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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러시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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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재일 러시아인은 일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과 그 후손을 의미한다. 1739년 최초의 러시아인이 일본에 상륙한 이후, 1918년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피해 많은 러시아인이 일본으로 이주했다. 20세기 후반 냉전 시기에는 문화 교류가 제한적이었으나,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교류가 활발해졌다. 현재 약 7,000~8,000명의 러시아인이 일본에 거주하며, 스포츠,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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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러시아인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그룹 명칭일본 내 러시아인
언어러시아어
일본어
종교일본 정교회
이슬람교
기타 기독교 교파
거주 지역
주요 거주지하코다테시
도쿄도
왓카나이시
고베시
삿포로시
요코하마시
지바시
인구
총 인구11,634명 (2023년 12월 기준, 일본 거주 러시아 국적자만 해당)
러시아 북방 영토약 2만명
역사
관련 항목재한 러시아인

2. 역사

일본 땅에 러시아인이 처음 상륙한 기록은 1739년 지바현에서의 일이다. 이후 1854년 하코다테 하리스토스 정교회 설립 논의 즈음부터 러시아인의 정주가 시작되었으며[11], 1861년에는 니콜라이 카사트킨 주도로 하코다테시에서 러시아 정교회 선교가 본격화되었다.

1905년 러일 전쟁 이후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 영토가 된 남사할린에는 철수하지 않고 남은 소수의 잔류 러시아인이 발생하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은 더 많은 러시아인이 일본으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볼셰비키 정권을 피해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의 수는 1918년 한때 7,251명에 달했으나, 일본 사회 적응의 어려움과 편견 등으로 인해 그 수는 점차 감소하여 1936년에는 1,294명까지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후로 많은 재일 러시아인이 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지로 재이주하거나 소련으로 귀국하면서 일본 내 러시아인 수는 더욱 감소했다[12][13]. 전쟁 후 이어진 냉전 시대에는 양국 관계 경색으로 인해 재일 러시아인 인구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일본을 방문하는 러시아인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유럽, 미국, 터키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일본으로 이주하는 러시아인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재일 러시아인 자녀를 위한 학교는 E.K.LINGUADAR(도쿄 러시아어·문학·문화 학원) 외에는 대부분 자원봉사 단체(동호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14]. 한편, 일본을 방문한 백계 러시아인 연구를 위해 1995년 결성된 '방일 러시아인 연구회'는 21년간 활동하기도 했다[15][16][17].

2. 1. 초기 정착 (19세기)

일본러시아인이 정주하기 시작한 것은 하코다테 하리스토스 정교회 건립 논의가 있던 1854년경부터이다[11]. 본격적인 러시아 정교회일본 선교는 1861년 니콜라이 카사트킨이 하코다테시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하코다테에는 러시아 영사관 부속 예배당이 있었고, 니콜라이는 이곳의 사제로 부임했다. 그는 하코다테를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펼쳐 많은 일본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1870년에는 도쿄 중심부 스루가다이에 러시아 공사관 지부를 위한 부지를 확보하고, 이후 남녀 청소년을 위한 교육 기관을 설립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혀나갔다.

2. 2. 러시아 혁명과 망명 (20세기 초)

1917년 러시아 혁명과 이후의 러시아 내전을 계기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볼셰비키 정권을 피해 해외로 망명했다. 약 2백만 명에 달하는 망명자들은 주로 미국유럽으로 향했지만, 일부는 일본에 정착하기도 했다.[19] 1918년 한 해에만 일본으로 온 망명자 수가 7,251명에 달했다는 일본 경찰 기록이 있다.[19] 이들 망명자 중에는 러시아인 외에도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등 구 러시아 제국의 여러 민족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일본 내에서는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통칭하여 '러시아인'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

혁명 직후 몇 년 동안 망명 러시아인들은 주로 도쿄와 요코하마에 거주했다. 그러나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상당수가 고베로 이주하여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편견 등으로 인해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았고, 이로 인해 재일 러시아인 인구는 점차 감소하여 1930년에는 3,587명, 1936년에는 1,294명으로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전후로 많은 백계 러시아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 다른 나라로 재이주하거나 소련으로 귀국하면서 일본에 남은 러시아인의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12][13]

이 시기 재일 러시아인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는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주일 대리 대사였던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아브리코소프(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Абрикосов|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아브리코소프ru )가 있다. 그는 1925년 일본과 소련 간의 국교가 회복된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백계 러시아인 공동체를 이끌며 일본 정부와의 교섭 창구 역할을 했다.

또한, 일본 사회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백계 러시아인들도 많았다. 일본 프로 야구 초창기에 30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투수 빅토르 스타루힌(일본명: 須田博, 스다 히로시)은 평생 무국적 상태였으나 일본 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고베의 유명 양과자점 모로조프의 창업에 깊이 관여했던 표도르 드미트리예비치 모로조프와 그의 아들 발렌틴 표도로비치 모로조프 부자, 그리고 또 다른 고베의 양과자 제조업체 곤차로프(위스키 봉봉으로 유명)를 창업한 마카르 곤차로프 역시 백계 러시아인 출신이다. 이들 외에도 하코다테고베를 중심으로 많은 백계 러시아인들이 일본 사회에 기여했다.[19][20]

종교적으로는 망명자들 중 다수가 정교회 신자였으며, 이들은 일본 정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그 후손들은 현재도 고베 그리스 정교회나 니콜라이당 등 일본 내 몇몇 정교회에서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21]

2. 3.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 (20세기 중후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을 전후하여, 일본에 남아 있던 소수의 백계 러시아인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많은 이들이 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소련으로 귀국하면서 일본 내 러시아인 인구는 극소수로 줄어들었다.[12][13] 전쟁 기간 동안 일본 내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은 가루이자와 등 특정 지역에 억류되기도 했다. 한편, 만주국에 거주하던 백계 러시아인들 역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적성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감시와 구금의 대상이 되었다.[26]

