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한국 신화는 문헌 신화와 구전 신화로 나뉘며, 건국 신화, 창세 신화, 인간 탄생 신화, 문명 기원 신화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문헌 신화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고조선, 고구려, 신라 등의 건국 신화가 대표적이며, 구전 신화는 민간 신화와 무속 신화로 나뉜다. 무속 신화는 굿에서 불리는 이야기로, 바리공주, 제석본풀이, 손님네 이야기 등이 있으며, 지역별로 다양한 특징을 보인다. 한국 신화는 한국 민족의 세계관과 신앙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국 신화 - 산신
산신은 동아시아에서 산의 정령으로 숭배되며, 한국에서는 사찰이나 신당에서 노년 남성의 모습으로 호랑이와 함께 모셔지고, 불교에서는 호법신으로, 중국에서는 오악의 신, 일본에서는 야마노카미, 베트남에서는 특정 산에 깃든 신으로 숭배받으며 각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반영한다. - 한국 신화 - 팔선
팔선은 중국 도교 신화에 등장하는 각기 다른 특징과 상징물을 가진 여덟 명의 신선으로, 시대와 매체에 따라 구성원이 다르게 나타나며 민간 신앙의 대상이자 다양한 문화 콘텐츠에 등장한다. - 삼국 시대의 문화 -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는 414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고구려 역사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록하여 고구려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 삼국 시대의 문화 - 황조가
《황조가》는 고구려 유리왕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시로, 꾀꼬리의 의지하는 모습과 대비되는 화자의 고독한 심정을 노래하며, 작자에 대한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고대 권력자의 고독과 고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신화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한국어 표기 | 한국 신화 |
한자 표기 | 韓國神話 |
로마자 표기 | Hanguk sinhwa |
다른 표기 | 조선 신화 |
특징 | |
관련 주제 | 한국 무속 한국 철학 |
주요 신 | |
가신 | 가택신 |
창조신 | 창조 신화 |
산신 | 산신 |
멩두 | 멩두 |
기타 신 | 제석신 삼신 저승사자 |
관련 개념 | |
기타 | 돌하르방 장승 주화 부적 서낭당 솟대 |
기타 | |
![]() |
2. 문헌 신화
한국 신화는 전승 형태에 따라 '''문헌신화'''와 '''구전신화'''로 나뉜다. 문헌신화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동국이상국집》,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규원사화》 등에 기록되어 있다.
문헌신화는 주로 특정 왕국이나 왕조의 건국 이야기를 담은 건국 신화이다. 이 신화들은 역사적 사실과 신화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13세기 작품인 《삼국유사》는 문헌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등의 건국 이야기를 전한다. 제주도 탐라국 건국에 관한 삼성 신화는 《탐라지》, 《동국여지승람》 등에 실려 있으며, 고을라(高乙那), 양을라(良乙那), 부을라(夫乙那) 세 사람이 땅에서 솟아 탐라국을 건설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건국 신화는 한국 민족의 세계관 및 신앙 내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국 신화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최남선과 이병도와 같은 역사가들이 건국 신화에 대한 최초의 연구를 개척하면서 문헌 신화로 시작되었다.[1]
2. 1. 건국 신화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에 전하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문헌 신화(文獻神話)이다. 한민족의 신화는 민족 이동기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천지 개벽 신화(天地開闢神話)는 적고 국조(國祖)나 건국 신화가 많다. 하느님인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하늘의 뜻을 받들어 태백산(지금의 묘향산) 꼭대기 박달나무 밑에 신시(神市)를 열고 나라를 다스렸다.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환웅에게 인간이 되기를 빌었고, 환웅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며 100일 동안 해를 보지 말라고 하니, 곰은 이를 지켜 여자가 되었고, 범은 그러지 못해 인간이 되지 못했다. 여자로 변한 곰이 박달나무 밑에서 아이를 갖기를 빌자, 환웅이 임시로 혼인하여 아들을 낳게 하니 그 아들이 곧 단군왕검이었다.세 가지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환웅 신화는 완전한 신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환웅과 한민족의 토템을 상징하는 곰이 사랑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자로 환생하고, 다시 단군을 낳았다는 단군 신화는 부족명 또는 모계 사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민족의 신념으로 보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과 민족의 창조성이 깃든 신화라 할 수 있다.
동명 신화는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을 배경으로 하는 신화이며, 고구려의 주몽 신화는 동명왕 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동명성왕 신화는 천제(天帝)가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해모수(解慕漱) 신화이다. 해부루(解夫婁)의 상(相) 아란불(阿蘭弗)이 천제의 명을 받아 가엽원(迦葉原)으로 이동해 간 동부여(東扶餘) 천국 설화(遷國說話), 해부루의 아들 금와 신화(金蛙神話) 등도 고구려 부족 간에 전승된 것으로 소박한 민중성(民衆性)을 반영한 숭엄한 역사였다. 이 역사는 고구려 부족이 쑹화강(송화강) 유역의 부여족 계열에서 분파되어 압록강 중류의 훈강 유역으로 이동하며 한(漢)의 제군(諸郡)을 무찔러 대고구려국을 건설하던 과정을 주몽의 일대기로 압축·반영한 신화이다.
고주몽 신화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보다 《구삼국사》(舊三國史)에 자세히 기록되었고, 고려 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동명왕편》(東明王篇)에서는 장편 서사시로 미화되었다. 이 신화는 중국의 《후한서》, 《위서》(魏書), 《주서》(周書), 《수서》, 《북사》(北史)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석탈해(昔脫解)·김알지(金閼智) 등의 신화도 국조 신화(國祖神話)로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알영 신화에서 시조 박혁거세는 고대 제의(祭儀)에서 모시던 신으로, ‘혁’(赫)은 ‘불거내’(弗矩內)[10]로 시조신이자 수호신인 광명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석탈해 신화는 토함산(吐含山) 산신으로, 용궁의 용왕계(龍王系)의 존재인 듯하며, 지리성을 반영하고 해양 신화를 이룬다. 김알지 신화에서 김(金)씨의 시조 김알지는 원시 농경 사회에서 농신격(農神格)의 곡령(穀靈)·곡동(穀童)의 신화적 표현이다. 그 제사 의식은 박·석·김 삼성 중 김씨계가 왕권을 잡은 후 지금의 계림(鷄林)에서 농경 국가의 농신·시조신·수호신으로 국가적 존숭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수로왕 신화는 난생 신화(卵生神話)로 농경 사회의 최고신이며, 천신계(天神系)로 민중 간에 신앙이 된 듯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보면, 수로왕이 구지봉(龜旨峰) 상에 내려온 6개의 알 중 하나에서 탄생하고, 다른 알에서 태어난 다섯 동자와 함께 육가야(六伽倻)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6씨족 연맹체의 공동 시조의 제사 의식으로, 수로왕은 그 맹주(盟主)였다는 사회 현상을 반영한 것이다. 그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와 혼인하는데, 이 아유타국은 중인도(中印度)의 고대 왕국이다. 여기서 인도 동경(憧憬)의 농후한 불교 색채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후세의 윤색으로 추정된다. 수로왕 신화는 고대인의 제사 의식 자체를 반영하며, 고대 제요(祭謠)인 〈구지가〉와 연결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삼성 신화는 제주도의 삼성혈에서 탄생한 세 명의 신인들이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으로, 탐라의 건국 신화이다. 고려사, 탐라지 등에 해당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국가 건국 신화는 새로운 한국 왕국 또는 왕조의 첫 통치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건국자의 초자연적인 탄생, 건국자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그의 기적적인 죽음이나 떠남이 포함된다. 이러한 신화들은 종종 왕국의 건국 당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우주론적으로 해석된 기록으로 해석된다.
고대 한국 왕국(예: 고조선, 고구려, 신라)의 건국 신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들은 12세기 또는 그 이후에 편찬된 한국어 문서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문서에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응제시주'', 그리고 ''동국통감''이 포함된다. 이러한 문서들은 현재는 사라진 초기 자료를 바탕으로 편찬되었다. 여러 고대 중국 문서 또한 신화에 대한 중요한 동시대적 자료이다. 여기에는 3세기의 ''삼국지''와 6세기의 ''위서''와 같은 공식적인 왕조 역사뿐만 아니라 80년에 쓰여진 ''논형''과 같은 보다 일반적인 문서도 포함된다. 고구려의 경우, 고구려인 자신의 관점에서 왕국의 건국 신화를 서술하는 5개의 중국어 비석이 있다. 5개 중 가장 오래된 것은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이다.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한국을 통치했던 고려 왕조의 건국 신화는 15세기에 출판된 공식 왕조 역사인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용비어천가''는 후대 조선 왕조가 ''고려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판한 시로, 때로는 조선 건국 신화로 여겨지지만, ''용비어천가''를 서사시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조선이 마지막 한국 왕조였기 때문에 더 새로운 건국 신화는 없다.
