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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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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소설가로,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와의 갈등과 조화를 탐구하며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묘사한 작품들을 남겼다. 1955년 아쿠타가와상, 1966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1980년 노마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5년에는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대표작으로는 《침묵》, 《바다와 독약》, 《깊은 강》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기독교를 일본의 정신적 풍토에 맞게 재해석하려 했으며, 말년에는 종교 다원주의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또한 '호리안 산인'이라는 필명으로 수필가로도 활동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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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66년의 엔도 슈사쿠
1966년 엔도 슈사쿠
본명엔도 슈사쿠 (遠藤 周作)
출생1923년 3월 27일
출생지도쿄부기타토시마군니시스가모마치(현 도쿄도도시마구기타오쓰카)
사망1996년 9월 29일
사망 장소도쿄도신주쿠구시나노마치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
국적일본
직업소설가, 수필가, 문예평론가, 극작가
장르소설, 수필, 문예평론, 희곡
주제기독교
사조제3의 신인
학력
학사문학
출신 학교게이오기주쿠 대학불문학과
작품 활동
활동 기간1953년 - 1996년
주요 작품『하얀 사람』 (1955년)
『바다와 독약』 (1958년)
내가 버린 여자』 (1964년)
『침묵』 (1966년)
『예수의 생애』 (1973년)
『그리스도의 탄생』 (1978년)
『사무라이』 (1980년)
『깊은 강』 (1993년)
수상
수상 내역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상(1955년)
신초샤 문학상(1958년)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1958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1966년)
요미우리 문학상(1979년)
일본 예술원상(1979년)
노마 문예상(1980년)
마이니치 예술상(1994년)
문화훈장(1995년)
가족
배우자준코 엔도 (1955년 결혼)
자녀엔도 류노스케(장남)
친척엔도 쓰네히사(아버지)
엔도 쇼스케(형)
오카다 고자부로(장인)

2. 생애

엔도 슈사쿠는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만주 다롄에서 보냈다.[2] 1933년 부모의 이혼 후 어머니와 함께 고베로 돌아와 1935년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4][3] 게이오기주쿠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으며,[4]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학업이 중단되고 군수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다.[3]

1950년 전후 첫 프랑스 유학생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리옹 대학교에서 프랑수아 모리아크 등 가톨릭 작가들을 연구했다.[4][8][6] 1953년 귀국 후, 1955년 소설 『하얀 사람』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7] 그는 '제3의 신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55년 오카다 준코와 결혼하여[2][7] 이듬해 아들 류노스케를 얻었다.[7][8]

1954년 다른 일본 문인들과 함께 앉아있는 엔도, 왼쪽 끝


엔도는 조치 대학세이조 대학 등에서 강의하기도 했으나,[3][5] 주로 소설가로서 활동하며 기독교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세계 사이의 갈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바다와 독약』, 『침묵』, 『사무라이』, 『깊은 강』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높이 평가받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특히 그레이엄 그린의 지지를 받았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거론되었다.

평생 폐결핵, 흉막염 등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았으며, 여러 차례의 대수술과 오랜 투병 생활을 겪었다.[7][3][5][9] 1960년대 초 요양을 위해 마치다시 다마가와 학원으로 이사한 후에는 '고리안 산진'(狐狸庵山人)이라는 아호를 사용하며 유머러스한 에세이를 다수 집필하기도 했다. 그는 장난기 많은 성격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아마추어 극단 '키자'나 바둑 모임 '우주 기원'을 만드는 등 문학 외적으로도 독특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자신의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활동에도 참여했으며, 일본 기독교 예술 센터 설립 등에도 기여했다.

1995년 문화훈장을 수훈했으며,[5] 1996년 9월 29일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에서 간염 합병증으로 인한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8]

2. 1. 유년 시절과 가톨릭 세례

1923년 3월 27일, 도쿄부 기타토요시마군 니시스가모정(현 도쿄도 도시마구 기타오쓰카)에서 은행원인 아버지 엔도 쓰네히사(遠藤常久)와 도쿄 음악학교 학생이던 어머니 아사히(郁)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58] 아버지 쓰네히사는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이던 1920년에 아사히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고, 1921년 장남 쇼스케가, 2년 뒤 슈사쿠가 태어났다.

엔도 가문은 본래 돗토리현 아사쓰촌(현 유리하마정)에 거주하며 에도 시대에는 돗토리번 번주 이케다 가문의 어의(御典医, 번의 전속 의사)를 지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개업의를 했다.[59] 슈사쿠의 할아버지뻘인 엔도 가쓰잔(遠藤河津三)은 아들이 없어 돗토리시 출신의 쓰네히사를 양자로 들였다.[61] 어머니 아사히는 오카야마현 가사오카시 출신으로, 지역 토호(土豪)였던 다케이토(竹井党)의 후손이다.

1926년 아버지의 전근(제삼은행에서 야스다 은행)으로 가족은 만주 관동주다롄으로 이주했다.[2] 1929년 엔도는 다롄 시의 대광장소학교(大広場小学校)에 입학하였다. 이 시기 어머니가 손끝에 피가 맺히도록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모습이나 만주인 가정부에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며 존경심을 느꼈으나, 공부 잘하는 형 쇼스케와 비교하는 아버지의 설교 때문에 강렬한 열등감을 품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쓴 작문 「도죠」(どじょう, 미꾸라지)가 다롄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1932년 무렵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 사이가 나빠지면서 엔도는 어두운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33년, 엔도가 10살 때 부모는 결국 이혼했다(정식 이혼은 1937년이며, 직후 아버지는 어머니를 자신의 아버지 엔도 가쓰잔의 양딸로 입적시켰다).[3] 몇 달 후 아버지는 16살 연하의 여성과 재혼했다.

엔도는 어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돌아와 효고현 고베시에 있는 백모(어머니의 언니)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3] 같은 해 8월 롯코 소학교로 전학했다. 이 무렵 백모의 영향으로 니시노미야시에 있는 가톨릭 슈쿠가와 교회 성 테레지아 대성당에 가족들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고, 가톨릭 교리를 배우며 교회 근처로 이사했다.

1935년 사립 나다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같은 해 5월 29일, 다카라즈카시의 고바야시 세이신 여자 학원 음악 교사가 된 어머니가 먼저 세례(세례명 마리아)를 받았고, 6월 23일 엔도와 형 쇼스케도 슈쿠가와 교회 성 테레지아 대성당에서 함께 세례를 받았다.[4][3] 엔도의 세례명은 바오로(Paul)였다. 세례 계기에 대해서는 이혼 후 가톨릭으로 개종한 어머니의 영향이라는 설[2]과 백모의 영향이라는 설[8]이 있다.

형 쇼스케의 도움으로 나다 중학교 입학 초기에는 우수한 학생이었으나, 영화와 독서를 좋아하고 장난기가 많아 점차 성적이 떨어져 졸업 때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에도 시대의 골계본(滑稽本, 해학 소설)을 좋아했으며, 특히 짓펜샤 잇쿠의 『도카이도주히자쿠리게』(東海道中膝栗毛)에 빠져 주인공 야지키타(弥次喜多)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1939년 가족은 니시노미야시 니카와(仁川)로 이사했다. 이 무렵 어머니는 독일인 선교사 페터 헤르초크(Peter J. Herzog, 일본명 호시이 이와오 星井巌) 신부를 만나 종교적, 정신적 지지를 얻었고, 새로 지은 집의 음악 강습소를 성경 강좌나 미사 장소로 개방하기도 했다.

