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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기제조 Y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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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항공기제조 YS-11은 1950년대 일본 국내선용 소형 비행기 수요에 따라 개발된 60인승 쌍발 터보프롭 항공기이다. 1957년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를 시작으로, 1959년 일본항공기제조로 개명되어 제작되었으며, 롤스로이스 다트 엔진을 사용했다. 1962년 첫 비행 후, 대한항공 등에서 임차하여 운용되었으며, 1964년 국내선 납품을 시작했다. 이후 필리핀, 미국 등지로 수출되었으나, 상업적 판매 부진과 여러 문제로 1973년 생산이 중단되었다. 총 182기가 생산되었으며, 2000년대 초까지 일본 항공사에서 퇴역했다. YS-11은 일본의 기계 기술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06년 일본 에어 커뮤터의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상업 운항에서 완전히 퇴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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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기제조 YS-11
기본 정보
이름YS-11
유형터보프롭 여객기
원산지일본
제작사일본항공기제조
첫 비행1962년 8월 30일
소개1965년 3월 30일, 전일본공수 (1965년 일본에어커뮤터의 첫 여객 비행)
상태매우 제한적인 서비스 중 (2024년 6월 30일 기준)
생산 기간1962년–1974년
생산 대수182대
대당 가격미화 2백만 달러 (1972년)
이미지
일본 해상자위대 YS-11M
2013년 일본 해상자위대 YS-11M

2. 역사

1950년대부터 일본더글러스 DC-3를 대체해 국내선에 사용할 소형 비행기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후지 중공업 등의 회사들이 합작하여 1957년에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수연)를 설립했고, 1959년에 일본항공기제조로 개명되었다.[132][133]

일본항공기제조는 60인승 쌍발 터보프롭 항공기 YS-11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롤스로이스 다트를 사용하였으며,[134] 1962년 8월 30일 나고야 공항에서 첫 비행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한항공이 이 기종을 운용했으며, 전량 임차해서 운용했다.

YS-11의 "YS"는 "수송기"와 "설계"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며,[76] "11"의 첫 번째 "1"은 엔진 후보였던 롤스로이스 다트 RDa.10/1 엔진의 번호, 두 번째 "1"은 기체 사양 안 번호를 의미한다. 1958년 12월 11일에는 모형이 공개되었는데, "요코하마・스기타에서 11일에 만납시다"라는 말장난식 유행어가 생겨나기도 했다.[76]



초기 비행 테스트에서는 조향 불량, 과도한 진동과 소음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10] 특히 측면 기동 중 안전 부족 문제는 심각하여, 미국 연방 항공국(FAA)의 형식 증명 취득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주익의 상반각을 변경하고, 방향타의 밸런스 탭을 스프링 탭으로 교체하는 등 대대적인 개수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FAA 형식 증명을 취득할 수 있었다.

YS-11은 튼튼한 기체를 가졌지만, 이는 중량 증가로 이어져 피로 강도 시험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파워 부족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93] 상업적 판매는 부진했는데, 이는 일본 외 지역에서 경쟁 모델들과의 가격 경쟁, 검증된 실적 부족, 프로그램 비용 관리 문제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특히 일본 정부 감사원은 미국 NAMC 행정 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18]

2006년 9월 30일, 일본 에어 커뮤터 3806편이 일본 상업 항공 산업에서 YS-11의 마지막 비행을 기록했다.[19] 2007년에는 일본 기계 기술 유산에 항목 13번으로 추가되었다.

2. 1. 개발 배경

1950년대부터 일본더글러스 DC-3를 대체하여 국내선에 사용할 소형 비행기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후지 중공업 등의 회사들이 합작하여 1957년에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수연)를 설립하였고, 1959년에 일본항공기제조로 개명되었다.[132][133]

일본항공기제조는 60인승 쌍발 터보프롭 항공기 YS-11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롤스로이스 다트를 사용하였으며,[134] 첫 비행은 1962년 8월 30일 나고야 공항에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한항공이 이 기종을 운용했으며, 전량 임차해서 운용했다.

1950년대 중후반, 일본 통상산업성 (MITI)은 일본 국내 노선에서 운행 중인 더글러스 DC-3를 대체할 단거리 여객기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를 위해 1957년 5월, "상업 수송 설계 연구 협회"가 설립되었고,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보장되었다. 일본 정부는 여객기 개발을 전후 일본 항공 회사들의 부활을 위한 핵심 사업으로 여겼으며, 세계 여객기 시장에서 주요 국제 경쟁자가 되려는 야망과 더불어 추진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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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후지 중공업, 신메이와, 쇼와 항공기 산업 회사 및 일본 항공기 산업 회사는 합작 투자를 설립했다. 2년 후, 이 파트너십은 "일본항공기제조"(NAMC)로 공식화되었다.[3][4] NAMC의 소유권은 일본 정부가 처음에는 지분 54%를, 구성 항공기 제조업체가 18%의 지분을, 여러 부품/재료 공급업체가 11%를 보유했다. 그러나 NAMC는 구성 제조업체가 제공하는 인력과 인프라에 의존했다.[5][6]

NAMC는 최대 60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쌍발 터보프롭 엔진 단엽기를 설계했으며, 이를 "YS-11"이라고 명명했다.[7] 설계 팀에는 이전에 미쓰비시 A6M 제로 전투기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도 참여했다.[8]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주요 엔지니어는 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차남인 도조 데루오였다.[5] YS-11은 비커스 바이카운트와 유사한 운용 성능을 제공하면서, 포커 F27 프렌드십보다 50% 더 큰 수용 능력을 갖도록 설계되었다. MITI는 마틴 4-0-4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항공기 가격을 감독했다.[5]

여객기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선택된 엔진은 2275kW (3,050 ehp)의 롤스로이스 다트 RDa.10/1 동력 장치였으며, 이는 롤스로이스에서 개발 및 생산되었다.[9] 객실 가압과 같은 여러 핵심 항공기 시스템은 해외에서 가져왔다.[5] YS-11의 생산 기간 동안, 전자 장비, 항공 전자 장치, 기계 및 동체 부품은 일본 회사와 해외 공급업체의 조합을 통해 공급되었다.[5]

연합국 점령하 일본에서는 연합군 최고사령부 (GHQ/SCAP)의 항공 금지령으로 인해, 일본에 있는 모든 비행기가 파괴되고, 항공기 메이커가 해체되었으며, 항공사가 폐쇄되었고, 대학교 수업에서 항공역학 과목이 제거되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효에 따른 재독립 후, 일본 기업에 의한 비행기의 운항 및 제조 금지가 일부 해제되었고, 그 해 7월에 항공법 및 항공기 제조 사업법이 시행되었다.

