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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발디비아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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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은 1960년 5월 22일 칠레 발디비아에서 발생한 규모 9.5의 초대형 지진으로, 관측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나즈카 판과 남아메리카 판의 섭입으로 발생한 이 지진은 칠레 해안과 태평양 연안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쓰나미로 인해 하와이, 일본 등지에서도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으로 인한 지각 변동과 산사태, 화산 분화 등의 자연 현상도 동반되었으며, 칠레는 지진 이후 경제 재건 및 재난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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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발디비아 지진
지도
기본 정보
이름1960년 발디비아 지진
현지 이름
발생 날짜1960년 5월 22일
현지 시간15시 11분 14초
협정 세계시 (UTC)19시 11분 14초
지속 시간약 10분
진앙칠레 발디비아 서쪽 해역
깊이33 km
지진 규모
규모 종류모멘트 규모
규모9.4–9.6
표면파 규모Ms8.3-8.5
지진 강도
진도 종류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
최대 진도XII
최대 진도 지역발디비아
최대 지반 가속도2.93 g
최대 지반 속도311 cm/s
지진 유형
단층나즈카판과 남아메리카판의 충돌
유형메가스러스트 지진
쓰나미
최대 높이최대 25 m
여진
최대 여진1960년 6월 6일 Mw7.7 지진
피해
사망자1,000–6,000명
피해 지역칠레를 비롯한 태평양 연안 전 국가
산사태다수 발생
이미지
발디비아 지진 후
지진으로 붕괴된 발디비아의 건물
관련 자료
참고 자료USGS: 1960년 칠레 대지진
USGS: 세계 최대 지진 - 관련 기사

2. 지진 발생 배경

칠레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여 지진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은 칠레 남부 해안의 페루-칠레 해구에서 나스카판남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하면서 발생한 거대조산대 지진이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지진 활동이 활발한 국가 중 하나이다.

1906년부터 2005년까지 발생한 가장 큰 지진 그래프 (그래프 왼쪽 아래의 연한 파란색은 발디비아 지진을 나타냄). 발디비아 지진은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지진 에너지의 약 4분의 1을 방출했다.


이 지진의 진원 깊이는 33km로 비교적 얕았으며, 이는 칠레 북부와 아르헨티나의 지진이 70km에 달하는 깊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특기할 만하다.

이 진원지에서는 1575년, 1737년, 그리고 1837년에도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으며, 1837년의 쓰나미는 일본에도 상륙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쓰나미 퇴적물 조사 결과, 특히 규모가 큰 이러한 유형의 대규모 지진은 평균 300년 간격으로 발생하며,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것은 1575년 1575년 발디비아 지진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71]

2. 1. 지질학적 특성

이 지진은 나스카판남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하는 페루-칠레 해구에서 쌓인 대부분의 응력이 한꺼번에 방출되어 일어난 메가스러스트 지진이다. 칠레 북부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최대 깊이가 70 km인 점과 비교하면 본진의 깊이인 33 km는 비교적 얕은 천발지진에 해당한다.

나스카 판과 남아메리카 판의 경계에 있는 칠레, 화살표는 판의 이동 방향을 나타낸다


2019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주 단층파괴인 규모 Mw9.37 규모의 스러스트형 단층파괴와 동시에 이키녜-오프키 단층에서 규모 Mw9.07의 주향이동형 부 단층파괴가 동시에 있었다고 가정하여 어떻게 판 경계형 지진 하나가 지각에 쌓인 응력을 "과도하게 방출"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이전까지의 통설에서는 발디비아 지진이 페루-칠레 해구에 쌓여 있는 누적 응력(지진에 방출될 누적된 단층 이동손실량)이 허용하는 양보다 더 많이 단층이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새로 나온, 두 단층이 동시에 단층파괴가 일어났다는 설은 지진의 실제 발생 구조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97][98]

섭입대에서는 그 특별한 구조로 에너지가 한꺼번에 방출되기 전까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이 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발디비아 지진의 단층 파열은 남위 37도의 아라우코에서 남위 43도의 칠로에 군도에까지 이르는 약 800 km 길이의 구간에서 일어났다. 단층의 파열이 단층대 표면을 따라 퍼지는 속도인 단층 파열 속도는 초당 약 3.5 km로 측정되었다.[99] 나스카판 경계의 27개 세그먼트 전체의 평균 이동량은 약 11 m이며 진앙에서 남쪽으로 약 200-500 km 떨어진 연안 단층에서는 최대 슬립이 25-30 m까지 측정되었다.[100]

발디비아 지진은 매우 큰 규모였지만 이후에도 2016년 칠로에 지진이 발생하는 등 판 경계면의 해당 부분에서 남아 있는 응력이 모두 완전히 발산된 건 아닌걸로 추정된다.[101]

칠레는 고지진 활동 지역으로 알려진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있다. 이 지진은 칠레 남부 해안의 페루-칠레 해구에서 섭입하는 나스카 판과 남아메리카 판 사이의 기계적 응력이 방출되면서 발생한 거대조산대 지진이었다.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지진 활동이 활발한 국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지진 발생 시각은 현지 시각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 14초였으며, 진원지는 칠레 중부 도시 발디비아 연안이었다. 규모는 표면파 규모(Ms) 8.3~8.5, 모멘트 규모(Mw)가나모리 히로오(金森博雄)의 추정에 따르면 9.5였다. Mw 9.5라는 값은 근대 지진학 계기 관측 사상 '''세계 최대'''이며, 역사 지진을 포함해도 최대급이다. 길이 1,000km, 수평이동량 10m를 넘는 단층이 활동했다고 생각되며, 지진 모멘트 M0는 2.0×1023N・m (2.0×1030dyn・cm)에 달한다고 추정된다.[63]

규모가 큰 지진 (20세기 이후·세계)
순위명칭발생일 (UTC )규모 (Mw)
1칠레, 발디비아1960년5월 22일9.5
2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만1964년3월 28일9.2
3수마트라섬·안다만 제도2004년12월 26일9.1
동일본 대지진2011년3월 11일
5캄차카 반도 동쪽 해역1952년11월 5일9.0
6칠레, 비오비오2010년2월 27일8.8
에콰도르·콜롬비아1906년1월 31일
8알류샨 열도, 랫 제도1965년2월 4일8.7
9알류샨 열도, 유니막섬1946년4월 1일8.6
아쌈·티베트1950년8월 15일
알류샨 열도, 안드레아노프 제도1957년3월 9일
수마트라섬 북부2005년3월 28일
수마트라섬 북부 서쪽 해역2012년4월 11일
규모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름



일본 동북 지방 해안에 도달한 검조소 파형의 수치 해석에 따르면, 길이 850km, 폭 180km, 수평이동량 17m, 경사각 20°의 저각 역단층 모델이 동북 연안의 쓰나미를 가장 잘 재현한다고 한다.[64] 최대 진도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 진도 7에 해당한다.[65]

칠레 각지의 진도[66]
도시메르칼리 진도
발디비아X
푸에르토몬트X-XI
리오네그로IX-X
템우코VIII
오소르노VII-VIII
푸에르토사아베드라(Puerto Saavedra)VII-VIII
럇키웨(Llanquihue)VII-VIII
비야리카(Villarica)VII



먼저 M7.5의 전진이 발생하고 M7급 지진이 5~6회 계속된 후, Ms8급의 본진이 발생했다. 또한 여진도 M7급이었기 때문에 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전국이 붕괴 상태가 되었다.[67]

전날에는 단독으로도 거대 지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진이 발생했지만,[68] M7을 넘는 여진은 3회에 그쳤다.[69][70]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의 주요 지진
발생 시각 (UTC)위치규모 (Mw)
1960년 5월 21일 10:02남위 37.83°, 서경 73.38°8.2
1960년 5월 22일 18:56남위 38.15°, 서경 72.98°7.9
1960년 5월 22일 19:11남위 38.29°, 서경 73.05°9.5
1960년 6월 6일 5:55남위 45.70°, 서경 73.50°7.2
1960년 6월 20일 2:01남위 38.26°, 서경 73.32°7.0
1960년 6월 20일 12:59남위 39.21°, 서경 73.32°7.1


2. 2. 지진 발생 메커니즘

이 지진은 나스카판남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하는 페루-칠레 해구에서 쌓인 대부분의 응력이 한꺼번에 방출되어 일어난 메가스러스트 지진이다. 칠레 북부와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최대 깊이가 70km인 점과 비교하면 본진의 깊이인 33km는 비교적 얕은 천발지진에 해당한다.

2019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주 단층파괴인 Mw영어9.37 규모의 스러스트형 단층파괴와 동시에 리키녜-오프키 단층에서 Mw영어9.07의 주향이동형 부 단층파괴가 동시에 있었다고 가정하여, 판 경계형 지진 하나가 지각에 쌓인 응력을 "과도하게 방출"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이전까지의 통설에서는 발디비아 지진이 페루-칠레 해구에 쌓여 있는 누적 응력(지진에 방출될 누적된 단층 이동손실량)이 허용하는 양보다 더 많이 단층이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새로 나온, 두 단층이 동시에 단층파괴가 일어났다는 설은 지진의 실제 발생 구조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97][98]

섭입대에서는 그 특별한 구조로 에너지가 한꺼번에 방출되기 전까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이 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발디비아 지진의 단층 파열은 남위 37도의 아라우코에서 남위 43도의 칠로에 군도에까지 이르는 약 800km 길이의 구간에서 일어났다. 단층의 파열이 단층대 표면을 따라 퍼지는 속도인 단층 파열 속도는 초당 약 3.5km로 측정되었다.[99] 나스카판 경계의 27개 세그먼트 전체의 평균 이동량은 약 11m이며 진앙에서 남쪽으로 약 200km에서 500km 떨어진 연안 단층에서는 최대 슬립이 25m에서30m까지 측정되었다.[100]

발디비아 지진은 매우 큰 규모였지만 이후에도 2016년 칠로에 지진이 발생하는 등 판 경계면의 해당 부분에서 남아 있는 응력이 모두 완전히 발산된 건 아닌걸로 추정된다.[101]

지진 발생 시각은 현지 시각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 14초였으며, 진원지는 칠레 중부 도시 발디비아 연안이었다. 규모는 표면파 규모(Ms) 8.3~8.5, 모멘트 규모(Mw)가나모리 히로오의 추정에 따르면 9.5였다. Mw 9.5라는 값은 근대 지진학 계기 관측 사상 '''세계 최대'''이며, 역사 지진을 포함해도 최대급이다. 길이 1,000km, 수평이동량 10m를 넘는 단층이 활동했다고 생각되며, 지진 모멘트 M0는 2.0×1023N・m (2.0×1030dyn・cm)에 달한다고 추정된다.[63]

규모가 큰 지진 (20세기 이후·세계)
순위명칭발생일 (UTC )규모 (Mw)
1칠레, 발디비아1960년5월 22일9.5
2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만1964년3월 28일9.2
3수마트라섬·안다만 제도2004년12월 26일9.1
동일본 대지진2011년3월 11일
5캄차카 반도 동쪽 해역1952년11월 5일9.0
6칠레, 비오비오2010년2월 27일8.8
에콰도르·콜롬비아1906년1월 31일
8알류샨 열도, 랫 제도1965년2월 4일8.7
9알류샨 열도, 유니막섬1946년4월 1일8.6
아쌈·티베트1950년8월 15일
알류샨 열도, 안드레아노프 제도1957년3월 9일
수마트라섬 북부2005년3월 28일
수마트라섬 북부 서쪽 해역2012년4월 11일
규모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름