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소련의 대일 참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중국 동북부(구 만주국)나 소련에 편입된 사할린 남부(남사할린)에 있던 백계 러시아인 중 일부는 소련 영내로 연행되거나 구금되어 일본으로 다시 망명하는 길이 막혔으며, 이후 소련 당국에 의해 숙청된 이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27] 탈출에 성공한 일부는 홋카이도 등지로 피난했으며, 이후 도쿄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에는 백계 러시아인 11명이 피폭당했으며, 이 중 3명은 그 해 안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28]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 수락을 발표하고 9월 2일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일본 내 러시아인들의 법적 지위는 연합국의 일원인 소련 국적자 또는 구 러시아 제국 출신자로서 미묘하게 변화했다. 소련 정부의 강제 귀국 조치 등을 피한 이들 중 일부는, 전쟁 중 강제로 변경했던 이름을 되찾은 야구선수 빅토르 스타루힌처럼 일본 사회 내에서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나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시작된 냉전 시대에는 소련과 일본의 관계가 경색되면서 재일 러시아인의 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극동 위원회나 대일 이사회[29]에 참여하고 극동 국제 군사 재판에도 판사와 검사를 파견했지만, 전후 일본 점령 정책의 주도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으며,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전역의 소련 편입[30]을 제외하면 일본 본토에 대한 소련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효로 일본이 주권을 회복했을 때, 조약 서명을 거부한 소련과의 국교는 단절되었다. 1956년 일소 국교 회복으로 외교 관계는 복원되었고 시베리아 억류자의 귀환 등이 이루어졌으나, 북방 영토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는 여전히 냉랭한 상태를 유지했다. 냉전 기간 동안 일본은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에 속해 소련과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간주하며 경계하는 관계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 일본에는 소련 대사관 직원, 무역 관계자, 아에로플로트 직원, 타스 통신 특파원 등 소수의 소련인들이 거주했으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경시청 공안부 등의 스파이 활동 감시 및 적발도 계속되었다.[31]

문화 및 예술 분야에서의 교류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져 지식인이나 예술가들이 단기적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소련 국민이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은 사회적 어려움을 동반했다. 이시이 히로키의 아내 나타샤[32]의 사례처럼, 정식 결혼이 허가되더라도 소련 당국이 출국을 수년간 허가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1938년 소련으로 망명했다가 체포, 구금된 후 소련 국적을 취득했던 일본인 배우 오카다 요시코가 1972년 일본으로 귀국하여 1986년 다시 소련으로 돌아갈 때까지 일본에 체류한 것은 이 시기의 특이한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 속에서도, 러시아 혁명을 피해 일본으로 망명했던 백계 러시아인들과 그 후손들은 일본 정교회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유지해왔다. 고베 그리스 정교회나 니콜라이당 등 일부 정교회에서는 이들 망명 러시아인 계통의 신자들이 일정 규모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21]

2. 4. 소련 붕괴 이후 (20세기 말~현재)

1980년대 후반의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와 1991년의 소련 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러시아 연방 및 독립 국가 연합(CIS) 국가들의 성립은 일본과 구 소련 지역 간의 인적 교류를 이전보다 훨씬 용이하게 만들었다.[33] 일본 내 체류 인원은 1990년 소련 전체에서 340명이었으나, 2009년에는 러시아 국적자만 7,814명, 구 소련 15개국 합계로는 11,506명으로 20년이 채 안 되어 33배 이상 증가했다(일본의 외국인 참조).

오늘날 일본에는 약 7,000명에서 8,000명 가량의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주로 일본어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러시아 본토의 러시아인들과 거의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2005년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일본을 방문하는 러시아인은 연평균 37,000명이지만, 이는 선원 및 관광객의 임시 상륙 허가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이다. 90일 이상(일본 임시 비자 최대 기간) 일본에 체류하는 러시아인은 약 6,000명 수준이다. 도쿄에는 러시아 외교관 가족들을 위한 도쿄 주재 러시아 대사관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4]

소련 붕괴 이후, 홋카이도, 니가타현, 도야마현북일본동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인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러시아 선원들이 자주 상륙하게 된 왓카나이, 네무로, 루모이, 오타루, 도야마현 고스기(현 이미즈시) 등지에는 키릴 문자가 병기된 도로 표지판이나 상점들이 늘어났다.

학술 분야에서는 요코하마 시립 대학에 국제정치학자인 세르게이 브라긴스키가 망명자 외 최초의 소련 출신 조교수로 부임하는 사례가 있었다.[34] 경제 분야에서는 중고차 수출업 등에 종사하며 일본에 체류하는 러시아인 상인들이 증가했다. 한때 "러시안 펍"으로 불리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출신 여성들이 접객하는 음식점도 성행했으나, 매춘 등 범죄 연루 사례가 증가하면서 일본 정부가 입국 관리를 강화함에 따라 그 수는 감소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소련 붕괴 후 우수한 지도자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일부가 일본으로 이주했다. 대표적인 예로 올림픽 체조에서 총 15개의 메달(금 7, 은 5, 동 3)을 획득한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가 일본에서 쓰카하라 나오야의 코치를 맡은 것을 들 수 있다.[35] 현역 선수 중에서는 복싱의 유리 아르바차코프와 올즈베크 나자로프가 소련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프로로 전향한 뒤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36]

스모계에서도 구 소련권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사할린 출신으로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를 둔 전 요코즈나 다이호 고키의 제자였던 로호 유키오(러시아인 최초의 마쿠우치 스모 선수)와 그의 동생 하쿠로잔 유타를 비롯하여, 북오세티야 공화국 수도 블라디캅카스 출신 선수들이 주목받았다.[37] 그러나 로호, 하쿠로잔, 와카노호 토시노리 등 3명의 세키토리는 대마초 문제로 인해 일본 스모 협회에서 해고되었고, 이 사건으로 당시 하쿠로잔의 스승이었던 기타노우미 토시미쓰 이사장이 사임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2010년 9월에는 와카노호의 사촌인 아란이 세키와케로 승진하여, 2013년 은퇴할 때까지 유일한 러시아 국적 마쿠우치 스모 선수로서 스모계에서 활동했다. 구 소련 지역 출신으로는 조지아 출신의 고쿠카이[38], 토치노신, 가가마루와 에스토니아 출신의 바루토 카이토(2010년 오제키 승진) 등이 활약했다.

