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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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흑천은 인도 밀교와 티베트 불교에서 숭배되는 신으로, 시바신의 분노한 모습인 마하칼라가 기원이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무역상이나 일반 대중에게 재물의 신으로 숭배받는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중국과 일본에서 숭배되었는데, 중국에서는 부엌의 수호신으로, 일본에서는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되어 재복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진다. 일본에서는 쥐와 쥐띠, 에비스와 짝을 이루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숭배되며, 칠복신 중 하나로도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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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흑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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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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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 종류 | 불교 |
이름 | 다이코쿠텐 |
다른 이름 | 마카카라 (摩訶迦羅) 마카카라텐 (摩訶迦羅天) 다이코쿠텐진 (大黒天神) 다이코쿠손텐 (大黒尊天) 다이코쿠-산 (大黒さん) 다이코쿠-사마 (大黒様 / 大黒さま) |
일본어 표기 | 大黒天 |
소속 | 데바 마하칼라 (원형) 오쿠니누시 (결합) |
만트라 | 옴 마하칼라야 스바하(On Makakyaraya sowaka) |
상징 | 자루, 망치, 쌀 가마니 |
동물 | 생쥐 또는 쥐 |
힌두교 대응 신 | 시바, 쿠베라 |
역할 | |
신격 대상 | 재산, 행운, 가정, 농업, 풍요, 성, 전쟁의 신 |
소속 | 칠복신 |
2. 인도 밀교와 티베트 불교
힌두교의 신 시바의 한 측면이었던 마하칼라(Mahākāla, '위대한 시간' 또는 '위대한 흑')는 인도 밀교에 수용되어 '대흑천(大黑天)'이라는 이름의 호법선신이 되었다.[3][4][5] 초기에는 시바와 유사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나, 후기 밀교와 이를 계승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불교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힌두교의 신들을 제압하는 강력한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대흑천 신앙은 티베트, 몽골, 네팔 등지로 퍼져나가 무역상들 사이에서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민간에서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도 신앙되었다.
2. 1. 인도 밀교
산스크리트어 용어 '마하칼라'(Mahākāla)는 "위대한 흑(黑)", "위대한 시간" 또는 "위대한 죽음"[3]을 의미한다. 이는 본래 힌두교의 신 시바가 가진 여러 칭호 중 하나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궁극적인 시간(''kāla'')의 힘을 상징하는 시바의 한 측면을 나타냈다.[4]이 시바의 속성이자 이름인 마하칼라는 이후 불교, 특히 인도 밀교에 받아들여졌다. 불교에서는 '마하칼라'를 '대흑천(大黑天)'으로 번역했는데, '마하(Mahā)'는 '''대(大)'''(위대한)를, '칼라(kāla)'는 '''흑(黒)'''(암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위대한 암흑의 신'이라는 뜻을 부여했다. 불교 안에서 대흑천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의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그 이름처럼 푸르스름한 검은 피부에 분노하는 표정을 지닌 모습으로 묘사된다.[5]
초기 밀교의 대흑천은 그 기원인 시바와 유사하게 네 개의 팔을 가지고 각각 삼지창, 곤봉, 고리, 밧줄 등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흑천 신앙은 더욱 발전하여, 힌두교의 다른 주요 신들인 브라마와 비슈누까지 포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힌두교의 삼신일체(트리무르티) 관념에 대응하여 세 개의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가진 분노상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후기 밀교를 계승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대흑천(마하칼라)의 모습이 더욱 다양해졌다. 얼굴이 하나이거나 셋이고, 팔은 두 개, 네 개, 또는 여섯 개를 가진 형태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신앙되었다. 특히 티베트 불교의 대흑천은 시바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 혹은 아들 가네샤 등을 발밑에 짓밟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 이는 힌두교의 신들을 제압함으로써 불교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불법을 수호하는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강력한 호법신으로서의 이미지는 티베트, 몽골, 네팔 등지로 전파되면서, 무역상들 사이에서는 재물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신앙되기도 했으며, 티베트 민간에서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2. 2. 티베트 불교
후기 밀교를 계승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대흑천(마하칼라)의 모습이 매우 다채롭게 나타난다. 한 얼굴 두 팔, 한 얼굴 네 팔, 한 얼굴 여섯 팔부터 세 얼굴 두 팔, 세 얼굴 네 팔, 세 얼굴 여섯 팔 등 다양한 형상을 하고 있다.
대흑천은 시바 신에서 유래했지만, 티베트 불교에서는 종종 시바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 또는 아들 가네샤를 발밑에 짓밟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힌두교의 신들을 제압하고 불교를 수호하는 강력한 호법신으로서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티베트, 몽골, 네팔 등지에서는 무역상들 사이에서 재신(財神)으로서 숭배받았으며, 특히 티베트에서는 민간 신앙 속에서 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3. 동아시아 불교
산스크리트어 '마하칼라'(Mahākāla|마하칼라san)는 본래 힌두교 신 시바의 여러 이름 중 하나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시간(kāla)의 힘을 상징했다.[3][4] 불교는 이 신격을 받아들여 불법을 수호하는 법호신으로 삼았으나, 밤의 숲을 배회하며 악귀들을 이끄는 무서운 신의 모습도 함께 지니게 되었다.[5]
마하칼라는 여러 중국 불교 경전에 등장하며, 특히 9세기 이후 윈난 성 지역의 난자오, 달리 왕국과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원나라 시대에 중요한 신으로 부상했다.[6][7] 이름은 摩訶迦羅|모호가라zho로 음역되거나 '위대한 검은 신'이라는 뜻의 大黑天|대흑천zho으로 번역되었다. 중국 불교에서 마하칼라는 사람의 생명력을 빼앗는 무서운 존재[5][8], 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서 악마를 정복하는 모습[9][10][11], 또는 사찰의 부엌을 지키며 재물을 가져다주는 수호신[14]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7세기 승려 의정은 인도 사찰 부엌과 현관에 모셔진 마하칼라 상에 음식을 공양하는 풍습을 기록하며, 기도를 통해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으로 묘사했다.[14][15][16] 이러한 믿음은 마하칼라가 재물과 복을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중국 민간에서는 다산 및 풍요와 관련된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17][18][19]
일본에는 주로 밀교를 통해 전래되어 천부의 하나로 신앙되었다. 처음에는 군신(軍神)이나 전투신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점차 중국에서 강조된 재복(財福)신의 성격이 부각되었다.[14] 일본 고유의 신 오쿠니누시와 신불습합되면서 풍요와 부를 상징하는 신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다이코쿠상(大黒さん)"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칠복신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3. 1. 중국

산스크리트어 용어 '마하칼라'(Mahākāla|마하칼라san)는 "위대한 검은 존재", "위대한 시간" 또는 "위대한 죽음"[3]을 의미하며, 본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존재인 시간(kāla)의 한 측면으로서 힌두교의 신 시바를 칭하는 말 중 하나였다.[4] 불교는 시바의 이러한 칭호와 속성을 받아들였고, 마하칼라는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법호으로 재해석되었다. 그러나 밤에 숲을 배회하며 가나 무리와 악귀들을 거느린 무서운 신의 모습도 지니게 되었다.[5]
마하칼라는 많은 중국 불교 경전에 등장하지만, 중국에서 그의 형상을 묘사한 것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는 드물었다. 9세기 이후, 현재의 윈난 성 지역에 있던 난자오와 달리 왕국에서 마하칼라 숭배가 성행했는데, 이 지역은 티베트와 인접하여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영향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 시대에는 그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 황궁과 수도인 한바릭 안팎의 불교 사찰에 그의 모습이 모셔졌다(현재 남아있는 이미지는 많지 않다).[6][7] 마하칼라의 이름은 摩訶迦羅|모호가라zho로 음역되었고, 大黑天|대흑천zho, 즉 '위대한 검은 데바'로 번역되었다. 이는 '칼라(kāla|칼라san)'를 '검은색'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일부 경전에서는 마하칼라를 "사람들의 생명력을 훔치는 악마"와 같이 무서운 신으로 묘사하며, 살과 피를 먹는다고 설명한다. 다만, 불교의 삼보에 죄를 지은 자들만 먹는다고 덧붙이기도 한다.[5][8] 당나라 시대 승려 의정이 저술한 대일경소에는 마하칼라가 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 나타나, 살을 먹는 여성 악마인 다키니들을 삼켜 정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하칼라는 다키니들이 더 이상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풀어주었으며,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생명력, 즉 '인황'(人黄|인황zho)이 담겨 있다고 믿어지는 심장만을 먹도록 허락했다.[9][10][11] 아모가바즈라가 번역한 인왕경에는 비불교 스승이 칼마샤파다 왕자(반족왕, 斑足王)에게 왕위에 오르려면 "묘지의 위대한 흑신"(塚間摩訶迦羅大黑天神|총간마하가라대흑천신zho)인 마하칼라에게 천 명의 왕의 머리를 바치라고 지시하는 이야기가 있다.[8][12][13]
