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헌민주당 (2017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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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입헌민주당 (2017년 일본)은 2017년 10월, 민진당에서 분열된 자유주의 계열 의원들을 중심으로 창당된 일본의 정당이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의 희망의 당 창당과 민진당의 분열,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의 희망의 당 합류 결정에 따라 에다노 유키오를 중심으로 창당되었다. 이념적으로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호헌파를 대변하며, 자유주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표방한다.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55석을 얻으며 약진했으나, 이후 국민민주당과의 합당을 거쳐 2020년 9월 신·입헌민주당으로 재창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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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헌민주당 (2017년 일본)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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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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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명 | 입헌민주당 |
영어 당명 | The Constitutional Democratic Party of Japan |
약칭 | 입헌(立憲, 릿켄), 민주당(民主黨), 입민당(立民黨), CDP |
공식 색상 | 파랑 |
표어 | 성실한 정치 #레이와 데모크라시 |
웹사이트 | 입헌민주당 공식 웹사이트 |
본부 소재지 |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히라카와초 2-12-4 후지 빌딩 3층 |
역사 | |
창당일 | 2017년 10월 3일 |
해산일 | 2020년 9월 14일 |
전신 정당 | 민진당 (리버럴 파) 자유당 (일부) |
후계 정당 | 입헌민주당 (2020년-) |
해산 이유 | 민주당과의 합류 |
조직 및 구성원 | |
당원·당우 수 | 50,000 - 60,000명 |
정치적 이념 및 입장 | 중도좌파 리버럴 입헌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사회자유주의 진보주의 전수방위 평화주의 원전 제로 지속 가능한 사회 국민주권 |
의회 구성 (해산 시점) | |
중의원 | 의석수: 56석 정원: 465석 |
참의원 | 의석수: 33석 정원: 245석 |
도도부현 의회 의원 수 | 의원수: 128석 정원: 2668석 |
시구정촌 의회 의원 수 | 의원수: 463석 정원: 29762석 |
재정 | |
정당 교부금 | 36억4221만3000엔 |
교부금 산정 기준 | 2019년 7월 29일 결정 |
기타 | |
기관지 | 『입헌민주』 |
국제 조직 | 아시아 자유 민주 협의회 (옵서버) |
2. 역사
2017년 9월 민진당 대표 선거에서 마에하라 세이지의 대항마로 출마했던 에다노 유키오 대표 대행(당시)은[39],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마에하라가 이끄는 민진당이 희망의 당으로 사실상 합류를 결정했을 때, 고이케 유리코 희망의 당 대표(당시)가 민진당·구 민주당의 자유주의파와 좌파를 "배제한다"는 방침을 밝히자, 이에 반발한 의원들을 모아 입헌민주당을 창당했다.[2][16][275][40][41][42][43]
2017년 10월 2일, 에다노 유키오는 입헌민주당의 결성을 선언하고[44], 다음 날 신고했다.[45] 구 일본 사회당 계열의 생추어리(아카마츠 히로타카 그룹)나, 리버럴 색채가 강한 국가의 형태 연구회(간 나오토 그룹) 소속 의원 6명이 결당에 참가했으며[46][47][48], 당 직원에도 구 사회당의 흐름을 잇는 직원이 많이 참가하고 있다.[16][49]
"입헌민주당"이라는 당명은 과거 유신의 당이 민주당에 합류하여 당명을 변경할 때 공모한 명칭 후보 중 2번째로 많았던 것으로, 최종 후보로 민주당 측이 제시한 이름이었다.[50][51] 에다노는 이 당명에 대해 입헌주의와 진정한 민주주의를 되찾겠다는 당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고 답했다.[51]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은 55석을 획득하여 중의원에서 야당 제1당이 되었다. 참의원에서는 처음에는 입당자가 적었지만, 2018년 5월 민진당 해산 이후 민진당 출신 참의원 의원들과 무소속 의원들이 입당하면서[52], 2018년 10월부터 2020년 해산 시까지 참의원에서도 야당 제1회파였다.[53]
입헌민주당의 영문 명칭은 "Constitutional Democratic Party of Japan"이다. 이는 전전 양대 정당 중 하나였던 입헌민정당의 영문 명칭 "Constitutional Democratic Party"와 같다.[54]
2019년에는 국민민주당, 사회민주당 등과 통일회파를 결성하여 중의원 120명, 참의원 61명의 대규모 야당 회파를 이루었다.
