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한신 완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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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이한신 완행선은 '도카이도・산요 완행선', '오사카 완행' 등으로 불리는 명칭으로, 교토역 - 니시아카시역 구간을 운행하는 철도 노선을 지칭한다. 1934년 스이타역 - 스마역 구간 전철 운행을 시작으로, 1975년 교토역 - 니시아카시역 구간이 '게이한신 완행선'으로 호칭되었다. 현재는 JR 서일본의 노선 애칭이 정해지고 운행 구간이 확대되면서 호칭의 정의가 모호해졌지만, 교토역 - 가코가와역 구간에서 운행되고 있다. 운행 형태는 교토역·다카쓰키역 발착, 스마역·니시아카시역 발착을 기본으로, JR 도자이선, JR 다카라즈카선 등과 직통 운행을 한다. 현재는 207계와 321계 전동차가 사용되며, 과거에는 40계, 42계, 51계, 70계, 72계, 103계, 201계, 205계 등이 운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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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한신 완행선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 |
---|---|
노선 정보 | |
노선 색상 | '#0072bc' |
![]() | |
소재지 | 교토부, 오사카부, 효고현 |
노선망 | 해당 사항 없음 |
구간 | 교토역 - 니시아카시역 |
경유 노선 | 도카이도 본선 (교토역 - 고베역 구간) 산요 본선 (고베역 - 니시아카시역 구간) |
역 수 | 44개 |
개업 | 해당 사항 없음 |
폐지 | 해당 사항 없음 |
소유자 | 서일본 여객철도 |
운영자 | 서일본 여객철도 |
노선 거리 | 98.7 km |
궤간 | 1,067 mm (협궤) |
선로 수 | 복선 |
전철화 방식 | 직류 1,500 V 가공 전차선 방식 |
최고 속도 | 120 km/h |
노선도 | 해당 사항 없음 |
운행 계통도 (2013년 4월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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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례 설명 | [ ]내는 접속 노선 (JR 선만 기재) |
주요 역 | |
구사쓰역 | [구사쓰선] |
세타역 | 해당 사항 없음 |
이시야마역 | 해당 사항 없음 |
제제역 | 해당 사항 없음 |
오쓰역 | 해당 사항 없음 |
야마시나역 | 해당 사항 없음 |
교토역 | [나라선・산인 본선] |
니시오지역 | 해당 사항 없음 |
무코마치역 | 해당 사항 없음 |
간자키역 | 해당 사항 없음 |
야마자키역 | 해당 사항 없음 |
다카쓰키역 | 해당 사항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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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카모토역 | 해당 사항 없음 |
아마가사키역 | 해당 사항 없음 |
기타 접속 노선 | 후쿠치야마선 |
다치바나역 | 해당 사항 없음 |
고시엔구치역 | 해당 사항 없음 |
니시노미야역 | 해당 사항 없음 |
아시야역 | 해당 사항 없음 |
셋쓰모토야마역 | 해당 사항 없음 |
스미요시역 | 해당 사항 없음 |
롯코미치역 | 해당 사항 없음 |
나다역 | 해당 사항 없음 |
산노미야역 | 해당 사항 없음 |
모토마치역 | 해당 사항 없음 |
고베역 | 해당 사항 없음 |
효고역 | [와다미사키선] |
신나가타역 | 해당 사항 없음 |
다카토리역 | 해당 사항 없음 |
스마역 | 해당 사항 없음 |
시오야역 | 해당 사항 없음 |
다루미역 | 해당 사항 없음 |
마이코역 | 해당 사항 없음 |
아사기리역 | 해당 사항 없음 |
아카시역 | 해당 사항 없음 |
오쿠보역 | 해당 사항 없음 |
우오즈미역 | 해당 사항 없음 |
쓰치야마역 | 해당 사항 없음 |
히가시카코가와역 | 해당 사항 없음 |
가코가와역 | [가코가와선] |
2. 정의 및 명칭
게이한신 완행선은 특별히 정해진 명칭 없이 도카이도・산요 완행선, 오사카 완행, 본선 완행 등 여러 별칭으로 불린다. 전후 한동안은 현재의 신쾌속이나 쾌속에 해당하는 열차를 '급행'(급전)이라고 불렀고, 이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완행'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는데, 이러한 명칭은 철도 관계자나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8][9] (국철) 시대에는 국철 관계자나 철도 동호인 사이에서 이러한 별칭이 널리 사용되었으나, 국철 분할 민영화 이후 JR 서일본이 발족하면서 'JR 교토선', 'JR 고베선' 등의 노선 애칭이 정해졌다.[6][7] 또한, 국철 말기부터 운행 구간이 확대되고 JR 도자이선 개업에 따라 가타마치선(학연도시선) 및 후쿠치야마선(JR 다카라즈카선)과의 직통 운전이 시작되면서 명칭의 정의가 모호해져 최근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현재는 KATO제 철도 모형의 상품명 등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동쪽은 교토역·다카쓰키역 발착이며, 서쪽은 스마역·니시아카시역 발착이다. 시발역이나 종착역을 중심으로 오사카역 발착 열차도 설정되어 있으며, 오전 6시대, 9시대와 심야 23시대에는 고시엔구치 발착 열차도 설정되어 있다. 고베 시발 열차는 니시아카시행·교토행 양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으나, 고베행은 교토 방면에서만 설정되어 있다. 이 외에도 1왕복만 스이타역에서 회차하는 열차가 있다.[16][17][18]
'게이한신 완행선'이라는 명칭은 1934년(쇼와 9년) 7월에 스이타역 - 스마역 간 전철 운행이 시작[8]된 시기에, 운행상 다른 급행 열차나 중장거리 보통 열차와 구별[9]하기 위해, 현재의 신쾌속이나 쾌속에 상당하는 전철을 '''급행 전철'''(약칭: 급전), 각 역에 정차하는 전철을 '''완행 전철'''(약칭: 완전)이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1957년(쇼와 32년) 9월에 무코마치역 - 효고역 간에서 전철을 복복선의 안쪽 선로에 집중하여 운행하게 되면서[1], 안쪽 선을 전철선, 바깥쪽 선을 열차선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후 각 역에 정차하는 전철이 주행하는 안쪽 선의 통칭(계통명)으로 호칭되었다.[3][4] 1975년(쇼와 40년) 3월에 타카토리역 - 니시아카시역 간이 복복선화된[1][2] 후, 교토역 - 니시아카시역 간(98.7 km)이 '게이한신 완행선'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 외에 '오사카 완행선'[3][10]이나 '도카이도·산요 완행선'[11][12]이라는 별칭도 있다.