국가 건국 신화는 예전에는 혹시 무당들에 의해 구전되기도 했다. 시인 이규보(1168~1241)는 그가 살아있던 시대에도 고구려 건국 신화의 서면 형태와 구전 형태 모두 알려져 있었다고 언급했는데, 비록 고구려 자체가 5세기 이상 전에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현대의 ''제석본 푸리'' 무속 서사는 고구려 신화와 많은 구조적 유사점을 가지고 있으며, 고대 이야기의 직계 후손일 수 있다.
고대(고려 이전) 국가 건국 신화는 북부와 남부의 두 가지 주요 유형으로 분류되지만, 둘 다 하늘과 관련된 왕이라는 중심 모티브를 공유한다. 고조선, 부여, 고구려와 같은 북부 왕국에서는 건국 군주가 천상의 남성 인물과 지상의 여성의 결합에서 태어난다. 신라와 금관가야와 같은 남부 왕국에서는 왕이 하늘에서 내려온 물체에서 생성된 후 지상의 여성과 결혼한다. 북부 신화에서 반신반인 왕은 그의 천상의 아버지를 계승하거나 새로운 왕국을 스스로 건설한다. 남부에서는 천상의 존재가 지역 족장들의 합의에 의해 즉위한다.
많은 문헌 신화는 왕조의 시조가 천손의 후예임을 이야기하는 건국 신화이며, 일본의 기기 신화와 마찬가지로 왕권의 신성성의 근원이 하늘에 있다는 생각이다. 많은 신화에서 천강(天降)한 시조는 지상에 머물지만, 고구려의 신화에는 지상과 천계를 왕래하는 것, 궁극적으로는 천계로 귀환하는 것도 있다.
2. 2. 기타 문헌 신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여러 건국 신화를 비롯하여 문헌으로 전해지는 신화들이다.- 단군 신화: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한민족의 대표적인 신화이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사람이 되도록 하였고, 곰이 웅녀로 변하여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내용이다.[10]
- 주몽 신화: 고구려 건국 신화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쑹화강 유역의 부여족에서 분파되어 압록강 중류 훈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고구려를 건국한 역사를 주몽의 일대기로 압축하여 반영하고 있다.
- 수로왕 신화: 가락국기에 전해지는 신화로, 구지봉에 내려온 6개의 알 중 하나에서 수로왕이 탄생하여 육가야의 시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 박혁거세 신화: 고대 제의에서 모시던 신으로, '혁'은 '불거내'로 시조신이자 수호신인 광명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10]
- 석탈해 신화: 토함산 산신으로, 용궁의 용왕계 존재로 추정되며 지리성과 해양 신화적 성격을 가진다.
- 김알지 신화: 원시 농경 사회의 농신격인 곡령, 곡동의 신화적 표현으로, 계림에서 농경 국가의 농신, 시조신, 수호신으로 국가적 존숭을 받았다.
- 삼성 신화: 제주도 삼성혈에서 탄생한 세 명의 신인이 탐라를 건국했다는 신화이다. 고려사, 탐라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3. 구전 신화
한국 신화는 전승 형태에 따라 문헌신화와 구전신화로 나뉜다. 구전신화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고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신화로, 민간신화와 무속신화(巫俗神話)가 있다.
구전신화는 오늘날 현지 조사를 통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채집되고 있다. 한국 신화를 주제별로 분류하면 우주 발생 신화, 인간 탄생 신화, 문명 기원 신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한국에는 건국 신화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헌에 기록된 것만 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류이다. 구전 신화까지 포함하면 한국 신화는 세계의 다른 신화처럼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주 발생 신화로는 제주도 지방에서 굿할 때 부르는 <초감제>와 함경남도 지방의 <창세가>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우주 발생 신화의 유형에는 '무(無)로부터의 창조(ex nihilo)', '알[卵]에서의 탄생', '천지개벽(天地開闢)' 등이 있는데, 한국의 경우에는 천지개벽형이 대부분이다.
인간 탄생 신화에는 <당곰 애기 신화> <남매혼 신화> 등이 있다. 한국 신화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문명 기원 신화이다. 문명 기원 신화란 농경, 치병(治病), 건국 등과 같이 문화의 기원을 다루는 신화를 말한다. 제주도 지방의 <세경본풀이>, 고창 지방의 <손님풀이> 등과 같은 무속 신화가 여기에 속한다. <세경본풀이>와 <손님풀이>는 각각 농경과 천연두에 관한 신화이다.
구전 신화의 대부분은 무속의 노래(무가)이다. 그 세계관에는 기존의 하느님 신화와 도교, 불교가 융합된 것이 많다.[1] 문헌 신화에서는 하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거의 없지만, 무속 신화가 말하는 천상계는 신들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지상계와 다름없는 경관과 생활이 펼쳐진다. 또한, 사람의 영혼은 하늘에서 유래하며, 사후에는 하늘로 귀환한다는 관념이 인정된다.[2] 예를 들어, 제주도의 『산신婆본해』에서는 사람의 생명·영혼은 서천의 꽃밭에서 재배되는 주화에 깃들고, 산신이 이 꽃을 인간에게 줌으로써 분만된다고 한다.
무가권(巫歌圈)으로 불리는 한국의 샤머니즘 신화는 크게 다섯 개의 지역적 전통으로 나뉜다. 이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제석본풀이』와 『바리공주』 두 서사시의 주요 변이를 나타낸다.[3] 다섯 지역 각각은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신화들을 가지고 있으며, 서사의 실제 공연에서도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특히 남쪽 제주도의 신화 전통은 다른 지역과 매우 다르다.[4]
한국 신화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인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서 신화 자료가 가장 부족하고, 북쪽의 함경남도와 남쪽의 제주도와 같은 가장자리 지역에서 가장 방대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 두 지역의 신화는 가장 고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5]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함경도와 제주도 모두에서 유사한 신화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두 신화가 공통된 고대 한국의 원천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 북부 전통: 북부 지역 전체가 현재 북한에 속해 인류학적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류학자 홍태한은 이를 편의상 만든 분류라고 부르는데, 그곳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지역적 다양성은 현재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6] 함경남도의 종교는 다른 북부 무속과는 독립적인 일관된 무속 전통을 형성할 수 있다.[7] 함경남도 신화에는 독특한 무속 서사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남편을 만나려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도랑선비와 청정각시의 노래''이다.[8] 다른 주목할 만한 함경남도 신화로는 창세 신화와 제석본풀이를 결합한 ''생굿'' 서사시, 부부가 돈의 신이 되는 ''돈전풀이'', 그리고 환생하여 살인자의 아들로 태어나 복수하는 세 소년에 관한 ''짐가장'' 서사시가 있다.[9] 반대로 북한의 황해도에는 무속 신화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에서 신화적 서사가 수행하고 오락의 역할을 하는 것을 특별히 발달된 의례적 무용과 연극 전통이 대신하고 있다.[10] 2008년 탈북한 북한 무당에 따르면, 무속은 현대 북한에 널리 퍼져 있으며 사실상 국가에 의해 묵인되고 있지만, 옛 노래와 주문은 더 이상 전승되지 않는다.
- 서중부 전통: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의 신화 전통이며, 서사의 신성한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낭송은 주로 신에게 행해지며, 물리적으로 현장에 있는 인간 신자들에게는 행해지지 않는다. 전승된 전통의 관용구가 자주 사용된다. 홍태한은 서중부 신화를 한국 무속 서사 중 가장 "엄숙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서울 무당들이 종종 왕궁에서 왕비와 다른 궁녀들을 위해 의례를 거행했고, 그들은 의례에서 품위와 엄숙함을 기대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지역은 신화의 수도 가장 적다. 서중부 지역 특유의 서사는 가정의 수호신의 기원을 설명하는 『성주풀이』뿐이다. 서울 자체에서는 『바리공주』만이 무속 서사로 공연된다.
- 동해안-경상 전통: 영동 및 경상도 지역의 무당들은 인간 신자들을 위해 이야기를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야기는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며, 수사법의 다양성은 전례가 없다. 홍태한은 영동 지역 무가 집안을 "한국 전체에서 가장 숙련된 공연 예술 집단"이라고 언급한다. 음악가들은 단순히 배경 음악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공연에 직접 개입하고, 공연하는 무당은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민요나 불교 찬불가와 같은 비무속 음악이 적절한 순간에 이야기에 통합된다. 이 지역의 특징적인 이야기에는 손님(천연두 신)의 여정]]에 대한 매우 상세한 묘사가 포함된다. 현재 이 지역은 가장 활발한 신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 전라도 전통: 전국적인 한국 신화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부유한 사람이 죽음의 신을 피하는 이야기인 ''장자풀이''와 칠성신이 된 일곱 형제에 관한 ''칠성풀이'' 등 다른 두 신화가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닌다. 2002년 현재 전라도 신화는 쇠퇴하고 있었다.