2. 2. 학창 시절과 문학적 출발

엔도 슈사쿠는 1923년 도쿄에서 태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과 함께 만주 다롄으로 이주했다.[2] 다롄시 다이코히로바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부모의 관계 악화로 어두운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33년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 이쿠(郁子)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와 고베시의 롯코 초등학교로 전학했고, 백모(이쿠의 언니)의 집에서 살았다.[3] 이 시기 백모의 영향으로 니시노미야시의 가톨릭 슈쿠가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1935년 6월 23일, 형 쇼스케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엔도의 세례명은 바오로였다.[4][3]

1935년 나다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영화와 독서에 빠져 성적은 점차 하락했다. 특히 십반사 잇쿠의 『도카이도 중 무릎 굽기』에 열중했다. 1939년에는 형 쇼스케의 영향으로 제삼고등학교에 응시했으나 실패했고,[62] 이후에도 여러 차례 구제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했다. 1940년 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생활을 시작했다.

1941년 4월, 조치 대학 예과 갑류(독일어)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1942년 2월에 퇴학했다.[63] 계속된 입시 실패와 더불어 이 무렵 폐병을 앓고 각혈까지 했다. 어머니에게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한 엔도는, 당시 체신성에서 근무하던 형 쇼스케의 중개로 아버지 쓰네히사(常久)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엔도에게 구제 고등학교나 의학부 예과 진학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엔도는 의학부 예과 시험에 모두 떨어지고 결국 아버지 몰래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예과에 응시하여 보결로 합격했다. 1943년 4월 입학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격노하여 엔도와 의절했다.

생활 기반을 잃은 엔도는 친구 도시미쓰 마쓰오(利光松男)의 집에 의탁하며 가정교사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후 철학자 요시미쓰 요시히코가 사감으로 있던 가톨릭 학생 기숙사 '흰 비둘기 기숙사'(白鳩寮)에 들어갔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엔도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요시미쓰의 영향으로 자크 마리탱을, 친구 마쓰이 요시히로(松井慶訓)를 통해 릴케 등을 접하며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또한 요시미쓰의 소개로 문학평론가 가메이 가쓰이치로, 소설가 호리 다쓰오 등과 교류하며 큰 영향을 받았다. 특히 호리 다쓰오와의 만남은 엔도가 맹렬하게 독서에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격화되면서 학업은 중단되었고, 엔도는 가와사키의 군수 공장에서 근로 동원으로 일해야 했다. 프랑스 문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던 그는 1945년 4월, 사토 사쿠(佐藤朔)가 강사로 있던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불문과로 진학했다. 그러나 전쟁의 참화는 계속되어 도쿄 대공습으로 흰 비둘기 기숙사가 소실되었고, 엔도 자신도 징병검사에서 제1을종 판정을 받았으나 늑막염으로 입대가 연기되던 중 종전을 맞았다.

종전 후 대학으로 돌아온 엔도는 조르주 베르나노스, 프랑수아 모리아크 등 프랑스 가톨릭 문학에 심취했다. 대학 선배인 소설가 야스오카 쇼타로와도 교류를 시작했다. 1946년 엔도가 불문과에 진학한 것을 알게 된 아버지 쓰네히사는 태도를 누그러뜨려 의절을 거두었고, 엔도는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다.

1947년 12월, 첫 평론 「신들과 신과」(神々と神と)가 진사이 기요시(神西清)의 인정을 받아 가도카와 서점의 잡지 『사계』(四季)에 실리면서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사토 사쿠의 추천으로 『미타 문학』에 「가톨릭 작가의 문제」(カトリック作家の問題)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평론 활동을 시작했고, 『미타 문학』과 『고원』(高原) 등 여러 문학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1948년 말에는 『미타 문학』의 동인이 되어 시바타 렌자부로, 하라 타미키, 호리타 젠에이 등과 교류했다.

1948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불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논문 주제는 「네오 토미즘에서의 시론」이었다. 쇼치쿠 오후나 촬영소의 조감독 시험에 응시했으나 불합격했다.[64] 이후 사토 사쿠의 소개로 가마쿠라 문고에서 촉탁으로 잠시 일했고, 페터 헤르초크 신부가 주관하는 잡지 『가톨릭 다이제스트』의 편집 작업에 참여했다. 같은 해 첫 희곡 「사울」(サウロ)을 집필했다.

1950년 6월, 전후 일본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프랑스로 떠났다.[6] 리옹 대학교에서 1953년까지 수학하며 프랑수아 모리아크 등 프랑스 가톨릭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심화했다.[4][8] 유학 중 건강이 악화되어 1952년 파리에서 흉막염을 앓았고,[3] 결국 1953년 귀국했다.

귀국 후 작가로서 빠르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4년 처녀 소설 『아덴까지』(アデンまで)를 『미타 문학』에 발표했고, 같은 해 프랑스 유학 경험 등을 바탕으로 쓴 소설 『하얀 사람』(白い人)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확고히 자리 잡았다.[7]

2. 3. 작가로서의 성장과 질병과의 투쟁

1950년 6월 4일, 엔도 슈사쿠는 프랑스 가톨릭 문학 연구를 위해 전후 첫 프랑스 유학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갔다. 프랑스 국적선 마르세예즈 호로 요코하마 항을 출발, 7월 5일 마르세유에 도착했으며, 9월에 리옹 대학교에 입학하여 현대 프랑스 가톨릭 작가들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켰다.[4][8] 유학 중 평론과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을 『군상』, 『가톨릭 다이제스트』 등에 발표했다. 1951년 여름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의 무대인 프랑스 남서부 랑드 지방을 여행하기도 했으나, 1952년 초여름 폐결핵 발병과 흉막염으로[3] 각혈하며 건강이 악화되었다. 콩블루 요양소와 파리 주르당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병세 악화로 학업과 박사 논문을 포기하고 1953년 2월 일본으로 귀국해야 했다.

귀국 후에도 건강은 좋지 않았지만, 1953년 7월 유학 시절 에세이를 모은 『프랑스의 대학생』을 하야카와 서방에서 출간하며 비평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어머니 아사히가 뇌출혈로 급사하는 슬픔을 겪었다. 1954년 4월부터 분카 학원 강사로 일했고, 야스오카 쇼타로의 소개로 '구상회'(構想の会)에 참여하며 코지마 노부오, 곤도 게이타로, 쇼노 쥬조, 미우라 슈몬, 요시유키 준노스케 등 '제3의 신인' 작가들과 교류했다.

제3의 신인의 면면. 왼쪽부터 요시유키 준노스케, 엔도 슈사쿠, 곤도 게이타로, 쇼노 준조, 야스오카 쇼타로, 코지마 노부오.