일본 동북 지방 해안에 도달한 검조소 파형의 수치 해석에 따르면, 길이 850km, 폭 180km, 수평이동량 17m, 경사각 20°의 저각 역단층 모델이 동북 연안의 쓰나미를 가장 잘 재현한다고 한다.[64] 최대 진도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 진도 7에 해당한다.[65]

칠레 각지의 진도[66]
도시메르칼리 진도
발디비아X
푸에르토몬트X-XI
리오네그로IX-X
템우코VIII
오소르노VII-VIII
푸에르토사아베드라(Puerto Saavedra)VII-VIII
럇키웨(Llanquihue)VII-VIII
비야리카(Villarica)VII



먼저 전진이 M7.5로 시작되어 M7급 지진이 5~6회 계속된 후, 본진이 Ms8급으로 발생했다. 또한 여진도 M7급이었기 때문에 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전국이 붕괴 상태가 되었다.[67]

전날에는 단독으로도 거대 지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진이 발생했지만,[68] M7을 넘는 여진은 3회에 그쳤다.[69][70]

전진


  • 1960년 5월 21일 10:02(UTC), 남위 37.83°, 서경 73.38°, Mw8.2
  • 1960년 5월 22일 18:56(UTC), 남위 38.15°, 서경 72.98°, Mw7.9

본진

  • 1960년 5월 22일 19:11(UTC), 남위 38.29°, 서경 73.05°, Mw9.5

여진

  • 1960년 6월 6일 5:55(UTC), 남위 45.70°, 서경 73.50°, Mw7.2
  • 1960년 6월 20일 2:01(UTC), 남위 38.26°, 서경 73.32°, Mw7.0
  • 1960년 6월 20일 12:59(UTC), 남위 39.21°, 서경 73.32°, Mw7.1

3. 지진 발생 과정

1960년 칠레 지진은 1960년 5월 21일부터 6월 6일까지 칠레 아라우카니아주,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 비오비오주를 중심으로 발생한 일련의 강력한 지진들이다. 5월 21일 규모 Mw 8.1의 콘셉시온 지진을 시작으로, 다음 날인 5월 22일에는 규모 Mw 7.1, 규모 Mw 7.8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 지진들은 5월 22일 15시 11분(UTC-4)에 발생한 발디비아 지진의 전진으로 여겨진다.

발디비아 지진은 표면파 규모(Ms) 8.3~8.5, 모멘트 규모(Mw) 9.5로, 지진학 관측 사상 세계 최대 규모이다. 길이 1,000km, 수평 이동량 10m가 넘는 단층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진 모멘트(M0)는 2.0×1023N・m에 달한다.

20세기 이후 세계에서 발생한 규모가 큰 지진
순위명칭발생일 (UTC)규모 (Mw)
1칠레 발디비아1960년 5월 22일9.5
2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만1964년 3월 28일9.2
3수마트라섬·안다만 제도2004년 12월 26일9.1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 11일
5캄차카 반도 동쪽 해역1952년 11월 5일9.0
6칠레 비오비오2010년 2월 27일8.8
에콰도르·콜롬비아1906년 1월 31일
8알류샨 열도 랫 제도1965년 2월 4일8.7
9알류샨 열도 유니막섬1946년 4월 1일8.6
아쌈·티베트1950년 8월 15일
알류샨 열도 안드레아노프 제도1957년 3월 9일
수마트라섬 북부2005년 3월 28일
수마트라섬 북부 서쪽 해역2012년 4월 11일
규모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름



가장 큰 여진은 6월 6일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에서 일어났으며, 규모 M7.7을 기록했다.[96] 이 여진은 리키녜-오프키 단층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5월 22일 발생한 발디비아 지진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96]

3. 1. 콘셉시온 지진 (전진)

1960년 5월 21일부터 6월 6일까지 아라우카니아주,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 비오비오주를 중심으로 일련의 강진이 발생했다. 1960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지진 중 규모가 가장 큰 상위 5개 지진 중 4개가 이 칠레 지진이며, 그 중 3개는 1960년 콘셉시온 지진으로 묶인다. 첫 번째 콘셉시온 지진은 1960년 5월 21일 오전 6시 2분(UTC-4)에 발생한 모멘트 규모 Mw8.1의 지진으로, 진앙은 쿠라닐라우에 인근 해역이었다.[90] 이 지진으로 칠레 남부와의 통신선이 완전히 단절되었고, 칠레의 대통령 호르헤 알레산드리는 긴급 구호 활동을 감독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기념하던 1879년 이키케 해전 기념식(해군 영광의 날)을 취소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콘셉시온 지진은 다음 날인 5월 22일 각각 오전 6시 32분과 14시 55분에 일어난 규모 Mw7.1, 규모 Mw7.8의 지진이었다.[91] 이 지진들은 진원역이 점차 남쪽으로 내려오는 일종의 전진 활동으로 여겨지는데, 3차 콘셉시온 지진 발생 후 불과 15분 만에 발디비아 지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92]

이 지진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던 로타의 석탄 채광 노동자들이 콘셉시온으로 행진하려던 시위가 중단되고 결국 해산되었다.[93]

3. 2. 발디비아 지진 (본진)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UTC-4)에 발생한 발디비아 지진은 탈카에서 칠로에섬에 이르는 칠레 전역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면적은 40만 km2가 넘는다. 특히 해안가 마을인 톨텐은 큰 피해를 입었다. 발디비아의 외항인 코랄에서는 수위가 4m나 상승했다가 다시 낮아졌다. 같은 날 16시 20분경에는 콘셉시온과 칠로에 사이 칠레 해안에 8m 높이의 쓰나미가 덮쳤고, 10분 후에는 10m 높이의 쓰나미가 다시 닥쳤다.[94]

이 지진으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콘셉시온으로 행진하던 로타의 석탄 채광 노동자들의 시위가 중단되고 해산되었다.[93]

쓰나미가 발생하기 전에도 이미 수백 명의 사망자가 보고되었다. 발디비아강 어귀에서 출발한 '카넬로스' 호는 강에서 1.5km가량 앞뒤로 떠밀리다가 침몰했다. 2005년 기준으로도 니에블라로 가는 길에서 이 배의 돛대가 보였다.[15]

지진으로 지반이 침하하면서 건물이 파괴되고 강의 깊이가 깊어졌다. 도시 북쪽 리오크루세스와 초로코마요 지역에는 새로운 습지가 생겨났다. 도시 곳곳이 물에 잠겼고, 전기와 수도 공급이 완전히 끊겼다. 지하수가 땅 위로 솟구치는 현상도 목격되었다. 5월 21일에 폭우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상수도 시설이 파괴되어 도시는 물 부족에 시달렸다. 강은 산사태로 쓸려온 흙 때문에 갈색으로 변했고, 집 전체를 포함한 물건들이 둥둥 떠다녔다. 칠레에서도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식수 부족은 심각한 문제였다.[16][17]

지진의 영향은 지역별로 달랐다.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으로 측정했을 때, 지반이 약한 지역이 더 큰 피해를 보았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양키우에 호수 북서쪽 끝에 있는 푸에르토옥테이와 발디비아였다. 푸에르토옥테이는 발디비아 분지 바깥에서 가장 진도가 강했던 중앙칠레계곡의 남북 방향 타원형 지역 한가운데 있었다.[95] 반면, 푸에르토옥테이 동쪽 토도스로스산토스 호수에 있는 한 호텔에서는 쌓아둔 접시가 그대로 있었다는 증언도 있었다.[95] 로타(남위 37도) 남쪽으로 이어지는 띠 모양의 지역은 연약 지반을 제외하고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 VII 이상을 기록했다. 이 지역은 예우예우 호수(남위 38도) 북쪽과 카스트로(남위 42.5도) 남쪽의 중앙칠레계곡까지는 미치지 않았다.[126]

푸렌에서는 지진광이 보고되었다.

지진 발생 이틀 후에는 푸예우에산 근처 코르돈 카우예 화산이 분화했다. 당시 칠레의 통신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다른 화산의 분화 여부는 기록되지 않았다. 칠레의 사망자 수는 5,700명으로, 지진 규모에 비해 비교적 적었다. 이는 인구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 발생했고, 지진이 잦은 지역 특성상 건물에 기본적인 내진 설계가 적용되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발디비아 지진은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 14초(현지 시각)에 칠레 중부 발디비아 연안에서 발생했다. 표면파 규모(Ms)는 8.3~8.5였으며, 가나모리 히로오모멘트 규모(Mw)를 9.5로 추정했다. Mw 9.5는 지진학 관측 사상 세계 최대 규모이며, 역사 지진을 포함해도 최대급이다. 길이 1,000km, 수평 이동량 10m가 넘는 단층이 움직인 것으로 추정되며, 지진 모멘트(M0)는 2.0×1023N・m (2.0×1030dyn・cm)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63]

20세기 이후 세계에서 발생한 규모가 큰 지진
순위명칭발생일 (UTC)규모 (Mw)
1칠레 발디비아1960년 5월 22일9.5
2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만1964년 3월 28일9.2
3수마트라섬·안다만 제도2004년 12월 26일9.1
동일본 대지진2011년 3월 11일
5캄차카 반도 동쪽 해역1952년 11월 5일9.0
6칠레 비오비오2010년 2월 27일8.8
에콰도르·콜롬비아1906년 1월 31일
8알류샨 열도 랫 제도1965년 2월 4일8.7
9알류샨 열도 유니막섬1946년 4월 1일8.6
아쌈·티베트1950년 8월 15일
알류샨 열도 안드레아노프 제도1957년 3월 9일
수마트라섬 북부2005년 3월 28일
수마트라섬 북부 서쪽 해역2012년 4월 11일
규모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름



일본 동북 지방 해안에 도달한 검조소 파형을 수치로 해석한 결과, 길이 850km, 폭 180km, 수평 이동량 17m, 경사각 20°의 저각 역단층 모델이 동북 연안의 쓰나미를 가장 잘 재현한다고 한다.[64] 최대 진도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 진도 7에 해당한다.[65]

칠레 각지의 진도[66]
도시메르칼리 진도
발디비아X
푸에르토몬트X-XI
리오네그로IX-X
템우코VIII
오소르노VII-VIII
푸에르토사아베드라(Puerto Saavedra)VII-VIII
럇키웨(Llanquihue)VII-VIII
비야리카(Villarica)VII



먼저 규모 M7.5의 전진이 발생하고, 이후 M7급 지진이 5~6회 계속된 후, 본진이 Ms8급으로 발생했다. M7급 여진도 발생했기 때문에 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전국이 붕괴 상태가 되었다.[67]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1,743명, 부상자는 667명이었다.

