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문트 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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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드문트 후설은 1859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로스니츠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자이다. 그는 라이프치히, 베를린, 빈 대학교에서 자연과학, 수학, 철학을 공부하고, 1901년 《논리연구》를 출간하여 현상학을 개척했다. 1933년 나치의 반유대주의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었으며, 1938년 사망했다. 후설은 심리주의 비판과 의식의 지향성 개념을 통해 현상학을 발전시켰으며,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등 실존주의 철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서로는 《산술철학》, 《논리연구》, 《이데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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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문트 후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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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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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드문트 구스타프 알브레히트 후설 |
원어 이름 | Edmund Gustav Albrecht Husserl |
출생일 | 1859년 4월 8일 |
출생지 | 프로스니츠, 모라비아 변경백국, 오스트리아 제국 |
사망일 | 1938년 4월 27일 |
사망지 | 프라이부르크, 나치 독일 |
학력 | |
교육 | 라이프치히 대학교 베를린 대학교 빈 대학교 (박사, 1883) 할레 대학교 (교수 자격 취득 논문, 1887) |
경력 | |
소속 기관 | 할레 대학교 (1887–1901) 괴팅겐 대학교 (1901–1916)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1916–1928) |
철학적 배경 | |
학파 | 서양 철학 20세기 철학 현상학 초월적 구성 현상학 (1910년대) 유전적 현상학 (1920년대–30년대) 초월적 관념론 논리적 객관주의 오스트리아 실재론 (초기) 근본주의 개념주의 간접 실재론 대응설 |
주요 관심사 | 인식론, 존재론, 수학 철학, 상호주관성 |
주요 사상 | 현상학 현상학적 환원 대 본질적 환원 노에시스 대 노에마 형식 존재론 모멘트 이론 휠레적 자료 생활세계 반성 이전의 자기의식 초월적 주관주의 자연적 태도 비판 ("물리주의적 객관주의") 과거 파지와 미래 예지 '후각인' '원초적 신념' 현상학적 기술 부분-전체 관계 |
영향 | 프란츠 브렌타노, 카를 슈툼프, 카를 바이어슈트라스, 베르나르트 볼차노, 베노 케리, 르네 데카르트, 임마누엘 칸트, 데이비드 흄, 헤르만 로체, 빌헬름 빈델반트, 하인리히 리케르트,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 플라톤 |
영향을 준 인물 | 막스 셸러 마르틴 하이데거 아돌프 라인나흐 에디트 슈타인 에마뉘엘 레비나스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알프레트 슈츠 로만 잉가르덴 폴 리쾨르 쿠르트 괴델 요한 바오로 2세 루돌프 카르나프 자크 데리다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오이겐 핑크 한스 블루멘베르크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루트비히 란트그레베 마빈 파버 얀 파토치카 댈러스 윌러드 숀 갤러거 단 자하비 나데르 엘 비즈리 한스 쾨흘러 헤르만 바일 가브리엘 마르셀 윌프리드 셀러스 힐러리 퍼트넘 길버트 라일 |
학위 논문 | |
박사 학위 논문 제목 | 변분법에 대한 기여 |
박사 학위 논문 원제 | Beiträge zur Variationsrechnung |
박사 학위 논문 URL | 변분법에 대한 기여 |
박사 학위 논문 년도 | 1883 |
교수 자격 취득 논문 제목 | 수의 개념에 관하여 |
교수 자격 취득 논문 원제 | Über den Begriff der Zahl |
교수 자격 취득 논문 URL | 수의 개념에 관하여 |
교수 자격 취득 논문 년도 | 1887 |
박사 지도교수 | 레오 쾨니히스베르거 |
교수 자격 취득 지도교수 | 카를 슈툼프 |
학문적 조언자 | 프란츠 브렌타노 |
박사 제자 | 에디트 슈타인 로만 잉가르덴 |
2. 생애
에드문트 후설은 1859년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프로스니츠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기에는 라이프치히, 베를린 등지에서 자연과학과 수학을 공부했으나, 빈에서 프란츠 브렌타노를 만나면서 철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883년 수학 논문 '''변분법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887년에는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 논문으로 할레 대학교에서 하빌리타치온(교수 자격)을 취득하며 본격적인 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같은 해 말비네 쉬타인쉬나이더와 결혼했다.
1901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논리 연구》를 출간하며 현상학이라는 새로운 철학 사조를 열었다. 이후 괴팅겐 대학교와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현상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1933년 나치 정권이 집권하면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도서관 출입이 금지되는 등 심한 박해를 받았다. 그의 제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가 이러한 반유대주의 정책에 동조했다는 논란이 있으며[124], 실제로 하이데거는 나치 치하였던 1941년 자신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스승 후설에게 바친 헌정사를 삭제하기도 했다.
후설은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연구 활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1938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미발표 원고(약 4만여 쪽)는 제자들의 노력으로 나치의 탄압을 피해 벨기에 루뱅으로 안전하게 옮겨졌으며, 1939년부터 후설 전집으로 출간되기 시작했다.
