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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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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건설의 역사는 인류가 거주지를 만들고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나타난 건축 기술의 변화 과정을 보여준다. 선사 시대에는 움집과 같은 간단한 형태에서 시작하여, 농경의 시작과 함께 스톤헨지와 같은 거석 기념물이 등장했다. 고대 문명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이집트의 피라미드, 그리스의 신전, 로마의 콘크리트 건축 등 다양한 건축 기술이 발전했다. 중세 시대에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이 건설되었고, 근대 초기에는 르네상스 건축이 부활하면서 건축가 개념이 등장했다. 산업 혁명 이후에는 철, 강철, 콘크리트의 사용, 증기 기관, 전동 공구의 발달로 건축 기술이 크게 발전했으며, 20세기에는 고층 건물과 조립식 주택, CAD 기술 등이 등장했다. 21세기에는 지속 가능한 개발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3D 프린팅, 드론, BIM 기술이 건설 분야에 도입되면서 건설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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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의 역사
개요
정의건설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발전해 왔다. 초기 인류는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간단한 거처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과 재료의 발전으로 더욱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물을 건설하게 되었다. 건설의 역사는 인류의 창의성과 혁신의 역사를 반영하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문명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초기 건설초기 인류는 주로 나무, 흙, 돌과 같은 자연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거처를 건설했다. 이러한 초기 건설은 주로 생존을 위한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간단한 구조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고대 문명의 건설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로마 등의 문명은 놀라운 건축 기술과 구조물을 건설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건축물은 당시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중세 시대의 건설중세 시대에는 성당, 성곽과 같은 종교적, 군사적 목적의 건축물이 많이 건설되었다. 이 시기에는 아치, 돔과 같은 새로운 건축 기술이 발전했으며, 석재를 주요 재료로 사용한 견고한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다.
산업 혁명 이후의 건설산업 혁명 이후에는 철, 강철,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재료가 개발되면서 건설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고층 빌딩, 교량, 터널과 같은 대규모 구조물이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도시의 모습도 크게 변화했다.
현대 건설현대에는 더욱 혁신적인 기술과 재료가 개발되면서 건설 산업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친환경적인 건설 기술, 스마트 건설 기술, 3D 프린팅 건설 기술 등이 개발되어 건설의 효율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건설 기술의 발전
도구 및 장비초기에는 간단한 돌 도끼, 흙손 등이 사용되었다.
이후에는 쇠지렛대, 도르래, 크레인 등이 개발되어 건설 작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는 굴삭기, 불도저, 콘크리트 믹서와 같은 중장비가 사용되어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재료초기에는 나무, 흙, 돌과 같은 자연적인 재료가 사용되었다.
이후에는 벽돌, 석회, 시멘트 등이 개발되어 건축물의 내구성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는 철, 강철, 콘크리트, 유리,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어 건축물의 기능성과 디자인을 향상시키고 있다.
구조 기술초기에는 간단한 쌓기 방식이 사용되었다.
이후에는 아치, 돔, 볼트와 같은 구조 기술이 개발되어 건축물의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현대에는 철골 구조, 콘크리트 구조, 막 구조 등 다양한 구조 기술이 사용되어 건축물의 안전성과 안정성을 높이고 있다.
건설의 미래
지속 가능한 건설환경 보호와 자원 고갈 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지속 가능한 건설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적인 건축물, 친환경적인 재료 사용, 폐기물 재활용 등의 기술이 개발되어 건설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스마트 건설정보통신기술(ICT)과 건설 기술을 융합한 스마트 건설 기술이 개발되어 건설 과정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드론, 사물인터넷(IoT), 빅 데이터(Big Data), 인공지능(AI) 등의 기술이 건설 현장에 적용되어 안전 관리, 품질 관리, 공정 관리 등을 자동화하고 있다.
3D 프린팅 건설3D 프린팅 기술을 건설 분야에 적용하여 건축물을 빠르고 저렴하게 건설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3D 프린팅 건설 기술은 복잡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쉽게 구현할 수 있으며, 건설 폐기물을 줄이고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결론
건설의 중요성건설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이 발전해 왔으며,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문명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건설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경제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래 전망앞으로도 건설은 지속 가능한 건설, 스마트 건설, 3D 프린팅 건설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을 통해 더욱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산업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더 나은 환경과 삶의 공간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2. 선사 시대의 건설

선사 시대에는 자연물을 이용한 간단한 주거 형태가 주를 이루었다. 구석기 시대중석기 시대에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며 주로 이동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일시적인 거주지가 필요했다. 프랑스의 테라 아마타에서는 기원전 40만 년 전의 인공 피난처가 발견되기도 했다.[5]

농업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에는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움집, 천막, 오두막집과 같은 보다 견고한 주거 형태가 나타났다. 안전을 위해 크래노그와 같은 방어 시설도 등장했다. 스코틀랜드의 스카라브레와 같은 석조 건축물, 신석기 롱하우스와 같은 목조 건축물이 나타났다. 한반도에서는 암사동 유적과 같은 움집 유적이 발견되어, 신석기 시대 한반도 주민들의 정착 생활과 주거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스톤헨지와 같은 거석기념물은 착암건축 기술과 정교한 측량 기술을 보여준다. 스톤헨지는 장부맞춤과 제혀기법을 사용하여 거대한 사암 상인방을 결합한 post and lintel 방식으로 건설되었다.[35][36]

2. 1.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다. 이들의 유목 생활은 일시적이고 단명하는 건축물을 낳았으며, 이는 건축물의 생존 증거 부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증거는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180만 년 전의 석조 원형 구조물인데, 방풍벽의 잔해를 나타낸다.[3]

중석기 시대에 이르러 인류는 농업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4] 수렵 채집인들은 사냥꾼들이 먹잇감을 매복하기 위한 임시 거처를 지었다. 현재 남아있는 인공 피난처의 첫 번째 증거는 기원전 4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프랑스 테라 아마타에서 발견되었고, 사냥꾼들의 주거지로 사용되었다.[5]

2. 2. 신석기 시대

농업의 시작과 함께 정착 생활이 시작되면서, 움집, 천막, 오두막집과 같은 견고한 주거 형태가 나타났다. 크래노그와 같이 안전을 위한 방어 시설도 등장했다. 스코틀랜드의 스카라브레와 같은 석조 건축물과 신석기 롱하우스와 같은 목조 건축물이 나타나기도 했다.

독일 운터울딩엔 수상가옥박물관의 복원된 신석기 시대 마을. 말뚝울타리장벽과 수상가옥을 볼 수 있다.


