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구석기 시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약 1,500만 년 전 일본 열도의 형성과 함께 시작되었으며, 플라이스토세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지형이 변화했다. 초기에는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구석기 문화가 전개되었으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대륙과 분리되었다.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뗀석기 도구를 사용하는 전통적인 구석기 시대와는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기·중기 구석기 시대 유적 발굴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다양한 석기 기술과 지역적 특색이 나타났으며, 흑요석 채취와 같은 활동이 이루어졌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활했으며, 이동 생활을 하며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이 시대의 인류는 고아시아 집단과 관련이 있으며, 다양한 유전자 연구를 통해 여러 이주와 혼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일본의 구석기 시대 - 후지무라 신이치
일본 아마추어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는 구석기 유물 발굴 조작이 발각되어 고고학계에서 추방되었으며, 이 사건은 연구 윤리와 검증 시스템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 일본의 구석기 시대 - 뗀석기
뗀석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도구 중 하나로, 돌을 깨거나 떼어 만들어 구석기 시대부터 널리 사용되었으며, 긁개, 박편 석기 등 다양한 제작 방식과 주먹도끼, 찍개 등 여러 형태가 있다. - 구석기 시대 아시아 - 호모 에렉투스
호모 에렉투스는 약 200만 년 전부터 10만 년 전까지 생존하며 직립 보행을 하고 아슐리안 석기를 제작했으며 불을 사용한 최초의 인류로 추정되는 종이다. - 구석기 시대 아시아 - 네안데르탈인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서아시아에 살았던 고대 인류로, 큰 뇌 용량과 독특한 신체적 특징을 지녔으며, 무스테리안 문화를 사용하고 동굴에서 거주하며 매장 의례를 치르는 등 복잡한 사회생활을 영위했지만, 현생 인류와의 경쟁, 기후 변화 등으로 약 4만 년 전 멸종한 종이며, 현생 인류와 이종교배하여 현생 인류 유전체에 일부 유전자가 남아있다. - 일본의 고대사 - 조몬 시대
조몬 시대는 기원전 약 1만 4천년경부터 기원전 3세기경까지 일본 열도에서 조몬 토기를 사용하며 수렵, 채집, 어로를 기반으로 정주 생활을 영위하고 사회적 복잡성이 증가한 선사시대 문화로, 야요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종말을 맞았으나 이후 일본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 일본의 고대사 - 야요이 시대
야요이 시대는 기원전 10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 중엽까지 일본 열도에서 이어진 시대로, 벼농사 기술 전래와 금속기 사용, 소국 연합 형성 등을 통해 일본 고대 국가 형성의 기반을 다졌다.
일본의 구석기 시대 | |
---|---|
개요 | |
위치 | 일본 |
시작 | 기원전 35000년 |
종료 | 기원전 14000년 |
![]() | |
다음 시대 | 조몬 시대 |
일본 열도의 구석기 시대 | |
![]() | |
![]() |
2. 일본 열도의 형성과 환경
지질학적으로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빙하기로 불리는 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약 2백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말기부터 홀로세(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초기까지에 해당한다. 이는 유럽의 고고학적 시대 구분으로는 후기 구석기 시대와 대체로 일치한다.
일본 열도는 지질학적으로 유라시아 판 동쪽 끝과 북아메리카 판 남서쪽 끝에 위치하며, 해양판의 침강 운동으로 대륙에서 분리된 호상 열도이다. 플라이스토세 시기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해수면 높이가 변동했고, 이는 일본 열도와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 및 분리에 영향을 주었다. 빙기에는 해수면 하강으로 육지와 연결되기도 했으나, 홀로세 초인 약 1만 년 전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대한해협, 쓰가루 해협 등이 완전히 형성되어 현재와 같이 섬으로 분리되었다.[56][57]
과거에는 빙기에 육지로 연결된 통로를 통해 인류가 사냥감을 따라 일본 열도로 이동했을 것으로 여겨졌으나[58][21], 최근 연구에서는 가장 추웠던 시기에도 일부 해협은 바다로 남아 있었으며, 배를 이용한 도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즈 제도 고즈시마산 흑요석이 간토 지방 후기 구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것이 그 근거 중 하나이다.[59][22] 다만, 당시의 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배를 이용한 도래설은 아직 소수 의견이다.
인류가 언제 처음 일본 열도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약 4만 년 전 이후의 유적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지만, 이와테현 가네토리 유적이나 시마네현 스나바라 유적 등을 근거로 5만 년 전, 혹은 그보다 훨씬 이전(8~12만 년 전)으로 소급하는 주장도 있다.[52][20] 그러나 현생 인류 이전 고인류의 도항 능력 문제나 유적의 연대 측정 정확성 문제 등으로 인해, 4만 년 전보다 오래된 인류 거주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일치된 견해가 없다.
2. 1. 지형 변화
일본에 불완전하지만 호상 열도의 형태가 갖춰지기 시작한 것은 약 1,500만 년 전이며, 현재의 지질학적 구조는 약 300만 년 전에 거의 완성되었다. 플라이스토세 동안에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지형 변화가 일어났다.지질학적으로 일본 열도는 유라시아 판의 동쪽 끝과 북아메리카 판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다. 이 두 대륙판 아래로 태평양판과 필리핀해판이라는 두 해양판이 가라앉는 운동으로 인해 대륙에서 분리된 호상 열도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플라이스토세에는 일본이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연결된 반도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대륙과 같은 구석기문화가 전개되었다.[53][54] 플라이스토세 전기에서 중기에 걸쳐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해수면이 오르내렸고, 화산 분화에 따른 지각 변동으로 지형 변화도 있었지만, 이때까지 일본 열도와 동아시아 대륙의 지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55]
그러나 플라이스토세 후기(12만 6천 년 전~1만 년 전)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으로 대량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했다. 약 2만 년 전까지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인류의 왕래가 가능했던 것으로 보였던[56] 일본 열도는 약 1만 2천 년 전에 대한해협(현해탄)과 쓰가루 해협 등 일본을 둘러싼 여러 해협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홀로세 초인 약 1만 년 전쯤 모든 해협이 확정되어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56][57]
과거에는 빙기에 일본 열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 당시 사람들이 사냥감을 따라 일본 열도로 이동해 온 것으로 여겨졌다.[58][21] 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빙하기 중 가장 추웠던 시기(최한기)에도 쓰가루 해협과 쓰시마 해협에는 바다가 남아 있어 육지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는 이즈 제도의 고즈시마에서 생산된 흑요석이 간토 지방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점을 근거로, 당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건너왔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59][22] 다만, 이 시기의 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아직 소수 의견이다.