1954년 말 첫 소설 「아덴까지」를 발표했고, 이듬해인 1955년 7월 소설 「하얀 사람」으로 제33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7] 같은 해 9월, 오카다 준코와 2년 반의 교제 끝에 결혼했다.[2][7] 교제 초기 장인 오카다 고자부로는 엔도의 문학적 배경과 건강 문제("폐에 병이 있다") 등을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으나, 엔도의 문장을 높이 평가한 불문학자 고바야시 마사시의 설득으로 성사되었다. 결혼 후 잠시 처가에서 지내다 세타가야 마쓰바로 이사했으며, 1956년 6월 장남 류노스케가 태어났다.[7][8] 같은 해 조치 대학 문학부 강사직을 맡았다.[3]

1957년 규슈 대학 생체 해부 사건을 다룬 소설 「바다와 독약」을 발표하며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65] 이 작품은 일부로부터 "일본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비난과 함께 혈서, 협박장, 심지어 일본도가 배달되는 등 강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바다와 독약』은 1958년 4월 출판되어, 12월에 제5회 신초샤 문학상과 제12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58년 9월 말, 이토 세이, 가토 슈이치, 노마 히로시 등과 함께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참석차 소련으로 건너가 타슈켄트 회의에 참석하고 12월 귀국했다. 같은 해 제6차 미타 문학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26] 1959년 11월에는 마르키 드 사드 연구를 위해 아내와 함께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예루살렘 등을 여행하고 1960년 1월 귀국했다.

그러나 귀국 직후인 1960년 4월 폐결핵이 재발하고[5] 흉막염도 다시 발병하여[3] 오랜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도쿄 대학 전염병 연구소 병원을 거쳐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으로 옮겨 1961년 세 차례에 걸쳐 폐 수술(흉곽성형술 포함[9])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폐 일부를 절제했다.[7] 위험도가 높았던 세 번째 수술 전날에는 어느 문병객이 가져온 종이 후미에를 보았다고 전해지며, 수술 후 한때 위독한 상태에 빠졌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긴 투병 끝에 1962년 5월 퇴원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평생 여러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7]

이러한 질병과의 싸움 속에서도 엔도는 『침묵』(1966), 『사무라이』(1980), 『깊은 강』(1993) 등 대표작들을 집필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다. 1967년에는 세이조 대학에서 소설 이론 강사 역할을 맡았고,[5] 1968년에는 미타 문학 편집장이 되었다.[5] 1993년에는 복막 투석 수술 후 다시 위독 상태에 빠졌다가 회복했으며, 1995년에는 뇌출혈로 입원하기도 했다. 같은 해 문화훈장을 수훈했다.[5] 1996년 4월 신장병 치료를 위해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9월 29일 간염 합병증으로 인한 폐렴 및 호흡 부전으로 사망했다.[8]

2. 4. 대표작 《침묵》과 문학적 성취

1966년 엔도 슈사쿠는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소설 『침묵』(沈黙|친모쿠일본어)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그는 제2회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谷崎潤一郎賞)을 수상했다.[66]

1973년에는 『사해의 언저리』(死海のほとり|시카이노 호토리일본어)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다룬 평전 『예수의 생애』(イエスの生涯|이에스노 쇼가이일본어)를 발표했으며, 1978년에는 또 다른 예수 평전인 『그리스도의 탄생』(キリストの誕生|키리스토노 탄조일본어)을 내놓았다. 이 작품으로 제30회 요미우리 문학상(読売文学賞) 평론·전기상을 수상했다.

1979년에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그린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マリー・アントワネットの生涯|마리 안토와네토노 쇼가이일본어)를 발표했다.

1980년에는 하세쿠라 쓰네나가를 소재로 한 소설 『사무라이』(侍|사무라이일본어)를 발표하여 제33회 노마 문예상(野間文芸賞)을 수상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무공야화》(武功夜話|부코야와일본어)[67]를 바탕으로 한 소설들을 연재했는데, 『반역』(反逆|한갸쿠일본어, 요미우리 신문 연재, 1988년 1월 26일 - 1989년 2월 7일), 『결전의 때』(決戦の時|겟센노 토키일본어, 산요 신문 등 연재, 1989년 7월 30일 - 1990년 5월 31일), 『남자의 일생』(男の一生|오토코노 잇쇼일본어, 니혼게이자이신문 연재, 1990년 9월 1일 - 1991년 9월 13일)이 그것이다. 이 세 작품은 엔도 슈사쿠의 전국 3부작(戦国三部作|센고쿠 산부사쿠일본어)으로 불린다.

1993년에는 후기 대표작 중 하나인 『깊은 강』(深い河|후카이 카와일본어)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첫 부분에서 공시성(共時性) 개념을 언급하는데, 엔도는 1992년 8월 아사히 신문에 연재한 수필 「만화경」(万華鏡|만게쿄일본어)의 「인생의 우연」(人生の偶然|진세이노 구젠일본어)이라는 글에서 F. 데이비드 피트(F. David Peat)의 저서 『공시성』(Synchronicity)을 극찬하여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68]

1995년에는 『깊은 강』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인도갠지스강을 배경으로 사랑과 악, 영혼의 구원이라는 주제를 다루었으며, 인도 정부의 협조를 얻어 인도 현지에서 장기간 촬영이 이루어졌다.

2. 5. 만년과 죽음

엔도는 만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펜 클럽 제10대 회장을 역임했으며[35], 산타클라라 대학교(1985년)[35], 조지타운 대학교(1987년)[35], 존 캐롤 대학교(John Carroll University, 1991년)[35], 푸런 대학교(1986년, 1991년)[35] 등 해외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강연하고 문학 교류를 가졌다.[35] 1988년에는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고[35], 1991년부터 1995년까지는 미타 문학회 이사장을 맡았다.[35]

그의 문학적 성과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1994년에는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했다.[8] 이듬해인 1995년, 엔도는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5][35]

그러나 평생 그를 괴롭혔던 건강 문제는 만년에도 계속되었다. 1993년 5월 복막 투석 수술을 받았고, 한때 위독한 상태에 빠졌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했다.[35]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1995년 9월에는 뇌출혈로 순천향 대학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35]

1996년 4월, 신장병 치료를 위해 게이오기주쿠 대학 병원에 다시 입원한 엔도는[35] 같은 해 9월 29일 오후 6시 36분, 폐렴에 의한 호흡 부전으로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35] 스포츠 신문들은 그의 죽음을 「고리안 선생 서거」(狐狸庵先生逝く)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장례는 도쿄 기쿠 정(麹町)의 성 이그나시오 교회(聖イグナチオ教会)에서 거행되었으며, 수많은 조문객이 참석하여 긴 행렬이 거리에까지 이어졌다. 생전 그의 뜻에 따라 대표작 『침묵』과 『깊은 강』 두 작품이 관 속에 함께 넣어졌다.