2. 1. 입헌민주당의 뿌리 '민진당'
입헌민주당은 민진당과 그 전신인 민주당의 자유주의 계파가 주도하여 창당되었다. 이는 민주당과 민진당 시절부터 이어져 온 여러 계파 간의 이합집산의 결과였다.[346]
민주당은 1996년 신당 사키가케를 탈당한 간 나오토, 하토야마 유키오와 일본사회당 탈당 인사들이 모여 창당한 민주당이, 1998년 민정당, 신당 우애, 민주개혁연합 등을 흡수 합당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자민당 출신 보수주의 인사들과 사회당 출신 자유주의 인사들이 합류하여, 민주당은 넓은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이 되었다.[346][347] 2003년에는 자유당과의 합당을 통해 세력을 확장했다.[348]
2009년 제45회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308석을 확보하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그러나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을 비롯한 공약들의 포기, 계파 갈등,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간 나오토 내각의 미흡한 대응으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3년 동안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로 총리가 교체되는 혼란을 겪었고, 2012년 제46회 중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에 패배하여 야당으로 전락했다.[346]
2016년 3월, 민주당은 우익 성향의 유신당과 합당하여 '''민진당'''을 창당했다.[349][350] 그러나 이는 "반(反) 아베"라는 기치 아래 이루어진 연합이었기 때문에,[351] 당내 의견 통합에 어려움을 겪었다.[346] 안주영 복지사회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민주당은 자민당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념과 정책을 공유한 정당이 아니라, 오로지 '반 자민당' 정당으로 출발했고 그렇게 성장해왔다."고 비판했다.[347]
2. 2. 민진당의 분열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민진당은 후보들이 잇따라 탈당하면서 과거 최저 의석인 5석을 얻는데 그치는 참패를 당했다.[57][58] 같은 해 7월 27일, 렌호 대표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57][58] 9월 1일 민진당 대표 선거에서 보수계의 마에하라 세이지가 진보계 에다노 유키오를 꺾고 당선되었지만,[59] 탈당은 멈추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가 실시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2017년 9월 25일, 도쿄도 지사인 고이케 유리코는 희망의 당을 창당했다.[60][61] 9월 27일, 민진당 대표인 마에하라 세이지는 선거에서 민진당이 공천 후보를 내지 않고 희망의 당에 사실상 합류하는 것을 당내에 제안했다.[62][63]
9월 28일 중의원이 해산되자, 같은 날 오전 마에하라는 당 상임간사회에서 합류를 제안했다.[64] 같은 날 오후 양원 의원 총회에서 마에하라는 "새로운 그릇으로 민진당의 이념과 정책을 실현하겠다"고 말했다.[65] 이미 고이케로부터 "민진당 소속이라서 배제한다는 일은 없다"는 언질을 받았다. 합류 제안에 대해 에다노 유키오는 합류안을 거부할 경우 탈당자가 속출하여 선거를 치를 수 없다고 보고, 동료 중 다수가 희망의 당에서 출마할 수 있다면 "방해하지 않겠다"고 전했다.[66] 양원 의원 총회에서 반대 의견은 없었고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제안이 승인되었다.[67][68]
- 민진당 명의의 공천 내정을 취소함.
- 민진당 후보 출마자는 희망의 당 공천 신청자로 간주하여, 희망의 당과의 협의는 마에하라 대표에 일임함.
- 민진당은 이번 선거에서 후보를 공천하지 않으며 희망의 당을 전력 지원할 것임.