2. 2. 동물상
일본 열도에는 여러 차례 북쪽(마미야 해협, 소야 해협), 서쪽(대한해협, 쓰시마 해협), 남쪽의 해협들을 통해 다양한 동물들이 건너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 동물들을 따라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일본 열도로 건너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최종 빙기에는 육지로 연결되었던 홋카이도로 매머드를 포함한 동물군이 소야 해협을 통해 유입되어 다양한 동물상을 이루었다.
일본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동물 중 하나는 나우만코끼리이다. 나우만코끼리는 약 35만 년 전에 일본 열도에 출현하여 약 1만 7천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추정된다.[23] 나가노현 시나노정의 노지리코 유적군에서는 약 4만 년 전의 지층에서 나우만코끼리 뼈로 만든 도구가 발견되기도 했다. 노지리 호 유적(약 37,900년 전)에서는 나우만코끼리와 함께 거대 사슴인 야베 사슴의 도살 흔적이 발견되었다.[5] 또한 세토 내해에서는 어부의 그물에 걸려 해저의 나우만코끼리 화석이 인양되는 경우도 있다.
당시 유적에서는 나우만코끼리 외에도 들소(野牛), 원시 소(原牛)와 같은 대형 포유류와 일본사슴, 멧돼지, 토끼 등 중소형 동물의 뼈도 발견되어, 이들이 구석기인들의 주요 사냥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2. 3. 식생
플라이스토세 중반 이후, 한랭한 빙기와 온난한 간빙기가 약 10만 년 주기로 반복되면서 식생 역시 이에 맞춰 규칙적인 변화를 보였다.빙기는 약 6만 년 전을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은 온대성 침엽수가 우세한 침엽수림 시대였다. 후반에는 약 5만 년 전과 약 2만 년 전에 냉대(아한대) 침엽수가 번성했으며, 그 외 시기에는 참나무속 식물이 번성했다. 최종 빙기의 가장 추웠던 시기인 약 2만 년 전에는 홋카이도 남부에서 주오 고지까지 냉대성 침엽수림이 분포했고, 그보다 서쪽 지역에는 온대성 침엽수와 활엽수가 섞인 혼합림이 넓게 퍼져 있었다. 비교적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조엽수림(난온대 활엽수림)은 서남 일본의 태평양 연안 일부와 남서 제도 지역으로 분포 범위가 축소되었다.
한편, 아이라 칼데라의 거대한 분화로 발생한 아이라-Tn 화산재(AT 화산재)는 일본 열도 전체를 뒤덮으며 규슈에서 도호쿠 지방에 이르는 넓은 지역의 식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분화는 기후가 점차 추워지던 시기에 일어나 침엽수림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당시 동물군과 인간 사회에도 영향을 미쳐, 기존의 획일적인 석기 문화를 유지하던 것에서 벗어나 서일본과 동일본처럼 지역적 특색을 가진 석기 문화권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플라이스토세에서 홀로세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빙기에서 간빙기로의 급격한 기후 변화가 있었으며[23], 해수면 상승과 함께 식생을 포함한 생태계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나타났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졸참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떡갈나무) 등을 중심으로 하는 낙엽 활엽수림이 서일본에서 동일본 지역까지 넓게 분포하게 되었다.[24]
3. 석기
일본 열도에서는 오랫동안 조몬 시대 이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여겨졌으나, 1949년 아이자와 타다히로가 군마현 이와주쿠 유적의 간토 롬층에서 구석기를 발견하면서 일본에도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이 증명되었다.[1] 이를 계기로 일본의 구석기 시대 연구가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일본 전역에서 5,000곳[1]이 넘는 구석기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들 유적 대부분은 약 3만 5천 년 전부터 1만 5천 년 전 사이의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4]
일본은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화산재 층이 넓게 분포하는데, 특히 약 29,000년 전에 분출한 아이라-탄자와(AT) 화산재 층은 전국적으로 발견되어 유적의 연대를 측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1] 그러나 산성 토양이 많아 뼈나 나무와 같은 유기물 유물은 잘 보존되지 않아 출토 유물은 대부분 석기에 한정된다.[1]
전기 및 중기 구석기 시대 유적의 존재는 일본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 등으로 인해 논란이 있으며, 확실히 인정된 유적은 드물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돌날 기법을 이용한 석기, 첨두기, 잔돌날(세석기) 등 다양한 뗀석기가 제작되었다.
특히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세계적으로도 이른 시기인 약 3만 년 전[6]에 마제석기와 연마 석기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신석기 시대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기술이 구석기 시대에 나타난 이례적인 경우로, 그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9] 이 때문에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전통적인 석기 분류와 다소 차이를 보인다.[6]
석기 외에도 드물지만 가공된 목재나 수혈 주거 터[40] 등 나무를 활용한 흔적도 발견된다.