게이한신 완행선의 정의는 교토역 - 니시아카시역 구간이지만, 전철 운행 구간은 국철 말기인 1985년(쇼와 60년) 3월에 도카이도 본선 구사쓰역 및 산요 본선 가코가와역으로 연장되었다. 2004년(헤이세이 16년) 10월부터 2013년(헤이세이 25년) 3월까지는 도카이도 본선 야스역 - 가코가와역 구간 (144.7 km)까지 운행 구간을 확대[13], 2013년(헤이세이 25년) 4월 이후에는 구사쓰역 - 가코가와역 구간에서 운행되고 있다.[14][15] 다만, 연장 구간인 야스역 - 구사쓰역 구간 및 니시아카시역 - 가코가와역 구간은 복선이며, 복복선 구간은 구사쓰역 - 니시아카시역 구간 (120.9 km)이지만,[1][2] 구사쓰역 - 교토역 구간은 게이한신 완행선 사용 전철의 운행 횟수가 적기 때문에, 이들 구간은 게이한신 완행선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3. 운행 형태
아침 저녁 시간대에는 운행 횟수가 많으며, 고베역·아마가사키 발착 열차도 설정되어 있다.
낮 시간대에는 1시간에 8번 운행된다. 단, 교토역 - 다카쓰키역 간(낮에는 설정 없음) 및 스마역 - 니시아카시역 간에서는 운행 간격이 넓어진다. 운행 계통은 다음과 같다.
위의 3개 계통이 15분 간격으로 운전되고 있으며, 아마가사키에서는 JR 도자이선·다카라즈카선 직통 계통을 동일 홈에서 환승으로 연결하고 있다. 오사카역 발 기준으로는 7~8분 간격이 된다. JR 고베선 구간에서는 1998년 10월 3일 개정으로 니시아카시역 발착으로 통일되었지만, 2006년 3월 18일 개정으로 낮 시간대의 교토역 발착 계통이 스마역 발착으로 변경되었다.
평일 아침에는 동쪽에서 비와코선의 구사쓰행, 서쪽에서 JR 고베선의 오쿠보 시발, 가코가와 발착 열차가 설정되어 있다. 1985년 3월 14일에 아침 저녁 러시아워 시간대와 낮에 1시간에 1번은 가코가와역 발착이 되었지만, 1991년 3월 16일에 쾌속이 가코가와역 발착으로 연장됨에 따라 아침 외에는 니시아카시역 발착으로 되돌려졌다. 평일 아침 시간대의 오쿠보 시발 열차(아카시 전차구에서 회송)는 오쿠보 남쪽의 고베 제강 공장 부지가 대규모 맨션이 되면서 1편이 설정되어 있다.
역간 거리가 길고 운전 속도가 높은 한편, 신쾌속·쾌속과의 연결 때문에 제약이 많은 운행 시간표 등 조건이 엄격하여 207계·321계의 성능을 최대한 살린 시간표를 짜고 있다.
열차 번호는 니시아카시 방면이 하행 취급(홀수)이 된다. 열차 번호 마지막에 붙는 알파벳은 "C"(2020년 3월 14일 개정 전까지 토요일·휴일은 "B"였다)이다.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 후에는 서쪽에서 니시아카시역·스마역·고베역·나다역, 동쪽에서는 고시엔구치역·아시야·스미요시와 각각 운전 재개 구간이 확대되어 갔다.
3. 1. 타 노선과의 직통 운전
JR 도자이선, 가타마치선(학연도시 선), 후쿠치야마선(JR 다카라즈카 선) 등과 직통 운전을 실시한다.[1] 학연도시 선 기즈역, 나라선 나라역, JR 다카라즈카 선 신산다역 등까지 직통 운행하는 열차도 있다.[1]
학연도시 선 기즈 발 열차는 아침 5시대의 니시아카시행 구간쾌속 2편(토요일・공휴일은 고시엔구치행 1편)뿐이다.[1] 나라 발 열차는 평일・토휴일 모두 아침 2편, 나라 행 열차는 평일・토휴일 모두 밤에 2편뿐이다.[1] 아침 시간대에는 교타나베역・마쓰이야마테역・나가오역・하나텐・시조나와테역 발착 계통(일부는 교바시역까지 구간쾌속으로 운행)이 있다.[1] 낮 시간대에는 시조나와테 역 발착(일부는 나가오 역・마쓰이야마테 역 발착과 도다이샤마에역 발)이, 저녁에는 마쓰이야마테 역 발착과 시조나와테 발, 심야에는 시조나와테 행과 마쓰이야마테 발 열차가 운행된다.[1] 야간 시간대에는 아마가사키역에서 쾌속(토휴일만) 또는 구간쾌속이 되는 열차가 있다.[1] JR 다카라즈카 선으로 직통하는 전차는 낮에는 다카라즈카 행, 아침저녁은 신산다 행으로 운행된다.[1] 이전에는 전 시간대에 신산다 역까지 운전하거나 사사야마구치 발 다카쓰키 행(1일 1편만) 열차도 있었다.[1]
4. 연혁
1934년 7월 20일 스이타역 - 스마역 간 전철화와 함께 전동차 운행이 시작되면서 게이한신 완행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8] 초기에는 42계 전동차가 투입되어 각역 정차로 운행되었으며, 급행 전철도 함께 운행되었다. 1937년에는 교토역까지 운행 구간이 연장되었고, 51계 전동차가 새로 투입되었다.
중일 전쟁 중인 1938년부터 1949년까지는 전시 체제로 인해 2등차 연결이 폐지되고, 차량 개조 등이 이루어졌다.[22] 태평양 전쟁 중에는 수송력 증강을 위해 노력했으나, 1945년 일본 본토 공습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전후에는 혼란 속에서 복구가 진행되었으며, 1950년부터 1959년까지는 차량 복구와 함께 크로스 시트 서비스가 부활하는 등 전성기를 맞았다. 1960년부터 1967년까지는 통근 노선으로 변화하면서 대규모 차량 전배속이 이루어졌다.
1969년에는 103계 전동차가 투입되어 1970년 오사카 만국 박람회 수송에 기여했다.[55] 1972년에는 신쾌속 증편과 함께 게이한신 완행선 다이어가 크게 변경되어 주간 운행 계통이 분할되기도 했다.
