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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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경제사는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를 거치며 발전해 왔다. 조몬 시대에는 수렵과 채집, 원시적인 농업이 이루어졌고, 야요이 시대에는 벼농사가 시작되며 정착 생활이 발전했다. 고분 시대에는 야마토 정권이 등장하며 정치적 중앙 집권화가 이루어졌고, 아스카 시대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토지 개혁과 화폐 제도가 도입되었다. 나라 시대에는 경제와 행정 활동이 증가했지만, 장원의 등장과 토지 제도의 변화로 사회적 혼란이 발생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천황의 권력이 쇠퇴하고 무사 계급이 성장했으며, 중세 시대에는 몽골의 침략을 겪었지만 상업이 번성했다. 센고쿠 시대에는 전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경제 발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고, 에도 시대에는 도쿠가와 막부의 통치하에 쌀을 기반으로 한 경제가 운영되었다. 근대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로 전환하며 산업화를 추진했고, 다이쇼 시대에는 제1차 세계 대전으로 경제 호황을 누렸지만, 쇼와 시대에는 세계 대공황과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큰 피해를 입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경제 부흥을 이루었고, 고도 성장기를 거쳐 안정 성장 시대를 맞이했다.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장기 침체를 겪었지만, 현재는 현대 경제 시대를 맞이하여 다양한 도전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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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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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국가 | 일본 |
통화 | 일본 엔 |
시작 | 기원전 3세기 |
종료 | 현재 |
고대 | |
야요이 시대 | 기원전 3세기 ~ 3세기 |
고훈 시대 | 3세기 ~ 6세기 |
아스카 시대 | 6세기 ~ 710년 |
나라 시대 | 710년 ~ 794년 |
헤이안 시대 | 794년 ~ 1185년 |
중세 | |
가마쿠라 시대 | 1185년 ~ 1333년 |
무로마치 시대 | 1336년 ~ 1573년 |
근세 | |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1573년 ~ 1603년 |
에도 시대 | 1603년 ~ 1868년 |
근현대 | |
메이지 시대 | 1868년 ~ 1912년 |
다이쇼 시대 | 1912년 ~ 1926년 |
쇼와 시대 | 1926년 ~ 1989년 |
헤이세이 시대 | 1989년 ~ 2019년 |
레이와 시대 | 2019년 ~ 현재 |
2. 선사 및 고대 일본
일본 열도의 선사 시대와 고대는 경제 활동의 기초가 형성된 중요한 시기이다. 오랜 기간 지속된 조몬 시대는 수렵 채집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토기 제작 기술을 보유하고 일부 원예나 소규모 농업도 이루어졌던 복합적인 사회였다. 이 시기 사람들은 점차 정착 생활의 기반을 다져나갔다.
이후 야요이 시대에는 한반도를 통해 벼농사 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정착 농경 사회로 전환되었다. 농업 생산력의 증가는 인구 증가와 함께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사회 계층의 분화와 청동기 등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다.
고분 시대에 들어서면서 야마토 정권을 중심으로 정치적 중앙 집권화가 진전되었다. 이 시기에는 한반도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관개, 양잠, 직조 등 다양한 선진 기술이 전래되어 일본 고대 경제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일본의 선사 및 고대 경제는 수렵 채집에서 농경 사회로 이행하고, 대륙과의 교류를 통해 기술을 습득하며 점차 복잡한 사회 경제 구조를 형성해 나갔다.
2. 1. 조몬 시대 (기원전 14,000년 ~ 기원전 300년)
일본 역사에서 縄文時代|조몬 시대일본어는 대략 기원전 14,000년과 기원전 300년 사이의 시기를 가리킨다.[1][2][3] 이 시기 일본 열도에는 공통의 조몬 문화를 공유하는 다양한 수렵 채집인과 초기 농경인들이 거주했으며, 상당한 수준의 정착 생활과 문화적 복잡성을 이루었다.[4] 조몬 문화 초기 단계의 특징인 조몬 토기는 젖은 점토 표면에 끈을 눌러 무늬를 새긴 것으로,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중 하나로 여겨진다.[5] 조몬 시대에는 뼈, 돌, 조개, 사슴 뿔로 만든 도구와 장신구, 흙으로 빚은 인형과 그릇(토용, 토기), 그리고 표면에 옻칠을 한 칠기 등이 풍부하게 제작되었다.[6][7][8][9]
고고학자 하부 준코에 따르면, 대다수의 일본 학자들은 토기 제작 기술이 처음 아시아 대륙에서 발명되어 일본 열도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다.[10] 이는 최근 고고학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 유물은 기원전 20,000년 전의 것으로, 중국 장시성의 셴런 동굴에서 발견되었다.[11][12] 이 토기는 음식을 조리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11] 다른 초기 토기 유물로는 기원전 16,000년경 중국 남부의 위차옌 동굴에서 발굴된 것들이 있으며,[13] 현재로서는 토기가 일본과 러시아 극동의 아무르강 유역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14][15] 토기 제작은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정착 생활을 의미한다. 토기는 무겁고 부피가 크며 깨지기 쉬워 이동 생활을 하는 수렵 채집인에게는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몬 시대 초기 사람들의 경우는 달랐을 수 있으며, 당시 일본 열도 전체 인구는 약 20,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16]
