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인종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리아 인종은 원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인도-이란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나, 19세기 이후 언어학적 연구와 낭만주의,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인종주의적 의미가 더해졌다. 윌리엄 존스의 언어 비교 연구에서 시작된 아리아인 학설은,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 등에 의해 인도유럽어족 사용 민족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이후 아르튀르 드 고비노 등의 인종주의자들이 아리아인을 백인종의 우월한 분파로 규정하면서 왜곡되었다. 나치 독일은 아리아 인종 이데올로기를 극단적으로 왜곡하여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했으며, 현재는 과학적인 반증으로 인해 신빙성을 잃었다. 그러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 등에서 아리아인 개념이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에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악용된 사례가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유럽학 - 슬라브학
슬라브학은 슬라브 민족의 낭만적 민족주의와 범슬라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아 등장하여 슬라브족의 언어, 문학, 문화, 역사 등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 나치 용어 - 제3제국
제3제국은 역사와 사상 속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용어로, 요아킴 데 피오레의 삼시대설에서 비롯된 이상 사회, 러시아와 북유럽 사상가들의 이상 국가, 아르투르 묄러 판 덴 브루크의 제3의 제국 건설 주장을 포함하며, 나치 독일이 선전 용어로 사용했지만 그 의미와 목표는 차이가 있고, 헨리크 입센의 희곡에서도 다른 의미로 등장하므로 시대적, 사상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 나치 용어 - 제4제국
제4제국은 아르투어 묄러 판 데어 브루크의 '제3제국'에서 파생된 용어로, 네오나치의 나치 독일 부활 염원, 음모론자들의 나치 잔재 지속 주장, 유럽 평론가들의 독일 영향력 비판, 우익 포퓰리즘 경고, 그리고 대중문화 작품 속 나치의 재기 시도 등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다.
아리아 인종 | |
---|---|
개요 | |
명칭 | 아리아 인종 |
다른 명칭 | 아리안족, 아리아 민족 |
유형 | 가설적인 인종 분류 |
관련 개념 | 아리아인, 인도유럽어족, 인종주의, 나치즘 |
주요 주장 | 고대 아리아인의 후손, 우월한 인종 |
비판 | 과학적 근거 부족, 인종주의적 악용 |
기원 및 역사 | |
최초 사용 | 19세기 인종 이론 |
언어학적 기원 | 인도유럽어족 사용 민족 연결 시도 |
이론 발전 | 아서 드 고비노 등 인종주의 이론가들에 의해 발전 |
나치 독일 | 나치즘의 핵심 이념으로 악용 |
주요 특징 (주장) | |
신체적 특징 | 금발, 푸른 눈, 장신 |
정신적 특징 | 지적 능력 우수, 도덕성 고결 |
문화적 특징 | 우수한 문명 창조 능력 |
비판 및 문제점 | |
과학적 근거 부족 | 현대 유전학 연구 결과와 상반됨 |
인종주의적 악용 | 홀로코스트 등 인종 차별 및 학살 정당화에 이용 |
역사 왜곡 | 특정 민족의 우월성 주장으로 역사적 사실 왜곡 |
사회적 갈등 조장 | 인종 간의 적대감 및 갈등 심화 |
현대적 관점 | |
학계의 입장 | 인종 개념의 과학적 타당성 부정 |
사회적 영향 | 여전히 극우주의 및 신나치주의 세력에 의해 이용 |
대중 문화 | 판타지 소설 등에서 신화적 요소로 활용 |
같이 보기 |
2. 인도유럽어족의 발견과 초기 이론
18세기 후반, 인도유럽어족 연구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영국의 법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윌리엄 존스는 인도 콜카타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며, 이 언어가 라틴어, 그리스어 등 유럽의 여러 고전 언어들과 현저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였다.[13][14] 그는 1786년 아시아 학회 연설을 통해 이들 언어가 하나의 공통된 조상 언어, 즉 원시 인도유럽어(PIE)에서 갈라져 나왔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하였다.[12] 이는 순수한 언어학적 관찰에서 시작되었으나, 이후 인종 및 민족 개념과 결부되면서 '아리아인'이라는 용어와 관련된 복잡한 역사적 논쟁의 씨앗이 되었다.
2. 1. 윌리엄 존스와 인도유럽어족 가설
18세기 후반, 인도유럽어족의 가설적인 공통 원어인 원시 인도유럽어(PIE) 개념이 등장했다. 윌리엄 존스 경은 18세기 영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법학자로, 1786년 영국 식민지 하의 콜카타에 벵골 최고 법원 판사로 부임하여 산스크리트어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의 풍부한 어휘와 문법 구조에 주목하며, 이것이 그리스어, 라틴어 등 유럽 여러 언어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다.존스는 1786년 '힌두교도에 관한 세 번째 기념 강연'에서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고트어, 켈트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인도와 유럽의 여러 언어가 "어떤 공통의 근원", 즉 동일한 원시 언어(PIE)에서 파생된 후손 언어라는 학설을 제시했다. 이후 고고학자 토머스 영은 존스의 가설을 지지하며, 이 언어 집합을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명명했다.
초기 이 연구는 어디까지나 언어학적인 "언어 유사성"에 관한 문제였으며, "인종"이나 "민족"과 직접 관련된 논의는 아니었다. 그러나 원시 인도유럽어의 언어적 고향 문제는 이후 국가주의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특히 나치는 이를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으려 했다.[12] 레온 폴리아코프에 따르면, 아리아인 개념은 존스의 언어학적 발견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유럽 문명의 세속적 기원을 구성하려는 시도와 연결된다고 분석했다.[13][14]
2. 2. 언어학적 논쟁과 원시 인도유럽어
18세기 후반, 인도유럽어족의 가설적인 공통 조상 언어로서 원시 인도유럽어(PIE)가 제안되었다. 영국의 법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윌리엄 존스는 이러한 논의의 시초가 된 인물이다. 그는 1771년 ''페르시아어 문법''으로 명성을 얻었고, 이후 영국 식민지 하의 인도 콜카타에 있는 벵골 최고 법원 판사로 1786년 부임하여 산스크리트어 연구를 시작했다.존스는 캘커타에서 산스크리트어와 리그 베다를 연구하며 산스크리트어의 풍부한 어휘와 문법 구조에 주목했다. 그는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 라틴어, 고트어, 켈트어, 페르시아어 등 다른 유럽 및 아시아 언어들과 현저한 어휘적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존스는 1786년 발표한 ''힌두교도에 관한 세 번째 기념 강연''에서 이들 언어가 모두 "어떤 공통의 근원", 즉 원시 인도유럽어(PIE)에서 파생된 후손 언어라는 학설을 제시했다. 이후 고고학자 토머스 영은 존스의 학설을 지지하며 이 언어 집단을 "인도유럽어족"이라고 명명했다.