스톤헨지와 같은 거석기념물은 착암건축 기술과 정교한 측량 기술을 보여준다. 스톤헨지는 장부맞춤과 제혀기법을 사용하여 거대한 사암 상인방을 결합한 post and lintel 방식으로 건설되었다.[35][36]

한반도에서는 암사동 유적과 같은 움집 유적이 발견되며, 이는 신석기 시대 한반도 주민들의 정착 생활과 주거 문화를 보여준다.

2. 2. 1. 신석기 시대의 도구들

신석기 시대에는 , 사슴의 뿔, 가죽, 돌, 나무, 풀, 동물성 섬유, 물과 같은 자연 재료를 사용하여 도구를 만들었다.[34] 자르는 데 사용되는 손도끼, 찍개, 까뀌, 돌도끼와 긁고, 썰고, 치고, 뚫고, 굴리고, 밀고, 옮기는 데 사용되는 박편석기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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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에서 발견된 뼈로 만든 다양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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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송곳

3. 고대 문명의 건설

고대 문명 시기에는 금속 도구의 사용과 함께 보다 발전된 건축 기술이 등장했다.

동기 시대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구리와 청동으로 만든 도끼, 끌과 같은 도구가 사용되었고, 특히 은 이 시기에 개발된 새로운 도구였다. 이집트인들은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 정을 채석이나 착암 건축과 같이 부드러운 돌을 다룰 때 사용했다.[15] 청동기 시대에는 까치발 아치가 벌집 모양 무덤 등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바퀴도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무거운 짐은 보트, 원시적인 썰매나 롤러를 사용해 운송했다.[18]

철기 시대에는 강철이 만들어지면서 철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19] 강철은 경화 및 템퍼링을 통해 날카롭고 내구성이 뛰어난 절삭 날을 생산하여 손대패와 같은 새로운 목재 가공 도구를 가능하게 했다.[20] 한반도에서는 철기 시대에 판축 기법을 사용한 토성이 건설되어 방어 시설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최초의 대규모 건물이 발견되었는데, 우루크우르와 같은 거대한 도시 건설은 주요 기술적 진보를 보여준다. 우르의 지구라트와 현대 이란의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는 이 시기의 뛰어난 건축물이다. 고고학적 증거는 현재 이란에 위치한 텔 알리마와 같은 높이 솟은 벽돌 궁륭[37]의 존재를 보여준다. 아치는 로마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 문명에서 사용되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설 재료는 진흙 벽돌이었으며, 구운 벽돌은 기원전 3500년경부터 사용되었다.[37] 바빌론수사와 같은 후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채벽돌을 이용한 건축 장식을 발전시켰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사원, 오벨리스크 등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일반 주택과 부속 건물에는 어도비 벽돌이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건축에 석회암, 화강암 등 다양한 석재를 사용했으며, 거대한 석재를 운반하고 가공하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다. 이들은 경사로, 지레, 선반과 같은 다양한 도구와 기술을 활용했다.[37] 임호텝은 기원전 2650년에서 2600년 사이에 활동한 인물로, 기록상 최초의 건축가이자 공학자로 알려져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된 기술은 상대적으로 원시적이었다. 바퀴와 도르래를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롤러, 밧줄, 썰매를 이용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거대한 암석을 운반했다.

고대 그리스는 신전 건축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기둥도리를 사용한 건축 양식이 주를 이루었으며, 궁륭아치는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구운 벽돌은 석회 모르타르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물들은 진흙 기와 형태를 모방한 돌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 그리스인들은 알렉산드리아 등대를 건축했다. 그리스의 수학은 기술적으로 진보했으며, 도르래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용하여 건물의 상단에 무거운 돌덩이를 옮기는 기중기를 만들 수 있었다.

로마 제국 건축에 대해서는 판테온처럼 완전히 보존된 건물과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의 유적 등 많은 자료가 남아있어 이전 문화에 비해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다.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는 건축에 관한 최초의 현존하는 논문을 저술했다. 로마 시대 건축 재료의 가장 큰 발전은 수경성 석회 모르타르인 로만 시멘트의 사용이었다. 로마인들은 유리를 건축에 사용하여 창문에 쓰일 투명한 유리나 착색된 모자이크 유리를 적용했다. 유리는 공공 건물의 창문에 꽤나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41] 로마에는 길드와 같은 직업 조합이 있었으며,[1] 대부분의 건설은 노예나 자유민에 의해 수행되었다.[1]

고대 중국은 동아시아의 문명 중심지였으며, 많은 극동의 건축 방식이 중국에서 발전하였다. 중국 건축의 유명한 예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건축된 만리장성이 있다. 영조법식은 중국 건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술 설명서이다. 중국의 사원은 토양과 암석을 기반으로 하여 전형적인 목재 대들보 골격이 사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은 782년부터 존재해 온 남선사(오대산)이다. 중요한 건축요소는 두공이라는 받침대의 조합이다. 숭악사탑은 523년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벽돌 탑이다. 안제교는 595년에서 605년 사이에 건설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팬드럴이 개방된 원호 아치교"이다.

3. 1. 동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아크로티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청동 톱. 그리스 산토리니의 테라 선사시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동기 시대청동기 시대의 초기이다. 청동은 구리에 주석을 첨가하여 만들고, 놋쇠는 구리와 아연의 합금이다. 구리는 기원전 5000년 이전부터 사용되었고, 청동은 기원전 3100년경부터 사용되었는데, 지역마다 시기가 달랐다. 구리와 청동은 도끼, 끌과 같은 도구에 사용되었지만, 새롭고 탄성이 높으며 더 단단한 청동이 성능이 더 좋았다. 청동은 원하는 형태로 주조할 수 있었고, 손상되면 다시 주조할 수 있었다. 구리 시대에 개발된 새로운 도구는 이었다. 구리와 청동은 도구의 날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는데, 이집트인들은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 정을 채석이나 착암 건축과 같이 부드러운 돌을 다룰 때 사용했다.[15]

청동기 시대에는 까치발 아치가 벌집 모양 무덤 등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바퀴도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무거운 짐은 보트, 원시적인 썰매나 롤러를 사용해 운송했다.[18] 이집트에서는 기둥과 인방 기법을 사용해 석조 사원을 건설하기 시작했으며, 이 양식은 그리스와 로마가 따라했다.