조몬 시대 사람들이 원예나 소규모 농업을 어느 정도 행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현재 조몬 문화를 단순히 수렵 채집 사회로만 보는 견해는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17] 수목 재배가 이루어졌다는 증거가 있으며,[18][19][17] 기원전 4700년에서 4400년 사이의 조몬 유적지에서 발견된 복숭아는 매우 이른 시기부터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20] 이 복숭아는 이미 현대의 재배 품종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중국 본토에서는 이 품종이 기원전 5300년에서 4300년 사이 이후에야 확인된다.[20]

중기 조몬 시대(기원전 3520년 ~ 기원전 2470년)에는 당시 가장 흔한 주거 형태였던 움집의 구조가 더욱 복잡해졌으며,[21] 일부 움집은 바닥에 돌을 깔기도 했다.[22] 조몬 시대 말기에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는데, 학자들은 식량 부족이나 다른 환경 문제 때문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모든 조몬 집단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지만, 전체 인구는 감소한 것으로 결론지었다.[23] 조몬 시대 사람들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 이러한 인구 감소가 전쟁이나 폭력에 의한 대규모 사망 때문이라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24]
2. 2. 야요이 시대 (기원전 300년 ~ 서기 300년)

야요이 시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300년부터 서기 300년까지로 여겨진다.[25] 하지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에 따르면 기원전 1,000년에서 800년 사이로 최대 500년 더 앞선 시기일 수 있다는 증거도 있다.[26][27][28][29]
이 시대 동안 일본은 정착 농경 사회로 전환되었다.[30][31] 이는 한반도 또는 류큐 열도를 통해 중국 남부 양쯔강 유역에서 관개된 벼농사 기술이 도입되면서 가능해졌다.[25][34] 야요이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사회는 더욱 계층화되고 복잡해졌다. 사람들은 직물을 짜고, 영구적인 농촌 마을에서 살았으며, 나무와 돌로 건물을 지었다. 또한 토지 소유와 곡물 저장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이는 뚜렷한 사회 계층의 발전을 촉진했다.[32]
규슈의 일부 지역 족장들은 청동기 및 기타 위신 있는 물품의 무역을 후원하고 정치적으로 조작했던 것으로 보인다.[33] 이 시기부터 청동 거울과 같은 금속기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2. 3. 고분 시대 (250년 ~ 538년)

고분 시대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정치적 중앙 집권화가 시작된 시기이다. 이 시기 야마토 씨족이 일본 남서부 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황실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주요 무역로를 통제했다.[35]
고분 시대의 유물들은 당시 일본이 한반도를 통해 중국 남조 등 아시아 대륙과 활발한 정치적, 경제적 교류를 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동일한 틀에서 제작된 청동 거울이 쓰시마 해협 양쪽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관개, 양잠, 직조 기술 등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고대 일본 역사 기록에는 중국계 도래인들이 이러한 기술을 전파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특히 하타 씨족 秦일본어은 양잠과 특정 직조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6]
3. 고대 일본 (538년 ~ 1185년)
고대 일본의 경제는 아스카 시대(538년 ~ 710년), 나라 시대(710년 ~ 794년), 헤이안 시대(794년 ~ 1185년)를 거치며 변화했다. 초기 야마토 정권은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 집권적인 국가 체제를 구축하려 시도했다. 다이카 개신(645년)을 통해 토지를 국유화하는 공지공민 제도를 도입하고 조세 제도를 정비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귀족과 사찰 세력이 장원(荘園)이라는 사유지를 확대하면서 국가의 토지 지배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화폐 경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7세기 후반 후혼센(富本銭)을 시작으로, 708년에는 공식 화폐인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이 발행되었다. 이후 약 250년간 12종류의 동전(황조 12전)이 발행되었으나, 동전의 품질 저하와 사주전 유통 등으로 신뢰를 잃었다. 결국 958년 건원대보(乾元大宝) 발행을 끝으로 조정에 의한 화폐 발행은 중단되었고, 11세기 이후에는 쌀, 베 등 물품 화폐가 주요 교환 수단으로 다시 자리 잡았다.