초기 연구는 어디까지나 언어학적인 "언어 유사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인종"이나 "민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그러나 원시 인도유럽어의 언어적 고향(Urheimat) 문제는 이후 고고학자와 비교 역사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하고 정치화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이 논쟁은 처음부터 쇼비니즘적 요소와 얽혀 있었으며, 일부 유럽 국가주의자들과 독재자들, 특히 나치는 원시 인도유럽어의 고향을 자신들의 국가나 지역으로 규정하고 이를 인종적 우월성의 근거로 삼으려 시도했다.[12]
레온 폴리아코프에 따르면,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윌리엄 존스가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언어 간의 관련성을 주장한 데서 언어학적으로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일부 사상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유럽 문명의 세속적인 기원을 찾으려 했으며, 이는 기존에 유럽 귀족들이 주장하던 성경적 계보와는 다른 관점이었다.[13][14]
3. '아리아인' 개념의 형성과 낭만주의, 민족주의의 영향
18세기 후반 윌리엄 존스 경 등이 산스크리트어와 여러 유럽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인도유럽어족 연구가 시작되었다.[12] 이는 언어학적 발견이었지만, 원시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던 고대 집단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들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초기부터 쇼비니즘적 민족주의와 얽히는 경향을 보였다.[12]
19세기 독일에서는 낭만주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민족'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낭만주의자들은 언어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보았고, 이러한 생각은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강력한 이념적 흐름을 형성했다. 때마침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자, 일부 사상가와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사회 진화론적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였다. 그들은 자연 선택 이론을 인종 문제에 잘못 적용하여 특정 인종, 특히 '북유럽인'이 생물학적, 정신적으로 우월하다는 사이비 과학적 주장을 펼쳤다. '열등한' 인종은 '우월한' 인종을 오염시키는 위협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낭만적 민족주의와 왜곡된 사회 진화론의 영향 속에서, 본래 고대 인도이란인들이 자신들을 '고귀한 자'라는 의미로 사용했던 문화적, 언어적 용어인 '아리아인'은 점차 그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19세기 일부 유럽 학자들은 '아리아인'을 인도유럽어족 전체, 나아가 이 언어를 사용했던 가상의 조상 민족을 지칭하는 데 사용했으며, 더 나아가 이를 특정 신체적 특징(금발, 푸른 눈 등)을 가진 '우월한 인종'으로 규정하려는 시도까지 나타났다.[19] 언어학적 개념이 생물학적 인종 개념과 혼동되면서 '아리아 인종'이라는 잘못된 관념이 형성된 것이다.[17] 이러한 왜곡된 아리아인 개념은 이후 인종차별과 우생학 사상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나치즘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악용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3. 1. '아리아인' 용어의 기원과 의미 변화

thumb
18세기 후반, 윌리엄 존스 경은 산스크리트어가 페르시아어, 고트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 다른 유럽 언어들과 유사성을 가진다는 점을 발견하고, 이들 언어가 원시 인도유럽어(PIE)라는 공통된 조상 언어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했다.[12] 이는 인도유럽어족 연구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발견이었다. 존스의 주장은 언어학에 깊이 뿌리내렸고, 일부 사상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성경적 계보가 아닌 유럽 문명의 세속적 기원을 찾으려 했다.[13][14]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원래 고대 인도이란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던 말로, 리그베다와 아베스타 같은 가장 오래된 경전에서 '고귀한'이라는 의미의 민족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이란어파 언어(산스크리트어, 이란어)를 사용했으며, 고대 인도와 이란 지역에 거주했다. 산스크리트어 'ā́rya-'와 이란어 '*arya-'는 '*ā̆rya-'라는 형태에서 파생되었지만, 인도이란 부족에게만 사용된 용어였다. 현대 학자들은 원시 인도유럽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었는지 불확실하며,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원시 인도유럽인 전체에게 적용할 근거는 없다고 본다.[16]
그러나 19세기 학자들은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인도이란인뿐만 아니라 인도유럽어족 전체, 나아가 이들 언어를 사용했던 가상의 조상 민족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독일의 막스 뮐러는 리그베다 번역 과정에서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며 이 개념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24] 그는 중앙아시아 고지대에 살던 '아리아 씨족'이 유럽과 이란, 인도로 이주하며 문명을 전파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유럽의 '북부 아리아인'은 호전적이고 국가 개념을 발명했으며, 이란과 인도의 '남부 아리아인'은 명상적이고 종교와 철학에 집중했다고 구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언어학적 개념이었던 '아리아인'은 점차 인종적 의미와 결합되기 시작했다. 일부 학자들은 원시 인도유럽인의 기원을 북유럽으로 상정하는 북유럽 가설을 주장하며, '아리아인'을 키가 크고 피부가 밝으며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북유럽 인종의 신체적 특징과 연결시켰다.[19] 이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유사과학적 발상이었으나, 점차 '아리아인'은 특정 인종 집단을 의미하는 용어로 변질되었다. 고고학자 구스타프 코시나는 고고학적 문화와 인종을 동일시하는 이론을 통해 이러한 인종주의적 해석을 뒷받침하려 했으며, 그의 이론은 이후 나치즘에 영향을 주었다.[18][19]
프랑스 작가 아르튀르 드 고비노는 『인종 불평등론』(1853-55년)에서 인류를 백색, 황색, 흑색 인종으로 나누고 백색 인종, 특히 아리아인이 가장 우월하며 모든 주요 문명을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아리아인 이론은 영국에서는 인도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독일에서는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데 이용되었다. 특히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고비노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아리아인 중에서도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했고, 그의 저서는 독일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훗날 나치즘의 이데올로기적 기반 중 하나가 되었다. 20세기 초 독일에서는 '아리아 인종'이 독일 민족과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며 이상적인 민족상으로 여겨졌다[79].
막스 뮐러는 말년에 자신의 초기 이론에 근거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언어 집단과 인종 집단을 혼동하는 것을 강력히 비판했다.[26] 그는 "아리아 인종, 아리아 혈통, 아리아 눈, 머리카락에 대해 말하는 민족학자는 언어학자로서 큰 죄인"이라고까지 말했다.[27] 현대 학자들 역시 리그베다 등 고대 문헌에 나타난 '아리아'와 '다사(dasyu)'의 대립이 인종적 차이가 아닌 문화적, 종교적, 언어적 차이(질서와 혼돈, 빛과 어둠 등)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28] 베다 문헌은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지 않으며, 역사적으로 인도이란 지역에 거주했던 아리아인들이 금발이나 푸른 눈을 가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30]
하지만 한때 '아리아인'을 특정 인종 집단으로 규정했던 유사과학적 인종 이론은 19세기 서구 사회에 널리 퍼졌으며, 여러 백과사전과 교과서 등을 통해 재생산되었다.[22][32][33][34] 비록 학계에서는 폐기된 이론이지만, '아리아인'이라는 용어에 덧씌워진 인종주의적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 인도유럽어 연구 학자들은 '아리아인' 또는 '인도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본래의 의미인 인도이란어파 또는 인도아리아어파 언어 집단을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한다.
3. 2. 낭만주의와 민족주의의 결합
18세기 후반 윌리엄 존스 경이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인도유럽어족 연구와 원시 인도유럽어 재구성의 기초가 마련되었다.[13][14] 이는 이후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 언어학적 배경이 되었다.19세기 독일에서는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독일어와 민족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낭만주의자들은 언어를 국가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로 보았고, 마침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자 이를 사회 진화론적으로 왜곡하여 받아들였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자연 선택 이론을 인종 문제에 잘못 적용하여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열등한' 인종은 '우월한' 인종의 특성을 오염시키는 위협으로 간주되었으며, 특히 '북유럽인'의 생물학적, 정신적, 언어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사이비 과학적 인종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대 원시 인도유럽어 사용자들은 '순수한' 민족의 조상으로 이상화되었다.[15]
독일 출신의 비교 언어학자 막스 뮐러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아리아인' 개념을 널리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24] 그는 고대 인도이란인들이 자신들을 '고귀한 자'라는 의미의 '아리아(ā́rya|아리아sa)'라고 칭한 것에 주목하여, 인도유럽어족 전체를 '아리아인'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뮐러는 초기에 아리아인이 중앙아시아 고원 지대에 살다가 유럽과 이란, 인도로 이주하며 문명을 전파했다는 가설을 제시했으며, 유럽의 북부 아리아인과 이란 및 인도의 남부 아리아인의 기질적 차이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뮐러 자신은 나중에 언어학적 분류가 인종적 의미로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며 언어와 인종을 동일시하는 것에 강력히 반대했다.[26] 그는 1888년 "아리아 인종, 아리아 혈통, 아리아 눈, 머리카락에 대해 말하는 민족학자는 언어학자로서 큰 죄인이다"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이론이 인종차별적으로 해석되는 것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27][26][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명의 조상'으로서의 아리아인이라는 이미지는 이미 널리 퍼져나가 인종주의적 해석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left
19세기 유럽에서는 '아리아인' 개념이 점차 언어 집단이 아닌 생물학적 인종 집단으로 왜곡되었다.[17][31] 프랑스 작가 아르튀르 드 고비노는 『인종 불평등론』(1853-55년)에서 인류를 백인, 황인, 흑인으로 나누고, 백인이 가장 우수하며 그중에서도 아리아인이 문명의 창조자라고 주장하며 노골적인 인종주의 이론의 기초를 놓았다.
고비노의 이론은 특히 영국과 독일에서 주목받았지만, 그 수용 방식은 달랐다. 영국에서는 인도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이용되었다. 즉, 인도의 지배 계급이었던 힌두교 상층 카스트가 아리아인의 후예이므로, 같은 아리아인인 영국인이 인도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독일에서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인물들이 아리아인 개념을 받아들여 독일 민족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아리아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독일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데 사용했다.
바그너의 사위이자 영국 태생의 독일 사상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19세기의 기초』(1899년)에서 아리아 인종 중에서도 게르만족이 가장 우수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인종주의 이론을 더욱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이 책은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의 사상은 훗날 히틀러와 나치즘 이데올로기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79] 20세기 초 독일 사회에 널리 퍼진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고귀하고 강인한 아리아인'이라는 신화적 이미지는 독일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결국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79]
4. 인종 이론으로의 변질과 아리아 인종 가설
18세기 후반 윌리엄 존스 경 등이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언어들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면서 인도유럽어족과 그 조상 언어인 원시 인도유럽어 (PIE)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13][14] 이는 순수하게 언어학적인 가설이었으나, 19세기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낭만주의와 결합하며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언어를 민족 정체성의 핵심으로 보았고, 고대 게르만족의 '순수한' 유산을 찾으려는 열망을 가졌다.