교토 하리스토스 정교회


다른 유럽 국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터키 등과 비교하면 일본으로 이주하는 러시아인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재일 러시아인 자녀를 위한 교육 시설로는 E.K.LINGUADAR(도쿄 러시아어·문학·문화 학원) 외에는 대부분 자원봉사 단체(동호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2013년 기준).[14]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를 떠나는 국민들이 발생했지만, 2020년부터 이어진 COVID-19 유행으로 양국 간 교류가 이미 제한적이었고, 일본 측의 경제 제재로 국제 항공편 운항이 중단되면서 러시아에서 일본으로의 이주 흐름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구 소련 15개국의 재일 외국인 수 (2015년)[22]
출신 국가인원
러시아8,092
우크라이나1,699
우즈베키스탄1,503
리투아니아638
에스토니아500
키르기스스탄347
카자흐스탄307
벨라루스292
몰도바154
라트비아138
타지키스탄112
아제르바이잔72
아르메니아47
조지아44
투르크메니스탄35
합계13,908


3. 통계

2015년 말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은 총 8,092명이다.[18] 이는 동아시아에서는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성별 분포를 보면 여성이 5,599명, 남성이 2,493명으로 여성의 수가 남성의 두 배 이상 많으며, 주로 30대에서 40대가 다수를 차지한다.

체류 자격별로는 영주자가 3,453명으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일본인의 배우자 등(1,120명), 가족 체류(801명), 인문 지식·국제 업무(778명), 유학(740명), 정주자(452명) 순이다. 과거에 많았던 흥행 비자를 통한 체류는 47명으로, 2006년의 767명에 비해 크게 감소하였다.

지역별 분포를 보면, 도쿄도가 2,389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서 가나가와현(807명), 지바현(519명), 홋카이도(498명), 도야마현(472명), 오사카부(424명) 순으로 나타난다.


4. 북방 영토의 러시아인

2016년 기준으로 쿠릴 열도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은 총 16,668명이다. 각 섬별 인구는 다음과 같다.



주요 마을과 해당 지역의 인구는 아래 표와 같다.

마을인구 (2016년 기준)
유즈노쿠릴스크7,048명
고랴치예 클류치2,025명
말로쿠릴스크1,873명
쿠이비셰프1,757명
쿠릴스크1,666명
크라보자보츠크947명
레이도보921명


5. 문화 및 사회

오늘날 일본에는 약 7,000명에서 8,000명 가량의 러시아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주로 일본어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본토 러시아인들과 거의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일본에 정주하는 러시아인의 역사는 1854년 하코다테 하리스토스 정교회가 세워지기 직전에 시작되었다.[11] 1905년 러일 전쟁의 강화 조약인 포츠머스 조약으로 일본에 할양된 남사할린에는 철수하지 않고 잔류를 선택한 소수의 잔류 러시아인이 발생했다. 이후 1917년 러시아 혁명을 계기로 일본으로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1918년에는 그 수가 7,251명에 달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사회의 편견 등으로 인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1930년에는 3,587명, 1936년에는 1,294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대부분의 재일 러시아인은 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지로 이주하거나 소련으로 귀국하여, 일본에 남은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12][13] 전쟁 중 일본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은 가루이자와 등에 억류되기도 했으며,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에는 백계 러시아인 11명이 피폭되어 그중 3명이 연내에 사망한 사실이 확인되었다.[28] 한편, 과거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남사할린이나 세력권이었던 만주 (1932년부터 만주국)에 거주하던 백계 러시아인들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소련의 대일 참전에 휘말려 소련 영내로 연행되거나 구금되어 일본으로의 재망명이 저지되기도 했다.[27]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한 백계 러시아인의 대부분은 홋카이도에 거주했지만, 그 후 도쿄 등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다. 전쟁이 끝난 후, 소련 정부의 추궁이나 강제 귀국을 피한 재일 러시아인들은 전승 국민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빅토르 스타루힌처럼 일본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강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전 종결 후 냉전 시대에는 재일 러시아인의 수가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1956년 일소 국교 회복 이후에도 북방 영토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는 냉랭했으며,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경계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소련에서는 대사관원, 무역 관계자, 언론인 등이 일본에 거주했지만, 이들을 감시하는 경시청 공안부 등에 의해 스파이 활동이 적발되기도 했다.[31] 문화·예술 교류는 서서히 이루어졌으나, 소련 국민이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은 사회적 냉대와 연결되었고, 정식 결혼 후에도 소련 출국이 수년간 허가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32]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일본을 방문하는 러시아인이 증가했지만, 여전히 유럽 각국,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비교하면 일본으로 이주하는 러시아인의 수는 매우 적은 편이다.

일본을 방문한 백계 러시아인을 연구하기 위해 1995년 12월, 일본과 러시아 연구자들이 모여 방일 러시아인 연구회를 결성하여 21년간 활동했다.[15][16][17]

다음은 2015년 기준 구 소련 15개국 출신 재일 외국인 수 통계이다.[22]


5. 1. 종교



재일 러시아인들은 문화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본토 러시아인들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일본에서의 러시아 정교회 선교는 1861년에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하코다테에는 러시아인과 일본인을 위한 병원이 세워졌고, 니콜라이 카사트킨은 이 병원 근처 교회의 사제로 부임했다. 병원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교회는 남았고, 카사트킨은 하코다테에서 선교 활동을 계속하며 많은 일본인에게 세례를 주었다. 1870년에는 도쿄 주재 러시아 공사가 도쿄 중심부 스루가다이에 러시아 공사관 지부를 위한 특별 구역을 확보했으며, 이후 카사트킨은 이곳에 남녀 청소년을 위한 교육 기관을 설립했다.

5. 2. 언어

오늘날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러시아인은 주로 일본어러시아어를 사용한다.

2013년 기준으로, 재일 러시아인 자녀를 위한 교육 기관으로는 E.K.LINGUADAR(도쿄 러시아어·문학·문화 학원)가 있으며, 그 외에는 자원봉사 단체(동호회)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14]

5. 3. 차별

일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이 일본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적어도 한 상점은 온라인에서 비방을 받았고, 계속해서 무음 전화가 걸려왔다.[5]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의 89%가 러시아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거나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6]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 내 러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은 더욱 악화되었다.[7]

6. 주요 인물

다음은 재일 러시아인 중 주요 인물 목록이다.