- 제주 전통: 본풀이는 신화의 신성함을 강조하여, 무당은 제사상을 향해 서서 이야기를 노래하고, 음악가와 참배객에게는 등을 돌린다. 많은 이야기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이, 제주도 신화의 명시적인 목적은 신들의 삶과 행적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 제주도는 가장 풍부한 무속 이야기 자료를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바리공주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은 유일한 전통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나 제주도 신화 전통은 위험에 처해 있다. 14일이 걸리는 가장 큰 제주굿은 요즘 거의 완전히 행해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신화는 이미 무당들에 의해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한국 본토 마을들도 전통적으로 특정 수호신과 관련되어 있다. 조선 왕조는 이러한 신들에 대한 예배에서 전통적인 무속보다 유교식 예배를 강력하게 장려했다.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대부분의 중요한 마을 신 제사가 유교식 규범에 따라 남성들에 의해 거행되었으며, 한국어 대신 중국어로 기도를 올렸다. 따라서 이러한 신들과 관련된 신화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무속 신화가 아니거나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러한 이야기들은 슬픈 영혼을 달래는 것에 대한 강조와 같이 무속 신앙을 반영한다. 무속 신화와 마찬가지로, 마을 신당 신화는 종종 숭배되는 신의 정체를 설명하는, 신에게 바쳐지는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마을 신화는 살아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 소야 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어떤 병사들이 살아남을지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믿고 있다.
전라남도의 마을 신당 신화 94개에 대한 연구에서 표인주는 신이 자연물로 확인되는지 아니면 인간의 영혼으로 확인되는지에 따라 신화를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눈다. 신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연물은 나무, 용, 그리고 바위이다. 예를 들어, 광양 장동 마을에서는 한 나무가 1592년 임진왜란 중 어느 날 울었다고 한다. 이 이상한 소리에 모든 마을 주민들이 나무로 몰려들었는데, 그때 일본군이 공격해 왔다. 마을이 버려진 것을 발견한 일본군은 함정을 의심하고 떠났다. 며칠 후 일본군은 돌아와 나무를 베려고 했지만, 나무는 거대한 가지들을 떨어뜨려 그들을 모두 죽였다. 그 후 일본군은 감히 마을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현지 주민들은 그 나무를 신으로 숭배해 왔다.
인간의 영혼으로 확인되는 마을 신들은 종종 마을의 창시자이거나, 또는 슬픔이나 원한 때문에 죽은 후에도 인간 세상에 남아 있는 슬픈 영혼(원혼|願魂한국어)이다. 예를 들어 살해당했거나 어린아이로 죽었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밖의 구전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마고 창세 설화
- 비류 온조 신화
- 제주 개벽 신화
- 바리데기 설화
- 고려 개국 신화
- 조선 개국 신화
- 자청비 신화 (자청비): 양반의 딸인 자청비가 여러 시련을 극복한 후, 신의 아들인 무드령과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자청비는 곡물을 가지고 땅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농업의 신이 되었다.
3. 1. 창세 신화

여러 한국 무속 신화는 세상의 창조와 원시 역사를 다룬다. 가장 완전한 창세 신화는 북부와 제주 전통에서 발견되지만, 서중부 전통에서도 하나가 알려져 있다.[1] 여러 동해안판 ''제석본풀이''도 관련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2]
북부와 제주의 창세 신화는 많은 요소를 공유한다.[3] 두 전통 모두에서 우주는 원래 융합되어 있던 천지의 분리로 창조된다.[4] 거인이 창조에 종종 관여하는데, 한 북부 신화에서는 천지를 쪼갠 창조신 미륵(Mireuk)이 섬(seom)(180리터) 단위로 곡식을 먹고 소매 길이가 20척(feet)(6.7미터)인 옷을 입었다고 한다.[5]
북부와 제주 신화 모두에서 자비로운 신이 인간 세계의 지배권을 주장하는 침략자에게 도전받는다. 두 신은 누가 통치할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세 번의 경쟁을 벌인다. 두 경우 모두 마지막 시험은 꽃 기르기 경쟁인데, 더 나은 꽃을 기른 신이 인류를 책임진다. 자비로운 신이 (더 나은) 꽃을 기르지만, 다른 신이 잠든 동안 침략자가 그것을 훔친다. 이 마지막 시험에서 승리한 침략자는 세상을 장악하지만, 그의 불의한 승리는 현재 세상의 악과 고통의 근원이 된다.[6] 북부와 제주 창세 신화는 모두 한때 해와 달이 두 개씩 있어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매우 추웠던 이야기를 전하며, 신이 각각 하나씩 파괴할 때까지 그랬다고 한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부와 제주의 창세 신화는 구조적으로 상당히 다르다. 북쪽에서는 두 주인공이 창조주 미륵(Mireuk)과 침략자 석가(Seokga)이다. 둘 다 불교 이름으로 각각 미륵보살과 석가모니를 가리킨다. 그러나 신화가 불교와 무관한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원래 이름이 어느 시점에서 대체된 토착 신으로 여겨진다.[8] 두 신은 마지막 꽃 경쟁 전에 초능력 결투 (예: 한여름에 강을 얼게 하거나, 공중에서 술병을 치고 병이 깨지고 떨어져도 술이 공중에 떠 있게 하는 등) 두 번의 결투를 벌인다.[9] 대부분의 신화에서 석가(Seokga)의 불의한 승리 후에 해와 달이 두 배가 되거나 사라지고, 침략자는 해와 달을 되찾거나 겹쳐진 것을 파괴하여 우주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탐구를 시작해야 한다.[10] 북부 전통에서만 인류의 창조에 대해 논하는데, 한 신화에 따르면 미륵(Mireuk)이 곤충을 인간으로 키운다고 한다.
제주 창세 신화는 불교의 영향을 보이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천지왕(Cheonji-wang)이라는 하늘 신이 창조 후 얼마 후에 지상으로 내려와 종종 수명장자(Sumyeong-jangja)라는 불경한 사람을 벌하기 위해 내려온다. 거기서 그는 지상의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하고 하늘로 돌아갈 때 두 개의 조롱박 씨앗을 준다. 그 여자는 쌍둥이 대별왕(Daebyeol-wang)과 소별왕(Sobyeol-wang)을 낳는다. 형제가 자라면서 조롱박 씨앗을 심는데, 하늘까지 뻗어나가는 거대한 덩굴이 된다. 쌍둥이는 이 덩굴을 타고 아버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혈통을 확인한 후, 쌍둥이는 누가 인간 세계를, 누가 죽은 자의 세계를 다스릴지 결정하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두 번의 수수께끼 경쟁 후, 동생이 부정행위를 통해 마지막 꽃 경쟁에서 승리하고 산 자를 책임진다. 소별왕(Sobyeol-wang)의 영역인 인간이 사는 물리적 세계는 고통과 무질서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대별왕(Daebyeol-wang)은 인간의 영혼이 죽은 후 가는 그의 저승 왕국에 정의와 질서를 세운다.
: 설문대할망은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창세신(「할망」은 "할머니"라는 뜻)이다. 한국 반도의 인격신이자 여신이며, 키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큰 거인이다. 바다에 빠져 죽었다거나, 아홉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 그 죽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주도의 여신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마고 등으로 불린다.
- 대별왕 소별왕 신화 (대별왕 소별왕)
: 태초에는 모든 것이 말할 수 있었고, 해와 달이 각각 두 개씩 있었다. 천지왕의 아들인 대별왕과 소별왕은 언어를 정리하고, 활로 해와 달을 각각 하나씩 쏘아 떨어뜨렸다. 소별왕의 계략(※불명확: 환술인지, 또는 책략이나 음모인지?)으로 인해 대별왕은 저승의 왕이 되고, 소별왕은 현세의 왕이 되었다.
: 한국에서 활발한 무당 등 여성 무녀들이 자신의 영력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부르는 시조 신화이다. 이씨 왕조의 어느 왕가에 태어났으나,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었기에 버려진 일곱 번째 딸 바리공주("바리"는 "버리다"라는 의미)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불로초를 구하러 여행을 떠나, 지옥에 사는 신선과 결혼하여 얻은 약수로 이미 죽은 부모를 되살리는 이야기이다. 경성제국대학교 교수였던 아키바 타카시가 기록(1930년대 추정)하여 처음으로 문자화하였다. 이후 다른 전승자가 기록한 것이 몇 가지 존재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아키바가 기록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바리공주는 무녀의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 자청비 신화 (자청비)
: 양반의 딸인 자청비가 여러 시련을 극복한 후, 신의 아들인 무드령("드령"은 "도련님"이라는 뜻)과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자청비는 곡물을 가지고 땅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농업의 신이 되었다.
3. 2. 인간 탄생 신화
인간 탄생 신화에는 <당곰 애기 신화> <남매혼 신화> 등이 있다.3. 3. 무속 신화
무당의 이야기는 대규모 무속 의례인 ‘굿’에서 불리는 구전문학 작품으로, 한국의 토착 다신교인 한국 무속의 신화를 구성한다.[1]조선 왕조(1392~1910)의 장기 집권 이후 한국인의 전통 종교에 대한 태도는 모순적이었다.[2] 국가 이념이 주자학이었던 조선은 무속에 반대했으며[10], 공적 영역에서 무속을 제거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인들이 조선 국가의 가부장적이고 무속 반대적인 이념을 점점 더 받아들이면서 무속은 새로운 사회 구조에 의해 소외된 여성들과 점점 더 관련되게 되었다. 조선 사회에서 무속이 공적인 영향력 없이 여성들의 사적인 종교로서 여전히 관용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제한된 역할 때문이었다.