1983년부터는 201계 전동차가, 1986년에는 205계 전동차가 투입되어 보통 열차가 증편되었다.[66] 1994년에는 207계 1000번대 투입으로 103계 운행이 종료되었다.[69]
1995년 효고현 남부 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긴급 복구 공사를 통해 4월 1일 전 노선 운행이 재개되었다.[69] 1997년에는 JR 도자이 선 개통으로 운행 계획이 변경되었다.[71]
2005년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이후 321계가 투입되어 201계, 205계 교체가 이루어졌으며,[59] 2007년부터는 207계와 321계만으로 운행하게 되었다.[59] 이후 사쿠라슈쿠가와역, 시마모토역, 스마 해변 공원역, 카츠라가와역, 마야역, JR 소지 사찰역 등 신역 개업이 이어지고 있다.[59]
4. 1. 초창기 (1934년 ~ 1938년)
1934년 7월 20일 스이타역 - 스마역 간 전철화 및 전동차 운행이 시작되었다.[8] 이는 기존 C10형, C11형 등이 견인하던 게이한신 간 구간 운전 열차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오사카역 - 고베역 간에는 "급행 전철"(급전, 현재의 신쾌속·쾌속)도 운행되었다. 쓰카모토역 - 히가시나다 신호장 간은 복복선으로, 안쪽 선에는 급행과 객차 열차, 바깥쪽 선에는 각역 정차와 화물 열차가 운행되어 현재와는 달랐다.미야하라 전차고에 투입된 42계 전동차는 각역 정차용으로 모하 43(모하 42)-크로하 59의 2량 편성이 기본이었다. 주간에는 15분 간격, 출퇴근 시간에는 상행 측에 쿠하 58-모하 43(모하 42)을 증결한 4량 편성, 또는 모하 42를 증결한 5량 편성을 10분 간격으로 운행했다. 각역 정차임에도 2등차를 연결한 것은 게이힌선처럼 도시 간 수송 노선이었고, 자가용 보급 전이라 전철화 이전부터 2등차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20]
42계 전동차는 당시 성철도로서는 파격적이었지만, 한큐 전철, 한신 전기 철도 등 경쟁 사철 차량과 비교하면 3등차 등받이가 판자였던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정통적인 디자인은 호평받아 훗날 많은 철도 애호가에게 사랑받았다.
짧은 편성으로 자주 운행(프리퀀트 서비스)한 것은 서비스 향상뿐 아니라 한큐 전철, 한신 전기 철도 등 경쟁 사철을 의식한 결과였다. 전기 운전 시작과 함께 롯코미치역 등 신역을 개업하고, 잦은 운행을 통해 연선 도시화와 승객 확보에 기여, 승객 수가 더욱 증가했다. 각역 정차 증편 및 증결은 모하 42·43에 여유가 있어 쿠하 58을 증차하는 것으로 대응했다.[21] 1936년 등장한 쿠하 58025는 42계 측면에 반 유선형 전면을 가진 세련된 차량이었다.
1937년 10월 10일 스이다역 - 교토역 간 전철화를 앞두고, 8월 10일 아카시 전차구(아보시 종합 차량소 아카시 지소)를 개설, 이후 40년 가까이 게이한신 완행선을 달릴 51계 각 형식(모하 51·쿠하 68·크로하 69)을 신규 투입했다. 교토역까지 전철 개통 후, 각역 정차 운행 구간도 교토역 - 아카시역 간으로 연장되었다. "류덴" 모하 52나 반류 43계를 주체로 한 교토역 - 고베역 간 급전이 현재 신쾌속·쾌속 노선이 된 것처럼, 현재까지 이어지는 게이한신 완행선의 원형이 이때 확립되었다. 같은 시기 간자키역(현재 아마가사키역)·스미요시역·다카토리역에 회차선이 설치되어 출퇴근 시간 구간 운전이 시작되었다.
4. 2. 전시 체제 (1938년 ~ 1949년)
중일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38년 11월 1일부터 철도성은 게이힌 선과 게이한신 완행선에서 2등차 연결을 폐지했다.[22] 1940년부터는 크로하59형을 3도어화 개조하여 쿠하68형에 편입했다.[23]당시 한와 전철은 차량 부족으로 철도성에 전차 대여를 신청, 도쿄 철도국에서 모하34-쿠하38 2량 편성을 빌렸으나 회사와 승객들의 불만이 높아 모하43-쿠하58(또는 크로하59) 2량 편성을 대여받았다. 이 대여는 한와가 난카이에 합병되고 국유화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태평양 전쟁 돌입 후 1942년에는 급전을 폐지하고 해당 차량을 완행용으로 투입했다. 그러나 모하52는 유선형이라 승무원용 문이 없어 교대에 시간이 걸려, 편성 중간에 부수차 대용으로 투입되었다. 조토·니시나리 선 차량과 본선 차량을 트레이드하는 등 수송력 증강을 꾀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에 42계를 4도어화하여 조토·니시나리 선의 모하40계와 대차를 교체, 조토·니시나리 선에 투입하고 모하40계를 모하51로 개조, 롱 시트 상태로 게이한신 완행선에 투입하는 계획이 세워졌다.
1943년에는 4도어화 개조된 모하43028[24]-쿠하55106[25]이 처음 등장했고, 이후 많은 모하43, 쿠하58이 4도어화 개조(모하64, 쿠하85)되었다.[26] 기존 차량의 좌석 철거 및 롱 시트화도 병행되었다.
