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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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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필론은 기원전 30년경부터 기원후 45년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유대 철학자이다. 그는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유대교 율법을 엄격히 준수했다. 필론은 플라톤 철학과 유대교 신앙을 결합하려 시도했으며, 로고스, 이데아론 등의 개념을 유대교 사상에 도입했다. 그의 저작은 주로 그리스어로 쓰였으며, 구약성경 주석, 율법 해석, 철학 논문 등을 포함한다. 필론은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유대교 내에서는 랍비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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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론
기본 정보
1584년 프랑스 초상화가 앙드레 테베가 만든 필론의 상상 삽화
1584년 프랑스 초상화가 앙드레 테베가 만든 필론의 상상 삽화
본명필론
다른 이름필론 유대우스 (Philo Judaeus)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Philo of Alexandria)
히브리어 이름יְדִידְיָה (Yəḏīḏyāh)
출생기원전 20년경
출생지알렉산드리아, 로마령 이집트
사망기원후 50년경
사망지알 수 없음
국적로마 제국
사상과 학문
분야철학, 신학
주요 관심사우주론
종교 철학
주요 사상토라의 우화적 해석
학파/전통중기 플라톤주의
헬레니즘 유대교
영향
영향을 준 인물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영향을 받은 인물초기 기독교 교부
중세 유대교 철학자
르네상스 철학자
기타 정보
관련 인물아그리파 1세
사도 바울

2. 생애

필론의 출생 및 사망 연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기원후 38년에 칼리굴라에게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이었을 때 자신을 "늙었다"고 묘사한 것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유대교 역사학 교수인 다니엘 R. 슈워츠는 그의 출생 연도를 기원전 15년에서 10년 사이로 추정한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치하의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기원후 45년에서 50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8] 필론은 평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예루살렘제2성전을 방문했다고 한다.[6]

필론은 로마 제국 통치의 새로운 규제로 악화된 알렉산드리아의 민족적 긴장 속에서 살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일부 망명 그리스인들은 로마가 유대 로마 속주에서 유대인의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을 억압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로마와의 동맹으로 비난했다.[11][8]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필론이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 로마 황제 가이우스 칼리굴라 앞에서 그들의 수석 대표로 선택되었다고 기록했다. 필론은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발생한 시민 불안에 대해 알렉산드리아 유대인을 대표하는 데 동의했다. 요세푸스는 필론이 철학에 능숙했으며 알라바르크 알렉산더의 형제였다고 전한다.[12] 요세푸스에 따르면 필론과 유대인 공동체는 황제를 신으로 대우하고, 황제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고, 황제를 위한 제단과 신전을 세우는 것을 거부했다. 요세푸스는 필론이 하나님이 이러한 거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의 필론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 거주민과 그리스인 사이에 소란이 일어났고,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각 당에서 세 명의 대사가 가이우스에게 왔다. 알렉산드리아 사람들 중 한 명인 아피온은 유대인에 대해 많은 신성 모독을 외쳤고, 그중에는 유대인들이 카이사르에게 속한 명예를 소홀히 했다고 비난하는 내용도 있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가이우스를 위해 제단과 신전을 짓고 다른 면에서도 그를 신으로 받아들인 반면, 이 유대인들만 그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피온은 가이우스를 유대인에게 화나게 하려고 이러한 심한 말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유대인 사절단의 수석인 필론은 모든 면에서 저명한 인물이었고, 알라바르크 알렉산더의 형제였으며, 철학에도 능통한 사람이었기에 그 비난에 대해 변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이우스는 그를 금지하고 가라고 명령했다. 그는 또한 분노하여 그들에게 매우 큰 해를 끼치려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래서 필론은 이렇게 모욕을 당하고 밖으로 나가 그를 따르는 유대인들에게 가이우스의 말은 그들에게 분노를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이미 하나님을 그 자신에게 대항하게 했다고 말하며 용기를 내라고 말했다.[13]

이 사건은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2권 5장에도 묘사되어 있다.[14]

필론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공동체(디아스포라)의 지도 그룹에 속해 있었으며,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대인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게 진정하기 위해 로마로 파견되었다. 그는 기원전 30년경에 태어나 기원후 45년까지 알렉산드리아에 살았으며, 그리스어를 훌륭하게 구사했지만 히브리어는 말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경건한 유대인이었고 유대율법을 준수했다.[112]

2. 1. 교육

필론은 형제들과 함께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헬레니즘 문화와 고대 로마 문화, 어느 정도 고대 이집트 종교와 특히 유대교의 전통, 유대교 전통 문헌 연구, 그리고 그리스 철학을 교육받았다.

필론은 그의 저작에서 플라톤스토아 학파와 같은 철학자뿐만 아니라 호메로스, 에우리피데스, 데모스테네스와 같은 시인과 웅변가에게서도 광범위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15] 필론에게 가장 큰 철학적 영향을 준 것은 플라톤이었으며, 특히 《티마이오스》와 《파이드로스》, 그리고 《파이돈》, 《테아이테토스》, 《향연》, 《국가》, 《법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필론의 히브리어 지식의 정도는 논쟁의 대상이다. 필론은 히브리어보다 그리스어에 더 능숙했으며, 유대교 성경을 주로 70인역에서 읽었는데, 이는 나중에 히브리 성경과 제2경전으로 편찬된 히브리어 텍스트의 코이네 그리스어 번역본이었다.[16] 그의 수많은 히브리어 이름의 어원 분석은 창세기에 대한 어원적 ''미드라쉬''와 초기 랍비 유대교의 방식과 유사하지만, 현대 히브리어 어원학은 아니며, 어느 정도의 친숙함을 시사한다.[17] 필론은 어떤 이름에 대해서는 세 가지 또는 네 가지 어원을 제시하기도 하며, 때로는 올바른 히브리어 어근을 포함하기도 한다 (예: 요르단강의 이름의 기원으로서 י־ר־ד|y-r-d|내려가다he). 그러나 그의 작품은 히브리어 문법에 대한 이해를 많이 보여주지 않으며, 히브리어 버전보다 70인역의 번역을 더 면밀히 따른다.[16] [18]

3. 사상

필론은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려 시도했으며, 창세기 해석에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조물주)와 이데아의 관계를 엮어 에 의해 창조된 영혼이 타락하고 정화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는 《구약성서》의 신의 초월성을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통해 체계화했다.[24] 필론은 자신의 저서에서 유대교의 종교적 정당성을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증명하려 했기에, 그의 저서는 당시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교부, 스피노자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서로는 《천지 창조에 관하여》, 《비유적(比喩的) 해석》, 《특수율법에 관하여》 등이 있으며, 주로 《구약성서》의 모세오경을 다룬다.

