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할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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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할라인은 '사자'를 뜻하는 '신하'와 '살해자'를 뜻하는 '라'의 합성어로, '사자 사냥꾼'을 의미하며 스리랑카의 주요 민족 집단이다. 싱할라인은 스리랑카의 건국 신화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4세기경 팔리어로 기록된 마하밤사 등 고대 문헌에 그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싱할라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아리아어군에 속하며, 상좌부 불교를 주로 믿는다. 싱할라 문화는 조각, 미술, 문학, 춤, 음악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독자적인 특징을 나타내며, 전통 의상, 요리, 건축 등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싱할라인은 스리랑카 내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며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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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할라인 |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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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 | 신할라어 |
| 종교 | 대다수: [[파일:Dharma Wheel.svg|18px]] 상좌부 불교(93%) 소수: [[파일:Christian cross.svg|12px]] 기독교(7%) |
| 인구 | |
| 전체 | 약 1,700만 명 |
| 스리랑카 | 1,520만 명 (2012년, 74.9%) |
| 이탈리아 | 108,069 명 (2022년) |
| 오스트레일리아 | 58,166 명 (2021년) |
| 미국 | 약 41,000 명 (2016년) |
| 캐나다 | 33,050 명 (2021년) |
| 싱가포르 | 약 17,000 명 |
| 영국 | 14,731 명 (2021년) |
| 뉴질랜드 | 9,171 명 (2018년) |
| 인도 | 약 5,300 명 |
| 말레이시아 | 약 4,700 명 |
| 관련 민족 | |
| 관련 항목 | |
| 로마자 표기 | Siṃhala Jātiya |
| 언어별 명칭 | 신할라어: සිංහල ජනතාව (Siṃhala Janathāva) 영어: Sinhalese people 일본어: シンハラ人 한국어: 싱할라인 |
2. 어원
'싱할라'라는 단어는 '사자'를 뜻하는 '신하(සිංහ)'와 '살해자' 또는 '포획자'를 뜻하는 '라(ල)'의 조합으로, '사자 사냥꾼'을 의미한다.[25] 싱할라족의 기원 이야기는 마하밤사에 기록되어 있으며, 스리랑카 건국 신화와 관련이 있다. 마하밤사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자를 죽였다고 전해지는 신하바후의 후손에게 정복되었다.[25]
전설에 따르면, 방가 왕국의 수파데비 공주는 사자에게 납치되어 그 사자와 딸 신하시발리와 아들 신하바후를 낳았다.[26][27] 마하밤사는 신하바후가 사자를 죽였고, 그 행위로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이 '시할라'(사자 사냥꾼)라고 불렸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그의 후손들에 의해 정복되고 식민지화된 스리랑카도 '싱할라'와 관련되게 되었다.[25][27]
스리랑카의 첫 번째 왕인 비자야는 신하푸라의 통치자 신하바후의 아들이었다. 어떤 버전에서는 비자야가 신하바후의 손자라고 한다.[28][29] 마하밤사 및 다른 역사적 출처에 따르면, 비자야 왕은 탐바파니 (스리랑카) 섬에 도착하여 싱할리족을 낳았다. 비자야 왕자가 스리랑카에 도착하고 싱할리족이 기원한 이야기는 아잔타 석굴 17번 석굴의 벽화에도 묘사되어 있다.
신하바후의 후손들이 사자의 후손이거나 사자처럼 용감했기 때문에 "신하" 또는 사자라고 불렸을 수 있지만, 스리랑카를 정복하고 정착한 사람들은 사자 사람들의 "신하"에서 파생된 "싱할라"라고 불렸다는 설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복된 땅은 '신할라야' 또는 '신할레'(스리랑카 내륙), 또는 '싱할라 디파'라고 불리며, 그들의 언어는 '싱할라' 또는 싱할라 바샤라고 불릴 수 있다.[25]
디파밤사(4-5세기), 마하밤사(6세기 초)에 기록된 건국 신화에 따르면, 초대 왕인 위자야는 북인도에서 랑카 섬(스리랑카)에 와서 왕위에 올랐는데, 부모는 인간과 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신하바후와 신하시발리였기 때문에 시하(싱하)의 자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신화는 백수의 왕인 사자를 인간의 왕을 나타내는 은유로 사용하고, 고대 인도에 널리 퍼져 있던 사자를 시조로 하는 신화적 출신을 통해 왕권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주장이 겹쳐져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기원 410년부터 411년에 아누라다푸라에 체류했던 법현의 기록인 불국기에는 "사자국"으로 등장한다.
