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나후아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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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과나후아토주는 멕시코의 주로, 지리적 특성에 따라 과나후아토 고지대, 중앙 산맥, 바히오, 시에라 고르다, 남부 계곡 등 5개 지역으로 나뉜다. 멕시코 중부에 위치하여 주요 도시들과 인접해 있으며,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617만 명이다. 경제는 제조업, 상업, 부동산, 농업 등이 주요 산업이며, 자동차, 가죽 제품, 수공예품 생산이 활발하다. 과나후아토 시와 산미겔데아옌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세르반티노 국제 축제, 엑스프레시온 영화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또한, 과거 치치메카족과 오토미족 등 원주민들이 거주했으며, 멕시코 독립 전쟁과 혁명의 주요 무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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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나후아토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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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자유롭고 주권적인 과나후아토 주 |
로마자 표기 | Estado Libre y Soberano de Guanajuato |
오토미어 명칭 | Hyodi Uanahuatö |
별칭 | (없음) |
국가 | 멕시코 |
주도 | 과나후아토 |
최대 도시 | 레온 |
최대 광역권 | 레온 광역권 |
자치체 | 46개 |
설립 | 1823년 12월 20일 |
순서 | 2번째 |
면적 | 30,607 km² |
면적 순위 | 22위 |
최고 고도 | 3,110 m |
인구 (2020년) | 6,166,934명 |
인구 밀도 | 자동 계산 |
인구 밀도 순위 | 5위 |
인구 순위 | 6위 |
주민 | 과나후아토인 |
시간대 | 중부 표준시 (CST) |
UTC 오프셋 | -6 |
우편 번호 | 36–38 |
지역 번호 | 411 412 413 415 417 418 419 421 428 429 432 438 442 445 456 461 462 464 466 468 469 472 473 476 477 |
ISO 코드 | MX-GUA |
HDI | 0.736 (높음) |
HDI 순위 | 26위 |
공식 웹사이트 | 공식 웹사이트 |
정치 | |
주지사 |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디에고 신우에 로드리게스 바예호 |
상원 의원 |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리카르도 셰필드 파디야 [[File:Logo Partido Verde (México).svg|link=멕시코 녹색당|23px]] 비르히니아 마가냐 폰세카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미겔 마르케스 마르케스 |
연방 하원 의원 | [[File:PRI logo (Mexico).svg|link=제도혁명당|23px]] 루이스 헤라르도 산체스 산체스 (제1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알마 로사 데라베가 바르가스 (제2선거구)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페르난도 토레스 그라시아노 (제3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에스트라다 도밍게스 (제4선거구)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엑토르 하이메 라미레스 바르바 (제5선거구)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크리스티나 마르케스 알칼라 (제6선거구)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디아나 구티에레스 발티에라 (제7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에르네스토 프리에토 가야르도 (제8선거구)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디에고 로드리게스 바로소 (제9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알레한드로 칼데론 디아스 (제10선거구) [[File:PAN Party (Mexico).svg|link=국민행동당 (멕시코)|23px]] 미겔 살림 알레 (제11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막달레나 로살레스 크루스 (제12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루세로 히가레다 세구라 (제13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후아나 아코스타 트루히요 (제14선거구) [[File:Morena logo (Mexico).svg|link=모레나 (정당)|23px]] 호세 하비에르 아기레 가야르도 (제15선거구) |
경제 | |
총 GDP (2022년) | 1조 2,120억 멕시코 페소 (603억 미국 달러) |
1인당 GDP (2022년) | 9,568 미국 달러 |
2. 지리
과나후아토주는 멕시코 중앙부, 멕시코시티 북서쪽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사카테카스주와 산루이스포토시주, 동쪽으로 케레타로주, 남쪽으로 미초아칸주, 서쪽으로 할리스코주와 접한다. 면적은 30589km2로 멕시코에서 20번째로 큰 주이다.[12] 평균 고도는 2015m이며, 지형은 크게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 멕시코 고원, 멕시코 횡단 화산대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북동쪽에는 시에라 마드레 오리엔탈 산맥에 속하는 시에라 고르다와 아사프란 산맥이 있다. 중앙부에는 멕시코 고원이 펼쳐지며, 시에라 데 라 쿠아트랄바, 시에라 데 쿠보 같은 낮은 산맥들이 가로지른다. 남쪽에는 멕시코 횡단 화산대가 위치하며, 바히오 지역, 할리스코 고지대, 남부 계곡 지역을 포함한다. 주는 평균 고도 2305m의 여러 산맥(높이는 2300m에서 3000m)과 평균 고도 1725m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산맥으로는 북쪽의 시에라 고르다, 남동쪽의 시에라 데 과나후아토, 북서쪽의 코만하, 동쪽의 코도르니스가 있다.[12]
주는 지리와 기후에 따라 다섯 개 지역으로 나뉜다: 과나후아토 고지대, 중앙 산맥, 바히오, 시에라 고르다, 남부 계곡.[13]
지역명 | 위치 | 주요 특징 | 고도 범위 (m) |
---|---|---|---|
과나후아토 고지대 | 북부 | 숲이 우거진 산맥, 목초지, 작은 밭, 사막 식물 분포. 산루이스포토시주 경계에서 남쪽으로 이어짐. | 1800m ~ 2900m 이상 |
시에라 고르다 | 북동부 | 주에서 가장 험준한 지역, 다양한 미기후, 생물권보전지역, 라 우아스테카 문화권 서쪽. | 650m ~ 3300m |
중앙 산맥 | 중앙부 | 낮고 완만한 산맥, 다양한 식생, 과수원(구아바, 테호코테 등) 및 사막 과일(선인장 열매, 가람불로스 등) 생산. | - |
바히오 | 중앙부 (저지대) | 레르마강 주변의 비교적 낮고 평평한 지역. 이름은 스페인어 "낮은(bajo)"에서 유래. 농업 및 산업 중심지. | 1700m ~ 1800m |
남부 계곡 | 남서부 | 푸레페차어 지명 다수 분포. 비옥한 화산 토양(작물, 건축 자재 생산). 호수, 협곡, 동굴, 시에테 루미나리아스 화산 분화구 존재. | 1700m ~ 2000m |
- 과나후ato 고지대: 북쪽에 위치하며, 산맥과 목초지, 작은 밭, 선인장 등 사막 식물이 섞여 있다. 산루이스포토시주 경계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돌레스 이달고, 산미겔 데 아옌데, 케레타로주 경계까지 이어진다. 고도는 1800m에서 라 히간타, 시에라 델 쿠보 등 2900m가 넘는 봉우리까지 다양하다. 야생 동물은 대부분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에 서식한다.[14]
- 시에라 고르다: 과나후아토주와 케레타로주에 걸쳐 있으며, 중요한 생물권보전지역이다. 주에서 가장 험준하여 자연과 작은 마을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15]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 산맥의 일부로, 지리와 기후가 매우 다양하다. 가장 낮은 지점은 시추의 파소 데 오르미가스 협곡(650m)이며, 가장 높은 지점은 피날 데 사모라노(3300m)이다. 식생은 열대우림부터 소나무 숲, 사막 경관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16] 과나후아토주 측 보호구역은 5개 시(시추, 산 루이스 데 라 파스, 아타르헤아, 빅토리아, 산타 카타리나)에 걸쳐 236882ha를 차지한다. 문화적으로는 라 우아스테카 지역의 서쪽 끝에 해당한다.[17]
- 중앙 산맥: 주 중앙부의 낮고 완만한 산맥으로, 시에라 마드레 옥시덴탈 산맥의 일부이다. 12개 시(오캄포, 산 펠리페, 레온, 실라오, 과나후아토, 돌레스 이달고, 산미겔 데 아옌데, 이라푸아토, 살라망카, 산타 크루스 데 후벤티노 로사스, 코몬포르트, 아파세오 엘 그란데)를 포함한다. 다양한 식생과 함께 과수원 및 사막 과일 생산이 활발하다.[18]
- 바히오: 주 중앙에 위치한 비교적 낮고 평평한 지역(1700m~1800m)으로, 레르마강과 그 지류를 둘러싸고 있다. 케레타로주와 할리스코주에도 일부 걸쳐 있다.[12][19] 이름은 스페인어 '낮은'을 뜻하는 '바호'(bajoes)에서 유래했다.[20] 과거에는 홀름 오크와 메스키트 나무 숲이 우거졌으나 광산 연료 수요로 벌채되었다. 현재는 고속도로와 대규모 농장이 들어서 곡물, 채소, 과일을 생산하는 주의 농업 및 산업 중심지이다.[20] 멕시코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농지 중 하나로 여겨진다.[12]
- 남부 계곡 (Valles del Sur|발레스 델 수르es 또는 Valles Abajeños|발레스 아바헤뇨스es): 미초아칸주와 접한 남서부 계곡 지역으로, 푸레페차어 지명이 많다. 11개 시(발레 데 산티아고, 유리리아, 타리모로, 아파세오 엘 알토, 모롤레온, 우리앙가토, 산티아고 마라바티오, 아캄바로, 헤레쿠아로, 코로네오, 타란다쿠아오)를 포함한다. 멕시코 횡단 화산대의 일부로 고도는 1700m~2000m이다. 비옥한 화산 토양에서 수수, 밀, 옥수수, 채소 등 작물과 테손틀레, 흑색 사암 같은 건축 자재가 생산된다. 여러 작은 호수와 협곡, 동굴이 있으며, 특히 시에테 루미나리아스(일곱 등불)라 불리는 7개의 휴화산 분화구가 유명하다. 이 분화구들은 최대 1km에 달하며, 일부에는 동굴 벽화와 거주 흔적이 남아있다. 라 알베르카 분화구 호수에서는 수상 활동을 즐길 수 있다.[21]

주요 수자원으로는 지하 대수층과 약 1,500개의 지표수가 있다. 주요 호수는 미초아칸주 경계의 쿠이체오 호와 유리리아 호이며, 시에테 루미나리아스 분화구 중 일부(라 호야, 파랑게오, 올라 데 킨토라 등)에도 호수가 형성되어 있다.[12] 가장 중요한 강은 레르마강이며, 주요 지류로는 과나후아토강, 라하강, 투르비오강이 있다. 레르마강 유역이 주 면적의 8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파누코강 유역과 쿠이체오 호 유역이다.[12][19] 레르마강은 수위 조절을 위해 이냐시오 아옌데, 라 푸리시마, 솔리스, 라 가비아, 코네호 II, 산타 이피헤니아 등 여러 댐으로 관리된다.[19][12]
과나후아토주는 풍부한 은 생산으로 유명하며, 이는 스페인 제국의 초기 식민지화 동기 중 하나였다. 현재도 세계적인 은 생산지이며, 주석, 금, 구리, 납, 수은, 오팔 등 다른 광물도 생산된다.