2. 1. 유년기와 청년기
후설은 1859년 합스부르크 왕조 치하 오스트리아 제국의 메렌(Mähren, 현재 체코 동부)에 속한 작은 도시 프로스니츠(Proßnitz)의 유대인 가정에서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18][19] 그의 아버지는 모자 장수였다. 후설은 프로스체요프의 세속 초등학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뒤, 빈의 레알김나지움(Realgymnasium)과 올뮤츠(Olmütz)의 슈타츠김나지움(Staatsgymnasium)을 다녔다.[18][19] 1876년 올로모우츠의 김나지움을 졸업했다.1876년부터 1878년까지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수학, 물리학, 천문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의 철학 강의에서 영감을 받았다.[18] 이후 1878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현재 훔볼트 베를린 대학교)로 옮겨 1881년까지 레오폴트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와 저명한 카를 바이어슈트라스(Karl Weierstrass) 밑에서 수학 공부를 계속했다.[18] 베를린에서는 프란츠 브렌타노의 제자였고 훗날 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이 되는 토마시 가리구에 마사리크(Tomáš Garrigue Masaryk)를 멘토로 삼았으며, 프리드리히 파울젠(Friedrich Paulsen)의 철학 강의도 수강했다.[18]
1881년, 후설은 바이어슈트라스의 제자였던 레오 쾨니히스베르거(Leo Königsberger)의 지도를 받아 수학 연구를 마치기 위해 빈 대학교로 거처를 옮겼다.[18] 1883년 빈에서 '''변분법에 대한 기여'''(Beiträge zur Theorie der Variationsrechnungde)라는 논문으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8]
박사 학위 취득 후 베를린으로 돌아와 잠시 바이어슈트라스의 조교로 일했으나, 스승이 병환으로 쓰러지자 빈으로 돌아왔다.[18] 1년간의 병역을 마친 후, 1884년부터 빈 대학교에서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의 철학 및 철학적 심리학 강의를 2년간 수강했다. 브렌타노는 후설에게 베르나르트 볼차노(Bernard Bolzano), 헤르만 로체(Hermann Lotze), 존 스튜어트 밀(J. Stuart Mill), 데이비드 흄(David Hume) 등의 저술을 소개했으며, 후설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받아 철학에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브렌타노는 특히 의도성(intentionality) 개념과 관련하여 후설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받는다.[21]
20대에 신약성서를 접한 후설은 1886년 루터교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 아돌프는 1884년에 사망했다.[20] 종교적 실천이 그의 학문 생활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종교적 현상 자체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된다.[20]
1886년, 후설은 브렌타노의 다른 제자인 칼 슈툼프(Carl Stumpf)를 따라 할레 대학교로 가서 교수 자격(하빌리타치온)을 얻고자 했다. 슈툼프의 지도 아래 1887년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Über den Begriff der Zahl. Psychologische Analysede)이라는 논문을 완성하여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22] 이 논문은 그의 첫 주요 저서인 《산술의 철학》(Philosophie der Arithmetik, 1891)의 기초가 되었다.[22] 같은 해 할레 대학교에서 프리바트도첸트로 처음 학문적 경력을 시작했으며, 말비네 슈타인슈나이더(Malvine Steinschneider)와 결혼하여 50년 이상 해로했다.[19] 부부는 딸 엘리자베스(1892년생), 아들 게르하르트(1893년생), 아들 볼프강(1894년생)을 두었다. 볼프강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전사했다.[19] 게르하르트는 법철학자가 되어 미국과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했다.[23]
2. 2. 할레 대학교 시대 (1886-1901)
1886년, 프란츠 브렌타노의 추천으로 심리학자 카를 슈툼프가 있는 할레 대학교로 갔다.[124] 1887년,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적 분석(Über den Begriff der Zahl. Psychologische Analysede) 논문으로 교수 자격(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이 논문은 후에 출판될 『산술의 철학』의 기초가 되었다. 같은 해 할레 대학교에서 사강사(Privatdozent)로 강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말비네 쉬타인쉬나이더와 결혼했다.1891년에는 수학과 철학에서의 이전 연구를 바탕으로 『산술철학. 심리학적 및 논리학적 연구』(Philosophie der Arithmetik. Psychologische und logische Untersuchungende) 제1권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수학의 기초로서 심리학적 맥락을 제시하려 했으나, 고틀로프 프레게와 파울 나토르프 등으로부터 심리학주의(psychologism)라는 비판을 받았다.[24][25] 후설 자신도 이 비판을 수용하여 심리학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기로 했고, 이로 인해 제2권의 출판은 중단되었다.

1900년에는 『논리연구』(Logische Untersuchungende) 제1권 "순수 논리학 서설"을 출판하여 『산술의 철학』과는 달리 심리학주의를 철저히 비판했다.[26][27] 1901년에는 『논리연구』 제2권 "현상학과 인식론을 위한 여러 연구"를 출판했다. 이 저작들은 빌헬름 딜타이 등에게 호평을 받았고, 후설은 현상학의 창시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 해에 후설은 가족과 함께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특별 교수(extraordinarius professor)로 임용되면서 할레 대학교 시대를 마감했다.
2. 3. 괴팅겐 대학교 시대 (1901-1915)
1901년 후설은 가족과 함께 괴팅겐 대학교로 이사하여 특별 교수(extraordinarius professor|엑스트라오르디나리우스 프로페소르de)로 강의를 시작했다.[26] 이때 뮌헨 현상학파 출신 학자들이 합류하면서 새롭게 '괴팅겐 현상학파'가 형성되었다. 괴팅겐으로 오기 직전, 그는 주요 저작인 『논리 연구』(Logische Untersuchungen|로기셰 운터주훙겐de, 1900-1901)를 할레에서 출판했다. 이 책의 제1권 "순수 논리학 서설"에서는 심리주의를 상세히 비판하며 순수 논리학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26][27] 『논리 연구』는 학계의 큰 호응을 얻었으며, 빌헬름 딜타이가 자신의 세미나에서 다루기도 했다. 후설은 1905년 여름, 제자들과 함께 알프스 산맥 인스브루크 근교 제펠트에서 연구회를 열었으며, 같은 해 베를린으로 가서 딜타이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이 시기 제펠트에서 작성된 원고는 '제펠트 초고'로 불리며, 훗날 『후설 전집』(Husserliana|후설리아나de) 제10권에 수록되었다.