3. 역사
싱할라인의 초기 역사는 4세기경 팔리어로 편찬된 마하밤사와 후대의 출라밤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고대 자료들은 1500년 동안 지속된 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 등 강력한 고대 싱할라 왕국의 역사를 다루며, 쌀과 저수지의 존재를 통해 잘 발달된 농업 사회를 묘사한다. 스리랑카 총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싱할라인은 "사자의 자손"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대다수는 상좌부 불교를 믿지만 일부는 기독교를 믿기도 한다.
디파밤사(4~5세기)와 마하밤사(6세기 초)에 기록된 건국 신화에 따르면, 초대 왕 비자야는 북인도에서 랑카 섬에 와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인간과 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시하바후와 시하시발리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시하(싱하)의 자손'이라 불렸다. 이러한 신화는 사자를 왕의 은유로 사용하고, 사자를 시조로 하는 신화를 통해 왕권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고대 인도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410년부터 411년까지 아누라다푸라에 머물렀던 법현은 불국기에서 스리랑카를 "사자국"으로 언급했다. 싱할라라는 명칭은 시간이 지나면서 왕조, 왕국, 왕국민, 민족으로 그 의미가 변화해왔다.
18세기 이후 비교 언어학의 발전으로 싱할라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학설이 제기되었고, 영국 식민 지배(1796~1948)에서 불교 부흥 운동이 일어나면서 북인도 출신과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싱할라인의 민족 의식이 강화되었다. 이는 싱할라 불교 민족주의의 등장을 야기했으며,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의 불교 개혁 운동과 함께 민중 사이에 널리 퍼져 드라비다계 언어를 사용하는 타밀인과의 차별화를 심화시켰다.
이러한 배경은 독립 후 1956년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정권의 "싱할라 온리" 정책으로 이어져 싱할라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면서 타밀인과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 간 분쟁은 불교와 힌두교의 종교 갈등으로 비화되었고, 고대부터 싱할라족과 타밀족 간의 역사적 대립이 지속되었다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1983년, 민족 갈등은 내전으로 격화되었고, 외부 세력의 개입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2009년 5월까지 장기간 지속되었다. 원래 싱할라인은 남인도 출신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나, 근대 학문, 식민 지배, 민족주의의 발전, 정치 및 경제 변화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국민 국가 안에서 "민족"으로 재편성되고 고정화되었다.
역사적 경위로 인해 싱할라인은 내륙의 우다라타(고지) 싱할라와 해안의 파하타라타(저지) 싱할라로 나뉘며, 언어, 습관, 관습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싱할라족 사회는 클라야라고 불리는 세습적 계층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유사하지만, 상위 계층인 고이가마가 절반을 차지하고 규제가 인도만큼 엄격하지 않다는 특징을 지닌다.
3. 1. 초기 역사 (Pre-Anuradhapura period)
마하밤사에 따르면, 비자야 왕자와 그의 추종자 700명은 수파라카를 떠나[31], 역사가들이 오늘날의 스리랑카 만나르 남쪽에 있는 푸탈람 지역으로 추정되는 섬에 상륙하여 탐바파니 왕국을 건국했다.[32][33] 비자야가 붓다의 열반 날에 상륙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4] 비자야는 탐바파니를 수도로 삼았고, 곧 섬 전체가 이 이름을 따르게 되었다. 탐바파니는 원래 야크샤족이 거주하며 통치했고, 시리사밧투에 수도를 두고 쿠베니가 여왕이었다.[35] 삼윳타 주석에 따르면, 탐바파니는 100 리그의 크기였다고 한다.[36]
통치 말년에 비자야는 후계자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자, 형제 수미타를 왕위에 초청하기 위해 조상들의 도시인 신하푸라로 편지를 보냈다.[37] 그러나 편지가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비자야가 사망했고, 그리하여 선출된 국민의 대신[38] 우파티사가 수석 정부 대신이자 싱할라인의 지도자가 되어 1년 동안 섭정으로 활동했다. 탐바파니에서 대관식(기원전 505년)을 치른 후, 그는 탐바파니에서 나와 탐바파니에서 약 11.27km~약 12.87km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자신을 기리는 도시 우파티사 누와라를 건설했다.[32][33][39] 비자야의 편지가 마침내 도착했을 때, 수미타는 이미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의 나라의 왕이 되었고, 그래서 그의 아들 판두바스데바를 우파티사 누와라를 통치하도록 보냈다.[37]
3. 2. 아누라다푸라 시대 (Anuradhapura period)
기원전 377년, 판두카바야 왕은 수도를 아누라다푸라로 옮기고 번영하는 도시로 발전시켰다.[40][41] 아누라다푸라(아누라푸라)는 처음 마을을 세운 대신과 그곳에 살았던 판두카바야의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또한 이 이름은 아누라(Anura)라는 길상 별자리에 도시가 세워진 데서 유래되었다.[42] 아누라다푸라는 이 왕조에서 통치한 모든 군주들의 수도였다.[43]
두타가마니, 발라감바, 다투세나와 같은 통치자들은 남인도인들을 물리치고 왕국의 통제권을 되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군사적 업적으로 유명한 다른 통치자로는 침략자들에 대한 침략을 감행한 가자바후 1세와 판디아 왕자를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 세나 2세가 있다.