필론은 히브리 성경을 종교적 진리와 모든 진리의 근원으로 여겼다.[26] 그는 성경 말씀을 ἱερὸς λόγος|히에로스 로고스grc, θεῖος λόγος|테이오스 로고스grc, ὀρθὸς λόγος|오르토스 로고스grc(거룩한 말씀, 신성한 말씀, 의로운 말씀)라고 칭하며,[25] 때로는 예언자, 특히 모세를 통해 전달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십계명과 같이 하느님이 직접 말한 것과 모세의 칙령은 구분했다.[26]

필론은 스토아 학파의 알레고리 해석 방식을 히브리 성경에 적용하여, 다섯 권의 책 이야기를 은유상징으로 해석하고, 그리스 철학 사상이 성경보다 앞섰음을 증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이토스이항 대립 개념, 키티온의 제논이 설명한 현자의 개념 등이 성경에 나타난다고 보았다.[27] 그는 칠십인역이 객관적인 역사로 이해될 수 없다고 반복해서 설명했다.

필론의 알레고리 해석은 성경의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건들을 다루고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며, 등장인물들을 인간의 측면으로, 이야기를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아담은 정신, 이브는 감각, 노아는 평정을 나타낸다.[28] 요세푸스에 따르면, 필론은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29][30]

필론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비학에 따라 처음 10개 숫자의 중요성을 설명했다:[31]

숫자의미
1신의 숫자, 모든 숫자의 기초[32]
2분열, 창조된 것, 죽음[33]
3육체 또는 근본적인 힘과 관련된 신적 존재
4완전한 숫자, 정념
5감각과 감수성
6남성적인 숫자와 여성적인 숫자의 곱(3×2), 유기체의 움직임
7다양한 속성
8정육면체의 숫자,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결정된 많은 속성
9갈등
10완벽



필론은 숫자 50, 70, 100, 12, 120의 값도 결정하고, 대상의 상징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성경과 미드라쉬의 예를 따라 고유 명칭의 상징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새로운 해석을 추가했다.[34]

필론은 신학을 반대되는 개념의 부정과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설명을 통해 설명하고, 하느님의 본성을 물질 세계와 대조했다. 그는 하느님을 하늘, 세계, 인간과 유사하다고 여기지 않고, 인간과 유사한 특징이나 감정이 없는 초월적인 하느님을 긍정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물질을 무(無)와 동일시하고, 그 영향을 오류, 불화, 손상, 부패로 간주했다.[35] 오직 하느님의 존재만이 구체적이며, 적절한 술어는 상상할 수 없다.[36] 필론에게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특별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

필론은 랍비 전통에서 하느님의 초월성[37], 인간이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는 내용을 통합했다.[38] 그는 하느님은 속성이 없고 이름도 없으며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하느님은 변할 수 없다고 가정했다. 하느님은 항상 동일하며, 자족적이다.[40] 하느님은 멸망할 수 없으며, 자존하며,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41]

필론은 성경의 신인동형론을 플라톤적 개념과 양립할 수 없는 불경함으로 여겨, 손, 발, 눈, 귀, 혀 등을 알레고리로 해석했다.[42] 필론의 해석에 따르면, 히브리 성경은 인간의 개념에 맞춰져 있으며, 신은 교수적 이유로 인간으로 묘사된다.[43] 신은 부당한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출애굽기 32장:12에서 모세가 감정에 휩싸여 신만이 평온함을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4] 그러나 신은 종종 인간적인 감정을 부여받은 것으로 묘사되며, 이는 인간의 회개를 언급하는 표현을 설명하는 데 기여한다.

신은 공간에 존재하거나 변화할 수 없다. 그는 "어디"를 갖지 않으며, 어떤 장소에도 있지 않다. 그는 그 자신이 장소이며, 신의 거처는 신 자신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는 미쉬나 = "신은 존재한다"와 일치하며, 모든 것의 존재가 신 안에 요약된다는 그리스 철학의 원칙과 일치한다.[45] 성경에서 "신은 서 있다"라는 구절처럼, 신은 그 자체로 움직이지 않는다.[46]

필론은 스토아 철학과 일치하게 세상에서 활동하는 신적 존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물질 개념 때문에 신을 세상 밖에 두어야 했다. 그는 세상에 나타나는 활동을 신적 능력으로 옮겼는데, 이러한 능력은 때로는 신 안에 내재하고 때로는 신 외부에 존재했다. 플라톤적 개념과 스토아 철학적 개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론은 이러한 신적 속성을 플라톤에 따라 실제 사물의 유형 또는 패턴("원형적 아이디어")으로 생각했지만, 동시에 사물의 유형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효율적인 원인으로 간주했다.[47] 필론은 이러한 개념을 성경과 조화시키기 위해 이러한 능력을 천사로 지칭했다.[48] 필론은 이러한 능력을 독립된 위격(hypostases)이자 신적 존재의 내재적 속성으로 간주했다.

필론은 신의 이름에 표현된 선함과 능력의 두 가지 신적 속성을 대조했는데, "야훼"(Yhwh)를 선함으로, "엘로힘"(Elohim, 70인역. Θεός)을 "우주적 능력"으로 해석했다. 창조를 신적 선함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 여겼기 때문에 Θεός에서 특히 선함의 관념을 찾았다.[49]

필론은 피타고라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욕, 욕망, 분노와 같은 열정이 없는 덕목의 도덕성을 선호했지만, "인간적인 공감"을 함께했다.[74] 해설자들은 또한 필론이 칼리굴라에게 보낸 사절단을 통해 그가 정치에 관여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신념의 본질, 특히 로마 제국에 대한 그의 관점은 논쟁의 대상이다.[75][76] 필론은 저술에서 현명한 사람은 폭군에 대한 자신의 진정한 의견을 보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 1. 알레고리적 성경 해석

필론은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려 시도했다. 예를 들어, 그의 창세기 해석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造物神)와 이데아의 관계를 엮어, 에 의한 혼의 타락과 정화 과정으로 설명한다.[24] 《구약성서》의 신의 초월성은 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었다.

필론은 히브리 성경을 종교적 진리뿐만 아니라 모든 진리의 근원이자 기준으로 보았다. 히브리 성경의 선언은 ἱερὸς λόγοςgrc, θεῖος λόγοςgrc, ὀρθὸς λόγοςgrc(거룩한 말씀, 신성한 말씀, 의로운 말씀)이며,[25] 때로는 직접, 때로는 예언자의 입을 통해, 특히 계시의 진정한 매개체로 여기는 모세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십계명처럼 하느님 자신이 말한 것과 모세의 칙령 (특별법)은 구분한다.[26]

필론은 성경을 종교적 계시와 철학적 진리의 원천으로 보았다. 스토아 학파의 알레고리 해석 방식을 히브리 성경에 적용, 다섯 권의 책 이야기를 은유상징으로 해석하여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이 성경보다 앞섰음을 증명하려 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이항 대립 개념은 『신성한 것들의 상속자는 누구인가?』 § 43 [i. 503]에, 키티온의 제논이 설명한 현자의 개념은 『모든 선한 사람은 자유롭다』 § 8 [ii. 454]에 나타난다.[27] 필론은 고대 유대교의 주관적 경험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칠십인역을 객관적인 역사로 이해할 수 없다고 반복했다.

