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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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늘의 혈맥'은 메이지 시대 후기 일본과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러일 전쟁 직전의 긴박한 시대상을 다룬 만화이다. 주인공 아즈미 료를 통해 고대와 근대를 연결하며, 일본 제국주의 팽창과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조명한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아즈미 료, 우레시다 테이이치, 우치다 료헤이 등이 있으며, 흑룡회, 중국 혁명가, 조선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국적과 사상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은 역사적 사실과 픽션을 결합하여, 천황가의 혈통과 칠지도를 둘러싼 이야기를 전개하며, 러일 전쟁, 한일 병합 조약 등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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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혈맥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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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제목 | 하늘의 혈맥 |
원제 | の (덴노케쓰먀쿠) |
장르 | 스토리 만화, 역사 만화, 팩션 |
만화 정보 | |
작가 | 야스히코 요시카즈 |
작화가 | 야스히코 요시카즈 |
출판사 | 강담사 |
그 외 출판사 | 대원씨아이 (대한민국) |
연재 잡지 | 월간 애프터눈 |
레이블 | 월간 애프터눈 KC, 대원씨아이 미우 |
연재 시작 | 2012년 3월호 |
연재 종료 | 2016년 11월호 |
단행본 권수 | 전 8권 (한국어판은 합본하여 전 4권) |
2. 역사적 배경
메이지 시대 후기 일본과 동아시아를 무대로, 러일 전쟁 직전의 긴박한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다. 청년의 심리 묘사와 더불어, 근대사뿐만 아니라 고대사에도 초점을 맞춰 역사를 재조명하려 시도한다.
작가 안히코는 고대와 근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언젠가는 두 시대를 연결하는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진구 황후 시대와 러일 전쟁 시대는 모두 대외 전쟁의 시대이며 동아시아 여러 국가가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주인공 아즈미 료를 통해 두 시대가 연결된다면 "역사광 만화가"로서 참여한 일의 집대성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2013년 7월 일본만화학회 제13회 대회에서 안히코는 "만주를 둘러싼 전쟁은 침략으로 결착되었을 터였지만, 낡은 사진을 보면서, 거기서 영위되었던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권력을 받아들였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라고 아시아를 소재로 작품을 발표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2. 1. 러일전쟁과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
2. 2. 고대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
3. 등장인물
3. 1. 주요 인물
'''아즈미 료'''(아즈미 료/安積亮일본어)는 본작의 주인공이다. 제일고등학교(第一高等學校) 학생으로, 광개토대왕릉비 조사에 참여하면서 고대와 현대를 잇는 역사의 연결고리를 발견한다.[10]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의감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며, 흑룡회의 우치다 료헤이에게도 주눅 들지 않고 의견을 말하는 등 지는 것을 싫어하는 기질이 강하다.[10]'''우레시다 테이이치'''(우레시다 테이이치/嬉田貞一일본어)는 일고 강사이자 역사학자로, 광개토왕릉비 연구에 몰두하며 고대사 해명에 열정을 쏟는다.[10] 시라토리 구라키치, 나이토 고난을 경쟁자로 여기고 분발한다.[10]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에 맞서는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지며, 키타 사다키치를 모델로 한 가공인물이다.[10]
'''우치다 료헤이'''(우치다 료헤이/内田良平일본어)는 일본의 국가주의 단체 흑룡회의 주간이다.[10] 일선동조론을 신봉하며, 역사 왜곡을 통해 한일합병을 정당화하려는 인물이다.[10] 쑨원은 그를 “급진적 확장주의자”라고 평가한다.[10] 국민의힘과 같은 보수 우익 세력의 전형을 보여준다.
'''모리야 미도리'''(모리야 미도리/森谷翠일본어)는 아즈미 료의 아내이다.[10] 메이지 여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으로,[10] 진보적인 여성으로, 평민사의 반전 사상에 영향을 받는다.[10]
'''아즈미노 이사나'''는 아즈미 료의 조상으로, 고대 해인족 출신이다.[10] 야마토 정권의 한반도 진출에 동원된다.
3. 2. 일본
3. 2. 1. 일고・제대 관련인
'''테시로기'''(테시로기/手代木일본어): 사적조사대 참여자. 아즈미의 1년 선배다. 우레시다에게 사사하여 고대사 연구에 종사하는 것을 희망하고 있으며, 1904년 4월 제대 사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이후 취직을 했으나 그만두고 1907년 연말 태왕릉 발굴조사에 참여한다.'''타시로 츠루헤이'''(타시로 츠루헤이/田代 鶴兵일본어): 사적조사대 참여자. 경박한 성격이다. 친가는 건어물전을 하고 있다. 일고 졸업 이후 도쿄고등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장사는 실전이라며 학교를 때려치우고 "타시로 상사"라는 회사를 창업해 조선에서 수탈 사업을 하는 친일 자본가로 묘사된다.