2. 1. 기후
과나후아토주의 기후는 강수량과 평균 기온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12]반건조 기후는 증발량이 강수량보다 많은 것이 특징이며, 주로 노팔과 같은 사막 식물이 자라는 건조 초원 지대이다. 이 기후는 주 전체 면적의 약 40%를 차지하며, 주로 북부 지역에 분포한다.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나뉜다.[12]
- 온대 반건조 기후: 산펠리페, 산디에고 데 라 우니온, 산 루이스 데 라 파스, 돌레스 이달고 일부, 산호세 데 이투르비데 등에서 나타난다. 연 강수량은 400mm에서 500mm 사이이며, 평균 기온은 16°C에서 18°C이다.[12]
- 반건조 아열대 기후: 돌레스 이달고 북쪽, 레온 주변, 셀라야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다. 연 강수량은 평균 600mm에서 700mm이고, 연평균 기온은 18°C에서 20°C이다.[12]
온대 기후 지역은 주로 참나무와 소나무 숲, 소나무 숲 또는 초원이 나타나며, 습도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다.[12]
- 온대 반습윤 기후: 아파세오, 코로네오, 헤레쿠아로의 남동부 지역과 주 중심부에 주로 분포한다. 연 강수량은 600mm에서 700mm이고, 평균 기온은 16°C에서 18°C이다.[12]
- 온대 다습 기후: 펜하모, 코로네오, 헤레쿠아로, 과나후아토시 일부, 돌레스 이달고 등에서 나타난다. 연 강수량은 평균 700mm에서 800mm이고, 평균 기온은 16°C에서 18°C이다.[12]
- 습도가 가장 높은 온대 기후: 산타 로사와 과나후아토시에 해당하며, 연 강수량이 평균 800mm 이상이고 평균 기온은 16°C 미만이다.[12]
고온 다습 기후는 평균 기온이 18°C에서 22°C 사이이며, 열대 우림이나 일부 초원 지대에서 나타난다. 이 기후는 주 전체 면적의 약 40%를 차지하며, 건조기가 있는 유형과 강수량이 많은 유형으로 나뉜다. 건조기가 있는 유형은 아바솔로, 이라푸아토, 살라망카, 로미타 등에서 발견된다.[12]
2. 2. 생태
식민지 시대 초기부터 과나후아토의 환경은 스페인이 들여온 광산 기술과 집약적인 농업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환경 파괴는 정복 이후 현대까지 계속되고 있다. 정복 이전에는 이 지역이 숲으로 덮여 있었으나, 광산업은 광물을 처리하는 데 많은 연료가 필요했기 때문에 연료를 구하거나 건설 자재를 얻기 위해 숲이 벌채되었다. 농업 역시 토양의 영양분을 고갈시키고 토양 침식을 일으켰으며, 외래 식물, 동물, 질병이 유입되어 환경에 큰 영향을 미쳤다.[22]오늘날 과나후아토주에는 26개 시정촌에 걸쳐 총 63611ha에 달하는 21개의 보호구역이 지정되어 있다. 주요 보호구역으로는 시에라 데 로보스, 시에테 루미나리아스, 실바 댐, 돌레스 이달고 메가파르케, 쿠엔카 데 라 에스페란자, 라스 푸엔테스, 페냐 알타, 피날 데 사모라노, 메트로폴리탄 공원, 라 호야 분화구, 유리리아 호, 라스 무사스, 쿨리아칸 및 라 가비아 산맥, 시에라 데 로스 아구스티노스, 시에라 데 펜하모, 세로 데 쿠빌레테, 세로 데 아몰레스, 라 푸리시마 댐, 아란다스 산, 라 솔레다드 댐, 테마스카티오 강 상류 유역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시에라 고르다 생물권 보전 지역이 중요한 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다. 과나후아토주에 속하는 시에라 고르다 보호구역의 면적은 236882ha에 달하며, 이곳에는 182종의 조류, 42종의 포유류, 84종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Beaucamea compacta''와 ''Beaucarnea glassiana''(이전에는 ''Calibanus glassianus''로 알려짐)라는 두 종의 식물이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다. 이 공원에는 흑곰과 퓨마를 포함하여 멸종 위기에 처한 많은 동물들이 서식한다. 기후는 대체로 반건조하며 고도에 따라 기온 변화가 있지만, 대부분 지역은 열대 우림으로 덮여 있다. 11월부터 5월까지 이어지는 건기 동안에는 많은 식물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특징을 보인다.[15]
'''과나후아토의 동식물'''













3. 역사
과나후아토주는 1520년대 스페인에 의해 멕시코에서 비교적 초기에 식민지화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는 이 지역의 풍부한 은 매장량 때문이었으며, 광산 개발은 식민 시대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현재도 과나후아토주의 광산은 세계적으로 풍부한 은 생산량을 자랑한다.
3. 1. 전히스패닉 시대

전 히스패닉 시대에 바히오 지역은 비옥한 토양과 농업에 필요한 지표수가 풍부하여 인간 발전에 유리한 환경이었다.[19] 이 지역에 가장 먼저 정착한 집단은 현재 추피쿠아로로 알려진 이들로,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 바히오 지역 중심부를 지배했다.[49][23] 그들의 주요 도시는 현재 추피쿠아로 유적지로 알려져 있으며, 그 문화적 영향력은 현대 멕시코의 사카테카스, 케레타로, 콜리마, 나야리트, 이달고, 멕시코주, 미초아칸, 게레로 등 여러 주에서 확인된다. 추피쿠아로 도시들은 톨텍 문명의 도시 툴라와 연관이 있었으며, 툴라의 쇠퇴와 함께 과나후아토의 농업 도시들도 쇠락의 길을 걸었다.[49] 이러한 쇠퇴와 장기간의 가뭄으로 인해 10세기와 11세기 사이에 이 도시들은 버려졌고, 과마레족만이 민족적으로 남게 되었다.[24]
그 후 치치메카를 비롯한 여러 유목 집단이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치치메카로 통칭되지만, 실제로는 과치칠레스, 치치메카 조나스족, 과마레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집단들은 호전적이며 반유목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했고, 중요한 농업 활동을 하거나 도시를 건설하지는 않았다.[49] 지역의 일부에는 오토미족이 거주했으나, 대부분 남서쪽의 푸레페차족이나 다른 지역의 치치메카족에 의해 쫓겨나거나 지배를 받게 되었다.[24] 16세기에 이르러 메소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은 아즈텍 제국이나 푸레페차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지만, 과나후아토는 어느 제국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곳은 푸레페차 제국의 북쪽 경계에 위치했으며, 남부 과나후아토는 푸레페차로부터 상당한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 아즈텍인들도 광물을 찾아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 대부분은 스페인인들이 "그란 치치메카"라고 칭한 여러 치치메카 부족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유목민이었으며, 북쪽에는 농업 공동체가 일부 흩어져 존재했다.[23]
3. 2. 식민 시대


과나후아토 지역은 멕시코의 건조한 북부 지역 경계에 위치하여 남쪽 지역보다 강수량이 적고 원주민 노동력이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정착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수가 비교적 적었다.[23] 1522년 크리스토발 데 올리드(Cristóbal de Olid)가 이끈 첫 스페인 탐험대가 유리리하푼다로(Yuririhapúndaro)와 펜하모(Pénjamo) 지역에 도착했다. 이후 1520년대와 1530년대에 과나후아토 시 지역에서 은과 금이 발견되면서 스페인 사람들의 정착이 본격화되었다.[25]
스페인인들의 도착에 맞서 원주민 부족들은 바히오 지역의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나 산악 지대로 물러나 저항했다. 이들은 스페인 정착지와 광산 캠프를 연결하는 길을 따라 이동하는 정착민과 여행자들을 공격했다. 스페인인들은 이 지역 원주민들을 다른 정착된 원주민들과 달리 강제로 노동시킬 수 없었기에,[26] 아시엔다와 광산에서 일할 아프리카 노예 및 다른 지역 출신의 원주민들을 데려와야 했다.[26]
주 동부 지역의 식민지화는 1542년 아파세오(Apaseo)와 차마쿠아로(Chamácuaro) 지역에 스페인 토지 불하가 이루어지면서 시작되었다. 1555년에는 남동쪽의 멕시코시티와 북부 광산 지역을 잇는 도로를 보호하기 위해 산 미겔 엘 그란데(산 미겔 데 아옌데)가 건설되었다. 1576년에는 원주민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레온이 세워졌다. 그러나 식민 시대 초기 수 세기 동안에는 광산 덕분에 과나후아토 시가 가장 중요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25]
1590년에는 산 루이스 데 라 파스 마을이 건설되었는데, 이는 스페인과 치치메카 간의 평화(paz) 조약을 기념하여 명명된 것이다.[25] 스페인이 가장 생산적인 토지와 자원을 차지하면서 원주민들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스페인 측은 이를 이용하여 담요, 옷, 음식 등 기본적인 물품을 제공하는 대가로 추장들과 평화 협상을 벌여 일시적인 휴전을 이끌어냈다. 장기적인 복종은 복음 전파 노력을 통해 이루어졌다.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치치메카를 비롯한 원주민들의 세계관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했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정착지로 이동하고 명목상으로나마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극도로 소외되고 빈곤한 상태에 놓여 언어와 문화를 잃었으며, 결국 대부분 외부인과 결혼하여 메스티소를 형성하게 되었다.[27]
스페인 식민 시대 동안 이 지역의 부는 주로 광산업에서 나왔으며, 농업은 광산 지역 사회를 지원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광산업의 전성기는 18세기에 과나후아토 시 주변 언덕의 광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같은 시기 주목할 만한 많은 민간 및 종교 건축물 건설로 이어졌다.[25] 특히 비옥한 바히오 지역은 뉴 스페인의 주요 농업 지대가 되었다. 광산업과 농업의 발달은 더 많은 스페인인과 크리오요들이 이익을 찾아 몰려들게 했고, 메스티소와 일부 아프리카 노예들이 광산과 농장에서 일하면서 지역 인구가 급증하여 점차 도시 중심지로 집중되었다.[27] 이 지역은 1786년 뉴 스페인 당국이 행정 구역을 12개의 인텐덴시아로 나누면서 과나후아토 인텐덴시아(주)가 되었다.[25]
3. 3. 독립과 19세기