전후 일본의 항공 노선더글러스 DC-3DC-4, 컨베어 440 등의 미국제 및 데 하빌랜드 DH.114 헤론 등 영국제 항공기가 차지하고 있었고, 전전의 항공기 개발·제조에서 실적이 있던 일본에서 자국산 항공기를 다시 날리고 싶다는 생각은 많은 항공 관계자들이 품고 있었다.

1956년 통상산업성 중공업국의 아카자와 쇼이치 과장의 주도로 국산 민간기 계획이 수립되었다.[74] 통상산업성은 각 항공기 제작 회사와 개별 회담을 갖고, 각사로부터 찬동을 얻어 일본 항공 공업회에 중형 수송기 계획안을 제출하도록 요청했다. 1957년 1월 20일, 미즈타 미키오 통상산업대신과 이케다 하야토 대장대신의 대신 교섭을 거쳐, 광공업 기술 연구 보조금 명목으로 3,500만 엔의 예산을 확보했다.

같은 해 5월, 이사장에 신미쓰비시중공업 부사장 소다 타이조가 선임되었고, 전임 이사로 기무라 히데마사 도쿄 대학 교수를 맞이한 "재단법인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 (약칭 "수연")가 도쿄 대학 내에 설립되어 소형 여객 수송기의 설계가 시작되었다. 수연에 참여한 제작 회사는 신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 항공기, 후지 중공업(현 SUBARU), 신메이와 공업, 일본 비행기, 쇼와 항공기의 기체 제작 회사와 스미토모 금속(현 스미토모 정밀 공업), 시마즈 제작소, 일본 전기, 도쿄 시바우라 전기(현 도시바), 미쓰비시 전기, 도쿄 항공 계기의 부품 제작 회사들이었다. 복수 기업의 연합이 된 이유는, 국내 신형 항공기 개발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특정 기업 한 곳에 독점적으로 맡김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다른 회사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수연에는 제로식 함상 전투기 (제로센)와 라이덴、렛푸를 설계한 신미쓰비시호리코시 지로, 나카지마 비행기에서 일식 전투기 "하야부사"를 설계한 후지 중공업의 오타 미노루, 가와니시 항공기에서 2식 대정과 시덴카이(및 시덴)를 설계한 신메이와 공업의 기쿠하라 시즈오,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3식 전투기 (히엔)5식 전투기를 설계한 가와사키 중공업의 도이 다케오 등 전전 항공 업계를 지탱했던 기술자들이 참여하여 설계에 몰두했다. 항공 업계에서는 여기에 항연기 제작에 참여한[75] 기무라 히데마사를 더하여 "다섯 명의 사무라이"라고 불렀다.

설계안으로서, 일본의 국내선 수요를 감안하여 1200m의 활주로에서 운용할 수 있는 것, 항속 거리는 약 804.67km에서 약 1609.34km (800km-1600km), 정비성을 고려해 저익, 경제성을 고려해 60석 이상, 쌍발 터보프롭 엔진, 개발 기간은 4년, 개발 비용은 30억 엔의 기본 설계로 굳어졌다. 당초 개발 기간은 5년이었지만, 당시 국내 여객기의 잔여 수명이 3~4년인 기체가 많아 대체 시기를 감안하면 5년은 너무 길다는 운수성의 주장에 따라 4년으로 단축되었다.

국산 여객기 제조에 대한 이해와 국가로부터의 예산 확보를 위해 1958년 12월 11일 일본 비행기의 스기타 공장에서 모형을 완성, 공개했다. 시제기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데몬스트레이션이며, 기술적인 검토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 때문에 객실의 기장에 힘을 쏟아 항법사석과 두 개의 화장실을 설치하고, 횡렬 5석으로 구성하여 내장은 당시 유력 디자이너인 와타나베 리키에게 의뢰하여 표피를 니시진 직물로 한 좌석이 설치되었다. 이 좌석은 당시 가격으로 한 좌석에 50만 엔 이상 했다고 전해진다.

YS-11이라는 기종명의 "YS"는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의 "수송기"와 "설계"의 머리글자 "Y"와 "S"를 따온 것이다.[76] "11"의 첫 번째 "1"은 탑재를 검토하던 엔진 후보에 붙여진 번호로, 실제로 선정된 "다트 10"의 번호가 "1"이었다. 뒤의 "1"은 검토된 기체 사양 안의 번호로, 주익의 위치와 면적에 따라 여러 안이 검토되었다.

모형 공개 후, 항공기 제조사 업계 단체에 의한 설계 조합적인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에서 관민 공동의 특수 법인으로서 일본항공기제조(일항제, NAMC)가 1959년 6월 1일에 설립되어 수연은 해산했다. 자본금은 5억 엔으로, 정부 출자분이 3억 엔, 민간 출자는 2억 엔이었다. 초대 사장에는 수연 이사장 소다 코조가 취임했다. 민간 출자는 수연에 참가한 기체 제조사 6개사와 재료·부품 제조사에 더해, 새롭게 상사, 금융 기관이 출자했다..

일항제는 수연의 잔류 스태프 30명과, 출자 각사에서 파견된 사람 13명의 임원 총 125명으로 발족했다. "다섯 명의 사무라이"는 실기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1960년부터의 실기 제작은 미쓰비시에서 기술 부장으로 파견된 토조 테루오에게 맡겨졌다. 토조는 아버지로 육군 대신이나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도조 히데키의 권유로, 군인이 아닌 기술자를 목표로 했으며, 과거 호리코시의 밑에서 "영전"의 설계에도 관여했다.

일항제는 설계 개발, 생산 관리, 품질 관리, 판매, 제품 지원을 실시하고, 기체 제조사 각사가 생산을 분담, 미쓰비시 중공업이 최종 조립을 담당하기로 했다.