'''비일본 국적'''


  • 아무루 미츠히로 … 스모 선수
  • 아란 하쿠토라 … 스모 선수. 2013년 은퇴 후 귀국[39]
  • 나카니와 알렉산드라 … 모델, 탤런트, 피로시키즈 멤버
  • 알렉산드르 반노프스키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ич Ванновский|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 반노프스키ru
  • 알렉산드르 모길렙스키 (유대인)
  • 안드로니크 니콜리스키 … 주교
  • 발렌틴 표도로비치 모로조프 … 모로조프 및 코스모폴리탄 제과 관련 인물
  • 빅토르 스타루힌 … 프로 야구 선수
  • 예브게니 악쇼노프 … 의사
  • 에마누엘 메테르 … 지휘자
  • Origa … 가수
  • 오로라 사토시 … 스모 선수. 2018년 은퇴 후 귀국[40]
  • 젠야 … 성우, 탤런트
  • 주교 세르기 … 성직자
  • 코바라 브라스 … 탤런트, 피로시키즈 멤버
  • 니콜라이 카삿킨 … 일본 정교회 창시자, 성인
  • 노무라 타티아나 … 루마니아(몰도바) 출신 망명 러시아인, 대학 강사
  • 하쿠로잔 유타 … 스모 선수. 2008년 대마 문제로 해고 후 귀국.
  • 표도르 드미트리예비치 모로조프 … 모로조프 양과자점, 코스모폴리탄 제과 창업자
  • 마카르 곤차로프 … 곤차로프 제과 창업자
  • 마르키얀 보리시코 (우크라이나인) … 다이호 고키의 아버지
  • 미하엘 코간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 타이토 창업자
  • 유리 아르바차코프 … 전 권투 선수
  • 레오니트 크로이처 (러시아계 유대인) … 피아니스트
  • 로호 유키오 … 스모 선수. 2008년 해고 후 귀국.
  • 와카노호 토시노리 … 스모 선수. 2008년 해고 후 귀국[41]
  • 바르바라 부브노바 … 미술가
  • 레오 시로타 (유대계) … 피아니스트


'''일본 국적'''

  • 아이이 … 그라비아 아이돌
  • 아네가와 로자
  • 아사히나 준코 … 배우
  • 이시이 타냐 … 저널리스트
  • 이리에 미키 … 배우
  • 우에무라 케이 … AV 여배우
  • 엘리아나 파블로바 … 망명 러시아인 발레리나
  • 올리가 파블로바 … 망명 러시아인 발레리나
  • 오이즈미 쿠로이시 … 러시아 문학자
  • 오이즈미 코 … 배우
  • 오쿠보 기요시 … 연쇄 살인범
  • 오타 리나 … 패션 모델
  • 오타 코지 … 전 프로 야구 선수
  • 오자와 유키요시 … 배우
  • 오자와 세이라 … 작가
  • 오노 안나 … 망명 러시아인 바이올리니스트
  • 카와무라 카오리 … 뮤지션
  • 카케이 미와코 … 그라비아 아이돌, 탤런트
  • 카와무라 타다시 … 배우
  • 키무라 이오리 … 피아니스트
  • 고바야시 에미 … 그라비아 아이돌
  • 사카모토 미우 … 뮤지션
  • 사쿠라자와 나나코 … AV 여배우
  • 조니 노무라 … 프로듀서
  • 시노즈카 잇페이 … 축구 선수
  • 시이노 카롤리나 … 모델 (우크라이나 출신 귀화)
  • 스가이 노보루 … 프로 골퍼
  • 다이호 고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 스모 선수 (제48대 요코즈나)
  • 다카하시 야스코 … 스타일리스트
  • 타키자와 카렌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 패션 모델, 탤런트
  • 타케히사 페니로피 … 의사
  • 타자키 유키 … AV 여배우
  • 다나카 타츠야 … 축구 선수
  • 다나카 마리 … 배우
  • 타라 안나 … 패션 모델
  • 단지 준 … 스모 선수
  • 츠쿠시 미즈코 … 극단 좌장
  • 나타샤 스타루힌 … 영양사. 전 야구 선수 빅토르 스타루힌의 딸
  • 나야 유키오 (오호 고노스케) … 스모 선수
  • 노무라 유토 … 배우
  • 하시모토 칸나 … 배우, 아이돌 (쿼터)
  • 하시모토 신이치
  •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 가수, 배우, 탤런트 (쿼터)
  • 히노 류주 … 피겨 스케이팅 선수
  • 효도 니나 … 뮤지션
  • 히키메 료 … 배우
  • 빅토르 코가 … 일본 삼보 연맹 설립자
  • 후지타 니콜 … 모델, 탤런트 (쿼터)
  • 후지타 아야코 … 발레리나
  • 벳샤 아르세니
  • 호테이 토모야스 … 뮤지션 (쿼터)
  • 무라시게 안나 … 아이돌 (전 HKT48, NMB48) (하프)
  • 야노 아키코 … 뮤지션 (쿼터)
  • 유우키 마오미 … 탤런트 (쿼터)
  • 유우키 모이라 … 점술 연구가
  • 요코야마 루리카 … 아이돌, 탤런트 (쿼터)
  • 로이 제임스 … 배우
  • 로라 … 모델, 탤런트 (쿼터)
  • DJ Foy … 가수 (Repezen Foxx 멤버) (쿼터)

6. 1. 스포츠

일본 프로 야구 초창기에는 스타루힌과 같은 러시아계 선수가 활약했다. 스타루힌은 300승을 달성한 대투수였으나, 일본 국적 귀화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평생 무국적자로 남았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스포츠 분야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세계적인 수준의 러시아(구 소련) 스포츠 지도자들이 새로운 활동 무대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생겼다. 대표적인 예로 올림픽 체조에서 총 15개의 메달을 획득한 안드리아노프가 일본에서 쓰카하라 나오야의 코치를 맡은 것을 들 수 있다.[35]

현역 선수 중에서도 일본에서 프로로 전향하여 성공한 사례가 있다. 복싱에서는 소련 아마추어 선수였던 아르바차코프와 나자로프가 일본으로 건너와 프로로 데뷔한 후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36]

스모계에서도 러시아 및 구 소련 지역 출신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를 둔 전 요코즈나 다이호 이후, 그의 제자이자 러시아인 최초의 마쿠우치 리키시였던 로호와 그의 동생 하쿠로잔 등 북오세티야 공화국 출신 선수들이 주목받았다.[37] 하지만 이들 형제와 와카노호는 2008년 스모 러시아 역도선수 대마 문제에 연루되어 일본 스모 협회에서 해고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협회 이사장이었던 기타노우미 토시미쓰가 사임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와카노호의 사촌동생인 아란이 세키와케까지 승진하며 2013년 은퇴할 때까지 유일한 러시아 국적 마쿠우치 리키시로 활동했다.[39] 조지아 출신의 구로우미,[38] 토치노신, 가바마루나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오제키까지 올랐던 바루토 등 다른 구 소련 지역 출신 선수들도 활약했다. 이 외에도 아무로 고다이, 오로라 미노루[40] 등 러시아 출신 스모 선수들이 있었다.

