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노블레스 오블리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 권력, 명성이 도덕적 책임을 수반한다는 의미로, 특히 사회적 모범을 보이고 책임을 다하는 것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14세기 칼레 시민들의 희생에서 유래된 이 용어는 1808년 피에르마르크가스통 드 레비에 의해 처음 언급되었고, 1836년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에서 인용되며 널리 알려졌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사회 기반 시설 건설과 병역 의무를 통해 사회 통합에 기여했으며, 영국에서는 왕족과 귀족이 군 복무를 하는 전통으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에서는 부유층, 유명인, 권력층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상류계급 - 문신 (관료)
    문신은 문치를 담당하는 관료를 지칭하는 용어로, 중국에서 유래하여 일본에서는 율령제 도입 후 문관과 무관을 구별하였고 현대 일본에서는 방위성 직원 중 자위관을 제외한 일부 상근 직원과 공안 직원을 포함한다.
  • 상류계급 - 상류층
    상류층은 부를 통해 소득을 얻고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가장 높은 계층으로, 역사적으로 토지 소유 및 귀족 신분과 관련되었으나 현대에는 기업가, 고위 임원, 전문직 종사자 등을 포함하며, 각 국가별로 형성과 특징이 다르다.
  • 도덕 - 윤리학
    윤리학은 도덕적 행위와 가치를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분야로, 고대부터 다양한 사상이 발전해 왔으며, 규범 윤리학, 응용 윤리학, 가치론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뉜다.
  • 도덕 - 양심
    양심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내적 도덕적 인식으로,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되며 개인의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 행동, 그리고 초국가적 문제와도 관련되어 문학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루어진다.
  • 프랑스어 낱말 - 부르주아지
    부르주아지는 중세 도시의 상공업자에서 유래하여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 계급을 의미하며, 봉건 사회 붕괴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으나,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 계급과 대립하며 문화적 헤게모니와 과시적 소비로 비판받고, 역사와 예술에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된다.
  • 프랑스어 낱말 - 오일어
    오일어는 "예"를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oïl"에서 유래한 용어로, 북부 갈로-로망스어와 그 후손 언어들을 지칭하며, 단수형은 고대 로망스어 변종을, 복수형은 현대의 여러 언어들을 가리키고, 프랑스어 외 왈롱어, 피카르디어 등을 포함하며 프랑스의 언어 정책으로 화자 수 감소와 고령화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개념
개념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감을 의미한다.
어원프랑스어 구절인 "noblesse oblige"에서 유래되었다.
의미사회 엘리트 계층이 그들의 특권에 상응하는 의무를 져야 한다는 개념을 나타낸다.
역사적 맥락
역사적 기원이 개념은 중세 시대의 봉건 사회에서 비롯되었으며, 귀족은 그들의 지위와 부에 따라 영토를 방어하고 백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발전시간이 지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단순히 물리적인 보호 의무를 넘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감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현대적 의미
사회적 책임현대 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유층, 유명인, 정치인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천기부, 자선 활동, 사회 봉사, 공익을 위한 헌신 등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윤리적 중요성
공정성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구성원 간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 전체의 공정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공동체 의식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은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사회 통합을 촉진할 수 있다.
비판적 시각
강요된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사회적 압력에 의한 강요된 의무로 변질될 수 있다는 비판이 있다.
위선사회 지도층의 행동이 진정성이 없이 이미지 관리용으로 비칠 경우, 위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사례
역사적 사례전쟁에 참여한 귀족, 지역 사회를 위한 자선 활동을 펼친 부유한 사업가 등.
현대적 사례거액을 기부하는 유명인,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가,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 등.

2. 어원

14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의 도시 ‘칼레’는 영국군에게 포위당했다. 1347년, 칼레는 영국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지만, 더 이상 원병을 기대할 수 없어 결국 항복을 하게 된다. 후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에게 자비를 구하는 칼레시의 항복 사절단이 파견된다. 그러나 점령자는 “모든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누군가가 그동안의 반항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며 “이 도시의 대표 6명이 목을 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칼레 시민들은 혼란에 처했고 누가 처형을 당해야 하는지를 논의했다. 모두가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칼레에서 가장 부자인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Eustache de St Pierre프랑스어)’가 처형을 자청하였고 이어서 시장, 상인, 법률가 등의 귀족들도 처형에 동참한다. 그들은 다음날 처형을 받기 위해 교수대에 모였다. 그러나 임신한 왕비의 간청을 들은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했던 시민 여섯 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살려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고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 된다.[17]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일반적으로 부, 권력, 그리고 명성이 책임감을 수반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프랑스어에서 'oblige'는 동사 'obliger'의 3인칭단수현재형으로, 목적어를 동반하지 않는 절대 용법이다. 명사는 아니다.

