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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개성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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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니스의 개성상인은 개성상인의 후손인 유명훈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시기 일본으로 끌려간 개성상인 유승업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상인으로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유승업은 일본, 중국, 이탈리아 등지를 거치며 상업적 재능을 발휘하고, 가톨릭으로 귀의하여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세례명으로 불리며 유럽 사회에 적응한다. 소설은 유승업의 삶과 더불어 16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역사적 배경, 사회적 변화, 동서양 문명의 교류를 다루며, 현재 시점의 인물인 유명훈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2. 소설의 구성과 줄거리

소설은 정명물산 유명훈 부장의 회상으로 시작하여 안토니오 코레아의 일대기를 다룬 뒤, 다시 현재로 돌아와 유명훈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2. 1. 안토니오 코레아의 생애 (과거)

소설은 유명훈 과장이 유럽 출장길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 들러 루벤스의 초상화 '한복을 입은 남자'를 본 이야기로 시작한다. 유 과장은 대학교 역사 전공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역사학자 김광진의 비정규직 교수 임용 축하와 함께 이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김광진은 임진왜란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사람인 카를레티에게 팔린 조선인 노예 5명 중 한 명인 안토니오 꼬레아가 초상화의 주인공일 것이라 추측하며, 그의 후손들이 이탈리아 남부 알비 마을에 살고 있지만 19세기 초 대화재로 기록이 소실되어 정확한 확인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2. 1. 1. 조선에서의 삶과 임진왜란

유명훈 과장은 유럽 출장길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 들렀다. 유럽 출장을 마치고 온 유 과장은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역사학자인 김광진이 비정규직 교수를 마치고 모교의 교수가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유 과장은 유럽에서 본 루벤스의 초상화 '한복을 입은 남자'에 대해 이야기했다. 초상화 속 남성은 자신 있는 미소를 띠고 한복을 입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김광진은 조선 중세기 경제와 사회를 연구한 역사학자로서 안토니오 꼬레아라는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왜란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예 5명을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사람이 샀는데, 이들 중 한 사람인 안토니오 꼬레아를 자기 나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인 꼬레아 씨족들이 이탈리아 남부의 알비라는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19세기 초에 대화재가 일어나 출생신고서가 불타는 바람에 이들이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들인지는 알 수 없다고도 했다.

2. 1. 2. 일본에서의 노예 생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포로가 되어 쓰시마로 끌려간 유승업은 숙련된 조선 수군 출신이었지만 부상을 당해 장애인이 된 만대 아저씨, 농부 출신의 정낙일과 함께 강제노동으로 고생한다. 승업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같은 조선 사람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만대 아저씨와 정낙일도 살해당한다. 승업도 무사 이누가와에게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가까스로 처형을 면한다. 승업은 일본말한문에 능통하여 사카이에서 일본인 친구 이치로와 무사 우에스키 밑에서 창고관리를 하는데, 그의 상업적인 재능을 알아본 상인 도시오와 승부를 벌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도시오에게 오히려 혼쭐 나기도 한다.

2. 1. 3. 중국으로의 탈출과 가톨릭 귀의

승업은 조선에서 망명한 서여 스님의 도움으로 이탈리아(한문으로 의대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의 노비 신분으로 다른 조선인들과 담신민이라는 중국 거상(巨商)과 함께 명나라에 간다.[1] 명나라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시를 쓰면서 달래던 승업에게, 천주교 신자인 담신민은 예수회 선교사 스테파노 수사를 소개한다.[1] 스테파노 수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주실의한문으로 옮기려 했기에 한자에 능통한 승업의 도움이 필요했다.[1] 스테파노 수사의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한자로 글을 써서 토론하는 필담을 하던 승업은 스테파노 수사의 권유로 가톨릭 기도서를 읽으며 중국인 교우(동 바오로, 진 니콜로)들과 천주교 교리 공부를 시작하고, 마침 마테오 리치 사제가 남경의 공소를 방문하여 천주교 미사를 집전한 날 중국인 교우들과 세례를 받았다.[1] 이로써 승업은 안토니오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1]

2. 1. 4. 이탈리아에서의 삶과 상인으로서의 성공

스테파노 수사의 추천으로 베네치아 델 로치 상사에서 일하며 상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베네치아 공화국의 시민권을 얻었다.[1]

2. 1. 5. 멕시코 항해와 새로운 도전

스페인 항해사 호세 곤잘레스와 함께 멕시코 항해에 나서며, 무풍지대(말의 바다)를 통과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2. 2. 유명훈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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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1. 유명훈과 피에트로 모란테