'''반'''(반/伴일본어): 제대생으로 사적조사대 참가자. 구마모토현의 제오고등학교(오고) 출신이다. 우치다가 동향(규슈) 사람이라고 존경하고 있다. 몸집이 큰 체구의 소유자로 유도를 배운다.
'''시라토리 쿠라키치'''(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 庫吉일본어): 학습원 및 도쿄제대 교수. 아즈미가 제출한 삼한정벌에 관한 논문을 평가한다. 논문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혹평하며 자기 제자 츠다 소키치의 연구자세를 배우라고 타이르는 등, 조선사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3. 2. 2. 우치다 주변인
조선족 청년 '''유두성'''(柳斗星)은 의화권의 명수다. 1900년 의화단의 난에 참여하지만 많은 동료를 잃고 패주한 뒤 범아시아주의를 주장하는 우치다에게 몸을 의탁하고 일본 이름 '''호쿠토'''(北斗)를 칭했다. 우치다를 따르며 아시아주의의 이상을 믿었지만,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실질적으로 조선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그를 떠나 의병투쟁에 참가한다. 작품 종반에서 아즈미와 재회하여 하나와 함께 그들의 탈출을 돕지만, 우치다의 칼에 베이고 생사불명이 된다.'''하나'''(}})는 나가사키현 출신의 카라유키이다. 러시아 외교관과 게이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눈이 푸른색이다. 러시아 이름은 '''안나'''(Аннаru)라고 한다. 일본어, 러시아어, 중국어, 한국어에 두루 능통하다. 원래 아즈미 일행을 따라 일본으로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그 언어능력을 눈여겨본 하나다 나카노스케에게 납치되어 러일전쟁 기간동안 하얼빈의 러시아군 사령부에서 일본군의 밀정 노릇을 한다. 이후 일본군의 손아귀를 벗어나 아나키스트가 되고, 종반에서 아즈미가 만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그를 멀리서 지켜보다가 최후의 탈출을 돕는다.
'''하나다 나카노스케'''( }})는 일본 육군 정보장교 출신이다. 예비역 소좌. 만주에서 현지 마적을 규합해 만주의군을 편성하여 러일전쟁 때 후방을 교란했다. 작중에서는 화쿠우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암약하고 있었다.
'''미야자키 토라조'''( }})는 구마모토현 출신의 장사이다. 1905년 쑨원 등과 정치결사 중국동맹회를 결성하고 중국 혁명에 참여한다. 음흉한 우치다와 달리 순수한 진심으로 중국인들에게 연대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작가의 전작 『왕도의 개』에서도 단역으로 등장했다.
'''아카시 모토지로'''( }})는 육군 대좌. 후 소장으로 승진. 러일전쟁 때 주재무관으로서 유럽 전역의 반러시아 세력(사회주의자, 소수민족 독립운동가 등)을 지원하면서 후방을 교란했다. 전후 한국통감부군 헌병대사령관으로 부임해 의병 진압에 임한다.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우치다의 동향 선배에 해당한다. 러시아의 로마노프가가 무너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혁명세력의 대두에 위기감을 느끼고, 일본 황실을 절대적으로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치다에게 일선동조론 합방공작을 자제하라고 협박한다.
3. 2. 3. 메이지 여학교 관련인
'''이와모토 요시하루'''(이와모토 요시하루/巌本善治일본어): 교육자, 평론가. 메이지 여학교 설립발기인 중 한 명으로, 학교 교감을 거쳐 교장을 맡고 있다. 가쓰 가이슈와 친교가 있어서 카츠의 이백 휘호를 가지고 있다. 미도리가 아즈미와 결혼해서 기숙사를 나가게 되었을 때 이 휘호를 선물로 준다. 작가의 전작 『왕도의 개』에서도 단역으로 등장했다.'''코테가와 야에코'''(코테가와 야에코/小手川弥生子일본어): 메이지 여학교 기숙사 사감. 미도리의 선배로서 보호자 역으로 나가노현의 양가 친가에 따라간다.
'''소마 콧코'''(소마 콧코/相馬黒光일본어): 메이지 여학교를 졸업한 선배. 남편과 함께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제과점 신주쿠 나카무라야를 창업했다. 시댁이 나가노현 아즈미노인데, 아즈미 부부의 고향 스와와 가까운 곳이며, 그 지명에 해인족 아즈미씨의 이름이 남은 곳이다.
3. 2. 4. 사회주의자
- '''오스기 사카에'''(오스기 사카에/大杉栄일본어)
: 도쿄외국어학교 학생이자 평민사에 참여하는 사회주의자이다. 스와에서 비전 연설회를 하는 우치무라 간조의 호위역으로 처음 등장한다. 기독교인이지만 신을 믿지 못하고, 우치무라의 비전론은 지지하지만 그의 비폭력 사상에는 공감하지 못해 히비야 방화사건을 계기로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하게 된다. 이후 아즈미와 관계를 맺게 되며, 스스로를 "하이카라한 오스기(오 하이)"라고 칭하는 등 엉뚱한 태도를 보인다.