여기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발표 이후 진화론이 잘못 이해되고 적용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다윈주의의 자연 선택 개념은 언어 집단에 대한 우열 이론으로 왜곡되었고,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사이비 과학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다.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이러한 사회 진화론적 해석을 바탕으로, 원시 인도유럽어를 사용했던 고대인들을 '아리아인'이라는 특정 인종 집단과 동일시하고, 이들이 북유럽 기원의 우월한 인종(북유럽 인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19]
원래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고대 인도이란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며 '고귀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민족문화적 용어였다. 그러나 19세기 학자들은 이 용어를 인도유럽어족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이를 특정 인종적 특성(금발, 푸른 눈 등)과 연결시켰다. 비교 언어학자 막스 뮐러는 초기에 '아리아 인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러한 혼동에 영향을 미쳤으나, 훗날 언어와 인종을 동일시하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며 자신의 초기 입장을 번복했다.[26][27] 그는 "아리아 인종, 아리아 혈통, 아리아 눈, 머리카락에 대해 말하는 민족학자는 언어학자로서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경고했다.[27]
하지만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리아인' 개념은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프랑스의 아르튀르 드 고비노는 『인류의 인종적 불평등에 관한 시론』(1853-55)에서 아리아인을 가장 우월한 백인 인종으로 규정하고 문명의 흥망성쇠를 인종적 순수성과 혼혈 문제로 설명했다. 영국 태생의 독일 작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19세기의 기초』(1899)에서 아리아 인종, 특히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반유대주의적 세계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왜곡된 아리아 인종 가설은 20세기 초 독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렸고, 결국 나치즘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발전하여 끔찍한 비극을 낳는 배경이 되었다.[79]
4. 1. 인종적 의미의 '아리아인'
'아리아인'에 대한 인종적 해석은 현재 신뢰성을 잃은 문화사적 고고학 이론가 구스타프 코시나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는 고고학적 문화와 고고학적 인종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18] 코시나에 따르면, 한 지역에서 문화가 지속되는 것은 동일한 '인종'이 계속 거주했음을 의미하며, 새로운 문화가 기존 문화와 유사하다면 이는 고향에서 온 토착 부족이 이주했음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코시나는 정착 고고학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고, 제3제국을 위해 독일 고고학을 민족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북유럽 가설은 카를 펜카를 포함한 독일 민족주의자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훗날 나치가 인종차별적 국가 정책과 대량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19] 코시나는 원시 인도유럽인을 끈무늬 토기 문화와 동일시하고, 원시 인도유럽어의 기원지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으로 설정했다. 그는 문화의 확산주의 모델을 주장하며 게르만족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했고, 로마인(로마 제국)과 프랑스인을 문화 파괴자로 묘사했다.[20] 코시나의 이론은 방법론의 모호함과 게르만족 우수 인종 이데올로기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심한 비판을 받았다.[21]비교 언어학 연구로 유명한 막스 뮐러는 저술에서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했으며,[24] 영어권에서 '아리아 인종'을 언급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49년부터 1874년까지 《리그베다》를 편집하면서 베다 구절에 대한 인종적 해석을 시도했다. 뮐러는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 살았던 작은 '아리아 씨족'이 고대 인도유럽어의 조상 언어를 사용했으며, 이후 유럽과 이란으로 나뉘었다고 가정했다. 이란으로 간 집단은 다시 분열하여 일부가 북서부 인도를 침략했고, 그곳에 살던 스키타이 계통의 어두운 피부를 가진 ''다사''를 정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의 북부 아리아인은 활기차고 호전적이며 국가 개념을 발명했고, 이란과 인도의 남부 아리아인은 수동적이고 명상적이며 종교와 철학에 집중했다고 구분했다.
뮐러는 초기에 "아리아 인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언어적 범주와 인종적 범주를 혼동하는 것에 반대했다.[26] 그는 이러한 분류가 인종차별적 용어로 사용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25] 1888년 옥스퍼드 강연에서는 "[언어] 과학과 인간 과학은 서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 아리아 혈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두개골 형상 문법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잘못된 일"이라고 비판했고,[26] 저서 《단어의 전기와 아리아의 고향》(1888)에서는 "아리아 인종, 아리아 혈통, 아리아 눈, 머리카락에 대해 말하는 민족학자는 언어학자로서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적었다.[27]
19세기 유럽 학자들은 베다 구절을 피부가 밝은 인도-아리아인 침입자와 피부가 어두운 원주민 간의 전투로 해석했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러한 해석이 산스크리트어 텍스트를 잘못 읽은 결과라고 본다.[28] 《리그 베다》에서 ''아리아''와 ''다슈''의 대립은 인종적 구분이 아니라 "무질서, 혼돈,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질서, 순수, 선함, 빛"이라는 개념,[28] 또는 "어둡고 밝은 세상"의 대조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다른 맥락에서는 역사적 베다교를 받아들여 베다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30]
그러나 이 시기, 특히 다윈주의 이론의 영향을 받은 인류학자와 비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리아인'을 민족 언어적 범주가 아닌 "신체적-유전적 종"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31] 당시의 백과사전, 역사서, 민족지학 및 인류학 교과서들(예: 마이어스 콘버세이션-렉시콘, 브로크하우스 백과사전, 노르딕 파밀리에보크, H. G. 웰스의 《세계사 단편》, 존 클라크 리드패스의 《인류의 위대한 인종》 등)은 인종 분류, 사회 진화론, 과학적 인종주의와 같은 현재는 유사 과학으로 여겨지는 개념에 기반하여 유럽 중심의 인종 구성을 강화하고 인간 인종을 분류했다.[22][32][33][34]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동안 아르튀르 드 고비노, 테오도어 포에셰,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폴 브로카, 카를 펜카, 한스 귄터와 같은 인종차별주의자 및 반유대주의 작가들에 의해 과학적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는 노르디시즘과 아리아주의와 같은 이념으로 이어졌다. 이 시점에서 '아리아인'의 의미는 원래의 지리적, 언어적 의미(인도이란어파)에서 벗어나 확장되었다. 인종 간 불평등과 "우월한 인종"이라는 개념은 당시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졌고, 인종은 생물학적 특성을 넘어 "민족성 및 민족 문화"를 의미하게 되었다.
1853년, 아르튀르 드 고비노는 ''인류의 인종적 불평등에 관한 시론''에서 아리아인을 원래 백인이며 유일하게 문명화된 인종으로 규정하고, 문화적 쇠퇴의 원인을 혼혈과 연결 지었다. 그는 아리아인이 인류의 우월한 분파이며 유럽의 인종이 아리아인이라고 주장했고, 이들을 노아의 아들들과 연관시켜 우월성을 강조하며 비(非)아리아인을 셈족 인종의 침입으로 묘사했다. 그에 따르면, 북유럽인(아리아인)이 전 세계로 이주하여 주요 문명을 건설했지만,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진 원주민과의 혼혈을 통해 약화되어 고대 아리아 문명이 점차 쇠퇴했다는 것이다.
1878년, 독일계 미국인 인류학자 테오도어 포에셰는 아리아인이 밝은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금발임을 증명하려는 연구를 발표했다.
1899년,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은 "가장 중요한 원(原)나치주의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는 ''19세기의 기초''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우월한 독일-아리아 인종과 파괴적인 유대-셈족 인종 간의 실존적 투쟁을 이론화했다.
1916년, 매디슨 그랜트는 ''위대한 인종의 멸망''을 출판하여 미국 내에서 영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독일계의 초기 13개 식민지 정착민 후손인 "아리아인"과, 그가 "열등 인종"으로 분류한 폴란드인, 체코인, 유대인, 이탈리아인 등 이민자들 간의 혼혈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아리아 인종 이론이 특히 독일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오토 슈라더, 루돌프 폰 예링, 민족학자 로버트 하트만 등 일부 학자들은 이에 반대하며 아리아인 개념을 인류학에서 폐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36] 이 용어는 헬레나 블라바츠키의 신지학이나 아리오소피와 같은 당시의 다양한 오컬트주의 및 비밀 이념 체계에서도 채택되었다.
4. 2. 아르튀르 드 고비노와 인종 불평등론
left19세기 동안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인종차별주의자와 반유대주의 작가들에 의해 과학적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데 사용되었다.[15]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이라는 언어학적 개념을 왜곡하여 특정 인종 집단, 특히 북유럽인을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노르디시즘과 같은 이념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인 아르튀르 드 고비노는 이러한 인종주의 이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중 하나이다.
