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 신사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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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스쿠니 신사 논쟁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역사 인식, 특히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 문제와 관련된 논란을 말한다. 주요 쟁점으로는 신앙의 자유, 정교분리 위반 여부, 역사 인식, 전사자 위령, A급 전범 평가, 종교적 합리성 등이 있으며, 일본 정치인의 참배는 국내외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야스쿠니 신사는 국가신도 이념에 따라 천황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영혼을 모시는 곳으로, A급 전범 합사 이후 주변국들의 반발이 지속되었다. 논란 완화를 위해 A급 전범 분사, 국립 추도 시설 건립 등의 제안이 있었으나, 여러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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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신토는 일본 제국 시기 국가주의 이념을 지지하기 위해 신토를 활용한 관행으로, 황실신도와 신사신도를 결합한 형태이며,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 숭배를 강조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에 신사 참배를 강요하며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 했으나, 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해체되었다. - 야스쿠니 신사 문제 - 마쓰다이라 나가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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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신사 논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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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명칭 | 야스쿠니 신사 |
위치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
종류 | 신사 |
종교 | 신토 |
논쟁의 중심 | |
합사된 인물 |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을 포함한 전몰자 |
정치적, 외교적 문제 | 일본 정치인의 참배, 역사 인식 문제 등 |
역사적 배경 | |
창건 | 메이지 유신 이후 |
목적 |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함 |
논쟁의 주요 내용 | |
A급 전범 합사 문제 | 극동 국제 군사 재판(도쿄 재판)의 결과에 대한 이견 |
역사 인식 문제 | 전쟁의 책임과 역사 해석에 대한 입장 차이 |
정치적 이용 논란 | 정치인들의 참배가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되는 문제 |
종교적, 헌법적 문제 | 정교분리 원칙과의 충돌 여부 |
국제적 반응 | |
주변국 | 중국, 대한민국 등 주변국들의 비판 (역사 인식 문제, 전범 숭배 문제 제기) |
러시아 |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기시다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 비판 |
일본 내부 반응 | |
옹호 측 |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령을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 |
비판 측 |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과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 |
한국 내 반응 | |
비판적 시각 |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행위로 간주 A급 전범 합사에 대한 강한 반발 일본 정부 및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에 대한 불신 |
기타 | |
정치인 참배 | 총리 및 각료들의 참배가 외교 문제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음 참배 여부가 국내외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됨 |
한국 언론 보도 | 과거 아사히 신문 등 일부 언론의 부정적 보도 사례 최근에는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려는 노력 |
생이나 아키코 참배 보도 | 요미우리 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서 오보 인정 및 사과 공동 통신사의 외교 영향 가능성 언급 보도 |
2. 논점
야스쿠니 신사의 전신인 도쿄 쇼콘샤는 오무라 마스지로의 발의로 메이지 천황의 명에 따라 보신 전쟁 전사자를 모시기 위해 1869년에 창건되었다. 이후 1853년 매튜 페리 내항 이후 국내 전쟁에서 순국한 사람들을 함께 모시게 되었다. 1877년 서남 전쟁 이후에는 일본을 수호하기 위해 사망한 전몰자를 위령 추도·현창하기 위한 시설 및 상징이 되었다. 원래는 막부 말의 혼란으로 사망한 지사들의 영령을 초혼하여 제례하는 일회성 의식(초혼제)이 교토에서 실시된 것이 정식화되어 도쿄 쇼콘샤 설치로 이어졌다.
"나라에 순국한 선인에게 국민의 대표자가 감사하고 평화를 맹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의견이 있는 한편, 정교분리 원칙이나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일본의 전쟁 행위에 대한 역사 인식, 또한 동 전쟁에서 일본의 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은 인접 제국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관점에서, 정치인의 참배를 문제시하는 의견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일본의 종전의 날인 8월 15일의 참배는 전쟁의 전몰자를 현창하는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며, 특히 일본 국내의 좌파나 한국, 중국에서 논쟁이 커진다. 오노다 히로오는 일본 군인이 전우와 헤어질 때 "야스쿠니에서 만나자"고 맹세했던 것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군인의 마음의 의지처로서의 상징 중 하나였다고 한다[105]。
1975년 일본 국내 언론에서 "정교 분리"라는 내정상의 이유로 비판[106]이 시작되었고,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에 의한 공적 참배 발언 이후 일본 국내에서도 일본 사회당에 의한 여당 자민당에 대한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1985년 이후 중국과 한국은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한국민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애초에 "전전의 일본 군인을 위령하는 것" 자체에 반발하고 있다는 것, "1985년 아사히 신문에 의한 야스쿠니 비판 보도"로 야스쿠니 신사 자체를 알게 되면서 반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후 중·한 정부는 일본의 정치인에 의한 참배가 행해질 때마다 반발하고 있다.[255]。 자민당도 2006년에 "야스쿠니 문제"는 한국과 중국과의 문제라고 하고, 양국이 "야스쿠니"를 꺼내는 것은, 일본에 의한 "독도나 동중국해의 일방적인 가스전 개발 등 양국에 의한 일본에 대한 불법 행위"에 대한 비판에 대해, 그것 외에는 대항할 만한 외교적 카드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104]。
구체적인 쟁점은 다음과 같이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신앙의 자유에 관한 문제
# 정교분리에 저촉되는지 여부 문제
#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
# 전사자・전몰자 위령 문제
# A급 전범에 대한 평가의 구분 사용
# 종교적 합리성과 신도 의궤에 관한 문제
2. 1. 역사 인식 문제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등의 합사 문제와 일본과 2차대전 피해국들의 역사 인식 문제는 이 사건의 발단으로 야기된 주요 쟁점이다.[9]-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관한 피해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에 관한 문제
야스쿠니 신사는 신토 신앙에 따라 천황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영혼을 안치하고 영구적인 거처를 제공한다. 신사에 안치된 1,066명의 가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들이었고, 추가로 2명은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재판이 완료되기 전에 사망했다. 일반적으로 안치는 이 세상의 행위에 대한 사면을 의미한다.[9]
1978년 10월 17일, A급 전범 혐의로 기소된 14명이 쇼와 순난자로 안치되었다. 이들은 전사자 명부에 등재되었기 때문에 안치되었다.[9]
구분 | 명단 |
---|---|
사형 | 도조 히데키,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도이하라 겐지, 무토 아키라, 히로타 코키, 마쓰이 이와네 (B급 범죄로만 선고) |
종신형 | 우메즈 요시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히라누마 기이치로, 시라토리 도시 |
징역 20년 | 토고 시게노리 |
사법 결정 전에 사망 (질병) | 나가노 오사미, 마쓰오카 요스케 |
투옥된 모든 전범들은 1958년까지 형이 감형되거나 석방되었다. 안치는 1979년 4월 19일 언론에 공개되었고, 1985년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논란이 시작되었다.[9]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역사에 대한 전쟁 박물관(유슈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관찰자들은[10] 이 박물관이 역사 수정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고 비판해 왔다. 박물관 방문객에게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선전 영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에 일본이 동아시아를 정복한 것을 식민 서방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적 진출로부터 이 지역을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박물관에는 일본 제국 육군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을 포함한 어떤 잔학 행위에 대한 언급도 없다.
야스쿠니 신사의 정치적 함의는 다음 네 가지 요인으로 기인한다.[10]
# 천황의 이름으로 벌어진 모든 전쟁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모든 사람을 영령으로 숭배하는 국가신도의 이데올로기
# 일본 A급 전범이 신사에 합사되어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전쟁 범죄, 반인륜 범죄 등에 대한 책임이 면죄된다는 것
# 다양한 지원 단체의 영향력, 특히 일본 전몰자 유족회의 영향력 (이 단체는 제2차 세계 대전 전사자 유족을 대표하는 가장 큰 단체이다.)
# 신사가 일본 엘리트들이 일본 대중의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회합 장소였다는 것 (일본에 침략당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
2. 2. 정치적 문제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의 합사 문제와 일본과 2차대전 피해국들의 역사 인식 문제는 주요 쟁점이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관한 피해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에 관한 문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역사에 대한 전쟁 박물관(유슈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관찰자들은[10] 이 박물관이 역사 수정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고 비판한다. 박물관 방문객에게 상영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선전 영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시기에 일본이 동아시아를 정복한 것을 식민 서방 세계 열강의 제국주의적 진출로부터 이 지역을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묘사한다. 이 박물관에는 일본 제국 육군이 저지른 난징 대학살을 포함한 어떤 잔학 행위에 대한 언급도 없다.
야스쿠니 신사의 정치적 함의는 네 가지 요인으로 기인한다.
# 천황의 이름으로 벌어진 모든 전쟁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천황을 위해 싸우다 죽은 모든 사람을 英霊|에이레이일본어로 숭배하는 국가신도의 이데올로기.