18세기 말, 과나후아토는 막대한 부를 생산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하시엔다와 광산에서 일하며 억압과 빈곤에 시달렸다. 소수의 유럽 출신 스페인인들만이 부유한 생활을 누렸으며, 신대륙 출생 스페인인인 크리오요들조차 스페인 본토 출신들에게 소외감을 느꼈다.[27] 이러한 불만은 식민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1766년에는 높은 세금에 항의하며 과나후아토 시의 카하 레알(왕실 재무부)을 공격하는 사건이 있었고, 1767년에는 예수회 추방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비록 이 시위는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지만, 산 미구엘 엘 그란데(현 산미겔데아옌데)와 레온 등지에서 식민 통치에 반대하는 비밀 조직 결성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28]
수많은 독립 계획이 세워졌으나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다가, 1809년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이냐시오 아옌데, 후안 알다마, 미구엘 도밍게스 등이 본격적인 무장 봉기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1810년,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자 이달고는 원래 예정했던 12월 대신 9월에 봉기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28] 9월 15일 밤, 이달고는 돌로레스(현 돌로레스 이달고) 마을에서 돌로레스의 함성을 외치며 멕시코 독립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냐시오 아옌데와 함께 약 8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출발한 이달고의 군대는[29]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초기 승리를 거두며[33] 경제적으로 중요하고 인구가 밀집된 과나후아토 지역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다.[30] 이달고는 아토토닐코 성소에 들러 과달루페 성모의 이미지를 창에 달아 군대의 깃발로 삼았고,[31] 깃발에는 "종교 만세! 우리의 가장 거룩한 과달루페 성모 만세! 페르디난드 7세 만세! 아메리카 만세! 나쁜 정부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새겼다.[32] 독립 운동의 예상치 못한 규모와 기세는 식민 당국을 크게 놀라게 했다.[30] 산 미구엘과 셀라야는 별다른 저항 없이 함락되었고,[33] 1810년 9월 21일 셀라야에 도착한 이달고는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그의 군대는 약 5만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33] 그러나 제대로 된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한 병사들은 점령한 도시에서 약탈과 파괴를 일삼기도 했다.[33]
1810년 9월 28일, 이달고 군대는 과나후아토 시에 당도했다.[25] 도시의 스페인인과 크리오요 주민들은 지방관 리아뇨스의 지휘 아래 그라나다스의 알혼디가 곡물 창고로 피신하여 농성했다.[31] 이달고 군대는 이틀간의 격렬한 전투 끝에 알혼디가를 함락시켰고, 이 과정에서 약 400명에서 600명에 달하는 남녀노소가 희생되었다.[34] 독립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루이스 데 코르타사르와 아나스타시오 부스타만테 장군은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와 손을 잡고 1821년 7월 8일 과나후아토 시를 점령했다. 이들은 과나후아토 주 전체가 스페인 통치로부터 독립했음을 선포했다. 이후 1824년, 멕시코 제헌 의회는 과나후아토를 멕시코 합중국의 공식적인 주로 인정했다.[25]

독립 이후 과나후아토는 극심한 정치적 불안정을 겪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내내 지속되었다. 독립 운동의 발상지인 돌로레스와 산 미구엘 마을은 각각 운동의 지도자인 이달고와 아옌데를 기려 돌로레스 이달고와 산미겔데아옌데로 이름을 바꾸었다. 1826년에는 과나후아토 주의 첫 번째 헌법이 제정되었다.[28] 멕시코 전역과 마찬가지로 과나후아토 역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세력 간의 오랜 투쟁과 외세의 침략이라는 19세기의 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나후아토의 행정적 지위는 자유주의자들이 집권하면 주(Estado)로,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하면 부(Departamento)로 변경되기를 반복했다. 자유주의 이념의 영향으로 콜레지오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콜레지오 데 라 푸리시마 콘셉시온과 같은 기존의 종교 교육 기관들은 세속화되어 주 정부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었다.[28]
1847년 미국-멕시코 전쟁이 발발하자 가브리엘 발렌시아 장군은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기 위해 6,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했다. 1848년에는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마리아노 파레데스 장군, 마누엘 도블라도 장군, 셀레도니오 도메코 데 하라우타 신부가 반란을 일으켜 주도인 과나후아토 시를 점령하기도 했으나, 결국 진압되었고 도메코 신부는 총살당했다.[25] 1855년, 당시 과나후아토 주지사였던 보수주의자 마누엘 도블라도는 안토니오 로페스 데 산타 안나를 몰아내고 대통령이 된 후안 알바레스를 축출하려 시도하기도 했다.[28] 1858년에는 개혁 전쟁의 여파로 베니토 후아레스 대통령의 자유주의 정부가 수도 멕시코시티를 떠나 과나후아토 시로 잠시 이전했으며, 이후 콜리마주의 만사니요를 거쳐 베라크루스주의 베라크루스로 옮겨갔다. 이 시기 과나후아토는 약 3년 동안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세력 사이에서 주도권이 여러 차례 바뀌는 혼란을 겪었다.[25] 1863년, 프랑스의 개입으로 막시밀리안 1세가 멕시코 황제로 즉위하면서 과나후아토는 프랑스 점령 하에 놓였다. 막시밀리안 황제가 임명한 주지사 플로렌시오 안티욘은 황제의 통치가 끝난 후에도 1877년까지 주지사직을 유지했다.[25]
3. 4. 멕시코 혁명과 현재
19세기 말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부 아래 과나후아토주는 안정과 경제 개선을 이루었지만, 이는 억압적인 통치하에서 진행되었다. 디아스가 임명한 주지사 프란시스코 메나(Francisco Mena)는 국가 현대화 명목으로 건설되던 철도 노선 특허권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했다. 독립 전쟁 중 노예제가 공식 폐지되었음에도, 농장과 광산 노동자 대다수는 여전히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렸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19세기 말 농업 생산량은 최고조에 달해, 과나후아토는 "공화국의 곡창"으로 불렸다. 레온, 살바티에라, 셀라야, 산 프란시스코 델 린콘 같은 도시에서는 신발, 섬유, 모자 생산을 중심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졌다.[35]멕시코 혁명 시기인 1915년, 셀라야에서는 알바로 오브레곤과 프란시스코 비야의 군대가 격돌하는 중요한 전투가 벌어졌다.[25] 이 과정에서 주 출신 많은 이들이 멕시코 다른 지역에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과부와 고아를 남겼다. 혁명 이후에는 대규모 토지 소유가 해체되고 토지가 에히도(공동 소유지)로 재분배되어 많은 농촌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36]
멕시코 혁명이 끝난 뒤에도 크리스테로 전쟁으로 인해 전투는 계속되었다. 특히 펜하모와 레온에서 충돌이 두드러졌으나 다른 지역에서도 산발적인 전투가 발생했다. 1946년에는 레온에서 시나르키스타 단체가 정부에 대항하는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25]
그러나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주 대부분 지역은 점차 안정을 되찾고 경제 회복의 길을 걸었다. 특히 농업 부문에서 밀, 옥수수, 수수, 알팔파 생산이 활발했으며, 이라푸아토의 딸기와 여러 지역의 염소 사육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셀라야에서 염소 젖으로 만든 카헤타 사탕은 멕시코 전역에서 유명해졌다.[37] 문화적으로는 1972년 제1회 세르반티노 국제 축제가 개최되었고,[25] 1980년대에는 주도인 과나후아토와 산 미겔 데 아옌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는 성과를 거두었다.[37]
오늘날 바히오 지역은 멕시코의 주요 곡물 생산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19] 한편, 과나후아토 의회는 주 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종교 미술품 절도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과나후아토는 이러한 절도 사건 발생률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은 지역이다. 2010년 살라망카에서 발생한 흑색 그리스도상의 금관 도난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이다.[38]
멕시코 독립 200주년 기념은 독립 전쟁 초기 사건들이 이곳에서 시작되었기에 과나후아토주에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주는 미겔 이달고의 초기 행적과 관련된 도시들을 잇는 '200주년 기념 경로'를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에 힘썼다. 또한 산 미겔 데 아옌데에서 돌로레스 이달고까지 이어지는 기념 마라톤을 개최했으며, 오마르 루나(Omar Luna)가 2시간 23분 14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39] 주는 7월 17일부터 11월 20일까지 주도 외곽에서 '엑스포 비센테나리오 2010'을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는 거대한 멕시코 국기와 함께, 미겔 이달고가 반란군 깃발로 사용했던 과달루페의 성모 이미지가 새겨진 깃발 복제품 등 역사적인 깃발들이 전시되었다. 엑스포는 멕시코의 문화, 역사, 전통, 관습을 소개하는 여러 파빌리온으로 구성되었으며, 같은 시기 200주년을 맞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파빌리온도 마련되었다.[40][41]
최근인 2023년 12월에는 남부 도시 살바티에라에서 열린 사적인 크리스마스 파티 도중 대량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12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4. 인구
2020년 멕시코 인구 조사에 따르면 과나후아토주의 인구는 6,166,934명이다.[122] 이는 멕시코에서 여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주에 해당한다.