필론의 성경 알레고리 해석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건을 다루고, 이야기에 일관된 설명을 제시한다. 성경 등장인물을 인간적 측면으로, 성경 이야기를 보편적 인간 경험의 에피소드로 해석한다. 아담은 정신, 이브는 감각을 나타낸다. 노아는 평정을, 불완전하지만 진보하는 의로움의 단계를 나타낸다.[28]

필론은 구약성경 주석에 비유적 해석을 사용했다. 그리스 사상의 로고스이데아론 개념을 유대교 사상 이해에 처음 도입했다. 플라톤 저작, 특히 『티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구약성경플라톤 철학이 조화롭다고 생각했다. 필론은 플라톤을 "그리스의 모세"라 부르며, 플라톤 사상에 모세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3. 2. 로고스론

필론은 하나님의 신성한 힘을 독립된 존재, 즉 데미우르고스[50]로 취급하며, 이를 "로고스"라고 불렀다. 필론의 로고스 개념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분리하는 로고스"( λόγος τομεύς|로고스 토메우스grc) 개념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다양한 대조의 조합을 통해 여러 객체를 존재하게 한다고 보았다("Quis Rerum Divinarum Heres Sit," § 43 [i. 503]).[50] 이는 스토아 철학에서 로고스를 활력 있고 생명을 불어넣는 힘으로 묘사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필론은 불완전한 물질과 완전한 형태 사이의 플라톤적 구분을 따랐으며, 그의 로고스 개념은 움직이지 않고 완전히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중기 플라톤주의적 관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신과 물질 세계 사이의 큰 간극을 메우기 위해 중재자가 필요했다.[51] 로고스는 이러한 중재자들 중 가장 높은 존재였으며, 필론은 이를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51][52]

필론은 로고스를 "아이디어 중의 아이디어" 및 "원형적 아이디어"[53]로 지칭하는 데 플라톤적 요소를 적용했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데미우르고스의 생각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로고스의 내용을 구성하며, 세상 창조 시 감각적인 것들을 만드는 데 사용된 도장과 같았다.[54] 로고스는 창조물들의 전형이 담긴 책과 유사하다.[55] 도시 건설 전에 건축가의 설계는 필론에게 로고스의 또 다른 비유로 작용한다.[56] 창조 이후, 로고스는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다.[57] 아이디어의 그릇이자 소유자로서 로고스는 물질 세계와 구별된다. 동시에 로고스는 세상을 관통하며 지탱한다.[58] 이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모든 것의 유형(플라톤의 "원형적 아이디어")이며, 사물에 새겨진 도장과 같다. 로고스는 신의 그림자와 같은 종류로, 윤곽은 있지만 신성한 존재의 눈부신 빛은 가지고 있지 않다.[59][60][61] 그는 로고스를 "제2의 신(deuteros theos|데우테로스 테오스grc)"[62], "하나님의 이름"[63]이라고 부른다.

필론은 로고스에 대한 자신의 교리를 성경과 연결하는데, 우선 창세기 1:27을 바탕으로 로고스와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는 이 구절을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라고 번역하며, 그 구절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64] 로고스는 또한 유대인과 신의 관계의 물리적 중심으로서 유배 이후 대제사장이 차지했던 숭고한 지위를 언급하여 "대제사장"으로 지칭된다. 로고스는 대제사장처럼 유대인의 죄를 속죄하고 인류를 위해 신 앞에서 중재하고 옹호하는 자이며, 신에게 보내는 사절(ἱκέτης|히케테스grc,[65] παράκλητος|파라클레토스grc)[66][67]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정돈한다.[68] 민수기 22:22–35에서 발람의 길을 막는 천사는 필론에 의해 로고스의 현현으로 해석되며, 이는 발람, 즉 인류의 양심 역할을 한다.[70] 이처럼 로고스는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세상에서 작용하는 신성한 측면이 된다.[71]

페터 섀퍼는 필론의 로고스가 "성경 이후의 지혜 문학, 특히 솔로몬의 지혜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72]

로고스는 인류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필론은 인간을 삼분법으로 보았는데, 이는 누스 (정신), 프쉬케 (영혼), 그리고 소마 (육체)로 구성되며, 이는 마음-몸 관계에 대한 헬레니즘적 관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필론의 저술에서는 정신과 영이 서로 바꿔서 사용된다.[73] 영혼은 원형이고, 인간은 그 복사본이다. 정신(νοῦς)에서 유사성이 발견된다. 누스를 형성하기 위해, 개인은 따라야 할 패턴으로서 로고스를 가진다. 로고스는 여기서 또한 "분리자"(τομεύς|토메우스grc)로서 작용하며, 분리하고 결합한다. 로고스는 "해석자"로서 신의 계획을 인류에게 알리고, 이 점에서 예언자이자 제사장 역할을 한다. 제사장으로서 로고스는 신의 자비로운 힘을 징벌적인 힘보다 강하게 만듦으로써 벌을 완화한다.

필론은 구약성경을 주석하는 데에 비유적 해석을 다용했다. 또한, 그리스 사상에서 유래한 로고스이데아론의 개념을 유대교 사상의 이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필론은 플라톤의 저작, 특히 『티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구약성경플라톤 철학이 조화적이라고 생각했다. 필론은 플라톤을 "그리스의 모세"라고 부르며, 플라톤의 사상에 모세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로고스가 신의 말씀이라는 사상은, 후에 기독교에서 예수가 천지 창조에 앞서 존재했다는 "선재의 예수" 사상과 결합하여, 예수가 로고스라는 사상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필론의 저작은 초기 기독교와 교부들의 사상,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3. 3. 신론

필론은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려 했으며, 그의 창세기 해석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조물주)와 이데아의 관계를 엮어 에 의해 창조된 영혼이 타락하고 정화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는 《구약성서》의 신의 초월성을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통해 체계화했다.[25] 필론은 자신의 저서에서 유대교의 종교적 정당성을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증명하려 했기에, 그의 저서는 당시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교부, 스피노자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서로는 《천지 창조에 관하여》, 《비유적(比喩的) 해석》, 《특수율법에 관하여》 등이 있으며, 주로 《구약성서》의 모세오경을 다룬다.

필론은 히브리 성경을 종교적 진리와 모든 진리의 근원으로 여겼다.[26] 그는 성경 말씀을 ἱερὸς λόγος|히에로스 로고스grc, θεῖος λόγος|테이오스 로고스grc, ὀρθὸς λόγος|오르토스 로고스grc(거룩한 말씀, 신성한 말씀, 의로운 말씀)라고 칭하며,[25] 때로는 예언자, 특히 모세를 통해 전달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십계명과 같이 하느님이 직접 말한 것과 모세의 칙령은 구분했다.[26]

필론은 스토아 학파의 알레고리 해석 방식을 히브리 성경에 적용하여, 다섯 권의 책 이야기를 은유상징으로 해석하고, 그리스 철학 사상이 성경보다 앞섰음을 증명하려 했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이토스이항 대립 개념, 키티온의 제논이 설명한 현자의 개념 등이 성경에 나타난다고 보았다.[27] 그는 칠십인역이 객관적인 역사로 이해될 수 없다고 반복해서 설명했다.

