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아요디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요디아는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위치한 도시로, 힌두교의 성지 중 하나이다. 고대에는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으며, 굽타 제국 시대에는 전설적인 도시 아요디아로 여겨졌다. 아요디아는 힌두교 신 라마의 탄생지로 숭배받으며, 람 만디르(Ram Mandir) 사원 건설과 관련된 분쟁으로 유명하다. 또한, 한국의 허황옥 공주가 아요디아 출신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며, 김해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요디아 - 아요디아 (라마야나)
    아요디아는 라마야나의 주요 배경인 고대 도시로, 이 페이지는 아요디아의 역사, 종교,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학술 자료와 참고 문헌을 제공하여 역사적 진실성, 순례지로서의 발전,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기여한다.
  • 아요디아 - 람 잔마부미
    람 잔마부미는 힌두교에서 라마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인도 아요디아에 위치한 장소로, 바브리 마스지드가 있던 곳이며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 분쟁의 중심지였으나, 바브리 마스지드 철거 후 라마 사원 건설이 추진되어 2020년 사원 건설이 시작되었고, 다른 지역이 라마의 탄생지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 라마야나의 장소 - 아요디아 (라마야나)
    아요디아는 라마야나의 주요 배경인 고대 도시로, 이 페이지는 아요디아의 역사, 종교, 문화적 중요성에 대한 학술 자료와 참고 문헌을 제공하여 역사적 진실성, 순례지로서의 발전,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기여한다.
  • 라마야나의 장소 - 프라야그라지
    프라야그라지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있는 갠지스강과 야무나강 합류 지점의 도시로, 힌두교 순례지이자 자이나교 성지이며, 쿰브 멜라 개최지로서 종교적 중요성을 지닌다.
  • 힌두교 성지 -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갠지스 강변에 위치한 힌두교 성지이자 문화 중심지로, 고대 카시 왕국의 수도였으며 종교 관광 중심지이자 전통 공예와 문화 활동이 활발하지만, 도시화와 관광객 증가로 인한 환경 문제와 빈곤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 힌두교 성지 - 브린다반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위치한 브린다반은 크리슈나 신의 어린 시절과 관련된 힌두교 바이슈나바교의 중요한 순례지이자, 5,500여 개의 사원과 라다 크리슈나 신화 유산을 지닌 '과부들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으나, 도시화로 인한 환경 문제도 안고 있다.
아요디아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람 만디르
람 만디르
람 키 파이디 가트
람 키 파이디 가트
비자이라가브 만디르
비자이라가브 만디르
하누만 가르히 사원
하누만 가르히 사원
카나크 바완 사원
카나크 바완 사원
별칭람 나그리
사원 도시
지리적 위치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 아요디아
면적120.8 km²
해발고도93 m
인구 (2011년)55,890명
인구 밀도auto
공식어힌디어
추가 공식어우르두어
지역어아와디어
시간대IST
UTC 오프셋+05:30
우편번호224001, 224123, 224133, 224135
지역 전화번호+91-5278
차량 등록 번호UP-42
공식 웹사이트아요디아 공식 웹사이트
행정
행정 구역시립 공사
관할 기관아요디아 시립 공사
시장기리시 파티 트리파티
시장 소속 정당BJP
하원 의원아와데시 프라사드 (SP)
주의회 의원베드 프라카시 굽타 (BJP)
기타 정보
로마자 표기Ayodhyā
별칭 (힌디어)राम नगरी (람 나그리)
별칭 (영어)The Temple Town (사원 도시)
주요 관광지람 만디르, 하누만 가르히 사원, 카나크 바완
관련 분쟁아요디야 분쟁
방문객 수1억 1천만 명 이상 (우타르프라데시 주 1위)

2. 역사

아요디아는 고대에 사케타(Sāket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힌두교에서는 인도의 일곱 성지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져 왔다. 이 도시는 마누법전의 저자인 마누가 창시했다고 전해지며, 한때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1세기 다나데바 아요디아 비문


아요디아, 코살라에서 주조된 데바 왕조의 통치자 뮬라데바의 주화. 앞면: '뮬라데바사', 왼쪽을 향한 코끼리 상징. 뒷면: 화환, 상징 위, 뱀 아래.


기원전 5세기경 마가다의 아자타샤트루 황제가 코살라를 정복한 후, 사케타는 상업 중심지로 남았지만 정치적 중심지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제국 아소카 황제 통치 기간 동안 불교 건물이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고고학자 B. B. 랄은 기원전 3세기 후반에 세워진 요새 벽을 발견했다. 마우리아 제국 쇠퇴 이후, 사케타는 푸샤미트라 슝가의 통치하에 들어갔으며, 기원전 1세기 다나데바의 아요디아 비문에는 그가 총독을 임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가 푸라나』는 사케타가 그리스인, 마투라인, 판찰라인의 연합군에게 공격받았다고 묘사한다.

이후 사케타는 독립 왕국이 되었으며, 『유가 푸라나』에는 7명의 강력한 왕들이 통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데바 왕조 왕들의 주화가 발견되었고, 그들의 비문은 그들을 코살라의 왕으로 묘사한다. 이 시기에 사케타는 슈라바스티보다 중요성이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닷타 왕조, 쿠샨 제국, 미트라 왕들이 사케타를 통치했지만, 그 순서는 불확실하다. 카니시카 통치 시기 코탄과의 동맹군의 침략으로 불교 유적이 파괴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사케타는 쿠샨 통치 기간 동안 번영했다. 2세기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사케타를 "사게다" 또는 "사고다"라는 대도시로 언급했다.

4세기경, 이 지역은 굽타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브라마니즘이 부흥했다. 《바유 푸라나》와 《브라마난다 푸라나》는 초기 굽타 왕들이 사케타를 다스렸다고 기록한다. 굽타 시대에 사케타는 전설적인 도시 아요디아이자 이크슈바쿠 왕조의 수도로 인정받았다. 쿠마라굽타 1세 통치 기간의 카람단다 비문은 아요디아를 코살라 지방의 수도로 명명하고 있다. 이후 굽타 제국의 수도는 파탈리푸트라에서 아요디아로 옮겨졌으며, 스칸다굽타가 이 결정을 내린 것으로 추정된다.

6세기 미히라쿨라가 이끄는 후나족의 침략으로 아요디아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 굽타 제국 멸망 후에는 마우카리 왕조의 지배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은 아요디아를 번영하는 도시이자 불교 중심지로 묘사했지만, 정치적 중심지는 칸나우지로 넘어갔다. 하르샤 제국 멸망 후, 아요디아는 야쇼바르만과 구자라-프라티하라 왕조 등 지역 왕들의 지배를 받았다.

11세기에는 가하다발라 왕조가 이 지역에서 권력을 잡고 바이슈나바교를 장려했다. 그들은 아요디아에 여러 비슈누 사원을 건설했으며, 그중 일부는 아우랑제브 통치 말기까지 남아 있었다. 한스 바커는 가하다발라 왕조가 라마의 탄생지에 사원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이후 라마 숭배가 발전하여 라마는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아바타로 여겨졌다.

1226년 아요디아는 델리 술탄국아와드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무굴 제국 통치하에 바브리 모스크가 건설되었다. 1707년 아우랑제브 사후 무슬림 중앙 정부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아와드는 사실상 독립되었고, 아요디아는 그 수도가 되었다. 1856년 영국은 아와드를 합병하고 아그라와 아우드 연합주로 재편성했다.

19세기 말, 아요디아에는 96개의 힌두교 사원과 36개의 이슬람 모스크가 있었다. 1990년대에 아요디아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고, 1992년 12월 6일 힌두교도들이 바브리 마스지드를 파괴했다. 이는 라마찬드라가 태어난 장소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을 파괴하고 모스크를 지었다는 전승 때문이었다. 종교 갈등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도 정부가 이 부지를 매입하였다. 2003년 8월 인도 고고학 조사국은 모스크 아래에 대규모 건축 유적이 있었음을 보고했고, 힌두교 고전 상징물들을 발견했다. 이후 이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은 힌두교도들의 주장을 뒷받침했고, 힌두교도들은 이 지역에 새로운 라마 신전을 재건했다. 라마 사원 건설은 2020년 8월에 시작되어 2024년 1월 22일 봉헌되었다.