민진당의 희망의 당으로의 합류에 의해 야당 공투 체제를 거부당한 일본 공산당·시이 가즈오위원장은 같은 날 희망의 당을 "자민당의 보완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과거의 원칙인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옹립하는 방침으로 돌아갈 것을 이 시점에서 표명하며 민진당과 공산당, 사회민주당의 공투는 붕괴되었다.[69]
9월 29일 도쿄 신문, 주니치 신문 조간은 도쿄 대학 첨단과학기술 연구 센터 교수인 마키하라 이즈루의 코멘트를 게재했다. 마키하라는 "자유주의 세력은 자력으로 결집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하나의 핵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70][71] 같은 날 오후, 고이케는 기자 회견에서 후보자로서의 공인 요건을 충족하는지 여부에 따라 의원을 개별 심사하고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72][73][74]
연합뉴스에서는 이를 보도하면서, "관용적인 개혁보수"를 표방하는 희망의 당의 선별 과정에서, 일본공산당 측과 가까운 진보적 인사들이 탈락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361] 희망의 당의 '선별 과정'에서 탈락한 자유계 인사들은 무소속 출마, 일본공산당 및 사회민주당과의 연대를 추진하는 한편으로, 신당 창당을 고려하였다.[360]
2. 3. 입헌민주당의 창당과 첫 선거
2017년 9월 민진당 대표 선거에서 마에하라 세이지의 대항마로 출마했던 에다노 유키오 대표 대행(당시)은[39],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마에하라가 이끄는 민진당이 희망의 당으로 사실상 합류를 결정하자, 이에 반발한 의원들을 모아 입헌민주당을 창당했다.[2][16][275][40][41][42][43]
2017년 10월 2일, 에다노 유키오 민진당 대표대행은 신당 '''입헌민주당''' 창당을 선언했다. 그는 "민진당의 이념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모을) 그릇이 필요하다"며 "희망의 당에 참가하지 못하는 중의원 의원들과 함께 싸울 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363] 나가쓰마 아키라 전 후생노동상과 함께 도쿄 도 선거관리위원회를 찾아 창당을 신고했다.[363]
입헌민주당에는 간 나오토 전 총리, 아카마쓰 히로타카 전 중의원 부의장, 쓰지모토 기요미, 곤도 쇼이치, 아베 도모코 전 민주당 부대표, 하쓰시카 아키히로 전 민주당 청년국장 등이 합류했다.[364] 에다노 대표는 "개헌에 반대하는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과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364] 가이에다 반리 전 민주당 대표는 "민주당, 민진당의 이념과 정책을 발전 계승하기 위해 참가했다"고 밝혔다.[365]
10월 5일, 후쿠야마 데쓰로 참의원 의원이 민진당을 탈당하고 입헌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참의원에서도 원내 정당이 되었다.[366]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입헌민주당은 10월 6일에 62명, 10월 9일에 16명을 추가 공천하여 총 78명의 후보를 내었다.[367][368] 일본공산당, 사회민주당과 249개 지역구에서 후보를 단일화했다.[369][370]
10월 8일,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당의 구호로 "정직한 정치" (まっとうな政治)를 표방했다.[371][372] 당시 여론조사에서 입헌민주당은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30석에서 최대 60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었다.[373][374]
2. 4. 총선 약진과 그 이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은 55석을 확보하며 약진하였다.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선거 결과에 대해 "지금까지의 정치와는 다른 곳에 깃발을 세우고, 국민과 함께 걸어갈 것을 호소해 지지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자위대 존재를 명기하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고 아베 정권의 폭주에 맞서는 세력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376]당직 인선과 관련하여, 10월 24일 양원 의원 총회에서 쓰지모토 기요미 정책조사회장을 국회대책위원장에 겸직시키고,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 등의 인사를 승인하였다.[377] 에다노 대표는 야권 재편에 대해 "나가타초의 숫자 게임에 급급하면 우리에 대한 기대는 순식간에 사라진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378] 10월 26일에는 나가쓰마 아키라 대표 대행이 쓰지모토 위원장의 정무조사회장직을 겸임하게 되었다.[379]
선거 직후, 입헌민주당은 당 기반 확립에 착수하였다. 10월 30일 도쿄도 지요다구 히라카와 정의 오피스빌에 당사를 설치하였고,[380] 아사히 신문의 10월 25일자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7%가 입헌민주당을 지지하고 49%가 기대를 표명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381] 비록 아오야마 마사유키, 하쓰시카 아키히로 두 의원이 성추문에 휘말려 당원권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382][383] 11월 2일 기준 지지율은 14%로 유지되었다.[384]