유명훈은 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부장으로, 한국전쟁 때 개성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아들이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지만, 취업을 선택했다. 천주교 신자인 그는 자신과 세례명이 같은 안토니오 꼬레아에 관심을 갖는다.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게 되면서, 유명훈은 친구 피에트로 모란테를 통해 이탈리아 문화를 접하게 된다. 피에트로 모란테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온 이탈리아군 대령타자기문서를 작성하는 여성노동자 사이에서 태어나 용산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때 이탈리아로 건너가 자동차 공학을 공부한 후, 캄파넬라 상사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모란테는 한국과 이탈리아의 문화 차이에 대해 설명해줌으로써 유명훈의 적응을 돕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에서 기기 고장 사고가 났을 때,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나서지 않는 것을 보고 유명훈이 화를 내려고 하자, 모란테는 한국의 공동체주의와 이탈리아의 개인주의 차이를 설명하며, 노동자들이 근로 계약서에 없는 기기 수리를 할 이유가 없다고 해명한다.[2] 모란테는 한국말과 이탈리아말에 모두 능통하다.

2. 2. 2. 정명물산 직원들의 활약

José Gonzalezes는 에스파냐 세비야에서 안토니오보다 3살 어린 항해사로 만났다. 성격이 불같아서 선주들과 부딪히기 일쑤였지만, 선원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여서 다들 유능하고 씩씩한 호세 선장과 함께 일하고 싶어했다. 항해 지식과 선원을 부리는 기술 모두 뛰어났다. 안토니오와 처음에는 갈등했지만, 서로의 실력을 존중하여 친구가 되었다. 1618년 중미에서 베네치아 유리 장사를 하려던 안토니오와 함께 유럽, 중미 멕시코, 쿠바를 여행했다. 안토니오가 베네치아 유리를 식민지 관리와 부유층에게 35000두카트에 팔고 돌아갈 때, 연지벌레를 싣고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거리이지만 바람이 불지 않는 말의 바다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무모한 여행을 함께 한 것은 너그러운 안토니오의 인품을 좋아해서였다. 대서양 항해 경험이 많은 호세와 선주인 안토니오는 무풍지대인 말의 바다에 일부러 들어갔고, 선원들은 왜 그랬는지까지 정확하게 읽고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 바하마제도의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면서 배를 움직인 덕분에 모두 살았다. 1940년 미국의 해양학자가 링 밥(Ring Bab)이라고 부른, 버뮤다 바다에서 바닷물이 멕시코 만류의 영향을 받아 소용돌이치는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편서풍이 성 엘모의 불과 엘도라도 호를 움직인 덕분에 대서양을 거쳐 유럽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으로 돌아와 추위에 약한 연지벌레를 팔아 많은 이익을 남겼다.

3. 주요 등장인물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당시 시대상과 문화적 배경을 보여준다. 주요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만대 아저씨: 하만대. 베테랑 수군이자 전문가. 심술궂고 이기적인 다른 수병들과 달리, 전쟁고아 출신 소년병인 승업을 돌본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사로잡혔으며, 탈주 미수로 목숨이 위태롭게 된 승업을 구하고 죽는다.
  • 정낙일: 승업의 친구. 농부 출신으로 농사가 몸에 익지 않은 승업을 돌본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탈주 미수로 죽는다.
  • 승업의 가족: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명이). 승업의 부친은 송상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살해당했다.
  • 원균: 조선의 장군.
  • 도시오: 뛰어난 감각을 지닌 상인. 사농공상 (무사, 농부, 공업인, 상인)으로 구분되는 신분은 낮지만 막대한 자본으로 다이묘들을 지배한다. 임진왜란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리도쿠가와 이에야스 간의 내전을 예측하고 화약을 사들여 큰 이익을 얻는다.
  • 서여스님: 불교 승려이자 도망친 조선인. 조선에서 개성상인 대리점(송방) 노동자로 일하다 살인죄를 짓고 일본으로 도망쳤다. 글을 아는 지식인으로,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내전을 예측할 정도로 시대를 읽는 지성을 갖추었다.
  • 머레이: 잉글랜드의 상사원. 터키 이스파한에서 안토니오의 라이벌이었으며, 이탈리아말에 능통하다. 에스콰이어 계급이다.
  • 유명훈: 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부장. 한국전쟁으로 개성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아들이다. 천주교 신자인 유명훈은 자신과 세례명이 같은 안토니오 꼬레아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학문과 취업 중에서 취업을 택했다.
  • 김영주: 정명물산 정명어패럴 제품기획실 과장.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 뉴욕에 이민하여, 한국의 덤핑무역을 조사하러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온 오코너조차 잠시 당황했을 정도로 영어미국 사회에 능통하다.
  • 김진철: 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대리. 경제연구소로 이직할 때까지 유명훈 부장과 같이 일했다. 국제금융 전문.