2. 1. 고대

인도의 시조이자 마누법전의 저자인 마누가 이 도시의 창시자로 전해진다. 아요디아는 한때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다.

불교 사료에 따르면 "아요디아" 도시 북쪽 4~5리 밖에 "사케타"(Sāketasa)가 있었다.[94][95] 7세기에 현장 삼장이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는 100여 개의 불교 사원과 3,000명의 승려가 있었으며, 10개의 힌두교 사원이 있었지만 신도는 많지 않았다고 전한다. 또한 무착 보살이 아요디아에서 미륵 보살의 설법을 듣고 이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미륵오론이며, 현장이 개중 명시한 것은 세 가지 논서인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중변분별론》이다.[96]

학자들은 "사케타"[97][98]와 오늘날의 아요디아가 같은 도시라고 보나, 서로 다른 도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는 이 두 도시의 관계가 런던웨스트민스터의 관계와 유사하며, 서로 가깝게 위치해 있다고 보았다.[99] 한편 오늘날의 아요디아와 라마야나에 나오는 아요디아의 관계는 불분명한데, 한 이론은 오늘날의 아요디아 및 사케타와 라마야나 속 아요디아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이론은 라마야나의 아요디아는 신화적인 도시이고, 원래 도시의 이름은 사케타였지만 굽타 황제(아마도 스칸다굽타)가 수도를 사케타로 옮기고 전설적인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요디아로 개명하면서 아요디아라는 이름이 정착했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4세기에 아요디아에서 발굴된 자이나교 티르탄카라의 테라코타 이미지


아제르 자이나 사원에 있는 전설적인 아요디아를 묘사한 금 조각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는 코살라의 전설적인 이크슈바쿠 왕들의 수도였던 아요디아가 언급되어 있으며, 라마도 그 도시에 있었다. 파니니의 ''아슈타디야이''와 파탄잘리의 주석과 같은 비종교적이고 비전설적인 고대 산스크리트어 텍스트에는 사케타가 언급되어 있다. 후대 불교 경전인 ''마하바스투''는 사케타를 이크슈바쿠 왕 수자타의 좌석으로 묘사하며, 그의 후손들이 샤크야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를 건설했다고 한다.

가장 초기의 불교 팔리 경전과 자이나교 프라크리트어 텍스트는 사케타(프라크리트어로 사게야 또는 사에야)라는 도시를 코살라 마하자나파다의 중요한 도시로 언급한다. 불교와 자이나교 텍스트 모두의 지형학적 표시는 사케타가 현재의 아요디아와 같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상윳타 니까야''와 ''비나야 피타카''에 따르면 사케타는 슈라바스티에서 6개의 ''요자나'' 거리에 있었다. ''비나야 피타카''는 두 도시 사이에 큰 강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수타니파타''는 사케타를 슈라바스티에서 프라티슈타나로 가는 남쪽 길의 첫 번째 휴식 장소로 언급한다.

4세기 이후로 칼리다사의 ''라구밤샤''를 포함한 여러 텍스트에서 아요디아를 사케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언급한다. 후대 자이나교 경전인 ''잠부드비파-판나티''는 비니야(또는 비니타)라는 도시를 리샤바나타의 탄생지로 묘사하고 이 도시를 바라타 차크라바르틴과 관련짓는다. ''칼파-수트라''는 이크카가부미를 리샤바데브의 탄생지로 묘사한다. 자이나교 텍스트 ''파우마차리야''의 색인은 아오자(아오디야), 코살라푸리("코살라 도시"), 비니야, 사에야(사케타)가 동의어임을 명확히 한다. 후기 경전 자이나교 텍스트에서도 "아오자"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아바사가추르니''는 이를 코살라의 주요 도시로 묘사하고, ''아바사가니주티''는 이를 사가라 차크라바르틴의 수도로 명명한다. ''아바사가니주티''는 비니야("비니아"), 코살라푸리("코살라푸라"), 이크카가부미가 각각 아비나남다나, 수마이, 우사바의 수도로 명명하면서 서로 다른 도시였음을 암시한다. 아바야데바의 ''타나 수타'' 주석인 또 다른 후기 경전은 사케타, 아요디아, 비니타를 하나의 도시로 확인한다.

한 이론에 따르면 전설적인 아요디아 도시는 역사적인 사케타 도시와 현재의 아요디아와 같다. 다른 이론에 따르면 전설적인 아요디아는 신화 속 도시이며, "아요디아"라는 이름은 4세기경 굽타 황제(아마도 스칸다굽타)가 수도를 사케타로 옮기고 전설적인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요디아로 개명했을 때 사케타(현재의 아요디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대안적이지만 가능성이 낮은 이론은 사케타와 아요디아가 인접한 두 도시였거나 아요디아가 사케타 도시 내의 지역이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및 문헌적 증거에 따르면 현재의 아요디아 지역은 기원전 5세기 또는 6세기에 도시 정착지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고대 사케타 도시의 위치로 확인되며, 아마도 슈라바스티-프라티슈타나 남북 도로와 라자그리하-바라나시-슈라바스티-탁실라 동서 도로의 교차점에 위치한 시장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증일아함경』과 같은 고대 불교 경전은 사케타가 코살라 왕국의 프라세나지트(파세나디, 기원전 6세기~5세기) 왕이 다스렸으며, 그의 수도는 슈라바스티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후대 불교 주석서인 『담마파다-아타카타』에는 사케타 마을이 프라세나지트 왕의 제안으로 상인 다나잔자야(비사카의 아버지)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장아함경』은 사케타를 인도의 6대 대도시 중 하나로 묘사한다. 초기 불교 경전은 슈라바스티를 코살라의 수도로 언급하지만, 후대 경전인 자이나교 경전 『나야담마카하오』와 『판나바나 수탐』, 그리고 불교 자타카는 사케타를 코살라의 수도로 언급한다.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번화한 도시였던 사케타는 붓다와 마하비라와 같은 설법자들에게 중요한 곳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증일아함경』과 『앙굿따라니까야』는 붓다가 때때로 사케타에 머물렀다고 언급한다. 초기 자이나교 경전(예: 『안타가다-다사오』, 『아누타라오바바이야-다사오』, 『비바가수야』)은 마하비라가 사케타를 방문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나야담마카하오』는 파르슈바나타도 사케타를 방문했다고 기록한다. 자이나교 경전(경전과 후대 경전 모두)은 아요디아를 뱀, 야크샤 파사미야, 무니 수브라타스와민, 수랍피아 등 다양한 사당의 위치로 묘사한다.

기원전 5세기경 마가다의 아자타샤트루 황제가 코살라를 정복한 후 사케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음 몇 세기 동안 이 도시의 상황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다. 이 도시는 2차적인 중요성을 가진 상업 중심지로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수도가 파탈리푸트라에 있었던 마가다의 정치 중심지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기원전 3세기 마우리아 제국아소카 황제 통치 기간 동안 도시에 여러 불교 건물이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요디아 발굴 조사 결과 고고학자 B. B. 랄에 의해 요새 벽으로 확인된 대형 벽돌 벽이 발견되었다. 이 벽은 아마도 기원전 3세기 후반기에 세워진 것일 것이다.

마우리아 제국의 쇠퇴 이후, 사케타는 푸샤미트라 슝가의 통치하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1세기의 다나데바의 아요디아 비문은 그가 그곳에 총독을 임명했음을 시사한다. 『유가 푸라나』는 사케타를 총독의 거주지로 언급하며, 그리스인, 마투라인, 판찰라인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았다고 묘사한다. 파니니의 주석서인 파타잘리의 주석도 그리스인의 사케타 포위 공격을 언급한다.