민진당 탈당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야마오 시오리 의원을 회파에 가입시키되 입당은 보류하고,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이 민진당 회파를 탈퇴하는 등[385] 조직 정비도 이루어졌다. 10월 31일에는 아이치현 연합이 발족하며 첫 지역 조직이 탄생했다.[386]
선거 | 연도 | 대표 | 당선/후보자 | 정수 | 의석 점유율 | 선거구 득표수 (득표율) | 비례대표 득표수 (득표율)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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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당시) | 2017년 | 에다노 유키오 | 6/- | 475 | 1.26% | 입당+10[320] | ||
제48회 | 54/78 | 465 | 11.61% | 4,726,326 (8.53%) | 11,084,890 (19.88%) | 추가 공인+1[321], 입당+6, 이당-5 |
2. 5. 야당 재편
2017년 12월 28일, 후쿠야마 데쓰로 간사장은 민진당이 제안한 민진당-입헌민주당-희망의 당 3당의 통합 교섭단체(통일회파) 구성에 대해 "더 이상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후쿠야마 간사장에 따르면, 입헌민주당은 12월 26일 민진당에 희망의 당을 포함하는 교섭단체 구성을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으나, 다음 날인 27일 민진당으로부터 "3당이 함께 교섭단체를 구성하자는 민진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회신을 받고 더 이상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에 오쓰카 고헤이 민진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입헌민주당과 계속 접촉하고자 한다"며 교섭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404] 2018년 1월 4일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연초 회견에서 "이미 끝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하였으며, 통일회파 구성에 적극적이던 희망의 당에 대해서도 "이념, 정책 등이 크게 달라 통일 회파로 같이 가긴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405]2018년 2월, 민진당 아이치현 지부는 2019년 통일지방선거를 겨냥하여 미래에 입헌민주당에 합류하기로 하였으며, 아이치현 현의원 및 나고야시 시의회 의원 등이 신세이 아이치(新政あいち)라는 지역 교섭 단체를 수립하였다. 또한 가나가와현에서도 입헌민주당, 희망의 당, 민진당 계열 무소속 의원이 모인 임의단체인 "자유민권회의@가나가와"를 4월에 발족할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등, 민진당 계열의 입헌민주당과의 재결합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다.[406]
2018년 3월 29일, 민진당은 희망의 당을 흡수 합병하는 형태로 신당을 결성하기로 결정하였다.[409] 이에 대해 에다노 대표는 "나가타초에서 일어나는 숫자 맞추기 같은 권력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며 신당 구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410][411] 2018년 4월 2일 정당 집행부 위원회에서도 민진당의 신당 구상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하며, 신당 결성 신청을 위한 영수회담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412] 또한 민진당과 희망의 당의 합류 움직임에 반발한 참의원 의원 스기오 히데야가 민진당을 탈당하고 입헌민주당으로 옮겼다.[413][414]
2018년 5월 7일, 민진당과 희망의 당이 흡수 합병되어 국민민주당으로 창당함을 발표하자, 같은 날 민진당의 후쿠다 아키오, 오가와 도시오, 나타니야 마사요시 등 중의원 의원 1명, 참의원 의원 10명이 탈당하고 입헌민주당 입당 신청서를 내었으며,[415][416] 5월 8일 전원 입당하였다.[417] 또한 같은 날 시바 히로카즈 등 무소속 참의원 6명과 함께 "입헌민주당·민우회" 교섭회파를 수립하였다.
2018년 10월 11일,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양당은 2019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의원 1인구를 비롯한 여러 선거구의 후보를 양당 간에 서로 조정할 필요성이 있음을 확인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하였다.[422] 2018년 10월 22일, 참의원의 "국민민주당·신록풍회"에 소속되어 있던 참의원 의원 나가하마 히로유키가 국민민주당을 탈당하며 입헌민주당 계파가 참의원 제1야당 회파가 되었다.[424]
2. 6. 2019년 지방선거와 참의원 선거
2019년 4월 7일에 실시된 제19회 통일지방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은 도도부현 의회 의원 당선자 1,158명, 시의회 의원 당선자 99명을 기록하며 야당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427] 이후 4월 21일에 열린 2019년 일본 보궐선거에서는 중의원 오키나와현 제3구 보궐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이 지지한 야라 도모히로 무소속 의원이 당선되었다.5월 30일,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공산당, 사민당, 사회보장재건국민회 5개 회파가 모여 참의원 1인 선거구 32개구 가운데 미야기현, 가고시마현을 제외한 30개 구에서 단일 후보를 세우기로 합의하였다.[428]
7월 21일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지역구 9석, 비례대표 9석을 얻어 총 32석으로, 선거 전보다 4석 증가했다.