필론의 알레고리 해석은 성경의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건들을 다루고 일관된 설명을 제공하며, 등장인물들을 인간의 측면으로, 이야기를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아담은 정신, 이브는 감각, 노아는 평정을 나타낸다.[28] 요세푸스에 따르면, 필론은 알렉산드리아의 아리스토불루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29][30]

필론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수비학에 따라 처음 10개 숫자의 중요성을 설명했다:[31]

숫자의미
1신의 숫자, 모든 숫자의 기초[32]
2분열, 창조된 것, 죽음[33]
3육체 또는 근본적인 힘과 관련된 신적 존재
4완전한 숫자, 정념
5감각과 감수성
6남성적인 숫자와 여성적인 숫자의 곱(3×2), 유기체의 움직임
7다양한 속성
8정육면체의 숫자, 피타고라스 학파에 의해 결정된 많은 속성
9갈등
10완벽



필론은 숫자 50, 70, 100, 12, 120의 값도 결정하고, 대상의 상징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성경과 미드라쉬의 예를 따라 고유 명칭의 상징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새로운 해석을 추가했다.[34]

필론은 신학을 반대되는 개념의 부정과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설명을 통해 설명하고, 하느님의 본성을 물질 세계와 대조했다. 그는 하느님을 하늘, 세계, 인간과 유사하다고 여기지 않고, 인간과 유사한 특징이나 감정이 없는 초월적인 하느님을 긍정했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물질을 무(無)와 동일시하고, 그 영향을 오류, 불화, 손상, 부패로 간주했다.[35] 오직 하느님의 존재만이 구체적이며, 적절한 술어는 상상할 수 없다.[36] 필론에게 하느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특별한 개입을 하지 않는다.

필론은 랍비 전통에서 하느님의 초월성[37], 인간이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볼 수 없다는 내용을 통합했다.[38] 그는 하느님은 속성이 없고 이름도 없으며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하느님은 변할 수 없다고 가정했다. 하느님은 항상 동일하며, 자족적이다.[40] 하느님은 멸망할 수 없으며, 자존하며,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지 않는다.[41]

필론은 성경의 신인동형론을 플라톤적 개념과 양립할 수 없는 불경함으로 여겨, 손, 발, 눈, 귀, 혀 등을 알레고리로 해석했다.[42] 필론의 해석에 따르면, 히브리 성경은 인간의 개념에 맞춰져 있으며, 신은 교수적 이유로 인간으로 묘사된다.[43] 신은 부당한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출애굽기 32장:12에서 모세가 감정에 휩싸여 신만이 평온함을 인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4] 그러나 신은 종종 인간적인 감정을 부여받은 것으로 묘사되며, 이는 인간의 회개를 언급하는 표현을 설명하는 데 기여한다.

신은 공간에 존재하거나 변화할 수 없다. 그는 "어디"를 갖지 않으며, 어떤 장소에도 있지 않다. 그는 그 자신이 장소이며, 신의 거처는 신 자신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는 미쉬나 = "신은 존재한다"와 일치하며, 모든 것의 존재가 신 안에 요약된다는 그리스 철학의 원칙과 일치한다.[45] 성경에서 "신은 서 있다"라는 구절처럼, 신은 그 자체로 움직이지 않는다.[46]

필론은 스토아 철학과 일치하게 세상에서 활동하는 신적 존재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플라톤의 물질 개념 때문에 신을 세상 밖에 두어야 했다. 그는 세상에 나타나는 활동을 신적 능력으로 옮겼는데, 이러한 능력은 때로는 신 안에 내재하고 때로는 신 외부에 존재했다. 플라톤적 개념과 스토아 철학적 개념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론은 이러한 신적 속성을 플라톤에 따라 실제 사물의 유형 또는 패턴("원형적 아이디어")으로 생각했지만, 동시에 사물의 유형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효율적인 원인으로 간주했다.[47] 필론은 이러한 개념을 성경과 조화시키기 위해 이러한 능력을 천사로 지칭했다.[48] 필론은 이러한 능력을 독립된 위격(hypostases)이자 신적 존재의 내재적 속성으로 간주했다.

필론은 신의 이름에 표현된 선함과 능력의 두 가지 신적 속성을 대조했는데, "야훼"(Yhwh)를 선함으로, "엘로힘"(Elohim, 70인역. Θεός)을 "우주적 능력"으로 해석했다. 창조를 신적 선함의 가장 중요한 증거로 여겼기 때문에 Θεός에서 특히 선함의 관념을 찾았다.[49]

필론은 하나님의 신성한 힘을 하나의 독립된 존재, 데미우르고스[50]로 취급하며, 이를 "로고스"라고 지칭한다. 필론의 로고스 개념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분리하는 로고스" 개념의 영향을 받았는데, 이는 다양한 대조의 조합을 통해 여러 객체를 존재하게 한다고 하며, 스토아 철학에서의 로고스를 활력 있고 생명을 불어넣는 힘으로 묘사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필론은 불완전한 물질과 완전한 형태 사이의 플라톤적 구분을 따랐으며, 필론의 로고스 개념은 움직이지 않고 완전히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신에 대한 중기 플라톤주의적 관점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신과 물질 세계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중재자가 필요했다.[51] 로고스는 이러한 중재자들 중 가장 높은 존재였으며, 필론은 이를 "하나님의 맏아들"이라고 불렀다.[51][52]

필론은 로고스를 "아이디어 중의 아이디어" 및 "원형적 아이디어"[53]로 지칭하는 데 플라톤적 요소를 적용했다. 필론은 플라톤이데아를 데미우르고스의 생각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로고스의 내용을 구성하며, 세상 창조 시 감각적인 것들을 만드는 데 사용된 도장과 같았다.[54] 로고스는 창조물들의 전형이 담긴 책과 유사하다.[55] 도시 건설 전에 건축가의 설계는 필론에게 로고스의 또 다른 비유로 작용한다.[56] 창조 이후, 로고스는 모든 것을 하나로 묶는다.[57] 아이디어의 그릇이자 소유자로서 로고스는 물질 세계와 구별된다. 동시에 로고스는 세상을 관통하며 지탱한다.[58] 이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모든 것의 유형(플라톤의 "원형적 아이디어")이며, 사물에 새겨진 도장과 같다. 로고스는 신의 그림자와 같은 종류로, 윤곽은 있지만 신성한 존재의 눈부신 빛은 가지고 있지 않다.[59][60][61] 그는 로고스를 "제2의 신"[62], "하나님의 이름"[63]이라고 부른다.

필론은 로고스에 대한 자신의 교리를 성경과 연결하는데, 창세기 1:27을 바탕으로 로고스와 하나님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는 이 구절을 "그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라고 번역하며, 그 구절로부터 하나님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64] 로고스는 또한 유대인과 신의 관계의 물리적 중심으로서 유배 이후 대제사장이 차지했던 숭고한 지위를 언급하여 "대제사장"으로 지칭된다. 로고스는 대제사장처럼 유대인의 죄를 속죄하고 인류를 위해 신 앞에서 중재하고 옹호하는 자이며, 신에게 보내는 사절이다.[65][66][67] 그는 인간의 마음을 정돈한다.[68] [69] 민수기 22:22–35에서 발람의 길을 막는 천사는 필론에 의해 로고스의 현현으로 해석되며, 이는 발람, 즉 인류의 양심 역할을 한다.[70] 이처럼 로고스는 세상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세상에서 작용하는 신성한 측면이 된다.[71]

페터 섀퍼는 필론의 로고스가 "성경 이후의 지혜 문학, 특히 솔로몬의 지혜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72] 솔로몬의 지혜는 기원전 1세기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적대적인 헬라 세계에서 유대 공동체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해 작성된 유대교 저작이다. 이 책은 70인역에 포함된 일곱 권의 지혜서 또는 지혜 문학 중 하나이다.