시간이 흐르면서 마하칼라는 특히 부엌을 포함한 사찰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7세기 후반 실리비자야와 인도를 여행했던 승려 의정은 인도 불교 사찰의 부엌과 현관에 마하칼라 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 음식을 공양한다고 기록했다.[14]
> 인도의 큰 사찰에는 부엌의 기둥 옆이나 현관 앞에 높이 약 0.61m~약 0.91m의 목조 신상이 있는데, 금주머니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한 발은 땅으로 드리워져 있다. 항상 기름으로 닦이기 때문에 얼굴은 검게 변했고, 그 신은 마하칼라(莫訶哥羅|모호가라zho) 또는 위대한 흑신(大黑神|대흑신zho)이라고 불린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그는 위대한 신(마헤슈바라)의 존재(천상)에 속한다고 한다. 그는 본래 삼보를 사랑하고, 오중의 불행으로부터 보호한다. 그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룬다. 식사 시간에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등불과 향을 바치고, 신 앞에 모든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다. (...) 중국에서는 그 신의 이미지가 강남 지방에서 자주 발견되었지만, 회북에는 없었다. 그에게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룬다. 그 신의 효능은 부인할 수 없다.[15][16]
의정은 이어서, 쿠시나가르의 마쿠타반다나 사찰을 방문한 500명의 승려들을 위해, 여성 하인 중 한 명이 마하칼라 상 앞에서 기도하고 공양물을 바치자 신이 기적적으로 음식을 마련해 준 일화를 전한다.[15] 이처럼 마하칼라를 사찰에 번영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보는 관념은 이후 일본에서 그를 부와 행운의 신으로 여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14]
중국에서 마하칼라는 다산 및 성적인 힘과도 연관되었다. 중국력 7월 7일인 칠석에는 기혼 여성들이 아이를 갖기를 기원하며 '모허뤄'(魔合羅|모허뤄zho) 또는 '모허우뤄'(摩睺羅|모허우뤄zho)라고 불리는 인형이나 조각상을 사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용어들은 '마하칼라'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17][18][19] 또한, 남성 파트너를 찾거나 임신한 여성에게 마하칼라를 숭배하도록 권하는 의례 문헌도 존재한다.[17]
3. 2. 일본

힌두교의 신 마하칼라는 불교에 수용되어 중국을 거쳐 일본에 전래되었으며, 대흑천(大黒天, Daikokute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주로 밀교 계통인 천태종과 진언종을 통해 전파되었으며, 처음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천부 중 하나로서 군신(軍神)이나 전투신, 또는 부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특히 중국에서 재물과 복을 주는 측면이 강조되어 숭배된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점차 재복신(財福神)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14]
초기 대흑천은 인도와 중국의 영향으로 분노하거나 엄격한 표정을 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나, 일본으로 건너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온화하고 미소를 띤 자비로운 모습으로 변화했다.[20] 이러한 변화는 일본 고유의 신앙과 융합되는 과정과 관련이 깊다.
신불습합 과정에서 대흑천은 신토의 신인 오쿠니누시(大国主)와 동일시되었다. 이는 '대흑(大黒)'의 일본어 발음 '다이코쿠'가 오쿠니누시의 이름 일부인 '대국(大国)'의 음독 발음 '다이코쿠'와 같았기 때문이다.[20][21] 또한 최징이 히에이산 엔랴쿠지의 수호신으로 대흑천을 모셨다는 전승[21]과 히에이산 인근 히요시타이샤의 신앙과 연결되면서 오쿠니누시와의 관련성이 더욱 깊어졌다.
오쿠니누시와의 습합은 대흑천의 모습과 상징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사기에 등장하는 이나바의 토끼 이야기에서 오쿠니누시가 메고 있던 큰 자루[22][23][24]는 대흑천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되었으며, 이 자루에는 칠보[84]가 들어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소원을 이루어주는 우치데노코즈치(요술 망치)와 풍요를 상징하는 쌀가마니를 들거나 밟고 있는 모습으로 흔히 표현된다. 오쿠니누시 신화에서 쥐가 위기에 처한 오쿠니누시를 도왔다는 이야기[27] 때문에 쥐는 대흑천의 사자(使者)로 여겨지게 되었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는 일련종에서도 활발히 신앙되었으며, “대흑님(大黒さん)”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며 민간 신앙 깊숙이 자리 잡았다. 특히 칠복신의 하나로 포함되어 식량과 재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널리 숭배받고 있으며, 어업과 상업의 신인 에비스와 함께 모셔지는 경우가 많다.[20]
3. 2. 1. 역사
산스크리트어 용어 '마하칼라'(Mahākāla)는 "위대한 흑[자], 위대한 시간" 또는 "위대한 죽음"[3]을 의미하며, 원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존재인 시간(''kāla'')의 측면에서 힌두교 신 시바의 칭호 중 하나였다.[4] 시바의 이 칭호와 측면은 결국 불교에 의해 채택되었고, 마하칼라는 불교 법의 수호자이자 법호이지만, 밤에 숲을 배회하며 가나 무리와 악귀들을 거느린 무서운 신으로 재해석되었다.[5] 마하칼라는 군신(軍神)·전투신(戦闘神)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마하칼라는 많은 중국 불교 경전에 언급되어 있지만, 중국에서의 그의 상징적 묘사는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는 드물었다. 그는 결국 9세기 이후 현재 윈난 성에 있는 난자오와 달리 왕국 왕국에서 번성하는 숭배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 지역은 티베트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그의 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다. 티베트의 영향으로 몽골이 이끄는 원나라 시대에 그의 중요성이 더욱 증가하여, 황궁과 한바릭(수도) 안팎의 불교 사찰에 그의 모습이 전시되었지만(대부분의 이미지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6][7] 신의 이름은 摩訶迦羅|마하가라zho(''Makakara / Makakyara''; (Baxter): ''ma xa kae la'')로 한자로 음역되고, 大黑天|대흑천zho(''Daikokuten'', '위대한 흑색 데바', ''kāla''는 '검은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됨; MC (Baxter): ''dajH xok then'')으로 번역되었다.
일부 경전에서는 마하칼라를 무서운 신, "사람들의 생명력을 훔치는 악마"로 묘사하고 있으며, 살과 피를 먹는다고 하지만, 불교의 삼보에 대한 죄를 지은 자만을 먹는다고도 한다.[5][8] 당나라 시대 승려 의징의 ''대일경소'' 주석에 나오는 한 이야기는 마하칼라를 살을 먹는 여성 악마인 다키니들을 삼켜 정복한 불 비로자나불의 현현으로 묘사한다. 마하칼라는 더 이상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들을 풀어주고,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인간의 노란색'(=생명력)(人黄|인황zho, ''jin'ō'')이라고 알려진 생명력이 들어 있다고 믿어지는 심장만 먹을 수 있도록 명령했다.[9][10][11] 아모가바즈라의 ''인왕경'' 번역본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단(즉, 비불교) 스승이 칼마샤파다 왕자(斑足王)에게 왕좌에 오르고 싶다면 "묘지의 위대한 흑신"(塚間摩訶迦羅大黑天神|총간마하가라대흑천신zho)인 마하칼라에게 천 명의 왕의 머리를 바치라고 지시한 것을 보여준다.[8][12][13]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하칼라는 특히 부엌을 포함한 사찰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7세기 후반에 스리위자야와 인도를 여행한 승려 의징은 인도 불교 사찰의 부엌과 현관에는 마하칼라의 이미지가 있었고, 그 앞에 음식을 제물로 바쳤다고 주장했다.[14]
:인도의 큰 사찰에는 부엌의 기둥 옆이나 현관 앞에 높이 약 0.61m~약 0.91m의 목조 신상이 있는데, 금주머니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한 발은 땅으로 드리워져 있다. 항상 기름으로 닦이기 때문에 얼굴은 검게 변했고, 그 신은 마하칼라[莫訶哥羅, ''Bakukakara'', MC (Baxter): ''mak xa ka la''] 또는 위대한 흑신[大黑神, ''Daikokushin'', MC (Baxter): ''dajH xok zyin'']이라고 불린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그는 위대한 신(또는 마헤슈바라)의 존재(천국에)에 속한다고 한다. 그는 본래 삼보를 사랑하고, 오중의 불행으로부터 보호한다. 그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룬다. 식사 시간에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등불과 향을 바치고, 신 앞에 모든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다. (...) 중국에서는 그 신의 이미지가 강남 지방에서 자주 발견되었지만, 회북에는 없었다. 그에게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룬다. 그 신의 효능은 부인할 수 없다.[15][16]
의징은 그 후 여성 하인 중 한 명이 그의 이미지 앞에 기도하고 제물을 바친 후 쿠시나가르의 마쿠타반다나 사찰을 방문한 500명의 승려들을 위해 신이 기적적으로 음식을 제공한 일화를 이야기한다.[15] 마하칼라를 사찰에 번영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보는 이러한 생각은 일본에서 그 신을 부와 행운의 신으로 동일시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14] 중국에서는 마하칼라의 여러 성격 중 특히 재복(財福)을 강조하여 숭배하였고, 이것이 일본에 전래되었다.
