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다마루는 2016년 1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로, 일본 센고쿠 시대를 배경으로 사나다 가문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사나다 노부시게(사카이 마사토)를 중심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대립, 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 전투 등을 그린다. 미타니 코키가 각본을 맡았으며, 사카이 마사토, 오이즈미 요, 쿠사카리 마사오 등 다양한 배우들이 출연했다. 작품은 도쿄 드라마 어워드에서 남우주연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며, 우에다시 등 촬영지 유치 운동과 연계한 프로모션으로 시청률 상승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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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소재로 한 작품 - 도쿠가와 이에야스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소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출생부터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26권의 소설로, 어린 시절 인질 생활과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협력을 거쳐 에도 막부를 세우고 일본의 태평성대를 이룩하는 과정을 담아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소재로 한 작품 - 도쿠가와 이에야스 (드라마)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1983년 NHK 대하드라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애와 시대를 그린 작품으로, 다키타 사카에가 이에야스 역을 맡아 평균 시청률 31.2%를 기록하며 시대극 대하드라마의 마지막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미타니 코키 각본 TV드라마 - 가마쿠라도노의 13인 가마쿠라도노의 13인은 2022년 방영된 NHK 대하드라마로, 가마쿠라 막부 시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13인의 합의제와 관련된 인물들의 갈등과 권력 다툼을 그린 작품이다.
미타니 코키 각본 TV드라마 - 후루하타 닌자부로 《후루하타 닌자부로》는 미타니 코키 각본, 타무라 마사카즈 주연의 일본 수사 드라마 시리즈로, 범행 장면과 범인을 먼저 공개하는 도입식 구성과 후루하타 닌자부로 경부보의 추리, 아카시야 산마, 기무라 타쿠야 등 유명 배우들의 범인 역할, 그리고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특징이다.
사나다씨 - 사나다 노부시게 사나다 노부시게는 센고쿠 시대 말기부터 에도 시대 초기에 활약한 무장으로, 도요토미 가문의 인질, 세키가하라 전투 참전, 오사카 전투에서 용맹을 떨치는 등 '일본 제일의 병사'로 불리며 에도 시대 이후 영웅으로 널리 알려졌다.
사나다씨 - 사나다 노부쓰나 사나다 노부쓰나는 센고쿠 시대 다케다 가문을 섬긴 사나다 유키타카의 아들로, 다케다 신겐을 섬기며 공을 세우고 가독을 계승했으나 나가시노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카이 마사토는 센고쿠 시대의 사무라이였던 사나다 노부시게(사나다 유키무라) 역으로 캐스팅되었다. ''요미우리 신문''의 구보타 미노루는 사카이가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인기가 많았던 배우였기 때문에, 수년 동안 시청률이 감소했던 타이가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추측했다.[3][4]
: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로, 노부시게(유키무라)와 우메와 소꿉친구이다. 노부시게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평생 노부시게가 있는 곳이 자신의 있을 곳이라고 선언하며 노부시게가 가는 곳에 여러 사정으로 거의 동행한다. 본래 임무 외에도 노부시게를 돕기 위해 일하며 점차 노부시게에게 의지되는 존재가 된다. 제49화에서는 역사적으로는 여러 설이 있어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노부시게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여성이라고 해설된다.
: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를 드러내는 성격으로, 현대적인 말로 이야기한다.[36] 자주 주변 사람들이 놀라거나 어이없어하는 언동이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노부시게에게 인식된다. 노부시게에게는 좋든 싫든 자신의 심정을 너무 잘 알아 귀찮게 여기고 냉담하게 대하지만, 두 사람의 거리낌 없는 대화가 주변에서는 사이좋게 보이기도 한다. 노부시게가 다른 여성에게 질투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메나 하루에게는 중재하기도 한다. 차차에게는 질투심과는 별개로 그녀의 인간성과 죽음에 대한 감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 에치고에서 오사카로 향하게 된 노부시게에게 사나다 가문의 의향으로 곁에서 돌보기 위해 동행하여 오사카에 들어가 히데쓰구에게 마음에 든다. 히데요시의 우마마와리가 된 노부시게에게 귀향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사카성에서 시녀로서 네에게 시중들게 되고, 노부시게에게 네 주변의 사정을 전하거나 네나 히데츠구에게 편의를 봐주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한다.
: 이후 관백이 된 히데츠구에게 측실이 되어달라는 설득을 받지만, 대답을 미루는 동안 히데요시와의 갈등으로 죽음을 각오한 히데츠구에게 이야기를 취소당하고, 자살 직전의 히데츠구에게서 노부시게를 통해 성모화를 받는다. 타마와 친분을 쌓은 후 기리시탄 신앙에 끌려 세례를 결심하지만, 키리시탄 탄압으로 인한 순교를 각오하라는 타마의 질문에 단념한다. 히데요시 사후 출가하는 네에게서 한가함을 받았지만, 타마의 시녀로 섬기며 얻은 정보로 미쓰나리의 위기를 구하는 활약을 보인다.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타마의 죽음으로 사나다 가문으로 돌아간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아버지가 마사유키를 따르기로 하여 노부시게의 쿠도야마 유배에도 동행한다.
: 오사카 입성에 대해 고민하는 노부시게에게 "자신을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응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증거를 남기지 못했다"고 질책하며 격려하고, 노부시게의 결의를 재촉한다. 함께 쿠도야마를 탈출하여 오사카 입성 후에는 차차의 명으로 그녀의 시녀가 된다.
: 오사카 여름의 진 직전 전날 밤, 유키무라에게 만일의 사태에는 센히메를 도쿠가와 진영으로 보내 도망치라고 명받지만, 살아남아도 노부시게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유키무라에게 처음으로 포옹과 입맞춤을 받고, 유키무라의 마지막 전투 중 도요토미 가문의 운명을 걸고 센히메를 도쿠가와 진영으로 보냈다. 그 후의 일은 언급되지 않았다.
: 역사상의 모델은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이자 우메의 어머니로 알려진 노부시게의 측실이 된 여성으로, 노부시게에게 마지막까지 다가가는 여성으로서 초창기부터 구상되었지만, 측실이 될지 여부는 중반까지 정해지지 않았다. 키리에게 어머니로서의 측면이 생겨나면 노부시게의 카운터 파트너로서의 위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측실이 되지 않았다.[37]
; 타카나시 나이키
: 배역: 나카하라 타케오
: 마사유키의 측근이자 키리의 아버지이다. 사나다 가문의 중신으로서 마사유키·노부유키 부자(父子)를 섬기며, 마사유키의 이루지 못한 꿈에도 함께한다. 딸이 노부시게와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웠으며, 전투 후에는 쿠도야마 유배에 동행한다.
: 마사유키가 사망했을 때 순사하려 하지만 노부시게에게 제지당한다. 그 후 삭발하여 중이 되었지만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지만, 다이스케의 후견인을 부탁받은 것으로 기력을 되찾고, 더 나아가 함께 오사카성으로 입성한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오사카성에 침입한 막부군에 맞서 분전하지만, 토벌당해 마사유키의 위패를 안고 절명한다.
; 사스케
: 배역: 후지이 타카시
: 사나다 가문에 섬기는 닌자. 작중에서 이데우라 마사스케에게 사사받는다. 다양한 닌술을 구사하여 노부시게의 위기를 구한다. 작중에서는 초인적인 다리 힘으로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사나다 가문의 첩보·전달 수단으로 활약, 바람의 효과음과 함께 나타나 사라진다. "사스케"라는 이름이지만, 사루토비 사스케가 아니라,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등 신체 능력이 높은 인물이 훈련을 거듭한 결과 닌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작중에서는 묘사하고 있다.[39] 마사유키나 노부시게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여, 그들이 몰락해가는 상황에 억울함을 느끼고 있으며, 반대로 온건파인 노부유키가 출세한 것에 분노를 느꼈다. 키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후술할 이에야스 암살 전에 청혼하지만, 즉시 거절당한다.
: 스승인 마사스케에게 "내가 실패하면 네가 이에야스를 암살하라"는 명을 받은 적이 있으며, 후에 오사카 여름의 진을 앞두고 유키무라의 명으로 이에야스 암살에 나서지만, 살해한 이에야스는 그림자 무사였고, 실패한다.
: 노부시게의 쿠도야마 행, 더 나아가 오사카성 입성, 마지막 전투에도 따랐으며, 최종회에서 나이가 55세임을 밝히고, 궁지에 몰린 노부시게의 카이샤쿠를 맡았다.
: 노부시게의 명에 거역하지 못하고, 가쓰요리의 이와토노 성 입성을 거부하라는 본의 아닌 역할을 맡았다. 다케다 가문 멸망 후 사나다의 고향으로 도망쳐 노부시게와 마츠에게 숨겨지지만, 타케다를 멸망으로 이끈 오야마다 씨의 일원이기 때문에 노부유키에게 베이려 한다. 노부시게의 설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밖에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 후에 하인으로 신분을 낮춰 오다 가문의 인질이 된 마츠와 함께 아즈치성에 동행한다. 혼노지의 변 후의 혼란 속에서 마츠가 생사 불명이 되었을 때 비탄에 잠겨, 그대로 오미에 머무르겠다는 뜻을 보이며, 사나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부시게 일행과 헤어진다.
: 후에 오야마다 일족과 인연이 있었던 호조 가문에 섬기며, 오다와라성에 농성 중인 곳을 호조 우지마사의 설득을 위해 방문한 노부시게와 재회하고, 전투 후에는 마츠와도 재회하여 그대로 사나다 가문의 가신이 되어 이와비츠 성의 수비를 맡게 된다.
: 제2차 우에다 전투 때에는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우지만, 전투 후에는 노부유키의 가신이 되어, 후에 노부요시에게 붙는다.
; 호타 사쿠베에
: 배역: 후지모토 타카히로
: 사나다의 고향의 지사(地侍)로, 우메의 오빠이다. 여동생이 죽은 후, 우메의 유복자인 조카 스에를 기르게 된다. 싸움에서는 다네를 자주 사용하지만 오사카에서는 창으로 바꿔 사용한다.
: 제2차 우에다 전투에도 종군하여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운다. 그 후에는 우에다에 남아 있었지만, 오사카성에 입성한 노부시게의 초대에 응하여 노부유키의 제지를 뿌리치고 오사카로 달려간다.
: 오사카에서는 마지막 전투에서 유키무라를 감싸 철포상을 온몸에 입으면서도 오사카성으로 돌아와, 최후는 자신이 경작한 뜰의 밭 위에서 적병과 맞서 싸운 끝에 스에와 우메를 생각하며 힘없이 쓰러진다.
: 시나노 하니시나 군에 영지를 가진 구니슈의 한 사람으로, 소파의 두령이기도 하다. "한 번 주종이 된 상대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 마사유키의 협력자로서 모략을 돕고 있었지만, 그의 그릇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마사유키가 시나노를 지배하는 다이묘가 되기를 원했다. 마사유키가 독립의 의지를 굳힌 것을 계기로 사나다 가문에 신종하여 정식으로 가신이 되었다. 그 후에도 마사유키와는 대등한 말투를 사용한다. 사스케를 닌자로 키운다.
: 사나다 가문이 히데요시의 산하에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시나노나 옛 타케다령을 사나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이 있을 때마다 천하를 어지럽히도록 마사유키를 부추긴다. 미쓰나리가 히데요시의 유지를 이어 마사유키에게 이에야스 암살을 의뢰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저택에 잠입하지만 발각되어 타다카츠와의 일기토를 벌여 중상을 입는다. 그 후 사스케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환하여, 마사유키 곁을 떠나 아리마에서 요양에 들어간다. 마사유키가 쿠도야마로 옮겨갈 때도 몸은 낫지 않아, 노부유키의 거성인 누마타 성에서 요양이 이어지고 있으며, 직접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마사유키에게 이에야스 암살에 대한 집념을 보였지만, 오사카의 진에서 노부유키가 유키무라를 뒤에서 돕기 위해 직접 군량을 운반하려고 하자, 사나다의 가문을 위태롭게 한다며 반대하고, 닌술을 사용하여 억지로 노부유키를 막았다.
: 싸움에 나가는 것에 불만이 있지만,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종군하여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운다.