# 일본 A급 전범이 신사에 합사되어 있으며, 그들의 전쟁 범죄, 반인륜 범죄 등에 대한 책임이 면죄된다는 점.
# 다양한 지원 단체의 영향력, 특히 일본 전몰자 유족회(遺族会|이조쿠카이일본어)의 영향력 (이 단체는 제2차 세계 대전 전사자 유족을 대표하는 가장 큰 단체).
# 일본에 침략당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사가 일본 엘리트들이 일본 대중의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회합 장소였다는 점 (열등한 민족이라고 여긴 곳에 대한 무자비하고 종종 대량 학살적인 정복 전쟁을 시작하기 전).
야스쿠니 신사는 이조카이를 사실상 신도회 산하 단체로 여긴다. 이조카이는 1947년에 설립된 遺族厚生連盟|이조쿠 코세이 렌메이일본어로 알려져 있었다. 초기 목적은 "전쟁 종식, 세계 평화 및 세계 번영 확립, 인류 복지에 기여"와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가족에게 구호와 지원을 제공"이었다. 이조쿠 코세이 렌메이는 전사자들의 미망인, 고아, 노령 부모를 지원하고, 가족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 로비를 했다. 그러나 1953년 재단으로 전환되어 이조카이로 변경되면서 "평화로운 일본 건설, 인격 함양, 도덕 진흥"과 "영령을 칭송하고, 전몰자 가족의 복지를 증진하며, 민간 지원 부대에 대한 인정과 보상을 추구"하는 것으로 주요 목적을 변경했다. 국제 평화주의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고 '영령'에 대한 언급을 삽입한 이 변화는 단체의 성격에 민족주의적 성향을 부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회장은 대개 집권 자유민주당 소속이며, 자유민주당과 신사 사이의 비공식적인 연결 통로로 여겨진다. 1962년에는 자유민주당의 강경파이자 A급 전범인 가야 오키노리가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쇼와 천황이 1978년부터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신사 참배를 거부하면서 처음 불거졌다.[11] 2006년에 공개된 궁내청의 총리대신 도미타 도모히코가 보관한 각서에 따르면, 쇼와 천황은 A급 전범을 합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신사 참배를 중단했다고 밝혔다.[12]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가장 노골적이고 논란이 많은 참배자 중 한 명이었다. 2005년 10월 17일, 취임 후 다섯 번째로 신사를 참배했다. 그는 자신의 참배가 개인적인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본 외무대신 마치무라 노부타카가 중일 관계 강화를 위해 베이징에서 중국 관리를 만날 예정이었던 며칠 전에 이루어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신사를 일본의 과거 군사 침략을 미화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예정된 방문을 취소함으로써 대응했다.[13]
고이즈미의 연례 참배는 전 세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 리자오싱은 "만약 독일 지도자들이 히틀러와 나치와 관련된 (기념관)을 방문한다면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질문했다.[14] 2006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헨리 하이드는 고이즈미가 야스쿠니 신사를 또 방문한 후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다면 미국 의회를 당황하게 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미국 재향 군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15]
아베 신조는 2006년 4월에 신사를 참배했지만, 자신이 방문했는지 또는 앞으로 방문할 것인지에 대해 모호하게 언급했다.[16] 이후의 사건들은 이 문제에 대한 타협이 중국과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17] 아베는 전임자의 신사 참배를 지지했으며,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최소 한 번 이상 신사를 참배했다.[18][19][20]
2007년 6월 7일, 전 중화민국 총통 리덩후이는 일본 제국 해군에서 사망한 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사를 참배했다.
전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신사를 절대 참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21] 신사에 대한 후쿠다의 공개적인 정치적 반대는 중국,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22]
2008년 4월 22일, 자유민주당과 국민신당 소속 국회의원 62명이 시마무라 요시노부 전 농림수산대신과 후쿠다의 특별 보좌관 야마타니 에리코를 포함하여 신사를 참배했다.[23] 2013년 4월 23일에는 일본 국회의원 169명이 신사를 참배했다.[24]
일본 내 정치인들의 참배에 대한 여론은 다양하며, 찬성 비율은 전화 설문 조사에서는 38%에서 인터넷 설문 조사에서는 71%에 이르렀다.[25][26] 겐론 NPO의 2015년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66%는 참배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으며, 15.7%는 전적으로 반대했다.[27]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2006년 여론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절반이 고이즈미의 신사 참배를 지지한 반면, 37%는 반대했다.[28]
야스쿠니 신사 논쟁은 일본 국내 정치와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75년 미키 다케오 내각총리대신이 8월 15일에 개인 자격으로 신사를 참배한 이후 거의 매년 재점화되었다. 다음 해 후쿠다 다케오도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지만 방명록에 내각총리대신 자격으로 서명했다. 1979년 이후 여러 내각총리대신들이 신사를 참배했다.
- 1979년 오히라 마사요시
- 1980년, 1981년, 1982년 스즈키 젠코
- 1983년과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1985년에는 정부 자금으로 구입한 꽃을 헌화)
- 1992년 미야자와 기이치 (1996년까지 비밀로 유지, 1980년에도 참배)
-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
- 고이즈미 준이치로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일본 내각총리대신의 신사 참배는 1985년부터 주변 국가들의 공식 비난을 초래했는데, 이는 일본의 과거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기 때문이다.
신사 참배는 일본 정부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한 국내 논쟁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자유민주당 정치인들은 참배가 종교의 자유에 대한 헌법적 권리에 의해 보호받으며, 입법자들이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속적 기념관 건설 제안은 기술적인 세부 사항 때문에 실패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무도관에서 매년 전쟁 기념 행사를 열어 참석자들이 원할 경우 나중에 야스쿠니 신사를 개인적으로 참배할 수 있도록 한다.
2003년 2월,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를 비판하며 14명의 A급 전범을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는 "만약 그 옵션이 실현된다면, 고이즈미나 다른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상하이 회담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하고 누구나 주저없이 참배할 수 있는 새로운 기념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언급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신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으며, 일부 일본 관찰자들은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일본 군대의 역사적 행적과 그 행위에 대한 반성의 정도만큼이나 중국의 국내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공산당 당국이 신사에 대한 중국 본토에서의 대규모 대중 시위를 용인하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국내 정치적 반대에 대해 행사되는 권위와는 강한 대조를 이룬다.[41]
총리의 참배가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도 논란거리다. 일본국 헌법에서는 정교분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 조항은 국가 신도의 부활을 막기 위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위헌성을 의심한다. 총리들은 참배 후 "사적인 자격으로 오신 겁니까, 아니면 총리 자격으로 오신 겁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총리가 참배객 명부에 서명할 때 私人|시진일본어 또는 首相|슈쇼일본어로 표시하는지 여부도 보도된다. 모든 총리들은 자신의 참배가 사적이었다고 밝혔지만, 일부는 서명란을 비워두거나 ''시진''으로, 다른 사람들은 ''슈쇼''로 서명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총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자격으로 신사를 참배했다고 말했다. 일부는 이러한 발언을 참배를 어느 정도 공식화하려는 움직임으로 간주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시진'' 대 ''슈쇼''의 문제 전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교도 통신은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의 참배가 일관되게 사적이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공약의 일부일 때 개인적인 성격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대부분의 일본 국민과 법학자들은 아직 헌법 위반이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2014년, 아베 신조와 그의 내각 구성원 18명 중 15명, 국회의원 480명 중 289명이 역사 수정주의 로비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었다. 이 단체는 군주제와 국가 신도의 부활을 옹호하고, 일본의 전쟁 범죄를 부인하며, 헌법과 학교 교과서 개정, 총리의 신사 참배를 권장한다.[48][49] 신사의 궁사(宮司)인 도쿠가와 야스히사(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증손자)는 일본회의 대표 위원회의 위원이다.[50]
야스쿠니 신사가 박물관과 웹사이트를 통해 밝히는 견해도 논란의 대상이다. 두 사이트 모두 야스쿠니 신사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의 행동을 침략 행위가 아닌 자위 행위이자 유럽 제국주의를 격퇴하려는 영웅적인 노력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총리의 (사적인) 참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일본에는 전몰자를 추모할 다른 장소가 없으므로, 총리뿐만 아니라 신사를 방문하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한다. 야스쿠니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총리를 포함)은 의도적으로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아 참배가 정치적인 것이 아닌 종교적인 것으로 유지되도록 한다.
논란 완화를 위해 여러 제안이 이루어졌다.