과나후아토주의 역사적 인구 변화는 다음과 같다.
다음은 2020년 인구 조사 기준 과나후아토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들이다.[42]
순위 | 도시 | 자치구 | 인구 (2020) |
---|---|---|---|
1 | 레온 | 레온 | 1,579,803 |
2 | 이라푸아토 | 이라푸아토 | 452,090 |
3 | 셀라야 | 셀라야 | 378,143 |
4 | 살라망카 | 살라망카 | 160,682 |
5 | 실라오 | 실라오 | 83,352 |
6 | 산 프란시스코 델 린콘 | 산 프란시스코 델 린콘 | 79,772 |
7 | 발레 데 산티아고 | 발레 데 산티아고 | 72,663 |
8 | 산 미겔 데 아옌데 | 산 미겔 데 아옌데 | 72,452 |
9 | 과나후아토 | 과나후아토 | 70,068 |
10 | 코르타사르 | 코르타사르 | 69,371 |
2005년 기준으로 인구는 4,893,812명[46]이었으며, 약 67%가 도시 지역에, 나머지는 농촌 지역에 거주했고, 여성이 남성보다 약간 더 많았다. 당시 주요 인구 밀집 지역은 레온(1,134,842명), 이라푸아토(440,134명), 셀라야(382,958명), 살라망카(226,654명) 등이었다.[67]
4. 1. 종교
과나후아토주 인구의 94% 이상이 가톨릭교 신자이다.[67] 이러한 종교적 배경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가톨릭교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4. 2. 원주민
과나후아토주는 원주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멕시코 주 중에서 네 번째로 적다. 2005년 기준으로 5세 이상 인구의 2.6%에 해당하는 약 10,347명이 원주민으로 파악된다. 주로 사용되는 언어는 치치메카 조나스어, 오토미어, 나우아틀어이다.[67]가장 중요한 두 원주민 집단은 치치메카 조나스족과 오토미족이며, 이들은 주로 발레스 데 수르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두 집단 모두 문화적으로 푸레페차족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이들은 비가 귀한 건조한 지역에 거주하며, 피타야, 가람불로(Myrtillocactus geometrizans), 선인장 열매, 노팔 선인장, 아가베 등을 식량으로 섭취한다. 과거 사냥은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나, 사냥감 부족으로 인해 이러한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현재는 자급자족 농업이 경제의 기반을 이루며 식단의 상당 부분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들 원주민 집단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실정이다.[47]
현재 과나후아토주 지역에는 기원후 1천년기에 도시를 건설했던 여러 나우아족 집단이 있었으나, 스페인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버려졌다.[48] 이 도시들이 쇠퇴한 후 치치메카족이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된 것으로 여겨지며, 치치메카 조나스족은 자신들의 신성한 독수리가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믿는다.[49] 스페인 정복 당시 남아 있던 유일한 치치메카족은 반유목 생활을 하며 호전적인 성향을 가진 치치메카 조나스족이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이들은 수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 식민 통치로 인한 환경 악화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고갈되면서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48]
치치메카 조나스족은 자신들과 다른 원주민들을 uza|우사und(단수) 또는 ézar|에사르und(복수)라고 부르는데, 이는 대략 '인디언'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오토-파메어족에 속하며 이웃한 오토미족의 언어와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치치메카 조나스족은 산 루이스 데 라 파스 시의 란초 우자 또는 미시온 치치메카 지역에 거주한다. 이 지역은 동쪽의 미시온 데 아바호와 서쪽의 미시온 데 아리바로 나뉜다. 이 지역은 우아스테카족과 파메족의 땅과 접해 있으며, 이들 세 집단 간에는 갈등이 존재했다.[48] 치치메카 조나스족은 가톨릭과 원주민 고유의 신앙이 혼합된 신앙 체계를 가지고 있다. 외적으로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많은 의식은 농작물 심기와 수확, 달의 주기와 같은 자연의 순환을 따른다. 가장 중요한 "정령 안내자"로는 독수리와 물을 숭배하며, 과달루페 성모는 만물의 어머니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비를 가져다준다고 믿어지는 이시도로 농부 성인도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47]
이 주의 오토미족은 티에라 블랑카 시의 시에네기야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스페인의 침략 이전 시대(전히스패닉 시대)에 이들은 반유목적인 사막 거주민이었다. 정복 시대에 이들과 다른 오토미족들은 스페인과 동맹을 맺었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아즈텍 등 다른 민족들이 오토미족을 낙후되고 야만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토미족 또한 오토-파메어족 언어를 사용하며 멕시코 중부와 남부 지역에 흩어져 사는 다른 오토미족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언어를 배우지 않아, 이중 언어 교육을 도입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다.[50]
4. 3. 이민

2000년대 초반, 미국과 캐나다 출신의 외국인들이 온화한 기후와 문화적 기회, 그리고 당시의 낮은 범죄율 때문에 산 미구엘 데 아옌데에 정착하기 시작했다.[51][52] 이들은 산 미구엘 전체 인구의 약 10%에 불과했지만, 주택 구매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52][53] 외국인 거주자 수는 8,000명에서 12,000명 사이로 추산되는데, 이 중 약 7,000명이 미국 출신이다.[52][54][55][56][57] 이로 인해 산 미구엘은 멕시코에서 가장 큰 미국인 공동체 중 하나를 형성하게 되었고,[54][55] 공증이나 여권 발급 같은 영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미국 영사관이 설립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58]
그러나 이후 과나후아토주는 폭력 범죄가 급증하면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살인율을 기록하게 되었다.[59] 멕시코 대통령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주 검찰총장의 소극적인 대응을 비판하기도 했다.[60]
한편, 바히오 지역에서는 외국인 투자, 특히 자동차 산업의 발전과 함께 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본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인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데, 2014년 초 기준으로 바히오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3,000명이 넘어, 이는 멕시코시티의 일본인 공동체보다 많은 수치이다.[61] 과나후아토 주 정부는 2016년까지 약 5,000 가구의 일본인이 이 지역에 정착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62] 이러한 일본인 공동체의 성장은 레온에 일본 영사관이 개설되는 결과로 이어졌다.[63] 또한, 외국인 투자의 영향으로 한국인 공동체 역시 성장하고 있다.
5. 경제
과나후아토주는 멕시코 중앙부에 위치하여 주요 국도와 철도가 관통하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주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요 도시와 경제 중심지는 라 시에라 센트랄(La Sierra Centrales)과 엘 바히오(El Bajíoes)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지역들은 산업 중심지이기도 하다.[12][13] 태평양과 멕시코만 모두에 대한 접근성이 좋고, 몬테레이,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와 같은 주요 대도시권과도 가깝다.[12]
2008년 기준으로 주 전체 GDP는 382.40000000000003억달러 (4,275억 3천만 페소)로, 멕시코 전체 GDP의 3.88%를 차지하며 멕시코시티, 멕시코주, 누에보레온주, 할리스코주, 베라크루스주에 이어 6번째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경제 성장률은 1.06%였다. 2008년 기준 1인당 소득은 7609USD로 멕시코시티, 누에보레온주, 할리스코주 다음으로 4위를 기록했으며, 증가율은 2.04%였다.[64]
주요 경제 부문별 GDP 비중을 보면, 제조업이 2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그 뒤를 상업(16.3%), 부동산(11.2%), 금융 및 기타 전문 서비스(17.6%), 운송 및 보관(11.8%) 등이 잇고 있다. 임업, 어업, 수렵업을 포함한 농업은 4.6%를 차지한다.[64][65] 고용 구조는 이와 다소 차이가 있어, 농업 부문이 13.2%, 광업 및 제조업이 36.4%, 상업, 서비스 및 관광업이 47.3%의 고용을 담당하고 있다.[66]
과나후아토주는 두 가지 중요한 이주 패턴을 보인다. 46개 시 중 27개 시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높은 이주율을 보이며, 나머지 19개 시는 중간 또는 낮은 수준의 이주율을 나타낸다. 미국으로의 연간 이주율은 인구 천 명당 7.07명 수준이다.[67]
역사적으로 과나후아토주는 풍부한 은 생산 덕분에 스페인 식민지 시대 초기부터 중요한 지역이었다. 현재도 과나후아토주의 광산은 세계적으로 많은 양의 은을 생산하고 있으며, 주석, 금, 구리, 납, 수은, 오팔 등도 함께 생산된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멕시코 전역의 문제인 마약 카르텔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치안이 악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22년에는 주 내에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두 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120]
5. 1. 산업, 수공예, 광업