1960년 5월 21일 10:02(UTC)에는 남위 37.83°, 서경 73.38°에서 Mw8.2의 전진이, 5월 22일 18:56(UTC)에는 남위 38.15°, 서경 72.98°에서 Mw7.9의 전진이 발생했다. 본진은 5월 22일 19:11(UTC)에 남위 38.29°, 서경 73.05°에서 Mw9.5로 발생했다. 이후 6월 6일 5:55(UTC) 남위 45.70°, 서경 73.50°에서 Mw7.2, 6월 20일 2:01(UTC) 남위 38.26°, 서경 73.32°에서 Mw7.0, 6월 20일 12:59(UTC) 남위 39.21°, 서경 73.32°에서 Mw7.1의 여진이 발생했다.

3. 2. 1. 지진파 및 지각 변동

칠레 대지진의 진원역 지도. 칠레 대지진의 진원역은 남북으로 약 1,000km에 달했고, 이 진원역의 단층이 전부 파괴될 때까지 약 10분이 걸렸다. 약 10분 동안 지진이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UTC-4) 탈카에서 칠로에섬 사이 칠레 전역 40만 400000km2 이상 영역에서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의 영향이 발생했다. 톨텐 등 해안마을도 큰 타격을 입었으며, 발디비아의 외항 코랄에서는 수위가 약 4m 상승했다가 물러났다. 현지 시각 16시 20분 경 콘셉시온과 칠로에 사이 칠레 해안가에 8m 높이의 쓰나미가 강타했고, 10분 뒤 10m 높이의 쓰나미가 다시 닥쳤다.[94]

쓰나미가 닥쳤을 때 이미 수백 명의 사망자가 보고되었다. 발디비아강 하구에서 출발한 선박 카넬로스호는 강에서 쓰나미를 맞고 앞뒤로 1.5km 이동한 후 침몰했는데, 2005년까지 니에블라로 향하는 도로에서 발디비아강을 보는 지점에서 침몰 선박 돛대가 보였다.[94]

지진으로 지반 침하가 발생해 건물이 파괴되고 강 깊이가 깊어졌으며, 도시 북쪽에 세워진 신 수생공원 리오크루세스나 초로코마요 지역에 거대한 습지가 만들어졌다. 도시 광범위한 지역이 침수되었고, 발디비아의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지하수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장면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5월 21일 도시에 폭우가 내렸지만 상수도도 끊겼다. 강은 산사태로 유입된 토사 때문에 갈색으로 변했고 집 전체가 떠내려갔다. 칠레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식수 부족은 피해 주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16][17]

지진은 칠레 모든 영토를 똑같이 흔들리게 만들지 않았다.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MMI)으로 측정한 결과 지각이 내려앉은 지역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두 지역은 양키우에 호수 서북쪽 푸에르토옥테이와 발디비아였다. 푸에르토옥테이는 발디비아분지 바깥쪽에서 가장 진도가 강했던 중앙칠레계곡의 남북 타원형 평지 정 가운데 있는 도시였다.[95] 푸에르토옥테이 동쪽 토도스로스산토스 호수의 한 호텔에서는 쌓아놓은 접시가 그대로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95] 연약층에 세워진 건물 부지를 제외하고 MMI VII(7) 이상을 관측한 지역은 로타(남위 37도) 남쪽으로 이어지는 띠 지역이다. 이 지역은 예우예우 호수(남위 38도) 북쪽과 카스트로(남위 42.5도) 남쪽 중앙칠레계곡을 관통하진 않았다.[126]



지진 이틀 후 푸예우에산 화산과 맞닿은 코르돈산이 분화했다. 다른 화산도 분화했을 가능성이 있으나 당시 칠레 통신망 부족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칠레 사망자 수가 5,700명으로 지진 규모에 비해 매우 적은 이유는 진원역 인구 밀도가 낮고 지진 활동이 활발해 건축물에 기본적인 내진 설계가 있어서로 추정된다.

이 지진은 나스카판남아메리카판 아래로 섭입하는 페루-칠레 해구에서 쌓인 응력이 방출되어 일어난 메가스러스트 지진이다. 칠레 북부와 아르헨티나 지진 최대 깊이가 70 km인 점과 비교하면 본진 깊이 33 km는 비교적 얕은 천발지진이다.

2019년 연구에서는 주 단층파괴인 Mw9.37 규모 스러스트형 단층파괴와 이키녜-오프키 단층에서 Mw9.07 주향이동형 부 단층파괴가 동시에 있었다고 가정하여 판 경계형 지진 하나가 지각에 쌓인 응력을 "과도하게 방출"한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전까지 통설은 발디비아 지진이 페루-칠레 해구에 쌓인 누적 응력(지진에 방출될 누적 단층 이동손실량)이 허용하는 양보다 더 많이 단층이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두 단층이 동시에 파괴되었다는 설은 지진 실제 발생 구조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97][98]

섭입대는 특별한 구조로 에너지가 방출되기 전까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어 지구상 가장 큰 규모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구물리학자들은 이 지진보다 더 큰 지진이 일어날지는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발디비아 지진 단층 파열은 남위 37도 아라우코에서 남위 43도 칠로에 군도에 이르는 약 800 km 길이 구간에서 일어났다. 단층 파열 속도는 초당 약 3.5 km로 측정되었다.[99] 나스카판 경계 27개 세그먼트 전체 평균 이동량은 약 11 m이며 진앙 남쪽 약 200-500 km 연안 단층에서는 최대 슬립이 25-30 m까지 측정되었다.[100]

발디비아 지진은 매우 큰 규모였지만 이후 2016년 칠로에 지진이 발생하는 등 판 경계면 해당 부분에서 남은 응력이 모두 발산된 건 아닌 걸로 추정된다.[101]

지진 발생 시각은 현지 시각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 14초였으며, 진원지는 칠레 중부 도시 발디비아 연안이었다. 규모는 표면파 규모(Ms) 8.3~8.5, 모멘트 규모(Mw)가나모리 히로오 추정에 따르면 9.5였다. Mw 9.5는 근대 지진학 계기 관측 사상 '''세계 최대'''이며, 역사 지진을 포함해도 최대급이다. 길이 1,000km, 수평이동량 10m를 넘는 단층이 활동했다고 생각되며, 지진 모멘트 M0는 2.0×1023N・m (2.0×1030dyn・cm)에 달한다고 추정된다.[63]

규모가 큰 지진 (20세기 이후·세계)
순위명칭발생일 (UTC )규모 (Mw)
1칠레, 발디비아1960년5월 22일9.5
2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만1964년3월 28일9.2
3수마트라섬·안다만 제도2004년12월 26일9.1
동일본 대지진2011년3월 11일
5캄차카 반도 동쪽 해역1952년11월 5일9.0
6칠레, 비오비오2010년2월 27일8.8
에콰도르·콜롬비아1906년1월 31일
8알류샨 열도, 랫 제도1965년2월 4일8.7
9알류샨 열도, 유니막섬1946년4월 1일8.6
아쌈·티베트1950년8월 15일
알류샨 열도, 안드레아노프 제도1957년3월 9일
수마트라섬 북부2005년3월 28일
수마트라섬 북부 서쪽 해역2012년4월 11일
규모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름



일본 동북 지방 해안에 도달한 검조소 파형 수치 해석에 따르면, 길이 850km, 폭 180km, 수평이동량 17m, 경사각 20° 저각 역단층 모델이 동북 연안 쓰나미를 가장 잘 재현한다고 한다.[64] 최대 진도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 진도 7에 해당한다.[65]

먼저 전진이 M7.5로 시작되어 M7급 지진이 5~6회 계속된 후, 본진이 Ms8급으로 발생했다. 여진도 M7급이었기 때문에 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전국이 붕괴 상태가 되었다.[67]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1,743명, 부상자는 667명이었다.

전날에는 단독으로도 거대 지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진이 발생했지만,[68] M7을 넘는 여진은 3회에 그쳤다.[69][70]

전진


  • 1960년 5월 21일 10:02(UTC), 남위 37.83°, 서경 73.38°, Mw8.2
  • 1960년 5월 22일 18:56(UTC), 남위 38.15°, 서경 72.98°, Mw7.9

본진

  • 1960년 5월 22일 19:11(UTC), 남위 38.29°, 서경 73.05°, Mw9.5

여진

  • 1960년 6월 6일 5:55(UTC), 남위 45.70°, 서경 73.50°, Mw7.2
  • 1960년 6월 20일 2:01(UTC), 남위 38.26°, 서경 73.32°, Mw7.0
  • 1960년 6월 20일 12:59(UTC), 남위 39.21°, 서경 73.32°, Mw7.1


이 지진으로 (페루-칠레 해구)가 융기하고, 해안 섬에서 최소 5.7m 융기, 해안을 따라 있는 안데스 산맥 서쪽은 2.7m 침강하는 대규모 지각 변동이 확인되었다.[73] 이는 안데스 산맥과 평행한 향사 습곡을 초래했고, 지각 변동 관측 결과는 아타카마 해구를 따라 있는 나스카 판 섭입대에서 저각 역단층 진원 모델을 지지한다.[74]

후속 추정에 따르면, 너비 200km, 길이 800km에 걸쳐 단층이 20m 이동하여 유감 지진이 반경 약 1,000km에 걸쳐 광범위하게 관측되었다. 최초로 지구 자유 진동 관측에 성공했으며, 발생한 지진파가 지구를 3바퀴 돌았다는 사실이 미국 관측으로 확인되었다. 본진 진동은 약 20분 후 일본 국내 지진 관측망에서도 포착되었다.

1957년부터 1967년 사이 관측된 챈들러 요동 중 1960년 관측 결과에서 칠레 지진 발생으로 지축 연주 운동에 불연속이 확인되었다.[75] 지구에 어떤 원인으로 탄성체 변형이 발생하면 챈들러 요동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측되지만, 1960년 칠레 지진과 같은 대규모 지진이라도 그 변형량으로는 챈들러 요동을 여기시키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1964년알래스카 지진에서 진원지에서 약 5000km 떨어진 하와이 제도에서도 10-8 정도 영구 변형이 관측되었고, 이러한 미소한 지각 변동이라도 전 지구적으로 적분하면 챈들러 요동을 여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졌다.[76]

3. 3. 여진

가장 큰 여진은 6월 6일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에서 일어났으며, 규모 M7.7을 기록했다.[96] 이 여진은 리키녜-오프키 단층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5월 22일 발생한 발디비아 지진으로 인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96]

4. 지진의 영향

1960년 발디비아 지진으로 발생한 지진해일(쓰나미)은 칠레뿐만 아니라 태평양 연안의 여러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칠레 해안은 모차섬에서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이 최대 25m 높이의 쓰나미로 황폐화되었다.[102] 특히 바이아만사의 소형 항구는 해발 10m 이상을 덮친 쓰나미로 완전히 파괴되었다.[104] 발디비아강과 코랄만에서는 여러 선박이 난파되었고, 그중 카넬로스호는 승무원 2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를 겪었다.[104]

발디비아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1시간마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이동하는 상황을 그린 지도.


하와이 힐로에 쓰나미가 덮쳐 파괴된 모습.