: 오사카성의 노부시게에게 달려온 사쿠베에를 따라 오사카성으로 들어가지만, 유키무라의 허락을 받아 부엌의 요자에몬을 돕게 된다. 도묘지 전투와 와카에·야오 전투가 벌어지는 중에 운 나쁘게 요자에몬과 도쿠가와의 간자의 밀회를 목격하여 살해당하고, 후에 사스케에 의해 시체가 발견된다.
; 가와라 츠나이에
: 배역: 오노 야스히로
: 사나다 가문의 중신으로, 토리는 숙모에 해당하며, 사나다 마사유키와는 사촌에 해당한다.
: 노부유키의 측근으로 섬기는 일이 많아, 이누후세에서의 사나다 부자 3인에서의 협의 때에는 명령을 어기고 엿본 탓에 노부유키의 질책과 함께 물건을 던져져 이가 부러진다.
: 도요토미 가문에 다양한 물품을 납품하는 한편, 호조 가문에도 철포의 탄환 재료가 되는 납을 팔았으며, 오다와라성 개성 직전에 회수하여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그러나 노부시게가 가져온 극인이 찍힌 납덩어리로 인해 적대 행위가 미츠나리와 요시키츠에게 발각되었고, 히데나가가 히데요시에게 간언한 결과, 오사카를 추방당하고 사카이의 자택에 칩거하도록 명령받았으며, 요시키츠의 책략으로 할복하게 된다.
: 그 후, 오사카성 내 정원에 舶来의 마상통을 묻어두었던 것이 밝혀졌고, 유키무라는 이를 오사카 여름 전투에서 이용한다.
; 요시노 다유
: 배역: 나카지마 아리사
: 오사카의 명기. 요시노 다유의 초대.
: 히데요시가 마음에 들어 오사카에 막 상경한 노부시게가 히데요시에게 이끌려 만나게 된다. 마사유키가 히데요시에 대한 신종을 위해 상경했을 때, 히데요시의 접대라고 속여 노부시게가 자비로 자리를 마련한 것을 알고 마사유키를 대접했다.
: 후에 도요토미로부터 맡겨진 후시미성 축성에서 빠져나온 마사유키에게 자주 불려갔지만, 그 당시 다유는 도쿠가와 측의 간자가 위장한 가짜였기 때문에 마사이가 처단했다.
: 목수의 우두머리.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후시미성 축성에 참여하고 있었다. 타마의 은밀한 예배소에도 다니고 있지만, 표류해 온 남만선을 접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작된 키리시탄 탄압 시기에, 타마와 키리로부터 만류받았지만 스스로 출두하여 순교했다.
; 세이쇼
: 배역: 키요타 마사히로
: 승려. 조선역에서는 외교 승려로 활동했으며, 히데요시 사후에는 이에야스에게 우에스기 토벌로 이어지는 우에스기로부터의 서신을 전달했다.
; 오츠
: 배역: 야기 아키코
: 교토 사람. 원래는 네의 시녀의 지도역. '''오노 오츠'''라고도 한다. 구도야마에 유배된 마사유키, 노부시게 부자의 사면을 꾀하여 코다이인에게 중재를 의뢰하기 위해 노부유키가 자주 면회한다. 그 후, 노부유키는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에 안정을 느끼게 되었고, 중재 의뢰와 관계없이 다니게 된다. 그러나 후에 노부유키와 면회하는 장면을 이나와 코우에게 발각당하고, 그 자리에서 노부유키와 다른 남자들에게 돈을 받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 세이칸
: 배역: 우에모토 준
: 교토 난젠지의 장로. 호코지범종의 명문을 기초하지만, 그 안의 묘미를 살린 어구가 도쿠가와 측으로부터 문제시되어, 카타기리 출분의 계기가 되었다.
; 양서당
: 배역: 나카자와 코
: 승려.
; 지헤에
: 배우: 카시와기 후타로
: 에치고국・우에스기 영지의 어민. 기타하마의 장. 어업권을 둘러싼 미나미하마와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테카키쇼에 도전하게 되었지만, 직전에 두려워하여 노부시게의 기지로 도움을 받는다.
; 마타키치
: 배우: 카미카와 슈사쿠
: 에치고국・우에스기 영지의 어민. 미나미하마의 총대. 기타하마와의 분쟁을 노부시게의 기지와 카게카츠의 중재로 테카키쇼가 아닌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 고헤에
: 배우: 미즈시마 요시토
: 타마나와 (혼다 마사노부 영지)의 농민.
; 조병위
: 배우: 키노모토 아키라
: 구도산 촌 촌장.
: 신겐(信繁) 일행이 막 왔을 때는 귀찮은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았지만, 신겐 일행이 마을에 적응해 가면서 태도를 부드럽게 바꾸고 신뢰 관계를 쌓아, 구도산 탈출 시에는 간접적으로 협력한다.
; 다케모토 기다유
: 배우: 미야시타 마코토
: 아사노 가문 가신.
: 아사노 가문의 영내인 구도산에 유배된 마사유키(昌幸)와 신겐에게 칩거 생활에서의 주의를 전하고, 촌민들에게 일행을 감시하게 한다. 도쿠가와 가문과 도요토미 가문의 전쟁이 다가오자 신겐을 견제하지만, 신겐의 계략에 걸려 구도산 탈출을 허용하고 만다.
; 큐베
: 배우: 오치다 유헤이
: 구도산 촌의 젊은이. 신겐의 구도산 탈출 시에 동행하기를 희망하여 돕고 함께 오사카로 들어가지만, 여름 전투에서 전사한다.
; 시치
: 배우: 토야마 에리코
: 큐베의 아내. 남편의 오사카 행을 반대했다.
2. 1. 사나다 가문
사나다마루는 사나다 노부시게(사나다 유키무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로, 사나다 가문의 주요 인물들을 다룬다.
사카이 마사토 - 사나다 노부시게(사나다 유키무라) 역: 마사유키의 차남으로, 후에 "일본 제일의 병사"로 불린다.
사카이 마사토가 연기한 사나다 노부시게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사나다 마사유키의 차남으로, 통칭은 '''겐지로'''였다가 27화에서 '''좌위문좌'''라는 관직을 받았다. 40화에서 '''유키무라'''로 이름을 바꾸는데, 후세에는 사나다 유키무라라는 이름과 함께 "일본 제일의 병사"로 불리게 된다. 노부시게는 아버지 마사유키에게 "재미있지만 감에 너무 의존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성장한다. 서로 사랑했던 아내 우메를 제1차 우에다 전투에서 잃고 슬픔에 빠졌지만, 인질로 보내진 우에스기 가에서 당주 카게카츠의 마음에 들어 상경을 함께하게 된다. 오사카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차차의 마음에 들어 도요토미 가문에 말을 돌려 섬기게 된다. 누타 귀속 문제에서는 마사유키를 대신해 교섭에 나서 호조 측의 이타베오카 에셋사이와 혼다 마사노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인정받는다. 히데요시의 명으로 오타니 요시쓰구의 딸 하루와 약혼하는 조건으로, 처형 위기에서 벗어난 도요토미 히데쓰구의 딸 타카를 측실로 삼아, 하루를 정실, 타카를 명목상 측실로 맞이한다. 히데요시 사후에는 이시다 미쓰나리를 섬겼지만, 다이묘들의 미쓰나리 습격 사건 수습을 위해 미쓰나리가 은거하자 휴가를 받아 십수 년 만에 사나다의 집으로 돌아온다. 우에스기 정벌 도중 이누부시에서 마사유키와 함께 도요토미를 따르기로 하고, 히데타다가 이끄는 도쿠가와 군을 농락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가 승리하자 참수될 뻔했으나, 노부유키와 타다카츠의 구명 탄원으로 유죄를 받아 쿠도야마로 보내진다. 노부유키에게는 쿠도야마 생활이 힘들 때도 있지만 만족하며 시나노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말했지만, 이타베오카 에셋사이는 그의 속마음을 간파했다. 카타기리에게 오사카성 입성을 요청받고 거절했지만, 키리의 질책으로 오사카 입성을 결심한다. 노부유키가 버린 "유키" 자를 이어받고, 다이스케가 제비뽑기로 고른 "무라" 자를 합쳐 "유키무라"로 개명한다. 마을 사람들을 초대한 연회에 섞여 가족, 가신들과 함께 쿠도야마를 탈출해 오사카성에 입성한다. 도요토미 내 반대 세력에 맞서 사나다마루를 축성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치고 도요토미 가문을 존속시키기 위한 싸움에 모든 힘을 쏟는다. 마지막 싸움인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카게카츠와 다테 마사무네가 칭찬할 만한 싸움을 보여주며 이에야스에게 접근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하고 힘이 다해 사나다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스케의 도움으로 할복했다.[12]
오오이즈미 요가 연기한 사나다 노부유키는 노부시게의 형이자 마사유키의 적자이다. 통칭은 '''겐자부로'''였다가 27화에서 '''이즈노카미'''라는 관직을 받았다. 37화부터 '''노부유키'''로 이름을 바꾼다. 마츠에 따르면, 사나다 가는 장남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아 '''겐자부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마사유키 형의 딸인 코를 아내로 맞이한다. 신중하고 성실하며 사나다 가문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머리가 굳은 편이다. 항상 걱정이 많고 불평을 하지만, 기발한 행동을 하는 노부시게와는 달리 수수하고 평범하다. 마사유키는 그의 성격을 "실패는 적지만 성실하고 재미없다"고 평가하면서도, 노부시게와 단점을 보완하는 "2명으로 하나"의 존재라고 보았다. 싸움에서는 노부시게가 기책이나 술책을 맡는 반면, 노부유키는 적자로서 정면 승부를 맡아 완수한다. 마사유키의 계책에 휘둘리는 경향이 있지만, 히데요시를 상대하면서 그의 생각과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된다. 히데요시의 죽음이 다가오자 사나다 가문의 안정을 위해 도쿠가와 가문에 접근한다. 도쿠가와와의 정략 결혼으로 코와 이별하고 혼다 타다카쓰의 딸 이나를 정실로 맞이했지만, 처음에는 사이가 좋지 않아 시녀가 된 코와의 관계가 계속되었다. 이후 코와 이나 모두 아이를 갖게 되면서 부부 사이도 원만해진다. 의붓아버지 타다카츠에게 "사위"로 인정받는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쿠가와와 도요토미 중 어느 쪽을 따를지 고민하다가, 언젠가 다시 부자 3명이 함께 이야기할 날을 기대하며 도쿠가와에 합류하는 결정을 내린다. 전쟁 후 타다카츠와 함께 마사유키와 노부시게의 구명 탄원에 나서, 유죄를 조건으로 부자의 연을 끊고 "유키" 자를 버리게 되지만, "노부유키"로 개명한다. 도쿠가와에 대한 신종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쿠도야마의 마사유키와 노부시게에게 몰래 생활비를 보낸다. 오사카 전투 출진 요청 시기에는 손 저림 등 건강 문제로 아들들에게 사나다 군을 맡겨 출진시킨다. 노부시게가 유키무라로서 오사카에 들어간 것을 알고 겨울의 진에서는 마츠를 사자로 보내 사나다끼리 싸우지 않도록 전하고, 여름의 진에서는 유키무라의 편지를 통해 죽음을 각오했음을 알고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한다.
구사카리 마사오가 연기한 사나다 마사유키는 노부시게, 노부유키, 마츠의 아버지다. 통칭은 '''겐고로''', 무가 관위는 '''아와노카미'''이다. 시나노국고모로의 국중으로, 한때 '''무토 키헤이'''라 칭하며 미카타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다. 친자식조차 이해하기 힘든 뛰어난 두뇌를 가진 책략가로, "'''표리비흥의 자'''"라 불리는 방심할 수 없는 인물이다. 다케다 멸망과 혼노지의 변으로 오다가 철수한 후 시나노를 지키기 위해 "대도박"이라 칭하며 도쿠가와, 우에스기, 호조를 상대로 책략을 펼치며 위기를 넘긴다. 도쿠가와의 지원으로 우에다성을 축성했지만, 실제로는 도쿠가와를 견제하는 거점으로 이용하며 우에다 전투에서 사나다의 이름을 알린다. 히데요시의 상경 요청을 거절하며 사나다의 가치를 높이다가 적절한 시기에 상경한다. 히데요시에게 다이묘로 인정받지만, 국중과 다를 바 없는 취급에 실망하고 도쿠가와의 여력이 되라는 명령에 낙담했지만, 마츠와의 재회를 통해 마음을 바꾸고 도쿠가와의 여력이 되는 것을 받아들인다. 오다와라 정벌 후 도쿠가와의 여력 임무를 해제받고 후시미성 축성을 맡는다. 나이가 들면서 다케다의 옛 영토를 되찾는 것에 집착하여 현실을 보지 못하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도쿠가와와 도요토미 양쪽을 적으로 돌리고서라도 가이를 되찾겠다"는 전략을 말해 노부시게에게 "꿈같은 이야기"라는 비판을 받는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가 승리하자 참수될 뻔했으나 노부유키와 타다카츠의 구명 탄원으로 쿠도야마로 유배된다. 사면되어 시나노로 돌아갈 날을 기다렸지만 이루지 못하고, 10년 후 병으로 쓰러진다. 노부시게에게 다가올 도쿠가와와 도요토미의 싸움에서 도요토미 가문을 따르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신겐의 환상을 보며 생을 마감한다.
