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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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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종교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종교적 전통을 포괄한다. 한국은 고대부터 토착 신앙, 불교, 유교 등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삼국시대에는 불교가 전래되어 신라와 고려 시대에 주요 종교로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에는 억불 정책과 유교의 부상으로 불교의 영향력이 감소했지만, 유교는 사회 윤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후반 천주교가 전래되었으나 박해를 받았고, 19세기 말 개신교가 들어와 기독교가 성장했다. 현대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주요 종교로 자리 잡았으며, 무속 신앙과 신흥 종교 또한 존재한다. 2015년 기준, 무종교 인구가 가장 많으며, 지역별로 종교 분포에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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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
개요
조선 시대 중인
조선 시대 중인
종류한국의 종교
토착 신앙
신앙 형태무속신앙
유입 종교
종교도교
불교
성리학
천도교
기독교
통일교

2. 역사

2. 1. 상고시대

고대 부족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한민족은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자연물이나 정령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수목(樹木)은 아이를 낳는 사라수(沙羅樹)로 여겨졌고, , 범은 사람으로 화하여 재앙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마늘, , 창포 등은 생명을 소생시키거나 악마를 쫓는 주력(呪力)을 가진 서초(瑞草)나 주초(呪草)로 여겨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산령(山靈)·수령(水靈) 등의 애니미즘과 일월성신 숭배 등 자연 숭배와 정령 숭배가 나타났다. 하늘족에는 환웅과 무리 삼천이란 씨족이 있었고, 땅에는 곰·범이라는 씨족이 있었다. 천왕으로서의 환웅이 땅의 곰족과 결혼하여 단군이 태어났고, 단군에게서 부루(夫婁)가 나왔는데 부루는 금색 개구리 토템을 가졌다. 이처럼 대가 바뀌면 토템도 달라졌다.

신라의 성족사회(姓族社會) 역시 토템적 사회로서, 주장자(主長者)는 천족(天族) 출생의 천왕랑(天王郞)이었다. 천왕랑은 햇빛을 받아 출생하거나 알에서 탄생하는 등 이생적(異生的)으로 태어났으며, 이는 조령(祖靈)이나 천신(天神)의 재생으로 신앙되었다. 천왕랑은 토착민의 여인과 결합하였고, 그 신족들이 사는 곳이 '감터(神士)'였다. 고대 사회에서 거행된 영고(迎鼓)·동맹(東盟)·무천(舞天) 등의 제천 의식은 천왕랑이 사제자(司祭者)가 되어 한울에 바치는 신족들의 제례였다. 제는 신사(神事)이고 신사는 곧 정사(政事)였으므로, 토템 사회에서 신정(神政)이 베풀어진 것이다.

2. 2. 삼국시대

고구려에서는 조상 숭배와 함께 불교의 일광삼존불, 정토 신앙 등을 받아들였다. 372년, 승려 순도(順道)가 전진(前秦)의 부견에 의해 고구려(高句麗) 소수림왕의 궁정에 보내졌고, 고구려 왕족과 신하들은 그의 가르침을 빠르게 받아들였다.[10] 당시 중국의 불교는 인과응보의 법칙과 행복 추구를 중심으로 하는 초보적인 형태였으며, 이는 지배적인 샤머니즘과 많은 공통점을 가져 고구려 사람들이 불교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데 기여했다.[10] 유교 또한 고구려를 통해 한국에 전해졌으며, 소수림왕 통치 기간 동안 한국 최초의 국립 유교 학원(국자감)이 설립되었다.[11]