3. 1. 전기·중기 구석기 발굴 논란
일본은 산성 토양이 많아 뼈 등이 잘 남아있지 않아 전기·중기 구석기 시대 유적으로 여겨지는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후기 구석기 시대의 존재가 1949년 아이자와 타다히로에 의해 이와주쿠 유적에서 증명되자, 더 오래된 시대의 유적 발굴이 시도되었다. 1960년대부터 오이타현 니우·하야미다이 유적, 토치기현 호시노 유적, 이와주쿠 D 지점 등이 조사되었고, 전기 구석기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는 '니우 논쟁'[26], '규암제(珪岩製) 전기 구석기 논쟁'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많은 연구자의 동의를 얻지는 못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기 구석기 탐색은 잦아들고, 층위 편년 연구나 유적 구조의 해명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일본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 1980년대부터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후지무라 신이치에 의해 전기·중기 구석기 시대가 일본에 존재했다는 증거가 잇따라 '발견'되었다. 이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성과'로 여겨졌고, 일본의 구석기 시대는 한때 약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11월, 후지무라가 미야기현 가미타카모리 발굴 현장에서 석기를 몰래 묻는 장면을 마이니치 신문 취재반이 촬영하였고, 같은 해 11월 5일 이른바 일본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1]을 보도했다. 후지무라는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조작 사실을 인정했고,[1] 이후 일본 고고학 협회의 특별 조사팀 조사에서 후지무라가 관여한 33곳의 유적 전부가 조작되었거나 의심스러운 것으로 밝혀졌다. 협회는 후지무라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1]
이 조작 사건 이후, 일본에서 전기·중기 구석기 시대의 확실한 유적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열도에 인류가 존재했다는 최초의 널리 인정되는 연대는 약 3만 5천 년 전으로 여겨진다.[4]
다만, 최근의 고고학 조사에 의해 소수지만 전기·중기 구석기 시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되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테현 도노시의 가네토리 유적에서는 9만~8만 년 전의 중기 구석기로 추정되는 유물이,[52] 시마네현 이즈모시의 스나바라 유적에서는 약 12만 년 전의 전기 구석기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되었다. 또한 나가노현 이다시의 타케사나카하라 유적에서는 자연 과학 분석 결과 '''3만 년에서 5만 년 전''' 사이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는 중기 구석기 시대에서 후기 구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유적으로 추정된다.[27] 그러나 이러한 유적들이 모든 구석기 연구자들에게 인정받는 단계는 아니며, 4만 년 전 이전의 유적 존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계 내 의견이 분분하다.
3. 2. 후기 구석기의 특징
일본 열도의 후기 구석기 시대는 약 35,000년 전에 시작되어 조몬 시대로 이행하는 약 15,000년 전까지 약 20,0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시기의 유적은 사할린에서 오키나와까지[28] 전국적으로 약 10,000곳 이상 확인되었으며, 출토되는 유물의 대부분은 석기이다. 유구는 자갈 무리(礫群) 외에는 발견되는 경우가 드문데, 이는 땅속에서 유기물로 만들어진 도구나 간소한 구조의 주거 시설 등이 분해되어 잘 남지 않기 때문이다.[29] 약 3만 년 전 지층에서 안산암으로 만든 크고 세로로 긴 박편이, 약 2만 5천 년 전 지층에서는 흑요석제 칼 모양 석기와 여러 종류의 석재로 만들어진 박편, 몸돌 등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30]후기 구석기 시대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구분되며, 그 기준은 약 29,000년 전 일본 열도 전역에 넓게 퇴적된 아이라Tn 화산재 층이다. 석기 구성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 전반기 (약 35,000년 전 ~ 29,000년 전):
- 초기(약 35,000~33,000년 전)에는 사다리꼴 모양 석기와 국부 마연 석부(부분적으로 간 돌도끼)가 대표적이며, 열도 넓은 지역에 분포했다. 아직 뚜렷한 지역색은 보이지 않았다.
- 이후, 세로로 긴 박편을 가공하여 만든 첨두기(뾰족끝 석기) 형태의 석창(이른바 '칼 모양 석기'의 일부)이 동일본을 중심으로 나타나면서 서일본과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 말기(약 29,000년 전까지)에는 돌날 기법이 확립되어 석창 제작이 더욱 발달했으며, 이 경향 역시 동일본에서 두드러졌다.
- 한편, 긴키 지방에서 세토 내해 지역에서는 가로로 긴 박편을 떼어내는 기술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후반기의 '세토우치 기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 전반기 말에는 사다리꼴 석기와 국부 마연 석부가 크게 감소한다.
- 후반기 (약 29,000년 전 ~ 15,000년 전):
- 후반기는 크게 '칼 모양 석기'가 활발히 제작되던 시기(약 17,000년 전까지)와, 이후 잔돌날(세석기)이 활발히 제작되던 시기(약 15,000년 전까지)로 나뉜다.
- 단, 홋카이도는 당시 사할린, 연해주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어(고사할린-홋카이도 반도) 대륙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혼슈, 시코쿠, 규슈 등이 포함된 고혼슈 섬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홋카이도에서는 약 23,000년 전부터 잔돌날을 포함한 석기군이 제작, 사용되었다.
- 후반기에는 홋카이도를 제외한 지역에서 도호쿠, 간토, 주부, 긴키, 세토 내해, 규슈 등 세분된 지역성이 확립되었다. 각 지역에서는 독자적인 석기 양식(様式)이 발달했다. 예를 들어, 도호쿠의 '히가시야마형', 니가타-야마가타의 '스기쿠보형', 긴키의 '고쿠후형' 등 다양한 '칼 모양 석기'(이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세토우치-규슈의 '각뿔 모양 석기'(원뿔형 석기), 규슈의 '박편 첨두기', '사다리꼴 석기' 등 창이나 칼 용도로 추정되는 대형 석기들이 각 지역의 특징을 보여준다.