3. 2. 철기 시대

기원전 1200년경부터 기원전 500년경까지 지속된 철기 시대에는 철과 탄소의 결합물인 강철이 만들어지면서 철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19] 이전에는 철제 도구와 무기가 청동 제품보다 단단하거나 내구성이 떨어져 열등한 금속으로 여겨졌지만, 강철은 경화 및 템퍼링을 통해 날카롭고 내구성이 뛰어난 절삭 날을 생산하여 손대패와 같은 새로운 목재 가공 도구를 가능하게 했다.[20]

당시 영국에서 가장 흔한 건물 유형은 라운드하우스로, 쐐기판과 엮어 바르기 패널로 연결된 돌 또는 나무 기둥으로 만들어졌으며 원추형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측면 도끼를 사용하여 과도한 목재를 제거한 목재 판자로 벽을 만들었다고 추정한다.[20] 한반도에서는 철기 시대에 판축 기법을 사용한 토성이 건설되어 방어 시설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3. 3. 고대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대규모 건물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발견되었다. 우루크우르와 같은 거대한 도시 건설은 주요 기술적 진보를 보여준다. 우르의 지구라트는 이 시기의 뛰어난 건축물이며, 현대 이란의 초가잔빌의 지구라트도 훌륭한 예시이다. 이들 도시는 동물과 인간의 오수를 위한 배수로와 포장도로 같은 새로운 기술을 필요로 했다. 고고학적 증거는 현재 이란에 위치한 텔 알리마와 같은 높이 솟은 벽돌 궁륭[37]의 존재를 보여준다. 아치는 로마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이 문명에서 사용되었다.

3. 3. 1.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재료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중요한 건설 재료는 진흙 벽돌이었다. 이 벽돌은 어도비 진흙 벽돌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목재 틀로 제작되었으며, 크기와 형태가 다양했다. 일반적인 벽돌은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형태였으며, 다양한 무늬로 배열되었다. 기원전 3500년경부터는 구운 벽돌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는 노동의 분업화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구운 벽돌과 암석은 포장에 사용되었다.[37]

바빌론수사와 같은 후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유채벽돌을 이용한 건축 장식을 발전시켰다. 건물의 내외부는 유채벽돌에 새겨진 부조로 장식되었으며, 이러한 유물들은 테헤란 국립 고고학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3. 4. 고대 이집트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권위를 상징하는 피라미드, 사원, 오벨리스크 등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건설되었다. 일반 주택과 부속 건물에는 어도비 벽돌이 사용되었다.

벽돌을 사용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는 다르게, 이집트의 파라오는 암석을 사용해 거대한 구조물을 지었다. 건조한 기후는 고대 건물의 대부분을 보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3. 4. 1. 고대 이집트의 재료와 기술

고대 이집트인들은 건축에 석회암, 화강암 등 다양한 석재를 사용했으며, 거대한 석재를 운반하고 가공하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다. 이들은 경사로, 지레, 선반과 같은 다양한 도구와 기술을 활용했다.[37]

임호텝은 기원전 2650년에서 2600년 사이에 활동한 인물로, 기록상 최초의 건축가이자 공학자로 알려져 있다.

건조한 기후 덕분에 고대 이집트의 건축물은 상당 부분 보존될 수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을 건설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된 기술은 상대적으로 원시적이었다. 바퀴와 도르래를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롤러, 밧줄, 썰매를 이용하여 많은 노동자들이 거대한 암석을 운반했다.

피라미드 건설에는 엄청난 규모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가장 큰 피라미드는 기자의 대피라미드로, 38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다. 피라미드 건설에 사용된 방법은 여전히 연구와 토론의 대상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 기술

고대 이집트에서는 어도비(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가 부속 건물과 일반 주택 건설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이집트 시골 지역에서 흔히 사용된다. 람세스 신전은 테베 (이집트)(룩소르)에 위치하며, 진흙 벽돌 건축의 훌륭한 예시이다.

3. 4. 2. 고대 이집트의 성과

고대 이집트인들은 바퀴와 도르래를 사용하지 않고 롤러, 밧줄, 썰매를 사용하여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거대한 암석을 먼 거리를 끌게 하는 방식으로 굉장한 공학적 위업을 성취했다. 이들은 램프, 레버, 선반, 오븐, 선박, 종이, 관개 체계, 문, 유리, 구운 석고, 목욕탕, 잠금장치, 방아두레박, 직조, 표준화된 측정 체계, 기하학, 사일로, 돌을 가공하는 방법, 창문 차양, 톱, 증기기관, 축소 도안, 에나멜 세공, 베니어판, 합판, 밧줄 트러스 등등을 발명했다. 다만, 남아있는 이집트의 매뉴얼이 없어서 돌들이 어떻게 높은 곳으로 옮겨졌고 오벨리스크가 세워졌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추측이 있어왔으며, 대부분의 이론은 경사로의 사용을 지지한다.

피라미드는 그 거대한 규모로 아주 인상적이었고 건설을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그중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3800년 동안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구조물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큰 독립 구조물 참고) 피라미드 건설과 관련된 공학적인 문제는 주로 블록의 이동 및 배치 문제였으며, 벽돌은 때로는 긴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현재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존중받고 대우받았지만, 아주 많은 노동자들이 단순 인력을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의 건설에 사용된 방법들은 주목할 만한 연구와 토론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 기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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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벽돌로 건축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라오는 돌로 거대한 구조물을 지었다. 건조한 기후 덕분에 고대 건축물의 상당 부분이 보존되었다.

어도비 (햇볕에 말린 진흙 벽돌) 건축은 고대 시대의 부속 건물과 일반 주택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이집트의 시골 지역에서 흔히 사용된다. 덥고 건조한 기후는 비에 씻겨 내려가는 경향이 있는 진흙 벽돌에 이상적이었다. 람세스 신전은 테베 (이집트)(룩소르)에 있으며, 진흙 벽돌 건축의 가장 훌륭한 사례 중 하나이다. 진흙 벽돌 아치로 된 대규모 창고도 남아 있는데, 모두 거푸집 없이 경사진 층으로 건설되었다.

테베에 있는 라메세움의 항공 사진과 관련된 어도비 구조물


가장 웅장한 건물들은 돌로 지어졌으며, 종종 거대한 석조 블록으로 만들어졌다. 피라미드사원에 사용된 거대한 블록을 이동시키는 데 사용된 기술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논쟁이 있어왔다.

3. 5.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석조기술을 보여주는 삽화


고대 그리스이집트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대부분의 공공 건물을 진흙 벽돌로 건설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구조물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으며, 일부는 현대에 부분적으로 재건되거나 복원되어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리스 신전이다.

그리스는 신전 건축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건축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기둥도리를 사용한 건축 양식이 주를 이루었으며, 궁륭아치는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지붕, 바닥 등 목재 구조물은 남아있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단순한 기둥과 도리 구조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넓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트러스를 사용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로마는 목재 지붕 트러스를 사용했다.

구운 벽돌은 석회 모르타르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물들은 진흙 기와 형태를 모방한 돌 기와로 지붕을 덮었다. 이후 문화들은 가공되지 않은 돌로 기본 형태를 만들고 가공된 돌로 겉을 마감하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그리스는 큰 돌을 다듬어 건설에 사용하고 금속 꺾쇠로 고정했다. 이 방식은 느리고 비용이 많이 들며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여 지을 수 있는 건물의 수를 제한했다. 또한 금속 꺾쇠는 부식으로 인해 자주 파손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로마 건설에 중요한 특징이 되는 강력한 회반죽을 개발하지는 않았다.