- '''사카이 토시히코'''(사카이 도시히코/堺利彦일본어)
: 평민사 동인으로, 사회주의자이다. 작중에서는 칸노 스가와의 면회를 요구하는 아즈미와 입회한다. 아즈미가 일고생에 우레시다의 제자라는 것을 알자 "비문 연구는 대륙 진출의 이유 중 하나"라며 대륙침략의 첨병이라고 비난하며 내쫓는다.
- '''미야카와 타이치'''(미야카와 다이치}/宮川太一일본어)
: 나가노현 이즈미노 출신의 허무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이다. 조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토착신 미샤구지를 신앙하며, 스와 대사도 원래 미샤구지를 모신 신사라고 주장하면서 그 신관의 가계인 미도리를 "성모", "마돈나"라면서 스토킹했다. 미샤구지를 비롯한 국진신들이 일본열도의 본래 주인이고 천진신들은 그 자리를 빼앗은 찬탈자들이라는 논리로 천진신의 후손인 천황에 대한 테러를 획책하지만, 폭탄 제조 중 오폭사고를 일으키고 체포된다. 경찰에서 폭탄 제조법을 대학생 지인에게 배웠다고 위증하여 아즈미가 구속되게 만든다. 모델은 미야시타 타이키치이다.
3. 2. 5. 기타 일본인
우치무라 간조(우치무라 간조/内村 鑑三일본어): 기독교 사상가. 러일 전쟁 개전 전에 기독교 입장에서 비전론을 설파하고, 국민에게 충효 도덕을 강요하는 한편 기만을 병립하는 현 상황이야말로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토 히로부미(이토 히로부미/伊藤 博文일본어)
: 전 내각총리대신, 초대 한국 통감. 러일 전쟁 후 1905년 11월, 제2차 한일 협약이 체결됨에 따라 통감부 초대 통감에 취임하여 개혁에 착수하지만, 고종을 비롯한 수구파의 저항에 부딪힌다. 작중에서는 고종의 조속한 퇴위를 요구하는 우치다의 진언에 대해 "지금 일본이 야심을 보인다면 세계로부터 비판을 받을 수 있다"라며 가볍게 물리쳤지만, 1907년 고종이 헤이그 특사 사건을 일으킨 것을 기점으로 퇴위로 몰아넣고, 통감부의 권한을 강화한 제3차 한일 협약을 체결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조선 식민지화의 주역으로 보며,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쓰다 소키치(쓰다 소키치/津田 左右吉일본어)
: 역사학자. 작중에서는 만철 조사부원이 된 아즈미와 조선에서 만나지만, 삼한 정벌 당시의 연구를 하는 아즈미에게 사료 비판의 관점에서 "삼한 정벌은 사실이 아니다", "진구 황후"나 다케우치노 스쿠네의 실존은 의심스럽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고토 신페이(고토 신페이/後藤 新平일본어)
: 만철 초대 총재, 전 타이완 총독부 민정장관, 후에 도쿄시 시장을 역임한다. "천하의 큰 보자기"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다. 작중에서는 러시아 혁명파의 움직임에 대해 "사용법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도 있다"라며 여유로운 자세를 보이지만, 아카시 모토지로에게 훈계받는다.
3. 3. 중국인
장작림(張作霖)은 만주에서 활동하는 마적 두목으로 "백호 장(白虎の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와 적대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치다를 비롯한 일본인들에게 협력을 약속하지만, 전쟁은 러일간의 일이기에 전면적으로 협력할 생각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훗날 군벌을 지휘하여 펑톈성에서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한다.송교인(宋教仁)은 봉기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한 중국인 혁명가로, 중국동맹회 결성에 참가했다. 신해혁명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으며, 혁명 후 국민당을 조직했다. 만주 마적을 혁명 무력으로 조직화하기 위해 만주로 가는 도중 조선을 경유해 아즈미와 재회하여, 그의 연구가 국가의 의도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경고를 하는 한편 아즈미라면 그런 압력에 굴하지 않고 연구를 해낼 것이라고 격려했다.
손문(孫文)은 왕도의 개에서 바로 이어 등장한다. 삼주전 봉기를 비롯해 여러 차례 실패를 맛보고 청조타도를 목표로 1905년 도쿄 우치다 저택에서 중국동맹회를 결성한다. 삼민주의를 혁명의 기본 강령으로 삼았으며, 후에 중화민국의 임시 대총통에 취임했다. 작중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와 송교인의 입을 빌어 정치인, 혁명가로서의 수완에 의문이 제기된다.
진천화(陳天華)는 일본 유학생 신분의 젊은 혁명가로, 중국동맹회 발기인으로 참여한다. 청조 타도를 위해 일본에 유학, "중국 동맹회" 결성 시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된다. 일본 정부가 「청국유학생단속규칙」을 공포하자 그것에 항의하는 제대 내 집회를 실시했을 때 아즈미와 조우한다. 1905년 12월 『아사히 신문』에 중국 유학생들을 야유하는 기사가 게재되자 이에 항의하여 오모리 해안에서 투신자살한다.
