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안동 김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신 안동 김씨는 고려 시대 김선평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김선평은 고려 건국에 기여하여 태사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 시대에는 김삼근의 후손들이 안동 지역에 정착하여 번성했다. 특히 김번의 후손들은 왕비를 3명 배출하며 세도 가문으로 성장했고, 김조순의 딸이 순조의 왕비가 되면서 세도 정치를 이끌었다. 주요 인물로는 김상용, 김상헌 형제, 김수항 등이 있으며, 근현대에도 많은 고위 관료, 독립운동가, 정치인 등을 배출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안동 김씨 (신) - 김기진
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 안동 김씨 (신) - 김시현 (1883년)
김시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대 및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신 안동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 |
---|---|
성씨 정보 | |
성씨 | 신 안동 김씨 新 安東 金氏 |
이칭 | 장동 김씨(壯洞 金氏) |
나라 | 한국 |
![]() | |
관향 | 경상북도 안동시 |
시조 | 김선평(金宣平) |
중시조 | 김습돈(金習敦) |
집성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상북도 안동시, 의성군, 예천군, 청송군 충청남도 논산군, 청원군, 괴산군, 연기군 충청북도 음성군, 부여군 경기도 고양시, 광주시, 포천시, 양평군 |
인물 | |
주요 인물 | 김계권 김계행 김번 김원효 김극효 김상용 김상준 김상관 김상헌 김광욱 김광찬 김광혁 김광현 김수흥 김수항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김이소 김이교 김병교 김병기 김병지 김온순 김달순 김매순 김희순 김조순 김명순 김문순 김수근 김홍근 김흥근 김좌근 김삼근 김성근 김병학 김병덕 김병국 김병시 김병기 김병기 김병덕 김병원 김병지 김병필 김병익 김병학 김호규 김덕규 김창규 김옥균 김성락 김경진 김동진 김호진 김덕진 김복진 김영진 김성진 김성진 김석진 김익진 김좌진 김가진 김기진 김광림 김상년 김익기 김인기 김무연 김광현 김시현 김세현 김모임 김범일 김명동 김익동 김복동 김성동 김옥숙 김증한 김영한 김두한 김수한 김종한 학조대사 영빈김씨 순원왕후 효현왕후 철인왕후 |
기타 정보 | |
년도 | 2015 |
인구 | 47,702명 (인구의 0.096%) |
2. 역사
고려 태조를 도와 태사가 된 김선평(金宣平)을 시조로 하는 안동 김씨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크게 번성하였다.[1] 조선조에 들어와 후손 김삼근(金三近)이 안동시 풍산읍에 정착한 이래, 그의 후손들이 벼슬을 하며 가문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김상용, 김상헌 형제와 그 후손들이 인조 때 높은 벼슬에 오르며 명문가로 성장했다.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과 그의 아들들인 김창집 형제는 서인 노론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김창집의 현손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가 순조의 왕비가 되면서, 김조순은 영안부원군에 봉해졌다. 이후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를 배출하며 세도 정치의 중심 가문이 되었다. 이들은 한양 장의동에 세거하여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고 불렸으며,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권세를 누렸다.
2. 1. 시조 및 고려 시대
김선평(金宣平)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워 태사(太師) 작위를 받았다.[1]
2. 2. 조선 시대
조선에 들어와 비안현감 김삼근(金三近, 1390년 ~ 1465년)이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에 정착한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1] 김삼근의 장남 김계권(金係權, 1410년 ~ 1458년)은 한성판관을, 차남 김계행(金係行, 1413년 ~ 1517년)은 대사헌을 역임하였다.김계권은 5형제를 두었는데, 그중 넷째 아들 김영수(金永銖, 1716년 ~ 1786년)는 사헌부장령을 역임하였다. 김영수의 세 아들 중 김영(金瑛, 1475년 ~ 1582년)은 이조참의를, 김번(金璠, 1479년 ~ 1544년)은 평양서윤을, 김순(金珣, ~ 1623년)은 형조좌랑을 역임하였다.
평양서윤 김번의 후손들은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 명 등을 배출하며 조선 후기 최고의 명문가로 성장하였다.