중국에서는 이 신이 다산과 성욕과도 관련이 있었다. 칠석(칠석절)은 중국력 7월 7일에 열리는데, 기혼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모허뤄'(魔合羅|모허뤄zho) 또는 '모허우뤄'(摩睺羅|모허우뤄zho)라는 인형이나 조각상을 샀는데, 이 용어는 아마 '마하칼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17][18][19] 의례적 텍스트는 또한 남성 파트너를 찾는 여성이나 임신한 여성에게 마하칼라를 숭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7]
밀교계 천태종과 진언종을 통해 일본에 전래된 마하칼라(대흑천으로서)는 점차 쾌활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부(富)와 다산(多産)을 가져다주는 등 긍정적인 속성이 부각되면서 부정적인 면모는 점차 희미해졌다. 초기의 대흑천 이미지는 노여움을 띤(혹은 엄격한 표정의) 모습이었던 반면, 후대의 작품에서는 웃는 모습으로 일관되게 묘사되었다.[20] 밀교를 통해 전래되었기에 초기에는 주로 진언종과 천태종에서 신앙되었다.
천태종의 창시자 최징은 마하칼라-대흑천 신앙을 일본에 전파한 주요 인물로 여겨진다. 전설에 따르면, 최징이 처음으로 히에이산(교토 북동쪽에 위치)에 올랐을 때, 마하칼라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최징이 구상한 수도 공동체(훗날 엔랴쿠지가 됨)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21] 최징은 비사문천, 변재천과 합체한 삼면대흑(三面大黒)을 엔랴쿠지의 부엌 수호신으로 모셨다고 전해지며, 이것이 일본 대흑천 신앙의 시작 중 하나로 간주된다.
중세 시대에 불교와 일본 고유의 신앙(신토)이 신불습합되면서, 대흑천은 토착 신인 ''가미'' 오쿠니누시(大国主)와 동일시되었다. 오쿠니누시의 이름 앞 두 글자(大国)가 음독으로 '대국(다이코쿠)'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대흑천이 엔랴쿠지의 수호신으로서의 지위도 이러한 연관성에 영향을 미쳤다. 대흑천은 히에이산 동쪽 기슭에 있는 히요시타이샤에 안치된 신인 산왕권현과 동일시되었는데, 산왕권현은 다시 오쿠니누시 또는 오모노누시(미와 묘진, 나라현 미와산의 신으로, 다른 이름으로 또는 그의 한 측면으로 오쿠니누시로 해석되기도 함)와 동일시되었다.[20][21]

대흑천이 지니고 있는 자루나 가방(이미 의징의 인도 마하칼라 묘사에 언급됨)은 이 신을 오쿠니누시와 더욱 연관짓는 역할을 했다. 《고사기》에 나오는 이나바의 토끼 이야기에서 젊은 오쿠니누시는 악독한 형들에게 짐꾼으로 부려졌다고 나온다.[22][23][24] 자루 외에도 대흑천은 ''우치데노코즈치''(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망치)라는 황금 망치와 두 개의 큰 쌀가마니와 같은 다른 속성들을 갖게 되었다. 그는 또한 다산신으로 여겨져, 음탕한 무화과 손짓을 하거나, 의미심장하게 갈라진 무(때로는 "대국이의 신부"라고 불림)를 들고 있거나, 거대한 발기한 페니스를 가지고 있거나, 또는 나무로 만든 남근으로 완전히 표현되기도 했다.[22][25][26]
쥐는 마하칼라와 비사문천, 힌두교의 쿠베라와 유사한 불교적 존재, 그리고 비사문천의 장군이자 약샤 여신 하리티(일본에서는 기시모진으로 알려짐)의 배우자와의 연관성으로 인해 대흑천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모두 북쪽 방향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쥐띠의 중국 십이지에 해당한다.(불교의 십이 지팔 또는 방위 수호신 중 하나는 이샤나로, 북동쪽을 수호하는 신이며, 마하칼라와 마찬가지로 시바의 불교화된 형태이다.) 이것은 또한 쥐가 오쿠니누시 신화에도 등장하기 때문에 대흑천과 오쿠니누시의 동일시에 기여했다.[27]

중세의 주석가들은 마하칼라-대흑천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로 해석했다.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무명의 상징("대국"이라는 이름은 "큰 어둠"으로 해석될 수 있음)으로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명(黒, '검음/어둠'을 상징)과 깨달음(大, '크다'를 나타내는 글자)의 불이일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일자금륜불정(Ekākṣaroṣṇīṣacakra, 우주불 비로자나불의 머리 부분 또는 ''우슈니샤''와 신성한 음절 ''bhrūṃ''의 현현)과 동일시되어 궁극적인 실재의 상징이 되었지만, 장애물의 신으로 여겨지는 방위신 이샤나와도 동일시되었다. 실제로 그의 기원과 관련된 오명 때문에, 일부 경전에서는 그를 ''짓샤''(実者, 문자 그대로 "진짜/실제의 것", 실류(実類), ''짓스루이''라고도 함)로 규정했는데, 이는 깨달은 부처와 보살의 임시적인 현현( ''곤겐'')으로 간주되는 신들보다 열등한 '실제'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세 밀교 불교는 또한 '더 높은' 대흑천의 존재를 상정했는데, 일반적인 대흑천은 그가 취하는 다양한 모습 중 하나에 불과했다. 후자가 무명을 나타냈다면, 전자는 무명을 깨달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여겨졌다.[28]
대흑천은 우가진, 벤자이텐(사라스바티의 불교적 형태), 비사문천, 지신인 견뢰지신(인도의 지모신 프리티비에서 유래했지만, 일본에서는 남성으로 묘사되기도 함[29]), 또는 명왕 부동명왕(일본어로는 후도묘오)과 같은 다른 신들과 연결되거나 동일시되었다.[28] 실제로 부동명왕은 마하칼라-대흑천과 마찬가지로, 일부 자료에서 다키니들을 물리치고 개종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비로자나불의 노여움을 띤 아바타로도 간주된다.(마찬가지로, 부동명왕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시바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30]
대중적인 신앙에서 대흑천은 민간 신인 에비스와 흔히 짝을 이룬다. 대흑천이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된 것처럼, 에비스는 때때로 오쿠니누시의 아들 코토시로누시[8][31] 또는 일본의 땅을 개발하는 데 오쿠니누시를 도왔던 난쟁이 신 스쿠나비코나와 동일시되기도 했다.[32] 가정에서는 두 신이 부엌이나 오븐에 안치되었고, 상인들은 두 신을 상업적 성공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한편 농부들은 두 신을 논의 신( ''타노카미'')으로 숭배했다.[20]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서 일련종에서도 활발하게 신앙되었으며, “대흑님(大黒さん)”이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3. 2. 2. 대흑천의 모습 변화
산스크리트어 '마하칼라'(Mahākāla)는 "위대한 흑[자], 위대한 시간" 또는 "위대한 죽음"[3]을 의미하며, 본래 힌두교의 신 시바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궁극적 존재인 시간(''kāla'')의 측면을 나타내는 칭호 중 하나였다.[4] 이 칭호와 속성은 불교에 받아들여졌고, 마하칼라는 불교 법의 수호자(법호)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밤에 숲을 배회하며 가나 무리와 악귀들을 거느린 무서운 신으로 재해석되기도 했다.[5]
마하칼라는 여러 중국 불교 경전에 등장하지만, 중국에서 그의 형상을 묘사한 것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는 드물었다. 이후 9세기경 현재 윈난 성 지역의 난자오와 달리 왕국에서 마하칼라 숭배가 성행했는데, 이 지역은 티베트와 가까워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티베트의 영향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 시대에는 그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 황궁과 수도 한바릭 안팎의 사찰에 그의 모습이 모셔졌다(현재 남아있는 이미지는 많지 않다).[6][7] 신의 이름은 摩訶迦羅|마하가라중국어(''Makakara / Makakyara'')로 음역되었고, 大黑天|대흑천중국어(''Daikokuten'', '위대한 검은 데바')으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칼라'(''kāla'')는 '검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일부 경전에서는 마하칼라를 사람의 생명력을 훔치고 살과 피를 먹는 무서운 악마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불교의 삼보에 죄를 지은 자들만 먹는다고 설명하기도 한다.[5][8] 당나라 시대 승려 의정이 쓴 대일여래밀다경 주석서에는 마하칼라가 부처 비로자나불의 화신으로 나타나, 살을 먹는 여성 악마인 다키니들을 삼켜 정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하칼라는 다키니들이 더 이상 인간을 해치지 않는 조건으로 풀어주면서,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생명력(人黄|인황중국어, ''jin'ō'')이 담긴 심장만을 먹도록 허락했다고 한다.[9][10][11] 아모가바즈라가 번역한 인왕경에는 이단 스승이 칼마샤파다 왕자에게 왕위에 오르려면 "묘지의 위대한 흑신"(塚間摩訶迦羅大黑天神|총간마하가라대흑천신중국어)인 마하칼라에게 천 명의 왕의 머리를 바치라고 지시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8][12][13]
시간이 흐르면서 마하칼라는 불교 사찰, 특히 부엌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7세기 후반 실리비자야와 인도를 여행했던 승려 의정은 인도 불교 사찰의 부엌과 현관 기둥 옆에 마하칼라 상이 모셔져 있고 그 앞에 음식을 공양한다고 기록했다.[14]