쓰나미는 시속 수백 km의 속도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힐로를 덮쳐 61명의 사망자를 냈고,[103] 일본 혼슈 동북부 산리쿠 연안에서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101] 일본에서는 이 쓰나미를 칠레 지진해일이라고 명명했다.[105]

지진으로 팡기푸이 호수에서는 1m가 넘는 세이시가 관측되었고,[67] 아르헨티나 나우엘우아피 호수에서도 세이시로 인해 2명이 사망하고 부두가 파괴되었다.[114]

지진 후 코르돈 카우예 화산이 분화한 모습.


본진 발생 38시간 후에는 코르돈 카우예 화산이 분화했다.[117] 이 분화는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59일 동안 지속되었다.[118]

전체적으로,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은 그 규모에 비해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이는 피해 지역의 인구 밀도가 낮고, 내진설계가 적용된 건물이 많았기 때문이다.[126] 그러나 내진 설계가 미흡한 건물은 큰 피해를 입었다.[126] 발디비아에서는 주택의 약 40%가 붕괴되어 2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119]

지진은 칠레 남부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해변 농장이 파괴되고 축사, 산업 기반 시설이 붕괴되었다.[127] 낙농업은 지진 이후 보조금과 투자를 받은 소수의 사업 중 하나였으며, 국제 기술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우유기술센터가 설립되기도 했다.[129]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산사태는 안데스산맥의 가파른 계곡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특히 리니우에 호수에서는 트랄칸산의 산사태로 호수의 물길이 막히는 "리니우아소" 사건이 발생하여 대규모 댐 건설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4. 1. 칠레

1960년 5월 22일 발디비아 지진으로 칠레는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남위 38도 모차섬에서 남위 45도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에 이르는 해안 지역은 지진해일(쓰나미)로 황폐화되었다.[104] 칠레 남부 전역에서 쓰나미로 막대한 인명 피해와 함께 항만 시설이 파괴되고 수많은 소형 선박이 유실되었다.

탈카우아노 항구는 침수 피해만 입었지만, 바이아만사에 있던 최첨단 소형 항구는 해발 10m 이상을 덮친 쓰나미로 완전히 파괴되었다.[104] 발디비아강과 코랄만에서는 여러 선박이 난파되었는데, 특히 카넬로스호는 지진 발생 당시 코랄에 정박해 있다가 표류 후 난파되어 승무원 2명이 사망했다.[104] 2000년까지 난파된 카넬로스호의 잔해를 볼 수 있었다.

해안가 마을 케울레에서는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으며, 수십 년 후 지역 주민들은 지진과 쓰나미로 약 50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지진으로 파괴된 알토스 오르노스 이 아세리아스 데 코랄 철강공장의 모습.


지진 이후 난파된 "카를로스 아베르베크호"(위)와 카넬로스호(아래).


지진으로 팡기푸이 호수와 나우엘우아피 호수에서는 세이시가 관측되었으며, 특히 나우엘우아피 호수에서는 2명이 사망하고 부두가 파괴되는 피해가 발생했다.[114]

리니우에 호수에서는 트랄칸산의 산사태로 호수의 물길이 막히는 "리니우아소"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호수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여 댐 붕괴 시 하류 지역에 심각한 홍수 피해가 예상되었다. 10만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발디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댐 건설 작업이 진행되었고, 라울 사에스 등의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어 댐 수위를 낮추는 데 성공했다.

지진과 쓰나미로 파괴된 코랄 마을 중심부.


발디비아에서는 주택의 약 40%가 붕괴되어 2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119] 콘크리트 건물 피해가 컸으며, 전통 목조 주택은 비교적 피해가 적었지만 구조가 뒤틀린 경우가 많았다. 코랄만에서는 침강 현상으로 항해 가능성이 개선되었지만, 발디비아의 홍수 방지 제방이 붕괴되면서 침수 위험 지역이 확대되었다.[120]

오소르노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지만, 푸에르토몬트는 매립지 침하로 큰 피해를 입었다.[125] 특히 앙헬모 지역은 "완전한 파괴" 수준의 피해를 겪었다.

지진은 칠레 남부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해변 농장이 파괴되고 축사, 산업 기반 시설이 붕괴되었다.[127] 낙농업은 지진 이후 보조금과 투자를 받은 소수의 사업 중 하나였으며, 국제 기술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우유기술센터가 설립되기도 했다.[129] 크루세스강 하류 지역은 지반 침하로 침수되어 습지가 형성되었고, 카를로스 안완드테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131]

본진 발생 38시간 후에는 코르돈 카우예 화산이 분화했다.[117] 이 분화는 지진의 영향으로 추정되며, 59일간 지속되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4. 1. 1. 인명 및 재산 피해

지진해일칠레 남부와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102] 뉴질랜드 동부, 오스트레일리아 동남부, 알류샨 열도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부 지역에서는 해일 높이가 최대 25m 높이로 칠레 해안을 덮치기도 했다. 지진으로 만들어진 쓰나미 파도가 시속 수백 km의 속도로 태평양을 건너가 하와이의 힐로를 덮쳐 6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103]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사망자 대부분은 혼슈 동북부의 산리쿠 연안에서 발생했다.[101]

칠레 해안은 남위 38도인 모차섬에서부터 남위 45도인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에 이르는 해안가가 쓰나미로 황폐화되었다. 칠레 남부 전역에서 쓰나미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항만 인프라가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소형 보트가 유실되었다. 이보다 북쪽에 있는 탈카우아노 항구는 큰 피해는 입지 않고 침수 피해만 발생했다. 일부 예인선과 소형 선박은 탈카우아노 인근의 로쿠안트섬에 좌초되기도 했다.[104]

5월 21일 콘셉시온 지진이 닥친 이후 앙쿠드 주민들은 배를 타고 피난처를 찾았다. 칠레 국가헌병대(일종의 경찰) 소속 선박인 글로리아호는 5월 22일 2차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해안가의 보트 수 척을 예인하고 있었다. 해안선이 급격하게 물러나면서 글로리아호는 세로과이겐과 코치노스섬 사이에 좌초되었다. 좌초된 배는 쓰나미에 휩쓸려 난파되었다.[104]

바이아만사에 지어진 최첨단 소형 항구는 해발고도 10m 이상을 덮친 쓰나미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바이아만사에 있던 이사벨라호는 재빨리 항구를 떠났지만 표류되었다.[104]

발디비아강과 코랄만에서는 지진으로 아르헨티나호, 카넬로스호, 카를로스 아베르베크호, 멜리타호, 인양된 펭코호의 잔해 등 여러 선박이 난파되었다. 카넬로스호는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칠레 북부를 목적지로 목재와 기타 제품을 가득 싣고 코랄에 정박하고 있었다. 카넬로스호는 지진 후에야 엔진이 예열되었다. 몇 시간 동안 코랄만과 발디비아강을 표류하던 카넬로스호는 난파되었고 현지 시각 기준 18시에 승무원들은 배를 버렸다. 이 사고로 카넬로스호에 탑승한 승무원 2명이 사망했다. 2000년 현재까지 난파된 카넬로스호의 잔해를 볼 수 있다.[104]

지진 당시 코랄에 정박 중이던 산티아고호는 좋지 않은 배의 상황에서도 코랄만을 빠져나왔지만 5월 24일 표류하다 모차섬 해안가에 난파되었다.[104] 스쿠너 아밀라그루사호는 5월 22일 피츠로야나무 너와를 싣고 케울레를 출발하여 코랄 남쪽 작은 항만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밀라그루사호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4일 동안 쓰나미 파도와 해류에 표류되었다. 한편 코랄 외곽에서 구조대원이 두 척의 보트에 타던 의식이 거의 없고 탈수 증세를 보인 어린이 6명을 구출했다. 발견된 보트는 원래 발디비아강과 코랄만 사이를 오고 가는데만 사용했지만 발견 당시에는 공해로 표류하던 상태였다.

해안가 마을인 케울레에서는 한 연안경비병이 쓰나미가 덮친 후 수 일이 지나서야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고 보고했다. 역사학자 요셀린 하라미요와 이스마엘 바소는 수십 년 후 케울레 주민들은 지진과 쓰나미로 약 50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지진으로 팡기푸이 호수에서 1m가 넘는 진폭의 세이시가 관측되었다. 5월 22일에는 발디비아에서 약 200km 떨어진 아르헨티나 안데스산맥에 있는 나우엘우아피 호수에서도 세이시가 관측되었다. 지진으로 호수 바닥에 있던 퇴적물이 순간적으로 이동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 이 세이시로 2명이 사망하고 호숫가에 있는 도시인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의 부두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다.[114]

매우 큰 지진 규모에 비해 피해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단층 파괴 지역 인근 지역은 인프라 개발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었다.[126] 또한 지진에 잘 견디도록 내진설계가 이루어진 건축물은 지진에도 잘 버텼으며 주로 토양 침하나 작은 단층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건축물 피해가 나타났다.[126] 다만 거주민이 직접 지은 집의 경우에는 내진 상태가 불량했다. 마울레주비오비오주 지역에서는 어도비와 석조로 지어진 집이 취약했으며, 아라우카니아주 이남 지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한 불량 목재로 지어진 집이 지진에 크게 취약했다.[126]

발디비아에서는 주택의 약 40%가 붕괴되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었다.[119]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구조물은 콘크리트로 건축된 건물이었는데 어떤 경우에는 현대 지진공학적 방법으로 건축하지 않아 완전히 붕괴된 건물도 있었다. 전통적인 목조 주택은 지진에 좀 더 잘 견뎠지만 주택이 붕괴되지 않았어도 안에 살기 어려울 정도로 구조가 뒤틀린 건물이 많았다. 고지대에 건축된 주택이 저지대에 건축된 주택보다 땅이 더 적은 에너지를 흡수해 피해가 훨씬 적었다. 지진으로 건물이 파괴된 가곽의 일부는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빈 채로 방치되었으며 일부는 현재까지도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진 이전에는 1909년 발디비아 대화재 이후 지어진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도 지어졌었다.[124]

발디비아의 다리는 경미한 피해만 입었다. 코랄만에서는 침강 현상이 일어나 마드레데디오스 광산과 기타 인근 금광의 퇴적물로 생성되어 가라앉았던 모래사주가 물에 잠겨서 항해 가능성이 나아졌다.[95] 지진으로 발디비아의 홍수 방지용 제방이 붕괴되어 토지 침하와 함께 새롭게 넓은 지역이 홍수 위협에 노출되었다.[120] 칠레 아우스트랄 대학교의 카우카우강 옆 206번 국도를 따라 도시 남쪽 외곽에 있던 식물원은 완전히 침수되었다.[121][122]

미국은 지진 발생 직후 야전병원을 신속하게 세웠다.[123] 미국의 지원으로 지진 직후 발디비아의 지질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최초의 도시 지질 지도가 만들어졌다. 멕시코는 지진 이후 에스쿠엘라 멕시코 공립학교를 세워 기증했다.[123]

지진으로 칠레 남부의 철도운송과 1914년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발생한 무역로 변화로 오랜 기간 경제 불황을 겪은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124]

발디비아와는 달리 오소르노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소르노의 많은 집에서 수많은 방화벽과 굴뚝이 붕괴되었지만 완전히 붕괴된 건물은 20채에 불과했다.