백제는 재래의 조령 신앙에 불교의 삼존불 신앙과 약사여래(藥師如來) 신앙을 더했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따르면, 불교는 384년에 인도 불교 승려 마라난타가 동(東晉)에서 백제로 오면서 공식적으로 전해졌다.[12][13][14][15] 침류왕은 그를 환영했고, 백제는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12][13][14][15] 불교와 유교는 모두 백제에서 번성했으며, 백제는 불교를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6][17] 513년과 516년에 일본은 백제로부터 유교 학자들을 맞이했고,[16][17] 이후 성왕은 불교 경전과 불상을 일본에 보냈다.[10] 이 사건은 538년 또는 552년으로 추정되며, 일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해진 시점을 나타낸다.[18] 백제는 지속적으로 일본에 불교 승려를 공급했다.[16] 587년, 승려 풍국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으며,[16] 595년에는 승려 혜자가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19]

신라에서는 불교 공인 이후 미륵하생(彌勒下生) 신앙, 전륜성왕(轉輪盛王) 신앙 등이 퍼졌다. 화랑(花郞)은 미륵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초기 신라의 불교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16] 고구려 승려 혜량(惠亮)이 신라 최초의 국사로 임명되었으며,[16] 신라법흥왕이 불교 개종자였던 이차돈을 처형한 후 서기 527년에 공식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20] 이 기적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 왕실이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21]

신라 제2대 남해왕 때 시조 혁거세 거서간의 시조묘를 세워 제사를 지냈고, 제22대 지증왕 때 시조 강림지인 내을에 신궁을 창건했으며, 제36대 혜공왕미추왕·무열왕·문무왕·친묘를 신위로 하여 오묘로 삼았다.[40] 오묘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권32 잡지·제사조에 "천자는 칠묘, 제후는 오묘"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천자(중국)는 칠묘, 중국의 제후는 오묘라는, 중국에 대한 제후의 예제에 준하여, 말하자면 중국의 "충실한 속국"이 되기를 기원했다.[40]

이외에도 관음신앙과 밀교(密敎)의 다라니(陀羅尼)가 널리 민간에 보급되어 일반상식화되었다. 불교는 학문적으로도 깊이 연구되었고 일본에 전파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교는 삼국의 일반민중을 신앙적으로 이끌어 주지 못했다. 불교신라(기원전 57년부터 935년)와 고려 왕조(918년부터 1392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되어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2. 3. 고려 시대

고려 시대에는 도참설과 성황신 신앙이 유행하였다.[42] 도참설은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데 사용되었고, 성황신 신앙은 민간에서 기자(祈子), 초복(招福), 제액(除厄) 등을 위해 널리 퍼졌다.[42] 그러나 고려는 유교적 정치 이념을 바탕으로,[42] 불교를 통해 국가 발전을 꾀하고자 했다.[42] 이를 위해 유교의 과거 제도와 함께 승과 제도를 두어 승려를 관리했다.[45][46] 승과에는 교종선과 선종선이 있었으며, 합격자는 승려 자격을 얻고 법계를 받았다.[46] 교종은 대선부터 승통까지, 선종은 대선부터 대선사까지의 법계가 있었으며, 승통과 대선사는 왕사나 국사가 될 자격이 있었다.[46]

성종은 국자감에 육학(국자학, 태학, 사문학, 율학, 서학, 산학)을 설치하여 유교 교육을 강화했다.[47] 정종은 중앙에 승록을 설치하고 도승록, 부승록, 승정, 승잡 등의 승관을 두어 불교 단체를 국가적으로 관할했다.[48] 이는 신라 진흥왕이 황룡사에 승관을 배치했던 것을 계승한 것이다.[48]

고려 전성기에 불교는 5교 2종으로 통합되었으나,[44] 말기에는 다시 여러 종파로 분화되었다. 왕들은 불교, 유교뿐만 아니라 무속에 대해서도 감독권을 행사하거나 금압하였다. 고려 시대의 중요한 종교사적 사건으로는 최초의 목판본 대장경인 ''팔만대장경'' 제작을 들 수 있다. 두 차례에 걸쳐 제작된 ''팔만대장경''은 해인사에 보존되어 있으며, 동아시아에서 ''대장경''의 표준으로 사용될 정도로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2. 4. 조선 시대