고비노는 1853년부터 1855년에 걸쳐 출판한 그의 주요 저서 『인류의 인종적 불평등에 관한 시론』(Essai sur l'inégalité des races humaines프랑스어)에서 인종 불평등 이론을 체계화했다. 그는 이 책에서 인류를 크게 백색 인종, 황색 인종, 흑색 인종으로 나누고, 각 인종에 대해 차별적인 특성을 부여했다. 고비노는 흑색 인종이 지능이 낮고 동물적이며, 황색 인종은 무감동하고 공리적인 반면, 백색 인종은 높은 지성과 명예심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고비노는 백색 인종 중에서도 아리아인을 가장 우월한 존재로 규정하고, 세계의 주요 문명은 모두 아리아인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했다.[35] 그는 아리아인을 인류의 우월한 분파로 간주하며,[36] 유럽의 지배 계층을 아리아인과 동일시했다. 또한, 고비노는 문명의 쇠퇴 원인을 인종 간의 혼혈에서 찾았다. 그에 따르면, 북유럽인과 같은 순수한 아리아인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 문명을 건설했지만, 이후 그들이 '열등하다'고 규정한 원주민과의 혼혈이 진행되면서 아리아인의 우수한 특성이 희석되고 문명이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고비노의 이러한 인종주의적 이론은 당시 유럽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영국과 독일에서 주목받았다. 그의 아리아인 우월 사상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과 같은 후대의 인종 이론가들에게 계승되었고, 궁극적으로 나치즘의 인종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다. 고비노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사이비 과학에 기반한 것이었지만, 그의 이론은 19세기와 20세기 초 인종주의적 편견을 확산시키고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
4. 3.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과 범게르만주의
아르튀르 드 고비노의 아리아 인종 우월론은 영국 태생의 독일 작가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체임벌린은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사위이기도 하다.1899년, 체임벌린은 그의 대표 저서인 ''The Foundations of the Nineteenth Century|19세기의 기초영어''를 출판했다. 이 책은 "가장 중요한 원(原)나치주의 텍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독일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체임벌린은 이 책에서 고비노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아리아 인종 중에서도 특히 게르만족이 가장 순수하고 우수한 민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역사를 우월한 '독일-아리아 인종'과 열등하고 파괴적인 '유대-셈족 인종' 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묘사하며, 인종 간의 대립을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은 범게르만주의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체임벌린의 이론은 아리아 인종이라는 개념을 독일 민족주의와 결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훗날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즘의 인종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79]. 그의 주장은 당시 독일 사회에 널리 퍼져, '아리아 인종'이라는 신화가 독일 민족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79].
5. 나치즘과 아리아 인종 이데올로기의 극단화
독일의 낭만주의적 민족주의는 사회 진화론과 잘못 결합되면서 특정 인종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왜곡된 인종 이데올로기의 토대를 마련했다. 19세기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성향의 작가들, 예를 들어 아르튀르 드 고비노나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등은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본래의 언어학적 의미에서 벗어나 과학적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데 사용했다.
나치즘은 이러한 사상을 극단적으로 채택하고 왜곡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아리아인을 노르드 인종과 동일시하며 '우수 인종'(Herrenrasse|de)으로 규정하고,[50][48][49] 구스타프 코시나 등의 이론을 악용하고 아넨에르베를 통해 역사 수정주의를 퍼뜨리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선전했다.[19][52]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아리아인을 '문화 창조자'로, 유대인을 '문화 파괴자'로 규정하며 인종적 순수성을 국가 목표로 삼았다.
나치 독일은 이 왜곡된 아리아 인종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인종차별 정책을 시행했다. 유대인, 로마인, 슬라브족 등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하위 인간'(Untermensch|de)으로 낙인찍고,[37][38][39] 뉘른베르크법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분리하고 박해했다. 유대인의 경제 활동을 배제하는 '아리아화' 정책이 추진되었고, '열등하다'고 간주된 이들은 우생학적 조치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나치의 아리아 인종 이데올로기의 극단화는 '살 가치가 없는 삶'으로 규정된 이들에 대한 조직적인 살해와 홀로코스트라는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나치는 아리아 인종 신념을 이용하여 수백만 명의 유대인과 다른 소수 민족 및 집단에 대한 잔혹한 박해와 학살을 정당화했다.
5. 1. 나치의 인종 정책과 '열등 인종'
나치 독일의 인종 정책은 아돌프 히틀러의 인종차별 교리에 기반하여 유대인, 로마인, 슬라브족 (폴란드인, 체코인, 러시아인, 세르비아인 포함) 등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하위 인간"(Untermenschde)으로 규정했다.[37][38][39] 이 용어는 아리아인이 아닌 조상을 가진 혼혈인 미슐링(Mischlingde)과 흑인에게도 적용되었다.[40][41]나치는 아리아인을 "독일 혈통과 부족적으로 관련이 있고 ''민족''의 후손"으로 정의하며, 모든 비유대계 유럽인을 포함하는 기존의 넓은 정의를 거부했다.[42][43] 나치는 독일 제국 시민권을 갖지 않은 "민족 독일인"을 독일계 민족(Volksdeutschede)이라고 불렀으며,[44] 이들은 독일 인종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된 유럽 내 소수 민족 집단으로 간주되었다.[42] 나치의 민족 공동체(Volksgemeinschaftde) 개념은 인종적으로 독일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만을 통합했으며, 이 공동체의 구성원만이 아리아인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45][46] SS는 유럽 전역의 ''독일계 민족'' 중에서 "우수 인종"을 만들 구성원을 선발할 수 있다고 보았다.[47]
나치 인종 이론은 노르드 민족을 "가장 순수한 아리아인의 혈통"이자 "우수 인종"(Herrenrassede)으로 간주했다.[50] 이들은 키가 크고, 흰 피부, 푸른 눈, 좁고 곧은 코, 장두형 두개골, 튀어나온 턱, 금발과 같은 신체적 특징으로 식별되었으며, 스칸디나비아인, 게르만족, 영국인, 프랑스인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고 여겨졌다.[48][49] 나치 인류학자 한스 귄터는 노르드족이 북유럽에서 기원하여 정복을 통해 퍼져나갔다는 고비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노르디시즘을 강조했으며, 그의 이론은 히틀러의 찬사를 받고 나치 우생학 정책과 과학적 인종차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54]
나치 정권은 1935년 뉘른베르크법과 같은 반유대인 법률을 도입하고 아리아인 증명을 요구하며 유대인을 체계적으로 차별했다.[56] 교육 과정에서도 인간 종족 진화에 대한 사회 다윈주의적 해석을 강조하며 노르드족을 고도로 진화한 인종으로, 다른 인종들을 열등하게 묘사했다. 소위 아리아인의 특성(운동 능력, 금발, 파란 눈 등)을 위한 선택적 육종이 장려되었고, "열등한 인종"이나 신체 장애,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삶의 가치가 없는 삶"(lebensunwertes Lebende)으로 간주되어 많은 이들이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었다.[55]
나치의 우생학적 단종 및 절멸 프로그램은 "아리아인 우월 인종"을 만들고 유대인, 슬라브인, 폴란드인, 로마인, 동성애자, 장애인 등 "열등한 비아리아인"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유대인은 셈족의 가장 높은 발현으로 여겨졌으며,[57] 게토에 격리된 후 최종 해결이라는 이름 아래 절멸 정책의 대상이 되었다.[58]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59] 570만 명의 슬라브인,[60] 180만~300만 명의 폴란드인,[61] 27만 명의 장애인을[62] 포함한 수많은 다른 희생자들이 집단 총격, 가스실, 가스 차량, 강제 수용소 등에서 체계적으로 살해되었다.[63] ''독일계 민족''으로 간주된 이들은 지역 SS 조직에 가입하여 나치가 후원한 포그롬과 유대인 재산 몰수에 참여하기도 했다.[44][64] 나치는 아리아인 인종 신념을 이용하여 희생자들을 "아리아인의 반대자이자 영원한 적"으로 묘사하며 박해를 정당화했다.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아리아인(특히 게르만 민족)을 유일한 "문화 창조자"로, 유대인을 그 반대편의 "문화 파괴자"로 규정했다. 그는 게르만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것을 국가의 존재 이유로 보았다. 나치 독일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반유대주의에 인종주의를 결합한 "반셈족주의"를 이념적 기반으로 삼았으며, 유대인을 경제 활동에서 배제하는 "탈유대화"와 유대인 자산을 독일인에게 넘기는 "아리아화" 정책을 추진했다. 언론 분야에서도 유대인과 좌익 성향 언론인을 숙청하고, 언론인 자격 규정에서 비아리아인을 배제했다. 히틀러의 생존권(레벤스라움) 사상과 아리아인 우월론은 제2차 세계 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이념적 근거가 되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절멸을 위한 강제 수용소와는 반대로, 아리아인 증식을 목적으로 레벤스보른이라는 시설을 운영했다.[81] 이곳에서는 독일 미혼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고 보호했으며, 점령지에서 '우수한 인종적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을 납치해 와 독일화 교육을 시켰다.[81] 또한, 하인리히 힘러 등 일부 나치 고위 관료는 아리아인이 아틀란티스인의 후예라고 믿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한편, 많은 나치 당원이 인도인을 아리아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일부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나치 독일을 지지하기도 했다. 시크교도를 포함한 일부 인도인들은 나치 독일군에 복무했으며, 우수 병사로 인정받아 친위대원이 되기도 했다.[82]