3. 1. 조선

역사학자 김광진은 조선 중세기 경제와 사회를 연구한 학식을 바탕으로 (초상화 속 인물이) 안토니오 꼬레아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진왜란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사람 카를레티가 조선인 노예 5명을 샀는데, 이들 중 한 명인 안토니오 꼬레아를 자기 나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인 꼬레아 씨족들이 이탈리아 남부 알비 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19세기 초 대화재로 출생신고서가 불타 이들이 안토니오 꼬레아의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 만대 아저씨: 하만대. 베테랑 수군이자 전문가. 심술궂고 이기적인 다른 수병들과 달리, 전쟁고아 출신 소년병인 승업을 돌본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사로잡혔으며, 탈주 미수로 목숨이 위태롭게 된 승업을 구하고 죽는다.
  • 정낙일: 승업의 친구. 농부 출신으로 농사가 몸에 익지 않은 승업을 돌본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탈주 미수로 죽는다.
  •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명이): 승업의 가족. 승업의 부친은 송상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살해당했다. 후에 천주교 신자가 된 승업은 별세자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전통에 근거하여 이들의 영원한 삶을 위해 기도한다.
  • 원균

3. 2. 일본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개성상인(송상)의 아들 유승업은 가족을 잃고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혀 쓰시마로 끌려간다. 강제노동 중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일본말한문에 능통한 승업은 사카이에서 창고관리 일을 하며 상업적 재능을 보이지만, 상인 도시오에게 혼쭐이 나기도 한다.

3. 3. 중국

명나라에서 승업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한시를 쓰면서 달랬는데, 천주교 신자인 담신민은 예수회 선교사 스테파노 수사를 소개한다. 스테파노 수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주실의한문으로 옮기려 했기에 한자에 능통한 승업의 도움이 필요했다. 스테파노 수사의 일을 도우면서 틈틈이 한자로 글을 써서 토론하는 필담을 하던 승업은 스테파노 수사의 권유로 가톨릭 기도서를 읽으며 중국인 교우(동 바오로, 진 니콜로)들과 천주교 교리 공부를 시작하고, 마침 마테오 리치 사제가 남경의 공소를 방문하여 천주교 미사를 집전한 날 중국인 교우들과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승업은 안토니오라는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났다.[1]

3. 4. 이탈리아

스테파노 수사의 추천으로 델 로치 상사에서 창고 서기로 일하기 시작한 안토니오 코레아는 우연한 기회에 회계 능력을 인정받아 회계부에서 일하게 된다. 1605년 기독교인이어야 하고, 추천인의 천거가 있어야 한다는 베네치아 공화국귀화 규정에 따라 베니스 공화국에 귀화한다.[1]

같은 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납품할 교황청유리 제품 입찰이 시작되고, 안토니오는 로셀리노 대리인을 따라 로마로 간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교회 분쟁을 중재하면서 개신교 편을 들어 파문당하는 상황이었다. 안토니오는 이 상황을 이용하여 유리 제품 시장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나폴리 공작소 로렌제티 총재의 이름으로 교황청에 유리 제품을 납품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는다.[1]

3. 5. 에스파냐

에스파냐에 대한 내용은 원본 문서에 존재하지 않는다.

3. 6. 잉글랜드

머레이는 잉글랜드의 상사원이다. 터키 이스파한에서 안토니오의 라이벌이었으며, 이탈리아말에 능통하다. 에스콰이어 계급으로, 카토 총지배인은 "에스콰이어가 상업을 한다고?"라며 놀라워했다. 잉글랜드와 터키 사이의 직접 무역을 주도하여, 간접무역으로 돈을 벌던 베네치아 공화국이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다.