조선은 초기에 종교로는 불교, 정치로는 유교를 따르는 태도를 취했으나, 점차 억불(抑佛) 정책을 펼쳤다.[49] 불교는 도첩제(度牒制)를 통해 통제되었다. 조선 전기 휴정(休靜)은 유교, 불교, 도교의 삼교(三敎)가 근본적인 수준에서 서로 일치한다는 삼교합일론(三敎合一論)을 주장했다.[49] 매월당 김시습과 같이 반유반불(半儒半佛)의 삶을 산 유학자도 있었다.[49]

고구려 때부터 전래된 도교는 개성에 대청관(大淸觀)을 두고, 한성 천도 후에는 소격전(昭格殿)을 두어 삼청(三淸)·성진(星辰)의 초제(醮祭)를 맡았다. 민간에는 관왕(關王) 숭배가 전래되었다. 점복(占卜)·비기(秘記) 정감록이 민간에 퍼져 은둔(隱遁)·말세·역성혁명(易姓革命)·운명 등의 사상이 민간에 깊이 스며들었다.[49]

천주교(天主敎)는 18세기 후반부터 서학(西學)의 일환으로 전래되었으나,[50] 유교 사상과 충돌하여 금지되었다. 천주교는 소금과 물로 죄를 씻으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다고 하고, 예수를 만물과 민생의 대부모라고 하며, 부모를 육신의 부모라 칭하고 조상의 혼을 악마로 여기며 제사를 배척하는 등 유교의 가르침에 어긋났다. 조정은 이러한 천주교를 박해하였으며, 황사영 백서 사건은 1801년 신유박해를 악화시켰다.[22]

1896년, 조정은 서구 종교에 대해 자유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여 개신교의 여러 교파가 쉽게 들어왔다. 동학은 서학에 반대하며 민족 종교로 등장하였고, 2년 만에 교단 조직을 강화하고 포교 시스템을 구축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동학은 이후 천도교로 발전하였다.

2. 5. 일제 강점기

일제의 조선총독부는 종교 단체를 통제하기 위해 다양한 법령을 적용했다. 불교는 사찰령과 본말사법, 유림은 조선총독부령, 기독교는 재단법인법으로 통제했다. 한국민족의 고유 종교단체는 포교규칙에 의해 유사종교단체로 취급되었다. 신도(일본의 다신교)·불교·기독교를 종교로 인정하고 유림의 성균관을 경학원(經學院)으로 간주하여 사회교육기관으로 취급했다. 문묘(文廟)는 관폐사(官幣社)의 일종이 되고 향교(鄕校)는 지방공공단체 또는 지방교육기관으로 간주했다.

모든 종교 단체는 위축되었으나 기독교만은 예외였다. 총독부는 모든 국민에게 신사참배(神士參拜)를 강요하였는데, 이는 개신교 일부 인사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신사참배 문제는 일본 기후현(岐阜縣) 오가키시의 미노미션에 속한 한국교회의 목사 가족에 의해 야기되었으며, 이때 신사참배와 함께 덴노헤이카(天皇陛下)와 예수의 후미에(踏繪) 사건이 발생했다.

2. 6. 현대

2. 6. 1. 대한민국

대한민국종교본문에서 보듯,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며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주요 종교이며, 유교는 여전히 사회 윤리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41] 천도교, 통일교를 포함한 다양한 "신종교"가 19세기 이후 등장했으며, 소수의 이슬람교와 바하이교 신자도 존재한다. 이슬람교 신자 다수는 남아시아 출신 이민자이다.[41]

1950년대부터 2015년까지 종교 인구 변화를 살펴보면, 개신교는 1950-1962년 2.8%에서 2015년 19.7%로, 천주교는 2.2%에서 7.9%로 증가한 반면, 불교는 2.6%에서 15.5%로 증가했다가 감소하였다.[5][6][7][8] 무종교 인구는 1985년 57.3%에서 2015년 56.9%로 감소하였다.[5][8]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지역별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

