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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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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56년에 태어나 기원전 323년에 사망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으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암살 이후 20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라,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그의 정복 활동은 동서양 간의 교류를 촉진하고, 이후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정복 과정에서 많은 도시를 건설하고, 동서 융합 정책을 추진했지만, 32세의 젊은 나이에 바빌론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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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대왕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이름알렉산드로스 3세
로마자 표기Alexandros
별칭알렉산더 대왕
출생일기원전 356년 7월 20일 또는 21일
출생지펠라, 마케도니아
사망일기원전 323년 6월 10일 또는 11일 (향년 32세)
사망지바빌론, 마케도니아
종교고대 그리스 종교
통치 정보
칭호바실레우스
왕조아르게아드 왕조
재위기원전 336년 – 기원전 323년
선임자필리포스 2세
후임자알렉산드로스 4세
필리포스 3세
헤게몬 (헬라스 동맹)재위: 기원전 336년 – 기원전 323년
선임자: 필리포스 2세
후임자: 데메트리오스 1세
파라오 (이집트)재위: 기원전 332년 – 기원전 323년
선임자: 다리우스 3세
후임자:
알렉산드로스 4세
필리포스 3세
페르시아 왕재위: 기원전 330년 – 기원전 323년
선임자: 다리우스 3세
후임자:
알렉산드로스 4세
필리포스 3세
아시아 왕재위: 기원전 331년 – 기원전 323년
후임자:
알렉산드로스 4세
필리포스 3세
가족 관계
아버지필리포스 2세
어머니올림피아스
배우자록사네
스타테이라
파리사티스 2세
자녀알렉산드로스 4세
헤라클레스
기타
알렉산더 대왕 모자이크
알렉산더 모자이크의 알렉산더

2. 어린 시절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56년 7월 20일경(정확한 날짜는 불확실함)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 펠라에서 필리포스 2세와 그의 네 번째 부인 올림피아스(에피루스의 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7][10] 필리포스는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지만,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를 낳았기 때문에 한동안 그의 주요 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를 묘사한 로마 메달


알렉산드로스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는 여러 전설이 얽혀 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필리포스와의 결혼식 전날 밤, 올림피아스는 자궁이 번개에 맞아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다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결혼 후 언젠가 필리포스는 꿈에서 사자 그림이 새겨진 인장으로 아내의 자궁을 봉인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고대 해설가들은 야심 찬 올림피아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신성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렸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 날, 필리포스는 칼키디키 반도의 포티다이아 포위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같은 날, 필리포스는 그의 장군 파르메니온일리리아와 파이오니아 연합군을 물리치고 그의 말들이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또한 에페소스아르테미스 신전이 불타는 사건도 있었다. 헤게시아스는 아르테미스가 알렉산드로스의 탄생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탓에 불이 났다고 말했다.[11] 이러한 전설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왕이 된 후, 아마도 그의 사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가 태어날 때부터 초인적이며 위대함을 타고났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이토스의 누이인 라니케에게 양육되었다. 후에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의 친척인 레오니다스와 리시마코스에게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귀족 마케도니아 청년의 방식으로 자라면서 읽고 쓰는 법, 리라 연주, 승마, 전투, 사냥을 배웠다.

알렉산드로스가 열 살이었을 때, 테살리아의 한 상인이 필리포스에게 말을 한 마리 가져왔는데, 13 타렌트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은 타려고 하지 않았고, 필리포스는 말을 내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말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길들일 것을 요청했고 결국 성공했다. 플루타르코스는 필리포스가 이러한 용기와 야망을 보여준 것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키스하며 "내 아들아, 네 야망에 맞는 큰 왕국을 찾아야 한다. 마케도니아는 너에게 너무 작다"라고 선언하고 그 말을 사주었다고 썼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말을 부케팔라스 ("황소 머리"라는 뜻)라고 이름 지었고, 인도까지 함께 했다. 부케팔라스가 죽자, 알렉산드로스는 그 이름을 따서 부케팔라를 건설했다.[12]

2. 1. 유년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어린 시절 흉상, 헬레네 시대, 대영박물관


장 레옹 제롬므 페리의 그림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교습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탄생지인 그리스 펠라의 고고학 유적지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56년 7월 20일경(정확한 날짜는 불확실함)[257]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 펠라에서 필리포스 2세와 그의 네 번째 부인 올림피아스(에피로스의 왕 네오프톨레모스 1세의 딸)[259] 사이에서 태어났다. 필리포스 2세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알렉산드로스를 낳은 올림피아스가 한동안 그의 주요 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알렉산드로스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는 여러 전설이 얽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필리포스와의 결혼식 전날 밤, 올림피아스는 자궁이 번개에 맞아 불꽃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다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결혼 후 언젠가 필리포스는 꿈에서 사자 그림이 새겨진 인장으로 아내의 자궁을 봉인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260] 플루타르코스는 이러한 꿈에 대해 올림피아스가 결혼 전에 임신했음을 나타내는 자궁의 봉인, 또는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등의 여러 가지 해석을 제시했다. 고대 해설가들은 야심 찬 올림피아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신성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퍼뜨렸는지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녀가 알렉산드로스에게 직접 말했다거나,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그러한 제안을 일축했다는 주장이 있었다.[260]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난 날, 필리포스는 칼키디키 반도의 포티다이아를 포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같은 날, 필리포스는 그의 장군 파르메니온일리리아와 파이오니아 연합군을 물리치고 그의 말들이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또한 이날 에페소스아르테미스 신전이 불타는 사건도 있었다. 헤게시아스는 아르테미스가 알렉산드로스의 탄생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탓에 신전이 불탔다고 말했다.[261] 이러한 전설들은 알렉산드로스가 왕이 된 후, 아마도 그의 사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가 태어날 때부터 초인적이며 위대함을 타고났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알렉산드로스는 클레이토스의 누이인 라니케에게 양육되었다. 후에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의 친척인 레오니다스와 리시마코스에게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귀족 마케도니아 청년의 방식으로 자라면서 읽고 쓰는 법, 리라 연주, 승마, 전투, 사냥을 배웠다.