3. 5. 1. 고대 그리스의 기술

고대 그리스배관, 나선형 계단, 중앙 난방, 도시 계획, 물레방아, 기중기 등 다양한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었다.[38]

디디마의 아폴론 신전에는 가장 오래된 건축 도면이 새겨져 있는데, 완성되지 않은 돌벽에 기둥과 조형의 윤곽이 새겨져 있어 건축 도면 작업의 역사에 대한 드문 증거를 보여준다.[38]

고대 그리스 신전은 초기에 나무로 지어졌으나 기원전 650년 이후에는 돌로 지어지기 시작했다.[39] 목재 구조가 돌 구조물로 반복되는 과정을 석화[40] 또는 '석화된 목공작업'이라고 불렀다.

구운 진흙은 주로 기와와 부수적인 장식에만 쓰였지만, 매우 정교했다. 기와는 고대 그리스 건축에서 지붕 경사를 낮추는 데 기여했다.

그리스인들은 교차 궁륭, 아치교를 짓기도 했고, 이집트인들과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자 최초의 고층 건물인 알렉산드리아 등대를 건축했다.

그리스의 수학은 기술적으로 진보했으며, 도르래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용하여 건물의 상단에 무거운 돌덩이를 옮기는 기중기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탁월한 측량 기술로 파르테논과 같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건물의 시각적 정밀함을 구현했다.

3. 6. 로마 제국

로마 건축에 대해서는 판테온처럼 완전히 보존된 건물과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의 유적 등 많은 자료가 남아있어 이전 문화에 비해 많은 정보가 알려져 있다. 건축에 관한 최초의 현존하는 논문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가 저술했으며, 건설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저술은 마스터 빌더와 건축가의 차이점을 강조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27년부터 기원후 14년까지 판테온의 지붕 트러스를 나무에서 청동으로 교체했다. 이 청동 트러스는 독특했지만, 1625년 교황 우르바노 7세는 트러스를 다시 나무로 교체하고 청동은 재활용하기 위해 녹였다. 로마인들은 지붕 타일도 청동으로 만들었다.

3. 6. 1. 로마 제국의 재료

로마 시대 건축 재료의 가장 큰 발전은 수경성 석회 모르타르인 로만 시멘트의 사용이었다. 이전 문화에서도 석회 모르타르를 사용했지만, 포졸라나라고 불리는 화산재를 첨가하여 모르타르가 물속에서 경화되도록 했다. 이는 육중한 벽을 위한 강한 재료를 제공했다. 로마인들은 벽의 겉부분에 벽돌이나 돌을 사용했고 많은 양의 콘크리트로 사이를 채워넣어서, 벽돌 작업을 효과적으로 영구적인 거푸집으로 사용했다. 이후에는 콘크리트를 위해 제거된 나무 거푸집을 치유를 위해 사용했다.[41]

기원전 1세기에 로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신전의 예시는 이탈리아 티볼리의 베스타 신전이다.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 자갈더미와 모르타르 말고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아주 만들어내기 쉬우며 필요한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낮으므로, 로마가 일찍이 없었던 규모의 건설을 진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은 벽 뿐만 아니라 넓은 폭을 가진 아치, 배럴 볼트, 을 형성하는데에도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로마인들은 유리를 건축에 사용하여 창문에 쓰일 투명한 유리나 착색된 모자이크 유리를 적용했다. 유리는 공공 건물의 창문에 꽤나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었다.[41] 은 지붕 덮개 재료 및 상수도 및 폐수관에 사용되었다. 납의 라틴어 이름은 plumbumla이며, 이로 인해 "plumbing"(배관)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로마식 온돌 형태의 중앙 난방 시스템은 나무나 석탄 불의 배기가스로 데워지는 바닥을 사용했다.

3. 6. 2. 로마 제국의 노동자 조직

로마에는 길드와 같은 직업 조합이 있었다.[1] 대부분의 건설은 노예나 자유민에 의해 수행되었다.[1] 노예 노동력의 사용은 비용을 절감했으며 일부 구조물의 규모가 커진 이유 중 하나였다.[1] 로마인들은 건물을 매우 빠르게, 보통 2년 이내에 짓는 데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4] 매우 큰 구조물의 경우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방대한 수의 작업자를 투입하는 것이었다.[4]

독일 에서 재건된 로마 트레드밀 크레인


철기 시대에 개발되어 로마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손대패. 이 로마 대패는 독일에서 발견되었으며 서기 1~3세기에 제작되었다

3. 6. 3. 로마 제국의 기술

로마는 로만 시멘트라고 불리는 수경성 석회를 사용하여 건축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전 문화들은 석회 모르타르를 사용했지만, 로마는 'pozzolana'라 불리는 화산재를 더해 모르타르가 단단해지도록 했다. 이것은 육중한 벽을 위한 강한 재료를 제공했다. 벽의 겉부분에는 벽돌이나 돌을 사용했고, 그 사이를 많은 양의 콘크리트로 채워 벽돌 작업을 영구적인 거푸집으로 활용했다. 이후에는 콘크리트를 위해 제거된 나무 거푸집을 사용했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신전의 예시는 이탈리아 티볼리의 베스타 신전이다. 콘크리트를 만드는 데는 자갈과 모르타르 외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것은 만들기 쉽고 필요한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낮아, 로마가 이전에 없던 규모의 건설을 진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들은 벽뿐만 아니라 넓은 폭을 가진 아치, 배럴 볼트, 에도 콘크리트를 사용했다. 로마는 돔을 만들기 위한 속이 빈 그릇과 목욕탕을 위한 섬세한 가열, 환기 체계를 개발했다.

로마에는 무역 길드가 있었다. 대부분의 건설은 노예나 자유민에 의해 완공되었다. 노예 노동력의 사용은 비용을 줄였고, 이는 거대한 구조물들의 규모에 대한 이유가 된다. 로마는 건물을 극단적으로 빨리 짓는 것에 주목할 만한 강조를 두었고, 보통 2년 이상 걸리지 않았다. 굉장히 큰 건물에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막대한 노동자들을 부리는 것이었다.

로마인들은 물레방아, 제재소, 아치를 발명했으며, 대략 100년 이후에 건축적인 목적으로 유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단열 유리로 이중 유리를 사용했다. 로마 도로는 통나무 길과 포장도로를 포함했고, 때로는 뗏목이나 말뚝 기초와 다리로 보조되었다. 비트루비우스는 많은 로마 기계의 세부점을 보여준다. 로마인은 상당한 무게를 들어 올리기 위해 세련된 목재 기중기를 개발했다. 로마의 트라야누스 원주는 로마 건축사를 통틀어 들어 올려진 제일 무거운 돌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공학자들은 여전히 이를 어떻게 해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41]

3. 7. 고대 중국

중국은 동아시아의 문명 중심지였으며, 많은 극동의 건축 방식이 중국에서 발전하였다. 중국 건축의 유명한 예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건축된 만리장성이 있다.