후에 사케타는 작은 독립 왕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유가 푸라나』는 그리스인들이 물러간 후 사케타가 7명의 강력한 왕들에 의해 통치되었다고 기록한다. 『바유 푸라나』와 『브라마난다 푸라나』 또한 코살라의 수도에서 7명의 강력한 왕들이 통치했다고 기록한다. 이 왕들의 역사적 사실성은 다나데바를 포함한 데바 왕조 왕들의 주화 발견으로 입증된다. 그의 비문은 그를 코살라의 왕(Kosaladhipati)으로 묘사한다. 코살라의 수도로서 사케타는 이 시기에 슈라바스티보다 중요성이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는 사케타와 슈라바스티를 통과했던 파탈리푸트라와 탁실라를 잇는 동서 루트는 이 시기에 남쪽으로 이동하여 사케타, 아히차트라, 카냐쿠브자를 통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데바 왕들 이후, 사케타는 닷타 왕조, 쿠샨 제국, 미트라 왕들에 의해 통치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통치 순서는 불확실하다. 바커는 닷타 왕조가 1세기 중반 데바 왕들을 계승했고, 그들의 왕국이 카니시카에 의해 쿠샨 제국에 합병되었다고 추측한다. 티베트 문헌인 『리 국가 연대기』(11세기경)는 코탄의 비자야키르티 왕, 카니카 왕, 구잔 왕, 리 왕의 동맹군이 인도로 진군하여 소케드(So-ked) 도시를 점령했다고 기록한다. 카니카를 카니시카로, 소케드를 사케타로 동일시한다면, 쿠샨과 그 동맹군의 침략이 사케타의 불교 유적 파괴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케타는 쿠샨 통치 기간 동안 번영하는 도시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세기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사게다"(Sageda) 또는 "사고다"(Sagoda)라는 대도시를 언급하는데, 이는 사케타로 확인되었다. 사케타를 지명으로 언급하는 가장 초기 비문은 후기 쿠샨 시대의 것으로, 슈라바스티에서 부처상 받침대에서 발견되었으며, 사케타의 시하데바가 불상을 기증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쿠샨 이전 또는 이후에, 사케타는 이름 끝이 "-미트라(-mitra)"인 왕조에 의해 통치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주화는 아요디아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마투라의 미트라 왕조와는 다른 지역 왕조의 구성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왕들은 그들의 주화로만 확인된다: 상가미트라, 비자야미트라, 사탸미트라, 데바미트라, 아리아미트라; 쿠무다세나와 아자바르만의 주화도 발견되었다.

4세기경, 이 지역은 굽타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그들은 브라마니즘을 부흥시켰다. 《바유 푸라나》와 《브라마난다 푸라나》는 초기 굽타 왕들이 사케타를 다스렸다고 증언한다. 오늘날 아요디아에서는 굽타 시대의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많은 수의 굽타 시대 동전이 발견되었다. 쿠샨-호탄 침략으로 파괴되었던 불교 유적지는 버려진 채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중국 여행가 법현은 그의 시대에 "샤치"(Sha-chi)에 불교 건물의 폐허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 이론은 샤치를 사케타와 동일시하지만, 이러한 동일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만약 샤치가 실제로 사케타라면, 5세기까지 이 도시에는 번성하는 불교 공동체나 여전히 사용 중인 중요한 불교 건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굽타 시대의 중요한 발전은 사케타가 전설적인 도시 아요디아이자 이크슈바쿠 왕조의 수도로 인정받은 것이었다. 쿠마라굽타 1세 통치 기간에 발행된 436년 카람단다(Karamdanda) 비문은 아요디아를 코살라 지방의 수도로 명명하고, 아요디아의 브라만들에게 사령관 프리트비세나의 공물을 기록하고 있다. 나중에 굽타 제국의 수도는 파탈리푸트라에서 아요디아로 옮겨졌다. 파라마르타는 비크라마디팃야 왕이 왕궁을 아요디아로 옮겼다고 말하며, 현장 또한 이를 확인하며 이 왕이 궁정을 "슈라바스티의 나라", 즉 코살라로 옮겼다고 말한다. 1838년 로버트 몽고메리 마틴이 처음으로 기록한 아요디아의 지역 구전에 따르면, 라마의 후손인 브리하드발라 사후 도시가 버려졌다고 한다. 이 도시는 우자인의 비크라마 왕이 이 도시를 찾아 다시 세울 때까지 버려진 채로 남아 있었다. 그는 고대 유적을 덮고 있던 숲을 베어내고 람가르 요새를 세우고 360개의 사원을 건설했다.

비크라마디팃야는 여러 굽타 왕들의 칭호였으며, 수도를 아요디아로 옮긴 왕은 스칸다굽타로 여겨진다. 바커는 파탈리푸트라에서 갠지스 강의 홍수, 서쪽에서의 훈족의 진격을 막을 필요성, 그리고 스칸다굽타가 라마(라마의 익샤쿠 왕조는 전설적인 아요디아와 관련이 있다)와 자신을 비교하려는 욕망 등이 아요디아로의 이동을 촉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파라마르타의 《바수반두의 생애》에 따르면, 비크라마디팃야는 학자들의 후원자였으며 바수반두에게 30만 개의 금화를 수여했다. 이 글은 바수반두가 사케타("Sha-ki-ta중국어") 출신이었으며 비크라마디팃야를 아요디아("A-yu-ja중국어")의 왕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부는 아유자(Ayodhya)의 나라에 세 개의 사원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 파라마르타는 또한 후대의 발라디팃야 왕(나라심하굽타로 확인됨)와 그의 어머니도 바수반두에게 많은 금액을 수여했고, 이 자금은 아요디아에 또 다른 불교 사원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조물들은 7세기 중국 여행가 현장이 아요디아("O-yu-t-o중국어")에서 사원을 묘사한 것을 통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요디아는 6세기 미히라쿨라가 이끄는 후나족이 굽타 제국을 침략했을 때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굽타 제국의 멸망 후에는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주화로 미루어 볼 때 마우카리 왕조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요디아는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는데, 현장은 아요디아를 번영하는 도시이자 불교 중심지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정치 중심지의 지위는 칸냐쿠브자(칸나우지)에 넘겨주었다. 현장이 방문했을 당시 아요디아는 하르샤 제국의 일부였으며, 아마도 속국 통치자나 행정관의 거점이었을 것이다. 현장은 도시의 둘레가 약 0.6km(20리)라고 기록했다. 7세기 또 다른 자료인 《카시카브리티》는 아요디아가 파탈리푸트라 주변과 유사한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언급한다.

하르샤 제국의 멸망 후 아요디아는 야쇼바르만과 구자라-프라티하라 왕조를 포함한 지역 왕들과 칸나우지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650년에서 1050년 사이에 작성된 기존의 문헌이나 비문에는 아요디아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8세기 시가 《가우다바호》에 언급된 "하리시찬드라의 도시"와 동일시될 수도 있다. 고고학적 증거(비슈누, 자이나교 티르탄카라, 가네샤, 칠마트리카, 불탑 등의 이미지 포함)는 이 기간 동안에도 이 지역에서 종교 활동이 계속되었음을 시사한다.

2. 2. 어원 및 명칭

"아요디아"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동사 *yudh* ("싸우다, 전쟁을 벌이다")에서 파생된 것이다.[20] *Yodhya*는 "싸워지다"라는 뜻의 미래 수동 분사이며, *a*는 부정 접두사이다. 따라서 "싸워지지 않다" 또는 "정복할 수 없는"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신들의 정복 불가능한 도시를 가리키는 *아타르바베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9세기 자이나교 시인의 작품인 *아디 푸라나*에서도 아요디아는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정복당하지 않는다는 공덕으로 존재한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사티요파카야나*는 이 단어를 다르게 해석하여 적(敵)이 아닌 "죄악으로 정복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사케타"는 산스크리트어, 자이나교, 불교, 그리스어, 중국어 자료에서 확인되는 이 도시의 옛 이름이다. 바만 시브람 아프테에 따르면, "사케타"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 *Saha* (함께)와 *Aketen* (집이나 건물)에서 유래했다. *아디 푸라나*는 아요디아가 "중요한 깃발을 무기로 한 웅장한 건물들 때문에" 사케타라고 불린다고 말한다. 한스 T. 바커에 따르면, 이 단어는 어근 *sa*와 *ketu* ("깃발이 있는")에서 유래했을 수 있으며, *비슈누 푸라나*에는 *saketu*라는 변형된 이름이 확인된다.