김번의 손자 김극효(金克孝, 1542년 ~ 1618년)와 그의 아들 김상용(金尙容, 1561년 ~ 1637년), 김상헌(金尙憲, 1570년 ~ 1652년) 형제는 인조 때 정승의 반열에 올랐다.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金壽恒, 1629년 ~ 1689년)은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들인 김창집(金昌集, 1648년 ~ 1722년, 영의정), 김창협(金昌協, 1651년 ~ 1708년, 대제학), 김창흡(金昌翕, 1653년 ~ 1722년, 사헌부집의), 김창업(金昌業, 1658년 ~ 1722년, 이조참의), 김창즙(金昌緝, 1662년 ~ 1713년, 왕자사부), 김창립(金昌立, 1666년 ~ 1683년) 형제는 서인 노론 세력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김창집의 현손 김조순(金祖淳, 1765년 ~ 1832년)의 딸이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년 ~ 1857년)가 되면서 김조순은 영안부원군에 봉해졌다.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년 ~ 1843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년 ~ 1878년) 역시 신 안동 김씨 가문에서 배출되면서, 이들은 세도 가문이 되었다. 이들은 한양 백악산 아래 장의동에 거주하여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고 불렸으며,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17세기 이후 국반(國班)의 지위에 올랐다.
성함 | 신분 |
---|---|
김조순(金祖淳) | 부원군 |
김조근(金祖根) | 부원군 |
김문근(金汶根) | 부원군 |
순원왕후(純元王后) | 왕후 |
효현왕후(孝顯王后) | 왕후 |
철인왕후(哲仁王后) | 왕후 |
김광찬(金光燦) | 영의정 |
김수흥(金壽興) | 영의정 |
김수항(金壽恒) | 영의정 |
김창집(金昌集) | 영의정 |
김유근(金逌根) | 영의정 |
김흥근(金興根) | 영의정 |
김좌근(金左根) | 영의정 |
김병국(金炳國) | 영의정 |
김병시(金炳始) | 영의정 |
김석진(金奭鎭) | 영의정 |
김상헌(金尙憲) | 좌의정 |
김이소(金履素) | 좌의정 |
김이교(金履喬) | 좌의정 |
김홍근(金弘根) | 좌의정 |
김병학(金炳學) | 좌의정 |
김상용(金尙容) | 우의정 |
김달순(金達淳) | 우의정 |
김병덕(金炳德) | 우의정 |
김상관(金尙寬) | 좌찬성 |
김병기(金炳冀) | 좌찬성 |
김창협(金昌協) | 대제학 |
김희순(金羲淳) | 대제학 |
김유근(金逌根) | 병조판서 |
김보근(金輔根) | 병조판서 |
김병지(金炳地) | 공조판서 |
김창업(金昌業) | 이조판서 |
김문순(金文淳) | 이조판서 |
김수근(金汶根) | 이조판서 |
김병교(金炳喬) | 이조판서 |
김난순(金蘭淳) | 형조판서 |
김응균(金應均) | 예조판서 |
김병필(金炳弼) | 예조판서 |
김명순(金明淳) | 이조참판 |
김매순(金邁淳) | 예조참판 |
김온순(金蘊淳) | 공조참판 |
김병기(金炳基) | 이조참의 |
김병필(金炳弼) | 이조참의 |
영빈 김씨(寧嬪 金氏) | 대왕귀비 |
신 안동 김씨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한 분야에서 주요 인물들을 배출했다.