3. 3. 폴론나루와 시대 (Polonnaruwa period)
중세 시대에 스리랑카는 폴론나루와의 파라크라마바후 왕 치하에서 농업이 크게 발전하여 번영을 누렸다. 이 시기에 스리랑카는 동양의 쌀 공장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3. 4. 과도기 (Transitional period)
13세기 후반, 스리랑카는 시타와카 왕국, 코테 왕국, 자프나 왕국, 캔디 왕국 등 여러 독립적인 왕국과 족장령으로 분열되었다.[44] 13세기 힌두교 왕 마가의 침략으로 불교도(대부분 싱할라족)는 그의 통제를 벗어난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싱할라족 족장들 간의 갈등이 이어졌고, 파라크라마바후 6세는 자프나 왕국을 침략하여 정복함으로써 17년 동안 스리랑카 전체를 싱할라 왕국 아래로 되돌렸다. 스리랑카가 계피를 거래하기 시작하고 많은 수의 무슬림 상인들이 섬으로 들어오면서 이 기간 동안 무역 또한 증가했다.[45]
15세기에 캔디 왕국이 형성되면서 싱할라족은 정치적으로 저지대와 고지대로 나뉘었다.[45] 이 시기, 남인도에서 온 드라비다 힌두교 이민자들을 흡수하면서 살라가마, 두라바, 카라바 등 새로운 싱할라족 카스트 집단이 등장했다.[46]
3. 5. 근현대사 (Modern history)
스리랑카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정권이 1956년에 싱할라어를 공용어로 하는 "싱할라 온리"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는 싱할라족과 소수파 타밀인 간의 대립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민족 간 분쟁은 불교와 힌두교 간의 종교적 대립으로 이어졌고, 고대부터 싱할라족과 타밀족 사이에 역사적 대립이 지속되었다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1983년, 민족 갈등이 격화되어 내전 상태에 돌입했으며, 이 내전은 외부 세력의 개입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2009년 5월까지 장기간 지속되었다. 본래 싱할라족은 남인도 출신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나, 근대 학문, 식민 지배, 민족주의의 발전, 정치 및 경제 변화와 같은 요인들로 인해 국민 국가 안에서 "민족"으로 재편성되고 고정화되었다.
역사적인 이유로 싱할라족은 내륙 지역에 거주하는 우다라타(고지) 싱할라와 파하타라타(저지) 싱할라로 나뉘며, 이들은 언어, 습관, 관습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싱할라족 사회는 클라야라고 불리는 세습적 계층을 기반으로 하며, 이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유사하지만, 상위 계층인 고이가마가 절반을 차지하고 규제가 인도만큼 엄격하지 않다는 특징을 지닌다.
4. 사회
스리랑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싱할라인은 싱할라어로 "사자의 자손"이라는 뜻을 가진 민족 집단이다. 대다수는 상좌부 불교를 믿지만, 일부는 기독교를 믿기도 한다.[47]
디파밤사(4~5세기), 마하밤사(6세기 초)에 기록된 건국 신화에 따르면, 싱할라인의 초대 왕 위자야는 북인도에서 랑카 섬(스리랑카)에 와서 왕위에 올랐다. 그의 부모는 인간과 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시하바후와 시하시발리였기 때문에, 싱할라인은 '시하(싱하)의 자손'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신화는 사자를 인간 왕의 은유로 사용하고, 사자를 시조로 하는 신화를 통해 왕권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410년에서 411년 사이에 아누라다푸라에 머물렀던 법현의 기록인 불국기에는 "사자국"으로 등장한다. 싱할라라는 명칭은 시대에 따라 왕조, 왕국, 왕국민, 민족으로 그 의미가 변화해 왔다는 견해도 있다.
