개혁 이후에는 합리주의 시기가 따르고, 이어서 쇠퇴와 관련된 두 번째 종교성이 나타난다. 그는 문화의 후기 시대의 지적 창의성은 개혁 이후에 시작되며, 일반적으로 과학에서 새로운 자유를 가져온다고 말했다.[16]

슈펭글러에 따르면, 개혁 이후의 청교도주의와 관련된 과학적 단계는 합리주의의 기본을 담고 있으며, 결국 합리주의는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어 지배적인 사상이 된다. 슈펭글러에게 문화는 종교적 창의성과 동의어이며, 모든 위대한 문화는 시골에서 생겨나 문화 도시로 이어지고 세계 도시에서 유물론으로 끝나는 종교적 경향으로 시작된다.

슈펭글러는 계몽주의 합리주의가 스스로를 훼손하고 파괴한다고 믿었으며, 무한한 낙관주의에서 무조건적인 회의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데카르트의 자기 중심적 합리주의가 스스로 구성한 세계 밖을 인식하지 못하고 실제적인 일상 경험을 무시하며, 무의미함으로 소진될 때까지 자신의 인위적인 세계에 비판을 가하는 사상 학파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대중은 교육받은 엘리트에 대한 반작용으로 두 번째 종교성을 일으키며, 이는 학계와 과학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나타난다.

슈펭글러는 두 번째 종교성이 성숙한 문명의 쇠퇴를 역사성을 잃은 상태로 이끄는 징조이며, 후기 문명의 마지막 정치 체제인 카이사르주의와 동시에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카이사르주의를 문화가 절정에 도달하여 문명이 된 후 창의성, 이념, 에너지의 쇠퇴에 대한 반작용으로 권위주의적 통치자, 즉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새로운 '황제'의 부상으로 묘사했다. 그는 두 번째 종교성과 카이사르주의가 젊음의 힘이나 창의성의 부족을 보여주며, 두 번째 종교성은 단순히 문화의 원래 종교적 경향을 되풀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16]

슈펭글러는 서양 문명이 2100년까지 대동서 분열 이전의 형태인 정교회 기독교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언급하며, 세르비아의 아르키만드리테 유스틴 포포비치(†1979)의 말을 인용했다.[17]

3. 8. 민주주의, 미디어, 돈

슈펭글러는 민주주의를 ''의 정치적 무기로 보았고, 대중 매체는 돈이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21] 그는 사회 전체에 돈의 힘이 침투하는 현상을 문화에서 문명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지표로 묘사했다.

슈펭글러에 따르면 민주주의와 금권 정치는 동일하며, "세상을 개선하고 자유를 가르치려는 사람들의 비극적인 코미디"는 결국 돈이 더 효과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21] 그는 사회적 평등, 천부 인권, 보통 선거, 언론의 자유와 같은 원칙들이 계급 투쟁에서 부르주아가 귀족에 대항하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슈펭글러에게 자유는 모든 전통을 거부하는 부정적인 개념이었다. 그는 언론의 자유는 돈을 필요로 하고 소유권을 수반하며, 이는 결국 돈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선거에는 선거 운동이 필요하고, 선거 운동에는 기부가 따르므로 선거 역시 돈에 봉사하는 것이 된다. 슈펭글러는 후보자들이 내세우는 이념사회주의자유주의든, 돈에 의해 움직이며 궁극적으로는 돈만을 섬긴다고 주장했다.

슈펭글러는 돈이 이미 민주주의의 형태로 승리했지만, 문화의 오래된 요소들을 파괴하면서 카이사르라 불리는 새롭고 압도적인 인물의 등장을 준비한다고 말했다. 그러한 지도자 앞에서 돈은 무너지고, 제국 시대에는 "돈의 정치"가 사라진다고 예견했다.

슈펭글러는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 돈이 필요하며, 선거 과정에 조직적인 리더십이 개입하지 않는 경우에만 투표가 의도한 대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 과정을 조직하면, 돈이 허용하는 한, 투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고 보았다. 투표는 대중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정부 조직에 대한 의견 기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부의 집중이 클수록 정치 권력 투쟁은 돈 문제에 집중된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 부패나 타락이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 시스템의 필연적인 종말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에 대해 슈펭글러는 인간 사이의 대화 대신, 언론과 "전기 뉴스 서비스"가 전체 국민과 대륙의 의식을 끊임없는 논제, 유행어, 관점, 장면, 감정의 맹렬한 공세에 노출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돈이 미디어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힘으로 만들며, 더 많은 돈을 쓸수록 그 영향력은 더 강해진다고 주장했다. 또한, 제대로 기능하는 언론에는 보편적인 교육이 필요하며, 학교 교육이 대중을 이끌려는 요구로 이어져 결국 정당 정치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교육의 이상을 믿는 사람들은 언론의 힘과 궁극적으로 카이사르의 부상을 위한 길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언론이 대중을 열광시키고 지도자들을 갈등으로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에 지도자들이 더 이상 징병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슈펭글러는 돈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혈통이라고 믿었다. 그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자본주의와 동일한 언어와 가정을 토대로 제시되어 자본주의를 반박하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유일한 목표는 "대상에게 주체가 되는 이점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4. 《서양의 몰락》에 대한 평가와 비판