1943-1944년에는 모하60 증비, 1944년 1월에는 6량화로 수송력을 강화했고, 같은 해 4월 1일에는 가와사키 항공기 아카시 공장[28] 통근객 수송을 위해 니시아카시역을 설치, 정기권 소지자 대상 여객 취급을 시작했다.[29]
4. 3. 전후 황금시대 (1950년 ~ 1959년)
1945년 일본 본토가 공습을 받으면서 게이한신 완행선 연선도 피해를 입었다. 1945년 3월 17일 고베 대공습 때 고베역에 정차 중이던 전차 2량이 전소된 것을 시작으로, 7월 7일 가와사키 항공기 공장 공습으로 아카시 전차구가 큰 피해를 입어 '유선형 전차' 모하 52계의 마지막 번호인 모하 52006이 전소되기도 했다. 8월 6일에는 스미요시역 구내에서 모하 43038 등 4량이 피해를 입었다. 물자 부족으로 고장 차량 수리도 어려워 차량 가동률이 저하된 상황에서 8월 15일 종전을 맞았다.[2]전후 초기에는 전쟁 중보다 혼란이 더 심했다. 매수자, 복원자, 귀환자 등이 전차에 몰렸지만, 전차는 공습 피해와 고장으로 가동률이 매우 낮았고, 수리 부품 부족으로 고장 차량이 늘어났다. 연합군 전용 "백대차" 지정도 이루어져 쿠하55 7량이 백대차로 지정되었다.[2]
교토역 - 다카츠키역 간과 아카시역 - 니시아카시역 간 운행 횟수를 줄여 예비차를 확보하고, 고장 차량 수리를 진행했다. 오사카역 - 히메지역 간에는 C51형 견인 42계 고장차만 모은 열차를 운행했다. 1946 - 1947년 사이 63계 투입 등으로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좌석 정비, 창문 보수, 실내등 정비 등이 이루어졌다. 2도어차는 크로스 시트를 부활시켰지만, 3도어차와 4도어차, 51계 출신 구 크로스 시트차는 롱 시트로 정비되었다. 이후 스이타역 - 칸자키역 간과 스미요시역 - 타카토리역 간 구간 운전이 부활했고, 1949년 4월 교토역 - 오사카역 간 급전 부활, 6월 고베역까지 완전 부활하여 급전·완행 모두 전쟁 전 상태로 복구되었다.[2]
4. 4. 통근 노선으로의 변화 (1960년 ~ 1967년)
다이아그램 복구가 완료되자, 차량 복구가 진행되었다. 전전(戰前)과 같은 크로스 시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동서(東西)를 넘나드는 대규모 차량 전배속이 실시되었다. 우선 급행 전철에 80계를 투입하고, 그동안 사용하던 모하 52나 반류 모하 43을 한와선으로 전출시켰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정비가 완료된 42계[30]를 요코스카선으로 전출시키고, 요코스카선에 지원으로 투입되었던 63계를 다른 노선으로 돌렸다. 같은 시기에, 관서(關西) 지역의 63계 대부분을 관동(關東) 지역으로 전출시켰다. 이러한 차량을 바탕으로, 전전 주오 쾌속선에 배속되었고, 전시 중 모하 41형으로 편입 개조를 받은 모하 51001 - 51026 중, 전재(戰災)로 폐차된 3량을 제외한 23량 전차를 게이한신 완행선에 전입시켰다.[31]。 이어서, 게이한신 완행선에 잔류하고 있던 전시 중의 4도어 개조차를 조토(城東)・니시나리선에 전출시키고, 대신 51계 출신의 구 크로스 시트차를 중심으로 3도어차를 게이한신 완행선에 전속시켰다.4. 5. 103계 시대 (1968년 ~ 1982년)
1969년 8월 8일부터 아카시 전차구에 103계 신제 투입이 시작되어, 이듬해 2월까지 15개 편성 105량이 갖추어져 1970년 오사카 만박 수송에 임하게 되었다.[55] 신형 전차이므로 구형 전차의 최고 속도 90km/h를 웃도는 최고 속도 95km/h로 운전할 수 있었고, 전기 브레이크 사용과 함께 역간 운전 시분 단축이 이루어졌다.만박 종료 후인 1970년 10월 1일 다이어 개정으로 신쾌속이 등장했지만, 기존 다이어 사이에 신쾌속을 증발했기 때문에, 아시야역, 신오사카역, 다카츠키역에서 각역 정차가 신쾌속, 쾌속을 연속 대피하는 다이어가 되었다. 103계 투입으로 51계는 이이다선, 미노부선, 아코선 등으로, 72계는 수도권 주변 선구나 한와선 등으로 전출되었으며, 1971년 초에는 마지막으로 남은 모하 70 3량이 센세키선으로 전출되어, 51계보다 먼저 70계가 게이한신 완행선에서 모습을 감췄다.
1972년 2월부터 3월에 걸쳐, 헤드라이트의 쉴드 빔 2등화와 측창의 유닛 사시화가 이루어진 1차 개량차 15개 편성 및 예비 4량 1편(총 109량)을 신조하여 아카시에 투입했다. 이 1차 개량차는 게이한신 완행선 외에 조반 쾌속선 (마츠도)에도 투입되었다.
이 1차 개량차 투입으로 주간 시간대 103계화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산요 신칸센 신오사카역 - 오카야마역 간 개업에 따른 1972년 (쇼와 47년) 3월 15일 다이어 개정 ("요ㄴ・나나・사ㄴ")에서 신쾌속이 1시간에 4편으로 증발됨과 동시에, 게이한신 완행선 다이어는 크게 변경되었다.
아침 시간대는 고베시 내 이용객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3분 간격으로 증발되었다. 특급 이상 속도로 15분 간격으로 달리는 신쾌속[56]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선구 최고 속도 90km/h의 구형 차량으로는 불가능했고, 주간 103계 통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비로소 실현[57]되었지만, 그래도 신쾌속 운전 중 교토역 - 니시 아카시역 간 직통 운전은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주간 운전을 교토역 - 고시엔구치역 간과 스이타역 - 니시 아카시역 간 2계통으로 분할[58]하고, 다카츠키역, 아시야역에서는 신쾌속 통과 대기와 쾌속 접속 대기를, 스마역에서는 신쾌속 통과 대기를 각각 하는 다이어로 했다. 이 다이어 체제는 이후 1985년 (쇼와 60년) 3월 13일까지 13년간 계속되었다.
다만, 실용 한계인 95km/h 이상 최고 속도를 요구받은 103계는 전기 브레이크 시 충동 등 트러블이 잇따랐지만, 문제점들이 순차적으로 밝혀져 해결되었다. 하지만 각역 정차 구간을 2계통으로 분할했어도, 내측선은 외측선과 같은 폐색 구성이며, 화물 열차 브레이크력을 상정한 신호 배치였기 때문에, 곧 후속 열차에 제한 신호를 주는 결과가 되었다. 15분 사이클에 신쾌속, 쾌속, 각역 정차 2편이 달린다는 것은 평균 3분 45초 간격으로 전차가 달린다는 것이지만, 그 운전 간격을 원활하게 운전할 수 있을 만큼 폐색 구성이 아니었던 점도 있어, 신쾌속의 오사카역 - 산노미야역 간 운행 시간은 개정 전 23분 20초에서 10초 늘어난 23분 30초가 되었다.