1906년 후설은 괴팅겐 대학교 정교수(Ordinarius professor|오르디나리우스 프로페소르de)로 승진했다. 1907년 여름 학기에는 "현상학의 이념"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는데, 이 강의에서 현상학적 환원의 개념이 명확하게 제시되었다. 이 강의 내용은 사후 『후설 전집』 제2권으로 출간되었다. 같은 해 여름, 그는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자신의 스승이었던 프란츠 브렌타노와 수학자 콘스탄틴 카라테오도리를 만났다. 이 시기부터 임마누엘 칸트와 르네 데카르트의 사상 또한 그의 철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904년 겨울 학기부터 후설은 '내적 시간 의식의 현상학'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이 강의 내용은 수십 년 후 그의 제자였던 에디트 슈타인과 마르틴 하이데거에 의해 편집되어 출판되었다.[28] 1910년에는 철학 잡지 『로고스』(Logos|로고스de)의 공동 편집자가 되었고, 1911년에는 이 잡지 창간호에 중요한 논문인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발표했다.
1912년, 후설과 그의 학파는 현상학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한 전문 학술지 『철학 및 현상학 연구 연보』(Jahrbuch für Philosophie und Phänomenologische Forschung|야르부흐 퓌어 필로조피 운트 페노메놀로기셰 포르슝de, 이하 『연보』)를 창간하여 1913년부터 발간하기 시작했다. 『연보』는 1930년까지 총 11권이 간행되며 현상학 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후설은 1913년 『연보』 창간호(1권 1호)에 자신의 핵심 저작 중 하나인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이념들』 제1권(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Erstes Buch|이데엔 추 아이너 라이넨 페노메놀로기 운트 페노메놀로기셴 필로조피, 에르스테스 부흐de, 흔히 『이데엔』(Ideen|이데엔de) I으로 불림)을 발표하며 현상학의 확립을 알렸다.[29]
『이데엔』을 발표하기 전, 후설의 사상은 "각 주체에게 '주어지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이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순수 의식으로 '주어지는'(Vergegenwärtigung|페어게겐베르티궁de) 것"을 탐구하는 단계에 있었다.[30] 『이데엔』은 여기서 더 나아가 현상학의 '초월론적 전환'을 보여주었으며, 현상학적 환원과 본질 직관을 위한 '형상적 환원'(eidetische Reduktion|아이데티셰 레둑치온de) 개념을 명확히 제시했다.[33][34] 폴 리쾨르는 『이데엔』이 후설 사상의 발전을 "심리적 코기토에서 초월적 코기토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현상학이 발전하면서 후설의 사상은 '초월론적 주관성'(transcendental subjectivity|트랜센덴털 서브젝티비티영어)으로 나아갔다.[32] 그러나 『이데엔』에서 제시된 현상학의 초월론적 해석은 훗날 장폴 사르트르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31] 괴팅겐 시절 동안 이반 일린과 카를 야스퍼스 같은 학자들이 후설을 방문하여 교류했다.
1914년 10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후설의 두 아들은 서부 전선에 파병되었다. 이듬해인 1915년에는 아들 볼프강 후설(Wolfgang Husserl)이 전투 중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볼프강은 이후 1916년 3월 베르됭 전투에서 전사했다.)
2. 4.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시대 (1916-1928)
1916년, 후설은 하인리히 리켈트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정교수로 부임하여[35] 연구를 이어갔다. 이 시기 그는 개인적인 비극을 겪기도 했는데, 1916년 3월 아들 볼프강 후설(Wolfgang Husserl)이 제1차 세계 대전 중 베르됭 전투에서 전사했고,[19] 이듬해에는 다른 아들 게르하르트 후설(Gerhart Husserl)이 부상을 입었으며 어머니 줄리아(Julia)가 사망했다. 또한 1917년 11월에는 뛰어난 제자였던 아돌프 라이나흐(Adolf Reinach)도 전사했다.[19]프라이부르크 부임 초기 몇 년간(1916-1920) 에디트 슈타인(Edith Stein)이 그의 개인 비서로 일했으며, 1920년부터 1923년까지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그 뒤를 이었다. 1918년부터는 수학자 헤르만 바일(Hermann Weyl)과 서신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후설은 1922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현상학적 방법론에 대해 네 차례 강의했으며, 1923년에는 베를린 대학교(University of Berlin)의 교수직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이 시기 후설은 『이데엔』 II, III의 초고를 비롯하여 『제1철학』, 『현상학적 심리학』, 『수동적 종합』 등 여러 중요한 저작들을 집필했으나, 이들은 모두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이데엔』 II, III 초고는 I의 출판 당시 이미 집필을 마쳤음에도 이후 계속 수정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후사리아나』 제4, 5권에 수록되어 있다).
1927년, 후설은 당시 그의 후계자로 여겨지던 하이데거가 출간한 『존재와 시간』을 읽고 그의 사상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으로부터 새로운 "현상학" 항목 집필을 의뢰받아 하이데거와의 공동 작업을 시도했으나, 의견 차이로 인해 결국 혼자서 원고를 완성했다 (이 원고는 "브리태니커 초고"라고 불린다).
1928년, 후설과 하이데거의 관계는 이미 틀어졌지만, 전년에 의뢰했던 작업의 결과로 1905년 동계 학기 강의 『내적 시간 의식의 현상학』이 하이데거의 편집을 거쳐 『철학 및 현상학 연구 연보』 제9권에 발표되었다. 후설은 같은 해 7월 25일 마지막 수업을 끝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정년 퇴직했다. 비록 하이데거와의 관계는 소원해졌지만, 후설은 자신의 후임으로 하이데거를 강력히 추천했고, 하이데거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퇴임하던 해, 후설은 독일에 유학 온 다나베 나가루를 통해 니시다 기타로의 사상을 접하고 수학자 에른스트 체르멜로와 함께 그 내용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123] 1929년 4월 8일, 그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기념논문집(Festschrift)이 증정되었다.