이 말 자체는 1808년 피에르마르크가스통 드 레비의 기술 "'''noblesse oblige'''"[12]를 발단으로 하여, 1836년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에서 이를 인용[13]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어에서는, 패니 켐블이 1837년편지[14]에 "……확실히, '귀족은 의무를 진다(noblesse oblige)'면, 왕족은 (그에 비해) 더 많은 의무를 져야 한다."라고 쓴 것이 최초이다.[15]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귀족에게 자발적인 사심 없는 행동을 촉구하는 명문화되지 않은 불문율의 사회 심리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자부심·자존심이지만, 그것을 외형적인 의무로 받아들이면, 사회적(그리고 아마도 법적인) 압력으로도 간주된다.

법적인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이것을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률상의 처벌은 없지만, 사회적 비판·지탄을 받거나, 윤리나 인격을 문제 삼기도 한다.

3. 역사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용어는 1808년 피에르마르크가스통 드 레비가 사용한 "'''noblesse oblige'''"[12]라는 표현에서 비롯되었으며, 1836년 오노레 드 발자크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에서 이 표현을 인용하면서[13]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어권에서는 패니 켐블이 1837년에 쓴 편지[14]에서 "……확실히, '귀족은 의무를 진다(noblesse oblige)'면, 왕족은 (그에 비해) 더 많은 의무를 져야 한다."라고 쓴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15]

최근에는 주로 부유층, 유명인, 권력자, 고학력자들이 "사회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귀족에게 자발적이고 사심 없는 행동을 촉구하는, 명문화되지 않은 불문율이자 사회 심리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심리적인 자부심과 자존심에 기반하지만, 외형적인 의무로 받아들여질 경우 사회적, 경우에 따라 법적인 압력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 법적인 의무는 아니므로,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률적인 처벌을 받지는 않지만, 사회적인 비판이나 지탄, 윤리 및 인격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3. 1. 고대 로마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뜻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로마제국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로마제국의 귀족들은 노예와 달리 신분뿐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18]

3. 1. 1. 병역 의무

로마 공화정과 고대 그리스의 지배계급들은 사회공동체에서의 의무를 다할 때 특권이 주어지는 권리였다. 로마 공화정에서 귀족들은 재산을 사회공동체에 되돌림을 하였으며, 인민(Poplus)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솔선하여 국방의 의무를 다하였다. 귀족들은 한니발(라틴어:hannibal)이 지휘한 카르타고 군대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하였고, 16년 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중에는 13명의 집정관(Consul)이 전사하였다.[18] 귀족들이 너무 많이 전사하여 사회공동체에서 귀족들은 15분의 1 미만으로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전사자의 3분의 1이 귀족인 적도 있었다.[18]

집정관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고위공직자로 귀족계급을 대표하며, 로마 공화정의 관리 중에서 가장 높은 관직이었다. 또한 로마에서는 병역 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호민관이나 집정관 등의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없었을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당연하게 여겨졌다.[19]

귀족이 21세기 현재에도 존재하는 영국에서는 상류 계급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요구된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귀족과 왕족 자제에게 전사자가 많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영국군에 종군했으며, 포클랜드 전쟁에도 앤드루 왕자 등이 영국군에 종군했다. 현재에도 예를 들어 고등학교 졸업 후 갭 이어에 윌리엄 왕자가 칠레에서, 해리 왕자가 레소토의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황족과 왕공족의 남자들은 국민 개병주의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따라 솔선하여 일본군 군무(근위 사단 등)에 임하게 되었다. 전사하거나 전사병한 사람도 나왔으며, 특히 기타시라카와노미야 가문은 3대에 걸쳐 전사나 전몰로 사망했다. 러일 전쟁에서는 간인노미야 코토히토 친왕이 기병 제2여단장으로 출정하여 최전선에서 러시아 제국 육군과 싸웠다. 같은 전쟁에서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은 연합 함대 기함 「미카사」 분대장으로 황해 해전에 참가하여 전상을 입었다.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도 육군 장교 "와카스기 참모 대위"로서 중국 전선의 중국 파견군에 종군했다(종전 시에는 대본영에서 소령). 다만 입대한 황족의 대우는 일반 장교나 병사와는 별격인 경우가 많았다. 황족 여자도 일본 적십자사 등의 기관에서 공헌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황족이나 왕공족 정도는 아니지만 화족 남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기초하여 가능한 한 군무에 임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3. 1. 2. 기부 활동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하고, 그 대가로 해당 시설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다. 또한 법을 제안한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법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5]