5. 2. 아리아 인종의 정의와 '독일 혈통'
나치 독일의 인종 정책, 1935년 뉘른베르크법,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의 인종차별 교리는 유대인, 로마인, 슬라브족 (폴란드인, 체코인, 러시아인, 세르비아인 포함)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하위 인간"(Untermensch|운터멘슈de)으로 간주했다.[37][38][39] 이 용어는 또한 "''미슐링''"(유대인 등 아리아인이 아닌 조상을 가진 혼혈인)과 흑인에게도 적용되었다.[40][41]나치 정권은 아리아인의 정의를 단순히 모든 비유대계 유럽인으로 포괄하는 것을 거부했다. 1933년 인구 및 인종 정책에 관한 전문가 위원회는 나치 인종 정책의 방향을 계획하기 위해 알프레트 플뢰츠, 프리츠 티센, 에른스트 루딘과 같은 주요 나치 지식인들을 소집했다. 이 위원회는 아리아인을 "독일 혈통과 부족적으로 관련이 있고 ''민족''의 후손"으로 정의했다.[42][43] 나치는 독일 제국 시민권을 갖지 않은 "민족 독일인"을 지칭하기 위해 "''독일계 민족''(Volksdeutsche|폴크스도이체d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44] ''독일계 민족''은 더 나아가, 폐쇄적인 부족 정착지에 거주하며 독일 인종 공동체와 밀접하게 관련된 유럽의 ''민족 집단''(Volksgruppen|폴크스그루펜de)—한 국가 내의 소수 민족—의 후손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42] "''민족 공동체''(Volksgemeinschaft|폴크스게마인샤프트de)" 개념은 독일 제국 외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인종적으로 민족 독일인을 통합하려 했으며, 이 인종 공동체의 구성원만이 아리아인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5][46]
SS 구성원은 유럽 전역의 ''독일계 민족'' 집단 중에서 "우수 인종"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들로 간주되어 선발될 수 있었다.[47] 나치당은 중앙 및 동유럽에서 ''독일계 민족''으로 간주되는 민족 독일인 소수 민족들 사이에 나치 선전을 유포하기 위해 NSDAP/AO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나치의 인종 이론은 "가장 순수한 아리아인의 혈통"을 가진 이들을 노르드 민족으로 간주했으며, 이들은 키가 크고, 흰 피부, 푸른 눈, 좁고 곧은 코, 장두형 두개골, 튀어나온 턱, 금발과 같은 신체 인류학적 특징으로 식별되었다. 여기에는 스칸디나비아인, 게르만족, 영국인 및 프랑스인이 포함되며,[48][49] 노르드인과 게르만 민족이 "우수 인종"(Herrenrasse|헤렌라세de)이라고 주장했다.[50] 그러나 최근의 고고 유전학 연구는 이러한 생각과 모순되며, 원시 인도유럽어 사용 민족은 갈색 눈과 머리카락, 중간 피부색을 가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51]
한스 F. K. 귄터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나치 인류학자로 여겨졌다. 귄터의 노르디시즘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글은 고비노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는데, 고비노는 노르드족이 북유럽에서 기원하여 정복을 통해 퍼져나갔다고 믿었다. 귄터의 이론은 나치 우생학 정책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과학적 인종차별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귄터의 이론은 히틀러의 찬사를 받았으며, 히틀러는 나중에 그의 저서를 나치 당원을 위한 권장 도서 목록에 포함시켰다.[54]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 인종을 대략 세 단계로 나누었으며, 최상위는 아리아인이며, 그중에서도 혼혈되지 않은 순수 민족인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아리아인, 그중에서도 게르만 민족은 유일하게 문화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하여 "문화 창조자"라고 불렀다. 반면, 유대인을 이와 정반대되는 존재로 보고 "문화 파괴자"로 규정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을 순수하게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치 독일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반유대주의(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했다는 믿음)와 인종주의가 결합된 "반셈족주의"를 바탕으로 정치적, 경제적 이념을 형성했으며, 이는 "아리아-북방 인종"에 대한 유대 자본주의의 위협이라는 강박 관념으로 나타났다. 유대인을 경제 활동에서 배제하는 "탈유대화"와 함께 유대인 자산을 독일인에게 넘겨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리아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나치 정권 하에서 유대인과 좌익 성향의 언론인은 숙청되었으며, 나아가 언론인을 국가 자격으로 규정하고 그 자격 요건에서 비아리아인을 배제했다. 정치학자 이시이 간타로는 히틀러가 『나의 투쟁』에서 언급한 생존권(Lebensraum|레벤스라움de) 사상과 게르만 민족 중심의 아리아인 우월론에 근거하여 제2차 세계 대전과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었다고 지적했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가 그렸던, 아리아인 외의 민족을 노예화하고 독일인이 지배자로 군림하는 세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 절멸을 위해 강제 수용소를 운영했지만, 이와 반대로 아리아인 증식을 위해 레벤스보른이라는 시설을 설치했다.[81] 이곳에서는 독일 미혼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고 보호했으며, 동시에 점령지에서 '우수한 인종'의 신체적 특징을 보이는 아이들을 납치해 와 독일화 교육을 시켰다.[81] 또한, 하인리히 힘러 등 일부 나치 고위 관료들은 아리아인이 아틀란티스인의 후예라고 믿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한편, 많은 나치 당원들은 인도인을 아리아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일부 인도의 힌두교도들은 나치 독일을 지지하기도 했다. 시크교도를 포함한 일부 인도인들은 나치 독일 군대에 복무했으며, 우수한 병사는 나치 독일 친위대(SS)의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82]
5. 3. 역사 수정주의와 아넨에르베
구스타프 코시나와 같은 학자들은 고고학적 문화와 인종을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를 했는데, 이는 현재 신뢰받지 못하는 이론이다.[18] 코시나는 게르만족의 인종적 우월성을 주장하며 원시 인도유럽인의 기원을 북독일 지역으로 설정했고,[20] 그의 정착 고고학 이론은 이후 나치에 의해 인종차별적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19] 이러한 왜곡된 아리아인 개념은 19세기 인종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과학적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데 사용되었다.[12][8]나치는 이러한 왜곡된 이론을 받아들여 더욱 극단적인 역사 수정주의를 펼쳤다. 하인리히 힘러와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같은 나치 지도자들은 코시나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SS 산하 연구 기관인 아넨에르베( Deutsches Ahnenerbe|도이체스 아넨에르베de )를 설립했다.[52] 아넨에르베는 게르만족이 선사 시대부터 광범위하게 확장했다는 주장을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하려 했으며,[52] 나치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며 인종에 대한 역사 수정주의를 조직적으로 퍼뜨렸다.[8]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을 우월한 "아리아인 주인 종족"의 언어로, 셈어족을 "열등한 종족"의 언어로 규정하는 등, 북유럽 가설과 같은 신뢰성 없는 이론을 동원하여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했다.[12]
아돌프 히틀러는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 에른스트 헤켈의 사회 진화론적 개념을 차용하여 아리아 인종, 특히 게르만족을 유일한 "문화 창조자"로 묘사하고, 유대인을 "문화 파괴자"로 낙인찍었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반셈족주의와 결합하여 유대인 자산을 빼앗는 아리아화 정책과 궁극적으로 홀로코스트라는 대량 학살로 이어졌다. 또한 히틀러의 생존권(레벤스라움) 사상 역시 게르만 민족 중심의 아리아인 우월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치는 아리아 인종의 순수성을 보존하고 증식시킨다는 명목으로 레벤스보른과 같은 시설을 운영하기도 했으며,[81] 일부 나치 고위 관료들은 아리아인이 아틀란티스인의 후예라는 비과학적인 믿음을 가지고 관련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5. 4. 우생학과 인종 청소
나치 독일은 우생학적 신념을 바탕으로 소위 '아리아 인종'을 보존하고 '열등 인종'을 제거하려는 인종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은 사이비 과학과 낭만주의의 그릇된 혼합에 기반한 사회 진화론적 인종 해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15] 찰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을 오용하여 특정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려 했다.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한스 F. K. 귄터와 같은 인종 이론가들의 영향을 받아 노르드 민족을 가장 순수한 아리아인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게르만족과 함께 '우수 인종'(Herrenrasse|헤렌라세de)으로 규정했다.[50] 귄터의 이론은 고비노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으며, 과학적 근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찬사를 받아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54] 나치는 에른스트 헤켈의 사회 진화론 개념인 더 높은 진화(Höherentwicklung|회에렌트비클룽de), 생존 경쟁(Existenzkampf|엑시스텐츠캄프de), 선택(Auslese|아우스레제de), 생존 투쟁(Lebenskampf|레벤스캄프de) 등을 자신들의 인종 이데올로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이는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도 중심적으로 다루어졌다.