2. 5. 퇴임 후, 나치의 대두
후설은 1928년 7월 25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그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기념논문집이 1929년 4월 8일에 그에게 증정되었다.은퇴 후에도 후설은 활발한 학문 활동을 이어갔다. 1929년 파리 소르본의 데카르트 강당에서 "초월론적 현상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으며,[37] 이는 이후 『데카르트적 성찰』(파리 1931)로 확장되어 출판되었다.[38] 이 저작에서 후설은 『이데엔』(1913)에서 제시했던 현상학적 에포케를 경험을 '자기 영역'으로 환원하는 관점에서 재검토하고, 초월적 자아와 상호주관성의 문제를 다루었다.[39]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독일 내 반유대주의가 극심해졌다. 유대인이었던 후설은 새로운 나치 정권의 반유대인 법으로 인해 큰 고초를 겪었다. 1933년 4월 6일, 그는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도서관 및 다른 학술 도서관의 이용이 금지되었으나, 대중의 항의 이후 잠시 복권되기도 했다.[40] 그러나 같은 해 4월, 그의 제자였던 마르틴 하이데거가 대학 총장으로 선출되고 나치당에 입당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하이데거가 후설에 대한 반유대주의 정책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하이데거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124] 그럼에도 하이데거는 나치 치하였던 1941년, 자신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후설에게 바친 헌정사를 삭제했다. 후설은 1933년 7월, 독일 학술원에서 사임했다.[19] 이후 후설은 교수 자격 박탈, 대학 구내 출입 금지, 독일 내 저작 발매 금지, 국제 학회 참가 불허 등 극심한 활동 제한을 받았다. 이로 인해 그는 거의 매일 서재에서 지내며 하루 10시간 이상 집필에 몰두했고, 속기를 활용하여 방대한 양의 원고를 남겼다.[18]
이러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후설은 학문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35년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럽 인류의 위기 속에서의 철학"이라는 주제로, 같은 해 11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강연들을 바탕으로 그는 말년의 주요 저작인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1, 2부는 나치 정부의 감시를 피해 1936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의 잡지 『필로소피아』에 발표되었다 (제3부는 사후 간행).[41][42] 이 저작에서 후설은 유럽을 사로잡은 문화적 위기를 진단하고, 갈릴레오, 데카르트, 칸트 등 서구 철학과 과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과학의 객관적 논리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주관적 경험의 세계, 즉 "생활세계(Lebenswelt)" 개념을 제시했다.[43][44][45][46]
1937년 가을, 후설은 낙상 사고를 당한 후 흉막염을 앓게 되었다. 병세가 악화되어 1938년 4월 27일, 79세 생일을 갓 넘긴 후 프라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그의 연구 조교였던 에우겐 핑크(Eugen Fink)가 추도사를 낭독했으며,[47] 나치즘에 반대하는 의미로 역사학자 게르하르트 리터(Gerhard Ritter)가 프라이부르크 교수진 중 유일하게 장례식에 참석했다.
후설이 남긴 45,0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미발표 원고들은 벨기에의 프란치스코회 신부 헤르만 판 브레다(Herman Van Breda)의 노력으로 나치의 손길을 피해 벨기에 루뱅(Leuven)으로 안전하게 옮겨졌고, 현재 루뱅 가톨릭 대학교의 후설 문고(Husserl-Archives)에 보존되어 있다.
3. 후설의 현상학
후설의 사상은 "자연적" 이해 방식과 "현상학적" 이해 방식의 구분을 통해 혁신성을 드러낸다. 자연적 태도는 감각 지각을 통해 파악된 물질 세계를 객관적 현실로 받아들이는 일상적 관점이다.[64] 반면 현상학적 이해는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방법을 통해 모든 전제를 배제하고 순수 의식에 접근하려 시도한다.[65][66] 이 과정에서 의식은 대상을 단순히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여 "의도적 대상"으로 파악하게 된다.[67][68]
수리논리학 연구자였던 후설은 스승 프란츠 브렌타노의 영향을 받아 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고, 빈 대학교, 할레 대학교, 괴팅겐 대학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등에서 가르치며 독자적인 철학 방법론인 "현상학"을 창시했다. 그의 현상학은 마르틴 하이데거,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20세기 주요 철학 사조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학문 외에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파급되었다.
3. 1. 철학의 위기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통적으로 철학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지던 분야들이 과학의 탐구 대상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특히 심리학의 등장은 인지, 정신과 같이 철학의 핵심 주제들조차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과학의 도전에 직면하여, 철학계에서는 영국과 미국의 철학처럼 과학에 더 가까워지려는 경향이나, 리케르트와 같은 신칸트주의처럼 과학과 철학을 서로 다른 학문 영역으로 구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에드문트 후설은 이러한 흐름과는 다른 관점에서 과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는 실증주의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객관을 확보할 수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실증주의 비판 위에서 후설은 자신만의 철학인 현상학을 정립했다.[125]
후설은 1900년/1901년의 『논리 연구』(Logische Untersuchungen)부터 1939년에 출판된 『경험과 판단』(Erfahrung und Urteil)에 이르기까지 의미와 대상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자 했다. 그는 여러 종류의 명칭을 구분했는데, 예를 들어 어떤 명칭은 대상을 고유하게 식별하는 속성을 나타내면서 의미를 표현하고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69] "예나 전투의 승자"와 "워털루 전투의 패자"(둘 다 나폴레옹을 지칭)나, "정삼각형"과 "등변삼각형"이 그 예이다. 이 경우 두 명칭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와 같이 별도의 의미 없이 특정 대상을 직접 지칭하는 명칭도 있다. 마지막으로 "보편 명칭"은 여러 대상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며, 그 의미는 하나의 "개념"이고 그 개념에 해당하는 대상들의 집합(개념의 외연)을 가리킨다. 후설은 우리가 감각적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감각적 직관"이라고 불렀다.