18세기 이후 비교 언어학의 발전으로 싱할라어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는 학설이 제기되었고, 영국 식민 지배(1796~1948) 하에서 불교 부흥 운동이 일어나면서 북인도 출신과 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싱할라인의 민족 의식이 고양되었다. 이는 싱할라 불교 민족주의의 등장을 의미하며,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1864~1933)의 불교 개혁 운동과 함께 민중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그 결과, 드라비다계 언어를 사용하는 타밀인과의 차별화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차별화는 독립 후 1956년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정권의 "싱할라 온리" 정책(싱할라어를 공용어로 지정)으로 이어져, 싱할라인과 소수파 타밀인 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족 간의 분쟁은 불교와 힌두교라는 종교 갈등으로 이어졌고, 고대부터 싱할라와 타밀 사이에 오랜 대립이 지속되었다는 해석까지 등장했다.
여러 차례의 민족 분쟁 끝에 1983년, 갈등은 내전으로 격화되었고, 외부 세력의 개입과 내부 갈등으로 인해 2009년 5월까지 장기간 지속되었다. 본래 싱할라인은 남인도 출신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나, 근대 학문, 식민 지배, 민족주의의 발전, 정치·경제적 변화 등의 요인으로 인해 국민 국가 안의 "국민"으로 재편성되면서 "민족"으로 고정되었다.
역사적인 이유로 싱할라인은 내륙의 우다라타(고지) 싱할라와 파하타라타(저지) 싱할라로 나뉘며, 언어, 습관, 관습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사회는 클라야라고 불리는 세습적인 계층을 기반으로 하며, 인도의 카스트와 유사하지만, 상위 계층인 고이가마가 절반을 차지하고 규제가 인도만큼 엄격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4. 1. 인구 통계
싱할라족은 스리랑카 내에서 주로 남부, 중부, 사바라가무와, 서부 지역에 거주한다. 함반토타, 갈레, 감파하, 쿠루네갈라, 모나라갈라,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와 같은 도시에서 싱할라족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47] 2012년 기준 스리랑카 내 싱할라족 인구는 약 15,173,820명이다.[2]| 주 | 싱할라족 인구 | % 싱할라족 인구 비율 | % 총 인구 대비 주별 기여도 |
|---|---|---|---|
| 중부 주 | 1,687,199 | 66.00% | 11.11% |
| 동부 주 | 359,136 | 23.15% | 2.36% |
| 북부 주 | 32,331 | 3.05% | 0.21% |
| 중북부 주 | 1,143,607 | 90.90% | 7.53% |
| 북서부 주 | 2,030,370 | 85.70% | 13.38% |
| 사바라가무와 주 | 1,657,967 | 86.40% | 10.92% |
| 남부 주 | 2,340,693 | 94.96% | 15.42% |
| 우바 주 | 1,017,092 | 80.80% | 6.70% |
| 서부 주 | 4,905,425 | 84.26% | 32.32% |
| 합계 | 15,173,820 | 74.80% | 100.00% |
4. 1. 1. 스리랑카 국외 거주 싱할라인
싱할라족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양한 국가로 이주해 왔으며, 영국, 호주, 미국, 캐나다 등에 큰 규모의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있다. 이 외에도 중동, 동남아시아, 유럽 등지에 임시 고용이나 교육 목적으로 거주하는 싱할라족이 많으며, 이들은 주로 중동에서는 객원 노동자로, 다른 지역에서는 전문직으로 일한다.[30]주요 싱할라족 디아스포라 인구 중심지는 유럽, 북미, 호주에 위치한다.