오늘날 칠레의 대도시인 푸에르토몬트는 1960년대 초 49,5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던 소도시였다. 푸에르토몬트 도시에서 피해는 대부분 인공적으로 구성한 매립지가 침하로 가라앉은 바리오모델로와 바이아앙헬모 북부에 집중되었다.[125] 앙헬모와 같은 푸에르토몬트 해안 지역 대부분은 지진으로 "완전한 파괴" 급의 피해를 겪은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이다.[126]

칠레 남부 해안을 강타한 쓰나미는 해변의 농장을 파괴해 수많은 사람들과 가축이 죽었다.[127] 축사와 산업 기반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128][127] 지진 이후 피해 지역에서 보조금과 투자를 받은 극소수의 사업 중에는 낙농업이 있었다.[130] 지진 이후에는 장기적 정책을 통해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았다.[130]

지진 이후에는 낙농업 부문에서 국제 기술 협력 프로그램이 설립되었다. 구체적으로는 독일과 덴마크 정부가 칠레 남부 대학교(현 칠레 아우스트랄 대학교)에 우유기술센터(Centro Tecnológico de la Leche) 수립을 지원했다.[129] 스웨덴의 학자인 에리크 다멘은 칠레 남부에 살던 농부들에게 지진은 "창조적 파괴"를 가져왔다고 말했다.[130]

크루세스강 하류 주변에 있던 목초지와 경작지였던 지역은 지진으로 지반이 전체적으로 약 2m 침하하여 완전히 침수되었다.[131] 이렇게 만들어진 습지는 수년에 걸쳐 브라질해초(Egeria densa)와 같은 토종 식물의 서식지가 되었다. 해초와 같은 여러 해상 식물은 이후 검은목백조와 같은 텃새가 모이는 다양성이 많은 해양 생태계로 변모했다.[131] 1981년에는 새롭게 생긴 생태계 보호를 위해 카를로스 안완드테르 자연보호구역이 수립되었다.[131]

해안가 마을인 케울레는 1950년대에 크게 발전했다. 어업, 농업과 제조업을 기반으로 마을이 성장했다. 1957년에는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겨났고 발네아리오는 칠레 특유의 휴양마을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번영은 1960년 지진으로 끝나버렸다.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탄광촌인 레부는 지진으로 여러 채의 집이 붕괴되었다.[132]

4. 1. 2. 지진 해일 (쓰나미)



지진으로 발생한 지진해일칠레 남부와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102] 뉴질랜드 동부, 오스트레일리아 동남부, 알류샨 열도까지 영향을 미쳤다. 일부 지역에서는 해일 높이가 최대 25m 높이로 칠레 해안을 덮치기도 했다. 지진으로 만들어진 쓰나미 파도가 시속 수백 km의 속도로 태평양을 건너가 하와이의 힐로를 덮쳐 6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103]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사망자 대부분은 혼슈 동북부의 산리쿠 연안에서 발생했다.[101]

칠레 해안은 남위 38도인 모차섬에서부터 남위 45도인 아이센델헤네랄카를로스이바녜스델캄포주에 이르는 해안가가 쓰나미로 황폐화되었다. 칠레 남부 전역에서 쓰나미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항만 인프라가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소형 보트가 유실되었다. 이보다 북쪽에 있는 탈카우아노 항구는 큰 피해는 입지 않고 침수 피해만 발생했다. 일부 예인선과 소형 선박은 탈카우아노 인근의 로쿠안트섬에 좌초되기도 했다.[104]

5월 21일 콘셉시온 지진이 닥친 이후 앙쿠드 주민들은 배를 타고 피난처를 찾았다. 칠레 국가헌병대(일종의 경찰) 소속 선박인 글로리아호는 5월 22일 2차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해안가의 보트 수 척을 예인하고 있었다. 해안선이 급격하게 물러나면서 글로리아호는 세로과이겐과 코치노스섬 사이에 좌초되었다. 좌초된 배는 쓰나미에 휩쓸려 난파되었다.[104]

바이아만사에 지어진 최첨단 소형 항구는 해발고도 10m 이상을 덮친 쓰나미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바이아만사에 있던 이사벨라호는 재빨리 항구를 떠났지만 표류되었다.[104]

발디비아강과 코랄만에서는 지진으로 아르헨티나호, 카넬로스호, 카를로스 아베르베크호, 멜리타호, 인양된 펭코호의 잔해 등 여러 선박이 난파되었다. 카넬로스호는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칠레 북부를 목적지로 목재와 기타 제품을 가득 싣고 코랄에 정박하고 있었다. 카넬로스호는 지진 후에야 엔진이 예열되었다. 몇 시간 동안 코랄만과 발디비아강을 표류하던 카넬로스호는 난파되었고 현지 시각 기준 18시에 승무원들은 배를 버렸다. 이 사고로 카넬로스호에 탑승한 승무원 2명이 사망했다. 2000년 현재까지 난파된 카넬로스호의 잔해를 볼 수 있다.[104]

지진 당시 코랄에 정박 중이던 산티아고호는 좋지 않은 배의 상황에서도 코랄만을 빠져나왔지만 5월 24일 표류하다 모차섬 해안가에 난파되었다.[104] 스쿠너 아밀라그루사호는 5월 22일 피츠로야나무 너와를 싣고 케울레를 출발하여 코랄 남쪽 작은 항만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밀라그루사호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4일 동안 쓰나미 파도와 해류에 표류되었다. 한편 코랄 외곽에서 구조대원이 두 척의 보트에 타던 의식이 거의 없고 탈수 증세를 보인 어린이 6명을 구출했다. 발견된 보트는 원래 발디비아강과 코랄만 사이를 오고 가는데만 사용했지만 발견 당시에는 공해로 표류하던 상태였다.

해안가 마을인 케울레에서는 한 연안경비병이 쓰나미가 덮친 후 수 일이 지나서야 수백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다고 보고했다. 역사학자 요셀린 하라미요와 이스마엘 바소는 수십 년 후 케울레 주민들은 지진과 쓰나미로 약 50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의 일본 사상자 (지진 발생 50년 이후 현지 조사, 2010년 2월 기준)
사망 및 실종자부상자이주 세대이재민건물 피해파괴된 선박제방 붕괴도로 손상교량 유실목재 유실
142명855명31,120가구147,898명46,000동2,534척34곳45곳14개소19,290건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미야기현 시오가마시의 모습.


일본은 발디비아 지진의 진앙에서 서쪽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태평양 연안의 타 국가와 비교하면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 약 22시간 30분 후인 5월 24일 새벽(일본 시각 기준) 산리쿠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최대 6.1m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일본 각지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이 쓰나미를 '''칠레 지진해일'''()라고 명명했다.[105]

쓰나미의 피해가 제일 컸던 지역은 리아스식 해안 안쪽에 항구가 있던 이와테현 오후나토시로 총 53명이 사망했고 미야기현 모토요시군 시즈가와정(현 미나미산리쿠정)에서는 41명이, 홋카이도 앗케시군 하마나카정에서는 11명이 사망했다. 하마나카정은 1952년 도카치 해역 지진에서도 쓰나미 피해를 입어 두 차례 시가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도시 중심지이기도 한 기리탓푸 지구(霧多布地区)에서는 발디비아 지진의 쓰나미로 토사가 유출되어 홋카이도 본섬과 분리되어 떨어진 섬이 되었다. 현재는 육지였던 곳에 기리탓푸 대교라는 2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본섬과 기리탓푸섬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는데 1개는 내진교, 1개는 예비교로 건설하여 쓰나미가 덮쳐도 피난경로를 2개로 확보하였다.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외에도 1959년 이세만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미에현 남부에서 와카야마현 다나베시 신조정 사이 지역도 쓰나미로 피해를 입었다.[106]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서는 쓰나미로 발생한 해안선 후퇴를 '간조'라고 착각하여 해조류를 채취하던 주민 2명이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했다.[107]

과거 수 차례의 지진해일 피해로 10m 높이의 거대한 방조제를 건설했던 이와테현 시모헤이군 다로정(현 미야코시)는 지진해일로 인한 피해가 전혀 없었다. 이는 쓰나미가 방조제까지도 닿지 못해 피해가 없었던 것이었지만,[108] 다음 날 일본 내의 언론 보도에서는 거대한 방조제가 효과를 발휘해 피해가 없었던 것처럼 보도되었고 다로정의 방재 노력을 보고 하마나카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조제가 설치되었다. 홋카이도의 방조제는 1994년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에서 피해가 컸던 오쿠시리섬 등에서도 건설되었다. 한편 다로정에서는 방조제의 효과를 오해하여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에서 지진 때 대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 주민이 발생하는 문제도 일어났다.

보도의 경우, NHK 라디오는 일본 기상청의 쓰나미경보가 발령되기 이전인 5월 24일 오전 4시 30분부터 지역방송으로 쓰나미 관련 소식을 전했고, 센다이 방송국의 정보를 바탕으로 오전 5시부터 전국 뉴스를 통해 쓰나미 소식을 전했다.[109] 또한 NHK 종합TV는 오전 10시 25분부터 5분간 뉴스특보를 통해 소식을 전했다.[110]

4. 1. 3. 산사태

1960년 발디비아 지진으로 안데스산맥 남부의 가파른 계곡을 중심으로 수많은 산사태가 발생했다. 안데스산맥에서 일어난 산사태의 대부분은 이키녜-오프키 단층 주변 숲이 우거진 산경사면에서 발생했다. 산사태 지역 중 일부는 드문드문 초목이 남아있었으며, 노토파구스 돔베이(남부너도밤나무)만 이루어진 숲이 있는 지역도 있었다.[112] 산사태는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고 작은 도로만 조금씩 나있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적었고 경제적 손실도 그리 크지 않았다.

산사태 중에서는 리니우에 호수의 유출강을 막아버려 경보가 울리기도 했다. 리니우에 호수 남쪽으로 약 100 km 떨어진 골골강 주변에 산사태가 발생해 자연 댐이 만들어졌고 이 흙댐이 터지면서 푸예우에 호수로 홍수가 일어났다.[113] 골골강의 산사태로 카르데날안토니오사모레 고개를 통해 아르헨티나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까지 향하는 칠레 제215번 국도 일부가 파괴되었다.

산사태 대부분은 남북으로 뻗은 안데스산맥에서 발생했지만 그 외에도 특히 해안 지역인 칠레 해안 산맥의 기슭과 양키우에 호수 주변의 산에서 산사태가 다수 발생했다.[95]

4. 1. 4. 화산 분화



1960년 발디비아 지진 본진 발생 38시간 후인 5월 24일, 코르돈 카우예 화산이 분화했다.[117] 이 분화는 지진의 영향으로 추정된다.[117] 안데스산맥 계곡의 인구 밀도가 낮고 외딴 곳에서 발생하여 목격자가 거의 없었으며, 지진으로 인한 심각하고 광범위한 피해와 손실 보도에 지역 언론이 집중하여 화산 분화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118] 이 분화는 푸에르토몬트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던 미국 공군 소속 승무원이 처음 목격하고 보고했다.