> 인도의 큰 사찰에는 부엌의 기둥 옆이나 현관 앞에 높이 약 0.61m~약 0.91m의 목조 신상이 있는데, 금주머니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한 발은 땅으로 드리워져 있다. 항상 기름으로 닦이기 때문에 얼굴은 검게 변했고, 그 신은 마하칼라[莫訶哥羅, ''Bakukakara''] 또는 위대한 흑신[大黑神, ''Daikokushin'']이라고 불린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그는 위대한 신(또는 마헤슈바라)의 존재(천국에)에 속한다고 한다. 그는 본래 삼보를 사랑하고, 오중의 불행으로부터 보호한다. 그에게 기도하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룬다. 식사 시간에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등불과 향을 바치고, 신 앞에 모든 종류의 음식을 준비한다. (...) 중국에서는 그 신의 이미지가 강남 지방에서 자주 발견되었지만, 회북에는 없었다. 그에게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소원을 이룬다. 그 신의 효능은 부인할 수 없다.[15][16]
의정은 또한 쿠시나가르의 마쿠타반다나 사찰에서 여성 하인이 마하칼라 상 앞에서 기도하고 공양하자, 신이 기적을 일으켜 500명의 승려에게 음식을 제공했다는 일화를 전한다.[15] 이처럼 마하칼라를 사찰에 번영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보는 관념은 일본에서 그를 부와 행운의 신으로 여기게 되는 배경이 되었을 수 있다.[14]
중국에서 마하칼라는 다산과 성적인 힘과도 관련되었다. 칠석에는 기혼 여성들이 아이를 갖기를 바라며 魔合羅|모허뤄중국어 또는 摩睺羅|모허우뤄중국어라는 인형이나 조각상을 샀는데, 이 명칭은 '마하칼라'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17][18][19] 일부 의례 문헌에서는 남성 파트너를 찾거나 임신한 여성에게 마하칼라 숭배를 권하기도 했다.[17]
밀교 계통인 천태종과 진언종을 통해 일본에 전해진 마하칼라(대흑천)는 점차 쾌활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변모했다. 부(富)와 다산(多産) 같은 긍정적인 속성이 강조되면서 무섭거나 부정적인 면모는 희미해졌다. 초기 대흑천 그림은 분노하거나 엄격한 표정을 짓는 경우가 많았지만, 후대 작품에서는 일관되게 웃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20]
천태종의 창시자 사이초는 일본에 대흑천 신앙을 처음 들여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이초가 히에이산에 처음 올랐을 때 대흑천이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가 세우려던 수도 공동체(훗날 엔랴쿠지)의 수호신이 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21]
중세 시대에 불교와 일본 고유의 신토 신앙이 융합되는 신불습합 과정에서, 대흑천은 토착신(가미)인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되었다. 이는 오쿠니누시 이름의 앞 두 글자 '大国'을 음독으로 읽으면 '다이코쿠(대흑)'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대흑천이 엔랴쿠지의 수호신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대흑천은 히에이산 동쪽 기슭의 히요시타이샤에 모셔진 산왕권현과 동일시되었는데, 산왕권현은 다시 오쿠니누시 또는 오모노누시(나라현 미와산의 신으로, 오쿠니누시의 다른 이름 또는 한 측면으로 해석됨)와 연결되었다.[20][21]
대흑천이 들고 있는 자루나 가방(이미 의정의 인도 마하칼라 묘사에도 언급됨)은 오쿠니누시와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했다. 고사기의 이나바의 토끼 이야기에서 젊은 오쿠니누시는 형들에게 짐꾼 노릇을 하며 큰 자루를 메고 다녔다고 묘사된다.[22][23][24] 자루 외에도 대흑천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망치인 우치데노코즈치, 황금 망치, 두 개의 큰 쌀가마니 등 다른 상징물들을 갖게 되었다. 또한 다산신으로 여겨져 음란한 무화과 손짓을 하거나, 의미심장하게 갈라진 무(때로는 "대흑천의 신부"라 불림)를 들고 있거나, 거대한 남근을 가진 모습, 심지어 나무 남근 자체로 표현되기도 했다.[22][25][26]
쥐 역시 대흑천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쥐가 바이슈라바나(일본의 비사문천, 힌두교의 쿠베라와 유사한 불교 신격), 그의 배우자이자 약샤 여신인 하리티(일본의 기시모진), 그리고 북쪽 방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북쪽은 중국 십이지에서 쥐띠에 해당한다. (불교의 십이 방위신 중 하나인 이샤나는 북동쪽을 수호하며, 마하칼라처럼 시바가 불교화된 형태이다.) 또한 쥐는 오쿠니누시 신화에도 등장하므로, 대흑천과 오쿠니누시의 동일시에 기여했다.[27]
중세의 주석가들은 마하칼라-대흑천을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로 해석했다.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무명("대흑"은 "큰 어둠"으로 해석 가능)의 상징으로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명(黒, '검음/어둠')과 깨달음(大, '큼')의 불이일원론적 합일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적 부처인 비로자나불의 정수리(우슈니샤)와 신성한 음절 ''bhrūṃ''의 현현인 일자금륜불정과 동일시되어 궁극적 실재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장애물의 신으로 여겨지는 방위신 이샤나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의 기원 때문에 일부 경전에서는 그를 '짓샤'(実者, 실제의 존재)로 분류하기도 했는데, 이는 깨달은 부처나 보살의 일시적 현현(권현)으로 간주되는 신들보다 낮은 단계의 '실제' 신으로 여겨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중세 밀교에서는 '더 높은' 차원의 대흑천이 존재하며, 일반적인 대흑천은 그가 취하는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이라고 보았다. 후자가 무명을 상징한다면, 전자는 무명을 깨달음으로 전환시키는 힘을 지닌다고 여겨졌다.[28]
대흑천은 우가진, 벤자이텐(사라스바티의 불교 형태), 바이슈라바나-비사문천, 지신 견뢰지신(인도의 지모신 프리티비에서 유래했으나 일본에서는 남성으로 묘사되기도 함[29]), 또는 지혜왕 아찰라(일본의 부동명왕)와 같은 다른 신들과 연결되거나 동일시되기도 했다.[28] 아찰라 역시 마하칼라-대흑천처럼 다키니를 물리치고 교화시킨 존재로 알려져 있으며, 비로자나불의 분노한 화신으로 간주된다. (아찰라 또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시바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30]
대중 신앙에서 대흑천은 민간 신인 에비스와 흔히 짝을 이룬다. 대흑천이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된 것처럼, 에비스는 때때로 오쿠니누시의 아들 코토시로누시[8][31] 또는 일본 땅 개발을 도운 난쟁이 신 스쿠나비코나와 동일시되기도 했다.[32] 가정에서는 두 신을 부엌이나 난로 근처에 모셨고, 상인들은 상업적 성공의 수호신으로 숭배했으며, 농부들은 논의 신(타노카미)으로 섬겼다.[20]
일본에 밀교와 함께 전래된 대흑천은 처음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천부 중 하나로, 군신(軍神)이나 전투신, 또는 부귀영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특히 중국에서 마하칼라의 여러 속성 중 재물과 복을 주는 측면이 강조되어 숭배되던 것이 일본에 전해진 영향이 컸다. 초기에는 밀교 사찰인 진언종과 천태종에서 주로 신앙되었다. 인도에서도 부엌이나 식당의 신으로 여겨졌는데, 일본에서는 사이초가 비사문천, 벤자이텐과 합쳐진 삼면대흑(三面大黒)을 히에이산 엔랴쿠지의 부엌 수호신으로 모신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이후 오쿠니누시와 신불습합되었고, 무로마치 시대에는 일련종에서도 활발히 신앙되어 "다이코쿠상(大黒さん)"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본래 모습은 얼굴 하나에 팔 두 개, 푸르스름한 검은색(青黒) 또는 검은색 피부에 분노하는 표정(忿怒相)으로 표현되었다. 『대흑천신법(嘉祥寺神愷記)』에는 두건(烏帽子)과 바지(袴)를 입고 오른손 주먹을 허리에 대고 왼손으로 큰 자루를 어깨에 멘 부엌신이자 재물신으로 묘사되어 있다.[83] 이 자루 안에는 칠보[84]가 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태장계만다라에서의 대흑천은 시바와 그의 신성한 흰 소 난딘을 굴복시키는 모습의 입상으로 그려지며, 키는 보통 다섯 자(五尺, 약 1.5m)이다. 대부분 얼굴이 하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비사문천, 벤자이텐과 합쳐진 세 얼굴과 여섯 팔을 가진 삼면대흑의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분노하는 모습은 가마쿠라 시대 무렵까지 주로 나타나며, 그 이후 오쿠니누시 신과 합쳐지면서 현재 널리 알려진 온화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드물게 후쿠오카현 관세음사의 대흑천 입상처럼 분노한 모습으로 표현된 예도 남아 있다.