필론은 구약성경을 주석하는 데에 비유적 해석을 다용했다. 또한, 그리스 사상에서 유래한 로고스이데아론의 개념을 유대교 사상의 이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필론은 플라톤의 저작, 특히 『티마이오스』의 영향을 받았으며, 구약성경플라톤 철학이 조화적이라고 생각했다. 필론은 플라톤을 "그리스의 모세"라고 부르며, 플라톤의 사상에 모세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로고스가 신의 말씀이라는 사상은, 후에 기독교에서 예수가 천지 창조에 앞서 존재했다는 "선재의 예수" 사상과 결합하여, 예수로고스라는 사상에 이르렀다. 그뿐만 아니라 필론의 저작은 초기 기독교와 교부들의 사상,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3. 4. 윤리학과 정치

필론은 피타고라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의 영향을 받아 정욕, 욕망, 분노와 같은 열정이 없는 덕목의 도덕성을 선호했지만, "인간적인 공감"을 함께했다.[74] 해설자들은 또한 필론이 칼리굴라에게 보낸 사절단을 통해 그가 정치에 관여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신념의 본질, 특히 로마 제국에 대한 그의 관점은 논쟁의 대상이다.[75][76] 필론은 저술에서 현명한 사람은 폭군에 대한 자신의 진정한 의견을 보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필론은 제국 통치의 새로운 규제로 악화된 알렉산드리아의 증가하는 민족적 긴장 속에서 살았다. 알렉산드리아의 일부 망명 그리스인들은 로마가 유대 로마 속주에서 유대인의 국가적, 문화적 정체성을 억압하려 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로마와의 동맹으로 비난했다.[11][8]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 고대사''에서 필론이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에 의해 로마 황제 칼리굴라 앞에서 그들의 수석 대표로 선택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필론이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발생한 시민 불안에 대해 알렉산드리아 유대인을 대표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한다. 요세푸스는 또한 필론이 철학에 능숙했으며 알라바르크 알렉산더의 형제였다고 말한다.[12] 요세푸스에 따르면 필론과 더 큰 유대인 공동체는 황제를 신으로 대우하고, 황제를 기리는 동상을 세우고, 황제를 위한 제단과 신전을 세우는 것을 거부했다. 요세푸스는 필론이 하나님이 이러한 거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믿었다고 말한다.

이 사건은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 2권 5장에도 묘사되어 있다.[14]

4. 저작

필론은 그리스어로 방대한 저작을 남겼으며, 그 내용은 크게 성서 주석, 율법 해석, 철학 논문 및 기타 저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78] 그는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교부, 스피노자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78]

필론의 저작은 대부분 토라(모세 오경)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이지만, 역사와 철학에 대한 논평도 포함하고 있다.[78] 이 중 대부분은 교부들에 의해 그리스어로 보존되었으며, 일부는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으로만 남아 있고, 더 적은 수는 라틴어 번역본으로 남아 있다.[78]

필론의 저작 목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분류저작명
성서 주석
(창세기에 대한 주석)
「비유적 해석 I・II・III」: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의 주석
「케루빔에 관하여」: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주석
카인과 아벨의 제물에 관하여」
「카인의 후손에 관하여」: 아벨을 죽이고 추방된 카인의 후반생과 자손에 관한 부분 주석
「거인족에 관하여」: 신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족 네피림에 관한 부분 주석
「신의 불변성」: 「노아의 방주」에 관한 기사의 일부 주석
「노아의 농사에 관하여」: 홍수 후 노아의 생활에 관한 기사 부분 주석
「취함에 관하여」: 위와 같음
「각성에 관하여」: 위와 같음
성서 주석
(창세기에 대한 주석)
「언어 혼란에 관하여」: 바벨탑에 관한 기사 주석
아브라함의 이주에 관하여」: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의 여행 기사 주석
성서 주석
(창세기에 대한 주석)
「거룩한 것을 누가 상속받는가」: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 주석
구약의 태조에 관한 것「아브라함에 관하여」
율법 해석모세의 생애」
십계명에 관하여」
「특별한 율법에 관하여」
「세계의 창조에 관하여」
율법 해석「요셉에 관하여」
그 외「모든 선인은 자유롭다」
「플라쿠스에 대한 반론」
「섭리에 관하여」: 원본은 소실되었고, 아르메니아어 판만 현존
「관상 생활」: 관상적 생활・자유론
「유대인을 위한 변명」
「가이우스에게 보내는 사절」


4. 1. 성경 주석

필론은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려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창세기 해석은 플라톤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조물주)와 이데아의 관계를 엮어, 창조를 신에 의한 영혼의 타락과 정화 과정으로 설명한다.[78] 또한, 구약성서에 나타난 신의 초월성을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통해 체계화했다.[78] 필론은 자신의 저술에서 유대교의 종교적 정당성을 그리스 철학자들의 주장을 인용하여 증명하려 했으며, 이는 당시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78]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교부, 스피노자 철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78]

필론의 현존하는 저작 대부분은 토라(성경의 처음 다섯 권)를 다루며,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78]

  • 퀘스티오네스(질의응답): 짧은 구절별 해설로, 창세기에 대한 4권과 출애굽기에 대한 2권이 장바티스트 오셰르가 출판한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으로 보존되어 있다.[78] 그리스어 및 라틴어 단편과 비교했을 때 번역은 정확하지만, 원본 내용 일부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78]

  • 알레고리 해설: 난해한 의미를 설명하는 긴 주석으로, 창세기 1장을 제외한 창세기 내용을 다룬다.[78]

  • 율법 해설: 펜타튜크(모세오경)의 주제를 종합한 것으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대상으로 했다.[78]


필론의 펜타튜크 해설은 세 가지 장르로 나뉜다.
《퀘스티오네스》(Quaestiones): 질문과 답변 형식("Zητήματα καὶ Λύσεις, Quæstiones et Solutiones")으로 율법서(Pentateuch)를 교리 문답식으로 설명한다. 유세비우스의 "Sacra Parallela" 등에서 그리스어 텍스트 단편들이 발견된다.
Νόμων Ἱερῶν Ἀλληγορίαι (율법의 알레고리): 창세기의 선택된 구절들을 다룬다. 초기 인류 역사를 인간 영혼의 종교적, 도덕적 발전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다음 논문들을 포함한다.