3. 4. 조선인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일본을 불신하였으며, 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대립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으로 이토의 추궁을 받자 아들 순종에게 양위했다. 이토는 고종이 실정을 반복했다며 낮게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고종의 자주적인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송병준은 친일단체 일진회의 대표이다. 갑신정변 이후 김옥균을 암살하러 일본에 갔다가 김옥균 사상의 영향을 받아 친일개화파로 전향했다. 1907년 이완용 내각 성립 후 농상무장관을 지냈다. 조선시대의 긴 세월동안 실정으로 낙후된 조선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교만을 버리고 일본에 맡겨 추락할 수 있는 데까지 추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그를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비판한다.
안중근(안응칠)은 양반 명가 출신으로, 학교를 설립했지만 자금난으로 석탄업체를 운영했다. 겨울에 대동강이 얼어서 석탄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틈을 타 타시로 상사가 거래를 가로채가자 큰 손해를 입고, 타시로를 잡으러 가던 중 아즈미와 처음 만났다. 아즈미를 형제처럼 여기는 한편, 고종이 퇴위당한 뒤 나라의 앞날을 비관해 학교와 석탄사업을 모두 처분하고 의병투쟁에 뛰어든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안중근을 민족 영웅으로 추앙한다.
3. 5. 러시아인
니콜라이 2세 알렉산드로비치(Николай II Александровичru)는 제14대 전러시아의 황제이다. 심복 알렉산드르 베조브라조프의 진언에 따라 만주에서 러시아군 병력의 증강을 결정하고 일본과의 전쟁 의지를 굳혔다. 1891년 오쓰 사건을 잊지 않고 일본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베조브라조프(Александр Михайлович Безобразовru)는 러시아 제국의 황제부추밀고문관이다. 자신이 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목재회사 사업소가 조사대를 구출하려던 우치다 등에게 습격당한 것을 구실로 러청조약에 위배되는 병력증강을 진언한다.
이반(Иванru)은 러일전쟁 이후 블라디미르 레닌의 지령에 따라 극동에 파견된 볼셰비키이다. 상인으로 위장해 대련에서 당건설을 개시하고, 그 장애가 되는 일본측 동향을 파악하려다 하나에게 살해당한다.
3. 6. 고대인
'''오키나가 타라시히메노 미코토'''는 야마토 정권의 왕비로, 타라시나카츠히코노 스메라미코토의 정실이다. 일본 우익은 그녀의 삼한 정벌을 과장하여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려 한다.[11] '''타케우치노 스쿠네'''는 야마토 정권의 대신으로, 아즈미노 이소라 등 해인족들에게 삼한 정벌 참여를 명령한다.[12] '''카츠라기노 소츠히코'''는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아들이다. '''타라시나카츠히코노 스메라미코토'''는 야마토 정권의 치천하대왕으로, 야마토 타케루의 아들이며 오키나가 타라시히메노 미코토의 남편이다. '''아즈미노 이소라'''는 나노국 해인족의 족장으로, 이사나의 조부이다. "해룡신의 저주"를 받아 심각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카고사카'''와 '''오시쿠마 황자'''는 타라시나카츠히코노 스메라미코토의 아들들이다. 카고사카 황자는 멧돼지로 변장한 이사나에게 살해당한다. '''부여구수'''는 백제 태자로, 북한산 기슭의 산성에서 고구려군과 야마토군 사이의 혈전을 관망하며 근초고왕의 책략을 언급한다.
'''아즈미노 이사나'''는 해인족 청년으로, 아즈미노 이소라의 손자다. 얼굴에 경면이라는 문신을 하고 있다. 야마토국의 군대에 합류해 백제와 함께 고구려-신라군과 싸우고 귀국한 뒤, 카츠라기노 소츠히코에게 습격당해 중상을 입는다.
