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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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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복 왕조는 중국사에서 한족이 아닌 민족이 세운 왕조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특히 요, 금, 원, 청을 대표적으로 꼽는다. 이 용어는 칼 비트포겔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이들 왕조가 한족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복 왕조 개념은 중국 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특히 중국공산당은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의 역사와 영토는 한족과 소수 민족 모두에 의해 형성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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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왕조
개요
유형비한족 왕조
존속 기간907년 ~ 1368년 (대략)
주요 왕조
(907년 ~ 1125년)
서하(1038년 ~ 1227년)
(1115년 ~ 1234년)
(1271년 ~ 1368년)
(1616년 ~ 1912년)
특징
지배 민족거란족
탕구트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
지배 방식한족 문화와 전통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고유의 문화와 제도를 유지
영향중국 역사와 문화에 새로운 요소 도입, 다민족 국가 형성 및 발전 촉진

2. 중국의 범위 (Zhongguo, 中國)

'중국(中國)'이라는 용어는 기원전 10세기경에 처음 사용되었으며, 처음에는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44] 이 용어는 시대와 왕조에 따라 그 의미와 범위가 유동적으로 변화했다. 한족 출신 왕조는 제국의 한족 지역을 가리키기 위해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반면, 비한족계 왕조들은 '중국'을 자신들의 영토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며 다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다.[44]

2. 1. 명나라의 중국

명나라는 정치적으로는 나라 전체를, 문화적으로는 제국의 한족 지역만을 '중국'으로 지칭했다.[45] 한족 출신 왕조는 제국의 한족 지역을 가리키기 위해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비한족계 왕조의 창시자들 역시 한족과 한족이 아닌 민족이 결합된 국가를 가리키기 위해 중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44]

2. 2. 북위와 금나라의 중국

선비족이 세운 북위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는 스스로를 '중국'이라 칭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중국 문화의 일부로 간주했다.[46][47] 북위는 요구르트를 중국의 음식이라고 주장했고, 금나라도 자신들의 나라를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2. 3. 원나라의 중국

쿠빌라이 칸은 1271년에 원나라를 공식적으로 건국하고, 삼황오제부터 당나라까지 이전의 모든 중국 왕조를 계승한다고 주장했다.[48] 원나라 시대 한족 문학가들은 중국이 수 세기 동안 분열된 후 마침내 원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몽골인들과 색목인을 포함한 다른 비한족인들은 공유하지 않았는데, 그들은 중국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여러 왕국이나 국가들이 정복되어 몽골의 통제하에 있다고 생각했다. 일 칸국의 발전과 유사하게, 그들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토착 지식인들은 몽골에 의한 통일을 왕조 전통의 부활로 해석했고, 중국의 개념은 중요한 이념으로 여겨졌으며 이후 명나라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비록 몽골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영토 통합 개념의 부활은 중국(및 이란)에서 몽골 통치의 지속적인 유산이 되었다.[48][49]

2. 4. 청나라의 중국

청나라 황제들은 민족에 관계없이 청나라의 모든 신민을 '중국인'(中國之人)으로 칭하고, '중국'을 청나라 전체와 동일시했다.[50][51] 청나라는 다민족 국가로 간주되었다.[50][51]

청 황제들은 이번원 아래 별도의 행정 시스템으로 비한족 국경 지역을 통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 황제들은 중국의 정의를 확장하여 제국 전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함으로써 중국을 "유연하게" 만들었다. 청 제국은 외교 서신에서 중국을 고유명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한족 신하들은 이 용어의 사용을 비판하며 다른 국경 지역을 제외한 중국의 17성(省)과 동북 3성(만주)을 지칭할 때만 중국을 사용했다.[52] 명나라에 충성을 유지한 한족 문인들은 옛 명나라 국경을 '중국'으로 규정하고 반청 이념의 일환으로 몽골 등 청나라 지배하에 있는 소수 민족을 설명할 때 '외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53]

