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코소보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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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8년 코소보 독립선언은 1999년 코소보 전쟁 이후 유엔의 관할 하에 있던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사건이다. 2007년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의 중재안이 세르비아의 거부와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된 후,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독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세르비아는 독립선언을 무효라고 주장했고, 국제사법재판소는 2010년 7월 22일 독립선언이 국제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자문 의견을 제시했다. 이 선언은 국제적으로 엇갈린 반응을 보였으며, 현재까지 약 110개국이 코소보를 승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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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코소보 독립선언 | |
---|---|
지도 | |
코소보 독립 선언 | |
![]() | |
선언일 | 2008년 2월 17일 |
장소 | 프리슈티나 |
주체 | 코소보 국회 |
결과 | 코소보 공화국의 건국 |
국제 사법 재판소의 판결 | 국제법 위반 아님 |
배경 | |
이전 상태 |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 |
관련 법률 문서 | |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 |
아티사리 계획 | 아티사리 계획 |
국제 사법 재판소 자문 의견 | 코소보 독립 선언의 국제법과의 합치 |
영향 | |
국가 승인 | 코소보 국가 승인 |
세르비아의 반응 | 코소보 독립에 반대 코소보 메토히야 자치주로 간주 |
기타 | |
관련 항목 | 코소보의 역사 코소보 전쟁 코소보 공화국 2013년 브뤼셀 협정 북코소보 |
2. 역사적 배경
코소보 자치주는 1945년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내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의 자치 지역인 코소보 및 메토히야 자치 지역으로 형성되었다.[8] 처음에는 형식적인 조직이었지만, 1968년 코소보 사회주의 자치주가 되었고, 1974년에는 새로운 유고슬라비아 헌법에 따라 의회, 정부 및 자체 헌법을 가질 권리를 포함한 일부 자치 요소로 운영될 수 있게 되었다.[9][10]
1980년대 후반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민족주의가 고조되면서 민족 간 긴장이 고조되었고, 이는 결국 국가의 분권을 초래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1974년 코소보 의회에 부여된 특권을 효과적으로 종료했다. 이 조치는 다른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지도부의 비판을 받았지만, 이를 되돌릴 상위 기관은 없었다. 이에 코소보 의회는 1990년 7월 2일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선언하는 투표를 실시했으며, 이는 알바니아의 승인을 받았다.[11][12] 대규모 시위 이후 코소보 알바니아인에 대해 비상 사태와 가혹한 안보 규칙이 부과되었다. 알바니아인들은 유고슬라비아 기관을 보이콧하거나 배제되면서 교육 및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병행 국가"를 설립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동안 코소보는 대체로 조용했다. 1996년, 코소보 해방군(KLA)은 연방 보안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분쟁은 1998년 말까지 코소보가 전면전 직전에 이를 때까지 확대되었다. 1999년 1월, 나토는 유고슬라비아가 국제 평화 유지군 파견과 코소보 내 지방 정부 수립에 동의하지 않으면 군사적으로 개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평화 회담이 실패했고, 1999년 3월 24일부터 6월 11일까지 나토는 광범위한 폭격 작전을 수행했다.[13] 전쟁은 밀로셰비치가 나토 평화 유지군의 코소보 진입을 허용하고 모든 보안군을 철수하여 통치를 유엔에 이관하는 데 동의하면서 끝났다.[13][14]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끝난 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1244를 채택하여 코소보를 유엔 과도 행정부의 관할 하에 두고, 세르비아 보안군의 코소보 철수를 요구했으며, 코소보의 지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엔 주도의 정치적 절차를 구상했다.
2007년 2월, 마르티 아티사리는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 지도자들에게 초안 지위 합의 제안을 전달했는데, 이는 코소보의 '감독된 독립'을 제안하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의 초안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의 안전 보장 이사회 회원국들이 지지하는 결의안 초안은 러시아의 우려를 수용하기 위해 네 차례나 수정되었지만, 여전히 합의를 찾지 못했다.[27] 5개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로서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거부권을 가진 러시아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알바니아인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의안은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28]
2007년 말, 협상은 결국 결렬되었고, 양측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였다. 2008년 초,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이 독립을 선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2004년 코소보 폭동 5주년, 코소보 전쟁 10주년을 앞두고 있었으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였고,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된 두 국가(슬로베니아는 EU 의장국, 크로아티아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선출 회원국)가 중요한 정치적 위치에 있었다. 독립 선언은 2008년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 이후로 연기될 것이라고 널리 보도되었다.
2008년 2월 18일, 세르비아 공화국 국민 의회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을 무효로 선언했다. 이는 세르비아 공화국 헌법 재판소가 해당 행위가 유엔 헌장, 세르비아 헌법, 헬싱키 최종 의정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1244 및 바딘테르 위원회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불법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33]
접촉 그룹은 2005년에 코소보의 최종 지위가 결정될 지침 원칙을 발표했다.[39]
2. 1. 중세 시대
코소보는 역사적으로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세르비아인에게는 성지와 같은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1912년 발칸 전쟁에서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코소보를 되찾았을 때, 코소보 인구의 다수는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인이었다.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18년 12월 1일부터 코소보는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알바니아계는 소수 민족이 되었고, 중앙 정부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1919년에는 민족 권리를 주장하며 1만 명 이상의 알바니아인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중앙 정부는 이를 억압하고 세르비아인의 코소보 이주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2. 2. 유고슬라비아 시대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건국되자, 현재 코소보 지역은 연방 구성국인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인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가 되었다. 1974년에는 다른 연방 구성국과 거의 동등한 자치권을 획득했다.[103]그러나 1981년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알바니아인들이 공화국 승격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고, 세르비아인과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1989년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자치권을 대폭 축소했다.[103] 1963년 유고슬라비아 헌법에서는 연방의 자치성(자치주)으로 규정되었지만, 연방에서의 권리는 크게 제한되었다. 1968년 헌법 개정에서는 보이보디나 자치주와 함께 사회정치적 공동체로 규정된 후 알바니아어 사용 제한이 완화되었고, 1974년 헌법 개정에서는 헌법 제정, 중앙은행 설립, 연방 의회 의원 선출 등 다른 연방 구성국과 거의 같은 지위가 인정되었다. 이 1974년 헌법 하에서 알바니아인의 민족주의가 조성되었다.[104]
1968년,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에서 세르비아색이 강한 메토히야의 이름을 떼어 코소보 자치주로 개명했을 때, 공화국 승격을 요구하던 알바니아인의 데모가 폭동으로 번졌으며, 이러한 폭동은 1981년에도 나타났지만, 모두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진압되었다.[104]

1981년의 데모는 처음에는 프리슈티나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항의 활동이었지만, 유고슬라비아의 최빈 지역이었던 코소보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합류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이 사건으로 코소보에서 소수파였던 세르비아인의 권리를 둘러싸고 세르비아인의 불만도 높아졌다.[105] 이 불만을 이용하여 대두한 것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로, 1987년에 세르비아 공화국 간부회의 의장, 1990년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105]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높아지면서, 세르비아 의회는 1989년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인의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취지의 헌법 개정안을 제안했고, 그 해 안에 성립되었다. 성립에는 코소보 의회의 비준이 필요했지만, 세르비아는 군대를 배치하는 등 코소보에 군사적 압력을 가해 반 강제적으로 채택시켰다.