영어로 된 옛 이름은 "오우드" 또는 "오우데"였다.

아요디아는 *라마야나*에서 고대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다고 언급되어 "코살라"라고도 불렸다. *아디 푸라나*는 아요디아가 "번영과 훌륭한 기술 때문에" *su-kośala*로 유명하다고 말한다.

아유타야(태국)와 족자카르타(인도네시아) 도시는 아요디아를 따서 명명되었다.[21][22]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아와드'''"라는 역사적인 명칭으로 불렸다.

2. 3. 중세 및 근대

인도의 시조이자 마누법전의 저자인 마누가 이 도시의 창시자로 전해진다. 아요디아는 한때 코살라 왕국의 수도였다.

불교 사료에 따르면 "아요디아" 도시 북쪽 4-5리 밖에 "사케타"(Sāketa)가 있었다.[94][95] 7세기에 현장 삼장이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는 100여 개의 불교 사원과 3,000명의 승려가 있었으며, 10개의 힌두교 사원이 있었지만 신도는 많지 않았다고 전한다. 또한 무착 보살이 아요디아에서 미륵 보살의 설법을 듣고 이를 기록했다고 전한다. 이것이 미륵오론이며, 현장이 그중 명시한 것은 세 가지 논서인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중변분별론》이다.[96]

학자들은 "사케타"[97][98]와 오늘날의 아요디아가 같은 도시라고 보나, 서로 다른 도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리스 데이비스(Rhys Davids)는 이 두 도시의 관계가 런던웨스트민스터의 관계와 유사하며, 서로 가깝게 위치해 있다고 보았다.[99] 한편 오늘날의 아요디아와 라마야나에 나오는 아요디아의 관계는 불분명하다. 한 이론은 오늘날의 아요디아 및 사케타와 라마야나 속 아요디아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또 다른 이론은 라마야나의 아요디아는 신화적인 도시로, 원래 도시의 이름은 사케타였지만 굽타 황제(아마도 스칸다굽타)가 수도를 사케타로 옮기고 전설적인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요디아로 개명하면서 아요디아라는 이름이 정착했다고 주장한다.[100]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는 코살라의 전설적인 이크슈바쿠 왕들의 수도였던 아요디아가 언급되어 있으며, 라마도 그 도시에 있었다. 베다와 같은 초기 산스크리트어 텍스트에는 사케타라는 도시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파니니의 ''아슈타디야이''와 파탄잘리의 주석과 같은 비종교적이고 비전설적인 고대 산스크리트어 텍스트에는 사케타가 언급되어 있다. 후대 불교 경전인 ''마하바스투''는 사케타를 이크슈바쿠 왕 수자타의 좌석으로 묘사하며, 그의 후손들이 샤크야의 수도인 카필라바스투를 건설했다고 한다.

가장 초기의 불교 팔리어 텍스트와 자이나교 프라크리트어 텍스트는 사케타(프라크리트어로 사게야 또는 사에야)라는 도시를 코살라 마하자나파다의 중요한 도시로 언급한다. 불교와 자이나교 텍스트 모두의 지형학적 표시는 사케타가 현재의 아요디아와 같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삼유타 니까야''와 ''비나야 피타카''에 따르면 사케타는 슈라바스티에서 6개의 ''요자나'' 거리에 있었다. ''비나야 피타카''는 두 도시 사이에 큰 강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수타 니파타''는 사케타를 슈라바스티에서 프라티슈타나로 가는 남쪽 길의 첫 번째 휴식 장소로 언급한다.

4세기 이후로 칼리다사의 ''라구반샤''를 포함한 여러 텍스트에서 아요디아를 사케타의 또 다른 이름으로 언급한다. 후대 자이나교 경전인 ''잠부드비파-판나티''는 비니야(또는 비니타)라는 도시를 리샤바나타의 탄생지로 묘사하고 이 도시를 바라타 차크라바르틴과 관련짓는다. ''칼파-수트라''는 이크카가부미를 리샤바데브의 탄생지로 묘사한다. 자이나교 텍스트 ''파우마차리야''의 색인은 아오자(아오디야), 코살라푸리("코살라 도시"), 비니야, 사에야(사케타)가 동의어임을 명확히 한다. 후기 경전 자이나교 텍스트에서도 "아오자"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아바사가추르니''는 이를 코살라의 주요 도시로 묘사하고, ''아바사가니주티''는 이를 사가라 차크라바르틴의 수도로 명명한다. ''아바사가니주티''는 비니야("비니아"), 코살라푸리("코살라푸라"), 이크카가부미가 각각 아비나남다나, 수마이, 우사바의 수도로 명명하면서 서로 다른 도시였음을 암시한다. 아바야데바의 ''타나 수타'' 주석인 또 다른 후기 경전은 사케타, 아요디아, 비니타를 하나의 도시로 확인한다.

전설적인 아요디아 도시는 역사적인 사케타 도시와 현재의 아요디아와 같다는 이론과, 신화 속 도시라는 이론이 있다. "아요디아"라는 이름은 4세기경 굽타 황제(아마도 스칸다굽타)가 수도를 사케타로 옮기고 전설적인 도시의 이름을 따서 아요디아로 개명했을 때 사케타(현재의 아요디아)에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아요디아는 6세기 미히라쿨라가 이끄는 후나족(Hunas)이 굽타 제국을 침략했을 때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굽타 제국의 멸망 후에는 인근 지역에서 발견된 주화로 미루어 볼 때 마우카리(Maukhari) 왕조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요디아는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는데, 현장은 아요디아를 번영하는 도시이자 불교 중심지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정치 중심지의 지위는 칸냐쿠브자(칸나우지)에 넘겨주었다. 현장이 방문했을 당시 아요디아는 하르샤 제국의 일부였으며, 아마도 속국 통치자나 행정관의 거점이었을 것이다. 현장은 도시의 둘레가 약 0.6km라고 기록했다. 7세기 또 다른 자료인 《카시카브리티》는 아요디아가 파탈리푸트라 주변과 유사한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언급한다.

하르샤 제국의 멸망 후 아요디아는 야쇼바르만과 구자라-프라티하라 왕조를 포함한 지역 왕들과 칸나우지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650년에서 1050년 사이에 작성된 기존의 문헌이나 비문에는 아요디아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8세기 시가 《가우다바호》에 언급된 "하리시찬드라의 도시"와 동일시될 수도 있다. 고고학적 증거(비슈누, 자이나교 티르탄카라, 가네샤, 칠마트리카, 불탑 등의 이미지 포함)는 이 기간 동안에도 이 지역에서 종교 활동이 계속되었음을 시사한다.

인도학자인 한스 T. 바커에 따르면, 서기 1000년대까지 아요디아의 유일한 종교적 중요성은 라마와 그의 추종자들이 사라유 강물에 들어가 승천했다고 하는 '고프라타라' 티르타(현재 구프타르 갓으로 불림)와 관련이 있었다.

11세기에는 가하다발라 왕조가 이 지역에서 권력을 잡고 바이슈나바교를 장려했다. 그들은 아요디아에 여러 비슈누 사원을 건설했는데, 그중 5개는 아우랑제브 통치 말기까지 남아 있었다. 한스 바커는 가하다발라 왕조가 라마의 탄생지에 사원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짓는다(비슈누 하리 비문 참조). 그 후 수년 동안 바이슈나바교 내에서 라마 숭배가 발전하여 라마는 비슈누의 가장 중요한 아바타로 여겨졌다. 13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 아요디아는 순례 중심지로서의 중요성이 커졌다.