4. 줄거리
1903년(메이지 36년) 10월, 일본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제일고등학교(일고) 학생 아즈미 료는 우레시다 테이이치 교수가 이끄는 도쿄제국대학(제대)와 일고의 합동 특별 사적 조사대에 참가하여 호태왕비 조사를 위해 만주와 조선의 국경 집안으로 향한다.[9] 아즈미 일행은 호태왕비의 탁본을 뜨고 조사를 시작하려던 중 마적의 습격을 받아 러시아군 주둔지에 구속되지만, 흑룡회의 우치다 료헤이와 그를 따르는 조선인 청년 유두성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다.[9] 아즈미는 카라유키 하나와 교류를 가지지만, 하나를 대러 첩보원으로 쓰려는 우치다의 계략에 의해 헤어지게 된다.[9]
1904년(메이지 37년), 귀국한 아즈미는 부모의 주선으로 스와 대사의 무녀이자 소꿉친구인 모리야 미도리와 결혼한다.[9] 2월 8일 러일 양국이 교전 상태에 돌입한다.[9] 아즈미는 우레시다 밑에서 고대사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우치다와 계속 엮여서 우치다가 후원하는 중국 혁명가들(송교인, 손일선, 진천화)을 만나고 중국동맹회 결성식에도 참여한다.[9] 우치다가 우레시다와 아즈미를 지원하는 이유는 『일본서기』의 내용이 사실일 경우 진구 황후가 오진 천황을 임신한 달수가 맞지 않아 주아이 천황이 오진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데, 오진의 아버지를 호태왕으로 날조, 조선과 일본의 선조가 같으니(일선동조론) 합방해야 한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5년(메이지 38년) 봄, 평민사의 사카이 토시히코에게 우레시다의 연구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일갈을 들은 아즈미는 우레시다에게 그 일을 따지다 징계를 받는다.[9] 우레시다가 선처하여 아즈미는 제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되지만, 우레시다는 센다이의 제이고등학교로 좌천된다.[9] 우레시다는 이별하면서 어둠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아즈미에게 충고한다. 이번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얻는 실속이 거의 없었기에 불만이 폭발한 민중들은 폭동을 일으킨다.[9]
1906년(메이지 39년) 조선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하는 한국통감부가 설치되어 실질적으로 일본의 통치가 시작된다.[9] 유두성은 우치다에게서 이탈해 의병에 참여한다.[9] 한편 아즈미 부부는 천황에 대한 테러를 획책한 미야카와의 음모에 휘말린다.[9] 아즈미는 경찰에 구속되지만 우치다의 안배로 석방된다.[9] 하지만 고향에서 모친이 사돈댁에 누를 끼쳤다며 죽음으로 사죄하기 위해 교수자살한다.[9] 도쿄에 차린 신혼집도 구속 중에 처분되어 지친 아즈미에게 우치다는 만주철도조사부 연구원 자리를 주선한다.[9]
1907년(메이지 40년) 만철조사부 연구원이 된 아즈미는 한성에서 백제 고분의 발굴조사에 참여하면서, 고대 대륙국가들과 고대 일본 황실의 관계를 밝혀보려 한다.[9] 한편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이토 통감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한성은 군대해산과 소요에 휩싸인다.[9] 이런 상황 속에서 아즈미는 유두성과 재회하고, 안응칠과 교류하면서 결국에는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려 드는 우치다와 결별한다.[9] 같은 해 10월, 조선에서의 일을 마친 아즈미는 미도리와 함께 만철 본사가 있는 대련으로 향한다.[9] 거기서 은사 우레시다와 재회하여 호태왕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태왕릉 발굴에 참여한다.[9] 한편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내부의 혁명세력을 지원하여 후방을 교란했던 아카시 모토지로가 귀국한다.[9] 아카시는 혁명세력의 영향이 일본으로 파급되어 일본 황실이 위기에 노출되는 것을 위험시하고, 동향 후배인 우치다를 불러서 일한 합병은 이미 기정사실이니, 일선동조론 따위 쓸데없는 불장난으로 만세일계에 누를 끼치지 말라고 협박한다.[9] 우치다는 아카시에게 굴복하여 우레시다에게 발굴조사를 중지하고 태왕릉을 도로 묻으라고 지시한다.[9] 우치다에게 뒤통수를 맞은 우레시다는 우울에 빠지지만, 아즈미는 태왕릉에서 이사나의 유령에 이끌려 「원(原)칠지도」를 발견한다.[9] 아즈미 일행은 우치다의 눈을 피해 이것을 일본으로 가져가려 하고, 그 노정에 의병이 된 유두성과 안응칠, 러시아 아나키스트가 된 하나와 재회해 도움을 받는다.[9] 이들이 집안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것을 알아챈 우치다는 아카시 휘하의 헌병대를 이끌고 그들을 쫓는다.[9] 이것을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한 청나라 군대에서 포탄을 발사하면서 강의 얼음이 깨지고, 아즈미는 원칠지도와 함께 물에 빠져 행방불명된다.[9]
4. 1. 메이지편