헌법 개정안 성립에 따라, 코소보의 경찰과 재판 제도는 세르비아의 강력한 지배 하에 놓였으며, 알바니아인 국가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거나, 알바니아어 신문을 폐쇄하는 등,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을 억압하는 법률이 세르비아 의회에서 잇따라 가결되었다. 1990년에는 자치주 정부와 의회를 해산시킴으로써 코소보의 자치권은 사실상 박탈되었다.[104]
한편, 밀로셰비치의 억압적인 대코소보 정책에 반발하여 유고슬라비아 연방 내에서는 1987년부터 민족주의가 강해졌고, 1991년에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각각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해체되었고, 무력 분쟁도 일어났다. 이듬해 시작된 보스니아에서의 무력 분쟁은 1995년까지 이어졌다.[104]
1990년 7월 2일, 코소보 자치주 의회의 알바니아인 의원들은 알바니아인을 배제하려는 세르비아의 움직임에 반발하여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고, 1991년 10월 18일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이 독립 선언은 알바니아 외에는 승인되지 않았으며, 바댕테르 위원회에서는 코소보 주민이 독립할 권리를 가진 인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상 유지의 원칙에 따라, 코소보는 연방 구성국이 아니라 자치주이므로 분리 독립할 수 없다고 했다.
2. 3. 코소보 전쟁과 독립 선언 (1990년대 ~ 2008년)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끝난 후, 코소보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에 따라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가 관리하는 자치주가 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건국 당시, 코소보는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코소보-메토히야 자치주였다가, 1974년 다른 연방 구성국과 거의 동등한 자치권을 얻었다.[103]1981년 다수 주민인 알바니아인들이 공화국 승격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고, 세르비아인과의 대립이 심화되었다. 1989년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자치권을 축소하자,[103] 이듬해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코소보 공화국 수립과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는 자치주 의회와 정부 기능을 정지하고 직접 통치를 시작했으며, 알바니아인들은 코소보 해방군을 조직해 무력 투쟁을 벌였다.[103]
1998년 세르비아의 코소보 해방군 소탕 작전으로 치안이 악화되었다. 1999년 평화 협상이 결렬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 군의 공습과 세르비아의 소탕 작전 강화로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난민이 발생했다.[103]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 1244에 따라 코소보는 유엔 임시 통치 하에 놓였다.[103]
2004년 알바니아인 폭동을 계기로 지위 확정 협상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2005년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가 코소보-세르비아 간 협상을 중재했다. 2007년 3월, 아티사리는 국제 사회 감시 하의 코소보 독립을 권고했지만,[103]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고,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 (EU)의 중재도 실패했다.[101]
2007년 2월 2일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에서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만나 코소보 문제 중재안을 제시했다. '아티사리 중재안'은 코소보에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의 독자 헌법, 치안 부대, 국제 조약 체결 및 국제 기구 가입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이는 사실상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었지만, 타디치 대통령은 거부했고, 코소보 문제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상정되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아티사리 중재안을 지지했지만, 러시아는 세르비아 동의 없는 제안을 거부하며 결의안 채택을 무산시켰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 특사를 파견해 최종 협상을 시도했지만, 6차례 협상 끝에 결렬되었다.
코소보 의회는 2008년 2월 17일 특별 회의에서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지만, 세르비아는 무효를 주장했다. 유엔 총회는 2008년 10월 8일 세르비아 요청에 따라 코소보 독립의 적법성 여부를 국제 사법 재판소 자문 의견을 통해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 독립선언이 적법하다고 결정했다. 재판관 14명 중 10명이 찬성, 4명이 반대했다. 국제 사법 재판소는 "국제법은 특정 국가 또는 지역의 독립선언을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코소보의 독립선언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자문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코소보 독립 선언은 2007년 가을 아티사리 계획 채택 협상 실패의 결과였다. 유엔 특사 마르티 아티사리가 준비한 이 계획은 코소보에 감독된 독립을 규정했다.[23] 이 계획은 유럽 연합 감독 하의 자치 정부, 소수 민족 권리 보호, 국기 및 문장 등 국가 상징 부여, 북마케도니아 공화국과의 국경 경계 획정 등을 포함했다.[24] 알바니아 협상가, 유럽 연합, 미국은 지지했지만,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즉각 거부했다.[25]
협상 진전이 없자 코소보인들은 일방적으로 코소보 공화국을 선포하기로 결정하고, 아티사리 계획 조항을 따르기로 했다.[23] 2008년 4월, 새 공화국은 소수 민족 권리 보호, 민족 대표성 보장 등을 담은 헌법을 채택해 6월 15일 발효될 예정이었다. 국기, 문장 등 국가 상징도 채택했으며, 북마케도니아 공화국과의 국경 경계 획정 회담에도 참여했다.
2. 4. 독립 이후 (2008년 ~ 현재)
2007년 2월 2일, 유엔 특사 마르티 아티사리는 코소보 문제에 관한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거부했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논의도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23] 이후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가 중재를 시도했지만, 양측은 6차례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실패했다.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무효라고 주장했다. 유엔 총회는 2008년 10월 8일 세르비아의 요청에 따라 국제 사법 재판소(ICJ)에 코소보 독립선언의 적법성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국제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23] 재판관 14명 중 10명이 찬성했지만, 이 결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
2008년 코소보 독립 선언은 마르티 아티사리가 제안한 계획에 기반을 두고 있다.[23] 이 계획에 따라 코소보는 유럽 연합의 감독 하에 자치 정부를 얻고, 헌법과 대표 정부를 통해 소수 민족의 권리를 보호해야 했다.[24] 또한 국기와 문장과 같은 국가 상징을 채택하고, 북마케도니아 공화국과의 국경 획정 회담에 참여해야 했다.[24]

코소보의 국제적 승인은 엇갈렸으며, 코소보 내부에서도 코소보 세르비아인과 코소보 알바니아인 간의 분열이 심화되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건국 이후 코소보는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였다가 1974년 자치권을 획득했다.[103] 그러나 1981년 알바니아인들의 폭동과 1989년 세르비아의 자치권 축소로 갈등이 심화되었고, 1990년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코소보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103]
1998년 코소보 전쟁이 발발했고, 1999년 평화 협상 결렬 후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군의 공습과 세르비아의 소탕 작전으로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난민이 발생했다.[103] 이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에 따라 코소보는 유엔 임시 통치 하에 놓였다.[103]
2004년 알바니아인에 의한 폭동을 계기로 지위 확정 협상이 시작되었고, 2005년 마르티 아티사리가 유엔 특사로 임명되어 협상을 중재했다.[103] 2007년 3월, 아티사리는 국제 사회의 감시 하에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는 안을 유엔에 권고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103]
코소보는 조기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국제 사회의 요청을 수용하여 2008년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 이후로 독립 선언을 연기했고, 선거 후인 2월 17일, 미국과 EU 주요국의 지지를 받아 독립을 선언했다.[101]
국제 사법 재판소는 2010년 코소보 독립 선언이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같은 해 유엔 총회에서 코소보-세르비아 간 대화를 환영하는 결의가 채택되었다.[103] 2011년부터 EU 중재 하에 세르비아와의 관계 정상화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진전과 정체가 반복되고 있다.[103]
2022년 기준 약 110개국이 코소보 독립을 승인했지만, 세르비아, 중국, 러시아 등은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유엔 가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102]
코소보 독립 이후 1992년 코소보 의회 선거에서 이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 민주 연맹이 승리하여 루고바는 코소보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세르비아의 경찰 지배와 독자적인 사회 조직이 구축되는 이중 권력 상태가 형성되었다.[104]
세르비아에 대한 폭력적 수단을 포기한다는 루고바의 방침은 보스니아 전쟁 당시에는 지지를 받았지만, 코소보 지위 문제는 1995년 이후에도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불만이 높아졌다.[104] 1996년경부터 코소보 해방군이 무력 투쟁을 시작했고, 1998년에는 정식으로 무력 투쟁을 선언했다.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갈등은 깊어졌고, 1997년 여름 무력 분쟁이 발발, 1998년 겨울 세르비아군의 코소보 해방군 소탕 작전 등으로 주민 35만 명이 그 땅을 떠났다. 1999년 2월 프랑스 랑부이에에서 평화 협상이 열렸지만, 세르비아 측의 거부로 결렬되었다.