헤이안 시대에는 후지와라씨와 같은 유력 귀족 가문이 장원을 기반으로 경제적 실권을 장악했으며, 중앙 정부의 통제력은 약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지방에서 사무라이 계층이 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3. 1. 아스카 시대 (538년 ~ 710년)

야마토 정권은 아스카 시대 동안 아스카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규슈와 혼슈의 여러 씨족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야마토 정권은 씨족 족장들에게 세습적인 칭호를 부여하며 지배력을 강화했고, 점차 일본 전역을 아우르는 이름이 되었다. 이 시기 야마토 정권은 중국의 제도를 모델로 삼아 중앙 행정 체계와 도로망을 정비했으며, 중국어 문자를 받아들였다. 7세기 중반에는 국가가 관리하는 농지가 크게 늘어나 중앙 정부 정책의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37]
당시 사회는 직업 집단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대다수는 농민이었으며, 그 외에도 어부, 직조공, 도공, 장인, 갑옷 제작자, 의례 전문가 등 다양한 직업군이 존재했다.[37]
645년, 나카노 오에 황자와 후지와라노 가마타리(후지와라 씨의 시조)가 잇시의 변이라 불리는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소가 씨를 몰아냈다.[38] 이후 이들은 광범위한 개혁인 다이카 개신을 추진했다. 이 개혁은 유교 사상과 중국 철학에 기반한 토지 개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 전역의 토지를 국가 소유로 선언하고('공지공민'(公地公民)), 이를 경작자들에게 균등하게 분배하고자 했다. 또한 새로운 조세 제도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호적을 편찬하도록 명령했다.[39] 이전의 '사유지와 사유민'(私地私民) 개념은 '공유지와 공유민'(公地公民)으로 바뀌었으며, 조정은 일본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고 백성들을 천황의 직접적인 신민으로 삼으려 했다. 토지는 더 이상 세습되지 않았고, 소유자가 사망하면 국가에 반환되었다. 세금은 수확물뿐만 아니라 비단, 면, 옷감, 실 등 다양한 현물로 부과되었으며, 군사 징집과 공공사업 동원을 위한 부역(노동력 제공) 제도도 마련되었다.[37]
아스카 시대 후반에는 화폐가 발행되기 시작했다. 7세기에는 후혼센(富本銭)이라는 구리 화폐가 만들어졌으며, 708년 8월 29일에는 겐메이 천황의 명령으로 일본 최초의 공식 화폐인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이 발행되었다.[40][41][42][43] 와도카이친은 당나라의 화폐인 카이원 통보(開元通宝)의 영향을 받았으며, 8세기 초 일본에서 대규모 구리 광산이 발견되면서 생산이 가능해졌다.[44][45]
3. 2. 나라 시대 (710년 ~ 794년)
나라 시대 이전인 645년, 나카노 오에 황자와 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주도한 잇시의 변 이후 다이카 개신이 단행되었다.[38] 이 개혁은 유교 사상과 중국 제도를 바탕으로 한 토지 개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율령제 국가의 기초를 마련했다.[39]개혁의 핵심은 일본의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여 공지공민(公地公民) 원칙을 세우고, 경작자들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이었다.[39][37] 이를 통해 이전까지 존재했던 "사유지와 사유민"(私地私民) 개념을 폐지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 정부가 국가 전체를 직접 지배하고 백성을 왕의 신하로 삼으려 했다.[37] 토지는 더 이상 세습되지 않았고, 소유자가 사망하면 국가에 반환되었다.[37] 또한 새로운 조세 제도가 도입되어, 수확물뿐만 아니라 비단, 면, 천, 실 등 다양한 생산물에 세금이 부과되었으며, 군사 징집과 공공 사업 건설을 위한 부역(노동)의 의무도 지워졌다.[37]
708년에는 겐메이 천황의 명령에 따라 일본 최초의 공식 화폐인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이 발행되었다.[40][41][42][43] 이는 중국 당나라의 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당시 일본에서 대규모 구리 매장량이 발견되면서 생산이 가능해졌다.[44][45]
그러나 나라 시대 후기로 가면서 율령제에 기반한 토지 국유화 원칙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부 유력 귀족 가문과 종교 세력들이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인 장원(荘園)에 대해 세금 면제 등의 특권을 확보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재정 기반이 약화될 조짐을 보였다.[48] 이러한 장원의 확대는 다음 시대인 헤이안 시대에 더욱 본격화되어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48][49]
3. 3. 헤이안 시대 (794년 ~ 1185년)
헤이안 시대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길고 번영한 시기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경제를 약화시키고 극소수의 지배층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빈곤을 가져왔다는 시각도 있다. 쌀 경작지에 대한 통제권은 후지와라씨와 같은 유력 귀족 가문의 주요 수입원이었으며, 이들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근본적인 기반이 되었다.[46] 당시 일본 인구 약 500만 명 중 헤이안 문화의 혜택을 누린 료민(良民, "선량한 백성") 계층은 약 5천 명에 불과했다고 추정된다. 지배층인 귀족들이 수도 헤이안쿄 바깥의 지방 통치에 무능했기 때문에, 사무라이 계층이 점차 힘을 키울 수 있는 배경이 마련되었다. 서기 1000년경에는 중앙 정부가 더 이상 화폐를 제대로 발행하고 관리할 능력을 상실하면서 화폐 경제는 점차 쇠퇴하였다. 화폐 대신 쌀이 주요 교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46]헤이안 시대 전반에 걸쳐 천황의 권력은 약화되었다. 조정은 귀족들 간의 권력 다툼과 예술 활동에 몰두하느라 수도 밖 지방 행정에는 소홀했다.[47] 율령 체제 아래 시행되었던 토지 국유화 정책은 여러 귀족 가문과 종교 세력이 사유지인 장원에 대해 세금 면제(면세) 지위를 확보하면서 점차 무너져 내렸다.[48] 11세기에 이르러서는 일본 국토의 상당 부분이 중앙 정부의 통제보다 장원 영주들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조정은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세금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게 되었고, 장원 영주들은 사무라이 계층으로 구성된 자신들만의 군사력을 키워나갔다.[49] 황족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강력한 귀족 가문인 다이라씨와 미나모토씨는[50] 수도 바깥 지역에 대규모 군대와 많은 장원을 확보했다. 중앙 정부는 이들 무사 가문의 힘을 빌려 지방의 반란이나 해적 행위를 진압하기도 했다.[51] 수백 년간 감소하던 일본의 인구는 헤이안 시대 말기에 이르러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52]
고대 일본에는 무문은전이나 부본전과 같은 화폐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제로 널리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일본에서 비교적 광범위하게 유통된 최초의 주조 화폐는 708년(와도 원년)에 만들어진 와도개보이다. 이후 958년(덴토쿠 2년)의 건원대보 발행까지 총 12종류의 동전이 발행되었는데, 이를 황조 12전이라고 부른다. 금화인 개기승보나 은화인 대평원보 등도 만들어졌으나 널리 유통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화폐 자체의 소재 가치보다 실물 상품이 교환 수단으로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물품 화폐 경제의 성격이 강했다. 주로 사용된 물품 화폐로는 쌀, 생솜, 베 등이 있었다.[149] 황조 12전과 같은 동전은 수도권인 기나이와 그 주변 지역 외에는 그다지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전의 원료인 구리가 부족해지고 조정의 힘이 약해지면서, 새로 발행되는 동전의 품질은 점점 떨어지고 사람들의 신뢰를 잃어갔다. 쌀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8세기 초부터 9세기 중반까지 화폐 가치는 약 150분의 1 수준으로 급락했다고 분석된다. 또한, 개인이 몰래 만든 위조 화폐인 사주전도 널리 유통되었다. 결국 조정에 의한 공식적인 화폐 발행은 958년(덴토쿠 2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11세기 이후로는 동전보다 물품 화폐가 주로 사용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4. 중세 일본 (1185년 ~ 1603년)
중세 일본(1185년 ~ 1603년)은 가마쿠라 시대, 무로마치 시대, 센고쿠 시대를 포함하는 시기로,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중요한 경제적 변화를 겪었다.