- 석기 제작에 사용된 석재 또한 지역별로 다른 산지의 것을 이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 쐐기형 석기 제작 기술은 중국 동북부에서 당시 육지로 연결된 홋카이도를 통해 동일본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각뿔형이나 배 모양 석기 기술은 중국 남부에서 직접 규슈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31]
이러한 석기와 석재 사용의 변화는 당시 사람들의 이동 방식 및 생업 활동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특히 전반기에는 이전까지 넓게 분산되었던 거주지가 하천 유역으로 집중되고 유적 수가 급증하는 경향을 보여 인구가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기후 및 생태계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약 29,000년 전부터 지구 전체적으로 한랭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약 25,000년 전 무렵에는 최종 빙기 최한랭기(Last Glacial Maximum)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후반기 말에는 홋카이도보다 상당히 늦게 고혼슈 섬에도 '''잔돌날 석기군'''이 확산된다. 이는 크게 두 개의 지역적 전통으로 나뉘는데, 홋카이도에서 동북 일본에 이르는 지역과 주부, 간토 이남에서 규슈에 이르는 지역이다.[32] 전자는 '유베쓰 기법'으로 불리며, 특징적인 조각칼 형태의 '아라야형 조기(彫器)'를 동반한다. 후자는 '야데가와 기법'으로 불리며, 조기를 동반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33][34]
3. 3. 간토·주부 지역의 첨두기
칼 모양 석기와 잔돌날이 일본 열도 전역에 퍼져나간 것과 달리, '''첨두기 석기군'''은 동일본, 특히 주부 지방과 간토 지방에서 지역적으로 발전한 특징을 보인다. 첨두기는 물고기 비늘처럼 작은 박편을 반복적으로 떼어내 나뭇잎 모양으로 만든 석창의 끝부분을 말하며, 크기는 대부분 10cm 이하다. 주부·간토 지역에서는 칼 모양 석기군이 점차 작아지고 잔돌날 석기군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후기 구석기 시대 후반기 말에 이러한 첨두기가 제작되었다.나가노현의 와다 고개나 도치기현의 다카하라 산 흑요석 산지 유적에서는 양질의 흑요석이 생산되었다. 특히 다카하라 산에서는 2008년 조사 결과, 후기 구석기 시대 후반기부터 조몬 시대 초창기에 걸친 시기(정확한 시기는 불명)의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14cm의 첨두기와 함께 제작 장소가 발견되기도 했다.[35][36][37]
4. 유적과 생활
일본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주로 대지, 단구, 구릉, 고원 등 전망이 좋은 홍적세(플라이스토세)의 대지 가장자리에서 발견된다. 이들 유적은 일상생활의 거점, 사냥감 해체 장소(킬 사이트), 석기 제작장 등으로 나뉜다. 정주형 주거 유적이 드물어, 당시 사람들은 일정한 영역 내를 이동하며 수렵과 채집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의 구석기 시대 연구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인 1946년 아이자와 타다히로의 발견으로 본격화되었다.[1] 이전까지는 조몬 시대 이전에 인류가 거주하지 않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5,000곳 이상의 유적이 발견되었으나, 일본 특유의 강한 산성 토양 때문에 대부분 석기 유물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홍적세 당시 낮았던 해수면으로 인해 드러났던 해안가에 주요 생활 터전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많은 유적이 현재 바닷속에 잠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1]
일본은 화산 활동이 잦아 화산재 층이 유적의 연대 측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약 21,000년에서 22,000년 전에 일본 전역을 덮은 AT(아이라-탄자와) 부석은 중요한 연대 지표로 활용된다. 그러나 2000년, 아마추어 고고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에 의한 일본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이 밝혀지면서 일본 구석기 연구는 큰 혼란을 겪었다. 이 사건 이후 신중한 검증을 거쳐, 일본 열도에 인류가 확실히 존재했다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시기는 기원전 35,000년경으로 여겨진다.[4]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인 노지리 호에서는 나우만 코끼리나 야베 사슴과 같은 대형 동물을 사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5]
유적에서는 주로 석기와 그 제작 과정에서 생긴 박편, 석핵 등이 발견된다. 이들은 특정 범위에 집중되어 나타나 당시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석기를 만들고 생활했던 흔적임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주거 형태나 무덤, 화덕, 함정과 같은 생활 유구, 그리고 석기 집중 양상을 통해 추정되는 사회 구조 등은 하위 문단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로 수렵을 통해 식량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에서는 들소, 나우만 코끼리 등 대형 동물과 일본사슴, 멧돼지 등 중·소형 동물의 뼈가 발견된다. 어업 활동의 직접적인 증거는 드물지만, 이즈 제도의 흑요석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되는 점 등으로 미루어 항해 기술을 이용한 교류나 어업 가능성이 제기된다. 조몬 시대에 비해 식물 채집보다는 수렵의 비중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이동 생활과 수렵에 유리한 석기 발달 양상 등에서 엿볼 수 있다.