협상 결렬 후, NATO군의 공습과 세르비아의 소탕 작전 강화로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난민이 발생했다.[103] 1999년 6월 9일 세르비아가 G8 평화안을 받아들였고, 코소보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에 따라 유엔 임시 통치 하에 들어갔다. 2001년 임시 자치 정부가 출범했고, 대통령, 의회가 설치되었다.[106]

민족 간 대립은 계속되었고, 알바니아계 난민 귀환이 정체되었으며, 알바니아인에 의한 보복적 폭력으로 20만 명 이상의 세르비아계 및 로마인이 난민이 되었다. 2004년 알바니아인에 의한 폭동은 지위 확정 협상 개시의 계기가 되었다.[103] 2005년 유엔 안보리는 코소보 지위 협상 개시를 결정했고, 마르티 아티사리를 협상 중재자로 임명했다.[103]
아티사리는 2007년 3월 26일 유엔 안보리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 국제 사회의 감시 하에 코소보 독립을 인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101] 이후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이 중재했지만, 독립을 주장하는 코소보와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세르비아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101]
코소보는 조기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국제 사회의 요청을 수용, 독립 선언을 2008년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 이후로 연기했다.[101]
2007년 11월, 2007년 코소보 의회 선거에서 하심 타치가 이끄는 코소보 민주당이 제1당으로 부상했다.
코소보 민주당과 코소보 민주연맹의 연립 정권 하에서 타치는 2008년 1월 총리에 취임, 미국과 협의하며 독립 선언 시기를 조율했다. 2008년 1월~2월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리스 타디치가 당선되었다.[101]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채택했다. 독립 선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코소보 공화국''' 수립 선언.
- 아흐티사리 안 의무 이행.
-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 존중 헌법 채택.
- 안보리 결의 1244에 따른 국제 주둔 지지.
- 유럽 연합 가입 의향.
- UN 헌장 및 헬싱키 최종 의정서 등 국제 원칙 준수.
- 동남 유럽 지역 평화와 안정 기여 표명.
- 인접국과의 우호 관계 구축 희망.
의회에서는 새로운 국기도 승인되었다.[110]


코소보에서는 정부 주최 축하 콘서트가 열렸고, 시민들은 알바니아 국기나 미국 국기를 흔들며 환영했다.[109]
세르비아는 즉각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은 평화적, 외교적, 법적 수단을 사용해 독립 선언을 무효화하겠다고 강조했다.[110]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 총리는 코소보를 가짜 국가라고 비난했다.[109] 부크 예레미치 외무장관은 코소보 독립 승인국과의 국교 단절을 시사했다.[111]
독립 선언 후,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에서는 유엔 임시 행정 기구 및 유럽 연합 관련 시설에 수류탄이 투척되었고,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는 항의 시위가 폭동으로 변해 미국 대사관에 투석하는 등 2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112] 세르비아의 항의 시위는 2월 21일에도 수십만 명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1명이 사망하고 9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113]
미트로비차에서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코소보 자치주 자치단체 통합 의회 설치 움직임을 보였으나, 유엔 임시 행정 기구와 유럽 위원회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114] 이 의회는 2013년 해산되었다.[115]
13년간의 국제적 감시 이후, 코소보 당국은 2012년 9월 10일 (단, 북코소보 제외) 지역에 대한 완전한 무감독 통제권을 얻었다. 국제 조정 그룹은 아티사리 계획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었다고 선언했다.[26] 2015년 11월 현재 유엔 코소보 임시 행정 미션은 여전히 기능하고 있지만, 그 능력은 크게 감소했다.
3. 정치적 배경
1999년 코소보 전쟁 이후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에 따라 코소보를 관할하게 되었다.
2007년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코소보 문제 중재안(아티사리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거부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미국과 유럽 연합은 중재안을 지지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안 채택은 무산되었다. 이후 6차례의 최종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되었다.
2008년 초,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이 독립을 선포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2004년 코소보 폭동 5주년, 코소보 전쟁 10주년을 앞둔 시점이었다.
2008년 2월 18일, 세르비아 공화국 국민 의회는 코소보 독립 선언을 무효로 선언했다.[33] 작가 노엘 말콤에 따르면, 세르비아가 제1차 발칸 전쟁 동안 코소보를 병합했을 당시 1903년 헌법이 여전히 유효했으며, 헌법적으로 코소보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고 주장한다.
코소보 독립 지지 국가들은 코소보가 아흐티사리 안에 따른 국제법 존중과 모든 주민의 인권 보호를 확약하고 있다는 점을 지지 이유로 들었지만, 세르비아로부터 코소보에 미치는 영토 주권이 박탈되는 법적 근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3. 1. 유엔의 역할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끝난 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1244를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코소보를 유엔 과도 행정부의 관할 하에 두고, 세르비아 보안군의 코소보 철수를 요구했으며, 코소보의 지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엔 주도의 정치적 절차를 구상했다.[13][14]2007년 2월 2일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에서 코소보 문제에 관한 중재안(아티사리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 중재안은 코소보가 독자적인 헌법과 치안 부대를 갖추고 국제 조약 체결 및 국제 기구 가입을 인정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고, 코소보 문제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상정되었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아티사리 중재안을 지지했지만,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동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며 결의안 채택이 무산되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측에 최종 협상의 기회를 주었지만, 6차례의 협상은 결국 결렬되었다.