가마쿠라 시대(1185년 ~ 1333년)에는 몽골의 일본 침략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막부 재정에 부담이 있었으나,[54] 13세기 중반 이후 농업 기술 발달과 상업 활동 증가로 경제적 번영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철제 농기구 사용 확대, 관개 기술 개선, 이모작 보급 등으로 농업 생산성이 향상되었고,[55] 도시 성장과 상업 발달이 촉진되었다.[56]
무로마치 시대(1336년 ~ 1573년)에는 전쟁이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증가하고 상업이 더욱 발전했다.[56] 특히 명나라와의 감합 무역을 통해 동전, 비단, 도자기 등을 수입하면서 화폐 경제가 점차 자리 잡기 시작했다.[58][61] 이 시기에는 수묵화, 다도 등 일본의 독자적인 문화 양식도 크게 발전하였다.[59]
센고쿠 시대(1467년 ~ 1603년)에는 각지의 다이묘들이 부국강병을 위해 경제력 강화에 힘썼으며, 금과 은 등 귀금속 생산이 활발해 유럽에 '황금의 나라'로 알려지기도 했다.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인과의 교역을 시작으로 유럽과의 난반 무역이 이루어졌고, 이후 네덜란드,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도 확대되었다.[64] 이러한 대외 교역은 일본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4. 1. 가마쿠라 시대 (1185년 ~ 1333년)
1274년과 1281년, 가마쿠라 막부는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 칸이 감행한 몽골의 일본 침략에 맞서기 위해 전국의 사무라이 군대를 동원했다.[53] 일본군은 수적으로 열세하고 몽골군의 무기가 더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규슈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에서 대등하게 싸웠으며, 결정적으로 가미카제(神風)라 불리는 태풍으로 몽골 함대가 파괴되면서 침략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방어 전쟁은 막부의 재정을 크게 고갈시켰고, 승리에 기여한 사무라이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막부와 사무라이 계급 간의 관계에 장기적인 균열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54]이러한 군사적 지출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250년경부터 경제적 번영과 인구 증가의 시기를 맞이했다.[56] 농촌 지역에서는 철제 농기구와 비료의 사용이 늘어나고 관개 기술이 개선되었으며, 이모작이 보급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에 따라 농촌 마을이 성장하는 기반이 마련되었다.[55] 또한 기근과 전염병 발생 빈도가 줄어들면서 도시가 성장하고 상업 활동도 활발해졌다.[56]
한편, 가마쿠라 시대 이전 일본에서는 와도개보(708년)를 시작으로 황조 12전이라 불리는 동전들이 발행되었으나, 원료인 구리 부족과 조정의 권력 약화로 점차 품질이 떨어지고 신뢰를 잃었다. 958년 건원대보 발행을 끝으로 조정의 화폐 발행은 중단되었고, 11세기 이후에는 쌀, 생솜, 베와 같은 물품 화폐가 주로 사용되었다.[149] 가마쿠라 시대의 상업 발달은 이러한 물품 화폐 외에도 새로운 교환 수단의 필요성을 점차 증대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4. 2. 무로마치 시대 (1336년 ~ 1573년)


가마쿠라 시대에 시작된 상대적인 경제적 번영은 전쟁 속에서도 무로마치 시대까지 이어졌다. 1450년경 일본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13세기 말의 600만 명에서 크게 늘어났다.[56] 중국 및 한국과의 활발한 교역을 포함하여 상업이 번성했다.[57] 다이묘를 비롯한 여러 세력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만들면서, 물물교환 중심이던 경제는 점차 화폐 경제로 바뀌기 시작했다.[58]
이 시대에는 수묵화, 꽃꽂이, 다도, 일본 정원, 분재, 노 등 일본을 대표하는 여러 예술 양식이 발전했다.[59]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정치 및 군사 지도력은 부족했지만, 이러한 문화 발전을 장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60]
무로마치 시대에 일본은 명나라(1368년–1644년)와 다시 교류하기 시작했다. 명나라는 당시 중국 해안 지역에서 활동하던 일본 해적인 왜구( 倭寇|와코일본어 )를 단속하는 데 일본의 협조를 요청했다. 왜구 문제를 해결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던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조공 관계를 맺었고, 이는 반세기 가량 이어졌다. 1401년, 요시미쓰는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국서에서 스스로를 "귀하의 신하, 일본 국왕"이라고 칭하며 조공 시스템을 재개했다. 일본은 목재, 유황, 구리, 칼, 부채 등을 수출하고, 중국으로부터 비단, 도자기, 서적, 동전 등을 수입했다. 이는 형식상 조공이었으나, 일본에게는 이익이 큰 무역이었다.[61]
4. 3. 센고쿠 시대 (1467년 ~ 1603년)