행정 구역불교개신교가톨릭무교 또는 기타
서울10.8%24.2%10.7%53.6%
부산28.5%12.1%5.4%53.1%
대구23.8%12.0%7.7%55.8%
인천8.8%23.1%9.5%57.9%
광주9.5%20.0%8.6%61.1%
대전14.0%21.8%7.4%56.2%
울산29.8%10.9%4.2%54.5%
경기10.7%23.0%9.0%56.7%
강원도16.4%17.5%6.7%58.7%
충청북도16.4%15.8%7.4%60.0%
충청남도13.8%20.7%6.2%58.7%
전라북도8.6%26.9%7.6%55.0%
전라남도10.9%23.2%5.6%59.3%
경상북도25.3%13.3%5.2%55.4%
경상남도29.4%10.5%4.2%55.1%
제주23.4%10.0%7.9%58.0%
대한민국 전국15.5%19.7%7.9%56.1%



2005년 기준으로 불교 종파별 사찰 수는 조계종이 907개 중 735개(약 81%)로 가장 많고, 태고종이 102개, 법화종이 22개, 선학원이 16개, 원효종이 5개 순이다.[9]

종합하면,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지만, 무종교 인구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전통 종교 외에 신흥 종교의 등장과 성장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2. 6.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종교 문서를 참고하라.

광복 당시 북한지역에는 천도교 신자 약 150만 명, 불교 신자 약 37만 5천 명, 개신교 신자 약 20만 명, 천주교 신자 약 5만 7천 명 등 200만여 명(당시 북한지역 인구의 22.2%)의 종교인이 존재했다.[51][23] 그러나 북한 정권의 종교 탄압 정책으로 종교 인구는 크게 줄었다. 2001년 북한 정권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천도교 1만 5천 명, 불교 1만 명, 개신교 1만 2천 명, 천주교 800명 등 총 3만 7800명의 종교인이 있다고 보고했다.[52][24] 각 종교 시설은 천도교 교당 800곳, 사찰 60곳, 교회 2곳, 성당 1곳으로 알려졌다.[53][25]

그러나 탈북자들은 북한에서는 관제 종교 활동 외에는 종교 활동이 불가능하며, 종교 활동을 하면 처벌받는다고 증언한다.[24] 많은 종교인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범수용소에서 인권 탄압을 받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이 있다.

3. 주요 종교

3. 1. 불교



불교는 삼국 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신라고려 왕조의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이 두 왕조의 주요 종교가 되었다. 불교는 대한민국의 영남 지역, 강원도, 그리고 제주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계종은 한국 불교의 주요 종파이며, 불국사, 해인사, 화엄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불교 사찰이 조계종에 속해 있다. 한국의 다른 전통 불교 종파로는 태고종과 천태종이 있다.

원불교(원불교/원불교한국어)는 대한민국의 현대 불교 종파이다. 원불교는 불교 경전과 의식을 단순화했다. 현명한 자, 어리석은 자, 부자, 가난한 자, 귀족, 천민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불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9]

불교는 신라(기원전 57년부터 935년)와 고려 왕조(918년부터 1392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되어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3. 1. 1. 조계종

조계종은 한국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찰을 보유하고 있다.

3. 1. 2. 태고종

태고종은 대한불교조계종 다음으로 큰 대한민국불교 종파이다.

3. 1. 3. 천태종

(내용 없음)

3. 1. 4. 원불교

원불교(원불교/원불교한국어)는 대한민국의 현대 불교 종파이다. 원불교는 불교 경전과 의식을 단순화했다. 현명한 자, 어리석은 자, 부자, 가난한 자, 귀족, 천민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불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29]