  • "율법의 알레고리" 1~3권[79]
  • "케루빔에 관하여"
  • "아벨과 카인의 희생에 관하여"[80]
  • "열등한 것이 더 우월한 것을 엿보는 것에 관하여"
  • "카인의 후손에 관하여"[81]
  • "거인들에 관하여"
  • "신은 불변하다"[82]
  • "농업에 관하여 노아"[83]
  • "식물에 관하여"[84]
  • "취기에 관하여"[85]
  • "Resipuit; Noë, 또는 절제에 관하여"
  • "언어 혼란에 관하여"
  • "
  • "누가 신성한 것의 상속자인가"[86]
  • "지식을 구하는 만남"에 관하여
  • "망명자"에 관하여[87]
  • "이름의 변경"에 관하여[88]
  • "꿈에 관하여" 1권, 2권 (야곱의 꿈, 창세기 37:40 이하 요셉, 술 맡은 자, 빵 굽는 자, 파라오의 꿈).[89]


필론은 모세와 그의 율법에 대한 체계적인 저서를 썼다. 창조는 모세 율법의 기초이며, 자연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다("De Opificio Mundi", § 1 [i. 1]). 율법 해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1. 토라의 여러 성문법보다 앞선 인물들(에노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전기: 이들은 성문법 이전에 덕의 능동적인 율법을 살아있는 인격화한 족장들이었다.

2. 율법에 대한 자세한 논의: 먼저 십계명(십계명)과 각 율법을 확대하는 조항들을 논의한다.

이 작품은 다음 논문으로 나뉜다.

  • "De Opificio Mundi"
  • 아브라함에 대한 "De Abrahamo": 이삭과 야곱의 삶은 유실되었다.
  • 요셉의 생애, "De Josepho"
  • "De Vita Mosis", i-iii권
  • 율법의 주요 십계명에 대한 서론 논문인 "De Decalogo"
  • "De Specialibus Legibus": 필론이 토라의 여러 율법을 체계화하고 십계명에 따라 정리하려고 시도한 논문[90]
  • "De Fortitudine", "De Caritate" 및 "De Pœnitentia" 논문은 "De Specialibus Legibus"에 대한 일종의 부록이다.[91]
  • "De Præmiis et Pœnis" 및 "De Execratione"[92]


이 해설은 알레고리적이기보다는 외향적이며, 이방인 청중을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78]

필론은 그리스어로 많은 저작을 남겼다. 다음은 주요 저작 목록이다.

  • 성서 주석: 창세기 주석
  • 「비유적 해석 I・II・III」 천지 창조 기사 주석
  • 「케루빔에 관하여」 아담과 하와 이야기 마지막 부분 주석
  • 카인과 아벨의 제물에 관하여」
  • 「카인의 후손에 관하여」 아벨을 죽이고 추방된 카인의 후반생과 자손에 관한 부분 주석
  • 「거인족에 관하여」 신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족 네피림 주석
  • 「신의 불변성」 「노아의 방주」 기사 일부 주석
  • 「노아의 농사에 관하여」 홍수 후 노아의 생활 기사 부분 주석
  • 「취함에 관하여」 (위와 같음)
  • 「각성에 관하여」 (위와 같음)
  • 「언어 혼란에 관하여」 바벨탑 기사 주석
  • 아브라함의 이주에 관하여」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의 여행 기사 주석
  • 「거룩한 것을 누가 상속받는가」 아브라함 기사 주석
  • 구약의 태조에 관한 것
  • 「아브라함에 관하여」
  • 율법 해석
  • 모세의 생애」
  • 십계명에 관하여」
  • 「특별한 율법에 관하여」
  • 「세계의 창조에 관하여」
  • 「요셉에 관하여」
  • 그 외
  • 「모든 선인은 자유롭다」
  • 「플라쿠스에 대한 반론」
  • 「섭리에 관하여」 (원본 소실, 아르메니아어 판만 현존)
  • 「관상 생활」 관상적 생활・자유론
  • 「유대인을 위한 변명」
  • 「가이우스에게 보내는 사절」


그 외에도 많은 저작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소실되었다.

4. 2. 율법 해석

필론은 율법 해석에 있어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유대교 신앙과 헬레니즘 사상을 융합하려 시도했다.[78] 그의 저작들은 토라(성경의 처음 다섯 권)를 중심으로 하며,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78]

1. '''퀘스티오네스''("질의응답"):** 창세기출애굽기에 대한 짧은 구절별 해설로,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으로 보존되어 있다. 원래 12권 중 6권이 현존하며, 그리스어 및 라틴어 단편과의 비교를 통해 번역의 정확성이 높이 평가되지만 일부 내용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78]

2. '''알레고리 해설''':** 창세기(창세기 1장 제외)에 대한 긴 주석으로, 난해한 의미를 설명한다. 필론은 초기 인류의 역사를 인간 영혼의 종교적, 도덕적 발전의 상징으로 해석한다.[78]

3. '''율법 해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해 쓰인 펜타튜크 주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설이다. 필론은 창조가 모세 율법의 기초이며, 자연과 완전히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다. 율법 해설은 족장들의 전기와 율법에 대한 상세한 논의로 구성된다.[78]

필론의 율법 해석 관련 주요 저작들은 다음과 같다:

  • '''성서 주석'''
  • 「비유적 해석 I・II・III」: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의 주석
  • 「케루빔에 관하여」: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 주석
  • 카인과 아벨의 제물에 관하여」
  • 「카인의 후손에 관하여」: 아벨을 죽이고 추방된 카인의 후반생과 자손에 관한 부분 주석
  • 「거인족에 관하여」: 신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족 네피림에 관한 부분 주석
  • 「신의 불변성」: 「노아의 방주」에 관한 기사의 일부 주석
  • 「노아의 농사에 관하여」: 홍수 후 노아의 생활에 관한 기사의 부분 주석
  • 「취함에 관하여」: 위와 같음
  • 「각성에 관하여」: 위와 같음
  • 「언어 혼란에 관하여」: 바벨탑에 관한 기사의 주석
  • 아브라함의 이주에 관하여」: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의 여행 기사 주석
  • 「거룩한 것을 누가 상속받는가」: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의 주석
  • '''율법 해석'''
  • 모세의 생애」
  • 십계명에 관하여」
  • 「특별한 율법에 관하여」
  • 「세계의 창조에 관하여」
  • 「요셉에 관하여」


필론은 모세와 그의 율법에 대한 체계적인 저서를 썼으며, 창조를 모세 율법의 기초로 보았다. 그는 율법 해설을 통해 율법 이전 시대의 인물들(에노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덕의 능동적인 율법을 구현한 족장으로 제시하고, 율법의 상세한 내용을 십계명을 중심으로 체계화했다.[90]

4. 3. 철학 논문 및 기타 저작

그는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는 시도를 하였는데, 예를 들어 그의 <창세기> 해석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전개되어 있는 데미우르고스(造物神)와 이데아의 관계를 교묘히 엮어 넣으면서 전체가 에 의해 창조된 혼의 타죄(墮罪)-정화(淨化)의 과정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그에 의해 《구약성서》의 신의 초월성은 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의해서 비로소 이론적으로 뒷받침되어 체계화되었다. 또한 그는 저서 중에 유대인의 종교상 절대적 정당성을 그리스 철학자의 주장을 많이 인용하면서 증명하려 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당시의 사상을 알기 위해 그의 저서는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나 기독교 교부 및 근세의 스피노자 철학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천지 창조에 관하여>, <비유적(比喩的) 해석>, <특수율법에 관하여> 등 주로 《구약성서》의 모세오경이라고 하는 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방대한 저작이다.[78]