그리스 테살로니키에 세워져 있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청동 기마상


알렉산드로스가 열 살이었을 때, 테살리아의 한 상인이 필리포스에게 말을 한 마리 가져왔는데, 13 타렌트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은 타려고 하지 않았고, 필리포스는 말을 내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말이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길들일 것을 요청했고 결국 성공했다. 플루타르코스는 필리포스가 이러한 용기와 야망을 보여준 것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며 아들에게 키스하며 "내 아들아, 네 야망에 맞는 큰 왕국을 찾아야 한다. 마케도니아는 너에게 너무 작다"라고 선언하고 그 말을 사주었다고 썼다.[262] 알렉산드로스는 그 말을 부케팔라스("황소 머리"라는 뜻)라고 이름 지었다. 부케팔라스는 알렉산드로스를 인도까지 태웠다. 그 말이 죽자(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30세의 나이로 죽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말의 이름을 따서 도시 부케팔라를 건설했다.[263]

2. 2. 청소년기



알렉산드로스가 13세가 되었을 때 필리포스 2세는 그를 가르칠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 이소크라테스스페우시포스 같은 학자들을 고려했으나,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를 선택했다. 필리포스 2세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미에자에 있는 님프 신전을 교실로 제공했다.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친 대가로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이 파괴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게이라를 재건하고, 노예가 되었던 시민들을 다시 사들이거나 해방시키고 추방자들을 용서하여 도시에 다시 사람들을 채워넣었다.[264]

미에자는 알렉산드로스와 프톨레마이오스, 헤파이스티온, 카산드로스 같은 마케도니아 귀족 자제들이 함께 공부하는 기숙학교와 같았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이자 훗날 장군이 되었고, 헤타이로이(동료)로 알려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친구들에게 의학, 철학, 도덕, 종교, 논리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아래 알렉산드로스는 호메로스의 작품, 특히 《일리아스》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석이 달린 일리아스 사본을 알렉산드로스에게 주었고, 알렉산드로스는 전쟁터에도 이 책을 가지고 다녔다.[265]

수다에 따르면 람프사코스의 아낙시메네스 또한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친 스승 중 한 명이었으며, 알렉산드로스의 외국 원정에도 동참했다.[266]

3. 정복의 시기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16세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받는 교육을 마쳤다. 필리포스 2세가 북쪽 트라키아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알렉산드로스는 섭정이자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22] 필리포스 2세가 자리를 비운 동안 마이디 부족이 마케도니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신속하게 대응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알렉산드로폴리스를 건설했다.[22]

필리포스 2세가 돌아온 후, 알렉산드로스는 소규모 군대를 이끌고 남부 트라키아의 반란을 진압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페린토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의 목숨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암피사가 델포이 근처 아폴론 신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는 필리포스 2세에게 그리스 문제에 개입할 기회를 주었다. 필리포스 2세가 트라키아에 있는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남부 원정을 위한 군대를 모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른 그리스 국가들의 개입을 우려하여 알렉산드로스는 일리리아를 공격할 것처럼 위장했다. 이 혼란 속에서 일리리아인들이 마케도니아를 침략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그들을 격퇴했다.[23]

기원전 338년,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는 테르모필라이를 통해 남쪽으로 진군하여 테베 수비대를 격파하고 엘라테아를 점령했다. 데모스테네스가 이끄는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에 맞서 테베와 동맹을 맺었다. 아테네와 필리포스 2세 모두 테베의 지지를 얻으려 했으나, 아테네가 성공했다.[23] 필리포스 2세는 암피크티오니 연맹의 요청으로 암피사를 공격하여 데모스테네스가 보낸 용병들을 사로잡고 도시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필리포스 2세는 아테네와 테베에 평화를 제안했지만, 두 도시 모두 거절했다.[24]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이아에서 필리포스 2세의 군대와 아테네-테베 연합군이 맞붙었다.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필리포스 2세는 우익을, 알렉산드로스는 좌익을 지휘했다. 필리포스 2세는 아테네군을 유인하여 전열을 무너뜨렸고, 알렉산드로스는 테베군의 전열을 돌파했다. 아테네군이 패배하고 테베군이 포위되면서 전투는 마케도니아의 승리로 끝났다.

카이로네이아 전투 후,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는 펠로폰네소스로 진군하여 스파르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도시 국가들을 코린토스 동맹에 가입시켰다. 필리포스 2세는 동맹의 ''헤게몬''으로 임명되어 페르시아 제국 공격 계획을 발표했다.