# 논란이 되는 영령을 "옮겨" 다른 장소에 안치하여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치적으로 덜 민감하게 만드는 것 (중국과 한국에 의해 추진). 일본 정부는 정교분리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에 이를 강요할 수 없다. 신사는 일단 신사에 모셔진 가미는 분리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신학적으로 유효하다고 제안된 방법은 모든 합사를 폐지한 다음, A급 전범을 포함하지 않고 보신 전쟁 이후의 모든 가미 합사 의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도쿠가와 시대에 선택적인 합사 폐지의 선례가 있으므로 선택적인 합사 폐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신토의 ''분령'' 및 ''간조''는 가미를 신사에서 제거하여 다른 곳에 다시 모시기 위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가미는 원래의 신사에 그대로 남아 있다.[51]
# 총리가 추모 목적으로 공식적인 국가 참배를 할 수 있는 별도의 세속적인 기념관을 만드는 것. 비평가들은 전쟁 사망자 가족을 대표하는 단체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선호하며 그러한 기념관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일본 정부는 이미 부도칸에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군인 가족들을 위한 연례 세속 추모 행사를 개최한다. 그 후, 가족들은 보통 도보 거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개인적으로 방문한다. 제안된 기념관 부지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의식이 제안된 기념관 부지로 이전되면 이러한 방문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신사에 이름이 등재된 많은 가족들은 이 논란이 죽은 가족 구성원의 평안한 안식을 방해하고 있으며, 논란과 언론의 관심 없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도보 거리에 일본 (미확인) 전쟁 사망자를 위한 기념관인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엔일본어이 있으며, 이곳을 일본 정치인들이 전쟁 중 사망한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대안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제안되었다.
2005년 5월, 2005년 반일 시위 이후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과 관련하여, 중국 부총리 우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방일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했다. 이는 우이 부총리의 일본 방문 하루 전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 등 일본의 국내 문제에 외국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데 대한 반응으로 해석되었다. 우이 부총리의 방문은 교과서 문제로 악화된 양국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고이즈미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재임 기간 동안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공개적으로 참배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그가 전쟁 범죄자를 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는 것이었다.[52] 고이즈미는 퇴임 직전인 2006년 8월 15일에 총리 자격으로 마지막 참배를 했다.[53]
중화인민공화국 관리들은 2005년 고이즈미의 참배에 항의하여 일본 외무대신 마치무라 노부타카의 중국 방문 계획을 취소했다.[13]
고이즈미의 참배는 미국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헨리 하이드는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였으며,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공화당 위원장으로, 2006년 5월 하원의장 데니스 해스터트에게 보낸 서한에서 고이즈미가 일본 항복 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는 데 동의하는 경우에만 미국 국회 의사당에서 연설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54] 톰 랜토스 또한 참배 중단을 촉구하며 "전쟁 범죄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파산한 행위이며 일본과 같은 위대한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55]
아베 신조는 총리 재임 전과 후 여러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지만,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의 첫 번째 총리 재임 기간 동안에는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아베가 신사를 참배하지 않자, 단조 요시히로라는 일본 민족주의자가 항의의 표시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자유민주당에 보냈다.[56]
2007년 4월, 그는 신사에 의례적인 공물을 보냈지만, 실제로 참배하지는 않았다. 공식 보고에 따르면, 이 공물은 아베가 개인 자격으로 보낸 것이었지만, 헌화에 붙은 카드에는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라고 서명되었다고 보도되었다. 아베는 전임자의 신사 참배를 지지했지만, 재임 기간 동안에는 직접 신사를 참배하지 않았다.[57]
2007년 8월, 아베 내각의 16명의 각료는 모두 일본 항복 기념일에 신사를 참배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아베는 자신이 참배할 의사가 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각료에게도 개인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스스로의 판단을 존중해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논평했다.[58] 다카이치 사나에는 일본의 공식적인 제2차 세계 대전 항복 기념일에 각료들이 야스쿠니에 아무도 참배하지 않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결국 신사를 참배했다.[59]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운동 중, 아베는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중·한 관계 개선을 고려하여 두 번째 총리 재임 첫 해에도 신사 참배를 자제했다. 그는 2013년 12월 9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 희생자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야스쿠니 참배]를 정치적, 외교적 문제로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참배 대신 2013년 4월과 10월 축제, 2013년 8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기념일에 신사에 의례적인 공물을 보냈다.[60]
2013년 5월 19일, 아베 신조 총리는 Foreign Affairs와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는 알링턴 국립묘지와 비교할 수 있으며 참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같은 해 10월 3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방문하여, 치도리가후치가 알링턴 국립묘지와 가장 유사한 일본 시설이라고 언급하면서 이에 대응했다.[61][62]
아베의 첫 번째 총리 자격 신사 참배와 천령사 참배는 2013년 12월 26일에 이루어졌으며, 이는 그의 두 번째 임기 1주년이었다. 이는 2006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참배한 이후 현직 총리의 첫 번째 참배였다. 아베는 "귀중한 생명을 바친 전쟁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평화를 기원했다"고 말했으며, "중국과 한국 국민들의 감정을 무시할 의도는 없다[63]"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 역사와 식민 통치를 미화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를 훼손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하는 항의를 발표했다.[64] 주일 중국대사 청융화는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침략 전쟁의 본질과 책임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중국 측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니치 신문》은 사설에서 이 방문이 중국과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등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65][66]
미국 정부는 12월 12일, 조 바이든 부통령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총리가 참배를 강행한 것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했다.[67][68] 2013년 12월 27일,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 정책 고위 대표는 이 조치가 주변 국가와의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69] 12월 29일, 싱가포르 정부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유감을 표명했다.[70] 2014년 1월 19일, 대만 총통 마잉주는 신사 참배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라고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71]
아베가 신사를 참배하자, 중국의 유엔 대사 류제이는 이 문제를 유엔에 제기하며 "결국 한 국가의 지도자가 유엔 헌장의 원칙과 목적을 유지하는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전쟁 범죄자들의 편에 설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유엔 대사 모토히데 요시카와는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전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맹세를 새롭게 다졌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72]
아베 신조의 첫 번째 임기 이후, 후쿠다 야스오는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는 일본의 아시아 이웃 국가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73] 후쿠다 야스오의 신사에 대한 공개적인 정치적 반대는 중국, 북한,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마무라 요시노부 전 농림수산대신과 야마타니 에리코를 포함한 자유민주당과 국민신당 소속 국회의원 62명이 2008년 4월 22일 신사를 참배했다.[23]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민주당 정부 역시 신사 참배를 피했다. 하토야마 유키오는 전범이 합사되어 있는 한 참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74] 칸 나오토는 일본의 항복 기념일에 모든 각료에게 신사 참배를 금지했으며, 자신도 개인적으로 방문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75] 노다 요시히코는 첫 기자회견에서 내각이 공식 참배를 하지 않는 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76] 2022년, 기시다 후미오는 신사에 공물을 보냈지만, 직접 참배하지는 않았다.[77] 2023년 4월 21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신사에 종교적 공물을 보냈다.[78]
2008년 3월, 자유민주당의 이나다 토모미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은 중국 출신 감독 잉 리가 제작한 야스쿠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했다. 이 영화는 신사와 우익 단체와 같은 우익 운동과의 연관성을 다루었다. 해당 국회의원들은 영화가 "반일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시사회를 요청했다.[83] 일본 영화 감독 협회는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정치인들의 항의로 인해 영화는 도쿄를 포함하여 약 10개의 극장에서만 상영될 예정이었다.[84]
2019년 1월 7일, 포켓몬스터 프랜차이즈의 공동 소유주 중 하나인 크리처스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 여러 직원이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사진이 게시되었다. 해당 트윗은 중국 및 대한민국 트위터 사용자들의 반발로 인해 곧 삭제되었으며, 여기에는 보이콧 요구가 포함되었다.[91][92][93]
2021년 2월 11일, 일본 성우 카야노 아이는 자신의 직장 근처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다고 밝혀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에 희생된 국가의 많은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그녀는 이후 사과하며, 신사에 합사된 전쟁 범죄자에 대한 논란을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방문 후 몇 달 지나 중국 팬들의 상당한 압력으로 인해, ''벽람항로'' 및 ''명일방주''와 같은 일부 중국 비디오 게임은 중국 서버에서 그녀의 음성 작업을 제거했다.[94]
구체적인 쟁점은 6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 신앙의 자유에 관한 문제: 전후 일본국 헌법 제20조 제1항에서 "신앙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이를 보장한다."라고 규정한다. 참배를 원하는 경우, 대신・관료라도 국가 권력에 의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금지・제한할 수 없으며, 합사 또는 참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국가[111]에 의해 야스쿠니 신사로의 합사 또는 참배를 강요받지 않는다.
# 정교분리 저촉 여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에 의한 공적인 위령 시설로 위치시키려는 운동이 있으며, 영옥 공헌 등의 제사에 관한 기부・봉납을 정부・지방 자치 단체가 공적인 지출로 행하는 것 등과 관련하여, 일본국 헌법 제20조가 정하는 정교분리 원칙에 저촉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
# '정교분리'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각총리대신・국회의원・도도부현 지사 등 공직자가 공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제20조 제1항에서 금지된 종교 단체에 대한 국가의 특별한 특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고재판소는 정교분리 위반을 주장한 원고들의 패소 판결을 내렸다.[112]
# 역사 인식에 관한 문제: 야스쿠니 신사는 전사자를 영령으로 숭배하고 전쟁 자체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므로, 그러한 신사에 공적인 인물이 참배하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역사관을 공적으로 추인하는 것이 된다고 문제시하는 의견이 존재한다.