그의 유해는 처음 가톨릭 후추 묘지(カトリック府中墓地)에 매장되었으나, 2015년 12월에 성 이그나시오 교회 지하 납골당으로 옮겨졌다. 유족과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그의 문학 세계를 기리는 공간 마련이 추진되어, 2000년 5월에는 소설 『침묵』의 주요 무대였던 나가사키현 니시소노기 군 소토메 정(外海町)에 「소토메 정립 엔도 슈사쿠 문학관」[71](현 나가사키시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3. 작품 세계

엔도 슈사쿠는 여러 장르에 걸쳐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의 문학 세계의 중심에는 기독교, 특히 가톨릭 신앙과 관련된 깊은 성찰이 자리 잡고 있다.[10][4] 그는 제3의 신인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일본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뿌리내리는 과정의 어려움과 모순, 즉 그가 ''이나 '수렁'에 비유한[11][16] 일본적 상황 속에서의 신앙 문제를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종종 복잡한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며,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알레고리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10]

주요 작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하얀 사람''' (1955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으로, 소설가로서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 '''바다와 독약''' (1957년):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대학 병원에서 일어난 미군 포로 생체 해부 사건을 소재로, 일본인의 윤리 의식과 죄의 문제를 다루었다.
  • '''침묵''' (1966년): 에도 시대 초기 기리시탄 박해를 배경으로, 신의 침묵과 배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대표작. 제2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이다. 신은 왜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하는가, 나약한 인간은 배교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야 하는가 등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사해의 언저리''' (1973년): 예수를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묘사하며, 인간적인 고뇌에 초점을 맞춘다.
  • '''예수의 생애''' (1973년): 교의 속 신앙의 대상이 아닌, 역사적 예수의 삶을 민중의 시각에서 재구성한 평전이다. 가톨릭출판사와 홍성사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 '''그리스도의 탄생''' (1978년): 예수 사후 초대 교회가 형성되고 그가 그리스도로 신격화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 평전. 제30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이다. 홍성사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 '''사무라이''' (1980년): 에도 시대 초기에 로마로 파견된 일본인 사절단의 이야기를 통해 동서양 문명의 충돌과 신앙의 문제를 다루었다. 제33회 노마 문예상 수상작이다.
  • '''여자의 일생''' (1982년): 일본의 기독교 박해 시기를 배경으로, 기쿠라는 여성이 기독교 신자인 연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순애보를 그렸다.
  • '''깊은 강''' (1993년): 각기 다른 상처와 사연을 안고 인도를 찾은 일본인들의 여정을 통해 종교와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만년의 역작이다. 싱크로니시티(공시성) 개념을 다루고 있으며, 종교 다원주의적 시각을 보여준다.
  • '''전국 시대 3부작''': 『반역』(1989년), 『결전의 때』(1990년), 『남자의 일생』(1991년)으로 구성되며, 일본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의 욕망과 신념을 그렸다.
  • '''기타 작품''': 이성 간의 사랑을 다룬 《지금은 사랑할 때》, 《마음의 야상곡》, 유머 소설집 《유모아 극장》 등이 있다.


엔도의 작품에는 외국인으로서의 경험, 오랜 투병 생활 등 개인적인 체험이 반영되어 있으며, 삶의 도덕적 딜레마와 그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 주요하게 그려진다. 그의 독특한 기독교 해석은 때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10] 일본 내 숨은 기리시탄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 역시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13][14]

그의 작품은 종종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과 비교되는데,[15] 두 작가는 상호 존경심을 표했으며, 그린은 엔도를 살아있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하기도 했다.[8][16] 엔도는 진지한 주제의 소설 외에도 '''고리안 산진'''(狐狸庵山人)이라는 아호를 사용하며 유머 넘치는 에세이를 다수 발표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다. 또한, 아마추어 극단 '키자'나 바둑 동호회 '우주 기원' 운영, '마음 따뜻한 병원을 바라는 모임' 캠페인, 일본 기독교 예술 센터 설립 등 사회 문화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아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여러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3. 1. 주요 주제와 특징

엔도 슈사쿠의 문학 세계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지만,[10] 그 중심에는 기독교, 특히 가톨릭교와의 깊은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단일 주제로 작품 세계를 구축한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4] 일본이라는 독특한 문화적 토양, 즉 그가 종종 이나 수렁에 비유했던[11][16] 환경 속에서 외래 종교인 기독교를 뿌리내리게 하려는 고투를 그린 '일본 가톨릭 작가'로 인식되기도 한다.[2] 대표작 『침묵』에서는 배교한 신부에게 "당신을 굴복시킨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이 진흙 수렁, 일본"이라는 대사가 등장하며, 이는 일본의 문화적 풍토가 서구적 기독교 신앙을 어떻게 변용시키는가에 대한 작가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낸다.[12]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종종 작가의 사상을 대변하는 알레고리적 성격을 띤다.[10]

엔도는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투영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만주에서 보낸 시간, 외국인으로서 느꼈던 소외감, 오랜 기간 결핵과 싸우며 병원 환자로 지낸 경험 등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고독과 고통, 정체성의 혼란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특히 그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도덕적 딜레마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등장인물들은 복잡한 윤리적 상황 속에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며, 그 결과는 종종 모순적이거나 비극적인 양상을 보인다.

그의 가톨릭 신앙은 모든 작품에 스며들어 있으며 핵심적인 주제를 이룬다. 그러나 그의 접근 방식은 때때로 정통 교리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하여, 동료 기독교인, 특히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10] 또한, 그는 일본 역사 속 숨은 기리시탄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13] 일반적인 かくれキリシタン일본어 표기 대신 隠れ切支丹일본어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14]

엔도의 작품 세계는 종종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과 비교되는데,[15] 두 작가는 실제로 상호 존경심을 나누었다. 그린은 엔도를 "살아있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극찬했으며,[8] 엔도 역시 창작에 임하기 전 그린의 소설 『애정의 종말』을 다시 읽곤 했다고 전해진다.[16]

기독교 테마는 소설뿐만 아니라 평전 『예수의 생애』, 『그리스도의 탄생』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통해 탐구되었다. 비록 정식 신학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엔도는 일본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유년기의 경험, 특히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에 대한 강한 애착 및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후일의 연민 등 복잡한 가족 관계 역시 그의 문학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의 엄격함과 예술에 대한 열정, 아버지와의 갈등과 화해 과정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3. 2. 기독교와 일본 문화

기독교는 엔도 문학의 가장 큰 테마이며,[10] 신학자가 아니고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반드시 정통이라고는 하기 어려운 사상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기독교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가톨릭교를 포함한 기독교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10] "단 하나의 주제, 즉 기독교에 대한 믿음으로 작품을 지배한 소설가"라고 불리기도 했다.[4] 소설 이외의 형식으로도 "나의 예수", "나에게 신이란" 등을 발표했으며, 기독교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찬반 양론을 포함한 논평의 대상이 된다.

엔도 슈사쿠는 집안이 가톨릭이었으며, 구제 중학교 시절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1950년부터 프랑스 유학을 했는데, 이 유학 중에 느끼고 엔도의 인생 최대의 테마가 된 갈등이 바로 '''"일본인이면서 기독교인인 모순"'''이었다. 엔도는 후년에 자신의 신앙에 관한 사색을 "헐렁한 양복을 기모노로 고쳐 짓는 작업"이라고 표현했으며, 이 테마는 마지막까지 관통하여 만년의 《깊은 강》으로도 이어진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거의 당연히 일본의 '진흙 수렁'에 '입양된 종교의 씨앗을 심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일본 가톨릭 작가'"라고 칭했다.[2]

그는 종종 일본을 이나 수렁(진흙 수렁)에 비유했다.[11][16] 소설 『침묵』에서 한 관리는 배교한 신부에게 "신부님, 당신을 굴복시킨 것은 우리(일본)가 아니라 이 진흙 수렁, 일본입니다."라고 말한다. 엔도 슈사쿠의 이 이야기를 무대화한 『황금의 나라』에서 이 관리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진흙 수렁도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편안한 온기에 몸을 맡기기만 한다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불꽃과 같습니다. 불꽃처럼 사람을 불태우죠. 그러나 일본의 미지근한 온기는 결국 잠을 길러낼 것입니다."[12] 따라서 엔도 슈사쿠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알레고리이다.[10]