  • 아피아 가도 (Via Appia): "아피우스의 길"이라는 뜻으로, 기원전 312년 재무관이었던 아피우스가 입안하고 원로원이 가결하여 건설되었다. 아피우스 자신이 건설 총감독을 맡았다.
  • 라티나 가도 (Via Latina)
  • 티부르티나 가도 (Via Tiburtina)
  • 노멘타나 가도 (Via Nomentana)
  • 셈프로니우스 도로법: 셈프로니우스가 제안한 도로법
  • 율리우스 농지법: 율리우스가 제안한 농지법


헬레니즘 시대에는 유지적이라 불리는, 공공 기관에 자금을 지원하고 부를 분배하는 자선 행위가 있었다. 이는 전통의무에 기반한 상호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사적이고 집중적인 도시화 및 투자를 활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습은 시민 엘리트 계층에게 사회적 기대를 통해 경제적 개입을 하도록 유도했고, 대중은 박애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복종과 충성을 요구했다.[6]

이와 유사하게, 고대 로마 사회의 후원-고객 관계와 귀족 계급이 평민에게 베푼 온정적 의무전통적인 사회 계층을 강화하고 충성심을 고취하는 비슷한 목적을 가졌다. 로마 식민지 내 로마 거주민들의 집단 유지와 관련된 유사한 기대 역시 존재했다.[7]

미국에서는 셀러브리티명사들이 봉사 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수행의 예와도 통하는 생각이다.

3. 1. 3. 사회 통합

지배계급인 로마의 귀족들이 사회적인 의무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전통은 로마 사회 통합을 이루었으며[18], 나라에서도 장려책을 사용해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유지적으로 알려진 공공 기관에 자금을 지원하고 부를 분배하는 자선 행위가 있었다. 이는 전통의무에 근거한 상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사적이고 집중적인 도시화 및 투자를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시민 엘리트가 사회적 기대를 통해 경제적 개입을 하도록 묶었고, 대중은 박애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충성을 갖도록 묶었다.

더 큰 규모에서 이러한 상호 의존은 조공 국가와 그 주권자 사이의 공생적인 외교 관계에서 관찰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최근에 획득한 국가에 자금을 지원하여 정복과 종속을 해방의 형태로 묘사하려 함으로써 이 정책을 공식화했다.[6]

마찬가지로, 고대 로마 사회의 후원-고객 관계와 귀족 계급이 평민에게 유지했던 상호 온정적 의무전통적인 사회 계층을 강화하고 충성심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했다. 로마 식민지 내에서 로마 거주민들의 집단 유지를 둘러싼 유사한 기대도 존재했다.[7]

3. 2. 영국

영국은 영국 왕실 및 왕실에 속한 귀족들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는데,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영국 병역법과 왕실 내부 규율에 따라, 이들은 희망하는 시기에 장교 신분으로 군 복무를 마쳐야 한다.[16] 포클랜드 전쟁에는 앤드루 왕자헬리콥터 조종사로 참전했고,[16] 찰스 왕세자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군 복무를 했다.[16]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1945년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영국 여자 국방군에서 군 복무를 했다.[16] 이후 영국에서 징병제가 폐지되었더라도, 왕실 및 왕실 귀족들은 왕실 규율과 병역법에 따라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16]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귀족과 왕족 자제들의 전사자가 많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군에 종군했으며, 포클랜드 전쟁에도 앤드루 왕자 등이 참전했다. 윌리엄 왕자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갭 이어에 칠레에서, 해리 왕자는 레소토의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윌리엄은 홈리스 지원 사업의 후원자로, 노숙 생활을 체험하고 빅이슈 판매원을 맡기도 했다.[16]

3. 3. 미국

고대 로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은 미국에도 전승되어, 미국의 법령에 제안자의 이름이 들어간 “매케인-파인골드법”(McCain-Feingold Act)처럼 법률 명칭을 부르거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가 세운 카네기멜론 대학교, 은행가 존스 홉킨스가 세운 존스 홉킨스 대학교와 같이 설립자의 이름을 붙인 대학 등이 현재 미국에 존재한다. 미국은 로마와 같이 상업주의를 추구하며, 법률이 매우 발달해 있고, 영향력은 전 세계적인 점에서도 고대 로마와 매우 닮았다. 원로원민회로 구성된 고대 로마의 정치 제도도 하원상원으로 모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셀러브리티명사봉사 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 (소위 CSR의 예)과도 통하는 생각이다.