2. 3. 종교적 문제
일본국 헌법 제20조 1항에 따라 누구에게나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다.[111]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원하는 사람은 국가 권력에 의해 참배를 금지당하거나 제한받을 수 없고, 반대로 합사나 참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국가에 의해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야스쿠니 신사는 신토 신앙에 따라 천황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영혼을 안치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1,066명의 가미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범들이었고, 추가로 2명은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재판이 완료되기 전에 사망했다.[9]
1978년 10월 17일, A급 전범 혐의로 기소된 14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었다. 이들은 다음과 같다.
유형 | 인물 |
---|---|
사형 | 도조 히데키,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도이하라 겐지, 무토 아키라, 히로타 코키, 마쓰이 이와네(B급 범죄로만 선고) |
종신형 | 우메즈 요시지로, 고이소 구니아키, 히라누마 기이치로, 시라토리 도시 |
징역 20년 | 토고 시게노리 |
사법 결정 전에 사망 (질병) | 나가노 오사미, 마쓰오카 요스케 |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사형당하면서, 이들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문제와 일본-2차 대전 피해국 간 역사 인식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9] 특히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역사 인식 차이가 갈등의 핵심이다.
투옥된 모든 전범은 1958년까지 형이 감형되거나 석방되었다.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를 국가의 공적인 위령 시설로 만들려는 움직임과 관련하여 정부의 기부나 봉납이 일본국 헌법 제20조에 저촉되는지 여부가 문제시된다.
가오 진수메이가 이끄는 대만 원주민 대표 단체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친족을 빼달라고 요청하고 조상들의 영혼의 안식을 기원하는 종교 의식을 거행하려 했으나, 일본 시위대와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47]
일본 법원은 14명의 전범이나 그들 가족의 유해를 신사에서 빼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기각했다. 야스쿠니 신사가 정부가 아닌 사적 종교 단체 소유이고, 유해를 제거하는 것은 신토 신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46] 신토에서는 "가미"로 숭배하기 위해 신사에 안치된 시신은 다시 옮길 수 없다.
종교적 합리성과 신도 의궤에 관한 문제도 제기된다.[114] 하타 나가미에 따르면, 근세에 신장을 흥행시킨 것은 우라베 요시다 가문이었으며, 이는 종래의 어령 신앙과는 달리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조상 숭배였다.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보신 전쟁과 메이지 유신 전사자 중 신정부군 측만 제사되고, 적군으로 여겨진 구 막부군이나 오우에쓰 열번 동맹군 전사자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세이난 전쟁에서도 정부군 측만 제사되고, 사이고 다카모리 등 사쓰마군은 대상에서 제외된다.[178]
3. 관련 역사
1978년 10월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비밀리에 합사되기 전까지는 신사 참배가 국제법상 허용되었다. 그러나 합사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국제법상 불법으로 간주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공인의 '사적 참배'가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는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국정 요직에 있어도 개인 자격으로 참배하면 문제없다"는 의견과, "총리 등 공인의 참배는 공적 행위로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맞선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 참배 후 "총리대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마음을 담아 참배했다"고 발언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후 후쿠오카 지방재판소 판결에 따라 사적 참배임을 표명했지만, 언론 보도로 참배객이 급증하기도 했다.[124]
3. 1. A급 전범 합사 이전 (1869년 ~ 1978년)
1945년 8월 :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전 수상은 취임 이튿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1차례)[256]
1945년 10월 : 시데하라 기주로 전 수상은 취임 당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2차례)[256]
1951년 10월 :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5차례)[256]
1957년 4월 : 기시 노부스케 총리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2차례)[256]
1960년 10월 : 이케다 하야토 총리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5차례)[256]
1965년 4월 : 사토 에이사쿠 총리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11차례)[256]
1972년 7월 :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는 취임 이튿날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5차례)[256]
1975년 4월 : 미키 다케오 총리는 전후 총리로선 처음으로 종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256]
1977년 4월 :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는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총 4차례)[256]
1975년 5월 :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영국 왕실 수장으로는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야스쿠니 신사가 걸림돌이 돼 외교 일정을 변경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256]
총리 | 참배 횟수 | 참배일 |
---|---|---|
히가시쿠니 나루히코 | 1회 | 1945년 8월 18일 |
시데하라 기주로 | 2회 | 1945년 10월 23일, 1945년 11월 20일 |
요시다 시게루 | 5회 | 1951년 10월 18일, 1952년 10월 17일, 1953년 4월 23일, 1953년 10월 24일, 1954년 4월 24일 |
기시 노부스케 | 2회 | 1957년 4월 24일, 1958년 10월 21일 |
이케다 하야토 | 5회 | 1960년 10월 10일, 1961년 6월 18일, 1961년 11월 15일, 1962년 11월 4일, 1963년 9월 22일 |
사토 에이사쿠 | 11회 | 1965년 4월 21일, 1966년 4월 21일, 1967년 4월 22일, 1968년 4월 23일, 1969년 4월 22일, 1969년 10월 18일, 1970년 4월 22일, 1970년 10월 17일, 1971년 4월 22일, 1971년 10월 19일, 1972년 4월 22일 |
다나카 가쿠에이 | 5회 | 1972년 7월 8일, 1973년 4월 23일, 1973년 10월 18일, 1974년 4월 23일, 1974년 10월 19일 |
미키 다케오 | 3회 | 1975년 4월 22일, 1975년 8월 15일, 1976년 10월 18일 |
후쿠다 다케오 | 4회 | 1977년 4월 21일, 1978년 4월 21일, 1978년 8월 15일, 1978년 10월 18일 |
국기 | 인물 | 직함 | 방문일 |
---|---|---|---|
찰스 윌리엄 엘리엇 | 하버드 대학교 명예 총장 | 1913년 7월 10일 | |
너새니얼 월터 바너디스턴 | 영국 육군 소장 | 1914년 12월 14일 | |
조제프 조프르 | 프랑스 원수 | 1922년 1월 21일 | |
카롤 2세 | 루마니아 왕세자 | 1920년 7월 7일 | |
웨일스 공 에드워드 | 웨일스 공 | 1922년 4월 18일 | |
구스타프 6세 아돌프 | 스웨덴 왕세자 | 1926년 9월 12일 | |
글로스터 공작 헨리 | 글로스터 공작 | 1929년 5월 5일 | |
덴마크 왕세자 프레데리크 | 덴마크 왕세자 | 1930년 3월 18일 | |
칼 왕자 | 스웨덴 왕자 | 1930년 11월 21일 | |
찰스 린드버그 | 1931년 8월 27일 | ||
장도번 | 중화민국 입법원장 | 1956년 4월 19일 | |
우 누 | 전 미얀마 총리 | 1960년 3월 23일 | |
아르투로 프론디지 | 아르헨티나 대통령 | 1961년 12월 15일 | |
라마 9세 | 태국 국왕 | 1963년 6월 4일 | |
줄리오 안드레오티 | 이탈리아 국방부 장관 | 1964년 10월 7일 | |
다니엘 스미스 | 미국 해군 해군 소장 | 1969년 4월 9일 | |
요하네스 슈타인호프 | 공군 참모총장 | 1970년 1월 12일 | |
바오 다이 | 전 베트남 황제 | 1973년 2월 14일 | |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 | 통가 국왕 | 1973년 11월 |
3. 2. A급 전범 비밀 합사 이후 (1978년 ~ 현재)
1978년 10월, 도조 히데키를 포함한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 신사에 비밀리에 합사되면서, 이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국제법상 불법으로 간주된다.[9] 이는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이들의 합사 문제와, 일본과 제2차 세계 대전 피해국 간 역사 인식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1985년 8월 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참배를 시작으로, 역대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어지며 논란은 증폭되었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1996년 7월 29일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총 6차례 참배했다.[13] 아베 신조 총리 역시 2006년 관방장관 시절 비밀 참배 후, 2013년 12월 26일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주변국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63]
총리뿐 아니라, 일본 정치인 및 각료들의 참배도 계속되었다. 2009년 10월 20일 일본 여야 의원 54명, 2013년 4월 23일 국회의원 168명이 단체 참배했다. 2013년 8월 15일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 2014년 8월 15일 각료 3명 및 국회의원 84명이 참배하는 등,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계속 이어졌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참배 외에도, 신사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으로도 주목받았다. 2011년 12월 26일 중국인 류창의 '신문'(神門) 방화 시도,[86] 2015년 11월 23일 남쪽 입구 근처 화장실 폭탄 폭발 사건[89] 등이 있었다. 2000년대 초부터는 중국 서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사이버 공격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85]
쇼와 천황은 1978년 A급 전범 합사 이후 1989년 사망할 때까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했다.[11] 2006년 공개된 궁내청 총리대신 도미타 도모히코의 각서에는 쇼와 천황이 A급 전범 합사에 불쾌감을 표하며 참배 중단 이유를 밝힌 내용이 담겨 있다.[12]
4.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
야스쿠니 신사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제안이 제시되고 논의되고 있다. 주요 제안은 다음과 같다:
A급 전범 분사 문제A급 전범 합사에 대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이들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분리하여 다른 곳에 모시는 '분사' 방안이 제시되었다.