그 외 스포츠 분야에서는 축구 선수 잇페이 시노즈카, 다나카 타츠야, 프로 골퍼 스가이 노보루, 피겨 스케이팅 선수 히노 류쥬 등이 있으며, 일본 삼보 연맹을 설립한 빅토르 코가도 러시아계이다.

6. 2. 문화/예술



러시아 혁명 이후 일본으로 망명한 구 러시아 제국 국민 중에는 문화·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많았다. 이들 망명자에는 러시아인 외에도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등이 포함되었으나, 일본 내에서는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통칭 '러시아인'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다.[19]

이들 중 일부는 일본의 식문화에 기여했는데, 고베의 유명 양과자점 모로조프는 표도르 드미트리예비치 모로조프와 그의 아들 발렌틴 표도로비치 모로조프가 창업에 깊이 관여했다. 다만, 모로조프 부자는 이후 일본인 공동 경영자와의 분쟁 끝에 회사를 떠나 "코스모폴리탄 제과"를 새로 창업했다. 마찬가지로 고베의 양과자 제조업체 곤차로프 제과 역시 백계 러시아인인 마카르 곤차로프가 설립한 회사로, 특히 위스키 봉봉으로 유명하다.[19][20]

종교적으로는 정교회 신자들이 일본 정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했다. 고베 그리스 정교회나 도쿄의 니콜라이당 등지에서는 망명 러시아인과 그 후손들이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21] 일본의 니콜라이(니콜라이 카사트킨)는 일본 정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안드로니크 니콜리스키 주교, 주교 세르기 등도 일본 정교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예술 분야에서도 백계 러시아인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엘리아나 파블로바와 올리가 파블로바 자매는 일본 발레계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음악계에서는 지휘자 에마누엘 메텔, 피아니스트 레오니트 크로이처와 레오 시로타, 가수 Origa, 뮤지션 카와무라 카오리, 야노 아키코, 사카모토 미우, 호테이 토모야스, 효도 니나, DJ 후오이 등이 활동했으며, 미술가 바르바라 부브노바, 바이올리니스트 오노 안나 등도 일본 문화계에 족적을 남겼다. 러시아 문학 연구자인 오이즈미 쿠로이시와 그의 아들이자 배우인 오이즈미 코 역시 러시아계 배경을 가지고 있다. 배우로는 이리에 미키, 타나카 마리, 히키메 료, 노무라 유토, 로이 제임스 등이 있으며, 모델 및 탤런트로는 오타 리나, 타키자와 카렌(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카케이 미와코, 타라 안나, 나카니와 알렉산드라, 젠야,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유우키 마오미, 로라, 코바라 브라스 등이 활동했다. 게임 회사 타이토의 창업자 미하엘 코간(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음악 프로듀서 조니 노무라, 스타일리스트 다카하시 야스코, 점술가 유우키 모이라 등도 러시아계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러시아계 인물들의 활약이 있었다. 초창기 프로 야구에서는 빅토르 스타루힌이 투수로서 통산 30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는 일본 국적 취득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평생 무국적자로 남았다.) 스모계에서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를 둔 다이호 고키요코즈나에 올랐으며, 2000년대에는 북오세티야 공화국 출신의 로호 유키오와 그의 동생 하쿠로잔 유타, 그리고 와카노호 토시노리 등이 활약했으나, 이들 3명은 스모 러시아 역도선수 대마 문제에 연루되어 일본 스모 협회에서 해고되는 사건이 있었다.[37][41] 이후 와카노호의 사촌인 아란이 세키와케까지 올랐다.[39] 복싱에서는 유리 아르바차코프와 올즈베크 나자로프가 일본으로 건너와 프로로 전향한 뒤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36] 올림픽 체조 금메달리스트인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는 일본에서 쓰카하라 나오야의 코치를 맡기도 했다.[35] 이 외에도 프로 골퍼 스가이 노보루, 피겨 스케이팅 선수 히노 류쥬, 축구 선수 잇페이 시노즈카, 다나카 타츠야, 일본 삼보 연맹 설립자 빅토르 코가 등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러시아계 인물들이 활동했다.

대중문화 속에서도 러시아 또는 러시아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 빅토르 니키포로프와 유리 플리세츠키, 애니메이션 ''유리!!! on ICE''의 두 러시아인 등장인물
  • 시몬 브레즈네프와 보로냐 from ''듀라라라!!''
  • 에라스트 판도린, 보리스 아쿠닌의 소설 등장인물로, 요코하마 주재 러시아 부영사로 묘사된다.
  • 리에프 하이바, 하이큐!!의 러시아계 일본인 등장인물
  •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의 아나스타샤
  • 아야세 에리, ''러브 라이브! School Idol Project''의 쿼터 러시아인
  •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혼마 메이코 (어머니가 러시아계 혼혈)
  • ''Alya Sometimes Hides Her Feelings in Russian''의 알리사와 마리아 미하일로브나 쿠죠 (러시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 ''걸즈 & 판처''의 클라라

6. 3. 기타

일본으로 망명한 구 러시아 제국 국민도 많았다. 그 내역에는 러시아인 외에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이들은 일본에서 통용되기 어려운 우크라이나어폴란드어 대신 상대적으로 소통이 쉬운 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러시아인"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았다. 1918년 한 해에만 일본으로 온 이러한 망명자 수가 7,251명(일본 경찰 기록)에 달했다.[19] 일본으로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 중 일부는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미국 등으로 재이주하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 마지막 주일 대리 대사를 지낸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아브리코소프 Дмитрий Иванович Абрикосов|드미트리 이바노비치 아브리코소프ru는 1925년 일소 국교 회복 후에도 일본에 머물며, 제2차 세계 대전 종결까지 백계 러시아인들을 통솔하고 일본 정부와의 교섭에 임했다.