현대 과나후아토 주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은 산업으로, 주 GDP의 약 30%를 차지한다. 주요 산업 분야는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의약품, 기타 현대 제품 생산이다. 레온에서는 가공식품(치즈, 통조림 등)과 신발 및 기타 가죽 제품과 같은 전통적인 품목 생산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다양한 공예품 생산 역시 산업의 일부로 포함된다.[66] 이 지역의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일부 제조품의 가격 하락으로 인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다소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64] 과나후아토 주에는 살라망카와 셀라야에 두 곳의 대규모 열병합 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살라망카의 정유 공장은 포사 리카와 타바스코에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원유를 공급받는다.[12]
전통 산업 중 하나인 신발 및 가죽 제품 제조는 특히 레온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 산업은 2009년부터 2010년 사이 관련 기업 수가 50% 증가하는 등 성장세를 보였다. INEGI에 따르면, 현재 총 7,981개의 관련 기업이 있으며, 직간접적으로 297,413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68] 2010년에는 폭스바겐이 실라오에 새로운 자동차 엔진 공장을 건설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5.5억달러가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2013년부터 연간 33만 개의 엔진을 생산하고 700명을 고용할 계획이다. 폭스바겐 측은 공장 건설 이유 중 하나로 같은 지역에 위치한 제너럴 모터스 공장과 다양한 교통 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푸에르토 인테리어 산업단지(Parque Industrial Puerto Interiores)의 존재를 언급했다.[69] 또한 2010년 레온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혁신 센터(Centro de Innovaciónes)가 문을 열었다. 이 센터는 기업과 정부가 소프트웨어 및 기술 기업 설립을 지원하여, 각각 10~20명의 직원을 가진 50개의 신규 사업 시작을 목표로 한다.[70]
과나후아토 주의 거의 모든 수공예품(98%)은 대부분 가족이 운영하는 소규모 및 중소기업에서 생산된다. 주요 품목으로는 유리, 단철, 도자기, 목제품 등이 있으며, 생산된 제품의 대부분(91%)은 미국으로 수출된다. 그러나 중앙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모조품으로 인해 경쟁 압력을 받고 있다. 수공예 산업은 주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으로 간주되지는 않으며, 주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다.[71] 시간이 지남에 따라 특정 공예품이 특정 자치구의 특산품으로 자리 잡는 경향이 나타났다.[72]
품목 | 주요 생산 지역 | 특징 |
---|---|---|
마욜리카 도자기 | 돌레스 이달고, 산 미겔 데 아옌데, 과나후아토 시 | 스페인 식민지 시대 도입, 400년 이상 기술 유지, 지역별 형태/장식 차이, 돌레스 이달고 점토 사용.[73] |
고온 도자기 | 타란다쿠아로 | Fabrica Javier Servines, Taller Checuanes 유명, 정교한 기하학적 디자인(수작업), 자치구 홍보.[74] |
빵 | 아캄바로 | talladoes 빵 (계란, 버터 기반, 무화과/코코넛/건포도/초콜릿 속), 프란체스코회 레시피 유래.[75] |
모자 | 산 프란시스코 델 린콘 | 18세기 전통, 야자수 잎(전통) 및 합성 섬유 사용, 성별 분업, 수출 품질.[76] |
털 제품 | 산 루이스 데 라 파스, 코로네오 | 겨울 의류(코트, 장갑 등), 전통 직기 사용, 양탄자, 사라페(zarapees), 가정 용품.[76] 코로네오: 사라페(말/사슴 문양), 스웨터, 망토, 레보소(rebozoes), 가방, 신발, 양탄자.[74] |
목공예 | 아파세오 엘 알토 | 도밍고 가르시아(Domingo Garciaes) 시작(60년 전), 약 150개 작업장, 약 500명 고용, 조각품 및 실용품(식기류, 가구), 다양한 목재 사용(patoles, 주니퍼, 호두, 시다, 마호가니, 카폭).[77][78] |
카헤타 (cajetaes) | 셀라야 | 염소젖, 설탕, 계피로 만든 캐러멜 스프레드, 멕시코 전역 유명, Cajetas La Tradicionales 유명.[77] |
금속 가공 | 과나후아토 시, 살라망카 | 은 제품(과나후아토, 바로크 양식), 단철(과나후아토), 산화된 청동(살라망카, 장식품).[79][80] |
테킬라 | 펜하모 | 할리스코 외 소수 생산지, 코랄레호(Corralejoes) 농장, 테킬라 코랄레호(Tequila Corralejoes) 브랜드, 투어 및 박물관(Museo del Vino y la Botellases, 약 3,000개 병 소장), 병 제조 공장.[81] |
유리 제조 | 산 미겔 데 아옌데 | 초기 식민지 시대 도입, 단색 제품(파랑, 녹색, 노랑, 빨강), 산 미겔 아옌데 특산(병, 꽃병, 유리 세트, 테킬라 잔).[76] |
밀랍 양초 | 살라망카 | 특히 성주간 수요 많음.[79] |
몰카헤테 (molcajetees) | 코몬포르트 | 화산암으로 제작.[82] |
놋쇠 인형 | 산 미겔 데 아옌데 | 놋쇠로 만든 인형 및 기타 품목.[82] |
아이스크림 | 돌레스 이달고 | 다양한 맛 (사포테, 망고, 꿀, 알로에, 테킬라, 바나나 등), 주로 교구 교회 옆에서 판매.[82] |
광업은 제조업, 건설업과 함께 주 GDP의 27% 이상을 차지한다.[66] 역사적으로 과나후아토는 풍부한 광산 자원, 특히 금과 은 매장량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귀금속 광맥은 대부분 고갈된 상태이다.[12]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과 은은 여전히 채굴되고 있으며, 은이 가장 중요한 생산 광물이다. 그 외 납, 구리, 아연, 황 등도 생산된다. 광업 부문 종사자 대부분은 비금속보다는 금속 채굴 관련 업무에 종사한다.[66] 이 외에도 수은, 주석, 구리, 납, 모래, 형석, 장석, 석회, 카올린, 오팔 등이 채굴되거나 탐사되고 있다.[12] 과나후아토 주의 광산들은 여전히 세계적으로 많은 양의 은을 생산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5. 2. 농업
과나후아토주의 현재 GDP에서 농업 부문(곡물, 가축, 어업, 임업 포함)이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불과하지만, 이 부문은 주의 정체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여전히 전국적으로 많은 품목을 생산하는 주요 생산지이다.[64][66] 주에는 110.00000000000001만ha의 농경지가 있으며, 이는 주 전체 면적의 36%가 넘는다.[12] 65.9만ha가 넘는 경작지에서는 옥수수, 수수, 콩, 밀, 보리, 브로콜리가 주요 작물로 재배되고 있다.[66] 오늘날 바히오 지역은 여전히 멕시코에서 주요 곡물 생산 지역 중 하나이다.[19] 주 내 일부 지역에는 복숭아, 딸기, 선인장 열매, 아보카도, 포도, 사과, 마르멜로, 호두, 살구, 구아바를 생산하는 대규모 과수원이 있다.[12]가축 사육은 중요한 경제 활동이며, 소, 돼지, 염소, 양, 가금류와 같은 동물을 사육하는 활동이 주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12] 이 활동에는 약 145만ha의 면적이 할당되어 있다.[66] 로스 알토스와 바히오 지역은 주의 주요 가축 생산 지역이며, 특히 젖소 사육이 활발하다.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유제품 생산 지역 중 하나이다.[83] 생산량으로 볼 때, 대부분의 고기는 가금류에서 생산되며, 그다음으로 돼지고기, 소고기, 염소고기, 양고기 순이다.[66] 과나후아토주는 전국 염소고기 생산량의 25.4%를 차지한다.[84]
어업과 임업은 경제에서 매우 작은 비율만 차지한다. 어업은 지역의 작은 강과 호수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주요 경제 활동이 아니다. 두 개의 주요 호수 중 하나는 인접한 미초아칸주와 공유하고 있다. 어획 또는 양식되는 물고기 중 대부분은 잉어(carp)이며, 그다음으로 모하라(mojarra)가 있다.[66] 주에는 15만ha의 산림이 있으며, 그중 약 절반은 이론적으로 이용 가능하다. 그러나 이 지역의 산림은 역사적으로 벌채되어 홀름 오크, 소나무, 오야멜(oyamel)과 같은 종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산림 피복의 부족은 토양 침식 및 기타 환경 문제를 야기했다.[12] 대부분의 임산물은 소나무와 홀름 오크에서 생산되며, 대부분 과나후아토 시 주변 지역에서 수확된다.[66]
5. 3. 상업, 서비스, 관광

관광객의 약 95%는 멕시코 국내에서 방문하며, 나머지는 다른 국가에서 온다. 주 내에는 4성급 또는 5성급으로 분류된 호텔이 약 70개 정도 있다.[66] 관광의 중심이 되는 도시는 주도인 과나후아토, 산미겔데아옌데, 돌로레스 이달고 세 곳이다. 과나후아토는 식민지 시대 건축물과 멕시코 역사, 특히 멕시코 독립 전쟁에서의 중요한 역할로 유명하다. 산미겔데아옌데 역시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이 두 도시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돌로레스 이달고는 세계유산은 아니지만,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가 독립 전쟁의 시작을 알린 "엘 그리토(El Grito)"를 외친 장소로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85]
과나후아토 주는 여러 테마의 관광 루트를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루트는 다음과 같다.
- 독립 루트 (Ruta de Independencia): 미겔 이달고가 이끈 반란군이 지나간 10개의 지방 자치 단체를 연결하는 경로이다. 여기에는 산미겔데아옌데, 돌로레스 이달고, 과나후아토, 레온, 이라푸아토, 펜하모, 살라망카, 셀라야, 살바티에라, 아캄바로가 포함된다. 멕시코 독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주 정부는 각 지역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장소들을 복원하고 표시하는 사업을 진행했다.[86]
- 모험 루트 (Ruta de Aventura): 유령 마을과 버려진 광산을 등산, 산악 자전거, ATV와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나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자연 지역과 연결한다. 주 북동쪽에 위치한 미네랄 데 포소스(Mineral de Pozos)는 대표적인 유령 마을 중 하나로, 렐람파고(Relámpago, 번개), 에스트렐라스(Estrellas, 별), 플로레스(Flores, 꽃)와 같은 이름의 조약돌 거리가 남아 있다. 한때 시우다드 포르피리오 디아스(Ciudad Porfirio Díaz)로 불리며 번성했으나, 광산 고갈 후 쇠락했다. 1982년 역사 기념물 지대로 선포되었으며, 현재는 관광객 덕분에 포소스 칸티나(Pozos cantina) 등 일부 상점이 운영되고 있다. 마을 외곽에는 도시를 지탱했던 산타 브리히다(Santa Brigida) 광산 유적이 있으며, 예수회가 광석 처리를 위해 지은 피라미드 형태 지붕의 대형 오븐 3개가 상징적으로 남아 있다.[87]
- 고고학 루트 (Ruta Arqueológica): 현재 방문객에게 개방된 플라수엘라스(Plazuelas)와 페랄타(Peralta) 두 곳의 고대 유적지와, 향후 개방될 예정인 산미겔데아옌데의 라 비르헨 데 라 카냐다(La Virgen de la Cañada), 오캄포(Ocampo)의 엘 코포로(El Cóporo) 유적지를 연결한다.[88]
- 수도원 루트 (Ruta de los Conventos): 주 남부에 집중된 식민지 시대 초기 종교 건축물들을 둘러보는 경로이다.