4. 6. 분할 민영화 전후 (1983년 ~ 1994년)
1983년부터 201계 전동차가 투입되기 시작했다.[66] 간사이 최초로 스카이 블루 색상의 201계가 투입되었으며, 이는 주오 쾌속선(1979년 시험 제작 차량 등장), 주오·소부 완행선(1982년)에 이어 3번째였다.[66] 201계는 뛰어난 고속 성능과 승차감을 가지고 있었고, 병행 사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차량이었다.[66]1986년에는 간사이 최초의 205계가 스카이 블루 띠를 두르고 투입되었다.[66] 1986년 11월 1일 국철 마지막 시간표 개정으로 201계와 함께 보통 열차를 증편했다.
1994년 3월, 207계 1000번대 투입으로 103계가 완전히 대체되어 25년간의 103계 운행이 종료되었다.[69]
4. 7. 어번 네트워크의 중추 (1995년 ~ 2004년)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게이한신 완행선은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아사기리역 앞 아카시 해협에서 무코강(고시엔구치역 - 다치바나역 간)까지의 구간은 피해가 심각했다. 고베시를 중심으로 강력한 피해를 입었지만, 발생 시각이 이른 아침이었기 때문에 차량 자체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69] 다카토리역 동쪽에서 지진을 만난 201계 1개 편성은 역 남동쪽에서 발생한 대화재에 기적적으로 휘말리지 않고 고가선 위에 남아있었다.오사카역 방면에서는 18일에 아마가사키역, 19일에는 고시엔구치역, 25일에는 아시야역까지 복구되었다. 니시아카시역 방면은 복구가 늦어져 23일에 스마역, 30일에 고베역까지 복구되었다. 다음날 고속 고베역 - 한신 산노미야역 간이 복구된 고베 고속철도·한신 본선과 함께, 발생 이후 약 2주 만에 가코가와·히메지 방면에서 환승을 거치면서도 산노미야까지 철도로 갈 수 있게 되었다.[69]
복구 공사는 긴급하게 실시되어, 2월 8일에는 아시야역 - 스미요시역 간, 2월 20일에는 고베역 - 나다역 간이 복구되었다. 남은 구간은 고가교가 붕괴된 롯코미치역 주변을 포함한 스미요시역 - 나다역 간뿐이었다. 복구 과정에서 수송력 증강을 위해 201계 일부 편성을 8량화하고, T차를 뺀 편성 2개를 연결하여 12량 편성으로 운행했다. 이 12량 편성은 보통 열차만 정차하는 아사기리역·마이코역·시오야역·다카토리역의 상행 산노미야 방면 승강장만 연장했기 때문에, 하행 니시아카시행은 쾌속으로 운행되었다.[69] 히로시마 운전소와 히네노 전차구에서 103계를 모아 니시아카시역 - 나다역 간에 투입하여 차량 부족을 보충했다. 신나가타역 주변 복구 공사를 거쳐 3월 10일에 동역이 영업을 재개했고, 4월 1일에는 스미요시역 - 나다역 간이 복구되어 전 노선에서 운행을 재개했다.[69]
1997년 3월 8일 JR 도자이 선 개통으로 보통 열차의 운행 계획이 크게 변경되었다. 아침 혼잡 시간대에는 다카쓰키역 → 오사카역 구간에서도 4분 간격으로 증편되었다. 낮 시간대에는 다카쓰키역 - 스마역·니시아카시역 간의 직통 운행을 재편성하여, 니시아카시역 - 마쓰이야마테역 간의 JR 도자이 선 직통과 이에 연결되는 다카쓰키역 - 아마가사키역 간의 구간 운행·다카쓰키역 - 스마역 간의 운행으로 변경되었다.[71]
4. 8.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 이후 (2005년 ~ 현재)
2005년 4월 25일, 후쿠치야마선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59] 이 사고로 차량 부족이 우려되어, 같은 해 8월 1일부터 일부 열차가 103계로 운행되었으며, 이는 321계 운행 시작 전날인 11월 30일까지였다.[59] 12월 1일부터 321계 운행이 시작되어 201계, 205계 교체가 이루어졌다.[59] 2006년 2월 7일까지 205계는 전 편성 28량이 한와선 (히네노 전철구)으로 전출되었다.[59] 201계는 오사카 순환선이나 사쿠라지마선 (JR 유메사키선)용으로 모리노미야 전철구에 8량 16개 편성 128량이, 6량 16개 편성 96량이 야마토 노선용으로 나라 전철구에 전속되었다.[59] 그 결과, 2007년 3월 18일 개정부터는 207계와 321계만으로 운행하게 되었다.[59] 205계는 2011년 3월 12일부터 아침 교토역・타카츠키역 - 오사카역 - 아마가사키역 간 운행이 부활했지만[74], 2013년 3월 16일 개정으로 다시 사라졌다[75]。2006년 3월 18일 다이어그램 개정에서는 수송 실태에 맞춰 낮 시간 니시 아카시역 발착 계통 절반이 스마역 발착으로 변경되었고, 오미마이즈역 야간 숙박과 오쿠보역 발착 열차도 폐지되었다.[59] 이로 인해 낮 시간 스마역 - 니시 아카시역 간은 1시간 운행 횟수가 8회에서 4회로 줄었다.[59] 2008년 3월 15일 개정에서는 스마역 발착 계통 절반이 니시 아카시역 발착으로 연장되어 한때 1시간에 6회로 늘었지만,[59] 2010년 3월 13일 개정으로 다시 1시간 4회로 줄었다.[59]
JR 교토선・비와코선・코세이선에서도 2010년 3월 개정으로 타카츠키역 - 교토역 간이 낮 시간 1시간 4회에서 2회로 줄었고,[59] 2011년 3월 12일부터는 아침 1왕복이 스이타역 회차로 변경되었다.[59] 2013년 3월 16일 개정에서는 낮 시간 교토역 발착 열차가 토, 휴일 11시대・12시대에 각각 4회로 늘었지만, 평일 11시대부터 14시대 및 토, 휴일 13시대와 14시대 열차는 폐지되었다[75]。 야스역 발착 열차도 같은 개정으로 일단 폐지되었다[14]。 2016년 3월 26일 개정에서는 코세이선과의 직통[76]이 종료되었지만, 야스역 발착 열차가 교토 발 최종[77] 비와코선 내 열차로 3년 만에 쿠사츠 이동 열차가 부활[78]했다. 그러나 2021년 3월 13일 개정으로 종착 열차가 앞당겨지면서 열차와 함께 폐지되었다 (아침 러시아워 쿠사츠 도착 열차 및 야스까지 회송, 회차 교토까지 회송은 지속).[59]
한편, 신역 개업이 이어져, 2007년 3월 18일 사쿠라슈쿠가와역,[59] 2008년 3월 15일 시마모토역과 스마 해변 공원역,[59] 10월 18일 카츠라가와역,[59] 2016년 3월 26일 마야역,[59] 2018년 3월 17일 JR 소지 사찰역이 각각 개업했다.[59]
5. 사용 차량
게이한신 완행선에는 현재 207계와 321계 전동차가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72계 전동차 투입을 두고 국철 본사와 오사카 철도 관리국 사이에 인식 차이가 있었다. 국철 본사는 게이한신 완행선과 수도권의 게이힌 도호쿠 선을 비슷하게 보았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었다. 게이힌 도호쿠 선은 도쿄 도심을 종관하지만, 게이한신 완행선은 고베 시내를 횡단하는 정도였다. 또한, 게이한신 완행선 주변은 당시 도시화가 덜 진행되어 공장과 전원 지대가 많았다.