중형 수송기 개발을 정식으로 결정하자, 미국의 컨베어, 네덜란드포커, 영국의 브리티시 에어크래프트 (BAC) 등의 유럽 및 미국 항공기 제조사가 자사와의 공동 개발, 혹은 자사기의 라이센스 생산 참여, 즉 독자 개발 계획 중지를 요구하며 쇄도했다. 특히 포커는 자사의 F27 프렌드십과 일본 기체의 규모가 경쟁하기 때문에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통상산업성은 이들을 모두 일축했다.

설계·각종 계산에는 후지쯔의 릴레이식 계산기 FACOM 128B 등이 사용되었다.

2. 2. 명칭

"YS-11"의 "YS"는 "유소"(수송)와 "세케이"(설계)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輸送機設計研究協会)를 의미한다.[76] "11"의 첫 번째 "1"은 고려되었던 여러 엔진 후보 중 롤스로이스 다트 RDa.10/1 엔진이 "1번"으로 지정된 것을 나타낸다. 두 번째 "1"은 날개 배치와 크기가 다른 여러 계획 중 YS-11에 선택된 항공기 사양 계획을 가리킨다. 한때 "계획 0"도 있었다.

YS-11 모형 공개와 관련하여 "요코하마・스기타에서 11일에 만납시다"라는 말장난식 유행어가 생겨났다.[76] 요코하마는 "Y"를, 스기타 지역은 "S"를, 11일은 비행기와 공개 날짜(1958년 12월 11일)를 모두 나타낸 것이다. 이 때문에 "YS-11"의 "11"을 "eleven"(일본어로는 jūichi, 주이치)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비행기 설계에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원래 이 명칭이 "YS-one-one"(또는 YS ichi ichi, 와이에스・이치이치)으로 발음되었으나, 어느새 "와이에스・주이치"라고 불리게 되었다.

2. 3. 개발 과정

1950년대부터 일본더글러스 DC-3를 대체하여 국내선에 사용할 소형 비행기를 필요로 하였다. 이에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후지 중공업 등의 회사들이 합작하여 1957년에 수연을 설립하였고, 1959년에 일본항공기제조사로 개명되었다.[132][133]

일본항공기제조사는 60인승이 탑승할 수 있는 쌍발 터보프롭항공기 YS-11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롤스로이스 다트를 사용하였다.[134] 첫 비행은 1962년 8월 30일 나고야 공항에서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한항공이 이 기종을 운용했으며, 전량 임차해서 운용했다.

1950년대 중후반, 일본 통상산업성 (MITI)은 일본 국내 노선에서 운행 중인 더글러스 DC-3를 대체할 단거리 여객기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이를 위해 1957년 5월, "상업 수송 설계 연구 협회"가 설립되었고, 미쓰비시 중공업, 가와사키 중공업, 후지 중공업, 신메이와, 쇼와 항공기 산업 회사 및 일본 항공기 산업 회사는 합작 투자를 설립했다. 2년 후, 이 파트너십은 "일본 항공기 제조 회사"(NAMC)로 공식화되었다.[3][4]

NAMC는 최대 60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쌍발 터보프롭 엔진 단엽기를 설계했으며, 이를 "YS-11"이라고 명명했다.[7] 설계 팀에는 미쓰비시 A6M 제로 전투기를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도조 히데키 전 총리의 차남으로, 나중에 미쓰비시 자동차 회장이 된 도조 테루오가 참여했다.[8][5]

1956년 (쇼와 31년), 통상산업성 중공업국의 아카자와 쇼이치 과장의 주도로 국산 민간기 계획이 수립되었다.[74] 같은 해 5월, 소다 타이조 신미쓰비시중공업 부사장이 이사장에 선임되었고, 기무라 히데마사 도쿄 대학 교수가 전임 이사로 취임한 "재단법인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 (약칭 "수연")가 도쿄 대학 내에 설립되어 소형 여객 수송기 설계가 시작되었다.

수연에는 제로식 함상 전투기 (제로센)와 라이덴、렛푸를 설계한 신미쓰비시호리코시 지로, 나카지마 비행기에서 일식 전투기 "하야부사"를 설계한 후지 중공업의 오타 미노루, 가와니시 항공기에서 2식 대정과 시덴카이(및 시덴)를 설계한 신메이와 공업의 기쿠하라 시즈오, 가와사키 중공업에서 3식 전투기 (히엔)5식 전투기를 설계한 도이 다케오 등 전전 항공 업계를 지탱했던 기술자들이 참여했다. 항공 업계에서는 여기에 항연기 제작에 참여한[75] 기무라 히데마사를 더하여 "다섯 명의 사무라이"라고 불렀다.

설계안은 일본의 국내선 수요를 감안하여 1,200m 활주로에서 운용, 항속 거리 500~1,000마일 (800~1,600km), 정비성을 고려한 저익, 경제성을 고려한 60석 이상, 쌍발 터보프롭 엔진, 4년의 개발 기간, 30억 엔의 개발 비용을 기준으로 확정되었다.

1958년 (쇼와 33년) 12월 11일 일본 비행기의 스기타 공장에서 국산 여객기 제조에 대한 이해와 국가 예산 확보를 위해 모형을 완성, 공개했다.

YS-11이라는 기종명의 "YS"는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의 "수송기"와 "설계"의 머리글자 "Y"와 "S"를 따온 것이다.[76] "11"의 첫 번째 "1"은 탑재를 검토하던 엔진 후보에 붙여진 번호로, 실제로 선정된 "다트 10"의 번호가 "1"이었다. 뒤의 "1"은 검토된 기체 사양 안의 번호로, 주익의 위치와 면적에 따라 여러 안이 검토되었다.

모형 공개 후, 항공기 제조사 업계 단체에 의한 설계 조합적인 수송기 설계 연구 협회에서 관민 공동의 특수 법인으로서 일본항공기제조(NAMC)가 1959년(쇼와 34년) 6월 1일에 설립되어 수연은 해산했다.

일항제는 수연의 잔류 스태프 30명과, 출자 각사에서 파견된 13명의 임원 총 125명으로 발족했다. "다섯 명의 사무라이"는 실기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1960년 (쇼와 35년)부터의 실기 제작은 미쓰비시에서 기술 부장으로 파견된 토조 테루오에게 맡겨졌다.