| 국가 | 인구 |
|---|---|
| 호주 | 2011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호주에서 태어난 스리랑카인은 86,412명이었다. 2006년에는 73,849명의 호주인(인구의 0.4%)이 싱할라족 조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싱할라어는 호주에서 29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언어이다. 싱할라족 호주인들은 스리랑카로의 귀환 이주율이 매우 낮다. 멜버른은 스리랑카계 호주인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인구를 포함하고 있다. |
| 캐나다 | 2011년 캐나다 인구 조사에서 139,415명의 스리랑카인 중 7,220명이 싱할라족 조상으로 확인되었다.[48] |
| 뉴질랜드 | 스리랑카계 뉴질랜드인은 2001년 뉴질랜드 아시아 인구의 3%를 차지했다.[49] 2018년 인구 조사에서 뉴질랜드에 16,000명 이상의 스리랑카인이 거주했으며, 그 중 9,171명이 싱할라족이었다.[50][51] |
| 인도 | 인도에 있는 싱할라족은 소수이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으며 주로 북인도와 남인도 지역 및 그 주변에 거주하고 있다. |
| 미국 | 싱할라족은 약 12,000명이다. 뉴욕 대도시권은 미국에서 가장 큰 스리랑카인 커뮤니티를 포함하고 있으며, 합법적인 영주권자 스리랑카 이민자 수가 가장 많다.[52] 그 다음은 중앙 뉴저지와 로스앤젤레스 대도시권이다. |
| 이탈리아 | 1970년대 이후 많은 싱할라족이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고용 기회와 입국이 더 쉬운 것으로 인식되어 싱할라족에게 매력적이었다. 이탈리아에는 30,000~33,000명의 싱할라족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탈리아의 주요 싱할라족 커뮤니티는 롬바르디아 (로레토와 라자레토 지역), 밀라노, 라치오, 로마, 나폴리,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 (특히 팔레르모, 메시나, 카타니아)에 위치해 있다. |
| 영국 | 싱할라족 특히, 스리랑카인은 식민지 시대부터 수 세기에 걸쳐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영국의 인구 조사의 부적절성으로 인해 영국의 싱할라족의 수를 정확하게 추정할 수 없다. 영국 정부는 언어 또는 민족성을 기준으로 통계를 기록하지 않으며 모든 스리랑카인은 아시아계 영국인 또는 기타 아시아인으로 분류된다.[53] |
많은 국가의 인구 조사에서는 스리랑카인을 기록하며, 여기에는 스리랑카 타밀족도 포함되므로, 인구 조사에서 싱할라족이 아닌 스리랑카인으로만 표기될 때 싱할라족의 정확한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
4. 2. 언어 및 문학
싱할라인들은 "헬라바사"라고도 불리는 싱할라어를 사용하며, 이 언어는 구어체와 문어체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싱할라어는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아리아어군에 속한다.[18] 이 언어의 초기 형태는 기원전 6세기에 싱할라인 조상들이 북인도에서 스리랑카로 가져온 것이다.[54][55] 싱할라어는 팔리어, 텔루구어, 산스크리트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의 영향을 받았다. ''Hela Atuwa''와 같은 이 언어의 많은 초기 텍스트는 팔리어로 번역된 후 사라졌다. 다른 중요한 싱할라어 텍스트로는 ''Amāvatura'', ''Kavu Silumina'', ''Jathaka Potha'' 및 ''Sala Liheeniya''가 있다. 싱할라어는 또한 타밀어와 같은 많은 인도 언어와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영어와 같은 유럽 언어를 포함하여 많은 외래어를 차용했다.[73]스리랑카의 불교 승려들이 쓴 Sandesha Kavyas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다재다능한 문학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56] 오늘날에는 식민 시대의 영국 점령과 텔레비전 및 외국 영화를 통한 외국 문화 노출의 결과로 몇몇 영어 단어들도 유입되었다. 또한 해안 지역에서는 많은 네덜란드어와 포르투갈어 단어를 볼 수 있다. 2012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싱할라인의 23.8% (3,033,659명)가 영어를 사용하고, 6.4% (812,738명)가 타밀어를 사용했다.[57] 네곰보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싱할라인으로 정체성을 밝히는 이중 언어 어부들이 네곰보 타밀어 방언도 사용한다. 이 방언은 구어 싱할라어와 상당한 융합을 겪었다.[58]
''Mahadana Muttha saha Golayo''와 ''Kawate Andare''와 같은 민담은 오늘날에도 아이들을 즐겁게 한다. 현대에는 마틴 위크라마싱게와 G. B. 세나나야케와 같은 싱할라 작가들이 널리 찬사를 받았다. 명망 있는 다른 작가로는 마하가마 세케라와 마데웰라 S. 라트나야케가 있다. 마틴 위크라마싱게는 매우 인기 있는 아동 소설인 ''Madol Duwa''를 썼다. 문다사 쿠마라퉁가의 ''Hath Pana''도 널리 알려져 있다.