나치 정권은 1933년 인구 및 인종 정책에 관한 전문가 위원회를 통해 아리아인을 "독일 혈통과 부족적으로 관련이 있고 ''민족''의 후손"으로 정의하며 인종 정책의 방향을 설정했다.[42][43] 1935년에는 뉘른베르크법을 제정하여 유대인을 독일 사회에서 법적으로 분리하고 차별했다. 이 법에 따라 유대인, 로마인, 슬라브족(폴란드인, 체코인, 러시아인, 세르비아인 포함) 등은 '인종적으로 열등한 하위 인간'(Untermensch|운터멘슈de)으로 규정되었으며,[37][38][39] 유대인 등 아리아인이 아닌 조상을 가진 혼혈인(''미슐링'')과 흑인 역시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40][41] 공직이나 특정 직업에서 유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아리아인 증명서 제출이 요구되었고,[56] 유대인의 경제 활동을 배제하고 그 자산을 독일인에게 넘기는 '아리아화' 정책이 추진되었다.
나치는 우생학 정책을 통해 '아리아 인종'의 순수성을 지키고 증식시키려 했다. 선택적 육종을 통해 금발, 파란 눈 등 소위 아리아인의 신체적 특징을 장려하는 한편, '열등 인종'이나 신체 장애,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살 가치가 없는 삶'(lebensunwertes Leben|레벤스운베르테스 레벤de)으로 간주되어 강제 불임 시술의 대상이 되거나 T4 작전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조직적으로 살해되었다.[55] 동시에 하인리히 힘러의 주도로 레벤스보른이라는 기관이 설립되어 '인종적으로 가치 있는' 독일 여성의 출산을 장려하고, 점령지에서 '우수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아이들을 납치하여 독일화 교육을 시키기도 했다.[81]
나치의 인종 청소 정책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홀로코스트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유대인은 반유대주의와 인종주의가 결합된 '반셈족주의'의 표적이 되어 게토에 강제 격리되었으며, 이후 '최종 해결'이라는 명목 하에 절멸 수용소로 보내져 가스실 등에서 집단 학살되었다.[58] 홀로코스트 과정에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비롯하여[59] 수백만 명의 슬라브족(약 570만 명),[60] 폴란드인(180만~300만 명),[61] 로마인, 동성애자, 장애인(약 27만 명)[62] 등 수많은 '비아리아인' 및 나치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 집단 총격, 가스 차량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학살당했다.[63] 이러한 잔혹 행위는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내세우며 희생자들을 '아리아인의 적'으로 낙인찍는 나치의 인종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나치 선전기구인 아넨에르베는 역사 수정주의를 통해 이러한 인종 이론을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8]
6. 아리아 인종 가설의 과학적 비판과 현대적 잔재
현대 학계는 아리아 인종 가설을 과학적 근거가 없는 사이비 과학으로 간주하며 엄격하게 비판한다. 이 가설은 19세기 비교 언어학의 초기 연구 결과가 잘못 해석되고, 당시 유행하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형성되었다. 원래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인도이란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던 언어적, 문화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말이었으나,[16] 점차 특정 신체적 특징을 가진 우월한 인종 집단, 특히 북유럽 인종을 의미하는 것으로 왜곡되었다.[19]
이러한 인종적 해석은 막스 뮐러와 같은 초기 학자들에 의해 일부 제기되기도 했으나, 뮐러 자신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나중에는 언어와 인종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비판하며 입장을 바꾸었다.[26][27] 고대 리그 베다와 같은 문헌에 나타나는 '아리아'와 '다사/다스유'의 구분 역시 인종적 대립이 아닌 문화적, 종교적, 혹은 상징적 대립으로 해석하는 것이 현대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28] 역사적으로 베다 시대에 존재했던 아리아인들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북부 인도 아대륙 등지에 거주했던 인도이란어파 언어를 사용하는 부족 집단이었으며, 이들이 금발과 푸른 눈을 가졌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아리아 인종 가설은 구스타프 코시나와 같은 학자들의 문화사적 고고학 이론과 결합하여 고고학적 문화와 특정 인종을 직접 연결하려는 시도로 이어졌고,[18] 이는 제3제국의 나치 정권에 의해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반유대주의와 인종 학살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악용되었다.[19] 아르튀르 드 고비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등 19세기 인종주의 사상가들은 아리아 인종 개념을 이용하여 백인 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를 확산시켰다.
오늘날 아리아 인종 가설은 과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 네오 나치즘, 일부 신이교주의 운동 등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본래의 의미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인종주의적, 민족주의적 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현대 학계에서는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본래의 의미인 인도이란인 계통의 언어·문화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엄격히 제한하며, 인종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로 간주한다.
6. 1. 과학적 반증과 언어학적 연구
최근 언어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 분야에서 과학적 반증이 이루어지면서 아리아 인종 가설은 신빙성을 크게 잃었다. 오늘날 대다수 학자는 아리아 학설을 명확히 사이비 과학으로 비판하며, 거의 폐기된 가설로 간주한다.막스 뮐러는 비교 언어학 저술에서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했으며,[24] 때때로 '아리아 인종'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중앙아시아 고지대에 살았던 작은 아리아 씨족이 유럽과 이란/인도로 갈라졌으며, 특히 인도 아리아인이 어두운 피부의 원주민 '다사'를 정복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북부 아리아인(유럽)은 호전적이고 국가 개념을 발명했으며, 남부 아리아인(이란/인도)은 수동적이고 종교/철학에 집중했다고 구분했다.
그러나 뮐러는 나중에 언어적 범주와 인종적 범주를 혼동하는 것에 반대했고,[26] "이러한 분류가 나중에 인종차별적 용어로 표현된 사실에 깊이 슬펐다."[25] 그는 1888년 옥스퍼드 강연에서 "[언어] 과학과 인간 과학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없다 [...] 아리아 혈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두개골 형상 문법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잘못된 일일 것이다."[26]라고 비판했으며, 그의 저서 《단어의 전기와 아리아의 고향》(1888)에서는 "[...] 아리아 인종, 아리아 혈통, 아리아 눈, 머리카락에 대해 말하는 민족학자는 언어학자로서 큰 죄인이다 [...]"라고 명확히 밝혔다.[27]
19세기 유럽 학자들은 베다 구절을 피부색이 밝은 인도-아리아인과 피부색이 어두운 원주민 간의 전투로 해석했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러한 인종적 해석이 산스크리트어 텍스트의 오독이라고 본다.[28] 《리그 베다》에서 ''ārya''와 ''dasyu''의 대립은 인종적 차이가 아니라 '질서, 순수함, 선함, 빛'과 '무질서, 혼돈, 악함, 어둠'이라는 개념적[28] 또는 문화적·종교적 대립, 즉 베다 종교와 베다 산스크리트어를 받아들인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구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30] 학자들은 역사적인 아리아인, 즉 베다 시대 청동기 시대의 부족들이 이란, 아프가니스탄, 북부 인도 아대륙에 거주했으며, 아리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금발이나 푸른 눈을 가졌을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한다. 마이클 비첼은 아리아인이라는 용어가 특정 민족이나 인종 집단이 아닌, 베다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고 베다 문화 규범(의례, 시 등)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아리아인에 대한 인종적 해석은 구스타프 코시나의 문화사적 고고학 이론에서도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고고학적 문화와 고고학적 인종을 동일시했다.[18] 코시나는 특정 지역 문화의 연속성이 곧 인종의 연속성을 의미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정착 고고학 개념은 제3제국의 민족주의적 해석에 이용되었다. 그는 원시 인도유럽인을 끈무늬 토기 문화와 동일시하고 그 기원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으로 비정했으며,[19] 게르만족의 인종적 우월성을 강조했다.[20] 그러나 코시나의 이론과 방법론은 내재된 모호성과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 이데올로기 옹호로 인해 심하게 비판받았으며, 현재는 신뢰성을 잃었다.[21]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동안 아르튀르 드 고비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등 인종차별주의자와 반유대주의 작가들에 의해 과학적 인종주의를 퍼뜨리는 데 사용되었고, 노르디시즘과 아리아주의 같은 이념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아리아인'의 의미는 원래의 인도이란어파라는 언어적, 지리적 범위를 벗어나 왜곡되었다. 고비노는 ''인류의 인종적 불평등에 관한 시론''(1853)에서 아리아인을 우월한 백인 문명 창조자로 규정하고, 혼혈을 문화 쇠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체임벌린은 ''19세기의 기초''(1899)에서 우월한 독일-아리아 인종과 파괴적인 유대-셈족 인종 간의 투쟁을 이론화했다.