3. 2. 3. 신불습합과 신도
밀교계 천태종과 진언종을 통해 일본에 전래된 마하칼라(대흑천)는 점차 쾌활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처음에는 군신(軍神)·전투신(戦闘神), 부귀와 명예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겨졌으나, 중국에서 재복(財福)을 강조하여 숭배된 측면이 일본에 주로 전래되었다. 밀교를 통해 전래되었기에 초기에는 주로 진언종과 천태종에서 신앙되었다. 부(富)와 다산(多産)을 가져다주는 등 긍정적인 속성이 부각되면서 부정적인 면모는 점차 희미해졌다. 초기의 대흑천 이미지는 노여움을 띤(혹은 엄격한 표정의) 모습이었던 반면, 후대의 작품에서는 웃는 모습으로 일관되게 묘사되었다.[20] 인도에서도 부엌·식당의 신으로 여겨졌는데, 일본에서는 천태종의 창시자 최징(最澄)이 비사문천(毘沙門天)·변재천(弁才天)과 합체한 삼면대흑(三面大黒)을 히에이산 연락사(延暦寺)의 부엌 수호신으로 모신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전설에 따르면, 최징이 처음으로 히에이산에 올랐을 때, 마하칼라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최징이 구상한 수도 공동체(훗날 연락사가 됨)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21]
중세 시대에 불교와 일본 고유의 신앙(신토)이 혼합되면서, 대흑천은 토착 신인 ''가미'' 오쿠니누시(大国主)와 동일시되었다. 이는 '대흑(大黒)'의 일본어 발음 '다이코쿠'가 오쿠니누시의 이름 앞 두 글자 '대국(大国)'의 음독 발음 '다이코쿠'와 같았기 때문이다. 대흑천이 연락사의 수호신으로서의 지위도 이러한 연관성에 영향을 미쳤다. 대흑천은 히에이산 동쪽 기슭에 있는 히요시타이샤에 안치된 신인 산왕권현과 동일시되었는데, 산왕권현은 다시 오쿠니누시 또는 오모노누시(미와 묘진, 나라현 미와산의 신으로, 다른 이름으로 또는 그의 한 측면으로 오쿠니누시로 해석되기도 함)와 동일시되었다.[20][21]
대흑천이 지니고 있는 자루나 가방(이미 이징의 인도 마하칼라 묘사에 언급됨[15])은 이 신을 오쿠니누시와 더욱 연관짓는 역할을 했다. 《고사기》에 나오는 이나바의 토끼 이야기에서 젊은 오쿠니누시는 악독한 형들에게 짐꾼으로 부려져 짐을 넣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고 나온다.[22][23][24] 자루 외에도 대흑천은 ''우치데노코즈치''(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망치)라는 황금 망치와 두 개의 큰 쌀가마니와 같은 다른 속성들을 갖게 되었다. 그는 또한 다산신으로 여겨져, 음탕한 무화과 손짓을 하거나, 의미심장하게 갈라진 무(때로는 "대국이의 신부"라고 불림)를 들고 있거나, 거대한 발기한 페니스를 가지고 있거나, 또는 나무로 만든 남근으로 완전히 표현되기도 했다.[22][25][26]
쥐도 대흑천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쥐가 마하칼라 및 바이슈라바나(일본어로는 비사문천), 힌두교의 쿠베라와 유사한 불교적 존재, 그리고 바이슈라바나의 장군이자 약샤 여신 하리티(일본에서는 기시모진으로 알려짐)의 배우자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북쪽 방향과 관련이 있는데, 이는 쥐띠의 중국 십이지에 해당한다. 또한 오쿠니누시 신화에서 쥐가 스사노오의 계략으로 불에 타 죽을 뻔한 오쿠니누시를 구해주었다는 이야기[27] 때문에,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된 대흑천의 사자로 여겨진다.
중세의 주석가들은 마하칼라-대흑천을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측면 모두로 해석했다.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무명의 상징("대국"이라는 이름은 "큰 어둠"으로 해석될 수 있음)으로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명(黒, '검음/어둠'을 상징)과 깨달음(大, '크다'를 나타내는 글자)의 불이일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일자금륜불정(Ekākṣaroṣṇīṣacakra, 우주불 보리손의 머리 부분 또는 ''우슈니샤''와 신성한 음절 ''bhrūṃ''의 현현)과 동일시되어 궁극적인 실재의 상징이 되었지만, 장애물의 신으로 여겨지는 방위신 이샤나와도 동일시되었다. 실제로 그의 기원과 관련된 오명 때문에, 일부 경전에서는 그를 ''짓샤''(実者, 문자 그대로 "진짜/실제의 것", 실류(実類), ''짓스루이''라고도 함)로 규정했는데, 이는 깨달은 부처와 보살의 임시적인 현현( ''권현'')로 간주되는 신들보다 열등한 '실제'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세 밀교 불교는 또한 '더 높은' 대흑천의 존재를 상정했는데, 일반적인 대흑천은 그가 취하는 다양한 모습 중 하나에 불과했다. 후자가 무명을 나타냈다면, 전자는 무명을 깨달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으로 여겨졌다.[28]
대흑천은 우가진, 벤자이텐(사라스바티의 불교적 형태), 바이슈라바나-비사문천, 지신인 견뢰지신(인도의 지모신 프리티비에서 유래했지만, 일본에서는 남성으로 묘사되기도 함[29]), 또는 지혜왕 아찰라(일본어로는 부동명왕)와 같은 다른 신들과 연결되거나 동일시되었다.[28] 실제로 아찰라는 마하칼라-대흑천과 마찬가지로, 일부 자료에서 다키니들을 물리치고 개종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보리손의 노여움을 띤 아바타로도 간주된다.(마찬가지로, 아찰라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시바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30]
대중적인 신앙에서 대흑천은 민간 신인 에비스와 흔히 짝을 이룬다. 대흑천이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된 것처럼, 에비스는 때때로 오쿠니누시의 아들 코토시로누시[8][31] 또는 일본의 땅을 개발하는 데 오쿠니누시를 도왔던 난쟁이 신 스쿠나비코나와 동일시되기도 했다.[32] 가정에서는 두 신이 부엌이나 오븐에 안치되었고, 상인들은 두 신을 상업적 성공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한편 농부들은 두 신을 논의 신( ''타노카미'')으로 숭배했다.[20]
무로마치 시대가 되면서 일련종(日蓮宗)에서도 활발하게 신앙되었고, “대흑님(大黒さん)”으로 친숙하게 불리게 되었다. 본래 모습은 한 얼굴에 두 팔, 푸르스름한 검정색(青黒) 또는 검은색으로 분노(忿怒)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대흑천신법(嘉祥寺神愷記)』에는, 두건(烏帽子)과 바지(袴) 차림으로 오른손 주먹을 허리에 대고, 왼손으로 큰 자루를 왼쪽 어깨에 지고 있는 부엌신(厨房神)·재신(財神)으로 묘사되어 있다.[83] 이 자루 안에는 칠보[84]가 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태장계만다라에서의 대흑천은, 시바(シヴァ)와 그 성스러운 흰 소 난딘(흰 숫소가 중국이나 일본에서 인식되지 않고, 염소나 토끼의 모습으로 잘못 묘사됨)을 복종시키고 있는 입상으로, 키는 보통 다섯 자(5尺)이다. 대부분 한 얼굴이지만, 위에서처럼 비사문천·변재천과 합쳐진 세 얼굴 여섯 팔의 삼면대흑천도 만들어졌다.