- 분사 찬성 측:
- A급 전범은 국제적으로 전쟁 범죄자로 규정되었으며, 이들이 합사된 것은 국제 사회의 비판을 야기한다.
-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은 일본이 극동 국제 군사 재판의 판결을 수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은사는 형 집행을 종료하는 것일 뿐, 명예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마이니치 신문은 분사가 "모시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164]
- 분사 반대 측:
- 야스쿠니 신사 측은 신도 교리상 분사가 불가능하며, 일단 합사된 신은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158][159][160]
- 신도 정치 연맹은 분사 요구가 정교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162]
- 일부에서는 A급 전범 분사가 전쟁 책임 문제를 왜소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오히라 마사요시 전 총리는 "A급 전범 또는 대동아 전쟁이라는 것에 대한 심판은 역사가 할 것이다"라고 언급했다.[161]
- 2006년 한국의 연합뉴스는 A급 전범을 제외하더라도 정치 문제화가 해소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165]
국립 추도 시설 설치 문제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국립 추도 시설을 설치하자는 제안도 있다.
- 설치 찬성 측:
- 야스쿠니 신사는 종교 시설이며,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전몰자를 추도하기에 부적합하다.
- 공명당은 "일본 국민도 외국 요인도 천황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마음으로부터 전몰자를 추도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167]
-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처럼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전몰자를 추모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 설치 반대 측:
- 일본 유족회는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하는 시설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 오노다 히로오는 야스쿠니 신사가 전우들과의 약속 장소이며, 새로운 시설은 "죽은 인간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한다.[105]
-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자유민주당은 국민 여론 등을 이유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172][173]
야스쿠니 신사 폐지론이시바시 단잔은 1945년 동양경제신보사론에서 야스쿠니 신사 폐지 의안을 발표했다.[153] 그는 야스쿠니 신사가 일본의 국제적 입장, 제사 제전의 실현 가능성, 국민 감정, 그리고 만주 사변 이후 군 관계자들의 책임을 고려할 때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타
- 2015년 8월 야스쿠니 신사는 교도 통신의 질문에 "자위대원이 전사해도 야스쿠니 신사에 모시는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166]
5. 국제 사회의 견해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의 합사 문제와 일본 및 2차대전 피해국들의 역사 인식 문제 등을 쟁점으로 하며, 국제 사회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나타나고 있다.
; 미국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헨리 하이드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야스쿠니 신사를 재방문한 후 미국 의회에서 연설한다면 미국 의회를 당황하게 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미국 재향 군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15]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주일본 미국 대사관은 "일본은 소중한 동맹국이자 친구이다"라고 전제하며, "미국은 일본 지도자가 주변국과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동을 취한 것에 실망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204][205][206][207]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주일본 대사관과 동일한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209]
커트 캠벨 전 국무부 차관보는 2014년 1월 1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회합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미국의 외교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일·중·한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새로운 우려를 낳는다"고 비판했다.[212]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수석부장은 "미일 방위 협력을 위한 지침의 재개정 등 미일 간의 과제가 변화하는 것은 없다. 그러한 과제는 미국의 국익이기도 하다"고 말했다.[212]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4년 1월 23일, 복수의 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미 정부가 일본 정부에 비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213]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2014년 2월 27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중국 정부가 기뻐했을 것이다"라며, 중국의 일본 비판을 결과적으로 후원하는 형태가 되었다는 의미에서 반대한다고 말했다.[214][215]
; 유엔
국제 연합은 1946년 제1회부터 2012년 제67회까지의 국제 연합 총회에서 일본에 대해 총리 등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금지나 자제를 결의로 채택한 적이 없으며, 결의안이 제안된 적도 없다.[216][217]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변인은 "과거에 관한 긴장이 지금도 (동북아시아) 지역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는 성명을 발표했다.[218]
; 중국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1985년 8월 나카소네 총리의 참배 이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견해를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220]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 리자오싱은 고이즈미의 참배를 비난하며 "만약 독일 지도자들이 히틀러와 나치와 관련된 (기념관)을 방문한다면 유럽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고 질문했다.[14]
2005년 반일 시위 이후, 중국 부총리 우이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앞두고 방일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문제 등 일본의 국내 문제에 외국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데 대한 반응으로 널리 해석되었다.
; 대한민국
대한민국 정부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나 각료가 참배하는 것"을 문제 삼고 있다. 2006년, 한국 정부는 A급 전범의 분사만으로는 야스쿠니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정부 방침으로 결정했다.
2003년 2월,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14명의 A급 전범을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그는 "만약 그 옵션이 실현된다면, 저는 고이즈미나 다른 일본 지도자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중화민국 (대만)
대만에서는 대만인 일본군고사고 의용대에 대한 징병제로 인한 전사자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대해 일부에서 비판이 있다.
본성인으로 처음 중국 국민당 주석과 중화민국 총통이 된 리덩후이는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222]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아베 신조 총리의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전 위안부로 추정되는 여성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비난했다.[223]
2016년 5월 정권 교체가 일어나 민주진보당 정권이 된 차이잉원 총통 시대에는 대만 외교부가 일본에 항의를 하지 않게 되었다.[224]
; 기타 국가
- 싱가포르: 리셴룽 총리는 2005년 5월 "야스쿠니 신사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쟁 범죄자가 모셔져 있으며, 싱가포르를 포함한 많은 나라 사람들에게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227] 2013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싱가포르 외무부 대변인은 "싱가포르는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234]
- 파키스탄: 파키스탄 외무성은 2013년 12월 27일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한 질문에 "지역의 다른 국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지역의 조화를 해치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 러시아: 러시아 외무성 공식 대표 루카셰비치 정보국장은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유감의 뜻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논평을 발표했다.[236] 2013년 12월 30일,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전화 회담을 갖고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함께 비판한 후, 역사 문제에서 공조하는 방침을 확인했다.[237]
- EU: 외교·안보 정책 고위 대표인 캐서린 애슈턴의 대변인은 2013년 12월 26일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건설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238][239]
-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2002년 당시)은 고이즈미 총리에게 "참배하면 일본의 아시아와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세계 속에서 일본은 고립될 위험이 있다. 주의해주길 바란다"고 충고했다.[240]
; 기타 단체
국제위기그룹은 2005년 12월 보고서 "동북아시아 분쟁의 저류"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우익 단체의 역사 해석 수정 시도는 중·한 양국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증폭시켰다"고 비판했다.[241]
홀로코스트 기록 보존 및 반유대주의 감시 등을 하는 유대인 단체 사이먼 비젠탈 센터는 2013년 12월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윤리에 반한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242]
6. 일본 내 견해
1948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사형당한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의 합사 문제와 일본과 2차대전 피해국들의 역사 인식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 논쟁의 주요 쟁점이다.[10]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의 역사에 대한 전쟁 박물관(유슈칸)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10] 이 박물관이 역사 수정주의적 해석을 제시한다고 비판한다. 박물관 다큐멘터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이 동아시아를 정복한 것을 서구 열강으로부터 이 지역을 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묘사하며, 난징 대학살 등 잔학 행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야스쿠니 신사의 정치적 함의는 국가신도의 이데올로기, A급 전범 합사 및 면죄, 일본 전몰자 유족회(Izokukai|遺族会일본어)의 영향력, 일본 엘리트들이 대중의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는 점 등 네 가지 요인으로 설명된다.
일본 전몰자 유족회는 1947년 설립되어 전사자 가족 지원 및 정부 로비를 해왔다. 1953년 재단으로 전환되면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게 되었고, 자유민주당과의 비공식적 연결 통로로 여겨진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논란의 대상이다. 쇼와 천황은 1978년부터 A급 전범 합사를 이유로 참배를 중단했다.[11][12]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가장 논란이 많은 참배자 중 한 명이었다. 2005년 10월 17일 참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반발을 샀다.[13]
고이즈미의 연례 참배는 전 세계에서 비판을 받았다. 2005년 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부장 리자오싱은 독일 지도자의 히틀러 관련 기념관 방문에 비유하며 비난했다.[14] 2006년,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헨리 하이드는 고이즈미의 참배가 미국 의회를 당황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15]
아베 신조는 취임 전인 2006년 4월에 신사를 참배했다.[16] 이후 중국과의 타협이 시사되었다.[17] 아베는 전임자의 참배를 지지했으며,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최소 한 번 이상 신사를 참배했다.[18][19][20]
2007년 6월 7일, 리덩후이 전 중화민국 총통은 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사를 참배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신사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21] 이는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에 기여했다.[22]
2008년 4월 22일, 자유민주당과 국민신당 소속 국회의원 62명이 신사를 참배했다.[23]
2013년 4월 23일, 일본 국회의원 169명이 신사를 참배했다.[24]
일본 내 참배에 대한 여론은 다양하다.[25][26] 겐론 NPO의 2015년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66%는 참배에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27]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2006년 여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절반이 고이즈미의 참배를 지지했다.[28]
신사 참배는 일본 정부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일부 자유민주당 정치인들은 참배가 종교의 자유에 의해 보호된다고 주장한다. 세속적 기념관 건설 제안은 기술적인 문제로 실패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무도관에서 매년 전쟁 기념 행사를 연다.