엔도의 기독교 해석은 독특하다. 기독교가 가진 가장 큰 구원의 능력은 성서에 묘사된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리스도라고 보았다. 죄인으로서 고문 끝에 더럽혀지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십자가를 짊어지고, 게다가 뭇 사람들에게 심한 욕설을 듣는 모습이 역사상 가장 비참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여겼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더럽고 비참한 자신을 한없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 그것이 그리스도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특징적인 기독교 해석은 높은 평가와 함께, 이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10] 그의 몇몇 등장인물(대부분 알레고리)은 서구적이지 않은 종교를 언급할 수도 있다.[10]

엔도 슈사쿠는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친 이른바 키리시탄 시대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소설, 평전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의 주된 초점은 아니지만, 엔도 슈사쿠의 책 몇 권은 숨은 기리시탄을 언급하고 있다.[13] 엔도 슈사쿠는 더 흔한 かくれキリシタン일본어 대신 かくれ切支丹일본어이라는 용어 사용을 선호했다.[14] 엔도는 키리시탄 시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 자신이 전쟁 시대에 적성 종교를 믿는 자로서 차별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침묵』, 『사무라이』 등은 일본에 온 선교사를 모티프로 그려졌다. 선교사들이 오랜 노력으로 어느 정도 신자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가 변하거나 분위기가 바뀌는 것만으로도 아주 쉽게 배교해 버리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엔도는 이를 기독교 사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인상으로 보았다. 그는 기독교 원리를 이해하던 일본인 신자조차 사실 현세나 내세에서 단순히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며, 교리를 이해하더라도 참된 신앙은 없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일본인은 개인 또는 집단으로서 현세·내세에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면 사상 자체를 크게 변경해도 상관없으며, 이 원리가 일본인에게 모든 철학이나 종교 원리보다 강하다는 점을 생생하게 그렸다. 그 결과, 신자나 선교사는 일본 사회 그 자체에 의해 배교(『침묵』)로 몰리거나, 죽음(『사무라이』)으로 내몰리거나, 타락(『노란 사람』)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묘사했다.

이러한 현세 이익적인 일본인상은 『바다와 독약』에서 인체 실험을 하는 의사, 간호사 등으로도 묘사된다.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우연히 인체 실험에 참여하게 되고, 강하게 반발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엔도는 이를 통해 기독교와 같은 윤리적 행동 원리가 일본인에게 부재하며, 집단 심리로 평범한 사람들이 비도덕적인 행동에 빠져들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인과 기독교의 모순에 괴로워했던 엔도 슈사쿠는 만년의 작품 『깊은 강』에서 "일본인이 가져야 할 기독교상", "범세계적인 기독교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본래 기독교만을 유일한 올바른 종교로 하는 배타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으며, 서양 기독교의 배타성에 괴리를 느꼈다. 그런 엔도에게 영국의 종교 철학자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는 큰 영향을 주었다.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 사상은 엔도가 괴로워했던 모순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엔도는 인도를 무대로 하여 새로운 기독교상을 제시한 『깊은 강』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3. 3. 문학적 스타일과 영향

엔도 슈사쿠는 여러 장르에서 글을 썼지만,[10] 그의 작품 세계는 가톨릭교를 포함한 기독교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는 "단 하나의 주제, 즉 기독교에 대한 믿음으로 작품을 지배한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4] 다른 이들은 그를 "일본의 '진흙 수렁'에 '입양된 종교의 씨앗을 심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일본 가톨릭 작가'"라고 칭했다.[2] 엔도는 종종 일본을 이나 수렁에 비유했는데,[11][16] 이는 그의 대표작 『침묵』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 속 한 관리는 배교한 신부에게 "신부님, 당신을 굴복시킨 것은 우리(일본)가 아니라 이 진흙 수렁, 일본입니다."라고 말한다. 엔도의 이 이야기를 무대화한 『황금의 나라』에서 이 관리는 "하지만 진흙 수렁도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습니다. 편안한 온기에 몸을 맡기기만 한다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불꽃과 같습니다. 불꽃처럼 사람을 불태우죠. 그러나 일본의 미지근한 온기는 결국 잠을 길러낼 것입니다."라고 덧붙인다.[12] 이러한 배경 속에서 엔도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알레고리적 성격을 띤다.[10]

그의 문학이 동료 기독교인, 특히 가톨릭교인들에게 항상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10] 일부 등장인물(대부분 알레고리)이 서구적이지 않은 종교관을 드러내기도 하기 때문이다.[10] 그의 작품의 주된 초점은 아니지만, 몇몇 책에서는 숨은 기리시탄을 다루기도 했다.[13] 엔도는 일반적인 표기인 かくれキリシタン|가쿠레키리시탄jpn 대신 かくれ切支丹|가쿠레키리시탄jpn이라는 용어 사용을 선호했다.[14]

엔도의 작품에는 이방인이라는 낙인, 외국인으로서의 경험, 병원 환자의 삶, 결핵과의 투쟁 등 그의 어린 시절과 청년기의 경험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근본적으로 삶의 도덕적 구조와 그 안에서 겪는 복잡한 딜레마를 다룬다. 그의 가톨릭 신앙은 모든 작품에 어느 정도 녹아 있으며, 종종 핵심적인 특징을 이룬다. 등장인물들은 복잡한 도덕적 상황 속에서 고뇌하며, 그들의 선택은 종종 엇갈리거나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

엔도의 작품은 종종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작품과 비교되는데,[15] 두 사람은 서로 존경하는 관계였다. 그린은 엔도를 살아있는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꼽았고,[8] 엔도는 자신의 작품을 쓰기 전에 그린의 소설 『애정의 종말』을 다시 읽곤 했다고 전해진다.[16]

기독교는 엔도 문학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며, 비록 신학 교육을 받지 않았고 때로는 정통 교리와 거리가 있는 사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일본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그는 소설 외에도 "나의 예수", "나에게 신이란" 같은 글을 발표했으며, 그의 사상은 기독교 관계자들 사이에서 찬반 양론을 포함하여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4. 주요 작품 목록