3. 7. 한국


  • 유명훈: 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부장. 한국전쟁으로 개성에서 내려온 실향민의 아들이다. 천주교 신자인 유명훈은 자신과 세례명이 같은 안토니오 꼬레아에 관심을 갖는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고, 학문과 취업 중에서 취업을 택했다.
  • 김영주: 정명물산 정명어패럴 제품기획실 과장.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 뉴욕에 이민하여, 한국의 덤핑무역을 조사하러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온 오코너조차 잠시 당황했을 정도로 영어미국 사회에 능통하다. 오코너가 외투가 시장가격과 다르지 않냐고 정명물산에 막힘없는 한국말로 따지자, 김영주는 "미국도 부유층과 서민들이 함께 살지만, 소비계층이 다르지 않냐"고 논박했다. "영어를 아주 잘하시는군요. 물론 부유층과 서민들이 같이 사는 것은 맞지만, 부유한 사회 계층과 서민들이 소비하는 상품이 다르기 때문에 가격이 다른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라고 논박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논리를 갖추어 말하는 김영주 과장의 똑똑함에 잠시 놀란 것이다. 김영주 과장은 정명물산 취직과 취직 후에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빈틈없이 준비했으므로, 박식(아는 것이 많고 지식의 범위도 넓음)과 감각으로 정명물산 임원들을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에서 자신의 생각(미국 시장에서 노동자 작업복 같은 저가품이 아닌 한 개(피스)에 1000USD인 고가 의류를 팔아야 한다. 1985년부터 한미섬유협정으로써 시장 점유율을 1년에 0.05%씩 가산하여, 내년에는 0.9%로 높임으로써 어렵게 얻은 시장이니 이익이 남지 않아도 잃어서는 안 된다.)을 논리(사고와 추리에 능란함)으로 설명한다. 미리 준비한 파리 패션쇼 비디오와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색상과 미국 의류 시장을 로 정리한 차트[2]로써 의류산업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장사 전문가들인 임원들이 날카롭게 질문하면 빈틈없이 대답했던 것이다. 임원 한 사람이 "개발도상국이 모방한 제품을 만든다면, 아세안에 가입한 개발도상국에 좋은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까?"라고 질문하자, "스키밍 프라이스(Skeeming Pricing)로 즉 비싸야 잘 팔리는 의류를 시장에 내놓는 고가 유지 정책을 펴고, 비용을 제외한 당기순이익이 발생했을 때에 가격을 낮추면 됩니다."라고 대답한다. 담화, 곧 청자와 화자가 의미있는 말들을 주고받는 말들을 말없이 귀담아듣던 남정필 섬유본부장이 "한 개에 얼마씩 가격을 매겼길래, 스키밍 프라이스로 한다는 거요?"라고 김영주 과장의 기발한 착상에 놀라워하고, 김영주 씨는 "한 개에 1000USD를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여 임원들을 놀라게 했다. 실제 기업 임원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때에 궁금한 점을 자세히 물어본다고 한다. 저가 제품에 의존해서 무역을 해 오던 정명물산으로서는 김영주 과장의 혁신적인 생각에 주저하지만, 열정에 감동한 유명훈 부장의 꾸준한 인정과 지지를 받으며 꾸준히 계획을 추진하여 미국 블루밍데일즈 백화점과 시어즈 타워에서 한국산 고급의류가 크게 인기를 끌도록 한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고 성격도 용감하여, 유명훈 부장이 부사장으로 취임한 이탈리아 자동차 회사에서 기획한 다카르렐리에 불어 통역으로 참여한다. 유명훈 부장이 북아프리카 모로코카사블랑카에 온 날, 김영주 과장이 유창한 불어로 공놀이를 하던 어린이들, 택시 운전노동자 한 분과 담화를 주고받는 장면은 김영주 과장이 말과 글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서 배우는 언어 감각을 말하고 있다. 의류마케팅전문가로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프랑스 파리에서 근무했다. 어릴적 돌아가신 부친과 비슷한 나이의 유명훈 부장을 존경하며, 유명훈의 부하인 김진철 대리와 김진철 대리가 꽃을 선물할 정도로 진지하게 연애했다.
  • 김진철 대리: 정명물산 기획조정실 대리. 경제연구소로 이직할 때까지 유명훈 부장과 같이 일했다. 국제금융 전문. 유명훈 부장에게 능숙한 PC실력으로써 그래프를 만들어 국제금융의 흐름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대학원에서 국제금융을 공부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상사원보다는 적성에 맞는 정명경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당당히 말하는 김진철 대리와 자신의 소신대로 일하는 김영주 과장을 보면서 유명훈 과장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자신과 다른 세대들임을 절감한다.