2003년 2월, 김대중 전 대한민국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를 비판하며 A급 전범을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제안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신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이며, 일부 일본 관찰자들은 야스쿠니 신사 문제가 중국의 국내 정치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41]
일본 법원은 생존자와 유족의 야스쿠니 합사 취소 소송을 여러 차례 기각했다. 신토에서는 신사에 안치된 시신은 다시 옮길 수 없다.
가오 진수메이 정치인이 이끄는 대만 원주민 단체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친족을 빼달라고 요청하려 했으나, 일본 시위대와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47]
총리의 참배가 일본국 헌법의 정교분리 조항에 위배되는지 여부는 논란거리다. 많은 사람들은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위헌성을 의심한다. 총리들은 참배 후 기자들에게 참배의 성격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대부분의 일본 국민과 법학자들은 아직 헌법 위반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
2014년, 아베 신조와 그의 내각 구성원, 국회의원 다수가 역사 수정주의 로비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었다.[48][49]
야스쿠니 신사의 견해는 논란의 대상이다. 신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의 행동을 자위 행위이자 유럽 제국주의를 격퇴하려는 노력으로 간주한다. 총리의 참배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몰자를 추모할 다른 장소가 없다고 지적한다.
논란 완화를 위해 A급 전범을 다른 장소에 안치하거나 별도의 세속적인 기념관을 만드는 등의 제안이 있었다. 신사는 가미는 분리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일본 (미확인) 전쟁 사망자를 위한 기념관인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千鳥ヶ淵戦没者墓苑일본어이 야스쿠니 신사 근처에 있다.
2008년 3월, 자유민주당의 이나다 토모미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은 야스쿠니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요구했다.[83] 일본 영화 감독 협회는 표현의 자유 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84]
2019년 1월 7일, 크리처스의 트위터 계정에 야스쿠니 신사 방문 사진이 게시되었다가 삭제되었다.[91][92][93]
2021년 2월 11일, 일본 성우 카야노 아이는 야스쿠니 신사 방문 사실을 밝혀 논란이 되었다. 그녀는 사과했지만, 중국 비디오 게임에서 그녀의 음성 작업이 제거되었다.[94]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소송
2001년 (헤이세이 13년) 8월 13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 참배에 대한 소송에서는 위헌 판단이 내려진 사례가 있었지만, 부대 의견으로 언급되었고 원고 패소 판결이 확정되었다. 최고재판소는 헌법 판단을 피했다.
재판소 | 판결 연월일 | 참배의 성격 | 헌법 판단 | 배상 청구 |
---|---|---|---|---|
오사카 지방법원(1심) | 2004년 2월 27일 | 공적 | - | × |
마쓰야마 지방법원 | 2004년 3월 16일 | - | - | × |
후쿠오카 지방법원 | 2004년 4월 7일 | 공적 | 위헌 | × |
오사카 지방법원(2심) | 2004년 5월 13일 | 사적 | - | × |
지바 지방법원 | 2004년 11월 25일 | 공적 | - | × |
나하 지방법원 | 2005년 1월 28일 | - | - | × |
도쿄 지방법원 | 2005년 4월 26일 | - | - | × |
오사카 고등법원(1심) | 2005년 7월 26일 | - | - | × |
도쿄 고등법원 | 2005년 9월 29일 | 사적 | - | × |
오사카 고등법원(2심) | 2005년 9월 30일 | 공적 | 위헌 | × |
다카마쓰 고등법원 | 2005년 10월 5일 | - | - | × |
; 후쿠오카 지방법원 판결
2004년 (헤이세이 16년) 4월 7일 후쿠오카 지방법원은 부대 의견에서 총리의 참배에 대해 정교 분리에 위반하고 위헌이라고 언급했다.[135]
2004년 (헤이세이 16년) 10월 21일, "영령에 답하는 모임"은 재판관 파면을 요구하는 소추 청구서를 제출했다.
; 지바 지방법원 판결
2004년 (헤이세이 16년) 11월 25일, 지바 지방법원은 참배는 공무로 인정하고, 원고의 위자료 청구를 기각했다.
; 도쿄 고등법원 판결
2005년 (헤이세이 17년) 9월 29일, 도쿄 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지지하고, 원고 측 항소를 기각했다. 다만 1심과 달리 참배는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인 행위"로 인정했다.
; 오사카 고등법원 판결(2심)
2005년 (헤이세이 17년) 9월 30일, 오사카 고등법원은 고등법원 단계에서 첫 위헌 판단을 나타냈다. 판결은 참배는 "총리의 직무로서 행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일본 정부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서명했고, 제11조에서 극동 국제 군사 재판소 등의 재판을 수락한다고 명시했다. 조약 발효 후, 복역 중인 수형자에 대한 사면과 형 집행 종료·석방에 합의하고, 전원을 사면했다. 일본 국회는 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자는 국내법상 범죄자가 아니라고 결의했다.
- 1952년 6월 9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전범 수감자의 석방 등에 관한 결의"[179]
- 1952년 12월 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전쟁 범죄에 의한 수형자의 석방 등에 관한 결의"[180]
- 1953년 8월 3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전쟁 범죄에 의한 수형자의 사면에 관한 결의"[181]
- 1955년 7월 19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전쟁 수형자의 즉시 석방 요청에 관한 결의"[182]
- 1956년 (쇼와 31년) 12월 3일 -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 관련 질의응답[183]
2005년 10월 25일 중의원에서, 당시 고이즈미 내각은[184] A급·B급·C급 전쟁 범죄자로 유죄 판결을 받은 군인 등에 대해 "우리나라의 국내법에 근거하여 선고된 형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185]
; 정당별 견해
정당 | 공식 견해 | 비고 |
---|---|---|
자유민주당 | 정해져 있지 않음 | 당원 중 찬반 양론[186] |
입헌민주당 | 정해져 있지 않음 | |
국민민주당 | 정해져 있지 않음 | 당원 중 찬반 양론 |
공명당 |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187] | |
일본공산당 |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188] | |
사회민주당 |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
; 기타 단체 및 언론의 견해
- 일본유족회: 2005년 6월, 총리 참배에 감사하지만 주변국 배려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정리했다. 이후 참배 지속을 요구하며, A급 전범 분사는 신사 자체의 문제라고 밝혔다.
- 간사이 경제 동우회: 2006년 4월,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제언을 발표하며,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관해서는 상호 내정 불간섭을 주장했다.[189]
- 경제 동우회: 2006년 5월, 중·일 관계에 대한 제언을 발표하며,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 재고를 요구했다.[190]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에 의한 영향을 부인했다.
- 신사본청: 2005년 6월 성명에서 야스쿠니 신사는 전몰자 위령의 중심 시설이며, 수상은 참배해야 하고, "A급 전범"은 국내법상 범죄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191]
- 신일본 종교 단체 연합회: 수상·각료의 공식 참배에 반대하며, A급 전범 합사는 신사 자체의 판단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192]
- 전일본 불교회: 수상·각료의 참배에 반대한다.[192]
- 일본 기독교 협의회: 수상·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팸플릿을 출판하고, 항의 성명을 발표한다.[193]
- 진종교단 연합: 수상·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항의 성명을 발표한다.[194]
- 창가학회: 수상의 참배에 반대한다.[192]
- 행복의 과학: 수상의 참배에 찬성하며, 중국과 한국의 주장은 신교의 자유 침해라고 주장한다.[192]
- 요미우리 신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 와타나베 츠네오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절대로 참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196]
- 아사히 신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
- 마이니치 신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한다.
- 산케이 신문: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찬성하며, 사설에서 총리의 참배를 강력히 요구한다.[198][199][200]
7. 연표
- 1932년 5월 5일 : 조치 대학 예과에 배속된 일본 제국 육군 장교가 학생 60명을 인솔하여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을 때, 가톨릭 신자인 학생 2명이 참배를 거부한 것에 대해 육군이 압력을 가해 가톨릭 교회를 탄압했다.
- 1945년 12월 15일 :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의 국가 신도 폐지 방침인 「신도 지령」에 따라 야스쿠니 신사는 하나의 종교 법인이 되었다.
- 1946년 9월 : 종교 법인 야스쿠니 신사의 등기를 완료했다.
- 1947년 5월 3일 : 일본국 헌법 시행 (정교 분리를 규정).
- 1951년 10월 18일 : 요시다 시게루 총리 이하 각료, 중참 양원 의장이 모두 모여 야스쿠니 신사가 종교 법인이 된 후 처음으로 거행한 추계 예대제에 공식 참배했다. 총리의 참배는 6년 만이었다. 이 공식 참배는 같은 해 9월 8일의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조인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 1952년 4월 28일 :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효.
- 1955년 11월 17일 : 정부는 내각총리대신, 기타 국무대신이 국무대신의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헌법 20조 3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왔으며, 사안의 성질상 신중한 입장을 취하여 국무대신으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삼가는 것을 일관된 방침으로 해 왔다.
- 1959년 3월 28일 : 국립 지토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이 준공되었다.