이와 같은 분노상(憤怒相)은 가마쿠라 시대 무렵까지이며, 그 이후, 대국주신(大国主神)과 합쳐져 현재와 같은 온화한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지만, 드물게 관세음사(후쿠오카현)에 있는 대흑천 입상처럼 분노상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에도 시대가 되면서 쌀가마니에 앉아 있는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모습이 되었다. 현재는 일반적으로 쌀가마니에 앉아 복주머니와 우치데노코즈치를 든 미소짓는 부자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카스가타이샤에는 헤이안 시대에 이즈모타이샤에서 강청한, 남편이 대국주대신이고 아내가 스세리히메노미코토(すせりひめのみこと)인 부부 대흑천상을 모신 일본 유일의 부부대국사가 있으며, 과거 이즈야마 신사(이즈야마 곤겐)의 신궁사였던 소우토우야마 한냐인에도, 상이 다른 가마쿠라 시대에 제작된 부부 대흑천상이 모셔져 있었다(현재는 아타미의 구라야 여관에 존재한다).


3. 2. 4. 에비스와의 관계
일본의 대중적인 신앙에서 대흑천은 종종 민간 신앙의 신인 에비스와 짝을 이루어 함께 모셔진다. 이는 칠복신 중 수로인과 복록수가 한 쌍으로 신앙되는 것과 유사하다.
이러한 신앙 형태는 대흑천이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되고, 에비스가 오쿠니누시의 아들인 코토시로누시[8][31] 또는 일본 땅 개발에 오쿠니누시를 도왔던 난쟁이 신 스쿠나비코나[32]와 동일시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가정에서는 두 신을 부엌이나 오븐 근처에 모시는 경우가 많으며, 상인들은 상업적 성공을 기원하며 두 신을 숭배한다. 농부들 사이에서는 논의 신(타노카미)으로 여겨지기도 한다.[20]
대흑천과 에비스가 함께 신앙되는 배경에는 각각의 신이 지닌 성격이 있다. 대흑천은 오곡 풍년을 가져오는 농업의 신으로, 에비스는 풍어와 행복을 가져다주는 어업의 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과거 농산물과 수산물이 상업의 중심이었던 만큼, 두 신은 자연스럽게 장사의 신으로도 숭배받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신악(神楽)과 같은 전통 공연에서도 나타나, 에비스의 춤(恵比寿舞)과 대흑천의 춤(大黒舞)이 일찍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다.
효고현 고베시에 위치한 마이코로쿠 신사(舞子六神社)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대흑천과 에비스의 석상이 있으며, 이곳은 장사 번창을 기원하는 신사로 유명하다.
4. 도상학
힌두교의 신 시바의 한 측면인 마하칼라는 인도 밀교에 받아들여지면서 불교의 호법신이 되었다. '마하칼라'(Mahākālasa)는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시간" 또는 "위대한 검정(흑)"을 의미하며[3], 그 이름처럼 푸르스름하거나 검은 피부에 분노하는 표정을 한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시간(''kāla'')으로서의 시바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다.[4] 불교에서는 법의 수호자이자 악귀를 거느린 무서운 신으로 재해석되었다.[5]
초기 밀교에서의 대흑천은 시바처럼 네 개의 팔에 삼지창, 곤봉, 고리, 밧줄 등을 든 모습으로 그려졌다. 나아가 브라흐마, 비슈누까지 흡수하여 힌두교의 삼신일체에 대응하는 세 얼굴과 여섯 팔을 가진 분노한 모습의 대흑천(마하칼라)도 등장했다. 후기 밀교를 계승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한 얼굴에 두 팔, 네 팔, 여섯 팔 또는 세 얼굴에 두 팔, 네 팔, 여섯 팔 등 더욱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시바나 그의 아내 파르바티, 아들 가네샤 등을 짓밟는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힌두교를 넘어선 불교의 우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호법신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한 것이다.[33] 티베트, 몽골, 네팔 등지에서는 무역상들을 중심으로 재물신으로 신앙되었고, 티베트에서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아시아 불교 미술에서 마하칼라는 일반적으로 어두운 피부색의 분노한 신으로, 보관(寶冠)과 해골 목걸이(문다말라)를 착용하고 목과 팔에 뱀을 감은 모습으로 묘사된다.[33][34] 대표적인 도상 유형 중 하나는 세 개의 머리와 여섯 개의 팔을 가진 형태로, 위쪽 손으로는 코끼리 가죽을 펼쳐 들고 아래쪽 손으로는 삼지창이나 칼을 수평으로 들며, 중간 손으로는 사람 형상과 염소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유형은 앉은 자세로 그려지거나, 때로는 대지의 여신 위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33][34] 8개의 팔을 가진 모습도 있는데, 이때는 코끼리 가죽, 삼지창, 프레타, 염소, 칼, 카트방가(해골 장식 지팡이) 등을 들고 있다.[34] 돈황에서 발견된 9~10세기 그림 중에는 뱀 위에 서 있는 마하칼라도 있다.[8] 일본에서는 한 개의 머리와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오른손에 칼, 왼손에 해골 잔(카팔라)을 든 모습도 확인된다.[8] 때로는 코끼리 머리를 한 신 비나야카(힌두교의 가네샤에 해당)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지는데, 비나야카 역시 마하칼라와 관련 있는 신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두 신은 밀교의 주요 만다라 중 하나인 태장계 만다라의 북동쪽(왼쪽 위) 구석에 함께 배치되기도 한다.[33][8]
7세기 승려 의정은 인도 사찰의 부엌이나 현관에서 본 마하칼라 상에 대해 "금색 주머니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한 발을 땅에 내리고 있다"고 기록했다.[15] 이 묘사는 재물의 신 쿠베라의 도상과 유사하여, 일부 학자들은 의정이 본 것이 실제로는 쿠베라였거나 두 신이 혼동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쿠베라 역시 시바와 관련이 깊고, 마하칼라와 함께 사찰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Dvarapala)으로 자주 등장한다.[8] 일본에서 복주머니를 든 온화한 모습의 대흑천 도상은 이 쿠베라의 영향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8]
일본에서는 밀교 천태종과 진언종을 통해 마하칼라 신앙이 전래되면서 '대흑천'(大黒天, Daikokuten)으로 불리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분노한 모습 대신 복을 가져다주는 온화하고 인자한 신의 이미지로 변화했다. 특히 부(富)와 풍요(豊饒)를 상징하는 속성이 강조되면서 무서운 측면은 희미해졌다.[20] 이러한 변화에는 일본 고유의 신토 신앙과 융합하는 신불습합의 영향이 컸다. 대흑천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오쿠니누시(大国主) 신과 동일시되었는데, 이는 '오쿠니누시(大国主)'의 앞 두 글자 '大国'을 음독으로 '다이코쿠'라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천태종의 본산인 엔랴쿠지가 위치한 히에이산의 수호신 산노곤겐(山王権現)이 오쿠니누시 또는 그의 다른 모습인 오모노누시와 동일시되었고, 대흑천 역시 엔랴쿠지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면서 이러한 연관성은 더욱 강화되었다.[20][21]
대흑천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복주머니는 의정의 기록에도 등장하지만, 오쿠니누시가 등장하는 이나바의 흰 토끼 신화에서 오쿠니누시가 형들의 짐을 대신 짊어졌던 큰 자루와 연결되면서 일본에서 더욱 확고히 자리 잡았다.[22][23][24] 이 자루 안에는 칠보(七宝)가 가득 들어있다고 믿어진다.[84] '우치데노코즈치'(소원을 이루어주는 작은 망치)와 풍요를 상징하는 두 개의 큰 쌀가마니 역시 대흑천의 주요 지물이 되었다.[22] 쥐 역시 대흑천의 사자(使者)로 여겨지는데, 이는 쥐가 북쪽 방향(십이지의 자(子))과 관련 있고 재물의 신 비사문천(바이슈라바나) 및 하리티(기시모진)와도 연관되며, 오쿠니누시 신화에도 등장하기 때문이다.[27] 대흑천은 다산(多産)의 신으로도 여겨져 때로는 성적인 상징(음탕한 손짓, 갈라진 무, 거대한 남근 등)과 함께 표현되기도 했다.[22][25][26]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대흑천 도상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하나는 진언종 계통으로, 서 있는 자세로 왼손에 어깨에 멘 자루를 들고 오른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댄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천태종 계통으로, 앉아 있는 자세로 묘사된다. 초기에는 일본 전통 복식(에보시, 카리기누, 하카마)을 입거나 갑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8]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예로는 후쿠오카현 간제온지의 서 있는 대흑천 상(11세기)과 시가현 곤고린지의 앉아 있는 대흑천 상(11세기, 갑옷 착용) 등이 있다.[8][36][37][38]
14세기 이후 점차 배가 불룩 나오고 미소를 띤 모습으로 정형화되었으며, 망치를 들고 쌀가마 위에 서거나 앉아 있는 도상이 일반적이 되었다.[8][22] 망치의 유래는 불분명하지만, 역병을 다스리는 신(마다리진, 마트리카)이 망치를 든 모습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8][22] 16세기(무로마치 시대 후기)에는 대흑천, 비사문천, 벤자이텐(사라스바티) 세 신을 합친 '삼면대흑천'(三面大黒天)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는 대흑천의 온화한 모습과 잘 알려지지 않은 분노한 모습을 결합한 형태로 해석되기도 한다.[8][58]
또한 '육대흑천'(六大黒天)이라 불리는 여섯 가지 다른 모습의 대흑천 도상도 발전했다.[8][39][40]
명칭 | 설명 | 특징 |
---|---|---|
비구대흑(比丘大黒) | 승려(비구) 모습 | 오른손에 망치, 왼손에 칼 |
왕자갈라대흑(王子迦羅大黒) | 왕자 모습 | 칼과 금강저를 휘두름 (때로는 대흑천의 아들로 해석[41]) |
야차대흑(夜叉大黒) | 야차 모습 | 일본 귀족 복장, 오른손에 법륜(달마차크라) |
마카카라대흑녀(摩伽迦羅大黒女) | 여성 모습 | 머리 위에 쌀가마를 이고 있음 (때로는 대흑천의 배우자 마하칼리로 해석) |
신다대흑(信陀大黒) | 소년 모습 |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친타마니)을 들고 있음 |
마카라대흑(摩伽羅大黒) | 일반적인 온화한 모습 | 망치와 자루를 들고 있음 |
17~18세기(에도 시대)에는 대흑천이 칠복신의 주요 구성원으로 포함되면서 대중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더욱 인기를 얻었다.[8] 이 시기 이후 대흑천은 미술 작품의 인기 있는 소재가 되었다.