일본의 경제 대국 역사는 센고쿠 시대 (1467년~160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 일본은 금을 비롯한 귀금속이 풍부하게 생산되어, 신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 상인들에게 '황금의 나라 지팡구'로 알려졌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유럽 여러 나라에 알려지게 되었고, 유럽 상선들과의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센고쿠 시대 이전인 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적 번영은 전쟁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로마치 시대까지 이어졌다. 1450년경 일본의 인구는 약 1,000만 명으로, 13세기 말의 600만 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56] 중국, 한국과의 활발한 교역을 포함하여 상업이 번성했으며,[57] 각지의 다이묘들이 자체 화폐를 주조하면서 물물교환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 점차 전환되었다.[58]
무로마치 시대에 일본은 명나라와 다시 접촉하기 시작했다. 명나라는 해안 지역을 약탈하던 일본 왜구 (일본어: 와코) 문제 해결에 일본의 협조를 요청했다. 아시카가 요시미쓰는 명나라와의 관계 개선과 왜구 문제 해결을 위해 1401년 조공 시스템을 재개하고, 명나라 황제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자신을 "일본 국왕"으로 칭하며 신하의 예를 갖추었다. 일본은 목재, 유황, 구리 광석, 칼, 부채 등을 수출하고 중국의 비단, 도자기, 서적, 동전 등을 수입했는데, 이는 명나라에게는 조공이었지만 일본에게는 수익성 높은 무역이었다.[61]
16세기 중반, 포르투갈 상인들이 일본에 도착하면서 새로운 교역 시대가 열렸다. 당시 일본은 왜구 문제로 명나라와의 직접 교역이 금지된 상태였기 때문에, 포르투갈 상인들은 중국산 비단과 도자기를 일본에 판매하는 중개 무역을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 이들은 '난반진(南蠻人, 남쪽의 야만인)'이라 불렸다. 1557년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거점으로 확보하고 명나라로부터 공식 무역 파트너로 인정받으면서, 일본과의 무역을 사실상 독점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은 매년 일본으로 향하는 단 한 척의 캐러크 선박에 대한 무역권인 '선장직'을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무역을 통제했다. 이 캐러크선은 보통 1000~1500톤에 달하는 거대한 선박이었다. 이 무역은 1638년 도쿠가와 막부가 선박을 통한 기독교 선교사 밀입국을 문제 삼아 포르투갈 선박의 내항을 금지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포르투갈의 독점적 지위는 점차 다른 세력의 도전을 받았다. 중국 밀수업자들의 정크선, 1592년경부터 등장한 일본의 주인선, 1600년경부터 마닐라를 거점으로 한 스페인 선박, 그리고 1609년부터는 네덜란드, 1613년부터는 영국 선박이 일본과의 무역에 참여했다.
특히 네덜란드인들은 일본인들에게 '코모(紅毛, 붉은 털)'라 불렸는데, 1600년 '리프데(Liefde)' 호가 일본에 표착하면서 처음으로 관계를 맺게 되었다.[64] 이 배의 항해사였던 영국인 윌리엄 애덤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임을 얻었다. 1609년 자크 스펙스가 이끄는 네덜란드 선단이 히라도에 도착하여 이에야스로부터 무역 특권을 얻어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통해 포르투갈, 스페인 세력과 경쟁하며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잡아갔고, 결국 1638년 이후에는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통해 일본과 교역할 수 있는 유일한 서양 세력이 되었다.
5. 근세 일본 (1603년 ~ 1868년)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들은 16세기 일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일본을 높이 평가했다. 당시 일본은 마르코 폴로가 기록한 금박 사원과 궁전 이야기[62]와 더불어, 화산 지형 특성상 산업화 이전에도 표면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채굴할 수 있었던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이 풍부한 나라로 여겨졌다. 실제로 이 시기 일본은 구리와 은의 주요 수출국이었다.
또한 일본은 높은 수준의 문화를 갖추고 봉건 사회 체제가 잘 발달했으며, 산업화 이전 단계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인구 밀도가 높고 도시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당시 유럽의 주요 관찰자들은 일본인이 '"다른 모든 동양 민족을 능가할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 또한 능가한다"'는 데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알레산드로 발리냐노, 1584, Historia del Principo y Progresso de la Compania de Jesus en las Indias Orientales|예수회의 인도 동방 진출과 발전사spa).