창세기 프로 야구에서 300승을 기록한 빅토르 스타루힌 (일본 이름: 須田博, 일본 국적 귀화 신청은 수리되지 않아 평생 무국적 상태였다), 고베의 전통 양과자점 "모로조프" 창업에 깊이 관여한 표도르 드미트리예비치 모로조프와 발렌틴 표도로비치 모로조프 부자 (모로조프 가는 일본인 공동 경영자와의 재판에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여 모로조프를 넘겨주고 후에 "코스모폴리탄 제과"를 창업했다), 마찬가지로 고베의 양과자 메이커 "곤차로프" (주로 초콜릿 과자, 위스키 봉봉으로 유명)의 창업자 마카르 곤차로프도 백계 러시아인이다. 이 외에도 하코다테고베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활약한 백계 러시아인은 매우 많다.[19][20]

이러한 망명자들 중에는 정교 신자로서 일본 정교회에 다니던 사람도 적지 않았고, 그 후손들은 현재도 고베 그리스 정교회나 니콜라이당 등 일본의 몇몇 정교회 내에서 일정 규모의 망명 러시아인 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21]



1925년 일소기본조약 체결로 양국 간 국교가 회복된 후에도 일반 국민의 접촉은 엄격히 제한되었다. 특히 소련으로부터의 출국은 일부 외교·무역 관계자를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했고[23], 일본 공산당이나 다른 무산 정당에 대한 지령도 일본인 활동가를 모스크바로 부르거나 제3국에서 접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본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의 대다수는 여전히 사회주의 혁명으로 망명을 강요받은 백계 러시아인이 차지했다. 이들은 과거 러시아 제국 영토였던 남사할린에 거주하거나, 러시아 제국의 세력권[24]이었던 만주 (1932년부터 만주국)에 거주했다. 1930년대 만주에는 약 5만 명의 백계 러시아인이 거주했다.[25] 원래 러시아인에 의해 건설된 만주 북부의 하얼빈에서는 러시아인 커뮤니티에 의해 성 소피아 성당과 같은 대규모 동방 정교회 성당이 건설·유지되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백계 러시아인 대부분은 적성 외국인으로 간주되어 감시·구금의 대상이 되었다.[26] 더욱이 전쟁 말기인 1945년 8월 9일 소련의 대일 참전에 휘말려, 중국 동북부(구 만주국)에서 소련 영내로 연행되거나 소련령에 편입된 사할린 남부(남사할린)에서 구금되어[27] 일본으로의 재망명이 저지된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으로 탈출에 성공한 백계 러시아인 대부분은 홋카이도에 정착했지만, 이후 도쿄 등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다. 같은 해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서는 백계 러시아인 11명이 피폭되었고, 그중 3명이 연내에 사망한 사실도 밝혀졌다.[28] 한편, 일본 국내의 재일 러시아인은 가루이자와 등으로 억류되었고, 소련의 대일 참전으로 입지가 더욱 악화되었으나, 일본 정부가 8월 15일 포츠담 선언 수락을 발표하고 9월 2일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서 재일 러시아인은 전승 국민이 되었다. 소련 정부의 추궁이나 강제 귀국을 피한 이들 중에는, 전시 중 강제 개명에서 해방된 빅토르 스타루힌처럼 일본 사회에서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후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극동위원회나 대일이사회[29]에 참가했고, 극동국제군사재판에도 판사나 검사를 파견했지만, 대일 점령 정책의 주도권은 미국이 쥐고 있었고 홋카이도나 혼슈로의 소련군 진주도 실현되지 않아, 남사할린이나 쿠릴 열도 전역의 소련령 편입[30]을 제외하면 일본 본토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농지개혁에서의 부재지주 배제 등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전쟁 격화와 레드 퍼지 강행으로 일본 내 공산주의 운동이 주춤하는 가운데,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이 발효되어 일본의 주권이 회복되자, 전년 강화 회의에서 조인을 거부했던 소련과 일본의 공식 관계는 단절되었다.

1956년 일소 국교 회복으로 양국 외교 관계는 복원되었고, 시베리아 장기 억류자의 일본 귀환 등이 이루어졌지만, 북방 영토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는 냉랭했으며, 냉전 하에서 일본이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진영에 속했기 때문에 서로를 가상 적국으로 감시·경계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소련에서는 대사관원, 무역 관계자, 소련 국영 항공 아에로플로트, 타스 통신 등 보도 관계자들이 일본에 거주했지만, 이들을 감시하는 경시청 공안부 등에 의한 스파이 활동 적발도 이어졌다.[31] 한편, 문화·예술 교류는 서서히 진행되어 지식인이나 예술가가 단기간 일본을 방문하는 경우도 생겼지만, 이시이 히로키의 아내 나타샤[32]처럼 소련 국민에게 일본인과의 결혼은 사회적 냉대와 직결되었고, 정식 결혼이 인정되더라도 소련 출국이 수년간 허가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특이한 사례로, 1938년 소련으로 망명하여 체포·구금된 후 소련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 배우 오카다 요시코가 1972년 일본으로 이주(귀향)하여 1986년 소련으로 돌아갈 때까지 체류했다.

19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 시기부터 1991년 소련의 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러시아 연방 및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의 성립으로 무역 관계는 축소되었지만, 일본과 구 소련 지역 간의 인적 교류는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다.[33] 일본 체류 인원은 1990년 소련 전체에서 340명이었지만, 2009년에는 러시아만 7,814명, 구 소련 15개국 합계 11,506명으로 20년이 채 안 되어 33배나 증가했다(일본의 외국인 참조). 홋카이도, 니가타현, 도야마현북일본동해 연안을 중심으로 러시아인과의 교류도 활발해졌으며, 러시아인 선원이 상륙하게 된 왓카나이시, 네무로시, 루모이시, 오타루시, 도야마현 고스기에는 키릴 문자가 병기된 도로 표지판이나 상점이 늘어났다.