여러 민족을 청나라가 통치하는 한 가족의 일부로 묘사하기 위해 "중외일가"(中外一家, "내외가 한 가족")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여러 민족의 "통일"이라는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중국을 정복한 후 만주족은 자신들의 국가를 "중국"(中國, 중궈, "중원")으로 규정하고 만주어로 "두림바이 구룬"(두림바이란 "중앙" 또는 "중간"을 의미하고 구룬은 "민족" 또는 "국가"를 의미)이라고 불렀다. 황제들은 청 제국의 영토(현재의 중국 동북부, 신장, 몽골, 티베트 및 기타 지역 포함)를 중국어와 만주어로 모두 "중국"으로 표기했다. 이는 중국을 다민족 국가로 효과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중국'이 한족이 거주하는 지역만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청나라 황제들은 한족과 비한족 모두 '중국'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또한 공식 문서, 국제 조약(청 제국은 국제적으로 "중국"[55] 또는 "중국 제국"[56]으로 알려짐), 외교 업무에서 국가를 지칭할 때 "중국"과 "청"을 모두 사용했다. "중국어"(Dulimbai gurun i bithe)에는 한어,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가 포함되었고, '중국인'(中國之人, 만주어: Dulimbai gurun i niyalma)은 청 제국의 모든 신민을 지칭했다.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만주어와 중국어 모두 중국(두림바이 구룬, 중궈)이라는 용어로 만주에 있는 청나라 영토를 지칭했다. 또한 조약의 만주어 판본에서는 중국의 현명한 황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건륭제는 한족만이 중국의 신민이 될 수 있고 한족의 땅만이 중국의 일부로 간주될 수 있다는 이전의 생각을 거부했다. 대신 그는 1755년 "비한족은 중국의 신민이 될 수 없고 그들의 땅은 중국의 영토에 통합될 수 없다는 중국관(중하, 中夏)이 존재한다. 이것은 우리 왕조의 중국 이해가 아니라 초기 한, 당, 송, 명의 견해이다."라고 말했다.[57] 건륭제는 신장이 중국의 일부가 아니므로 병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한족 관리들의 견해를 거부하고 중국은 다민족이며 한족 지역만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내세웠다.[58]

청나라의 영토 경계가 주변 외세와의 일련의 조약을 통해 확정되면서 교육 개혁을 통해 청의 영토에 몽골, 티베트 등의 지역이 포함된다는 인식을 청 신민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특히 교육 개혁은 한족 신민들이 중국의 정체성에 몽골과 티베트인이 어떻게 포함되는지 이해하지 못하거나 '중국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청 제국의 국경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만들었다.[54]

3. 정복 왕조 개념의 등장과 비판

"정복 왕조"라는 용어는 독일계 미국인 중국학자 카를 아우구스트 비트포겔이 1949년에 요나라(916–1125)에 대해 쓴 수정주의 역사에서 처음 만들어졌다.[1] 그는 요나라뿐만 아니라 금 (1115–1234), (1271–1368), 그리고 (1644–1912)를 "중국"이라고 볼 수 없으며, 지배 가문들이 지배적인 한족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1] 비트포겔은 이들 왕조가 한족을 정복하고 세워졌지만, 소수의 이질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중국을 지배했기 때문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한족 왕조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보았다.[38]

"정복 왕조" 개념은 오타기 마쓰오와 같은 일본 학자들에게 환영받았는데, 이들은 이러한 왕조들을 "중국사"보다는 "아시아사"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을 선호했다.[2]

3. 1. 정복 왕조 개념에 대한 비판

"정복 왕조"라는 용어는 특히 금나라와 같은 왕조에 적용될 때 논란의 여지가 있다.[2] 모든 비한족 정권이 "정복 왕조"로 간주되는 것은 아니며, 북위와 같은 일부 정권은 "침투 왕조"로 분류된다.[3]

중국공산당은 '정복 왕조' 개념이 티베트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주의 정서를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76] 시진핑 주석은 중국 역사에 정복이란 없으며, 오직 중국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통일만이 있었다고 주장한다.[76] 역사학자 파멜라 카일 크로슬리는 시진핑의 이러한 관점을 언급했다.[76] 역사학자 마크 엘리엇은 "이 프로젝트는 항상 정치에 봉사하는 장학 사업이었지만, 여전히 장학이 우선이었다. 이제는 정치가 우선이고 그들이 가진 장은 그들에게 쓸모가 없다."라고 덧붙였다.[76]

과거 학자들이 “정복 왕조”를 “토착” 왕조와 구별하기 위해 사용했던 특징들은 실제로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M. 로빈슨에 따르면 “왕실 사냥”은 “중국에서 고대의 유서 깊은 중원 정치의 복잡한 유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75]

천우퉁(중앙민족대학)은 "요・금・원・청의 각 왕조를 건국한 소수 민족외국인"이라고 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하며, "중국은 예로부터 다민족 국가이며, ... 거란, 여진, 몽골, 만주는 한족에게 이민족으로 여겨지지만, 모두 진정한 중국인이다. ... 한족과 소수 민족 모두 중화 민족의 일원으로서 중국의 역사의 주된 지위와 권리를 누리고 있다."라고 비판했다.[39]

3. 2. 정복 왕조의 체제와 특징

요나라의 북면제, 남면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복 왕조는 복합적인 통치 체제를 갖는 경우가 많았다.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도 이와 유사한 다원적 정치 체제를 채택했다. 이러한 이중 (또는 다중) 지배 체제에 대해서는, 통치 민족이 본래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세계를 통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견해가 있다. 반면, 이민족이 결국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중국 문화에 동화되어 약화되고 멸망에 이르렀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이 두 가지 견해 외에, 이질적인 정복 민족과 중화 민족 간의 문화적 접촉으로 인해 제3의 완전히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는 견해도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북아시아의 여러 부족에 의한 유목 사회, 수렵 사회와 피정복 사회인 중국의 농경 사회가 결합된 복합 체제, 이중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각 민족이 민족적 의식을 고양한 결과, 거란 문자, 여진 문자, 파스파 문자, 만주 문자와 같은 고유 문자를 창제한 것이 특징적이다.