3. 주요 인물
고려시대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에는 김번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여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 명 등을 배출했다. 특히 김상헌의 손자 김수항은 영의정을 지냈고, 그의 아들들인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등 형제들은 서인 노론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김창집의 현손 김조순의 딸 순원왕후가 순조의 왕비가 되면서 김조순은 영안부원군에 봉해졌고, 이후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에 이르기까지 세도 가문이 되었다.성함 신분 김조순 부원군 김조근 부원군 김문근 부원군 순원왕후 왕후 효현왕후 왕후 철인왕후 왕후 김광찬 영의정 김수항 영의정 김창집 영의정 김좌근 영의정 김상헌 좌의정 김이소 좌의정 김홍근 좌의정 김상용 우의정 김달순 우의정 김병덕 우의정 김창협 대제학 영빈 김씨 대왕귀비
근대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성함 종파 신분 김성근 문충공파 조선귀족 김병익 문충공파 조선귀족 김학진 문정공파 조선귀족 김석진 문정공파 조선귀족 김종한 문충공파 조선귀족 김가진 문충공파 조선귀족 김덕한 문정공파 조선귀족 김세현 문충공파 조선귀족 김호규 문충공파 조선귀족 김옥균 문충공파 급진개화파 김좌진 문충공파 독립혁명가 김영한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김창한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김병규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김서규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김영진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김병원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김경진 문충공파 중추원참의
현대에는 국회의장을 역임한 김수한, 국회부의장을 역임한 김덕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등이 있다.
보사부장관을 역임한 김태동, 김성진, 보건부장관을 역임한 김모임, 문체부장관을 역임한 김성진, 고용부장관을 역임한 김호진이 있다.
검찰총장을 역임한 김익진,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김창규 와 김인기, 대구직할시장을 역임한 김범일,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한 김무연, 교육부차관을 역임한 김증한, 재경부차관을 역임한 김광림이 있다.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로는 김시현, 김명동, 김익기, 김대진, 김두한, 김상년, 김을동, 김성동, 김충환, 김형동 등이 있다. 김복동은 신군부장군이었다.
3. 1. 중세 (고려)
金宣平|김선평중국어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신 안동 김씨의 시조이다.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 건국에 큰 공을 세워 태사(太師) 벼슬을 받았다.[1]
3. 2. 근세 (조선)
조선 후기에 김번(金璠, 1479년 ~ 1544년)의 후손들이 크게 번성하였다. 왕비 3명, 후궁 1명, 부마도위 2명, 종묘공신 6명, 판서 35명, 당상관(정3품 이상) 140여 명 등 조선 후기에 가장 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하였다.[1]손자 동지돈녕부사 김극효(金克孝, 1542년 ~ 1618년)와 그의 아들 김상용(金尙容, 1561년 ~ 1637년), 김상헌(金尙憲, 1570년 ~ 1652년) 형제가 인조 때 높은 벼슬에 올랐다. 김상헌(金尙憲, 1570년 ~ 1652년)의 손자 김수항(金壽恒, 1629년 ~ 1689년)은 영의정을 지냈으며, 그의 아들들인 김창집(金昌集, 1648년 ~ 1722년) (영의정), 김창협(金昌協, 1651년 ~ 1708년) (대제학), 김창흡(金昌翕, 1653년 ~ 1722년) (사헌부집의), 김창업(金昌業, 1658년 ~ 1722년) (이조참의), 김창즙(金昌緝, 1662년 ~ 1713년) (왕자사부), 김창립(金昌立, 1666년 ~ 1683년) 형제는 덕망과 명망이 높아 당대를 이끌었으며, 서인 노론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김창집(金昌集, 1648년 ~ 1722년)의 현손 김조순(金祖淳, 1765년 ~ 1832년)의 딸이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純元王后, 1789년 ~ 1857년)가 되면서 김조순(金祖淳, 1765년 ~ 1832년)은 영안부원군에 봉해졌다.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孝顯王后, 1828년 ~ 1843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년 ~ 1878년)에 이르기까지 세도 가문이 되었다. 이들은 한양 백악산 아래 장의동에 세거하여 장동 김씨(壯洞 金氏)라고 불렸다.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이라고 불릴 정도로 17세기 이후 높은 지위에 올랐다.[1]
다음은 조선시대 주요 인물 목록이다.