이러한 노선 특성 때문에 게이힌 도호쿠 선은 롱 시트차 위주였지만, 게이한신 완행선은 3도어 세미 크로스 시트차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게이한신 완행선은 한큐 교토선, 고베선, 한신 본선, 산요 전철 본선 등과 경쟁해야 했고, 이들 노선은 우수한 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 한큐: P-6(100계), 920계, 710, 810계, 1010, 1300계, 고베선 2000, 교토선 2300계 등
- 한신: 3011형, 3301·3501형, 7801형, 제트카(5001형, 5101·5201형 등)
- 산요: 820·850계, 2000계, 250계, 270계, 300계, 700계, 2700계, 3000계 등
게이한신 완행선은 72계로는 경쟁력이 부족했고, 1962년에는 고베 고속 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오사카 철도 관리국은 70계를 투입하려 했지만, 3도어 크로스 시트차로는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결국 72계를 대량 투입하고, 51계를 일부 유지하여 크로스 시트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다. 또한, 쾌속 열차에도 113계 전동차가 투입되었다.
5. 1. 현재 차량
2013년 3월 17일 이후 최고 속도 120km에 대응하는 207계, 321계로 통일되었다.[1][2]- 207계 (1994년 3월 1일 ~ )
- 321계 (2005년 12월 1일 ~ )
5. 2. 과거 차량
- 40계 (1943년 ~ 1976년)
- 42계 (1934년 ~ 1950년)
- 51계 (1936년 ~ 1976년)
- 52계 (1943년 ~ 1950년)…기간은 1942년 급전 폐지 후부터 한와선 전출 시까지.[1]
- 70계 (1951년 ~ 1971년)
- 72계 (1944년 ~ 1976년)…이 중에는 구 63계, 후의 쿠모하 31, 쿠모하 32의 양 형식 및 쿠하 79형의 4도어 개조차 (구 쿠하 85형)를 포함한다.[2]
- 103계 (1969년 ~ 1994년 3월 28일, 2005년)… 후쿠치야마선에서 운행하는 차량 제외.[3]
- 201계 (1983년 2월 ~ 2007년 3월 17일)[4]
- * 2003년 이후 내외장 체질 개선 공사가 이루어져 외관과 내장이 크게 변화했다. 2005년 12월부터 도입된 321계에 의해 서서히 대체되어 2007년 3월 17일 완행선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철수 후에는 모리노미야 전철구(현 스이타 종합 차량소 모리노미야 지소)와 나라 전철구(현 스이타 종합 차량소 나라 지소)에 전속되어 각각 도색을 변경하여 오사카 순환선과 야마토 노선에서 사용되었다. 오사카 순환선에서는 스카이블루 도색 그대로 운용된 편성도 있었지만, 후년에 오렌지 버밀리언으로 통일되었다.[4]
- 205계 0번대 (1986년 ~ 2006년 2월 7일, 2011년 3월 14일 ~ 2013년 3월 16일)[5]
- * 차체에 청24호 띠를 두르고 있었다. 재적 편성 수는 4개뿐이어서 보기 드문 기회였지만, 321계 도입으로 201계보다 1년 빠른 2006년 2월에 운용에서 철수했다. 철수 후에는 히네노 전철구(현 스이타 종합 차량소 히네노 지소)에 전속되어 띠는 스카이블루 그대로 한와선에서 사용되었다. 2011년 3월에 다시 복귀하여 띠도 321계와 동일하게 변경되어 평일 아침 교토 - 아마가사키 간 한정 운용에 종사했지만, 2013년 3월 16일 다이어 개정으로 다시 철수하여 한와선에 재전속되었다. 완행선에서의 한정 운용 시기에 체질 개선 공사가 이루어졌다.[5]
참조
[1]
간행물
複々線を探る 複雑な多線区間 東海道・山陽本線 草津-西明石間
交友社
2001-02-01
[2]
간행물
東海道・山陽本線の複々線区間
交友社
2010-05-01
[3]
서적
103系物語 戦後日本の高度成長を支えた通勤型電車
JTBパブリッシング
2012-07-01
[4]
서적
103系メモリアル
交通新聞社
2014-01-08
[5]
서적
昭和60年代の国鉄通勤電車
双葉社
2017-01-28
[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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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
[7]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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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8
[8]
간행물
京阪神で一番速い電車の半世紀
鉄道ジャーナル社
1987-11-01
[9]
문서
宮原区電車運用表 1949年9月15日改正
鉄道史料103号
[10]
간행물
特集:究極の標準形通勤電車103系
交友社
2001-02-01
[11]
서적
昭和60年代の国鉄通勤電車
双葉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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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간행물
103系電車 新製車のあゆみ
電気車研究会
2018-01-01
[13]
뉴스
東海道本線・山陽本線(米原-岡山)時刻頁
交通新聞社
2012-03-01
[14]
뉴스
東海道本線・山陽本線(米原-岡山)時刻頁
交通新聞社
2013-03-01
[15]
문서
ただし、同区間を全線運行する電車はない([[#運行形態|後節]]を参照)
[16]
문서
主な駅のご案内 京都駅のりば案内
日本交通公社
[17]
문서
主な駅のご案内 京都駅のりば案内
日本国有鉄道
[18]
문서
主な駅のご案内 京都駅のりば案内
日本交通公社
[19]
웹사이트
JR西日本路線図:停車駅案内:JR京都線・JR神戸線・JR宝塚線・JR東西線・学研都市線
https://www.jr-odeka[...]