4. 3. 종교
싱할라족의 대다수는 상좌부 불교를 믿으며, 불교는 싱할라족의 정체성과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59] 팔리 연대기(예: 마하밤사)는 싱할라인이 하나의 민족 집단으로서 불교를 보존하고 보호하도록 운명지어졌다고 주장한다. 싱할라 불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일부 힌두교 신들을 숭배하는 등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73][60][61] 예를 들어 카타라가마 데비요는 카르티케야, 우풀반은 비슈누, 아야나야케는 아이아나르에서 유래되었다.[62]가나나트 오베예세케레와 키츠리 말라골다는 스리랑카 싱할라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불교의 한 유형을 "개신교 불교"라고 명명하며, 이는 영국 식민 시대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종류의 불교는 종교적 관습을 조직하는 개신교 전략을 모방했다. 즉, 불교 청소년을 교육하고 청년 불교 협회와 같은 새로운 조직으로 불교도를 조직하며, 불교를 옹호하기 위해 토론 및 종교적 논쟁에 참여하도록 사람들을 장려하기 위해 팸플릿을 인쇄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싱할라족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있으며, 주로 로마 가톨릭 신자가 많고 소수의 개신교 신자도 있다.[59] 이들은 주로 해안 지역에 거주한다.[73] 싱할라족에게 종교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2008년 갤럽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스리랑카인의 99%가 종교를 일상생활의 중요한 측면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65]
5. 문화
싱할라 문화는 26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며, 상좌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발전해 왔다. 조각, 순수 미술, 문학, 춤, 시 등 다양한 예술 분야와 민간 신앙 및 의례가 발달했다. 고대 싱할라 석조 조각과 비문은 시기리야 프레스코화와 함께 현대 관광의 주요 유치 요소이다. 노동자들의 민요는 삶의 이야기를 담은 4행시 형태로, 불교 축제에는 전통 악기를 사용한 독특한 음악이 연주된다. 악마 추방 의례인 tovilssi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73]

싱할라인은 싱할라어로 "사자의 자손"이라는 뜻이며, 스리랑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한다. 대다수는 불교도이지만, 일부는 기독교도도 있다. 싱할라 명칭은 왕조, 왕국, 왕국민, 민족으로 의미가 변화해 왔다.[73]
18세기 이후 싱할라어의 인도유럽어족 기원설과 영국 식민 지배 하 불교 부흥 운동으로 싱할라인의 민족 의식이 고양되었다. 이는 드라비다계 타밀인과의 차별화를 심화시켰고,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정권의 "싱할라 온리" 정책으로 이어져 소수파 타밀인과의 갈등을 유발, 1983년부터 2009년까지 내전으로 이어졌다.[73]
싱할라인은 역사적으로 내륙의 우다라타(고지) 싱할라와 파하타라타(저지) 싱할라로 나뉘며, 언어, 습관, 관습법에 차이가 있다. 사회는 클라야라는 세습적 계층이 기본이며, 인도의 카스트와 유사하지만 상위 계층인 고이가마가 절반을 차지하고 규제는 덜하다는 특징이 있다.[73]
5. 1. 전통 의상
전통적으로 싱할라인들은 사롱(싱할라어로는 ''사라마'')을 입는다.[73] 남성들은 사롱과 긴 소매 셔츠를 입는다. 여성들의 의복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저지대 싱할라 여성들은 흰색 긴 소매 재킷과 꽃무늬 또는 패턴 디자인이 새겨진 타이트한 랩스커트를 입는다. 고지대 싱할라 여성들은 비슷한 옷을 입지만, 어깨가 부풀린 재킷과 스커트 상단을 따라 프릴이 달린 옷(싱할라어로는 Reda와 Hatte)을 입는다.[73]칸디 지역 상위 카스트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마하라슈트라 사리와 유사한 칸디 스타일의 사리(오사리야)를 입는다. 이 사리는 드레이핑은 같지만 하단 절반에 프릴이 있고 때로는 소매가 부풀려져 있다. 저지대 상위 카스트 여성들은 남인도 스타일의 사리를 입는다. 현대에는 싱할라인 남녀 모두 서양식 옷을 많이 입지만, 공식 행사나 의식에서는 여전히 전통 의상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허리를 완전히 덮고 앞부분이 부분적으로 들어간 풀 블라우스로 구성된 전통적인 칸디 스타일(오사리야)을 입는다. 그러나 현대적인 스타일의 혼합으로 인해 대부분의 착용자는 허리를 드러내기도 한다. 칸디 스타일은 싱할라 여성의 전통 의상으로 여겨진다.[73] 스리랑카 항공의 여성 승무원 유니폼처럼, 많은 행사와 직종에서 ''사리''는 여성 의류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73]
5. 2. 요리