3. 2. 기독교



대한민국 기독교는 주로 개신교와 천주교이며,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는 970만 명, 천주교 신자는 390만 명이었다. 서방 교회 외에도 대한민국에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유입된 정교회 신자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신자도 있다.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1794년, 한국 외교관 이승훈이 한국으로 돌아온 지 10년 만에 한국에 도착했다. 개신교 선교사들은 1880년 조선에 도착했으며, 그들과 가톨릭 선교사들은 많은 한국인을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감리교와 장로교는 한국에 학교, 병원, 고아원을 설립하여 한국의 근대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 기독교인들은 독립 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개신교의 급격한 성장에 기여한 요인으로는 부패한 한국 불교, 지식 엘리트의 지원, 한국 교회 신도들의 자립과 자치 장려, 한국 민족주의의 진흥 등이 있다. 남북 분단 이전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한반도 북부에 거주했으며, 유교의 영향력은 한반도 남부보다 강하지 않았다. 1948년 이전에는 평양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한반도 북부에 공산 정권이 수립된 후, 100만 명 이상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북한의 기독교 박해를 피해 한반도 남쪽으로 피난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독교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신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1990년대에도 성장이 지속되었지만 속도는 느려졌고, 21세기 초부터는 신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

기독교는 서울, 인천, 경기도, 호남을 포함한 지역에서 중요한 종교이다. 한국 기독교에는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천주교의 4가지 주요 교파가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국에서 가장 큰 오순절교회이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중국 가톨릭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조상 숭배의 전통 의례를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개신교 신자들은 조상 숭배 의례를 완전히 포기했다.

3. 2. 1.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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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2. 천주교

천주교는 18세기 후반부터 조선에 들어왔으나, 조상 제사를 부정하고 유교적 가치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50]

  • 소금과 물로 죄를 씻으면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다는 믿음
  • 예수를 하느님으로 숭배
  • 가톨릭교는 부모를 육신의 부모로만 칭하고, 조상의 혼을 악마라고 부르며, 조상 제사를 악마의 행위로 간주하여 효를 무시
  • 남녀가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하는 것을 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허위이며, 그보다 젊은 사람이 남녀를 섞어 공공의 도덕을 어지럽힌다


이러한 교리는 유교 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하였고, 조선 정부는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비밀리에 잠입한 포교자들에 의해 신자 수가 증가하면서 기해, 신유박해, 병오, 병인박해 등 여러 차례 박해가 일어났다.[22] 이러한 박해는 조정의 종교 정책뿐만 아니라, 황사영 백서 사건과 같이 천주교 신자들이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며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22]

현재 한국 천주교는 조상 제사를 허용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3. 2. 3. 정교회

(내용 없음)

3. 3. 유교

삼국 시대 이전 한반도에 유교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31] 3, 4세기에도 유교적 가르침이 궁중 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다는 역사적 증거가 있으며, 이는 유교 사상이 한반도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32] 유교 사상은 14세기부터 정부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16세기에 한반도에서 지배적인 사상과 철학이 되었다.

한국에서 유교의 부상은 불교의 급격한 쇠퇴로 이어졌다. 15세기 동안 태종은 사찰과 절의 수를 줄이는 것을 포함한 반불교 정책을 시행했다.[33] 16세기에 유교가 지배적인 철학이 되면서 불교는 무지하고 시골 사람들의 종교가 되었다. 한국 유교의 전성기는 조선 시대였다.[34]

현대 한국에서는 유교 사당과 교육 기관이 여전히 존재하며 현대적인 관행을 보여주고 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교는 학교 교육 과정에서 사라졌다.[33] 1990년대 후반에 유교가 부활했고, 장례 의식(기독교와 유교의 혼합)과 효도 개념과 같은 일부 관행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유교를 믿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한국 사회 전반에서 유교의 영향이 어느 정도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찰 중 일부는 연장자에 대한 존경, 교육에 대한 강한 헌신, 죽은 자를 위한 의식과 예식 등이 있다.[34]

불교신라(기원전 57년부터 935년)와 고려 왕조(918년부터 1392년)에서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되어 문화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유교 역시 중국에서 한반도로 삼국 시대 초기에 전래되었지만, 조선의 성립 이전까지는 낮은 대우를 받았다. 이후에는 국가 이념이 되었다.