초기 유럽 방문객들은 일본의 장인 정신과 금속 세공 기술의 우수성에 특히 주목했다. 이는 일본이 철과 같은 천연자원이 유럽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에, 가용 자원을 최대한 아껴 쓰면서 소량의 자원으로도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5. 1. 에도 시대 (1603년 ~ 1868년)
1603년부터 1868년까지 이어진 에도 시대(도쿠가와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가 전국을 통일하고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확립한 시기이다. 이 시대의 경제 발전은 도시화, 상품 운송 증가, 국내 및 초기 해외 상업의 확장, 무역 및 수공예 산업의 확산을 특징으로 한다.[65]경제의 기반은 쌀이었으며, 다이묘들은 농민들로부터 수확량의 약 40%에 달하는 세금을 쌀 형태로 징수했다.[65] 이 쌀은 에도의 札差|후다사시jpn 시장에서 거래되었으며, 다이묘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미래에 수확할 쌀을 미리 판매하는 선물환 계약을 이용했는데, 이는 현대의 선물 거래와 유사했다.[65]
에도 시대에는 도시가 크게 발달했다. 막부의 중심지였던 에도는 18세기 중반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오사카와 교토 역시 각각 4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도시로 성장했다.[192][65] 오사카와 교토는 활발한 무역과 수공업 생산의 중심지가 되었고, 에도는 식량과 필수 소비재 공급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65] 이 외에도 많은 성하 마을이 발전했으며, 건설업이 번창하고 금융 시설과 상인 조합도 생겨났다.[65] 각 지역의 藩 정부는 농업 생산 증대와 농촌 수공예품 확산을 감독했다.[65]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의 겐로쿠 시대는 경제적 번영기였다. 1720년 무렵 일본 전체 인구는 3,200만 명에 달했으며,[192] 이 시기 제작된 우수한 품질의 공예품과 회화는 서유럽에 전해져 Japonisme|일본주의fra 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192]
에도 시대 초기는 남만 무역 시대와 겹치며 유럽과의 교류가 있었다. 일본은 San Juan Bautista|산 후안 바우티스타spa와 같은 서양식 배를 만들어 하세쿠라 쓰네나가가 이끄는 사절단을 아메리카와 유럽에 보내기도 했다. 또한, 막부는 아시아 내 무역을 위해 약 350척의 주인선 운항을 허가했고, 야마다 나가마사와 같은 일본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기독교 전파를 막기 위해 쇄국 정책을 시행하여 대외 교류를 크게 제한했다.

쇄국 하에서도 경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발전했다. 1650년대 이후 중국의 도자기 생산 차질로 일본 수출 도자기 생산이 늘어나 큐슈에서 만들어진 도자기가 네덜란드 등을 통해 수출되었다.[66] 이 무역은 18세기 중반 이후 주춤했으나, 19세기 중반 개항 후 다시 활발해졌다.[66]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통해서는 네덜란드로부터 서양 학문과 기술을 받아들이는 蘭学|란가쿠jpn(난학)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지리학, 의학, 천문학, 예술, 언어, 물리학, 기계학 등 다양한 분야가 연구되었고, 서양 기술의 영향을 받은 일본식 시계 和時計|와도케이jpn 등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에도 시대 후기에는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겐로쿠 시대 이후 호황기가 끝나면서 생산이 위축되고, 흉작으로 인한 기근이 발생하여 농민들이 봉기하는 一揆|잇키jpn가 전국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에도 막부 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요인이 되었다.
6. 근대 일본 (1868년 ~ 1945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각 번(藩)별로 달랐던 화폐 ''한사쓰''(藩札)를 폐지하고, 1871년 엔(円)을 도입하여 통화 제도를 통일했다.[73][74] 초기에는 일부 사립 은행도 화폐 발행 권한을 가졌으나,[72] 1882년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이 설립되어[75] 1884년부터 화폐 발행을 독점하고 통화 공급을 관리하게 되었다.[76] 화폐 제도의 기반은 초기 은본위제에 가까웠으나[77] 1897년 금본위제를 채택했고,[77] 이는 1931년 폐지되었다.
6. 1. 메이지 시대 (1868년 ~ 1912년)
메이지 정부는 1868년 이후 "부국 강병"(富國強兵) 정책을 내걸고 근대 국가 건설을 시작했다.[193] 이를 위해 외국인 전문가(고용 외국인)를 초빙하여 철도 건설과 서양식 공장 건설을 추진했다.[193] 이 시기 비단 수출은 중요한 외화 획득 수단이었으며[193], 군함 보유 수가 국력의 지표로 여겨지기도 했다.[193] 일부 지역에서는 공업이 경제 기반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193] 그러나 근대화에 착수한 지 반세기가 지난 후에도 일본 경제는 여전히 농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1900년 기준으로도 인구의 70%가 농업에 종사했으며, GDP의 40%가 1차 산업에서 나왔다.[193]메이지 정부는 근대적 화폐 및 금융 시스템 구축에도 힘썼다. 1868년 이전까지 각 번(藩)이 발행하던, 서로 호환되지 않는 다양한 종류의 통화인 ''한사쓰''(藩札)는 유신 이후 폐지되었다. 일본 정부는 미국 금융 시스템을 참고하려 했으나[72], 1871년 ''신 화폐 조례''를 통해 엔(円)을 새로운 십진법 통화로 도입하고 통일된 화폐 제도를 마련했다. 이는 당시 통용되던 멕시코 은 달러와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73][74] 이전의 번(藩)들은 현으로 개편되었고, 각 지역의 조폐국은 사립 특허 은행으로 전환되어 한동안 화폐 발행 권한을 유지했다.[72] 이러한 과도기를 거쳐 1882년 벨기에 모델을 따라 중앙은행인 일본 은행이 설립되었다.[75] 일본 은행은 1884년 화폐 발행 독점권을 부여받았고[76], 1904년까지 이전에 발행된 다른 모든 지폐를 회수하며 통화 공급을 중앙 집중화했다.[76] 일본은 형식적으로 복본위제를 채택했으나 금 부족으로 실질적으로는 은본위제에 가까웠고[77], 1897년에 금본위제를 공식 채택했다.[77]