3. 1. 필리포스 2세의 후계자

Ἀλέξανδρος Γʹ ὁ Μακεδώνgrc, 알렉산드로스 3세)는 16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육을 마치고, 필리포스 2세가 비잔티온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섭정 겸 왕위 계승자가 되었다.[22] 필리포스 2세의 부재 중 마이디 부족이 마케도니아에 반란을 일으켰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신속하게 대응하여 그들을 몰아내고 알렉산드로폴리스라는 도시를 건설했다.[22]

기원전 338년, 필리포스 2세와 합류한 알렉산드로스는 테르모필라이를 거쳐 남쪽으로 진군하여 아테네와 테베 연합군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격파했다. 이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좌익을 지휘하며 테베군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등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다.

카이로네이아 전투의 전투 계획


카이로네이아 전투 승리 후,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는 펠로폰네소스로 진군하여 코린토스에서 코린토스 동맹을 결성했다. 필리포스 2세는 이 동맹의 ''헤게몬''으로 임명되어 페르시아 제국 공격 계획을 발표했다.[25]

그러나 필리포스 2세가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와 결혼하면서 알렉산드로스의 왕위 계승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26] 결혼식 연회에서 아탈루스가 적법한 후계자 탄생을 기원하는 발언을 하자, 알렉산드로스는 그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떠났다가, 데마라투스의 중재로 6개월 만에 돌아왔다.[28]

3. 2. 추방과 귀환

필리포스 2세가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와 결혼하면서 알렉산드로스의 왕위 계승은 불안해졌다.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는 필리포스 2세의 장군 아탈루스의 조카였다.[26] 이 결혼으로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가 아들을 낳으면 완전한 마케도니아 혈통의 상속자가 나타나 알렉산드로스의 지위가 위협받을 수 있었다.

결혼식 연회에서 술에 취한 아탈루스는 신들에게 이 결합이 "합법적인 상속자"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말에 격분한 알렉산드로스는 아탈루스에게 잔을 던지며 "그럼 나는 사생아란 말이냐?"라고 소리쳤다. 필리포스 2세는 아탈루스 편을 들며 칼을 뽑아 알렉산드로스에게 달려들었으나, 술기운과 분노로 인해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건너갈 준비를 하는 자가 의자에서 의자로 옮겨가다 넘어지는구나."라며 필리포스 2세를 조롱했다.

기원전 337년,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함께 마케도니아를 떠났다. 올림피아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외삼촌인 에페이로스의 왕 알렉산드로스 1세에게 맡겨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일리리아로 피신하여, 이전에 자신이 무찔렀던 글라우키아스 왕에게 몸을 의탁했다.[27]

그러나 필리포스 2세는 알렉산드로스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가족의 친구인 데마라투스의 중재로 6개월 만에 마케도니아로 돌아왔다.[28]

4.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다

파우사니아스가 극장 행렬 중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를 암살하는 모습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한 후, 왕위를 계승하고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제거하면서 통치를 시작했다.[277] 사촌 형인 아민타스 4세를 제거하고, 두 명의 마케도니아 왕자를 처형했지만, 알렉산드로스 린케스테스는 살려주었다. 또한 필리포스 2세의 결혼식에서 자신의 신경을 거슬렀던 클레오파트라의 삼촌 아탈루스도 처형했다.[278] 아탈루스는 당시 데모스테네스와 아테네 망명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279] 아리히데우스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여 살려두었는데, 올림피아스가 독을 먹여 그렇게 만들었다는 견해가 있다.[280]

필리포스 2세의 죽음은 아테네, 테바이, 테살리아 등 여러 도시의 반란을 촉발시켰다. 알렉산드로스는 반란 소식을 듣고 빠르게 대응하여, 본국에서 3천 기병을 징집하여 테살리아로 향했다. 올림포스 산과 오사 산 사이 길목에 테살리아 군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력을 오사 산으로 이동시켜 테살리아 군을 포위했고, 테살리아군은 항복하여 알렉산드로스 군에 합류했다.[281]

알렉산드로스는 테르모필레에서 진군을 멈추고, 아테네는 자비를 구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코린토스에서 디오게네스와 유명한 일화를 남겼는데,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에게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달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282] 코린토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헤게몬 칭호를 얻고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는 동안 트라키아 폭동을 보고받았다.

4. 1. 승계

기원전 356년 펠라마케도니아 왕국 알게아스 왕조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는 20세에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왕위를 계승했다.

기원전 336년 10월 25일(마케도니아 달력으로 디오스(Dios)월 24일),[30][31] 필리포스 2세는 베르기나(Vergina, Aegae)에서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Cleopatra of Macedon)와 에피루스의 알렉산드로스 1세(올림피아스의 형제)의 결혼식에 참석하던 중, 친위대장 오레스티스의 파우사니아스(Pausanias of Orestis)에게 암살당했다. 파우사니아스는 도주 중 포도나무에 걸려 넘어졌고, 알렉산드로스의 동료인 페르디카스(Perdiccas)와 레오나투스(Leonnatus) 등에게 살해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자리에서 귀족들과 마케도니아 군대에 의해 왕으로 선포되었다.[32][33]

4. 2. 왕권 강화

알렉산드로스는 즉위하자마자 왕위 계승에 대한 잠재적 경쟁자들을 제거하며 통치를 시작했다.[34] 그는 자신의 사촌이자 전임 왕인 암인타스 4세를 처형했다.[34] 또한 아버지 암살에 연루된 린케스티스 지역 출신의 마케도니아 왕족 두 명을 죽였지만, 세 번째 왕족인 알렉산드로스 린케스테스는 살려두었다. 올림피아스는 필리포스 2세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에우리디케와 에우로파를 산 채로 불태워 죽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사실을 알고 격노하여, 소아시아에서 군대의 선봉대를 지휘하고 있던 클레오파트라의 삼촌인 아탈루스의 살해를 명령했다.[34]