이 분화로 기수방위 기준 135도 방향에서 약 5.5 km 길이의 균열이 생겼으며, 21개의 개별 분화구가 발견되었다. 이 분화구에서는 용암테프라 형태로 약 0.25 km3 가량의 고밀암 등가물(DRE)이 분출되었다. 분화는 59일 후인 7월 22일에 종료되었다.[118]

대피 조치가 이루어져 화산 분화와 관련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4. 2. 국제적 피해 (지진 해일)

1960년 발디비아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는 칠레 남부 해안에 큰 피해를 입혔고,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일본, 필리핀,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 칠레 해안: 모차 섬(남위 38°)에서 아이센 주(남위 45°)까지 최대 25m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항만 시설이 파괴되고 많은 선박이 손실되는 등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22] 특히, 바이아 만사에서는 최대 해발 10m에 달하는 쓰나미가 관측되었다. 발디비아 강에서는 여러 척의 선박이 난파되었고, ''카넬로''호의 잔해는 2000년까지도 남아 있었다.[22]

  • 기타 지역: 주요 쓰나미는 시속 수백 km의 속도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 힐로를 강타하여 61명의 사망자를 냈다.[21] 일본에서는 혼슈 북동부 산리쿠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쓰나미 관련 사망자가 발생했다.[12]


다음은 쓰나미의 높이와 피해 상황을 정리한 표이다.[111]

쓰나미 높이와 피해
시군구, 지역지역 혹은 국명쓰나미 높이
혹은 소상고
관측 시각 (UTC)도달 시각
콘셉시온칠레관측
코랄칠레10.0m
과포섬칠레10.0m
레부칠레5.0m
모차섬칠레25.0m
푼타티르나(티레라)칠레5.0m
콘스티투시온칠레2.5m
발디비아칠레10.0m
만사강칠레8.5m
푼타사베드나칠레9.0m
칠로에섬칠레10.0m
발파라이소칠레1.7m22일 16:301:04
아리카칠레2.2m22일 22:383:27
앙쿠드칠레12.0m
메우인칠레15.0m
탈카우아노칠레5.0m22일 20:050:54
칼라오페루1.1m22일 23:454:34
이스터섬칠레6.0m
갈라파고스 제도에콰도르0.6m
핏케언 제도영국의 해외 영토12.2m
투투일라섬아메리칸사모아4.9m
우폴루섬아메리칸사모아4.9m
팡오팡오아메리칸사모아2.4m23일 7:3312:22
수바피지0.5m23일 8:3013:19
리틀턴뉴질랜드0.4m23일 8:1213:01
웰링턴뉴질랜드0.9m23일 7:4512:34
타우랑가뉴질랜드0.9m23일 8:2313:12
타운즈빌오스트레일리아0.3m23일 16:0520:54
노퍽섬오스트레일리아0.2 m23일 9:0013:49
호바트오스트레일리아0.3m23일 12:0016:49
로드호어 군도오스트레일리아0.7m23일 10:4515:34
뉴캐슬오스트레일리아0.2m23일 12:0016:49
미국0.2m23일 16:4021:29
타클로반필리핀0.2m23일 21:1226:01
화롄시타이완0.2m23일 19:2024:09
지룽시타이완1.1m23일 20:3025:19
가오슝시타이완0.1m23일 20:3025:19
홍콩영국의 해외 영토 (당시)0.5m23일 22:2029:29
푼타레나스코스타리카0.3m23일 4:008:49
엔세나다멕시코1.2m23일 8:4813:37
라파스멕시코0.75m23일 7:5612:45
아카풀코멕시코1.0m23일 5:009:49
마사틀란멕시코1.1m23일 6:5711:46
살리나크루스멕시코1.0m23일 4:569:45
크레센트시티캘리포니아주1.7m23일 10:4015:29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주0.4m23일 10:1315:02
앨러미다군캘리포니아주0.3m23일 10:5015:39
샌타모니카캘리포니아주1.6m23일 9:2214:11
샌페드로베이캘리포니아주0.5m23일 9:1814:07
롱비치캘리포니아주0.7m23일 9:2714:16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0.8m23일 9:1814:07
샌디에고캘리포니아주0.7m23일 9:1214:01
애스토리아오리건주0.2m23일 12:4017:29
뉴포트오리건주0.6m
프린스루퍼트캐나다관측23일 20:50
스캐그웨이알래스카주0.2m23일 15:0019:49
싯카알래스카주0.5m23일 13:3318:22
야쿠타트알래스카주0.8m23일 14:1819:07
몬태그섬알래스카주2.3m23일 16:5719:29
수어드반도알래스카주0.7m23일 16:5719:29
더치하버알래스카주0.7m23일 14:5019:39
쿠릴쿠릴 열도4.7m
로팟카곶캄차카반도2.0m
루스카야후미캄차카반도7.0m
빌류친스카야캄차카반도5.0m
올가후미캄차카반도4.0m
세믈랴치크캄차카반도4.0m
캄차카강 하구캄차카반도4.0m


4. 2. 1. 하와이



본진 발생 약 15시간 후, 쓰나미가 하와이 제도를 덮쳤다. 하와이섬 히로 만에서는 최대 10.7m 높이의 쓰나미가 관측되었고, 61명이 사망했다.[77]

태평양을 전파하는 쓰나미의 주기는 매우 길어, 히로에서는 높이 수 피트 정도의 첫 번째 파도가 도달한 지 약 1시간 후에 최대 파도가 덮쳐 해안선으로부터 800m 이상 내륙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쓰나미 피해 상황
도시·지역지역·국가명파고·최대 도달 높이[78]도달 시각(UTC)도달 시간
카임하와이주4.0m
히로하와이주10.7m23일 9:5814:47
호누아포하와이주5.2m
나포오포오하와이주4.9m
카훌루이하와이주3.4m23일 10:1815:07
파우쿠칼로하와이주4.6m
호놀룰루하와이주0.8m23일 10:3315:22
와히아하 만하와이주4.3m
하에나하와이주4.1m


4. 2. 2. 일본

일본은 발디비아 지진의 진앙에서 서쪽으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태평양 연안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 발생 약 22시간 30분 후인 5월 24일 새벽(일본 시각 기준) 산리쿠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최대 6.1m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일본 각지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이 쓰나미를 '''칠레 지진해일'''(チリ地震津波|지리 지신 쓰나미일본어)라고 명명했다.[105]

쓰나미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은 리아스식 해안 안쪽에 항구가 있던 이와테현 오후나토시로 총 53명이 사망했고, 미야기현 모토요시군 시즈가와정(현 미나미산리쿠정)에서는 41명, 홋카이도 앗케시군 하마나카정에서는 11명이 사망했다. 하마나카정은 1952년 도카치 해역 지진에서도 쓰나미 피해를 입어 두 차례 시가지가 큰 피해를 입었다. 도시 중심지이기도 한 기리탓푸 지구(霧多布地区)에서는 발디비아 지진의 쓰나미로 토사가 유출되어 홋카이도 본섬과 분리되어 떨어진 섬이 되었다. 현재는 육지였던 곳에 기리탓푸 대교라는 2개의 다리가 건설되어 본섬과 기리탓푸섬 사이를 오갈 수 있는데, 1개는 내진교, 1개는 예비교로 건설하여 쓰나미가 덮쳐도 피난 경로를 2개로 확보하였다.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외에도 1959년 이세만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미에현 남부에서 와카야마현 다나베시 신조정 사이 지역도 쓰나미로 피해를 입었다.[106]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서는 쓰나미로 발생한 해안선 후퇴를 '간조'라고 착각하여 해조류를 채취하던 주민 2명이 쓰나미에 휩쓸려 사망했다.[107]

과거 수 차례의 지진 해일 피해로 10m 높이의 거대한 방조제를 건설했던 이와테현 시모헤이군 다로정(현 미야코시)은 지진 해일로 인한 피해가 전혀 없었다. 이는 쓰나미가 방조제까지도 닿지 못해 피해가 없었던 것이었지만,[108] 다음 날 일본 내 언론 보도에서는 거대한 방조제가 효과를 발휘해 피해가 없었던 것처럼 보도되었고, 다로정의 방재 노력을 보고 하마나카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조제가 설치되었다. 홋카이도의 방조제는 1994년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에서 피해가 컸던 오쿠시리섬 등에서도 건설되었다. 한편 다로정에서는 방조제의 효과를 오해하여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에서 지진 때 대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 주민이 발생하는 문제도 일어났다.

쓰나미 피해 상황
도시·지역지역·국가명파고·최대 도달 높이[78]도달 시각(UTC)도달 시간
몬베쓰시일본0.4m23일 19:1023:59
쿠시로시일본1.8m
우라카와정일본3.2m
하코다테시일본2.2m23일 18:3823:27
오미나토일본0.2m23일 20:1525:04
무쓰시일본6.3m
하치노헤시일본3.3m
미야코시일본1.2m
카마이시시일본0.7m23일 17:3522:24
오후나토시일본4.9m
산리쿠 해안일본6.4m
온가와정일본4.2m
시오가마시일본2.8m
초시시일본2.1m
쓰키지일본0.1m23일 18:1022:59
시모다시일본1.8m
하마마쓰시일본1.1m
토바시일본1.6m
마이즈루시일본0.5m23일 23:2529:14
쿠시모토정일본2.2m
다다노우라일본0.4m24일 0:4029:29
고치시일본3.1m
토사시미즈시일본2.7m
모지시일본0.9m24일 0:2529:14
이가라정일본0.2m
사세보시일본1.3m23일 21:4026:29
미야자키일본0.6m
유즈일본2.0m
나세시일본0.5m23일 19:5024:39



1960년 발디비아 지진의 일본 사상자 (지진 발생 50년 이후 현지 조사, 2010년 2월 기준)
사망 및 실종자부상자이주 세대이재민건물 피해파괴된 선박제방 붕괴도로 손상교량 유실목재 유실
142명855명31,120가구147,898명46,000동2,534척34곳45곳14개소19,290건


4. 2. 3. 기타 국가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는 칠레 남부, 하와이, 일본, 필리핀, 중국,[20] 뉴질랜드 동부,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및 알류샨 열도에 영향을 미쳤다.