2008년 10월 8일, 유엔 총회는 세르비아의 요청에 따라 코소보 독립선언의 적법성에 대한 국제 사법 재판소의 자문 의견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45]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46] 재판관 14명 가운데 10명이 찬성, 4명이 반대 의견을 냈다. 국제 사법 재판소는 "국제법은 특정 국가 또는 특정 지역의 독립선언을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2008년 2월 17일에 있었던)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은 국제법상 위법한 행위는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자문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2008년 2월 17일 긴급 회의를 개최했다.[97]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중립적인 성명을 발표하며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98] 벨기에, 크로아티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및 미국 등 6개국 대표는 안전 보장 이사회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99]
2월 18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가 소집되었다. 러시아는 세르비아를 지지하며 코소보 독립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판했고, 미국과 영국은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다.
코소보 독립 반대론의 근거로는 코소보에서 세르비아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하도록 규정한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1244의 존재, 당사자 간의 지위 협상이 결론나지 않은 상황에서의 일방적인 선언이라는 점이 꼽힌다. 영국은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1244의 구속력은 유엔의 잠정 통치 기간으로 한정되며, 독립의 선택지는 명시적으로 배제되지 않았다는 해석을 제시했고, 세르비아가 협상 중에 일방적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코소보를 세르비아 영토로 규정함으로써 협상의 결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반박했다.
코소보 독립 지지론의 근거로는 코소보의 특수성, 코소보의 최종적 지위는 코소보 주민의 의사로 결정된다고 규정한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1244의 존재, 코소보 분쟁으로 세르비아로의 복귀가 어려워진 점 등이 꼽힌다.
3. 2. 아티사리 계획
2007년 2월 2일,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 겸 전직 핀란드 대통령은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에서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을 만나 코소보 문제에 관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아티사리 중재안'은 코소보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독자적인 헌법과 치안 부대를 갖게 되며, 국제적인 조약 체결과 국제 기구 가입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명목상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국제 사회의 감독하에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27] 그러나 타디치 대통령은 이 중재안을 거부했으며, 코소보의 법적 지위에 관한 교섭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 상정되었다.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미국과 유럽 연합은 아티사리 중재안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지만,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는 주권 국가인 세르비아의 동의가 없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아티사리 중재안을 지지하는 결의안 채택이 무산되었다.[28] 결국 미국과 유럽 연합은 결의안 제출 자체를 단념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측에 최종 협상의 기회를 주기로 결정하고 미국, 유럽 연합,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했다. 이들 특사는 코소보의 법적 지위에 관한 양측의 입장을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고, 양측은 6차례에 걸친 최종 협상 타결을 시도했지만 결렬되었다.
3. 3. 국제사법재판소 자문 의견
2008년 10월 8일, 유엔 총회는 세르비아의 요청에 따라 코소보의 독립 선언이 적법한지에 대한 여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자문 의견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찬성 77표, 반대 6표, 기권 74표로 가결되었다.[45]2010년 7월 22일, 국제사법재판소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이 적법하다는 자문 의견을 내놓았다. 재판관 14명 가운데 10명이 찬성, 4명이 반대했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제법에는 특정 국가 또는 특정 지역의 독립 선언을 금지하는 조항이 없으므로, (2008년 2월 17일에 있었던)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 선언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밝혔다.[46]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의 자문 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4. 국제 관계
1999년 코소보 전쟁 이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에 따라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가 코소보를 관할하게 되었다. 2007년 2월 2일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코소보 문제 중재안을 제시했으나, 세르비아는 이를 거부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미국과 유럽 연합은 중재안을 지지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결의안 채택은 무산되었다. 이후 6차례의 최종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결렬되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무효라고 주장했다. 유엔 총회는 2008년 10월 8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코소보 독립선언의 적법성에 대한 자문 의견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적법하다고 결정했지만, 이 결정에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8]
코소보 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국과 유럽 연합 등은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지만,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동의 없는 독립을 반대했다. 코소보 독립은 다른 분쟁 지역에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41][40]
코소보에서는 정부 주최의 축하 콘서트가 열리는 등 독립을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109] 세르비아는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평화적, 외교적, 법적 수단을 사용하여 독립 선언을 무효화하겠다고 강조했다.[110] 세르비아에서는 항의 시위가 폭동으로 번지기도 했다.[112][113]
4. 1. 코소보 독립에 대한 국제적 승인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독립 소식을 환호하며 맞이했다.[47][48][49] 1990년 코소보 독립 선언은 알바니아만 승인했지만,[76] 2008년 코소보의 독립 선언은 111개의 외교적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인도, 중국, 러시아 등 많은 국가들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세르비아는 독립 선언 전에 독립 코소보를 승인하는 모든 국가에서 자국 대사를 소환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77] 알바니아, 캐나다, 크로아티아, 프랑스,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노르웨이, 대한민국,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영국, 미국 등 코소보를 승인한 많은 국가에 대사관을 유지하고 있다.[78]

2008년 2월 18일, 유럽 연합(EU) 의장국은 외무 장관 간의 회담 후, 회원국들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할지 여부를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다수의 EU 회원국이 코소보를 인정했지만, 키프로스, 그리스,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스페인은 인정하지 않았다.[79] 일부 스페인인(학자, 스페인 정부, 야당)은 코소보 독립이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의 독립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바스크 정부의 비교에 이의를 제기했다.[80]
코소보 독립 선언 직전, 유럽 연합은 코소보의 경찰 및 사법 분야 발전을 위해 2,000명 규모의 비군사적 법치주의 임무인 "EULEX" 배치를 승인했다.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은 소수의 EU 국가를 포함, EU 27개 회원국 모두가 EULEX 임무를 승인했다. 세르비아는 이를 점령이라고 주장하며 EU의 움직임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97]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독립 선언과 더불어 세르비아와의 우호 관계 선언을 환영하며 "우리는 아티사리 계획을 강력히 지지해 왔습니다(코소보의 독립을 의미). 코소보 정부가 코소보 내 세르비아 권리를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 세르비아가 유럽과 연대하는 것이 세르비아의 이익에 부합하며, 세르비아 국민은 미국이 친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했다.[81]
러시아는 "유엔 임무단과 코소보의 NATO 주도 병력이 프리슈티나의 자치 기관 결정을 무효화하고, 강력한 행정 조치를 포함하여 임무를 즉시 수행할 것을 기대한다"고 비난했다.[81]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서는 '코소보 독립 기념일'이 축하 행사로 열렸고,[82] 티라나 중심부의 한 광장은 이 행사를 기념하여 이름이 붙여졌다.[83]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하시 타치 코소보 총리에게 전화하여 "발칸 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84]
중화민국(대만, UN 회원국 아님) 외교부는 "코소보 국민의 독립 쟁취를 축하하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기를 바랍니다. [...] 민주주의와 자기 결정은 유엔이 지지하는 권리입니다. 중화민국은 항상 평화로운 수단을 통해 민주주의, 주권, 독립을 추구하는 주권 국가를 지지합니다."라고 밝혔다.[85] 대만의 정치적 라이벌인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의 일부인 대만은 소위 인정을 할 권리나 자격이 전혀 없다"고 빠르게 응답했다.[86]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세계 최대 이슬람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는 독립 코소보 인정을 유보했으며,[87] 필리핀은 코소보의 독립을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88][89] 두 나라는 각각 아체와 남부 민다나오를 중심으로 자국 내 이슬람 분리주의 운동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 베트남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90] 싱가포르는 상황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91] 당시 이슬람 협력 기구 의장을 맡고 있던 말레이시아는 독립 3일 만에 코소보의 주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92]
오스트레일리아의 케빈 러드 총리는 2월 18일 코소보 독립을 지지하며 "이것이 올바른 조치로 보입니다. 외교적으로 가능한 한 빨리 인정을 확대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93] 뉴질랜드의 전 헬렌 클라크 총리는 뉴질랜드가 독립 코소보를 인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94] 독립 선언 며칠 전, 캐나다에서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친독립 집회가 열렸다.[95] 2009년 11월 9일, 뉴질랜드는 공식적으로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했다.