또한 후설은 문장을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감각적으로 직접 대응하는 대상이 없는 "형식어"들을 구분했다. "하나의", "그", "보다 많은", "넘어", "아래", "두", "집단" 등이 형식어의 예시에 해당한다. 모든 문장은 이러한 형식어를 포함하여 후설이 "형식 범주"라고 부르는 것을 지칭하게 된다. 형식 범주에는 의미를 연결하는 '의미 범주'(접속사, 선택, 복수 형태 등)와 대상을 연결하는 '형식-존재론적 범주'(집합, 기수, 서수, 부분과 전체, 관계 등)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은 "범주적 직관"이라는 이해 능력을 통해 이러한 범주들을 파악한다.
감각적 직관을 통해 의식은 대상 자체가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상태, 즉 후설이 '사태'(Sachlage|de)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그것은 대상 자체가 제시되는 수동적인 구성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태에 범주적 직관을 통해 "사태]"(Sachverhalt은 명제 또는 판단을 그 의미로 가지며, 사태(Sachverhalt|de)를 참조 기반으로 하는 사태(Sachlage|de)를 가리킨다.[70]
3. 2. 심리주의 비판과 지향성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의 실험 심리학은 인간 정신을 과학적 실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로 인해 그는 "심리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분트의 실험 심리학이 큰 명성을 얻으면서, 심리학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는 심리학주의(Psychologismus) 사상이 널리 퍼졌다. 후설은 그의 초기 저작인 『산술철학. 심리학적 및 논리학적 연구』(1891)에서 수학의 기초를 심리학적 맥락에서 찾으려 했으나, 이는 고틀로프 프레게로부터 심리학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24][25] 후설 자신도 이 비판을 수용하여 심리학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된다.후설은 그의 주요 저작인 『논리연구』(Logische Untersuchungen, 1900-1901) 제1권 "순수 논리학 서설"에서 심리학주의를 철저히 비판했다.[26][27] 그는 경험주의에 입각한 과학적 방법론이 항상 반박될 수 있는 귀납적 사례들에 의존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심리학주의가 철학의 엄밀성을 해친다고 보았다. 후설은 심리학과 같은 경험 과학이 보편타당하고 필연적인 논리학의 법칙을 기초 지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철학을 과학보다 더 엄밀한 학문으로 정립하고자 했다.[126] 그는 논리학의 개념과 법칙들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타당한 이데아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의미는 심리적 과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참된 학문은 우연적 사실이 아닌 보편적 본질 인식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전제를 배제하고 직관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는 현상학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후설은 실증주의가 의식과 대상을 실체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을 철학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의 의식이 항상 어떤 대상(무엇)을 향하고 있으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대상 역시 의식을 통하지 않고서는 파악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식의 근본적인 특징을 후설은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의 스승인 프란츠 브렌타노가 제시한 개념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후설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이다. 브렌타노는 심리 현상이 물리 현상과 달리 항상 어떤 대상을 향하는 '지향성'을 가진다고 보았고, 이를 '의향적 내재'라고 불렀다. 후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의식의 '내용'과 지향되는 '대상'을 구분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별을 보면서 과학적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고 예술적 감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는데, 이는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지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후설은 실증주의가 객관성만을 절대시하여 가치 판단과 같은 인식의 주관적 측면을 간과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하며, "실증주의가 철학의 목을 잘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127]
3. 3. 현상학
후설은 인간의 의식에 나타나는 그대로의 "현상"을 기술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철학적 방법론은 현상학이라 불리게 되었다.[128] 그러나 후설에게 현상학은 단순히 방법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학문이자 제1철학, 모든 원리의 원리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지녔다. 그의 연구 좌우명인 "사물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de)는 어떠한 전제나 편견, 형이상학적 독단 없이 현상 그 자체를 파악하고 기술하려는 그의 목표를 잘 보여준다.후설 사상의 혁신성은 특히 "자연적" 이해 방식과 "현상학적" 이해 방식의 구분에서 잘 드러난다. 자연적 태도에서, 물질 세계와 관련된 감각적 지각이 우리가 아는 현실을 구성하며, 이러한 이해는 지각의 정확성과 소위 "실제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64] 반면, 현상학적 이해 방식은, 후설이 "현상학적 환원"(Phänomenologische Reduktionde)이라고 부른 과정을 통해 엄격하게 "전제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65] 이 환원은 단순한 조건부가 아니라 초월적인 것으로, 후설의 용어로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순수 의식을 목표로 한다.[66] 후설에게 어떤 사물에 대한 의식은, 그 의미를 "의도적 대상"(Intentionaler Gegenstandde)으로 식별하는 것을 포함한다.[67] 이 대상은 단순히 감각을 자극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정신에 의해 선택되고 파악된 것이다.[68]
후설은 『논리학 연구』에서 현상학을 기술 심리학으로 위치 짓고 모든 전제를 제거한 순수 기술로서 자아의 심리 작용을 기술하려고 했다. 그러나 의식을 자아의 심리 작용으로 해석하는 심리학적인 “하나의 해석”을 전제하고 있었기에, 심리학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었다. 그래서 후설은 그러한 해석을 포함하여 모든 해석을 배제하는 방법으로서 현상학적 환원이, 그리고 환원을 통해 얻어진 개개의 순수 현상의 본질 구조를 명료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본질 직관(Wesensschaude) 또는 본질 환원(Eidetische Reduktionde)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본질 환원을 통해 우리는 개념과 형식 범주 사이의 가능성, 불가능성, 필연성, 우연성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범주적 직관은 범주적 추상화(판단의 감각적 요소 제거 및 형식 범주 집중)와 본질 환원과 더불어 논리적, 수학적 지식의 기초를 이룬다.
후설은 당대의 논리학자들이 객관적인 순수 논리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주관적 의식 과정과의 관계에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식의 모든 주관적 활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상적 상관관계가 필요하고, 의식에 의해 구성된 객관적 논리(의미론적으로 구성됨)는 인식론적 상관관계(의식의 주관적 활동)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후설은 논리가 세 가지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계층은 이전 계층보다 의식과 심리학에서 더 멀리 떨어진다고 보았다.