한국 종교 생활에서 무속이 중요한 힘으로 계속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무속에 대한 문화적 모순은 지속된다. 2016년 기준으로 서울만 해도 수백 곳의 의례 장소가 있으며, 거기서 굿이 일 년 중 대부분의 날에 열린다.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많은 신자들—종종 한국의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뿐만 아니라 무속인들도—자신들의 무속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앙을 미신으로 깎아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을 반영하여, 무속과 그 신화는 종종 한국의 주류 가치관과 공식 문화에 대한 반항으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일부는 유교적 미덕과 같은 주류 사상을 동시에 통합하기도 한다. 바리공주 이야기가 전형적인 예이다. 이 신화는 공주가 부모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가는 여정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효도라는 유교적 미덕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의 구세주는 아들이 아니라 딸이며, 실제로 바리의 부모가 단지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 버린 바로 그 딸이다. 나중에 바리는 유교 문화가 여성들에게 결혼 후 남편의 가족에게 충성심을 옮길 것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위해 남편을 떠난다. 따라서 이 신화는 유교의 가치를 이용하여 가부장적인 유교적 틀을 뒤엎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모든 무속 이야기는 다양한 정도이지만 종교성과 오락 모두의 목적을 충족한다. 무속 이야기는 비종교적인 상황에서 거의 불리지 않으며, 의례적 맥락은 신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바리 이야기는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보내지는 의식에서 공연된다. 바리는 영혼을 인도하는 여신이며, 공주의 여정 이야기는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이 좋은 손길에 있다는 것을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확신시켜 준다. 동시에 무당들은 신자들을 즐겁게 하려고도 한다. 이것은 신화를 다시 이야기하는 데 수수께끼, 유행가, 유머러스하거나 성적인 묘사를 삽입하거나, 반주 음악가들이 종종 저속한 농담으로 이야기를 방해하게 함으로써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머러스한 요소들은 성차별과 계급 구조에 대한 비판과 같은 많은 무속 신화의 반항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구전문학으로서 무속 이야기는 전승과 공연하는 무당의 독창적인 혁신 모두의 영향을 받는다. 많은 이야기에는 신화의 여러 버전이나 여러 신화를 통틀어 동일하게 나타나는 긴 관용적인 단락과 이미지가 있으며, 무당들은 노래를 처음 배울 때 이를 암기한다. 예를 들어, 바리 어머니의 임신에 대한 매우 은유적인 묘사는 바리 공주 신화가 공연되는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반면에 무당들은 정기적으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고 구절을 바꾸며, 같은 무당이라도 굿의 특정 상황에 따라 같은 신화의 다른 변형을 부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일관성이 기대된다. 한 경우 제주 무당이 「초공본풀이」 이야기를 낭송하는 중에 부정확한 세부 사항을 말했다는 이유로 열 번이나 중단되었고, 더 경험이 많은 무당들이 그에게 가르친 사람의 이름을 말하라고 요구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따라서 무속 신화는 구전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보수적이다.
문학적 신화와 달리 무속 신화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는 살아있는 전통이다. 1960년대에 강원도 동부의 알려지지 않은 무당이 맹인을 포함하는 이야기인 심청가를 눈병을 막기 위해 낭송되는 새로운 심청굿 이야기로 각색했다. 새로운 신화는 그 이후로 그 지역에서 매우 인기를 얻었다. 또 다른 새로운 신화로 보이는 것은 1966년과 1969년에 같은 의식이 거행되었을 때는 증명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974년 강릉에서 처음 등장한 젬면굿 이야기이다. 젬면굿 신화는 그 이야기에 대한 명확한 출처가 없으며, 연구자들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이야기 세부 사항이 증가한 것을 언급했다. 다른 여러 무속 이야기들은 어느 시점에서 후기 조선 시대 구어 문학에서 각색되었거나, 아니면 후기 조선 시대 구어 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무속 이야기와 다른 동아시아 신화, 특히 만주 무속 신화 사이의 문화적 유사성도 주목되었다.
한국 무속은 현재 신화의 장시간 공연에 유리하지 않은 주요 구조 조정을 겪고 있다.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 중심의 의식은 감소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신자들이 의뢰한 의식은 증가하고 있다. 굿의 장소도 전통적으로 의식에 참여했던 공개 참여와는 달리 무당과 관련 신자들만 있는 의례 장소로 바뀌었다. 이러한 개별 신자들 대부분은 신화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서 이야기가 시작되면 떠나는 경우도 있지만, 무당이 신으로부터 신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수 의례와 같이 자신이나 친구 및 가족과 특별히 관련된 의식에 매우 투자한다. 다른 형태의 오락이 등장함에 따라 무속 의례의 오락적 가치도 감소했다. 적어도 서울에서는 바리 공주 공연이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많은 새로운 무당들이 이제 전통적으로 더 경험이 많은 무당에게 직접 배우는 대신 출판된 책이나 녹음에서 이야기를 배우기 때문에 신화의 지역적 다양성도 감소하고 있을 수 있다.
서구 독자들에게 친숙한 그리스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와 달리 한국 무속 신화의 신들은 대부분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각 무속 이야기는 그 신화가 헌정된 신들의 본질과 기능을 확립하지만, 이전에 자신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신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신들의 계보를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가권(巫歌圈)으로 불리는 한국의 샤머니즘 신화는 크게 다섯 개의 지역적 전통으로 나뉜다. 이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제석본풀이』와 『바리공주』 두 서사시의 주요 변이를 나타낸다. 다섯 지역 각각은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신화들을 가지고 있으며, 서사의 실제 공연에서도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특히 남쪽 제주도의 신화 전통은 다른 지역과 매우 다르다.
한국 신화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인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서 신화 자료가 가장 부족하고, 북쪽의 함경남도와 남쪽의 제주도와 같은 가장자리 지역에서 가장 방대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 두 지역의 신화는 가장 고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함경도와 제주도 모두에서 유사한 신화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두 신화가 공통된 고대 한국의 원천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북부 전통은 그 지역 전체가 현재 북한에 속해 인류학적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인류학자 홍태한은 이를 편의상 만든 분류라고 부르는데, 그곳에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지역적 다양성은 현재 학문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함경남도의 종교는 다른 북부 무속과는 독립적인 일관된 무속 전통을 형성할 수 있다. 함경남도 신화에는 독특한 무속 서사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은 남편을 만나려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도랑선비와 청정각시의 노래''이다. 다른 주목할 만한 함경남도 신화로는 창세 신화와 제석본풀이를 결합한 ''생굿'' 서사시, 부부가 돈의 신이 되는 ''돈전풀이'', 그리고 환생하여 살인자의 아들로 태어나 복수하는 세 소년에 관한 ''짐가장'' 서사시가 있다.[3] 반대로 북한의 황해도에는 무속 신화가 거의 없다. 다른 지역에서 신화적 서사가 수행하고 오락의 역할을 하는 것을 특별히 발달된 의례적 무용과 연극 전통이 대신하고 있다.
2008년 탈북한 북한 무당에 따르면, 무속은 현대 북한에 널리 퍼져 있으며 사실상 국가에 의해 묵인되고 있지만, 옛 노래와 주문은 더 이상 전승되지 않는다.
서중부 전통은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의 신화 전통이며, 서사의 신성한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낭송은 주로 신에게 행해지며, 물리적으로 현장에 있는 인간 신자들에게는 행해지지 않는다. 전승된 전통의 관용구가 자주 사용된다. 홍태한은 서중부 신화를 한국 무속 서사 중 가장 "엄숙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서울 무당들이 종종 왕궁에서 왕비와 다른 궁녀들을 위해 의례를 거행했고, 그들은 의례에서 품위와 엄숙함을 기대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지역은 신화의 수도 가장 적다. 서중부 지역 특유의 서사는 가정의 수호신의 기원을 설명하는 『성주풀이』뿐이다. 서울 자체에서는 『바리공주』만이 무속 서사로 공연된다.
서중앙 지역의 전통과는 대조적으로, 영동 및 경상도 지역의 무당들은 인간 신자들을 위해 이야기를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야기는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며, 수사법의 다양성은 전례가 없다. 홍태한은 영동 지역 무가 집안을 "한국 전체에서 가장 숙련된 공연 예술 집단"이라고 언급한다.[4] 음악가들은 단순히 배경 음악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공연에 직접 개입하고, 공연하는 무당은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민요나 불교 찬불가와 같은 비무속 음악이 적절한 순간에 이야기에 통합된다. 이 지역의 특징적인 이야기에는 손님(천연두 신)]의 여정에 대한 매우 상세한 묘사가 포함된다. 현재 이 지역은 가장 활발한 신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전라도의 전통은 전국적인 한국 신화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부유한 사람이 죽음의 신을 피하는 이야기인 ''장자풀이''와 칠성신이 된 일곱 형제에 관한 ''칠성풀이'' 등 다른 두 신화가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닌다. 2002년 현재 전라도 신화는 쇠퇴하고 있었다.