유엔이 인정하지 않는 국가인 북키프로스의 메흐메트 알리 탈라트 대통령은 코소보의 독립을 환영하며, 키프로스 공화국의 입장에 강력히 반대하며, 이 국가가 존중받고 지원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96]
코소보 독립 선언 후, 2022년 기준 약 110개국이 코소보를 승인하고 있다.[102] 그러나 세르비아를 비롯하여 반미 감정이나 국내 소수 민족 분리 독립 운동을 안고 있는 스페인, 키프로스, 중국, 러시아 등은 승인하지 않고 있다.[102][128] 세계 은행, 국제 통화 기금, 국제 올림픽 위원회 등에는 가맹하고 있지만,[129] 유럽 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엔에는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이들 기구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130]
독립 승인국 목록(승인 순):[131] 중화민국(대만)도 2008년 2월 20일에 승인했다.[132]
연도 | 날짜 | 국가 |
---|---|---|
2008년 | 2월 17일 | 코스타리카 |
2월 18일 | 미국, 프랑스, 알바니아, 터키, 영국, 아프가니스탄 | |
2월 19일 | 오스트레일리아, 세네갈 | |
2월 20일 | 독일, 라트비아 | |
2월 21일 | 덴마크, 에스토니아,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 |
2월 22일 | 페루 | |
2월 24일 | 벨기에 | |
2월 26일 | 폴란드 | |
2월 27일 | 스위스 | |
2월 28일 | 오스트리아 | |
2월 29일 | 아일랜드 | |
3월 4일 | 스웨덴, 네덜란드 | |
3월 5일 | 아이슬란드, 슬로베니아 | |
3월 7일 | 핀란드 | |
3월 18일 | 일본, 캐나다 | |
3월 19일 | 모나코, 헝가리, 크로아티아 | |
3월 20일 | 불가리아 | |
3월 25일 | 리히텐슈타인 | |
3월 28일 | 대한민국, 노르웨이 | |
4월 17일 | 마셜 제도 | |
4월 23일 | 부르키나파소, 나우루 | |
5월 6일 | 리투아니아 | |
5월 12일 | 산마리노 | |
2008년 | 5월 21일 | 체코 |
5월 30일 | 라이베리아 | |
6월 11일 | 시에라리온 | |
8월 4일 | 콜롬비아 | |
8월 7일 | 벨리즈 | |
8월 22일 | 몰타 | |
9월 15일 | 사모아 | |
10월 7일 | 포르투갈 | |
10월 9일 |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 |
10월 14일 | 아랍에미리트 | |
10월 30일 | 말레이시아 | |
12월 5일 | 미크로네시아 연방 | |
1월 16일 | 파나마 | |
2월 19일 | 몰디브 | |
3월 6일 | 팔라우 | |
4월 7일 | 감비아 | |
2009년 | 4월 20일 | 사우디 아라비아 |
5월 14일 | 코모로 | |
5월 19일 | 바레인 | |
7월 10일 | 도미니카 공화국 | |
7월 17일 | 요르단 | |
11월 9일 | 뉴질랜드 | |
12월 14일 | 말라위 | |
4월 12일 | 에스와티니 | |
4월 28일 | 바누아투 | |
5월 8일 | 지부티 | |
5월 19일 | 소말리아 | |
9월 3일 | 온두라스 | |
2010년 | 9월 14일 | 모리타니 |
10월 29일 | 키리바시 | |
11월 18일 | 투발루 | |
1월 7일 | 카타르 | |
1월 10일 | 기니비사우 | |
2월 4일 | 오만 | |
6월 8일 | 안도라 | |
7월 22일 |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 |
8월 12일 | 기니 | |
8월 15일 | 니제르 | |
8월 18일 | 베냉 | |
8월 19일 | 세인트루시아 | |
9월 15일 | 가봉 | |
2011년 | 9월 16일 | 코트디부아르 |
10월 11일 | 쿠웨이트 | |
1월 23일 | 가나 | |
2월 10일 | 아이티 | |
3월 13일 | 상투메 프린시페 | |
4월 25일 | 브루나이 | |
6월 1일 | 차드 | |
9월 20일 | 동티모르 | |
10월 3일 | 파푸아뉴기니 | |
10월 16일 | 부룬디 | |
10월 28일 | 세인트키츠 네비스 | |
2012년 | 11월 19일 | 피지 |
12월 11일 | 도미니카 | |
12월 25일 | 파키스탄 | |
3월 16일 | 가이아나 | |
5월 29일 | 탄자니아 | |
6월 11일 | 예멘 | |
6월 26일 | 이집트 | |
6월 29일 | 엘살바도르 | |
9월 24일 | 태국 | |
9월 25일 | 리비아 | |
2월 11일 | 레소토 | |
2013년 | 5월 15일 | 통가 |
7월 2일 | 토고 | |
8월 5일 | 솔로몬 제도 | |
2014년 | 5월 18일 | 쿡 제도 |
5월 19일 | 앤티가 바부다 | |
6월 23일 | 니우에 | |
2015년 | 7월 8일 | 수리남 |
12월 1일 | 싱가포르 | |
2016년 | 2월 27일 | 방글라데시 |
11월 24일 | 마다가스카르 | |
2017년 | 2월 15일 | 바베이도스 |
2021년 | 2월 1일 | 이스라엘 |
4. 2. 코소보 독립에 대한 반대
2007년 2월 2일,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에서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에게 코소보 문제에 관한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타디치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8]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미국과 유럽 연합은 이 중재안을 지지했지만,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동의가 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사를 밝히며 결의안 채택이 무산되었다.[8]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측에 최종 협상의 기회를 주었지만, 6차례에 걸친 협상도 결렬되었다.[8] 코소보 의회는 2008년 2월 17일 특별 회의에서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지만,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이 무효임을 주장했다.[8]
유엔 총회는 2008년 10월 8일 세르비아의 요청에 따라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적법한지에 대한 여부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자문 의견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8]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적법하다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 결정에 법적 구속력은 없었다.[8]
코소보 세르비아 정교회의 주교인 아르테미예 라도사블레비치는 코소보의 독립을 "일시적인 점령 상태"라고 규정하며 분노했다.[50] 북코소보에서는 유엔 건물에 대한 수류탄 공격이 있었고,[51] 코소보의 세르비아 시위대는 북부 국경의 두 곳의 국경 검문소에 불을 질렀다.[53]
2008년 2월 18일, 세르비아 공화국 국민 의회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을 무효로 선언했다.[33] 작가 노엘 말콤에 따르면, 세르비아가 제1차 발칸 전쟁 동안 코소보를 병합했을 당시 1903년 헌법이 여전히 유효했으며, 헌법적으로 코소보는 세르비아 왕국의 일부가 되어서는 안 되었다고 주장한다.[34][35][36]
코소보의 독립 인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다수의 국가들은 이것이 선례가 되어 다른 분쟁 지역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41][40] 러시아는 "보복 계획"으로 코소보의 독립에 반대할 것을 맹세했고,[42][43] 세르비아 역시 코소보의 독립 무효를 선언하고 공화국의 국제적 승인을 막기 위한 일련의 조치로 코소보의 독립에 반대할 것을 맹세했다.[44]
2022년 시점에서는 약 110개국이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고 있지만, 세르비아를 비롯하여 중국과 러시아 등은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유엔에도 가입하지 않았다.[102]