학술면에서는 요코하마 시립 대학에 국제정치학자 세르게이 블라긴스키가 망명자 외 최초로 소련 출신 조교수로 부임했고[34], 경제면에서도 중고차 수출 등으로 일본에 체류하는 러시아인 상인이 증가했다. 또한, "러시안 펍"으로 불리며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여성이 접객하는 음식점도 많이 영업했으나, 매춘 등 범죄 사례 증가로 일본 정부가 입국 관리를 강화하면서 감소했다.

소련 붕괴로 과거의 두터운 보호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던 러시아(구 소련)의 스포츠 지도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터전을 찾는 가운데, 일부는 일본으로 이주했다. 가장 유명한 예 중 하나는 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금메달 7개, 은메달 5개, 동메달 3개로 총 15개의 메달을 획득한 후 일본에서 쓰카하라 나오야의 코치를 맡은 니콜라이 안드리아노프이다.[35] 현역 선수 중에서도 우수한 아마추어 선수를 일본에서 프로로 전향시키는 사례가 있으며, 권투에서는 소련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프로로 전향한 유리 아르바차코프와 오르주벡 나자로프[36]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스모에서는 사할린 출신으로 우크라이나인 아버지(볼리시코)를 둔 전 요코즈나 다이호 고키의 제자로 들어간 로호 유키오 (러시아인 최초의 마쿠우치 리키시)와 그의 동생 하쿠로잔 유타, 그리고 와카노호 토시노리 등 북오세티야 공화국 수도 블라디캅카스 출신 러시아인 리키시들이 두각을 나타냈으나[37], 이들 3명의 세키토리는 스모 러시아 리키시 대마 문제로 해고되었고, 이 사건으로 당시 하쿠로잔의 스승이었던 기타노우미 도시미쓰가 일본 스모 협회 이사장직을 사임하는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2010년 9월 바쇼에서 와카노호의 사촌인 아란이 세키와케로 승진하여, 2013년 은퇴할 때까지 유일한 러시아 국적 마쿠우치 리키시로 활동했다. 구 소련 지역 출신으로는 조지아에서 온 고쿠카이[38](2006년 고무스비 승진)와 그의 후배인 도치노신, 가가마루가 활약하고 있다. 또한, 에스토니아 출신의 바루토 가이토는 2010년 5월 바쇼에서 오제키로 승진했다.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러시아 국민 사이에서도 자국을 탈출하는 사례가 발생했지만, 2020년부터 확산된 COVID-19 유행으로 양국 간 교류가 이미 제한되었고, 일본 측의 경제 제재로 양국 간 국제 항공편이 중단된 영향도 있어, 러시아에서 일본으로 이주하는 흐름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유명 인물


  • 비일본 국적
  • * 아무루 미츠히로 … 스모 선수
  • * 아란 하쿠토라 … 스모 선수. 2013년 은퇴 후 귀국[39]
  • * 나카니와 알렉산드라 … 모델, 탤런트, 피로시키즈 멤버
  • * 알렉산드르 반노프스키 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ич Ванновский|알렉산드르 알렉세예비치 반노프스키ru
  • * 알렉산드르 모길렙스키 (유대인)
  • * 안드로니크 니콜리스키 … 주교
  • * 발렌틴 표도로비치 모로조프
  • * 빅토르 스타루힌 … 프로 야구 선수
  • * 예브게니 악쇼노프 … 의사
  • * 에마누엘 메테르 … 지휘자
  • * Origa … 가수
  • * 오로라 사토시 … 스모 선수. 2018년 은퇴 후 귀국[40]
  • * 젠야 … 성우, 탤런트
  • * 주교 세르기 … 성직자
  • * 코바라 브라스 … 탤런트, 피로시키즈 멤버
  • * 니콜라이 카삿킨 … 일본 정교회 창시자, 성인
  • * 노무라 타티아나 … 루마니아(몰도바) 출신 망명 러시아인, 대학 강사
  • * 하쿠로잔 유타 … 스모 선수. 2008년 대마 문제로 해고 후 귀국.
  • * 표도르 드미트리예비치 모로조프 … 모로조프 양과자점, 코스모폴리탄 제과 창업자
  • * 마카르 곤차로프 … 곤차로프 제과 창업자
  • * 마르키얀 보리시코 (우크라이나인) … 다이호 고키의 아버지
  • * 미하엘 코간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 타이토 창업자
  • * 유리 아르바차코프 … 전 권투 선수
  • * 레오니트 크로이처 (러시아계 유대인) … 피아니스트
  • * 로호 유키오 … 스모 선수. 2008년 해고 후 귀국.
  • * 와카노호 토시노리 … 스모 선수. 2008년 해고 후 귀국[41]
  • * 바르바라 부브노바 … 미술가
  • * 레오 시로타 (유대계) … 피아니스트

  • 일본 국적
  • * 아이이 … 그라비아 아이돌
  • * 아네가와 로자
  • * 이시이 타냐 … 저널리스트
  • * 이리에 미키 … 배우
  • * 우에무라 케이 … AV 여배우
  • * 엘리아나 파블로바 … 망명 러시아인 발레리나
  • * 올리가 파블로바 … 망명 러시아인 발레리나
  • * 오이즈미 쿠로이시 … 러시아 문학자
  • * 오이즈미 코 … 배우
  • * 오쿠보 기요시 … 연쇄 살인범
  • * 오타 리나 … 패션 모델
  • * 오자와 세이야 … 배우
  • * 오자와 세이라 … 작가
  • * 오노 안나 … 망명 러시아인 바이올리니스트
  • * 카와무라 카오리 … 뮤지션
  • * 카케이 미와코 … 그라비아 아이돌
  • * 카와무라 타다시 … 배우
  • * 고바야시 에미 … 그라비아 아이돌
  • * 사카모토 미우 … 뮤지션
  • * 사쿠라자와 나나코 … AV 여배우
  • * 조니 노무라 … 프로듀서
  • * 시노즈카 잇페이 … 축구 선수
  • * 스가이 노보루 … 프로 골퍼
  • * 다이호 고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 스모 선수 (제48대 요코즈나)
  • * 다카하시 야스코 … 스타일리스트
  • * 타키자와 카렌 (아버지는 우크라이나인) … 패션 모델
  • * 타케히사 페니로피 … 의사
  • * 타자키 유키 … AV 여배우
  • * 다나카 타츠야 … 축구 선수
  • * 다나카 마리 … 배우
  • * 타라 안나 … 패션 모델
  • * 단지 준 … 스모 선수
  • * 츠쿠시 미즈코 … 극단 좌장
  • * 나타샤 스타루힌 … 영양사. 전 야구 선수 빅토르 스타루힌의 딸
  • * 노무라 유토 … 배우
  • * 하시모토 신이치
  • * 히가시야마 노리유키 … 가수, 배우, 탤런트
  • * 히노 류주 … 피겨 스케이팅 선수
  • * 효도 니나 … 뮤지션
  • * 히키메 료 … 배우
  • * 빅토르 코가 … 일본 삼보 연맹 설립자
  • * 벳샤 아르세니
  • * 호테이 토모야스 … 뮤지션
  • * 무라시게 안나 … 아이돌 (전 HKT48, NMB48)
  • * 야노 아키코 … 뮤지션
  • * 유우키 마오미 … 탤런트
  • * 유우키 모이라 … 점술 연구가
  • * 로이 제임스 … 배우
  • * 로라 … 모델, 탤런트
  • * DJ Foy … 가수 (Repezen Foxx 멤버)