설계·각종 계산에는 후지쯔의 릴레이식 계산기 FACOM 128B 등이 사용되었다. FACOM 128B는 동형기가 현재 후지쯔 누마즈 공장의 이케다 토시오 기념실에 전시·동태 보존되어 있다. 유사한 계산기의 동태 보존기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2. 4. 문제점과 극복

1962년 8월 30일, 첫 번째 프로토타입나고야 공항에서 처녀 비행을 했고, 곧이어 1962년 12월 28일에 두 번째 프로토타입이 비행했다. 초기 비행 테스트에서는 조향 불량, 과도한 진동과 소음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드러났다.[10] 또한 측면 기동 중 안전이 심각하게 부족했다. 프로펠러의 와류가 항공기를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는 비정상적인 힘을 발생시켰고, 모든 방향타가 효과가 없었으며, 기동성은 최악이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비행 테스트 중 스핀이 발생했으며, 이는 추락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것은 "세 개의 방향타 문제"로 알려졌다.[79]

이러한 문제들은 수출에 필요한 미국 연방 항공국(FAA)의 형식 증명 취득 심사에서도 지적되어 대규모 개수를 해야 했다. 이 개수에 예상 이상으로 시간이 걸려 매스 미디어에서는 "날 수 없는 비행기" 등 혹평을 받았다. 전일본공수는 납품 지연이 확실해지자, 임시로 경쟁 기종이었던 포커 F27 프렌드십을 도입했다.

첫 비행을 지켜본 후 미쓰비시로 돌아갔던 도조도 문제 해결을 위해 다시 일본항공기제조로 복귀하여 개수 작업에 참여했다. 횡 안정에 대해서는 주익의 상반각을 4도 19분에서 6도 19분으로 올리면 된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설계 변경과 재조립에는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래서 가와사키의 도이가 제안하여 주익의 뿌리에 각도 2도의 쐐기형 부품(통칭: 도이의 쐐기)을 끼워 넣어 상반각을 변경했다. 이로 인해 기체를 앞에서 보면, 주각이 "八"자 모양의 안짱다리처럼 되었다. 조종성의 문제는 방향타의 밸런스 탭을, 새로 고안된 스프링 탭으로 변경하고 , 오른쪽 편향은 엔진 부착부(엔진 나셀) 뒤에 삼각형 돌기(통칭: 샤미센바치)를 설치함으로써 해결했으며, 또한 지상에서의 스티어링 효과를 좋게 하기 위해 주각을 후방으로 경사시키고, 바퀴의 위치를 후퇴시켰다. 이러한 변경은 조립이 시작된 양산기에도 적용되었다.[79]

이러한 대대적인 개수를 통해, FAA 형식 증명 취득 재심사에서 내공류별 T류에 필요한 단발 이륙(이륙 직후 엔진 트러블로 한쪽 엔진이 정지해도 안전하게 이륙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테스트)을 통과하여, FAA 형식 증명을 취득했다.

YS-11은 군용기적 성격으로 인해 기체가 튼튼했다. 안전율을 과도하게 확보하여 주익은 약 19만 비행 시간, 동체는 약 22만 5천 시간에 상당하는 피로 강도 시험을 실시했다. 그러나 그 튼튼함은 중량 증가라는 결점으로도 작용했다. 전 테스트 파일럿 누마구치 마사히코는 "YS-11은 파워 부족이 두드러졌다"라고 말했다.[93]

조종 계통은 유압 2계통과 비상시를 위한 와이어 1계통을 포함한 총 3계통으로 여객기로서의 안전성을 확보했으며, 자동 조종 장치도 장비되어 있었다. YS-11은 단거리 이착륙(STOL) 성능을 중시하여 1,200m 활주로에서 운용이 가능했지만, 글라이더처럼 활공 성능이 뛰어나 플랩, 슬랫 등의 고양력 장치가 뛰어났던 보잉 727 등에 비해 강하 속도가 느렸다.

YS-11의 주착륙 장치는 컨베어 240 시리즈의 주착륙 장치를 스미토모 정밀 공업이 복제한 것으로, 구조는 거의 동일하다.[95][96] 컨베어 240 시리즈에 비해 YS-11 쪽이 기체 중량이 더 무거워 상대적으로 과부하가 걸렸으며, 해상자위대원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타이어 교환이 빈번하게 필요했다는 언급도 있었다.

2. 5. 상용화 및 생산 중단

1950년대부터 일본더글러스 DC-3를 대체하여 국내선에 사용할 소형 비행기를 필요로 하였고, 여러 회사들이 합작하여 1959년에 일본항공기제조사로 개명되었다.[132][133]

일본항공기제조사는 60인승 쌍발 터보프롭항공기 YS-11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엔진은 롤스로이스의 롤스로이스 다트를 사용하였으며,[134] 첫 비행은 1962년 8월 30일 나고야 공항에서 이루어졌다.

YS-11의 상업적 판매는 판매를 위한 안정적인 구조가 마련되지 않아 정체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외 지역에서 YS-11은 장기 저금리 할부 조건으로 다른 국가의 모델들과 경쟁해야 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최초의 상업용 항공기였고 검증된 실적이 없었기 때문에, NAMC가 YS-11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초기 추정치에 광고 비용이나 회사 운영 비용이 포함되지 않는 등 프로그램의 비용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더욱이 여러 회사가 항공기 제조에 관여했기 때문에 최종적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불분명했고, 납품된 부품의 가격도 인하할 수 없었다. 정부의 전직 직원이 회사에 임명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관료주의 문화가 확산되었고, 필요한 경영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프로그램의 적자를 더욱 증가시켰다.

특히, 일본 정부 감사원이 지적했듯이, 미국의 NAMC 행정 활동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일본 외 지역에서의 판매 활동에 적자가 발생했다.[18] 이는 1971년 미국 정부가 변동 환율로 전환된 후 발생한 불리한 통화 환율로 인한 예기치 않은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샬럿 항공사는 YS-11A의 수정을 통해 미국에서 판매 대리인이 되기를 희망했고, NAMC는 북미, 라틴 아메리카, 스페인 판매 관리를 위해 그의 회사와 독점 대리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샬럿 항공사는 실제로 약속된 활동을 수행하지 않았고, 미쓰이와 피에드몬트 항공과의 판매 계약이 체결되었을 때, 샬럿 항공사는 독점 딜러로서의 지위를 근거로 손해 배상을 요구했으며, 피에드몬트 항공과 크루제이루 두 술은 YS-11로 교환된 33대의 중고 항공기를 샬럿 항공사에 넘겨주었다. 일본 감사원은 이러한 조치가 부당하다고 불만을 제기했다.[18] 이 사건은 국회에서 문제가 되었고, NAMC의 전무이사는 사임했다.