- 첫 번째 계층: 의미의 형태론 (Morphologie der Bedeutungen)
- 판단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판단을 관련짓는 선험적인 방법에 관한 학문.
- "순수 문법" 또는 논리적 구문을 다루며, 후설은 이 규칙을 "무의미를 방지하는 법칙"이라 불렀다. 이는 현대 논리학의 형성 규칙과 유사하다.
- 이에 상응하는 수학의 계층으로 "형식-존재론적 범주의 형태론"이 있다.
- 두 번째 계층: 결과의 논리 (Konsequenzlogik) 또는 모순의 논리 (Logik der Widerspruchslosigkeit)
- 참된 판단의 모든 가능한 형태를 탐구한다.
- 삼단논법 고전 논리, 명제 논리, 술어 논리 등을 포함한다.
- 의미론적 계층으로, 이 계층의 규칙은 "반의미를 피하는 법칙" 또는 "모순을 방지하는 법칙"이 될 것이다. 이는 오늘날 논리의 변환 규칙과 매우 유사하다.
- 이에 상응하는 수학의 계층으로 순수 다수 이론과 순수 수 이론 등을 기반으로 하는 것들이 있으며, 이들은 어떤 이론의 가능성 조건에 대한 과학을 제공한다. 후설은 또한 가능한 진리와 그 양태의 형식적 법칙으로 구성되고 세 번째 논리적 계층에 앞서는 "진리의 논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 세 번째 계층: 모든 가능한 이론 형태의 이론 (Theorie der möglichen Theorieformen)
- 메타논리적 계층으로, 개별 이론의 가능성이 아니라 선험적인 방식으로 모든 가능한 이론 형태를 탐구한다.
- 순수 이론 형태 간의 가능한 관계에 대한 이론을 확립할 수 있으며, 이러한 논리적 관계는 추론을 사용하여 조사할 수 있다. 논리학자는 이 추론적이고 이론적인 순수 논리 영역의 확장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
이 세 번째 논리 계층에 대한 존재론적 상관관계는 "다양체 이론"(Mannigfaltigkeitslehrede)이다. 형식 존재론에서 이것은 수학자가 여러 기호에 여러 의미를 할당하고 일반적이고 불확정적인 방식으로 모든 가능한 유효한 추론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조사이다. 이것은 적절히 말해서 모든 것 중 가장 보편적인 수학이다. 수학자들은 특정 불확정 대상(형식-존재론적 범주)과 수학적 공리를 어떤 조합으로 가정함으로써, 일관성이 유지되는 한 그들 사이의 절대적인 연결을 탐구할 수 있다.
후설에 따르면 이러한 논리와 수학에 대한 관점은 당시의 일련의 수학적 발전의 객관성을 설명했는데, 예를 들어 ''n''차원 다양체(유클리드 기하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 모두), 헤르만 그라스만의 확장 이론, 윌리엄 로언 해밀턴의 해밀토니안, 소푸스 리의 변환 군 이론, 그리고 칸토어의 집합론 등이 있다.
야코프 클라인은 이러한 연구 방향을 추구하여 수학과 수학 과학을 "침전물에서 벗겨내려고" 노력한 후설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80]
현상학은 후설의 학문 여정을 통해 점차 발전하고 수정되었다. 그의 활동 시기와 주요 저작을 통해 현상학의 발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 | 주요 사건 및 저작 | 비고 (현상학 발전 관련) |
---|---|---|
1887년 | 교수 자격 논문 "수의 개념에 관하여 ―심리학적 분석―" | 『산술의 철학』의 기초가 됨. 초기에는 심리학주의적 경향을 보임. |
1891년 | 『산술의 철학 ―논리학적 및 심리학적 연구―』 제1권 출판. | 고틀로프 프레게, 파울 나투르프 등으로부터 심리학주의라는 비판을 받음. 후설은 이 비판을 수용하여 제2권 출판을 중단함. |
1900년 | 『논리학 연구』 제1권 "순수 논리학 서설" 출판. | 『산술의 철학』과는 달리 심리학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전개. 현상학으로의 중요한 전환점. |
1901년 | 『논리학 연구』 제2권 "현상학과 인식론을 위한 여러 연구" 출판. 괴팅겐 대학교 조교수로 부임. | 빌헬름 딜타이 등에게 호평받음. 뮌헨 및 괴팅겐 현상학파 형성의 계기. 초기 현상학은 기술 심리학적 성격을 가짐. |
1907년 | 여름 학기 "현상학의 이념" 강의. | "현상학적 환원"의 사상이 명확하게 제시됨. |
1911년 | 철학잡지 『로고스』에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발표. | 현상학을 엄밀한 학문으로 정립하려는 목표를 분명히 함. |
1913년 | 현상학 연구 기관지 『철학 및 현상학 연구 연보』 창간. 창간호에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이념들 I』(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Ide) 발표. | 중기 현상학의 대표작. 현상학적 환원과 본질 직관을 중심으로 현상학의 방법론을 확립하고 세상에 알림. |
1916년 | 하인리히 리켈트의 후임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철학과 정교수 부임. | 후기 사상 발전기. 『이념들』 II, III, 『제1철학』, 『현상학적 심리학』 등 집필 (사후 출판). |
1919년 | 하이데거가 조교가 됨. | 이후 후계자로 여겼던 하이데거와의 사상적 차이가 드러남. |
1927년 |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고 사상적 차이를 느낌.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현상학" 항목 집필 (하이데거와의 공동 작업 결렬 후 단독 완성). | |
1928년 | 1905년 동계 학기 강의 『내적 시간 의식의 현상학』이 하이데거에 의해 원고에서 편집되어 『연보』 제9권에 발표됨. 프라이부르크 대학 정년 퇴직. 일본 철학자 다나베 나가루를 통해 니시다 기타로의 사상을 접함.[123] | 시간 의식에 대한 중요한 현상학적 분석을 담고 있음. |
초기 수리논리학 연구자였던 후설은 스승 프란츠 브렌타노의 영향을 받아 철학적 관점에서 여러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는 데 관심을 돌리고, 전혀 새로운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현상학"을 제창하게 된다. 현상학은 20세기 철학의 새로운 흐름이 되어, 마르틴 하이데거, 장-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 등의 계승자를 낳으며 현상학 운동으로 발전하여, 학문뿐만 아니라 정치와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3. 4. 현상학적 환원과 본질 직관