당시 아탈루스는 아테네로 망명할 가능성에 대해 데모스테네스와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고, 알렉산드로스를 심하게 모욕했기 때문에, 클레오파트라의 살해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살려두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34] 알렉산드로스는 모든 기록에 따르면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르리다이오스를 살려 두었는데, 이는 아마도 올림피아스에 의한 독살 때문일 것이다.[33][35]

필리포스 2세의 죽음 소식은 테바이, 아테네, 테살리아, 그리고 마케도니아 북쪽의 트라키아 부족들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을 반란으로 이끌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반란 소식을 듣고 즉시 대응했다. 외교적 해결을 권하는 조언에도 불구하고, 3,000명의 마케도니아 기병을 소집하여 테살리아를 향해 남쪽으로 진군했다. 테살리아 군대가 올림포스 산과 오사 산 사이의 고개를 점령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병사들에게 오사 산을 넘어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다음 날 테살리아 군이 깨어났을 때, 알렉산드로스가 자신의 후방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항복했으며, 그들의 기병대를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 합류시켰다. 그 후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향해 남쪽으로 계속 진군했다.[36]

알렉산드로스는 테르모필레에 들러 암피크티오니 연맹의 지도자로 인정받은 후 남쪽으로 코린토스로 향했다. 아테네는 평화를 청했고 알렉산드로스는 반란자들을 사면했다.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만남은 알렉산드로스가 코린토스에 머무는 동안 일어났다. 알렉산드로스가 디오게네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자, 철학자는 무관심하게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조금 비켜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답에 알렉산드로스는 "만약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코린토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헤게몬"(지도자)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필리포스 2세처럼 페르시아에 대한 곧 있을 전쟁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또한 트라키아의 봉기 소식을 접했다.[37]

알렉산드로스가 북쪽에서 반란을 평정하는 동안 테바이아테네에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남쪽으로 향했다. 다른 도시들이 참전을 망설이는 동안 테바이는 혼자서라도 싸우지만 패배하고, 알렉산드로스는 군인들과 남자 민간인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여자와 어린이들은 모두 노예로 만들었다. 철저하게 파괴된 테바이는 갈기갈기 찢어져 다른 보이오티아 도시들에 병합되었다. 테바이의 멸망은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전역의 반기를 꺾어, 이후 그리스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다.

4. 3. 발칸 정복

기원전 335년, 트라키아인들과의 "수레 전투"에서 마케도니아 파랑크스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 원정에 앞서 북쪽 국경을 안정시키고자 했다. 기원전 335년 봄, 여러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암피폴리스에서 출발하여 동쪽으로 "독립 트라키아인"의 땅으로 진군했다. 마케도니아 군대는 하이무스 산에서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트라키아 군대를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트리발리의 땅으로 진격하여 리기누스 강[38] (다뉴브 강의 지류) 근처에서 그들의 군대를 격파했다. 그 후 3일 동안 다뉴브 강으로 진군하여 맞은편 강둑에서 게타이 부족과 조우했다. 밤에 강을 건너 기습하여 기병 소규모 충돌 후 그들의 군대를 후퇴시켰다.[39]

이 소식을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일리리아 추장 클레이토스와 타울란티이의 글라우키아스 왕이 그의 권위에 공개적으로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쪽으로 일리리아로 진군한 알렉산드로스는 두 사람을 차례로 패퇴시켜 두 통치자는 군대와 함께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승리로 그는 북쪽 국경을 확보했다.[40]

5. 페르시아 정복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없는 동안 많은 태수와 군 총독들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을 알고, 수사로 가는 길에 몇 명을 본보기로 처형했다. 병사들의 빚을 갚아주고, 나이 많고 장애가 있는 퇴역 군인들은 크라테로스의 지휘 하에 마케도니아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의 군대는 알렉산드로스의 의도를 오해하고 오피스 (도시)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파병을 거부하고,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관습과 의복을 채택하고 페르시아 장교와 군인을 마케도니아 부대에 도입하는 것을 비판했다.[287]

알렉산드로스는 3일 후에도 부하들을 설득할 수 없자, 페르시아인들에게 군대 지휘권을 부여하고 페르시아 부대에 마케도니아 군사 칭호를 부여했다. 이에 마케도니아인들은 용서를 구했고,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받아들여 수천 명의 부하들과 큰 연회를 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인과 페르시아인 사이의 지속적인 조화를 위해 수사에서 고위 장교들과 페르시아 및 다른 귀족 여성들과 대규모 결혼을 거행했지만, 이 결혼들 중 1년 이상 지속된 것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287]