소수 민족에 의한 중원의 주기적인 정복중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분열 후의 통일이 유목민 혹은 유목민화된 한인 정권에 의해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통일이 제도 혁신을 가져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40]

  • 초원에 가까운 북방에서 기원하여 체계적인 봉건 제도나 천인관을 확립하고, 중국 문화의 기본적인 성격을 갖추었다.
  •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로 분열되었던 중국은 초원 문명의 특성을 흡수한 에 의해 통일되었다. 은 통일적인 군현제와 황제제를 확립하여 이후 2000년에 걸친 중국 역사의 기초를 결정지었다.
  • 위진남북조로 인한 수백 년의 중국 분열을 통일한 수나라당나라선비족의 이원 구조를 계승하여 선비족의 이원 구조를 가진 통일 제국을 만들었다. 당나라 초기의 이원성은 "부병제"에 나타나 있는데, 부병제의 기원은 선비족의 부락병제에 있다.[40] 부병제에서는 선비족 남성군인이 되면 가족 전원이 부역을 면제받았고, 한족은 농업을 영위하며 병사를 기르기 위해 세금을 납부했다. 부병제는 부락병제의 색채를 띠며, 군인의 지위는 높고 특권, 명예, 승진이 보장되어 군대가 매우 강력했다. 당나라는 부병제를 바탕으로 당나라 황제가 중원과 초원의 공통의 주인이 된다는, 중국 역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천가한|천가한중국어 체제를 수립했다. 이후 부병제를 포기하고 모병을 시작하면서 군인의 지위는 점차 낮아졌고, 군인은 명예를 잃고 전력은 급속히 저하되었다. 당나라는 안록산과 같은 소수 민족 용병을 사용했지만, 결국 안사의 난이 발발하고 번진의 할거로 이어졌다. 이원 구조 외에 당나라에서 주목할 만한 제도는 국가가 국민에게 토지황무지를 지급하는 "균전제"이다.[40] 균전제는 선비족에 기원을 둔 제도로, 북위가 창시하고 수, 당에 계승되었다. 북위가 균전제를 실시한 것은 초원의 전통 때문이며, 초원 민족은 목초지를 공동으로 소유하는 관습이 있었다.[40] 당장루와 王仲犖|왕중락중국어는 균전제가 봉건 제도 이전의 선비족 공동체 제도에 기인한다고 추측하며, 북위 균전제의 기초는 선비족 탁발의 유목 시대 경제 체제와 목초지 공동 소유 개념에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중국 역사에서 소수 민족의 한화뿐만 아니라 중원 문화와 제도가 초원 전통의 영향을 받은 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40]

4. 비한족계 왕조 목록

토욕혼
284–670 CE중국 일부전연
337–370 CE후연
384–409 CE서진
385–400 CE, 409–431 CE남량
397–414 CE남연
398–410 CE
310–376 CE단제
350–356 CE서연
384–394 CE북위
386–535 CE동위
534–550 CE서위
535–557 CE북주
557–581 CE저족
구지
296–371 CE, 385–443 CE성한
304–347 CE전진
351–394 CE후량
386–403 CE흉노족
전조
304–329 CE북량
397–439 CE
407–431 CE
618–619 CE갈족
후조
319–351 CE후한
551–552 CE강족
후진
384–417 CE정령족
적위
388–392 CE소그드인
[78]전연
756–759 CE괵튀르크족
후연
759–763 CE사타부
전진
907–923 CE후당
923–937 CE후진[79]936–947 CE후한[80]947–951 CE북한
951–979 CE바이족
대리국
937–1094 CE, 1096–1253 CE대중
1094–1096 CE탕구트족
서하
1038–1227 CE순나라
1644–1646 CE여진족
동진
1215–1233 CE후금
1616–1636 CE북원
1368–1635 CE


4. 1. 주요 비한족계 왕조

거란족요나라(916년~1125년), 여진족금나라(1115년~1234년), 몽골족원나라(1271년~1368년), 만주족청나라(1644년~1912년) 등이 주요 비한족계 왕조로 꼽힌다.[77]

민족정복왕조기간최대 강역
거란족
요나라
916–1125 CE중국 일부
여진족
금나라
1115–1234 CE
몽골족
원나라
1271–1368 CE
만주족
청나라
1644–1912 CE중국 전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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