필론은 또한 다음과 같은 저작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78]

구분저작 목록
유대교 변호 서적모세의 생애에 관하여, 유대인에 관하여, 관상 생활에 관하여
역사적 저작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제국의 현 상황 묘사)
플라쿠스에게가이우스에게 보낸 대사
철학 저작모든 선한 사람은 자유롭다, 세계의 영원성에 관하여, 동물에 관하여, 섭리에 관하여 (후자 두 작품은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을 통해서만 전해진다.)
유실된 작품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가 언급한 작품.[93]


  • "섭리에 관하여"는 아르메니아어로만 보존되어 있으며, 리히터 등의 판본에서 오셔의 라틴어 번역본을 통해 인쇄되었다 (이 작품의 그리스어 단편에 관해서는 Schürer, l.c. pp. 531 이하 참조).
  • "De Animalibus"(제목에 관해서는 Schürer, l.c. p. 532; Richter's ed. viii. 101–144 참조).
  • ϓποθετικά ("권고"), 이 작품은 에우세비우스의 ''복음 준비'', viii. 6, 7에 있는 단편들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다. 제목의 의미는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다음 작품과 동일할 수 있다.
  • Περὶ Ἰουδαίων 유대인을 위한 변호 (Schürer, l.c. pp. 532 이하 참조).


이 글은 스토아 철학의 원칙에 따라 정의로운 자의 자유에 관한 저술의 후반부이다. 이 작품의 진정성은 프랑켈("Monatsschrift", ii. 30 이하, 61 이하), 그레츠("Gesch." iii. 464 이하), 그리고 최근의 안스펠트(1887), 힐겐펠트("Zeitschrift für Wissenschaftliche Theologie", 1888, pp. 49–71) 등에 의해 논쟁이 되었다. 하지만 벤들란트, 오흘레, 쉴러, 마세비유, 그리고 크렐은 에세네파에 관한 부분적으로 삽입된 구절을 제외하고는 이 작품이 진본이라고 여긴다.

Legatio ad Gaiumla (''가이우스 황제에게 보낸 외교 사절'')에서 필론은 자신의 삶에서 명확히 알려진 몇 안 되는 사건 중 하나인 칼리굴라에게 보낸 외교 임무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유대인들의 고통을 묘사하고 황제에게 그들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고 요청하는 청원을 전달했다고 말한다. 필론은 요세푸스의 묘사보다 더 자세하게 그들의 고통을 설명하여 알렉산드리아 그리스인들이 많은 유대인과 그리스인을 죽게 만든 내분에서 공격자였음을 특징짓는다.

'플라쿠스 탄핵'에서 필론은 이집트 유대인들의 상황을 묘사하며, 그 수가 백만 명 이상이며 알렉산드리아의 다섯 구역 중 두 곳에 거주했다고 기록한다. 그는 총독 아울루스 아빌리우스 플라쿠스의 학대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대인들이 칼리굴라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거부했을 때 플라쿠스가 보복했다고 말한다.[94] 다니엘 슈워츠는 이러한 긴장된 배경을 고려할 때, 필론이 노골적인 친유대주의 대신 추상적인 일신론을 선호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편리했을 수 있다고 추측한다.[8]

필론은 칼리굴라가 두 번째 성전에 자신의 조상을 세우려는 계획을 도발로 여기며, "우리가 그러한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의 법을 위해 싸우고, 우리의 국가적 관습을 지키기 위해 죽을 것이라고 예상하여 우리에게 전쟁을 거는 것인가? 당신이 우리의 성전에 관한 이러한 혁신을 도입하려는 시도로 인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라고 묻는다. 그의 전체적인 묘사에서 그는 그러한 신성 모독을 허용하는 대신 황제에게 반역하려는 유대인들의 결심을 암묵적으로 지지한다.[95]

처음에는 다섯 권으로 구성된 이 기록은 단편적으로만 보존되어 있다(참조: Schürer, l.c. pp. 525 이하).[96] 필론은 유대인들을 박해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내린 무서운 벌을 보여주려고 했다(필론이 이와 유사한 논의를 선호하는 것에 대해서는 Siegfried, "알렉산드리아의 필론", p. 157 참조). 필론은 그의 나이, 교육, 지식 때문에 그의 백성들이 그를 특별한 신중함을 가진 사람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이 당시(서기 40년) 이미 노인이었음을 나타낸다.[95]

이 작품[97]은 저자에 따르면 널리 세계에 흩어져 있으며, 주로 모든 노메와 이집트에서 발견되는 유대교 금욕주의자 사회의 생활 방식과 종교 축제를 묘사한다. 그러나 저자는 각자 자신의 거처에서 따로 사는 이집트 마레오티스 호수에 정착한 은둔자 식민지인 테라퓨타이에 대한 묘사에 국한한다. 그들은 일주일 중 6일을 경건한 묵상에 쏟는데, 주로 성경과 관련이 있다. 일곱째 날에는 남녀 모두 강당에 모여 지도자가 성경 구절의 비유적 해석으로 구성된 강론을 한다. 50일 축제가 가장 유명하다. 이 의식은 빵, 소금에 절인 채소, 물로 구성된 소박한 식사로 시작하며, 이 식사 동안 성경 구절이 해석된다. 식사 후, 사회 구성원들은 차례로 다양한 종류의 종교 노래를 부르고, 회중은 후렴구로 답한다. 이 의식은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미리암이 마련한 개선 축제를 합창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남녀의 목소리가 합창 교향곡으로 융합되어 해가 뜰 때까지 이어진다. 공동 아침 기도를 드린 후, 각자는 집으로 돌아가 묵상을 재개한다. 이것이 바로 이 테라퓨타이(Θεραπευταί, "야훼의 종")가 이끄는 관조적인 삶(βίος θεωρητικός)이다.

고대 기독교 교회는 이 ''테라퓨타이''를 변장한 기독교 수도사로 여겼다. 이러한 견해는 최근에도 P. E. 루시우스의 의견, 특히 3세기의 기독교 수도원이 유대교식으로 미화되었다는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졌다("Die Therapeuten", 1879).