2. 7. 통일회파 결성과 합당 논의
2019년 8월 5일, 입헌민주당은 국민민주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구 민진당계 중의원 회파인 "사회보장을 재건하는 국민회의"에 입헌민주당의 에너지 정책 및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동의 법안 협력을 조건으로 중의원에서의 입헌회파 참가를 제안했다.[430] 이는 제25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결과가 좋지 않자, 당내 중진들이 에다노 유키오 대표에게 야당 결집에 유연하게 대응할 것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었다.[429] 이전까지 "니가타정의 야합에는 가담하지 않는다"고 했던 에다노 대표는 "국면이 바뀌었다"며 입장을 전환했다.[431]국민민주당은 대등한 입장에서의 결집을 중시하며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의 통일 회파 결성을 요구했고, 8월 20일 양당 당수 간 합의를 통해 중참 양원에서의 회파 합류에 동의했다.[432][433]
이후 회파 명칭, 인사, 정책 등을 둘러싸고 입헌민주당 측과 국민민주당 간의 조율에 난항을 겪었으나,[434] 9월 19일, 입헌, 국민 양당 및 "사회보장을 재건하는 국민회의" 대표들이 모여 통일회파 결성을 발표했다. 이 통일회파에는 중의원 117명, 참의원 61명이 참여하여, 중의원에서는 2012년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최대 규모의 야당 회파가 되었다.[435] 또한, 아즈미 준 등 중의원 3명이 입헌민주당에 입당했다.[435] 회파 명칭은 입헌당이 국민당과 사보회파에 양보하는 형태로 중의원에서는 "입헌민주·국민·사보·무소속 포럼", 참의원에서는 "입헌·국민·신록풍회·사민"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1947년 헌법 하의 개원 이후 가장 긴 회파명이다.[436]
회파 인사는 중참 양원에서 입헌민주당이 국회 대책위원장 자리를 확보하는 등 입헌민주당 주도로 진행되었다.[437][438]
사회민주당은 참의원에서는 이미 입헌민주당과 같은 회파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차기 중의원 선거에서 "당의 존재감을 없애지 않기 위해" 중의원에서의 통일회파 합류에는 신중한 입장이었다.[439] 그러나 9월 27일 아베 내각 개편 및 자민당 당 임원 인사를 계기로 "개헌 시프트"가 강화되었다고 판단, 야당 결속을 위해 중의원에서도 통일회파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440] 9월 30일, 중참 양원 사무국에 신회파 결성이 신고되어 중의원 120명, 참의원 61명의 대형 회파가 결성되었다.[441]
3. 이념과 성향
입헌민주당은 일본국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호헌"을 표방하며, 자유주의(리버럴)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스스로 리버럴, 즉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으며,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부를지는 여러분의 판단이다."라고 말하였다.[339] 후쿠야마 데쓰로 입헌민주당 간사장은 2017년 12월 15일, 우노 시게노리 도쿄 대학 사회과학연구소 교수와의 대담에서 "원래 입헌민주당을 만들 때 리버럴 정당을 표방할 뜻은 없었다. 리버럴도 보수도 그 정의가 모호한 일본에서, 리버럴과 보수가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할 여유가 없었고, 일본에서 리버럴이 갖는 특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라면서도, "다양성과 관용이 중시되는 미국·유럽에서 이야기되는 '리버럴'을 인식한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에다노 유키오 대표가 중의원 선거 당시 부르짖은 구호인 "곤란할 때 서로 연대하는 사회"를 두고서는 "정치 지향을 '선별주의'에서 '보편주의'로 바꾼 것이다. 그것을 리버럴이라고 한다면 리버럴이라 할지도 모르겠다."고 언급했다.[463]
나카노 고이치 조치 대학 교수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만들어진 일본국 헌법을 통해 일본 사회에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대전제로서 깔리게 되었고, 여기에서 전후 체제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이어 아베 총리가 "전후 체제의 탈각 (脫却)", "일본을 되돌려놓겠다." 등의 발언으로 전후 체제를 중단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하며, (입헌민주당과 같이) 전후 체제를 지키는 것을 '보수'로 본다면 아베는 보수가 아닐 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에다노가 리버럴 세력을 규합해 진보적인 세력이 입헌민주당의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의 결과를 두고 아베 신조 총리의 그와 같은 전후 체제 변화 시도를 멈추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내다보았다.[464]
에다노 유키오는 과거 민주당 소속 시절부터 입헌민주당 결성 이후까지 일관되게 자신을 "보수"・"보수 본류"라고 자임해왔다.[263][264][265][266][267] 그는 자신이 창당한 입헌민주당의 입장에 대해 "보수 리버럴부터 중도 좌파의 리버럴까지, 리버럴 세력이라고 하는 곳이 뻥 비어있는 것은 틀림없다. 보수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275][276]
입헌민주당은 구 민주당, 구 민진당 중에서도 사회당이나 신당 사키가케 등 리버럴 계열 정당 출신자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정책도 그러한 정책을 계승한 것이 많다. 2017년 10월 2일 결당 선언 시 정해진 강령은, 결당 멤버가 이전에 소속했던 민진당의 강령과 완전히 같은 내용으로, "자유", "공생", "미래에 대한 책임"을 결당 이념으로 하고 있다.