다카하타 아쓰코가 연기한 카오루는 노부시게, 노부유키, 마츠의 어머니다. 마사유키의 정실로, 공가 출신으로 시집와 귀족 취미를 즐긴다. 공경키쿠테이 하루스케의 딸이라 칭하지만, 실제로는 시녀였으며 이 사실은 히데쓰구 실각 때까지 아들들도 몰랐다. 다른 사나다 가문 사람들보다 신분과 가문에 얽매이지만, 시나노를 고향처럼 사랑하고 가족을 생각한다. 잔재주를 싫어하며, 카오루에게는 마사유키나 노부시게의 책략이 통하지 않아 분노를 사기도 한다. 인질 경험으로 인해 자신을 포함해 타가에 인질을 보내는 것을 거부한다. 우에스기 정벌부터 세키가하라 전투까지 인질로 소모되어 마음이 약해져 마사유키의 배려로 쿠도야마에 가지 않고 노부유키 곁에 머물다 마사유키 사후 2년 뒤 에도 저택에서 사망한다.
구사부에 미쓰코가 연기한 토리는 노부시게, 노부유키, 마츠, 코의 할머니다. 마사유키와 사나다 노부타다의 어머니로, 남편은 다케다 신겐을 섬긴 사나다 잇토쿠사이다. 카오루와는 반대로 사나다 가문을 위해서라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억센 성격이며, 손자들에게 "할머니"라 불리며 사랑받는다. 노부시게를 아끼는 한편, 노부유키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며 시치미를 뗀다. 속임수나 배신은 집을 지키기 위한 기회라고 여긴다. 혼노지의 변 이후 타키가와, 키소, 도쿠가와 등 입장을 바꿔가며 인질이 되었고, 도쿠가와 가문에서는 아차에게 소중히 여겨졌다. 덴쇼 임오의 난 후 도쿠가와의 사나다 회유책으로 겨우 사나다 가문으로 돌아와 우에다에서 여생을 보내다 나고야에서 돌아온 마사유키 등 가족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노부시게와 노부유키에게 "설령 헤어진다 해도, 사나다는 하나"라는 유언을 남긴다.
기무라 요시노가 연기한 마츠는 노부시게와 노부유키의 누나다. 오야마다 시게마사의 아내로, 부부 사이가 매우 좋다. 기억을 잃었을 때는 '''후지'''라 불렸다. 다케다 멸망 후 인질 신분에서 사나다로 돌아왔지만, 오다에게 신종할 때 인질로 선택된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패잔병인 남편 시게마사를 수행원으로 동행시켜 사나다에서 멀리하면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노부시게의 제안을 받아들여 인질이 된다. 혼노지의 변으로 혼란스러운 아즈치성에서 시게마사와 노부시게의 도움으로 탈출하지만, 아케치 군을 피해 비와호에 몸을 던져 노부시게 등은 사망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역 주민에게 구조되어 목숨을 건졌지만 기억을 잃고, 이즈모 아쿠니 일행에게 주워져 후지라는 이름을 받고 무용가로 각지를 떠돌았다. 오사카성에 체류하던 중 노부시게가 후지가 마츠임을 확신하고 아쿠니에게 부탁해 사나다 가족 곁으로 돌아온다. 키리의 사소한 말로 기억을 되찾기 시작하고, 오다와라 정벌 후 돌아온 시게마사와 재회하며 기억을 완전히 되찾는다. 시게마사가 이와비츠성 수비를 맡게 되자 마츠도 동행한다.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는 노부유키의 부탁으로 출진한 사나다 노부요시와 사나다 노부마사에게 오사카 측에 붙은 유키무라와 싸우지 않도록 전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름의 진에서는 노부유키에게 "할머니를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코다 다카야가 연기한 야자와 산쥬로 요리유키는 야자와 요리츠나의 장남이자 노부시게의 오른팔이다. 노부시게에게 신뢰받지만, 아버지 요리츠나에게 노부시게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명령을 받아 귀찮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겐지로 님 곁에는 산쥬로가 있다"고 자부한다. 우에스기 가문에 노부시게가 인질로 보내졌을 때 함께 에치고에 갔지만, 오사카로 가게 되었을 때 동행을 원했으나 허락받지 못하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간다. 히데요시 사후 상경하여 다시 노부시게를 섬기게 된다. 그러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노부시게와 노부유키가 적과 아군으로 갈라지자, 형제끼리 싸우는 것을 피하기 위한 내통자 역할을 맡고 노부유키 측에 남으라는 명령을 받는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노부시게의 간청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받아들여 노부유키의 가신이 되어 노부마사의 보좌역이 된다. 오사카 여름의 진에는 도쿠가와 측으로 참전, 이에야스 본진으로 돌격하려는 유키무라와 맞붙지만 패배하고, 달려나가는 유키무라의 뒷모습을 보며 "겐지로 님!!"이라고 절규한다.
쿠로키 하루가 연기한 우메는 호타 사쿠베의 여동생이다. 노부시게와 서로 사랑하여 아이를 갖게 되어 그의 첫 번째 아내가 되지만, 신분 차이로 측실 형태를 취한다. 키리에게만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는 확신이 없었지만, 무사히 노부시게의 첫째 딸 스에를 낳는다. 가스가 노부타쓰 모살로 싸움과 책략에 망설임을 느낀 노부시게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킨다", "적도 아군도 최소한의 희생으로 억제한다"는 무사로서의 지침을 준다. 우에다성 전투 중 인질로 보내졌던 에치고에서 돌아온 노부시게와 재회한 후, 성 아래 형의 진지가 걱정되어 돌아갔다가 패주하는 도쿠가와 병사의 공격에 휘말려 젖먹이 딸을 남기고 목숨을 잃는다.
구리하라 히데오가 연기한 사나다 노부타다는 마사유키의 동생이다. 무가 관위는 오키노카미이다. 마사유키에게 타국과의 교섭, 정보 수집, 암살 등 궂은 일을 맡고 각지를 돌아다닌다. 형을 돕는 삶은 노부시게에게 존경받지만, 그의 비정하지 못한 본질을 간파하고 "나처럼 되지 마라"고 전했다. 노부시게가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바랐지만, '너처럼 되지 마라'고 들었다"고 하는 인물 중 하나로, "집을 위해 사람의 도리를 벗어났다"고 평가받는다. 제1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도쿠가와에 포로로 잡히지만, 감옥에서 이시카와 가즈마사를 조략하여 이에야스에게 패배를 안긴다. 이후 사나다를 위한 첩보 활동을 묵인하겠다는 이에야스의 유혹에 넘어가 도쿠가와 가신이 된다. 후에 도쿠가와 가문을 떠나 로닌으로 방랑한다. 막부의 오사카 공격 때 다시 도쿠가와 가신이 되어 유키무라의 조략을 맡지만, 면회하며 이에야스의 서신을 "읽지 않아도 좋다"고 건네주어 이에야스에게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는 노부유키를 데리고 유키무라를 찾아가 투항을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헤어질 때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는 말을 남긴다.
아야타 토시키가 연기한 야자와 요리츠나는 마사유키의 삼촌이자 야자와 산쥬로 요리유키의 아버지다. 사나다 가문 일문의 장로로, 무가 관위는 사쓰마노카미이다. 고령임에도 혈기왕성하며, 자신이 지키는 누타성의 인도를 요구하는 호조의 사자를 죽여 거부하고, 침략해 온 호조의 대군에 맞섰다. 호조 멸망 후에도 총무사령에 반하여 누타성을 증강하는 것을 허가 없이 행하여 성주가 된 노부유키를 괴롭혔다. 히데요시에 의한 천하 통일 후에도 전장에 나갈 날을 꿈꿨지만, 대단한 죽음을 맞이한다.
나가노 사토미가 연기한 코는 노부유키의 아내이자 노부시게의 의붓누나다. 마사유키 형 노부쓰나의 딸로, 노부유키, 노부시게 형제에게는 사촌이며, 토리에게는 직계 손녀다. 병약하여 자주 기침을 하거나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등 건강 문제로 침대에 누워 있는 일이 많지만, 노부유키와 사나다 가문을 위해 노력하려는 마음은 강하다. 도쿠가와의 혼인으로 노부유키의 정실로 이나를 맞이하게 되어 이별했지만, 카오루의 배려로 시녀로서 노부유키를 섬기게 된다. 시녀가 된 후 튼튼해져 이나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노부유키를 위로한다. 이별해도 사나다 일문으로서의 기개를 버리지 않고, 이나의 행동을 꾸짖거나 도쿠가와에 대한 밀고를 막기도 한다. 이나와 같은 시기에 임신하여 노부유키의 아들 센치요를 낳았지만, 이나와의 사이는 좋아 함께 노부유키를 지지한다. 미타니 코키는 당초 노부유키와 이나의 결혼 이후 페이드 아웃시킬 예정이었지만, 나가노의 연기가 좋아 최종회까지 출연시키기로 했다.[34]
요시다 요가 연기한 이나는 노부유키의 정실이자 혼다 타다카쓰의 딸이다. 용감한 성격으로, 우에다에서 도쿠가와가 대패했을 때 전장에 나가 사나다를 멸망시키고 싶어했다. 도쿠가와의 여력이 된 사나다와 연을 맺기 위해 노부유키와의 정략 결혼을 명받고 반발하지만, 사나다의 내정을 감시하는 역할도 있어 혼인을 받아들인다. 이에야스의 양녀가 된 후 노부유키의 아내가 된다. 신슈의 풍토와 음식에 익숙하지 않고 노부유키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지만, 카오루의 출신을 둘러싼 코와의 대화를 거쳐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햑스케를 임신한 것을 계기로 노부유키에게 무례함을 사과하고 사나다를 지지하는 길을 선택한다. 사나다에 익숙해진 후에도 시녀로 곁에 있는 코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고,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사나다의 집을 지킨다. 미쓰나리 거병 시 인질로 상방 저택에 있었지만, 호소가와 저택이 불타는 것을 보고 도쿠가와 가신의 딸로서 신변의 위험을 느껴 코와 아이들과 함께 사나다 영지로 도망친다. 남편이 도쿠가와 측에 남은 것을 알고 미쓰나리를 따르기로 결심한 노부시게와 마사유키를 누타성에 들이지 않고 돌려보낸다. 이후에도 사나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태도를 유지한다.
쓰네마쓰 유리가 연기한 스에는 노부시게의 장녀로, 어머니는 우메다. 노부시게가 우에다를 떠났을 때 태어나 어머니 사후 백부 사쿠베에게 양육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부시게와는 부녀로서 함께 산 적이 거의 없고, 사쿠베를 아버지처럼 따른다. 이후 이시가이 토조의 아내가 된다.
마쓰오카 마유가 연기한 하루는 노부시게의 정실이자 요시쓰구의 딸이다. 히데요시가 노부시게를 곁에 두기 위한 약혼으로 두 번째 아내가 된다. 카오루와 코에게 "죽은 우메를 많이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겉으로는 세상을 멀리한 듯 보이지만, 과거 미쓰나리를 사랑하여 그의 아내에게 헤어지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미쓰나리는 노부시게에게 그녀가 "고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질투나 불만으로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찢는 버릇이 있다. 우에스기 정벌부터 세키가하라 전투 사이에는 카오루, 키리와 함께 아버지에게 보호받았지만, 패전 후 노부시게의 쿠도야마 유배에 동행하여 노부시게와의 사이에서 다이스케, 우메, 다이하치를 낳는다. 쿠도야마 탈출 후 오사카성에서 생활했지만, 도묘지 전투 후 탈출하여 우메, 다이하치와 함께 다테에게 의탁한다.