1868년 이후 메이지 신정부는 철도 건설을 강력하게 장려했다. 이는 봉건적 제도를 약화시키고, 특히 러시아의 침략 위협에 신속하게 군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며, 쌀과 같은 물자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고 대외 무역을 성장시키려는 다각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79][80] 더 나아가 근대화된 교통 시스템은 국민들에게 국가 발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1870년 정부는 영국으로부터 100만파운드의 차관을 들여와 영국인 기술자들을 활용해 철도 시스템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실제 건설은 일본 공무성이 담당했다.[79][80]
1868년, 스코틀랜드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는 일본에 최초의 증기 기관차인 "아이언 듀크"를 도입하여 나가사키에서 시연하기도 했다.[81] 그러나 일본 정부는 외국인 주도의 건설보다는 일본 자체의 기술력 확보를 중시하여, 영국의 자금 지원과 약 300명의 영국 및 유럽 기술 고문(토목 기사, 관리자, 기관차 제작자 및 운전사)을 활용하되 이들이 일본인 기술자들을 교육하도록 했다.[82] 1872년 말, 도쿄의 신바시(후일 시오도메)와 요코하마(현재의 사쿠라기초)를 잇는 일본 최초의 철도가 개통되었다. 당시 편도 소요 시간은 53분이었다.[83] 영국인 기술자 에드먼드 모렐(1841–1871)은 혼슈의 첫 철도 건설을 감독했으며, 이후 미국인 조셉 U. 크로우포드(1842–1942)는 홋카이도에서, 독일인 헤르만 룸쇼텔(1844–1918)은 규슈에서 철도 건설을 이끌며 일본인 기술자들을 양성했다.[83]
철도 궤간으로는 1067mm (3피트 6인치) 협궤(일명 "케이프 궤간")가 선택되었다. 그 정확한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국제적으로 더 널리 쓰이는 1435mm 표준궤("스티븐슨 궤간")보다 건설 비용이 저렴할 것이라는 예상, 혹은 초기 계약 과정에서의 착오, 또는 뉴질랜드 등 유사한 지형에서 협궤 철도 건설 경험이 있던 에드먼드 모렐의 영향 등이 거론된다. 결과적으로 이 협궤는 일본 철도의 표준이 되었다.[84][83]
6. 2. 다이쇼 시대 (1912년 ~ 1926년)
(작성할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에 해당 섹션 관련 내용이 없습니다.)6. 3. 쇼와 시대 (1926년 ~ 1945년)
(내용 없음 - 제공된 원본 소스에는 '쇼와 시대 (1926년 ~ 1945년)'에 해당하는 경제사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7. 현대 일본 (1945년 ~ 현재)
국민주권 시대(1945년~현재)는 "Made in Japan"과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세계를 석권하고,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오른 시대이다. 패전의 어려움 속에서 시작된 경제 재건은 이후 눈부신 고도 성장으로 이어졌으나, 버블 경제의 형성과 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장기 침체를 겪으며 일본 경제는 큰 구조적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기 일본 경제의 구체적인 변화 과정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다룬다.
7. 1. 전후 부흥기 (1945년 ~ 1955년)
제2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일본 경제는 큰 타격을 입고 거의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이후 GHQ의 점령 하에서 경제 재건이 시작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재벌 해체, 농지 개혁, 노동 민주화 등 경제 민주화 정책이 추진되어 전후 일본 경제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본격적인 경제 부흥은 미국의 상당한 경제 지원과 한국 전쟁 특수를 통해 가능했다. 미국은 약 19억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했으며[194],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은 일본에게 군수 물자 생산 및 관련 서비스 제공 기회를 창출하여 외화를 획득하고 산업 생산을 활성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94] 이러한 외부적 요인과 더불어, 전후 일본 사회 특유의 '''일본식 노동 윤리'''와 높은 '''교육열''' 같은 문화적 요인, 그리고 미국과의 안보 동맹 관계 역시 안정적인 경제 재건의 기반으로 작용했다.[194]
이 시기 일본 정부는 수입대체산업 육성을 통해 무역 적자를 줄이고 국내 산업 기반을 다지는 경제 전략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다.[194]
7. 2. 고도 성장기 (1955년 ~ 1973년)
일본은 GHQ로부터 해방된 이후 경제재건에 매진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특수를 통해 벌어들인 외화들과 미국의 19억달러 어치의 지원[194], 그리고 미국과의 안보동맹, 그리고 '''일본식 노동 윤리'''와 '''교육열'''등 문화적 요인 등으로 인해 빠르게 발전하였다.1953년에서 1965년 사이 일본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9%였다. 이 시기 일본은 수입대체산업을 중점으로 육성하여 무역적자를 줄이는 경제 전략을 채택하였다. 1965년에서 1970년에는 평균 성장률이 8%로 올랐으며, 부동산, 직물, 정보, 반도체 산업 등이 호황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3류의 취급을 받았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게 한 것이 혼다의 오토바이였다. 그것은 당시 일본을 패전국의 이미지로 그리던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 공헌했다. 현재 일본 제일의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는 1951년엔 대략 300여대만을 미국에 수출했었으나, 1973년에는 유럽 메이커들을 제치고 미국시장 제 1의 자동차 수출기업이 되었다.[195]
일본 제조업이 빠르게 발달한 요인은 품질 관리 기법에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도요타의 도요타 방식(Toyotaism)은 구시대적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인 포디즘(Fordism)이 지배하는 제조업 세계를 무너뜨리고 유행을 탔다. 이 때문에 일본의 기술적 진보속도는 하루가 다르게 빨라졌고, 미국마저 일본 수출품에 대한 규제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이 되었다.