제주 전통인 본풀이는 신화의 신성함을 강조하여, 무당은 제사상을 향해 서서 이야기를 노래하고, 음악가와 참배객에게는 등을 돌린다. 많은 이야기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이, 제주 신화의 명시적인 목적은 신들의 삶과 행적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5] 제주도는 가장 풍부한 무속 이야기 자료를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바리공주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은 유일한 전통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나 제주 신화 전통은 위험에 처해 있다. 14일이 걸리는 가장 큰 제주굿은 요즘 거의 완전히 행해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신화는 이미 무당들에 의해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다.
'''제석본풀이'''는 한국 전역의 다섯 지역 전통에서 모두 발견되는 유일한 진정한 전국적인 신화이다. 본토 버전의 서사는 제석 신들의 기원을 설명한다. 다산 신들은 행운과 농업의 번영을 보장하며, 종종 삼신 즉, 출산의 여신과 관련이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제주도 버전을 제외하고 61개의 알려진 '''제석본풀이''' 버전이 있다.

모든 버전은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공유한다. 당금애기는 귀족의 처녀 딸이다. 부모와 형제들이 일시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한 불교 승려가 그녀의 집에 탁발을 온다. 당금애기는 쌀을 시주하지만, 승려는 보통 그녀가 준 쌀을 모두 쏟아 시간을 끌어 그녀가 줍고 다시 시주하도록 한다.
전라도 지역 전통에서는 승려가 떠나기 전에 잠깐 그녀의 손목을 잡는다. 서중부 지역 전통에서는 당금애기가 승려가 쏟은 쌀알 세 개를 먹는다. 북부와 동해안-경상 지역 전통에서는 소녀가 아버지 방에 승려에게 숙소를 제공하지만, 승려는 거절한다. 승려는 그녀가 자신의 방을 함께 쓰는 데 동의할 때까지 저택의 모든 방을 차례로 거절하고, 그곳에서 그들은 성관계를 갖는다. 어떤 경우든, 소녀는 임신하게 된다. 가족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때로는 바위와 흙이 부모와 형제들 위에 떨어지는 동안 천상의 빛이 소녀에게 비추기 때문이다.
서중부와 전라도 지역 전통에서는 그들은 그녀를 집에서 쫓아낸다. 당금애기는 성공적으로 승려를 찾아 그의 곁에서 아들들을 낳는데, 보통 세 쌍둥이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승려는 불교를 버리고 그녀와 아들들과 가정을 꾸린다. 전라도 지역 전통에서는 아무도 신이 되지 않고 신화가 여기서 끝난다. 서중부 지역 전통에서는 승려가 당금애기와 함께 제석신으로 아들에게 신성을 부여한다.
북부와 동해안-경상 지역 전통에서는 가족이 당금애기를 구덩이 또는 돌 상자에 가두지만,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항상 세 쌍둥이 아들을 낳는다. 그런 다음 당금애기는 가족에게 돌아온다. 대부분의 버전에서 세 쌍둥이는 초자연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어 다른 아이들이 질투심으로 여러 번 살해 시도를 하지만 실패한다. 어느 날, 세 쌍둥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묻는다. 당금애기는 보통 여러 나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각 나무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세 쌍둥이에게 말한다. 그녀가 진실을 인정하자, 형제들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그들이 승려의 사찰에 도착했을 때, 승려는 그들의 부모임을 확인하기 위해 일련의 불가능한 과제를 준다. 여기에는 종이 신을 신고 물에서 걷는 동안 종이를 젖지 않게 하는 것, 3년 동안 죽은 소의 뼈만으로 강을 건너는 것, 짚으로 수탉을 만들어 앉아서 울게 하는 것, 그리고 물고기를 먹고 살아있는 상태로 토해내는 것이 포함된다. 세 쌍둥이는 이 모든 과제에 성공하고, 승려는 자신의 피가 세 쌍둥이의 피와 섞이는 것을 보고 그들이 자신의 아들임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승려는 당금애기를 출산의 여신으로, 세 쌍둥이를 제석신 또는 동등한 다산 신으로 만든다.
북부와 동부 지역 전통에서는 '''제석본풀이'''는 종종 창조 신화와 연결되는데, 석가라는 침략자는 당금애기를 임신시킨 승려와 같은 신이다. 홍태한에 따르면, '''제석본풀이'''는 원래 창조신의 행위를 중심으로 한 더 긴 서사의 에피소드였을 가능성이 높으며, 오늘날 남함경도의 '''성굿''' 서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그렇다. 창조 신화가 뒤따르는 북부 버전의 '''제석본풀이'''는 따라서 가장 고대의 것이다.
불교적인 외관에도 불구하고, 승려는 하늘의 신의 많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여러 버전에서 승려는 천국의 궁전에 산다고 하거나, 종이 말을 타고 구름을 타고 집으로 들어온다고 하거나, 무지개를 다리로 사용하여 당금애기를 데리고 천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많은 버전에서 승려 또는 그의 사찰을 "황금"이라고 언급하는데, 이것은 고대 중세 한국어 구절 ''한 갃'' "대신"의 변형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신화는 지상의 여인이 천상의 남성과 임신하여 숭배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을 낳는 신화이다. 학자들은 소녀와 승려의 만남과 고구려 건국 신화에서 유화와 해모수의 만남, 그리고 세 쌍둥이의 아버지 찾기와 그 후의 신성 획득과 주몽을 찾아 왕으로 즉위한 유리의 탐구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했다.
'''바리공주''' 설화는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2016년 기준으로 약 100가지의 설화 변형이 학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그중 절반가량은 1997년 이후에 기록되었다. 1998년 기준으로 알려진 모든 변형은 고인을 위한 ''굿'' 의례에서만 불렸다. 따라서 바리공주는 장례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여신이다. 바리의 정확한 역할은 버전에 따라 다르며, 때로는 신이 되지 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무당의 수호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자, 또는 북두칠성의 여신으로 여겨진다.

많은 변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본적인 줄거리에 동의한다. 거의 모든 변형에서 공유하는 첫 번째 주요 에피소드는 왕과 왕비의 결혼이다. 왕비는 호화롭게 대우받는 여섯 딸을 연달아 낳는다. 일곱 번째 임신 중 왕비는 상서로운 꿈을 꿉니다. 왕실 부부는 이것을 마침내 아들을 낳는 징조로 여기고 축하 준비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실망한 왕은 딸을 버리라고 명령하고, "바리"라고 이름을 짓는다. 어떤 버전에서는 동물들에게 보호받아 처음 두 번은 버려져야만 했다. 그 후 소녀는 부처(그녀를 보고 여자이기에 제자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을 후회함), 산신 또는 황새와 같은 존재에게 구출된다.
바리가 자란 후, 그녀의 부모 중 한 명 또는 두 명 모두 중병에 걸린다. 그들은 서방정토의 약수로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버전에서 왕과 왕비는 여섯 명의 큰딸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부탁하지만, 모두 거절한다. 절망한 왕과 왕비는 바리 공주를 다시 찾으라고 명령한다. 다른 버전에서는 왕실 부부가 꿈이나 예언을 통해 딸을 찾으라는 말을 듣습니다. 어떤 경우든 바리는 궁정으로 데려와진다. 그녀는 서방정토로 가는 것에 동의하고, 보통 남자의 옷을 입고 떠납니다.
바리의 모험의 세부 사항은 버전에 따라 다릅니다. 1930년대 서울 근처 무당이 낭송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에서, 그녀는 3천 리를 간 후 부처를 만납니다. 그녀의 변장을 간파하고 그녀가 여자임을 지적하면서, 부처는 그녀가 정말로 3천 리를 더 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바리가 죽더라도 계속 갈 것이라고 대답하자, 부처는 그녀에게 비단꽃을 주고, 그 꽃은 광대한 바다를 육지로 바꾸어 그녀가 건널 수 있게 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가시와 강철로 된 높은 요새에 갇힌 수억 명의 죽은 영혼을 해방시킨다.
바리가 마침내 약수터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양한 성격의) 초자연적인 수호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수호자 역시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자신을 위해 일하고 아들을 낳도록 강요한다. 이 일이 끝나면—버전에 따라 최대 12명의 아들을 낳을 수 있다—그녀는 약수와 부활의 꽃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부모(또는 부모 중 한 명)가 이미 죽었고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장례 행렬을 중단하고 관뚜껑을 열고 꽃으로 부모를 부활시키고 물로 치료한다. 대부분의 버전에서 공주는 그 후 신성을 얻는다.
한반도의 네 개 지역 전통은 각각 고유한 ''바리공주'' 요소를 가지고 있다. 서중부 전통은 강한 불교적 영향을 받았다. 구원자는 항상 부처이며, 그는 그녀를 좋은 업을 원하는 늙은 자식 없는 부부에게 양육시킨다. 동해안과 경상도 전통은 바리의 모험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약수의 수호자를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하는 망명한 신으로 묘사한다. 전라도 전통은 가장 세부 사항이 적으며, 바리가 남자로 변장했다는 언급이 없다. 지역 내에서도 다양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1930년대 버전에서는 부활의 나무를 언급하지만, 다른 서중부 버전을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버전에서는 꽃을 포함한다.