  • `침묵` (沈黙|친모쿠일본어, 1966)[5]: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5] 17세기 막부 시대 일본의 가톨릭 탄압을 배경으로, 신의 존재와 침묵, 배교와 신앙의 문제를 다룬다.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고를 통해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5] 시노다 마사히로 감독의 영화 침묵(1971), 주앙 마리우 그릴로 감독의 아시아의 눈(1996),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침묵(2016) 등 여러 차례 영화화되었다.[20][21]
  • `바다와 독약` (海と毒薬|우미토 도쿠야쿠일본어, 1957)[3]: 제2차 세계 대전후쿠오카시의 한 병원에서 미군 포로를 대상으로 자행된 생체 실험을 다룬 소설.[18]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으며,[19] 인간의 양심과 죄의 문제를 탐구한다. 1986년 쿠마이 케이 감독, 오쿠다 에이지, 와타나베 켄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 `깊은 강` (深い河|후카이 카와일본어, 1993)[5]: 인도를 여행하는 다양한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 사랑,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갠지스강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인물들의 내면을 그린다. 1995년 영화화되었다.
  • `여자의 일생` (女の一生|온나노 잇쇼일본어): 두 편의 소설이 있다.
  • 女の一生:キクの場合|온나노 잇쇼: 키쿠노 바아이일본어 (기쿠의 경우/기도, 1982): 19세기 말 일본의 기독교 박해 시기, 신자 연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 기쿠의 이야기를 다룬다.
  • 女の一生|온나노 잇쇼일본어 (사치코, 1982): 1930년대부터 1945년까지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전쟁과 사회적 압박 속에서 사랑과 신앙을 지키려는 두 젊은 기독교인의 이야기이다.
  • 《지금은 사랑할 때》: 이성 간의 사랑(에로스)에 대해 다룬 책. 홍성사에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 `사해의 언저리` (死海のほとり|시카이노 호토리일본어, 1973)[3]: 예수를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로 묘사하며 신앙의 본질을 묻는 작품이다.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번영신학이 강한 한국미국보수적 복음주의 교회 문화에 비판적 성찰을 제공할 수 있다는 평가가 있다. 홍성사에서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 `마음의 야상곡` (心の夜想曲|코코로노 야소쿄쿠일본어, 1986)
  • `예수의 생애` (イエスの生涯|이에스노 쇼가이일본어, 1973)[5]: 역사적 예수에 대한 평전. 교리화된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적인 고뇌와 민중과의 관계 속에서 예수를 조명한다. 가톨릭출판사와 홍성사에서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 `그리스도의 탄생` (キリストの誕生|키리스토노 탄조일본어, 1978): 초대 교회 시기, 역사적 인물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로 신격화되었는지, 그의 죽음이 어떻게 신학적으로 해석되었는지를 다룬다.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 홍성사에서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 `유모아 극장`
  • アデンまで|아덴마데일본어 (아덴까지, 1954): 게이오기주쿠 대학교 문예지 三田文学|미타 분가쿠일본어에 발표.
  • 白い人|시로이 히토일본어 (백인, 1955)[7][17]
  • 黄色い人|키이로이 히토일본어 (황인, 1955):[3] 신앙을 버린 젊은이가 과거 프랑스인 선교사였던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소설.
  • `어리석은 자` (おバカさん|오바카상일본어, 1959):[3] 전후 도쿄를 방문한 순수한 프랑스인 가스통 보나파르트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그리스도적 인물로 그려진다.
  • 十一の色硝子|주이치노 이로 가라스일본어 (스테인드 글라스 비가, 1959)
  • 火山|카잔일본어 (화산, 1960):[5] 배교한 신부, 기상 관측소장 등 몰락해가는 인물들을 통해 삶의 의미를 묻는 소설.
  • `내가 버린 여자` (私が棄てた女|와타시가 스테타 온나일본어, 1964):[5] 순수한 여인과 그녀를 버린 젊은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관계의 부조리를 그린다.
  • 留学|류가쿠일본어 (유학, 1965):[5] 세 시대(17세기 로마, 2차 대전 후 프랑스, 1960년대 파리)를 배경으로 유럽에서 공부하는 일본 유학생들의 문화적, 영적 소외감을 다룬 세 편의 연작 소설.
  • 《황금의 나라》 (黄金の国|오곤노 쿠니일본어, 1966):[5] 소설 `침묵`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희곡.
  • 黒ん坊|쿠론보일본어 (흑인, 1971): 오다 노부나가를 섬겼던 아프리카인 야스케를 모델로 한 소설. 제목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비속어이다.
  • 口笛をふく時|쿠치부에오 후쿠 토키일본어 (내가 휘파람을 불 때, 1974)[5]
  • 鉄の首枷 - 小西行長伝|테츠노 쿠비카세 - 코니시 유키나가덴일본어 (쇠 목걸이 - 고니시 유키나가 이야기, 1977): 기독교 신앙과 사무라이로서의 충성 사이에서 갈등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전기.
  • 王妃マリーアントワネット|오히 마리 안토와네트일본어 (마리 앙투아네트, 1979): 프랑스 혁명기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를 다룬 소설. 미하엘 쿤체의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에 영감을 주었다.
  • `사무라이` (侍|사무라이일본어, 1980):[5] 노마 문예상 수상작. 17세기 하세쿠라 쓰네나가의 사절단을 따라 멕시코, 스페인, 로마로 간 사무라이의 여정을 그린 역사 소설.
  • 私の愛した小説|와타시노 아이시타 쇼세츠일본어 (내가 사랑한 소설, 1985)[5]
  • 本当の私を求めて|혼토노 와타시오 모토메테일본어 (진정한 나를 찾아서, 1985)[5]
  • `스캔들` (スキャンダル|스캰다루일본어, 1986):[5] 도쿄를 배경으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의 추문에 휘말린 노년의 가톨릭 작가 스구로의 이야기.
  • 《최후의 순교자》: 1959

5. 평가와 영향

엔도 슈사쿠는 그의 문학적 성과와 사회적 활동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주요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1966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 – ''침묵''
  • 1971년 성 실베스터 교황 기사단
  • 1980년 노마 문학상 – ''사무라이''[22]
  • 1995년 문화훈장


엔도는 유럽에서 접한 기독교가 부성 원리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일본인의 영성과 맞지 않는다고 보고, 기독교를 일본의 정신적 풍토에 뿌리내리려는 시도를 평생의 과제로 삼았다. 그는 "일본인으로서 기독교 신자가 되는 것은 헐렁한 서양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하고, 그것을 몸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 자신의 평생의 과제였다"고 말했다[30]. 만년에는 존 힉이 제창하는 종교 다원주의에 영향을 받아, 『깊은 강』의 등장인물 오쓰를 통해 "신(예수)은 사랑, 생명의 따스함, 혹은 토마토라고 해도 양파라고 해도 좋다"는 생각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로 인해 엔도에 대한 가톨릭교회 내에서의 평가는 크게 엇갈렸다. 이노우에 요지 신부는 엔도의 『사해의 곁』과 『예수의 생애』가 일본의 정신적 풍토에 기독교를 깊이 연결시킨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했으며, 가톨릭 신문 역시 그가 "기독교를 널리 퍼뜨렸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31].

반면, 살레시오회의 알로이지오 델코르 신부는 엔도가 『예수의 생애』, 『그리스도의 탄생』, 『침묵』 등에서 그리스도를 무력하게 묘사한 것이 포교에 큰 해악을 끼친다고 비판했다[32]. 또한 페데리코 발바로 신부는 엔도가 『침묵』에서 후미에를 밟는 행위에 대해 그리스도의 입장에서 쓴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 엔도 씨의 경우, 자신이나 육친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밟는 그림에 발을 올린 사람들을 향해, 그리스도라면 무엇을 말할까 하고, 씨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대답하려 했다. 엔도 씨는, 자신의 어깨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진 것이 아닐까. 그 짐은, 씨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너무 무거울 것이다.

: 그리스도는, 인간 세계의 현실과, 인간의 생각과 삶에 대해, 대개 경우, 예상 밖의, 때로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고, 불안에 빠뜨리는 듯한 냉혹하다고 생각되는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에게는, 결코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외침의 차원이, 우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는, 인간의 눈과 동시에 신의 눈을, 인간의 마음과 동시에 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엔도 씨가 말하는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차원에 머무는 그리스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강한 인상을 나는 받고 있다.[33]

엔도는 서구와의 문화적 간극 및 일본인의 범신론적 성향을 깊이 인식하고, 일본 문화 속에서 구세주 그리스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러한 고민은 그의 작품 속 모성적인 '동반자 예수'라는 이미지로 나타났다.