키시이 유키노가 연기한 타카는 노부시게의 측실이자 히데쓰구의 딸이다. 하루와의 약혼과 같은 시기에 세 번째 아내가 된다. 히데쓰구 할복 후 일족 처형에서 벗어나 기리시탄 예배를 위한 방에 숨어 있다가 노부시게에게 발견된다. 구명 방편으로 노부시게가 "서로 사랑하여 측실로 삼는다"는 명목으로 히데요시의 허락을 받은 후 루손으로 건너간다. 루손을 거점으로 상인으로 활동하며 일본에 일시 귀국하여 쿠도야마의 노부시게를 방문한다. 기념품으로 가져온 네팔의 사나르 끈이 노부시게에게 사나다 끈을 발안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긴 해외 생활로 일본어 발음이 어색해져 루손의 말이 섞이게 되었다. "혼례"를 구명 방편으로 보던 노부시게와 달리 타카는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면모를 보였다.
우라가미 세이슈가 연기한 사나다 다이스케는 노부시게의 적자로, 어머니는 하루다. 쿠도야마에서 태어나 자라 아버지 노부시게를 따라 오사카성에 입성한다. 오사카 겨울의 진에서는 도쿠가와 측 마에다 군을 유인하여 사나다마루 전투 승리에 공헌했다.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는 히데요리의 출마를 요청하기 위해 오사카성으로 돌아가던 중 전황이 악화되어 성 안에서 도요토미 가문과 운명을 함께한다.
오데 나나코가 연기한 우메는 노부시게의 차녀로, 어머니는 하루다. 노부시게의 우메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 하루가 딸에게 같은 이름을 붙였다. 도묘지 전투 후 하루, 다이하치와 함께 다테에게 의탁한다.
히로타 료헤이가 연기한 사나다 노부요시는 노부유키의 적자로, 어머니는 코다. 유아명은 센치요다. 부모의 이혼 후 관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한동안 타다카츠에게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 장성하여 무예보다 서적을 좋아하는 청년이 되어, 정실 소생은 아니지만 장남이기에 이나의 권유로 적자로 일어선다.
오야마 마사시가 연기한 사나다 노부마사는 노부유키의 차남으로, 어머니는 이나다. 노부요시의 동생이며, 유아명은 햑스케다. 장성하여 어머니나 타다카츠처럼 무예에 뛰어난 청년이 되어 사나다마루 공격에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노부타다는 "형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위태롭게 여겼고, 도쿠가와의 적이 된 유키무라나 다이스케와 싸우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유키무라와 대치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고 유키무라 세력이 달려나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다이하치는 노부시게의 차남으로, 어머니는 하루다. 도묘지 전투 후 하루, 우메와 함께 다테에게 의탁한다.
나가사와 마사미가 연기한 키리는 본작의 히로인으로,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이다. 노부시게(유키무라)와 우메와 소꿉친구로, 노부시게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평생 노부시게가 있는 곳이 자신의 있을 곳이라고 선언한다. 노부시게가 가는 곳에는 여러 사정으로 거의 동행하며, 본래 임무 외에도 노부시게를 돕고 점차 의지되는 존재가 된다. 제49화에서는 역사적으로 여러 설이 있어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노부시게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여성이라고 해설된다.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를 드러내는 성격으로, 현대적인 말로 이야기한다.[36] 주변 사람들이 놀라거나 어이없어하는 언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성격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노부시게에게 인식된다. 노부시게에게는 좋든 싫든 자신의 심정을 너무 잘 알아 귀찮게 여기고 냉담하게 대하지만, 두 사람의 거리낌 없는 대화가 주변에서는 사이좋게 보이기도 한다. 노부시게가 다른 여성에게 질투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메나 하루에게는 중재하기도 한다. 차차에게는 질투심과는 별개로 그녀의 인간성과 죽음에 대한 감각에 두려움을 느낀다. 에치고에서 오사카로 향하게 된 노부시게에게 사나다 가문의 의향으로 곁에서 돌보기 위해 동행하여 오사카에 들어가 히데쓰구에게 마음에 든다. 히데요시의 우마마와리가 된 노부시게에게 귀향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사카성에서 시녀로서 네에게 시중들게 되고, 노부시게에게 네 주변의 사정을 전하거나 네나 히데츠구에게 편의를 봐주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한다. 이후 관백이 된 히데츠구에게 측실이 되어달라는 설득을 받지만, 대답을 미루는 동안 히데요시와의 갈등으로 죽음을 각오한 히데츠구에게 이야기를 취소당하고, 자살 직전의 히데츠구에게서 노부시게를 통해 성모화를 받는다. 타마와 친분을 쌓은 후 기리시탄 신앙에 끌려 세례를 결심하지만, 키리시탄 탄압으로 인한 순교를 각오하라는 타마의 질문에 단념한다. 히데요시 사후 출가하는 네에게서 한가함을 받았지만, 타마의 시녀로 섬기며 얻은 정보로 미쓰나리의 위기를 구하는 활약을 보인다.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 타마의 죽음으로 사나다 가문으로 돌아간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아버지가 마사유키를 따르기로 하여 노부시게의 쿠도야마 유배에도 동행한다. 오사카 입성에 대해 고민하는 노부시게에게 "자신을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응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증거를 남기지 못했다"고 질책하며 격려하고, 노부시게의 결의를 재촉한다. 함께 쿠도야마를 탈출하여 오사카 입성 후에는 차차의 명으로 그녀의 시녀가 된다. 오사카 여름의 진 직전 전날 밤, 유키무라에게 만일의 사태에는 센히메를 도쿠가와 진영으로 보내 도망치라고 명받지만, 살아남아도 노부시게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유키무라에게 처음으로 포옹과 입맞춤을 받고, 유키무라의 마지막 전투 중 도요토미 가문의 운명을 걸고 센히메를 도쿠가와 진영으로 보냈다. 그 후의 일은 언급되지 않았다. 역사상의 모델은
제27회는 종합 텔레비전에서만 참의원 선거 개표 특별 방송으로 인해 50분 앞당겨 방송되었다.[53]
제30회는 종합 텔레비전에서만 2016년 도쿄도지사 선거 개표 속보로 인해 45분 앞당겨 방송되었다.[54]
BS 프리미엄의 시청률 중 수치가 공란인 것은, 수치가 명시된 출전이 없거나 NHK가 비디오 리서치사에 특별히 의뢰하여 본 프로그램의 수치를 내도록 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각 회의 부제는 모두 한자 두 글자의 숙어로 통일되어 있지만, 최종회만 부제가 붙어 있지 않다. 각본상으로는 "질풍"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138]
종합 텔레비전에서의 제14화 재방송은 구마모토 지진 관련 뉴스로 인해 2016년 4월 23일에 제14화 재방송(13:10-13:55)과 제15화 재방송(14:00-14:45)으로 나뉘어 방송되었다. 규슈·오키나와 지역에서는 제15화 재방송을 먼저 방송하고, 제14화 재방송은 구마모토 지진 관련 로컬 뉴스로 인해 휴지되었다.[139]
제30회 "황혼"의 본방송에서 기저귀가 보이는 장면이 있었으나, 8월 6일 재방송에서는 해당 장면이 편집되었다.[140]
『대하 드라마 「사나다마루」 콘서트』 (2016년 2월 28일, 종합): 나가노현 우에다시 녹화. 게스트: 나가사와 마사미, 구로다 모토키.
『사나다마루 제2막 완전정복! “히데요시 키즈” 각자의 정의』 (2016년 5월 6일, 종합): 야마모토 코지, 아라이 히로후미, 고바야시 다카시, 니이노 신야가 이시다 미쓰나리, 가토 기요마사 등 관련 지역 방문.
『사나다마루 스페셜 in 신슈』 (2016년 9월 25일, 종합): 우에다시 이벤트 「대하 드라마 『사나다마루』 대문화제」 방송. 게스트: 구사카리 마사오, 가타오카 아이노스케.
『사나다마루 최종장 완전정복 「오사카 전투 최강의 동지」』 (2016년 11월 3일, 종합): 아이카와 쇼, 나카가와 타이시, 고바야시 겐사쿠가 고토 마타베에 관련 지역 방문.
NHK 역사 프로그램: 『역사비화 히스토리아』, 『영웅들의 선택』, 『선인들의 저력 지혜샘』, 『풍운! 대역사 실험』 등에서 관련 인물・사건 특집 방송.
5. 프로모션
NHK는 사나다 노부시게(사나다 유키무라)를 주연 배우로 사카이 마사토를 캐스팅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사카이가 출연한 드라마가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시청률이 감소했던 타이가 드라마의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추측했다.[3][4]
NHK 대하 드라마 시청률 감소, 특히 2015년 이전 ''꽃 타오르다''의 낮은 시청률로 인해 ''사나다마루''의 마케팅 노력을 강화했다.[4] ''사나다마루''의 배우들이 ''츠루베 가족에게 인사하다'' 및 ''브라 타모리''와 같은 여행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4] 역사 다큐멘터리와 토론 프로그램은 드라마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었다.[4] 사카이는 NHK에 의해 주요 언론 매체에 인터뷰를 위해 파견되었지만, 드라마에서의 역할 대신 그의 사생활에 질문이 집중되면서 많은 인터뷰에서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였다.[4]
2014년5월 12일에 제작 발표가 이루어졌고[10], 6월 18일에 사카이 마사토를 주인공으로 기용한다고 발표했다.[13] 2015년 7월 10일에는 출연자 발표 기자 회견이 열렸다.[14][15]
2015년9월 1일, 나가노현 내에서 로케이션 촬영으로 크랭크인했으며, 9월 5일에는 우에다시에서 언론 합동 취재회가 열렸다.[16]
극중 배경이나 다이묘의 세력도 등에 사용되는 CG 기술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등을 담당하는 코에이 테크모 게임스가 제공·감수했다.[20][21][22][23][24] 같은 회사에서 타이업 기획으로 『전국무쌍 ~사나다마루~』가 제작되었다.
총 50화의 평균 시청률은 16.6% (비디오 리서치 조사, 간토 지역·가구·실시간)[35], 종합 텔레비전의 평균 시청률은 과거 5년간 최고를 기록했다. 스포니치는 이를 "대하 부활"이라고 보도했다.[136] BS 프리미엄의 평균 시청률은 4.7% (비디오 리서치 조사, 간토 지역·가구·실시간)[136]로, BS에서의 시청률로는 "이례적"이라고 여겨지는 5%대를 종반까지 연발했다.[136]
2016년4월 29일과 4월 30일에 개최된 니코니코 초회의 2016에서 "초·사나다마루" 부스가 설치되어[186], 출연 배우들의 토크쇼 등이 진행되었다.
5. 1. 다메타 10용사
단편 영화 《다메타 10용사》는[182][183], 《사나다마루》 방송에 앞서 2015년 12월 16일부터 NHK 도가 스테이션[184] 및 유튜브의 NHK 온라인 공식 채널[185]에서 공개되었다. 짧은 버전은 프로그램 선전으로 NHK 종합 TV에서 방송되었다. 완전한 원작이며 《사나다마루》 본편과는 무관하다.[177][178] 제목은 "십용사"이지만, 멤버는 8명이다. 본편 등장인물은 등장하지 않고, 스토리도 거의 관계가 없지만, 본편 최종회에 코스케를 제외한 7명이 출연하여, 주인공 사나다 노부시게와 공동 출연을 했다.
출연진
스태프
5. 2. 프로모션 프로그램
메이킹 오브 사나다마루
: 방송 시작에 맞춰 방송되었다. 하사도 슈헤이의 제자 제작, 시부사와 코우의 3D 지도 감수, 핫토리 타카유키의 테마곡 녹음 모습을 다루었다. 분량은 10분이다.
《사나다마루》 프로모션
: 《사나다 가 사람들》 편, 《사나다의 라이벌들》 편 2편이 방송 시작에 맞춰 방송되었다. 각 2분 분량이다.
: 8월 말부터 9월 초에는 《이누후세의 이별》 편과 《드디어 세키가하라!》 편 2편이 방송되었다. 《이누후세의 이별》 편은 스즈키 신이 촬영한 제35회 촬영 현장 스틸 사진, 《드디어 세키가하라!》 편은 시부사와 코우 감수의 3D 지도를 사용한 세키가하라 전투 해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각 2분 분량이다.