한편, 페르시아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파사르가다에에 있는 키루스 대왕의 무덤 경비병들이 무덤을 더럽힌 것을 알고 그들을 처형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크세노폰키루스의 교육을 어릴 때부터 읽으며 키루스 대왕을 존경했는데, 이 책은 전투와 통치에서 키루스의 영웅적 행위를 묘사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불루스에게 키루스 무덤의 묘실 내부를 장식하도록 명령했다.[287]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보물의 대부분을 되찾기 위해 에크바타나로 여행했다. 그곳에서 그의 가장 친한 친구인 헤파이스티온이 질병이나 중독으로 사망했다.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은 알렉산드로스를 황폐화시켰고, 그는 공개 애도에 대한 법령과 함께 바빌론에 값비싼 장작더미를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아라비아 침공을 시작으로 일련의 새로운 캠페인을 계획했지만, 헤파이스티온 직후 사망했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할 기회가 없었다.[287]

5. 1. 소아시아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는 약 48,100명의 병력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를 건너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 제국) 정복을 시작했다.[44] 그라니쿠스 강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초기 승리를 거둔 후, 페르시아 주도 도시이자 재무부인 사르디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런 다음 이오니아 해안을 따라 진격하여 도시들에 자치권과 민주주의를 부여했다. 아케메네스 군대가 점령한 밀레토스는 인근에 페르시아 해군이 있었기 때문에 정교한 포위 작전이 필요했다. 더 남쪽의 카리아할리카르나소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첫 번째 대규모 포위 공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결국 용병 대장 로도스의 멤논과 카리아의 페르시아 사트라프인 오론토바테스를 바다로 후퇴하게 만들었다.[45] 알렉산드로스는 카리아의 정부를 헤카토무니드 왕조의 일원인 아다에게 맡겼고, 그녀는 알렉산드로스를 양아들로 삼았다.[46]

장-시몽 베르텔레미의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다'' (1767)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산악 지대인 리키아팜필리아 평원으로 진격하여 페르시아에게 해군 기지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해안 도시들을 장악했다. 팜필리아 이후로 해안에는 주요 항구가 없었고 알렉산드로스는 내륙으로 이동했다. 테르메소스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피시디아 도시를 굴복시켰지만 공격하지는 않았다.[47] 고대 프리고아의 수도인 고르디움에서 알렉산드로스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었다". 이것은 미래의 "소아시아의 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 업적이었다.[48] 이야기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매듭을 푸는 방법이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검으로 그것을 잘라 버렸다.[49]

5. 2. 시리아와 레반트

기원전 333년 봄, 알렉산드로스는 토로스 산맥을 넘어 킬리키아로 진군했다. 질병으로 인해 오랫동안 머문 후, 그는 시리아를 향해 진군했다. 다리우스 3세의 훨씬 더 큰 군대에 의해 기습을 당했지만, 그는 킬리키아로 돌아가 이소스에서 다리우스를 패배시켰다. 다리우스는 전투에서 도망쳐 그의 군대가 붕괴되도록 만들었고, 그의 아내, 두 딸, 어머니 시시감비스, 그리고 엄청난 보물을 남겼다.[50] 그는 이미 잃은 땅과 그의 가족을 위한 1만 타란트의 몸값을 포함하는 평화 조약을 제안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이제 아시아의 왕이 되었으므로 영토 분할을 결정할 권한은 자신에게만 있다고 답했다.[51] 알렉산드로스는 시리아와 레반트 해안 대부분을 점령했다.[46] 이듬해인 기원전 332년, 그는 티레를 공격해야 했고, 길고 어려운 공성전 끝에 함락시켰다.[52][53] 군복무 연령의 남성들은 학살당했고, 여성과 어린이들은 노예로 팔렸다.[54]

5. 3. 이집트

기원전 332년 후반,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로 진격하여 이집트인들에게 해방자로 칭송받았다.[58] 그는 멤피스에서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리비아 사막의 시와 오아시스에 있는 아문-라 신탁을 찾아갔다.[57] 그곳에서 그는 신 아문의 아들이라고 선포되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아몬을 자신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언급했고, 그의 사후 그를 묘사한 화폐에는 그의 신성함을 상징하는 아몬의 뿔이 달려 있었다.[59] 그리스인들은 이 메시지를 모든 파라오에게 신이 전한 메시지로 해석했다.[57]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했는데, 이 도시는 훗날 프톨레마이오스 왕국의 번영하는 수도가 되었다.[60]

5. 4.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로스는 메소포타미아로 진군하여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우스 3세를 다시 격파했다.[61] 다리우스는 또다시 도망쳤고,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아르벨라(현재 에르빌)까지 추격했다. 가우가멜라 전투는 둘 사이의 마지막이자 결정적인 만남이었다.[62] 다리우스는 산맥을 넘어 에크바타나(현재 하마단)로 도망쳤고,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을 점령했다.

바빌로니아 천문 일기에는 "세계의 왕 알렉산드로스"가 도시에 입성하기 전에 정찰병들을 바빌론 시민들에게 "나는 너희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63]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에서 아케메네스 제국의 수도 중 하나였던 수사를 점령하고 그곳의 국고를 차지했다. 그는 그의 군대 대부분을 페르시아의 의례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로 페르시아 왕의 길을 통해 보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은 선발된 병력을 이끌고 도시로 가는 직접적인 경로를 택했다. 그런 다음 그는 아리오바르자네스가 이끄는 페르시아 군대가 막고 있던 페르시아 문(오늘날의 자그로스 산맥) 고개를 돌파하고, 페르세폴리스의 수비대가 국고를 약탈하기 전에 서둘러 페르세폴리스로 향했다.[64]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한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군대가 며칠 동안 도시를 약탈하도록 허락했다.[68]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세폴리스에 5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의 체류 중에 크세르크세스 1세의 동쪽 궁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도시 전체로 번졌다. 가능한 원인으로는 술에 취한 사고나 제2차 페르시아 전쟁 당시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를 불태운 것에 대한 고의적인 복수가 포함된다. 플루타르코스디오도로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반자이자 헤타이라이인 타이스가 방화를 선동하고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알렉산드로스는 도시가 불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즉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기 시작했다.[66][67] 플루타르코스는 그가 그의 부하들에게 불을 끄라고 명령했다고 주장하지만, 불길은 이미 도시 대부분으로 번져 있었다. 쿠르티우스는 알렉산드로스가 다음 날 아침까지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플루타르크는 알렉산드로스가 잠시 멈춰 서서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쓰러진 크세르크세스의 동상과 이야기하는 일화를 전한다.