대중 신앙에서 대흑천은 종종 또 다른 복신인 에비스와 짝을 이루어 모셔진다. 에비스는 오쿠니누시의 아들인 고토시로누시[8][31] 또는 오쿠니누시를 도와 나라를 세운 스쿠나비코나와 동일시되기도 한다.[32] 가정에서는 부엌에, 상점에서는 상업 번창의 수호신으로, 농촌에서는 농사의 신(타노카미)으로 숭배받았다.[20]
분노한 모습의 대흑천은 가마쿠라 시대까지 주로 제작되었으나, 오쿠니누시와의 습합 이후 점차 온화한 모습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후쿠오카현 간제온지의 대흑천 입상처럼 드물게 분노한 모습의 초기 형태를 간직한 작품도 남아 있다.
5. 숭배
산스크리트어 용어 '마하칼라'(Mahākāla)는 "위대한 흑(黑)" 또는 "위대한 시간(時間)"[3]을 의미하며, 본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궁극적인 존재인 시간(''kāla'')의 측면에서 힌두교 신 시바의 여러 이름 중 하나였다.[4] 힌두교의 시바 신의 화신으로서의 마하칼라는 인도 밀교에 수용되었다. 이름처럼 푸르스름한 검은 피부에 분노하는 얼굴을 한 호법선신으로 묘사된다. 초기 대흑천은 시바처럼 네 개의 손에 삼지창, 곤봉, 고리, 밧줄을 든 모습이었으나, 후에는 브라흐마와 비슈누까지 흡수하여 힌두교의 삼신일체(트리무르티)에 대응하는 세 얼굴과 여섯 팔을 가진 분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불교에서는 법의 수호자인 법호로 자리매김했지만, 밤에 숲을 배회하며 가나 무리와 악귀들을 거느린 무서운 신으로 재해석되기도 했다.[5]
마하칼라는 많은 중국 불교 경전에 언급되지만, 중국에서의 도상적 표현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는 드물었다. 9세기 이후 현재 윈난성에 위치한 난자오와 대리국에서 숭배가 성행했는데, 이는 티베트와 인접하여 그의 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티베트의 영향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 시대에 그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 황궁과 수도 대도(한바릭) 안팎의 불교 사찰에 그의 모습이 모셔졌다(대부분의 이미지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6][7] 신의 이름은 摩訶迦羅|Móhējiāluózho로 음역되었고, 大黑天|Dàhēitiānzho('위대한 흑색 천인')으로 번역되었다.
일부 경전에서는 마하칼라를 "사람들의 생명력을 훔치는 악마"로 묘사하며 살과 피를 먹는다고 하지만, 삼보에 죄를 지은 자들만 먹는다고도 한다.[5][8] 당나라 시대 승려 의정의 ''대일경'' 주석에 따르면, 마하칼라는 살을 먹는 여성 악마 다키니들을 삼켜 정복한 부처 비로자나불의 현현이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을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다키니들을 풀어주고,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의 생명력(人黄|rénhuángzho)이 담긴 심장만 먹도록 허락했다.[9][10][11] 아모가바즈라의 ''인왕경'' 번역본에는 이단 스승이 칼마샤파다 왕자에게 왕위에 오르려면 "묘지의 위대한 흑신"(塚間摩訶迦羅大黑天神|zhǒngjiān móhējiāluó dàhēitiān shénzho) 마하칼라에게 천 명의 왕 머리를 바치라고 지시하는 이야기가 나온다.[8][12][13]
시간이 흐르면서 마하칼라는 특히 부엌을 포함한 불교 사원의 수호신으로 여겨졌다. 7세기 후반 스리위자야와 인도를 여행한 승려 의정은 인도 불교 사원의 부엌과 현관 기둥 옆에 높이 약 0.61m~약 0.91m의 마하칼라 목조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에 음식을 제물로 바쳤다고 기록했다. 이 신상은 금 주머니를 들고 작은 의자에 앉아 한 발을 땅에 내린 모습이었고, 늘 기름으로 닦아 얼굴이 검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 신을 마하칼라(莫訶哥羅|Mòhēgēluózho) 또는 대흑신(大黑神|Dàhēishénzho)이라 불렀으며, 본래 마헤슈바라(시바)의 권속으로 삼보를 사랑하고 오중의 불행으로부터 보호하며, 기도하는 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전했다. 의정은 또한 쿠시나가르의 마쿠타반다나 사원에서 한 여성 하인이 마하칼라 상 앞에서 기도하고 제물을 바친 후, 500명의 승려들을 위해 기적적으로 음식이 마련된 일화를 소개했다.[15][16] 사찰에 번영을 가져다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로 보는 이러한 관념은 이후 일본에서 그를 부와 행운의 신으로 여기는 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14]
중국에서 대흑천은 다산 및 성욕과도 관련되었다. 칠석에는 기혼 여성들이 아이를 갖기를 바라며 '모허뤄'(魔合羅|móhéluózho) 또는 '모허우뤄'(摩睺羅|móhóuluózho)라는 인형이나 조각상을 사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마하칼라'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17][18][19] 일부 의례 문헌에서는 남성 파트너를 찾거나 임신한 여성에게 마하칼라 숭배를 권장하기도 했다.[17]
일본에는 밀교 전래와 함께 대흑천 신앙이 들어왔다. 천태종과 진언종을 통해 전래된 마하칼라(대흑천)는 점차 온화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부(富)와 다산(多産)을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속성이 부각되면서 분노하거나 엄격한 표정의 초기 모습과는 달리, 후대에는 웃는 얼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20] 일본에서는 군신(軍神)·전투신, 부귀와 관직을 주는 신으로 여겨졌으나, 특히 중국에서 재복(財福)을 강조하여 숭배된 측면이 강하게 전래되었다.