: 제38회 직전에는 《안녕, 마사유키》 편, 최종회를 앞둔 12월에는 《최종회, 다가온다!》 편이 방송되었다. 각 1분 분량이다.
《사나다마루》 오사카 편 시작!
: 4월의 《오사카 편》에 맞춰 방송되었다. 역사학자 이소다 미치후미가 오사카 편 등장인물에 대해 해설한다. 2분 분량이며, 공식 사이트에서는 5분 40초의 완전판이 공개되었다.
5. 3. 기타
2016년4월 29일과 4월 30일에 개최된 니코니코 초회의 2016에서 "초·사나다마루" 부스가 설치되어[186], 출연 배우들의 토크쇼 등이 진행되었다.
6. 줄거리
NHK 대하드라마는 2004년에 방송된 《신센구미!》 이후 두 번째로 미타니 코키가 각본을 맡았으며, 2010년 이후 계속 원작이 없는 오리지널 작품이다. 주인공은 대하드라마 최초로 사나다 노부시게이다. NHK에서는 1985년 대하드라마에 준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한 NHK 새로운 대형 사극 《사나다 태평기》가 있었다.
제목 《사나다마루》는 오사카 전투에서 노부시게가 만들었다고 하는 외성 '사나다마루'에서 유래하며, 사나다 가문을 "전국의 거센 파도에 맞선 한 척의 배"에 비유하고 있다.
이야기는 노부시게 청춘 편, 오사카 편, 구도야마 편, 오사카 전투 편의 총 4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드라마는 일본 센고쿠 시대 동안 사나다 씨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특히 이 시대의 전설적인 지휘관 중 한 명이 될 사나다 노부시게에 초점을 맞춘다.
1582년, 가이국의 명문 다케다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 앞에서 멸망 위기에 놓였다. 그 무렵, 스루가국과 가이국의 국경에서 도쿠가와 가문의 병사에게 쫓기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이로부터 33년 후, 오사카 전투에서 천하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항하여 후세에 "일본 제일의 용사"라고 칭송받게 된다. 그의 이름은 사나다 겐지로 노부시게이며, 후세에서는 사나다 유키무라라고 불린 남자이다.
6. 1. 노부시게 청춘 편 (제1-13화)
1582년, 가이국의 명문 다케다 가문은 오다 노부나가의 군세에 의해 멸망 직전에 놓여 있었다. 사나다 겐지로 노부시게(훗날의 사나다 유키무라)는 아버지 사나다 마사유키, 형 사나다 노부유키와 함께 가문의 생존을 위해 노력한다. 마사유키는 오다 가문에 의탁하고, 노부시게의 누나 마츠는 인질로 보내진다. 그러나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사망하고, 마츠는 비와호에 몸을 던진다.[1]
노부나가의 죽음으로 시나노는 권력 공백 상태가 되고, 호조 우지마사, 도쿠가와 이에야스, 우에스기 가게카쓰 등 주변 다이묘들이 각축을 벌인다. 마사유키는 이 틈을 타 독립 다이묘가 되기로 결심하고, 덴쇼 임진왜란에서 도쿠가와 측에 가담했다가 다시 우에스기 측으로 돌아서는 등 능수능란하게 처신한다.[1]
노부시게는 인질로 에치고로 가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신임을 얻는다. 한편, 이에야스는 사나다 가문을 토벌하기 위해 우에다성으로 군사를 보내지만, 마사유키의 전술에 대패한다. 이 전투로 사나다 가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지만, 노부시게는 사랑하는 아내 우메를 잃는다.[1]
'''오다 노부나가''' (배우: 요시다 코타로): 우대신 관직을 가진 전국 다이묘로, 노부시게에게 "용과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가죽 부츠를 신고 다녔다. 혼노지의 변으로 사망했다.[1]
'''다키가와 가즈마스''' (배우: 단다 야스노리): 오다 가문의 중신으로, 우에노 수비를 맡았다. 마사유키에게 신의를 보였으나, 혼노지의 변 이후 호조 씨에게 패하고 사나다 가문에게 영지를 빼앗기자 분노했다.[1]
'''오다 노부타다''' (배우: 타마키 레오): 노부나가의 아들로, 마사유키에게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 혼노지의 변 때 니조성에서 자결했다.[1]
'''아케치 미쓰히데''' (배우: 이와시타 나오후미): 오다 가문의 중신으로, 휴가노카미 관직을 가졌다. 가라샤의 아버지이다. 혼노지의 변을 일으켰으나 야마자키 합전에서 패배했다.[1]
'''모리 나가요시''' (배우: 야타 아유무): 오다 가문의 가신으로, 기타시나노 수비를 맡았으나 노부나가 사후 반발에 직면하여 시나노에서 도주했다.[1]
'''나가사키 모토이에''' (배우: 마쓰다 겐지): 다키가와 가즈마스의 가신이다.[1]
6. 2. 오사카 편 (제14-31화)
덴쇼 임진왜란에서 사나다 마사유키는 동맹 상대를 호조 가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갈아탔고, 열세였던 도쿠가와 측이 만회하지만, 도쿠가와와 호조는 화해한다. 이에야스에게 고즈케 누마타 성을 호조 가에 반환하라는 요구를 받은 마사유키는 그 대가로 이에야스에게 우에스기 공격의 거점이라고 칭하며 시나노 우에다 성을 쌓게 한다. 하지만 누마타 성을 넘겨주지 않으면서 사나다와 도쿠가와의 관계는 악화되고, 마사유키는 다음으로 우에스기 가에 의지한다. 사나다 노부시게는 인질로 에치고로 가 우에스기 가게카쓰의 마음에 든다.[36]
사나다 토벌을 위해 이에야스는 7천의 군세를 우에다 성으로 보냈지만, 마사유키의 전술 앞에 대패를 당하고, 사나다의 이름은 여러 나라에 알려진다. 그러나 노부시게는 전쟁 중 가장 사랑하는 아내 '''우메'''를 잃는 불행을 겪는다.[36]
: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 노부시게(유키무라)와 우메와 소꿉친구. 노부시게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평생 노부시게가 있는 곳이 자신의 있는 곳이라고 선언하며 노부시게가 가는 곳에는 여러 사정으로 거의 동행한다. 본래의 임무 외에도 노부시게를 돕기 위해 일하며 점차 노부시게에게 의지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제49화에서는 역사적으로는 여러 설이 있어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노부시게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여성이라고 해설되었다.[36]
: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를 드러내는 성격으로, 현대적인 말로 이야기한다.[36] 주변 사람들이 놀라거나 어이없어하는 언동이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노부시게에게 인식되게 되었다. 노부시게에게는 좋든 싫든 자신의 심정에 너무나 통한다고 생각되어 노부시게에게 자주 따라붙어 귀찮게 여기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지만, 그 때 두 사람의 거리낌 없는 대화가 주변에서는 사이좋게 보이기도 한다. 노부시게가 다른 여성에게 질투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메나 하루에게는 중재하기도 한다. 차차에게는 질투심과는 별개로 그 인간성과 사람의 죽음에 대한 감각에 불가사의함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낀다.[36]
: 에치고에서 오사카로 향하게 된 노부시게에게, 사나다 가문의 의향으로서 곁에서 돌보기 위해 동행하여 함께 오사카에 들어가 히데츠구에게 마음에 든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우마마와리가 된 노부시게에게 귀향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사카성에서 시녀로서 네에게 시중들게 되고, 노부시게에게 네 주변의 사정을 전하거나, 네나 히데츠구에게 편의를 봐주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36]
: 그 후 관백이 된 히데쓰구에게 자신의 측실이 되어달라고 설득받지만, 대답을 미루는 동안, 히데요시와의 갈등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사후 연좌를 걱정한 히데츠구로부터 이야기를 취소당하고, 게다가 자살 직전의 히데츠구로부터 노부시게를 통해 키리시탄의 성모화를 받게 된다. 타마와 알게 된 후 키리시탄 신앙에 끌려, 세례를 결의하지만 키리시탄 탄압으로 인한 순교를 각오하라는 타마의 질문에 단념한다. 히데요시의 사후 출가하는 네에게서 한가함을 받았지만, 타마의 시녀로 섬기면서 얻은 정보로 미쓰나리의 위기를 구하는 등의 활약을 보인다.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의 타마의 죽음으로 사나다 가문으로 돌아간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아버지가 마사유키를 따르기로 결정한 일도 있어, 노부시게의 구도야마 유배에도 동행한다.[36]
: 역사상의 모델은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이자 우메의 어머니로 알려진 노부시게의 측실이 된 여성으로, 노부시게에게 마지막까지 다가가는 여성으로서 초창기부터 구상되었지만, 측실이 될지 여부는 중반까지 정해지지 않았다. 키리에게 어머니로서의 측면이 생겨나면, 노부시게의 카운터 파트너로서의 위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측실이 되지 않았다.[37]미타니 코키는 2018년에 와서 키리의 캐릭터 조형의 모델과 이름의 유래가 모두 배우 키키 키린이었다는 것을 밝혔다.[38] 이는 "어떤 캐릭터가 좋을까"를 각본 집필 전에 상담했던 나가사와로부터의 제안이었다.[38] 극 중에서 노부시게가 흰 장발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의 모습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또한 키키의 평생의 파트너였던 우치다 유야를 의식한 것이다.[38] 방송 중에는 자주 "키리"의 유래를 물었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인터뷰어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38]
; 타카나시 나이키
: 배역: 나카하라 타케오
: 마사유키의 측근. 키리의 아버지.