1903년(메이지 36년) 10월, 일본 제국과 러시아 제국 간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제일고등학교(일고) 학생 아즈미 료는 우레시다 테이이치 교수가 이끄는 도쿄제국대학(제대)와 일고의 합동 특별 사적 조사대에 참가하여 호태왕비 조사를 위해 만주와 조선의 국경 집안으로 향한다.[9] 아즈미 일행은 호태왕비의 탁본을 뜨고 조사를 시작하려던 중 마적의 습격을 받아 러시아군 주둔지에 구속되지만, 흑룡회의 우치다 료헤이와 그를 따르는 조선인 청년 유두성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한다.[9] 아즈미는 카라유키 하나와 교류를 가지지만, 하나를 대러 첩보원으로 쓰려는 우치다의 계략에 의해 헤어지게 된다.[9]1904년(메이지 37년), 귀국한 아즈미는 부모의 주선으로 스와 대사의 무녀이자 소꿉친구인 모리야 미도리와 결혼한다.[9] 2월 8일 러일 양국이 교전 상태에 돌입한다.[9] 아즈미는 우레시다 밑에서 고대사 연구를 계속하는 한편, 우치다와 계속 엮여서 우치다가 후원하는 중국 혁명가들(송교인, 손일선, 진천화)을 만나고 중국동맹회 결성식에도 참여한다.[9] 우치다가 우레시다와 아즈미를 지원하는 이유는 『일본서기』의 내용이 사실일 경우 진구 황후가 오진 천황을 임신한 달수가 맞지 않아 주아이 천황이 오진의 아버지가 될 수 없는데, 오진의 아버지를 호태왕으로 날조, 조선과 일본의 선조가 같으니(일선동조론) 합방해야 한다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05년(메이지 38년) 봄, 평민사의 사카이 토시히코에게 우레시다의 연구가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일갈을 들은 아즈미는 우레시다에게 그 일을 따지다 징계를 받는다.[9] 우레시다가 선처하여 아즈미는 제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되지만, 우레시다는 센다이의 제이고등학교로 좌천된다.[9] 우레시다는 이별하면서 어둠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아즈미에게 충고한다. 이번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얻는 실속이 거의 없었기에 불만이 폭발한 민중들은 폭동을 일으킨다.[9]
1906년(메이지 39년) 조선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를 초대 통감으로 하는 한국통감부가 설치되어 실질적으로 일본의 통치가 시작된다.[9] 유두성은 우치다에게서 이탈해 의병에 참여한다.[9] 한편 아즈미 부부는 천황에 대한 테러를 획책한 미야카와의 음모에 휘말린다.[9] 아즈미는 경찰에 구속되지만 우치다의 안배로 석방된다.[9] 하지만 고향에서 모친이 사돈댁에 누를 끼쳤다며 죽음으로 사죄하기 위해 교수자살한다.[9] 도쿄에 차린 신혼집도 구속 중에 처분되어 지친 아즈미에게 우치다는 만주철도조사부 연구원 자리를 주선한다.[9]
1907년(메이지 40년) 만철조사부 연구원이 된 아즈미는 한성에서 백제 고분의 발굴조사에 참여하면서, 고대 대륙국가들과 고대 일본 황실의 관계를 밝혀보려 한다.[9] 한편 헤이그 특사사건으로 이토 통감이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자 한성은 군대해산과 소요에 휩싸인다.[9] 이런 상황 속에서 아즈미는 유두성과 재회하고, 안응칠과 교류하면서 결국에는 역사를 정치에 이용하려 드는 우치다와 결별한다.[9] 같은 해 10월, 조선에서의 일을 마친 아즈미는 미도리와 함께 만철 본사가 있는 대련으로 향한다.[9] 거기서 은사 우레시다와 재회하여 호태왕의 왕릉으로 추정되는 태왕릉 발굴에 참여한다.[9] 한편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 내부의 혁명세력을 지원하여 후방을 교란했던 아카시 모토지로가 귀국한다.[9] 아카시는 혁명세력의 영향이 일본으로 파급되어 일본 황실이 위기에 노출되는 것을 위험시하고, 동향 후배인 우치다를 불러서 일한 합병은 이미 기정사실이니, 일선동조론 따위 쓸데없는 불장난으로 만세일계에 누를 끼치지 말라고 협박한다.[9] 우치다는 아카시에게 굴복하여 우레시다에게 발굴조사를 중지하고 태왕릉을 도로 묻으라고 지시한다.[9] 우치다에게 뒤통수를 맞은 우레시다는 우울에 빠지지만, 아즈미는 태왕릉에서 이사나의 유령에 이끌려 「원(原)칠지도」를 발견한다.[9] 아즈미 일행은 우치다의 눈을 피해 이것을 일본으로 가져가려 하고, 그 노정에 의병이 된 유두성과 안응칠, 러시아 아나키스트가 된 하나와 재회해 도움을 받는다.[9] 이들이 집안에서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것을 알아챈 우치다는 아카시 휘하의 헌병대를 이끌고 그들을 쫓는다.[9] 이것을 자신들을 공격하는 것으로 착각한 청나라 군대에서 포탄을 발사하면서 강의 얼음이 깨지고, 아즈미는 원칠지도와 함께 물에 빠져 행방불명된다.[9]
4. 2. 고대편
아즈미는 꿈을 통해 그의 조상인 해인족 아즈미노 이사나의 삶을 보게 된다.[9] 4세기, 이사나는 나노국(오늘날의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 히가시군의 시카노섬)에 살고 있었는데, 야마토국의 장관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명으로 “백제 구원을 위한 카라국(한반도) 출병”에 참가하게 된다. 해인족 족장 아즈미노 이소라는 심한 피부병으로 거동이 불편했기에 이소라의 손자 이사나가 해인족을 인솔한다. 이사나는 시카노섬의 금인을 갖고 놀다가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아들 카츠라기노 소츠히코와 첫 만남부터 악연을 갖는다. 한편 진구 황후의 남편 주아이 천황(엄밀히는 천황과 황후가 아니라 대왕과 왕비다)은 한반도 출병을 반대하고 하야토나 쿠마소를 쳐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진구가 접신하여 신들이 주아이를 저주한다고 하자 충격을 받아 죽는다. 이사나는 왕궁을 구경하러 몰래 숨어들었다가 이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야마토국 군대는 백제의 편에 서서 고구려-신라 연합군과 싸운다. 하지만 임나일본부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야마토군이 신라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근초고왕이 강적 고구려를 상대하기 위해 야마토를 끌어들였고 야마토군은 백제의 인간 방패로 이용당한 것으로 묘사된다. 오키나가타라시히메노 미코토는 쓰쿠시에서 호무다와케노 미코토를 출산한다.