- 1964년 8월 15일 :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서 정부 주최 전몰자 추도식을 개최했다.
- 1969년 6월 30일 : 자민당, 처음으로 야스쿠니 신사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심의 미비로 폐안)
- 1970년 4월 14일 : 야스쿠니 신사 법안, 두 번째 제출. (5월 13일, 폐안)
- 1971년 1월 21일 : 야스쿠니 신사 법안, 세 번째 제출. (5월 24일, 제안 이유 설명 후 폐안)
- 1972년 5월 22일 : 야스쿠니 신사 법안, 네 번째 제출. (6월 16일, 폐안)
- 1973년 4월 27일 : 야스쿠니 신사 법안, 다섯 번째 제출. (중의원 내각위에서 계속 심의·심의 동결)
- 1973년 12월 20일 : 마에오 시게사부로 중의원 의장, 야스쿠니 신사 법안의 심의 동결 해제.
- 1974년 5월 25일 : 야스쿠니 신사 법안을 중의원 본회의에서 가결했다. (6월 3일, 참의원에서 폐안)
- 1975년 8월 15일 : 미키 다케오 총리가 참배했다. 「사인」으로서의 참배 (사적 참배 4 조건 = 공용차 미사용, 옥수료를 사비로 지출, 직함 기재하지 않음, 공직자 수행시키지 않음)라고 명언했다. 총리에 의한 종전의 날 참배는 처음.
- 1976년 6월 : 신사 본청 및 일본 유족회가 중심이 되어 「영령에 답하는 모임」이 결성되어 「수상 및 각료에 의한 공식 참배」를 요청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 1978년 8월 15일 : 후쿠다 다케오 총리가 참배했다. 공용차 사용, 공직자 수행 하에 「내각총리대신」으로 기장하면서도 사적 참배를 주장했다.
- 1978년 10월 17일 : 극동 국제 군사 재판 (도쿄 재판)에서 A급 전범 14명을 국가의 희생자 「쇼와 순난자」로 합사했다 (다음 1979년4월 19일에 신문 보도로 일반에 알려지게 된다). 수상 미키의 「사적 참배 4 조건」 (1975년)을 정부 통일 견해로 인정한 적이 없다고 내각 법제국이 발언 (참의원 내각 위원회). 합사된 것은 사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 히로타 고키, 마쓰이 이와네, 도이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시로, 기무라 헤이타로, 무토 아키라 7명과 구류·복역 중에 사망한 우메즈 미지로우, 고이소 구니아키, 히라누마 기이치로, 도고 시게노리, 시라토리 도시후미, 마쓰오카 요스케, 나가노 오사미 7명의 총 14명.
- 1979년 4월 21일 : 기독교도인 오히라 마사요시 총리가 춘기 예대제에서 참배 (A급 전범 합사 보도 2일 후).
- 1980년 8월 15일 : 스즈키 젠코 총리와 함께 각료가 대거 참배했다.
- 1980년 11월 17일 : 「사인」 참배를 인정하는 미야자와 기이치 관방장관이 중의원에서의 답변 (정부 통일 견해) 「정부는 수상, 기타 국무대신이 그 자격으로 참배하는 것은 헌법 20조 3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 위헌이라고도 합헌이라고도 단정하지 않았지만 위헌이 아니냐는 의문을 아직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정부는 국무대신의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삼가는 것을 일관된 방침으로 해 왔다」[243]。
- 1981년 3월 18일 : 「모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이 결성되었다.
- 1981년 8월 15일 : 스즈키 젠코가 참배했다.
- 1982년 8월 15일 : 스즈키 젠코가 참배했다. 언론의 「사인」인가 「공인」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 1984년 1월 5일 :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참배했다. 질문에 「내각총리대신 나카소네 야스히로」라고 답했다. 현직 총리의 연두 참배는 전후 처음이었다.
- 1985년 8월 9일 : 후지나미 다카오 관방장관의 사적 자문 기관 「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관한 간담회」 (야스쿠니 간담회)가 공식 참배 가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 1985년 8월 14일 : 후지나미 다카오 관방장관 담화에서 "나카소네 총리는 총리의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다.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과의 관계는 강하게 유의하고 있으며, 공식 참배가 종교적 의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참배 방식으로 분명히 한다. ((신도)|가시와데]]를 치지 않고 옥수료가 아닌 헌화료를 공비에서 지출하는 등의) 이번 방법이라면 헌법이 금지하는 종교적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라고 발표했다.
- 1985년 8월 15일 : 나카소네 총리 등 각료 17명이 참배했다.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치고 한 번 절」하는 신도 형식이 아닌 본전에서 일례. 공비에서 헌화료를 지출. 이 이후의 참배는 형식상 사적 참배가 된다). 이후 11년간 종전의 날 참배는 이루어지지 않는 시기가 이어졌다.
- 1985년 8월 20일 : 후지나미 관방장관은 "전몰자에 대한 추도를 목적으로 본전 또는 사두에서 일례하는 방식으로 참배하는 것은 헌법 20조 3항의 규정에 위반할 의혹이 없다"고 판단했으므로, "1980년 11월 17일의 정부 통일 견해를 그 한도 내에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122]
- 1986년 8월 14일 : 고토다 마사하루 내각관방장관 담화에서 "작년에 실시한 공식 참배는 과거 우리나라의 행위로 인해 막대한 고통과 손해를 입은 인접 제국의 국민 사이에 그런 우리나라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A급 전범에 대해 예배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낳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다양한 기회에 표명해 온 과반의 전쟁에 대한 반성과 그 위에 선 평화 우호에 대한 결의에 대한 오해와 불신마저 낳을 우려가 있다"며 "내각총리대신의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공식 참배는 삼가기로 했다"고 발표했다.[130]
- 1986년 8월 15일 : 모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장 오쿠노 세이스케)이 집단으로 참배했고, 총리는 참배를 삼갔다.
- 1988년 3월 14일 : 아카호타이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 사무소와 다케시타 노보루에게 협박장이 보내졌다 (발송일은 3월 11일). 나카소네에게는 「우리 부대는 작년 2월 27일 밤 젠쇼안에서 귀하를 노렸다」, 「야스쿠니와 교과서 문제로 민족을 배신했다」, 「만약 처형 리스트에서 빼고 싶다면 다케시타에게 압력을 가하라」, 다케시타에게는 「귀하가 8월에 야스쿠니 참배를 하지 않으면 우리 부대의 처형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젠쇼안은 나카소네가 좌선을 하러 자주 방문했던 선사로, 협박장의 날짜에는 실제로 좌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배를 중지한 나카소네를 표적으로 삼아 후임 총리가 된 다케시타에게 참배를 강요했다.
- 1991년 1월 10일 : 센다이 고등법원이 이와테현의 야스쿠니 소송에서 합헌 판결했다. (방론으로 위헌 언급. 총리대신의 공식 참배를 위헌으로 한 것은 처음).
- 1991년 9월 4일 : 1991년 3월에 방론에 불복한 현이 상고하여, 센다이 고등법원은 「이와테현이 판결 주 문에서 전면 승소했다」고 하여 기각했다. 9월 4일에, 이 센다이 고등법원의 결정을 불복한 현의 특별항고에 대해, 최고 재판소 제2소법정은 「항고의 이유가 없다」고 하여 기각, 확정되었다.
- 1992년 2월 28일 : 나카소네 공식 참배 (1985년 8월 15일)에 대한 규슈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 위헌 소송의 후쿠오카 고등법원 판결. 위헌으로 판시.
- 1992년 7월 30일 : 나카소네 공식 참배 (1985년 8월 15일)에 대한 간사이 야스쿠니 공식 참배 소송의 오사카 고등법원 판결. 위헌 의혹이 있다고 판시. 이후 확정.
- 1996년 7월 29일 :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가 자신의 59세 생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11년 만.
- 1997년 4월 2일 : 에히메 옥수료 소송에서 위헌 판결. 최고 재판소 대법정 판결 「전몰자 유족의 위로가 목적이라고 해도 현이 야스쿠니 신사·호국 신사 등에 옥수료를 공비에서 지출한 것은 헌법이 금지한 종교 활동에 해당하며 위헌이다」[244]。
- 1999년 8월 6일 : 노나카 히로무 관방장관은 기자 회견에서 개인적인 견해라고 단정하면서 「수상과 모든 국민이 마음으로부터 위령할 수 있도록 그 방식을 생각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에 접어들었다」, 「A급 전범을 분사하고 야스쿠니가 종교 법인 자격을 벗어나 순수한 특수 법인으로 국가의 희생이 된 사람들을 국가의 책임 하에 모시고, 국민 전체가 위령을 하고, 각국 수뇌에게 헌화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245]。
- 2001년 5월 9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전몰자를 참배하는 것이 종교적 활동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이 헌법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을 담아 경의와 감사의 정성을 바치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담아 개인으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생각이다"라고 중의원 본회의에서 명언했다.[246][247]。
- 2001년 7월 11일 : 칸자키 타케노리 공명당 대표는 "헌법 20조 (정교 분리)와 89조 (공비 지출)에 위반하는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문제가 있다"고 발언했다. 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당수는 "연립을 구성하는 가운데 헌법 위반을 이유로 소극적이라면 수상과 논의하여 제대로 결론을 내야 한다. 애매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일본 기자 클럽에서의 당수 토론에서)라고 발언했다.