: 사나다 가문의 중신으로서 마사유키·노부유키 부자(父子)를 섬기며, 마사유키의 이루지 못한 꿈에도 함께한다. 딸이 노부시게와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웠으며, 전투 후에는 쿠도야마 유배에 동행한다.[36]
; 사스케
: 배역: 후지이 타카시
: 사나다 가문에 섬기는 닌자. 작중에서 이데우라 마사스케에게 사사하게 된다. 다양한 닌술을 구사하여 노부시게의 위기를 구한다. 작중에서는 초인적인 다리 힘으로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사나다 가문의 첩보·전달 수단으로 활약, 바람의 효과음과 함께 나타나 사라진다. 이름은 "사스케"이지만, 사루토비 사스케가 아니라,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등 신체 능력이 높은 인물이 훈련을 거듭한 결과, 닌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작중에서는 묘사하고 있다.[39] 마사유키나 노부시게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여, 그들이 몰락해가는 상황에 억울함을 느끼고 있으며, 반대로 온건파인 노부유키가 출세한 것에 분노를 느꼈다. 키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후술할 이에야스 암살 전에 청혼하지만, 즉시 거절당한다.[36]
: 노부시게의 명에 거역하지 못하고, 가츠요리의 이와토노 성 입성을 거부하라는 본의 아닌 역할을 맡았다. 타케다 가문 멸망 후 사나다의 고향으로 도망쳐, 노부시게와 마츠에게 숨겨지지만, 타케다를 멸망으로 이끈 오야마다 씨의 일원이기 때문에, 노부유키에게 베이려 한다. 노부시게의 설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밖에 나갈 수 없는 신세가 되어, 후에 하인으로 신분을 낮춰 오다 가문의 인질이 된 마츠와 함께 아즈치성에 동행. 혼노지의 변 후의 혼란 속에서 마츠가 생사 불명이 되었을 때 비탄에 잠겨, 그대로 오미에 머무르겠다는 뜻을 보이며, 사나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부시게 일행과 헤어진다.[36]
: 후에 오야마다 일족과 인연이 있었던 호조 가문에 섬기며, 오다와라성에 농성 중인 곳을 호조 우지마사의 설득을 위해 방문한 노부시게와 재회하고, 전투 후에는 마츠와도 재회하여 그대로 사나다 가문의 가신이 되어, 이와비츠 성의 수비를 맡게 된다.[36]
: 제2차 우에다 전투 때에는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우지만, 전투 후에는 노부유키의 가신이 되어, 후에 노부요시에게 붙는다.[36]
; 호타 사쿠베에
: 배역: 후지모토 타카히로
: 사나다의 고향의 지사(地侍). 우메의 오빠. 여동생이 죽은 후, 우메의 유복자인 조카 스에를 기르게 된다. 싸움에서는 다네를 자주 사용하지만 오사카에서는 창으로 바꿔 사용한다.[36]
: 제2차 우에다 전투에도 종군하여,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운다. 그 후에는 우에다에 남아 있었지만, 오사카성에 입성한 노부시게의 초대에 응하여, 노부유키의 제지를 뿌리치고 오사카로 달려간다.[36]
: 시나노 하니시나 군에 영지를 가진 구니슈의 한 사람으로, 소파의 두령이기도 하다. "한 번 주종이 된 상대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36]
: 마사유키의 협력자로서 모략을 돕고 있었지만, 그의 그릇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마사유키가 시나노를 지배하는 다이묘가 되기를 원했다. 마사유키가 독립의 의지를 굳힌 것을 계기로 사나다 가문에 신종하여, 정식으로 가신이 되었다. 그 후에도 마사유키와는 대등한 말투를 사용한다. 사스케를 닌자로 키운다.[36]
: 사나다 가문이 히데요시의 산하에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시나노나 옛 타케다령을 사나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이 있을 때마다 천하를 어지럽히도록 마사유키를 부추긴다. 미쓰나리가 히데요시의 유지를 이어 마사유키에게 이에야스 암살을 의뢰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저택에 잠입하지만 발각되어, 타다카츠와의 일기토를 벌여 중상을 입는다. 그 후 사스케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환하여, 마사유키 곁을 떠나 아리마에서 요양에 들어간다. 마사유키가 구도야마로 옮겨갈 때도 몸은 낫지 않아, 노부유키의 거성인 누마타 성에서 요양이 이어지고 있으며, 직접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마사유키에게 이에야스 암살에 대한 집념을 보였지만, 오사카의 진에서 노부유키가 유키무라를 뒤에서 돕기 위해 직접 군량을 운반하려고 하자, 사나다의 가문을 위태롭게 한다며 반대하고, 닌술을 사용하여 억지로 노부유키를 막았다.[36]
; 요하치
: 배역: 곤노 히로키
: 사나다의 고향의 백성. 사쿠베에와 우메와 친교가 있다.[36]
: 싸움에 나가는 것에 불만이 있지만,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종군하여,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운다.[36]
: 오사카성의 노부시게에게 달려온 사쿠베에를 따라 오사카성으로 들어가지만, 유키무라의 허락을 받아 부엌의 요자에몬을 돕게 된다. 도묘지 전투와 와카에·야오 전투가 벌어지는 중에 운 나쁘게 요자에몬과 도쿠가와의 간자의 밀회를 목격하여 살해당하고, 후에 사스케에 의해 시체가 발견된다.[36]
; 가와라 츠나이에
: 배역: 오노 야스히로
: 사나다 가문의 중신. 토리는 숙모에 해당하며, 사나다 마사유키와는 사촌에 해당한다.[36]
: 노부유키의 측근으로 섬기는 일이 많아, 이누후시에서의 사나다 부자 3인에서의 협의 때에는, 명령을 어기고 엿본 탓에, 노부유키의 질책과 함께 물건을 던져져 이가 부러진다.[36]
; 이시아이 미치사다
: 배역: 카토 료
: 나가쿠보 역의 명주·이시아이 신자에몬의 적자. 스에와 알게 되어 남편이 된다.[36]
; 다메다 십용사
: 사나다 군 휘하의 병사. 숏 무비 "'''다메다 십용사'''"에 등장하고 있다. 캐스트는 "#프로모션" 참조.[36]
: 천하에 전무후무한 판도를 구축한 전국 다이묘. 관위는 우대신. 노부시게에게 "용과 같은 사람"이라고 평을 받는다. 극중에서는 수입산 가죽 장화를 신고 있다.[36]
: 노부시게 등이 보고 있는 앞에서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심한 질책을 가해 노부시게를 비롯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36]
: 사나다 가문을 받아들인 직후 미쓰히데에게 모반을 당해 혼노지의 변으로 목숨을 잃는다.[36]
; 다키가와 가즈마스
: 배우: 단다 야스노리
: 오다 가문의 중신.[36]
: 사나다 가문이 신종한 후 우에노의 수호를 맡는다. 성실하고 인정 많은 성격의 무장으로, 마사유키에게는 신의를 가지고 대했으며, 혼노지의 변 후에 호조 가문에 밀리기 시작하자 누마타 성과 이와비츠 성을 사나다 가문에 돌려주려 했을 정도였지만, 먼저 사나다 가문에게 공격당해 빼앗겼다는 것을 알게 되자 격노한다. 노부나가의 죽음 후, 오다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 기요스 회의에 급히 가려 했지만, 시나노의 기소 요시마사 영지를 통과하는 데 시간이 걸려 참가하지 못하고, 히데요시의 대두로 인해 세력과 권위가 실추된다.[36]
: 천하인. 오다 가문의 중신. 통칭은 '''도키치로'''. 작중에서의 존칭은 덴카.[36]
: 모반을 일으킨 미쓰히데를 쓰러뜨린 것을 계기로 두각을 나타내, 간파쿠・태정대신까지 올라갔다. 전국 통치를 위한 새로운 착상을 가지고 정력적으로 움직이며, 의외의 언행이나 배려, 세심한 배려가 돋보이는 애교 있는 면과, 냉혹하고 잔혹한 얼굴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때로는 사람을 감동시키고, 또 때로는 전율하게 하며, 다이묘나 구니슈를 굴복시키고 군림해 나간다. 오다와라 함락으로 명실상부한 천하인으로 군림하고, 히데쓰구에게 간파쿠 자리를 양보한 후에도 태합으로서 강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지만, 히데쓰구와의 어긋남이 계속된 결과, 실각시켜 자결에 이르게 한다.[36]
: 히데쓰구의 사망 후부터 심신 모두 노쇠가 진행되어, 망령의 증상을 보이게 된 끝에, 다이고의 꽃놀이에서의 벚나무 오르기에서의 낙하 사고로 인해 병상에 눕게 되고, 자신의 사후 정치 체제에 관한 발언의 불일치로 인한 혼란으로 인해, 유언장을 둘러싼 도쿠가와와 미쓰나리의 다툼을 초래한다. 결국 몽상에서 이에야스 암살을 미쓰나리에게 명하고, 암살이 실패로 끝난 그날 밤에 생애를 마감했다.[36]
: 히데요시의 정실. '''기타노만도코로'''라고 존칭된다. 간파쿠의 아내로서 수많은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낙식 후에는 '''고다이인'''이라고 칭한다.[36]
: 오사카성 안에 채소를 만들어 가족과 가신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등, 격의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배려를 하는 인물. 일족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해 시어머니인 나카야 히데쓰구, 히데나가 등의 중심에 있으며, 익숙하지 않은 생활과 분수에 맞지 않는 신분에 당황하는 가족들을 쾌활하게 격려한다. 오와리 사투리를 사용하며 대화한다.[36]
: 히데요시가 냉혹하고 잔혹한 무서운 남자라는 것을 시집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내로서 지탱해 왔다고 말한다. 차차가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어 아들을 낳은 후에도, 일족의 번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는 히데요시에 대한 간언이나 차차에 대한 배려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에는 밝지 않고 처음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히데요시 사후에는 출가를 원하며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36]
: 히데요시의 측실. 노부나가의 조카이며 아사이 나가마사와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이치의 장녀. 아사이 삼자매 중 한 명. 밝고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미녀로, 친부, 오빠, 어머니, 의붓아버지를 히데요시에게 살해당한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히데요시에게 보호받으며 오사카성에서 살고 있다. 그 후, 히데요시의 측실이 되어, 주라쿠다이를 거쳐 히로이의 탄생으로 일시적으로 요도성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요도도노'''라고도 칭해진다. 히데요시 사후에는 '''오카미사마'''라고 존칭된다.[36]
: 노부시게를 마음에 들어하며, 그 자유분방함으로 휘두를 뿐만 아니라, 노부시게에 대해 서로의 운명의 깊이를 느끼고 있다. 과거에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매료된 듯한 언행을 하며, 사람의 죽음에 대해 좋든 싫든 특이한 반응을 보인다. 그 후 "노부시게와 같은 날에 죽는다"라고 예언한다.[36]
: 히데요시의 구애를 받아 측실이 되어, 히데요시가 바라던 아들을 낳는다. 오조쿄노 츠보네는 노부시게에게 차차가 죽음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슬퍼하는 것을 멈춘"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쓰루마쓰를 잃었을 때, 네이의 품 안에서 통곡함으로써, 슬픔을 드러낸다. 그 후, 제2의 아들 히로이를 낳아, 자기 아이를 최우선으로 한다.[36]
: 호코지 범종 사건에서는, 가타기리 가쓰모토를 의심하는 오조쿄노 츠보네와 하루나가에 대해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남자가 아니다"라고 입으로는 감싸면서, 그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은 일축하는 등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며 궁지에 몰아넣는다. 오사카성에 입성한 유키무라와의 재회를 기뻐하며, 오사카의 진에서는 유키무라의 뜻을 헤아리는 경우도 있지만 히데요리를 억누르고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입장에 있다.[36]
: 히데요시의 누나 쪽 조카. 통칭은 '''마고시치로'''. 오미재상・오미 주나곤이라고 불린다.[36]
: 오랫동안 친자가 없었던 히데요시의 양자로 후계 후보. 히데요시의 위광에 두려움을 느껴, 또한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 언행에 떨고 있지만, 히데요시로부터는 도요토미 가문의 울타리로서 큰 기대를 받고 있으며, 간파쿠 자리를 양보받는다.[36]
: 작중에서는 문화 교양에 뛰어나고, 사람에게도 배려할 수 있으며, 근본은 선량하고 정의에 두터운 인물로 그려진다. 키리를 통해 노부시게에게도 호의적이고 협력적이다. 네이와 나카를 위로하거나, 키리를 의식하여 배려를 보이는 등 여성에 대한 상냥함을 보이지만, 히데요시로부터는 "여자에게 손이 빠르다"라고 말해지고 있으며, 다수의 측실을 거느리고 있다.[36]
: 천하인의 후계자로서 정무에 통달하지 못한 점도 있어, 이치와 정을 헤아린 후에, 재정이나 책략이나 일의 경중을 헤아릴 수는 있지만, 히데요시의 의도나 정치의 뒷사정을 파악하기까지 이르지 못하고, 마사유키와 이에야스로부터는 "둔하지는 않지만,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천하를 다스리기에는 섬세하다"라고 평가받았다. 딸인 타카는, "약한 사람이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기복이 있다"라고 말했으며, 네이나 마사노리 등 도요토미 일문으로부터도, "너무 상냥한 히데쓰구가 과분한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라고 이해받고 있다.[36]
: 히로이가 태어난 것과 히데야스의 죽음에 대한 히데요시의 태도에서, 히데요시에게 자신이 방해물이 되고 있다고 불안을 느껴, 히데요시의 기대에서 벗어난 언행을 오해한 것으로 인해 더욱 궁지에 몰리고, 간파쿠의 직에 있으면서 출분해 버린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주변의 행동 하나하나가 어긋나고, 의심암귀에 지쳐버린 끝에, 고야산에서 자결에 이르게 되었다. 그 행동은 마음의 약함 때문에 온정을 함부로 했다고 히데요시의 역린을 건드렸고, 공적으로는 모반을 시도한 것으로 되어, 남겨진 처자 시녀 30명 이상이 처형되었다.[36]
: 네이의 오빠 쪽 조카. 유년 시절의 이름은 다쓰노스케. '''킨고 주나곤'''이라고 불린다.[36]
: 히로이가 탄생한 후, 고바야카와 가문으로 양자로 보내졌다.[36]
: 히데요시 사후의 도쿠가와 저택 습격 계획에서는, 히데이에와 함께 미쓰나리 편 서군에 속해 있었지만, 할당된 역할에 불만과 자신감이 없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는 이에야스와 내통하여 배신했다는 것이 가타기리 가쓰모토의 입에서 언급되었다. 이 일로 우키타 히데이에 등에게 책망받는 환영에 시달려, 21세의 젊은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36]
: 히데요시의 유자. 히데요시의 양녀의 사위. 통칭은 '''비젠 재상''', '''비젠 주나곤'''. 로주 중 한 명.[36]
: 도요토미 가문과의 혈연은 없지만 일족으로 취급받고, 도요토미 가문에 절대적인 충성을 다하는 것을 신념으로 한다.