영조법식은 중국 건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술 설명서이다. 중국은 오랜 옛날부터 수천 년간 사용된 고정된 국가적인 규칙을 따랐으며, 남아있는 건물들은 11세기에도 여전히 사용된 그 방식과 재료들을 사용해서 건축되었다. 중국의 사원은 토양과 암석을 기반으로 하여 전형적인 목재 대들보 골격이 사용되었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은 782년부터 존재해 온 남선사(오대산)이다. 하지만 중국의 사원 건설자들은 흔히 목재 사원을 재건축해서 이 옛 건물들의 어떤 부분은 만들어진 시기가 다르다. 중국의 전통적인 대들보 골격은 틀을 사용하지 않고 가구식구조에만 의존했다. 중요한 건축요소는 두공이라는 받침대의 조합이다. 숭악사탑은 523년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벽돌 탑이다. 이 탑은 진흙 반죽으로 굳힌 노란색 구운 벽돌로 지어졌고, 12개의 측면과 15단의 지붕으로 이루어졌다. 안제교는 595년에서 605년 사이에 건설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팬드럴이 개방된 원호 아치교"이다. 다리는 열장이음, 철제 조인트로 결합된 사암으로 지어졌다.[1]

3. 7. 1. 만리장성

만리장성은 항토, 암석, 나무, 나중에는 벽돌과 석회 반죽을 사용한 타일로 건축되었다. 목재 성문이 안팎으로 통하는 길을 막았다.[1] 지역에 따라 다른 건축 방식이 적용되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복구된 만리장성의 대부분은 벽돌, 가공한 돌블록, 석판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재료를 이용할 수 없는 곳에서는 압축된 토양, 가공되지 않은 돌, 나무, 심지어 갈대가 지역적인 재료로서 사용되었다. 나무는 요새와 보조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지역에 나무가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지역에서 가져왔다.[1]

지역건축 자재 및 방식
산악 지역노동자들이 돌을 캐내어 만리장성을 건설했다. 산 자체를 기반으로 하여, 만리장성의 겉부분은 암석 블록과 벽돌로 건설되었고, 가공되지 않은 돌이나 흙, 노동자들의 시체 등의 채워넣을 수 있는 다른 것들로 채워졌다.
평지노동자들은 모래, 황토 등의 지역 토양을 사용했으며, 이를 얇은 층으로 다져넣었다. 서부 자위관 지역의 만리장성은 주로 지구상에서 제일 잘 으스러지는 토양이라 일컬어지는 건조한 황토로 건설되었다. 2000년 가까이 이 부분이 대부분 온전히 남아있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사막 지역 (중국 서부 돈황 주변)강과 오아시스에서 가져온 갈대와 버드나무를 튼튼한 벽을 짓는 데 사용했다. 모래는 점착성이 없어 그 자체만으로는 건설에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갈대와 버드나무 사이를 채우는 충전재로서 사용되었다. 만리장성의 옥문관 요새는 모래와 갈대로 20cm의 층을 쌓아 건설했으며, 인상적이게도 9 미터까지 치솟았다.

[1]

명나라의 만리장성은 주로 벽돌로 건설되었다. 벽돌로 튼튼한 벽을 짓기 위해 석회반죽을 사용했다. 노동자들은 벽 근방 지역의 재료를 사용해 벽돌, 시멘트 공장을 지었다.[1]

4. 중세 시대의 건설

로마 제국 멸망 이후,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교회 건축이 발달했다. 방어시설, , 대성당은 중세 시대의 가장 웅대한 건설 프로젝트였다. 중세는 로마 시대의 끝과 함께 시작되어 많은 로마 건축 기술이 소실되었으나, 아헨 왕궁 예배당 건설(800년) 등에는 강철 이형철근과 같은 일부 로마 기술이 사용되기도 했다.[42] 9세기에는 석조 건물이 다시 등장했고, 11세기 후반에는 로마네스크 건축이 시작되었다.

빌라드 드 온쿠르가 그린 랭스 대성당버팀도리 설계도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아시아는 서양의 톱 구덩이 방식과 다른 로그 톱질 방식을 사용했다. 개념은 같지만 그림처럼 로그는 각을 이루고 구덩이는 사용되지 않는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문화적 요람 지역으로, 많은 극동 건축 방식과 스타일이 중국에서 발전했다. 대표적인 중국 건축의 예로는 기원전 7세기에서 2세기 사이에 건설된 만리장성이 있다. 만리장성은 다짐 흙, 돌, 나무, 그리고 나중에는 석회 모르타르를 사용한 벽돌과 타일로 지어졌다. 나무 문이 통로를 막았으며, 장부와 맞춤 유형의 목공 조인트의 가장 오래된 예는 기원전 5000년경 중국에서 발견되었다.

영조법식은 중국 건축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술 매뉴얼이다. 중국인들은 수천 년 동안 국가 규칙을 따랐기 때문에, 고대 건물 중 상당수는 11세기에 사용되던 방법과 재료로 지어졌다. 중국 사원은 일반적으로 흙과 돌 받침대 위에 나무 골조를 세운 구조이다.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은 782년에 지어진 남선사(오대산)이다. 그러나 중국 사원 건축가들은 정기적으로 목조 사원을 재건했기 때문에, 이 고대 건물의 일부는 다른 연대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중국 목재 프레임은 트러스를 사용하지 않고 기둥보 구조에만 의존하며, 두공 브래킷 세트가 중요한 건축 요소이다. 숭악사탑은 523년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벽돌 탑으로, 점토 모르타르로 쌓은 황색 소성 벽돌로 만들어졌으며 12개의 면과 15개의 지붕 층을 가지고 있다. 안제교는 595년에서 605년 사이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개방형 경간 석재 세그먼트 아치교로, 맞물림과 철 조인트로 연결된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복원된) 만리장성의 대부분 구간은 벽돌과 잘린 돌 블록/슬라브로 지어졌다. 벽돌과 블록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는 다짐 흙, 자르지 않은 돌, 나무, 심지어 갈대까지 현지 재료로 사용되었다. 나무는 요새와 보조 재료로 사용되었으며, 현지 목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운송해 왔다. 평원에서는 만리장성 건설자들이 지역 토양(모래, 황토 등)을 사용하여 촘촘하게 다졌고, 중국 서부의 자위관 만리장성 구간은 주로 먼지가 많은 황토로 건설되었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침식되기 쉬운 토양"이라고 불린다.