7. 3. 안정 성장기 (1973년 ~ 1991년)
클로저 등이 제창한 "국제수지 발전 단계설"의 관점에서 볼 때, 제2차 오일 쇼크가 거의 진정된 1982년 이후 약 30년 동안 일본 경제는 특정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의 소득 수지는 일관되게 연간 흑자를 기록했으며, 무역·서비스 수지 역시 동일본 대지진 발생 이전까지는 연간 흑자를 유지했다. 이러한 지표들을 바탕으로, 제2차 오일 쇼크 이후부터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점까지의 일본 경제는 '미성숙 채권국' 단계에 해당했던 것으로 평가된다[181][182][183][184][185]。7. 4. 버블 경제와 붕괴 (1986년 ~ 1991년)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이전의 두 배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하는 엔고 현상이 발생하자, 일본 경제에는 대규모의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흔히 '거품 경제 시대'라고 부른다. 1986년부터 1991년 사이 일본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4.5%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지만, 이는 자산 가격의 이상 급등에 크게 기댄 측면이 있었다.그러나 1989년 일본은행(BOJ)이 과열된 경기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경제 성장률이 1.7%로 추락하고, 주식 시장의 닛케이 지수가 10,00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등 본격적인 경제 불황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 버블 붕괴의 충격으로 일본 경제는 이후 장기간의 침체를 겪게 된다.
7. 5. 헤이세이 시대 (1989년 ~ 2019년)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가치가 급격히 상승하자, 일본 경제에는 대규모 거품이 발생했는데, 이를 ‘거품 경제 시대’라고 부른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평균 경제 성장률은 4.5%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나, 1992년부터는 1.7%로 급락하고 닛케이 지수가 10,000포인트 이상 떨어지는 등 경제 불황의 징후가 나타났다. 1989년 일본은행(BOJ)이 금리를 인상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거품이 붕괴되었고, 이후 일본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지게 된다.1992년부터 시작된 장기 침체기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본 경제는 2001년까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했으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추진한 금융 개혁, 우정 개혁, 대학-기업 합자 법인 설립 합법화 등 경제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은 경기 확장기로, 특히 2005년 우정 해산을 계기로 실물 경제뿐만 아니라 주식 시장도 호황을 누렸으며, 신흥국과 미국의 경제 호황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2007년 8월경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현실화되면서 일부 주택 전문 회사가 파산하기 시작했고, 2008년 9월 리먼 쇼크가 발생하면서 세계 금융 위기로 이어져 일본 경제도 큰 타격을 입었다. 리먼 쇼크 직후인 2008년 말에는 파견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와 '연말 파견촌'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고이즈미 개혁의 부정적인 측면이 비판받기도 했다.
이에 일본 국회는 재정 정책을 동원한 경기 부양책을 시행했다. 에코 포인트 제도를 활용한 친환경 가전 보급 촉진 사업, 친환경 자동차 구매 시 세금 감면 및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친환경 관련 상품 소비를 지원했고, 이는 어느 정도 경기 악화를 막는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2009년 11월 두바이 정부 관련 기업의 부실 채권 문제로 촉발된 두바이 쇼크, 유로존 내 PIIGS 국가들의 국채 신용 불안에서 시작된 2010년 유럽 국가 채무 위기, 그리스 경제 위기, 미국 국채 쇼크 등이 연이어 발생하며 일본 시장에도 혼란을 야기했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 하이테크 산업의 급성장 속에서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고, 중국 및 대만 기업에 의한 인수 및 사업 양도 사례가 증가했다.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막대한 부흥 및 보상 비용 발생, 전력 공급 위기 등을 초래하며 일본 경제에 추가적인 부담을 안겼다.
거품 붕괴 이후 일본 경제는 구조적으로 크게 변화했으며, 여전히 많은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 아시아 4룡, 브릭스 등 신흥 국가들의 부상, 특히 이들 국가 제품의 경쟁력 향상으로 인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은 하락했다. 일본의 저성장과 대조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이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2010년에는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중국에 추월당해 약 40년간 유지해 온 세계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밀려났다. 1인당 GDP 순위 역시 하락하여 홍콩, 싱가포르에 뒤처졌으며, 한국, 대만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21세기 들어 일본 경제가 내수보다 외수에 더 의존하게 된 점도 우려 사항으로 지적된다[188] . 저출산 고령화와 임금 하락 등의 요인으로 내수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축소될 가능성이 높으며, 게이단렌과 같은 재계 및 대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정치 헌금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189] .
7. 6. 레이와 시대 (2019년 ~ 현재)
후생노동성의 추산에 따르면, 이대로라면 2031년에는 후생연금이 파탄될 것으로 예측되며,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190] 그 대책으로 2019년 10월에 소비세를 10%로 인상하기로 결정되었다.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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