4. 1. 주거와 무덤
일본 열도의 구석기 시대 유적은 주로 대지, 단구, 구릉, 고원 등 전망이 좋은 홍적세(플라이스토세) 대지 가장자리에서 발견된다. 이 유적들은 일상생활의 거점, 사냥감 해체 장소(킬 사이트), 석기 제작장 등으로 나뉜다. 당시 사람들은 일정한 생활 영역 안에서 이동하며 채집과 수렵 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정주형 주거 유적이 드물기 때문이다.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로 동굴이나 바위그늘을 주거지로 삼았다고 알려졌으나, 땅을 파고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은 움막 주거지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로 오사카부 후지이데라시의 하사미야마 유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약 2만 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름 6m, 깊이 20cm의 잘 다듬어진 원형 수혈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바깥 둘레에 기둥 구멍들이 있으며, 지름 10cm 정도의 나무 기둥 약 20개를 비스듬히 세워 중앙에서 간단히 엮고 풀이나 가죽으로 덮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 터에서는 사누카이트로 만든 칼 모양 석기와 날개 모양 박편 약 200점도 함께 출토되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1만 곳이 넘는 구석기 유적 중에서 조몬 시대처럼 여러 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은 정주 가능한 건물(수혈 건물이나 평지 건물) 터는 매우 드물다. 확실한 건물 터로 인정되는 것은 약 2만 년 전의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 다나무카이하라 유적(국가 사적)의 평지 건물[39]이나 하사미야마 유적 등 10여 개에 불과하다. 이러한 건물 유구가 드문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텐트와 같은 간이 주거지에서 생활하며 이동을 반복하는 '유동 생활'을 했고, 땅을 깊이 파는 구조물을 잘 만들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유적에서는 석기 외에도 생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구가 발견된다. 조리, 난방, 채광을 위한 화덕(돌 화덕, 지상식 화덕, 토광식 화덕)이나 역군(礫群, 돌무지)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불에 그을려 붉게 변한 흔적을 통해 불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역군은 주먹 크기의 돌 수십 개가 모여 있는 것으로, 조리 시설로 추정된다. 드물게 발견되는 배석(配石)은 사람 머리 크기의 돌로, 불을 쓴 흔적이 없어 작업대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토광(土壙, 구덩이)도 발견되는데, 용도가 불분명한 것이 많다.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의 아라야 유적 토광에서는 식용으로 보이는 호두나 물푸레나무 씨앗이, 시즈오카현 이와타시 히로노키타 유적 토광에서도 호두가 발견되어 저장 구덩이였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시즈오카현 미시마시의 하츠네가하라 유적이나 순토군 나가이즈미정의 히가시노 유적,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우치키하라 유적에서는 사냥용 함정으로 보이는 토광이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하츠네가하라 유적에서는 대지 능선을 가로질러 깊이 1.5m~1.6m 정도의 함정 60기가 여러 겹으로 배치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아이라-탄자와 화산재(At층) 아래에서 발견되어 약 3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 외에 나무를 사용한 흔적도 있다. 아카시시 니시야기 유적에서는 약 6~5만 년 전의 지층에서 꾸지뽕나무로 만든 판상형 목제품(가공 흔적이 있는 나무 조각)이 출토되었다. 길이 23.4cm, 폭 4.8cm, 두께 4mm 정도의 이 나무 조각은 최소 두 종류의 석기로 가공되었으나 용도는 불명확하다. 이는 일본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목제품 중 하나로 여겨진다.
무덤으로는 널무덤이 발견된다. 시신과 함께 생전에 사용했던 장신구, 석기, 옥 등을 부장품으로 묻고, 붉은색 안료를 뿌린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매장 풍습은 시베리아와 캄차카반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늦어도 2만 년 전에는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술적인 의미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약 9cm의 고케시(こけし) 인형 모양 석우(石偶, 돌인형)나, 자갈 표면에 가는 선으로 동물을 묘사한 유물도 출토되었다.
구석기 시대 유적은 보통 석기와 그 파편이 집중된 곳 여러 군데, 여러 개의 자갈 무더기, 화로 터, 주거지 터, 토광, 묘갱 등으로 구성된다. 석기 제작 흔적을 통해 당시 사회 구조를 추정하기도 한다. 동일한 돌덩이(모암)에서 떼어낸 석기 조각들의 집중 범위('스폿') 여럿이 모여 작업장('블록')을 이루고, 여러 블록이 모여 하나의 생활 단위('유닛' 또는 '블록군')를 형성하며, 이것이 원형으로 배치된 것을 환상 블록군이라고 부른다. 환상 블록군은 특히 4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 사이의 후기 구석기 시대 초기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유구 형태로, 군마현 이세사키시 시모후레 우시부 유적이나 지바현 인바군 사카에마치 스미코사와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유적의 규모를 통해 당시 한 곳에 50명에서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38]. 하지만 구석기 시대의 전체적인 취락 구조나 사회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4. 2. 토기의 출현
일본에서 최초로 토기가 어떻게 출현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특별한 증거는 없지만 북방에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013년 기준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는 아오모리현의 오다이라야마모토 I 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토기에 부착된 탄화물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16,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토기의 출현은 구석기 시대와 조몬 시대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지며, 이 시점을 구석기 시대의 종말이자 조몬 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아오모리현부터 가고시마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약 1만 3천 년에서 1만 4천 년 전의 토기가 출토되고 있어, 이 시기에는 홋카이도를 제외한 일본 열도 전역에 토기 문화가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 시기에 토기가 거의 발견되지 않거나 매우 드물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 열도의 토기 문화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널리 퍼진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구석기 시대 말기에는 규슈 지역, 특히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의 센푸쿠지 동굴 유적 등에서 콩알무늬토기가, 혼슈 지역에서는 민무늬토기가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토기는 운반, 저장, 취사 등에 사용되었지만, 가장 초기의 토기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5. 인류
일본 열도에 인류가 언제 처음으로 살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다. 이와테현 도노시의 가네토리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5만 년 전 또는 8~9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52], 시마네현 이즈모시의 스나바라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는 12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견해도 있다.[20] 하지만 이러한 초기 연대 주장은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 이전 인류의 항해 능력이나 석기가 발견된 지층의 연대 측정 문제 등으로 인해, 4만 년 전(후기 구석기 시대) 이전으로 소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존재한다.[52] 현재로서는 4만 년보다 더 오래된 유적으로 모든 연구자가 인정하는 곳은 없다.