1226년 아요디아는 델리 술탄국아와드(또는 "우드") 지방의 수도가 되었다. 무슬림 역사가들은 이전까지 이 지역은 황무지나 다름없었다고 말한다. 순례는 허용되었지만, 순례자에게 부과된 세금 때문에 사원은 많은 수입을 얻지 못했다.

1785년 가하라 강에서 본 아요디아; 윌리엄 호지스의 그림. 스바르가드바르 가트(Svargadvar Ghat)를 묘사하고 있으며, 배경에는 아우랑제브 시대의 모스크가 보인다.


무굴 통치하에 아요디아에는 바브리 모스크가 건설되었다. 이 도시는 아와드(영국인들이 잘못 발음한 "우드"와 같은 의미) 주의 수도였는데, 아와드는 아요디아라는 이름의 변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1707년 아우랑제브 사후 무슬림 중앙 정부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아와드는 사실상 독립되었고, 아요디아는 그 수도가 되었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점차 지역 힌두 귀족들에게 의존하게 되었고, 사찰과 순례지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졌다.

1903년 지도에 나타난 아그라와 우드 연합주, '아조디아' 표시


1850년대, 힌두교도들이 바브리 사원이 힌두교 신 라마의 탄생지 위에 세워졌다는 이유로 사원을 공격했다. 분쟁을 막기 위해 영국 행정관들은 사원 부지를 힌두교도와 무슬림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요디아는 1856년 영국 통치자들에 의해 합병되었다. 아와드 통치자들은 시아파였고, 수니파 집단들은 이미 이전 정부의 관대한 태도에 항의하고 있었다. 영국은 개입하여 수니파의 저항을 진압했다. 1857년 영국은 아우드를 합병한 후 아그라와 아우드 연합주로 재편성했다.

아와드 지방의 위치


고대에는 사케타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으며, 힌두교에서는 인도의 일곱 성지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져 왔다.

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아요디아의 이름을 따서 "'''아와드'''"라는 역사적인 명칭으로 불렸으며, 고대부터 여러 왕조가 이 땅을 다스리며 번영하였다.

13세기에 델리 술탄 왕조가 성립된 후에도 아와드는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한때 델리로부터 독립한 자운푸르 술탄 왕조가 성립하기도 하였다.

16세기 이후 이 지역이 무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자 아와드 나와브가 설치되었고, 18세기 초에 제국이 쇠퇴하자 아와드 나와브는 이곳에 지방 정권을 수립하였다.

2. 4. 아요디아 분쟁

19세기 말, 아요디아에는 96개의 힌두교 사원과 36개의 이슬람 모스크가 있었다. 1990년대에 아요디아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갈등의 중심지가 되었고, 1992년 12월 6일 힌두교도들이 1528년에 지어진 바브리 모스크를 파괴했다. 이는 라마찬드라가 태어난 장소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을 파괴하고 모스크를 지었다는 전승 때문이었다. 종교 갈등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도 정부가 이 부지를 매입하였다.[101][102][103][104] 2003년 8월 인도 고고학 조사국은 모스크 아래에 대규모 건축 유적이 있었음을 보고했고, 힌두교 고전 상징물들을 발견했다. 이후 이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은 힌두교도들의 주장을 뒷받침했고, 힌두교도들은 이 지역에 새로운 라마 신전을 재건했다. 라마 사원 건설은 2020년 8월에 시작되어 2024년 1월 22일 봉헌되었다.[101][102][103][104]

1850년대, 힌두교도들이 바브리 사원이 힌두교 신 라마의 탄생지 위에 세워졌다는 이유로 사원을 공격했다.[28] 영국 행정관들은 분쟁을 막기 위해 사원 부지를 힌두교도와 무슬림에게 나누어 주었다.[29] 아요디아는 1856년 영국 통치자들에 의해 합병되었다. 1857년 영국은 아우드(Oudh)를 합병한 후 아그라와 아우드 연합주로 재편성했다.

1984년 비슈바 힌두 파리샤드는 바브리 사원 부지를 람 사원으로 되찾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1992년, 극우 힌두 민족주의 집회가 폭동으로 이어지면서 바브리 사원이 파괴되었다.[30] 람 잔마부미에는 유아 람인 람 랄라를 위한 임시 사원이 건설되었다.[31]

2003년, 인도 고고학 조사국(ASI)은 사원이 사원 유적 위에 세워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원 부지에서 발굴 작업을 실시했다. 발굴 결과 사원 아래에 사원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기둥 기초가 발견되었다.[32][33]

2005년 7월 5일, 5명의 테러리스트가 아요디아에 있는 임시 람랄라 사원 부지를 공격했다.

2010년 9월 30일,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은 분쟁 지역의 1/3을 우타르프라데시 수니 중앙 와크프 위원회에, 1/3을 니르모히 아카라에, 1/3을 "람 랄라"(유아 람) 사원을 위한 힌두교 당사자에게 할당해야 한다고 판결했다.[35][36]

2019년 11월 9일, 인도 대법원 판결에서 이 토지는 사원 건설을 위한 신탁을 구성하기 위해 정부에 넘겨졌다. 법원은 또한 우타르프라데시 수니 중앙 와크프 위원회가 사원을 건설할 수 있도록 아요디아에 5acres의 부지를 할당하도록 정부에 지시했다.[39]

일본에서는 퍼플 모스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바브리 마스지드무굴 제국 초대 황제 바부르가 세운 것이었지만, 당시 이미 힌두 단체에 의해 관리되었고, 라마 신상이 있었으며, 사실상 힌두 사원이었다.[80] 1992년 12월 6일 힌두교 강경파는 결국 모스크를 파괴했다.[80]

2002년 2월 27일,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서 비슈바 힌두 파리샤드 운동 참가자들이 탄 열차가 방화되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구자라트주를 중심으로 힌두교도들이 이슬람교도들을 범인으로 여겨 보복 공격을 가하고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폭동 사건(''구자라트 폭동'')이 잇따랐다.[87]

2019년 대법원은 옛터를 힌두교도 측에 넘기고 이슬람교도 측에는 대체 토지를 할당하는 판결을 내렸다.[89] 이곳에는 힌두 사원인 람 만디르 사원이 세워졌고, 2024년 1월 22일 준공식을 거행했다.[90]

3. 지리 및 기후

디왈리가 아요디아의 사르유 강(Sarayu river)변 람 키 파이디 가트에서 축하되는 모습


아요디아는 중앙 인도의 전형적인 습윤 아열대 기후를 가지고 있다. 여름은 3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 지속되며 길고 건조하며 덥다. 평균 일일 기온은 약 32°C이다.[52] 이후 10월까지 우기가 이어지며, 연 강수량은 약 1067mm이고 평균 기온은 약 28°C이다. 겨울은 11월 초에 시작하여 1월 말까지 지속되며, 2월과 3월 초에는 짧은 봄이 이어진다. 평균 기온은 16°C 정도로 온화하지만 밤에는 더 추울 수 있다.[52]

4. 인구

2011년 인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아요디아의 인구는 55,890명이었다. 남성은 인구의 56.7%, 여성은 43.3%를 차지했다. 아요디아의 평균 문해율은 78.1%였다.[7] 2011년 인구 조사의 종교 데이터에 따르면, 인구 대다수는 93.23%가 힌두교를 믿고 있으며, 이슬람교는 6.19%로 두 번째로 많다.[51]

아요디아의 종교 분포 (2011년)
종교비율
힌두교93.23%
이슬람교6.19%
자이나교0.16%
시크교0.14%
불교0.12%
기타 (기독교 포함)0.16%


5. 교통

아요디아는 루크나우, 고락푸르, 프라야그라지, 바라나시, 델리 등 여러 주요 도시와 도로, 철도, 항공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도로, 철도, 항공)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1. 도로

아요디아는 루크나우 (130km), 고락푸르 (140km), 프라야그라지 (160km), 바라나시 (200km), 델리 (636km) 등 여러 주요 도시와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67]

라마야나 순례길의 일환으로 아요디아와 네팔 자낙푸르 (시타의 탄생지) 사이에 직통 버스 서비스가 개시되었다.[68]

5. 2. 철도

이 도시는 판딧 디날 다얄 우파디야이 정션과 루크나우를 잇는 광궤간 북부 철도 노선 상에 있으며, 아요디야 정션 역과 아요디야 칸트 역이 있다.