[20]
문서
(前略)その客層は土地がら、比較的豊かな人たちであったように思う。その豊かな一例として、この通勤列車でも二等車を一輌半連結していて、(後略)
53号掲載の「戦前の鉄道の思い出雑記 その1」内
[21]
문서
このころには三等車の背ずりも布張りに変更
[22]
문서
このときは横須賀線と京阪神間の急電は除外された。
[23]
문서
ただし、急行編成は除く。
[24]
문서
後にモハ64028を経て最終はクモハ31002
[25]
문서
元クロハ59022の改造で、とりあえずクハ55の連番として出場。クハ85026を経て最終はクハ79056
[26]
문서
モハ42の4扉改造車はモハ42のままモハ32(2代目)に改番
[27]
문서
後には宮様の[[千葉陸軍戦車学校|戦車学校]]通学に伴い[[中央・総武緩行線]]に転属
[28]
문서
現在の[[川崎重工業|川崎重工]]明石工場、当時は陸軍の戦闘機[[三式戦闘機|「飛燕」]]などを製造していた。
[29]
문서
[[1946年]][[2月1日]]から一般客の取扱いも開始。
[30]
문서
流電や半流モハ43のサハも含む
[31]
문서
63系をトレードした[[大阪環状線|城東]]・[[桜島線|西成線]]には、サロハ66改造のサハ78や、クハ47改造のクハ85が転入している。
[32]
문서
通常はニス塗り
[33]
문서
当時の普通二等車は青色
[34]
문서
正真正銘の「電車の特ロ」は、1958年に[[国鉄151系・161系・181系電車|151系]]特急型電車の2等座席車[[国鉄151系・161系・181系電車#151系の形式|サロ151形]]で実現。
[35]
문서
ただしこのころの横須賀線は通勤路線との位置付けであって、セミクロス車が走るからといっても近郊路線ではない。
[36]
문서
上郡駅 - 倉敷駅、岡山駅 - 宇野駅間
[37]
문서
主に準急「比叡」などの153系化によって捻出された300番台車が多かった。
[38]
문서
日中時間帯を中心に4両運行が残っていたため、全列車の7両統一は1972年3月15日
[39]
문서
阪神武庫川線への貨物線跡地を転用
[40]
문서
結局モーターの耐寒耐雪改造の関係でモハ70となる
[41]
문서
流電用サハ48の3扉改造のサハ58も含む
[42]
문서
この中には、一度京阪神緩行線から転出した車両や京阪神緩行線唯一の70系300番台全金属車であるクハ76305が含まれていた
[43]
문서
サハ58は岡山に転出
[44]
문서
日中の着席サービスとラッシュ時の混雑緩和のどちらを優先順位とするかの問題であるが、1960年代は輸送人員の多い(つまり関連する乗客の多い)ラッシュ輸送の改善を第一にすることを優先して進めていた。なお昭和37年度鉄道統計年報によると年間200万人以上の定期通過人員を有する駅は茨木駅 - 垂水駅間の各駅であった。
[45]
문서
鉄道ピクトリアル1964年4月号に昭和38年11月現在の混雑率が掲載されており、快速・緩行ともに300%前後の数値となっているほか、同号には塚本駅に停車中の4扉通勤車の乗降シーンの写真もあり、ドアからはみ出した乗客の姿から4扉でも乗車するのが困難な状況を物語っている。その状況では3扉セミクロスシート車が通勤輸送に適さないことは明確であり、4扉ロングシート化はラッシュ改善に早急に求められていた。
[46]
문서
阪急2800系電車・京阪1900系電車など
[47]
논문
大阪付近電車輸送の将来
交友社
1960-02-01
[48]
논문
昭和39年度電車配属希望打ち合わせ会議が行われた
1963-09-01
[49]
논문
国鉄通勤形電車の最近の動き
電気車研究会
1964-04-01
[50]
논문
大阪国電の現状とその将来について
電気車研究会
1964-04-01
[51]
서적
関西国電略年史
1982-09-01
[52]
논문
究極の標準形通勤電車
交友社
2006-05-01
[53]
서적
電車・気動車加速力曲線
国鉄運転局
1966-01-01
[54]
논문
京浜東北線にはどのような性能の車両がよいか
交友社
1965-06-01
[55]
문서
実際の運行計画を立てるに当たっては、消費電力量なども要素として重要であり、車両設計事務所の川添氏は鉄道友の会会誌にて京阪神緩行線などは113系のような車両が適していると思われるが消費電力量を計算すると103系の方がメリットがある点に触れている。速度を高めるには力行時間が長くなるため相応の電力を消費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むやみやたらと高速で走れば良いという物でもなく、到達時間と消費電力量などバランスの取れた運行計画を立てることになるが、その運行計画上103系は駅間距離4 kmなどであっても他系列よりも運転時分や消費電力量では有利であった。(参考:RAILFAN1986年1月号・電気車の科学1975年1月号)。
[56]
문서
1972年3月改正で草津駅 - 高槻駅間は95 km/hから110 km/hに、高槻駅 - 神戸駅間は95 km/hから100 km/hに最高速度が引き上げられている
[57]
문서
改正により京都駅 - 神戸駅は90 km/hから95 km/hに引き上げられたが、103系の投入により京都駅 - 神戸駅は95 km/hから100 km/hに引き上げられた
[58]
문서
吹田駅 - 甲子園口駅間では6本が8本に増発された。
[59]
문서
中でもクモハ51010は中央線投入組の生き残りで、新造時のままのガーランドベンチレーター装備車であったほか、残りの3両 (51028, 51038, 51056) はモハ51形として新製されて以来、京阪神緩行線の生え抜きであった。
[60]
문서
なかには1958年に製造された最初期の車両さえ含まれていた。
[61]
문서
高速域から回生ブレーキを使えるというやや無理な要望が盛り込まれた車両であったが、搭載されたMT60型モーターが150kWと高出力であり、電機子チョッパ制御装置も将来近郊用に使用することを想定して開発されたものであったために、総体として高い高速性能を持っていたほか、台車も空気ばねでシュリーレンタイプのDT46系台車を装備して、103系のDT33系台車に比べて乗り心地(特に高速域)も良く、図らずして京阪神緩行線の特色に見事にフィットした車両となった。
[62]
문서
このとき置き換えられた103系は、スカイブルーのまま片町線・関西本線に投入されたほか、余ったT車は阪和線に投入されて快速の8両化に充当された。また、一部の編成は運用ごと明石電車区に転属して、高槻電車区の配置は201系のみとなった。