코소보에서는 정부 주최의 축하 콘서트가 열렸으며, 알바니아 국기나 독립 지지파인 미국 국기가 흔들리는 등 시민들의 환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109]
세르비아는 즉각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은 발표한 성명에서 평화적, 외교적, 법적 수단을 사용하여 독립 선언을 무효화하겠다고 강조했다.[110]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 총리 또한 코소보를 가짜 국가라고 단정하고 독립을 지지한 미국을 비난했다.[109] 다음 날 부크 예레미치 외무장관의 회견에서는 코소보 독립 승인국과의 국교 단절까지 시사되었다.[111]
독립 선언 후,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에서는 유엔 임시 행정 기구 및 유럽 연합 관련 시설에 수류탄이 투척되었으며,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독립 선언 항의 시위가 폭동으로 변해 미국 대사관에 투석하는 등 적어도 20명이 부상당했다.[112] 세르비아의 항의 시위는 2월 21일에도 수십만 명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여기서도 시위 참가자 일부가 폭도화되어 1명이 사망하고 9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113]
4. 3. 세르비아와의 관계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끝난 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244호에 따라 코소보는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의 관할 아래 놓였다.2007년 2월 2일, 마르티 아티사리 유엔 특사는 베오그라드에서 보리스 타디치 세르비아 대통령에게 코소보 문제에 관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 '아티사리 중재안'은 코소보에 독자적인 헌법과 치안 부대를 허용하고 국제 조약 체결 및 국제 기구 가입을 인정하는 등 사실상 독립을 인정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타디치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고, 코소보 문제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로 넘어갔다.
미국과 유럽 연합은 아티사리 중재안을 지지했지만, 러시아는 세르비아의 동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결의안 채택이 무산되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측에 최종 협상 기회를 주었지만, 6차례의 협상 끝에 결국 결렬되었다.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만장일치로 승인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무효라고 주장했다. 유엔 총회는 2008년 10월 8일 세르비아의 요청에 따라 코소보 독립선언의 적법성에 대한 국제 사법 재판소의 자문 의견을 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의 독립선언이 적법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14명 중 10명이 찬성했으며, "국제법은 특정 국가 또는 지역의 독립선언을 금지하지 않기 때문에 코소보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은 국제법상 위법한 행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내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치 지역인 코소보 사회주의 자치주로 시작된 코소보는, 1974년 헌법에 따라 의회, 정부, 자체 헌법을 가질 권리를 포함한 일부 자치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9][10] 1980년대 후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코소보 의회에 부여된 특권을 종료시켰고, 이에 대응하여 코소보 의회는 1990년 7월 2일 코소바 공화국 독립을 선언했다.[11][12]
코소보 전쟁 동안 코소보는 대체로 조용했지만, 유고슬라비아 정부의 가혹함은 국제적으로 비판받았다. 1996년 코소보 해방군 (KLA)은 연방 보안군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1999년 나토의 개입으로 전쟁이 끝났다.[13][14]
전쟁 이후 약 10만 명의 세르비아인과 기타 비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를 탈출했다. 2002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277,000명의 국내 실향민을 수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15][16]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인구의 가장 큰 밀집 지역은 이바르 강 북쪽에 있지만, 약 3분의 2는 알바니아인이 지배하는 코소보 남부에 계속 거주하고 있다.[17]
2004년 3월, 코소보 알바니아인과 코소보 세르비아인 사이에 심각한 민족 간 충돌이 발생하여 27명이 사망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이 사건을 '3월 포그롬'이라고 불렀다.[19]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1244에 따라 2006년에 코소보의 최종 지위를 결정하기 위한 국제 협상이 시작되었다.
2008년 선언은 2007년 가을에 결렬된 아티사리 계획 채택에 관한 협상 실패의 결과였다. 유엔 특사인 마르티 아티사리가 준비한 이 계획은 코소보에 일종의 감독된 독립을 규정했다.[23] 코소보는 자치 정부를 얻고, 소수 민족의 권리를 보호하며, 국기와 문장과 같은 국가 상징을 부여받게 되었다.[24] 알바니아 협상가들은 아티사리 계획을 지지했고, 유럽 연합과 미국도 지지했다.[25] 그러나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이를 거부했고, 유엔 차원에서는 진전이 없었다.
협상에서 진전이 없자 코소보인들은 일방적으로 코소보 공화국을 선포하기로 결정했다.[23] 2008년 4월 중순, 새로운 공화국은 소수 민족의 권리를 보호하는 헌법을 채택했다.
2008년 코소보 독립 선언은 국제적으로 엇갈린 반응을, 국내적으로는 코소보 세르비아인 대 코소보 알바니아인의 분열을 따라 양극화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13년간의 국제적 감시 이후, 코소보 당국은 2012년 9월 10일 완전한 무감독 통제권을 얻었다. 국제 조정 그룹은 아티사리 계획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었다고 선언했다.[26]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끝난 후,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결의안 1244를 채택하여 코소보의 잠정적 지위를 위한 틀을 제공했다.
2007년 2월, 마르티 아티사리는 베오그라드와 프리슈티나 지도자들에게 초안 지위 합의 제안을 전달했는데, 이는 코소보의 '감독된 독립'을 제안하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의 초안의 기초가 되었다. 2007년 7월 초까지, 결의안 초안은 러시아의 우려를 수용하기 위해 네 차례나 수정되었지만, 합의를 찾지 못했다.[27] 5개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알바니아인 양측 모두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결의안은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28]
2007년 말, 협상은 결국 결렬되었고, 양측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였다.