3. 4.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조선시대 의병활동에 참여한 선비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솔선수범의 미덕이 퇴색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3. 4. 1. 대한민국의 병역 의무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저명인사나 소위 상류계층의 병역기피가 매우 오래된 병폐로 잔존하고 있다. 군인 정신교육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매우 강조하고 있으나, 고대 로마나 미국처럼 법률 명칭이나 공공시설 명칭 등에 귀족의 이름을 붙여서 “혜택”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귀족계층 내부의 유행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

《마흔에 읽는 손자병법》에 따르면, 김유신 장군(진골계급)등의 신라시대 지배계급들은 삼국통일을 위한 백제, 당나라와의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그래서 피지배계급들에게 국가를 위한 헌신을 요구할 수 있었다. 경영학자 예종석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도 신라 지배계급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한다.[18]

  • 반굴의 전사: 반굴은 김유신 장군의 동생인 김흠춘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조카이다. 그는 목숨을 다해 싸웠고, 이를 본 품일 장군도 관창에게 목숨을 다하여 싸우라고 하였다. 이를 본 신라 장병들이 힘을 내어 싸우니, 계백장군의 결사대에게 몰린 황산벌 전투에서 이겼다.
  • 원술이 나당 전쟁 당시 석문전투에서 패전하였음에도 살아서 돌아오자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
  • 김유신은 평양에 식량을 보내는 노동을 하였으며(671년, 67세), 일본, 고구려, 중국 당나라와 외교를 하였다.

3. 4. 2. 대한민국의 기부 활동

대한민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의병활동에 참여한 선비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사회 저명인사나 소위 상류계층의 병역기피가 오랫동안 심각한 문제로 남아있다. 군대 정신교육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고 있지만, 고대 로마나 미국처럼 귀족의 이름을 법률 명칭이나 공공시설 명칭에 붙여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귀족계층 내부의 유행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조선 정조 때 흉년으로 고통받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을 사서 나눠준 거상 김만덕, 군수업으로 번 돈을 독립운동에 대부분 사용한 최재형,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무장투쟁과 교육사업을 펼친 김좌진, 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을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이러한 역사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나오는데, 고씨 가문은 경주 최부잣집을 본보기로 만들어졌다. 극중 영어 역관은 미국공사관 무관 유진 초이에게 "한성 사람들이 고애신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는 고사홍 어르신에게 은혜를 입지 않은 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미국에서 숙주나물 통조림 회사를 운영할 당시 녹두를 공급하던 중국 상인탈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유한양행을 설립한 후에는 도덕적 해이를 경계하여 정경유착, 탈세, 마약생산을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주식회사 체제로 경영하여 사원들이 경영에 참여하도록 했다. 유일한은 이렇게 번 돈으로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했다.

4. 현대 사회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 권력, 명성이 책임감을 수반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윤리적 논의에서 이 용어는 도덕 경제를 요약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데, 특권은 그러한 특권이 없거나 의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부자, 유명인, 권력자의 공적 책임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며, 특히 모범을 보이거나 최소한의 품위 기준을 초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유지적이라 불리는 공공 기관에 자금을 지원하고 부를 분배하는 자선 행위가 있었다. 이는 전통의무에 기반한 상호 관계를 만들기 위해 도시화 및 투자를 사용했다. 시민 엘리트는 이러한 사회적 기대를 통해 경제적 개입을 하고, 대중은 박애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충성을 하도록 묶였다.

고대 로마 사회의 후원-고객 관계와 귀족 계급이 평민에게 유지했던 온정적 의무는 전통적인 사회 계층을 강화하고 충성심을 불어넣기 위해 존재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1835년에 쓰고 1836년에 출판한 ''계곡의 백합''에서 젊은이에게 특정 행동 기준을 권장하며 "방금 말씀드린 모든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오래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라고 결론지었다.[8]

이 말은 1808년 피에르마르크가스통 드 레비의 기술 "'''noblesse oblige'''"[12]를 발단으로 1836년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에서 이를 인용[13]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영어에서는 패니 켐블이 1837년편지[14]에 쓴 것이 최초이다.[15]