3. 4. 무속

망령을 달래는 의식을 행하는 무당


무속 신앙 또는 민간 신앙 ()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전통으로, 고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6][27] 그 기원이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무속 신앙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지만, 다소 이단적이고 미신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무당은 일반적으로 '무당()'이라고 불리는 여성이다.

한국 무속 신앙을 둘러싼 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은 주로 무당을 찾아 조언을 얻고, 날짜와 징조의 중요성을 해석하고, 부부의 궁합을 확인하거나, 부적을 받아 악령을 물리친다.[28]

무당은 '굿'(신이나 조상에게 드리는 기도, 또는 정화 의식으로서의 의식적인 춤과 노래)을 행할 수 있다.[28]

3. 5. 기타 종교

대한민국에는 이슬람교 신자가 약 4만 명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남아시아, 서아시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이고, 한국인 무슬림은 3만 명 미만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모스크는 서울 중앙 성원이며, 다른 도시에도 작은 규모의 모스크가 있다.

유대교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주한 미군과 함께 한국에 들어왔으며,[30] 많은 유대계 미국인 군인들이 한반도에 주둔했다. 유대계 미국인 군인들은 한국에 상륙했을 때, 특히 아이들이 얼마나 열악하게 대우받는지 보고, 그들을 돕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형성했다.[30] 대한민국 내 유대인 공동체는 매우 작으며, 서울 지역에만 존재한다. 유대교를 믿는 한국인은 극소수이다. ()

대한민국의 힌두교 신자는 주로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인도네팔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요가와 베단타와 같은 힌두교 전통은 한국인들의 인도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서울 지역에는 두 개의 힌두교 사원이 있다.

4. 종교 분포 (대한민국, 2015년 기준)

2015년 대한민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56.9%는 무종교, 19.7%는 개신교, 15.5%는 불교, 7.9%는 천주교 신자이다.[8]

종교1950–1962[5]19851995[6]2005[7]2015[8]
%%%%%
기독교 (전체)-6.5%-20.7%11,390,00026.0%13,461,00029.2%13,566,00027.6%
(개신교)-2.8%-16.1%8,505,00019.4%8,446,00018.3%9,676,00019.7%
(가톨릭)-2.2%-4.6%2,885,0006.6%5,015,00010.9%3,890,0007.9%
불교-2.6%-19.9%10,154,00023.2%10,588,00022.8%7,619,00015.5%
기타-92.4%-2.1%-1.2%-1%--
무종교---57.3%-49.6%-47.2%-56.9%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역별 종교 분포는 다음과 같다.[8]

한국의 지역별 종교 신념 비율 (2015년)
행정 구역불교개신교가톨릭무교 또는 기타
서울10.8%24.2%10.7%53.6%
부산28.5%12.1%5.4%53.1%
대구23.8%12.0%7.7%55.8%
인천8.8%23.1%9.5%57.9%
광주9.5%20.0%8.6%61.1%
대전14.0%21.8%7.4%56.2%
울산29.8%10.9%4.2%54.5%
경기10.7%23.0%9.0%56.7%
강원16.4%17.5%6.7%58.7%
충북16.4%15.8%7.4%60.0%
충남13.8%20.7%6.2%58.7%
전북8.6%26.9%7.6%55.0%
전남10.9%23.2%5.6%59.3%
경북25.3%13.3%5.2%55.4%
경남29.4%10.5%4.2%55.1%
제주23.4%10.0%7.9%58.0%
대한민국 전국15.5%19.7%7.9%56.1%