백제가 승리한 뒤 야마토군은 일본열도로 귀환한다. 계모가 달수가 맞지 않는 수상한 이복동생과 함께 귀국하자 주아이의 적자인 카고사카・오시쿠마오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부왕의 릉인 고시키즈카 고분 꼭대기에 진지를 차리고(『일본서기』에서는 고시키즈카가 가짜 릉이라고 하지만 본작에서는 고시키즈카 고분에 찾아온 아즈미가 주아이의 유령의 목소리를 듣는 등 진짜 릉인 것으로 묘사된다) 진구와 타케우치노 스쿠네 일행을 요격한다. 이사나는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명으로 멧돼지 가죽을 뒤집어쓰고 두 황자를 습격해 카고사카의 목을 베지만, 두 황자에게 잡혀 있던 아즈미를 구하느라 오시쿠마는 죽이지 못한다. 이때 이사나는 아즈미에게 호무다와케 황자가 자기 씨라고 말한다.
진구군은 오시쿠마군을 계속 추격해 기이국까지 몰아붙인다. 이사나는 괜히 거기까지 따라갔다가 호무다와케의 출생의 비밀을 묻어버리려는 카츠라기노 소츠히코의 습격을 받는다. 개기일식을 틈타 탈출한 이사나는 그 자리에서 죽지는 않지만 한쪽 팔이 잘려 빈사상태가 되고, 이후 생사는 불명이다.
4. 3. 결말
2016년 3월, 두만강 얼음 속에서 발견된 아즈미는 일본으로 송환된다. 병원에서 아즈미는 지난 백여 년간의 역사를 접하고, 자신의 현손녀 아즈미 아카네를 만나 자신을 제외한 일행이 무사히 귀국했음을 알게 된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과거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진 도쿄를 둘러보던 아즈미는, 1907년 조선 의병에게 맞았던 탄환을 적출한 후 우라시마 타로처럼 급격히 노화하여 죽음을 맞이한다.오진 천황의 출생에 대한 의문은 끝까지 풀리지 않는다. 아즈미노 이사나, 타케우치노 스쿠네, 카츠라기노 소츠히코, 백제 태자 부여구수 등이 아버지 후보로 거론되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사나의 유령은 진구 황후가 정당한 후계자를 얻기 위해 이들 모두와 관계를 가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결국, "하늘의 혈맥"을 자칭하는 천황가의 혈통은 4세기에 진구에 의해 누군가의 혈맥으로 덧씌워진 것이며, 작중에서 천진신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만세일계의 신화는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칠지도에 관해서는, 백제가 일본에 하사했다는 한국의 주장과 동진이 일본에 하사했다는 일본의 주장을 절충하여, 동진이 백제에 원칠지도를 주고 백제가 이를 모방하여 이소노카미 신궁의 칠지도를 만들어 일본에 주었다고 설정한다. 원칠지도는 이후 광개토왕이 백제를 정벌하면서 강탈하여 태왕릉에 부장품으로 묻혔다고 한다. 백제가 일본에 칠지도를 준 이유는 백제 왕이 된 근구수왕이 자신과 진구의 아들이라고 생각한 오진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이소노카미 신궁의 칠지도가 부러진 이유는 오진 왕조를 부정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5. 작품의 주제와 의의
6. 작중 사건 연표
1891년(메이지 24년) 5월 오오츠 사건이 발생하였다.
1894년(메이지 27년)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1895년(메이지 28년) 4월 시모노세키 조약이 조인되고, 삼국간섭이 발생하였다. 5월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나라에 반환하였다. 6월에는 러일통상항해조약이 조인되었다.
1896년(메이지 29년) 2월 조선에서 친러정권이 수립되었고(아관파천), 5월 코무라·베베르 협정이 체결되었다. 6월에는 이·로바노프 밀약과 야마가타·로바노프 협정이 맺어졌다.
1897년(메이지 30년) 10월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광무개혁을 추진하였다.