싱할라 요리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복잡한 요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주요 무역 중심지로서 스리랑카와 관련된 식민 강대국과 외국 상인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쌀은 매일 소비되며, 매운 카레는 점심과 저녁 식사에 자주 먹는 음식이다.[74] 몇몇 스리랑카 요리는 케랄라 요리와 매우 비슷한데, 이는 케랄라와 지리적, 농업적 특징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싱할라인에게 잘 알려진 쌀 요리로는 '우유 쌀'을 의미하는 키리바트가 있다. 삼볼|sambolsi 외에도, 싱할라인들은 강판에 간 코코넛과 붉은 양파를 섞은 다진 잎인 말룽|mallungsi을 먹는다. 코코넛 밀크는 스리랑카 요리의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대부분의 스리랑카 요리에 사용된다.
스리랑카는 오랫동안 향신료로 유명했다. 특히 스리랑카가 원산지인 계피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5세기와 16세기에 스리랑카에 온 전 세계의 향신료 및 상아 상인들은 그들의 고유한 요리를 가져왔고, 그 결과 다양한 요리 스타일과 기술이 발달했다. 람프라이스는 특별한 카레와 함께 국물에 삶은 쌀로, 프리카델 (미트볼)을 곁들여 바나나 잎으로 싸서 구운 네덜란드식 스리랑카 요리이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식 과자도 여전히 인기가 많다. 영국적인 영향으로는 로스트 비프와 로스트 치킨이 있다. 또한, 인도 요리 방법과 음식의 영향도 스리랑카인들이 먹는 음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섬나라인 스리랑카의 요리는 주로 카레와 함께 제공되는 삶거나 찐 쌀로 구성된다. 보통 생선이나 닭고기로 만든 주요 카레뿐만 아니라 채소, 렌즈콩, 심지어 과일 카레로 만든 여러 가지 다른 카레도 함께 먹는다. 반찬으로는 피클, 처트니, 삼볼|sambolsi 등이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코코넛 삼볼인데, 칠리 고추, 말린 몰디브 피쉬, 라임 주스를 섞어 만든 간 코코넛으로 만든다. 이것은 페이스트로 갈아서 쌀과 함께 먹으며, 식사에 활력을 주고 식욕을 돋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 3. 예술 및 건축
스리랑카의 예술과 공예는 섬의 길고 지속적인 불교 문화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수많은 지역 및 현지 전통을 흡수하고 채택했다. 대부분 스리랑카 예술은 종교적 신념에서 유래하며, 회화, 조각, 건축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다.[3] 스리랑카 예술의 가장 주목할 만한 측면 중 하나는 시기리야에서 발견되는 프레스코화와 담불라 및 캔디의 불치사 사원에서 발견되는 종교적 그림과 같은 동굴 및 사원 그림이다.[3] 다른 인기 있는 예술 형태는 원주민과 외부 정착민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3] 예를 들어, 전통적인 나무 공예품과 점토 도자기는 언덕 지역에서 발견되는 반면, 포르투갈에서 영감을 받은 레이스 세공과 인도네시아에서 영감을 받은 바틱이 눈에 띄게 되었다.[3]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와 같은 더 큰 왕국에 살았던 싱할라족은 기원전 6세기 말 인도-아리아 건축 기술을 바탕으로 루완웰리사야, 제타와나라마야 (고대 세계에서 기자의 대피라미드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벽돌 건물), 아바야기리야 (고대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은 벽돌 건물) 등 많은 건축적 예를 세웠다.[3] 또한 파라크라마 사문드라, 카우둘라 및 칸달라마와 같은 고대 탱크, 분수, 해자, 관개 저수지를 건설하기 위한 싱할라족 특유의 고대 수력 기술도 사용했다.[3]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 8대 불가사의로 여겨지는 시기리야는 자연적, 인공적 요새가 결합된 건축물이다.[3]
5. 4. 음악
싱할라 음악에는 고대 사회의 특정 직업과 관련된 민요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수확이나 파종과 같은 일상적인 작업을 할 때 불리던 리듬 있는 공동체 노래였다.[75]아난다 사마라쿤은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초반에 걸쳐 사색적이고 날카로운 사라라 지 스타일을 개발했다. 수닐 산타, W. D. 아마르데바를 비롯하여 여러 음악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싱할라족의 공연 예술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칸디안 댄스''': 코끼리, 독수리, 코브라 등 다양한 동물의 행동을 특징으로 하는 18개의 춤 루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 칸디에서 열리는 페라하라 퍼레이드에서 공연된다.