델리에서 라마야나 순례 주요지를 운행하는 특별 열차인 라마야나 순례 열차가 있다.[69]

5. 3. 항공

가장 가까운 공항은 아요디아담 마하리시 발미키 국제공항으로 약 5km 거리에 있으며, 룩나우 차우다리 차란 싱 국제공항은 약 134km, 프라야그라지 공항은 약 166km 거리에 있다.

6. 자매 결연

1999년 4월 28일 미쉬라 왕손 내외가 대한민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2000년에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인도 아요디아 시가 자매 결연을 맺었다.[105][106] 2001년 3월, 아요디아와 김해의 시장들은 아요디아가 전설적인 여왕 허황옥의 출생지로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자매 도시 협정을 체결했다.[64]

아요디아 정션 기차역


2014년 11월, 아요디아와 자낙푸르는 자매 도시가 되었다.[66] 아요디아는 라마의 탄생지이며, 자낙푸르는 그의 배우자 시타의 탄생지이다.


7. 문화 및 관광

아요디아는 힌두교도들에게 중요한 순례지이다. 브라마 푸라나(Brahmanda Purana)는 아요디아를 마투라, 하리드와르, 바라나시, 칸치푸람, 우자인과 함께 "가장 신성하고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로 언급한다.[53] 가루다 푸라나(Garuda Purana)에서는 아요디아가 인도에서 가장 신성한 일곱 곳 중 하나이며, 바라나시가 가장 신성한 곳이라고 한다.[53] 2023년 아요디아에서 열린 디왈리(Diwali) 축제는 이전의 기네스 세계 기록(1,576,944개)을 깨고, 디왈리 전야에 2,223,676개의 기름등(oil lamp)을 전시하여 가장 큰 기름등 전시 기록을 세웠다.[54]

2020년 8월 5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는 람 잔머붐(Ram Janmabhoomi)에 새로운 사원 기공식을 거행했다.[43][44] 파이자바드(Faizabad)-고라크푸르(Gorakhpur) 고속도로 옆 약 202ha 부지에 고급 호텔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신도시 나브야 아요디아(Navya Ayodhya) 건설 계획이 있었다.[45]

라마 키 파이디(Ram ki Paidi) 강가(ghat)의 파노라마 전경

  • 브라마 쿤드(Brahma Kund)
  • 람 키 파이디(Ram ki Paidi)

아요디아의 가하라 강(현지명 사류 강)


2001년, 100명이 넘는 한국의 역사학자와 정부 대표를 포함한 한국 대표단이 아요디아에 허황옥 기념관을 개관하였다.[62] 허황옥금관가야수로왕과 결혼한 인물로, 일각에서는 아요디아 출신이라고 믿고 있다.[61] 2016년, 한국 대표단은 기념관 개발을 제안했고, 이 제안은 우타르프라데시의 아킬레시 야다브 수석장관에 의해 수락되었다.[63] 김해와 아요디아는 허황옥의 출생지로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2001년 3월 자매 도시 협정을 체결했다.[64]

7. 1. 람 만디르

아요디아의 람 만디르(Ram Mandir)는 라마(Rama)의 탄생지로 여겨진다.


람 만디르(Ram Mandir)(Shri Ram Janmabhoomi Mandir)는 아요디아에 건설 중인 힌두교 사원 단지이다.[55] 이곳은 힌두교도들에게 그들의 존경받는 신 라마(Rama)의 탄생지로 여겨지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24년 1월 22일 봉헌된 사원의 주된 신은 발락 람(Balak Ram), 즉 '유아기 라마'이다.[56][57]

일본에서는 퍼플 모스크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바브리 마스지드(모스크)는 무굴 제국 초대 황제 바부르가 세운 것이었지만, 당시 이미 힌두 단체에 의해 관리되었고, 라마 신상이 있었으며, 사실상 힌두 사원이었다.[80] 힌두교 전설의 라마 신 탄생의 성지로 여겨지며, 힌두교도들은 이전에 이곳에 힌두 사원이 있었고 그것이 파괴된 잔해 위에 모스크가 세워졌다고 믿고 있으며, 힌두 우월주의 단체인 비슈바 힌두 파리샤드(VHP)는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라마 사원을 건설하는 운동을 시작했다.[81] 1992년 7월, 비슈바 힌두 파리샤드와 인도 국민당(BJP)가 신자들을 동원하여 모스크 부지 내에서 힌두 사원의 기초 공사를 강행하여 여론이 분열되는 싸움이 되었다.[82] 연방 정부의 중재로 일단 중단되었지만, 힌두교와 이슬람 양측의 협상은 결렬되었다.[82] 비슈바 힌두 파리샤드는 공사 재개를 선언하고, 12월 6일 힌두교 강경파는 결국 모스크를 파괴했다.[80] 당시 주 정부는 인도 국민당의 손에 있었다. 그날 밤부터 이슬람교도의 폭동이 시작되어 뭄바이자이푸르 등 이슬람교도가 많은 도시를 중심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양측 간의 충돌도 잇따라 발생하여 독립 이후 최대의 종교 폭동이 되었다.[83] 뭄바이에서는 이슬람교도 거주 지역에 무기한 외출 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경찰과 군인들에게는 시야에 들어온 자는 사살해도 좋다는 명령이 내려졌으며,[83] 뭄바이에서만 사망자는 1,700명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학살자가 기소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84]

2019년 대법원은 옛터를 힌두교도 측에 넘기고 이슬람교도 측에는 대체 토지를 할당하는 판결을 내렸다.[89] 이곳에는 힌두 사원인 람 만디르가 세워졌고, 2024년 1월 22일 전국적인 삼엄한 경계 태세 속에서 준공식을 거행했다. 약 8,000명이 초청되었고, 모디 총리도 참석했다.[90]

7. 2. 하누만 가르히

하누만 가르히 사원


하누만 가르히는 각 모서리에 원형 망루가 있는 거대한 네모난 요새이며, 내부에 하누만 사원이 있다. 아요디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원으로, 도시 중심부에 위치하며 76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하누만이 이곳 동굴에 살면서 잔밤부미(Janambhoomi) 또는 람콧(Ramkot)을 지켰다고 한다. 본당에는 안자니 마(Maa Anjani)상과 그 무릎에 앉아 있는 발 하누만(Bal Hanuman)상이 있다. 신자들은 이 사원을 방문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카낙 바완(Kanak Bhawan)은 라마의 계모인 카이케이(Kaikeyi)가 시타(Sita)와 라마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다고 전해지는 사원으로, 시타와 그녀의 남편 상만 있다.[58]

7. 3. 람콧

람콧은 아요디아의 주요 예배 장소이자 서쪽 도시의 고지대에 위치한 동명의 고대 성채 유적지이다. 일 년 내내 순례객들이 방문하지만, 라마의 탄생일인 라마 나바미에는 전 세계의 신도들이 몰려든다. 라마 나바미는 3월과 4월 사이에 해당하는 힌두력 차이트라 달에 성대하게 기념된다.[59] 스와르그 드와르는 라마의 화장터로 여겨진다. 마니 파르밧과 수그리브 파르밧은 고대의 흙 언덕으로, 전자는 아소카 황제가 세운 탑으로 확인되며, 후자는 고대 수도원이다. 트레타 케 타쿠르 사원은 라마의 아슈바메다 야냐 제단이 있던 곳에 세워진 사원이다. 3세기 전, 쿨루의 라자는 이곳에 새로운 사원을 건립했고, 1784년 인도르의 아힐리아바이 홀카르가 개축했으며, 같은 시기에 인접한 가트(Ghats)도 건설되었다. 검은 사암으로 된 초기 조상들은 사라유 강에서 발견되어 칼레람-카-만디르로 알려진 새로운 사원에 안치되었다. 쇼티 데브칼리 만디르는 시타의 쿨데비인 이샤니 또는 두르가 여신의 사원이다.[59]