5. 5.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과 동방 원정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를 추격했지만, 다리우스 3세는 베수스에게 암살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베수스를 왕위 강탈자로 여기고 그를 무찌르기 위해 중앙아시아 원정을 시작했다. 이 원정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메디아, 파르티아, 아리아, 드란지아나, 아라코시아, 박트리아, 스키타이 등 여러 지역을 정복했다.

기원전 329년, 스피타메네스가 소그디아나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야크사르테스 강 전투에서 스키타이 군대를 격파하고 스피타메네스를 진압했다.[42][43]

5. 6. 인도 원정

스피타메네스의 죽음과 록사나와의 결혼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총독부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인도 원정에 나섰다. 그는 현재 파키스탄 지역의 모든 족장을 초대하여 자신의 권위에 복종할 것을 요구했다. 인더스 강부터 히다스페스 강까지의 영역을 다스리던 옴피스 왕은 알렉산드로스에게 순응했지만, 산악 지역의 족장들은 복종을 거부했다.

기원전 326년~기원전 327년 겨울, 알렉산드로스는 여러 부족을 상대로 직접 전쟁을 지휘했다. 치열한 전투 중 알렉산드로스는 어깨 부상을 입었지만, 결국 승리하여 적장을 마주했다. 마사가 요새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발목 부상을 입혔으나, 며칠간의 전투 끝에 함락되었다.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마사가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건물을 파괴했다. 오르아에서도 비슷한 학살이 자행되었고, 그 여파로 많은 부족민이 아오르노스 요새로 도망쳤으며, 며칠간의 전쟁 끝에 알렉산드로스 군은 이 요새를 점령했다.

아오르노스 점령 후, 알렉산드로스는 인더스 강을 건너 포루스를 격파하고 사로잡았으나, 그의 용맹함에 감명받아 동맹을 맺고 총독으로 삼았다. 또한, 인근의 소수 민족 15개 국가와 작은 도시 5천 개의 땅을 포루스에게 추가로 주었다. 알렉산드로스는 히다스페스 강 양쪽에 두 도시를 건설했는데, 하나는 자신의 말 이름을 따 부케팔라스로, 다른 하나는 니케아로 명명했다.

갠지스 강 인근의 동쪽에는 난다 제국이 있었고, 더 동쪽에는 강가리다이 제국이 있었다. 보병 2만, 기병 2천에 불과한 포루스 군을 상대로 13만 남짓한 병력으로 고전 끝에 승리한 알렉산드로스 군은 사기가 저하되었고, 길이 6km, 폭 180m에 달하는 거대한 갠지스 강을 건너는 것을 무리로 여겼다. 더욱이 포루스 군보다 훨씬 많은 보병 20만, 기병 8만, 전차 8천 대, 전투 코끼리 6천 마리를 거느린 강가리다이 및 프라이시오족 왕들의 인도 연합군과의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 알렉산드로스 군은 히파시스 강(비아스 강)에서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는 진격을 설득했지만, 크라테로스가 병사들의 귀향 의사를 전달하며 설득하여 결국 남쪽으로 회군했다. 이 강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동쪽 경계가 되었다.

남쪽으로 회군한 알렉산드로스 군은 인더스 강으로 향했다. 도중에 말리족 등 인도 부족들을 정복했으나, 말리족과의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는 평생의 전투 중 가장 큰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맸다.

6. 페르시아에서의 말년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없는 동안 많은 총독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수사로 가는 길에 그들 중 몇 명을 본보기로 처형했다. 병사들의 빚을 탕감해 주었고, 나이가 들고 장애가 있는 노병들을 크라테루스의 지휘 아래 마케도니아로 돌려보내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대는 그의 의도를 오해하고 오피스 마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마케도니아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페르시아 풍습과 복장을 채택하고 마케도니아 부대에 페르시아 장교와 병사들을 편입시킨 것에 대해 비난했다.[92]

사흘 후, 알렉산드로스는 병사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페르시아인들에게 군 지휘권을 주고 페르시아 부대에 마케도니아 군사 칭호를 수여했다. 마케도니아 군인들은 곧 용서를 구했고,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받아들였고, 수천 명의 병사들과 함께 큰 연회를 열었다.[93] 마케도니아와 페르시아 신민들 사이에 지속적인 조화를 이루려는 시도로, 대규모 결혼식을 통해 고위 장교들을 페르시아와 다른 귀족 여성들과 결혼시켰지만, 그 결혼 중 몇 년 이상 지속된 것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에르앙리 드 발랑시앵의 ''알렉산더 대왕과 키루스 2세의 무덤'' (1796)