- '''파하타라타 춤''': 질병 치료와 정신적 정화를 위해 사용되는 춤 스타일이다. 무용수들이 다양한 신과 악마를 나타내는 가면을 쓰고 불과 물과 같은 요소를 사용하여 사람들을 축복한다.
- '''사바라가무와 춤''':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춤 스타일이다.
민속 음악과 춤은 싱할라족의 계층에 따라 다르며, 때로는 지역적으로 어린 아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러한 예술은 싱할라 새해 기간에 널리 공연된다.
5. 5. 무술
앙감포라는 싱할라족의 전통 무술이다. 이 무술은 격투 기술, 자기 방어, 스포츠, 운동 및 명상을 결합한다.[76] ''앙가포라''에서 관찰되는 주요 기술은 손과 손으로 싸우는 기술을 포함하는 ''앙감''과, 벨라유다야, 막대기, 칼, 검과 같은 토착 무기를 사용하는 ''일랑감''이 있다. 이 무술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압점 공격을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거나 영구적으로 마비를 시키는 것이다. 격투가들은 보통 타격과 그래플링 기술을 모두 사용하며, 상대가 탈출할 수 없는 서브미션 관절기에 걸릴 때까지 싸운다. 무기 사용은 재량에 따라 이루어진다. 격투의 경계는 사전에 정의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덩이에서 이루어진다.[77][78] 1815년 이 나라가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된 후 ''앙가포라''는 거의 멸종되었지만, 나라가 독립을 되찾을 때까지 몇몇 가문에서 살아남았다.[79]5. 6. 과학 및 교육
싱할라인은 오랜 문자와 학문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불교 승려들은 쓰기와 읽기 등 기본적인 교육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기원전 시대부터 종교적 가르침과 불교적 이해를 증진시키는 교육 시스템을 운영했다.[80] 행정 목적의 기록 관리 훈련도 이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졌다.[80]저수지와 운하 건설과 같은 기술 교육은 가정 교육과 외부 장인 견습을 통해 세대를 거쳐 전수되었다.[80]
포르투갈인과 네덜란드인의 식민 지배 시기에는 가톨릭 교회와 장로교 계층의 특정 지역 사회에서 종교가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1800년대 영국은 초기에는 같은 방식을 따랐지만, 1870년 이후 지역의 더 나은 교육 시설을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기독교 선교 단체들은 이 발전을 주도하여 기독교인들의 문해력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80]
1901년까지 남부와 북부의 학교는 잘 운영되었지만, 내륙 지역은 상대적으로 뒤처졌다. 또한 영어 교육 시설은 높은 비용과 접근성 부족으로 일반 대중에게 어려움을 주었다.[80]
초기 전통 싱할라 마을에는 적어도 한 명의 주된 의료진, 즉 웨다 마하타야(Weda Mahaththaya, 의사)가 있었다. 이들은 대대로 의료 활동을 수행했다. 싱할라 의학은 아유르베다 의학과 유사한 관행을 따르며, 일부 치료법에서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불교 경전(피릿)을 사용하기도 한다.
마하밤사에 따르면, 고대 연대기인 스리랑카의 판두카바야 (기원전 437~367년)는 여러 지역에 산후조리원과 아유르베다 병원(Sivikasotthi-Sala)을 건설했다. 이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아픈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특별히 헌신한 기관에 대한 가장 오래된 문서 증거이다.[81][82] 미힌탈레 병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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