1898년(메이지 31년) 3월 독일이 청나라로부터 교주만 조차권, 철도부설권, 광산채굴권을 획득하였다.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대련·여순의 조차권, 남만주 철도부설권을 획득하였다.
1899년(메이지 32년) 9월 미국은 청에 대한 문호개방을 선언하였다.
1900년(메이지 33년) 6월 의화단의 난(북청사변)이 일어났다.
1901년(메이지 34년) 9월 북청사변 강화 최종의정서가 조인되었다. 10월 일본과 영국의 동맹교섭이 개시되었고, 12월 러시아와의 러일협정 교섭은 중단되었다.
1902년(메이지 35년) 1월 영일동맹이 체결되었다.
1903년(메이지 36년) 4월 러시아가 제2차 만주 철군을 불이행하였다. 5월 러시아는 압록강을 넘어 대한제국령에 군사시설 건설을 시작하였다. 10월 우레시다 테이이치가 인솔하는 합동특별사적조사대가 호태왕비를 조사하던 중 마적단에게 습격당했다. 조사대는 러시아군에게 팔려나갔다가 우치다 료헤이에게 구출되었다.(본편 시작) 우치다는 장작림에게 조사대 경호를 맡겼고, 아즈미 료는 가라유키 하나와 만났다. 중국인 탁본업자들이 비문을 훼손하였다. 10월 28일, 러시아군이 봉천을 재점령하자, 우치다와 장작림은 조사대를 두고 먼저 떠났다. 하나는 하나다 나카노스케에게 납치되었고, 아즈미 료와 이별하였다.
1904년(메이지 37년) 1월 합동특별사적조사대가 귀국하였다. 우치무라 간조는 스와 물산회관에서 「비개전을 논하다」 연설을 했다. 아즈미 료와 모리야 미도리는 오스기 사카에와 만났다. 2월 4일 일본 어전회의에서 대러 개전이 결정되었고, 2월 6일 일본은 러시아에 국교단절을 포고했다. 2월 10일 일본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며 러일전쟁이 발발하였다. 2월 모리야 미도리는 메이지 여학교에 입학하였다. 2월 23일 한일의정서가 조인되었다. 아즈미 료는 우치다·하나다와 재회하고 고시키즈카 고분을 답사하였다. 9월 요양 회전이 있었다. 아즈미 료는 평민사를 방문하였다.
1905년(메이지 38년) 1월 여순이 함락되고,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였다. 3월 봉천 회전이 있었다. 4월 아즈미 료는 일고를 졸업하고 제대에 진학했으며, 우레시다 교수는 이고로 좌천되었다. 5월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 함대와 교전하여 승리하였다. 6월 미국이 러일 양국에 강화 권고를 하였다. 7월 사할린 작전이 벌어지고, 가츠라 태프트 밀약이 체결되었다. 7월 30일 중국동맹회가 설립되었다. 9월 포츠머스 조약이 조인되고, 히비야 방화사건이 발생하였다. 11월 제2차 한일협약이 조인되었다.
1906년(메이지 39년) 1월 제1차 사이온지 긴모치 내각이 성립되었다. 1월 야즈미 료와 모리야 미도리가 결혼하였다. 11월 남만주철도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12월 8일 진천화 자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아즈미 부부는 미야카와의 음모에 휘말리고, 료의 모친은 명예자살하였다.
1907년(메이지 40년) 2월 아즈미 료는 만철조사부로 이적하고, 미도리와 함께 조선으로 이사하여 안응칠과 만났다. 늦겨울 아즈미 료는 잠실 백제고분 발굴 도중 조선 의병에게 피습당했다. 6월 헤이그 특사 사건이 발생하였다. 7월 제3차 한일협약이 조인되고, 러일 통상항해조약·어업협약, 제1차 러일협약이 조인되었다. 7월 18일 한성 시내에서 시가전이 벌어지고, 이탈한 한국군이 의병화되었다(정미의병). 7월 29일 아즈미 료는 우치다 료헤이에게 결별을 통보하였다. 8월 1일 대한제국 군대해산이 이루어지고, 남대분 전투가 벌어졌다. 10월 아즈미 부부는 대련으로 이주하였고, 아나키스트가 된 하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련으로 침투하였다. 연말 아즈미 료는 우레시다 테이이치와 재회하고 태왕릉 발굴에 참여하였다. 아즈미 미도리는 임신하였다. 아즈미 일행은 태왕릉에서 발견한 원칠지도를 가지고 블라디보스토크 방향으로 도피하였다. 유두성, 하나, 안응칠과 재회하였으나, 우치다의 추격을 따돌리던 중 청군의 포격으로 아즈미 료는 두만강에 수장되었다.
1909년(메이지 42년) 9월 청일간에 만주 및 간도에 관한 협약(청일협약)이 조인되었다.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역에서 암살되었다.
1910년(메이지 43년) 7월 제2차 러일협약이 조인되었다. 8월 한국병합이 이루어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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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宝石の国」マスキングシート全7種がアフタに、新連載も3本スター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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