북부 전통은 남함경도의 두 버전만으로 대표되지만,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공주는 스스로 신성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 신의 자비를 통해 도달한다. 거기서 바리는 부활의 꽃을 훔쳐 달아납니다. 그녀는 이야기의 끝에서 여신이 되지 않고 갑자기 죽고, 그녀가 부활시킨 어머니도 곧 죽습니다. 살아있는 세상과 사후 세계를 잇는 장례식에서의 그녀의 신성한 역할은 지역 여신 청정각시로 대체된다.
'''바리공주'''는 전통적으로 왕실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어왔으며, 1762년 쌀독에서 굶어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혼을 위해 정조가 그 공연을 후원했다는 증거가 있다. 현대 서울 무당들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오래된 버전에는 한국 궁정 특유의 전문 용어가 많았다. 만주 민담 ''니산 무당 이야기''와의 유사점도 지적되었다.

대부분의 한반도 무속 이야기는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특정 지역의 전통에서만 전승된다. 특히 함경남도는 이러한 지역 신화가 풍부했는데, '망묵굿' 장례 의식에서만도 아홉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다. 함경남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화 중 하나는 '도랑선비와 청정각시의 노래'이다. 이 신화는 남편 도랑선비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청정각시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금탑사의 승려는 그녀가 남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일련의 과업을 수행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모든 머리카락을 뽑아 밧줄로 꼬고,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고통스러워 소리 지르지 않고 밧줄에 매달리는 것(밧줄이 손바닥을 통과함), 석유에 세 손가락을 3년 동안 담근 후 불을 붙여 기도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손으로 거친 산길을 포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랑선비와 일시적으로만 재회할 수 있다. 한 버전에서는 남편이 부활한 날 사고로 물에 빠져 죽는다. 죽으면서 그는 다시 만나기 위해 아내에게 자살을 하라고 말한다. 청정각시는 자살하고 저승에서 남편과 재회한다. 얼마 후, 그들은 모두 신이 된다. 도랑선비와 청정각시는 망묵굿 장례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으며, 불교 사찰에서도 부처 다음으로 숭배받았다.
다양한 한국 신화를 보여주는 증거로, 동해안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유랑하는 남녀 천연두 신들의 무리인 손님네의 지역적 이야기는 위의 비극적인 로맨스와는 완전히 다른 주제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천연두 전염병 동안 이 위험한 신들을 달래고 가벼운 질병만 유발하도록 하며, 잠재적인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공연되었다. 1987년에 공연된 전형적인 버전에서, 중국에 사는 남녀 천연두 신들의 무리인 손님네 중 세 명이 어느 날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국경의 뱃사공은 여자 손님이 강을 건너기 위해 자신과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여신은 즉시 그를 죽이고, 그의 일곱 자녀 중 여섯 명을 천연두로 죽인다. 그의 아내가 자비를 구하자, 그녀는 막내를 맹인이자 움직일 수 없는 꼽추로 살게 한다.
서울에서 손님네는 부유한 김장자의 집에서 쫓겨나 가난한 노파의 집에 머문다. 그녀의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신들은 그녀와 그녀의 손녀에게 큰 행운을 준다. 노파는 또한 손님네에게 김장자의 열다섯 살 된 아들 철현을 축복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김장자가 두 번째로 손님네를 거절하자, 여자 손님은 철현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그를 유인하고 그에게 심각한 천연두를 선사한다. 김장자는 신들에게 송아지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하지만, 손님네가 그 질병을 상기시키자 제물을 거부한다. 분노한 신들은 철현을 죽이고, 그는 가장 어린 손님이 된다. 나중에 손님네는 김장자가 가난해졌고 철현의 죽음으로 자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70세 된 김장자에게 새로운 아들을 준다.

제주 전통에는 가장 풍부한 신화가 있다. '본풀이'라고 불리는 무속 설화집은 크게 세 가지 또는 네 가지 범주로 나뉜다. 약 12개 정도의 일반적인 본풀이는 모든 무당들이 알고 있으며, 섬 전체에서 숭배되는 보편적인 기능을 가진 신들을 다룬다. 마을 신당 본풀이는 특정 마을의 수호신을 다루며, 해당 마을과 인근 마을의 무당들만 알고 있다. 조상 본풀이는 특정 가족이나 직업의 수호신에 관한 이야기인데, 범주명과는 달리 신이 실제 조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해당 가족이나 직업의 무당들만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분석에서는 더 이상 무당들에 의해 의례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특별 본풀이"라는 작은 네 번째 범주를 포함하기도 한다.
많은 일반 본풀이는 본토 설화와 분명한 관련이 있지만, 제주만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예로 제석 본풀이의 제주 버전인 ''초공 본풀이''가 있는데, 의례적 기능이 매우 다르다. 초공 본풀이의 초기 부분은 본토 중 가장 가까운 전라도 지역의 제석 본풀이 버전과 유사하다. 초자연적으로 임신한 십대 노가단풍아가씨(본토의 당금애기와 제주판에 해당)는 집에서 쫓겨나 제사장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제사장이 그녀를 떠나보내 혼자 셋쌍둥이를 낳게 한다. 전라도와는 달리, 북부와 동부 전통과 마찬가지로 셋쌍둥이는 아버지 없이 자란다.
그들이 3천 명의 유교 유학자들을 과거 시험에서 이기자, 질투심에 찬 유학자들은 노가단풍아가씨를 살해한다. 셋쌍둥이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제사장은 그들에게 이전의 삶을 버리고 무속에 입문하게 한다. 셋쌍둥이는 어머니를 성공적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최초의 무속 의례를 거행한 후, 저승에서 유학자들에게 정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저승의 신으로서 심판관이 된다. 제주 무당들에게 의례의 기원을 묻자 그들은 "초공 본풀이에서 그렇게 했었다"고 답한다.[6]
마을 신당 본풀이는 하나 또는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게 바쳐진다. 대부분은 공식적인 구조를 따른다. 가장 완전한 형태에서, 육식성 사냥의 신이 제주의 언덕에서 나타나고 농업의 여신이 해외, 종종 중국에서 온다.
3. 4. 기타 구전 신화
한국에는 그 밖에도 다음과 같은 신화와 설화가 있다.- 마고 창세 설화
- 비류 온조 신화
- 제주 개벽 신화
- 바리데기 설화
- 고려 개국 신화
- 조선 개국 신화
무가권(巫歌圈, muga-gwon)으로 불리는 한국의 샤머니즘 신화는 크게 다섯 개의 지역적 전통으로 나뉜다. 이는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는 『제석본풀이』와 『바리공주』 두 서사시의 주요 변이를 나타낸다.[1] 다섯 지역 각각은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신화들을 가지고 있으며, 서사의 실제 공연에서도 독특한 경향을 보인다. 특히 남쪽 제주도의 신화 전통은 다른 지역과 매우 다르다.[2]
한국 신화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인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인 서울과 그 주변 지역에서 신화 자료가 가장 부족하고, 북쪽의 함경남도와 남쪽의 제주도와 같은 가장자리 지역에서 가장 방대하고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 두 지역의 신화는 가장 고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3]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함경도와 제주도 모두에서 유사한 신화들이 발견되는데, 이는 두 신화가 공통된 고대 한국의 원천에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
서중부 전통은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의 신화 전통이며, 서사의 신성한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낭송은 주로 신에게 행해지며, 물리적으로 현장에 있는 인간 신자들에게는 행해지지 않는다. 전승된 전통의 관용구가 자주 사용된다. 홍태한은 서중부 신화를 한국 무속 서사 중 가장 "엄숙한" 것으로 묘사한다. 이는 서울 무당들이 종종 왕궁에서 왕비와 다른 궁녀들을 위해 의례를 거행했고, 그들은 의례에서 품위와 엄숙함을 기대했기 때문일 수 있다. 이 지역은 신화의 수도 가장 적다. 서중부 지역 특유의 서사는 가정의 수호신의 기원을 설명하는 『성주풀이』뿐이다. 서울 자체에서는 『바리공주』만이 무속 서사로 공연된다.
서중앙 지역의 전통과는 대조적으로, 영동 및 경상도 지역의 무당들은 인간 신자들을 위해 이야기를 훨씬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야기는 매우 상세하게 묘사되며, 수사법의 다양성은 전례가 없다. 홍태한은 영동 지역 무가 집안을 "한국 전체에서 가장 숙련된 공연 예술 집단"이라고 언급한다.[4] 음악가들은 단순히 배경 음악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공연에 직접 개입하고, 공연하는 무당은 청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민요나 불교 찬불가와 같은 비무속 음악이 적절한 순간에 이야기에 통합된다. 이 지역의 특징적인 이야기에는 손님(천연두 신)]의 여정에 대한 매우 상세한 묘사가 포함된다. 현재 이 지역은 가장 활발한 신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전라도의 전통은 전국적인 한국 신화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부유한 사람이 죽음의 신을 피하는 이야기인 ''장자풀이''와 칠성신이 된 일곱 형제에 관한 ''칠성풀이'' 등 다른 두 신화가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을 지닌다. 2002년 현재 전라도 신화는 쇠퇴하고 있었다.