4. 소설의 역사적, 사회적 배경

이 소설은 17세기 동서양의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한다. 1592년 임진왜란, 가톨릭동아시아 전파, 유럽의 주요 상업 중심지였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번영 등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다.[1]

4. 1. 임진왜란과 조선 사회의 변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개성상인(송상)의 아들 유승업은 여동생 명이와 부모님이 일본군에게 살해당하자, 수군에 지원 입대한다. 하지만 원균칠천량 해전에서 패하면서 포로가 되어 일본 쓰시마로 끌려간다. 숙련된 조선 수군 출신이었지만 부상을 입어 장애인이 된 만대 아저씨, 농부 출신의 정낙일과 더불어 강제노동으로 고생하던 승업은 탈출을 도모하지만, 같은 조선 사람의 배신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대 아저씨와 정낙일도 살해당한다. 승업도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망으로 가까스로 처형을 면한다.

  • 만대 아저씨: 하만대. 베테랑 수군. 전문가이다. 심술궂고 이기적인 다른 수병들과는 달리, 분의복수군(전쟁고아 출신 소년병)으로 군문에 들어선 승업을 돌본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사로잡혔으며, 탈주 미수로 목숨이 위태롭게 된 승업을 구하고 죽는다.
  • 정낙일: 승업의 친구. 농부 출신으로 농사가 몸에 익지 않은 승업을 돌본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 사로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탈주 미수로 죽었다.
  •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명이): 승업의 가족. 승업의 부친은 송상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살해당했다. 후에 천주교 신자가 된 승업은 별세자를 위해 기도하는 교회 전통에 근거하여 이들의 영원한 삶을 위해 기도한다.
  • 원균

4. 2. 동서양 문명 교류와 가톨릭의 전파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동서양 문명 교류가 활발해졌고, 가톨릭동아시아에 전파되었다.[1] 명나라에서 예수회 선교사 스테파노 수사는 천주실의한문으로 번역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천주교 신자인 담신민의 소개로 조선인 승업(안토니오)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1] 승업은 스테파노 수사와의 필담과 가톨릭 기도서 공부를 통해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되었고, 마테오 리치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1]

4. 3. 베네치아 공화국의 번영과 상업 발전

베네치아 공화국은 당시 유럽의 주요 상업 중심지였으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1605년 기독교인이어야 하고, 추천인의 천거가 있어야 한다는 베네치아 공화국귀화 규정에 따라 베니스 공화국에 귀화할 수 있었다.[1] 그 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 납품할 교황청유리 제품 입찰이 시작되었고, 베네치아 공화국이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교회 분쟁을 중재하면서 개신교 편을 드는 바람에 파문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1]

4. 4. 멕시코 항해와 신대륙 개척

1599년 명나라의 해금정책으로 譚新民|담신민중국어은 고향에 갈 수 없었다. 담신민은 천주교 신자인 승업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조선에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을 것을 우려하여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와 스테파노 수사를 따라 인도를 거쳐 이탈리아로 가도록 권했다.[1] 1602년까지 승업은 3년간 인도에서 예수회 스테파노 수사에게 로마시민법, 이탈리아어, 라틴어를 배웠다.[1] 26세에 스테파노 수사를 따라 로마로 가 마테오 리치 신부의 부탁으로 로마 교황청에 복음서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다.[1]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는 이탈리아에 도착하면 승업에게 자유민 신분 증명서를 만들어 주기로 약속했다.[1] 개신교를 믿는 네덜란드인들에게 세인트헬레나섬에서 나포되기도 했지만, 1605년 이탈리아에 도착한 카를레티가 약속대로 자유민 신분증명서를 만들어주면서 승업은 이탈리아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1] 유승업에서 로마 가톨릭 세례명인 안토니오 꼬레아로 이름을 바꾸고, 로마에서 스테파노 수사를 도왔다.[1] 이후 스테파노 수사가 중국으로 다시 가면서, 상업이 발달한 베니스 공화국에서 살도록 안토니오에게 권유했다.[1]

참조

[1] 문서 조선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도 아무나 [[평신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에서 라이스 크리스천 즉 [[교회]]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자들을 겪은 개신교 선교사들은 엄격한 [[권징]]으로써 축[[첩]], [[음주]], [[노름]], [[점술]] 등의 악습을 버리지 않는 자들은 경계했다.
[2] 문서 차트는 종이에 프레젠테이션하려는 내용을 적고, 넘기면서 말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말한다. 지금은 [[한컴오피스]]에 포함된 [[한쇼]]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포함된 [[파워포인트]]를 사용한다.
[3] 서적 교실밖의 세계사여행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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