또한, 항공사의 판매 가격 인하 또는 지불 연기 요청은 재무성 또는 경제산업성과 같은 정부 기관의 검토를 받아야 했다. 다양한 부처의 승인이 없어 계약이 체결되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1994년까지 112대의 YS-11이 운항 중이었다. 짧은 제조 수명에도 불구하고, 이 기종의 긴 수명은 일부 관계자들로부터 이 기종이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이었다는 증거로 칭송받았다.[5] YS-11은 2000년대 초까지 일본 항공사에서 점차적으로 퇴역했으며, 이 시점에서 국토교통성이 일본 내 모든 상업용 항공기에 항공 교통 회피 시스템 (TCAS)을 장착하도록 요구하는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면서 퇴역률이 급증했다. TCAS가 없는 항공기는 2006년 말에 운항을 중단해야 했다. YS-11에 TCAS를 장착하는 데 약 1억 엔(약 10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었고, 이러한 개조는 경제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운항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는 항공기는 일반적으로 외국 회사에 판매되었다. 2006년 9월 30일, 일본 에어 커뮤터 3806편이 일본 상업 항공 산업에서 YS-11의 마지막 비행을 기록했다.[19]

2007년, YS-11은 일본 기계 기술 유산에 항목 13번으로 추가되었다.

총 182대가 제조되어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항공사나 정부에서 사용되었다. 한편, 일본 국내에서만 4건의 사고 (이 중 추락 3건)가 발생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론치 고객이 된 전일공에서 1970년대 30대 보유가 피크를 이루었고, 1980년경부터 순차적으로 퇴역하여, 1991년 8월 31일 니가타 - 센다이 간 ANA720편이 마지막 운항이 되었다. 한편, 1971년에 일본 국내 항공 (JDA)과 도아 항공 (TAW)이 합병한 도아 국내 항공 (TDA)에서는 1980년대에는 42대를 보유하는 최대의 오퍼레이터가 되었다. 이미 기체는 생산 중단되었기 때문에, 일본 국외의 중고기를 사들여 역수입하여 조달했다.

퇴역 직전의 JAC의 YS-11


그러나, 경년과 함께 정비 비용(유지비)이 상승하면서 YS-11의 경제 효율이 악화되어 탑승률이 높더라도 운항 경비의 상승으로 적자가 되는 노선이 많았다. 1975년의 정비비 지수를 100으로 하면, 1977년에는 193.7, 1978년에는 228, 1979년에는 249.1이 되었고, 게다가 연료비의 급등, 공조공과의 상승으로 경제성은 하락하기만 하여, YS-11의 취항 노선에서 흑자를 기록하는 경우는 극히 적어 대부분이 적자 노선으로 전락, 1994년 3월 8일 난키시라하마 - 도쿄 편을 마지막으로 동사 (JAS)에서 퇴역하여, 일본의 대형 항공사에서는 모습을 감췄다.

3. 운용

YS-11은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운용되었다.



YS-11의 상업적 판매는 부진했다. 특히 일본 외 지역에서는 장기 저금리 할부 조건으로 타국 항공기들과 경쟁해야 했다.[18]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최초의 상업용 항공기였고 검증된 실적이 없어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프로그램의 비용 관리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는데, 초기 추정치에 광고 비용이나 회사 운영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고, 여러 회사가 항공기 제조에 관여하여 책임 소재가 불분명했다.

특히, 일본 정부 감사원은 미국의 NAMC 행정 활동의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일본 외 지역에서의 판매 활동에 적자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18] 샬럿 항공사와의 독점 대리 계약 문제도 국회에서 논란이 되었다.

북미 시장 공략을 위해 NAMC는 더 높은 총 중량을 가진 YS-11A를 개발했다. 하와이안 항공리스 계약을 체결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이 해지되었다.[5] 피에몬트 항공은 YS-11A-200 10대를 주문하고 옵션을 행사하여 총 21대의 YS-11을 운용했다.[1][17]

1994년까지 112대의 YS-11이 운항되었다. 2000년대 초, 국토교통성의 항공 교통 회피 시스템(TCAS) 장착 의무화로 인해 일본 내 상업 운항은 중단되었다.[19] 일본 에어 커뮤터 3806편이 2006년 9월 30일 일본 상업 항공 산업에서 YS-11의 마지막 비행을 기록했다.[19]

2007년, YS-11은 일본 기계 기술 유산에 등재되었다. 2021년 3월, 일본 항공 자위대는 57년간의 운용을 마치고 YS-11을 퇴역시켰다.[22]

1971년의 Mey-Air YS-11


1972년 미국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한 로널드 레이건 워싱턴 국립공항에서 피에몬트 항공 YS-11A


1972년 아에로파르케 호르헤 뉴베리 공항에 있는 Austral Líneas Aéreas의 NAMC YS-11A


1982년 호놀룰루 국제공항에 있는 Mid Pacific Air NAMC YS-11A-659


1990년 전일본공수 YS-11


1999년의 에어 캐리비안 YS-11


2005년 푸켓 에어 YS-11A-200


2006년 필리핀 바기오시의 로아칸 공항에 있는 YS-11


2007년 필리핀에 있는 Asian Spirit YS-11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서 에어 링크 인터내셔널 항공 NAMC YS-11


그리스 공군의 NAMC YS-11A (1993)


필리핀 항공의 YS-11-100(1979년)


아보이티스 항공 YS-11 2003년


에어 카리비안의 YS-11 (피알코 국제공항)


YS-11T-A


에이프런 상의 YS-11T-A


YS-11의 전/현 운용사는 다음과 같다.