후설의 연구 목표는 "사물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de)라는 그의 좌우명에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는 어떠한 전제나 편견, 형이상학적 독단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현상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기술하는 방법을 추구함을 의미한다.이 목표를 위해 후설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가지 기본 태도를 구분했다. 하나는 "자연적 태도"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계관이다. 이 태도에서는 외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며, 우리의 감각 지각을 통해 그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믿는다.[64]
다른 하나는 "현상학적 태도"로, 철학적 성찰을 통해 도달하는 태도이다. 이 태도에 이르기 위한 핵심 방법이 바로 "현상학적 환원"(phänomenologische Reduktion) 또는 "에포케"(Epoché, 판단 중지)이다.[65] 현상학적 환원은 세계의 실존이나 객관성에 대한 자연적 태도의 모든 믿음과 가정을 일시적으로 멈추고(괄호 안에 넣고), 판단을 보류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외부 세계에 대한 판단에서 벗어나, 세계가 우리 의식에 나타나는 방식, 즉 순수한 경험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후설에게 이 환원은 단순히 방법을 넘어, 모든 경험의 근원인 순수 의식, 즉 '절대적 존재'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는 길이었다.[66]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 순수한 의식 경험의 영역에 도달한 후, 후설은 "본질 직관"(Wesensschau) 또는 "본질 환원"(eidetische Reduktion)이라는 다음 단계를 제시한다. 이는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경험의 세부 사항들을 넘어서, 그 경험들의 공통적이고 필연적인 구조, 즉 '본질'(Wesen)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붉은색 사물들을 경험하면서 색깔, 모양 등의 개별적 특징을 넘어 '붉음'이라는 본질 자체를 직관하는 것이다. 본질 직관을 통해 우리는 개념과 대상의 형식적 구조 사이의 가능성, 불가능성, 필연성, 우연성과 같은 본질적인 관계들을 파악할 수 있다.
후설은 논리학과 수학과 같은 형식 과학의 기초가 바로 이 본질 직관과 "범주적 추상화"에 있다고 보았다. 범주적 추상화는 구체적인 감각 경험의 내용(예: 삼각형을 그린 칠판의 분필 가루)을 제거하고, 순수한 형식적 구조(예: '삼각형'이라는 기하학적 형식) 자체에 주목하는 정신 능력이다. 본질 직관과 함께, 이러한 형식적 구조를 직접 파악하는 능력인 '범주적 직관'은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지식의 토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환원의 과정에서 의식의 근본 특징인 "지향성"(Intentionalität)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식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며, 특정한 대상을 향하고 있다.[59] 현상학적 환원을 거친 의식 경험 속에서 대상은 단순히 감각 자극의 묶음이 아니라, 의식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파악된 "의도 대상"(Intentionales Objekt)으로 나타난다.[67][68] 현상학은 바로 이러한 의식의 지향적 구조와 그 대상들이 어떻게 의식 속에서 구성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3. 5. 발생적 현상학
후설의 후기 사상은 그의 연구 좌우명인 "사물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추 덴 자헨 젤프스트!de)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어떠한 전제나 편견, 형이상학적 독단에 얽매이지 않고 현상 그 자체를 파악하고 기술하는 방법을 추구했으며, 이 과정에서 현상학의 개념 역시 변화하고 발전했다. 후설의 후기 사상, 특히 발생적 현상학은 그의 생애 후반부 활동과 저작들을 통해 구체화되었다.연도 | 주요 활동 및 저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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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 제자들에 의해 70세 기념 논문집 출판. 『연보』 제10권에 「형식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발표. 이와 관련된 원고는 사후(1938년) 『경험과 판단』으로 출판됨. 소르본 대학교에서 데카르트 강당에서 "초월론적 현상학 입문" 강연. |
1930년 | 『연보』 제11권(종간호)에 「『이데엔』에 대한 후기」 발표. |
1931년 | 소르본 강연을 확장한 후기 대표작 『데카르트적 성찰』 출판. |
1933년 | 히틀러 정권 수립.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독일 내 활동이 극도로 제한됨 (교수 자격 박탈, 대학 출입 금지, 저작 발매 금지, 국제 학회 참가 불허 등). 이후 거의 매일 서재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집필에 몰두. 속기를 활용하여 방대한 양의 원고를 남김. |
1935년 | 5월, 빈에서 "유럽 인류의 위기 속에서의 철학" 강연. 11월, 프라하에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심리학" 강연. |
1936년 | 1935년 두 강연을 바탕으로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제1·2부 완성, 베오그라드의 잡지 『필로소피아』에 발표 (제3부는 사후 간행). |
1938년 | 4월 27일 사망. 45,000페이지에 달하는 미발표 원고는 벨기에의 신부 판 브레다에 의해 나치의 검열을 피해 루뱅의 "후설 문고"로 옮겨져 보존됨. |
후설은 후기에 이르러 근대 과학과 기존의 형이상학을 엄격하게 비판하며, 이들이 간과한 생활 세계(Lebenswelt)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대 과학을 뒷받침하는 물리적 경험의 토대가 되는 감각과 이성을 포함한 "생활 세계의 경험"이 중요하며, 이것이 객관적 존재에 앞서고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경험은 객관적 과학 지식보다 선행한다는 점에서 주관적이지만, 모든 인식의 근본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초월론적 경험"이라고도 불린다.