쓰나미 피해 상황
도시·지역지역·국가명파고·최대 도달 높이[78]도달 시각(UTC)도달 시간
칼라오페루1.1m22일 23:454:34
이스터섬칠레6.0m
갈라파고스 제도에콰도르0.6m
카임하와이주4.0m
히로하와이주10.7m23일 09:5814:47
호누아포하와이주5.2m
나포오포오하와이주4.9m
카훌루이하와이주3.4m23일 10:1815:07
파우쿠칼로하와이주4.6m
호놀룰루하와이주0.8m23일 10:3315:22
와히아하 만하와이주4.3m
하에나하와이주4.1m
존스턴섬하와이주0.5m23일 11:3016:19
미드웨이섬하와이주0.6m23일 13:3018:19
피트케언 제도영국12.2m
투투일라섬아메리칸사모아4.9m
우폴루섬아메리칸사모아4.9m
파고파고아메리칸사모아2.4m23일 07:3312:22
수바피지0.5m23일 08:3013:19
리틀턴뉴질랜드0.4m23일 08:1213:01
웰링턴뉴질랜드0.9m23일 07:4512:34
타우랑가뉴질랜드0.9m23일 08:2313:12
타운스빌오스트레일리아0.3m23일 16:0520:54
노퍽섬오스트레일리아0.2m23일 09:0013:49
호바트오스트레일리아0.3m23일 12:0016:49
로드하우섬오스트레일리아0.7m23일 10:4515:34
뉴캐슬오스트레일리아0.2m23일 12:0016:49
미국0.2m23일 16:4021:29
몬베쓰시일본0.4m23일 19:1023:59
쿠시로시일본1.8m
우라카와정일본3.2m
하코다테시일본2.2m23일 18:3823:27
오오미나토일본0.2m23일 20:1525:04
무쓰시일본6.3m
하치노헤시일본3.3m
미야코시일본1.2m
카마이시시일본0.7m23일 17:3522:24
오후나토시일본4.9m
산리쿠 해안일본6.4m
온가와정일본4.2m
시오가마시일본2.8m
초시시일본2.1m
쓰키지일본0.1m23일 18:1022:59
시모다시일본1.8m
하마마쓰시일본1.1m
토바시일본1.6m
마이즈루시일본0.5m23일 23:2529:14
쿠시모토정일본2.2m
다다노우라일본0.4m24일 00:4029:29
고치시일본3.1m
토사시미즈시일본2.7m
모지시일본0.9m24일 00:2529:14
이가라정일본0.2m
사세보시일본1.3m23일 21:4026:29
미야자키일본0.6m
유즈일본2.0m
나세시일본0.5m23일 19:5024:39
화련시대만0.2m23일 19:2024:09
기륭시대만1.1m23일 20:3025:19
가오슝시대만0.1m23일 20:3025:19
홍콩영국 (당시)0.5m23일 22:2029:29
타클로반필리핀0.2m23일 21:1226:01
푼타레나스코스타리카0.3m23일 04:008:49
엔세나다멕시코1.2m23일 08:4813:37
라파스멕시코0.75m23일 07:5612:45
아카풀코멕시코1.0m23일 05:009:49
마사틀란멕시코1.1m23일 06:5711:46
살리나 크루스멕시코1.0m23일 04:569:45
크레센트시티캘리포니아주1.7m23일 10:4015:29
샌프란시스코캘리포니아주0.4m23일 10:1315:02
알라메다 군캘리포니아주0.3m23일 10:5015:39
산타모니카캘리포니아주1.6m23일 09:2214:11
샌페드로 만캘리포니아주0.5m23일 09:1814:07
롱비치캘리포니아주0.7m23일 09:2714:16
로스앤젤레스캘리포니아주0.8m23일 09:1814:07
샌디에이고캘리포니아주0.7m23일 09:1214:01
아스트리아오리건주0.2m23일 12:4017:29
뉴포트오리건주0.6m
프린스 루퍼트캐나다관측23일 20:50
스캐그웨이알래스카주0.2m23일 15:0019:49
시트카알래스카주0.5m23일 13:3318:22
야쿠타트알래스카주0.8m23일 14:1819:07
몬태규섬알래스카주2.3m23일 16:5719:29
시워드 반도알래스카주0.7m23일 16:5719:29
더치하버알래스카주0.7m23일 14:5019:39
쿠릴스키예쿠릴열도4.7m
로파트카 곶캄차카 반도2.0m
루스카야 만캄차카 반도7.0m
빌류친스카야캄차카 반도5.0m
올가 만캄차카 반도4.0m
세믈랴치크캄차카 반도4.0m
캄차카 강 하구캄차카 반도4.0m


5. 1960년 칠레 지진 이후의 여파 및 대응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의 모습.


1960년 발디비아 지진으로 안데스산맥 남부의 가파른 계곡을 중심으로 수많은 산사태가 발생했다. 안데스산맥에서 일어난 산사태의 대부분은 이키녜-오프키 단층 주변 숲이 우거진 산경사면에서 발생했다. 산사태 지역 중 일부는 드문드문 초목이 남아있었으며, 노토파구스 돔베이(남부너도밤나무)만 이루어진 숲이 있는 지역도 있었다.[112] 산사태는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고 작은 도로만 조금씩 나있었기 때문에 사망자가 적었고 경제적 손실도 그리 크지 않았다.

산사태 중에서는 리니우에 호수의 유출강을 막아버려 경보가 울리기도 했다. 리니우에 호수 남쪽으로 약 100 km 떨어진 골골강 주변에 산사태가 발생해 자연 댐이 만들어졌고 이 흙댐이 터지면서 푸예우에 호수로 홍수가 일어났다.[113] 골골강의 산사태로 카르데날안토니오사모레 고개를 통해 아르헨티나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까지 향하는 칠레 제215번 국도 일부가 파괴되었다. 남북으로 뻗은 안데스산맥 외에도 해안 지역인 칠레 해안 산맥의 기슭과 양키우에 호수 주변의 산에서도 산사태가 다수 발생했다.[95]

지진의 규모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물적 피해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단층대 인근 지역의 인프라 개발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37]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물들은 지진 발생 시 양호한 성능을 보였으며, 주로 지반 침하나 작은 단층 운동의 영향을 받았을 때 피해를 입었다.[37]

지진 발생 시각은 현지 시각 1960년 5월 22일 15시 11분 14초였으며, 진원지는 칠레 중부 도시 발디비아 연안이었다. 규모는 표면파 규모(Ms) 8.3~8.5, 모멘트 규모(Mw)가나모리 히로오의 추정에 따르면 9.5였다. Mw 9.5라는 값은 근대 지진학 계기 관측 사상 '''세계 최대'''이며, 역사 지진을 포함해도 최대급이다. 길이 1,000km, 수평이동량 10m를 넘는 단층이 활동했다고 생각되며, 지진 모멘트 M0는 2.0×1023N・m (2.0×1030dyn・cm)에 달한다고 추정된다.[63]

규모가 큰 지진 (20세기 이후·세계)
순위명칭발생일 (UTC )규모 (Mw)
1칠레, 발디비아1960년5월 22일9.5
2알래스카, 프린스 윌리엄 만1964년3월 28일9.2
3수마트라섬·안다만 제도2004년12월 26일9.1
동일본 대지진2011년3월 11일
5캄차카 반도 동쪽 해역1952년11월 5일9.0
6칠레, 비오비오2010년2월 27일8.8
에콰도르·콜롬비아1906년1월 31일
8알류샨 열도, 랫 제도1965년2월 4일8.7
9알류샨 열도, 유니막섬1946년4월 1일8.6
아쌈·티베트1950년8월 15일
알류샨 열도, 안드레아노프 제도1957년3월 9일
수마트라섬 북부2005년3월 28일
수마트라섬 북부 서쪽 해역2012년4월 11일
규모는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름



일본 동북 지방 해안에 도달한 검조소 파형의 수치 해석에 따르면, 길이 850km, 폭 180km, 수평이동량 17m, 경사각 20°의 저각 역단층 모델이 동북 연안의 쓰나미를 가장 잘 재현한다고 한다.[64] 최대 진도는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으로 진도 7에 해당한다.[65]

칠레 각지의 진도[66]
도시메르칼리 진도
발디비아X
푸에르토몬트X-XI
리오네그로IX-X
템우코VIII
오소르노VII-VIII
푸에르토사아베드라(Puerto Saavedra)VII-VIII
럇키웨(Llanquihue)VII-VIII
비야리카(Villarica)VII



먼저 전진이 M7.5로 시작되어 M7급 지진이 5~6회 계속된 후, 본진이 Ms8급으로 발생했다. 또한 여진도 M7급이었기 때문에 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전국이 붕괴 상태가 되었다.[67] 지진으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자는 1,743명, 부상자는 667명이었다.

전날에는 단독으로도 거대 지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진이 발생했지만,[68] M7을 넘는 여진은 3회에 그쳤다.[69][70]

전진


  • 1960년 5월 21일 10:02(UTC), 남위 37.83°, 서경 73.38°, Mw8.2
  • 1960년 5월 22일 18:56(UTC), 남위 38.15°, 서경 72.98°, Mw7.9

본진

  • 1960년 5월 22일 19:11(UTC), 남위 38.29°, 서경 73.05°, Mw9.5

여진

  • 1960년 6월 6일 5:55(UTC), 남위 45.70°, 서경 73.50°, Mw7.2
  • 1960년 6월 20일 2:01(UTC), 남위 38.26°, 서경 73.32°, Mw7.0
  • 1960년 6월 20일 12:59(UTC), 남위 39.21°, 서경 73.32°, Mw7.1


이 지진으로 인해 아타카마 해구(페루-칠레 해구)가 융기하고, 해안에 산재한 섬에서는 최소 5.7m의 융기, 해안을 따라 있는 안데스 산맥 서쪽은 2.7m 침강하는 대규모 지각 변동이 확인되었다.[73] 이는 안데스 산맥과 평행한 향사 습곡을 초래했고, 이러한 지각 변동 관측 결과는 아타카마 해구를 따라 있는 나스카 판의 섭입대에서 저각 역단층의 진원 모델을 지지하고 있다.[74]

후속 추정에 따르면, 너비 200km, 길이 800km에 걸쳐 단층이 20m 이동하여 유감 지진이 반경 약 1,000km에 걸쳐 광범위하게 관측되었다. 최초로 지구 자유 진동 관측에 성공했으며, 발생한 지진파가 지구를 3바퀴 돌았다는 사실이 미국의 관측으로 확인되었다. 본진의 진동은 약 20분 후 일본 국내 지진 관측망에서도 포착되었다.