- 유리리아(Yuriria) 산 파블로 아구스티노 교회와 수도원: 16세기에 미초아칸에서 온 아우구스티누스회가 설립한 요새형 건축물이다. 디에고 데 차베스 이 알바라도(Diego de Chávez y Alvarado)와 페드로 델 토로(Pedro del Toro) 수사가 설계했으며, 선교사 양성 중심지이자 치치메카의 공격을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 교회는 플라테레스크 양식 파사드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도원 건물은 박물관으로 사용된다.
- 살바티에라(Salvatierra) 라스 카푸시나스 교회와 수도원: 식민지 시대에 수녀들을 위해 지어진 세 곳 중 하나로, 요새 같은 외관을 가졌다. 산 카를로스 아카데미의 호아킨 데 에레디아(Joaquin de Heredia)가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르피리오 디아스 시절에는 시립 병원으로, 이후에는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José María Morelos) 학교로 사용되어 현재에 이른다.
- 아캄바로(Acámbaro) 산 프란시스코 교회와 수도원: 1734년에서 1743년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연분홍색 돌로 만든 바로크 양식 파사드가 특징이다. 내부에는 바히오(Bajio) 지역에서 주목할 만한 제단 중 하나가 있다. 회색과 분홍색 돌로 만들어진 신고전주의 양식의 제단은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사카테카스의 성모 마리아 이미지를 복제한 '죄인들의 피난처인 성모 마리아'(Virgen María Refugio de Pecadores) 상이 모셔져 있다.[89]
- 수공예 루트 (Ruta Artesanal): 특정 수공예품이나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여러 지역을 연결한다. 빵으로 유명한 아캄바로, 모직 제품으로 유명한 코로네오, 도자기로 유명한 타란쿠아로 등이 포함된다.[75]
이 외에도 과나후아토 주에는 다수의 워터파크와 온천을 활용한 휴양 시설이 있다. 레온 근처에는 엘 트레볼(El Trébol), 빌라 가스코(Villa Gasco), 코만힐라(Comanjilla)가 있으며, 이라푸아토와 아바솔로 근처에는 칼데라 아바솔로(Caldera Abasolo), 셀라야 근처에는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와 아구아 칼리엔테(Agua Caliente) 등이 있다.[90]
6. 문화
과나후아토주는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하며, 이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매년 열리는 세르반티노 국제 축제(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주 전역에서 다채로운 예술 및 문화 행사가 펼쳐진다. 또한, 지역 특색을 살린 요리는 카헤타와 같은 특산물과 함께 과나후아토의 미식 문화를 대표한다. 건축 분야에서는 특히 과나후아토 시를 중심으로 화려한 멕시코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는 과거 광업 번영기의 유산을 보여준다.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도 디에고 리베라와 같은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하는 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과나후아토주를 멕시코 내에서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지역으로 만든다.
6. 1. 축제

문화적으로 과나후아토주는 과나후아토 시와 주 내 다른 관련 장소에서 매년 열리는 세르반티노 국제 축제(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 축제는 멕시코와 세계 다른 지역에서 초청된 예술가들과 함께 다수의 예술 및 문화 행사를 후원한다.[91][92] 축제 기간에는 오페라, 연극 공연, 영화 상영, 미술 전시회, 학술 회의 및 강연, 콘서트, 무용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러한 공연들은 10월 한 달 대부분의 기간 동안 70개가 넘는 장소에서 진행된다.[92] 공식적인 장소 외에도 무용수, 광대 등 여러 예술가들이 도시의 거리, 보도, 작은 광장에서 소규모이거나 즉흥적인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축제는 도시의 명소를 찾는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며, 행사 기간 동안 호텔 점유율은 98%에 달한다. 2010년에는 스위스 무용단 다 모투스!(Da Motus!) 등이 초청 예술가로 참여했다.[93]
이 축제의 이름은 ''돈키호테''의 저자인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를 기념하여 붙여졌다.[91] 축제는 1972년에 시작되었는데,[94] 과나후아토 대학교(University of Guanajuato) 학생들이 세르반테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단막극을 공연한 것이 그 시초이다.[92] 2010년에는 케레타로 주와 콜롬비아가 특별 초청 손님으로 참여했으며,[92] 아르헨티나의 탕고키네세스(Tangokineses)와 콜롬비아의 쿰비아 시에나구에라(Cumbia Cienaguera)와 같은 공연자들이 무대에 섰다. 그 해 축제는 총 26일 동안 424개의 행사를 선보였다.[95]
세르반티노 국제 축제와 병행하여 열리는 행사로는 센터 리브레 데 엑스페리멘타시온 테아트랄 이 아르티스티카(Centro Libre de Experimentacion Teatral y Artistica, CLETA)라는 단체가 후원하는 세르반티노 거리 국제 축제(Festival Internacional Cervantino Callejero)가 있다. 이 행사는 1975년에 시작되었으며, 2010년에는 사회적 주제를 다룬 300개의 공연을 선보였다. 이 축제는 부분적으로 비틀즈(Beatles)의 ''애비 로드(Abbey Road)'' 앨범 표지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96]
또한, 1997년에 시작된 엑스프레시온 단편영화 국제 영화제(Festival Internacional de Cine Expresión en Corto)는 오늘날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 행사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영화제는 멕시코시티에 집중된 문화 행사를 분산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과나후아토에서 설립되었다. 축제의 주요 행사는 과나후아토 시와 산 미구엘 데 아옌데에서 열리며, 광고를 포함한 다양한 부문에서 상을 수여한다. 때로는 도시 아래의 터널이나 자정의 시립 묘지와 같이 특이한 장소에서 영화 상영이 이루어지기도 한다.[97]
6. 2. 요리
과나후아토에서 전통적으로 먹는 많은 요리는 카르니타스, 타말, 비리아, 포솔레 등 다른 지역에서 알려진 요리의 지역적 변형이다.[98] 엔칠라다의 한 종류인 ''엔칠라다 미네라''(광부의 엔칠라다)는 라드에 튀긴 토르티야에 닭고기를 채우고 과히요 고추로 만든 소스, 랜체로 치즈, 다진 감자와 당근으로 덮은 음식이다.[99] 최근에는 전통 재료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많은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를 "과나후아토 퓨전"이라고 부른다. 이는 산미구엘 데 아옌데와 과나후아토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가 있으며, 고추를 곁들인 참치 요리나 메스키트 꿀을 곁들인 오리 요리 등이 포함될 수 있다.[98]
이 주는 여러 식품의 생산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카헤타, 빵, 사탕, 아이스크림 등이 유명하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염소젖, 설탕, 향료로 만든 부드럽고 퍼짐성이 좋은 단맛 제품인 ''카헤타''이다. 셀라야가 카헤타로 가장 유명하다. 카헤타는 바닐라, 코코넛, 딸기 등의 향을 첨가할 수 있으며, 용기에서 숟가락으로 직접 먹거나 빵에 발라 먹거나 사탕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 주의 또 다른 대표적인 과자는 차라무스카스로, 녹여서 모양을 만드는 필론실로 (정제하지 않은 원당)로 만들어진다. 과나후아토 시에서는 미라 모양의 차라무스카스를 찾아볼 수 있다. 알페니케는 유리 설탕 기반의 사탕을 사용하여 여러 모양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죽은 자의 날에 가장 인기가 있다. 칠라카요테는 같은 이름의 멜론의 일종으로 만든 사탕으로, 과일 조각을 설탕물에 담가서 만든다. 수제 아이스크림은 돌레스 이달고의 특산품으로, 모두 천연 재료를 사용하며 종종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레시피를 사용한다. 아이스크림과 얼음은 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만들어지지만, 돌레스 이달고의 아이스크림은 맥주, 풀케, 칠레 레예노, 심지어 새우와 몰레와 같은 특이한 맛으로 유명하다.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은 원주민들에게 밀을 이용하여 빵을 굽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미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점토를 반죽하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밀빵을 반죽하고 굽는 기술이 빠르게 자리 잡았고, 원래 레시피를 지역 취향에 맞게 조정했다. 가장 잘 알려진 빵은 아캄바로의 빵, 특히 "판 그란데"라고 불리는 종류이다. 다른 잘 알려진 종류로는 판 랜체로, 타야도, 판 우에보, 판 레체가 있다. 과나후아토 최초의 원주민 제빵사는 아브라함 데 실바 쿠인으로, 1526년 독특한 형태와 풍미의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99]
6. 3. 건축
과나후아토 주의 주요 건축물 대부분은 바로크 양식, 특히 멕시코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이는 주도인 과나후아토 시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경향은 18세기, 바로크 양식이 유행하던 시기에 주의 광산들이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지어진 저택이나 일반 건물에서도 바로크 양식을 찾아볼 수 있지만, 가장 화려한 예는 교회 건축물이다. 교회들은 정교하게 장식된 정면과 제단화를 특징으로 하며, 종종 "에스티피테(Estípite)" 기둥(역피라미드 형태로 잘린 기둥)을 사용했다. 이 시기 많은 바로크 제단화는 지역 광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금박을 입혀 화려함을 더했다.[100]
과나후아토 시 내에서는 산 카예타노 교회(라 발렌시아나 교회라고도 불림), 과나후아토 대성당, 예수회 성당, 산 로케 교회가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물이다. 주도 외곽에도 주목할 만한 건축물이 많다. 돌로레스 이달고에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로스 돌로레스 본당, 라 테르세라 오르덴 성당, 카사 데 비시타스가 있으며, 셀라야에는 산 프란시스코 교회와 수도원, 산 아구스틴 교회가 있다. 레온에는 대성당과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로스 안헬레스 교회가 대표적이다. 이라푸아토의 산 호세 교회나 유리리아의 산 아구스틴 수도원 및 교회처럼 바로크 양식에 토착 문화 요소가 결합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초, 바로크 양식은 점차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멕시코 독립 전쟁으로 인해 대부분의 주요 건축 공사가 중단되었지만, 주의 많은 교회에서는 기존의 바로크 양식 제단화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교체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몇몇 중요한 신고전주의 건축물도 건설되었는데, 상당수는 프란시스코 에두아르도 트레스게라스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스페인의 샤를 4세를 기리는 오벨리스크 기념비, 델 카르멘 교회, 산 아구스틴 탑, 돌로레스 예배당 등이 있다. 다른 건축가들이 만든 신고전주의 작품으로는 레온의 입구 아치, 과나후아토의 주극장, 실라오의 산티아고 아포스톨 본당 등이 있다.