7. 4. 나게슈와르낫 사원

나게슈와르낫 사원은 라마의 아들 쿠샤가 세웠다. 전설에 따르면 쿠샤가 사르유 강에서 목욕을 하다 팔찌를 잃어버렸고, 그 팔찌를 찾아준 나가 칸야(Nag-Kanya)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나가 칸야는 시바의 신도였기에, 쿠샤는 그녀를 위해 이 사원을 지었다. 아요디아가 버려진 후부터 비크라마디티야 시대까지 이 사원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도시의 나머지 부분은 폐허가 되어 짙은 숲으로 뒤덮였지만, 이 사원 덕분에 비크라마디티야는 그 도시를 알아볼 수 있었다. 쉬브라트리(Shivratri) 축제는 이곳에서 매우 화려하게 기념된다.[60]

7. 5. 허황옥 기념비

2001년, 100명이 넘는 한국의 역사학자와 정부 대표를 포함한 한국 대표단이 아요디아에 허황옥 기념관을 개관하였다.[62] 2013년 3월 21일은 허왕후 기념비 건립 12주년이 되는 해였다.[107]

허황옥금관가야수로왕과 결혼한 인물로, 일각에서는 아요디아 출신이라고 믿고 있다.[61] 2016년, 한국 대표단은 기념관 개발을 제안했고, 이 제안은 우타르프라데시의 아킬레시 야다브 수석장관에 의해 수락되었다.[63]

김해와 아요디아는 허황옥의 출생지로 알려진 것을 바탕으로 2001년 3월 자매 도시 협정을 체결했다.[64]