마세비오("Revue de l'Histoire des Religions", 1887, xvi. 170 et seq., 284 et seq.), 코니베어("Philo About the Contemplative Life", Oxford, 1895), 벤들란트("Die Therapeuten", etc., Leipsig, 1896)는 "De Vita Contemplativa"의 저자와 필론 사이의 근본적인 개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어학적 이유에 전적으로 근거하여 이 작품 전체를 필론에게 귀속시킨다. 후자는 그리스 문화와 철학을 동맹으로 간주하지만, 전자는 그리스 철학에 적대적이다(참고: 지크프리트의 "Protestantische Kirchenzeitung", 1896, No.42). 그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성스러운 무리,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 제논, 클레안테스, 헤라클레이토스, 그리고 필론이 소중히 여겼던 플라톤과 같은 영감을 받은 사람들을 추종자로 둔 과학을 거부한다("Quod Omnis Probus", i., ii.; "Quis Rerum Divinarum Heres Sit", 43; "De Providentia", ii. 42, 48, etc.). 그는 심포지엄을 혐오스러운 일반적인 술판으로 여긴다. 이것은 스토아 학파의 비판으로 설명될 수 없는데, 필론은 이 경우에 그것을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필론은 "De Vita Contemplativa", 7 (ii. 480)에서 설명된 것처럼 플라톤의 에로스를 속된 방식으로 해석하는 마지막 사람이었을 것이며, 그는 성경 해석에서 이중 인간의 신화를 반복적으로 비유적으로 사용한다("De Opificio Mundi", 24; "De Allegoriis Legum", ii. 24). 또한 필론은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이러한 비유적인 금욕주의자들의 식민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는데, 만약 그가 그들에 대해 알았더라면 매우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필론의 제자들이 알렉산드리아 근처에 유사한 식민지를 세워 감각과 정욕을 이기는 순수한 삶에 대한 그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고, 또한 스승의 원칙 중 일부의 일방적인 발전에 책임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필론은 이 세상의 욕망을 포기하고자 했지만, 이 책의 저자가 비난하는 헬레니즘의 과학적 문화를 굳게 지켰다. 필론은 세상에서 물러나 묵상에 전념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러한 휴식의 부족을 몹시 후회했지만("De Specialibus Legibus", 1 [ii. 299]), 그는 자신의 백성의 복지를 위해 요구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 《De Mundo》(세상에 관하여), 필론의 발췌 모음집, 특히 앞선 저작에서 발췌[98]
  • 아르메니아어로 된 《De Sampsone》(삼손에 관하여)과 《De Jona》(요나에 관하여), 장밥티스트 오셰르가 라틴어 번역과 함께 출판함.
  • 《Interpretatio Hebraicorum Nominum》(히브리 이름 해석), 익명의 유대인이 필론에서 언급된 히브리 이름을 모아놓은 것. 오리게네스가 신약성서 이름을 추가하여 확장했고, 제롬이 수정함. 필론의 주석서에 나오는 이름들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래를 참조.[99]
  • 16세기에 인쇄되었다가 사라진 《Liber Antiquitatum Biblicarum》(성서 고대사), 코헨이 1898년 "J. Q. R." 10권 277–332쪽에서 논의함. 아담부터 사울까지의 성서 역사를 서술함[100]
  • 유사-필론의 《Breviarium Temporum》(연대 약사), 비테르보의 안니우스가 출판[101]


필론의 소실된 작품 목록에 대해서는 Schürer, l.c. p. 534 참조.

  • 《De Incorruptibilitate Mundi》(세계의 불변성에 관하여). 야코프 베르나이스는 이 작품이 위작이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세상이 영원하고 파괴될 수 없다는 이 작품의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기본 사상은 필론에게 있어서 의심할 여지없는 전제였던 모든 유대교 가르침과 모순된다. 베르나이스는 텍스트가 잘못된 페이지 매김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졌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교묘하게 복원했다.[102]


필론은 그리스어로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그 내용은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다음은 주요 저작을 열거한다.

분류저작명
성서 주석
(창세기에 대한 주석)
「비유적 해석 I・II・III」 천지 창조에 관한 기사의 주석
「케루빔에 관하여」 아담과 하와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의 주석
카인과 아벨의 제물에 관하여」
「카인의 후손에 관하여」 아벨을 죽이고 추방된 카인의 후반생과 자손에 관한 부분의 주석
「거인족에 관하여」 신의 아들들과 인간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거인족 네피림에 관한 부분의 주석
「신의 불변성」 「노아의 방주」에 관한 기사의 일부 주석
「노아의 농사에 관하여」 홍수 후 노아의 생활에 관한 기사의 부분 주석
「취함에 관하여」 위와 같음
「각성에 관하여」 위와 같음
성서 주석
(창세기에 대한 주석)
「언어 혼란에 관하여」 바벨탑에 관한 기사의 주석
아브라함의 이주에 관하여」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의 여행 기사의 주석
성서 주석
(창세기에 대한 주석)
「거룩한 것을 누가 상속받는가」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의 주석
구약의 태조에 관한 것「아브라함에 관하여」
율법 해석모세의 생애」
십계명에 관하여」
「특별한 율법에 관하여」
「세계의 창조에 관하여」
율법 해석「요셉에 관하여」
그 외「모든 선인은 자유롭다」
「플라쿠스에 대한 반론」
「섭리에 관하여」 원본은 소실되었고, 아르메니아어 판만 현존
「관상 생활」 관상적 생활・자유론 (유대 고전 총서) 교문관 토키 겐지 역
「유대인을 위한 변명」
「가이우스에게 보내는 사절」



그 외에도 많은 저작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소실되었다.

5. 영향

필론은 그리스 철학과 유대 신앙을 결합하려 했으며, 그의 창세기 해석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나오는 데미우르고스(조물주)와 이데아의 관계를 엮어 에 의한 혼의 타락과 정화 과정으로 설명한다. 《구약성서》의 신의 초월성은 플라톤의 이데아론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는 유대교의 정당성을 그리스 철학을 인용하여 증명하려 했으며, 그의 저서는 당시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103] 그의 사상은 신플라톤주의, 기독교 교부, 스피노자 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필론은 구약성경 주석에 비유적 해석을 사용하고, 그리스 사상의 로고스이데아론 개념을 유대교에 도입했다.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영향을 받아 구약성경플라톤 철학이 조화롭다고 보았다. 필론은 플라톤을 "그리스의 모세"라 칭하며, 모세가 플라톤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로고스가 신의 말씀이라는 사상은 기독교에서 예수가 천지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선재의 예수" 사상과 결합하여 예수가 로고스라는 사상으로 이어졌다. 필론의 저작은 초기 기독교와 교부들의 사상, 즉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필론의 유대교 경전 해석과 스토아 철학, 플라톤 철학의 결합은 3, 4세기 미드라시에서 차용된 공식을 제공했다. 그의 사상은 이후 유대교에서 세상을 창조하는 신의 말씀, 신성한 보좌-전차와 그 그룹, 신성한 영광과 쉐키나, 하나님의 이름, 천사 이름 교리로 발전되었다.[103]

당시 랍비 지도자들이 필론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성경의 알레고리적 해석을 채택하고 성경 문자주의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필론이 랍비 학자들을 비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104] 필론은 그들의 저작과 사상이 "영원한 수치로 가득 찬 사치와 방탕으로 가득 차 있다"고 주장했고,[105] "불명예스러운 행위에 악명을 얻기 위해 그럴듯한 외관을 부여한다",[106] "모세의 삶의 진실을 이야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107]

오랫동안 필론은 주로 기독교 저자들에게 읽혔다. 아자리 데이 로시의 『메오르 에나임: 임레 비나』(1575)는 필론에 대한 최초의 유대교 주석 중 하나로, 필론의 네 가지 "심각한 결함"(무로부터의 창조la가 아닌 원시 물질을 믿는 점, 성경의 과도한 비유적 해석, 구전 토라 무시, 토라를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읽는 점)을 설명한다. 데이 로시는 필론을 옹호할 가능성을 제시하며 유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고 썼다.[1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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