제주 전통인 본풀이는 신화의 신성함을 강조하여, 무당은 제사상을 향해 서서 이야기를 노래하고, 음악가와 참배객에게는 등을 돌린다.[5] 많은 이야기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이, 제주 신화의 명시적인 목적은 신들의 삶과 행적을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신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다.[5] 제주도는 가장 풍부한 무속 이야기 자료를 가지고 있다. 제주도는 바리공주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은 유일한 전통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러나 제주 신화 전통은 위험에 처해 있다. 14일이 걸리는 가장 큰 제주굿은 요즘 거의 완전히 행해지지 않고 있으며, 여러 신화는 이미 무당들에 의해 더 이상 행해지지 않는다.
'''바리공주''' 설화는 제주도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발견된다. 2016년 기준으로 약 100가지의 설화 변형이 학자들에 의해 기록되었으며, 그중 절반가량은 1997년 이후에 기록되었다. 1998년 기준으로 알려진 모든 변형은 고인을 위한 ''굿'' 의례에서만 불렸다. 따라서 바리공주는 장례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여신이다. 바리의 정확한 역할은 버전에 따라 다르며, 때로는 신이 되지 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무당의 수호신, 죽은 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자, 또는 북두칠성의 여신으로 여겨진다.
많은 변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기본적인 줄거리에 동의한다. 거의 모든 변형에서 공유하는 첫 번째 주요 에피소드는 왕과 왕비의 결혼이다. 왕비는 호화롭게 대우받는 여섯 딸을 연달아 낳는다. 일곱 번째 임신 중 왕비는 상서로운 꿈을 꿉니다. 왕실 부부는 이것을 마침내 아들을 낳는 징조로 여기고 축하 준비를 한다. 하지만 아이는 여자아이였다. 실망한 왕은 딸을 버리라고 명령하고, "바리"라고 이름을 짓는다. 어떤 버전에서는 동물들에게 보호받아 처음 두 번은 버려져야만 했다. 그 후 소녀는 부처, 산신 또는 황새와 같은 존재에게 구출된다.
바리가 자란 후, 그녀의 부모 중 한 명 또는 두 명 모두 중병에 걸린다. 그들은 서방정토의 약수로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버전에서 왕과 왕비는 여섯 명의 큰딸들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부탁하지만, 모두 거절한다. 절망한 왕과 왕비는 바리 공주를 다시 찾으라고 명령한다. 다른 버전에서는 왕실 부부가 꿈이나 예언을 통해 딸을 찾으라는 말을 듣는다. 어떤 경우든 바리는 궁정으로 데려와진다. 그녀는 서방정토로 가는 것에 동의하고, 보통 남자의 옷을 입고 떠난다.
바리의 모험의 세부 사항은 버전에 따라 다릅니다. 1930년대 서울 근처 무당이 낭송한 가장 오래된 기록 중 하나에서, 그녀는 3천 리를 간 후 부처를 만난다. 그녀의 변장을 간파하고 그녀가 여자임을 지적하면서, 부처는 그녀가 정말로 3천 리를 더 갈 수 있는지 묻는다. 바리가 죽더라도 계속 갈 것이라고 대답하자, 부처는 그녀에게 비단꽃을 주고, 그 꽃은 광대한 바다를 육지로 바꾸어 그녀가 건널 수 있게 한다. 그런 다음 그녀는 가시와 강철로 된 높은 요새에 갇힌 수억 명의 죽은 영혼을 해방시킨다.
바리가 마침내 약수터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양한 성격의) 초자연적인 수호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수호자 역시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자신을 위해 일하고 아들을 낳도록 강요한다. 이 일이 끝나면—버전에 따라 최대 12명의 아들을 낳을 수 있습니다—그녀는 약수와 부활의 꽃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부모(또는 부모 중 한 명)가 이미 죽었고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장례 행렬을 중단하고 관뚜껑을 열고 꽃으로 부모를 부활시키고 물로 치료한다. 대부분의 버전에서 공주는 그 후 신성을 얻습니다.
한반도의 네 개 지역 전통은 각각 고유한 ''바리공주'' 요소를 가지고 있다. 서중부 전통은 강한 불교적 영향을 받았다. 구원자는 항상 부처이며, 그는 그녀를 좋은 업을 원하는 늙은 자식 없는 부부에게 양육시킨다. 동해안과 경상도 전통은 바리의 모험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설명하고, 약수의 수호자를 하늘로 돌아가기 위해 아들을 낳아야 하는 망명한 신으로 묘사한다. 전라도 전통은 가장 세부 사항이 적으며, 바리가 남자로 변장했다는 언급이 없다. 지역 내에서도 다양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1930년대 버전에서는 부활의 나무를 언급하지만, 다른 서중부 버전을 포함한 다른 대부분의 버전에서는 꽃을 포함한다.
북부 전통은 남함경도의 두 버전만으로 대표되지만,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공주는 스스로 신성한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 신의 자비를 통해 도달한다. 거기서 바리는 부활의 꽃을 훔쳐 달아납니다. 그녀는 이야기의 끝에서 여신이 되지 않고 갑자기 죽고, 그녀가 부활시킨 어머니도 곧 죽습니다. 살아있는 세상과 사후 세계를 잇는 장례식에서의 그녀의 신성한 역할은 지역 여신 청정각시로 대체된다.
'''바리공주'''는 전통적으로 왕실과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어왔으며, 1762년 쌀독에서 굶어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영혼을 위해 정조가 그 공연을 후원했다는 증거가 있다. 현대 서울 무당들에 따르면, 이 이야기의 오래된 버전에는 한국 궁정 특유의 전문 용어가 많았다. 만주 민담 ''니산 무당 이야기''와의 유사점도 지적되었다.
대부분의 한반도 무속 이야기는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특정 지역의 전통에서만 전승된다. 특히 함경남도는 이러한 지역 신화가 풍부했는데, '망묵굿' 장례 의식에서만도 아홉 가지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졌다. 함경남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신화 중 하나는 '도랑선비와 청정각시의 노래'이다. 이 신화는 남편 도랑선비의 죽음으로 괴로워하는 청정각시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금탑사의 승려는 그녀가 남편을 다시 만나기 위해 일련의 과업을 수행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모든 머리카락을 뽑아 밧줄로 꼬고,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고통스러워 소리 지르지 않고 밧줄에 매달리는 것(밧줄이 손바닥을 통과함), 석유에 세 손가락을 3년 동안 담근 후 불을 붙여 기도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손으로 거친 산길을 포장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모든 것을 성공적으로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랑선비와 일시적으로만 재회할 수 있다. 한 버전에서는 남편이 부활한 날 사고로 물에 빠져 죽는다. 죽으면서 그는 다시 만나기 위해 아내에게 자살을 하라고 말한다. 청정각시는 자살하고 저승에서 남편과 재회한다. 얼마 후, 그들은 모두 신이 된다. 도랑선비와 청정각시는 망묵굿 장례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신으로 여겨졌으며, 불교 사찰에서도 부처 다음으로 숭배받았다.
다양한 한국 신화를 보여주는 증거로, 동해안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유랑하는 남녀 천연두 신들의 무리인 손님네(손님네한국어 )의 지역적 이야기는 위의 비극적인 로맨스와는 완전히 다른 주제를 다룬다. 이 이야기는 전통적으로 천연두 전염병 동안 이 위험한 신들을 달래고 가벼운 질병만 유발하도록 하며, 잠재적인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공연되었다. 1987년에 공연된 전형적인 버전에서, 중국에 사는 남녀 천연두 신들의 무리인 손님네 중 세 명이 어느 날 한국을 방문하기로 결정한다. 국경의 뱃사공은 여자 손님이 강을 건너기 위해 자신과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여신은 즉시 그를 죽이고, 그의 일곱 자녀 중 여섯 명을 천연두로 죽인다. 그의 아내가 자비를 구하자, 그녀는 막내를 맹인이자 움직일 수 없는 꼽추로 살게 한다.
서울에서 손님네는 부유한 김장자의 집에서 쫓겨나 가난한 노파의 집에 머문다. 그녀의 환대에 대한 보답으로, 신들은 그녀와 그녀의 손녀에게 큰 행운을 준다. 노파는 또한 손님네에게 김장자의 열다섯 살 된 아들 철현을 축복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김장자가 두 번째로 손님네를 거절하자, 여자 손님은 철현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그를 유인하고 그에게 심각한 천연두를 선사한다. 김장자는 신들에게 송아지를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약하지만, 손님네가 그 질병을 상기시키자 제물을 거부한다. 분노한 신들은 철현을 죽이고, 그는 가장 어린 손님이 된다. 나중에 손님네는 김장자가 가난해졌고 철현의 죽음으로 자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70세 된 김장자에게 새로운 아들을 준다.