4. 1. 중세 유럽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된 15세기까지는 중세 유럽 시대로, 로마네스크 이전과 로마네스크 시기로 나뉜다. 이 시기에는 방어시설, , 대성당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으며, 특히 고딕 양식의 대성당 건축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고딕 양식 대성당으로는 보베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킹스 칼리지 예배당, 노트르담 대성당 등이 있다.

중세 초기에는 로마 시대의 건축 기술이 많이 소실되었으나, 아헨 왕궁 예배당 건설(800년) 등에 일부 기술(강철 이형철근 등)이 사용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42] 9세기에는 석조 건물이 다시 등장했고, 11세기 후반에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 나타났다. 12세기에는 궁륭, 버팀도리, 고딕 아치를 활용한 고딕 양식이 발전했다.

4. 1. 1. 중세 유럽의 재료

중세 유럽에서는 석재목재가 건축의 주된 재료였다. 북유럽에서는 서기 1000년까지 대부분의 건물이 목재로 지어졌지만, 남유럽에서는 흙벽돌이 주로 사용되었다.[42] 벽돌 생산은 이탈리아에서 서기 6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지속되었으나, 다른 지역에서는 벽돌 제조 기술이 거의 사라졌다.[42]

시토회는 네덜란드에서 덴마크, 독일 북부를 거쳐 폴란드에 이르는 지역에 벽돌 제조 기술을 다시 전파하여 벽돌 고딕 양식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다.[42] 이 지역들에서 벽돌은 가장 인기 있는 고급 재료였다.[42] 다른 지역에서는 재정 상황에 따라 나무나 돌을 사용하여 건물을 지었다.[42]

중세 석벽은 외부에 다듬은 돌을 사용하고 내부는 돌무더기를 채운 후 약한 석회반죽으로 굳혔다.[42] 이 석회반죽은 견고함이 약해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켰으며, 이는 로마네스크고딕 양식 건축에서 여전히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다.[42]

4. 1. 2. 중세 유럽의 설계와 노동자

중세 시대에는 건축에 대한 표준 교재가 없었다. 숙련된 장인들은 길드를 중심으로 도제 관계나 부자 관계를 통해 그들의 지식을 전달했다. 영업비밀은 장인들의 생계 수단이었으므로 엄격하게 보호되었다. 그림만이 이후 시기로 전해졌다. 양피지는 널리 사용되기엔 너무 비쌌고 종이는 중세 말까지 유럽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모형이 사용되었고 큰 규모로 건축할 수 있었다. 세부적인 것들은 트레이싱 플로어(tracing floor)에서 실제 크기로 설계되었고, 그 중 어떤 것들은 현재까지 남아있다.[24]

일반적으로, 중세 시대의 건물은 고용된 노동자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비숙련 작업은 일당 노동자들이 맡았다. 숙련된 장인들은 도제로서, 또는 부모에게서 기술을 배웠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어떤 지역(보통 마을 장벽 안쪽)의 특정한 직업을 독점하는 길드의 구성원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마을들은 일반적으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굉장히 작았고 소수의 부유한 귀족이나 상인들의 거주지, 또는 성당교회에 의해 장악되었다.[24]

4. 1. 3. 중세 유럽의 기술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5세기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된 15세기까지를 중세 유럽 시대로 본다. 이 시기에는 방어시설, , 대성당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들이 많이 지어졌으며, 특히 고딕 양식의 대성당 건축은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준다. 보베 대성당, 샤르트르 대성당, 킹스 칼리지 예배당, 노트르담 대성당 등이 대표적인 고딕 양식 대성당이다.

중세 초기에는 로마 시대의 건축 기술이 많이 소실되었으나, 아헨 왕궁 예배당 건설 등에 일부 기술이 사용되면서 명맥을 유지했다. 9세기에는 석조 건물이 다시 등장했고, 11세기 후반에는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이 나타났다. 12세기에는 궁륭, 버팀도리, 고딕 아치를 활용한 고딕 양식이 발전했다.

고딕 양식 건축은 얇은 석조 궁륭과 높이 솟은 건물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었다. 특히 크로싱 타워와 같은 부분에서는 잦은 실패가 있었다. 1500년경에는 항타기가 발명되어 건축 기술 발전에 기여했다.[42]

5. 근대 초기 건설

르네상스 건축은 인쇄술의 발명과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변화를 맞았다. 비트루비우스의 재발견은 큰 영향을 미쳤는데, 중세 시대에는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설계를 담당했지만, 비트루비우스는 완벽한 건축가는 모든 예술과 과학에 능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이러한 새로운 스타일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금세공인으로 시작하여 로마 건축을 독학하고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5. 1. 르네상스 시대

인쇄술과 종교개혁은 르네상스 건축의 특성을 바꾸었다. 비트루비우스의 재발견은 큰 영향을 주었다. 중세 시대에는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설계를 했지만, 비트루비우스는 완벽한 건축가는 예술과 과학에 능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금세공인으로 시작하여 로마 건축을 독학했고,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하여 르네상스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1]

이 시기에는 전환 기술과 함께 주요한 혁신이 이루어졌다. 서유럽의 대부분의 물레방아는 나무 줄기를 자르고 널빤지로 가공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엄청난 양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에서 벽돌 제작자들은 길드를 조직했지만, 가마는 화재 위험과 땔감, 벽돌흙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부분 시골 지역에 위치하였다. 벽돌 제작자들은 벽돌 개당 보수를 받았기 때문에, 벽돌을 지나치게 작게 만들어 이득을 얻으려 하였다. 그리하여 벽돌의 최소 크기에 대한 규정이 내려졌고, 마을들은 벽돌이 이를 준수하는지 점검했다. 철은 지붕 목조 작업에 적용할 띠쇠와 인장 부재에 점점 많이 사용되었다. 강철은 폴락 볼트를 사용해 고정되었다. 나사산이 새겨진 볼트와 너트를 제작할 수 있었고 당시 시계에 쓰였지만, 노동 집약적이어서 큰 구조물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지붕 작업은 보통 구운 진흙 기와를 사용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의 전통을 따랐고, 북유럽에서는 평평한 타일이 사용되었다. 돌은 이용 가능한 곳에서 품격 있는 건물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5. 1. 1. 르네상스 시대의 재료