빙하기였던 플라이스토세(약 2백만 년 전~1만 년 전)에는 해수면이 낮아 일본 열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 기존의 학설이었다.[53][54] 이 때문에 당시 인류는 사냥감을 쫓아 육지를 통해 일본 열도로 이동했을 것으로 여겨졌다.[58]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가장 추웠던 시기에도 쓰가루 해협이나 대한해협(쓰시마 해협)은 바다로 남아 있어 대륙과 완전히 연결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배를 이용해야만 갈 수 있는 이즈 제도의 고즈섬에서 채취된 흑요석이 간토 지방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면서, 당시 인류가 배를 타고 일본 열도로 건너왔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59] 하지만 당시의 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아직 소수 의견이다. 약 1만 2천 년 전부터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여러 해협이 형성되었고, 약 1만 년 전에는 일본 열도가 유라시아 대륙에서 완전히 분리되었다.[56][57]
이 시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토광묘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무덤에는 생전에 사용했던 장신구나 석기, 옥 등을 함께 묻었으며, 붉은색 안료인 적철석(벤가라)을 뿌린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러한 매장 방식은 시베리아, 캄차카 반도,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확인되며, 늦어도 2만 년 전에는 이러한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 1. 홍적세 인류 화석
일본 열도는 화산 활동이 활발하여 화산재가 넓은 지역을 덮고 있으며, 이로 인해 토양이 산성화되어 홍적세 시대의 인골이나 동물 뼈 화석이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과거 홍적세 인류 화석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례들이 C14 연대 측정법 등의 재검토 결과 그 지위를 잃게 되었다. 현재는 시즈오카현의 하마키타인과 오키나와현의 미나토가와인 등 몇몇 사례만이 홍적세 인류로 인정받고 있다.'''하마키타인'''
하마키타인은 1960년부터 1962년 사이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 하마나구 네가타의 석회석 채석장에서 발견된 인골 화석이다. 두개골 조각과 쇄골, 상완골, 관골, 경골 등의 사지골 조각이 위아래 두 지층에서 출토되었다. 각 층에서 함께 발견된 동물 뼈를 가속기 질량 분석법(AMS)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한 결과, 상층은 약 1.4만 년 전, 하층의 경골은 약 1.8만 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혼슈에서 발견된 유일한 홍적세 인골 화석으로, 20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다. 골격 형태는 조몬인과 유사하여 그 조상으로 여겨진다.
'''야마시타 동굴인'''
1968년 오키나와현 나하시 야마시타초 제1동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8세 가량의 여자아이로 추정되는 대퇴골, 비골, 경골 화석이다. 같은 지층에서 나온 탄화물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3만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어, 일본 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골 중 하나로 꼽힌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초기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의 특징과 일치한다는 견해가 있다.[41]
'''미나토가와인'''
1970년 오키나와현 야에세정(구 구시카와촌)의 미나토가와 채석장에서 개인 연구가 오야마 모리야스에 의해 발견된 약 1.8만 년 전 홍적세의 인골 화석이다(미나토가와 유적). 여러 개체의 뼈가 발견되었으며, 이는 조몬 시대보다 약 5000년 앞선 후기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남성의 추정 신장은 153cm에서 155cm, 여성은 145cm로 키가 작았으며, 하체에 비해 상체는 가냘픈 편이었다. 얼굴은 사각형이고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코는 넓고 입체적이며 튼튼한 원시적인 골격 특징을 보인다. 전두골이 작고 후두골 윗부분이 돌출된 점, 사지골의 근육 부착부가 발달하지 않은 점 등은 조몬인과도 다른 독자적인 특징이다.
이보다 앞선 1967년-1969년에는 같은 채석장 석회암 피셔 상부에서 약 1.2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인골 조각(상완골, 척골, 관골, 대퇴골 2점, 경골 2점, 거골, 제1중족골)이 발견되었다. 이 인골들은 일본 본토의 조몬인과 골격 특징이 매우 유사하여 '''상부 미나토가와인'''이라고 불린다.
2009년 일본학술진흥회 공동 연구에서는 후기 홍적세의 미나토가와인이 아시아 대륙 남방 기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러나 홋카이도부터 큐슈 지방까지의 조몬인과는 턱 형태 등에서 많은 차이가 발견되어, 두 집단 간의 계통적 연속성을 인정하는 기존 가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42][43]
'''시모지하라 동굴인'''
1978년 이후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오키나와현 쿠메지마정(구 구시카와촌)의 시모지하라 동굴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생후 8개월에서 10개월 사이의 유아(신생아) 화석 인골 약 50점과 동물 뼈가 함께 출토되었다. 함께 발견된 게 화석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연대는 15200±100년 전(B.P.)으로 추정된다.[44]
'''핀자아브 동굴인'''
1979년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구 우에노촌)의 핀자아브라고 불리는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아미노산 라세미화 분석 결과 약 2만 년 전의 것으로 측정되었다. 같은 지층의 목탄 조각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한 결과는 25800±900년 전(B.P.)에서 26800±1,300년 전(B.P.) 사이로 나타났다.[45][46]
'''시라호인'''
2010년 2월 4일, 오키나와현 교육위원회는 이시가키시 시라호(이시가키섬)의 신이시가키 공항 건설 부지 내 시라호 사오네타바루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인골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류큐 대학, 도쿄 대학 등과의 공동 연구 결과, 발견된 인골 중 1점(20~30대 초반 남성의 두정골 조각, 약 8cm×11cm)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2만 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47][48] "홍적세부터 조몬・야요이 시대에 걸친 일본인의 변천에 관한 종합적 연구" 분석에서는 오른쪽 두정골 조각의 연대를 20416±113년 전(BP)으로 추정했다. 이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직접 인류 화석의 연대를 측정한 값으로는 일본 내 최고(最古) 기록이다.[42][43]
'''사키타리 동굴인'''
오키나와현 난조시 사키타리 동굴 유적에서 발견된 단편적인 인골이다. 약 1만 2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석영제 박편 석기와 해산 조개 등은 인위적으로 동굴 안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기타 오키나와 유적'''
오키나와현에서는 다음 유적에서도 홍적세 인골 화석이 발굴 및 보고되었다.