YS-11 운용사
국가항공사/기관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 항공, 아우스트랄 항공, 아우스트랄 항공
아루바에어 아루바
브라질크루제이루 두 술, VASP
브루나이BIMP - EAGA 에어 얼라이언스
캐나다노르카네어, 트랜스에어
콩고 민주 공화국소시에테 제네랄 달리멘테이션
이집트피라미드 항공
가봉트랜스 가봉 항공, 가봉 익스프레스, 가봉 익스프레스 카고
감비아감비아 AW
그리스올림픽 항공
인도네시아부라크 인도네시아 항공, 펠리타 에어 서비스, 만달라 항공, 메르파티 누산타라 항공
코트디부아르에어 아프리크
일본에어 닛폰, 전일본공수, 일본항공, 일본 에어 시스템, 일본 국내 항공, 일본 트랜스오션 에어, 토아 항공, 토아 국내 항공, 니혼 킨쿄리 항공, 사우스웨스트 항공 일본
멕시코에어로리토랄, 에어로드안 카고, 가셀라 에어 카고, 에어로시에라, 알콘 서비스스 에어에로스
페루리네아스 아에레아스 나시오날레스 S.A.
필리핀필리핀 항공, 에어 필리핀, 에어 링크 인터내셔널 항공, 에어링크 인터내셔널 항공대학, 2GO (화물 항공), 아보이티즈 에어, 아시안 스피릿, 에어로 마제스틱 항공, 사우스 피닉스 항공
대한민국대한항공, 대한항공 화물
중화민국중화항공
탄자니아에어 스타 잔지바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어 카리브 (트리니다드 토바고)
태국푸껫 에어, 에어 피닉스
아랍에미리트글로벌 에어 카고
미국아메리칸 이글 항공, 컨티넨탈 익스프레스, 피드몬트 항공, 시몬스 항공, 리브 알류산 항공, 프로빈스타운-보스턴 항공, 파인허스트 항공, MPAC 항공, 미드웨스트 에어 차터/에어본 익스프레스, 파 웨스트 항공, 포트 워스 항공, 하와이안 항공,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 미드 퍼시픽 에어, 타우크 투어, 미국 우정국
일본항공자위대, 해상자위대, 일본 해상보안청


3. 1. 대한민국에서의 운용

1969년 4월 1일, 일본항공은 일본 국내 항공으로부터 웨트 리스 방식으로 후쿠오카 - 부산 간의 첫 국제선을 취항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주요 국내 항공사들이 YS-11을 정기 여객 운항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초 일본항공은 해당 노선에 보잉 727 기종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같은 노선을 운항하던 대한항공의 기종이 YS-11이었기 때문에, 기종 간의 차이로 인한 문제를 우려한 대한민국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항공도 YS-11 기종을 운항할 수밖에 없었다.

3. 2. 일본에서의 운용

1964년 10월 23일, 최초의 양산형 YS-11이 첫 비행을 하였고, 1965년 3월 30일에 고객에게 인도되었다. 같은 해 4월, 토아 항공에서 최초로 운항을 시작했다.[9] 1968년까지 YS-11 프로그램은 그 해 일본에서 생산된 항공기 생산량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5] 초기에는 주로 일본 항공사에 인도되었지만, 일본 통근 항공사의 미결제 수요가 충족된 후 주문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YS-11을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 판매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한때 일본 정부는 이러한 판매를 전쟁 배상의 한 형태로 장려하기도 했다.[5]

YS-11의 첫 수출은 1965년 10월 필리핀의 필리피나스 오리엔트 항공이었다. 전쟁 배상의 일환으로 2012호기가 인도되었으며, 이 회사는 최대 4대의 YS-11을 보유했다.

1964년 1월 15일, 일본 기계 수출 조합과 일본 항공기 공업계는 "항공기 동남아시아·호주 시장 조사단"을 일본 국외에 파견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 항공기 제작에 의한 일본 국외 영업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일본 항공기 제작은 항공기 판매 노하우가 부족하여 종합 상사의 판매 네트워크에 의존했다.

실적이 없었던 일본 항공기 제작은 일본 국외에서 판매를 위해 실기를 보여주는 방법 외에는 마땅한 선전 방법이 없었다. 이에 YS-11은 적극적으로 일본 국외로 비행하여 데몬스트레이션을 실시했다. 1966년 9월 15일부터 10월 13일까지 북미로 건너가 미국샌프란시스코, 덴버,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D.C., 마이애미를 비행하며, 단거리 노선을 운항하는 중견 항공사인 피드몬트 항공과 하와이안 항공으로부터 상당한 수의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피드몬트 항공은 기체 사양에 대해 많은 개선 옵션을 요구했고, 하와이안 항공은 리스 계약으로 3대를 수출했지만, 탑승구 높이, 소음, 진동, 객실 디자인 문제로 1년 만에 전 기종이 반환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YS-11A 개발에 반영되었다.

1967년 1월 25일부터 3월 15일까지 남아메리카페루,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을 순회하며 시범 비행을 했고, 10월 11일12일에는 베네수엘라, 12월 2일부터 12일에는 캐나다를 방문했다. 1968년 8월 27일부터 10월 28일까지 영국, 서독, 스웨덴, 이탈리아,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사우디 아라비아, 파키스탄, 네팔, 버마, 타이, 말레이시아를 순회했지만, 아시아 개발도상국에서는 구매 예산 부족으로 주문을 거의 얻지 못했다. 이후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에서 상당한 수의 주문을 확보했지만, 유럽에서는 경쟁 기종이 많아 그리스에서만 주문을 받았다.

1968년 시범 비행에서는 영국의 판보로 에어쇼에도 출품했다. 이를 통해 그리스의 올림픽 항공과 상담이 성사되었고, 올림픽 항공은 단기 리스 2대를 포함하여 최성기에는 10대의 YS-11을 보유했다. 당시 판보로 에어쇼는 유럽 항공기 제조사 출품으로 한정되었지만, YS-11은 롤스로이스 엔진을 탑재하여 영국제에 준하는 것으로 특별히 출품이 허가되어 시범 비행을 실시할 수 있었다.

1969년 2월 27일부터 3월 1일까지 멕시코, 12월 3일부터 1970년 2월 14일까지 모로코, 세네갈, 카메룬, 가봉, 자이르, 중앙 아프리카, 잠비아를 비행했다. 동시에 1월 18일부터 22일에는 싱가포르, 6월 20일부터 7월 9일에는 이집트, 케냐, 수단, 남아프리카, 7월 28일부터 8월 3일에는 베트남 전쟁 중인 남베트남사이공으로 비행하여 몇몇 주문을 확보했다.