《서양의 몰락》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서유럽과 그 문화에 대한 불안과 절망에 빠져 있던 패전국 독일을 비롯한 각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일종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23] 문화유형론 또는 문화형태학이라는 슈펭글러의 구상은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계승되었다.

슈펭글러의 세계 역사적 관점은 괴테와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분석적 접근 방식을 "유추"라고 불렀으며, 이를 통해 "세계의 극성과 주기성을 구별"하려고 했다. 슈펭글러는 역사, 문화, 문명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접근 방식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플라톤과 괴테는 생성의 철학을 대변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는 존재의 철학을 대변한다... 괴테의 메모와 시...는 완벽하게 정의된 형이상학 교리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의 단 한 단어도 바꾸고 싶지 않다: "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 완성되고 고정된 자가 아닌 자에게 효과가 있으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이성은 생성하고 살아있는 것을 통해 신성한 것을 추구하는 데에만 관여하고, 이해는 완성되고 고정된 것을 사용하는 데에만 관여한다. (에케르만에게 보낸 편지)" 이 문장은 나의 모든 철학을 포함한다.

형태학은 슈펭글러 역사 철학의 핵심으로, 문명의 형태와 구조를 기반으로 역사와 역사적 비교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학자들은 "쇠퇴"라는 단어가 슈펭글러의 원래 독일어 단어 "Untergang"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평가한다. 슈펭글러는 재앙적인 사건이 아닌 "황혼" 또는 "일몰" (''Sonnenuntergang'')과 같은 지루한 몰락을 묘사하려 했다고 한다. 그는 1921년에 자신의 제목에 ''Vollendung''(‘성취’ 또는 ‘완성’을 의미)을 사용했으면 오해를 줄였을 것이라고 썼다.[9]

4. 1. 긍정적 평가

이 책은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독일의 위기 의식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23] 조지 스타이너는 이 책을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 이후 독일 문화의 위기에서 비롯된 여러 책 중 하나로 보았는데, 이는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1918), 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의 ''구원의 별''(1921), 신학자 칼 바르트의 ''로마서''(1922), 나치당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1925),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등과 비견된다.[24]

4. 2. 비판적 평가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나치 독일의 붕괴 이후 스펭글러의 주장을 재평가하면서, 그의 통찰력이 자유주의적 동시대인들보다 더 심오하고 예측이 더 광범위하다고 평가했다. 아도르노는 나치의 등장을 스펭글러의 "카이사르주의"와 시장에 대한 힘의 정치 승리에 대한 아이디어의 확인으로 보았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인간의 주도성이 수행하는 예측 불가능한 역할을 무시하는 지나치게 결정론적인 역사관과 '영혼', '피', '운명'과 같은 페티시즘 용어 사용을 비판했다.[29]

죄르지 루카치는 1953년 저서 "이성의 파괴"에서 《서양의 몰락》을 아마추어적이고 유사 역사적이며 비합리주의적 사고의 전형으로 묘사하면서, 스펭글러가 "인과 관계와 법칙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주어진 시대의 유일한 역사적 현상으로 인정하며, 과학적 및 철학적 방법론에 대한 모든 능력을 부인"하고 "유사성을 인과 관계로 대체"했다고 비판했다.[31]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서양의 몰락》을 "다양한 분야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자료의 피상적인 종합"이라고 비난했다.[32]

5. 《서양의 몰락》의 영향

《서양의 몰락》은 출간 직후부터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패전으로 인한 불안과 절망에 빠져 있던 독일에서 이 책은 일종의 유행어가 될 정도로 널리 읽혔다.[23] 1928년 《타임》지는 "수년 전 독일에서 《서양의 몰락》 1권이 출판되었을 때 수천 부가 판매되었다. 교양 있는 유럽의 담론은 곧 슈펭글러의 사상에 젖어들었다. 슈펭글러주의는 수많은 제자들의 펜에서 쏟아져 나왔다. 슈펭글러를 읽고 동조하거나 반항하는 것은 필수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28]