생활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층에는 세계, 나, 그리고 타자의 존재라는 "원사실(Ur-Tatsache)"이 있다. 이들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며 거대한 역사적 존재를 형성한다. 후설은 이러한 생활 세계와 원사실의 구조를 연구하고 밝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 즉 새로운 형이상학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4. 영향
에드문트 후설의 현상학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마르틴 하이데거, 장 폴 사르트르,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126][129]
후설은 존 스튜어트 밀, 크리스토프 폰 지그바르트 및 자신의 스승이었던 브렌타노를 비판하며, 수학과 논리학에서의 심리주의(psychologism)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수학이나 논리학 같은 추상적이고 선험적인 과학들이 본질적으로 경험적인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규범적이거나 기술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심리주의자들의 개념에 반대했다.[85] 심리주의에 따르면, 논리학은 자율적인 학문이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로 간주된다. 이는 논리학이 올바른 판단의 규범적이고 실용적인 "기술"을 제시하거나(브렌타노와 그의 제자들처럼)[86], 단순히 인간 사고의 사실적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후설은 반심리주의자들이 심리주의를 효과적으로 논박하지 못한 이유가 논리의 기초적인 이론적 측면과 응용된 실용적 측면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순수 논리학은 정신적 사건으로서의 "사고"나 "판단"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론이나 판단이든 그 자체로 명제로 간주될 때 적용되는 선험적인 법칙과 조건에 대해 다룬다.
:"여기서 '판단'은 문법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의 이상적인 통일체로 이해되는 '명제'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순수 논리의 법칙에 대한 토대를 제공하는 행위 또는 판단 형태의 모든 구별에 해당한다. 범주적, 가정적, 선택적, 존재적 판단, 그리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순수 논리학에서 판단의 종류에 대한 이름이 아니라 명제의 이상적인 형태에 대한 이름이다."[87]
후설은 "자체적 진리"가 존재론적 상관관계로서 "자체적 존재"를 가지며, 심리학자들이 진리(그리고 논리)를 경험적 심리학으로 환원하려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 심리학자들은 귀납적 추론이나 심리적 과정이 어떻게 동일성 원리나 모순 원리와 같은 논리적 원리의 절대적 확실성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따라서 불확실한 정신 과정에 특정 논리적 법칙과 원리를 기반으로 두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설은 심리주의(그리고 생물학주의 및 인류학주의와 같은 관련 학문)가 저지르는 혼란이 세 가지 특정한 편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 첫 번째 편견: 논리가 어떤 면에서 규범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가정이다. 후설은 논리가 본질적으로 이론적이라고 주장했다. 즉, 논리 자체가 선험적 법칙을 제시하며, 이 법칙들이 논리의 규범적 측면의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을 예로 들었다. "(a + b)(a – b) = a² – b²"와 같은 공식은 수학적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진리를 표현할 뿐이다. "a와 b의 합과 차의 곱은 a와 b의 제곱의 차를 주어야 한다"는 명제는 규범을 표현하지만, 이 규범적 진술은 "(a + b)(a – b) = a² – b²"라는 이론적 진술에 기초한다.
2. 두 번째 편견: 판단, 추론, 유도 등의 행위가 모두 심리적 과정이므로, 심리학이 이러한 과정의 기초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후설은 이러한 심리학자들의 노력이 μετάβασις εἰς ἄλλο γένος|메타바시스 에이스 알로 게노스grc, 즉 "다른 분야로의 부당한 넘어감"이라고 비판했다.[88] 심리학은 모든 올바른 사고의 기초가 되는 선험적 법칙에 대한 어떤 기초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부당한 개입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의도적인 활동(심리적 행위)과 그 활동의 대상(판단 자체, 숫자 자체 등)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다섯 개의 물체를 세는 행위는 심리적 과정이지만, 숫자 5 자체는 심리적 과정이 아니다. 이 둘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후설은 강조했다.
3. 세 번째 편견: 판단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분명하게' 참으로 나타나는지에 달려있다는 주장이다.[89] 즉, 진리를 보증하는 심리적 과정인 '증거'가 판단의 진리성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후설은 이에 반박하며, 진리 자체뿐만 아니라 논리적 법칙들도 그것들이 참이라는 심리적 '증거'와는 무관하게 항상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어떤 심리적 과정도 이러한 논리적 진리의 선험적 객관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심리주의에 대한 이러한 비판, 즉 심리적 행위와 그 의도적 대상 간의 구별, 논리의 규범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 간의 차이 등은 플라톤주의적인 논리 개념에서 비롯된다. 이는 논리적 및 수학적 법칙이 인간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의미 또한 자율성을 가진다는 관점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실재(시간에 종속되는 모든 것)와 이상적 또는 비실재(시간을 초월하는 모든 것, 예를 들어 논리적 진리, 수학적 실체, 수학적 진리, 일반적인 의미 등)를 구분하는 것이다.
5. 주요 저서
후설의 저서는 현재 벨기에 루뱅에 있는 후설 자료 보관소에서 비판본 전집이 후설리아나(Husserliana)라는 이름으로 계속 출판되고 있다.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 『산술의 철학―논리적·심리학적 연구―』
- 『논리학 연구』 (''Logische Untersuchungen''), 1900년
- 『엄밀한 학문으로서의 철학』 (''Philosophie als strenge Wissenschaft''), 1911년
- 『현상학의 이념』 (''Die Idee der Phänomenologie'')
-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을 위한 구상(이데엔)』 (''Ideen zu einer reinen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1913년
- 『내적 시간 의식의 현상학』 (''Vorlesungen zur Phänomenologie des inneren Zeitbewusstseins''), 1928년
- 『형식 논리학과 초월론적 논리학』 (''Formale und transzendentale Logik''), 1929년
- 『데카르트적 성찰』 (''Cartesianische Meditationen''), 1931년
- 『간주관성의 현상학』 (''Zur Phänomenologie des Intersubjektivität'')
-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 (''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 1936년
- 『경험과 판단』 (''Erfahrung und Urt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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