총 182대(국내 민간기 75대, 관청 34대, 수출 13개국 76대 등)가 제조되어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항공사나 정부에서 사용되었다. 일본 국내에서는 4건의 사고 (추락 3건 포함)가 발생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론치 고객인 전일공에서 1970년대 30대 보유가 정점이었고, 1980년경부터 순차적으로 퇴역하여, 1991년 8월 31일 니가타 - 센다이 간 ANA720편이 마지막 운항이었다. 1971년 일본 국내 항공 (JDA)과 도아 항공 (TAW)이 합병한 도아 국내 항공 (TDA)에서는 1980년대에 42대를 보유하는 최대 운영사가 되었다. 생산 중단된 기체를 일본 국외 중고기를 구매하여 역수입하여 조달했다. 이는 TDA가 저수요 로컬선을 중심으로 많은 노선을 소음 문제나 공항 시설 관계로 YS-11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비 비용(유지비) 상승으로 YS-11의 경제 효율이 악화되어 탑승률이 높아도 운항 경비 상승으로 적자가 되는 노선이 많았다. 1975년 정비비 지수를 100으로 하면, 1977년 193.7, 1978년 228, 1979년 249.1이었고, 연료비 급등, 공조공과 상승으로 경제성은 하락했다. YS-11 취항 노선에서 흑자를 기록하는 경우는 극히 적었고 대부분 적자 노선으로 전락했다. 1994년 3월 8일 난키시라하마 - 도쿄 편을 마지막으로 동사 (JAS)에서 퇴역하여, 일본 대형 항공사에서 사라졌다.

일본 국내 민간 항공기로는 퇴역했지만, 튼튼한 구조 덕분에 자위대에서는 현역으로 남아있는 기체도 적지 않았다. 2000년대에도 태국, 필리핀 등 개발 도상국에서는 상당수 기체가 각 항공사에서 활약했다. 그리스에서는 해운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가 이끄는 올림픽 항공에 수출된 기체가 전적을 거쳐 그리스 공군기로 사용되고 있다. 정부 전용기로 국가 원수 이동에 사용된 기체도 있다. 대한항공에 리스된 1대는 하이재킹되어 북한에 억류되었고, 이후 중화인민공화국 정비 공장에서 수리가 진행되었지만, 용도나 이후 소식은 불명이다 (대한항공기 YS-11 하이재킹 사건 참조).

일본 국내 관청용으로는 10대가 해상자위대, 13대가 항공자위대, 5대가 해상보안청, 6대가 국토교통성 (구 운수성) 항공국에 납입되어, 통상적인 수송 임무 외 연습기나 각종 임무기로 배치 운용되고 있다. 항공자위대에서는 C-1 수송기 도입까지의 연결고리로 도입한 것이 시작이지만, 후에 엔진을 제너럴 일렉트릭 (GE)제 T64로 교체하여 성능을 향상시킨 YS-11EA/EB가 등장했다. 이들은 "슈퍼 YS-11"이라고 불린다. 1990년 해상보안청의 YS-11 "오지로"는 사할린에서 전신 화상을 입은 콘스탄틴 스콜로푸이슈누이를 수송하는 작업에 사용되었다.

일본 국내 민간 항공사에서는 일본 항공법이 설치를 의무화하는 공중 충돌 방지 장치 (TCAS)가 탑재되어 있지 않아 기체 수명보다 빨리 퇴역했다. 특례 기간으로 2003년 9월 30일까지 TCAS 장비 없이도 비행이 가능했지만, 당시 운항하던 2사 중 에어 닛폰 기재는 같은 해 8월 31일 전 기체를 퇴역했다 (최종 비행은 JA8772로 메만베쓰에서 신치토세). 일본 에어 커뮤터는 TCAS 간이판인 공중 충돌 경보 장치 (TCAD) 장비로 2006년 12월 31일까지 운항 가능한 특례가 인정되었다. 2004년에는 일본 국내에서 취항하는 항공사는 일본 에어 커뮤터뿐이었고, 2006년 9월 30일 전 노선에서 철수했다.

TCAS 설치가 의무화되지 않은 자위대에서는 항공자위대에서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본 항공 학원에서는 지상 훈련용 교재로 현역을 유지하는 기체가 존재한다.

4. 파생형

YS-11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파생 기종이 존재하며, 납입처에 따라 세분화되었다. 제조 번호는 선행 시제기 2기는 1001, 1002, 이후 양산기는 2003 - 2182이다.


  • YS-11-100: 초기 생산 기종으로, 최대 이륙 중량은 23500kg이다. 48대가 제작되었다.[16] 초기 생산형은 생산 도중 개량을 받았으며, 승강구와 날개 방빙 장치 등이 변경되었다.[79] 일본 국내 항공, 전일본공수, 토아 항공, 항공자위대, 운수성 항공국, 해상자위대, 항공대학, 필리피나스 오리엔트 항공 등에서 사용되었다.

  • YS-11A-200: 최대 이륙 중량(24500kg)이 증가된 여객기이다.[16] 95기가 생산되었으며, 피드몬트 항공, 크루제이루 항공, 바스프 항공, 올림픽 항공, 중화항공 등에서 사용되었다. 특히 피드몬트 항공용은 전자 장비가 일신되고, 미국의 기준에 맞춰 다양한 개선이 이루어졌다.

  • YS-11A-300: 콤비 버전으로, 대형 화물 도어를 장착하여 승객과 화물을 모두 수송할 수 있다.[16] 16기가 제조되었으며, 전방은 화물실, 후방은 객실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항공, 오스트랄 항공, 트랜스에어, 에어 아프리크 등에서 사용되었다.

  • YS-11A-400: 순수 화물 버전으로, 일본 자위대에서만 사용되었다.[16] 항공자위대에 7대, 해상자위대에 1대가 납입되었다. 동체 후부 좌측에 대형 카고 도어가 설치되어 있으며, 여객 좌석 및 들것 수송도 가능하다.