엔도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특히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지지를 받았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었으나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문학 활동 외에도 엔도는 아마추어 극단 '키자'나 아마추어 바둑 집단 '우주 기원'을 운영하고, 여러 차례의 투병 경험을 바탕으로 '마음 따뜻한 병원을 바라는' 캠페인을 전개했으며, 일본 기독교 예술 센터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영향을 미쳤다.

5. 1. 일본 문학에서의 위치

엔도 슈사쿠는 제3의 신인 중 한 명으로 문단에 등장했으며, 특히 일본인의 종교관과 기독교 신앙의 문제를 깊이 탐구한 작가로 일본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1955년 소설 『하얀 사람』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는 기독교, 특히 일본이라는 특수한 문화적, 종교적 토양에서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수용되고 변용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작 『바다와 독약』, 『침묵』, 『사무라이』, 『깊은 강』 등은 이러한 주제 의식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전국 시대부터 에도 시대에 걸친 키리시탄 시대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여러 작품을 남겼다. 『침묵』과 『사무라이』 등은 일본에 온 선교사를 모티프로, 일본이라는 문화적 토양과 기독교 신앙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 작품 속에서 선교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신자들은 사회적 압력이나 분위기 변화에 따라 쉽게 배교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서구 기독교 사회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본인의 종교관을 드러낸다. 엔도는 일본인 신자들이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이 현세적, 집단적 이익과 결부되어 있으며, 불이익 앞에서는 쉽게 신념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특성 속에서 신자와 선교사들은 배교(『침묵』), 죽음(『사무라이』), 혹은 타락(『노란 사람』)으로 내몰리게 된다. 엔도 자신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적성 종교(가톨릭) 신자로서 차별받았던 경험이 이러한 키리시탄 시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반역』, 『결전의 때』, 『남자의 일생』 등 역사 소설도 집필했으며, 후기 대표작인 『깊은 강』에서는 싱크로니시티(동시성) 개념을 다루며 인간 구원의 문제를 탐구했다.

엔도의 작품은 일본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침묵』을 비롯한 여러 작품이 서양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특히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의 지지를 받았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거론되었으나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5. 2. 국제적인 명성과 번역

엔도 슈사쿠의 작품은 일본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대표작 『침묵』은 서구권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국의 유명 작가 그레이엄 그린은 엔도 슈사쿠의 열렬한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국제적 명성에 힘입어 엔도 슈사쿠는 여러 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침묵』의 주제와 결론이 일부 심사위원에게 반감을 샀으며, 『스캔들』이 선정적으로 평가받은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최종 수상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작품의 해외 번역 현황은 다음과 같다. (※편의상, 제목은 영어로 통일. 언어권마다 제목은 다름.)

작품명 (영어 제목)번역 연도출판 국가/언어권 및 출판사
바다와 독약 (The Sea and Poison)1972년영국
침묵 (Silence)1972년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 노르웨이, 프랑스, 폴란드
바보 (Wonderful Fool)1974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예수의 생애 (A Life of Jesus)1978년이탈리아 (쿠에리니아나 출판사)
화산 (Volcano)1978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내가・버린・여자 (The Girl I Left Behind)1978년폴란드 (팍스 출판사)
휘파람을 불 때 (When I Whistle)1979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예수의 생애 (A Life of Jesus)1979년미국 (폴리스트 출판사)
사무라이 (The Samurai)1982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열한 개의 색유리 (Stained Glass Elegies)1984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스캔들 (Scandal)1988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유학 (Foreign Studies)1989년영국 (Peter Owen Publishers)
깊은 강 (Deep River)(정보 없음)(정보 없음)


5. 3.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내용 없음)

6. 기타

엔도 슈사쿠 문학관은 나가사키현 소토메에 위치하며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기리는 곳이다.

6. 1. '고리안 선생'으로서의 활동

1963년 고마바에서 마치다시 타마가와 학원으로 이사한 무렵부터 '고리안 산진'이라는 아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는 1960년대 초 큰 병을 앓고 요양을 위해 이사한 후의 일이다. '호리안(狐狸庵)'은 '호리안 한화(狐狸庵閑話)'가 간사이벤으로 こりゃあかんわ|코랴아칸와일본어(이건 안 돼)라는 의미를 갖는 말장난에서 유래했다고 엔도 본인이 밝힌 바 있다. 엔도는 자신이 살던 집을 '호리안'이라 불렀으며, 시가현의 친분이 있던 요정에도 '호리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엔도는 순수 문학 작가로서 가톨릭과 일본인의 관계 등 진지한 주제를 탐구하는 한편, '고리안 선생'이라는 또 다른 인물을 창조하여 유머 넘치는 에세이를 다수 집필했다. 이 에세이들 속에서 고리안 산인은 주로 게으름과 나태함을 중심으로 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할 말은 하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이는 엔도 스스로 만들어낸 유머러스한 설정이었다.

엔도는 기타 모리오 등과 함께 유머 문학 붐을 이끌었으며, '호리안 선생님 엔도 슈사쿠'로서 텔레비전 광고에도 여러 차례 등장하여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문학 외적으로도 활동이 다양했는데, 아마추어 극단 '키자', 음치만 가입할 수 있는 합창단 '콜·파파스', 아마추어 바둑 집단 '우주기원' 등을 조직하여 운영했다.

장난기 많은 성격으로도 유명했으며, 친구들에게 장난 전화를 거는 것을 즐겼다. 만화가 사쿠라 모모코는 엔도와의 대담에서 엔도가 나이를 속이고 종잡을 수 없는 농담으로 일관했으며, 마지막에 건네받은 전화번호로 다음 날 전화했더니 도쿄 가스 영업소였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29]

다만 엔도의 순수 문학 작품을 논할 때에는 '고리안 산인'이나 '호리안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사용되지 않는다. 또한 엔도는 중간 소설 분야에서 유머, 넌센스 외에도 호러, 서스펜스 장르의 작품도 집필했으며, 이는 순수 문학 작가나 고리안 선생과는 또 다른 제3의 면모로 볼 수도 있다.

6. 2. 사회 활동

엔도 슈사쿠는 작가 활동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전부 아마추어로 구성된 극단 '키자'나 아마추어 바둑 집단 '우주 기원'을 조직하여 운영하는 등 독특한 활동을 펼쳤다.[29]

또한, 여러 차례 큰 병을 앓았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마음 따뜻한 병원을 바라는' 캠페인(따뜻한 마음의 의료 운동)이 대표적이다. 이 운동은 지인이었던 20대 여성의 죽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골수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엔도는 당시 자신도 상악암 의심으로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엔도는 죽음을 앞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고, 최소한 환자가 편안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병원에 요구하는 한편, 그녀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금연을 결심하고 실천했다.