이 책은 문화유형론 또는 문화형태학이라는 독창적인 역사관을 제시하며, 아널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에른스트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1918),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의 《구원의 별》(1921), 칼 바르트의 《로마서》(1922), 나치당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1925),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 등과 함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문화의 위기를 반영한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힌다.[24]

《서양의 몰락》은 광범위한 분야의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인물분야영향
샤밀 바사예프체첸 군벌이치케리아 체첸 공화국 건설 구상에 영향[33]
새뮤얼 P. 헌팅턴정치학자문명의 충돌》 저술에 영향[34][35]
조지프 캠벨비교 신화학, 비교 종교학 학자자신의 사상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언급[36]
노스럽 프라이문학 평론가"세계의 위대한 낭만주의 시 중 하나"로 평가[37]
오스왈드 모슬리영국 정치가극우 정치로 전향하고 영국 파시스트 연합을 창설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38]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철학자자신의 철학적 영향력 중 하나로 언급[39]
카밀 파글리아문학 비평가《성적 페르소나》에 영향을 미친 작품 중 하나로 언급[40]
윌리엄 S. 버로우스작가자신의 생각과 작품에 중요한 영향[41]
마르틴 하이데거철학자슈펭글러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아 초기 강좌에서 자주 언급[42][43][44]
제임스 블리시작가《Cities in Flight》에서 슈펭글러의 아이디어 차용[45]
프랜시스 파커 요키작가《제국: 역사와 정치의 철학》을 《서양의 몰락》의 속편으로 묘사
휘태커 챔버스작가《증인 (회고록)》 등에서 슈펭글러의 위기 개념 언급[46][47][48][49][50]
팻 뷰캐넌정치인, 작가저서 《서양의 죽음》 제목에 영향
에블린 워작가소설 《몰락과 쇠퇴》에 영향
H. P. 러브크래프트작가큰 영향을 받음
윌리엄 개디스작가큰 영향을 받음[51]



이 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슈펭글러의 역사관이 지나치게 결정론적이며, 인간의 주체적인 역할을 간과한다고 비판했다.[29] 죄르지 루카치는 《서양의 몰락》을 아마추어적이고 유사 역사적이며 비합리주의적인 사고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31] 막스 호르크하이머 역시 이 책을 "다양한 분야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자료의 피상적인 종합"이라고 평가절하했다.[32]

6. 한국 사회에 대한 시사점

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으며 경제 성장과 정치 발전을 동시에 이루었지만, 양극화, 정치 불신, 세대 갈등 등 다양한 사회 문제에 직면해 있다. 슈펭글러의 문명 순환론적 관점은 이러한 한국 사회의 현 상황을 '문명화' 단계의 특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21]

슈펭글러는 민주주의가 '돈'의 정치적 무기이며, 대중 매체는 돈이 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을 운영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주의와 금권 정치가 동일하며, 사회적 평등, 천부 인권, 보통 선거, 언론의 자유와 같은 원칙들이 실제로는 돈의 힘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21] 이는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데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또한, 슈펭글러의 '카이사르주의' 개념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부상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는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일 수 있다. 슈펭글러는 카이사르주의가 돈의 독재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다고 보았다.[20]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슈펭글러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경제적 불평등 해소, 민주주의 심화, 사회 통합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7. 결론

슈펭글러의 세계 역사관은 괴테와 니체 등 여러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강연 "니체와 그의 세기"에서 이 두 독일 철학자의 중요성과 자신의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7] 그는 자신의 분석 방법을 "유추"라 불렀으며, 이를 통해 "세계의 극성과 주기성을 구별"하려 했다.

형태학은 슈펭글러 역사 철학의 핵심으로, 기능에 관계없이 문명의 형태와 구조를 바탕으로 역사와 역사적 비교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슈펭글러는 자신의 철학적 접근 방식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8]

> 플라톤과 괴테는 생성의 철학을,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는 존재의 철학을 대변한다... 괴테의 메모와 시...는 완벽하게 정의된 형이상학 교리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은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 완성되고 고정된 자가 아닌 자에게 효과가 있으며, 따라서 마찬가지로 이성은 생성하고 살아있는 것을 통해 신성한 것을 추구하는 데에만 관여하고, 이해는 완성되고 고정된 것을 사용하는 데에만 관여한다. (에케르만에게 보낸 편지)" 이 문장은 나의 모든 철학을 포함한다.