19세기부터는 현대적인 건축 경향이 나타났지만, 주목할 만한 예외가 하나 있다. 산 미겔 데 아옌데의 산 미겔 본당은 독학 건축가 제페리노 구티에레스에 의해 정면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그는 유럽의 고딕 양식 대성당 사진 엽서만을 참고하여, 과나후아토 주에서 유일하게 인상적인 고딕 양식의 정면을 완성했다.[101]
과나후아토 주의 독특한 건축물과 다채로운 색감은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 제작진에게 영감을 주었다. 멕시코 전역의 아름다운 건물들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이 멕시코의 문화와 유산을 영화 속에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102]
6. 4. 예술과 문학
과나후아토는 세 명의 중요한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 호세 차베스 모라도, 올가 코스타의 고향이자 탄생지이다. 리베라는 과나후아토 시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성장 후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여 회화를 공부했고, 멕시코에서 가장 유명한 벽화가 중 한 명이 되었다. 호세 차베스 모라도는 과나후아토 시에서 살며 활동한 다작의 화가였다. 그는 처음에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와 함께 일했는데, 오로스코는 예술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차베스 모라도의 가장 왕성한 활동기는 1955년부터 1967년까지로, 이 기간 동안 멕시코시티의 시우다드 우니베르시타리아, 멕시코시티의 멕시코 교통통신부 건물, 그리고 그의 고향인 그라나다스의 알혼디가에 작품을 남겼다. 올가 코스타의 원래 성은 코스타코프스키(Kostakowsky)였으나, 히스패닉화되어 코스타로 바뀌었다. 그녀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했다. 그녀는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루피노 타마요, 카를로스 메리다와 친구이자 동시대인이었으며, 호세 차베스 모라도의 아내이기도 했다. 그녀는 갈레리아 에스피랄(Galería Espiral) 설립, 소시에다드 데 아르테 모데르노(Sociedad de Arte Moderno)와 살롱 데 플라스티카 멕시카나(Salon de Plastica Mexicana)의 공동 설립자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녀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과일 파는 여인"(Vendedora de Frutases)이다.[103]다른 예술가로는 주로 주의 풍경을 그린 마누엘 레알(Manuel Leal), 화가보다는 사진가로 더 알려진 로무알도 가르시아(Romualdo Garcia), 에르메네질도 부스토스(Hermenegildo Bustos), 힐라리오 고메스 산체스(Hilario Gómez Sánchez), 루이스 페로 마르케스(Luis Ferro Márquez) 등이 있다. 이 주에서는 토마스 차베스 모라도(Tomás Chávez Morado)라는 유명한 조각가도 배출했는데, 그는 호세의 형제이다. 그의 작품은 그라나다스의 알혼디가 지역 박물관과 멕시코시티의 카라콜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104]
과나후아토의 세 주요 문학 인물은 호르헤 이바르귈엔고이티아, 후안 이바녜스, 에프라인 우에르타이다. 이바르귈엔고이티아는 20세기 멕시코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사회적 주제를 풍자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으로는 《8월의 번개》(Los relámpagos de agostoes), 《로페스의 발자취》(Los pasos de Lopezes), 《네가 보는 이 폐허》(Estas ruinas que veses) 등이 있다. 이바녜스는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극작가였으며,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1966년 영화로도 제작된 《카이파네스》(Los caifaneses)이다. 우에르타는 기자이자 영화 평론가로 시작했지만 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으로는 《절대적인 사랑》(Absoluto amores), 《새벽의 선》(Línea del albaes), 《전쟁과 희망의 시》(Poemas de guerra y esperanzaes), 《원시의 장미》(La rosa primitivaes) 등이 있다.[105]
7. 정부와 정치
행정 구역상으로는 8개 지역으로 나뉜다:[106][107]
지역 번호 | 지역명 | 중심 도시 |
---|---|---|
1지역 | 북부 | 돌로레스 이달고 |
2지역 | 북동부 | 산 루이스 데 라 파스 |
3지역 | 레온 | |
4지역 | 서중부 | 과나후아토 |
5지역 | 동부 | 셀라야 |
6지역 | 남서부 | 이라푸아토 |
7지역 | 남중부 | 살라망카 |
8지역 | 남동부 | 아캄바로 |
또한 지방 정부 목적으로 46개의 지방 자치체로 나뉘며, 이 지방 자치체들은 선거를 위해 15개의 정치 지역으로 그룹화된다.[108]
주 정부는 행정부를 통제하는 선출된 주지사가 이끈다. 주지사의 임기는 6년이며 재선은 불가능하다. 주지사는 매년 8월 1일에 정부의 현황을 보고해야 한다. 행정부는 사회 문제, 경제 문제, 교육, 법률 및 행정과 관련된 다수의 장관 및 기타 사무소로 구성된다. 입법부는 36명의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 단원제 의회이다. 의회 선거는 3년마다 실시되며, 법률, 지방 및 경제 문제와 관련된 여러 위원회를 두고 있다. 사법부는 여러 단계의 법원과 검찰총장 사무실로 구성되며, 이들은 모두 "주석"이 주재한다.[108]
8. 교육
후아나후아토주는 1인당 학교 수 기준으로 멕시코 전국 7위, 교사 대 학생 비율 기준으로 전국 6위를 차지하고 있다. 주 내에는 4,000개 이상의 유치원, 4,600개의 초등학교, 약 1,400개의 중학교, 약 650개의 고등학교, 73개의 사범대학, 학사 학위를 제공하는 125개 교육기관, 그리고 석사 이상의 고등 교육을 제공하는 60개 기관이 있다. 2005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의 문맹률은 12.1%이다.[109]
주 내 시정촌(municipality)의 약 절반에는 하나 이상의 고등 교육 기관이 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기관은 후아나후아토 대학교(University of Guanajuato)이다.[109] 후아나후아토 시에 위치한 이 대학교는 18세기 전반 예수회가 설립한 아동 교육 기관에서 시작되었다. 설립 과정에는 산 클레멘테 후작(Marquis of San Clemente)의 누이인 호세파 테레사 데 부스토 이 모야(Josefa Teresa de Busto y Moya)의 후원이 있었다. 그녀는 1732년 스페인 왕실(Spanish Crown)로부터 학교 설립 허가를 받아 자신의 집에 학교를 세웠으며, 자신의 재산 5분의 1을 기부하고 다른 부유한 가정의 기부를 독려했다.[110][111] 시간이 지나면서 학교는 성장하여 고등학교 및 전문 수준의 교육 과정을 제공하게 되었다. 학교는 역사적으로 렐 콜레지오 데 라 푸리시마 콘셉시온(Real Colegio de la Purísima Concepciónes, 1767), 콜레지오 델 에스타도(Colegio del Estadoes, 1828), 콜레지오 나시오날 데 후아나후아토(Colegio Nacional de Guanajuatoes, 1867) 등 여러 이름을 거쳐 1945년에 현재의 이름인 후아나후아토 대학교가 되었다.[110] '콜레지오 델 에스타도'라는 이름은 1828년 학교가 주 정부 소유가 되면서 붙여졌으며, 1945년에 대학으로 승격되었다.[111]
현재 후아나후아토 대학교는 고등학교, 학사, 대학원 과정에서 약 30,000명의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후아나후아토 시의 본교 외에도 주 내 다른 지역에 9개의 캠퍼스를 운영 중이다. 이 대학교는 매년 열리는 세르반티노 축제(Festival Cervantinoes)의 여러 행사를 개최하며, 특히 본관 앞의 유명한 계단은 객석으로 활용된다.[110] 대학교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물은 후아나후아토 시에 있는 본관으로, 녹색 석재를 사용하여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 건물에는 학장실, 행정 사무실 및 여러 학과가 자리 잡고 있다.[111] 본관은 에스투디안테 골목(Callejon del Estudiantees)으로 이어지는 113개의 계단으로도 유명하다. 본관 지붕 아래에는 16세기에 바스코 데 키로가(Vasco de Quiroga)가 원주민 광부들을 위해 후원했던 예배당인 템플로 데 로스 오스피탈레스(Templo de los Hospitaleses, 병원의 성당)가 있다. 이곳은 현재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후아나후아토(Nuestra Señora de Guanajuatoes)라고 불리는 묵주기도의 성모 마리아상을 안치했던 곳이기도 하다.[92][112]
과나후아토주에는 후아나후아토 대학교 외에도 여러 고등 교육 기관이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몬테레이 공과대학교(ITESM) 레온(Leónes) 및 이라푸아토(Irapuatoes) 캠퍼스, 레온 대학교(Universidad de Leónes, UDL), 후아나후아토 공과대학(Politécnico de Guanajuato), 라 살레 바히오 대학교(Universidad De La Salle Bajíoes), 이베로아메리카나 대학교(Universidad Iberoamericanaes), 산타페 대학교(Universidad Santa Fees), 셀라야 대학교(Universidad de Celayaes), 케찰코아틀 대학교(Universidad Quetzalcóatles), 국립교육대학교(Universidad Pedagógica Nacionales, UPN), 국립폴리테크닉연구소(Instituto Politécnico Nacional, IPN)의 엔지니어링 간학문적 전문 단위(Unidad Profesional Interdisciplinaria de Ingenieríaes, UPIIUG), 셀라야 공과대학(Instituto Tecnológico de Celayaes, ITC), 로케 공과대학(Instituto Tecnológico Roquees, ITR), 레온 공과대학(Instituto Tecnológico de Leónes, ITL), 후아나후아토 북부 기술대학교(Universidad Tecnológica del Norte de Guanajuatoes, UTNG), 레온 기술대학교(Universidad Tecnológica de Leónes, UTL), 주 남서부 기술대학교(Universidad Tecnológica del Suroeste del Estadoes, UTSOE), 산 미구엘 데 아옌데 기술대학교(Universidad Tecnológica de San Miguel de Allendees), 살라망카 기술대학교(Universidad Tecnológica de Salamancaes), 후아나후아토 폴리테크닉 대학교(Universidad Politécnica de Guanajuatoes, UPG), 펜하모 폴리테크닉 대학교(Universidad Politécnica de Penjamoes, UPPE), 후벤티노 로사스 폴리테크닉 대학교(Universidad Politécnica de Juventino Rosases, UPJR), 200주년 기념 폴리테크닉 대학교(Universidad Politécnica del Bicentenario, UPB), 이라푸아토 고등기술학교(Instituto Tecnológico Superior de Irapuato, ITESI), 후아나후아토 고등기술학교(Instituto Tecnológico Superior de Guanajuatoes, ITESG), 후아나후아토 남부 고등기술학교(Instituto Tecnológico Superior del Sur de Guanajuatoes, ITSUR), 살바티에라 고등기술학교(Instituto Tecnológico Superior de Salvatierraes) 등이 있다.[109]