이 경험을 통해 엔도는 당시 의료계의 연명 치료 방식이나 환자를 대하는 일부 의사들의 무신경한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 '따뜻한 마음의 의료' 운동은 이후 일본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점차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일본 기독교 예술 센터를 설립하는 등 사회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참조

[1] 뉴스 Watching 'Silence' will make you feel terrible. It should. https://www.washingt[...] 2017-01-05
[2] 서적 Encyclopedia of literary translation into English: A-L https://books.google[...] Taylor & Francis 2011-11-17
[3] 논문
[4] 논문
[5] 논문
[6] 학술지 La 'Christologie' du Romancier Japonais'', Shusaku Endo'' https://missionsetra[...] 2010-03-18
[7] 논문
[8] 뉴스 Shusaku Endo Is Dead at 73; Japanese Catholic Novelist https://www.nytimes.[...] New York Times 1996-09-30
[9] 학술지 Shushaku Endo (1923-1996): his tuberculosis and his writings
[10] 논문
[11] 논문
[12] 서적 Wonderful Fool (Obaka San) Tuttle
[13] 논문
[14] 서적 Christ in Japanese culture: theological themes in Shusaku Endo's literary works https://books.google[...] BRILL 2011-11-19
[15] 논문
[16] 뉴스 Confessions of a True Believer https://www.theguard[...] 2003-01-03
[17] 논문
[18]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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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잡지 Martin Scorsese Locks Funding for 'Silence' https://variety.com/[...]
[21] 웹사이트 Martin Scorsese Says 2016 Release Of 'Silence' "Depends On Paramount" http://theplaylist.n[...] 2016-08-05
[22] 웹사이트 野間賞過去受賞作 https://www.kodansha[...] 2023-03-30
[23] 웹사이트 史上初の大調査 著名人100人が最後に頼った病院 あなたの病院選びは間違っていませんか https://gendai.media[...] 現代ビジネス 2011-08-17
[24] 학술지 遠藤周作氏のルーツ http://www.yurihama.[...] 鳥取県東伯郡湯梨浜町
[25] 서적 フランソワーズ・パストル 論創社
[26] 서적 思い出す顔 講談社 2019-03-15
[27] 웹사이트 第28回文学講座(H27.2.2) http://www.city.naga[...] 遠藤周作文学館(長崎市)
[28] 서적 文学者掃苔録図書館 原書房
[29] 서적 さるのこしかけ 集英社
[30] 간행물 合わない洋服
[31] 뉴스 カトリック新聞 1979-04-08
[32] 서적 キリスト者の信条 踏絵について 世のひかり社 2019-03-15
[33] 서적 キリスト者の信条 踏絵について 世のひかり社
[34] 뉴스 有吉氏らが委員に 新中教審の18氏決る 朝日新聞 1972-05-30
[35] 뉴스 朝日新聞東京本社 1979-03-06
[36] 서적 人事興信録 第25版 上 人事興信所 1969
[37] 서적 因幡人事興信録 因幡人事興信録編纂所 1923
[38] 서적 遠藤周作のすべて 朝文社 1991-04-20
[39] 웹사이트 故遠藤周作氏の妻、遠藤順子さん死去 文学館建設に尽力 https://nordot.app/7[...] 長崎新聞 2021-03-12
[40] 뉴스 フジテレビ社長に遠藤周作氏長男 「騒動」時に広報部長 2019年5月13日20時17分 https://www.asahi.co[...] 朝日新聞 2019-05-13
[41] 뉴스 フジ新社長の遠藤龍之介氏「高卒社長誕生」デマ語る [2019年5月14日5時1分] https://www.nikkansp[...] 日刊スポーツ 2019-05-14
[42] 웹사이트 株式会社フジ・メディア・ホールディングス 第80期有価証券報告書 https://contents.xj-[...] 株式会社フジ・メディア・ホールディングス 2024-05-26
[43] 뉴스 フジは「面白さ」を追求 遠藤龍之介社長に聞く 2019-09-09
[44] 웹사이트 過去の教科書 - 教育出版 https://www.kyoiku-s[...] 2024-01-13
[45] 웹사이트 過去の教科書 昭和52年度版 https://www.kyoiku-s[...] 教育出版 2022-11-30
[46] 웹사이트 所蔵調査 教科書に載った遠藤周作著「白い風船」について https://crd.ndl.go.j[...] 2022-11-30
[47] 서적 CM25年史 講談社 1978-01-15
[48] 간행물 今月の広告批評 マドラ出版 1990-05-01
[49] 웹사이트 日曜美術館 「私とルオー」 遠藤周作 https://www.nhk.jp/p[...] NHK 2024-09-15
[50] 웹사이트 遠藤周作 封印された原稿 https://www.nhk.jp/p[...] NHK 2021-10-09
[51] 웹사이트 遠藤周作没後25年 遺作『深い河』をたどる 「前編 日本人のキリスト教を求めて」 https://www.nhk.jp/p[...] NHK 2021-10-31
[52] 웹사이트 遠藤周作没後25年 遺作『深い河』をたどる 「後編 宗教の壁を越える“玉ねぎ”」 https://www.nhk.jp/p[...] NHK 2021-11-07
[53] 웹사이트 遠藤周作の未発表作見つかる(2010年4月25日(日)掲載) - Yahoo!ニュース http://news.yahoo.co[...] Yahoo Japan Corporation. 2010-04-25
[54] 웹사이트 遠藤周作さん未発表小説発見 長崎の文学館 完成状態では初 https://www.nishinip[...] 2020-10-01
[55] 간행물 遠藤周作未発表小説「影に対して」について
[56] 웹사이트 遠藤周作 『影に対して―母をめぐる物語―』 新潮社 https://www.shinchos[...] 2020-11-14
[57] 웹사이트 作品情報 - 黄金の国 https://opera.tosei-[...] 昭和音楽大学オペラ研究所 オペラ情報センター 2019-03-15
[58] 문서 지금의 일본 도쿄 도(東京都) 도요시마 구(豊島区) 기타오쓰카(北大塚)
[59] 문서 지금의 일본 유리하마 정(湯梨浜町) 시모아사쓰
[60] 문서 지금의 유리하마 정 나가와다
[61] 웹사이트 遠藤周作氏のルーツ https://www.yurihama[...] 湯梨浜町企画情報課 2019-03-15
[62] 문서 加藤 2006
[63] 문서 엔도 슈사쿠는 조치 대학(上智大学) 시절의 일을 다루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재수생 시설을 회상하는 에세이는 몇 편이나 발표하였지만, 조치 대학 시절의 일만큼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엔도 슈사쿠 본인이 쓴 자작 연보에서조차도 언급하지 않고 있을 정도이다. 이 시기에 대한 평론은 加藤宗哉가 자세하다.
[64] 문서 이때 채용된 인물이 [[스즈키 세이준]](鈴木清順)이다.
[65] 문서 당시 작품에 대한 일각의 반발이 거셌고 , 엔도가 이 작품을 발표한 후 엔도 가문에는 "죽으라"는 내용의 혈서와 "일본의 치부를 들춰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장에 이어, 끝내는 [[일본도]]가 배달되기까지 했다.
[66] 서적 思い出す顔 講談社
[67] 문서 [[1959년]] 9월에 일본 [[아이치현]](愛知県) [[고난시 (아이치현)|고난시]](江南市)의 요시다 가(吉田家)의 토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21권 및 기타 부록으로 이루어진 문서군이지만, 고문서가 아닌 근세에 와서 창작되었다는 의혹도 있어 논란 중이다.
[68] 문서 싱크로니시티를 좋은 의미로 다루는 것은 가톨릭 작가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엔도의 오컬트 호의적 언급은 에세이나 공포소설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행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69] 서적 文学者掃苔録図書館 原書房 2015
[70] 웹사이트 史上初の大調査 著名人100人が最後に頼った病院 あなたの病院選びは間違っていませんか https://gendai.ismed[...] 2011-08-17
[71] 문서 지금의 일본 나가사키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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