6. 3. 미쓰나리·구도야마 편 (제32-41화)
이시다 미츠나리를 중심으로 도요토미 가문을 섬기는 무장들과, 사나다 노부시게가 구도야마에 유배되기까지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 이시다 미츠나리
: 배역: 야마모토 코지
: 도요토미 가문 가신. 관위는 '''지부 소유'''(지부노쇼). 통칭은 '''사키치'''(사키치).
: 성실한 성격으로 부정행위를 싫어하며 정론과 합리성으로 일을 추진한다. 이로 인해 생기는 사람들의 심정이나 갈등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는 냉담한 인상을 준다. 노부시게에게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으며, 같은 진영의 히데이에에게도 "어딘가 짜증나는 남자다"라고 평을 받았다.[44] 히데아키도 이에 동의한다. 실제로는 인정이 많아, 전쟁 없는 태평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도요토미 가문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주라쿠다이 낙서 사건 당시에는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까지 처형하려던 히데요시를 목숨을 걸고 막으려 했다.
: 타인을 가치가 있는지 여부로 구분하며, 노부시게에게도 처음에는 냉담한 태도를 보였으나, 노부시게가 히데요시에게 마음에 들어 한 후부터는 본심과 심정을 드러내게 된다.
: 치밀한 계획을 세워 착실하게 실행하는 것을 특기로 하는 반면, 예상 밖의 사태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전쟁 지휘나 모략에도 익숙하지 않아, 제23화와 24화의 오시 성 전투에서는 자신의 추산에 따라 공격하여 함락하는 데 실패하고, 마사유키의 도움으로 개성에 성공한다.
: 히데요시가 죽기 직전에 발한 "이에야스를 죽여라"는 말을 진의로 받아들여 이에야스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히데요시 사후에는 도쿠가와 저택 습격을 꾀하지만 자신의 신용이나 입장을 손상시켜 미수로 끝났다. 이로 인해 오히려 이에야스의 천하 야망에 불을 지른 데다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정치를 사유화하려 한다고 여겨져 자신을 적대하는 다이묘와 제장들을 늘리는 상황에 빠진다. 토시이에 사망 후에는 도요토미 은고 다이묘 7명의 습격 대상이 되면서, 사태 수습을 위해 봉행직에서 물러나 자신의 영지인 사와야마에 은거하게 된다. 그러나 이에야스를 쓰러뜨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우에스기 가게카츠, 우키타 히데이에 등 반 이에야스 파 무사를 아군으로 끌어들여, 이에야스가 우에스기 정벌을 위해 아이즈로 향한 틈을 노려 요시츠구 등과 함께 거병, 세키가하라 전투에 임했지만 패배하여 도주했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 도요토미 가문 가신. 관위는 '''형부소보'''(교부노쇼). 히데요시의 주선으로 딸 하루가 정실이 된 것으로 노부시게의 장인이 된다.
: 미츠나리의 친구이자 좋은 이해자. 미츠나리와는 대조적으로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과도하게 애착을 갖지 않는 떨어진 시점에서 사물을 판단한다. 미츠나리가 놓치기 쉬운 주변의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목적 달성을 위해 모략에 손을 대는 것도 꺼리지 않는다.
: 제28화 무렵에는 건강을 해쳐 병상에 눕게 되고, 봉행직 취임을 요청받아도 병을 이유로 사퇴하지만, 때때로 미츠나리나 노부시게의 상담에 응하며 조언을 해주고 있다.
: 미츠나리가 이에야스 습격을 꾀했을 때에는 미츠나리가 사태를 수습하지 못하고 자멸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에야스의 저택에 달려갔다. 그러나 1년 후의 우에스기 정벌 때에는 거병한 미츠나리에게 동참하여 병을 무릅쓰고 스스로 제장들에게 이에야스 토벌의 격문을 보내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전하지만, 미츠나리와 함께 패배하여 자결했다.
: 본작의 히로인으로,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 노부시게(유키무라)와 우메와 소꿉친구. 노부시게를 마음에 두고 있으며, 평생 노부시게가 있는 곳이 자신의 있는 곳이라고 선언하며 노부시게가 가는 곳에는 여러 사정으로 거의 동행하고 있다. 본래의 임무 외에도 노부시게를 돕기 위해 일하며 점차 노부시게에게 의지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제49화에서는 역사적으로는 여러 설이 있어 진위가 불분명하지만, 노부시게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여성이라고 내레이션으로 해설되었다.
: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를 드러내는 성격으로, 현대적인 말로 이야기한다.[36]。주변 사람들이 놀라거나 어이없어하는 언동이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고 노부시게에게 인식되게 되었다. 노부시게에게는 좋든 싫든 자신의 심정에 너무나 통한다고 생각되어 노부시게에게 자주 따라붙어 귀찮게 여기고 냉담한 태도를 취하지만, 그 때 두 사람의 거리낌 없는 대화가 주변에서는 사이좋게 보이기도 한다. 노부시게가 다른 여성에게 질투심을 보이기도 하지만, 우메나 하루에게는 중재하기도 한다. 차차에게는 질투심과는 별개로 그 인간성과 사람의 죽음에 대한 감각에 불가사의함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낀다.
: 에치고에서 오사카로 향하게 된 노부시게에게, 사나다 가문의 의향으로서 곁에서 돌보기 위해 동행하여 함께 오사카에 들어가 히데츠구에게 마음에 든다. 히데요시의 우마마와리가 된 노부시게에게 귀향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사카성에서 시녀로서 네에게 시중들게 되고, 노부시게에게 네 주변의 사정을 전하거나, 네나 히데츠구에게 편의를 봐주기 위한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 그 후 관백이 된 히데츠구에게 자신의 측실이 되어달라고 설득받지만, 대답을 미루는 동안, 히데요시와의 갈등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사후 연좌를 걱정한 히데츠구로부터 이야기를 취소당한다. 게다가 자살 직전의 히데츠구로부터 노부시게를 통해 키리시탄의 성모화를 받게 된다. 타마와 지기를 얻은 후 키리시탄 신앙에 끌려 세례를 결의하지만, 키리시탄 탄압으로 인한 순교를 각오하라는 타마의 질문에 단념한다. 히데요시의 사후 출가하는 네에게서 한가함을 받았지만, 타마의 시녀로 섬기면서 얻은 정보로 미츠나리의 위기를 구하는 등의 활약을 보인다. 세키가하라 전투 직전의 타마의 죽음으로 사나다 가문으로 돌아간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아버지가 마사유키를 따르기로 결정한 일도 있어, 노부시게의 구도야마 유배에도 동행한다.
: 역사상의 모델은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이자 우메의 어머니로 알려진 노부시게의 측실이 된 여성으로, 노부시게에게 마지막까지 다가가는 여성으로서 초창기부터 구상되었다. 하지만 측실이 될지 여부는 중반까지 정해지지 않았고, 키리에게 어머니로서의 측면이 생겨나면 노부시게의 카운터 파트너로서의 위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측실이 되지 않았다.[37]。미타니는 2018년에 와서 키리의 캐릭터 조형의 모델과 이름의 유래가 모두 배우 키키 키린이었다는 것을 밝혔다.[38]。이는 "어떤 캐릭터가 좋을까"를 각본 집필 전에 상담했던 나가사와로부터의 제안이었다.[38]。극 중에서 노부시게가 흰 장발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의 모습으로 변장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또한 키키의 평생 파트너였던 우치다 유야를 의식한 것이다.[38]。방송 중에는 자주 "키리"의 유래를 물었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인터뷰어는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38]。
; 타카나시 나이키
: 배역: 나카하라 타케오
: 마사유키의 측근. 키리의 아버지.
: 사나다 가문의 중신으로서 마사유키·노부유키 부자(父子)를 섬기며, 마사유키의 이루지 못한 꿈에도 함께한다. 딸이 노부시게와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웠으며, 전투 후에는 구도야마 유배에 동행한다.
; 사스케
: 배역: 후지이 타카시
: 사나다 가문에 섬기는 닌자. 작중에서 이데우라 마사스케에게 사사하게 된다. 다양한 닌술을 구사하여 노부시게의 위기를 구한다. 작중에서는 초인적인 다리 힘으로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사나다 가문의 첩보·전달 수단으로 활약, 바람의 효과음과 함께 나타나 사라진다. 이름은 "사스케"이지만, 사루토비 사스케가 아니라, 말보다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등 신체 능력이 높은 인물이 훈련을 거듭한 결과 닌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작중에서는 묘사하고 있다.[39]。마사유키나 노부시게에 대한 충성심은 강하여, 그들이 몰락해가는 상황에 억울함을 느끼고 있으며, 반대로 온건파인 노부유키가 출세한 것에 분노를 느꼈다. 키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후술할 이에야스 암살 전에 청혼하지만, 즉시 거절당한다.
; 호타 사쿠베에
: 배역: 후지모토 타카히로
: 사나다의 고향의 지사(地侍). 우메의 오빠. 여동생이 죽은 후, 우메의 유복자인 조카 스에를 기르게 된다. 싸움에서는 다네를 자주 사용하지만 오사카에서는 창으로 바꿔 사용한다.
: 시나노 하니시나 군에 영지를 가진 구니슈의 한 사람으로, 소파의 두령이기도 하다. "한 번 주종이 된 상대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 마사유키의 협력자로서 모략을 돕고 있었지만, 그의 그릇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마사유키가 시나노를 지배하는 다이묘가 되기를 원했다. 마사유키가 독립의 의지를 굳힌 것을 계기로 사나다 가문에 신종하여, 정식으로 가신이 되었다. 그 후에도 마사유키와는 대등한 말투를 사용한다. 사스케를 닌자로 키운다.
: 사나다 가문이 히데요시의 산하에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시나노나 옛 타케다령을 사나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이 있을 때마다 천하를 어지럽히도록 마사유키를 부추긴다. 미츠나리가 히데요시의 유지를 이어 마사유키에게 이에야스 암살을 의뢰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저택에 잠입하지만 발각되어, 타다카츠와의 일기토를 벌여 중상을 입는다. 그 후 사스케의 도움으로 간신히 생환하여, 마사유키 곁을 떠나 아리마에서 요양에 들어간다. 마사유키가 구도야마로 옮겨갈 때도 몸은 낫지 않아, 노부유키의 거성인 누마타 성에서 요양이 이어지고 있으며, 직접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마사유키에게 이에야스 암살에 대한 집념을 보였다. 오사카의 진에서 노부유키가 유키무라를 뒤에서 돕기 위해 직접 군량을 운반하려고 하자, 사나다의 가문을 위태롭게 한다며 반대하고, 닌술을 사용하여 억지로 노부유키를 막았다.
; 요하치
: 배역: 곤노 히로키
: 사나다의 고향의 백성. 사쿠베에와 우메와 친교가 있다.
: 싸움에 나가는 것에 불만이 있지만,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종군하여,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운다.
; 가와라 츠나이에
: 배역: 오노 야스히로
: 사나다 가문의 중신. 토리는 숙모에 해당하며, 사나다 마사유키와는 사촌에 해당한다.
: 노부유키의 측근으로 섬기는 일이 많아, 이누후세에서의 사나다 부자 3인에서의 협의 때에는, 명령을 어기고 엿본 탓에, 노부유키의 질책과 함께 물건을 던져져 이가 부러진다.
; 이시아이 미치사다
: 배역: 카토 료
: 나가쿠보 역의 명주·이시아이 신자에몬의 적자. 스에와 알게 되어 남편이 된다.
; 다메다 십용사
: 사나다 군 휘하의 병사. 숏 무비 "'''다메다 십용사'''"에 등장하고 있다. 캐스트는 "#프로모션" 참조.
나가사와 마사미가 연기한 키리는 타카나시 나이키의 딸로, 노부시게와 우메의 소꿉친구이다. 노부시게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며, 평생 노부시게가 있는 곳이 자신의 있는 곳이라고 선언하며 여러 사정으로 노부시게가 가는 곳에 거의 동행한다.[36] 제49화에서는 역사적으로 여러 설이 있어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노부시게와 가장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여성이라고 내레이션으로 해설되었다.
오사카 입성을 고민하는 노부시게에게 "자신을 원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에 응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증거를 세상에 남기지 못했다"라고 질책하며 격려하여 노부시게가 결의를 다지도록 한다. 함께 쿠도야마를 탈출하여 오사카 입성 후에는 차차의 명으로 그녀의 시녀가 된다.