  • YS-11A-500: 1970년부터 생산된 최대 이륙 중량이 더 증가된(25000kg) 여객기이다.[23] 엔진이 교체되고 탑재량이 증가하여 운용 능력이 향상되었다. 피드몬트, 올림픽, 필리핀 항공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200형 중 54기가 500형으로 개조되었다.

  • YS-11A-600: 콤비 버전으로, 엔진이 교체되고 탑재량이 증가하여 운용 능력이 향상되었다.[24] 해상자위대, 페리타 에어 서비스, 리브 알류샨 항공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300형 중 8기가 600형으로 개조되었다.

  • YS-11E: 항공 자위대의 "슈퍼 YS"로, T64-IHI-10J 엔진을 장착했다.

  • YS-11R: 개발 단계에서의 명칭으로, YS-11A-200의 엔진을 Mk543으로 교체하여 고온 및 고지 운용 성능을 향상시킨 기체이다. 전일본공수의 8대가 개조되었다.

  • YS-11C: YS-11A의 최종 형태로, 전실 화물기이다. 200/300/500/600형 중에서 30기가 개조되었다.


각 파생형의 생산 기체 번호와 납입처는 다음과 같다.

형식생산 기체 번호주요 납입처
YS-11-1002003 - 49, 58일본 국내 항공, 전일본공수, 토아 항공, 항공자위대, 운수성 항공국, 해상자위대, 항공대학, 필리피나스 오리엔트 항공
YS-11A-2002050 - 57, 59 - 69, 75 - 85, 90 - 103, 108 - 121, 123, 126, 127, 130 - 138, 141 - 149, 152, 154, 155, 157 - 159, 163 - 168, 175 - 178피드몬트 항공, 크루제이루 항공, 바스프 항공, 올림픽 항공, 중화항공, 전일본공수, 도아 항공, 남서 항공, 해상보안청,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
YS-11A-3002070-74, 86-89, 105-107, 128, 129, 139, 182대한항공, 오스트랄 항공, 트랜스에어, 에어 아프리크, 가봉 정부, 일본 국내 항공, 항공자위대, 해상자위대
YS-11A-4002124, 125, 150, 151, 160-162, 174항공자위대, 해상자위대
YS-11A-5002122, 153, 156, 179 (개조: 2050 - 57, 61, 62, 64, 65, 69, 75, 77 - 79, 81, 91, 92, 94 - 99, 109, 111 - 114, 117 - 122, 126, 127, 131, 141, 142, 147, 149, 152 - 154, 156, 157, 163, 165, 166, 176, 178)피드몬트, 올림픽, 필리핀 항공
YS-11A-6002104, 140, 169 - 173, 180, 181 (개조: 2070, 71, 72, 73, 89, 106, 128, 182)해상자위대, 페리타 에어 서비스, 리브 알류샨 항공, 소시에테 제네랄 알리망타시옹, 가봉 정부, 폴락 인도네시아
YS-11E-항공자위대
YS-11R(개조: 2101, 102, 103, 108, 115, 116, 133, 146)전일본공수
YS-11C(개조: 2050 - 53, 56, 62, 70-73, 75, 77, 86-88, 104-106, 113, 114, 117, 120, 129, 139, 140, 154, 169, 170, 171, 173)-


5. 제원

항목내용
승무원2명 (조종사)
탑승객64명
페이로드5400kg
몸통 길이26.3m
날개 길이32m
높이8.99m
날개 면적94.83m2
공허 중량14600kg
최대 이륙 중량23500kg
동력2 x 롤스로이스 다트 Mk.542-10K 터보프롭 엔진, 2250kW
최대 순항 속도470-480 km/h
실속 속도140 km/h
항속 거리1090km (최대 탑재 시), 2200km (최대)



JAC NAMC YS-11 (2003)


조종석


일본 에어 시스템의 YS-11 (1990년경 오사카 국제공항에서 촬영)

6. 사건



YS-11 항공기와 관련된 20건이 넘는 기체 손실 사고가 있었다. 다음은 그 중 일부이다.

제조 번호국가항공사사고 발생일개요
2043대한민국대한항공1969년 12월 11일납북되어 북한 함흥시 부근 선덕 공항에 착륙. 이후 기체 행방 불명.


7. 평가

YS-11은 연합군 점령하 일본 시절 항공기 개발 및 운항 금지 조치가 해제된 이후, 일본의 항공 관계자들이 품었던 자국산 항공기 개발의 염원을 담아 탄생한 기종이다. 더글러스 DC-3DC-4 등 외국산 항공기가 주를 이루던 전후 일본 항공 시장에서, "일본의 하늘은 일본의 날개로"라는 의식 아래 개발이 추진되었다.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미군기 정비 및 수주를 시작으로, 1955년에는 자위대용 기체의 국내 라이선스 생산이 결정되면서 일본 항공 산업은 기반을 다져나갔다. 통상산업성은 상품 사이클이 긴 수송기 개발을 통해 산업 기반을 안정시키고, 국산 여객기 사용으로 군용기민간기 개발 코스트를 절감하고자 했다.

그러나 YS-11은 군용기 설계 경험자들이 주로 참여하여 여객기 설계 경험이 부족했던 탓에, 군용기 특성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신뢰성과 내구성은 뛰어났지만, 소음, 진동, 조종 부담 등의 문제로 민간 여객기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항공사들은 다루기 어렵다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93]

YS-11 평가 요약
장점
단점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일본 항공 업계는 "일본의 하늘은 일본의 날개로"라는 의식을 가지고 기체 개량을 통해 실용성을 높여갔다. 토아 국내 항공은 해외 수출 기체를 재구매하는 등 YS-11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기도 했다.

YS-11의 튼튼함은 항공우주기술연구소에서 실시한 동체 강도 시험에서 입증되었다. 9만 시간 동안 내압 증감을 반복했음에도 손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시험 장치 손상으로 종료).[93] 그러나 이는 중량 증가로 이어져, 엔진 출력 부족 문제를 야기했다.

YS-11은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 일본의 탈것으로서 신칸센 0계 전동차와 비견되기도 한다. 두 기종 모두 군용기 제조 경험자들이 개발에 참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131]

YS-11은 총 생산 대수는 많지 않지만, 일본 고도 경제 성장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이자 독특한 엔진 소리를 가진 개성적인 기체로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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