페르시아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파사르가다이에 있는 키루스 2세의 무덤의 경비병들이 그곳을 훼손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즉시 그들을 처형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키루스 2세를 존경했으며, 키루스 2세의 전투에서의 영웅심과 왕이자 입법자로서의 통치를 묘사한 크세노폰의 ''키로파이디아''를 읽었다.[94] 파사르가다이를 방문하는 동안, 알렉산드로스는 건축가 아리스토불루스에게 키루스 2세의 무덤 묘실 내부를 장식하도록 명령했다.[94]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대부분의 보물을 회수하기 위해 에크바타나로 여행했다. 거기서 가장 친한 친구인 헤파이스티온이 병으로 또는 독살로 사망했다.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은 알렉산드로스를 엄청나게 낙담시켰고, 그는 바빌론에서 값비싼 장례식 화장대를 준비하고 공개적인 애도를 위한 칙령을 내렸다.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아라비아 침략을 시작으로 일련의 새로운 원정을 계획했다.

7. 죽음

기원전 323년 6월 10일 또는 11일, 알렉산드로스는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 궁전에서 3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95] 알렉산드로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세부 사항이 약간 다른 두 가지 버전이 전해진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죽기 약 14일 전에 제독 네아르코스를 접대하고 라리사의 메디우스와 함께 밤을 보내며 술을 마셨다. 이후 열병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건강을 염려한 일반 병사들은 그를 지나갈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그는 침묵 속에서 병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디오도로스는 헤라클레스를 기리며 섞지 않은 많은 양의 포도주를 마신 후 알렉산드로스가 고통에 시달렸고, 11일 동안 허약해졌다고 기록했다. 그는 열병에 걸리지 않았고, 고통 후에 사망했다. 아리아누스도 이를 대안으로 언급했지만, 플루타르코스는 이 주장을 부인했다.

마케도니아 귀족들의 암살 경향을 고려할 때,[96]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기록에서 독살설이 제기되었다. 디오도로스, 플루타르코스, 아리아누스, 유스티누스는 모두 알렉산드로스가 독살되었다는 이론을 언급했다. 유스티누스는 알렉산드로스가 독살 음모의 희생자라고 주장했고, 플루타르코스는 그것을 날조라고 일축했다.

독살설의 배후로는 안티파트로스가 지목되었다. 그는 마케도니아 총독직에서 해임되고 크라테루스로 대체된 것에 앙심을 품고, 알렉산드로스의 술 따르는 사람이었던 그의 아들 이올라스에게 독살을 사주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참여했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독살설에 대한 반론으로, 그의 병 발병부터 사망까지 12일이나 걸렸다는 점이 제시된다. 당시에는 그렇게 장기간 작용하는 독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2003년 BBC 다큐멘터리에서 뉴질랜드 국립 독극물 센터의 레오 셰프는 고대에 알려진 식물인 흰 바곳(''Veratrum album'')이 알렉산드로스를 독살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97][98] 2014년 ''Clinical Toxicology'' 저널에 실린 원고에서 셰프는 알렉산드로스의 포도주에 ''Veratrum album''이 첨가되었고, 이것이 ''알렉산더 로망스''에 묘사된 사건 경과와 일치하는 중독 증상을 유발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99]

자연적인 원인(질병)으로는 말라리아, 장티푸스 등이 제시되었다. 1998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실린 논문은 그의 죽음을 장티푸스에 의한 장관 천공과 상행성 마비의 합병증으로 보았다. 2004년 분석에서는 화농성(전염성) 척추염 또는 수막염을 제시했다. 급성 췌장염, 서나일 바이러스,[102] 길랭-바레 증후군 등도 거론된다.[103] 알렉산드로스의 건강이 수년간의 과음과 심각한 상처 후에 전반적으로 악화되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다.

알렉산드로스의 시신은 꿀로 채워진 금으로 만든 인형 모양의 석관에 안치되었고, 그 석관은 다시 금 상자에 넣어졌다.[104] 아이리아노스에 따르면, 아리스탄데르라는 점쟁이는 알렉산드로스가 묻힌 땅은 "영원히 행복하고 정복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후계자들이 시신을 소유하는 것을 정통성의 상징으로 여겼을 가능성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의 장례 행렬이 마케도니아로 향하던 중,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이를 압수하여 일시적으로 멤피스로 가져갔다. 그의 후계자인 프톨레마이오스 2세 필라델포스는 석관을 알렉산드리아로 옮겼다. 프톨레마이오스 9세 라튀로스는 원래 석관을 주화로 만들기 위해 유리 석관으로 교체했다.

8. 제국의 분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그의 죽음 소식이 그리스에 전해졌을 때, 즉시 믿어지지 않았다.[41] 알렉산드로스는 명백하거나 합법적인 상속자가 없었고, 록사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알렉산드로스 4세는 알렉산드로스 사후에 태어났다. 디오도로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의 동료들은 그의 죽음 직전에 그에게 왕국을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지 물었고, 그의 간결한 대답은 "tôi kratistôi"—"가장 강한 자에게"였다. 다른 이론은 그의 후계자들이 고의적이거나 잘못하여 "tôi Kraterôi"—"크라테로스에게", 마케도니아 군대를 고향으로 이끌고 마케도니아 섭정을 맡게 된 장군에게—라고 잘못 들었다는 것이다.[115]

아리아노스플루타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이때 말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여, 이것이 허구적인 이야기임을 암시했다.[116] 디오도로스, 쿠르티우스, 유스티누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증인 앞에서 경호대장이자 동료 기병대 지휘관인 페르디카스에게 자신의 인장 반지를 넘겨줌으로써 그를 지명했다는 더 그럴듯한 이야기를 제시했다.