최근에는 주로 부유층, 유명인, 권력자, 고학력자가 사회의 모범이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에 관해 사용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귀족에게 자발적인 사심 없는 행동을 촉구하는 명문화되지 않은 불문율이다. 법적인 의무는 아니기 때문에, 이를 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법률상의 처벌은 없지만, 사회적 비판을 받거나 윤리나 인격을 문제 삼기도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이 도로와 건물 등 사회 기반 시설 정비 등의 건축비를 지불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 대신 건설한 도로와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아피아 가도는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쿠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귀족이 21세기 현재에도 존재하는 영국에서는 상류 계급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요구된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귀족과 왕족 자제에게 전사자가 많았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공주였던 엘리자베스 2세영국군에 종군했으며, 포클랜드 전쟁에도 앤드루 왕자 등이 영국군에 종군했다. 현재에도 고등학교 졸업 후 갭 이어에 윌리엄 왕자가 칠레에서, 해리 왕자가 레소토의 고아원에서 봉사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윌리엄은 홈리스 지원 사업의 후원자이기도 하며, 직접 노숙 생활을 체험한 외에도, 「빅이슈」의 판매원을 맡기도 했다.[16]

미국에서는 셀러브리티명사봉사 활동이나 기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수행과도 통하는 생각이다.

일본에서도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의 황족과 왕공족의 남자들은 국민 개병주의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따라 솔선하여 일본군 군무에 임하게 되었다. 전사하거나 전사병한 사람도 나왔으며, 특히 기타시라카와노미야 가문은 3대에 걸쳐 전사나 전몰로 사망했다. 러일 전쟁에서는 간인노미야 코토히토 친왕이 기병 제2여단장으로 출정하여 최전선에서 러시아 제국 육군과 싸웠다.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은 연합 함대 기함 「미카사」 분대장으로 황해 해전에 참가하여 전상을 입었다.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도 육군 장교로서 중국 전선의 중국 파견군에 종군했다. 다만 입대한 황족의 대우는 일반 장교나 병사와는 별격인 경우가 많았다. 황족 여자도 일본 적십자사 등의 기관에서 공헌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화족 남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에 기초하여 가능한 한 군무에 임하는 것이 요구되었다.

5. 비판

일부 비평가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귀족에게 고귀하게 행동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동시에, 그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해 왔다. 법학자 미키 디아스와 웨슬리 뉴컴 호펠드는 권리와 의무가 ''법률적 상호 관련성''[11]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누군가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들에게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디아스의 논리는 Murphy v Brentwood District Council (1991)에서 알프레드 데닝의 Dutton v Bognor Regis Urban District Council (1972) 판결을 반박하는 데 사용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Noblesse | Etymology, origin and meaning of noblesse by etymonline https://www.etymonli[...]
[2] 서적 The New Yale Book of Quotations https://books.google[...] Yale University Press 2021-08-31
[3] 서적 Familiar Quotations https://archive.org/[...] Little, Brown
[4] 서적 Maximes et réflexions sur différents sujets de morale et de politique https://books.google[...] P. Didot
[5] 웹사이트 Luke 12 {{!}} English Standard Version :: ERF Bibleserver https://www.bibleser[...] 2023-08-08
[6] 웹사이트 Euergetism {{!}} Ancient Greco-Roman Society {{!}} Britannica https://www.britanni[...] 2024-04-13
[7] 웹사이트 Who Were the Patrons and Clients in Roman Society? https://www.thoughtc[...] 2024-04-13
[8] 문서 English translation: ''Lily of the Valley'' http://www.gutenberg[...]
[9] 문서 Lawrie, Lee, Lee Lawrie: Sculpture J.H. Jansen
[10] 문서 Masters, Margaret Dale, Hartley Burr Alexander: Writer-in-Stone Jacob North Printing Company
[11] 서적 Jurisprudence
[12] 서적 Maximes, Réflexions, Essais (ed.2)
[13] 서적 Le Lys dans la vallée
[14] 서적 Records of later life London
[15] 서적 Oxford English Dictionary 2nd Ed. Oxford University Press
[16] 뉴스 Prince William spotted selling Big Issue in central London https://www.bbc.com/[...] BBC 2022-06-10
[17] 뉴스 칼레의 시민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https://news.naver.c[...] OSEN 2009-05-12
[18] 서적 노블리스 오블리주 살림출판사
[19] 서적 예수 신화인가, 역사인가 책세상
[20] 서적 노블레스 오블리주 살림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