- 2001년 7월 30일 : 다나카 마키코 외무대신은 "헌법 20조에 있는 것처럼 총리는 국가의 최종 책임자이며 국가의 의지 그 자체이다. 여기는 개인이다 무엇이다 나누는 그런 고식적인 수단은 사용하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 2001년 8월 13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참배했다. 참배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참배한 것에 대한, 참배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전언을 뒤집고 종전의 날을 피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다. 참배는 8월 11일에 비서관을 통해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는 명의의 헌화료 30000JPY을 사비로 납입했다. 야스쿠니에 왕복하는데 공용차를 사용하여 후쿠다 야스오 내각 관방장관과 비서관을 수행했다. 집회소에서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기장했다. 신사 배전에서 몸을 정화하는 「오사라이」를 받고 본전에 승전하여 제단에 묵념한 뒤 신도식이 아닌 일례 방식으로 참배했다. 헌화료가 아닌 헌화료로 한 것은 효고현 다키군 사사야마정 (현 단바사사야마시)이, 분에 전몰자 유족에게 향과 초를 배포한 것을 놓고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에 반하는지 다툰 소송에서, 「오본」, 「고키단」, 「영령」, 「공물」, 「합장」등의 종교 용어를 사용한 문서가 위헌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고베 지방 법원의 지적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248]。
- 2001년 8월 15일 : 야스쿠니 신사에 면한 거리에서 야스쿠니 찬성파와 반대파의 충돌이 있었고, 고지마치 경찰서에 따르면 쌍방에 부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사이토 타카오는 찬성파가 일방적으로 부상시켰다고 하고 있다.[249]。
- 2001년 11월 1일 : 고이즈미 공식 참배 (같은 해 8월 13일)에 대한 오사카·마쓰야마·후쿠오카 각 지방 법원 제소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가 코멘트: 「말이 안 돼. 세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거야. 이제 말이 안 돼」 (같은 날 각 신문 석간, 다음 날 같은 조간). 후쿠다 관방장관의 코멘트: 「어디가 헌법 위반인가요. 내각총리대신인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참배했다고요」, 「그런 말을 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신앙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은 바로 헌법 위반이 아닌가요」.
- 2001년 12월 14일 : 중국, 한국 등에서 비판이 나오자 후쿠다 야스오 내각 관방장관은 국립 전몰자 추도 시설을 건설하는 구상을 시작하고 사적 자문 기관 「추도·평화 기원을 위한 기념비 등 시설의 모습에 대한 간담회」 (좌장 이마이 케이)를 발족시켰다.[250]
- 2002년 2월 : 부시 대통령이 대테러 전쟁 협력에 대한 답례의 뜻을 담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신청했다. 전승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참배하면 비판의 근거를 잃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당시 정부는 그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일본 측에서 요청하여 메이지 신궁 참배로 변경했다.[251]。
- 2002년 3월 : 한국 주재 무관 참배.
- 2002년 4월 21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참배.
- 2002년 12월 24일 : 후쿠다 내각 관방장관의 자문 기관 「추도·평화 기원을 위한 기념비 등 시설의 모습을 생각하는 간담회」가 보고서[252]를 제출했다. 「추도·평화 기원을 하기 위한 국립의 무종교의 영구적인 시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정부의 책임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 후 간담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 2003년 1월 14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참배.
- 2004년 1월 1일 : 고이즈미 준이치로, 참배.
- 2004년 4월 7일 : 후쿠오카 지방 법원이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01년 8월 13일)에서 피고 측 승소 판결 (가메카와 키요나가 재판장이 방론으로 위헌 언급). 그것을 받은 고이즈미 수상은 기자단의 질문에 「사적인 참배라고 해도 좋다」고 말해 공사의 구별을 일부러 모호하게 해 온 기존의 자세를 전환했다.
- 2004년 11월 25일 : 지바 지방 법원 (재판장: 안도 히로코)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2001년 8월 13일)에 대해 참배는 공적이라고 인정하고 피고 측 승소 판결 (헌법 판단은 하지 않음).
- 2004년 12월 8일 : 일본 기자 클럽에서의 강연에서 칸자키 타케노리 공명당 대표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중일 관계의 장애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 눈에는 해결 방법은 (1) 참배를 자제한다 (2) A급 전범의 분사를 검토한다 (3) 국립 추도 시설을 건설한다 -의 3가지밖에 없다」라고 말했다.[253]。
- 2005년 4월 27일 : 중국의 왕이 주일 대사는 중일 양국 정부 간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한 「신사 협정」이 존재하고, 수상과 외무상, 관방장관은 참배해서는 안 된다고 자민당의 외교 조사회에서의 강연 중에 발언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는 「신사 협정」은 나카소네 내각 당시 중국 측의 요청으로 구두로 이루어졌다고 발언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협정의 존재를 부정했다. 다음 날 4월 28일, 나카소네 전 총리는 「왕 대사의 기억 착오」라고 말하며 「신사 협정」의 존재를 부정. 중국 대사관에 전화로 항의했다고 기자단에 말했다.
- 2005년 9월 29일 : 「야스쿠니 소송」 도쿄 고등 법원 (하마노 시즈카 재판장)은 1심의 지바 지방 법원 판결을 지지하고, 원고 측 항소를 기각 (단 참배는 사적인 것으로 변경, 헌법 판단은 하지 않음).
- 2005년 9월 30일 : 오사카 고등 법원이 고이즈미 야스쿠니 소송에서 피고 측 승소 판결 (오타니 마사하루 재판장이 방론으로 고이즈미 수상의 참배를 둘러싼 소송으로는 고등법원 단계에서 첫 위헌 언급).
- 2005년 11월 3일 : 중국의 탕자쉬안(王へんに旋) 국무위원(전 외상)은 1985년의 나카소네 수상에 의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받아, 수상과 외무상 및 관방장관은 참배하지 않는다는 신사 협정을 중일 양국 정부 간에 체결했다고, 방중했던 오사카부와 교토시, 효고현의 각 지사와의 회담 중에 발언했다.
- 2005년 11월 5일 : 공명당 전국 대표자 회의에서 당 대표 칸자키 타케노리는 「정권의 중추에 있는 수상, 외무상, 관방장관은 참배를 자제해야 한다. 앞으로도 자제를 요구하겠다」라고 말했다. 칸자키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수상에게 자제를 요구해 왔지만 외무 대신과 관방장관에 대해서까지 자제를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칸자키의 발언은 4월 27일에 중국의 왕이 주일 대사가 중일 양국 정부 간에 수상과 외무상 및 관방장관은 참배하지 않는다는 「신사 협정」이 존재한다고 한 발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 외무성과 나카소네 전 총리는 「신사 협정」의 존재를 부정).
- 2005년 11월 9일 :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하는 국립 전몰자 추도 시설을 목표로 하는 초당파 의원 연맹 「국립 추도 시설을 생각하는 모임」이 발족했다. 회장에 야마자키 타쿠 (자민당,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낙선), 부회장은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와 후유시바 테츠조 (공명당). 설립 총회에는 후쿠다 야스오 (자민당)와 당시 공명당 대표 칸자키 타케노리 등 100명이 참가했다.
- 2006년 8월 15일 :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총리로서의 마지막 여름, '''「X데이에 참배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자민당을 중심으로 국내외에서 추측했지만, 2006년 8월 15일 오전 7시 40분경, 현직 총리로는 1985년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후 21년 만에 8월 15일 참배를 했다. 오전 7시 30분경 수상 관저를 출발하여 10분 뒤 모닝 모습을 도착. 본전에 들어가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치고 한 번 절」하는 신도 형식이 아닌 일례 형식의 참배. 체재 시간은 15분 정도였다.
- 2013년 12월 26일 : 아베 신조는 제90대 총리 시절 참배를 하지 못한 것은 「통한의 극치」라고 말했지만, 제96대 총리 취임 1주년을 맞은 이날 총리 관저에서 출발하여 오전 11시 30분경 모닝 모습으로 참배했다. 아울러 진령사 (영어: Chinreisha)에도 참배했다. 참배 후 신사 사당 안에서 NHK 등의 텔레비전 중계를 통해 기자 회견을 하고 참배의 마음을 말했다. 또 같은 날 총리대신 관저 홈페이지에 일본어, 영어, 중국어 언어로 「아베 내각총리대신의 담화 ~ 항구적 평화에 대한 맹세 ~」라는 담화도 게재되었다.[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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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国参拝が突然、中国・韓国の外交カードになった理由 中国に何度もご注進した朝日新聞と左翼メディアの亡国ぶり {{!}} JBpress (ジェイビープレ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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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田恒泰『天皇の国史』における「靖国神社御親拝」の正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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