이러한 인종 이론은 오토 슈라더, 로버트 하트만 등 일부 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36] 특히 독일에서 큰 영향력을 유지했으며, 나치 정권의 인종차별 정책과 대량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
현재 학계에서 "아리아인"은 주로 인도이란인 그룹, 즉 인도로 이주한 인도아리아인과 이란 지역의 이란계 아리아인 및 그들의 직계 조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과거 또는 현재 인도이란어파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민족을 아리아인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있다. 언어학자 고야마 타카오는 이 호칭을 "인도유럽인"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오류이며, 특히 민족사회주의자들이 반유대주의 선동을 위해 사용했던 용어이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6. 2. 백인 우월주의와 신이교주의 운동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치 독일이 패망한 이후에도, '아리아인'이라는 개념은 일부 백인 우월주의 단체와 신이교주의 운동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다양한 네오 나치와 인종 민족주의 운동은 아리아인에 대한 정의를 확장하여 서유럽인 전체를 포함시키려 했지만, 여전히 노르드인과 게르만족이 가장 "인종적으로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경향을 보인다.[65]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백인 민족주의자들이 백인을 유럽계 조상을 가진 사람들로 폭넓게 정의하며, 일부는 유대인도 백인으로 간주하지만 이는 백인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66]많은 백인 우월주의 네오 나치 단체들과 교도소 갱단들은 자신들을 아리아 인종의 일부로 여기며 활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아리아 형제단, 아리아 민족, 아리아 가드(Aryan Guard), 아리아 공화군(Aryan Republican Army), 백인 아리아 저항(White Aryan Resistance, WAR), 아리아 서클(Aryan Circle), 텍사스 아리아 형제단(Texas Aryan Brotherhood) 등 다수의 단체가 이러한 명칭을 사용한다.[67]
한편, 인도유럽의 역사는 다양한 현대 이교 운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러시아의 슬라브주의 운동 중 일부는 유럽인의 "고귀한 아리아인 기원"이라는 아이디어를 나치 독일로부터 차용하기도 했다.[70] 이들은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민족주의에 미치는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우위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고대 문서를 통해 자신들의 '기원'을 찾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기원전 1세기에 쓰였다고 주장되는 필사본인 벨레스 서가 주목받았다. 백군 장교였던 F. A. 이젠베크가 러시아 내전 중 발견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친구 유리 미로류보프가 위조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로류보프는 러시아 신이교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베다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인도의 베다 경전과 연결시켜 권위를 부여하려 했다.[71] 민족주의 성향의 백계 러시아 망명자와 신이교주의자들은 이 위조된 문서를 슬라브족과 "고대 아리아인"을 직접 연결하는 증거로 받아들였으나, 학계에서는 이를 문학 위조로 간주한다.[72][73] 러시아의 네오 나치이자 나치 이데올로그로 알려진 알렉세이 도브로볼스키는 슬라브 신이교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74][75][76]

아리아인 개념은 신비주의 사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근대 신지학을 창시한 헬레나 블라바츠키는 아리아인 학설을 자신의 우주론에 도입하여, 현대 인류를 아틀란티스 대륙의 "제4근원 인종"에서 진화한 "제5근본 인종", 즉 아리아 인종으로 규정했다. 신지학 자체는 아리아인 지상주의는 아니었으나,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신지학과 아리안=게르만 인종 우월주의가 결합하면서 '아리오소피(Ariosophy, 아리아의 지혜)'라는 사상이 등장했다. 귀도 폰 리스트와 란츠 폰 리벤펠스 등이 주창한 이 사상은 아리아인을 신적인 존재로 격상시켰다. 아리오소피는 나치즘의 사상적 원류 중 하나를 형성했으며, 아리안=게르만 인종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유대인을 열등 인종으로 규정하며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나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툴레 협회는 아리오소피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결사이다.
6. 3. 한국에서의 '아리아인' 개념 오용 사례
(작성할 내용 없음 -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한국에서의 아리아인 개념 오용 사례'에 대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7. 결론
'아리아인'이라는 용어는 원래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인 인도이란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던 민족문화적 표현에서 비롯됐다.[16] 18세기 윌리엄 존스 등이 산스크리트어와 유럽 언어들 간의 유사성을 발견하며 원시 인도유럽어 연구가 시작됐으나, 이 언어학적 개념은 19세기 낭만주의와 독일 민족주의, 그리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왜곡된 해석과 결합하며 점차 인종적 의미로 변질됐다.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아리아인'은 북유럽 인종이라는 허구적 생물학 범주와 동일시됐고, 이는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우월한 인종'이라는 신화로 이어졌다.[19] 막스 뮐러와 같은 초기 연구자들은 언어와 인종을 연결 짓기도 했지만, 뮐러 자신도 나중에는 이러한 혼동을 비판하고 언어와 인종(혈통)을 동일시하는 것은 큰 오류라고 지적했다.[26][27] 리그베다와 같은 고대 문헌에서도 '아리아'는 인종적 개념이 아닌 문화적, 종교적, 언어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됐으며, 인종적 순수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르튀르 드 고비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등 19세기 인종차별주의 및 반유대주의 사상가들은 '아리아인' 개념을 적극 차용해 과학적 인종주의와 노르디시즘, 아리아주의와 같은 유사과학적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 이러한 왜곡된 인종 이론은 나치즘에서 극단적으로 발현됐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아리아 인종'을 독일 민족과 동일시하며, 유대인, 슬라브족, 로마인 등을 '열등 인종'으로 규정하며 차별과 박해를 정당화했다.[37][38][39] 나치는 우생학 정책을 통해 소위 '아리아인'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으며, 이는 결국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살해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즘은 몰락했지만, '아리아 인종'이라는 왜곡된 개념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네오나치즘과 백인 우월주의 단체들은 여전히 이 용어를 사용해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있으며,[65] 일부 현대 이교 운동이나 여신 운동 등에서도 역사적 사실과 다른 방식으로 '아리아인' 개념을 언급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아리아 인종'이라는 개념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허구이고, 역사적으로 특정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위해 언어학적 용어가 왜곡되고 오용된 산물이다. 현대 고고유전학 연구 역시 원시 인도유럽인들이 금발과 푸른 눈을 가졌다는 기존의 인종적 편견과 상반되는 결과를 보여준다.[51] 따라서 이러한 왜곡된 개념이 인류에게 가져온 비극적 역사를 기억하고, 인종차별과 극단주의의 위험성을 경계하며 과학적 사실에 기반한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참조
[1]
저널
The Great Aryan Myth
https://www.jstor.or[...]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1944-10
[2]
저널
Remains of the race: Archaeology, nationalism, and the yearning for civilisation in the Indus valley
https://journals.sag[...]
2001-06
[3]
문서
"Webster's Tenth New Collegiate Dictionary"
Merriam-Webster
1994
[4]
문서
"Meyers Konversations-Lexikon"
1885–90
[5]
서적
How Evolution Shapes Our Lives: Essays on Biology and Society
https://www.jstor.or[...]
Princeton University Press
[6]
저널
Anthropologists' views on race, ancestry, and genetics
2017-02
[7]
웹사이트
AAPA Statement on Race and Racism
https://physanth.org[...]
2020-06-19
[8]
저널
Racial ideas and the impact of imperialism in Europe
https://www.tandfonl[...]
[9]
저널
Nordicism Revisited
[10]
서적
Holocaust: The Nazi Persecution and Murder of the Jews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11]
웹사이트
Aryan
https://encyclopedia[...]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2022-02-25
[12]
저널
The Origins of Indo-European Languages
https://www.jstor.or[...]
1989-10
[13]
서적
Encyclopedia of Nationalism
Taylor & Francis
2001
[14]
저널
Leon Poliakov, Philosophy, and the Secularization of Anti-Judaism in the Development of Racism
https://www.academia[...]
2024-03-06
[15]
문서
"Webster's Tenth New Collegiate Dictionary"
Merriam-Webster
1994
[16]
서적
The Oxford Introduction to Proto-Indo-European and the Proto-Indo-European World
https://global.oup.c[...]
Oxford University Press
2006-08
[17]
서적
Dictionary of Race and Ethnic Relations
https://www.taylorfr[...]
Routledge
[18]
웹사이트
Celto-Germanic: Later Prehistory and Proto-Indo-European vocabulary in the North and West
https://repository.u[...]
University of Wales, Centre for Advanced Welsh and Celtic Studies
2022-04-06
[19]
서적
Los Indoeuropeos y los origines de Europa: lenguaje e historia
https://www.mulino.i[...]
Gredos
[20]
저널
The Past as Propaganda: How Hitler's Archaeologists Distorted European Prehistory to Justify Racist and Territorial Goals
Archae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1992-07
[21]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Archaeology
https://www.oxfordre[...]
Oxford University Press
[22]
서적
Race and Racism in Modern East Asia
https://brill.com/vi[...]
Brill Publishers
2015
[23]
웹사이트
Meyers Konversationslexikon: Volume 11: Luzula – Nathanael
https://www.retrobib[...]
2022-04-15
[24]
웹사이트
Aryan
https://www.etymonli[...]
2023-05-10
[25]
서적
Mapping Channels between Ganges and Rhein: German-Indian Cross-Cultural Relations
https://www.cambridg[...]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08-07-11
[26]
저널
Dialectics of Classicism: The birth of Nazism from the spirit of Classicism
https://journals.sag[...]