이 시기에는 벽돌 사용량이 점점 증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벽돌 제작자들이 길드를 조직했지만, 가마는 화재 위험이 있고 장작과 벽돌흙을 쉽게 구할 수 있어 대부분 농촌 지역에 있었다. 벽돌 제작자들은 일반적으로 벽돌 개당으로 임금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이 벽돌을 너무 작게 만들 유인이 되었다. 그 결과, 최소 크기를 규제하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각 마을에서는 벽돌을 비교해야 하는 척도를 유지했다.[1] 지붕 목공에서 스트랩과 인장 부재에 철물 사용량이 증가했다. 철물은 죔쇠 볼트를 사용하여 고정했다. 나사산 볼트(및 너트)를 만들 수 있었고 이 시기 시계 제작에서도 발견되었지만, 노동 집약적이어서 대형 구조물에는 사용되지 않았다.[1] 지붕은 일반적으로 테라코타 지붕 타일로 덮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의 선례를 따랐다. 북유럽에서는 평평한 타일이 사용되었다. 돌은 구할 수 있는 곳에서는 위엄 있는 건물을 짓는 데 선호되는 재료로 남아 있었다.[1]

5. 1. 2. 르네상스 시대의 설계와 노동자

인쇄술과 종교개혁은 르네상스 건축의 특성을 바꾸었다. 비트루비우스의 재발견은 큰 영향을 주었다. 중세 시대에는 건물을 짓는 사람들이 설계를 했다. 숙련된 석공과 목수들은 구두로 기술을 전수했고, 경험, 모형, 경험법칙에 의존하여 건물 요소의 크기를 결정했다. 그러나 비트루비우스는 완벽한 건축가는 예술과 과학에 능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가 중 한 명으로, 금세공인으로 시작하여 로마 건축을 독학했고,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1]

르네상스 시대에 건축가라는 개념이 다시 나타나면서 건축 설계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르네상스는 고전 건축 양식을 다시 도입했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건축 논문은 건축을 귀족들이 연구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이전에는 건축이 장인에게만 적합한 기술적인 예술로 여겨졌다. 건축과 건축가의 지위 변화는 설계 과정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르네상스 건축가는 건설 기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지만 고전적인 설계 규칙에 대해서는 잘 아는 예술가(화가나 조각가)였다. 이것이 이탈리아 단어로 그리기(drawing)를 의미하는 설계(design)의 과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건축가는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에 개입하기도 했지만, 건축의 기술적인 측면은 주로 장인들에게 맡겨졌다. 건물을 설계하는 방식의 이러한 변화는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중세의 장인들은 기술적인 해결책을 염두에 두고 문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르네상스의 건축가들은 결과물이 어떻게 보일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발상과 함께 시작한 다음 그것을 작업하기 위한 방식을 탐구했다. 이것은 공학의 엄청난 발전으로 이어졌다.[1]

피렌체 대성당 돔 구조, 이중 구조를 보여줌


르네상스 시대의 노동자는 중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물은 고용된 노동자들이 지었다. 비숙련 작업은 일당 노동자들이 맡았다. 숙련된 장인들은 도제 관계를 수료하거나 부모에게서 기술을 배웠다. 장인들은 길드에 소속되어 건축 규정의 제한된 형태를 제공했다. 길드는 특정 지역(보통 마을 장벽 안쪽)의 특정 직업을 독점했다.[1]

대 피테르 브뤼헐의 '바벨탑', 16세기의 건설 기술을 보여줌

5. 1. 3. 르네상스 시대의 기술적 진보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금세공인으로 시작하여 로마 건축을 독학하였고, 피렌체 대성당을 설계하는 엔지니어가 되었다.[1] 그는 거푸집 공사 없이 거대한 돔을 짓는 방식을 창안해냈고, 벽돌의 배치를 통해 돔의 형태를 유지하는 방식을 사용했다.[1] 돔 건설 방식은 파손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논의의 대상이다.[1] 돔은 이중 구조이며, 늑재를 통해 이어져 있고, 후프응력을 견디기 위해 일정한 간격으로 돌과 나무로 만든 체인을 둘러두었다.[1]

브루넬레스키의 돔은 1446년에 등의 기초까지 완공되었다.[1] 이후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에 의해 크기가 추월당했다.[1]

5. 2. 17세기

17세기는 근대 과학이 태동하면서 건축에도 큰 영향을 미친 시기이다. 17세기 말 건축공학자들은 건물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험 과학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공학 이론은 18세기가 되어서야 구조물의 규모를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전했다. 따라서 17세기의 구조물은 경험과 축소 모형의 사용에 크게 의존했다.

5. 2. 1. 17세기의 재료와 도구

17세기에는 현대 과학이 태동하면서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세기 말 건축 엔지니어들은 실험 과학을 사용하여 건물의 형태를 분석하기 시작했지만, 18세기가 되어서야 구조물의 규모를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공학 이론이 발전했다. 따라서 17세기의 구조물은 경험과 축소 모형의 사용에 크게 의존했다.

이 시기 주요한 혁신은 유리 생산이다. 최초의 판유리 주형이 프랑스에서 개발되었다. 강철은 구조물에 점점 더 많이 사용되었다. 크리스토퍼 렌햄프턴코트궁의 바닥 보(floor beams)를 지지하기 위해 철제 행거(iron hanger)를 사용했고, 솔즈베리 대성당을 고치고 세인트 폴 대성당의 돔을 강화하기 위해 철제 봉(iron rod)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건물은 마름돌로 돌무더기벽의 표면을 만들었고, 석회 모르타르로 사이를 접착했다. 수경 모르타르를 만들기 위해 석회에 다른 물질을 섞는 실험이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로마 콘크리트에 비하면 별 이점이 없었다. 영국,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는 세밀하고 화려한 전면을 만들기 위해 잘라지고 측정된 벽돌을 사용했다. 삼각형 지붕틀은 영국에 소개되었고 인디고 존스와 크리스토퍼 렌에 의해 사용되었다.

많은 도구들이 근현대적 기술로 인해 구식이 되었지만, 배수척, 다림줄, 직각자, 기포관수준기, 컴퍼스는 여전히 일반적으로 쓰인다.

5. 2. 2. 17세기의 방법

실험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건설 방법은 중세 시대와 유사한 측면이 많았다. 이전 세기에 사용되었던 것과 동일한 유형의 기중기가 여전히 사용되었다. 비계영국의 세인트 폴 대성당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돔에 사용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수 세기 동안 사용되어 온 목재 비계가 여전히 사용되었다. 기중기와 비계는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다. 복잡한 도르래 체계를 통해 비교적 큰 하중을 들어 올릴 수 있었고, 긴 경사로가 건물 상층부로 하중을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

5. 3. 18세기

18세기에는 17세기 후반부터 탄생한 많은 아이디어가 발전했다. 건축가와 공학자는 점점 전문화되었다. 실험과학과 수학적인 방법은 점차 세련되었고 건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일어난 산업 혁명으로 도시 규모가 커졌고 건설 속도와 양도 증가하였다.

이 시기의 주요한 혁신은 철의 사용(주조와 단조)이다. 철기둥은 크리스토퍼 렌의 일반적인 주택 설계에 사용되었으며, 런던의 몇몇 18세기 교회에도 사용되었지만 회랑만을 지탱했다. 18세기 후반, 철 생산 비용 감소로 철을 이용한 주요 건축이 가능해졌다.