참조

[1] 서적 Making Sense of the Secular: Critical Perspectives from Europe to Asia Routledge
[2] 서적 Korean Spirituality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3] 웹사이트 성, 연령 및 종교별 인구 - 시군구 http://kosis.kr/stat[...] 2018-03-17
[4] 서적 Annual Report of the United State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http://www.uscirf.go[...] United State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5] 웹사이트 https://aatfweb.org/[...] 2014-10-31
[6] 웹사이트 http://image.kmib.co[...] 2022-10-09
[7] 웹사이트 http://image.kmib.co[...] 2022-10-09
[8] 웹사이트 http://image.kmib.co[...] 2022-10-09
[9] 서적 http://www.andong.go[...] Andong National: Modern and Contemporary history 2022-10-09
[10] 서적 Tracing Back the Radiance: Chinul's Korean Way of Zen University of Hawaii Press
[11] 서적 BRIEF HISTORY OF KOREA —A Bird's-EyeView— https://www.koreasoc[...] The Korea Society 2023-06-07
[12] 간행물 Buddhism and Polity in Early Sixth-Century Paekche. https://www.jstor.or[...] 2023-07-14
[13] 간행물 An Early Gilt-bronze Seated Buddha from Seoul
[14] 문서 Malananta bring Buddhism to Baekje
[15] 뉴스 Echoes of Ancient India in the birthplace of Baekje Buddhism https://www.deccanhe[...] 2022-04-11
[16] 문서 Kam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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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문서 Inoue
[19] 문서 B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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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웹사이트 Nara to Norwich https://naratonorwic[...] 2023-08-30
[22] 웹사이트 Veritable Records of Sunjo, Accession Year, Month 11, Day 5, Entry 2 https://sillok.histo[...]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2022-10-25
[23] 서적
[24] 뉴스 https://www.segye.co[...] Segye Ilbo 2009-01-21
[25] 웹사이트 http://hsmin.com.ne.[...] 통계로 본 불교 2001-04-20
[26] 웹사이트 https://terms.naver.[...] 2021-03-25
[27] 서적 Sources of Korean Tradition Columbia University Press
[28] 웹사이트 In 21st-century Korea, shamanism is not only thriving — but evolving https://fellowsblog.[...] 2021-03-26
[29] 간행물 Won Buddhism as a Korean New Religion https://brill.com/vi[...] 2022-10-08
[30] 웹사이트 Riverside City College College Remote Database Access https://search.ebsco[...] 2024-09-30
[31] 간행물 CONFUCIANISM AND THE CONTEMPORARY KOREAN SOCIETY 2015
[32] 간행물 An Outline History of Korean Confucianism: Part I: The Early Period and Yi Factionalism http://dx.doi.org/10[...] 1958-11
[33] 간행물 The Impact of Confucianism in South Korea and Japan 2013
[34] 간행물 The Presence of Confucianism in Korea and its General Influence on Law and Politics https://archivos.jur[...] 2021
[35] 웹사이트 About Korea - Religion http://www.korea.net[...]
[36] 웹사이트 South Koreans http://www.everycult[...] Every Culture 2012-02-21
[37] 웹사이트 Culture of SOUTH KOREA http://www.everycult[...] Every Culture 2012-02-21
[38] 웹사이트 Culture of NORTH KOREA http://www.everycult[...] Every Culture 2012-02-21
[39] 웹사이트 CIA The World Factbook -- North Korea https://www.cia.gov/[...]
[40] 논문 朝鮮神話に見る女神の原像 https://doi.org/10.1[...] 九州大学 2016
[41] 웹사이트 인구,가구/시도별 종교인구/시도별 종교인구 (2005년 인구총조사) http://kosis.kr/nsik[...] 2006-08-23
[42] 문서 태조의 훈요십조 중 제10조
[43] 문서 훈요십조 중 제5조
[44] 문서 훈요십조 중 제6조
[45] 문서 문과시험(文官試驗)
[46] 문서 광종(光宗, 재위 950년∼975년) 때
[47] 문서 재위 983년∼997년
[48] 문서 재위 1035년∼1046년
[49] 문서 김시습(金時習)
[50] 문서 당시에는 서교(西敎)라고도 했음.
[51] 문서 북한 《조선중앙연감》(1950): 자유북한방송, 《北,‘종교의 불모지에 종교인협의회라니》에서 재인용
[52] 뉴스 北 종교실상 왜곡된 통계들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08-08-27
[53] 웹인용 북한의 종교별 신도 수 https://web.archive.[...] 201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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