성함 | 신분 |
---|---|
김조순(金祖淳) | 부원군 |
김조근(金祖根) | 부원군 |
김문근(金汶根) | 부원군 |
순원왕후(純元王后) | 왕후 |
효현왕후(孝顯王后) | 왕후 |
철인왕후(哲仁王后) | 왕후 |
김광찬(金光燦) | 영의정 |
김수항(金壽恒) | 영의정 |
김창집(金昌集) | 영의정 |
김좌근(金左根) | 영의정 |
김상헌(金尙憲) | 좌의정 |
김이소(金履素) | 좌의정 |
김홍근(金弘根) | 좌의정 |
김상용(金尙容) | 우의정 |
김달순(金達淳) | 우의정 |
김병덕(金炳德) | 우의정 |
김창협(金昌協) | 대제학 |
영빈 김씨(寧嬪 金氏) | 대왕귀비 |
3. 3. 근대
성함 | 종파 | 신분 |
---|---|---|
김성근 | 문충공파 | 조선귀족 |
김병익 | 문충공파 | 조선귀족 |
김학진 | 문정공파 | 조선귀족 |
김석진 | 문정공파 | 조선귀족 |
김종한 | 문충공파 | 조선귀족 |
김가진 | 문충공파 | 조선귀족 |
김덕한 | 문정공파 | 조선귀족 |
김세현 | 문충공파 | 조선귀족 |
김호규 | 문충공파 | 조선귀족 |
김옥균 | 문충공파 | 급진개화파 |
김좌진 | 문충공파 | 독립혁명가 |
김영한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김창한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김병규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김서규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김영진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김병원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김경진 | 문충공파 | 중추원참의 |
3. 4. 현대
김수한(예의소승공파)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다.[1]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참봉공파)은 영부인이었다. 김덕규(참봉공파)는 국회부의장을 역임했다.보사부장관을 역임한 인물로는 김태동(문충공파), 김성진(문충공파) 이 있으며, 김모임(시중공파)은 보건부장관을, 김성진(문정공파)은 문체부장관을, 김호진은 고용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김익진(문충공파)은 검찰총장을, 김창규(참봉공파) 와 김인기(첨사공파)는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김범일(증참의공파)은 대구직할시장을, 김무연(계공랑공파)은 경상북도지사를 역임했다. 김증한(문충공파)은 교육부차관을, 김광림(처사공파)은 재경부차관을 역임했다.
국회의원을 역임한 인물로는 김시현(승의랑공파), 김명동(문충공파), 김익기(사헌공파), 김대진(어담공파), 김두한(문충공파), 김상년(승의랑공파), 김을동(문충공파), 김성동(예의소승공파), 김충환(생원공파), 김형동(생원공파) 등이 있다.
김복동(참봉공파)은 신군부장군이었다.
4. 집성촌
지역 |
---|
서울특별시 종로구 |
경기도 고양시 |
경기도 광주시 |
경기도 포천시 |
경기도 양평군 |
충청남도 논산시 |
충청남도 청원군 |
충청남도 괴산군 |
충청남도 연기군 |
충청북도 음성군 |
충청북도 부여군 |
경상북도 안동시 |
경상북도 의성군 |
경상북도 예천군 |
경상북도 청송군 |
5. 관련 유적
태장재사와 석실서원이 있다.
6. 관련 역사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1789년 ~ 1857년)를 배출하면서 김조순(1765년 ~ 1832년)을 필두로 헌종의 왕비 효현왕후(1828년 ~ 1843년), 철종의 왕비 철인왕후(1837년 ~ 1878년)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왕비를 배출하며 세도 정치의 중심 가문이 되었다.[1] 이 시기 신 안동 김씨는 "금관자(金貫子)가 서 말인 집안"으로 불릴 정도로 번성하였다.[1]
7. 항렬자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34세 | 35세 | 36세 | 37세 | 38세 | 39세 | 40세 | 41세 | 42세 | 43세 | 44세 | 45세 | 46세 |
---|---|---|---|---|---|---|---|---|---|---|---|---|---|---|---|---|---|---|---|---|---|---|---|---|
□순(淳) | □근(根) | 병(炳) | □규(圭) □균(均) | □진(鎭) | □한(漢) | □동(東) | □현(顯) | □년(年) □기(基) | □일(鎰) □종(鍾) | □구(求) | □모(模) | 연(然) | □배(培) | □선(銑) | 원(源) | □영(榮) | 사(思) | □준(浚) | 선(善) | □택(澤) | □식(植) | □환(煥) | □철(喆) | □용(鏞)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