2008년 2월 18일, 세르비아 공화국 국민 의회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을 무효로 선언했다. 이는 세르비아 공화국 헌법 재판소가 해당 행위가 유엔 헌장, 세르비아 헌법, 헬싱키 최종 의정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 1244 및 바딘테르 위원회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33]
접촉 그룹은 2005년에 코소보의 최종 지위가 결정될 지침 원칙을 발표했다.[39]
코소보 세르비아 정교회의 주교인 아르테미예 라도사블레비치는 코소보의 독립을 "일시적인 점령 상태"라고 규정하며 분노했다.[50]
북코소보에서 유엔 건물이 수류탄 공격을 받았다.[51] 코소보 미트로비차에서 폭발물이 터져 차량 두 대가 파손되었다.[52]
코소보의 세르비아 시위대는 코소보 북부 국경의 두 곳의 국경 검문소에 불을 질렀다.[53]
유엔 제복을 입은 일본인 기자가 북 미트로비차에서 세르비아인들에게 폭행을 당했다.[54]
2008년 3월 14일, 세르비아 시위대는 코소브스카 미트로비차 북부의 유엔 법원을 강제로 점거했다. 3월 17일, UNMIK 평화 유지군과 KFOR 군대가 점거를 종료하기 위해 법원에 진입했다. 이어진 충돌에서 우크라이나 UNMIK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양측에서 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56][57]
코소보 및 메토히야 공동체 의회는 2008년 6월 28일에 처음으로 회의를 열었다.
세르비아 정부의 공식 반응에는 2008년 2월 12일에 선제적으로 시행한 행동 계획이 포함되었는데, 여기에는 코소보를 승인하는 모든 국가에서 세르비아 대사 소환,[58] 코소보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 영장 발부,[59] 2008년 5월 11일에 새로운 선거 실시,[60][61] 코소보 분할 제안[62] 등이 포함되었다. 3월 말에 정부는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하고 2008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지지를 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64]
세르비아 총리인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는 미국을 비난하며, "세르비아인이 존재하는 한 코소보는 세르비아입니다."라고 말했다.[65] 코소보 담당 세르비아 장관인 슬로보단 사마르지치는 "가짜 국가"라고 말했다.[66] 그러나 세르비아 정부는 폭력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67]
2월 17일, 약 2,000명의 세르비아인이 베오그라드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48] 시위대는 슬로베니아 대사관의 창문을 깨부쉈다.[68] 베오그라드와 노비사드에서는 맥도날드 레스토랑이 시위대에 의해 파손되었다.[69] US 스틸의 세르비아 지사는 허위 폭탄 위협 전화를 받았다.[70]
세르비아와 유고슬라비아의 옛 왕가인 카라조르제비치 왕가의 왕실 위원회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을 거부했다.[71]
2월 21일,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50만 명 이상의 시위대가 모였다. 소수의 집단은 미국과 크로아티아 대사관을 공격했다. 한 무리가 미국 대사관에 침입하여 불을 지르고 가구를 창밖으로 던지려 했다. 대사관에는 경비 요원을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대사관 직원은 부상당하지 않았지만, 시신이 발견되었다.[72] 유엔 주재 미국 대사인 잘마이 할릴자드는 "격분"했다. 크로아티아 대사관의 피해는 덜 심각했다.[72]
터키와 영국 대사관도 공격을 받았지만, 경찰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맥도날드 내부가 파손되었다. 지역 진료소는 부상자 30명을 입원시켰다.[72]
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러한 사건에 대응하여 만장일치 성명을 발표했다.[73]
2월 22일, 세르비아 주재 미국 대사관은 비필수 인력의 임시 긴급 철수를 명령했다. 미국 대사관 대변인은 AFP에 "가족들은 베오그라드를 임시로 떠나도록 명령받았습니다. 우리는 세르비아 당국이 우리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55]
2월 23일, 세르비아 시위대가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있는 크로아티아 대사관을 공격한 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시위자 44명이 체포되었다.[74]
2008년 2월 26일, 수백 명의 보스니아계 세르비아인 시위대가 바냐 루카에서 열린 평화 시위에서 이탈하여 그곳에 있는 미국 대사관 사무실로 향했으며, 그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74]
몬테네그로에서는 2월 19일 포드고리차에서 시위가 열렸다. 세르비아 명단이 이끄는 세르비아 정당들은 2월 22일에 시위를 촉구하고 있다.[75]
1945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건국되자, 현재 코소보의 영역은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103]
1981년 알바니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켰고, 1989년 세르비아가 코소보의 자치권을 축소했다.[103] 이듬해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코소보 공화국을 선언하자, 세르비아는 자치주 의회와 정부의 기능을 정지하고 직접 통치를 시작했다.[103]
1998년 세르비아가 코소보 해방군 소탕 작전에 착수하여 상황이 악화되었다. 이듬해 평화 협상이 결렬되었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 군의 공습과 세르비아의 소탕 작전 강화로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난민이 발생했다.[103] 유엔 안보리 결의 1244에 따라 코소보는 유엔 임시 통치 하에 놓였다.[103]
2004년 알바니아인에 의한 폭동을 계기로 지위 확정 협상 개시의 기운이 높아지자, 2005년 마르티 아티사리가 코소보-세르비아 간의 협상을 중재했고, 2007년 국제 사회의 감시 하에 코소보 독립을 인정한다는 안을 유엔에 권고했지만,[103] 러시아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101]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 (EU)의 3자가 직접 중재했지만, 이 시도도 실패했다.[101]
코소보는 조기 독립 선언을 주장하면서도 국제 사회의 요청을 수용하는 형태로, 독립 선언은 이후로 연기되었고, 선거 후인 2월 17일, 코소보는 미국과 EU 주요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독립을 선언했다.[101]
국제 사법 재판소는 2010년에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는 권고적 의견을 제시했고, 같은 해 유엔 총회에서 코소보-세르비아 간의 대화 프로세스를 환영하는 결의가 채택되었다. 2011년부터는 EU의 중재 하에 관계 정상화를 위해 세르비아와의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상황은 진전과 정체를 반복하고 있다.[103]
2022년 시점에서 약 110개국이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고 있지만, 세르비아, 중국, 러시아 등은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유엔에도 가입하지 않았다.[102]
코소보 독립 선언 이후 1992년에 실시된 코소보 의회 선거에서는 이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 민주 연맹이 압승을 거두었다. 세르비아의 경찰 지배와 더불어 독자적인 사회 조직이 구축되는 이중 권력 상태가 형성되었다[104]
세르비아에 대한 폭력적 수단을 포기한다는 루고바의 기본 방침은 보스니아 전쟁 당시에는 널리 지지를 받았지만, 코소보의 지위 문제는 1995년 이후에도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이 방침에 대한 불만이 점차 높아져 갔다.[104] 1996년경부터 코소보 해방군이 무력 투쟁을 내걸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세르비아와 코소보의 갈등은 깊어졌고, 1997년 여름에는 무력 분쟁이 발발, 1998년 겨울에는 세르비아군의 코소보 해방군 소탕 작전 등으로 일련의 분쟁으로 주민 35만 명이 그 땅을 떠났다. 이듬해 1999년 2월에는 프랑스의 랑부이에에서 평화 협상이 열렸지만, 코소보 측은 동의했지만 세르비아 측의 거부로 협상은 결렬되었다.