SAGE Publications
2019-03-16
[27]
서적
The Essential Max Müller On Language, Mythology, and Religion
https://link.springe[...]
Springer Publishing
[28]
서적
Encyclopedia of the Peoples of Asia and Oceania
https://books.google[...]
Infobase
[29]
서적
The Indo-Aryan Controversy: Evidence and Inference in Indian History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04
[30]
서적
The History and Culture of the Indian People
Bharatiya Vidya Bhavan
[31]
서적
The occult roots of Nazism: the Ariosophists of Austria and Germany 1890–1935
https://ixtheo.de/Re[...]
Wellingborough Aquarian Press
[32]
저널
Becoming caucasian: Vicissitudes of whiteness in american politics and culture
https://www.tandfonl[...]
2010-05-04
[33]
서적
Blacks and Blackness in European Art of the Long Nineteenth Century
https://www.routledg[...]
Routledge
2017-07-05
[34]
서적
Nordicism and Modernity
Palgrave Macmillan
2020-11-28
[35]
웹사이트
Aryan
https://www.britanni[...]
Encyclopædia Britannica
2022-04-24
[36]
웹사이트
Ariani, Indo-Germanic, stirpi mediterranee: aspetti del dibattito sulle razze europee (1870–1914)
http://www.unifi.it/[...]
Cromohs Journal, [[University of Florence]]
2002-03-10
[37]
서적
Hitler, Germans, and the "Jewish Question"
https://www.worldcat[...]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4
[38]
서적
Holocaust : the Nazi persecution and murder of the Jews
https://www.worldcat[...]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39]
서적
Revisiting the National Socialist Legacy: Coming to Terms With Forced Labor, Expropriation, Compensation, and Restitution
https://books.google[...]
[[Transaction Publishers]]
[40]
서적
Der Untermensch "The subhuman"
http://www.holocaust[...]
SS Office
2022-03-14
[41]
서적
The Holocaust and History: The Known, the Unknown, the Disputed, and the Reexamined
https://books.google[...]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Indiana University Press]]
[42]
서적
The Nazi Ancestral Proof: Genealogy, Racial Science, and the Final Solution
https://books.google[...]
[[Indiana University Press]]
[43]
서적
Racial Hygiene: Medicine Under the Nazis
https://books.google[...]
[[Harvard University Press]]
[44]
간행물
The Nazi Concept of 'Volksdeutsche' and the Exacerbation of Anti-Semitism in Eastern Europe, 1939-45
https://journals.sag[...]
[45]
서적
The Heimat Abroad: The Boundaries of Germanness
https://www.jstor.or[...]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46]
문서
Volksgemeinschaft
Britannica
2021-03
[47]
episode
Holocaust - Hitler's War Against the Jews
https://www.wondrium[...]
[[The Great Courses]]
2023-04-17
[48]
서적
Volksgeist as Method and Ethic : Essays on Boasian Ethnography and the German Anthropological Tradition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1996
[49]
서적
Digging for Hitler: The Nazi Archaeologists Search for an Aryan Past
https://books.google[...]
Fonthill Media; [[University of Cambridge]]
2017
[50]
서적
Holocaust: The Nazi Persecution and Murder of the Jews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51]
간행물
A genetic probe into the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of Southern Europe and West Asia
2022-08-26
[52]
서적
The Oxford Companion To Archaeology
https://www.oxfordre[...]
[[Oxford University Press]]
[53]
서적
From Darwin to Hitler: Evolutionary Ethics, Eugenics and Racism in Germany
https://books.google[...]
[[Springer Publishing]]
2016
[54]
서적
Hitler's Private Library: The Books That Shaped His Life
https://books.google[...]
[[Vintage Books]]
[55]
웹사이트
Eugenics
https://plato.stanfo[...]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Stanford University]]
2014-07-02
[56]
간행물
The Long-Term Direct and External Effects of Jewish Expulsions in Nazi Germany
https://www.aeaweb.o[...]
2015-08
[57]
웹사이트
Race
https://plato.stanfo[...]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2022-03-21
[58]
웹사이트
Final Solution
https://encyclopedia[...]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2022-03-21
[59]
서적
The War Against the Jews
https://archive.org/[...]
Bantam Books
[60]
웹사이트
Documenting Numbers of Victims of the Holocaust and Nazi Persecution
https://encyclopedia[...]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61]
웹사이트
Polish Resistance and Conclusions
https://www.ushmm.or[...]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62]
웹사이트
The Danish Center for Holocaust and [Genocide Studies]
http://www.holocaust[...]
Holocaust-education.dk
1939-09-01
[63]
서적
The Origins of the Final Solution: The Evolution of Nazi Jewish Policy, September 1939 – March 1942
https://muse.jhu.edu[...]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64]
웹사이트
Origins of Neo-Nazi and White Supremacist Terms and Symbols: 'Blood and Soil{{'-}}
https://www.ushmm.or[...]
[[United States Holocaust Memorial Museum]]
2023-04-28
[65]
서적
World Fascism: A Historical Encyclopedia
https://books.google[...]
ABC-CLIO
[66]
웹사이트
Schism over Anti-Semitism Divides Key White Nationalist Group
https://www.splcente[...]
[[Intelligence Report]]
2018-02-22
[67]
간행물
The prison hate machine
https://onlinelibrar[...]
[[Portland State University ]]
2009
[68]
문서
Understanding Neo-paganism in Russia: Religion? Ideology? Philosophy? Fantasy?
https://www.academia[...]
Peter Lang
[69]
서적
The New Age of Russia. Occult and Esoteric Dimensions
https://www.academia[...]
Kubon & Sagner
2012
[70]
간행물
Alternative identity, alternative religion? Neo-paganism and the Aryan myth in contemporary Russia
2008-04-10
[71]
논문
{{-'}}Christians! Go home': A Revival of Neo-Paganism between the Baltic Sea and Transcaucasia (An Overview)
https://www.tandfonl[...]
2010-08-02
[72]
서적
Russia as Civilization
https://www.taylorfr[...]
Routledge, Taylor & Francis
[73]
논문
Rules of Disengagement: Author, Audience, and Experimentation in Ukrainian and Russian Literature of the 1970s and 1980s
https://dash.harvard[...]
[74]
서적
The Resurrection of Perun: Toward the Reconstruction of East Slavic Paganism
https://books.google[...]
Eurasia
2004
[75]
논문
Neo-pagan myth about Prince Vladimir
https://cyberleninka[...]
2009
[76]
웹사이트
Арийский миф — русский взгляд / Translation from French by Dmitry Bayuk. 25.03.2010
https://www.vokrugsv[...]
Vokrug sveta
2010-03-25
[77]
논문
연구展望 はたしてアーリヤ人の侵入はあったのか?ヒンドゥー・ナショナリズムの台頭のなかで--言語学・考古学・インド文献学
国際日本文化研究センター
2001-03
[78]
문서
"アーリヤ(ārya आर्य)は、[[サンスクリット|サンスクリット語]]で「高貴な」を意味する。"
[79]
웹사이트
受け継がれるナチズム~人種主義・国家主義~
http://www.cc.kyoto-[...]
京都産業大学 河野勝彦 ヨーロッパ文化演習Ⅱ
2016-03-12
[80]
서적
The Occult Roots of Nazism: Secret Aryan Cults and Their Influence on Nazi Ideology
New York University Press
[81]
웹사이트
ナチスの「生命の泉」
http://gnosticthinki[...]
宗教学探求:大田俊寛の研究室
2016-03-12
[82]
웹사이트
米シーク教寺院銃乱射:犯人が知らなかったインドとナチスの関係
http://jp.ibtimes.co[...]
International Business Times
2016-03-12
[83]
문서
当時の日本の学会では、「[[アイヌ人]]コーカソイド説」と「アイヌ人[[縄文人]]説」があった。ハンス・ギュンターはその両説をあわせて、「アイヌ人は[[アーリア人]]であり、日本人はアイヌ人(縄文人)の子孫である。だから日本人はアーリア人である」としたのである。現在ではアイヌ人縄文人説が有力であり、[[コーカソイド]]説は否定されている。もちろんコーカソイド説の全盛期においても、この説は縄文人説とは矛盾するものであり、片方が正しければ片方が間違っているという性質のものであり、その両説を併せた「日本人=アーリア人」説は、荒唐無稽以外の何ものでもない。
[84]
웹사이트
レオン・ポリアコフ アーリア神話 ヨーロッパにおける人種主義と民族主義の源泉
http://1000ya.isis.n[...]
松岡正剛の千夜千冊
2016-03-12
[85]
간행물
The Great Aryan Myth
1944-10
[86]
서적
Webster's Tenth New Collegiate Dictionary
Merriam-Webster
1994
[87]
웹인용
Devdutt Pattanaik: Leveraging the Aryans
http://www.mid-day.c[...]
2016-03-2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