오사카 여름의 진 직전 전날 밤, 유키무라로부터 만일의 사태에는 센히메를 도쿠가와 진영으로 보내라는 명을 받지만, 살아남아도 노부시게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기에 최후를 함께 하겠다고 대답한다. 유키무라로부터 처음으로 포옹과 입맞춤을 받고, 유키무라의 마지막 전투 중에 도요토미 가문의 운명을 걸고 센히메를 도쿠가와 진영으로 보냈다. 그 후의 일은 언급되지 않았다.
사나다 가문의 중신으로서 마사유키·노부유키 부자(父子)를 섬기며, 마사유키의 꿈에도 함께한다. 딸이 노부시게와 맺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2차 우에다 전투에서는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웠으며, 전투 후에는 쿠도야마 유배에 동행한다.
마사유키가 사망했을 때 순사하려 하지만 노부시게에게 제지당한다. 삭발하여 중이 되었지만 무기력한 나날을 보냈지만, 다이스케의 후견인을 부탁받아 기력을 되찾고, 함께 오사카성으로 입성한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오사카성에 침입한 막부군에 맞서 분전하지만, 마사유키의 위패를 안고 절명한다.
; 사스케
후지이 타카시가 연기한 사스케는 사나다 가문에 섬기는 닌자이다. 이데우라 마사스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39] 다양한 닌술을 구사하여 노부시게의 위기를 구한다. 작중에서는 초인적인 다리 힘으로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사나다 가문의 첩보·전달 수단으로 활약한다.[39]
오사카 여름의 진을 앞두고 유키무라의 명으로 이에야스 암살에 나서지만, 살해한 이에야스는 그림자 무사였고, 실패한다.
노부시게의 쿠도야마 행, 오사카성 입성, 마지막 전투에도 따랐으며, 최종회에서 55세임을 밝히고, 궁지에 몰린 노부시게의 카이샤쿠를 맡았다.
; 호타 사쿠베에
후지모토 타카히로가 연기한 호타 사쿠베에는 사나다 고향의 지사(地侍)이다. 우메의 오빠로, 우메가 죽은 후 조카 스에를 기른다. 싸움에서는 다네를 자주 사용했지만 오사카에서는 창으로 바꿔 사용한다.
제2차 우에다 전투에 종군하여 마사유키·노부시게 진영에서 싸운다. 우에다에 남아 있었지만, 오사카성에 입성한 노부시게의 초대에 응하여, 노부유키의 제지를 뿌리치고 오사카로 간다.
오사카의 마지막 전투에서 유키무라를 감싸 철포상을 온몸에 입으면서도 오사카성으로 돌아와, 자신이 경작한 밭 위에서 적병과 맞서 싸운 끝에, 스에와 우메를 생각하며 쓰러진다.
; 요하치
곤노 히로키가 연기한 요하치는 사나다 고향의 백성이다. 사쿠베에와 우메와 친교가 있다.
오사카성의 노부시게에게 달려온 사쿠베에를 따라 오사카성으로 들어가지만, 유키무라의 허락을 받아 부엌의 요자에몬을 돕게 된다. 도묘지 전투와 와카에·야오 전투 중에 요자에몬과 도쿠가와 간자의 밀회를 목격하여 살해당하고, 사스케에 의해 시체가 발견된다.
; 다메다 십용사
사나다 군 휘하의 병사. 숏 무비 "'''다메다 십용사'''"에 등장한다. 캐스트는 "#프로모션" 참조.
나가노현우에다시에서는 2009년부터 사나다씨 관련 소설 연재를 계기로 드라마 유치 운동을 전개했다.[144][145] 이들은 NHK에 협력을 요청하고, 사나다 가문과 인연이 있는 각지에서도 활동하여 83만 9000명의 서명을 모았다.[146][147][148]
본작의 방송이 결정되자, 우에다시는 PR 활동을 위한 담당 과를 설치하고,[149] 2016년 1월 17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우에다성 터 공원에 "신슈 우에다 사나다마루 대하 드라마관"을 개관했다.[150] 2016년 4월 24일 제34회 우에다 사나다 축제에는 사나다 마사유키 역의 쿠사카리 마사오 등 드라마 출연자들이 무사 행렬에 출연했고,[151] 제45회 사나다마루의 싸움 촬영에는 우에다 시민과 시 공무원들이 도쿠가와 병사 엑스트라로 참가했다.[152] 우에다 전철 벳쇼선에서는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를 중심으로 한 랩핑 열차를 방송 기간 동안 운행했다.[153][154][155][156]
작품 랩핑이 시공된 우에다 전철 1000계
JR 서일본와카야마선과 오사카 순환선에서도 2016년 3월부터 드라마 랩핑 열차를 운행했다.[157]오사카 전투와 오사카성을 디자인한 차량도 있었다. 난카이 전철 고야선에서는 2015년 11월부터 2000계 4량 1편성에 랩핑 열차를 운행했으며, 이는 2019년 2월까지 연장 운행되었다.
와카야마현하시모토역에서는 노부시게의 붉은 갑옷을 본뜬 장식을 하고, 역무원들은 특별 제복을 착용했다. 와카야마현와카야마시의 와카야마역 역무원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본뜬 특별 제복을 착용하기도 했다. JR 서일본은 방송 기간 동안 모바일 위치 정보 서비스를 이용한 "사나다 유키무라 체크인 랠리"를 실시하여,[158]호쿠리쿠 신칸센을 이용한 관광객 유치를 도모했다.
"신슈 우에다 사나다마루 대하 드라마관"은 당초 목표의 2배가 넘는 103만 명 이상의 입장객을 기록했고,[159][160] "구도야마·사나다 뮤지엄"도 20만 명을 돌파했으며,[161] "조슈 누마타 사나다마루전"은 15만 명을 달성했다.[162] 도쿄도 에도 도쿄 박물관 등에서 순회 개최된 "NHK 대하 드라마 특별전 사나다마루"는 3개 회장 합계 21만 명을 넘었다.[163]
오사카시 텐노지구는 2014년부터 오사카 전투 400주년 기념 사업을 전개하고, 2016년에는 "사나다 유키무라 순례 루트 맵"을 제작했다.[164]나가노시 마쓰다이 지구에서는 "신슈 마쓰다이 "사나다 대 박람회" 2016"을 개최했다.[165]
최종회를 앞두고는 NHK 나가노 방송국 등의 주최로 출연자들의 토크쇼가 6일 연속으로 개최되었다. 이와 같은 이벤트는 사나다 가문과 인연이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이시다 미쓰나리와 인연이 있는 아오모리현이나카다테촌 등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퍼블릭 뷰잉(PV)도 오사카성 등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166]
우에다시는 방송 종료 후에도 프로그램 관련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신슈 우에다 사나다마루 대하 드라마관"은 폐관 후 개조되어 2017년 4월부터 "특별 기획전 『400년의 시간을 거쳐 되살아나는 우에다성』"[169]을 개최했다.[167][168]쿠사카리는 "신슈 우에다 관광 사장"으로 임명되었고, 특별 기획전에는 드라마 의상 등이 전시되었다. 2017년 우에다 사나다 축제에는 나가노 사토미 등 드라마 출연진이 참가하여 10만 명의 방문객이 있었다.[170] 같은 해 여름에는 "우에다성 납량 패밀리 여름 축제"가 개최되었고,[171] 나가노 사토미가 "신슈 우에다 관광 프린세스"로 취임하여 "안금을 춤"을 선보였다. 11월에는 쿠사카리와 나가노가 "우에다성 단풍 축제"에 방문했다.[172][173] 야마가 신사(우에다시사나다마치나가)에서는 2017년부터 세쓰분 행사에 출연자들이 참가하고 있다.[174]
우에다시는 본작을 통해 "시의 지명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평가하며,[175] 방송으로 얻어진 경제·관광 효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2018년 우에다 사나다 축제에는 쿠사카리, 나가노 등 드라마 출연자 6명이 참가하여,[176] 드라마 관련 이벤트는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나가노현우에다시에서는 2009년부터 사나다씨 관련 소설 연재를 계기로, 시민 자원 봉사자 등이 중심이 되어 "NHK 대하 드라마 『일본 제일(히노모토이치)의 병(츠와모노) 사나다 유키무라 공』 방영 실현을 바라는 회"[144]를 결성하고 서명 운동을 벌이는 등, 드라마 유치 운동을 전개했다[145]。 이들은 NHK에 협력 요청을 하고, 사나다 가문과 인연이 있는 각지에서도 활동을 하여 83만 9000명의 서명을 모았다[146][147][148]。
본작의 방송이 결정되자, 우에다시는 PR 활동을 위한 담당 과를 설치하고[149], 2016년 1월 17일부터 2017년 1월 15일까지 우에다성 터 공원에 "신슈 우에다 사나다마루 대하 드라마관"을 개관했다[150]。 2016년 4월 24일에 개최된 제34회 우에다 사나다 축제에는 사나다 마사유키 역의 쿠사카리 마사오 등 드라마 출연자들이 무사 행렬에 출연했고[151], 제45회 사나다마루의 싸움 촬영에는 우에다 시민과 시 공무원들이 도쿠가와 병사 엑스트라로 참가했다[152]。 우에다 전철 벳쇼선에서는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를 중심으로 한 랩핑 열차를 방송 기간 동안 운행했다[153][154][155][156]。
JR 서일본와카야마선과 오사카 순환선에서도 2016년 3월부터 드라마 랩핑 열차를 운행했다[157]。 오사카 전투와 오사카성을 디자인한 차량도 있었다. 난카이 전철 고야선에서는 2015년 11월부터 2000계 4량 1편성에 랩핑 열차를 운행했으며, 이는 2019년 2월까지 연장 운행되었다.
"신슈 우에다 사나다마루 대하 드라마관"은 당초 목표의 2배가 넘는 103만 명 이상의 입장객을 기록했고[159][160], "구도야마·사나다 뮤지엄"도 20만 명을 돌파했으며[161], "조슈 누마타 사나다마루전"은 15만 명을 달성했다[162]。 도쿄도 에도 도쿄 박물관 등에서 순회 개최된 "NHK 대하 드라마 특별전 사나다마루"는 3개 회장 합계 21만 명을 넘었다[163]。
오사카시 텐노지구는 2014년부터 오사카 전투 400주년 기념 사업을 전개하고, 2016년에는 "사나다 유키무라 순례 루트 맵"을 제작했다[164]。 나가노시 마쓰다이 지구에서는 "신슈 마쓰다이 "사나다 대 박람회" 2016"을 개최했다[165]。
최종회를 앞두고는 NHK 나가노 방송국 등의 주최로 출연자들의 토크쇼가 6일 연속으로 개최되었다. 이와 같은 이벤트는 사나다 가문과 인연이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이시다 미쓰나리와 인연이 있는 아오모리현이나카다테촌 등 전국 각지에서 열렸다. 퍼블릭 뷰잉(PV)도 오사카성 등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166]。
우에다시는 방송 종료 후에도 프로그램 관련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신슈 우에다 사나다마루 대하 드라마관"은 폐관 후 개조되어 2017년 4월부터 "특별 기획전 『400년의 시간을 거쳐 되살아나는 우에다성』"[169]을 개최했다[167][168]。 쿠사카리는 "신슈 우에다 관광 사장"으로 임명되었고, 특별 기획전에는 드라마 의상 등이 전시되었다. 2017년 우에다 사나다 축제에는 나가노 사토미 등 드라마 출연진이 참가하여 10만 명의 방문객이 있었다[170]。 같은 해 여름에는 "우에다성 납량 패밀리 여름 축제"가 개최되었고[171], 나가노 사토미가 "신슈 우에다 관광 프린세스"로 취임하여 "안금을 춤"을 선보였다. 11월에는 쿠사카리와 나가노가 "우에다성 단풍 축제"에 방문했다[172][173]。 야마가 신사(우에다시사나다마치나가)에서는 2017년부터 세쓰분 행사에 출연자들이 참가하고 있다[174]。
우에다시는 본작을 통해 "시의 지명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고 평가하며[175], 방송으로 얻어진 경제·관광 효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자 한다. 2018년 우에다 사나다 축제에는 쿠사카리, 나가노 등 드라마 출연자 6명이 참가하여[176], 드라마 관련 이벤트는 더욱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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