- 오야마 동굴 - 오키나와현 기노완시[44]
- 카다바루 동굴 - 오키나와현 쿠니가미군 이에손[49]
- 고헤즈 동굴 - 오키나와현 쿠니가미군 이에손[44][50]
- 토바루 동굴 - 오키나와현 나카가미군 기타나카구스쿠촌[44]
'''홍적세 인류 주장이 부정된 사례'''
과거 홍적세 인류의 뼈로 주장되었으나, 후속 연구를 통해 부정된 주요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이름 | 발견 연도/장소 | 주장 내용 | 현재 평가 |
---|---|---|---|
구즈우인 | 1950년대 / 도치기현 사노시 (구 구즈우정) | 홍적세 인류 (나라 노부오) | 발견된 뼈 8점 중 4점은 동물 뼈, 2점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400년 전 인골로 판명 |
미카비인 | 1959년-1961년 /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 (구 미카비정) | 후기 홍적세 인류 |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약 9000년 전의 조몬 시대 초기 인골로 판명 |
우시카와인 | 1957년 / 아이치현 도요하시시 우시카와 광산 | 중기 홍적세 인류(구인) (스즈키 히사시) | 인골의 특징을 갖추지 못함 |
아카시인 | 1931년 / 효고현 아카시시 | 구석기 시대 인류 (나라 노부오) / 원인 (하세베 겐진) | 원본 인골은 전쟁으로 소실, 석고 모형만 남음. 현재는 새로운 시기의 인골이라는 의견이 우세 |
히지리다케인 | 1962년 / 오이타현 사에키시 (구 혼조무라) 히지리다케 동굴 | 중국 산정동인과 유사 (오가타 타모츠) | 형태 및 연대 추정상 역사 시대(에도 시대) 인골일 가능성 높음 |
5. 2. 분자생물학적 연구
일본의 구석기 시대 인구와 이후 조몬 시대 인구는 오늘날의 중국, 대한민국, 일본 인구의 특징을 나타내는 집단이 확장되기 이전에 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차지했던 고대 고아시아 집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10][11]구석기 시대 대부분 동안 일본 열도는 해수면 하강으로 인해 육교를 통해 아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었다.[1] 골격 특징은 아시아 대륙의 다른 원주민들과 많은 유사점을 보여준다. 치아 구조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일반적으로 순다돈트 그룹에 더 가깝고 시노돈트 그룹과는 거리가 멀어, 동남아시아나 대륙 남쪽 섬의 집단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두개골 특징은 더 강인한 경향을 보이며, 눈은 비교적 움푹 들어간 형태이다.[12] 슈미트와 세구치의 연구에 따르면, 선사 시대 조몬인은 시베리아(알타이 산맥 지역)의 구석기 시대 인구에서 유래했다. 다른 연구들도 조몬인과 다양한 구석기 시대 및 청동기 시대 시베리아인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하며, 고대 일본으로 여러 차례의 이주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13]
사키타니 미쓰루는 조몬인이 두 개의 뚜렷한 민족 집단이 혼합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나는 3만 년 이상 전에 일본에 존재했던 더 오래된 집단(Y 염색체 D1a 보유자)이고, 다른 하나는 약 1만 3천 년 전에 일본으로 이주한 더 최근의 집단(Y 염색체 C1a 보유자)이다.[14]
현대 일본인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본의 초기 인구와 이후 도착한 집단 사이에 상당한 유전자 혼합이 있었음을 시사한다(카발리-스포르차). 현대 일본인은 유전적으로 약 10% 정도의 조몬인 조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15]
조몬인은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한 집단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다이 야마모토 I 유적에서 발견된 조몬인 표본은 홋카이도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부 혼슈의 조몬인 표본과 유전적으로 다르다. 오다이 야마모토 조몬인은 C1a1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고대 및 현대 동북아시아 집단과 유전적으로 가깝지만, 이카와즈나 우라와 조몬인과 같은 다른 조몬인 표본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나가노현 유고라 동굴 유적의 조몬인은 현대 동아시아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홋카이도 조몬인의 직계 후손으로 여겨지는 아이누족과는 유전적으로 다르다.[16][17]
2020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조몬인은 다소 이질적이었으며, 많은 조몬 집단은 고대 "알타이어계" 인구(현대 퉁구스어 사용자와 유사하며, 오로첸족으로 대표됨)에서 기원했다. 이들은 지역 수렵 채집인 집단 위에 자리 잡았다. 이 "알타이어계" 인구는 기원전 6,000년경 동북아시아에서 이주해 와서 다른 관련 없는 부족들과 공존하거나 혼합되었으며, 이후 야요이 시대 사람들에게 대체되었다. 하플로그룹 C1a1과 C2는 퉁구스계 사람들과 연결되며, 이들은 기원전 6,000년경 동북아시아에서 조몬 시대 열도로 유입되어 오다이 야마모토 I 유적과 같은 초기 도기 문화를 특징으로 하는 초기 조몬 문화를 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18]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약 7만~6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났으며, 그 이전에는 아프리카 외 지역에 분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 열도에서 가장 오래된 석기(사와라 유적의 12만 년 전 석기)를 남긴 것은 데니소바인과 같은 구인류일 가능성이 있다. 일본 열도에 현생 인류가 나타난 것은 약 4만~3만 5천 년 전으로 생각되며, 이는 일본 고유의 하플로그룹 D1a2a (Y 염색체)의 기원 연대와 대체로 일치한다.[51]
참조
[1]
서적
Japan: An Illustrated Encyclopedia
Kodansha
1993
[2]
문서
Hoshino Iseki Museum, Tochigi Pref.
[3]
웹사이트
Ancient Jomon of Japan
http://web-japan.org[...]
2007-08-27
[4]
웹사이트
Prehistoric Archaeological Periods in Japan
http://www.t-net.ne.[...]
Charles T. Keally
[5]
논문
Geology and Quaternary Environments of the Tategahana Paleolithic Site in Nojiri-ko (Lake Nojiri), Nagano, Central Japan
https://linkinghub.e[...]
2018-04
[6]
논문
世界最古の磨製石斧と栗原遺跡 列島最古の旧石器文化を探る6
https://sitereports.[...]
2017-05-26
[7]
웹사이트
World's oldest known ground-edge stone axe fragments found in WA
http://www.abc.net.a[...]