[63]
문서
このときの103系捻出車は冷房車だけでなく1次改良車の非冷房車も含まれており、冷房改造して転出した編成と非冷房のまま転出した編成があった。また、余剰のT車は浦和電車区・松戸電車区など首都圏の電車区に移籍している。
[64]
문서
201系の増備はこれをもって中止され、その後はステンレス車体で界磁添加励磁制御の205系に移行した。
[65]
문서
ただし、その代償として新快速の大阪駅 - 三ノ宮駅間の運転時分は2 - 3分遅くなっている。分割運行のボトルネックになる部分は大阪駅 - 芦屋駅間であり、この区間は103系電車が有利とされる駅間平均距離3 - 4 kmの区間である。
[66]
문서
この非冷房編成は翌年に阪和線ATS-P化のために日根野配属の非冷房車とトレードされることになったが、このとき転入した編成は普通電車用車両初の全車中古編成で、M'M2ユニットとT、西明石側のTcは山手線からの流れ組、京都側のTcはクハ101改造のクハ103-2052という中古車揃いだった。
[67]
문서
営業運行を外された非冷房編成はしばらく訓練車として使用されたが、後にM'M2ユニットはWAU102冷房改造と延命NB工事を実施、TとTcは廃車された。
[68]
문서
1993年には207系が投入されたJR宝塚線から高運転台Tcの編成が転入、中間車を差し替えて先頭車とM'Mユニットは広島に転属して、普通電車用としての103系の最後の活躍に花を添えた。
[69]
문서
このとき捻出された103系は、岡山電車区・広島運転所・奈良電車区に転出、古い非冷房の113・115系を置き換えた。
[70]
뉴스
神戸-須磨間の運転本数が倍に JR西日本に
交通新聞社
1996-06-11
[71]
문서
高槻駅 - 京都駅間の各駅では、この区間で各駅に停車する快速とあわせて、実質的に運行本数が増えた。
[72]
웹사이트
アーバンネットワーク秋のダイヤ改正について
https://web.archive.[...]
西日本旅客鉄道
1997-07-18
[73]
웹사이트
平成10年秋 ダイヤ改正について(アーバンネットワーク)
https://web.archive.[...]
西日本旅客鉄道プレスリリース
1999-07-31
[74]
문서
この時に外部の帯色は321系に準じたものに一旦変更されたが、2013年の阪和線への再転出後は元の帯色に戻された。
[75]
PDF
平成25年春ダイヤ改正について
http://www.westjr.co[...]
西日本旅客鉄道近畿統括本部プレスリリース
2012-12-21
[76]
문서
夕方と夜間の西明石発近江舞子行き、朝ラッシュ時の堅田発西明石行き。その間合いで夜間から深夜に掛けての湖西線内の一部列車に京阪神緩行線車両の運用が存在していた(そのうちの一部は湖西線内を回送で運転)。
[77]
문서
0時34分発。JR西日本の京都 - 南草津駅間の駅設置の時刻表ではこの列車と朝ラッシュ時のピーク時に運転される草津直通の緩行線列車(この列車は草津到着後野洲に回送し、夕方ラッシュ時開始直前に野洲から京都まで回送され京都から緩行線の営業列車となる)の各1本、草津 - 守山駅間の駅設置の時刻表ではこの列車のみ女性専用車がある旨が記載されている。
[78]
문서
復路は翌日早朝に野洲から京都まで回送で運転。
[79]
문서
通過する列車は"M"
[80]
문서
1964年9月30日までは尼崎駅での折り返し
[81]
문서
『京阪神からの旅行に便利な交通公社の時刻表』(日本交通公社関西支社編)1957年1月号に掲載された1956年11月19日改正の神戸駅時刻表によると、朝夕に約20分間隔で住吉行・鷹取行の列車が設定されている。1957年11月号(1957年10月1日改正時刻)では消滅している。
[82]
문서
51系の場合は、中央扉の前位(神戸寄り)に設置。
[83]
문서
ごくまれにではあるが、更新修繕後も行先表示幕窓を残した車両があった。
[84]
문서
『関西国電50年』には、1950年8月に尼崎駅で撮影されたクハ55107(元サロハ46形改造のクロハ59形を戦時中に3扉改造したもので、クロスシート改造後はクハ68107。掲載当時は連合軍専用車から変更された2等車として運用中)の写真が掲載されており、年代としては早期の部類に属する。
[85]
문서
明石行そのものの運行本数が少なかったことから、現存する写真がきわめて少なく、入手・閲覧が容易なものは『鉄道ピクトリアル』2011年6月増刊号(P95)掲載のものが現時点で唯一のものであるといえる。しかもこの写真は、営業運行中のモハ32(モハ42の4扉改造車)を写した、二重の意味で貴重なものである。
[86]
문서
1969年に転入した全金属改造車のクモハ73900,902やクモハ73形鋼体改造車のうち、前面行先表示器を設置したもの。
[87]
문서
京阪神緩行線に限らず、関西国電では大阪環状(城東・西成)、片町、阪和の各線においても72系前面行先表示器設置車両の表示器を使用せず、行先表示板の掲示を継続している。
[88]
문서
『鉄道ピクトリアル』2003年5月号に、京都駅における行先表示板交換の写真が掲載されているが、片足をプラットホームに預け、もう片足を連結器の上に乗せて、重いホーロー板の表示板を交換していることから、かなり危険な作業であることがうかがえる。
[89]
문서
新旧表示板の切り替え時期については、1963年中に新旧両タイプの行先表示板を掲示している写真が残されていることから、具体的な切り替え時期については不明。
[90]
문서
51系が転出した岡山地区においても、同じデザインの行先表示板が使用されている。
[91]
문서
この時期においても72系前面行先表示器設置車両の表示器は使用されていない。
[92]
문서
この時期101・103系といった新性能車と旧型車が混在していた片町、阪和の各線では、101・103系は前面行先表示器を使用し、旧型車は行先表示板を掲出していた。
[93]
문서
201系や205系を含む。
[94]
문서
なお、103系の「普通」表示は、紺地に白字と白地に黒字の2種類があった。
[95]
문서
クハ205-35の編成。
[96]
뉴스
205系が東海道・山陽緩行線で運用開始
http://railf.jp/news[...]
交友社
2011-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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