국내외 미디어 등으로부터 입헌민주당은 "리버럴"[12][13][273][14][15], "중도 좌파"[16][272], "좌파"[273][274], "진보적"[23] 등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있다.
3. 1. 입헌주의
입헌민주당은 입헌민주주의를 주요 사상으로 삼고 있다. 입헌민주주의는 헌법을 바탕으로 정치 권력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헌주의 존중과, 모든 사람이 협의하여 수긍할 수 있도록 일을 결정하는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이념이다.[16][258]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가케이 학원 문제, 그리고 '위헌'이라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2016년에 시행된 평화안전법제 정비를 들어 입헌민주당이 입헌민주주의 이념을 내세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465][466][467][259][260]
정책 팸플릿에도 "입헌민주당은 일본에 '''입헌주의'''를 회복시키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함께 지지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정당입니다."라고 되어 있다.[281]
3. 2. 풀뿌리 민주주의
입헌민주당은 입헌주의와 함께 풀뿌리 민주주의를 당의 이념으로 삼고 있다.[16]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창당 직후 연설에서, 일억총중류(一億総中流일본어)라 불리며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었던 시대의 일본 사회를 되찾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상명하달식 탑다운 방식 (Top-Down Style; 하향식 의사 결정)이 아닌, 아래로부터 의견을 모아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바텀업 방식 (Bottom-Up Style; 상향식 의사 결정)으로 일본 사회와 경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468][469]에다노 대표는 풀뿌리 민주주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위로부터의 민주주의'에 제동을 걸고 풀뿌리에서 비롯되는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호소했다.[470][471]
2017년 12월에 결정된 입헌민주당 강령에도 "입헌주의를 수호하며,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민주주의를 실천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337]
4. 지지 기반
입헌민주당은 일본국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호헌파"(護憲派)를 대변하며, 자유주의(리버럴)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에다노 유키오 대표는 스스로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으며, "우리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할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부를지는 여러분의 판단이다."라고 말하였다.[339] 후쿠야마 데쓰로 입헌민주당 간사장은 일본에서 자유주의와 보수의 정의가 모호하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을 할 여유가 없었고, 자유주의가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다양성과 관용이 중시되는 미국·유럽에서 이야기되는 '자유주의'는 인식하고 있었다고 언급했다.[463]
나카노 고이치 조치 대학 교수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국 헌법을 통해 일본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대전제로 자리 잡았고, 여기서 전후 체제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 탈각", "일본을 되돌려놓겠다." 등의 발언으로 전후 체제를 중단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하며, 입헌민주당처럼 전후 체제를 지키는 것을 '보수'로 본다면 아베는 보수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밝혔다.[464]
에다노 유키오는 입헌민주당 창당 직후 연설에서 일억총중류(一億総中流일본어)라 불리던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었던 시절의 안정된 사회로 일본을 회복시키기 위해 상명하복이 아닌 상향식 의사 결정을 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68][469] 그는 풀뿌리 민주주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위로부터의 민주주의'에 제동을 걸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되찾자고 호소했다.[470][471] 2017년 12월 입헌민주당 강령에도 "입헌주의를 수호하며, 풀뿌리에서 시작되는 민주주의를 실천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337]
2017년 9월 민진당 대표 선거에서 마에하라 세이지의 대항마로 출마했던 에다노 유키오[39]는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민진당이 희망의 당으로 사실상 합류하는 것에 반발하여, 고이케 유리코 당시 대표의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 구 민주당 자유주의파와 좌파 의원들을 모아 입헌민주당을 창당했다.[2][16][275][40][41][42][43] 창당에는 구 일본 사회당 계열 생추어리(아카마츠 히로타카 그룹)와 자유주의 성향 국가의 형태 연구회(칸 나오토 그룹) 소속 의원 6명이 참여했다.[46][47][48]
입헌민주당은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공시 전 16석에서 55석으로 약진하며 중의원 야당 제1당이 되었다.