1957년부터 1967년 사이에 관측된 챈들러 요동 중 1960년 관측 결과에서 칠레 지진 발생으로 인해 지축의 연주 운동에 불연속이 확인되었다.[75] 지구에 어떤 원인으로 탄성체의 변형이 발생하면 챈들러 요동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측되지만, 1960년 칠레 지진과 같은 대규모 지진이라도 그 변형량으로는 챈들러 요동을 여기시키기에는 전혀 불충분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1964년알래스카 지진에서 진원지에서 약 5000km 떨어진 하와이 제도에서도 10-8 정도의 영구 변형이 관측되었고, 이러한 미소한 지각 변동이라도 전 지구적으로 적분하면 챈들러 요동을 여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졌다.[76]

5. 1. 칠레

지진 발생 후, 칠레 경제부는 종합적인 재건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호르헤 알레산드리 대통령의 노력으로 비상사태에 대처하고 국가 재건에 힘쓰기 위한 새로운 기관이 수립되었다. 당시 새롭게 수립된 "경제재건부"는 칠레 생산개발기구(CORFO)와 협력하여 재건 사업을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장관급 위원회인 칠레 경제재건위원회(COPERE)는 공식적인 정부의 재건 계획 수립 및 집행을 위한 위원회로 선정되었고, 생산개발기구는 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했다.[133][134]

위원회는 각 주별로 재건 활동을 조정하는 임무를 맡았으며, 생산개발기구는 각 주별 위원회의 기술사무국으로 활동했다. 또한, 칠레가 향후 닥쳐올 재난에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포괄적인 국가계획이 수립되었으며, 국가비상사태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도 통과되었다. 생산개발기구는 재난 발생 시 통신 복구 작업을 강화하고 이를 현대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국영 통신사인 ENTEL를 수립했다.[134]

1974년에는 1971년 비야리카산 분화 당시의 교훈으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위원회를 독립적인 정부기관으로 승격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는 칠레 재난정보관리국(ONEMI)으로 이어졌다.[133]

5. 1. 1. 도시 재건

1960년 발디비아 지진 이후 칠레 정부는 국가 재건과 미래 재난 대비를 위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호르헤 알레산드리 대통령은 경제재건부를 신설하고, 칠레 생산개발기구(CORFO)와 협력하여 재건 사업을 조정하도록 했다. 장관급 위원회인 칠레 경제재건위원회(COPERE)가 공식적인 재건 계획 수립 및 집행을 담당했으며, CORFO는 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수행했다.[133][134]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발디비아에서는 주택의 약 40%가 파괴되어 2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콘크리트 건물은 현대적인 내진 설계 미비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전통적인 목조 주택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고지대에 위치한 주택은 저지대 주택보다 피해가 적었다. 도시 중심부의 파괴된 건물들은 1990년대까지 빈 채로 방치되거나 주차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코랄만에서는 지반 침하로 항해가 용이해졌고, 발디비아의 홍수 방지 제방 붕괴와 토지 침하로 새로운 지역이 홍수 위험에 노출되었다. 칠레 아우스트랄 대학교의 식물원 일부는 영구적으로 침수되었다.

미국은 야전병원을 설치하고 발디비아의 지질 조사를 지원했으며, 멕시코는 공립학교를 기증했다. 지진 피해는 칠레 남부의 경제 불황을 심화시켰다. 오소르노발디비아에 비해 피해가 적었지만, 푸에르토몬트는 인공 매립지 침하로 큰 피해를 입었다.

크루세스강 하류 주변 경작지는 지진으로 약 2m 침하하여 침수되었고, 이후 카를로스 안완드테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해양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해안 마을 케울레는 지진으로 발전이 중단되었다. 탄광촌 레부에서도 여러 채의 집이 붕괴되었다.

지진 이후, 칠레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포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또한, 국영 통신사 ENTEL을 설립하여 통신 복구 작업을 강화했다. 1974년에는 칠레 재난정보관리국(ONEMI)이 설립되어 재난 대비 및 대응을 위한 독립적인 정부 기관으로 활동하게 되었다.[133]

5. 1. 2. 농촌 지역 복구

1960년 발디비아 지진으로 칠레 남부 해안을 강타한 쓰나미는 해변의 농장을 파괴해 수많은 사람들과 가축의 목숨을 앗아갔다.[127] 축사와 산업 기반이 파괴되었다.[128][127] 피해 지역에서 보조금과 투자를 받은 극소수의 사업 중에는 낙농업이 있었다.[130] 지진 이후에는 장기적인 정책을 통해 국가 지원을 받았다.[130]

지진 이후에는 낙농업 부문에서 국제 기술 협력 프로그램이 설립되었다. 구체적으로는 독일과 덴마크 정부가 칠레 아우스트랄 대학교에 우유기술센터(Centro Tecnológico de la Leche) 수립을 지원했다.[129] 스웨덴의 학자인 에리크 다멘은 칠레 남부의 농부들에게 지진은 "창조적 파괴"를 가져왔다고 말했다.[130]

크루세스강 하류 주변에 있던 목초지와 경작지는 지진으로 지반이 약 2 m 침하하여 완전히 침수되었다.[131] 이렇게 만들어진 습지는 수년에 걸쳐 브라질해초(Egeria densa)와 같은 토종식물의 서식지가 되었다. 해초와 같은 여러 해상식물은 이후 검은목백조와 같은 텃새가 모이는 다양성이 많은 해양생태계로 변모했다.[131] 1981년에는 새롭게 생긴 생태계 보호를 위해 카를로스 안완드테르 자연보호구역이 수립되었다.[131]

해안가 마을인 케울레는 1950년대에 크게 발전했다. 어업, 농업과 제조업을 기반으로 마을이 성장했고, 1957년에는 다른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가 생겨나 발네아리오는 칠레 특유의 휴양마을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번영은 1960년 지진으로 끝나버렸다.

그보다 더 북쪽에 있는 탄광촌인 레부는 지진으로 여러 채의 집이 붕괴되었다.[132]

5. 1. 3. 인신공양 사건

1960년 발디비아 지진 직후 며칠 동안, 아라우카니아주의 해안 마을 코일레우푸에서 마푸체족 원주민이 인신공양을 지냈다. 코일레우푸는 사베드라 남쪽 부디 호수 지역에 위치했는데, 1960년 당시 매우 고립된 곳이었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푸체어를 사용했다. 주민들은 세로라메사라는 저지대에 모여 살았는데, 연이은 쓰나미에 큰 피해를 입었다. 마을의 마치인 후아나 나뭉쿠라 아녠은 땅과 바다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웃 후안 파이네쿠르의 손자를 제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135][136] 희생자는 산티아고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던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 혼자 양육하던 5살 아이 호세 루이스 파이네쿠르였다.[135]

누에바임페리알의 한 소년이 말 두 마리를 훔친 사건을 지역 지도자에게 신고하면서 인신공양 사실이 알려졌다. 훔친 말은 희생 의식 중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135] 이 사건으로 2명이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자백했지만, 나중에 자백을 철회하고 2년 만에 석방되었다. 한 판사는 이들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힘으로 자유의지 없이 행동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타임》지에 짧게 소개되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137]

5. 2. 국제적 대응

1960년 발디비아 지진 발생 후, 칠레의 대통령 호르헤 알레산드리는 비상사태에 대처하고 국가 재건을 위한 새로운 기관을 수립하였다. 칠레 경제부는 종합적인 재건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당시 새롭게 수립된 "경제재건부"는 칠레 생산개발기구(CORFO)와 협력하여 재건 사업을 조정했다.[133][134] 장관급 위원회인 칠레 경제재건위원회(COPERE)가 정부의 재건계획 수립 및 집행을 맡았고, 생산개발기구는 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했다.[133][134] 각 주별로 재건 활동을 조정하는 임무도 맡았으며, 생산개발기구는 각 주별 위원회의 기술사무국으로 활동했다. 또한,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포괄적인 국가계획임무가 수립되었으며, 국가비상사태시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도 통과되었다. 생산개발기구는 재난 발생 시 통신 복구 작업을 강화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국영 통신사인 ENTEL를 수립했다.[134]

1974년에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위원회를 독립적인 정부기관으로 승격하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는 칠레 재난정보관리국(ONEMI)로 이어졌다.[133]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쓰나미(원격지 쓰나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점이 지적되면서, 이후 일본 기상청은 일본 외곽에서 발생한 해양형 대규모 지진에 대해서도 태평양쓰나미경보센터 등과 연계하여 쓰나미 경보·주의보를 발표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쓰나미의 온라인 관측망이 없어 검조소와 조위 관측소에 사람이 정기적으로 확인하는 체계였다.

6. 1960년 이후의 지진 활동

1957년에서 1967년 사이에 관측된 챈들러 요동(주기 약 14개월의 극운동)의 1960년 관측 결과에서는 칠레에서 발생한 초거대지진의 영향으로 지축 주기운동에 불연속성이 관측되었다.[138] 지구 탄성구의 변형이 일어나면 챈들러 요동에 큰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1960년 칠레 지진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이 변형만으로는 챈들러 요동에 큰 영향을 주기는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1964년 알래스카 지진에서 진원에서 약 5,000 km 떨어진 하와이에서 약 10-8 정도의 영구변형이 관측되어, 이러한 미세한 지각 변동도 전 지구에 걸쳐 적분하면 챈들러 요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139]

6. 1. 과거 지진 기록

아타카마 사막에서 발견된 숯과 조개껍데기를 연대 측정한 결과, 기원전 1800년경 1960년 지진과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여 쓰나미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진으로 칠레 해안 지역에서 수렵채집을 하던 선사인들은 약 1천 년간 해안 근처에서 살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140][141]

1575년에도 발디비아에서 비슷한 규모의 지진과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다.[142] 이 지진으로 1960년과 거의 비슷한 리니우아소 홍수가 일어났다. 당시 발디비아의 코레히도르였던 페드로 마리뇨 데 로베라는 산사태로 레니과 석호에 자연댐이 발생했다고 기록했다. 몇 달 후인 4월에는 이 자연댐이 붕괴되어 홍수가 발생했다.[143] 데 로베라는 스페인 측 정착민은 댐이 터지기 전에 전부 대피하고 고지대에서 기다렸지만, 수많은 원주민들이 홍수로 사망했다고 말했다.[143] 1575년 지진은 1960년에 발생한 지진과 거의 비슷했지만, 1575년 지진에는 일본에서 비슷한 쓰나미가 닥쳤다는 기록이 없다는 차이점이 있다.[144][101]

1960년 지진 전에 일어났던 기타 다른 발디비아 지진으로는 1737년과 1837년 지진이 있다.[145]

2010년 2월 27일 현지 시각 오전 3시 34분, 1960년 지진의 바로 북쪽 산티아고콘셉시온 사이 칠레 마우레주 해역에 규모 M8.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146] 이 지진은 약 35km 깊이에서 일어났으며 해안에서 수십 km 떨어진 지역에서 발생했다. 2010년의 지진은 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지진인 1960년 대지진과의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추정이 많았다.[147] 2010년 지진은 1960년 이후 발디비아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다. 한편 2010년 지진으로 가옥 35채가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44채가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148] 피해 조사 결과 발디비아에서는 434명이 집을 잃고 난민이 되었다. 피해는 주로 옛날에는 습지였던 곳과 인공적으로 매립지로 만든, 토양이 무른 지역에 집중되었다. 발디비아 강변의 일부 포장도로는 1960년 지진때와 마찬가지로 금이 가거나 붕괴되었다. 전반적으로 2010년 지진의 피해는 매우 국지적이었고 규모에 비해 매우 작았다.[148]

6. 2. 2010년 칠레 지진

2010년 2월 27일 현지 시각 오전 3시 34분, 1960년 지진의 바로 북쪽 산티아고콘셉시온 사이 칠레 마우레주 해역에서 규모 M8.8의 대지진이 발생했다.[146] 이 지진은 지하 약 35km 깊이에서 일어났으며 해안에서 수십 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2010년 지진은 관측 사상 가장 강력했던 지진인 1960년 대지진과 연관성이 있다는 추정이 많았다.[147] 1960년 지진 이후 발디비아에서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2010년 지진으로 가옥 35채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44채가 약간의 피해를 보았다.[148] 피해 조사 결과 발디비아에서는 434명이 집을 잃었다. 피해는 주로 과거 습지였거나 인공 매립지 등 토양이 무른 지역에 집중되었다. 발디비아강변 일부 포장도로는 1960년 지진 때처럼 금이 가거나 붕괴되었다. 전반적으로 2010년 지진 피해는 매우 국지적이었고 규모에 비해 작았다.[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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