페르디카스는 처음에는 권력을 주장하지 않았고, 대신 록사네의 아기가 남자아이라면 왕이 될 것이며, 자신, 크라테로스, 레온나토스, 안티파테르가 섭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멜레아게르의 지휘 아래 있는 보병들은 이러한 합의를 거부했는데, 그들이 논의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알렉산드로스의 이복형제인 필리포스 아르리다이오스를 지지했다. 결국 두 진영은 화해했고, 알렉산드로스 4세가 태어난 후, 그는 필리포스 3세와 함께 공동 국왕으로 임명되었지만, 명목상일 뿐이었다.

곧 불화와 경쟁이 마케도니아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바빌론 분할에서 페르디카스가 나눠준 사트라피들은 각 장군이 권력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권력 기반이 되었다. 기원전 321년 페르디카스가 암살된 후, 마케도니아의 통일은 무너졌고, "후계자들"(''디아도코이'') 간의 40년간의 전쟁이 헬레니즘 세계가 세 개의 안정적인 세력권, 즉 프톨레마이오스 이집트, 셀레우코스 시리아와 동부, 안티고니드 마케도니아로 정착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알렉산드로스 4세와 필리포스 3세는 모두 살해되었다.

9. 헬레니즘 문화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으로 고대 그리스와 고대 오리엔트의 문명이 융합되어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문명이 나타났다.[217][218][219] 이는 문화 전파와 싱크레티즘의 결과이며, 그리스식 불교 등에서 그 영향을 볼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20개가 넘는 도시를 건설했으며, 그중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가장 유명하다. 이러한 그리스 식민지의 지배와 그리스 문화의 동방 전파는 헬레니즘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제국의 공용어로 고대 그리스어를 채택하고, 페르시아 문화와의 융합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하고, 페르시아인과 자신의 부하들 간의 집단 결혼을 장려했다. 또한 페르시아식 의례와 행정 제도를 도입하고 현지 유력자를 관리로 임명했다.

헬레니즘 문화는 알렉산드로스의 제국과 그 후계 왕조에 뿌리내려, 라오콘,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Dying Gaul|죽어가는 갈리아인영어 등의 조각상이 여러 곳에서 제작되었다. 유클리드, 아폴로니우스, 아르키메데스, 에라토스테네스, 아리스타르코스 등의 학자들도 배출되었고, 이후 로마 제국과 사산조 등에 영향을 미쳤다.

10. 개인사

알렉산드로스는 리시포스가 만든 조각상에서 자신의 용모가 가장 잘 드러난다고 평가했다.[124] 그는 급하고 충동적인 성격이었지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강했고, 철학과 책을 좋아했으며, 예술과 과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육체의 쾌락"에 대해서는 절제했지만,[133] 음주는 절제하지 못했다.[133]

알렉산드로스는 세 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 부인은 박트리아 귀족 옥시아르테스의 딸 록사네였다.[141][142][143] 두 번째와 세 번째 부인은 페르시아 공주 스타테이라파뤼사티스였다.[144] 그는 친구이자 장군인 헤파이스티온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헤파이스티온의 죽음은 알렉산드로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11. 이슬람권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이스칸다르'''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권에는 이스칸다르에 대한 수많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중동 지역 전승에서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두 개의 뿔이 있다고 여겨 '이스칸다르 즈르칼나인'으로 불리기도 한다.[234] 동남아시아에 이스칸다르라는 남성 이름이 흔한 것은 이슬람교 전파와 함께 이 영웅 전설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스칸다르''' ('''اسکندر|Iskandarfa''')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리키는 아랍어·페르시아어식 이름이다. 이슬람권에서 이스칸다르 이미지는 주로 『위작 칼리스테네스의 알렉산드로스 이야기』에서 유래한 허구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아바스 왕조 시대 번역 운동을 통해 유입된 시리아, 이집트 등지의 알렉산드로스 전승이 더해져 이란 세계에서의 알렉산드로스 3세 지배를 역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문학에서 피르도우시나 니자미 같은 작가들은 운문이나 산문으로 된 『이스칸다르 나마』(알렉산드로스의 책)를 저술했다. 이 작품들에서 이스칸다르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적인 군주와 재상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알렉산드리아는 알-이스칸다리야, 알렉산드레타는 이스칸다룬(터키어로는 이스켄데룬)이라고 불리는 등 중동의 도시 이름에도 알렉산드로스의 흔적이 남아있다.

이슬람교 전파와 함께 동남아시아에서도 이스칸다르는 일반적인 남성 이름이 되었다. 말라야 연대기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후손인 라자 수란(11세기 남인도 촐라 왕조라젠드라 1세로 추정)이 현대 말레이시아 지역을 침략했다는 기록이 있다.[234] 역사적으로 말라카 국왕 이스칸다르 샤(재위 1414년-1424년), 아체 국왕 이스칸다르 무다(재위: 1607년-1636년) 등이 이 이름을 사용했다.

16세기 이슬람 미술, 유리로 만든 잠수종으로 수중 탐사하는 알렉산드로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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