제주 전통에는 가장 풍부한 신화가 있다. '본풀이'(본풀이jje)라고 불리는 무속 설화집은 크게 세 가지 또는 네 가지 범주로 나뉜다. 약 12개 정도의 일반적인 본풀이는 모든 무당들이 알고 있으며, 섬 전체에서 숭배되는 보편적인 기능을 가진 신들을 다룬다. 마을 신당 본풀이는 특정 마을의 수호신을 다루며, 해당 마을과 인근 마을의 무당들만 알고 있다. 조상 본풀이는 특정 가족이나 직업의 수호신에 관한 이야기인데, 범주명과는 달리 신이 실제 조상으로 여겨지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해당 가족이나 직업의 무당들만 알고 있기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분석에서는 더 이상 무당들에 의해 의례적으로 행해지지 않는 "특별 본풀이"라는 작은 네 번째 범주를 포함하기도 한다.
많은 일반 본풀이는 본토 설화와 분명한 관련이 있지만, 제주만의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형적인 예로 제석 본풀이의 제주 버전인 ''초공 본풀이''가 있는데, 의례적 기능이 매우 다르다. 초공 본풀이의 초기 부분은 본토 중 가장 가까운 전라도 지역의 제석 본풀이 버전과 유사하다. 초자연적으로 임신한 십대 노가단풍아가씨(본토의 당금애기와 제주판에 해당)는 집에서 쫓겨나 제사장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제사장이 그녀를 떠나보내 혼자 셋쌍둥이를 낳게 한다. 전라도와는 달리, 북부와 동부 전통과 마찬가지로 셋쌍둥이는 아버지 없이 자란다.
그들이 3천 명의 유교 유학자들을 과거 시험에서 이기자, 질투심에 찬 유학자들은 노가단풍아가씨를 살해한다. 셋쌍둥이는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고, 제사장은 그들에게 이전의 삶을 버리고 무속에 입문하게 한다. 셋쌍둥이는 어머니를 성공적으로 부활시키기 위한 최초의 무속 의례를 거행한 후, 저승에서 유학자들에게 정의를 가져다주기 위해 저승의 신으로서 심판관이 된다. 제주 무당들에게 의례의 기원을 묻자 그들은 "초공 본풀이에서 그렇게 했었다"고 답한다.[6]
마을 신당 본풀이는 하나 또는 여러 마을의 수호신에게 바쳐진다. 대부분은 공식적인 구조를 따른다. 가장 완전한 형태에서, 육식성 사냥의 신이 제주의 언덕에서 나타나고 농업의 여신이 해외, 종종 중국에서 온다. 두 신은 결혼하여 마을의 신이 되지만, 일반적으로 여신이 신의 불결한 습관이나 고기 냄새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헤어진다. 그러자 여신은 세 번째 신을 낳고, 이 신은 섬에서 쫓겨나 해외에서 모험을 떠난 후 다른 마을의 신으로 정착한다. 많은 마을에는 이 구조의 일부만 남아 있어 본풀이가 결혼으로 끝나거나 신의 출현 또는 도착만을 다루는 경우도 있다. 많은 제주 마을 신들은 서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진다. 가장 중요한 마을 본풀이 중 하나는 섬의 여러 마을과 장소의 424명의 수호신의 부모 또는 조부모인 성당 신당의 신들에게 바쳐진 것이다.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한국 본토 마을들도 전통적으로 특정 수호신과 관련되어 있다. 조선 왕조는 이러한 신들에 대한 예배에서 전통적인 무속보다 유교식 예배를 강력하게 장려했다.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대부분의 중요한 마을 신 제사가 유교식 규범에 따라 남성들에 의해 거행되었으며, 한국어 대신 중국어로 기도를 올렸다. 따라서 이러한 신들과 관련된 신화는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무속 신화가 아니거나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러한 이야기들은 슬픈 영혼을 달래는 것에 대한 강조와 같이 무속 신앙을 반영한다. 무속 신화와 마찬가지로, 마을 신당 신화는 종종 숭배되는 신의 정체를 설명하는, 신에게 바쳐지는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마을 신화는 살아있는 신화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경상북도 소야 마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어떤 병사들이 살아남을지 정확하게 예언했다고 믿고 있다.
전라남도의 마을 신당 신화 94개에 대한 연구에서 표인주는 신이 자연물로 확인되는지 아니면 인간의 영혼으로 확인되는지에 따라 신화를 두 가지 주요 범주로 나눈다. 신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자연물은 나무, 용, 그리고 바위이다. 예를 들어, 광양 장동 마을에서는 한 나무가 1592년 임진왜란 중 어느 날 울었다고 한다. 이 이상한 소리에 모든 마을 주민들이 나무로 몰려들었는데, 그때 일본군이 공격해 왔다. 마을이 버려진 것을 발견한 일본군은 함정을 의심하고 떠났다. 며칠 후 일본군은 돌아와 나무를 베려고 했지만, 나무는 거대한 가지들을 떨어뜨려 그들을 모두 죽였다. 그 후 일본군은 감히 마을에 접근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현지 주민들은 그 나무를 신으로 숭배해 왔다.
인간의 영혼으로 확인되는 마을 신들은 종종 마을의 창시자이거나, 또는 슬픔이나 원한 때문에 죽은 후에도 인간 세상에 남아 있는 슬픈 영혼이다. 예를 들어 살해당했거나 어린아이로 죽었기 때문일 수 있다.
- 설문대할망 신화(설문대할망)
: 설문대할망은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창세신(「할망」은 한국어로 "할머니"라는 뜻)이다. 한국 반도의 인격신이자 여신이며, 키가 하늘에 닿을 정도로 큰 거인이다. 바다에 빠져 죽었다거나, 아홉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 그 죽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주도의 여신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마고 등으로 불린다.
- 대별왕 소별왕 신화 (대별왕 소별왕)
: 태초에는 모든 것이 말할 수 있었고, 해와 달이 각각 두 개씩 있었다. 천지왕의 아들인 대별왕과 소별왕은 언어를 정리하고, 활로 해와 달을 각각 하나씩 쏘아 떨어뜨렸다. 소별왕의 계략으로 인해 대별왕은 저승의 왕이 되고, 소별왕은 현세의 왕이 되었다.
- 바리공주 신화(바리공주)
: 한국에서 활발한 무당 등 여성 무녀들이 자신의 영력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부르는 시조 신화이다.[7] 이씨 왕조의 어느 왕가에 태어났으나, 기다리던 아들이 아니었기에 버려진 일곱 번째 딸 바리공주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불로초를 구하러 여행을 떠나, 지옥에 사는 신선과 결혼하여 얻은 약수로 이미 죽은 부모를 되살리는 이야기이다.[8] 경성제국대학교 교수였던 秋葉隆이 기록(1930년대 추정)하여 처음으로 문자화하였다. 이후 다른 전승자가 기록한 것이 몇 가지 존재하지만,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아키바가 기록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9] 바리공주는 무녀의 수호신으로 여겨진다.
- 자청비 신화 (자청비)
: 양반의 딸인 자청비가 여러 시련을 극복한 후, 신의 아들인 무드령과 결혼하는 이야기이다. 자청비는 곡물을 가지고 땅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농업의 신이 되었다.
4. 한국 신화의 특징과 의의
한국 신화는 전승 형태에 따라 문헌신화와 구전신화로 나뉜다. 문헌신화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역사서에 기록된 신화이며, 주로 건국 신화가 주를 이룬다. 구전신화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고 입으로 전해지는 신화로, 민간신화와 무속신화(巫俗神話)가 있다.
문헌신화는 《삼국유사》와 같은 한국 전통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역사화(historicized)되어 역사적 사실과 신화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주요 문헌 신화는 특정 왕국이나 왕조의 건국 이야기를 담은 건국 신화이다.
구전신화는 내용상 신화적이지만 문헌 신화와는 기능과 내용이 매우 다르다. 구전신화는 무당이 굿에서 신을 부를 때 부르는 서사무가(徐事巫歌)로 구성된다. 이러한 무가는 살아있는 신화[2]이며, 굿 참가자들에게는 신성한 종교적 진리이다. 무가는 세계의 원초적 역사, 인간 개인의 신성으로의 승격, 불경한 인간에 대한 신의 응징과 같은 요소들을 담고 있다.
한국 신화는 주제별로 우주발생신화, 인간탄생신화, 문명기원신화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우주발생신화는 제주 지방의 <초감제>, 함남 지방의 <창세가> 등이 있으며, 대부분 천지개벽(天地開闢) 유형이다. 인간탄생신화에는 <당곰애기신화>, <남매혼신화> 등이 있다. 문명기원신화는 농경, 치병(治病), 건국 등 문화의 기원을 다루는 신화로, <세경본풀이>(농경), <손님풀이>(천연두) 등이 있다.
한국 신화에 대한 연구는 최남선, 이병도와 같은 역사가들이 건국 신화를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이후 김열규, 현용준, 서대석과 같은 학자들이 무가 연구를 주도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신화 연구는 이웃 신화와의 비교, 당신화(堂神話) 연구, 페미니스트적 해석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참조
[1]
harvnb
[2]
harvnb
[3]
harvnb
http://folkency.nfm.[...]
[4]
harvnb
[5]
harvnb
[6]
harvnb
[7]
서적
牛頭天王と蘇民将来伝説
作品社
[8]
서적
牛頭天王と蘇民将来伝説
作品社
[9]
서적
牛頭天王と蘇民将来伝説
作品社
[10]
text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