협상 결렬 후, NATO군의 공습과 세르비아의 소탕 작전 강화로 수십만 명의 알바니아계 난민이 발생했다.[103] 최종적으로 세르비아는 6월 9일에 G8의 평화안을 받아들였고, 코소보는 유엔 안보리 결의 1244호에 따라 유엔의 임시 통치 하에 들어갔다. 2001년에는 임시 자치 정부가 출범했고,[104] 대통령, 의회가 설치되었다.[106]
그러나 민족 간의 대립은 계속되었고, 알바니아계 난민의 귀환이 정체되었으며, 알바니아인에 의한 보복적인 폭력이 발생하여, 20만 명 이상의 세르비아계 및 로마인이 난민화되었다. 특히 2004년 알바니아인에 의한 폭동은 지위 확정 협상을 위한 기운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103] 유엔 안보리는 2005년에 코소보의 지위 협상 개시를 결정했고,[104] 코소보-세르비아 간의 협상 중재자로서 마르티 아티사리를 임명했다.[103]
아티사리는 2007년 3월 26일에 유엔 안보리에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으며, 보고서에서 유일하게 실행 가능한 선택지로 국제 사회의 감시 하에 코소보 독립을 인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유엔 안보리에서는 러시아의 강력한 반대로 독립을 인정하는 안은 채택되지 않았다.[101] 그 후에도 미국, 러시아, 유럽 연합이 중재자 역할을 했으며, 아티사리 안 외에도 완전 독립, 분할안, 연합안 등이 검토되었지만, 독립을 주장하는 코소보와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세르비아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101]
코소보는 조기 독립 선언을 주장하면서도 국제 사회의 요청을 수용하는 형태로, 독립 선언은 후에 연기되었다.[101]
2007년 11월, 2007년 코소보 의회 선거가 실시되었고, 하심 타치가 이끄는 강경파의 코소보 민주당이 제1당으로 급부상했다.
코소보 민주당과 코소보 민주연맹의 연립 정권 하에서, 타치는 2008년 1월 총리에 취임하여, 미국과 협의하면서 독립 선언의 시기를 조율했다. 1월부터 2월에 걸쳐 실시된 세르비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보리스 타디치가 당선되었다.[101]
2008년 2월 17일, 코소보 의회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독립 선언을 채택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코소보 공화국'''의 수립 선언.
- 아흐티사리 안의 의무 이행.
-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존중하는 헌법의 신속한 채택.
- 안보리 결의 1244에 따른 국제 주둔의 지지.
- EU 가입 의향.
- 전후 복구 및 민주 제도 구축을 두고 UN과 협력.
- UN 헌장 및 헬싱키 최종 의정서 등 국제 원칙·국제 의무의 준수·이행.
- 동남 유럽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을 표명.
- 인접국과의 우호 관계 구축에 대한 희망.
의회에서는 새로운 국기 안도 승인되었다.[110]
코소보에서는 정부 주최의 축하 콘서트가 열렸으며, 알바니아의 국기나 미국의 국기가 흔들리는 등 시민들의 환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109]
세르비아는 즉각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며, 보리스 타디치 대통령은 평화적, 외교적, 법적 수단을 사용하여 독립 선언을 무효화하겠다고 강조했다.[110] 보이슬라프 코슈투니차 총리 또한 코소보를 가짜 국가라고 단정하고 미국을 비난했다.[109] 부크 예레미치 외무장관의 회견에서는 코소보 독립 승인국과의 국교 단절까지 시사되었다.[111]
독립 선언 후, 코소보 북부의 미트로비차에서는 유엔 임시 행정 기구 및 유럽 연합 관련 시설에 수류탄이 투척되었으며,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는 독립 선언 항의 시위가 폭동으로 변해 미국 대사관에 투석하는 등 적어도 20명이 부상당했다.[112] 세르비아의 항의 시위는 2월 21일에도 수십만 명 규모로 진행되었으며, 여기서도 시위 참가자 일부가 폭도화되어 1명이 사망하고 90명 이상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113]
미트로비차에서는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코소보 자치주 자치단체 통합 의회를 설치하려는 움직임도 보였으나, 유엔 임시 행정 기구와 유럽 위원회는 법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다.[114] 이 의회는 2013년, 유럽 연합의 중재를 받은 코소보-세르비아 협상에 따른 합의 결과 해산되었다.[115]
4. 4.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은 2008년 코소보 독립 선언 당시 코소보를 즉시 승인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 한국 정부가 세르비아와의 관계, 국제 정세 등을 고려하여 신중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5. 코소보의 현재 상황과 미래 전망
코소보는 2008년 독립 이후 정치적 안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럽 연합(EU)은 회원국들이 코소보 독립 인정 여부를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발표했으며, 다수의 EU 회원국이 코소보를 인정했다. 그러나 키프로스, 그리스,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스페인 등 일부 국가는 여전히 코소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79] 특히 스페인의 경우, 코소보 독립이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의 독립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80]
EU는 코소보의 법치주의 확립을 위해 비군사적 임무인 "EULEX"를 배치하여 경찰 및 사법 분야 발전을 지원하고 있다. EU 27개 회원국 모두 EULEX 임무를 승인했지만, 세르비아는 이를 점령으로 간주하며 EU의 움직임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97]
2010년 국제 사법 재판소는 코소보 독립 선언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1] 재판소는 선언자들이 코소보 의회 및 임시 자치 기구와 같은 임시 행정부의 틀 밖에서 코소보 국민의 대표 자격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UNMIK의 코소보의 임시 자치 정부를 위한 헌법적 틀이나 UNSCR1244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UNSCR1244는 유엔 회원국과 유엔 기구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1]
이러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코소보의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들과의 관계, 특히 세르비아와의 관계 개선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5. 1. 정치적 안정화
2008년 2월 18일, 유럽 연합(EU) 의장국은 외무 장관 간의 회담 후, 회원국들이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할지 여부를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다수의 EU 회원국이 코소보를 인정했지만, 키프로스, 그리스,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스페인은 코소보를 인정하지 않았다.[79] 일부 스페인인(학자, 스페인 정부, 또는 야당)은 코소보 독립이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의 독립으로 가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바스크 정부의 비교에 이의를 제기했다.[80]
코소보 독립 선언 직전, 유럽 연합은 코소보의 경찰 및 사법 분야를 추가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2,000명 규모의 비군사적 법치주의 임무인 "EULEX" 배치를 승인했다. 코소보의 독립을 아직 인정하지 않은 소수의 EU 국가를 포함하여 EU 27개 회원국 모두가 EULEX 임무를 승인했다. 세르비아는 이를 점령이라고 주장하며 EU의 움직임이 불법이라고 주장했다.[97]
5. 2. 미래 전망
2010년 7월 22일, 국제 사법 재판소는 판결을 내려 독립 선언이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결정했다. 재판소는 선언자들이 임시 행정부(코소보 의회 및 임시 자치 기구)의 틀 밖에서 코소보 국민의 대표 자격으로 행동했으며, 따라서 UNMIK에 의해 공포된 코소보의 임시 자치 정부를 위한 헌법적 틀이나 UNSCR1244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UNSCR1244는 유엔 회원국과 유엔 기구만을 대상으로 한다.[1] 발표에 앞서 하심 타치는 "승자나 패자는 없을 것"이며 "이것이 코소보 시민의 의지에 따라 올바른 결정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코소보는 자문 의견을 존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세르비아 대통령 보리스 타디치는 "국제 사법 재판소가 새로운 원칙을 설정하면, 여러 신생 국가를 만들고 세계의 수많은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과정을 촉발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100]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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