천태종의 창시자 최징은 마하칼라-대흑천 신앙을 일본에 전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최징이 처음 히에이산에 올랐을 때 마하칼라가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가 구상하던 수도 공동체(훗날 엔랴쿠지)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21]
중세 시대 불교와 일본 고유의 신토 신앙이 융합하는 신불습합 과정에서, 대흑천은 토착 신인 오쿠니누시(大国主)와 동일시되었다. 이는 오쿠니누시의 이름 앞 두 글자(大国)가 음독으로 '다이코쿠'로 읽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엔랴쿠지의 수호신으로서 대흑천의 지위도 이러한 연관성에 영향을 미쳤다. 대흑천은 히에이산 동쪽 기슭의 히요시타이샤에 모셔진 신 산노곤겐(山王権現)과 동일시되었는데, 산노곤겐은 다시 오쿠니누시 또는 미와산의 신인 오모노누시(大神)와 동일시되었다.[20][21]
대흑천이 지닌 자루나 가방(이미 의정의 인도 마하칼라 묘사에도 언급됨)은 오쿠니누시와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했다. 《고사기》의 이나바의 흰 토끼 설화에서 젊은 오쿠니누시는 형들의 짐꾼 노릇을 하며 큰 자루를 메고 다녔기 때문이다.[22][23][24] 자루 외에도 대흑천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망치인 ''우치데노코즈치''(打ち出の小槌)와 두 개의 큰 쌀가마니 같은 상징물을 갖게 되었다. 그는 또한 다산의 신으로 여겨져, 음탕한 무화과 손짓을 하거나, 의미심장하게 갈라진 무(때로는 "대흑천의 신부"라 불림)를 들고 있거나, 거대한 발기한 남근을 가진 모습, 또는 나무로 만든 남근 자체로 표현되기도 했다.[22][25][26]
쥐 역시 대흑천의 상징이 되었는데, 이는 쥐가 북쪽 방향과 관련된 신들, 즉 비사문천(Vaisravana, 힌두교의 쿠베라와 유사) 및 그의 배우자이자 야차 여신인 하리티(일본에서는 기시모진)와 연관되었기 때문이다. 북쪽은 십이지에서 쥐(子)에 해당한다. 또한 쥐는 오쿠니누시 신화에도 등장하므로, 대흑천과 오쿠니누시의 동일시에 기여했다.[27]
중세의 주석가들은 마하칼라-대흑천을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모두로 해석했다.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무명의 상징("대흑"은 "큰 어둠"으로 해석 가능)으로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명(黒, '검음/어둠')과 깨달음(大, '큼')의 불이일원(nondual union)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우주불 비로자나불의 정수리(우슈니샤)와 신성한 음절 ''bhrūṃ''의 현현인 일자금륜불정(Ekākṣaroṣṇīṣacakra)과 동일시되어 궁극적 실재의 상징이 되기도 했지만, 장애물의 신으로 여겨지는 방위신 이샤나(Īśāna, 시바의 불교화된 형태)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의 기원 때문에 일부 경전에서는 그를 ''짓샤''(実者, "실제의 것")로 규정했는데, 이는 깨달은 부처와 보살의 일시적 현현(곤겐)으로 간주되는 신들보다 열등한 '실제'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세 밀교 불교는 또한 일반적인 대흑천은 여러 모습 중 하나일 뿐인 '더 높은' 대흑천의 존재를 상정했다. 후자가 무명을 나타냈다면, 전자는 무명을 깨달음으로 변화시키는 존재로 여겨졌다.[28]
대흑천은 우가진, 벤자이텐(사라스바티의 불교 형태), 비사문천, 지신(地神)인 견뢰지신(堅牢地神, 인도의 지모신 프리티비에서 유래했으나 일본에서는 남성으로 묘사되기도 함[29]), 또는 지혜의 왕 부동명왕(Acala)과 같은 다른 신들과 연결되거나 동일시되었다.[28] 부동명왕 역시 마하칼라-대흑천처럼 일부 자료에서 다키니들을 물리치고 개종시킨 존재로 알려져 있으며, 비로자나불의 분노한 화신으로 간주된다.[30]
대중 신앙에서 대흑천은 민간 신인 에비스와 흔히 짝을 이룬다. 대흑천이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된 것처럼, 에비스는 때때로 오쿠니누시의 아들 고토시로누시[8][31] 또는 일본 땅 개발에 오쿠니누시를 도왔던 난쟁이 신 스쿠나비코나와 동일시되기도 했다.[32] 가정에서는 두 신이 부엌이나 화덕에 모셔졌고, 상인들은 상업적 성공의 수호신으로 숭배했으며, 농부들은 논의 신(타노카미)으로 숭배했다.[20]
현대 일본에서도 대흑천은 재복과 가정의 신으로서 높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불교 사찰과 신사 모두에서 대흑천 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신사의 경우에는 불교의 마하칼라가 아닌 신토의 신 오쿠니누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고 숭배된다.[32][42][43]
쥐와의 연관성 때문에, 특히 간지 중 갑자(甲子, kōshi / kinoe-ne)인 쥐의 날(子の日, ne-no-hi)은 마하칼라-대흑천(그리고 오쿠니누시)에게 신성한 날로 여겨진다. 특히 한 해의 첫 번째 갑자일(初甲子, hatsu-kōshi)과 마지막 갑자일(納め甲子, osame-kōshi)에는 대흑천을 모시는 많은 장소에서 특별한 의식과 축제가 열린다.[44][45][46][47][48][49]
근세 초기에는 대흑천의 부와 번영과의 연관성 때문에 "후쿠누스비"(福盗み), 즉 "행운 도둑질"이라는 관습이 생겨났다. 이는 대흑천 신상을 훔친 사람이 현장에서 잡히지 않으면 행운이 보장된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아사쿠사 센소지에서 열리는 연말 시장인 "토시노이치"(歳の市)는 이러한 신상을 사고파는 주요 장소가 되었다.[50][51][52] 또 다른 관습인 "츠부테"(礫, 돌 던지기)는 자시(子の刻, 자정 무렵)에 부자의 집에 대흑천 부적을 던져 부를 '훔치는' 행위를 포함했다.[22]
대흑천을 모시는 많은 천태종 사찰에서는 "요쿠베이쿠"(浴餅供, 찹쌀떡 목욕)라는 비밀 의식이 행해지는데, 이는 신상에 죽을 붓는 의식이다.[53][54][55][56][57]
후기 밀교를 계승한 티베트 불교에서는 대흑천(마하칼라)의 모습이 다양하여, 한 얼굴 두 팔부터 세 얼굴 여섯 팔 등 여러 형태가 있다. 시바에서 유래했지만, 시바와 그의 아내 파르바티, 또는 아들 가네샤를 짓밟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힌두교를 정복하고 불교의 승리를 상징하는 호법신으로서의 성격이 강조되었다. 티베트, 몽골, 네팔 등지에서는 무역상들로부터 재물신으로서 신앙을 모았고, 티베트에서는 행복의 신으로서 민간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5. 1. 진언과 종자

일본 밀교에서 대흑천(산스크리트어: Mahākāla, 일본어: Daikokuten)을 나타내는 비자(bīja)는 씨앗 음절 '''마'''(ma, म)이며, 시담 문자로 쓰여진다.[58]
한편, 대흑천의 진언(mantra)은 다음과 같다.
산스크리트어 | 일본어 (로마자 표기) | 한자 | 히라가나 |
---|---|---|---|
Oṃ Mahākālāya 스바하(svāhā) | On Makakyaraya sowaka[58] | 唵 摩訶迦羅耶 娑婆訶 | おん まかきゃらや そわか[58] |
5. 2. 주요 사찰
대흑천은 일본의 여러 불교 사찰에서 주요 본존(本尊) 또는 보조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주요 사찰은 다음과 같다.
6. 대중문화
대중 신앙에서 대흑천은 민간 신인 에비스와 흔히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8][31] 이러한 조합은 대흑천이 오쿠니누시와 동일시되고, 에비스는 때때로 오쿠니누시의 아들 코토시로누시[8][31] 또는 일본 땅 개발에 오쿠니누시를 도왔던 난쟁이 신 스쿠나비코나[32]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가정에서는 이 두 신을 부엌이나 오븐 근처에 모셨으며, 상인들은 상업적 성공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한편 농부들에게는 논의 신(타노카미)으로 여겨졌다.[20]
일본 전통 가옥의 중앙 기둥을 가리키는 '다이코쿠바시라(大黒柱)'라는 용어는 대흑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단어는 나아가 가족의 가장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77][78] 또한, 불교 승려의 아내를 대흑천과 부엌 및 가정과의 연관성 때문에 속어로 '다이코쿠(大黒)'라고 부르기도 했다.[26]
중세 및 근세 시대에는 '다이코쿠마이(大黒舞, 대흑천의 춤)'라는 전통 예술이 널리 행해졌다. 이는 주로 사회적 약자 계층(히닌)들이 대흑천으로 분장하여 집집마다 방문하며 춤추고 노래하며 기부를 받는 형태였다.[79][80][81]
오늘날에도 대흑천의 형상이 새겨진 작은 조각상이나 명패는 일본 전역의 상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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