구 민주당, 구 민진당 중에서도 사회당이나 신당 사키가케 등 자유주의 계열 정당 출신자가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정책도 그러한 경향을 계승한 것이 많다. 에다노 유키오는 전신인 민주당 정권 시절 농업자 호별 소득 보상 제도를 실시하여 식량 자급률 안정 및 상승, 농촌 및 자연 환경 유지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292]
4. 1. 이념·성향적 기반
입헌민주당은 일본국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호헌"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472], 민진당 지지층 대부분을 흡수하였다. 니혼케이자이 신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은 민진당 지지자의 55%가 입헌민주당에 투표했다.[473]YTN 라디오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한 홍형 통일일보 논설위원은 입헌민주당에 대해 "이름만 정당이지 아무런 조직과 기반이 없다."며, "62년 된 정당에 맞서 바람만 믿고, 당명과 간판만 들고 기대했으나 그러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474]
하지만 입헌민주당은 총선 이후 민진당 탈당 인사와 지역 조직을 흡수하며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475] 2017년 12월 24일 기준, 8개 도부현에 도부현 연합(한국 정당의 시도당 개념)을 창설했고, 8개 현에서 추가 설립을 추진 중이다.[475]
니혼케이자이 신문의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입헌민주당은 60대(17.8%), 70대 이상(16.7%) 유권자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반면 10대~30대 지지율은 10% 이하였고, 특히 18세·19세 유권자 지지율은 7%에 그쳤다. 이들은 자민당(40%), 무당층(24.1%), 희망의 당(10%) 순으로 지지했다.[476]
요미우리 신문의 2017년 11월 여론조사에서도 50대 이상은 입헌민주당 중심의 야당 재편을 지지했지만, 40대 이하는 "야당 재편 불필요"라고 답해, 장년·고령층 지지와 젊은 층의 냉소적 태도가 이어졌다.[477]
4. 2. 지역적 기반
입헌민주당은 창당 초기에는 특정 지역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홍형 통일일보 논설위원은 "이름만 정당이지 아무런 조직과 기반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407] 그러나 2018년 2월 20일 열린 제9회 상임간사회에서 같은 해 2월 15일 시마네현 지부가 수립되는 등 총 17개 도도부현에 지방 조직이 수립되었고, 홋카이도, 사이타마현, 도쿄도 등에서 입당한 지방 의회 의원이 118명이라고 발표했다.[407] 같은 해 3월 18일에는 고치현 지부가 수립되면서 시코쿠 내에서는 처음으로 입헌민주당 지방 조직이 수립되었다.[408]4. 3. 세대 기반
입헌민주당은 고령층 유권자 사이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젊은 층의 지지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5. 인물
민주당에서 일했거나 민주당 정권 당시 내각에서 일한 사람들이 입헌민주당의 주요 인물로서 활동하고 있다.
총선 이후, 민진당을 탈당해 입헌민주당으로 합류했거나 합류 의사를 표명한 인사로는 가와다 류헤이 참의원, 렌호 전 민진당 대표 (참의원) 등이 있다.
5. 1. 당 지도부
선거대책위원장조직위원장
참의원 간사장
단체교류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