5. 3. 1. 18세기의 기술 혁신

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코울브룩데일의 아이언 브리지(1779)와 같은 새로운 건축물이 등장했다.[1] 거대한 규모의 방앗간 건설은 화재 방지 대책을 필요로 했으며, 주조한 철은 기둥과 보에 점점 흔하게 사용되었다.[1] 루브르 박물관은 단철(wrought-iron) 지붕의 초기 사례이다.[1] 강철은 도구 생산에는 사용되었지만, 건물에 사용할 만큼 충분한 양을 만들 수는 없었다.[1]

벽돌 생산은 이 기간 동안 주목할 만한 상승세를 보였다.[1] 유럽의 많은 건물들이 벽돌로 건설되었지만, 흔히 석회 반죽을 바르고 때로는 돌처럼 보이도록 형태를 만들었다.[1] 벽돌 생산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아, 수 세기 동안 그랬듯이 손으로 빚어졌고 가마 안에서 구워졌다.[1] 테라코타 기법으로 만들어진 코우드 인조석은 영국에서 사용되었다.[1]

6. 산업 혁명과 근대 건설

산업혁명 시기에는 철도, 운하, 쇄석도와 같은 새로운 교통 기반 시설이 등장했고, 증기기관, 전동공구등 새로운 건설 장비도 개발되었다. 강철은 I형강과 철근 콘크리트 형태로 사용되었고, 판유리도 대량 생산되어 배관, 식수, 하수처리가 보급되었다. 19세기부터 건축 법규는 화재안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여 적용되었다.

1912년에 건설 중인 울워스 빌딩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는 2010년에 완공되었다.


2차 산업혁명과 함께, 엘레베이터와 기중기고층 건물마천루 건축을 가능하게 했고, 중장비와 전동 공구는 필요한 노동력을 줄였다. 건설 노동자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노동조합이 생겨났고, 안전모귀마개같은 개인보호장비도 도입되었다. 대공황 시기에는 공공 건설 프로젝트가 거시경제 증진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되었다.

20세기 말에는 생태학, 에너지 절약, 지속 가능한 발전이 건설의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건설 역사에 관한 분과학문은 설립되지 않았지만, 구조공학자, 고고학자, 건축학자, 기술역사학자와 건축역사학자 등 이 영역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교수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44] 지난 30년 동안 이 분야는 급격하게 주목받았는데, 이는 점점 중요하게 여겨진 건물 보전에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45]

6. 1. 19세기: 산업 혁명

산업 혁명은 건축 재료, 기술,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철도, 운하, 쇄석도와 같은 새로운 교통 기반 시설이 등장하였으며, 이들은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했다.[43] 증기기관, 전동공구, 폭발물, 광학적 측량법을 포함하는 새로운 건설 장비도 개발되었다. 증기기관은 회전 톱과 평못발사기의 발전을 이끌었고, 이는 balloon framing의 보급과 전통적인 목재 축조의 쇠퇴에 영향을 주었다.[43]

19세기 중반부터 강철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I형강과 철근 콘크리트의 형태로 사용되었다. 판유리도 대량생산에 돌입해, 사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배관이 등장했고, 식수와 하수처리가 보급되었다. 건축 법규는 19세기부터 특히 화재안전을 중점적으로 고려하여 적용되었다.

6. 2. 20세기: 2차 산업혁명

20세기 초, 2차 산업혁명과 함께 엘리베이터기중기고층 건물마천루 건설을 가능하게 했다.[43] 중장비와 전동 공구는 건설 현장의 노동 강도를 줄였다.[43] 조립주택과 CAD 기술도 이 시기에 등장했다.[43]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구조 건설 노동자.


건설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해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43] 안전모귀마개 같은 개인보호장비도 도입되었다.[43]

대공황 시기에는 뉴딜 정책과 같은 공공 건설 프로젝트가 거시경제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사용되었다.[43] 규모의 경제를 고려하여 기반 시설을 포함해 교외, 마을, 도시 전체가 동일한 프로젝트 하에 계획되고 건설되기도 했다. 미국의 메가프로젝트(10억 달러 초과 비용),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스웨덴의 Million Programme이 그 예시이다.

6. 3. 21세기: 3차 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20세기 말 생태학, 에너지 절약, 지속 가능한 개발이 건설의 중요한 문제로 부상했다. 건설 방법은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했으며, 에너지 및 환경 디자인 리더십(LEED) 인증이 생겨났다.[27]

린 제조 개념을 활용한 린 건설 개념이 개발되었다. 3D 프린팅, 드론, 로봇 공학, GPS, 건축 정보 모델링, 프리패브 등 기술 발전으로 건설 효율성이 높아졌다. 미국은 건설 분야에서 3D 프린팅 기술을 처음 도입하여, 시멘트를 층층이 "출력"해 건물 벽을 만들었다.[27] 로봇과 드론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 확인이 가능해졌다. 현대식 주택은 프리패브로 건설되어 현장에서 조립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건물 3D 버전을 생성, 건설 관리자가 건설 전 시공성을 분석해 변경 주문 비용을 줄인다.

디지털 시대에는 패스트트랙 건설 등 다양한 건설 방법이 등장했다. 패스트트랙 건설은 21세기에 인기를 얻고 있으며, 현재 건설 프로젝트의 40%를 차지한다는 추정도 있다.

7. 현대 한국 건설의 과제와 전망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한국 건설 산업은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 건설 기술 도입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건축 정보 모델링(BIM),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드론, 로봇 공학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건설은 생산성 향상, 안전 관리 강화, 친환경 건축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27]

건설 방법은 지속 가능성을 우선시하며, 에너지 및 환경 디자인 리더십(LEED) 인증이 생겨났다. 혁신가들은 초창기 산업 혁명 시대에 개발된 린 제조의 개념을 활용하여 린 건설 개념을 개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스마트 건설 기술 개발 및 보급을 위한 정책 지원을 통해 건설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다단계 하도급, 저가 수주 경쟁, 안전 불감증 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건설 산업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노동자 권익 보호, 안전 관리 강화 등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대응은 건설 산업의 중요한 과제이며, 친환경 건축, 탄소 중립 건설, 순환 경제 구축 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친환경 건축 자재 사용 의무화, 에너지 효율 등급제 강화, 건설 폐기물 재활용 촉진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지속 가능한 건설을 실현하고자 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역 불균형 심화 등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건설 산업의 역할이 중요하며, 주거 복지 확대, 지역 개발, 생활 인프라 확충 등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공공 임대 주택 공급 확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인프라 투자, 스마트 도시 조성 등 다양한 정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한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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