참조

[1] 웹사이트 在留外国人統計(旧登録外国人統計) https://www.e-stat.g[...] Japanese Ministry of Justice 2024-08-15
[2] 서적 The Making of Modern Japan https://books.googl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2
[3] 웹사이트 'We're all different': Russians in Japan reflect on year since Ukraine invasion https://www.japantim[...] 2024-08-05
[4] 웹사이트 https://www.mofa.go.[...]
[5] 뉴스 Editorial: Discrimination against Japan's Russian residents cannot be tolerated https://mainichi.jp/[...] 2024-08-23
[6] 웹사이트 3. Views of Russia and Putin https://www.pewresea[...] 2024-08-23
[7] 웹사이트 International Affairs Archives https://www.pewresea[...] 2024-08-23
[8] 문서 在留外国人統計(旧登録外国人統計)統計表 法務省 https://www.moj.go.j[...]
[9] 문서 https://www.e-sta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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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문서 日本に亡命したロシア人 http://roshianow.jp/[...]
[12] 간행물 資料解題 日本における白系ロシア人史の断章:プーシキン没後100年祭(1937年、東京) https://hdl.handle.n[...] 北海道大学スラブ研究センター
[13] 간행물 日本の地域社会における対外国人意識に関する社会学的考察 : 北海道稚内市と富山県旧新湊市地域を事例として https://hdl.handle.n[...]
[14] 문서 「母語を忘れない」、ロシアNOW、2013年8月12日 http://m.roshianow.j[...]
[15] 웹사이트 来日ロシア人研究会が活動休止 https://www.sankei.c[...] 産経新聞 2021-03-04
[16] 문서 長縄光男, 沢田和彦編『異郷に生きる―来日ロシア人の足跡』、成文社、2001
[17] 문서 沢田和彦「来日ロシア人研究会」のこと――『異郷に生きる――来日ロシア人の足跡』刊行に寄せて―― 」、成文社ホームページ、2001.03.01/03.10更新 http://www.seibunsha[...]
[18] 문서 在留外国人統計 法務省 https://www.moj.go.j[...]
[19] 문서 白系ロシア人と近代日本文化 http://www.nichiro.o[...]
[20] 문서 函館日ロ交流史研究会 http://moct.web.info[...]
[21] 문서 牛丸康夫『日本正教史』(第三部第一篇第六章:日本在住のロシア人、136頁~142頁)日本正教会教団
[22] 문서 国籍・地域別 在留資格(在留目的)別 在留外国人 法務省 https://www.moj.go.j[...]
[23] 문서 ただし、ドイツ人ながら赤軍参謀本部情報部(GRU)のスパイだったリヒャルト・ゾルゲが重要な機密情報の入手に成功したゾルゲ事件はこの時期に起こっている。
[24] 문서 東清鉄道(北満鉄路)の利権は満州国成立後の1935年までソ連が保持し、多くの職員が満州に居住していた。
[25] 간행물 イギリスからみた日本の満州支配(1)戦間期外交報告(Annual Report)を中心に https://www.ritsumei[...] 立命館大学法学会
[26] 문서 その最も著名な例の一つが、ヴィクトル・スタルヒンに対する改名(須田博)の強制である。
[27] 문서 大鵬の父のボリシコはこのケースに該当し、日本人の妻や息子(幸喜)と生き別れたまま同地で死去した。
[28] 웹사이트 民族問わず苦難の人生 https://web.archive.[...] 読売新聞 2016-12-15
[29] 문서 そのソ連代表として東京に駐在したのは、1945年9月2日に日本が連合国側と結んだ降伏文書にも署名したクジマ・デレブヤンコだった。
[30] 문서 日本政府はこれを認めず、特に北方地域(択捉島・国後島・歯舞諸島・色丹島)は「日本固有の領土」として強く返還を主張し、現在まで北方領土問題が継続している。
[31] 문서 1979年にはソ連国家保安委員会(KGB)少佐の地位を隠して日本でスパイ活動をしていたスタニスラフ・レフチェンコが米国に亡命し、1982年に日本での活動内容を暴露した。
[32] 문서 エリート外交官の養成学校であるモスクワ国際関係大学の学生だったが、石井との結婚によりその可能性を絶たれ、日本への移住を余儀なくされた。石井ターニャの母。
[33] 문서 ただし、ピアニストのスタニスラフ・ブーニンは1988年にソ連から西ドイツへ亡命し、後に日本を中心に活動した人物である。
[34] 문서 現在は米国のカーネギー・メロン大学へ転任している。
[35] 문서 アンドリアノフの現役時代は、塚原直也の父親である塚原光男とライバル関係にあった。
[36] 문서
[37] 문서
[38] 문서
[39] 웹사이트 阿覧引退 やせて力も出ない - 大相撲ニュース https://www.nikkansp[...] 2013-10-09
[40] 웹사이트 角界最重量力士の大露羅氏が帰国 最後はファーストクラスを2席予約 https://hochi.news/a[...] 2018-10-07
[41] 웹사이트 大麻で解雇の元若ノ鵬がロシアへ帰国 - 大相撲ニュース https://www.nikkansp[...] 200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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