학자들은 "쇠퇴"라는 단어가 슈펭글러의 독일어 "Untergang"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전달한다고 본다. "Untergang"은 "몰락"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Unter"는 "아래", "gang"은 "가는 것"을 의미하여, 영어로는 "쇠퇴"로 번역된다. 슈펭글러는 재앙적 사건이 아닌 "황혼" 또는 "일몰" (''Sonnenuntergang''은 독일어로 일몰, 서양 또는 서구는 ''Abendland''로 "저녁의 땅"을 의미)과 같은 완만한 몰락을 묘사하려 했다. 1921년, 슈펭글러는 제목에 ''Vollendung''(‘성취’ 또는 ‘완성’)을 사용했다면 오해를 줄였을 것이라고 썼다.[9]

참조

[1] 서적 The Decline of the West, v. 1: Form and Actuality https://archive.org/[...]
[2] 서적 Decline of the West v. 2: Perspectives of World History https://archive.org/[...]
[3] 서적 Race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4] 문서 Op.laud.
[5] 문서 According to some it was the [[Agadir Crisis]] that prompted his writing; see the publisher's note on the first page of the 'First Vintage Books Edition' (2006).
[6] 서적 Man and Technics Arktos Media Ltd. 2020-02-21
[7] 웹사이트 Nietzsche And His Century http://home.alphalin[...] Home.alphalink.com.au 1924-10-15
[8] 문서 vol.1, ''Intro''., last note
[9] 간행물 Pessimismus? 1921-04
[10] 문서 Culture: a review of the term Harvard
[11] 문서 This paragraph summarises vol.2, chap.II, §§1-2
[12] 문서 vol.2, chap.2, II, §7
[13] 문서 vol.2, chap.2, II, §9
[14] 문서 vol.2, chap.5, III, pg.126-127 §5
[15] 문서 because of Spengler's disdain for the Nazis—see: Spengler's ''The Hour of Decision''
[16] 문서 The Decline of the West Alfred A. Knopf
[17] 문서 The Orthodox Church and Ecumenism Lazarica Press
[18] 서적 The Decline of the West: Perspectives on World-History https://archive.org/[...]
[19] 서적 The Decline of the West: Perspectives on World-History https://archive.org/[...]
[20] 서적 The Decline of the West: Perspectives on World-History https://archive.org/[...]
[21] 서적 The Decline of the West: Perspectives on World-History https://archive.org/[...]
[22] 서적 The Decline of the West: Perspectives on World-History https://archive.org/[...]
[23] 서적 The Day the Universe Changed Little, Brown and Company
[24] 서적 Martin Heidegger https://archive.org/[...]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5] 문서 In 1921 [[Otto Neurath]] published the pamphlet ''Anti-Spengler'' and [[Leonard Nelson]] wrote a book-length parody ''Spuk: Einweihung in das Geheimnis der Wahrsagekunst Oswald Spenglers''.
[26] 문서 Oswald Spengler, a critical estimate
[27] 간행물 Two Prophets of the Twentieth Century: Spengler and [[Toynbee]] 1985-04
[28] 잡지 Books: Patterns in Chaos http://www.time.com/[...] 1928-12-10
[29] 문서 Spengler after the Decline
[30] 뉴스 Europe and Its Discontents https://www.firstthi[...] 2006-01
[31] 서적 The Destruction of Reason http://archive.org/d[...] Humanities Press 1981
[32] 서적 Max Horkheimer and the Foundations of the Frankfurt School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1-10-10
[33] 뉴스 Chechen Warlord Always Brazen – but Never Caught 2004-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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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서적 Culture and Value Blackwell
[40] 서적 Sex, Art, and American Culture: Essays Penguin Books
[41] 서적 Literary Outlaw: The life and times of William S. Burroughs https://archive.org/[...] H. Holt
[42] 문서 On Heidegger's Nazism and Philosophy
[43] 문서 Letter to Karl Jaspers on 21 April 1920
[44] 문서 "Heideggers politisches Selbstverständnis"
[45] 서적 Encyclopedia Britannica James Blish
[46] 서적 Witness https://archive.org/[...] Random House 1952
[47] 서적 Witness https://books.google[...] Cold Friday 1964
[48] 잡지 Historian and History Maker 1944-01
[49] 잡지 The Challenge http://content.time.[...] 1947-03-17
[50] 웹사이트 Cold Friday by Whittaker Chambers https://whittakercha[...] Kirkus 1964-10-05
[51] 웹사이트 A Lost Battle https://www.williamg[...]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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