또한,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 UNAM)는 멕시코 서부 지역의 15,000명 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레온 시에 캠퍼스 건설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레온 시 남부의 60ha 부지에 건설될 예정이며, 2011년부터 후아나후아토, 할리스코(Jalisco), 아과스칼리엔테스(Aguascalientes), 케레타로(Querétaro), 산루이스포토시(San Luis Potosí), 미초아칸(Michoacán), 사카테카스(Zacatecas) 주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처음 개설될 전공은 이 지역 다른 학교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교정학이며, 이후 11개의 전공이 추가될 예정이다.[113]
과나후아토주에는 CIMAT, CINVESTAV, CRODE, CIATEC, CIO, CICSUG, CIQI, IIBE, IIEDUG, IIC, IIM, INIFAP 연구 센터와 CFE LAPEM 및 LANGEBIO 연구소 등 다양한 연구 기관들도 자리 잡고 있다.[109]
9. 교통
과나후아토의 고속도로는 멕시코 10대 주요 고속도로(멕시코시티-누에보라레도, 케레타로-시우다드후아레스, 만사니요-탐피코) 중 세 곳과 직접 연결된다.[109] 이 주에는 11061km의 고속도로가 있으며, 그중 5281km는 시골 지역에 있다. 또한 1249km의 연방 고속도로와 2462km의 주 고속도로가 있다.[109] 2010년 7월, 멕시코 과나후아토 주 정부는 1.22억달러 규모의 셀라야 우회도로(Libramiento de Celayaes)의 30년간의 운영권을 콘세시오나리아 비센테나리오(Concesionaria Bicentenarioes) 컨소시엄에 넘겼다. 이 컨소시엄은 두 개의 고속도로 구간을 건설, 운영 및 유지 관리할 책임이 있다. 12.9km 길이의 리브라미엔토 노로리엔테(Libramiento Nororientees) 구간과 16.5km 길이의 리브라미엔토 수르(Libramiento Sures) 구간 공사가 각각 2010년 9월과 8월에 시작될 예정이었다.[116]
멕시코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철도는 주 산업 지역에서 화물 운송에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며, 고속도로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주요 국내 노선과 연결되어 있다. 주 전체에 1085km의 철도가 있다. 가장 중요한 노선은 코몬포르트, 아캄바로, 이라푸아토 시에 있는 엠팔메 에스코베도(Empalme Escobedoes) 노선이다. 셀라야에는 57ha 부지에 설치된 "페로푸에르토"(ferropuertoes, 철도항)가 있으며, 매년 100만 톤의 화물을 처리한다. 이 시설에는 국제 운송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세관 및 기타 사무실이 있다.[109]
과나후아토 국제공항(구 바히오 국제공항)은 실라오와 레온 도시 사이에 있는 실라오 시에 위치해 있다. 이 공항은 현재 10개 항공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내외 여러 목적지를 운항하고 있다. 셀라야에는 국내선을 운항하는 또 다른 공항과 산 미겔 데 아옌데, 도크토르 모라, 이라푸아토, 마누엘 도블라도, 산 프란시스코 델 린콘에 비행장이 있다.[109]
10. 고고학 유적지
추피쿠아로는 레르마 강변 남쪽에 위치한 유적으로, 기원전 8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 존재했던 중앙아메리카 초기 유적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초기 농업의 증거가 발견되었다. 유적에는 낮고 평평한 직사각형 플랫폼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았던 주택의 기초로 추정되는 더 오래된 구조물의 흔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은 솔리스 댐 건설로 물에 잠겨 있다.[19] 이 유적과 인근의 동시대 유적들은 Blanco Levantado|블랑코 레반타도es라고 불리는 독특한 도자기로 유명하다. 이 도자기는 밝은 크림색 바탕에 빨간색과 다른 색깔의 선으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며, 사카테카스, 멕시코 북서부 다른 지역, 심지어 미국 애리조나주의 호호캄 문화 도자기와도 공통점을 보인다. 연구자들은 추피쿠아로 사람들이 북쪽으로 멀리까지 교역 관계를 맺었으며, 이를 통해 터키옥을 얻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유적지는 광범위하게 연구되었지만, 과나후아토 당국에 의한 것을 포함하여 여러 차례 약탈 피해를 입었다.[23]
티에라 블랑카는 단순한 제사 유적이 아닌 실제 도시였던 대규모 유적지이다. 하지만 도시가 멸망한 후, 그리고 고고학 유적지가 된 이후에도 대부분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현재는 초기에 촬영된 사진들만 남아있다. 툴라 유적에는 티에라 블랑카 또는 이와 유사한 도시가 툴라 문명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티에라 블랑카는 서기 950년 이전에 번성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유적 자체에는 정확한 연대를 확인할 만한 증거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23]
카라비노는 주 북동부에 위치한다. 이 유적지에서는 툴라 도시의 영향을 받은 유물이 발견되며, 도시의 연대는 서기 900년에서 1150년 사이로 추정된다. 또한 카라비노가 멕시코 중부의 다른 도시 중 하나의 식민지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도 있다. 멀리 북쪽 산 루이스 계곡의 비야 데 레이스에서도 톨텍 문명의 존재 또는 영향의 증거가 발견된다. 카라비노 유적지는 서기 550년에서 710년 사이에 처음 사람들이 정착했으며, 200~300년 후인 톨텍 시대에 다시 사람들이 거주했다. 이 지역의 집단들이 서기 600년에서 900년 사이 어느 시점에 정착지를 버리면서 톨텍 제국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있다. 멕시코 계곡에서 톨텍의 영향을 통해 과나후아토 문화는 훨씬 후대의 아즈텍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23]
플라수엘라스는 페냐모 서쪽, 시에라 데 페냐모 산기슭에 위치한다. 복잡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한 이 유적지는 서기 1천년대에 사람들이 살았으며, 서기 600년에서 900년경에 가장 번성했다. 유적지는 로스 쿠이헤스와 아구아 나시다라는 두 개의 큰 마른 하천(아로요, arroyo)으로 구분된 세 개의 언덕 위에 건설되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민족이나 원래 도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지배 계층인 엘리트가 언덕 위에 거주하고 나머지 인구가 아래 평지에 살았던 신권 사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적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Casas Tapadas|카사스 타파다스es라는 복합 건축물로, 여러 개의 대형 구조물과 하나의 중앙아메리카 공놀이 경기장을 포함한다.[88]
페랄타는 페냐모에서 21km 떨어진 아바솔로에 위치한다. 테오티와칸 문명이 쇠퇴하고 툴라 문명이 성장하던 시기인 서기 300년에서 700년 사이에 발전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도시가 주변 낙엽 활엽수림의 과도한 개발로 인해 쇠퇴하여 붕괴되었고, 서기 900년경에 버려졌다고 본다. 유적지는 150ha에 달하며, 중심 지역과 그 주변에 있는 다섯 개의 정착지로 나뉜다. 가장 중요한 구조물은 네 개의 피라미드가 각 모서리에 있는 Patio Hundido|파티오 운디도es(움푹 들어간 안뜰)라고 불리는 곳이다. 또 다른 중요한 건물은 La Mesita|라 메시타es(작은 탁자) 또는 Recinto de los Gobernantes|레신토 데 로스 고베르난테스es(통치자 구역)이다. 이곳에는 도시의 중앙 광장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큰 광장이 있다. 벽과 다른 구조물들 사이에서는 Danza de Voladores|단사 데 볼라도레스es를 위한 반원형 공간이 발견되었다.[117]
카냐다 데 라 비르헨에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건축물 복합체가 있다. Casa de los Trece Cielos|카사 데 로스 트레세 시엘로스es(13개 하늘의 집)라고도 불리는 A 복합체는 높이 25m가 넘는 피라미드 기단과 서쪽, 북쪽, 남쪽을 둘러싼 플랫폼으로 둘러싸인 큰 '움푹 들어간' 안뜰(페랄타의 것과 유사)로 구성되어 있다. 엘 코포로는 작은 산에 위치하며, 아마도 톨텍과 관련된 집단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기 500년에서 600년 사이에 가장 번성했지만 서기 900년에는 버려졌다. 이곳은 어도비(햇볕에 말린 흙벽돌)와 흙으로 지어진 제사 중심지이다. 건축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땅속 약 2.5m 깊이까지 묻힌 일련의 기둥들이다.[118]
주에 있는 다른 고고학 유적지로는 산미구엘의 모랄레스와 북서쪽의 엘 코포로가 있다. 엘 코포로에서는 사카테카스 지역 집단의 영향을 보여주는 작은 조각상들이 발견되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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