2018-04-03
[8]
서적
Prehistoric Japan, New perspectives on insular East Asia
University of Hawaii Press
[9]
웹사이트
The puzzle of tracing the origin of the world's earliest polished stone tools
https://heritageofja[...]
heritageofjapan
2016-12-28
[10]
웹사이트
About Japan: A Teacher's Resource
http://aboutjapan.ja[...]
2016-12-28
[11]
웹사이트
Population and Settlement - Japan: A Unique Country
http://jkephartjapan[...]
2016-12-28
[12]
웹사이트
Origins of the Palaeolithic people of Japan
https://heritageofja[...]
2016-12-28
[13]
웹사이트
Jōmon culture and the peopling of the Japanese archipelago
http://www.jjarchaeo[...]
2013-08-31
[14]
서적
DNA・考古・言語の学際研究が示す新・日本列島史
勉誠出版
2009
[15]
웹사이트
'Jomon woman' helps solve Japan's genetic mystery
https://www3.nhk.or.[...]
2019-07-10
[16]
문서
Adachi et al. 2013
[17]
문서
Kanzawa-Kiriyama 2013
[18]
논문
Munda languages are father tongues, but Japanese and Korean are not
2020
[19]
웹사이트
「岩宿時代に関する疑問に答えます」 岩宿博物館
https://www.city.mid[...]
[20]
웹사이트
島根・出雲の砂原遺跡の石器、「日本最古」に再修正
https://www.nikkei.c[...]
2022-05-29
[21]
간행물
東北アジアと日本の旧石器文化
奈良文化財研究所編
2007
[22]
뉴스
高原山遺跡で原石加工 「日本人どこから?」に一石
http://www.asahi.com[...]
Asahi.com
2007-04-14
[23]
간행물
ゾウがいた上町の海
大阪市文化財協会
2008
[24]
간행물
更新世と完新世の植物
奈良文化財研究所編
2007
[25]
서적
広辞苑
岩波書店
1998-11-11
[26]
서적
日本列島人類史の起源 -「旧石器の狩人」たちの挑戦と葛藤-
雄山閣
2014
[27]
뉴스
竹佐中原遺跡「5万〜3万年前」 後期旧石器時代より古く
http://www.shinshu-l[...]
信濃毎日新聞
2010-05-20
[28]
웹사이트
日本列島の旧石器時代遺跡
http://palaeolithic.[...]
日本旧石器学会
2021-04-23
[29]
웹사이트
はじめに:旧石器時代の自然や人の暮らし
https://www.hkd.mlit[...]
国土交通省北海道開発局
2021-05-04
[30]
웹사이트
平成28年(2016年)度 第49回遺跡発掘調査報告会 発表遺跡
http://www.sakitama-[...]
[31]
뉴스
奈文研飛鳥 資料館で企画展 出土品語る、旧石器時代
MSN産経ニュース
2010-07-27
[32]
웹사이트
日本列島における細石刃石器群の起源
https://sitereports.[...]
全国遺跡報告総覧
2021-06-02
[33]
간행물
後期旧石器時代の地域色
奈良文化財研究所編集
2007
[34]
간행물
日本列島の旧石器時代
歴史学研究会・日本史研究会編集
2004
[35]
뉴스
http://sankei.jp.msn[...]
産経ニュース
2009-02-27
[36]
뉴스
2009年2月とちぎテレビニュース
http://www.tochigi-t[...]
[37]
뉴스
とちぎテレビ動画ニュース
http://www.tochigi-t[...]
[38]
웹사이트
環状ブロック群とは
https://www.town.shi[...]
2019-07-02
[39]
웹사이트
4.田名向原遺跡(史跡田名向原遺跡公園)
https://www.city.sag[...]
相模原市教育委員会
2021-05-29
[40]
서적
基層としての木の文化
中公文庫
1996
[41]
웹사이트
山下町第一洞穴人と縄文人の形態比較
https://www.kahaku.g[...]
国立科学博物館
2021-11-13
[42]
연구
平成17年度〜平成21年度日本学術振興会科学研究費補助金(基盤研究(S))による研究「更新世から縄文・弥生期にかけての日本人の変遷に関する総合的研究 」日本人形成過程のシナリオ
http://research.kaha[...]
[43]
간행물
科学
岩波書店
2010-04
[44]
학술지
下地原洞穴と沖縄の旧石器遺跡について
http://ac.jpn.org/ku[...]
沖縄考古学会
2011-05
[45]
서적
교양講座 琉球・沖縄史
東洋企画
[46]
학술지
ピンザアブ洞穴と南琉球の旧石器文化
http://ac.jpn.org/ku[...]
沖縄考古学会
2010-06
[47]
뉴스
直接分析で国内最古の人骨 沖縄・石垣島の洞穴で出土
https://web.archive.[...]
共同通信
2010-02-04
[48]
뉴스
石垣島で2万年前の人骨発見=直接年代測定で国内最古-日本人の起源解明に期待
http://www.jiji.com/[...]
時事通信
2010-02-04
[49]
학술지
カダ原洞穴とその調査史 -伊江島から始まった沖縄の旧石器文化研究-
http://ac.jpn.org/ku[...]
沖縄考古学会
2007-03
[50]
웹사이트
伊江島ゴヘズ洞穴遺跡 (いえじまごへずどうけついせき)
https://ryukyushimpo[...]
琉球新報デジタル
2021-11-13
[51]
서적
DNA・考古・言語の学際研究が示す新・日本列島史 日本人集団・日本語の成立史
勉誠出版
2009
[52]
문서
[53]
서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도서출판 범한
[54]
서적
일본역사
보고사
[55]
서적
일본역사
보고사
[56]
서적
한국에서 쓴 일본 역사 이야기
2003
[57]
서적
일본역사
보고사
[58]
문서
동북아시아와 일본의 구석기 문화(東北アジアと日本の旧石器文化)
2007년
[59]
웹인용
2007年04月14日Asahi.comニュース-陸続き否定情報、3万5千年前の黒曜石採掘坑遺跡情報
https://web.archive.[...]
2010-08-05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