참조

[1] 뉴스 अयोध्या में दीपोत्सव तैयारियां हुई शुरू, 25 लाख दीपों से जगमग होगी राम नगरी https://www.abplive.[...] 2024-12-02
[2] 웹사이트 Ayodhya decked up for 'Vikas Deepotsav'; over 9 lakh earthen lamps to illuminate temple town https://www.indiatvn[...] 2021-11-01
[3] 뉴스 Frenzied spiral grips Ayodhya, temple town turns festive burlesque ahead of Ram Mandir consecration https://www.telegrap[...] 2024-01-21
[4] 뉴스 The Voices Of Ayodhya - Watch NDTV Special Episode From Temple Town https://www.ndtv.com[...] 2024-01-20
[5] 웹사이트 Meet Ayodhya's new mayor: A former UPSC aspirant and Mahant of a city mandir https://www.hindusta[...] 2023-05-13
[6] 뉴스 Ayodhya, Kanpur, Gorakhpur and Gonda seats results LIVE updates: SP leads in Ayodhya as BJP's Lallu Singh falls behind https://www.hindusta[...] 2024-06-04
[7] 웹사이트 AYODHYA in Faizabad (Uttar Pradesh) http://www.citypopul[...] .citypopulation.de
[8] 웹사이트 52nd Report of the Commissioner for Linguistic Minorities in India http://nclm.nic.in/s[...] Ministry of Minority Affairs
[9] 웹사이트 Awadhi https://www.ethnolog[...]
[10] 웹사이트 District Ayodhya – Government of Uttar Pradesh {{!}} City Of Lord Rama {{!}} India https://ayodhya.nic.[...]
[11] 웹사이트 About District https://ayodhya.nic.[...]
[12] 뉴스 Ayodhya top tourist destination in U.P. with 11 crore visitors https://www.hindusta[...] 2024-09-15
[13] 뉴스 Ayodhya emerges as the top destination in Uttar Pradesh with over 11 crore visitors https://timesofindia[...] 2024-09-16
[14] 서적 The History of History: Politics and Scholarship in Modern India Oxford University Press
[15] 뉴스 How holy triangle has led to a mega surge in UP's tourist footfall - Times of India https://timesofindia[...] 2024-01-20
[16] 서적 The Battle for Rama – Case of the Temple at Ayodhya Aryan Books International 2021-12-01
[17] 뉴스 Ayodhya verdict: No place for fear, negativity in 'New India', says PM https://www.business[...] 2019-11-09
[18] 뉴스 Ayodhya verdict: Supreme Court dismisses Shia Waqf Board's appeal, says land belongs to govt https://www.indiatod[...] 2019-11-09
[19] 뉴스 Ram Mandir verdict: Supreme Court verdict on Ram Janmabhoomi-Babri Masjid case https://timesofindia[...] 2019-11-09
[20] 웹사이트 yudh – KST (Online Sanskrit Dictionary) https://kosha.sanskr[...]
[21] 뉴스 Ayodhya & Ayutthaya https://economictime[...] 2018-12-05
[22] 논문 The Etymology of the Name of Yogyakarta https://www.persee.f[...] 1986
[23] 논문 The Political Abuse of History: Babri Masjid-Rama Janmabhumi Dispute
[24] 서적 Ram Janmabhoomi through the ages: Babri Masjid controversy https://books.google[...] S. Chand
[25] 서적 Patronage and Popularisation, Pilgrimage and Procession Otto Harrassowitz Verlag
[26] 서적 Ayodhya Revisited
[27] 웹사이트 Awadh Archives in Ayodhya https://www.tribunei[...]
[28] 서적 The Hindu Nationalist Movement and Indian Politics: 1925 to the 1990s: Strategies of Identity-building, Implantation and Mobilisation (with Special Reference to Central India) https://books.google[...] Penguin Books India
[29] 서적 A Historical Sketch of Tehsil Fyzabad Lucknow
[30] 서적 Day of Empire: How Hyperpowers Rise to Global Dominance – And Why They Fall https://archive.org/[...] Doubleday
[31] 뉴스 Ram Lalla deity to be taken to Ayodhya https://web.archive.[...] 2002-01-19
[32] 뉴스 Proof of temple found at Ayodhya: ASI report http://www.rediff.co[...] 2003-08-25
[33] 뉴스 Evidence of temple found: ASI http://www.tribunein[...] 2003-08-25
[34] 뉴스 Can Ayodhya dig settle the dispute? http://news.bbc.co.u[...] 2003-03-14
[35] 뉴스 Ayodhya verdict: Allahabad High Court says divide land in 3 ways http://www.ndtv.com/[...]
[36] 웹사이트 High Court of Allahabad, Ram Janmbhoomi Babri Masjid Judgement, Decision of Hon'ble Special Full Bench Hearing Ayodhya Matters http://rjbm.nic.in/ Rjbm.nic.in 2010-09-30
[37] 뉴스 Ayodhya Verdict: Entire Disputed Site Goes to Hindus for Ram Mandir, Muslims to Get 5 Acres of Alternate Land https://www.news18.c[...] 2019-11-09
[38] 뉴스 Ayodhya Verdict Live Updates: Disputed Land To Be Given For Temple Construction, Muslims To Get 5-Acre Plot In Ayodhya, Says Top Court https://www.ndtv.com[...] 2019-11-09
[39] 뉴스 Ayodhya verdict live: Country's unity strengthened after verdict, say religious leaders https://timesofindia[...] 2019-11-09
[40] 뉴스 Korean relative of Kings of Ayodhya goes on evidence hunting http://www.indianexp[...] 2010-11-12
[41] 뉴스 South Korea's Ayodhya connection http://articles.time[...] 2004-09-12
[42] 뉴스 Festivities organized to honor Indian princess http://www.highbeam.[...] 2000-05-12
[43] 뉴스 Ram temple bhoomi pujan: Ceremony starts at 12.30 pm, PM to offer prayers to idol, address gathering https://indianexpres[...] 2021-08-31
[44] 뉴스 Golden chapter, says PM Modi after laying foundation stone for Ram temple https://www.hindusta[...] 2021-11-27
[45] 뉴스 Ayodhya breaks ground today https://indianexpres[...] 2021-11-27
[46] 웹사이트 Why India's New Ram Temple Is So Important https://www.nytimes.[...] 2024-02-29
[47] 웹사이트 Ayodhya Ram Mandir: India PM Modi inaugurates Hindu temple on razed Babri mosque site https://www.bbc.com/[...] BBC News 2024-02-29
[48] 웹사이트 BBC https://www.bbc.com/[...] 2023-09-08
[49] 웹사이트 Land levelling for Ayodhya Ram temple soon, says mandir trust after video conference https://www.newindia[...] 2020-05-08
[50] 웹사이트 India's Modi leads consecration of Ram temple in Ayodhya https://www.reuters.[...] 2024-03-01
[51] 웹사이트 Ayodhya Nagar Palika Parishad City Population Census 2011–2021 Uttar Pradesh https://www.census.c[...] Government of India 2021-07-16
[52] 웹사이트 Official Website of Nagar Nigam, Ayodhya / Ayodhya City / Geographical status http://nagarnigamayo[...] 2021-08-31
[53] 서적 The Hindu temple, Volume 1 https://books.google[...] Motilal Banarsidass 2016-03-23
[54] 웹사이트 Largest display of oil lamps illuminate Indian city to celebrate Diwali https://www.guinness[...] 2024-07-20
[55] 뉴스 Why India's New Ram Temple Is So Important https://www.nytimes.[...] 2024-01-22
[56] 뉴스 Ayodhya Ram Mandir Consecration Highlights: "Jan 22 Not Just A Date, It Is Beginning Of A New Era", Says PM Modi https://www.ndtv.com[...] 2024-01-31
[57] 뉴스 Triumphant Hindu mobs stoke fears in India after Modi delivers temple https://www.washingt[...] 2024-01-31
[58] 웹사이트 Kanak Bhawan District Ayodhya – Government of Uttar Pradesh India https://ayodhya.nic.[...] 2021-08-31
[59] 뉴스 माता सीता की कुल देवी के रूप में विराजमान हैं माँ छोटी देवकाली https://www.patrika.[...] 2021-08-31
[60] 뉴스 रामनगरी अयोध्या में आज महाशिवरात्रि पर भोले की बम-बम https://www.jagran.c[...] 2021-08-31
[61] 서적 Samguk Yusa Yonsei University Press
[62] 뉴스 Korean memorial to Indian princess http://news.bbc.co.u[...] 2017-08-07
[63] 웹사이트 UP CM announces grand memorial of Queen Huh Wang-Ock https://news.webindi[...] 2016-03-01
[64] 뉴스 South Korea's Ayodhya connection http://timesofindia.[...] 2021-02-23
[65] 웹사이트 MoU on Twinning arrangements between Kathmandu-Varanasi, Janakpur-Ayodhya and Lumbini-Bodh Gaya as sister cities https://pib.gov.in/n[...] 2020-03-08
[66] 뉴스 PM Narendra Modi signs 10 agreements with Nepal, inaugurates bus service http://timesofindia.[...] 2021-02-23
[67] 웹사이트 How to Reach District Ayodhya – Government of Uttar Pradesh India https://ayodhya.nic.[...] 2021-08-31
[68] 뉴스 Modi, Oli Jointly Inaugurate Janakpur-Ayodhya Direct Bus Service https://www.outlooki[...] 2021-02-23
[69] 웹사이트 Explained: The Ramayan Railway Circuit That Will Retrace The Epic In 8,000 Kms Journey https://www.outlooki[...] 2022-12-12
[70] 웹사이트 Ayodhya decked up for 'Vikas Deepotsav'; over 9 lakh earthen lamps to illuminate temple town https://www.indiatvn[...] 2021-11-03
[71] 뉴스 Frenzied spiral grips Ayodhya, temple town turns festive burlesque ahead of Ram Mandir consecration https://www.telegrap[...] 2024-01-21
[72] 뉴스 The Voices Of Ayodhya - Watch NDTV Special Episode From Temple Town https://www.ndtv.com[...] 2024-01-20
[73] 웹사이트 Meet Ayodhya's new mayor: A former UPSC aspirant and Mahant of a city mandir https://www.hindusta[...] 2023-05-13
[74] 뉴스 Ayodhya, Kanpur, Gorakhpur and Gonda seats results LIVE updates: SP leads in Ayodhya as BJP's Lallu Singh falls behind https://www.hindusta[...] 2024-06-04
[75] 웹사이트 AYODHYA in Faizabad (Uttar Pradesh) http://www.citypopul[...] .citypopulation.de
[76] 간행물 52nd Report of the Commissioner for Linguistic Minorities in India http://nclm.nic.in/s[...] Ministry of Minority Affairs
[77] 웹사이트 Awadhi https://www.ethnolog[...]
[78] 웹사이트 インド北部 イスラムと所有権争ってきた土地にヒンドゥー寺院 https://www3.nhk.or.[...] 2024-01-23
[79] 웹사이트 アヨーディヤ問題とは https://www.nikkei.c[...] 2024-01-23
[80] 뉴스 アヨディヤはヒンズー教徒の「屈辱の聖地」 1992-12-09
[81] 뉴스 対イスラムでヒンドゥー主義台頭 2002-04-09
[82] 뉴스 宗教対立・カースト問題が再燃 1992-12-04
[83] 잡지 インドの宗教暴動 ヒンズー至上主義の高まり 朝日新聞社 1992-12-22
[84] 잡지 宗教暴動の「元凶」を合法化 1993-07-06
[85] 뉴스 インド西部の暴動死傷者、600人超す 1993-01-10
[86] 뉴스 ヒンズー2団体の非合法化取り消す 1993-06-05
[87] 뉴스 聖地の争い、憎しみ連鎖 2002-03-02
[88] 서적 「モディ化」するインド 大国幻想が生み出した権威主義 中央公論新社 2024-05-10
[89] 뉴스 モスクの跡地にヒンズー教寺院、総選挙控えモディ首相が成果アピール https://jp.reuters.c[...] 2024-01-22
[90] 웹사이트 モスク跡地にヒンズー教寺院 印モディ首相、総選挙へ成果誇示 https://www.chunichi[...] 2024-01-22
[91] 웹인용 District Ayodhya – Government of Uttar Pradesh {{!}} City Of Lord Rama {{!}} India https://ayodhya.nic.[...]
[92] 웹인용 About District https://ayodhya.nic.[...]
[93] 웹인용 Largest display of oil lamps illuminate Indian city to celebrate Diwali https://www.guinness[...] 2023-11-17
[94] 문서 현장《대당서역기》 관련 내용
[95] 문서 법현《고승법현전》 관련 내용
[96] 문서 현장《대당서역기》 관련 내용
[97] 문서 《대비경》 관련 내용
[98] 문서 《후한서》 서역전 관련 내용
[99] 웹인용 palikanon -- Sāketa http://www.palikanon[...]
[100] 저널 The Political Abuse of History: Babri Masjid-Rama Janmabhumi Dispute
[101] 뉴스 Why India's New Ram Temple Is So Important https://www.nytimes.[...] 2024-01-22
[102] 뉴스 A decades long Hindu nationalist dream is about to be achieved. What does this mean? https://www.cnn.com/[...] 2024-01-20
[103] 뉴스 Ayodhya Ram Mandir: Date, aarti timings, darshan, and other details here https://www.livemint[...] 2024-01-20
[104] 뉴스 Ayodhya Ram Mandir highlights: Celebration, lamps, fireworks light up the nation as it witnesses a historic day https://www.deccanhe[...] 2020-08-05
[105] 뉴스 김해 인도 아요디아시와 자매결연 http://www.knnews.co[...]
[106] 뉴스 한국과 인도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습니다 http://www.gimhaenew[...]
[107] 웹사이트 인도에 허왕후 기념비가 있다?! http://sibo.gimhae.g[...]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